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힘을 거부한다”…노소영, 'ISEA2025' 5년 만에 귀환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함께 질문을 던지는 ‘또 하나의 시작’을 제안합니다.” ISEA2025 조직위원장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오는 23일 개막하는 제30회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30th International Symposium on Electronic Art, ISEA2025)의 의미를 이같이 밝혔다. 노 관장은 이어 “닫힘을 거부하고, 호기심으로 불확실한 상황에 머무르며, 관대한 마음으로 낯선 것들을 향해 다가가고자 한다”며, “이번 행사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열린 토론과 창작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아트 축제인 ISEA2025는 학술대회이자 페스티벌로, 오는 29일까지 서울 곳곳에서 열린다. 예술의전당, 서울대학교, 한강 등에서 강연, 전시, 퍼포먼스, 스크리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국내외 118점의 미디어 작품과 더불어 미디어아트의 현장과 담론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복합 예술 플랫폼으로 펼쳐진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ISEA는 대륙별 순환 개최라는 전통을 깨고, 이례적으로 5년 만에 대한민국을 다시 찾았다. 이번 행사는 아트센터 나비,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예술의전당이 공동주최하며, 세계 미디어아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ISEA2025의 주제는 '동동(Dong-Dong): Creators’ Universe’다. 『주역(易經)』의 구절 ‘동동왕래 붕종이사(憧憧往來 朋從爾思)’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포스트휴먼 시대의 동서양적 감각, 예술과 과학, 기술과 영성, 인간성과 기계성의 경계를 다시 사유하는 시도다. 기조연설에는 김윤철 작가(트랜스매터링),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인공지능과 예술), 뉴미디어 이론가 레브 마노비치(Artificial Aesthetics)가 참여한다. 이 외에도 AI, 인공생명, 디지털 사운드, 인간 너머, 문화유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논문 발표, 패널 토론, 아티스트 토크가 펼쳐지며, 전 세계 400여 명의 연구자와 창작자들이 참가한다.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한강 수상에서 열리는 국내 최초의 개막 퍼포먼스다. 관객이 손을 맞잡으면 강물이 빛으로 물드는 사일로랩의 작품 ‘윤슬’은,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를 통해 빛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구현한다. 남과 북, 인간과 기계, 과거와 미래의 경계가 손으로 연결되는 상징적 순간이다. 여기에 더해지는 가재발의 ‘수제천’은, 전통 궁중음악을 전자음악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정적인 흐름과 음의 여백, 농현의 미묘한 떨림을 전자사운드로 재조율해, “듣는 이 모두에게 하늘처럼 맑은 생명이 머물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ISEA2025는 행사와 더불어 관악문화재단·서초문화재단과 협력하여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역 어린이·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해외 참여자들에게 소개하며,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의 교두보 역할을 할 예정이다. 2025/05/15
"시청앞, 광화문 광장으로"…국악원, '국악사전 순회전시' 개최 국립국악원이 '2025년 국악사전 순회전시'를 오는 5월 서울광장과 6월 광화문광장 놀이마당에서 총 2회 진행한다고 15일 밝혔다. 국립국악원 국악사전은 한국 전통음악과 전통춤에 관한 정확하고 상세한 이해를 제공하는 국악분야 전문 백과사전이다. 국립국악원은 매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국악사전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획전시를 개최해 왔으며, 올해는 '약수터'라는 열린 공간과 흐르는 약수를 소재로 삼아 시민 일상 속으로 찾아가는 '유랑 전시' 방식으로 마련했다. 첫 전시는 오는 16~18일 서울야외도서관 책 읽는 서울광장에서, 다음 달 6~8일엔 광화문 놀이마당에서 열린다. 특히 6월은 올해 첫 시행하는 6월 5일 국악의 날을 기념하는 의미로 '국악 주간' 전시 마당에서 진행된다. 전시는 체험형 콘텐츠를 중심으로 3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섹션 1. 흥타령! 득음의 샘'에서는 '국악사전' 속 수천 개의 표제어 중 '득음'을 주제로 한 용어들을 리듬감 있게 풀어낸다. 국악의 역사와 용어를 체험과 함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마련했다. '섹션 2. 장끼타령! 꾸밈의 터'에서는 나만의 국악 굿즈를 만드는 체험존. '나만의 키링 만들기', '나만의 득음수 만들기', '흥타령 책갈피' 등 직접 만들고 소장할 수 있는 굿즈가 시민들의 창의력을 자극한다. 마지막 '섹션 3. 비단타령! 국악 네 컷'에서는 다채로운 국악 표제어가 포토존의 배경이 되는 '네 컷 포토월'을 마련해 일상 속 국악을 특별한 추억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국악사전은 그간 '궁중·풍류 편', ‘민속 편’, ‘국악사·이론 편’을 공개할 때마다 홍보·체험용 전시를 열어 대중들과 소통해 왔다.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명현 실장 직무대리는 "국악사전 순회전시 '흥타령 약수터'는 생활 속에서 즐거운 방식으로 국악을 재발견하는 특별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생소할 수 있는 국악용어들이 친근해지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국립국악원 및 국악사전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5/05/15
