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붓질, 알고보면 옥수역…국제갤러리 김세은 '핏월과 픽토' 도시가 미끄러진다. 도로와 건물, 터널과 녹지가 뒤엉키고 원근은 무너진다. 빠르게 스쳐가는 도시의 풍경을 여러 겹 포개놓은 듯하다. 김세은의 회화에서 도시는 고정된 풍경이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갱신되는 정보의 장이다. 작가는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몸으로 감각한 도시를 회화로 옮긴다. 국제갤러리는 24일부터 10월18일까지 서울점 K2에서 김세은 개인전 '핏월과 픽토(Pictos and Pitwall)'를 개최한다. 전시 제목의 ‘핏월(pit wall)’은 모터스포츠 경기 중 실시간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을 전달하는 공간을 뜻한다. ‘픽토(picto)’는 정보를 압축해 전달하는 시각언어인 픽토그램의 줄임말이다. 작가는 두 개념을 통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위치를 감각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K2 2층은 변화하는 도시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공간으로 꾸렸다. 지도와 실시간 도로 교통 영상, 사진 등 서로 다른 경로로 수집한 도시 이미지를 작가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겹쳐 회화로 재구성했다. 신작 '옥수'(2026)는 지인에게 받은 옥수역 사진에서 출발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흙빛 환풍구와 녹지대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 분당 아파트 단지의 자투리땅을 떠올렸다. 1989년 분당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태어난 김세은에게 도시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풍경이기도 하다. 전시는 야외 중정까지 이어진다. 실내에서 평면으로 펼쳐졌던 '터널화'는 두 개의 알루미늄 벽화로 제작한 '터널화-타면 나타나는 굴'(2026)로 확장된다. 관람객은 작품 사이를 직접 걸으며 실내에서 본 도시 풍경을 입체적으로 마주한다. 김세은은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영국왕립예술대학(RCA)에서 회화 석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됐으며 올해 제4회 서울예술상 포르쉐 프런티어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소장돼 있다. 2026/08/24
박서보 작고 3주기…국제갤러리, 50년 ‘묘법’ 40점 펼친다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박서보(1931~2023)의 50여 년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는 24일부터 10월18일까지 서울점 K1과 K3, 한옥에서 박서보 회고전 '변하는 변하지 않는(Changing Unchanging)'을 개최한다. 작가의 작고 3주기를 맞아 마련한 전시로, 1967년 초기 ‘연필묘법’부터 작고 직전까지 몰두했던 ‘신문지묘법’까지 작품 40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박서보가 생전 남긴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는 말에서 가져왔다. 끊임없이 작업 방식을 바꾸면서도 반복과 수행을 통해 자신을 비워낸 박서보 예술의 변화와 지속을 함께 살핀다. K1에서는 1967년 시작한 연필묘법과 1980년대 한지를 도입한 지그재그묘법, 1990년대 이후 흑백묘법을 소개한다. 초기 묘법은 캔버스에 흰 안료를 바르고 마르기 전 연필로 선을 반복해 긋는 방식에서 출발했다. 1982년부터는 한지를 작업에 끌어들였다. 물기를 머금은 한지를 도구로 밀어내면서 화면에 골과 융기, 응어리를 만들었다. 이후 젖은 한지를 굵은 흑연으로 반복해 밀어내 수직선을 만드는 흑백묘법으로 이어졌다. K3에서는 2000년대 이후 자연에서 얻은 색을 화면에 도입한 색채묘법을 선보인다. 박서보는 이를 ‘치유의 색’이라 부르며 회화가 관람객의 스트레스를 흡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옥에서는 말년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2019년부터 다시 시작한 연필색채묘법과 2022~2023년 제작한 마지막 연작 신문지묘법이 나온다. 신문지묘법은 오래된 신문 위에 안료를 칠하거나 흩뿌린 뒤 연필로 선을 그은 작업이다. 1977년 파리에서 신문에 붓을 닦다가 활자가 물감 사이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착안한 ‘신문지 뎃상’을 45년 만에 다시 발전시킨 연작이다. 박서보는 2023년 10월14일 92세로 별세했다.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미술관, 테이트 모던, 퐁피두센터, 홍콩 M+ 등에 소장돼 있다. 한편 지난 18일 서울 연희동에는 박서보미술관이 개관했다. 개관전으로 박서보와 베트남계 프랑스 작가 후앙 도딘의 2인전 '비움, 그 충만'을 선보이고 있다. 2026/08/24
