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당·서울문화재단, 장애예술 기획전 '달리·Differently·Dalí' 눈으로만 보는 전시가 아니다. 손으로 작품을 느끼고 수어로 해설을 만날 수 있다. 예술의전당과 서울문화재단은 오는 3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장애예술 기획전 '달리·Differently·Dalí'를 개최한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16기 입주작가 6명이 참여해 각자의 감각과 경험을 담은 작품 80여 점을 선보인다. 김미영은 색연필로 뜨개질하듯 선을 쌓아 올리고, 김승현은 푸른 심해 속 낯선 생명들의 세계를 그린다. 서은정은 자연과 공존의 풍경을, 심규철은 역사와 판타지, SF가 뒤섞인 세계를 펼친다. 위혜승은 쌓고 갈아내는 반복적인 작업으로 상처와 회복의 시간을 표현한다. 임재현은 방과 창문, 인물과 사물을 통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재구성한다. 관람 방식도 다양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작품을 손으로 느낄 수 있는 '3D 촉각 부조'를 설치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작품 수어해설 영상을 QR코드로 제공한다. 색약 보정 안경과 오디오가이드도 무료로 대여하며 큰 글씨 리플릿을 비치한다. 예술의전당 장한나 사장은 “이번 전시는 장애예술의 창작 생태계를 확장하는 협력 기획”이라며 “촉각 감상과 수어해설 등을 도입해 누구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관람 환경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효성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2026/10/15
이중섭이 "야수파가 오고 있다"던 화가…'1957-문우식' "야수파가 오고 있다!" 화가 이중섭이 젊은 문우식(1932~2010)의 그림을 보고 건넸다는 말이다. 강렬한 색채 대비가 돋보이는 1955년작 '자화상'을 본 뒤였다고 한다. 이중섭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청년 화가는 이듬해 기성 화단의 권위에 도전했다. 1956년 박서보, 김충선, 김영환과 함께 '4인전'을 열고 국전 중심의 미술계에 반기를 들었다. 당시 스물네 살이었다. 한국 현대미술의 태동기에 전위적 실험을 펼쳤던 화가 문우식의 작품 세계를 다시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예화랑은 오는 27일부터 11월 21일까지 '1957-문우식'전을 개최한다. 1957년 제1회 현대작가미술전 출품작 '비둘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69년 만에 선보이는 것을 비롯해 1957년 작품 11점과 1960년대 추상 작품 등 총 35점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문우식의 삶과 예술을 다룬 책 '모더니스트 문우식'(현암사)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전시 제목에 내세운 1957년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힌다. 전쟁 이후 새로운 조형 언어를 모색하던 젊은 화가들이 기성 화단의 질서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하던 시기다. 1932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문우식은 1952년 홍익대 미술학부에 입학해 김환기와 이종우 등에게 배웠다. 이중섭과도 교류하며 전후의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1956년 열린 '4인전'은 그의 미술 인생에서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국전이 화가의 주요 등용문으로 여겨지던 당시, 젊은 작가 네 명은 기존 화단의 권위에 도전하며 새로운 미술을 모색했다. 이듬해 문우식은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1회 현대작가미술전에 초대됐다. 이후 제6회까지 유영국과 함께 참여하며 전후 한국 화단에서 활동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작품은 1957년작 '비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인물과 동물, 나무와 건축적 형태가 화면에 어우러진 작품으로, 전쟁 이후 새로운 회화적 표현을 모색하던 문우식의 실험을 보여준다. 같은 해 제작된 '성당 가는 길'과 '소녀 있는 공방'도 선보인다. 두 작품에는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 화면을 분할하는 독특한 구성이 나타난다. 문우식의 활동은 회화에만 머물지 않았다. 1962년 이대원, 유영국, 이봉상 등과 신상회를 창립하고 추상 작품을 발표했다. 당시 신상전의 로고와 리플릿, 현수막, 포스터 등 전반적인 디자인도 담당했다. 명동 국립극장 벽화와 영빈관 실내장식, 전국체육대회 카드섹션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회화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 현대미술과 현대디자인의 형성기에 활동한 것이다. 문우식의 흔적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덕수궁관의 이대원 전시에서는 1967년 두 작가가 함께 작업한 '영빈관 실내장식디자인' 제안서가 소개되고 있다. 과천관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Ⅱ'에서는 문우식의 1957년작 '무명교를 위한 구도'와 1962년작 '왕가의 탄생'을 전시하고 있다. 유영국과 이대원 등 동시대 작가들이 대규모 전시로 조명받는 가운데, 문우식의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출발점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2026/10/15
