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고랑에서 골법까지…남춘모 개인전 ‘From the lines’
“나의 작업은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와 같은 향기’를 드러내고자 한다.”
선으로 기억과 감각을 엮어온 남춘모(64)가 28일부터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 'From the lines'을 연다.
남춘모는 경북 영양의 산비탈과 밭고랑, 흙과 비닐, 손끝의 촉각 같은 유년의 기억을 ‘선(線)’이라는 조형 언어로 되살려왔다. 선은 그에게 감각의 흐름이자 시간을 축적하는 행위이며, 기억과 공간을 연결하는 구조다. 반복적 선 긋기는 평면과 입체, 구조와 리듬이 교차하는 고유한 회화 세계를 만들어내며, 한지와 같은 전통 재료와 현대적 물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번 전시는 선의 구조와 물질적 감각을 탐구해온 작가의 과정을 보여준다. 남춘모는 전통 회화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반복적인 선 긋기를 통해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관람자는 화면 앞에서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을 넘어, 공간과 시간, 빛을 함께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퀴어, 한국미술의 새로운 언어?…‘오프사이트 2’와 ‘언하우스' 9월 '프리즈 서울' 기간을 전후해, 퀴어가 미술계에서 사회·정치·시장 담론을 아우르는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와 프리즈 하우스 서울(Frieze House Seoul)이 각각 '오프사이트 2: 열한 가지 에피소드'와 '언하우스'를 통해 퀴어 담론을 전시 전면에 내세우며, 동시대 한국 미술의 변화를 보여준다. 퀴어가 더 이상 주변부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회와 정치, 그리고 시장의 흐름을 동시에 읽어내는 핵심적 언어임을 확인시킨다. 프리즈 서울의 화려한 무대 옆에서, ‘퀴어’는 한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질문들을 미술의 이름으로 되묻고 있다. 26일 개막한 서울 율곡로 아트선재센터의 '오프사이트 2: 열한 가지 에피소드'(10월 26일까지)는 젠더와 퀴어 서사를 정면에 놓는다. 이 전시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젠더·정체성·차별의 현실을 예술 언어로 드러내며, 동시대 미술이 사회 담론과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가시화한다. 곽소진, 루킴, 문상훈, 성재윤, 야광, 윤희주, 장영해, 조현진, 하지민, 한솔, 홍지영 등 11팀이 참여한다. 여성·퀴어·교차 정체성을 탐구하는 젊은 세대의 시각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상과 파편화된 자아의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전시는 ‘수행성’과 ‘장치’를 키워드로 삼아, 규범을 유희하거나 전복하는 행위와 시각적 장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열한 개의 에피소드는 단일한 서사가 아닌 다채로운 정체성의 장으로 펼쳐진다. 아트선재센터가 이어온 ‘장소 특정적 전시’ 기획의 연장선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국제갤러리 K2와 (투게더)(투게더)에서 열리며, 프리즈 서울 기간에는 퍼포먼스와 아티스트 토크도 이어진다. 아트선재센터는 이를 확장해 2026년 국내 최대 규모의 퀴어 그룹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9월 2일 펼치는 프리즈 하우스 서울의 첫 전시 '언하우스'(10월 2일까지)는 집이라는 공간을 퀴어적 시각에서 해체한다. 김좋은아침, 최하늘, 이동현, 듀킴 등 한국 작가들과 안네 임호프, 캐서린 오피, P. 스태프 등 세계적 아티스트가 참여해 총 14인의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는 ‘신체/정체성’, ‘공간/권력’, ‘관계/돌봄’, ‘기억/전승’ 네 가지 주제로, 집을 보호와 은신, 안전과 억압이 교차하는 양가적 공간으로 재해석한다. 큐레이터 김재석은 “성별·섹슈얼리티 논의가 격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집을 다시 사유하는 일은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라고 강조했다. 두 전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퀴어를 호출한다. '오프사이트 2'가 세대적 경험과 사회적 장소성을 탐색한다면, '언하우스' 집이라는 일상적 구조를 통해 세계적 퀴어 담론과 연결된다. 기관의 장기적 전략(아트선재)과 글로벌 아트페어의 플랫폼(프리즈)이 교차하면서, 퀴어가 한국 미술로 호흡하는 감각적 언어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2025/08/28
[부고]이길우(화가·중앙대 교수)씨 모친상 ▲한명숙씨 별세, 이길우(화가·중앙대 교수)씨 모친상= 28일, 중앙대병원장례식장 6호실, 발인 30일 오후 12시 30분, 장지 수원시 연화장-분당 메모리얼 파크, 02-860-3500 2025/08/28
