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예식장→경복궁→국중박 거쳐 고향으로 국립중앙박물관 내 야외정원에 있는 보물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이 본래 자리를 찾아간다. 국가유산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은 여주시와 함께 석등을 사적 여주 고달사지로 이전한다고 9일 밝혔다.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은 고려 전기(10세기경 추정)에 제작된 것으로, 아래 받침돌 대신 두 마리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석등은 고달사지에 넘어진 채로 발견된 후 마을 주민이 보관하다, 1958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예식장, 1959년 경복궁 경회루, 2003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거처를 옮겨 왔다. 박물관은 지난 4월 유산청에 보존처리를 위한 현상변경 허가를 받았고, 현재 박물관 보존과학부가 보존처리를 진행 중이다. 학술조사가 끝나면 종합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유산청은 지난달 이전에 관한 국가유산위원회 건축문화유산분과 심의를 마쳤고, 고달사지 현장정비와 석등 보존처리 등이 끝나면 석등을 옮길 계획이다. 유홍준 관장은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의 현지 이관은 문화유산의 맥락을 찾는 뜻깊은 일이지만, 동시에 박물관의 보호와 관리에서 벗어나 현장의 다양한 환경 변화에 마주함을 의미한다"며 "관리이관 이후, 국가유산청과 여주시는 석등의 보존관리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2026/09/09
지폐 속 율곡 이이, 신사임당 그린 이종상 화백 별세 일랑 이종상 화백이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193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5000원권의 율곡 이이와 5만원권의 신사임당 화폐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전고 재학 때 미술부 활동을 시작해,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한다. 이후 서울대 동양화과로 전공을 바꾸어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 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 제10회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재학생 신분으로 특선을 수상했다. 서울대 박물관장, 문화재위원회 박물관분과 전문위원, 한국벽화연구소장,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명예교수 등을 역임했다. 1975년에는 미국 텍사스대에서 첫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화폐 속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외에도 원효대사와 장보고 등 11점의 국가 표준 영정과 역사기록화를 그렸다. 벽화, 성미술 등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저서로는 화실의 창을 열고, 한국 현대미술의 자생성 등이 있다. 받은 상이나 수훈으로는 제1회 신인예술상 최고특상, 제12회 국전 무감사 특선, 제1회 서울대의 자부심상,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상, 제180회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제1회 안견미술대상, 올해의 대능인상, 안견문화대상, 건국포장, 국가유공자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오전 예정이다. 2026/09/09
적정 관람료는 고궁 9000원, 능원 7000원?…궁능 관람료 토론회 지난해 한국성과연구원에서 전문가와 일반인 등 총 6635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적정 궁능 관람료에 대해 전문가보다 국민들이 약 1200~1300원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실 관람객이 가격 인상에 더 긍정적이었는데, 이는 그 가치를 체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국가유산청은 8일 오후 2시께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궁능 관람료 현실화를 위한 대국민 공개토론회'를 개최하고, 한복 무료입장, 외국인 차등요금, 순차적 인상 등을 논의했다. 3시간가량 이어진 토론회에는 시민토론단 45명과 조규형 궁능유적본부장이 참석했다. 이 외에도 토론의 좌장을 맡은 박광무 CST문화행정연구소 대표, 패널을 맡은 김재규 국가유산기획평가원 대표, 최미정 한국성과연구원 대표, 나명하 전 궁능유적본부장,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배영창 한국여행업협회 회원사업국장 등이 자리했다. 인사말을 통해 조 본부장은 "4대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은 자랑스러운 국가유산이자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문화공간으로 소중한 유산을 보존하고 가꾸며 더 나은 관람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하지만 높아지는 관람객 기대에 부응하고 지속 가능한 보존과 활용을 위해 현행 관람료 체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인상의 찬반을 가리지 않고 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토론회는 김재규 대표와 최미정 대표의 주제 발표로 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궁능 관람료 체계 논의의 배경과 국내외 비교'를 통해 궁능은 보존해야 할 국가유산이면서 국민이 함께 누리는 열린 공간으로서 두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짚었다. 다만, 관람료가 곧 가치는 아니기에 관람료를 정하는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무료·할인 제도로 성인 기준 경복궁, 창덕궁은 3000원, 창경궁, 덕수궁, 종묘와 주요 조선왕릉은 1000원을 받고 있지만, 지난해 전체 관람객 약 1781만명 중 1229만명(69%)이 무료 관람에 해당한다. 김 대표는 20년이 넘게 관람료가 동결되는 가운데 제공하는 서비스는 늘었다는 점도 짚으며, 공공성과 지속가능성 사이 균형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최 대표는 '국민·전문가 의견조사 결과 분석 및 시사점'을 주제로 지난해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종묘, 능원을 방문한 2641명을 대상으로 한 1차 조사,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2차(1000명)·3차(2994명) 조사를 토대로 총 6635명의 의견을 전달했다. 먼저 전문가의 경우 90%가 가치와, 국외 비교, 보존 관리나 프로그램 개발 비용 충당을 이유로 관람료 인상에 찬성했다. 또 수익자 부담과 유산 유형별 차등 징수 등에 다수의 의견이 모였다. 전문가는 고궁의 경우 평균 7940원(4720~1만1160원), 능원은 평균 5950원(3450~8400원)이 적정한 가격이라고 봤다. 국민의 경우 50%가 가치나 해외 유산에 비해 낮은 금액을 이유로 인상에 찬성했고, 18%는 현재 금액이 적정하거나 지급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표했다. 다만 실제 관람한 사람에게 물어봤을 때 가격 인상에 더 긍정적임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확인됐다. 최 대표는 만족도 조사 시 관람객 91.4%가 만족해했으며, 93.6%가 재방문 의사를 보인 수치를 바탕으로 유산의 가치를 더 인식한 것으로 분석했다. 국민은 평균 정정 금액으로 고궁 9203원(7521~1만349원), 능원 7196원(5741~8548원)이라 답했다. 최 대표는 의견을 종합했을 때 현실화 때 예상되는 문제는 가치관 충돌, 부정적 감정 유발, 관람객 및 서비스 이용 감소가 있으며, 사회적 영향으로 문화향유 소외계층 발생과 물가 상승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전문가 주제별 토론과 시민토론단 의견 개진 시간에는 적정 관람료에 관한 의견을 포함해 제반 사항이 두루 논의됐다. 이를테면, 관람료 인상 주기를 시행령에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외국인 단체 관람객을 한국인 해설사 등이 의무적으로 동행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다. 또 수입대체경비의 정상화, 점차적 요금 인상,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여행사 및 한복 대여점 문제, 관람료에 따른 인식 변화, 가이드 인증제, 관람 예약제 도입, 유산 향유권, 시기별 차등 요금제, 정기권 등이 논의됐다. 궁궐에서 근무 중이라는 한 실무자는 "만족하는 게 있으면 금액 장소 상관없이 찾아가는 시대"라며 "근무자끼리 1천 원짜리 궁궐에는 천 원짜리 사람이 들어오고, 3천 원짜리 궁궐에는 3천 원짜리 사람이 들어온다고 말한다"고 했다. 조규형 궁능유적본부장은 "관람료 현실화는 속도전은 아니다. 차분히 진행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며 "1983년부터 궁궐 복원 사업이 시작됐고, 2016년 이후부터는 복원 후 어떻게 활용할지로 전환점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떻게 하면 품격있는 공간을 만들지에 대해 주신 의견을 포함해 충분히 고민하겠다"며 "정책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026/09/08
