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을 빚는 색의 파동…아야코 록카쿠 회화의 촉각[박현주 아트에세이⑧] 색은 종종 감정보다 먼저 몸을 흔든다. 아야코 록카쿠의 화면을 마주할 때, 그 사실이 즉각적으로 이해된다. 핑크와 옐로, 블루와 라임이 일렁이며 밀려오는 파동은 시각보다 먼저 신체의 표면을 건드린다. 그의 회화는 손바닥이 구축해낸 세계다. 붓 대신 손으로 밀어 올린 선과 색, 압력의 흔적과 물감의 속도가 켜켜이 쌓여 하나의 감각적 지층이 된다. 그 지층은 그림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피부에 가깝다. 그래서 록카쿠의 화면은 ‘귀여움’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귀여움 아래에는 충동, 불안, 환희가 동시에 끓고 있다. 눈을 크게 뜬 아이들은 순진함의 표지가 아니라,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몸의 선언처럼 보인다. 대형 캔버스 앞에 서면, 색의 파동이 화면을 넘어 전시장 전체의 공기로 확장된다. 그 진동은 오래된 감정(가볍고 자유롭던 어떤 시간)을 잠시 되살려놓는다. 록카쿠의 회화는 결국 감정이 다시 색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손이 먼저 기억한 세계가 색의 흔들림을 통해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귀여움은 장식이 아니다. 세계의 질감을 잠시 누그러뜨리는 작은 구원이다. 그의 색 앞에서 우리는 감정의 떨림이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색의 층에 잠긴 채 얼굴만 내밀고 세상을 응시하는 소녀처럼. 그 작은 시선이 우리가 버틴 하루의 온도를 조금 바꿔놓는다. 2025/12/13
아르코 지역예술도약 17人 성과전…금호·일민·학고재서 동시 개막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17명의 예술가들이 서울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ARKO)가 올해 처음 출범한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의 성과전 ‘2025 ARKO LEAP’을 12일부터 금호미술관, 일민미술관,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동시 개막했다.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은 광역문화재단이 발굴한 작가를 아르코가 후속 지원하는 지역–중앙 연계형 프로그램이다. 올해 선정된 17명의 작가들은 1년간 창·제작 지원부터 비평 자문, 출판, 전문가 컨설팅까지 전 과정을 함께하며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다듬었다. 이번 전시는 그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첫 무대다. 전시는 세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결의 흐름으로 펼쳐진다. 금호미술관에서는 구지은, 김주환, 김진희, 김희라가 도시·자연, 인간·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건드린다. 기후생물지표종 제비의 서식지를 추적한 환경 리서치, 인간 욕망과 자연의 충돌, 도시의 수직 구조에서 오는 불안의 풍경, 여성의 일상에 숨겨진 권력의 구조 등이 설치·회화·미디어작업으로 전개된다. 공존과 긴장, 두 키워드가 전시장 전체를 관통한다. 일민미술관에서는 네 작가(송성진, 임안나, 홍희령, 이현태)가 ‘장소’의 의미를 심리·기억·기술의 층위에서 재해석한다. 땅의 기억과 이동의 서사, 전쟁과 재난의 감정, 인간 심리의 결핍, 가상공간의 시간성과 복잡성이 서로 얽히며, 장소는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감각의 층’임을 보여준다. 학고재 아트센터에서는 우은정, 황해연, 유경자가 실존·지질·감각이라는 보다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반복된 드로잉의 수행성, 지질학적 상상력, 도자를 매체로 한 감정의 시각화 등 물성과 감정이 만나는 지점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아카이빙 및 출판 프로젝트도 주목된다. 손몽주는 설치 작업을 메타버스로 확장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선보이고, 신예선은 24년 작업 세계를 개념·이미지로 엮은 연구자료를 출판한다. 유대수는 30여 년 판화 작업을 아카이브화했고, 장상철은 10년간 대형 설치작업의 여정을 정리한 출판물을 공개한다. 17인의 작업을 담은 아티스트북은 일민미술관 아카이브존에서 영상과 함께 소개된다. 지역예술의 성과는 해외까지 확장된다. 제25회 송은미술대상 후보로 선정된 고영찬은 지원사업 기반 신작을 송은미술대상전에서 발표하며, 김자이는 호주 멜버른 SOL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지역 예술가들의 세계 확장과 기초예술의 성장을 위한 뜻깊은 자리”라며 “지역과 중앙을 잇는 예술 생태계를 꾸준히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026년 1월 10일까지 무료 관람할 수 있다. 2025/12/12
