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보인다…구자승의 살아있는 정물[박현주 아트에세이 ③] 자두가 빛을 머금은 채 멈춰 있다. 파란 병, 흰 도자기, 나무 박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눈을 뗄 수가 없다. 시간이 멈추는 순간,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빠르게 지나치면 볼 수 없는 색의 떨림, 공기의 결, 작가의 숨. 구자승의 정물은 ‘멈춤의 예술’이다. 그의 붓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다. 사물의 표면을 그리면서도, 그 안의 빛과 그림자. 질감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의 결을 담는다. 썩지 않는 과일, 식지 않는 유리잔의 냉기. 그것은 사라진 생명 대신 남은 온기다. “유한한 오브제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의 공간 속에 담는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치유의 언어다. 그림 속에서 사라진 것은 다시 태어나고, 상처는 온전해진다. 팔순을 넘긴 화백은 여전히 매일 붓을 든다.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말처럼, 구자승의 그림은 ‘살아 있는 정물’이다. 화면엔 여백이 많다. 그 여백은 동양 문인화의 ‘사유의 공간’이자, 서양 구도 안의 ‘멈춤의 자리’다. ‘정말 사람이 그린 게 맞을까?’ 그 의심이 멎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멈추면, 보인다. 그의 정물은 존재에 대한 명상이다. 60년 동안 그는 세상을 재현한 게 아니라, ‘보는 법’을 다시 썼다. 멈춤은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붓으로 그린 회화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의 형상이다. 그림 앞에 서면 시간의 층이 보인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그의 붓이 멈춘 그곳에서, 시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림은 거창한 예술이 아니라 인생의 별난 맛이다.” 2025/11/08
AI 시대, 색과 빛으로 전통·감성 복원…권기수·김범수 개인전 AI 시대의 예술은 여전히 인간의 색을 품고 있다. 권기수의 ‘색죽(色竹), 비선(飛線)’은 대나무를 색으로 세우고, 김범수의 ‘Beyond Cinema’는 빛으로 시간을 붙잡는다. 전통의 숨결과 디지털의 언어가 만나는 그 지점에서, 색은 감정이자 기술이고, 과거이자 미래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은 전통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두 작가의 개인전을 동시에 선보인다. 2층, 4층에서는 권기수의 ‘색죽, 비선’이, 3층에서는 김범수의 ‘Beyond Cinema: 감성의 재구성’이 열린다. ◆권기수의 ‘색죽(色竹), 비선(飛線)’ 전통 동양화의 상징인 대나무와 오방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설치 프로젝트로, 회화·입체·설치 등 총 43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수묵과 필획으로 표현되던 대나무의 관념을 해체하고, 500여 종의 색을 수작업으로 조합한 ‘색으로 된 대나무’를 제시한다. 특히 ‘색죽 프로젝트’는 전통 회화가 지닌 철학과 미학을 인공지능 시대에 재구성 가능한 예술 언어로 확장한다. 수묵화의 흑백 정신을 색채와 구조로 변형하고, 디지털적 조형 시스템과 결합함으로써 동양화는 여전히 살아 있는 예술의 본질임을 입증한다. 4층에는 '근원수필 根源隨筆 2008-2024'의 제목으로 권기수 작가가 지난 20여 년간 한국 전통 회화의 근원을 탐구한 작품을 선보인다. 사비나미술관은 “이번 프로젝트는 동양화의 정신적 전통을 해체하면서도 그 본질을 재구성하는 실험으로, 전통 회화가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한 예술 언어임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김범수의 ‘Beyond Cinema:감성의 재구성’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아날로그 필름을 조형 매체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평면, 입체, 설치 총 36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 ‘Beyond Cinema: 감성의 재구성’은 작업의 방향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작가는 한 편의 영화가 지닌 색감과 정서, 장면의 순간들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하며, 서사적·선형적 구조를 가진 영화적 기억을 색면과 구조 중심의 회화적 감성으로 번역한다. 사랑, 갈등, 꿈, 기억 등 주관적인 감정의 순간들은 기하학적 구조와 색채를 통해 부활한다. 그는 35mm, 16mm, 8mm 등 다양한 규격의 폐필름을 잘라내고 배열해 좌우 대칭적 패턴과 원형 구조를 만들었다. 조명과 중첩이 더해진 화면은, 영화의 시간을 멈춘 듯한 회화다. 