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시간, 피어난 이야기'…대구 서구문화회관 회원전 대구 서구문화회관 문화강좌 회원들이 배움의 결실을 작품과 공연으로 선보인다. 30일 회관에 따르면 '쌓인 시간, 피어난 이야기'가 다음 달 3일부터 12일까지 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전시에서는 서예, 사군자, 서양화, 색연필 꽃 그림, 프랑스자수 등 문화강좌 회원들이 완성한 작품 12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첫날에는 개막식과 함께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문화강좌 수강생들은 색소폰과 하모니카, 가곡, 가요, 통기타 공연을 통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인다. 하현주 서구문화회관장은 "회원들의 노력과 성장이 담긴 결실을 지역사회와 나누는 자리"라고 말했다. 2026/08/30
작고 90년 '상록수' 작가 심훈을 깊이보다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인,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일제강점기 현실과 민중의 삶을 표현해 온 작가 심훈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당진문학관과 함께 내달 12일 충남 당진문학관에서 특별전 '상록의 심장, 90년의 기록을 걷다'와 연계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먼저 '한국 문학사 속의 심훈: 삶과 작가정신, 문학유산의 재조명'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린다. 심훈의 문화유산, 심훈 전기의 실증적 고찰, 심훈의 생애와 다각적 업적 등을 제목으로 하는 발표에 이어 종합토론과 질의응답이 진행된다. 이어 오후 2시부터 개막행사와 공연, 북 콘서트가 진행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더욱 자세한 내용은 문학관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임헌영 국립한국문학관장은 "이번 행사가 당진에 깃든 소중한 문학유산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심훈이 남긴 '상록수 정신'을 오늘의 자리에서 다시 새기는 뜻깊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026/08/30
전통 자수에 쏟은 50년…김영이한국자수연구회전 '이음' 고(故) 한상수 자수장 보유자로부터 기술을 전수한 이래 50여년 동안 조선시대 궁중 자수부터 근대 자수까지 전통 자수를 연구하고 전승해 온 김영이 보유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가유산진흥원은 내달 1~8일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 3층 전시장 '올'에서 '제3회 김영이한국자수연구회전ㅣ '이음''을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인천 석남동 회곽묘 출토 유물을 바탕으로 김영이 보유자가 복원·복제한 '매화 자수주머니' 두 점 등을 비롯해 김영이 보유자와 제자 34명의 작품 약 60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공간은 실내 장식품인 병풍, 돌복, 돌띠, 꽃신, 굴레, 타래버선 등을 모은 '복식 소품' 공간과 수젓집, 두루주머니, 선낭, 반짇고리 등을 전시한 '생활 소품' 공간으로 구성됐다. 내달 3일 오전 10시 선착순 15명을 대상으로 '자수 손거울 만들기' 체험도 진행된다. 전시 관람과 체험은 무료이며 자세한 사항은 국가유산진흥원 누리집이나 국가유산진흥원 무형유산팀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2026/08/30
책으로 읽는 박물관 전시…'음식유산으로 보는 한식 인문학'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과 연계한 북토크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달 16일 오후 2~4시 박물관 내 도서관 기증문고실에서 2026년 하반기 '책으로 만나는 박물관전시'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주제는 '음식유산으로 보는 한식 인문학'으로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가 강연을 맡는다. 기록, 풍속화, 식기, 고조리서 등을 토대로 한식의 역사, 문화, 정서 등을 살펴본다. 강연 이후 질의응답도 진행된다. 참여 신청은 박물관 교육플랫폼 '모두'에서 내달 7일 오전 10시부터 할 수 있다. 선착순으로 20명을 모집한다. 2026/08/30
