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유산 이수자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결(結), 시간의 흐름 속에서' [뉴시스Pic] 국가무형유산 이수자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론공개 행사가 16일 서울 용산구 노들갤러리에서 열렸다.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진흥원과 오는 30일까지 2025년 국가무형유산 이수자 지원사업 기획전 '결(結), 시간의 흐름 속에서'를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공모로 선정된 작품을 통해 이수자들이 가진 전승 철학과 기량을 선보인다. 전시공간은 장신 정신을 '결(結)'이란 맥락 아래 '자연의 시간', '장인의 시간', '작품의 시간'으로 구성된다. 2025/10/16
폐허 위에서 핀 ‘모던 아-트’의 불꽃…국립현대미술관 청주 하꼬방의 벽에 그려진 선이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폐허 위에도 예술은 피었다. 전쟁 직후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하꼬방을 아틀리에 삼고 삶을 그렸다. 1957년 ‘모던아트협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젊은 예술가들은 국전의 사실주의도, 앵포르멜의 급진도 아닌 제3의 길을 걸었다. 그 짧고 강렬했던 ‘모던’의 탄생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다시 깨어난다. ‘모던 아-트’ 멋쟁이 1세대 모더니스트들의 삶과 예술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사의 전환기적 장면을 조명하는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경, 문신, 박고석, 한묵, 황염수, 유영국, 이규상, 임완규, 정규, 정점식, 천경자 등 ‘모던아트협회’ 참여 작가 11명의 작품 156점과 아카이브 30점을 선보인다. 전쟁 직후의 궁핍한 현실과 재건의 긴장 속에서 예술의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던 ‘모던 아-트’ 동인들의 낭만과 실험을 되살린다. 1957년 결성된 모던아트협회는 “현대회화의 문제”를 기치로 국전의 사실주의와 앵포르멜의 급진성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을 모색했다. 이들은 4년간 여섯 차례 전시를 통해 생활과 자연, 일상의 풍경을 추상적 언어로 전환하는 실험을 이어갔으며, 추상을 삶과 정신, 현실과 사유를 통합하는 태도로 이해했다. 전시는 ‘모던아트협회 이전’, ‘모던아트협회 1957-1960’, ‘모던아트협회 이후’ 등 세 개의 시기로 구성된다. 협회의 형성과 전개, 해산 이후의 흐름까지 아우르며, 당시의 전시 비평과 기록을 바탕으로 실제 출품작을 재구성했다. 한묵의 ‘꽃과 두개골’(1953), 박고석의 ‘범일동 풍경’(1951), 황염수의 ‘나무’(1950년대) 등 다수의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1부 ‘살며, 그리며’는 부산 피란시절 미술가들의 교유와 생존의 흔적을, 2부 ‘열린 연대’는 1957~1960년 협회 활동의 정점기를, 3부 ‘서로의 길’은 해산 이후 각자의 노선을 조명한다. 특히 1960년대 후반 한묵, 유영국, 박고석 등 작가들이 독자적 화풍을 확립해 나가는 시기의 작품들은 한국 추상의 기틀을 보여준다. 또한 영상작가 김시헌이 AI 기술을 활용해 당시 전시와 풍경을 재현한 신작 ‘전위의 온기’가 도입부를 장식하며, 전시 관련 수필과 비평문을 ‘읽을거리’로 구성해 시대적 맥락을 함께 읽을 수 있게 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짧은 활동이었지만 모던아트협회의 문제의식은 이후 단색화와 민중미술로 이어지며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기원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2026년 3월 8일까지. ◆ 모던아트협회는 어떤 단체인가 1957년, 박고석·유영국·이규상·한묵·황염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모던아트협회는 “현대회화의 문제”를 화두로 내세운 한국 현대미술 1세대 실험 그룹이다. 이들은 국전 중심의 아카데미즘과 앵포르멜의 급진성을 모두 비켜가며, ‘제3의 길’을 모색한 최초의 예술 동인으로 평가된다. 협회는 동화화랑에서 제1회전을 시작으로 4년간 총 여섯 차례 전시를 이어갔고, 문신·정규·정점식·김경·천경자·임완규 등이 합류하면서 폭넓은 예술적 연대를 형성했다. 모던아트협회는 특정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구상과 추상, 표현주의와 절대추상을 아우르며 각자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열린 전시 문화를 만들었다. 짧은 활동이었지만 그들의 실험정신은 이후 단색화, 민중미술로 이어졌고,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기에 결정적 이정표를 남겼다. 2025/10/16