"호텔 객실이 작가 작업실로" 신라스테이, 참여형 예술 프로그램 운영 신라스테이가 호텔 객실을 신진 아티스트의 작업 공간으로 제공하고 고객이 창작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참여형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5일 밝혔다. '아티스티 레지던시 위드 신라스테이'는 예술가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고객에게는 작가와 직접 소통할 기회를 마련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다. 신라스테이는 아트 플랫폼 '아티스티'와 함께 2023년부터 신라스테이 역삼과 구로 등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올해는 신라스테이 광화문 객실을 지난 8월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창작 공간으로 지원한다. 프로그램은 아티스트 토크와 크리에이티브 아트 세션, 오픈 스튜디오 등으로 구성했다. 참가자는 작가의 작품 세계와 작업 과정을 듣고 창작 방식을 직접 체험한 뒤 실제 작업 공간으로 사용되는 객실을 둘러볼 수 있다. 올해는 이찬희, 하고미, 헤진 작가가 참여한다. 이찬희 작가는 점의 축적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탐구하고, 하고미 작가는 곰이라는 친숙한 형상으로 현대인의 감정을 표현한다. 헤진 작가는 일상 공간을 소재로 감정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지난달 진행한 이찬희·하고미 작가 프로그램은 사전 예약이 마감됐다. 신라스테이는 17일 신라스테이 광화문에서 헤진 작가와 함께 올해 마지막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참가 신청은 신라스테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받는다. 신라스테이 관계자는 "예술가에게는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고객에게는 예술을 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호텔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6/10/15
자기 그림을 위조한 화가도 있다…미술시장 뒤흔든 가짜 명작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스스로 위조한 화가가 있다. 이탈리아 형이상학적 회화의 선구자 조르조 데 키리코(1888~1978)다. 그는 자신의 초기 작품이 미술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자 과거 그림을 다시 그렸다. 문제는 제작연도까지 과거로 돌려 표기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니 가짜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그는 이를 '진짜 가짜(verifalsi)'라고 불렀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면 모두 진품일까. 미국 미술전문지 ARTnews는 13일(현지시간) '역사상 가장 많이 위조된 미술가는 누구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미술시장에서 위작이 빈번하게 등장한 작가 9명을 조명했다.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오노레 도미에, 오귀스트 로댕, 프레더릭 레밍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조르조 데 키리코,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다. 19세기 프랑스 풍경화가 코로는 위작이 많기로 유명하다. 1888년 벨기에의 한 작업장에서만 가짜 코로 풍경화 235점이 제작됐다. 코로는 때로 위작에 직접 손을 대기도 했다. 한 구매자가 가져온 가짜 그림을 고쳐 진품으로 만들어줬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로댕의 경우 사후 제작된 청동 조각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작가가 남긴 석고 원형을 이용해 청동상을 제작하면서 복제품임을 명확히 표시하지 않은 사례가 반복됐다. 미국 미술상 게리 스넬은 로댕의 원형을 이용해 약 1700점의 청동 주조품을 제작했다. 일부에는 로댕의 서명과 실제 제작 주물공장이 아닌 다른 주물공장의 표식까지 새겨졌다. 로댕미술관은 2019년 관련 미술상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살바도르 달리는 생전에 수많은 빈 종이에 미리 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출판업자 등이 이 종이를 판화 제작에 활용하면서 진품과 위작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앤디 워홀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실크스크린을 이용한 대량 복제 자체가 그의 예술적 방법론이었기 때문이다. 2021년 미국 예술집단 MSCHF는 워홀의 드로잉 진품 한 점을 2만 달러에 구입한 뒤 복제품 999점을 제작했다. 이후 진품을 식별할 수 있는 기록을 없애고 복제품과 섞어 각각 250달러에 판매했다. 진품은 물리적으로 훼손되지 않았지만 어느 것이 원작인지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위작 논란은 실제 미술관 전시를 중단시켰다. 2022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미술관에서 열린 바스키아 전시에서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전시작 25점을 압수했다. 위작 의혹의 결정적 단서는 그림이 그려진 종이상자였다. 1982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작품에서 바스키아가 사망한 1988년보다 6년 뒤인 1994년부터 사용된 페덱스(FedEx) 로고 서체가 발견된 것이다. 