“바젤리츠는 100% 예술가…매일 마지막 날처럼 그렸다”[박현주 아트클럽] “마지막 전시실은 바젤리츠를 위한 채플(예배당) 같습니다.”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의 장남 다니엘 블라우(64)가 서울 광화문 세화미술관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블라우는 게오르그 바젤리츠 사무국·아카이브(Büro & Archiv Georg Baselitz) 대표를 맡고 있다. 29일 뉴시스와 만난 블라우는 “아무런 기대나 선입견 없이 전시를 봤는데 뜻밖에 굉장히 훌륭했다”며 “특히 마지막 전시실은 정말 가슴이 아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독일에서 날아와 아버지 바젤리츠의 사후 첫 한국 미술관 전시를 찾은 그는 마지막 전시실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곳에는 바젤리츠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그린 ‘골드 페인팅’이 검은 벽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블라우에게 아버지의 마지막 그림은 죽음을 앞둔 노화가의 쇠잔한 그림이 아니었다. 평생 덜어내고 또 덜어낸 끝에 남은 회화의 정수였다. 블라우는 마지막 그림을 물에 떨어뜨린 라임 시럽 한 방울에 비유했다. “물에 라임 시럽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라임 주스가 됩니다. 마지막 그림도 그런 에센스와 같습니다. 한 방울만 남겨 놓으면 나머지 공간은 우리의 상상력이 채우는 것이죠.” ◆“매일 그날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렸다” 바젤리츠는 죽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88세까지 계속 그리게 했을까. 블라우의 대답은 단순했다. “바젤리츠는 100% 예술가였습니다. 그것은 매일, 매일 작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의식했느냐는 질문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죽음과 삶의 유한성은 말년에 갑자기 등장한 주제가 아니었다. 블라우는 ‘바니타스(Vanitas)’와 독일어 ‘Vergänglichkeit’를 언급했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삶의 덧없음과 유한성이다. 어린 시절 전쟁이 끝난 뒤 목격한 패잔병의 모습부터 말년 거울 속 자신의 늙은 몸까지, 죽음과 소멸은 바젤리츠의 작업을 평생 관통했다. 젊은 시절에는 미술사와 외부 세계에서 죽음의 형상을 끌어왔다. 88세가 된 뒤에는 거울만 봐도 그것이 눈앞에 있었다. 주제는 평생 이어졌다. 그러나 그림은 끊임없이 변했다. 두꺼운 물감과 거친 붓질에서 출발해 마지막에는 하나의 선까지 덜어냈다. ◆“내가 세뇌돼서 좋은 건가, 정말 좋은 그림인가” 세계적인 거장의 아들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이었을까. 블라우는 “바젤리츠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순전히 행운이었다. 복권과도 같았다”고 웃었다. 그러나 행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렬한 예술가, 강한 인물과 매일 함께하고 작업실에서 자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세뇌’와도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세뇌됐기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 좋은 작품이기 때문인가.’ 1980년대 결혼해 집을 떠난 뒤에도 그는 아버지의 작업실을 자주 찾았다. 갈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놀랐습니다. 바로 판단할 수 없었어요. 며칠 동안 곱씹고 소화한 뒤에야 작품의 질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블라우는 바젤리츠가 하나의 성공한 방식에 안주하는 작가가 아니었다고 했다. ◆“세상의 오해보다 그림이 막히는 게 더 힘들었다” 바젤리츠는 생전 숱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아들이 본 아버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술가는 사회의 바깥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이 자신이 하는 일을 모두 이해하기를 기대하지 않았어요. 열린 마음으로 작품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논쟁과 충돌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토론을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로 받아들였다. 정작 바젤리츠를 괴롭힌 것은 자기 그림이었다. 바젤리츠가 평생 싸운 상대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그림이었다. 그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방법도 미술이었다. 옛 거장의 판화와 아프리카 미술을 수집하고 바라보며 자신의 작업에서 잠시 벗어났다. ◆다섯 살 아들의 우주는 ‘커피 한 잔’ 미술사에서 1969년은 바젤리츠가 형상을 거꾸로 그리기 시작한 해로 기록된다. 하지만 다섯 살 아들에게 그것은 사건이 아니었다. 당시 가족은 U자 형태의 농가에 살았다. 