[박물관에서] 국중박, 박물관·미술관장 위한 '리더십 교육'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 아카데미 리더십과정'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26~27일 전국 국·공립·사립 박물관·미술관 관장과 실장 등 상급 관리자를 대상으로 '뮤지엄 아카데미 리더십과정'을 처음 운영한다. 경력 10년 이상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기획반'을 독립시켜 올해 신설한 과정이다. 기존 실무자 중심 교육과 달리 박물관의 미래 비전과 조직 운영, 대형전시 기획과 예산 확보, 법률·윤리, 홍보와 대외소통 등 기관 운영에 필요한 관리자의 의사결정 역량을 다룬다. 박물관의 미래 비전과 조직 운영을 비롯해 대형전시 기획과 예산 확보, 법률·윤리, 홍보와 대외소통 등을 교육한다. 참가 정원은 20명 내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 콜로키움' 제헌국회 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오는 26일 오후 2시 박물관에서 제9차 '문화요일×근현대사 콜로키움'을 개최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국가 건설과 의회정치의 출발'이라는 관점에서 1948년 5월31일 개원해 2년간 활동한 제헌국회를 살펴본다. 헌법 제정뿐 아니라 정부조직법·법원조직법·국군조직법 제정 등 신생국의 제도적 골격을 만들어간 과정을 짚는다. '대한민국' 국호와 국기·국가 제정, 보통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 확립, 농지개혁 등도 다룬다. 별도 신청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2026/08/24
한미반도체 곽동신 회장, 작가 데뷔…서울옥션서 첫 개인전 반도체 장비 기업 한미반도체의 곽동신 회장이 작가 ‘곽신’으로 첫 개인전을 연다. 서울옥션은 오는 28일부터 9월15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곽신 개인전 'ENDLESS'를 개최한다. 반도체 장비 산업에서 29년간 금속과 정밀가공 기술을 다뤄온 경험을 예술로 확장한 조형 작품 60여 점을 선보인다. 작품 제작 방식부터 산업 현장과 맞닿아 있다. 컴퓨터 정밀설계(AutoCAD)와 CNC 밀링, 산업용 로봇을 이용해 알루미늄을 정밀하게 절삭한다. 산업 소재였던 알루미늄을 회화와 조형의 재료로 바꾼 셈이다. 작품에는 하트와 달러 기호, 시계 등 익숙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Endless Love'는 알루미늄 하트를 질서정연하게 배열해 반복되는 패턴과 리듬을 만들었다. 'Super Rich'는 달러 기호를 반복해 부와 성공을 시각화했고, 'Forever Young'은 시침과 분침을 없앤 시계로 시간에서 벗어난 ‘무한한 시간’을 표현했다. 곽신은 필립 콜버트와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을 수집해온 컬렉터이기도 하다. 두 작가의 색채와 반복, 무한의 이미지가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전시는 9월15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6/08/24
이배·장-미셸 오토니엘, 주한 프랑스대사관서 2인전 한국 작가 이배와 프랑스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이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처음으로 한 전시에 작품을 선보인다. 페로탕은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함께 오는 31일부터 내년 1월11일까지 특별전 '이배-장-미셸 오토니엘: 교차된 시선(Regards Croisés)'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프랑스와 한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고 프리즈 서울과 연계해 마련한 전시다. 이번 전시는 이배와 오토니엘의 조각과 회화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서로 다른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해온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가 쌓아온 문화예술 교류를 조명한다. 전시 장소는 한국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이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과와 페로탕 갤러리가 공동 기획하고 프랑스 해외문화진흥원과 한불수교 140주년 후원회가 지원한다. 2026/08/24
고정 공간 없는 갤러리 ‘유령’, 이번엔 청담 호텔에 몸 빌렸다 고정된 전시장이 없는 갤러리 ‘유령(Yuryeong)’이 이번에는 호텔에 몸을 빌린다. 유령은 오는 28일부터 9월18일까지 서울 강남구 ‘에이든 바이 베스트웨스턴 청담’ 지하 컨벤션홀에서 두 번째 전시 ‘Conditions’를 개최한다. 프리즈 서울 2026 기간에 맞춰 여는 전시로 김대유, 김수윤, 김한솔, 유성하, 윤태형, 이재석, 임일국, 주한별, 최원정(Claire Chey) 등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 9명이 참여한다. 이 가운데 5명은 상업 갤러리에서 처음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들이다. 회화와 판화, 조각, 설치 등 160여 점을 펼친다. 전시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드는 다양한 ‘조건(Conditions)’에서 출발한다. 성별과 성적 지향, 노동과 생계, 교육과 환경, 가족과 종교, 취향과 계급 등 삶을 둘러싼 조건들이 어떻게 개인의 감각과 태도, 작업의 언어를 만드는지 살펴본다. 