'2026 젊은 건축가상'에 나종원·김민호·신성진·손경민 '2026년 젊은 건축가상'에 나종원 오브 아키덱처 대표, 김민호 코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대표, 신성진·손경민 볼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대표소장 등 3개 팀이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새건축사협의회, 한국건축가협회, 한국여성건축가협회와 '2026년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를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총 42개 팀이 지원한 이번 공모는 1차 서류 심사와 2차 공개 심사를 거쳐 수상자가 결정됐다. 심사위원회는 건축가로서의 기본기와 태도, 건축적 생각의 발전 과정, 사회와 도시에 대한 이해, 건축의 공공적 역할에 대한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건축가로서의 진정성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지도 살폈다. 나종원 대표는 현대건축의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절제된 태도와 세밀한 디테일을 통해 공공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민호 대표는 프로젝트마다 깊이 있고 영리한 건축적 접근을 바탕으로 주변 맥락과 건축의 관계를 섬세하게 풀어낸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신성진·손경민 대표소장은 서로 다른 시선을 바탕으로 맥락과 도시의 관계를 조율하며, 합리적인 아이디어를 높은 완성도의 건축으로 구현한 역량을 인정받았다. 문체부는 2008년부터 우수한 신진 건축가를 발굴·양성하기 위해 '젊은 건축가상'을 운영하고 있다. 선정된 건축가들에게는 장관상이 수여된다. 올해 시상식은 10월 '대한민국 건축문화제'에서 열린다. 2026/09/08
‘뼈를 갈아 넣은 3년’ 김성희 관장, 박수칠 때 떠난다[박현주 아트클럽] 박수칠 때 떠난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도호 개인전을 보려는 관람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개막 후부터 이어진 풍경이다. 7일 뉴시스와 만난 김성희(68) 제22대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관람객 행렬에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실제로 숫자는 달라졌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관람객은 346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23년 320만명, 2024년 299만명에서 다시 크게 뛰었다. 올해 책임운영기관 평가에서는 미술관 역사상 처음으로 ‘S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김 관장이 꼽은 3년의 성과는 관람객 숫자가 아니었다. “사람과 재원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어요.” 그가 취임해 가장 먼저 본 것은 ‘없는 것’이었다. 돈이 없었고 사람이 없었다. 정원이 있어도 육아휴직과 병가 등으로 실제 근무 인력은 부족했다. 김 관장은 임기 동안 정원 8명을 늘렸다. 국제교류 등을 담당하는 학예인력 4명, 경력관 3명, 전산인력 1명이다. 서울관 교육동에는 신규 예산 30억원을 확보해 어린이·가족을 위한 상설 공간 ‘MMCA 아이공간’을 만들었다. 취임 3년차 예산은 전년보다 158억원 늘었다. “처음에는 8명 늘린 게 뭐 그렇게 대단한가 했어요. 그런데 미술관 하나를 새로 만들 때 주는 인원이 8~10명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한 명 늘리는 것도 정말 어렵습니다. 기재부에서 돈 따기 어렵고 행안부에서 사람 따기 어려워요.” 김 관장은 이를 “좋은 미술관이 되기 위한 기반 작업”이라고 했다. ◆욕먹었던 허스트전, 54만명 몰리고 30억원대 작품 2점 기증 김성희 체제의 가장 논쟁적인 전시는 지난 3월 연 ‘데이미언 허스트전’이었다. ‘상업적 작가를 왜 국립미술관에서 보여주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전시는 96일간 54만1889명을 끌어모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역대 흥행 기록을 다시 썼다. 김 관장은 허스트를 시장의 스타가 아니라 미술관이 다시 들여다봐야 할 작가로 판단했다고 했다. “미술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재조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스트도 시장을 떠나서 왜 죽음과 신, 의학을 이야기해왔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흥행보다 뜻밖의 결과도 생겼다. 허스트가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 2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김 관장은 두 작품의 가치를 30억원대로 추산했다. 하나는 1999년작 스핀 페인팅 ‘아름답게 폭발하는 막무가내 대혼란과 광기, 무지개의 소용돌이 그리고 죽음의 화산 페인팅’이다. 직경 365.8㎝의 대작이다. 회전하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부어 제작하는 허스트의 대표 연작 ‘스핀 페인팅’ 중 하나다. 또 하나는 2008년작 삼면화 ‘인간은 끝내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이니’다. 각 패널은 203.2×129.5㎝다. 검고 어두운 화면과 반복되는 원형, 인물 형상이 결합돼 삶과 죽음, 육체와 소멸이라는 허스트의 주요 주제를 다룬다. 김 관장은 허스트가 전시장에서 직접 두 작품을 가리키며 기증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두 작품의 수증심의를 마치고 현재 기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삼면화에 얽힌 허스트의 설명을 기억했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겪은 뒤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제작한 작품이라는 설명이었다. “허스트가 저희 전시 기획과 연출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어요. 무엇보다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은 게 컸던 것 같아요.” 허스트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전시는 중국으로 순회한다. 김 관장은 중국 현지 사정에 따라 죽음과 관련한 일부 작품이 빠져 규모는 다소 축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전시가 그대로 해외로 순회한다는 의미가 크다. 현재 화제 속에 진행 중인 서도호전 역시 일본과 홍콩 순회가 확정됐다. ◆“조용한 관장? 국현이 앞에 서길 바랐다” 김 관장은 전시기획자 출신이다. 하지만 재임 중 개별 전시에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 미술계에서는 “관장이 너무 조용하다”, “관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조금 억울한 말이긴 한데 괜찮아요. 