주거 공간에서 아버지의 작업실까지 가려면 계단을 내려가 마당을 건너고 다시 바깥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어머니 엘케는 어린 블라우에게 종종 아버지에게 가져다줄 커피를 맡겼다. “그때 내 모든 세계, 내 우주는 컵 안의 커피를 쏟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가득 찬 컵을 들고 출발했지만 추운 마당을 지나 작업실에 도착하면 커피는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절편 회화를 그리고 형상을 거꾸로 그리고 있었다. 세상은 훗날 그 그림을 파격이라고 불렀지만 어린 아들에게는 그냥 아버지의 그림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봤던 ‘나뉜 소 두 마리’도 기억했다. “나는 소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냥 소 그림이 좋았습니다. 왜 이렇게 분절돼 있는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죠.” 블라우는 바젤리츠의 ‘거꾸로’를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기발한 장치나 단절로 보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전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시장에 걸린 한 작품을 예로 들었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정과 흰색, 빨강이다.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그 속에서 인물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색만 보입니다. 그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그림이에요. 나중에 형상을 발견하지만 사실 그 형상이 없어도 그림은 훌륭합니다.” 무엇을 그렸느냐보다 그림 자체를 먼저 보게 하는 것. 바젤리츠에게 형상은 어쩌면 그림을 시작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충격은 ‘거꾸로’가 아니라 바젤리츠의 미술 자체” 그렇다면 블라우는 언제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의 거꾸로 그림을 파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답은 예상 밖이었다.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거꾸로 그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젤리츠의 미술 자체가 논쟁적이었습니다.” 성공은 늦게 찾아왔다. “오랫동안 아버지의 미술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일해서 돈을 벌었죠.” 엘케는 1970~80년대 독일 보름스에서 여성 패션 매장을 운영했다. 당시 지역에서는 흔치 않았던 프랑스 디자이너의 옷 등을 소개한 아방가르드한 가게였다. 엘케는 동시에 바젤리츠가 평생 가장 많이 그린 인물이기도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것과 평생 아내를 그린 것이 관계가 있었느냐고 묻자 블라우가 웃었다. 바젤리츠가 아들에게 ‘내 그림에서 엘케는 이런 존재’라고 특별히 설명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자기 작품에 대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평생 함께 살았고, 평생 그렸다. ◆그림 뒤집기 전에 이미 ‘영웅’을 뒤집었다 이날 인터뷰에 함께한 세계적인 갤러리스트 타데우스 로팍은 ‘거꾸로 그린 화가’라는 수식어만으로 바젤리츠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있습니다.” 로팍이 꺼낸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제로 아워(Zero Hour·Stunde Null)’다. 바젤리츠가 화가로 출발한 독일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이었다. 건물만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정신과 가치, 기존 질서까지 무너졌다.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말할 만큼 예술의 존재 이유 자체가 근본적으로 질문받던 시대였다. 로팍은 “바젤리츠는 그 ‘제로 아워’에서 독일 미술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가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가 특히 중요하게 꼽은 것은 거꾸로 회화보다 앞서 등장한 ‘영웅들(Heroes)’ 연작이다. 전쟁 직후 독일에서 ‘영웅’은 쉽게 꺼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나치와 전쟁, 국가주의의 기억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데 바젤리츠는 ‘영웅’을 그렸다. 다만 그의 영웅은 승리자가 아니었다. 병들고 망가졌다. 누더기를 걸쳤다. 황폐한 땅 위에 선 패잔병 같은 인간이었다. 로팍은 이를 “자신이 속한 나라, 그 시대의 인간적 조건에 대한 정치적 발언”이라고 표현했다. 