작품 내부에서 비추는 LED 조명은 필름 속 숨겨진 이미지를 드러내며, 관람객에게 시간여행 같은 몰입적 경험을 제공한다. 폐기된 필름이 회화적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현대미술이 망각된 기억을 소환하고 시대를 재해석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작업은 조형 감각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입체에서 평면으로의 이행이라는 중대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오랫동안 입체적 구조와 깊이감을 중심으로 조형적 탐구를 이어왔으나, 이번에는 평면 안에서 입체적 감각을 구현하려는 융합적 시도를 선보인다. 김범수는 “필름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의 그릇”이라며 “사라진 시간의 파편을 회화적 감성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비나미술관 강재현 학예실장은 “김범수의 작업은 매체 실험을 넘어 시간·감정·기억·형식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찰을 담고 있다”며 “조각, 회화, 영화의 형식적·개념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실험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확장 가능성과 새로운 방향을 제안한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열린다. 2025/11/07
페로탕이 주목한 김훈규…비단위에서 치열한 믿음의 회화 비단 위에서 동물들이 싸운다. 가재가 붉게 타오르고, 연어가 푸르게 뒤엉켰다. 토끼, 돼지, 앵무새, 연어 등 종(種)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명체들로 빽빽하다. 이들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을 반복하며 괴로워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인간 세계가 연상되는 잔혹한 기시감이 스며든다. 7일 서울 도산대로 페로탕 서울이 개막한 김훈규(39)의 개인전 ‘The Prayers’는 작가가 신앙과 믿음이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확장한 신작 10여 점을 선보인다. 세계적 갤러리 페로탕이 주목한 한국 작가 전시라는 점에서 시선이 쏠린다. 김훈규는 고려불화의 정밀한 표현과 비단 채색기법을 토대로 동서양의 회화적 어법을 혼성시켜온 작가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와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을 졸업하고 현재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동서양의 시각 언어를 교차시키는 독자적 회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김훈규는 “그림 안에 영혼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화가가 목숨을 건 것처럼” 그리는 태도로 공필화(工筆畵)를 발전시켰다. 비단 위에 색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세필의 수행은 신념을 향한 인간의 열망과 불안, 그리고 구원의 의지를 함께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실제 불화 제작 방식을 차용해 비단 위에 섬세하고 정교한 수묵화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동양의 세필과 서양의 구도, 그리고 다중 관점이 한 화면에 교차한다. 동서양의 시각 체계가 충돌하고 뒤엉키는 자리에서 김훈규의 회화는 신념의 형태를 탐구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 온 동물 군상의 세계에서 확장되어, 종교와 신념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조명한다. 기독교의 붉은 가재, 불교의 뱀, 천주교의 남방가재 등 종교별 ‘지배 동물’을 설정해 권력과 믿음의 역학을 시각화했다. 'Reddish Yellow'에서는 카나리아 무리와 ‘러버덕교’ 신도들이 벌이는 혈투가 펼쳐지고, 'Bluish Red'와 'Reddish Blue'는 서로 다른 색의 신념이 교차하며 충돌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유구하고 무한한 욕망을 비유한다. 페로탕은 “유머와 풍자로 가득한 그의 작품에서는 부패와 어리석음, 방종의 위험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며, 이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며 “김훈규는 동서양의 회화 언어를 잇는 작가로, 현대적 영성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고 전했다. 혼돈과 질서, 안과 밖, 하나의 신념과 다른 신념이 끊임없이 부딪히는 김훈규의 작품은 ‘무엇이 옳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전시는 12월 20일까지. 2025/11/07
