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2025년 매출 9조1000억…전년比 6%↑ 세계 최대 경매사 크리스티(Christie’s)가 2025년 글로벌 매출 62억 달러(약 9조1000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6% 성장했다고 18일 밝혔다. 특히 하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하며, 시장 회복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평가다. 경매 매출은 47억 달러(약 6조9000억원)로 8% 증가했고, 프라이빗 세일은 15억 달러로 전체 매출의 24%를 차지했다. 전체 낙찰률은 88%를 기록했으며, 낮은 추정가 대비 낙찰가 지수는 113%로 모두 전년 대비 상승했다. 2025년 최고가 낙찰 작품은 11월 뉴욕에서 열린 로버트 F. & 패트리샤 G. 로스 와이스 컬렉션 경매에 출품된 마크 로스코의 ‘No.31 (Yellow Stripe)’로, 6210만 달러에 거래됐다. 같은 해 런던에서는 카날레토의 베니스 풍경화가 3190만 파운드에 낙찰되며 작가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고, 홍콩에서는 피카소 작품이 2540만 달러에 팔리며 아시아 최고가를 새로 썼다. 지역별로는 미주 지역 매출이 15% 증가하며 전체의 41%를 차지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매출은 6억8600만 달러로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전체의 23%를 담당했다.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 고객 비중은 33%로, 전년 대비 3%포인트 상승했다. 크리스티는 지역별 동향과 관련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중심으로 한 중동 고객들의 지출이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중동이 더 이상 신흥 시장이 아닌, 글로벌 미술시장의 핵심 구매층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크리스티는 이러한 흐름이 자사의 전략적 포지셔닝 및 중장기 투자 방향과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보니 브레넌 크리스티 CEO는 “현장과 온라인 전반에 다시 활기가 돌아왔고, 회복된 신뢰가 실적으로 이어졌다”며 “2026년에도 시장을 선도하는 성과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2025/12/18
새로운 무게중심…김세중미술관, 박혜수·오종·허산 그룹전 김세중미술관은 박혜수, 오종, 허산 3인의 그룹전 ‘re-balance’를 오는 27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하나의 주제나 형식으로 수렴하기보다, 고정된 질서와 기준에서 잠시 벗어나 각기 다른 균형의 감각을 탐색하는 기획전이다. 설치, 드로잉, 조각 등 총 9점의 작품을 통해 세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균형의 기준을 흔들며, 새로운 무게중심을 제안한다. ‘균형’은 흔히 안정의 상태로 인식되지만, 실은 끊임없는 조정과 흔들림 속에서 겨우 유지되는 유동적 조건에 가깝다. 이번 전시는 그 불안정한 균형의 순간에 주목한다. 겉보기에는 평온하지만, 언제든 기울 수 있는 긴장 상태로서의 균형이다. 박혜수, 오종, 허산은 각기 다른 조형 언어와 공간적 접근을 통해 변화하는 균형의 감각을 드러낸다. 작품들은 고정된 중심을 제시하기보다, 관람자가 스스로의 기준을 점검하고 재조정하도록 유도한다. 전시는 균형이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설정되는 과정임을 상기시킨다. 전시 기간 중 참여 작가들과 함께하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총 3회 진행되며, 도슨트 전시는 매일 오후 2시에 운영된다. 관람은 무료. 2025/12/17
침수 이후 3년, 다시 생성된 회화…임효 개인전 한국화가 임효(70)의 개인전 ‘생성의 시간–물질의 호흡을 그리다’가 내년 1월 8일부터 2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전북도립미술관 서울 분관에서 열린다. 전북도립미술관이 주관하고 월하미술이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전통 재료를 기반으로 현대적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작가의 최근 회화 작업을 통해, 임효 예술의 핵심 개념인 ‘생성(生成)의 회화’를 집중 조명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2022년 여름 수해로 작업실과 다수의 작품이 침수된 이후, 약 3년에 걸친 ‘복구와 재생의 시간’을 통과하며 완성된 신작들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물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기억의 변형으로 화면 위에 남아 새로운 시간의 지층을 이룬다. 