바젤리츠는 그림을 거꾸로 뒤집기 전에 이미 ‘영웅’이라는 관념부터 뒤집고 있었던 셈이다. 로팍은 “기존의 영웅주의를 의심하고 뒤집으면서 폐허 속에서도 예술이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인간의 조건과 예술의 조건을 다시 정의한 화가”라고 평가했다. ◆“바젤리츠 재단 설립 계획 없다” 바젤리츠 사후 별도의 재단이 설립될 것이라는 관측에는 선을 그었다. 재단 설립이 어느 정도 진행됐느냐는 질문에 블라우는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버지가 생전에 자신의 작품과 유산을 관리하는 체계를 이미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별도의 재단을 새로 설립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대신 가족은 바젤리츠가 생전에 구축한 조직과 아카이브를 이어받아 관리하고 있다. 법적인 형태의 재단은 아니지만 작품의 제작 기록과 소장 이력, 프로비넌스(소장 경로) 등을 관리하고 관련 문의에 대응하는 등 사실상 재단이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설명이다. 카탈로그 레조네 작업도 주요 과제다. 바젤리츠는 생전 아카이빙에 강한 관심을 갖고 이를 담당할 인력과 조직까지 갖춰 놓았다고 전했다. 작가는 떠났지만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기록되고 관리될지까지 준비해 놓은 셈이다. ◆그림은 미술사에, 버섯 사랑은 아들에게 미술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들만 기억하는 바젤리츠의 모습을 하나만 들려달라고 했다. 블라우는 1970년대 기숙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 당시 동독에서 휴가를 받아 서독을 방문한 할아버지도 함께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자마자 꺼낸 이야기는 그림이 아니었다. “트러플을 찾았다. 우리 찾으러 가자.” 집으로 돌아온 이들은 곧장 근처 숲으로 향했다. 바젤리츠는 나무 아래로 몸을 낮추고 들어가 냄새를 맡으며 트러플과 버섯을 찾아다녔다. 세계적인 화가가 아니라 버섯을 찾아 숲을 헤집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버섯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 취향은 아들에게 이어졌다. “저도 버섯과 트러플을 좋아합니다.” 블라우가 웃었다. 미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그림을 뒤집는 법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버섯을 좋아하는 마음을 물려받았다. 세계는 게오르그 바젤리츠를 ‘거꾸로 그린 화가’로 기억한다. 아들에게 그는 추운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버지였고, 숲바닥을 헤집으며 트러플을 찾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자기 그림보다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100% 예술가’였다. 한편 19년 만의 한국 미술관 개인전이자 바젤리츠 사후 첫 한국 전시인 세화미술관의 바젤리츠전은 하루 평균 500~600명이 찾고 있다. 전시는 12월27일까지 열린다. 2026/08/29
프리즈 하우스 서울에 대나무 7000개로 만든 '비가시의 숲' 프리즈 하우스 서울은 프리즈 위크를 맞아 일본 대나무 예술가 다나베 치쿤사이 4세의 개인전 '비가시의 숲'과 폴라 쿠퍼 갤러리의 그룹전 '숲·대지·초원'을 선보인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대나무 설치와 세계 현대미술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은 지난해 9월 서울 약수동에 문을 연 프리즈의 상설 전시 공간이다. 런던의 'No.9 코크 스트리트'를 모델로 국내외 주요 갤러리의 전시와 이벤트를 연중 선보인다. 27일 개막한 '비가시의 숲'은 다나베 치쿤사이 4세가 프리즈 하우스 서울 공간에 맞춰 제작한 대규모 설치 신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하이라이트는 약 7000개의 대나무 조각을 엮어 만든 대형 설치 작품이다. 숲속 균류와 미생물, 식물의 뿌리가 얽혀 형성하는 지하 생태 네트워크에서 착안했다. 대나무 구조물이 전시장 곳곳으로 뻗어나간 모습은 거대한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관람객은 설치물 사이를 직접 거닐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대나무와 흙으로 만든 조각 연작도 함께 선보인다. 흰색은 생성을, 검은색은 소멸을 상징한다. 파괴를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바라본다.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을 작품에 담았다. 197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다나베 치쿤사이 4세는 대대로 이어온 대나무 공예가 집안의 4대째 작가다. 