저는 김성희가 앞에 나오는 것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앞장섰으면 했어요. 나중에 ‘김성희가 노력했더라’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죠.” 취임 당시에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첫 국립현대미술관장이라는 점을 두고 미술계 일각에서 특정 인맥과 연결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왔다. 김 관장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해당 인사와 개인적인 친분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미술관 안에서는 김 관장을 ‘외유내강형’으로 꼽았다. 전시는 학예사에게 맡겼지만 조직과 인사에서는 단호했다. 김 관장도 전시 성과의 공을 학예사들에게 돌렸다. “우리 학예사들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발제하고 열심히 기획했기 때문에 전시가 잘될 수 있었죠.” 그렇다고 전시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었다. “관장이 ‘이 작가 해라, 저 작가 빼라’ 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대신 전체 방향을 맞추는 일은 해야죠.” 허스트전과 같은 시기에 아래층에서 ‘소멸의 시학’을 열도록 큰 방향을 맞췄다. 죽음을 거부하고 영원성을 추구하는 허스트와 소멸을 받아들이는 작품들을 한 미술관 안에서 대비시켰다. 서도호전 역시 한 스타 작가의 성공담으로 끝나지 않도록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와 시기를 맞췄다. 김 관장이 먼저 손댄 것은 전시보다 조직이었다. “조직이 먼저 안정돼야 방향을 외쳤을 때 같이 뛰어줄 수 있겠더라고요.” 서울·과천·덕수궁·청주 4관 인사를 순환시켰다. 특정 인맥과 ‘줄 세우기’가 생기는 것도 경계했다. 사람의 장점과 업무를 맞추는 데도 공을 들였다. “사람마다 장점이 다릅니다. 그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자리에 놓으면 100%를 해요.” ◆“3년은 너무 짧다…5년은 해야 한다” 김 관장이 가장 아쉬워한 것은 시간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서울·과천·덕수궁·청주 4관을 총괄한다. 관장 직급은 오랫동안 고위공무원단 나급인 2급 국장급에 머물다 2020년 1급으로 격상됐다. 그러나 미술계가 요구해온 국립중앙박물관장과 같은 차관급에는 미치지 못한다. 직급은 올라갔지만 임기는 3년이다. 수년이 걸리는 해외 전시와 국제 공동연구, 소장품 정책을 시작해 결과까지 보기에는 짧다. 관장에게 권한을 하나 더 준다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뜻밖에도 ‘권한’ 대신 임기를 말했다. “3년은 진짜 너무 짧아요. 5년은 해야 무슨 성과라도 조금 결산하고 갈 텐데, 시작하고 마무리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아쉽습니다.” 아쉬움은 자신이 시작한 일의 결실을 끝까지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교류와 연구다. ◆“한국미술 국제화, 이제 시작…담론 깔아야” 김 관장은 재임 중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을 만들었다. 세계 미술계의 주요 연구자가 한국에 장기간 머물며 한국 작가와 작품을 연구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첫 초청자는 컬럼비아대 미술사학과 교수 알렉산더 알베로였다. 한국 개념미술을 연구하고 두 차례 강연했다. 다음 초청자로는 하버드대 데이비드 조슬릿 교수가 확정됐다. 기존처럼 해외 학자를 심포지엄에 며칠 초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개월간 소장품을 보고 작가들을 만나게 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학자가 한국에서 장기간 연구하고 글을 써야 그 글이 다시 세계 미술계에서 읽힙니다.” 김 관장이 국제화에서 강조한 것은 시장이 아니라 ‘담론’이었다. 단색화가 국제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은 데 이어 한국 개념미술 등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설명이다. “반짝하고 예쁘다고 끝나면 안 됩니다. 학술과 담론을 깔아야 해요. 그런데 이건 한 해 했다고 티가 나는 일이 아니죠. 다음 관장, 그다음 관장 때 꽃을 피울 수도 있어요. 끊지 말고 계속했으면 합니다.” ◆해외 작품 80점 확보…“그래도 국제소장품 8.9%” 국제 소장품 확충도 김 관장이 공을 들인 분야다. 2024~2026년 제임스 터렐, 존 발데사리, 토마스 루프, 필립 파레노, 루이즈 부르주아 등 해외 주요 작가 작품 약 80점을 수집했다. “제가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국제미술 소장품이 전체의 8.9%밖에 안 돼요. 너무 빈약합니다.” 해외 작품을 늘리는 이유도 한국미술 국제화와 맞닿아 있다. 세계미술의 흐름 속에서 한국미술을 연구하고 설명하려면 해외 주요 작품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학예연구실장은 격상해야…“해외연수 시스템도 없다” 3년간 미술관을 운영하며 내부 구조의 한계도 선명하게 봤다. 김 관장은 학예연구실장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격상시켜야죠.” 올해 실제로 고위공무원단 격상을 추진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고위공무원단 정원이 정부 전체 차원에서 관리돼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문체부만의 결정으로 풀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학예연구실장은 전문임기제 가급으로 임기는 2년이다. 전문성을 축적하고 장기적인 학예정책을 펴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학예직의 해외연수 체계가 없는 것도 아쉬움으로 꼽았다. “큐레이터가 해외 미술관에 6개월 정도 체류하면서 아카이브를 연구하고 돌아오면 그게 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자산이에요. 그런데 사람도 부족하고 돈도 없고 그런 시스템도 없습니다.” 전문인력을 키워야 하지만 한 사람이 장기간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를 메울 인력부터 부족하다. 관장과 기획운영단장의 관계에 대해서는 ‘협업’을 강조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운영단장은 예산·인사·행정을 맡는 고위공무원단 직위다. 과거 미술계에서는 두 자리의 권한과 역할을 둘러싼 갈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지금은 학예실이 빵빵하기 때문에 협업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예산도 기획운영단이 움직이고 학예실도 콘텐츠와 데이터를 줘야 같이 짤 수 있습니다.” “지금은 두 조직의 관계가 가장 좋아요. 공무원 조직과 학예조직이 소통을 잘하고 있습니다.” 문체부 본부와의 관계도 손봤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미술관 직원을 문체부 본부에 파견했다. “얼굴을 봐야 돼요. 스킨십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김 관장은 “문체부 안에서 국현에 대한 이해와 위상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민간 후원도 크게 늘었다. 후원금은 2024년 16억원에서 2025년 29억원, 올해 4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 기업과 문화재단 7곳을 신규 후원자로 끌어들였다. 민간 후원이 큐레토리얼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선을 그었다. “기업이 전시 기획 방향이나 의도에 관여할 수는 없어요.” ◆“그들만의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김 관장이 취임하기 전 국립현대미술관을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미술계에 있는 나도 전시가 어렵더라고요. 약간 ‘그들만의 세상’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취임 후 전시장 글씨부터 문제 삼았다. 너무 작고 어두워 관객이 읽기 어렵다고 했다. 작품이 너무 많으면 덜어내라고 했다. “큐레이터는 다 보여주고 싶어 해요. 그런데 관객이 숨을 쉬어야 합니다. 작품을 보고 감동도 받고 쉬었다 가야죠.” 반복해서 한 말도 있다. “돈 아껴 써라. 우리 세금이다.”