556명 중 선정된 20인 신작…‘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 개막 송은문화재단이 12일부터 2026년 2월 14일까지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을 개최한다. 올해 본선에 오른 20명의 작가들이 회화·조각·설치·영상·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의 신작을 선보인다. 송은미술대상은 젊은 작가들의 창작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2001년 제정된 프로그램이다. 올해 공모에는 총 556명이 지원했다. 지난 2월 예선을 거쳐 고영찬, 고요손, 권현빈, 김무영, 김민정, 김주원, 김한샘, 봄로야, 비고, 신민, 요이, 우정수, 윤미류, 윤정의, 이수지, 이승재, 이아람, 이진형, 정가희, 최태훈 등 20인이 본선 전시에 참여하게 됐다. 최종 대상 수상자는 전시 기간 중 심사를 거쳐 2026년 1월 발표된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원과 3년 이내 송은에서의 개인전 개최 기회가 주어지며, 송은문화재단과 까르띠에가 수상작을 매입해 송은문화재단과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한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 레지던시 1년 입주 혜택이 제공된다. 올해는 까르띠에가 후원 규모를 확대하면서 수상작 매입 지원 역시 강화됐다. 이는 한국 동시대 미술 지원을 위해 세 기관(송은문화재단·서울시립미술관·까르띠에)이 구축한 협력 구조를 한층 공고히 하는 조치다. 본선 진출 작가들에게는 ‘송은문화재단–델피나 재단 레지던시’ 지원 자격도 주어진다. 이 가운데 선정된 1인은 런던 델피나 재단에서 12주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전시와 함께 송은은 RCA(영국 왕립예술학교)와 AA(건축협회 건축학교) 출신 한국 작가들을 초청한 디자인 프로젝트 ‘On Weight’를 웰컴룸에서 선보인다. 오는 21일에는 자유 관람 및 작품 구매가 가능한 원데이 ‘홀리데이 마켓’이 진행된다. 2025/12/12
이순신의 삶 재조명한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뉴시스Pic]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순신 장군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를 내년 3월 3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등 이순신이 직접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전쟁 영웅을 넘어 인간 이순신의 내면과 감정, 그리고 시대가 만들어온 상징으로서의 이순신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난중일기' 친필본, '이순신 장검' 등 이순신 종가 유물 20건 34점을 포함해 국보 6건 15점, 보물 39건 43점, 국가등록문화유산 6건 9점이 전시되며, 총 전시품 258건 669점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이순신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임진왜란의 침략국 일본의 다이묘(大名)가 보관해 온 유물도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다치바나 무네시게 가문의 투구·창·금박장식투구,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이 소장한 금채 '울산왜성전투도' 병풍,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초상화와 목상 등이다. 이순신 장군 서거일인 내달 16일에는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2025/12/12
포도뮤지엄 ‘살롱드포도’ 20일 개최…수퍼플렉스·수미 카나자와 참여 제주 포도뮤지엄(총괄디렉터 김희영)이 오는 20일 ‘살롱드포도(Salon de PODO): 아티스트 토크’ 연말 특집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지난 11월 마르텐 바스 토크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프로그램에는 야외 설치작 '하나 둘 셋 스윙!(One Two Three Swing!)'의 작가 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와 전시 참여 작가 수미 카나자와(Sumi Kanazawa)가 참여한다. 포도뮤지엄의 대표 프로그램 ‘살롱드포도’는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전시의 주제,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광활함과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확장하는 대화의 장으로, 음악·퍼포먼스·토크·사운드·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연결하며 관객과 예술가의 소통을 시도해 왔다. ◆1부: 수퍼플렉스, 공동의 움직임이 만든 변화의 힘 1부는 오후 4시 포도뮤지엄 북라운지에서 진행된다. 덴마크 출신의 3인조 아티스트 그룹 수퍼플렉스는 세계 곳곳에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사회적 협업’을 핵심 화두로 삼아온 팀이다. 포도뮤지엄 야외에 설치된 '하나 둘 셋 스윙!'은 세 사람이 동시에 그네에 올라야 비로소 완전한 움직임이 발생하는 3인용 모듈식 구조물이다. "함께할 때 가능한 변화"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이번 토크에는 멤버 야콥 펭거(Jacob Fenger)가 참여해 설치 과정과 주요 프로젝트, 협업의 의미를 직접 설명할 예정이다. ◆2부: 수미 카나자와, 시간을 쌓아 올리는 드로잉의 리듬 오후 5시 15분부터 2부는 전시실 내 작가 작품 앞에서 진행된다. 재일교포 3세인 수미 카나자와는 일상의 사물을 세밀한 수작업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전시작 '신문지 위의 드로잉'(2017-)은 신문지의 활자·질감·기억된 헤드라인 위에 연필의 마찰 흔적이 반복적으로 쌓이며 시간의 축적을 물질적 층위로 전환한 작업이다. 각기 다른 날짜의 신문이 연결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독특한 시간 구조를 드러내며, 관객은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장 안에서 직접 작품 앞에서 진행되는 이번 토크는 작가의 작업세계로 깊이 들어가는 높은 몰입감을 제공할 예정이다. 모두 동시통역이 제공되고, 토크 종료 후 작가들과 기념 촬영도 진행한다. 포도뮤지엄은 “작품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가의 사유와 제작 과정까지 함께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관객이 창작의 내면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025/12/12