도쿄예술대 조각과를 졸업하고 부친에게 전통 대나무 공예를 배웠다. 2017년 '다나베 치쿤사이 4세'를 계승한 뒤 전통 대나무 공예를 동시대 조각과 장소 특정적 설치로 확장해왔다. 폴라 쿠퍼 갤러리의 그룹전 '숲·대지·초원'에는 솔 르윗, 세실리 브라운, 칼 안드레, 한스 하케, 토바 아우어바흐, 왈리드 라드 등 14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전시 제목은 칼 안드레가 1972년 발표한 시 'WOODS WOODS LANDS WOODS LANDS MEADOWS'에서 가져왔다. 회화와 조각, 사진, 콜라주, 텍스트 등을 통해 자연과 도시의 풍경이 기억되고 해석되며 재구성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솔 르윗은 피렌체 항공사진에서 역사적 중심부를 도려내 도시 풍경을 추상적인 형태로 전환한다. 한스 하케의 'Sky Line'(1967)은 흰 풍선의 움직임으로 공기와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을 드러낸다. 세실리 브라운의 'Temptation of the Lapin'(2023)은 리처드 애덤스의 소설 '워터십 다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숲의 풍경을 억압과 탈출, 생존이 뒤얽힌 장면으로 풀어낸다. 1968년 뉴욕 소호에서 설립된 폴라 쿠퍼 갤러리는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역사와 함께 성장한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갤러리다. 두 전시는 9월 19일까지 열리며 별도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2026/08/29
에디강·나오키 코이데 20년 인연…'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인간은 때로 자신만의 수호자를 만든다. 일본 작가 나오키 코이데(58)는 흙으로 영적 존재를 빚고, 에디강(46)은 캔버스 위에 자신을 지켜온 캐릭터를 그린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안과 상실을 견뎌온 두 작가가 20여 년 인연 끝에 처음 한 전시장에 섰다. 서울 그랜드 하얏트 로비에 위치한 가나아트 남산은 10월 11일까지 에디강과 나오키 코이데의 2인전 ‘Till we have faces(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를 개최한다. 수호자와 영적 존재를 주제로 회화와 도자 조각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C.S. 루이스의 동명 소설에서 가져왔다. 자기기만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아를 마주하기까지의 여정을 뜻한다. 전시의 한 축을 이루는 코이데는 인간과 혼령, 동물과 자연이 뒤섞인 기묘한 존재들을 도자로 빚었다. 초기에는 FRP와 목재를 주로 사용했지만 2010년 시가라키 도예의 숲 레지던시를 계기로 도자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가마 속에서 흙은 작가의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불의 온도와 환경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다. 코이데는 이 통제할 수 없는 제작 과정을 삶의 불확실성과 연결한다. 가족을 잃은 경험도 작업에 스며들었다. 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계의 생명체와 전통 수호령인 코마이누(고려견) 등을 그리고 빚으며 영적인 위안을 구한다. 기묘하게 생긴 존재들이지만 표정과 몸짓에는 따뜻한 유머가 배어 있다. 에디강은 신작 ‘Props’ 연작을 통해 삶의 굽이마다 자신을 지켜준 존재들을 불러낸다. 설인 예티(Yeti), 애착 베개에서 태어난 래그(Rag), 실제 반려견이었던 러브리스(Loveless) 등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단순한 만화적 이미지가 아니다. 유년기의 불안과 낯선 환경, 삶의 전환점을 통과할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이다. 두 작가의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이데의 작품을 처음 접한 에디강은 인간과 낯선 영적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그의 세계에 매료됐다. 자신이 추구해온 악의 없는 세계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작가의 개별 작품뿐 아니라 조형과 회화가 물리적으로 만나는 협업 작업도 선보인다. 흙으로 빚은 수호령과 캔버스에서 태어난 수호자. 모습은 다르지만 출발점은 같다. 완벽해서 자신을 지키는 존재들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하고 상처받기 쉬운 인간이기에 만들어낸 또 하나의 얼굴이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라는 전시 제목처럼 두 작가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지키며, 결국 어떤 얼굴로 살아갈 것인가. 2026/08/29