아트 바젤 "이젠 디지털 아트 시대"…‘Zero 10’ 마이애미서 공개 세계 최대 아트페어 아트 바젤(Art Basel)이 디지털 시대 예술을 위한 새로운 큐레이션 플랫폼 ‘제로 텐(Zero 10)’을 공개한다. ‘Zero 10’은 오는 12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 2025’에서 첫선을 보인다. VIP 프리뷰는 12월 3~4일이다. 아트 바젤은 "이번 프로젝트는 아트 바젤의 공식 파트너 오픈씨(OpenSea)의 지원을 받아 추진된다"며 "디지털 아트 커뮤니티를 국제 미술 시장의 기존 구조와 연결해 아트 바젤의 글로벌 생태계를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제 디지털이 ‘새로움’이 아니라 ‘표준’으로 들어왔다는 의미로, 말레비치의 ‘0,10’을 이름에 걸었다는 것도 상징적이다. ‘Zero 10’이라는 명칭은 1915년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가 주도한 전시 ‘0,10’을 참고했다. 당시 이 전시는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새 세기의 예술 언어를 제시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아트 바젤은 이 정신을 이어 디지털 아트를 전시하고 수집하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아트 전략가 엘리 샤인먼(Eli Scheinman)이 큐레이팅하는 첫 번째 에디션에는 AOTM, Art Blocks, Asprey Studio, Beeple Studios, bitforms gallery, Fellowship, Heft, Visualize Value, Nguyen Wahed, Onkaos,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 SOLOS 등 12개 전시업체가 참여한다. 루양(Lu Yang)의 프로젝트는 UBS와 공동으로 진행된다. 노아 호로비츠(Noah Horowitz) 아트 바젤 CEO는 “Zero 10은 디지털 아트가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확신을 반영한다”며 “아트 바젤은 새로운 미학과 시장 구조를 제도적 신뢰와 글로벌 영향력으로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빈첸초 데 벨리스(Vincenzo de Bellis) 아트 바젤 글로벌 디렉터는 “Zero 10은 디지털 프로세스와 뉴미디어가 예술가의 창작과 관객 참여 방식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마이애미 비치는 이 변화를 시작하기에 가장 역동적인 무대”라고 말했다. 아트 바젤은 이번 출범을 통해 디지털 아트, 기술, 시장 인프라를 연계한 장기 전략을 강화한다. 디지털 아트 위원회 구성, ‘Digital Dialogues’ 프로그램, AI 기반 아트 바젤 앱, 아트 바젤 샵의 디지털 에디션 확장 등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된다. 한편 아트 바젤과 UBS의 2025 글로벌 수집가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3100명 중 51%가 2024~2025년에 디지털 아트를 구매했다. 이는 개인 소장품 내 비중이 전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디지털 아트가 주요 수집 카테고리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11/07
국보 두 걸작 청자·백자, 대구간송미술관서 마지막 공개 간송 전형필(1902~1962)은 1935년 어느 날, 일본인 수장가 마에다 사이이치로에게서 청자를 발견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기와집 스무 채 값인 2만 원을 내밀었다. 그 한 손의 결단이 오늘날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지켜냈다. 오사카의 골동품상이 두 배 값을 제시했지만, 간송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예술은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혼으로 이어가는 유산’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구한 청자는 곧 ‘고려의 하늘’이라 불리게 됐다. 완벽한 형태와 신비로운 비색, 학이 구름 사이를 날며 도자기 표면에 생명을 새긴다. 1년 뒤, 간송은 다시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에 섰다. 이번에는 붉은 빛이 도는 백자였다. 청화와 철채, 동채가 얽히며 국화와 난초, 나비가 춤추는 병. 야마나카상회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1만4000원에 손에 넣었다. 그 백자는 ‘조선의 땅’이라 불렸다. 절제 속의 화려함, 침묵 속의 생동. 긴 목과 둥근 몸은 달항아리의 품처럼 조선을 품는다. 그로부터 90년이 흘렀다. 이 두 도자기는 여전히 간송의 정신을 품은 채 대구간송미술관 상설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두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은 내년 1월 19일까지만 볼 수 있다. 미술관은 “그 이후에는 한동안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상설전에는 국보 ‘혜원전신첩’의 주요 작품 ‘청금상련’, ‘이승명기’, ‘유곽쟁웅’, ‘임하투호’ 등 4점이 새롭게 공개됐다. 신윤복 특유의 세밀한 필선과 화려한 색채는 조선 후기의 풍속과 인간미를 생생히 드러낸다. ‘혜원전신첩’은 1935년 일본으로 유출됐다가 간송 전형필이 오사카의 고미술상으로부터 구입해 환수한 것으로, 1970년 국보로 지정됐다. 한편, 대구간송미술관은 오는 12월 21일까지 광복 80주년 기념 기획전 ‘삼청도도 – 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를 진행한다. 탄은 이정의 ‘삼청첩’(보물)을 비롯해 역사적 고난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 100점을 선보인다. 2025/11/07