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일은 서울관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지역미술관 활성화를 위한 ‘MMCA 지역동행’도 새로 만들었다. 경남·전남·전북 등 지역미술관에서 예술영화 상영과 다원예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청주관은 인근 대학과 군부대, 기업을 연결하는 지역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김 관장이 말한 ‘사랑받는 미술관’은 유명 작가를 데려오고 관람객 숫자를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서울·과천·덕수궁·청주가 각자의 관객을 만나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완성 못한 안타까움 있지만 후회는 없다” 김 관장은 오는 17일 미술관을 떠난다. 마지막 날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나가면서 저 경치를 한번 보겠죠. 아무래도 섭섭하겠죠. 매일 눈 뜨자마자 뛰어왔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관장실 창밖으로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떠올리게 하는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김 관장이 3년 동안 매일 마주한 풍경이다. “3년, 뼈를 갈아 넣어서 일했어요.” “완성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관장 김성희’의 3년은 끝난다. 다시 ‘기획자 김성희’로 돌아간다. 퇴임하면 오랫동안 몸담았던 비영리 예술기관 캔파운데이션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관장 재임 중에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캔이 제일 재밌어요. 젊은 작가들을 만나서 얘기하면 내가 살 것 같아요. 거기서 받는 에너지가 신선하거든요.” 박수칠 때 떠난다. 이제 다시 젊은 작가들 곁으로 간다. 2026/09/08
한국 수중발굴 50년 기념행사…'역사의 물살, 미래의 물결' 우리나라 수중발굴 50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를 기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행사가 열린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오는 14일부터 19일까지 전남광주 목포 국립해양유산연구소에서 '한국 수중발굴 50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공식 표어는 '역사의 물살, 미래의 물결'로 특별전, 선상 간담회, 국제학술대회 등이 준비됐다. 오는 14일 오후 2시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사회교육관과 수중유산박물관에서 특별전 개막식을 통해 영상시사회, 특별공연, 유공자 표창 등이 이뤄진다. 특별전은 '바다를 건넌 나무, 자단'으로 내년 2월 14일까지 신안선에서 발견된 자단목을 중심으로 중세 동아시아 해상 교류를 조명한다. 다음날인 15일에는 '신안 해저로 탐방'이 진행된다. 연구소가 복원한 '조선통신사선'을 타고, 전문가 약 50명과 함께 신안 증도 해저유물 매장해역을 직접 항해한다. 배 위에서 지난 발굴 성과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신안선 발굴 유적지 현장에서 해상헌다례를 거행한다. 16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신안선 자단목과 동아시아 해양교류'를 주제로 한 기조 강연과 발표가 이뤄진다. '신안선의 연구성과와 과제', '자단목의 수종과 산지에 관한 자연과학적 연구 동향', '신안선 자단목의 문자·문양과 중세 동아시아 해역교류', '신안선을 통해 본 14세기 아시아 해역의 자단목 무역에 관한 고찰-자단목에 새겨진 표식의 해석을 중심으로-', '무역 구조를 통해 본 신안선과 자단목', '일본의 자단 작품과 자단의 모방 기법' 등이다. 17일에도 오후 1시부터 '한국 수중유산 조사, 앞으로 50년'을 주제로 한 발표가 이어진다. '한국 수중발굴 과거 50년, 미래 50년', '한국 수중유산 거버넌스의 특징과 발전 방향-한국·캐나다·영국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동아시아·동남아시아의 공유된 해양사와 수중문화유산 연구의 현황: 미래 협력을 향하여', '남중국해 북서부 대륙사면 침몰선에 대한 심해 고고학 기술 응용', '인공지능을 활용한 수중 출수 유물 연구 방법론' 등이다. 17~19일에는 '해양유산 달빛유람' 등도 운영한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국립해양유산연구소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6/09/07
애국지사 유묵으로 전시된 '일반시국은', 친일 박중양 글씨였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전시됐던 '일반시국은'이 조사 결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글씨로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예, 역사(근현대사), 고문헌, 보존과학 분야 전문가 7인의 교차 검증을 종합해 박중양이 일본 유학 시절 또 다른 이름 박원근을 사용해 남긴 것으로 판단했다고 7일 밝혔다. '일반시국은'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 의승병장 영규대사가 승병을 모집할 때 했던 말로, 박물관 측은 지난달 10일 박중양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을 외부 제보를 받아 전시에서 유묵을 철수하고 12일 사과한 바 있다. 유홍준 관장은 "각 분야의 독립적 검증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 만큼, 이번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은 박물관이 국민 앞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 이에 대해 미흡했다"고 전했다. 또 "아버지의 유품으로 알고 마음을 다해 관람해 주신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송구한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전시품 검증 절차를 더욱 강화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자문위원들은 행서체, 두인, 자호인 등으로 서예를 익힌 인물이 작성했고, 필적 대조 결과 획 처리 방식에 유사성이 있다고 봤다. '한인'이라는 표현도 일본인 앞에서 주로 쓰던 말로 독립운동가 박원근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이 외에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밀양박씨규정공파 족보', '술회', '대한제국관원이력서' 등의 문헌 분석 결과, 박중양은 일본 유학 시기까지는 박원근, 1903년 귀국 무렵부터는 박중양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19~20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황(표구) 제작 방식 역시 근대 일본식 표구에 자주 쓰인 방식으로 확인됐다. 이에 박물관은 최종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이 일본 유학 시절 '박원근'이란 이름으로 남긴 서예 작품으로 판단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애국지사 박원근 유가족께 조사 경위와 결과를 설명하고 거듭 사과드릴 예정이며,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시품 및 전시내용에 대한 사전 검증을 강화하고 근현대사 분야 내외부 전문가풀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2026/09/07