떠나지 않았다면, 그 집을 알았을까…서도호 '회향'[박현주 아트에세이 ㉝] 아버지는 집을 지었다. 아들은 집을 떠났다. 그리고 떠난 아들은 평생 집을 만들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서도호의 ‘집’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가 자란 곳은 부모가 지은 한옥이었다. 모두가 서양식 아파트를 선망하던 1970~80년대였다. 부모는 거꾸로 한옥을 택했다. 철거되는 옛집의 목재와 창호, 철물을 모았다. 장인을 찾아 집을 지었다. 어린 서도호는 그 과정을 지켜봤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 집을 떠나는 데는 하루가 걸렸지만, 그 집을 다시 만나는 데는 평생이 걸릴 줄은. 서도호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뉴욕에서 살았고 다시 런던으로 옮겼다. 멀어지자 집이 보였다. 떠나지 않았다면, 그 집을 알았을까. 그는 떠나온 집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벽과 복도, 계단과 문, 전등 스위치와 손잡이까지 떠냈다. 재료는 얇고 반투명한 천이다. 빛이 스며든다. 무거운 건축이 가벼워졌다. 접을 수 있게 됐다. 가방에 넣을 수 있게 됐다. 국경도 건널 수 있게 됐다. 집을 떠난 사람이 집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집은 그를 따라 세계를 떠돌았다. 2018년 런던 웜우드가 육교 위에는 한옥 한 채가 먼 곳에서 날아온 듯 내려앉았다. 땅에 뿌리내려야 할 집이 낯선 도시의 공중에 비스듬히 걸렸다. 사람이 이주하자 집도 이주했다. 하지만 서도호가 옮긴 것은 집만이 아니었다. 그는 서울에서 만든 집을 다른 곳으로 옮긴 뒤 그 안에 들어가면 옛날로 되돌아가는 듯한 ‘프루스트 효과’를 느낀다고 했다. 몸은 지금 이곳에 있는데 기억은 그때 그곳으로 간다. 공간을 옮겼는데 시간이 따라왔다. 그래서 그의 투명한 집은 묘하다. 사람은 없는데 사람이 있다. 시간은 지났는데 시간이 남아 있다. 집은 사라졌는데 집이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다. 떠나온 집.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방. 이제는 없는 사람과 함께했던 자리. 공간을 기억하면 시간이 따라 나온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이 걸어 나온다. 집은 건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을 지나간 시간. 함께 살았던 사람. 그때의 나. 물론 오늘 우리에게 집은 그렇게 낭만적인 공간만은 아니다. 집은 자산이고 계급이며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을 가르는 숫자가 됐다. 누구에게는 여러 채의 집이 재산이고, 누구에게는 한 채의 집조차 평생 닿기 어려운 꿈이다. 그런데 서도호의 집에는 가격이 없다. 평수도, 시세도 없다. 남는 것은 그곳을 지나간 시간과 사람의 흔적이다. 서도호의 집이 세계 어디에서나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서울의 한옥이 세계의 낯선 도시에 펼쳐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서도호만의 집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떠나온 고향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부모의 집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이 된다. 가장 개인적인 기억이 가장 보편적인 기억을 건드린다. 한옥에는 국적이 있다. 그러나 그리움에는 국적이 없다. 우리는 떠나는 것을 흔히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에는 멀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고향이 그렇다. 부모가 그렇다. 젊음이 그렇다. 가까이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거리는 상실을 만든다. 그러나 거리가 시야를 만든다. 서도호는 이번 서울 전시에 ‘회향(回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30년 넘게 세계를 이동하며 집과 기억을 좇아온 작가가 다시 자신의 시작을 바라본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떠나온 집도 예전의 집이 아니다. 그 집을 떠났던 사람 역시 그때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사는 일이 아니라 다시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집이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지겨웠던 하루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늘 곁에 있던 사람도 어느새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을. 하지만 삶은 지나간 장면을 다시 보여주지 않는다. 때로 예술이 그 일을 한다. 사라진 집을 다시 세우고, 흘러간 시간을 불러오고, 그곳에 있었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서도호의 투명한 집 앞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어쩌면 그의 집만이 아니다. 저마다 떠나온 집이다. 그곳에는 아직, 한때 그 집에 살았던 내가 있다. 2026/08/29