강재훈과 23명의 ‘가족' 사진전…브레송, 19일 개막 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사진전이 열린다.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갤러리 브레송은 오는 19일부터 28일까지 기획전 ‘가족/Family’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사진가 강재훈과 함께 사진을 공부해온 23명의 작가가 참여해, 각자가 포착한 가족의 얼굴과 시간을 공유한다.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초고령사회 진입이라는 인구 구조의 큰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고 이번 전시는 그 의미를 다시 묻는다. 단순한 인물 사진을 넘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쌓인 기억과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2025/05/15
'쉬포르 쉬르파스', 대구보건대서 ‘미술혁명’과 ‘교육혁명’을 껴안다 1960~70년대 프랑스 회화 해체 운동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Surfaces)’를 이끈 작가 13인의 작품이 국내 최초로 전원 참여한 전시가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에서 막을 올렸다. 회화의 틀을 해체하고, 물성과 행위로 회화를 다시 사유했던 이들의 급진적 실험은 단순한 미술사 복원을 넘어선다. 지금 한국 사회의 수도권 중심 구조, 그리고 지방 사립대학이 마주한 현실과 교차하면서 ‘예술’과 ‘교육’ 두 축의 혁명을 함께 껴안는다. 인당뮤지엄이 15일부터 선보이는 '쉬포르/쉬르파스'전은 회화의 구조와 의미를 근본부터 해체하고 재정의한 이들의 철학을, 한국 사회와 예술 교육의 현장으로 소환한다. ◆쉬포르/쉬르파스, 지방 대학이 껴안은 시대의 질문 “프랑스 현대미술사에서 쉬포르 쉬르파스 운동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14일 대구 인당뮤지엄에서 만난 김정 관장은 “쉬포르/쉬르파스의 13인 작가 전원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마주한 것은 인당뮤지엄에서 이 전시를 본격 추진하고 나서야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프랑스의 사회·정치적 배경과 오늘날 수도권 편중 구조 속 지방 사립대학의 현실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며, “쉬포르/쉬르파스가 제도와 권력 중심부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오늘날 지방 대학의 예술교육도 비슷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대학이라는 교육의 장에서 예술과 사회를 함께 질문하는 자리가 바로 이 전시라는 설명이다. 또한 “같은 시기 1970년대 대구에서도 회화의 경직성을 탈피하려는 다양한 실험들이 있었다”며, “지구 반대편에서 유사한 방식의 미술적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문화의 필연성이며,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이 전시를 여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쉬포르 쉬르파스…회화를 부수고 다시 세우다 1960년대 말 프랑스는 알제리 전쟁과 68혁명으로 요동치던 시기였다. 쉬포르/쉬르파스는 회화의 전통적인 틀을 해체하고, 재료와 행위, 물성으로 회화를 다시 사유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지지체Supports와 표면Surfaces’을 뜻하는 이 명칭처럼, 이들은 캔버스를 스트레처에서 해방시키고 염색, 접기, 매듭 등 수공예 기법을 통해 회화의 형식을 변형시켰다. 벽에 고정되지 않고 바닥에 놓이거나 구겨지고 접히며, 회화는 더 이상 의미를 전달하는 창이 아닌 존재 자체가 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건너온 작품들은 전통적인 화면에서 탈주한다. 틀 없는 캔버스가 바닥에 펼쳐졌고, 말리거나 염색되어 벽에 걸렸다. 도장, 실, 철조망, 폐유, 유리창 조각, 신문지, 편지 봉투까지 일상적 오브제가 재료로 동원됐다. 작가들은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리려 했다. 그러나 결국 그 그림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의도를 넘어선 흔적들- '그 자체가 회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1970년대 실험미술과의 대화 이번 전시는 단지 프랑스 회화사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김정 관장은 “전체 전시 구조가 ‘지지체와 표면’을 해체하고 그 결과물을 회화로 다시 사유하려는 시리즈”라며, “한국 1970년대 대구에서의 실험미술 역시 비슷한 사유와 비평의 맥락에서 닿아 있다”고 봤다. 한국 역시 당시 정치적 억압과 검열 속에서 제도 밖의 미술가들이 언어, 공간, 매체를 해체하며 시대에 저항했다. 