중국관 철수·대만관 논란…160억 광주비엔날레, 무엇이 문제였나 제16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대만관은 문을 열었고 중국관은 사라졌다. 대만관은 지난 5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막했다. 명칭 변경을 둘러싼 우여곡절 끝에 'Taiwan Pavilion'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대만 측은 한국에서 보내준 지지와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반면 중국관은 작품 설치 도중 철수했다. 광주비엔날레 30년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대만을 동시에 파빌리온에 참여시킨 결과다. 문제는 중국과 대만을 함께 초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세계의 첨예한 갈등을 예술의 공론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국제비엔날레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느냐다. 양안 관계에서 'Taiwan'이라는 명칭이 갖는 정치적 민감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중국과 대만을 처음으로 동시에 참여시켰다면 명칭과 참여 자격, 양측과의 사전 협의, 충돌이 발생할 경우 적용할 원칙까지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는 그러지 못했다. ◆'대만관' 바꿨다가 되돌리고…중국관은 철수 논란은 파빌리온 명칭에서 시작됐다. 대만 측은 당초 'Taiwan Pavilion'으로 협의했지만 재단이 명칭을 국립대만미술관(NTMoFA)으로 변경했다고 반발했다. 재단은 국가관이 아닌 기관관으로 계약했기 때문에 기관명을 사용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외 미술계에서 '정치적 검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재단은 지난달 25일 다시 'Taiwan Pavilion' 명칭 사용을 승인했다. 이번에는 중국 측이 반발했다. 중국관 참여 작가들은 작품 설치를 중단했고 결국 철수했다. 미술계에서 시작된 논란은 전시장 밖으로 번졌다. 중국 광저우시 대표단의 광주 방문 일정이 취소됐고, 여수세계섬박람회에 참여할 예정이던 중국 저장성 저우산시도 이미 설치한 홍보관 운영을 취소했다. 광주시도 소통과 절차에 미비점이 있었다며 사과하고 운영 과정에 대한 점검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나의 파빌리온 명칭에서 시작된 문제가 다른 국제행사와 도시 간 교류까지 흔든 셈이다. ◆윤범모 "예술은 예술, 정치는 정치"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는 지난 4일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중국관 철수를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표는 자신이 대만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지 않으려고 했고, 중국 측도 재단의 이런 노력을 알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중국관 철수와 대만관 참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예술은 예술, 정치는 정치이니 둘을 겹쳐 보지 말아 달라. 순수 예술 행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만 C-LAB은 참가 신청을 해 받아들인 것이고, 중국관은 별도로 추진해 관련 기관 간 협약까지 체결한 것"이라며 "중국과 대만을 동시에 초청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본전시와 파빌리온 논란에도 선을 그었다. 파빌리온은 본전시와 별개로 운영되는 행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파빌리온 운영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비엔날레에서 예술과 정치를 그렇게 쉽게 떼어놓을 수 있을까. 특히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출범했다. 세계 각국의 미술을 한자리에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 사회와 역사에 질문을 던져온 국제미술제다. 파빌리온이 본전시와 별개의 프로그램이라는 설명도 재단의 기획 책임까지 별개로 만들지는 않는다. 파빌리온 역시 '광주비엔날레'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공식 프로그램이다. 파빌리온은 별개라고 했지만 파장은 별개가 아니었다. 대만 C-LAB의 참여와 중국관 추진 경로가 달랐다는 재단의 설명과 별개로, 결과적으로 하나의 비엔날레 안에서 양안 문제가 충돌했다. 사태가 터진 뒤 중국관 철수를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와 사전에 이런 충돌 가능성을 얼마나 면밀하게 살폈느냐는 다른 문제다. 30년 된 국제비엔날레라면 많은 나라를 불러들이는 것만으로 국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역사와 정치, 문화적 맥락을 읽고 충돌 가능성을 관리하는 능력 역시 국제비엔날레의 기획 역량이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것은 국제화의 부족이 아니라 국제적 감각의 부재였다. ◆작지만 밀도 높았던 본전시…그런데 왜 릴케인가 더 아쉬운 것은 정작 본전시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추니엔 예술감독은 올해 본전시 참여 작가를 역대 최소 규모인 22개국 43팀으로 줄였다. 여러 전시장으로 뻗어나가던 기존 방식에서도 벗어났다. 작품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한곳에 집중했다. '확장의 논리' 대신 '집중의 강도'를 택했다. 권병준·박찬경의 신작 '불림'에는 시민들이 모아준 쇠붙이가 작품의 재료가 됐다. 5·18로 삶이 바뀐 오월어머니회는 322점의 그림을 내놓았다. 작품 하나하나를 충분히 볼 수 있는 작지만 밀도 높은 전시였다. 그러나 전시의 밀도와 별개로 이번 비엔날레가 내건 주제를 얼마나 깊이 밀고 갔느냐는 또 다른 질문이 제기됐다. 주제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아르카익 아폴로의 토르소' 마지막 문장에서 가져왔다. 지난 4일 VIP 사전 개막에서 전시를 관람한 홍가이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비평문 '철학적 신경이 빠진 명령: 제16회 광주비엔날레의 릴케 오독(誤讀)에 대하여'에서 이 지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홍 교수는 작품이 무가치해서 실망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전시를 지탱해야 할 철학적 핵심이 공허했다"고 지적했다. 릴케의 마지막 문장이 "하나의 철학적 사건으로 사유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슬로건으로 소비됐다"고 비판했다. 호추니엔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릴케의 문장을 '프로그램 없는 요구'라고 설명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왜, 무엇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는 제시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홍 교수는 이에 대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치명적으로 얕다"고 했다. 릴케의 토르소가 관람자에게 삶을 바꾸라고 명령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 큐레이토리얼 프레임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43팀으로 줄인 '집중'은 통했다 홍 교수 역시 이번 전시 전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43팀으로 작가 수를 줄이고 전시 전체를 하나의 공간에 집중한 것을 "진정으로 대담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더 많은 작가, 더 많은 공간, 더 많은 작품으로 커져온 비엔날레의 '팽창 모델'을 거부하고 집중을 택한 것은 릴케의 미학적 논리와 공명한다는 평가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었다"고 했다. 전시 설계에서 구현한 집중이 릴케의 존재론적 명령까지 밀고 나가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광주라는 장소에서 이 문제는 더 무거워진다. 홍 교수는 "광주는 추상적인 도시가 아니다. 5·18의 도시"라고 했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명령에 광주의 시민들은 이미 역사적으로 삶을 걸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오월어머니회 322점의 그림이 등장하지만 그는 5·18의 역사적 무게와 릴케의 존재론적 명령이 충분히 만나지 못했다고 봤다. 결국 이번 비엔날레가 위대한 시와 광주의 비극이라는 "두 개의 깊은 원천"의 권위를 빌리면서도 어느 쪽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160억원 광주비엔날레, 무엇을 바꿔야 하나 중국관 철수와 릴케를 둘러싼 비판은 서로 다른 문제다. 