르누아르 ‘딸기 그림’ 5년 만 재경매…시작가 얼마나 올랐나?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정물화 ‘Nature morte aux fraises(딸기가 있는 정물)’, 일명 ‘딸기 그림’이 5년 만에 다시 경매에 나왔다. 2020년 케이옥션에서 6억9000만 원에 낙찰됐던 이 작품은, 이번 12월 경매에서 시작가 8억5000만 원으로 다시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5년 만에 약 1억6000만 원 상승한 셈이다. 케이옥션은 올해 마지막 경매를 맞아 총 114점, 약 160억 원 규모의 작품을 선보인다. 경매는 23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진행된다. 이번에 다시 출품된 르누아르 '딸기 정물화'는 1905년경, 작가의 완숙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풍요로운 색채 감각이 돋보이며, 무엇보다 20세기 미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전설적 거상 앙부르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가 르누아르에게서 직접 구입해 소장했던 이력이 알려져 작품의 가치를 한층 높인다. 케이옥션은 르누아르 외에도 마르크 샤갈, 알렉스 카츠, 탐 웨슬만, 니콜라스 파티 등 글로벌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출품하며 “국내 컬렉터들의 해외 현대미술 수요 확대가 반영된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경매의 표지작은 유영국의 ‘Work’로, 추정가 7~12억 원이다. 1984년 제작된 이 작품은 유영국 후기 미학을 집약하며, 단순화된 산의 형태와 색면 구조가 화면 중심을 이루고, 하단의 구조적 리듬이 특징적이다. 한국 근현대 부문에서는 1950년대~1990년대의 단색화와 현대 추상이 대거 소개된다. 김환기,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이우환 등 한국 추상의 주요 작가들이 고르게 출품되며, 특히 김환기의 제자가 60여 년간 소장해온 드로잉 11점이 한꺼번에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경매에 나온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프리뷰는 13~2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열린다. 경매 참여는 케이옥션 회원 가입 후 서면·현장·전화·온라인 라이브 응찰로 가능하며, 경매 당일(23일)은 회원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참관할 수 있다. 2025/12/12
서울옥션 12월 경매, 쿠사마 20억 출격…박수근·곰리 등 114점 나온다 서울옥션은 오는 22일 오후 4시,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올해 마지막 경매인 ‘제188회 미술품 경매’를 연다. 박수근, 안토니 곰리, 김창열, 야요이 쿠사마 등 국내외 거장들의 주요 작품을 비롯해 고미술·근현대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출품된다. 출품작은 총 114점, 낮은 추정가 총액 약 79억 원 규모다. ◆최고가 출품작…쿠사마 야요이 ‘Infinity-Nets’, 시작가 20억 이번 경매의 최고가 출품작은 쿠사마 야요이의 ‘Infinity-Nets (OBBXT)’로, 시작가 20억 원에 오른다. 붉은 바탕 위에 흰색 망사 패턴이 무한히 증식하는 대표적인 ‘그물망’ 회화로, 반복과 집요함이 만들어내는 쿠사마 특유의 시각적 강도가 돋보인다. 박수근의 1960년 풍경을 담은 ‘거리'는 4억 8000만~8억 원, 김창열의 1988년 작 물방울 회화는 2억 5000만~5억원에 출품됐다.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4억 9000만~6억 5000만 원)는 2013년 제작된 ‘Small Blockworks’ 시리즈로, 실제 인물을 3D 모델링해 블록 단위로 단순화한 조형이 특징이다. 허리를 굽힌 듯한 인체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내면적 중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천경자의 ‘기쟈의 피라미드’(2500만~6000만 원)는 1978년 발간된 아프리카 기행 화문집에 수록된 작품으로, 스핑크스·피라미드·낙타 등 이국적 풍경을 작가 특유의 색감으로 밀도 있게 담아냈다. 고미술 부문에서는 ‘백자청화패랭이문육각편병’이 눈길을 끈다. 12.8×3.9×14.7cm로 육각 기형 양측면의 다람쥐 장식과 전면의 패랭이문·운문이 조형미와 회화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으로 평가된다. 추정가는 2억~3억원에 매겼다. 또한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이었으나 현존작이 드문 우관 고진승의 ‘산수도 외 7점 일괄(1600만~3000만원)이 출품돼 학술적·시장적 관심이 모인다. ◆크리스마스 시즌 팝업 스토어 운영 이번 경매 프리뷰 기간 중 연말 분위기를 더하는 팝업 스토어도 마련된다. 와인·주류 브랜드 ‘나라셀라’, 유럽식 구움과자 브랜드 ‘콘디토리 오븐’이 참여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19~21일 3일간 운영돼 관람객에게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경매에 출품된 작품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프리뷰는 서울옥션 강남센터 6층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2025/12/12