이강소, 김구림, 정강자, 이우환 등으로 대표되는 실험세대는 ‘회화 아닌 회화’, ‘미술 아닌 미술’로 기존 미술 언어에 질문을 던졌다. 쉬포르/쉬르파스의 해체적 감각과 물성 중심의 실험은 이들과도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예술은 패배했다”는 선언 이후, 다시 회화를 묻는다 “회화의 해체를 통해 회화를 보여주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 내한한 작가 노엘 돌라(Noël Dolla)는 당시 그룹의 막내였다. 80세가 된 그는 50년 만에 이국땅에서 쉬포르 쉬르파스의 정신과 시대성을 증언했다. 그는 한국 기자들을 만나 “예술이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면 지금의 세계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예술은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말했다. 이상을 품었던 예술이 현실 앞에서 무력해졌음을 인정한 고백이었다. “예술은 의식과 믿음을 전달하는 창구가 되어야 하며, 관람객이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한 시각과 신념을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회의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앞으로만 나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그것이 예술의 희망이자 차세대 지성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침대 시트, 걸레, 손수건 등 여성성을 드러내는 재료를 작업에 사용해왔다. “단지 ‘소재’가 아니라, 여성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재료를 통해 기호 없이도 상징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틀을 넘어선 회화를 주장했다. “우리는 단순히 틀(스트레처)에서 해방된 회화를 한 게 아닙니다. 벽, 공간, 재료, 그 모든 요소들과의 상호작용까지 포함해 회화라는 개념을 해체했습니다.” 인당뮤지엄 김정 관장은 “그간 한국에서는 쉬포르 쉬르파스 운동을 대표하는 일부 작가의 개인전이나 작품 소장 전시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바 있지만 운동을 주도한 프랑스 13인의 작가 전원이 참여하는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최초"라며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예술이 시대와 어떻게 호흡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8월 13일까지. 관람은 무료. ◆쉬포르 쉬르파스 13인 참여 작가 앙드레 피에르 아르날(André-Pierre Arnal), 뱅상 비올레스(Vincent Bioulès), 피에르 뷔라글리오(Pierre Buraglio), 루이 칸(Louis Cane), 마크 드바드(Marc Devade), 노엘 돌라(Noël Dolla), 다니엘 드죄즈(Daniel Dezeuze), 토니 그랑(Toni Grand), 베르나르 파제스(Bernard Pagès), 장 피에르 팽스망(Jean-Pierre Pincemin), 파트릭 세투르(Patrick Saytour), 앙드레 발랑시(André Valensi),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 등이다. 이 중 일부는 작고했으며, 남은 생애 동안에도 일관된 실험 정신을 유지한 이들의 삶 자체가 쉬포르 쉬르파스의 연장선이라 평가받고 있다. ◆인당뮤지엄은? 대구 북구 태전동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은 인당(仁堂) 김윤기 박사가 수집해 박물관에 기증한 장롱과 궤 203점을 비롯해 조선시대 목가구와 유물 5000여 점을 바탕으로 2007년 개관했다. 대구보건대학교 캠퍼스 1만2561㎡ 부지에 녹슨 철판이 감싸 안고 있는 압도적인 초현대식 건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종규 교수의 설계로 세워졌다. 제1전시실부터 제5전시실까지 총 6실로 이뤄져 있으며, 개관 이래 41회의 전시를 기획·후원했다. 방탄소년단 RM이 2021년 ‘이배 작가 기획 초대전’을 관람하며 ‘RM 성지’로도 알려졌다. 관람객은 매년 1만 명 이상이다. 2025/05/14
정병국 "한국 문화예술 위상 높아져 국제교류에 중점"…예술위 '아르코국제주간' "한국의 문화예술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 달 평균 한, 두 나라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방문합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맞춰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에' 맞춰 국제교류 사업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위원장은 14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아르코국제주간' 기자간담회에서 영국과 스웨덴, 홍콩 등지에서 한국문화를 벤치마킹하는 상황을 예로 들며 국제협력 사업을 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정병국 위원장은 아르코의 글로벌 비전과 향후 중점적으로 추진할 국제협력을 소개했다. 정 위원장은 '한국예술과 세계를 잇다'를 비전으로 ▲제10차 문화예술세계총회 개최 ▲제4회 에이프캠프 운영 ▲2025 베니스비엔날레 제19회 국제 건축전 한국관 전시 ▲아르코 예술창작실 운영 ▲해외 기관과의 파트너십 강화 등을 발표했다. 우선 아르코는 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문화예술세계총회, 에이프캠프 등을 진행하는 '아르코국제주간'을 개최한다. 27일부터 열리는 문화예술세계총회는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정부관계자, 연구자, 예술인, 예술기관 단체장들이 함께 모여서 문화예술의 방향을 논하는 자리다. 