작가는 지난 2년간 제작한 대형 신작들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간과 물질의 흔적이 교차하는 ‘생성의 풍경’을 펼쳐 보인다. 임효는 한지, 먹, 옻칠과 채색, 감물 등 전통 재료를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닌 의미를 생산하는 물질적 주체로 다룬다. 거친 입자와 물성은 토양과 암석의 감각을 화면 위로 호출하며, 자연을 묘사하기보다 자연의 질료로 회화를 구축한다. 이는 한국화의 현대적 확장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천이자, 회화가 이미지 재현을 넘어 세계의 근원적 질서를 사유하는 장(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임효의 회화는 단일한 풍경이나 사건을 재현하지 않는다”며 “한지 위에 반복적으로 축적된 먹과 옻칠, 채색, 감물은 시간 속에서 퇴적된 기억과 물질로 작동하고, 화면은 자연의 지층처럼 중첩된 시간을 품는다”고 설명했다. 2025/12/17
달력이 된 백남준…3일간 선착순 제공 백남준의 예술은 전시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는 책상 위, 벽 한켠에서 매일 넘겨진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남희)는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2026년 달력을 공동 제작했다.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작품과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에 수록된 글과 인터뷰 어록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번 달력은, 예술가의 이미지와 사유를 일상 속 시간의 단위로 옮겨온 협업 프로젝트다. 이번 달력은 작품 이미지와 문구를 단순히 배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계절과 월의 리듬에 맞춰 작품과 텍스트를 선별한 ‘큐레이션형 달력’으로 기획됐다. 한 달의 풍경과 백남준의 문장이 나란히 놓이면서, 달력이라는 기능적 매체는 사유의 장으로 확장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백남준 서거 20주기를 맞아 추진된 협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하나금융그룹은 문화예술 분야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이번 제작에 참여했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달력은 누구나 매일 마주하는 가장 일상적인 매체”라며 “그 안에 백남준의 이미지와 언어가 들어오는 순간, 예술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 협업이 백남준의 예술정신이 일상 속에서 더 넓게 호흡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전시 경험을 일상으로 확장하기 위한 관람객 이벤트도 마련했다.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미술관 방문객에게 하루 50부씩 총 150부의 달력을 선착순으로 제공한다. 2025/12/17
강남구, 삼성역 일대서 '강남 미디어 윈터페스타' 개최 서울 강남구(구청장 조성명)가 오는 19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삼성역 5·6번 출구 앞 G20 광장과 K-POP 광장 일대에서 대형 미디어아트 축제 '2025 강남 미디어 윈터페스타'를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축제는 지난 10월 삼성동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을 '강남 아이즈(Gangnam Eyes)'로 바꾼 이후 처음 선보이는 대형 행사다. 4개 건물, 7개소, 17기 대형 LED 화면을 활용해 빛과 소리, 반응형 연출이 결합된 몰입형 미디어쇼가 펼쳐진다. 주제는 '원더월(Wonderwall)'이다. 과거 도성 진입부에 있던 성벽과 돌담의 선(線) 형태에서 착안했다. 전통 구조물이 지닌 이 아름다움을 재해석해 강남 도심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았다. 19일부터 25일까지 크리스마스 테마쇼 '해치의 빛 선물(Hechi's Gift of Light)'을 상영한다. 약 4분 분량 영상이다. 서울 캐릭터 해치가 산타와 루돌프로 변신해 빛으로 선물을 전하고 공간을 하나씩 밝힌다. 26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새해 테마쇼 '플레이 판타지 2026(Play Fantasy 2026)'을 상영한다. 약 2분 분량 영상에는 2026년의 상징인 아기 붉은 말이 전통놀이를 즐기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전통 처마 곡선의 미를 표현한 '원더 스테이지', 높이 7.5m의 초대형 '이브의 트리' 등이 마련된다. 체험으로는 QR코드로 접속해 크리스마스 소원을 쓰면 LED 화면에 노출되는 '메모리월(Memory Wall)',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빛이 반응하는 '비주얼월(Visual Wall)' QR코드를 통해 신년 캘리그라피 카드를 받을 수 있는 '럭키 QR', 공간 곳곳을 돌며 스탬프를 모아 트리 엽서를 완성하는 '스탬프 투어' 등이 마련된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도심 한복판에서 미디어 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이 축제가 강남을 대표하는 겨울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며 "앞으로 상설 미디어아트 쇼 운영과 계절별 콘텐츠 확대를 통해 강남아이즈를 도심 속 문화 랜드마크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5/12/17