'올해의 작가상 2025'는 누구?…김영은·김지평·언메이크랩·임영주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SBS문화재단과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5'를 오는 29일부터 내년 2월 1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2012년 출범한 '올해의 작가상'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후원 프로그램이자 시상 제도로, 매년 4인(팀)의 작가를 선정해 신작 제작과 전시를 지원하고 해외 활동을 후원해왔다. 올해는 김영은, 임영주, 김지평, 언메이크랩이 후원작가로 참여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매체와 언어를 통해 '경계 너머, 비가시적인 세계는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공유하며, 소리·믿음·전통·기술 등 보이지 않는 층위를 탐구한다. 김영은은 소리를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관계가 드러나는 비평적 실천으로 해석한다. 신작 '듣는 손님'(2025), 'Go Back To Your'(2025) 등을 통해 이주의 기억과 기록 속 번역과 중재의 과정을 재구성한다. 임영주는 한국 사회의 미신과 현대 과학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믿음’의 구조를 탐구한다. 대표작 '고 故 The Late'(2023-2025)는 12채널 영상·사운드 설치로, 상상 속 ‘빈 무덤’을 구현한다. 김지평은 동양화 전통을 해체와 재구성의 언어로 탐구한다. 주변화된 존재를 소환하는 '다성 코러스', 병풍 산수화를 재해석한 '산수화첩', 생태적 위기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코즈믹 터틀' 등을 선보인다. 언메이크랩(최빛나·송수연)은 인공지능 기술이 전제하는 미래상을 비틀어 인간 중심적 인식 체계를 전복한다. 신작 '뉴-빌리지'(2025)는 스마트시티의 단일한 미래상에 균열을 내는 사변적 풍경을 제시한다. 최종 수상자는 전시 기간 중 국내외 심사위원과의 공개 대화와 2차 심사를 거쳐 내년 1월 발표된다. 수상자는 추가 후원금 1000만 원을 받으며, SBS를 통해 다큐멘터리로도 조명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올해의 작가상'은 동시대 이슈를 다루는 작가들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의 실험적 흐름을 가늠해 보는 국내 대표 전시”라며, “이번 전시가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기회이자 새로운 담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2025/08/28
‘Z세대 작가’ 한의도 '풍뎅이의 복화술'…호리아트스페이스 서울 삼청동 호리아트스페이스는 9월 '키아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미술대학 4학년생인 한의도(22)의 개인전 '풍뎅이의 복화술'을 선보인다. 젊은 작가를 발굴, 동시대 미술의 내일을 예고하는 화랑의 과감한 기획이 돋보인다. 'Z세대'인 한의도는 ‘자기분열(self-fragmentation)’을 핵심 키워드로 삼는다. 뒤집힌 풍뎅이의 몸짓, 기괴하면서도 친근한 인물 형상은 분열된 자아와 왜곡된 인식을 드러내며, 오늘날 젊은 세대가 마주한 불안정한 내면을 반영한다. 작품 제목을 중요한 서사 장치로 활용했다. '조금만 잘라주세요', '노트북', '러브버그' 등 일상적인 언어는 익숙한 경험을 낯설게 전환하며, 관람자가 이미지와 텍스트를 교차하며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작업 드로잉 단계부터 ‘무의식적 시선’의 이동을 따라 ‘진주 목걸이→신발끈→손가락 주름→하품하는 입’ 같은 단편들을 연결해가는 방식으로, 비선형적 규칙을 따른다. 이는 기괴하고 낯선 형상을 탄생시키고, 왜곡된 인식의 리듬감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숙명여자대학교 회화과에서 동양화를 전공 중인 한의도는 브리즈 프라이즈(2024)를 수상하고, 이랜드문화재단 공모작가(14기) 및 제16회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 우수상(2025)에 선정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작품은 경기문화재단, 겸재정선미술관, 이랜드 갤러리 등 기관 및 개인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열리며, 9월 4일 ‘삼청나잇’ 기간에는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 2025/08/27
퀴어 아티스트 등 14인 출동…프리즈 하우스 서울, '언하우스'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Frieze)가 오는 9월 2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에서 '프리즈 하우스 서울(Frieze House Seoul)’의 첫 번째 전시 '언하우스(UnHouse)'를 개최한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은 한때 주거지였던 건물을 전시장으로 개조한 새로운 공간으로, 앞으로 연중 운영되는 전시 플랫폼이자 국제 교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개관전을 장식하는 '언하우스'는 집을 안전과 보호의 상징이자 억압과 은신처가 교차하는 양가적 공간으로 바라보며, 이를 퀴어적 시각에서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한다. 이번 전시에는 김 좋은아침, 최하늘, 이동현, 김대운, 듀킴, 김민훈 등 한국 작가들과 함께 안네 임호프, 캐서린 오피, P.스태프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퀴어 아티스트를 포함해 총 14인이 참여한다. 또한 커먼웰스 앤 카운슬, 스프루스 마거스, 리만 머핀, P21 등 국내외 갤러리 9곳이 협력한다. 