이번 총회에는 80여 개국에서 약 400명이 참석한다. 정 위원장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인공지능·기후위기 문제, 지역공동체 회복 등 문화예술인이 공동으로 인류와 직면하는 문제점들 다룬다"며 "여기서 나온 여러 담론은 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올해 하반기에 스페인에서 개최될 예정인 유네스코 세계 회의 '몬디아컬트'에서 이 담론을 근거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더 나아가서 정상들이 참석하는 유엔의 향후 지속가능발전목표(POST-SDGs)에 안건으로 올라가서 함께 논의될 예정"이라며 "올해 중요한 문화예술 아젠다가 한국으로부터 시작해서 발주된다는 건 상당한 의미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국내 연사로는 김아영 아티스트와 정세랑 작가,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등이 연단에 오른다. 국외 연사로는 게어프리트 슈토커 미디어 아티스트, 마이클 러닝 울프 인공지능 윤리학자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에이프캠프(APE CAMP)는 아르코가 2022년부터 개최해 온 예술·기술 융복합 협업 네트워크 구축 지원 프로그램이다. 24일부터 예정된 행사는 이번이 4회차다. 예술인들하고 엔지니어하고 만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했다는 정 위원장은 "1~2회까지는 국내에 젊은 예술인들만 대상으로 했는데 작년부터 시범적으로 세계에 오픈콜(공개모집)했고 올해는 전면적으로 오픈콜했다"며 "국내 65명, 외국에서 오는 사람이 35명 등 100명을 선발했다"고 전했다. 지난 10일부터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 전시에 대해선 "올해는 국가관 전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난 30년 돌아보는 건축 포럼을 현지에서 개최함으로써 세계 각국의 건축가에게 주목받게 됐다"며 "오늘날 기후변화 더불어 새롭게 조망 받는 한국관, 국가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시각예술 분야의 창작과 교류를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 '아르코 예술창작실'도 운영을 시작하며 해외 레지던시 사업도 확장해 운영할 방침이다. 정 위원장은 특히 해외 레지던스 사업에 대해 "올해는 대폭 늘려서 23군데로 아웃바운드를 확장했다"면서 "'한국에 와서 함께 작업했으면 좋겠다'가 굉장히 많다. 이를 수용해서 올해부터 인바운드 레지던시 사업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공모해서 해외 6명, 국내 4명을 선발해 이번 달부터 전반기, 후반기로 입주해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또 "공간 제공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레지던스가 끝나고 한국에서 전시할 수 있게끔 전시장을 마련했다"며 "한국에서 전개되는 프리즈하고 협약을 맺어서 전시 공간을 확보했고 이 레지던스 사업에 선발된 사람들의 작품을 별도로 전시한다"고 덧붙였다. 2025/05/14
전광영, 천연 염료로 물들인 '타임 블러섬'…페로탕서울 개인전 한지를 감싼 삼각형 조각 수백 개가 촘촘히 화면을 메운다. 마치 별의 파편 같기도 하고, 고서의 기억이 응축된 하나의 우주 같기도 하다. 일명 '한약 봉지' 작가로 유명한 전광영(81)이 페로탕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타임 블러섬(Time Blossom)'을 주제로 15일부터 7월 5일까지 선보인다. 그의 대표 시리즈 '집합'과 함께, 신작 '품' 연작을 처음 공개한다. 전광영은 한지를 감싸 조각화한 삼각형 구조를 반복 배치해 회화와 조각, 동양과 서양, 기억과 역사 사이를 넘나들어왔다. 이 ‘조밀한 축적’은 작가에게 있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시간과 존재에 대한 사유를 담는 방식이다. 수백 개의 삼각형은 각각 하나의 단위 기억이며, 그것들이 응축된 화면은 일종의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되는 지점은 색이다. 전광영은 감물, 쑥, 먹, 인디고, 울금, 홍화, 석류 껍질 등 자연에서 채취한 천연 염료로 삼각형 조각을 물들인다. 이 색들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감정의 층위를 조율하는 정서적 시간으로 작동한다. 파스텔 톤의 색조는 여린 감정과 부드러운 시간의 결을, 강렬한 색조는 기억의 응축과 정서의 깊이를 시각화한다. 작가에게 색은 말 그대로 시간의 언어다. 전광영은 “색은 감정의 기록이고, 손으로 시간을 배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붓이 아니라 손으로 조각을 감싸고 붙이는 작업은 회화라기보다 조형적 수행, 또는 ‘시간을 다루는 행위’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작 '품'은 이전의 밀도 높은 조각적 구성에서 벗어나, 고요한 평면성과 유기적 흐름을 품는다. ‘감싸안는다’는 뜻처럼, 이 작업은 감정의 충돌이 아닌 정서의 수용을 제안한다. 조용히 포개어진 조각들은 마치 시간 그 자체가 응결된 장소처럼 화면에 머문다. 이 시리즈는 관람자가 감정의 흐름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장소를 만든다. 전광영은 1995년부터 '집합'연작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다.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한약방에서 보았던 약봉지의 한지가 작업의 모티프로 남았고, 미국 유학 시절 추상표현주의를 접한 이후 이를 동양적 사유와 재료로 전환시켜왔다. 