박찬경·박서보·메이플소프까지…국제갤러리, 2026년 전시 공개 국제갤러리가 2026년 전시 라인업을 공개했다. 박찬경·박서보·메이플소프까지 한옥과 K1·K2·K3, 부산점을 아우르는 내년 전시는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간과 기억, 변화와 움직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망한다. 2026년의 시작은 3월 19일, 두 작가의 개인전으로 문을 연다. 한옥과 K3에서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 로터스 강(Lotus L. Kang)의 국내 첫 개인전 ‘Chora’가 열린다. 작가는 한옥 중정의 독특한 구조를 출발점으로 삼아, 내부와 외부,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며 기억과 정체성이 생성되고 흩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K1에서는 박찬경의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가 9년 만에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30여 년간 탐구해 온 분단, 냉전, 전통과 민간신앙의 문제를 회화로 풀어낸 자리다. 민화와 사찰 벽화를 인용한 20여 점의 신작 회화를 통해 ‘전통문화’로 고정된 이미지 이면의 간절한 기원과 집단적 상상력을 다시 불러낸다. 4월 말 부산점에서는 홍승혜의 개인전 ‘이동 중(On the Move)’이 개최된다. 픽셀에서 벡터로 확장된 조형 언어를 바탕으로, 평면의 운동성 실험부터 애니메이션과 퍼포먼스로 이어지는 ‘움직이는 이미지’의 역사를 집중 조명한다. 이미지의 이동과 매체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리듬과 시간성이 전시의 핵심을 이룬다. 6월에는 한옥 공간에서 미국 현대사진의 거장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사회적 논쟁을 넘어, 그의 사진이 지닌 조형적 완결성과 형식미에 초점을 맞춘다. 인물 초상과 꽃을 중심으로 한 정물 사진을 통해 치밀하게 계산된 균형과 구성의 미학을 재조명한다. 이어 K1과 K2에서는 구본창의 기획으로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을 살피는 단체전이 열린다. AI 시대를 맞아 사진 매체의 본질을 다시 묻는 이번 전시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사진작가들의 정물 작업을 통해 ‘렌즈’라는 매개로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주목한다. 8월 말 부산점에서는 태국 출신 작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의 개인전이 열린다. 영상과 퍼포먼스, 설치를 넘나들며 존재와 신념의 문제를 다뤄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간의 영상 작업을 돌아보며 영상 언어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한다. 9월에는 작고 3주기를 맞은 박서보의 대규모 개인전이 K1·K3·한옥 공간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1967년 연필 묘법부터 2023년 마지막 신문지 묘법까지, 50여 년에 걸친 작업을 ‘변화의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하며, 변화가 그의 예술과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짚는다. 같은 시기 K2에서는 김세은의 국제갤러리 첫 개인전이 열린다. 급변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시공간적 변화를 신체적·정신적 행위로 탐구하며, 아직 명명되지 않은 상태들의 풍경을 회화로 보여준다. 연말에는 한옥 공간에서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언어를 주요 매체로 삼아 역사와 정치, 사회적 불의를 다뤄온 홀저는 이번 전시에서 한옥이라는 친밀한 공간 안에서 텍스트를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2026년의 마지막은 K1과 K2에서 열리는 이희준의 신작 전시로 장식된다. 디지털 환경 속 회화의 역할을 탐구해 온 작가는 사진과 조각의 방법론을 회화로 변주하며, 도시와 건축에서 포착한 이미지를 다층적인 시공간 감각으로 풀어낸다. 2025/12/17