‘영혼의 기술’에 이끌린 10만 명…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이 개최 중인 국제미술행사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이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하며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오는 23일 폐막을 앞두고, 전시와 프로그램 기록을 총망라한 700쪽 분량의 도록을 미디어버스와 공동 발행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지난 8월 26일 개막해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낙원상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고 있다. 11월 4일 기준 누적 관람객 수는 10만 5907명으로 집계됐다.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기획자인 안톤 비도클(Anton Vidokel), 할리 에어스(Hallie Ayres), 루카스 브라시스키스(Lukas Brasiskis)를 예술감독으로 초청해 풍부한 영적 전통과 근대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도시 서울을 문화·사회·정치·역사적 탐구의 플랫폼으로 제시한다. 관람객 수뿐 아니라 연령과 국적 면에서도 폭넓은 참여가 나타났다. 9월 2일부터 10월 26일까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423명 중 20~30대 관람객 비율은 70.2%, 외국인 관람객 비율은 19.3%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91.4%가 비엔날레 첫 방문객으로, 젊은 세대와 신규 관람층의 유입이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번 결과가 ‘비엔날레의 높은 진입 장벽’을 완화한 의미 있는 성과로 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미디어버스(대표 임경용)는 이번 비엔날레의 도록을 공동 발간한다. 영문 에디터 벤 이스텀(Ben Eastham)과 SMB13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전지희가 공동 편집한 도록 ‘강령: 영혼의 기술’은 근현대미술과 영적 실천의 관계를 확장하며, 현재를 미래의 관계 속에서 재현하고 사유하는 데 관심 있는 작가와 기획자, 사상가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제공한다. 예술감독팀은 이번 주제를 “인간이 관습적인 지각 범위 밖의 현상들과 세계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예술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하나의 기술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도록에는 김남시, 니콜라이 스미르노프, 다니엘 무지추크, 루카스 브라시스키스, 마리아 린드, 사나 알마제디, 알렉산드라 먼로, 안톤 비도클, 엘레나 보그만, 오사카 코이치로, 요하나 헤드바, 할리 에어스, 황루시 등 13명의 필진이 참여했다.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이너 논플레이스 스튜디오가 맡았다. 이번 도록은 전시에 참여한 87팀의 작가, 퍼포머, 사운드 아티스트, 영화감독의 작업을 화보처럼 구성했다. 12편의 에세이를 통해 영적 실천이 근현대미술의 전개에 미친 영향을 탐구한다. 또한 공간 디자이너 콜렉티브와의 협업으로 전시의 공간적 배경과 구성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10만 관람객 돌파의 요인은 집중적이고 선명한 전시의 주제, 힐마 아프 클린트, 백남준, 요셉 보이스 등 거장의 영적 면모를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살펴보며 새로운 서사를 발견하는 즐거움, 그리고 색채를 중심으로 한 공간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라며 “남은 기간 동안 오래된 믿음과 지식의 체계를 의심하고, 현재 우리 영혼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기술을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5/11/07