전시는 ▲신체/정체성(Body/Identity) ▲공간/권력(Space/Power) ▲관계/돌봄(Relation/Care) ▲기억/전승(Memory/Transmission)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며, 설치·조각·회화·사진·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집이라는 일상의 구조를 새로운 감각으로 경험하게 한다. 큐레이터 김재석은 “'언하우스'는 퀴어적 시각에서 집의 개념을 질문하고 재구성하는 전시”라며 “성별·섹슈얼리티 논의가 격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집을 다시 사유하는 일은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는 “프리즈 하우스 서울이 지향하는 야심차고 사유를 자극하는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전시”라며 “예술가, 갤러리, 관객을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5/08/27
AML ‘아트 시그널, 부산’ 9월 9일 개막…미술여행 맞춤형 투어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최하는 '2025 대한민국 미술축제' 미술여행 프로그램 공모에서 아트페어 전문 기획사 아트미츠라이프(AML)가 기획한 '아트 시그널, 부산'이 최종 선정됐다. 오는 9월 9일부터 27일까지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 AML은 그동안 '더프리뷰 아트페어', '액세스 방콕 아트페어', 부산시 주최 신진작가 공모전 '부산, 커넥티드' 등을 통해 차별화된 기획력을 입증해온 곳이다. '아트 시그널, 부산'은 미술 애호가와 관계자, 시민, 청년 예술인 등 다양한 참여층을 겨냥한 맞춤형 투어 프로그램이다. 단순 관람을 넘어 네트워킹, 강연, 멘토링까지 아우르며 미술을 다층적으로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Art Exclusive(부산 VIP 갤러리 투어) ▲Studio Link(부산 아틀리에 투어) ▲Art & Ideas(시민 참여형 투어) ▲Next Art, Busan(청년 아티스트 멘토링 투어) 등 4가지 주요 코스로 구성된다. 총 8회 운영에 약 150명의 참가자를 맞을 예정이다. 이 가운데 Art Exclusive는 수도권 컬렉터와 애호가를 대상으로 부산 주요 전시 공간, 갤러리, 작가 작업실을 탐방하며 관계자와 직접 만나는 일정이 포함된다. Studio Link는 평소 접하기 힘든 부산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해 현장 교류를 강화한다. Next Art, Busan: 청년 아티스트 멘토링 투어는 부산 지역 미술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진로 탐색형 프로그램으로, 전시 공간과 창작 현장을 직접 탐방하며 현장 중심의 실무 감각을 체득할 수 있다. 특히, 부산시가 주최한 신진작가 공모전 '부산, 커넥티드'와 연계하여, 젊은 작가들과의 교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네트워킹의 폭을 넓힌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참가 신청이 가능하다. 2025/08/27
신수원 초대전 '내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 아산서 열린다 대전지역서 활동하는 신수원 화가의 초대전 '내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이 다음 달 1일부터 21일까지 충남 아산 호서로 비너스갤러리에서 열린다. 순색(純色)의 물감으로 동심을 담는 신 작가는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들이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회는 긴 여행의 끝 무렵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일 편안하고 따뜻한 보금자리, 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졌다. 전시회 기간 중인 다음 달 6일 오후 3시에는 초대 가수 강고래의 공연이 펼쳐진다. 미술사가(美術史家) 이나리씨는 "밝고 환한 빛과 대채로운 색이 눈길을 사로잡는 신 작가의 그림은 어찌 보면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보인다"고 "의도적으로 단순화된 대상들은 누가 봐도 그것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신 작가 작품의 특징은 집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은 집들이 여러 채 귀엽게 그려져 있기도 하고 집안이 실내 공간이 묘사돼 있기도 하다.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한 신 작가는 모두 30차례의 개인·초대전을 가졌으며 일본과 홍콩 등지에서 모두 42차례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2025/08/27