참여 작가들의 삶도 제각각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가 있는가 하면 생계를 위한 육체노동과 작업을 병행하는 작가도 있다. 집과 귀속에 대한 갈망을 탐구하거나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개인과 사회 문제를 작업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전시장 자체도 하나의 ‘조건’이다. '유령'은 고정된 장소 없이 전시마다 다른 공간을 찾아 이동하는 프로젝트 갤러리다. 첫 전시 ‘첫째 몸’에서는 분양을 마치고 기능을 다한 모델하우스를 전시장으로 바꿨다. 두 번째 전시장으로 택한 곳은 호텔이다. 사람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호텔의 속성이 고정된 몸 없이 공간을 옮겨 다니는 유령의 운영 방식과 맞닿아 있다. 전시는 9월18일까지. 2026/08/23
시원하고 오싹하게…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놀러와 수장고!' 2021년 7월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가 5주년을 맞아 개방형 수장고 일대에서 개관 행사를 진행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오는 29~30일 경기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서 '놀러와, 수장고!'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행사 첫날인 29일에는 오후 9시까지 '뜨악한 더위에는 오싹한 수장고에서!'를 주제로 박물관의 저녁을 구경할 수 있다. 특히 삼재부, 도깨비 등 '액막이'를 쉽게 설명하며 여름 피서를 제안한다. 야외 잔디 마당에서는 조명을 통한 '달빛 정원'이 진행되고, 1층 로비에서는 곽재식 교수가 특별 강연 '조선 시대 마법의 이상한 세계'를 진행한다. 무속과 관련한 소장품을 설명하는 '오싹한 수장고 투어'도 준비됐다. 이 외에도 여러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상세한 행사 내용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방문해 남은 늦더위도 시원하게 날리고, 2026년 하반기도 무탈하도록 좋은 기운과 추억을 한가득 담아가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2026/08/22
뜨개질? 그림?…알렉스 도지가 ‘짜낸’ 디지털 감정 디지털로 설계했는데 손맛이 난다. 털실로 한 땀 한 땀 짠 것 같은 인형이 화면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노랑과 분홍, 파랑이 뒤엉킨 몸은 폭신해 보인다. 그런데 뜨개질이 아니다. 회화다. 뉴욕과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알렉스 도지(Alex Dodge)의 작품이다. 서울 성북동 BB&M이 22일부터 알렉스 도지의 개인전 ‘Dream Weaver’를 연다. 2023년에 이어 BB&M에서 여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 도지는 컴퓨테이셔널 프로세스와 손으로 만드는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결합한다. 출발은 디지털이다. 3D 디자인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을 이용해 이미지를 설계한다. 이후 스텐실과 물감을 이용해 캔버스 위에 다시 옮긴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익힌 전통 수공예 판화기법도 작업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묘한 역설이 생긴다. 차가운 코드에서 태어났는데 따뜻하다. 평면인데 만져질 것 같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짜임’이다. 하나의 실이 반복돼 직물이 되듯, 디지털 이미지 역시 비트와 코드의 반복으로 만들어진다. 도지는 서로 멀어 보이는 두 구조를 회화 안에서 겹친다. 신작 ‘Dreamer’(2026)가 대표적이다. 분홍색 털모자를 눌러쓴 듯한 형상이 노란 뜨개옷 속에 몸을 감추고 있다. 까만 두 눈만 빼꼼히 드러난다. 귀엽지만 어딘가 외롭다. 작품에는 유화와 아크릴뿐 아니라 분쇄 유리도 사용됐다. 도지의 화면에 등장하는 동물과 봉제 인형 같은 존재들은 표정과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그 얼굴을 가만두지 못한다. 슬퍼 보인다고 생각하고, 외로워 보인다고 느낀다. 아무 감정도 말하지 않은 형상에 인간이 먼저 감정을 입힌다. 작가는 이를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에서조차 인격과 의도를 읽어내려는 인간의 오래된 ‘의인화 충동’과 연결한다. 전시 제목 ‘Dream Weaver’는 꿈과 기억을 엮는 존재를 뜻한다. 동시에 코드와 이미지의 조합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던 초기 디지털 환경의 감각을 불러낸다. 1977년생인 도지는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뉴욕대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보스턴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10월3일까지. 2026/08/22