마사회, 말(馬) 예술의 새 얼굴 찾는다…초대전 작가 공모 한국마사회 말박물관이 말(馬) 문화를 예술로 확산하고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26년 말박물관 초대전 작가'를 오는 28일까지 모집한다고 6일 밝혔다. 말박물관 초대작가전은 2009년 시작된 이래 145명의 작가가 참여한 대표적인 공모전으로, 말(馬)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공모는 말(馬)을 소재로 창작 활동을 펼치는 예술인을 발굴·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개인과 단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특히 만 40세 미만의 청년 작가와 과천 지역 예술가에게는 가산점이 부여된다. 선정된 작가는 약 6주간 말박물관 기획전시실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리플렛·배너 등 홍보물 제작과 SNS 홍보 이벤트 등 다양한 지원을 받게 된다. 또 작품 운송비 등에 필요한 지원금 70만원을 지급받는다. 접수는 한국마사회 홈페이지(www.kra.co.kr) 공지사항에서 공모 요강을 확인한 뒤, 지원서를 이메일([email protected])로 제출하면 된다. 마감은 이달 28일 오후 5시까지이며, 최종 결과는 30일 오후 2시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된다. 이번에 선정된 작가들의 전시는 내년 3월부터 11월까지 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마사회 홈페이지에서는 역대 초대작가들의 전시 이력도 연도별로 확인할 수 있다. 2025/11/06
‘조용한 진실의 표면’…변웅필 ‘아무렇지 않은 날들’ [박현주 아트클럽] 하루의 빛이 물감 위로 스며든다. 붓은 천천히 움직이고, 공기마저 멈춘다. 서울 삼청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 걸린 변웅필의 신작들은 조용하지만 고도의 집중으로 빚어진 시간의 표면이다. 그는 스스로를 “특별할 것 없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결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 그 안에는 수천 번의 호흡, 끝없는 반복, 그리고 ‘거짓말하지 않는 회화’에 대한 단단한 신념이 스며 있다. ◆선의 통제, 면의 고요 “선을 남기는 선이 면화(面化)되는 거예요. 얇은 면이 선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죠.” 변웅필의 회화는 선과 면의 경계를 해체한다. 유화의 점성과 두께 때문에 한 번에 그을 수 없기에 그는 수십 번의 반복으로 선을 완성한다. “막 그리는 건 싫어요. 통제하고 싶어요.” 그에게 선은 흔적이 아니라, 수련의 궤적이다. 그의 화면에는 서로를 마주보거나, 가볍게 부비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파스텔톤으로 눌러 앉은 얼굴들은 따뜻하지만 묘하게 긴장돼 있다. 퀴어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그것은 성적 코드라기보다 관계의 온도에 관한 회화적 실험이다. 서로의 경계를 흐리며 맞닿은 얼굴들은 결국 ‘나’와 ‘너’의 거리를 탐색하는 작가의 방식이다. 그 얼굴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다. 변웅필의 인물들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들’이다. 하루를 다 버티고도 여전히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의 초상, 그게 얼마나 묵직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진실의 회화, 노동의 리듬 “화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 뿐이에요.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아야죠.” 변웅필은 붓질하는 사람이다. 화가로서의 정직한 태도는 화면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의 화면은 방향이 일정하고, 얼룩이 없다. 얼룩 하나, 흔적 하나 없는 그의 평면은 진실 그 자체의 표면이다. 매끈한 표면은 우연이 아니라 수천 번의 의도다. 그는 말한다. “화가니까, 내가 만족해야 마감할 수 있어요.” 변웅필에게 회화는 하루의 노동이자 삶의 리듬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하루의 공기와 색을 마주하는 일. 그것이 그에게는 예술이고 생이다. ◆붓질하는 노동자, 장인의 정신 그의 진심은 회화의 태도로 이어진다. 작업실에서 하루에도 여러 개의 붓이 사라진다. “붓 하나로 두 번 못 써요. 다 쓰고 부러뜨릴 때 쾌감이 있어요.” 그 쾌감은 낭비가 아니라 소진의 미학이다. 그는 캔버스도, 나무 액자도 직접 짠다. “짜고 나면 운동 끝난 다음 같은 기분이에요. 내가 작가로서 뭔가를 해냈다는 감정이 들어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일, 손이 닿아야 완성되는 일. 그에게 붓질은 노동이고, 마감은 신앙에 가깝다. ‘그림보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 변웅필은 묵묵히 화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타 작가에서 중견 작가로 성장했지만, 그 발 아래는 오히려 더 단단히 정박돼 있다. ◆아무렇지 않은 것들의 존엄 이번 전시에는 인물과 사물이 함께 등장한다. ‘SOMEONE’이 얼굴이었다면, ‘SOMETHING’은 이름 없는 사물이다. 