효자동 솔루나 그룹전…김덕용·올리 파더스 등 13명 참여 공예와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솔루나 파인 아트와 솔루나 파인 크래프트는 서울 종로구 효자동 솔루나에서 그룹전 '물성의 언어(The Language of Materiality)'를 개최한다. 김덕용, 김영헌, 박종진, 우종택, 임재현, 이규홍, 장승택, 정다혜, 천우선, 최기룡, 편예린을 비롯해 영국 작가 올리 파더스와 한국계 미국 작가 샘정 등 국내외 작가 13명이 참여한다. 이번 전시는 나무와 숯, 흙, 유리, 옻칠, 말총, 안료 등 서로 다른 물성을 지닌 재료에 주목한다. 전통적인 재료와 기술에서 출발한 공예부터 회화와 조각, 설치 등 현대미술로 확장된 작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프리즈 서울 기간인 9월3일에는 '삼청나잇(Samcheong Night)'과 연계한 특별 프로그램 'Material Bar'도 열린다.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재료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과 음악, 참여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전시의 '물성'을 맛과 향, 소리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전시는 9월11일까지. 토·일요일은 휴관한다. 2026/08/28
‘소변기 너머의 뒤샹’…30년 모은 희귀자료 250점 서울에 소변기 하나로 미술사를 뒤집은 마르셀 뒤샹 (1887~1968). 그러나 그의 혁명은 ‘레디메이드’에서 끝나지 않았다. 책과 잡지, 포스터, 초대장, 사진과 엽서까지. 작품을 복제하고 출판하고 유통하는 방식 자체를 예술로 확장한 뒤샹의 또 다른 세계가 서울에 펼쳐졌다. 마이어리거울프 서울은 11월 5일까지 ‘마르셀 뒤샹: 파리지앵 컬렉션(Marcel Duchamp: A Parisian Collection)’을 개최한다. 파리의 한 컬렉터가 약 30년에 걸쳐 수집한 뒤샹 관련 작품과 자료 약 250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에디션(edition)’이다. 일상의 기성품을 예술로 선언한 뒤샹은 작품의 유일성과 작가의 손, 저자성이라는 전통적인 미술의 관념을 흔들었다. 동시에 복제와 반복, 출판과 유통을 적극 활용하며 하나의 작품과 아이디어가 다른 형태와 맥락으로 이동하는 과정까지 자신의 작업으로 끌어들였다. 전시장에는 뒤샹이 직접 디자인하거나 제작에 관여한 서적과 카탈로그, 포스터, 초대장, 에페메라, 콜로타이프 등이 나왔다. 1938년 제작한 ‘커피 분쇄기’와 1937년 ‘체스를 두는 사람들’은 뒤샹이 자신의 작품을 축소해 휴대 가능한 미술관처럼 만든 ‘여행가방 속 상자(La Boîte-en-valise)’에 수록하기 위해 제작한 재현작이다. ‘체스를 두는 사람들’ 뒷면에는 라벨 인쇄를 위해 출판사에 전달하려고 뒤샹이 붙인 자필 메모도 남아 있다. 1945년 마르셀 뒤샹에게 헌정된 잡지 ‘뷰, 더 모던 매거진’ 뒤샹 특집호도 눈길을 끈다. 100부 한정으로 제작된 디럭스 에디션 가운데 9번이다. 뒤샹이 직접 그린 표지와 함께 조셉 코넬,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브르통, 미나 로이, 만 레이 등 18인의 자필 서명이 담겼다. 뒤샹과 만 레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도 나왔다. 만 레이가 촬영한 1921년 ‘삭발’과 ‘먼지 배양’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1947년 국제초현실주의전 카탈로그 ‘1947년의 초현실주의’는 뒤샹 특유의 도발을 압축한다. 엔리코 도나티와 함께 만든 여성의 가슴 형태를 표지에 붙이고 ‘제발 만지시오(Prière de toucher)’라고 적었다. 미술 작품 앞에서 눈으로만 감상하라는 관습까지 뒤집은 작업이다. 188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뒤샹은 1913년 뉴욕 아모리 쇼에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를 출품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자전거 바퀴와 눈삽, 소변기 등 일상의 기성품을 예술로 제시하며 예술적 가치의 근거를 작가의 제작 기술에서 ‘선택’과 ‘지정’의 행위로 옮겼다. 1920년대부터는 여성 페르소나 ‘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를 내세워 예술가의 정체성과 저자성에도 질문을 던졌다. 회화와 조각을 넘어 출판과 편집, 전시 기획, 언어와 이미지까지 작업의 영역으로 확장한 그의 실천은 다다와 초현실주의에서 팝아트와 개념미술까지 20세기 미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는 대표작 몇 점으로 굳어진 ‘미술사의 뒤샹’ 대신 이미지와 텍스트, 출판물과 전시를 통해 끊임없이 복제되고 이동했던 뒤샹을 보여준다. 관람은 무료. 2026/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