고서의 파편을 감싸는 그의 행위는 기억의 축적이자 존재의 흔적이며, 동시에 미학적 정돈을 향한 손의 노동이다. 전광영의 작업은 물성과 사유, 동양적 시간관과 현대 조형 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소박한 재료를 거대한 벽면 설치 작업이나, 입체 조형물로 변모시키며, 자연의 형상과 역사의 흔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타임 블러섬'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전광영의 작업은 이제 ‘시간이 피어난다’는 감각을 조용히 선사한다. 소박한 한지가 이토록 심오한 우주를 품을 수 있음을, 그리고 감정의 결이 색과 형상 속에서 천천히 자라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광영 작가는? 1944년 홍천 출생으로 1968년 서울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 학사를,1971년 필라델피아 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도쿄 모리 아트 센터 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과천, 모스크바 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그의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홍콩 M+뮤지엄, 호주 국립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고, 2009년에는 제41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현대 미술계에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25/05/14
‘2025 작가미술장터’ 개막…서울·세종·속초·안동서 10월까지 국내 대표 미술 직거래 플랫폼 ‘작가미술장터’가 올해도 다시 문을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가 주최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장호)가 주관하는 ‘2025 작가미술장터’가 5월 개막해 전국 각지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된다. 작가미술장터는 2015년 시작된 이래 누적 관람객 134만 명, 참여 작가 1만 2000여 명을 기록하며, 합리적인 가격의 미술품 유통을 통해 예술 향유 기회를 넓혀온 민관 협력 사업이다. 특히 300만 원 이하의 작품 거래를 중심으로, 신진·지역 작가와 시민, 컬렉터 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자리를 마련해오고 있다. 올해는 서울, 세종, 속초, 안동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다양한 장터에 주목할 만하다. 5월에는 ▲스페셜아트의 ‘원픽마켓’(14일 개막)을 시작으로, ▲프린트아트리서치센터의 ‘마켓에이피 2025: 컬렉터 살롱’이 미술시장 문을 연다. 이어 6월에는 ▲아트플러스엑스의 ‘아트플러스엑스’, ▲무소속컴퍼니의 ‘2025 bac 속초아트페어’, ▲미학관의 ‘드로잉그로잉(Drawing-Growing)’, ▲예술고래상회의 ‘PRPT(PrompSet)’까지 총 네 개의 장터가 연달아 개최된다. 8월에는 ▲조선일보사의 ‘아시아프(ASYAAF)’, 9월에는 ▲디자인에보의 ‘고택 아트 페스타(GAF)’가 마무리를 장식할 예정이다. 올해 행사는 단순한 작품 판매를 넘어, 컬렉터 프로그램, 작가와의 대화, 큐레이션 전시 등 참여형 콘텐츠를 대폭 강화해 보다 입체적인 미술 유통 환경을 조성한다는 데에 방점을 둔다. 신진 작가들이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판매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시민들이 직접 작품을 만나고 소장할 수 있는 접점을 다채롭게 마련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김장호 대표는 “작가미술장터는 관람객에게는 예술 작품을 직접 만나고 소장할 수 있는 열린 기회를 제공하고, 작가에게는 창작 활동과 시장 진입의 실질적인 발판이 되는 유통 채널”이라며 “지역 고유의 문화 자산과 작가들의 창의성이 어우러져 지속가능한 미술 생태계로 확장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작가미술장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공식 인스타그램 채널(www.instagram.com/vamark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5/05/14
“더 헐렁하게 사랑하든지”…말년의 슬픔을 껴안는 '이사라 시집' “기억이 먼저 사라지기 전에 / 우리 / 헐렁하게 더 헐렁하게 사랑하든지.” 시집의 제목이자 마지막 시 '텅 빈 주머니처럼 헐렁하게'의 결말에서, 이사라 시인은 삶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었던 감정 하나를 꺼내든다. 쪼그라든 뇌, 남은 기억, 그리고 더 이상 메울 수 없는 상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말한다. “살아남은 자가 아니라 / 살아가고 있는 자인데.” 시집 '더 헐렁하게 사랑하든지'(출판사 강)는 198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래 40여 년을 시와 함께해온 이사라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그간 '미학적 절제'와 '억제된 슬픔'의 대명사로 불려온 시인이 이번엔 한껏 자신을 헐겁게 풀어낸다. 누군가의 유언을 되새기며, 떠나간 이들을 조용히 배웅하며, 그리고 마침내 자신조차 “사라질 것”이라 고백하는 이사라의 시편은 삶의 말미에서 도달한 진실의 어투를 품는다. 