국립중앙도서관 '80년 책장'이 열리다…‘동의보감’ 원본 공개 올해로 국립중앙도서관이 개관 80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도서관은 소장 중인 국보와 보물, 초판본 등을 공개하며 서적과 독서 문화의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특별전을 연다. 도서관은 개관 80주년 특별전 '나의 꿈, 우리의 기록, 한국인의 책장'을 본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15일부터 오는 12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전시 테마는 '책장'으로, 국보를 포함한 200여종의 장서를 시대·주제별로 전시한다. 김정은 국립중앙도서관 서기관은 "책장은 시대정신과 개인의 내면이 만나는 자리"라며 "다양한 개인의 책장이 모여 거대한 우리나라의 책장인 국립중앙도서관의 서사를 담았다"고 특별전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보 '동의보감' 원본이 공개된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16년 만이다. 1613년 허준이 조선과 중국의 의서를 집대성해 편찬한 의학서로, 치료보다 병의 예방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도서관은 총 25권 중 1권의 원본을 선보인다. 또 보물 '석보상절'(1447) 원본이 이날 처음으로 공개됐다. 수양대군이 석가모니의 생애와 설법을 엮은 단행본으로,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8년 앞선 한국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다. 보물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1474)도 전시된다. 불교의 천도 의식을 담은 목판본으로, 지난해 12월 보물로 지정됐다. 해서체 명필과 변상도(變相圖)가 어우러진 당대 최고의 인쇄 예술품으로 평가된다. 국보와 보물은 전시 첫날만 원본을 공개하고 이후부터는 영인본으로 교체한다. 전시는 시대별로 ▲근대 전환기(1894~1945) ▲새 나라, 새 출발(1945~1960) ▲산업화와 민주화(1960~1992) ▲정보화와 세계화(1993~2025)로 구분된다. 근대 전환기에는 국문이 처음 등장한 '한성주보'(1886), 한국 최초 근대신문 '한성순보', 한국 최초 근대 종합잡지 '소년'(1908), 근대 장편소설의 효시 '무정'(1920), 나라 잃은 아픔을 노래한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 등이 전시된다. 해방 이후 출간된 책으로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1948)과 컬러본(1955), 1950년대 베스트셀러로 손꼽힌 정비석의 '자유부인'(1954) 등이 공개된다. 산업화·민주화 시기에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1978), '한국민중사 1'(1986)과 '민중의 함성'(1991) 등의 서적으로 격변의 시대 속 사회적 목소리를 보여준다. 마지막 섹션 '정보화와 세계화'에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2014)를 비롯해 번역본, 웹툰, 웹소설 등 디지털 시대 독서 문화를 반영한 서적과 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 또 e스포츠팀인 T1 소속 선수들의 애독서를 소개한 'T1의 책장' 코너도 마련됐다. 이상혁(페이커), 최현준(도란), 문현준(오너), 이민형(구마유시), 류민석(케리아) 등 선수들이 읽은 책들로 채워졌다. 이날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개관 80주년 기념식도 열렸다. 김희섭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은 기념사에서 "도서관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라며 "앞으로도 국민의 지혜를 모으고 시대의 변화를 이끌겠다"며 도서관의 미래적 역할을 강조했다. 김 관장은 "민족해방의 벅찬 감격 속에 두 달 남짓한 준비 끝에 1945년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단순히 한 기관이 아니라 억눌렸던 민족의 숨결과 새로운 시대의 희망이 하나로 응축된 숭고한 출발이었다"고 알렸다. 이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등을 개관해 국민 누구나 나이와 환경의 차이 없이 지식과 정보를 향유할 수 있는 길을 걸어나갔다"고 했다. 김 관장은 인공지능(AI) 시대 발전과 함께 국가 지식문화유산 보존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이행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지난 80년간 축적해 온 지식정보를 토대로 국가 인공지능 데이터 생태계를 선도하고 글로벌 지식 공동체의 중심으로 도약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영수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참석해 축사했다. 