하나는 국제미술행사를 운영하는 판단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전시를 구축하는 큐레이토리얼 철학의 문제다. 하지만 두 논란이 던지는 질문은 한곳에서 만난다. 30년 된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와 자신이 선택한 주제를 얼마나 깊이 읽고 있는가.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총예산은 약 160억원이다. 이 가운데 전시·행사에 투입되는 예산은 약 40억원이다. 다만 비엔날레 예산은 행사 준비 기간을 포함해 2년에 걸쳐 편성·집행된다. 국내 최대 규모 국제미술행사인 만큼 요구되는 기획과 판단의 수준도 높을 수밖에 없다. 올해 본전시는 규모를 줄이면서 오히려 작품을 보는 힘을 키웠다. '더 많이'에서 '더 깊이'로 방향을 돌린 것은 광주비엔날레가 앞으로 가져갈 만한 변화다. 그러나 국제비엔날레의 경쟁력은 좋은 작품을 불러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의 정치·역사적 맥락을 읽는 국제적 판단력이 필요하다. 강렬한 철학적 문장을 주제로 가져왔다면 그것을 전시 전체에서 감당하는 기획의 깊이도 필요하다. 중국관과 대만 C-LAB의 참여 경로가 달랐다는 설명으로 이번 논란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비엔날레 안에서 충돌할 수 있는 정치·역사적 맥락을 얼마나 면밀하게 읽었느냐가 문제다. 릴케를 불러온 것이 문제도 아니다. 그 한 문장이 가진 무게를 끝까지 감당했느냐가 문제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그 질문이 이제 광주비엔날레 자신에게 돌아왔다. 2026/09/07
"프리즈보다 볼 게 많았다"…넓고 화려해진 키아프 8만명, 판매는 '온도차' "올해는 프리즈보다 키아프가 더 볼 게 많았다." 25주년을 맞은 키아프 서울(Kiaf SEOUL)이 달라졌다. 전시장은 넓고 화려해졌다. 작품만 빼곡히 늘어놓던 아트페어에서 벗어나 먹고 쉬고 즐기는 공간도 커졌다. F&B 공간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잔치마당'을 방불케 했다. 볼거리도 늘었다. KB금융그룹이 마련한 김택상 특별전 '별의 축적(A Gathering of Stars)'은 빛과 색을 중심으로 한 신작을 선보였다. 상업 부스 사이에서 작품을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운 전시로 호평을 받았다. 현장에서는 "올해는 프리즈보다 키아프가 볼 게 많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2022년 프리즈 서울 상륙 이후 상대적으로 밀려 보였던 키아프가 올해 공간과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손보면서 존재감을 키웠다는 평가다. 7일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2026에는 18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행사 기간 약 8만명이 찾았다. 개막일인 수요일과 목요일 관람객은 지난해보다 5~10% 늘었다. 프리즈 서울이 끝나고 키아프만 열린 일요일에도 약 8000명이 찾았다. 올해 처음 도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도 변화를 이끌었다.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공간과 콘텐츠 전반을 맡아 전시장에 일관된 디자인을 적용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참여한 'Kiaf Classic', 증강현실(AR) 특별전 등 미술 밖으로 프로그램도 넓혔다. 정 디렉터는 "공간과 전시, 프로그램 전반에서 '공존'이라는 방향을 구현하고 관람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유영국 6억~7.2억…수백만원대 젊은 작가까지 작품 판매도 이어졌다. 고가 작품부터 수십만~수백만원대 신진 작가 작품까지 가격대가 넓어졌다. 국제갤러리는 유영국의 1979년작 'Work'를 6억~7억2000만원에 판매했다. 길성의 2009년작 '달항아리'는 5000만~6000만원, 안규철의 2026년작 '미술 세계지도'는 2400만~2880만원에 팔렸다. 장-미셸 오토니엘 작품도 여러 점 거래됐다. 조각 'Sakura (B)' 2점이 각각 6만2000~7만4400유로, 회화 'Sakura' 2점은 각각 4만2000~5만400유로에 판매됐다. 줄리안 오피의 'Katie II.'도 4만5000~5만4000파운드에 팔렸다. 갤러리현대는 백남준, 정상화, 김보희, 김성윤 등의 작품을 판매해 18억원 이상의 실적을 올렸다. 가나아트는 박은선 작품 6점을 5억원 이상에 판매했다. 표갤러리는 김창열, 하종현, 김강용, 위이 등 작품 6점을 약 5억원에 팔았다. 눈에 띈 것은 젊은 작가와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작품이었다. 키아프서울에 처음 나온 호리아트스페이스는 김남표 꽃 작품을 2800만원, 1800만원에 팔았고, 키다리갤러리는 임일민 출품작 11점을 완판하는 등 총 46점을 약 2억원에 판매했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는 박지영 작품 8점이 모두 팔리는 등 신진 작가 작품 16점이 판매됐다. 가격은 40만~300만원대였다. 1998년생 박영환을 내세운 갤러리 휴에서는 작품 약 25점이 팔렸다. 갤러리헤세드는 최지현의 80~120호 대작 8점을 완판했다. 아트소향도 감성빈 솔로부스에서 600만원 이하 작품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어졌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올해는 3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컬렉터층의 유입이 눈에 띄게 늘었고 중국·일본·태국 등 국제 컬렉터들의 방문 또한 지속적으로 다양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8만명 몰렸지만…"사람은 많은데 안 산다" 화려해진 행사장과 달리 부스 안 화랑들의 표정이 모두 밝았던 것은 아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인파가 구매로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않았다. 상당수 화랑 관계자들은 "사람은 많은데 작품을 사지 않는다"며 판매 부진을 호소했다. 작품 앞에는 관람객이 몰렸지만 거래를 기다리는 화랑주들은 애를 태웠다. 이번 키아프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품 가운데 하나인 장-미셸 오토니엘의 4억원대 대형 은빛 연꽃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반면 오토니엘의 중소형 조각과 회화, 500만원대 무라노 유리 램프 등은 여러 점 팔렸다. 관람객의 관심과 실제 구매력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판매 온기도 부스마다 달랐다. 일부 주요 화랑과 인기 작가들은 수억원대 판매와 완판 소식을 전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작품 한 점을 팔기도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화랑협회는 "최근 수년간 이어진 미술시장의 조정기를 지나 시장이 점진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장 전체가 회복됐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전체 거래액과 전년 대비 판매액 증감은 공개되지 않았다. 몇몇 갤러리의 높은 판매액과 완판 사례만으로 시장 전체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팔려도 '쉬쉬'…시장 체온 알기 어려워 판매 정보 공개를 꺼리는 화랑가의 관행도 여전했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행사 기간 주요 갤러리들이 작품 판매 소식을 잇달아 알렸다. 반면 키아프에서는 작품이 팔리고도 판매 사실이나 가격 공개를 꺼리는 화랑들이 적지 않았다. 