특히 「안에서 만져지는 몽글몽글한 슬픔」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 나에게 미안해 // 겨우겨우 살아내서 미안해.” 감정을 절제하던 예전의 시인이라면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을 문장이지만, 이번 시집에서 이사라는 그 슬픔을 ‘만지고 또 만지’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문학이 나아가는 방향 중 하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예민해지는 슬픔의 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를 ‘말년의 양식(late style)’이라 불렀다. 삶의 조화와 안정 대신, 비타협과 불협, 뜻밖의 감정과 구조로 이뤄진 예술적 시선 말이다. 이사라의 이번 시집은 그 ‘말년의 양식’이 어떻게 우리말 시 속에서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또한 이번 시집은 시인이 이전에 펴낸 '시간이 지나간 시간', '가족박물관',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등과도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간다. 선형적인 시간 인식에서 벗어나, 파편화된 기억과 교차하는 감정들이 현재에 겹쳐지는 방식은 여전히 이사라의 고유한 시적 시간감각이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 흐르는 감정의 어조는 확실히 달라졌다. “너와 사는 동안 / 순간순간 / 울컥했다”고 말하고, “그게 다 사랑 때문이야”라고 격정적으로 토로하는 그는 이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로 있는 시인 이사라의 동생은 서울 이화익갤러리 대표 이화익 큐레이터다. 시집의 표지 그림은 홍승혜 작품이다. 동생이 미술을 통해 형상화하는 ‘빛’과 ‘기억’이 있다면, 언니 이사라는 시로 그것들을 붙잡는다. 시인이 이번 시집에 붙인 제목은, 어쩌면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자매가 공명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꽉 조이지 않고, 느슨하게, 그러나 뜨겁게 사랑하기. 하나둘 떠나고 익숙한 것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그는 말한다. “이 틈을 메우려 애쓰며 나의 몸을 소진하지 말자.” 그러니 더 헐렁하게. 그리고 조금 더 몽글몽글하게. 2025/05/13
'박지성 장모' 오명희, 자개의 빛으로 우주를 짓다[문화人터뷰] "내 그림은 별빛처럼 잠깐 반짝이지만, 우주의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고요한 블랙홀, 눈부신 은하계, 그 사이의 무한한 공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여정이다. 이 작품들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독과 경외감,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희망의 파편을 담고 있다" 13일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만난 오명희(69)화백은 천상 화가였다. "작업은 제 구원"이라며 "세상에 ‘오명희’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부터, 저는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 말처럼 밀도가 높은 작품은 그의 영혼을 갈아 넣은 흔적이다. 원형 캔버스 위에 펼쳐진 옻칠과 자개, 금박의 화면은 강렬한 생기를 품고 있다. 자개 조각들은 밤하늘의 별무리처럼 흩어지고, 그 중심에서 퍼져 나오는 정제된 에너지에 이끌리듯 화면에 빠져들게 한다. 서울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피어나는 빛, 봄의 숨결 Aether in Bloom'은 ‘에테르(Aether)’ 시리즈와 ‘제니스(Zenith)’ 시리즈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전시 작품과 작업 세계관을 들어봤다. ◆이번 개인전 ‘피어나는 빛, 봄의 숨결’은 어떤 영감에서 시작되었나요? 처음엔 자연을 그렸어요. 스카프가 날아가는 장면을 그리다가, 어느 순간 그 스카프가 새가 됐죠. 그런 변화처럼 제 작업도 확장됐어요. 2022년 베니스에서에 전시했을 때, 한국 여성들의 삶-특히 첩 이야기, 달 이야기, 가족 사진 같은 것들이 생각났어요. 당시 유럽문화센터(ECC)의 초청으로 베니스 팔라조 모라에서 열린 특별전에 참여했는데, 한국전쟁 종식 이후 여성 해방기의 집단적 기억을 주제로 한 작업을 선보였죠. (이 전시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은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제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괴로워하셨어요. 어느 날 밤, 달이 유난히 밝았는데 어머니가 우물가에 계셨어요. 뭔가 술렁이는 분위기였고, 이후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 달 밤의 감정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벙어리 처녀를 아버지 방에 들인 날이었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 기억이 제 작업의 발단이 됐어요. ◆대표작 ‘에테르(Aether)’ 시리즈에는 어떤 상징과 서사가 담겼나요? 우리 집 가족사진 속에 큰할머니와 작은할머니, 두 명의 할머니가 나란히 있는 걸 보면서 흥미를 느꼈어요. 여성의 삶을 이야기로 풀고 싶었고, 나혜석 같은 신여성에서 전통적인 어머니상, 마릴린 먼로까지 시대와 정체성이 다른 여성들을 작업 속에 담았죠. 마릴린 먼로가 6.25 전쟁 당시 위문공연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눈 오는 날 끈나시를 입고 열심히 공연을 했대요. 