김 차관은 "(도서관은) 우리나라 지식과 문화의 보급 창고"라며 "케이팝과 드라마, 영화, 웹툰 등 우리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성장에는 그동안 쌓아온 지식문화와 창의성이 더해진 결과"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문화의 힘은 도서관과 출판계의 노력 덕분"이라며 "도서관의 발전이 이뤄져야 한국 문화가 세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도서관은 1945년 국립도서관으로 개관해 1963년 도서관법 제정으로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국보 2점과 보물 10점을 포함해 약 1500만 권의 도서·비도서와 2000만 건의 온라인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도서관은 미래 국가 간 지식자원 공유를 위해 해외 도서관과의 교류와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국가지식정보협의회를 구성해 국가 지식정보자원을 수집·제작하는 기관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해외 한국자료실 설치를 지원해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도 강화하고 있다. 또 AI 기반 미래 도서관 체계 구축을 위해 올해 관련 연구조직을 신설, 소장 자료를 디지털화해 AI 연구자 등에게 개방·공유하고 있다. 오는 2028년에는 조선 왕실 문서를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史庫)의 전통을 잇는 국가문헌보존관이 건립될 예정이다. 2025/10/15
윤병락 가을향기…노화랑서 '황금빛 사과' 신작 공개 ‘사과 작가’ 윤병락이 가을을 맞아 인사동 노화랑에서 개인전 ‘사계(四季)’를 연다. 전시는 16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린다. 노화랑과 윤병락은 2007년 첫 초대전을 시작으로 18년간 전시와 아트페어를 함께하며 미술시장에 ‘사과 회화’라는 독보적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전시는 아홉 번째 초대전으로, 작가의 상징인 사과를 중심으로 사계절의 생명력과 회화적 변주를 선보인다. ◆고향의 기억에서 피어난 사과의 미학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윤병락에게 사과는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고향의 기억이자 삶의 원형이다. 그는 “사과는 내 유년의 빛이자 생명”이라 말하며,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순환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왔다. 작업은 자작나무판을 잘라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형적인 캔버스 대신 사과의 실루엣 형태로 변형된 판 위에 삼합 장지를 배접하고, 그 위에 유화를 수십 겹 쌓아 올린다. 한지에 스며든 안료는 사과의 투명한 빛과 결을 드러내며, 풍요의 감각을 시각화한다. 섬세한 밑칠과 반복된 붓질로 완성된 극사실적 사과들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회화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더 깊어진 리얼리티, 더 확장된 세계 윤병락은 20여 년 넘게 사과를 그려왔지만, 여전히 새로운 밀도를 추구한다.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그는 생생한 리얼리티를 위해 붓질을 늘리고, 새로운 캔버스 구성으로 조형적 실험을 이어간다. 최근 그는 국제 무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올해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품이 낙찰되며 글로벌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았고, 9월에는 인도 뉴델리 ‘아트아시아 델리(Art Asia Delhi 2025)’에 참여해 국제적 위상을 확장했다. 이번 전시 ‘사계’에서는 윤병락의 대표작인 붉은 사과와 함께 황금빛 사과 신작이 공개된다. 황금빛 사과는 단순한 색채의 변주를 넘어 가을의 풍요와 귀한 결실을 상징한다. 또한 작가 특유의 부감시점(俯瞰視點) 구도와 감각적인 색채로 자연의 에너지와 인간 내면의 울림을 동시에 전한다. 2025/10/15