‘2025 올해의 공예상’, 오화진 섬유공예가·강재영 전시기획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장동광)은 ‘2025 올해의 공예상’ 수상자로 오화진 섬유공예가(창작부문)와 강재영 전시기획자(이론부문)를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2018년 제정돼 올해 8회를 맞은 ‘올해의 공예상’은 한국공예 발전과 공예문화산업 진흥에 기여한 개인·단체를 포상하는 제도다. 후보자 추천은 지난 8월 1일부터 9월 9일까지 대국민 공모와 전문가·유관기관 추천을 통해 이뤄졌으며, 작품성·기여도·지속성·공공성 등을 기준으로 한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자가 결정됐다. ◆창작부문 오화진 작가 섬유를 기반으로 공예·입체조형·설치, 나아가 회화·드로잉·조각 등 장르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 조형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다. 2021년부터는 문학과 시각예술을 결합한 작업 방식을 발전시키며 소설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새로운 형식을 개척했다. 최근 다수의 기획전에서 매체 간 교차를 실험하며 현대공예의 확장 가능성을 넓힌 점이 높게 평가됐다. ◆이론부문 강재영 전시기획자 ‘2023·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아 국제 공예전의 방향성을 제시해온 기획자다. 국내외 공예계 자문과 심사 활동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했으며, 전시 기획·단행본·저널 기고 등을 통해 공예담론을 활성화한 공로가 인정됐다. 올해 매개부문은 적격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2025 올해의 공예상’ 시상식은 ‘2025 제20회 공예트렌드페어’(12월 11~14일, 코엑스 A홀)에서 열린다. 창작부문 수상자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과 상금 1500만 원, 2026년 KCDF갤러리 전시 기회가 주어진다. 이론부문 수상자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 표창과 상금 500만 원을 받는다. 올해의 트로피는 지난해 창작부문 수상자 장연순 작가가 제작했다. 장동광 원장은 “올해의 공예상은 창작·연구·기획·매개 등 다양한 부문에서 한국공예에 기여한 성과를 조명해 왔다”며 “이번 수상자들의 활동이 한국공예의 미래 기반을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5/12/12
세종문화회관 옥상정원, 내년 공개…'도시의 지붕, 열린 극장' 서울시는 오랜 시간 닫혀 있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옥상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세종문화회관 옥상정원 조성 사업' 최종 당선작으로 '건축사사무소 김이홍아키텍츠+스튜디오테라'의 '도시의 지붕, 열린 극장'을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엘리베이터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동선까지 도시적 맥락을 섬세하게 풀어냈으며 건축과 조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도시에 새로운 풍경을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당선작은 광장과 세종대로 전체가 하나의 무대가 되는 '열린 극장'으로 해석하고 경복궁-세종대로 파노라마를 담아내는 새로운 도시적 전망 공간을 제안했다. 당선작 공동 대표자인 김이홍 건축가는 한국 건축계 차세대 리더를 선정하는 2018년 '젊은건축가상' 수상자다. 시는 총사업비 25억원을 투입해 내년 하반기 준공해 시민에 개방할 계획이다. 임창수 서울시 미래공간기획관은 "전문적이고 공정한 설계 공모를 통해 우수한 설계안을 선정할 수 있었다"며 "모든 시민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고 오래 머물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안전하고 품격 있는 도심 속 여가 명소로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2025/12/12