젊은 갤러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화랑협회 사무국 역시 참가 갤러리의 판매 실적을 취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발표된 판매 사례만으로 약 8만명이 찾은 키아프에서 실제 얼마만큼의 거래가 이뤄졌는지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관람객 숫자와 판매액은 다른 지표다. 8만명이 몰렸다는 사실만으로 시장 회복을 말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공간 변화에서도 명암은 있었다. F&B 공간은 작품과 테이블, 먹거리가 어우러지며 페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반면 현대백화점이 운영한 VIP 라운지는 전시장 밖에 자리해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특별전과 이어진 또 다른 VIP 공간은 제주맥주 팝업과 맞물려 라운지와 F&B 공간의 경계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구에서 동선을 확인하며 머뭇거리는 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올해 키아프의 변화는 분명했다. 25년간 국내 최대 아트페어로 성장했지만 프리즈 서울 등장 이후 따라다녔던 '프리즈의 안방 파트너'라는 인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색깔을 만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읽혔다. ◆25주년 잔치는 끝났다…내년부터 진짜 시험 25주년 잔치는 끝났다. 이제 키아프의 진짜 시험이 시작된다.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은 내년부터 장소를 달리한다. 키아프는 코엑스에 남고 프리즈 서울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옮긴다. 2022년부터 이어진 '한 지붕 두 가족' 체제가 5년 만에 끝난다. 지난 5년간 두 페어는 같은 코엑스에서 공동 티켓을 운영하며 관람객과 국내외 컬렉터를 공유했다. 올해도 키아프에는 약 8만명이 찾았고, 프리즈 서울에는 7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프리즈에서는 유영국 작품이 22억~25억원에 판매되는 등 수억원대 고가 작품 거래가 잇따랐다. 키아프에서는 국내 주요 작가부터 중견·신진 작가까지 폭넓은 가격대의 거래가 이뤄졌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페어가 한 공간에서 관람객과 컬렉터를 공유하며 만들어낸 시너지였다. 키아프는 올해 공간과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바꾸며 독자적인 색깔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영입부터 특별전, 클래식 공연, F&B까지 변화의 폭도 컸다.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은 "마지막 날까지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을 보며 키아프가 국내외 미술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대 예술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며 "앞으로도 키아프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며 새로운 25년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공동 티켓과 협력 관계는 이어지지만 한 공간에서 관람객과 컬렉터를 공유했던 조건은 달라진다. 올해 넓고 화려하게 변신한 키아프가 프리즈와 한 지붕 아래서 누렸던 시너지를 벗어나서도 8만명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까. 키아프 자체의 콘텐츠와 시장 경쟁력이 새로운 25년의 첫 시험대에 오른다. 2026/09/07
거품 뺀 프리즈 서울, 7만명 찾았다…유영국 25억원 최고가 화려함 대신 실리를 택했다. 서울에 처음 상륙했을 때 수십억~100억원대 작품으로 세계 정상급 아트페어의 위용을 과시했던 프리즈 서울이 5년 만에 달라졌다. 초고가 작품 몇 점을 앞세우기보다 실제 거래가 가능한 수억원대 이하 작품을 두텁게 내놨다. 한국 미술시장에 맞춰 가격과 작품 구성을 현실화하며 안정세를 찾으려는 모습이 뚜렷했다. 지난 2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6'이 5일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올해는 약 30개 국가 및 지역에서 130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가했다. 6일 프리즈에 따르면 나흘간 7만명 이상이 행사장을 찾았다. 방문객은 54개 국가 및 지역에서 찾아 역대 가장 다양한 국제 참여를 기록했다. 25개국 178개 미술관 및 기관 관계자도 방문해 기관 참여 역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해 판매의 특징은 '초고가 몇 점'보다 폭넓은 가격대에서 거래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최고가 수준은 국제갤러리가 판매한 유영국의 1971년 회화였다. 22억~25억원에 팔려 프리즈 서울 5년 역사상 한국 작가 작품 최고 판매가를 기록했다. 국제갤러리는 이와 함께 하종현, 박서보, 김윤신 작품도 판매했다. 유영국의 1979년작 'Work'는 6억~7억2000만원에 팔렸다. 김용익의 2023년작 '물감 소진 프로젝트 23-22: 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는 약 2100만~2500만원, 안규철의 2026년작 '미술 세계지도'는 2400만~2880만원에 판매됐다. 홍승혜의 2026년작 'Family'도 400만~480만원에 팔렸다. 갤러리현대는 김창열 작품 5점과 이승택 작품 3점을 판매해 총 23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김창열 작품은 최고 110만 달러, 이승택은 최고 70만 달러였다. 학고재는 이준의 ‘송’이 1억5000만원, 송현숙 회화fmf 1억원에 팔았다. 유리의 150호와 80호 작품 두 점, 채림의 출품작 4점도 새 주인을 만났다. PKM갤러리도 구정아의 '우스' 황금 조각을 3억~3억5000만원, 윤형근 작품을 4억~4억5000만원에 팔았다. 제이슨함은 이목하 작품을 20만 달러에 판매했다. 비비앤엠은 이불 작품을 19만5000~29만 달러에 모두 판매했다. 리안갤러리는 마츠야마 토모카즈 작품을 29만 달러에, 이강소 작품을 3억2000만원에 팔았다. 해외 메가갤러리에서도 수억원대에서 10억원대 작품 판매가 이어졌다. 하우저앤워스는 라시드 존슨 회화를 120만 달러에 국내 주요 기관에 판매했다. 타데우스 로팍은 아드리안 게니 회화를 110만 달러, 안토니 곰리 조각을 75만 파운드에 팔았다. 화이트큐브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회화를 62만5000유로에, 박서보 작품 두 점을 각각 30만 달러와 19만 달러에 판매했다. 탕 컨템포러리 아트는 약 149만 달러(20억원)의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우국원과 김선우 작품은 모두 팔렸다. 알민 레쉬는 이우환 회화와 조지 콘도의 종이 작품 등을 판매했다. 두 작품은 각각 125만~150만 달러에 출품됐다. 리만머핀은 서도호의 프레젠테이션과 갤러리가 소개한 다른 한국 작가들에게도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김윤신의 작품 세 점을 각각 3만~8만 달러에, 유귀미(Guimi You)의 작품 두 점도 판매했다. 싱가포르 STPI는 서도호의 2025년작 실 드로잉 ‘Breathing Home’을 22만 달러(약 3억원)에 판매했다. 페이스갤러리는 110만 달러에 출품된 유영국 회화를 중심으로 좋은 판매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즈워너도 쿠사마 야요이와 조르조 모란디,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의 작품을 판매했다. 글래드스톤은 키스 해링의 1982년 종이 작품 10점을 총 250만 달러(약 35억원)에 판매했다. 한 해외 컬렉터가 한꺼번에 구매했다.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은 점당 11만 달러, 안드로 웨쿠아의 작품은 11만 유로에 팔렸다. 아니카 이의 해조류 조명 작품은 12만5000달러, 로버트 라우션버그 작품은 20만 달러, 매튜 바니의 드로잉은 11만 달러에 판매됐다. 특히 프리즈에서는 작품이 팔리자마자 판매 가격과 실적을 공개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해외 메가갤러리뿐 아니라 국제갤러리와 갤러리현대 등 국내 메이저 화랑들도 판매 작품과 가격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가격 공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국내 미술시장 관행과 달리 거래 자체를 갤러리와 작가의 성과로 내세워 홍보와 마케팅에 활용했다. 가격 공개는 올해 프리즈 시장의 흐름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냈다. 고가 작품만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반대편에서는 100달러도 안 되는 작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포커스 섹션에 참가한 휘슬은 dpgp78의 스펀지 블록 회화를 70달러부터 판매했다. 500점 가운데 400점 이상이 팔렸다. 