파주 도시재생 예술축제…이광기 ‘아트파먼트위크 2025’ 열린다 "이번 행사는 활용되지 않던 공간을 문화적 장치로 되살려 예술과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재생 축제로 펼칩니다." 배우이자 문화기획자인 이광기(갤러리끼 대표)가 총괄 기획을 맡은 예술축제 'Artparment Week 2025'(아트파먼트위크 2025)가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480 아트팩토리NJF 일대에서 열린다. 미술·공예·디자인·공연이 어우러지는 생활예술 축제로, ‘예술이 일상이 되는 아파트 단지’를 표방한다. ◆생활 속 예술로 확장되는 ‘아트파먼트’ 파주출판도시의 일부 구역은 축제 기간 동안 ‘아트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다. 갤러리들은 아파트의 ‘입주민’이 되어 자신만의 전시공간을 꾸미고, 관람객은 ‘이웃집 탐방’하듯 각 갤러리를 거닐며 예술을 즐긴다. 행사는 파주출판도시 내 유휴공간 A동·B동 두 곳에서 진행되며, 40여 개 갤러리와 작가, 마켓이 참여한다. A동에는 갤러리 채율, 에브리아트, Art Project Y(APY), 유앤씨갤러리, 에이치비 갤러리, 웅갤러리, 비유엠갤러리, 야리라거갤러리, 갤러리아트블럭, 갤러리나우, 아트스푼, 그레이니무브 등이 참여한다. 특히 배우 하지원이 Art Project Y 전속작가 자격으로 출품해 눈길을 끈다. B동에는 학고재, 갤러리 박영, 반디트라소, 호리아트스페이스, 인드라망갤러리, 갤러리 바움, 두루아트스페이스, 아트프로젝트씨오, 갤러리 온도, 유병우·이상원·장성진 작가 등 다양한 참여진이 함께한다. ◆전시·공연·체험이 만나는 예술의 축제 이번 축제는 전시와 체험, 공연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예술의 다양한 층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오픈 스튜디오’에서는 이재형, 지석철, 황란 작가가 작업실을 개방해 관람객과 창작의 과정을 공유한다. ‘특별기획전’에서는 양종용 개인전 ‘Rhythmical Vitality’가 열린다. 달항아리와 시멘트 균열, 에폭시 등 일상의 오브제 위에 이끼 형상을 얹어 생명의 순환을 탐구하는 전시다. ‘강연 및 토크’ 프로그램에는 안현정 박사, 송인식 운정양조장 기술이사, 이하린·전은지(위켄드랩) 작가가 참여해 예술과 지역, 삶의 관계를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밤에는 ‘갤러리 나잇(Gallery Night)’이 열린다. 재즈 뮤지션 예진 안젤라 박 쿼텟과 DJ Nanamilk & Eugene이 축제의 열기를 잇는다. 플리마켓, 요가 클래스,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의 아트 퍼포먼스 등 부대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해 가족 단위 방문객도 함께 즐길 수 있다. 'Artparment Week 2025'는 복순도가, 아트팩토리NJF, 롯데아울렛, 심학산 솔덕 돌곶이점, 네이쳐스파, 류 양조장 등 지역 기업이 후원한다. 이들은 “지역 문화 활성화와 예술 생태계 확장을 위한 뜻을 함께하며, 파주출판도시의 새로운 문화 브랜드로 자리 잡을 이번 축제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2025/10/15
간송미술관 ‘보화' 비장한 전시…숨겨야 지킨 시대의 미학 비장한 전시다. 秘藏. ‘감추어 간직한다’는 뜻이라, 그 안에 ‘저항’, ‘보존’, ‘시간의 은닉’ 같은 간송 전형필(1906~1996)의 철학이 다 담겨 있다. 간송미술관 가을 기획전 제목 ‘보화비장(葆華秘藏)'은 단순한 수집의 개념을 넘어 ‘숨겨야 지킬 수 있었던 시대의 미학’을 상징한다. 15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영욱 학예사는 “‘비장’은 1910~1950년대 수장가들이 실제 사용하던 용어로, 당시에는 ‘진장’이라고도 불렸다”며 “귀중한 소장품 가운데서도 특별히 ‘숨겨야 할 보물’을 뜻했다. 이번 전시는 ‘숨겨진 보물의 미학’이자, 근대 수장가 7인의 안목을 통해 간송 컬렉션의 뿌리와 시대적 맥락을 드러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리에 작품을 구입·보관하며 문화보국을 실천했다.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간송은 일제강점기 때 본인이 드러나는 걸 극도로 피해야 했다”며 “당시 ‘돈은 많지만 그냥 구입하는 사람’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이번 전시는 간송 컬렉션을 이루는 숨은 비장 7인의 수장 내력과 수장문화의 맥락을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간송에게 ‘비장’은 단순한 숨김이 아니라 예술을 지켜내기 위한 정신적 방패이자 실천의 방식이었다. 그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문화보국(文化保國)’, 즉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신념으로 고미술을 수집했다. 간송의 컬렉션에는 그 이전 세대 수장가들의 취향과 안목이 깊게 배어 있다. ◆간송미술관 가을기획전 ‘보화비장’ 간송미술관은 오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 성북구 보화각에서 가을 기획전 ‘보화비장(寶華秘藏): 간송 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을 연다. 이번 전시는 근대 수장사의 관점에서 간송이 어떤 작품을 선별·수용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와 공명한 7인의 수장가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기획됐다. 2024년 재개관 이후 ‘간송 컬렉션의 형성과 구축 과정’을 재조명하는 3개년 프로젝트의 네 번째 전시이자, 2026년 간송 전형필 탄생 120주년을 기념할 특별전의 서막이기도 하다. ◆간송이 품은 7인의 근대 수장가 ‘보화비장’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7인의 근대 수장가 컬렉션을 한자리에 공개한다. 