'덧없고 영원한' 루이즈 부르주아…예술가의 정신은 미쳐야 하는가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개념도 아니다. 내가 재현하고 싶은 것은 감정이다.” '거미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의 선언은 이번 전시 전체를 압축한다. 그의 세계는 ‘덧없고 영원한’ 사라짐과 남음, 상처와 치유 사이에서 진자처럼 흔들린다. 27일 언론에 공개된 호암미술관의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전시는 그 양극단을 한 공간에 소환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묻는다. 이번 전시는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아트갤러리, 도쿄 모리미술관, 타이베이 푸본미술관을 거친 아시아 투어의 마지막 여정으로, 거대한 '마망(Maman)'을 소장한 호암미술관에서 대미를 장식한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김성원 부관장은 “그동안 상업화랑에서의 소개는 많았지만, 한국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회고전은 25년 만”이라며 “부르주아의 대표작 '마망'을 소장한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자랑스럽고 뜻 깊은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회화·조각·설치 등 106점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1940년대 초기 회화와 '인물(Personages)' 연작부터 1990년대 대형 '밀실(Cell)', 말년의 섬유 작업까지 70여 년의 궤적을 총망라한다. 이 중에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을 비롯하여 삼성문화재단 소장품 13점과 해외 주요 기관 및 개인 소장품이 포함됐다. 전시 제목 ‘덧없고 영원한’은 부르주아가 생전에 남긴 글에서 차용한 것으로, 기억과 트라우마, 신체와 시간에 얽힌 내면 심리의 지형도를 반영한다. ◆고통을 예술로 번역한 루이즈 부르주아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루이즈 부르주아는 자전적 서사와 감정의 구조를 탐구하는 조형 언어로 20세기 전위미술의 맥락에서 출발해 현대미술의 흐름을 뒤흔들었다. 설치, 드로잉, 회화,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었지만 무엇보다 조각가로 널리 알려졌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파리 소르본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에콜 데 보자르와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회화·조각·철학을 두루 익혔다. 페르낭 레제와 폴 콜랭에게 사사하며 조형 언어를 키웠고, 1938년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해 뉴욕으로 이주하며 본격적인 창작을 시작했다.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 회고전을 기점으로 국제적 위상을 확립했고,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과 테이트 모던 터빈홀의 대형 거미 '엄마(Maman)' 설치를 통해 세계적 명성과 대중적 인정을 동시에 얻었다. 지난 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징적 존재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갈등, 사랑과 두려움, 버려짐의 경험은 그의 작업을 관통한 핵심 주제였다. “오이디푸스 시기에 나는 결코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부르주아의 고백은 심리적 발달 과정에서 경험한 단절을 드러낸다. 이러한 내면 구조는 이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반복되었고, 그의 작업은 성장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힘겹게 나아가는 소녀의 시점으로 전개됐다. 보호자이자 경쟁자였던 어머니 조제핀, 욕망과 혼란의 원천이었던 아버지 루이와의 관계는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이 각인됐다. 단단한 재료와 절단의 행위는 아버지를, 바느질·꿰매기 같은 행위는 어머니를 연상시켰다. 증오와 사랑의 양극단은 남성과 여성의 융합된 상징 형태로 형상화됐다. 1940년대의 남근적 목조 '인물'에서부터 2000년대의 섬유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끊임없이 변주되며 심리의 ‘야누스적’ 이중성을 드러냈다. 부르주아의 작업은 페미니즘, 정신분석, 젠더, 신체, 기억, 트라우마 등을 횡단하며 오늘날 동시대 미술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평생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감정을 기록해왔으며, 이 기록들은 사후 출간되어 작가의 심리적·예술적 세계를 이해하는 주요 자료로 남았다. ◆호암미술관 '덧없고 영원한' 전시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는 ‘나선’으로 시작해 나선으로 끝난다. 미침과 치유, 여성과 남성, 모성과 부성, 생과 죽음이 모두 꼬여 있는 나선으로 귀결된다. 로비의 공중에 매달린 '커플'은 감정의 소용돌이와 균형의 욕망을 동시에 드러내며, 마지막까지 덧없고 영원한 순환을 부각한다.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나선의 연출은 전시 제목이 함축한 역설을 공간적으로 체현한다. 전시장은 ‘의식과 무의식’의 이중 구조로 설계됐다. 밝게 연출된 1층은 이성과 질서의 세계를, 어둠으로 감싼 2층은 억눌린 감정과 무의식을 상징한다. 그러나 두 층은 분리되지 않는다. 밝음 속의 어둠, 어둠 속의 밝음이 교차하며, 관람자는 긴장의 통로를 거닐며 기억과 감정을 환기한다. 또한 부르주아의 글쓰기와 정신분석 기록을 병치한 점도 특별하다. 전시장 곳곳에는 원문 텍스트와 번역문이 병기되어 심리적 맥락을 직접 드러내며, 제니 홀저의 프로젝션은 부르주아의 언어를 미술관 안팎으로 확장한다.