이후 2023년 전직 경매업자 마이클 바즈먼은 공범과 함께 가짜 바스키아 작품 20~30점을 제작했다고 인정했다. 미술관장은 사건 이후 해임됐다. 미술품 감정에서는 일반적으로 작품의 양식과 소장 이력, 과학적 분석 등을 종합해 진품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으로도 위작을 완벽하게 가려내기는 어렵다. 특히 바스키아처럼 비교적 최근에 활동한 작가의 작품은 감정이 더욱 까다롭다. 작가가 사용했던 재료들이 지금도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어 과학적 분석만으로는 진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 기술은 발전했지만 위작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미술시장이 여전히 진품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2026/10/15
사진인가 그림인가…인간 내면의 기괴한 세계, 로저 발렌 60년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빗자루와 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발밑에는 흰 토끼가 웅크리고, 뒤편 벽에서는 기괴한 얼굴들이 관객을 응시한다. 현실에서 마주칠 법한 인물과 동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놓인 공간은 어딘가 불길하고 낯설다. 사진일까, 그림일까. 미국 출신 사진작가 로저 발렌(Roger Ballen·76)의 2021년작 'Thrown Out'이다. 인물과 동물, 벽면의 드로잉이 뒤섞인 화면은 현실을 기록한 사진이라기보다 인간의 무의식을 무대로 옮긴 한 편의 기묘한 연극처럼 보인다. 인간 내면의 불안과 원초적 충동을 탐구해온 로저 발렌의 개인전 'Roger Ballen. The Works: Drawing meets Photography'가 오는 16일 서울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에서 개막한다. 1960년대 초기 흑백사진부터 최근 컬러 사진, 드로잉과 에칭 등 130여 점을 통해 60여 년에 걸친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다. 195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발렌은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인물과 사물, 동물, 드로잉을 결합하며 독자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발레네스크(Ballenesque)'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현실과 환상, 인간과 동물, 이성과 광기가 뒤섞인 기묘한 미학이다. 발렌은 자신의 작업을 "사진인 동시에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무엇이다.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사진은 단순히 눈앞의 현실을 포착하는 수단이 아니다. 인물과 사물을 배치하고 벽에 그림을 그리며 공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무대다. 이번 전시는 사진과 드로잉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렌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로 발전해온 과정을 7개 파트로 펼쳐 보인다. 초기 작품에서는 거리와 건축물, 인물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만날 수 있다. 매그넘포토스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폴 스트랜드 등의 사진을 접한 발렌은 일찍부터 빛과 구도, 선과 형태에 관심을 기울였다. 1980~199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제작한 'Dorps'와 'Platteland' 연작에서는 마을과 건축물, 실내 공간과 인물을 촬영했다. 이후 'Outland' 연작부터 인물과 사물을 직접 배치하고 드로잉을 끌어들이며 현실의 기록과 연출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뚜렷해졌다. 'Shadow Chamber'와 'Boarding House' 연작에서는 인물과 사물뿐 아니라 배경의 선과 여백까지 치밀하게 조율했다. 사진은 현실을 담는 창에서 작가가 직접 만들어내는 무대로 바뀌었다. 'Theatre of Apparitions' 연작은 사진과 드로잉의 관계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발렌은 어둡게 처리한 유리 표면을 긁거나 지워 형상을 만든 뒤 이를 촬영했다. 긁힌 자국 사이로 빛이 스며들면서 얼굴과 유령 같은 형상들이 떠오른다. 사진은 드로잉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수단이 된다. 새와 쥐도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존재다. 'Asylum of the Birds'와 'Roger's Rats' 연작에서는 동물들이 인간과 함께 기묘한 공간을 구성한다. 이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인간과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공유하는 동반자로 등장한다. 오랫동안 흑백사진을 고수해온 발렌은 2020년 이후 컬러 사진으로도 작업을 확장했다. 'Spirits and Spaces' 연작에서는 선명한 색채가 인물과 동물, 드로잉과 충돌하며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발렌의 작품은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가 제안한 '아르 브뤼(Art Brut)'와도 맞닿아 있다. 제도화된 미술교육과 문화적 규범에서 벗어난 원초적인 표현을 뜻하는 개념이다. 치밀하게 연출된 장면 속에 등장하는 낯선 인물과 동물, 예측할 수 없는 형상들은 인간의 무의식과 광기, 사회의 주변부를 드러낸다. 우리가 낯설고 불편하게 여기는 존재들이 결국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질문을 던진다. 미술관 수장전시실에서는 폴라로이드 사진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린 작품과 에칭도 선보인다. 사진과 회화, 드로잉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발렌의 실험을 살펴볼 수 있다. 지난 9월 영상 작업을 소개한 프리뷰 스크리닝에 이어 마련된 이번 본전시는 내년 2월 21일까지 열린다. 오는 17일 오후 6시에는 로저 발렌이 직접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도 진행된다. 작가는 짧은 퍼포먼스와 함께 작품의 제작 과정과 작업에 담긴 생각을 들려줄 예정이다. 2026/10/14