희당 윤희중, 송은 이병직, 존 갯즈비를 비롯해 운미 민영익, 위창 오세창, 석정 안종원, 송우 김재수 등 일제강점기 전후 한국 근대 수장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의 대표 소장품 26건 40점이 전시된다. 이 가운데 국보 4건, 보물 4건이 포함됐다. 2층 전시실에서는 중국 상해를 중심으로 교류하며 서화를 모은 운미 민영익의 ‘천심죽재(千尋竹齋) 컬렉션’, 근대 감식안의 토대를 세운 위창 오세창의 ‘천죽재(天竹齋) 컬렉션’, 안중식의 ‘경묵당’을 잇는 석정 안종원의 ‘경묵당 컬렉션’이 수장고에서 나왔다. 1층에는 송우 김재수의 ‘숭고재(崇古齋) 컬렉션’, 독립운동가이자 수장가 희당 윤희중의 ‘적고각(積古閣) 컬렉션’, 조선의 마지막 내관 송은 이병직의 ‘고경당(古經堂) 컬렉션’, 그리고 영국 변호사 존 갯즈비의 고려자기 컬렉션이 이어진다. 갯즈비의 도자 컬렉션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국보 제4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청자기린유개향로’, ‘청자오리형연적’,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청자상감국화모란당초문모자합’, ‘청자음각환문병’, ‘백자박산향로’ 등 총 9건이 출품된다. 가치만 약 300억 원으로 추정되지만, 단순한 금전적 평가보다 간송이 이 유물들을 1937년 일본 현지에서 직접 되찾아온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다. 송은 이병직이 소장했던 추사 김정희의 절필작 ‘대팽고회(大烹高會)’ 예서 대련(보물)도 함께 선보여 이번 전시의 격동의 근대를 관통한 열정과 신념을 살펴볼 수 있다. ◆간송과 근대 수장문화의 맥락 1930~40년대는 한국 미술시장이 급격히 변화하던 시기였다. 경매와 전람회가 활성화되며 고려청자와 서화가 활발히 거래됐고, 수장가들은 각자의 취향과 철학으로 컬렉션을 형성했다. 간송미술관 보화각에 남은 작품 한 점 한 점은 이러한 근대 수장문화의 역사적 증언이다. 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간송 컬렉션은 간송 개인의 안목을 넘어, 동시대 수장가들이 함께 쌓아 올린 근대의 시선과 기록”이라며 “수장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모여 하나의 문화사가 되었고, 그 결실이 오늘의 간송 컬렉션”이라고 말했다. 전인건 관장은 “이번 전시는 간송이 당대 수장가들의 컬렉션에서 민족의 정수라 여긴 작품을 선별·수집한 과정을 조망하는 자리”라며 “근대 수장가들의 안목을 통해 간송 컬렉션을 새롭게 읽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광복 80주년 기념작, 노수현의 ‘무궁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전시의 문을 여는 작품은 심산 노수현의 ‘무궁화’다. 1946년작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노수현이 간송 전형필에게 선물한 이 작품에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라는 애국가 후렴구가 새겨져 있다. 암흑의 시대 속에서도 문화로 나라를 지킨 간송의 신념과, 독립을 위해 헌신한 우국선열에 바치는 헌화를 상징한다. 간송이 일제강점기 속에서 예술로 저항했던 그 시절, 이 한 폭의 그림은 ‘미술의 저항’이자 ‘문화의 생존’으로 읽힌다. 오는 11월 30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해설 프로그램(오전 11시·오후 2시, 회당 30명)과 오디오가이드가 운영된다. 관람료는 성인 5000원. 미취학 아동과 국가유공자 등은 할인 또는 무료입장이다. 2025/10/15
용산구, 리움미술관 구민 20% 할인…삼성문화재단과 협력 서울 용산구(구청장 박희영)는 구민 누구나 리움미술관 입장료를 상시 20% 할인 받을 수 있다고 15일 밝혔다. 용산구와 삼성문화재단은 지역 내 문화시설 접근성을 높여 구민들이 일상 속에서 수준 높은 전시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 용산구에 거주하는 주민은 리움미술관 매표소에서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제시하면 기획 전시를 포함한 모든 유료 전시에서 2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리움미술관에서는 무료로 관람 가능한 고미술 상설전과 함께 유료 전시인 '이불: 1998년 이후', '현대미술 소장품'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번 협력을 계기로 용산구는 지역 내 문화 시설과 협력 확대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소규모 민간 문화 공간과 갤러리까지 참여 범위를 넓혀 구민이 더 다양한 문화 예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협의할 계획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이번 할인제도는 삼성문화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구민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제공한 첫 사례"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 시설과 연계해 구민들이 더욱 풍성한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5/10/15