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이 추천한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집-여자(Femme Maison)'(1946~47) 여성의 몸 위로 집이 덮여 얼굴이 사라진 형상은 “집은 피난처이자 덫”이라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1970년대 페미니즘 담론과 맞물려 재조명된 이 연작은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다.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1974) 붉은 조명 아래 연출된 내부는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상상적 복수를 시각화했다. 단순한 파괴를 넘어 분노·동일시·치유의 욕망이 얽힌 이 작업은 부르주아 예술의 전환점이자 '밀실' 연작의 출발점이 되었다. ▲'붉은 방(부모)'(1994) 붉은 고무 침대와 눈물 모양 유리 오브제가 배치된 공간은 부모와의 관계 속 긴장을 보여준다. 관람자는 문틈으로만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이는 은밀한 순간을 훔쳐보는 아이의 심리를 불러낸다. ▲'밀실(검은 날들)'(2006) 검은 드레스와 대리석 구체를 중심으로 질투의 심리를 형상화한 원형 구조. 관람객을 심리적 무대로 끌어들이는 부르주아 특유의 ‘감정의 방’이다. ▲'커플(The Couple)'(2003) 공중에 매달린 알루미늄 나선이 서로 얽히며 융합을 시도한다. 감정의 소용돌이와 내면의 균형 욕망을 동시에 드러내며, 부르주아 세계의 상징적 귀결을 보여준다. ▲'꽃(Les Fleurs)'(2009) 붉은 과슈로 번져나간 작은 꽃들은 피·고통·질투 같은 격정과 동시에 생명과 치유를 담는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수 꽃무늬에서 비롯된 12점의 연작은 기억의 자서전이자 회복의 의지로 읽힌다. 부르주아의 작업은 사랑과 증오, 모성과 부성,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립적 긴장을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그것은 덧없음과 영원의 역설 속에서 숭고와 허무를 동시에 불러낸다. 부르주아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예술가의 고통이 어떻게 형상화되고 치유로 전환되는지를 증언한다. '덧없고 영원한'은 전시 제목 그대로 덧없는 인생 속 예술가의 궤적을 압축하며, 동시에 영원한 작품으로 남아 오늘날 우리 앞에 다시 묻는다. 여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가의 정신은 끝내 미쳐야 하는가. 전시는 2026년 1월 4일까지. 관람료 1만6000원. 2025/08/27
빛의 층위, 영성의 후광…89세 김형대 화백 ‘HALO’ 최신작 공개 빛의 중첩이 후광처럼 퍼져 나간다. 89세 원로 추상화가 김형대가 개인전 'HALO: Divine Radiance'에서 최신작을 공개한다. 겹겹의 색층과 두터운 마티에르가 빚어낸 화면은 단순한 추상을 넘어, 긴 세월의 고독과 기도로 길어 올린 영성의 울림을 전한다. 서울 소공로 금산갤러리에서 29일부터 열리는 이번 전시는 김형대의 대표 연작 'HALO'와 더불어 신작 20여 점을 한자리에 선보인다. 오랜 예술 여정의 정점에서 도달한 그의 색채 세계가 집약된 자리다. ◆전통과 현대가 빚어낸 빛의 향연 'HALO'시리즈는 김 화백이 19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전개해온 대표작으로, 캔버스 위에 수십 번의 붓질과 물감의 중첩을 통해 제3의 영롱한 빛을 발현한다. 겹겹이 쌓아올린 색채와 두터운 마티에르가 만들어내는 공간감은 극적인 음양의 긴장을 자아내며, 정신적 고양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작품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치열한 실험과 사유 끝에 도출된 필연의 결과물이다. 겹겹의 색층에서 배어나오는 미묘한 빛의 잔상은 후광(halo) 같은 시지각적 착시를 일으키며, 화면 전체에 확산되는 광채 속으로 이끈다. 이는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작가가 기도와 사색 속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빛과 영성을 담아낸 조형언어다. ◆“빛은 곧 삶의 연대기” 김형대 화백은 추상회화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최초로 수상하며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모델링 컴파운드와 아크릴을 결합한 독창적 기법으로 재료의 물성을 극대화해 입체적인 화면을 구축했고, 수없이 교차하는 선율과 불규칙적 흔적을 통해 감정과 시간의 층위를 시각화했다. 작가는 “빛을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곧 수행”이라 말한다. 화면 위 수십 번의 덧칠과 고독한 사유는 단순한 형식 실험을 넘어, 한 인간이 걸어온 삶의 연대기이자 영적 신념의 기록으로 읽힌다. 김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길렀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비롯해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202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오는 29일 열리는 개막식에서 작가와 직접 대화를 나누며 작품세계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이어진다.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