유준상이 증명한 ‘인간 예술의 존엄’…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 달은 언제나 절반만 보여준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 우리는 인간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은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결국엔 '인간이 자기 존재를 어떻게 응시하는가'를 묻는 실존적 드라마다. 1인극이라는 형식은 그의 고독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극대화하며, 어둠 속에서 천천히 빛을 길어 올리는 인간의 내면 구조를 정교하게 드러낸다. ◆무대는 비어 있으나, 그 빈 곳에서 우주가 태어난다 달 표면을 연상시키는 암석 형태의 조형물 하나. 이 단 한 덩어리가 공연 전체의 정서적 밀도를 지탱한다. 이는 단순한 미니멀리즘을 넘어선 '비워낸 미학'이다. 삭제된 것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이 발화되기 때문이다. 미술관 설치작업처럼, 그 비어 있는 공간 자체가 감정의 지형을 이룬다. 조명은 배우의 얼굴을 조각하듯 윤곽을 깎아내고, 음향은 진공 상태의 공간감을 만들어 ‘고독의 압력’을 시각화한다. 여기에 무대 전면 LED 영상이 결합해 밤하늘, 우주, 사령선 내부까지 확장된다. 이 장치는 단순한 시각 효과가 아니라, 콜린스의 내면을 외부 공간처럼 ‘실재화’하는 공간 조형 기술이다. 무대는 비어 있으나 비어 있지 않은, 역설적 우주가 된다. ◆유준상은 배우가 아니라 하나의 천체다 17년 만에 소극장 무대에 선 유준상은, 배우가 아니라 하나의 천체처럼 움직인다. 56세의 몸에서 이런 속도와 집중력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의 예술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힘’임을 증명한다. 90분 동안 그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중력을 재현한다. 목소리는 시간의 결을 만들고, 움직임은 무대의 축을 재배치하며, 노래의 호흡은 감정의 고도를 조정한다. 그는 네 명의 인물이 아니라 네 개의 자아가 한 인간 안에서 어떻게 진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관객과 가까운 소극장은 배우에게 잔인하다. 작은 숨, 작은 떨림, 작은 흔들림까지 모두 드러난다. 그러나 유준상은 그 정직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무대로 끌어올린다. 인간의 취약성, 고독, 희망. 그의 몸은 그 모든 감정의 조형물이다. 그의 공연은 ‘연기’라기보다 몸으로 빚어낸 조각적 사건에 가깝다. ◆달에 가지 못한 남자, 그러나 가장 멀리 도달한 인간 콜린스는 달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비행사로 기록되지만 이 뮤지컬은 그 결핍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재해석한다. 달의 뒤편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었던 단 한 사람. 딛지 못한 표면 대신,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어둠의 풍경’을 본 인간이기도 하다. 극 후반, 조명이 암영처럼 객석을 감싸고 음향이 진공의 떨림처럼 얇게 변하면서 콜린스가 느낀 절대적 고독이 관객에게 전이된다. 그리고 지구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순간, 그는 깨닫는다. “가장 아름다운 별은, 달 뒤편에서만 보였다.” 이 대사는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외로운 존재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보이지 않는 자리, 환호가 닿지 않는 역할. 그러나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권의 시점. 콜린스는 결핍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도달에 이른 인간이었다. ◆90분간 무대를 장악한 투혼의 미학 1인극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력의 문제다. 네 개의 캐릭터, 16곡, 손 닿을 듯 가까운 관객. 숨을 숨길 틈도, 템포를 늦출 공간도 없다. 배우는 존재하든지, 붕괴하든지 둘 중 하나다. 유준상은 그 중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히 존재했고, 그 존재로 무대를 장악했다. 그가 “이 작품은 전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말한 건 허세가 아니라 구조적 확신이다. 보편적 서사, 미니멀한 구조, 배우 중심 설계, 언어 장벽이 거의 없는 설정. 브로드웨이가 사랑하는 공식이 정확히 이 공연의 토대다. ◆가장 고독한 남자는 결국 가장 멀리 빛난다 달의 뒤편은 어둠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다시 조명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서사를 온몸으로 끌어올린 배우는 단지 훌륭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다. 유준상은 무대 위에서 ‘인간 예술의 존엄’을 증명했다.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은 배우라는 존재의 힘이 무엇인지, 무대라는 공간이 얼마나 깊은 인간성의 은유가 될 수 있는지를 다시 가르치는 공연이다. 1인극이지만 이 작품은 고독을 감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한 배우의 신체를 매개로, 그 시간을 끝까지 견디게 만든다. 그래서 이 무대는 다르다. AI 시대에도 배우라는 직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연기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 이야기다. 인간은 '근사한 실수'를 통해 빛의 길로 인도 되고,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늘 손을 흔들고 응원하는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공연은 2026년 2월 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202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