물길이 산세가 되고 흙빛이 풍경으로…채성필의 '묘법' 푸른 화면에 물길이 굽이친다. 짙은 파란색 사이로 구불구불한 선이 뻗어나간다. 어떤 그림은 거센 물결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고, 어떤 그림에는 단 한 줄의 흔적만 남았다. 화가가 붓으로 그린 선이 아니다. 물이 흘러가며 만들어낸 길이다. 채성필의 개인전 '흙, 물 그리고 시간의 묘법'이 15일부터 서울 인사동 갤러리그림손에서 열린다. 2018년 갤러리그림손 개관 10주년 기념전 이후 이곳에서 8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제가 그리는 게 아니라 그려지게 하는 겁니다." 14일 갤러리그림손에서 만난 채성필(54)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기법'이 아닌 '자연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땅에 물이 고여 넘치면 흐르게 되잖아요. 흙을 씻어내고 길을 만들면서 지나갑니다. 그 현상을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겁니다." 채성필의 그림은 흙에서 시작된다. 직접 구한 흙을 물에 담가 고운 입자만 걸러낸다. 그렇게 얻은 흙물과 천연 안료가 회화의 재료다. 흙에서 자란 풀을 엮어 붓을 만들기도 한다. 제작 과정도 독특하다. 화판을 바닥에 내려놓고 흙과 안료를 뿌리거나 붓으로 흔적을 남긴다. 때로는 액션 페인팅처럼 몸을 움직이며 작업한다. 하지만 그림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은 그다음이다. 화판을 세우고 물을 더하면 중력에 따라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물줄기는 안료 사이를 가르며 길을 낸다. 작가는 화면 뒤에서 화판을 기울여 방향과 흐름을 조절한다. "한 줄로 쭉 가는 작품도 어느 각도로 세울지, 어느 정도까지만 흐르게 할지는 계산된 행위입니다. 하지만 만들어지는 것 자체는 제가 아니죠." 작가가 물길의 방향을 정하지만 실제 흔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이다. 때로는 흐름을 중간에 멈추고, 때로는 끝까지 흘려보낸다. 작가의 의지와 자연의 움직임이 하나의 화면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에게 물의 흐름은 단순한 물리적 움직임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중첩되는 시간의 움직임이다. 물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선은 그 시간이 만들어낸 기록이다. ◆ 물가에서 발견한 흙, 자신만의 '먹'이 되다 채성필이 흙을 회화의 재료로 삼게 된 데에는 우연한 경험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는 여행과 낚시를 즐겼다. 어느 날 아침,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스케치를 하려다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스케치북만 가져왔을 뿐 그림을 그릴 도구가 없었던 것이다. 주변에 있던 갈대를 꺾어 진흙을 묻혀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스케치를 했더니 재미있더라고요." 뜻밖의 경험은 새로운 재료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그는 흙이 동양화의 먹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색과 질감은 달라도 자연을 표현하는 재료라는 점에서 통한다고 느꼈다. "저에게는 먹과 다른 나만의 먹이 흙이었던 거죠." 동양화를 공부한 화가는 그렇게 흙에서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찾았다. 전시장에서는 흙과 물이 만들어낸 다양한 표정을 만날 수 있다. 짙은 푸른색 화면에서는 물길이 소용돌이치고, 녹색과 황토색 화면에서는 가느다란 선들이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 선들은 저마다 다른 굵기와 밀도를 지닌다. 물이 흐르다 멈추고, 갈라지고, 다시 합쳐진 자리에 남은 흔적이다. 그 결을 만들어낸 것은 붓끝이 아니라 물의 흐름이다. ◆ 박서보의 '묘법'은 쓰기, 채성필은 새김 채성필의 회화는 땅에서 시작해 물의 흐름으로, 다시 그 흐름이 남긴 흔적으로 확장됐다. '익명의 땅'과 '대지의 몽상'에서는 땅이 품은 시간과 기억, 원초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탐구했다. '물의 초상'에서는 흙과 만난 물이 중력에 따라 흐르고 갈라지고 합쳐지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묘법(Inscription)'은 그 흐름이 남긴 흔적 자체에 집중한 작업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수직의 선들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 흙과 물, 안료가 중력에 따라 움직이고 스며들면서 만들어낸 자국이다. 멀리서는 하나의 색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다른 굵기와 밀도의 흔적이 드러난다. 