전자현미경으로 본 허브향의 비밀…농진청 사진전 16일 개막 농촌진흥청이 전자현미경을 통해 식물의 미세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특별한 전시회를 개최한다. 허브 향기의 비밀부터 장미 꽃잎의 표면까지 궁금했던 식물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농진청은 오는 16일부터 26일까지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에서 '원예식물 주사전자현미경(SEM) 사진전'을 개최한다고 15일 밝혔다. 수목원이 휴원하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관람이 가능하다. 이번 사진전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연구 중인 라벤더, 로즈마리, 장미, 복숭아 등 20여종의 원예식물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주사전자현미경을 활용해 식물의 잎과 열매 표면을 최대 10만 배까지 확대해 촬영한 이미지가 전시된다. 연구진은 전자현미경 촬영을 위해 식물 표면을 금으로 코팅해 전기가 잘 통하게 한 후 작업을 진행했다. 전시장에는 확대 사진뿐 아니라 실제 식물과 해부학적 설명문도 함께 전시된다. 라벤더와 로즈마리 같은 허브류 식물은 잎 표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샘털이 있어, 이를 자극하면 유기화합물이 분비돼 특유의 향이 난다. 장미의 경우 꽃잎 표면이 볼록렌즈처럼 굴곡져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오묘하게 달라 보인다. 이영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기초기반과장은 "과학적 분석법을 더한 이번 전시는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원예식물의 숨은 구조와 비밀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5/10/15
명화 '진주 귀걸이 소녀' 정체, 360년 만에 밝혀졌다? 영국의 한 미술 전문가가 세계적인 명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속 인물의 정체를 밝혀냈다고 주장해 화제다. 13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영국 출신 미술 평론가 앤드류 그레이엄 딕슨은 최근 자신의 신간 '베르메르:잃어버린 삶과 되찾은 삶' 출간을 앞두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책에서 "베르르는 일평생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급진적 기독교 분파 '저항파'의 신자였던 피터 클라에스존 반 루이벤과 마리아 데 크누이트 부부를 위해 작업했고, 1665년 이들을 위해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국적인 터번과 거대한 진주 귀걸이로 유명한 소녀는 이 부부의 10살 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녀가 예수의 제자 마리아 막달레나로 분장한 것"이라며 "저항파 신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와 예수의 다른 제자들을 본받아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막달레나를 그 상징적 인물로 표현했다"라고 했다. 물론 모든 미술 전문가가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 평론가 루스 밀링턴은 "이 그림의 매력은 모델의 신비로움에 있다"며 "이 그림은 실제 인물의 초상화가 아니라, 상상 속 인물을 묘사한 것이다. 사람들은 작품 속의 복합적인 의미를 간과하고 그저 전기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라고 반박했다.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2003년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원작 소설을 쓴 트레이시 슈발리에도 "이 그림은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고유한 매력과 가치를 지닌다"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그 수수께끼가 풀린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그림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2025/10/15