까마귀가 전시장에…스리랑카 부부 작가 서울 2인전 자연을 그리는 아내와 사회를 응시하는 남편. 스리랑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부부 아찰라 구나와르다나(Achala Gunawardhana)와 수닷 아베이세카라(Sudath Abeysekara)가 서울에서 2인전을 연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모나리자 산촌에서 오는 23일 개막하는 이번 전시는 회화와 판화, 설치 등 서로 다른 매체로 작업해온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구나와르다나는 자연과 풍경을 중심으로 회화와 판화 작업을 이어왔다. 약 30년간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중국 관란 국제 판화 레지던시에 초청된 최초의 스리랑카 여성 판화작가로 소개됐다. 아베이세카라는 회화와 판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사회와 정치, 인간 존재를 탐구한다. 대표작은 까마귀를 상징적 이미지로 끌어들인 ‘Crow’ 연작이다. ‘Two25 Crows’, 스리랑카 의회 앞에서 펼친 회화·설치 프로젝트 ‘NGO Crows’ 등을 선보였다. 스리랑카 국립공예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갤러리 모나리자 산촌은 "두 사람은 부부이자 동료 작가"라며 "스리랑카에서 Art Way Gallery를 함께 운영하며 신진 작가 발굴과 국제 교류 활동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31일까지 열린다. 2026/08/22
英 도예가·베스트셀러 작가 에드문드 드 발, '흑자' 들고 온다 백색 도자로 잘 알려진 영국 도예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에드문드 드 발(62)이 이번에는 ‘흑자’를 들고 한국을 찾는다. 가나아트는 오는 28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에드문드 드 발 개인전 ‘rain diary’를 개최한다. 2022년 ‘their bright traces’ 이후 4년 만의 국내 개인전으로, 최근 2년간 제작한 설치작품 14점을 선보인다. 전시에는 드 발 특유의 백색과 청회색 도자뿐 아니라 흑자가 새롭게 등장한다. ‘Coptic Light’는 검은 도자와 아일랜드 킬케니산 검은 대리석, 은 조각을 함께 배치했다. ‘precious beyond measure’에는 웨지우드 석기 파편과 중국 송대(960~1279) 도자 파편을 나란히 놓았다. 특히 ‘precious beyond measure’는 조선 문인 이하곤(1677~1724)이 1709년 분원 가마를 찾아 남긴 글에서 제목을 가져온 흑자 연작이다. 드 발의 한국 도자에 대한 오랜 관심을 보여준다. 전시의 중심에는 동명 작품 ‘rain diary’가 있다. 청자 유약을 입힌 기물 118점과 도자·은 파편을 담은 작은 백자 상자 14점으로 구성했다. 흰색 진열장 안 여러 단의 좁고 긴 선반 위에 크기와 형태가 다른 흰색과 청회색 기물들을 배열했다. 드 발은 도자를 통해 사물에 깃든 기억과 이주, 상실의 역사를 탐구해왔다. “사물이 어떻게 기억을 구체화하는지, 더 나아가 사물이 과연 기억을 붙잡아 둘 수 있는지가 나에게 진정한 문제다.” 그의 이러한 관심은 도예뿐 아니라 글쓰기로도 이어졌다. 드 발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호박 눈의 산토끼(The Hare with Amber Eyes)’의 저자다. 도쿄 유학 시절 만난 진외종조부 이기 레오 에프루시에게 물려받은 일본 네츠케 264점의 여정을 따라 자신의 가족사를 추적했다. 오데사와 파리, 빈을 오가며 번성했던 유대계 은행가 에프루시 가문의 흥망과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네츠케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0년 출간된 책은 26개 언어로 번역돼 15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사물과 이주에 대한 관심은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공개한 대규모 설치 ‘library of exile’에서도 이어졌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대까지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작가들의 책 약 2000권을 한데 모았다. 백색 고령토를 바른 외벽에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도서관들의 이름을 새겼다. 드 발에게 도자 역시 국경을 넘나든 사물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도자는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갔고, 유럽에서는 ‘백금(white gold)’으로 불릴 만큼 귀하게 여겨졌다. 그는 중국과 독일, 영국을 직접 찾아 도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고 이를 ‘The White Road: Journey into an Obsession’(2015)에 담았다. 한국 도자와의 인연도 오래됐다. 드 발은 첫 작업실 물레 앞에 조선시대 백자 사진을 걸어두었다고 한다. 하나의 흰색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조선 찻사발의 색채에 매료됐다는 것. 드 발은 “나에게 만드는 일과 쓰는 일은 한 가지의 일이다. 도자가 언어가 되고, 언어가 곧 도자가 된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4일까지.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