채성필이 신작에 붙인 '묘법(描法)'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박서보를 떠올리게 하는 명칭이다. 박서보가 자신의 묘법을 프랑스어로 '쓰기'를 뜻하는 에크리튀르(Écriture)라고 불렀다면, 채성필은 '새김'과 '기록'의 의미를 지닌 인스크립션(Inscription)을 사용한다. "그려진다기보다 땅을 새기고 지나가는 흔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데 박서보를 의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박서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도 자신의 작업에 고유한 표현 방식이 있기 때문에 굳이 피할 이유는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는 동양화에서 묘법이 그림을 표현하는 행위와 방법을 뜻하는 개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흙을 자신만의 먹으로 받아들인 경험에서 시작된 회화는 이제 물과 시간이 화면에 새긴 흔적을 탐구하는 단계로 이어졌다. ◆ 파리서 3년간 전시마다 완판…"운이 좋았죠" 채성필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로 건너갔다. 렌느2대학교에서 조형예술학 석사를 취득하고 파리1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프랑스 진출 초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경험했다. 작가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현지에서 연 전시마다 작품이 모두 팔렸다. 당시 작품 가격은 약 3000유로, 한화로 400만원 수준에서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작품 판매가 이어지면서 프랑스에 집도 마련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갔는데 거기서 돈을 벌어 집도 샀어요. 정말 운이 좋았던 경우죠." 현재 파리에 거주하며 서울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작품은 프랑수아 피노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영은미술관, 파리시청, 세르누스키 미술관, 카카오, 신한은행 등 국내외 주요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지만, 그가 줄곧 붙잡아온 재료는 흙과 물이다. 지난 4월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채성필 흙 그림전_익명의 땅'을 열고 30여 년의 작업 세계를 조명했다. 이번 갤러리그림손 개인전에서는 대표 연작과 함께 신작 '묘법'을 공개한다. 캔버스에 흙과 물이 남긴 흔적은 보면 볼수록 낯익다. 푸른 물길은 산세가 되고, 녹색 화면을 타고 흘러내린 선들은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 결처럼 보인다. 도끼로 찍어낸 듯한 필선으로 암벽을 표현하는 전통 산수화의 부벽준(斧劈皴)도 떠오른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 청전 이상범의 산길과 흙빛 풍경이 겹쳐진다. 구체적인 산도, 길도 그리지 않았지만 어딘가 우리 산천의 기운이 서려 있다. 동양화를 공부한 화가의 눈과 몸에 축적된 우리 산수의 기억이 읽힌다. 자연이 그린 추상화에서 오래된 우리 산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는 11월 16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6/10/14
신임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에 윤석민 TY홀딩스 회장 윤석민 TY홀딩스 회장이 신임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이 됐다. 국립중앙박물관회는 지난 13일 열린 임시총회에서 제17대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으로 윤석민 TY홀딩스 회장이 선출됐다고 14일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회는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는 비영리법인으로 1974년 창립됐다. 문화재 기증, 학술사업 지원, 대외교류활동 활성화 등 박물관 후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임 회장의 임기는 내달 25일부터 3년이다. 윤 신임 회장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 친구들(YFM)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한 후 202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회 부회장을 맡아 왔다. 그는 "YFM 초대 위원장으로 박물관 후원에 뜻을 모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약 50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이어온 기부와 후원의 전통을 더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전했다. 2026/10/14
올 가을 궁중문화축전 44만명 찾아…외국인 26%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열린 '2026 가을 궁중문화축전'에 약 44만5000명이 방문했다. 국가유산진흥원은 이번 가을 축전에 관람객 44만5000명 가까이 방문, 이중 외국인은 11만3388명(약 26%)이라고 14일 밝혔다. 4~5월 열린 봄 궁중문화축전 방문객까지 합치면 올해 궁중문화축전을 찾은 이는 약 117만명(외국인 29만6815명)이다. 진흥원은 가을 축전에 대해 사전 예약 프로그램 대부분이 매진됐는데 특히 'ASMR 콘서트', '달밤의 길놀이', '향아치와 함께하는 규장각 초계문신 워크숍' 등 신규·특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것으로 분석했다. '경복궁 한복 연향'은 이틀간 3599명이 방문했고, 창덕궁 희정당에서 열린 특별전 '조선 공간 미학: 백의 질서'에는 5일간 5057명이 다녀갔다. 진미경 궁중문화축전팀장은 "올해의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더 많은 분이 각자의 방식으로 궁궐을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2026/10/14