따뜻한 봄 같은 순간이죠. 자서전을 보면 무대 공포증도 있었고, 백치미로 몰려서 괴로움도 많았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걸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참 감동이었어요. 제 그림은 화사하지만, 예쁘다고만 보면 공감 못 해요. 그 안엔 삶의 애증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있어요. 나이로비 국립뮤지엄에서 기생을 주제로 작업한 것도 그런 맥락이죠. 돌출된 달을 표현하고 싶어 우리 전통 노래인 강강수월래를 떠올렸어요. 강강수월래 노래를 하듯 자개를 빙빙 돌려서 작업했죠. 부조 형태의 원형 바탕이 된 그곳에 달도 있고 빛이 있죠. 최근엔 자연을 직접 손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옻칠을 장갑 낀 손으로 그리기도 해요. 이제 제 작업은 달에도 스톤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우주의 광물질을 자개와 색으로 구현했어요. 설악산 비룡폭포에서 정기를 받은 느낌, 산청의 바위에서 에너지를 받는다는 신념 같은 것도 제 작업에 녹아 있어요. ◆전통 재료인 옻칠, 자개, 금박을 회화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공예적인 요소를 본격적으로 끌어들인 건 2008년부터예요. 자개는 어릴 때부터 집에 자개 장이 있어 친숙했고, 실은 제가 화려한 것을 좋아해요. 아름답고 공들이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데, 근래에 들어 공예적인 것을 끌어들인 것을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한국적이고 여성적이고 저와 딱 맞는 작업이죠. ◆작업 과정에 있어 어려운 점이나 시스템 구축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요? 옻칠장은 따로 없어서 말리는 게 정말 고역이에요. 말리다가 미칠 때도 있어요(웃음). 도와주는 제자가 두 명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같이 해요. 이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에요. 직업병처럼 어깨가 아파서 시술도 다섯 번이나 받았어요. 하지만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에 자부심 있어요. 세계적으로 작업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크고, 도와주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쿠사마 야요이 같은 시스템이 부러워요. 작가로서 슬럼프도 있었어요. 학교(수원대학 미술대학 교수) 가야지, 애 셋 키워야지, 그림도 그려야지… 시간이 없어서 화랑에서 작품 달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철렁했어요. 한때는 팔리는 게 싫기도 했고요. 그래서 일본 동경예술대학 객원교수로 가면서 작업세계가 달라지는 계기가 됐어요. 살랑이는 커텐처럼 내리는 벗꽃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때 금박도 배웠지요. 일본에서 시간을 가지고 좀 쉬고, 다시 힘을 얻었죠. 애들 기를 때 너무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짬을 내 15분 동안 집중해서 그리니까 많이 그리더라고요. 그래서 전 학생들한테도 “15분만 집중하면 많이 그릴 수 있다”고 말해요. 정말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작품에는 기억과 시간의 층위, 존재에 대한 철학이 느껴집니다. 저는 제 나름의 달을 그려요. 그러다 보면 별도 그리고 스톤도 그리게 돼요. 거기서 오는 기운이 있어요. 우주에서 오는 좋은 에너지라고 할까요. 그게 ‘우주적 시간’이에요. 오로라처럼 흔한 이미지가 아니라, 훨씬 깊은 감각이죠. 남편과 함께 설악산에 자주 가요. 눈이 와도 가요. 그 산에 어떤 에너지가 있어요. 그걸 느끼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그 감각이 작업에도 들어가는 거죠. ◆박지성 선수의 장모님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작가로서 부담은 없으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작가로서는 불편해요. 물론 '박지성 장모'라는 수식어 때문에 언론에서 다루기도 하지만 말을 더 조심하게 되죠. 저는 현실감도 없고, 계산이 없는 사람이에요. 박서방이 와도 밥 차리기 전까지는 작업을 해요(웃음). 애틋하게 사랑하지만 돌봄은 잘 못 해요. 그래서 미안함도 항상 있고요. 우리 사위는 표현을 잘 안 해요. 그런데 제 작품 중에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고 딸을 통해 들었는데 기분이 좋았어요. ◆앞으로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주제나 방향이 있다면요? 저는 몸집은 작지만 스케일이 있는 큰 작가예요. 더 큰 작업, 입체로 확장하고 싶어요. 지금은 '스톤'에 꽂혀 있어요. 그냥 돌이 아니라, 오만에서 봤던 반짝이는 광물질, 그걸 그리고 싶어요. 그림이 없었다면 삶이 버거웠을 거예요. 어릴 땐 만화를 그리느라 밤을 새웠고, 블라우스가 새까매질 정도로 그림을 그렸어요. 어떤 선생님이 저한테 “그림 안 그렸으면 무당이 됐을 사람”이라고 했는데, 진짜 맞는 말 같아요. 스카프가 날아가고, 구름 위에서 까르르 웃고, 신명나게 춤추는 그 장면. 그게 뭔지 알 것 같거든요. 한편 이화익갤러리와 오명희 화백과의 인연은 2024년 아부다비 아트에 참여하면서다. 길이 4m정도의 대형 작품을 포함한 3-4점의 오 화백 작품은 모두 판매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여류작가로서 정체성을 갖고 K아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이제 세계에서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억과 우주의 에너지’를 동시에 껴안는 화면, 정제된 공예적 노동과 깊은 감정선이 교차하는 회화 앞에서 관람자는 눈앞에 펼쳐지는 ‘빛의 우주’를 천천히 항해하게 된다. 