‘하얀 발굽과 작은 날개’…슈페리어갤러리, 송수정 개인전 슈페리어갤러리는 송수정(51) 작가의 개인전 ‘Imagination Garden : Fantasy Time’를 개최한다. 오는 23일부터 내년 1월 13일까지 여는 전시는 내면의 감정과 이상적 정원, 생명 이미지가 지닌 상징성을 조명한다. 전시의 주요 연작인 ‘하얀 발굽과 작은 날개’에서는 백마와 나비가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를 잇는 상징적 존재로 등장한다. 아크릴 물감이 흘러내리며 만들어낸 우연적 흔적 위에 오일 물감의 정교한 묘사가 더해지면서 몽환성과 선명함이 공존하는 화면을 완성한다. 작품 속 백마는 현실에 발을 딛고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매개체로, 나비는 변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안내자로 작동한다.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야생정원’ 연작은 촘촘한 점의 질감과 중첩된 색채를 통해 감정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나이프와 붓으로 구축한 표면 위에 겹겹이 쌓인 색은 빛의 미세한 떨림을 만들어내며, 살아 있는 정원의 숨결을 화면 전체에 퍼뜨린다. 송수정 작가는 “회화라는 시각 언어를 통해 내면의 감정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며 “상상 속 정원과 동물,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심리적 안정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자 한다”고 밝혔다. 2025/12/17
공진원 KCDF갤러리, 현성환 ‘파랑새를 따라서’ 개인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2025 KCDF 공예·디자인 공모전시 신진 부문’에 선정된 섬유·금속 공예가 현성환의 개인전 ‘파랑새를 따라서’가 서울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2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희망’이라는 개념을 조형 언어로 풀어낸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파랑새’는 한국 문화에서 긍정과 길조를 상징하는 제비에서 착안한 이미지로, 작가는 이를 생명의 리듬을 품은 모빌 형태로 구현했다. 전시에 선보이는 파랑새들은 수용성 알기네이트 호일 위에 파란 금속성 실을 바느질로 반복해 엮어 두께를 형성한 작품들이다. 모빌 형태로 설치된 파랑새들은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며, 공기의 흐름이나 미세한 진동에 반응해 집합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전주희 공진원 공예진흥본부장은 “현성환 작가는 파랑새에서 발산되는 빛과 색을 통해 희망의 에너지를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며 “작품의 움직임에 따른 관람객의 반응을 관찰하며, 작품을 매개로 한 공감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작가의 실험적 시도를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5/12/17
출산 이후 ‘고군분투’의 용트림…이은실 ‘파고’ 개인전 여성 화가에게 출산은 찬가도, 비가도 아니다. 이은실(42)의 회화는 몸에 새겨진 파동을 자연의 풍경으로 옮겨 놓으며, 고통 이후에도 세계는 계속 움직인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17일부터 여는 이은실 개인전 ‘파고’는 출산이라는 경험을 숭고함이나 비극으로 소비하지 않고, 신체에 남은 흔적을 자연의 언어로 번역한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이은실이 오래도록 숙고해 온 ‘출산’이라는 경험을 처음으로 전면에 드러내는 자리다. 동양화 기법을 기반으로 작업해 온 그는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규범이 충돌하는 지점의 감정들을 회화의 은유적 언어로 번역해 왔다. 1층 전시장에 선보이는 대형 회화 ‘에피듀럴 모먼트’는 폭 7.2미터에 이르는 대작이다. 수묵 채색으로 묘사된 화면에는 두터운 안개에 덮인 부감 시점의 산맥 위로 거대한 뱀 또는 용의 형상이 중첩된다. 네 개의 화폭을 휘감은 동물의 금빛 비늘 사이로는 해체된 뼈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이 작품은 출산 과정에서 산모의 통증 완화를 위해 투여되는 경막외 마취제가 신체에 주입되는 순간의 환각 경험을 소재로 삼았다. 극심한 진통 속에서 감각이 둔화되며 찾아오는 환상은, 출산이라는 행위가 개인에게 부여하는 신체적·정서적 마취 상태를 상징적으로 환기한다. 