노은님 ‘붉은 새’로 부활…박명자×권준성 “좋은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어” 화가 노은님(1946~2022)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그 ‘어린아이의 마음’은 다시 붉은 새의 날개를 달고 현대화랑으로 돌아왔다. 15일부터 여는 전시 ‘빨간 새와 함께’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양아들 권준성의 손,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의 품에서 되살아난 ‘시간여행자’의 귀환이다. 현대화랑에서 1992년 첫 개인전, 2015년 ‘내게 긴 두 팔이 있다면’ 이후 10년 만의 귀환이다. 이번 회고전은 노은님이 생전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80~1990년대 평면 회화 20여 점을 중심으로 그녀의 생명적 회화 세계를 다시 불러낸다. 대작의 압도감과 해방감을 전하는 작품은 모두 박명자 회장의 소장품이다. "이런 아침 잔디 위에 맺힌 이슬이 구슬 같다. 뭐든지 때가 되면 오고, 또 간다.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이 나와 있는 것이 없다." 전시장 벽면에 새겨진 그녀의 말처럼 화면에는 낭비가 없다. 검은 선 하나, 붉은 점 하나, 모두 존재의 흔적이다. 화면 속 생명체들은 시간을 잃은 듯 공기처럼 흐른다. 1970~80년대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실험은 검정과 붉음, 달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거대한 생명의 리듬이었다. ◆ ‘색이 아니라 빛이 있다’ 노은님 아카이브 관장 권준성은 이렇게 회상한다. “노은님은 90년대까지 색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색이 아니라 빛이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남부 화실에서의 작업은 완전히 밝고 자유로워졌죠.” 그는 노은님의 양아들이자 20 여년을 함께한 후견인이다. 생전 노은님은 그를 ‘장군’이라 불렀다. 노은님은 "나와 남편은 장군과 인연으로 16년 째 진정한 친구이자 아들이다. 나는 그에게 항상 빚은 지고 산다"며 "모든 작품의 업무를 맡긴다"는 유언장을 남겼다. 예술가와 조력자,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넘나든 유대였다. 권 관장은 “노은님은 한국에서 불리는 ‘파독 간호사 출신 화가’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어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실제로는 잠시 간호보조원으로 일했을 뿐 ‘나는 간호사가 아니었다’는 노은님의 말은, 출신으로 예술을 규정하려는 시선에 대한 조용한 반박처럼 들린다. 1946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노은님은 1970년 독일로 건너간 병원에서 간호일 보다 그림에 더 재능을 보였다. 1973년 국립 함부르크미술대학에 입학해 회화를 전공했다.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시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그 무렵 백남준은 파리에 온 박명자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독일에 노은님이라는, 그림 잘 그리는 여자가 있어요.” 그 한마디가 인연이 되어, 이듬해인 1980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백남준·노은님 2인전 ‘독일 속의 한국 현대미술’이 국내에 노은님의 이름을 처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84년에는 백남준, 요셉 보이스와 함께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 참여했고, 199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함부르크 미술대학(HFBK)의 정교수로 임명됐다. 2019년 독일 미헬슈타트 오덴발트미술관에는 그를 기리는 ‘노은님 영구 전시관’이 개설되며, 그의 예술 세계가 독일 현대미술사 속에 공식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권 관장은 20년간 작가와 교류하며 자료를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노은님의 자료 1000여 점을 직접 수집했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흩어진 작업을 찾아 결국 파주출판단지에 ‘노은님 아카이브’를 설립했다. “우리가 연구하는 게 아니라, 연구할 수 있게 돕는다. 젊은 연구자들이 자료를 보고 공부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게 아카이브의 본질”이라고 했다. 생전 노은님은 “전 세계 작품의 소유권·판매권·저작권을 장군에게 물려준다”고 유언했지만, 권 관장은 “남편이 계시니 섭섭할까 봐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법적 상속이 아닌, 신뢰의 윤리적 위임이었다. ◆ ‘기적의 귀환’ 권준성은 이번 전시를 ‘기적의 귀환’이라 부른다.