전시는 31일까지. 2025/05/13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은…"조선시대 아닌 '지금, 대한민국' 이야기" "조선시대가 아닌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2025 오사카·간사이 세계 엑스포 한국관 전시 총감독을 맡은 고주원 서울예술대 교수는 한국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과거가 아닌, 현재의 대한민국'을 꼽았다. 고 감독은 13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오사카 엑스포에서 취재진을 만나 "한국이 한복과 고궁, 국악으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라 가장 동시대적이고 트렌디한 우리의 정서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오사카 엑스포 개막과 함께 첫선을 보인 한국관의 외부 벽면은 가로 27m, 세로 10m의 대형 미디어파사드로 꾸며져 있다. 이를 통해 '당신이 꿈꾸는 한국'을 주제로 서울 경복궁과 전주 한옥마을, 부산 광안대교, 제주 성산일출봉 등의 영상으로 한국을 소개한다. 내부 로비에서는 한국의 자연과 야경, 체험을 다룬 영상을 선보인다. 한국관 건물은 연면적 1994㎡, 전시면적 1044㎡ 규모로 부지에 비해 건물 자체가 크진 않다. 대신 전시 공간을 3개로 크게 나눠 동시 수용 인원을 늘렸다. 총 관람 시간은 20분으로, 100명이 동시에 입장해 1, 2, 3관을 순차적으로 함께 관람하게 된다. 고 감독은 "한국을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첨단 기술을 문화 역량으로 표현하는 게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그 안에 기술 요소들이 많지만 사람들이 정서적인 기술로 느끼도록 하는 게 이번 전시 연출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1관은 '소리와 빛을 모아 모두가 하나되어'다. 관람객들은 전시관에 입장하기 전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게 된다. '행복', '건강', '돈' 등 관람객이 내놓은 대답들은 녹음이 되고, 이렇게 모인 목소리는 인공지능(AI)을 통해 음악으로 완성, 1관에서 40개의 스피커를 통해 나온다. 느리게 시작됐던 음악은 점점 더 빨라지고, 조명도 함께 맞물리며 화려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관람객들이 입장할 때마다 녹음을 하고 전시가 시작되기 때문에 전시마다 이 목소리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황폐화된 도시에서 생명의 회복으로'를 주제로 하는 2관은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콘크리트와 일상에서 활용되던 물품들이 전시됐다. 2관에서도 체험이 이뤄진다. 사람의 키만 한 파이프에 관람객이 숨을 불어 넣으면 수소연료전지를 통한 화학 반응으로 전기 에너지가 생산되고 그 잔여물로 천장에서 비눗방울 같은 거품이 떨어진다. 고 감독은 "한국을 나타내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콘크리트 사회'가 있다"며 "2관은 콘크리트 사회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씨앗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관은 '같은 시간 속의 선율'로 2040년 미래 한국에 사는 한 여고생과 할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음악극을 3면 대형 멀티스크린으로 보여준다. 케이팝과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연예인은 출연하지 않는다. 고 감독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연결해주는 소재로 케이팝을 사용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한국관'하면 케이팝을 연상한다. 그런데 또 유명인을 출연하게 되면 국가관이 연예인에게 의존하게 되지 않나. 그래서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출연진을 선발해 구성했다"고 말했다. 한국관을 찾는 관람객 중 약 70%는 일본인이고, 나머지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로 이뤄지고 있다. 하루 평균 1만2000명이 한국관을 방문하고 있어, 목표로 잡은 총 관람객 120만명을 쉽게 넘어설 전망이다. 고 감독은 국제 무대에서 '현재'의 한국이 가진 매력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이 뭔가' 하면 대한민국을 이야기하지 않고 조선시대를 이야기한다"고 지적한 고 감독은 "'전통'을 풀이하면서 더 이상 조선시대가 아닌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도 대한민국을 상징화하거나 키워드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늘 지금 유행하는 문화상품인 케이팝이나 드라마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을 계기로 한국관이 한복과 고궁, 국악으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라 지금의 가장 동시대적이고 트렌디하게 가고 있는 우리의 정서를 전 세계가 다 공유하는 이미지로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2025/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