이은실의 회화는 출산 과정에서 겪은 폭발적인 응집과 분열의 힘을 자연 현상에 비유하는 방식을 취한다. ‘멈추지 않는 협곡’은 신체 내부에서 끊임없이 분출하는 혈액을 거대한 협곡을 가로지르는 붉은 용암에 빗대어 묘사하고, ‘생사의 기로’는 그 용암이 대지 위로 혈관처럼 퍼져 나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살갗 위로 불거진 핏줄의 위태로움을 연상시키는 이 화면들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모체의 격렬한 투쟁을 드러낸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는 출산의 순간에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근접 화면으로 포착한 작품들이 이어진다. ‘고군분투’는 물리적 압력으로 인해 눈의 실핏줄이 터진 장면을 부분적으로 묘사하고, ‘절개’와 ‘흔적’은 복부 절개 부위의 수술 자국과 튼살의 흔적을 화면 위로 끌어올린다. ‘넘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태도’는 산후 유선염을 소재로 삼아, 모성의 의지와 따르지 않는 신체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이은실은 2006년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인사미술공간 ‘신진 작가의 수첩’, 중앙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 등을 거치며 일찍이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는 두 번의 출산 이후 신체적·정신적 충격과 육아로 인한 불가피한 공백을 겪었고, 작업실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었던 시점을 2018년으로 회상한다. 아무도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았던 출산의 고통과 출혈, 공포와 혼란, 그리고 곧바로 적응을 요구받는 사회적 압박은 오랫동안 서랍 속에 밀어 넣어 두어야 했던 기억이었다. 전시 제목 ‘파고’는 개인의 삶에서 마주하는 변곡점을 파도의 높이에 비유한 것이다. 출산은 생성과 환희의 순간이면서 동시에 분열과 상실을 동반하는 사건이다. 이은실은 가장 개인적인 기억과 감각을 자연의 풍경 위에 중첩하며, 출산을 여성의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 존재론적 경험으로 확장한다. 출산을 경유한 인간의 연약함은 거대한 자연의 이미지로 치환되며 순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번 전시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1층과 지하 1층에서 신작 10점을 선보이고, 3층과 4층에서는 2007년부터 2024년까지의 주요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초기의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심리적 갈등을 다룬 작업부터 내면의 정서적 파동에 집중한 근작까지, 이은실 회화가 지나온 경로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전시는 2026년 1월 31일까지. 2025/12/16
‘그린다는 것’의 의미…성곡미술관,'2025 오픈콜'·장-마리 해슬리展 성곡미술관은 16일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 미술관 전관을 ‘회화’라는 오래된 매체에 할애한 두 개의 전시를 동시에 개최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회화가 오늘 우리의 감각과 사고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살아 움직이는지, 그 현재성과 가능성을 함께 살펴본다는 취지다. 2관에서는 '성곡미술관 2025 오픈콜'이 열린다. 이 전시는 회화를 기본 매체로 삼아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 3인을 조명한다. 참여 작가는 정현두, 양미란, 강동호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성곡미술관 오픈콜 프로그램은 한국의 젊은 예술가를 발굴·지원하는 기획으로, 2022년 첫 전시 이후 매년 확장 운영되고 있다. 2025년 오픈콜 역시 전시 준비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이 미술관의 기획과 지원 아래 진행된다. 1관에서는 프랑스 화가 장-마리 해슬리(1939~2024)의 개인전 '그린다는 건 말야: 장-마리 해슬리'를 펼친다. 알자스 광산촌에서 태어난 해슬리는 갱도의 어둠과 병상의 고통 속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예술과 운명적으로 만난 작가다.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워홀, 백남준, 바스키아 등과 교류한 그는 소호가 예술의 거리로 형성되는 과정에 함께하며 평생 회화에 몰두했다. 이번 전시는 해슬리의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는다. 그의 작품은 험난한 현실을 예술로 건너온 한 인간의 궤적을 담아내며, 회화가 개인을 구원하고 세계를 견디게 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전시 기간 동안 특강과 전시 해설 등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전시는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