메이크 룸도 6000~5만 달러 가격대 작품 7점을 개막일에 판매했다. 기획 섹션에서는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작가들의 작품도 거래로 이어졌다. 고원석이 기획한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선화랑이 올해 87세인 석난희의 1987년 회화를 8800만원에 판매했다. 석난희를 처음 접한 큐레이터들의 관심도 이어졌다. 프리즈 서울에 처음 참가한 홍콩 더블 큐 갤러리는 조르제 이바치코비치 작품 4점을 판매했다. 백아트는 한영수의 솔로 프레젠테이션에서 아시아와 서구권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팔았다. 조혜영이 기획한 '머티리얼 프랙티스'에서는 재료와 물성을 앞세운 작품들이 움직였다. 로스앤젤레스 마르타는 한국 화가 이명애의 27패널 작품을 작가 최고가인 3만4000달러에 판매했다. 함께 소개한 한국 가구 디자이너 김민재의 작품도 팔렸다. 서울 라힌은 김규의 나무 달항아리 작품을 해외 컬렉터들에게 모두 판매했다. 뉴욕 워터폴 아트 & 갤러리는 이승희의 도자 작품 여러 점을 3만6000~4만 달러에 팔았다. 솔루나 파인 아트는 장승택 작품을 1만~1만5000달러에, 박종진 작품 세 점을 각각 6000~4만 달러에 판매했다. '100억원짜리 한 점'보다 '얼마나 많은 작품이 거래됐느냐'에 무게를 둔 올해 프리즈의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3일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초고가 작품이 줄어든 것이 한국 시장의 구매력 저하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한두 건의 대형 판매가 시장의 건강성을 결정하지 않는다며 "중요한 것은 전체 거래량"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미술 전문매체의 평가도 비슷했다. '아트뉴스페이퍼'는 올해 서울 미술시장을 이전보다 "성숙했지만 덜 들뜬" 시장으로 평가했다. 갤러리들이 신중한 가격 책정과 젊은 작가를 앞세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아트넷은 판매가 예상보다 좋았다는 반응에도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한국 갤러리 비중이 높아지면서 프리즈 서울의 국제적 흡인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소개했다. 다만 시장 회복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아트넷은 일부 갤러리가 예상보다 좋은 판매 실적을 올렸지만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특히 올해 참가 갤러리 가운데 약 40곳이 한국 갤러리라는 점을 들어 프리즈 서울의 국제적인 흡인력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도 소개했다. 프리즈 측은 오히려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한국 갤러리의 확대를 서울만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는 "신진 작가부터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가격대에서 작품 판매가 이뤄졌다"며 "프리즈 서울은 점점 더 국제적인 페어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 정체성의 중심에는 여전히 한국이 있다"고 말했다. 참가 갤러리들도 한국 시장의 구매력과 해외 컬렉터 유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갤러리현대 도형태 대표는 김창열과 이승택의 판매에 대해 "판매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두 거장의 국제적 위상과 지속적인 미술사적 중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말했다. 타데우스 로팍은 "한국 컬렉터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은 물론 유럽과 미국 컬렉터에게도 작품이 판매됐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즈워너의 제임스 그린 어소시에이트 파트너는 "한국에는 서구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은 수준 높은 컬렉터층이 있다"며 "이 지역의 구매력 역시 여전히 강하다"고 강조했다. 5년차를 맞은 프리즈 서울이 한국 시장의 현실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현지화가 빨라진 만큼 첫해 서울 미술계를 긴장시켰던 파격과 희소성이 옅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올해 전시 동선은 5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막 떠오르는 낯선 작가와 과감한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도 초기보다 약해졌다는 평가다. 한국 갤러리 비중이 높아지면서 "키아프와 프리즈의 차별성이 무엇이냐"는 목소리도 현장에서 나왔다. 새로운 발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석난희와 이명애 등 기획 섹션에서는 새로운 작가들이 주목받았다. 다만 첫해 서울을 흔들었던 낯섦과 충격은 옅어졌다. 반면 작품의 스펙터클이 줄어든 자리에서는 사람의 스펙터클이 커졌다. 올해 처음 헤드라인 파트너로 합류한 신세계그룹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를 비롯해 국내외 컬렉터와 연예인들이 몰리면서 행사장은 미술품 거래장을 넘어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사교가 결합된 거대한 문화 축제를 방불케 했다. 다만 후원 콘텐츠의 미술계 화제성에서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전 파트너 LG가 한국 작가를 집중 조명하며 프리즈 서울의 장소성과 연결했다면, 신세계는 첫해 해외 작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규모 라운지와 VIP 행사는 화제를 모았지만 전시 콘텐츠 자체의 주목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프리즈 위크도 코엑스 밖으로 넓어졌다. 을지로·한남·청담·삼청에서 열린 '네이버후드 나잇'에는 관람객이 몰렸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유영국, 국립현대미술관의 서도호와 크리스틴 선 킴, 리움미술관의 구정아, 뮤지엄 산의 이배 등 주요 전시도 동시에 열리며 서울 전체가 거대한 미술 축제장으로 변했다. 5년간 이어진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의 '한 지붕 두 가족'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프리즈 서울은 코엑스 재개발에 따라 내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옮긴다. 키아프는 코엑스에 남는다. 2022년 같은 장소에서 나란히 출발한 두 아트페어가 내년부터 서로 다른 공간에서 열린다. 개최지 결정이 늦어지면서 한때 미술계에서는 프리즈가 서울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프리즈는 서울 잔류를 택했다. 프리즈 서울 출범 당시 폭스 CEO는 키아프와의 공동 개최를 두고 두 아트페어가 ‘결혼했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렇다고 '이혼'은 아니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일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내년 키아프와 장소를 달리하는 것을 두고 "별거냐, 이혼이냐"는 질문에 "행복한 결혼생활은 계속되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프리즈와 키아프는 파트너십을 2031년까지 연장했다. 장소는 갈라지지만 협업 프로그램은 이어간다. 프리즈는 DDP 이전과 함께 프리즈 하우스 서울을 통한 연중 전시와 갤러리 레지던시, 특별 프로젝트를 확대한다. 내년 여름에는 'frieze' 한국어판 계간지도 창간한다. 관건은 DDP다. 코엑스보다 전시 공간이 작은 DDP에서 프리즈는 참여 갤러리와 프레젠테이션을 더욱 엄선하겠다는 계획이다. 규모를 줄이는 대신 밀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한국 시장에 맞추며 안정세를 찾은 프리즈 서울. '한 지붕'을 벗어나는 내년부터는 얼마나 많이 파느냐를 넘어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가 새로운 시험대다. 2026/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