둘 다 색과 형태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그는 그릇을 구별하지 않는다. 모두가 동등하게 존재하는, 아무렇지 않은 세계다. “변웅필 작가는 4년의 시간 동안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발전시켜왔다.” 호리아트스페이스 김나리 대표는 “이번 전시는 ‘SOMEONE’에서 ‘SOMETHING’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이라고 했다. 전시장 한편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너는 너 대로 나는 나 대로 아무렇지 않은.” “마주 불어오는 바람이 아무렇지 않은.” 변웅필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무심함이 아니라 존중의 상태다. 비교도, 위계도, 욕망도 없이 존재들이 공존하는 세계. 그의 그림은 그 세계의 기록이다. ◆아무렇지 않은 날들의 선언 이번 전시 ‘아무렇지 않은 날들’은 그가 견고하게 지켜온 진실의 회화에 대한 선언이다. 특별하지 않기에 진솔하고, 반복되기에 더 깊어지는 색의 리듬. 그는 말한다. “진짜 별거 아닌 걸로 봐주면 좋겠어요. ‘편하다’, ‘좋다’, 그 정도면 돼요.” 감동을 받든, 비판을 하든, 모두 떠도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의 그림은 관객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보고 싶은 대로 봐요. 그저 보면 돼요. 그것이면 충분해요.” 전시는 12월 6일까지 열린다. 2025/11/06
살아있는 세계유산 '제주해녀', 앙카라서 만난다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은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이달 28일까지 튀르키예 앙카라 소재 문화원에서 '살아있는 세계유산 제주해녀'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해녀문화의 진정한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해녀들의 공동체 정신과 생태적 삶의 철학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에서는 제주 바다를 무대로 한 해녀들의 물질(잠수 작업) 장면을 담은 강만보·서재철 작가의 사진 작품과 함께, 제주전통기록연구소 및 해녀박물관이 소장한 자료들이 소개된다. 또한 실제 해녀들이 사용하던 태왁망사리, 까꾸리, 빗창, 연철 등 도구와 전통 물옷, 개량 고무옷 등 총 43점의 전시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관람객들은 사진 작품을 통해 해녀들의 물질 과정, 역사, 바다로 향하는 여정, 해녀와 바다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체험하며, 고된 노동 속에서도 빛나는 해녀들의 아름다움, 자연과의 공존을 중시하는 생태적 가치, 그리고 여성의 주체적 삶과 공동체적 연대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전시에 참여한 젤리하 하츤 씨는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던 제주도에 해녀라는 특별한 전통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며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배우며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의 무형문화유산과 지역 고유문화를 지속적으로 현지에 소개하고, 한국과 튀르키예 간 문화적 공감대와 교류의 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2025/11/06
정조 사위 홍현주 초상화 경매…코베이옥션 문화예술 경매회사 코베이옥션(대표 김민재)이 정조(正祖)의 사위 홍현주(洪顯周·1793~1865)의 초상화 '약헌소조(約軒小照)'를 출품한다. 17일부터 열리는 ‘제277회 프리미엄 온라인경매 삶의 흔적’에서 2000만 원부터 경매를 시작한다. 홍현주는 정조의 둘째 딸 숙선옹주와 혼인해 영명위(永明尉)에 봉해졌으며, 호는 해거재(海居齋)·약헌(約軒)이다. 부마로서 정치 참여는 제한됐지만, 한평생 서화 수집과 문예 활동, 학술 교류에 힘썼다. 시문집 '해거재시초(海居齋詩鈔)'가 그의 저술로 전한다. 이번 경매에 나온 초상화는 청나라에서 제작된 중국식 인물화로, 전통적인 초상과 달리 상반신을 드러낸 채 정자 난간에 기대 앉아 있는 파격적 구도를 보인다. 코베이옥션은 "그림 상단에 ‘약헌소조(約軒小照)’라 묵서되어 있어 인물이 홍현주임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하단에 '소재(蘇齋)', '옹수곤인(翁樹崑印)' 낙관이 찍혀 있고, 글씨는 청대 학자 옹방강(翁方綱)의 아들 옹수곤(翁樹崑)의 친필이다. 이를 통해 본 초상은 1814년, 옹방강의 서재 ‘소재’에서 제작된 그림임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출품작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 프리뷰 전시는 오는 11월 24일부터 26일 낮 12시까지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3층 코베이옥션에서 열린다. 202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