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님이 끝까지 작품을 지켜주지 않았다면 이 만남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박 회장은 1990년대부터 노은님의 작품을 보관해왔고, 이번 회고전을 위해 수십 년의 기록을 복원했다. 그녀의 손과 권 관장의 헌신이 부활의 무대를 완성했다. 3m에 달하는 대작에서 새·고양이·물고기·오리·호랑이가 점과 선으로 숨 쉰다. 검은 선은 흐르고, 붉은 점은 심장처럼 뛰며, 달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그림은 ‘생명의 즉흥시’다. 권 관장은 “전시장 1층 대형 그림 3점은 박 회장이 아카이브에 기증했다”고 덧붙였다. 1970년, 노은님이 독일로 건너간 해이자 현대화랑이 문을 연 해다. 반세기 전 한쪽은 낯선 땅에서 예술의 언어를 찾았고, 한쪽은 한국에서 현대미술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두 시간의 축이 다시 만났다. ◆ ‘내 고향은 예술이다’ 노은님은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내 고향은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간호보조원·이민자·여성 화가라는 경계를 넘어, 그는 ‘예술 그 자체’로 존재했다. 아이와 어머니, 새와 인간, 달과 태양이 한 호흡으로 엮인 화면은 ‘존재의 순환’을 상징한다. 1980년대 독일에서의 작업은 표현주의와 네오프리미티브를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한 결과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3m에 달하는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나무 가족’(1984)은 내면의 상징에서 길어 올린 ‘원초의 문법’을 보여준다. 아이처럼 그린 선, 단순한 인물 세 명이지만 ‘기억의 토템’ 같다. 마치 바스키아 그림처럼 보이는데 검은 선으로만 인간의 원형을, 붉은 색으로만 생의 온도를 말하는 노은님은 '여성 작가'로 불리는 걸 넘어, 20세기 표현주의의 비가시적 영역을 다시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번 전시는 ‘전설의 귀환’이 아니라, 한국 미술사의 공백을 메우는 복원이다. ◆ ‘좋은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이번 전시에는 1980~1990년대 대표작 20여 점이 걸렸다. 붓질은 절제됐지만 생명력은 폭발적이다. 검은 선은 여백과 교감하고, 붉은 점은 생명의 맥박처럼 뛰어오른다. 장식을 배제한 검고 굵은 선은 유연하게 움직이며 화면의 여백과 교감하고, 어떠한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와 독창성을 드러낸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다큐멘터리 ‘내 짐은 내 날개다’(1989)가 상영된다. 노은님은 영화 속에서 “내가 아무런 생각도 갖지 않는 순간에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 순간은 금방 사라집니다”라고 말한다. 생전 인터뷰에서 "화가 팔자"라고 했던 그녀는 50년을 재독화가로 살며 삶을 예술로 번역했다. 드로잉, 스케치, 판화, 도자, 스테인드글라스, 설치미술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에만 매진했다. 권 관장은 "남긴 자료와 작품의 숫자를 가늠키 어렵지만 제 연구에 따르면 국내외에서 전시로 발표된 작품은 3000점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노은님은 퍼포먼스로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그 자리에 점을 찍는 작업도 가끔 하셔서 독일 아뜰리에도 작품으로는 그 수가 많이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은님은 “좋은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다”고 했다. 또 “원시적인 것, 세련된 것, 멋있는 것, 현대적인 것을 최고로 꼽으며 내가 그린 그림은 언제 봐도 현대적이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노은님의 예술은 지금도, 그리고 백 년 뒤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림’의 순정을 되살린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노은님이 남긴 시간의 결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의식이다. 권준성과 세계 각지의 팬 1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추모행사도 18일 열린다. 예술은 그렇게, 피를 잇지 않아도 사랑으로 유전된다. “내 고향은 예술이다.” 라고 말했던 그 문장은 다시, 오늘의 시간 위에 새겨지고 있다. 권준성 관장은 “노은님 예술은 지금의 가치로는 평가할 수 없지만, 이번 전시에 나온 대표작들은 훗날 한국미술사에 마스터피스로 남았으면 한다”는 벅찬 자부심을 보였다. 현대화랑의 이번 노은님 3주기 전시는 11월 23일까지 열린다. 관람 무료. 202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