프랭크 게리 설계 '구겐하임 아부다비' 12월 개관…10개 원뿔 눈길 세계적인 건축가 고(故)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아부다비가 오는 12월 11일 공식 개관한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사디야트 문화지구에 들어서는 이 미술관은 거대한 원뿔형 구조물과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독특한 공간 구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부다비 문화관광부는 14일 구겐하임 아부다비의 건축 비전을 공개하고 미술관이 개관을 위한 마지막 준비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연면적 8만4000㎡ 규모로 조성됐다. 28개 갤러리와 1만1600㎡의 실내 전시 공간, 2만3000㎡의 야외 전시 공간을 갖췄다. 실내 전시장뿐 아니라 그늘진 중정과 테라스, 야외 설치미술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건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0개의 거대한 원뿔형 구조물이다. 9개는 스테인리스 스틸 메시로, 나머지 1개는 오닉스와 유리로 마감했다. 원뿔형 구조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뜨거운 공기를 위로 끌어올리고 아래쪽으로 시원한 바람을 유입시켜 중정과 테라스의 공기 순환을 돕는다. 독특한 외관과 함께 아부다비의 뜨거운 기후에 대응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미술관이 들어서는 사디야트섬의 자연환경도 설계에 반영됐다. 물로 둘러싸인 해안선과 건물의 방향, 관람 동선을 연결하고 실내외 공간의 경계를 최소화했다. 게리는 설계 초기부터 현장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아부다비의 기후와 문화, 사람들이 모이고 이동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미술관을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예술과 건축, 주변 환경이 함께 작동하는 장소로 구상했다. 아부다비 문화관광부의 모하메드 칼리파 알 무바라크 의장은 "프랭크 게리는 초기부터 이 건물이 아부다비의 빛과 기후, 해안선,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기획 단계부터 예술가의 창작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형 설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와 규모의 작품을 수용할 수 있도록 갤러리와 야외 공간을 구성했다. 개관 프로그램으로 프랭크 게리 특별전도 마련된다. 수년에 걸친 설계 과정에서 제작된 원본 스케치와 초기 건축 모형, 아카이브 자료 등을 공개한다. 아부다비의 자연환경과 문화적 특성이 어떻게 미술관 설계에 반영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현재 개관을 위한 최종 준비 단계에 있으며, 공식 홈페이지에서 입장권 예매를 진행하고 있다. 2026/10/14
국현·도쿄국립근대미술관, '파리 비엔날레와 한·일 미술' 국제심포지엄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MOMAT)과 공동으로 오는 3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다원공간에서 국제심포지엄 '파리 비엔날레와 한·일 미술'을 개최한다. 이번 심포지엄은 두 미술관이 2025년부터 2년간 추진한 공동연구 프로젝트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다. 파리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의 국제 교류 역사와 미술사적 의미를 조명한다. 파리 비엔날레는 1959년부터 1985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총 13회 개최된 국제미술전이다. 20~35세 청년 작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한국과 일본 작가들에게 국제미술계 진출의 통로가 됐다. 한국에서는 앵포르멜부터 실험미술에 이르는 작가들이 참가했다. 심포지엄에는 한국·일본·프랑스의 연구자와 작가, 비평가 등 6명이 발표자로 참여한다. 1부 '파리 비엔날레의 역사와 재해석'에서는 프랑스 파리1대학의 엘리차 둘게로바 조교수가 비엔날레의 역사와 국제 공동연구 성과를 소개한다. 사하라 시오리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학예연구사와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각각 일본과 한국의 참여 현황과 미술사적 의미를 발표한다. 2부 '파리 비엔날레의 현장과 제도'에서는 1971년 참가자인 일본 작가 고시미즈 스스무와 1975년 참가자인 한국 작가 이강소가 당시 현장 경험을 들려준다. 파리 비엔날레 국제위원으로 활동했던 일본 비평가 미네무라 도시아키는 작가 선정 제도의 변화와 비엔날레의 의미 및 한계를 짚는다. 이번 공동연구에는 일본 국립아트리서치센터(NCAR)도 협력기관으로 참여했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027년 2월 관련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참가 신청은 오는 16일 오전 10시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선착순 250명이며 무료다. 2026/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