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건용은 이건용”…50년이 지나도 파격, 퍼포먼스의 현재형 흰 백묵으로 원을 삥 둘러 그었다. 반듯하게 서서 원의 금을 밟고,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딱 펴 ‘저기’를 가리켰다. 다시 원 안으로 들어가 ‘여기’. 원 밖으로 나와 손가락을 뒤로 돌려 ‘거기’. 이내 원을 차례차례 밟으며 “어디, 어디, 어디”를 중얼거리듯 외치고, 원의 둘레를 돌다 사라졌다. 퍼포먼스는 끝났지만 관객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행위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자리를 지켰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반응은 같았다. “이게 뭐지?”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1975년 퍼포먼스 ‘장소의 논리’를 재연한 이건용(84)은 여전히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해맑았다. 그는 “원 하나를 그은 것이 정확한 하나의 설정”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설정이 만들어내는 사건성이다. 정해진 중심을 향해 수렴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을 밟으면서 계속 이동”하는 방식. 그 이동 속에서 ‘여기’와 ‘거기’는 고정된 좌표가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와 몸의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는 관계어가 된다. “거창한 걸 올리는 게 아니라, 흔적만 만들어 장소를 설정했어요.” 이건용의 퍼포먼스는 즉흥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지시문과 수행 규칙을 갖춘 ‘Event Logic(논리적 사건)’의 체계다. 그는 퍼포먼스 이전에 작가 노트를 통해 시나리오를 짜고, 지시문을 남겼다. 사진과 영상, 메모는 회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행위 자체’를 증명하는 아카이브가 된다. 그가 말하는 ‘정확성’은 미술의 기술이 아니라 언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언어의 정확성과 소통의 불가능성을 혼자 고민했다고 회고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문장을 붙들었던 시간도 떠올렸다. “나는 그전부터 혼자 공부했어요. 언어의 정확성에 대해서.” 그러나 그는 동시에 과잉 해석을 경계한다. ‘원’에 지나친 상징과 거대한 철학을 덧씌우는 순간, 작업은 끝없이 부풀어 오르고, 그때부터 ‘정확한 설정’은 흐려진다는 것이다. “원을 그어놓고 그 이상의 상상이나 철학을 붙이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럼에도 그의 퍼포먼스는 때때로 누군가의 사유를 ‘리셋’시켰다. 한 연구자는 이건용의 ‘여기·거기’ 퍼포먼스를 본 뒤 “쇼크를 받았고 감동을 받았다”며 “이제까지 쓴 글을 다 없애버리고 새로 써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몇 년 뒤 우연히 길에서 그를 붙잡은 그 관객은 “그 이후 많은 글을 썼다”고 고백했다. 이름도 주소도 남지 않았지만, 사건은 남았다. 이건용의 ‘정확한 행위’는 누군가의 언어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하지만 1970년대 한국에서 그 ‘정확한 행위’는 종종 위험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 사건성은 미학의 차원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공기를 통과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은밀한 저항처럼 읽힌 그의 작업은 정권의 탄압 대상이 됐다. 그는 1970년대 경복궁 인근에서 ‘폭발물 의심’을 받으며 작업 해체를 요구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미술교사 시절,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려던 퍼포먼스가 강제로 중단됐다. “청와대와 가깝기 때문에 폭발물 장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가 작업 전체를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목사 아들이고, 공산주의자도 아니며 청와대를 폭파하려 한 적도 없다”며 당시의 억울함과 황당함을 전했다. 이후 ‘이리 오너라’ 등 퍼포먼스를 이유로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돼 고문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10년간 다리를 절었다고 말했다. 감시 또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앞으로 이벤트 퍼포먼스를 할 수 없다”는 취지의 공문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젊은 동료들을 불러 그 공문을 불태워버렸다는 일화도 덧붙였다. 국립군산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할 수 있었던 것조차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역설적으로 “세상이 잘 이해해주지 않았던 순간이 오히려 좋았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그대로 다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면, 오히려 새로운 일을 할 계기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이건용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주요 인물이자, 한국 전위예술 그룹 ST(Space and Time)의 창립 멤버로 활동해 온 한국 행위미술의 대표 작가다. 1975년 스스로 ‘이벤트(Event)’라 명명한 퍼포먼스를 본격적으로 전개하며 ‘장소의 논리’(1975), ‘이어진 삶’(1977), ‘달팽이 걸음’(1979) 등 한국 행위미술의 지형을 형성한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화면이 생성되는 ‘바디스케이프(Bodyscape)’ 연작은 이러한 방법론을 회화로 확장한 대표작이다. 그는 캔버스 앞에서 서서 팔을 뒤로 돌려 붓질하는 방식으로, 회화와 제작 행위의 관습 자체를 질문해왔다. 2022년 80세의 나이에 세계적인 갤러리 페이스와 전속 계약을 맺은 그는, 지금도 신체를 매개로 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몸이 젊든, 늙든, 떨리든, 힘이 부족하든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있어요. 그 조건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죠. 힘이 모자라서 드러나는 것도, 그 자체로는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어요.”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Body as Thought(사유하는 몸)’는 이건용의 1970년대 퍼포먼스와 회화를 다시 현재형으로 불러낸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 활동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으며, 초기 퍼포먼스의 기록 영상과 사진, 작업 노트, 회화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특히 ‘동일면적’(1975), ‘실내측정’(1975)의 초연 영상과 함께 ‘건빵먹기’(1977), ‘화랑 속의 울타리’(1977), ‘손의 논리 3’(1975) 등 당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들을 작품으로서 처음 공개한다. 50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파격적이다. 반세기 만에 다시 본 자신의 작업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이건용은 이건용이죠. 하하하.” 전시는 3월 28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6/02/04
백현진 ‘배우로 번 뱃심, 화가의 자유가 됐다’ “언어로 할 수 있었으면, 화가가 안 됐겠죠.” 배우이자 가수인 화가 백현진(54)은 작품 설명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로 닿지 않는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 그는 그림을 그렸고, 음악을 만들었으며, 연기를 해왔다. 그에게 시각예술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감각을 붙잡아 두는 방식이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 별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Seoul Syntax’는 그런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2021년 전시 ‘말보다는’ 이후 5년 만에 열린 이번 전시는, 작가가 나고 자란 도시 ‘서울’을 배경으로 삼지만 도시의 풍경을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서울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낸 리듬과 어긋남, 규칙과 오류의 공존을 작가 고유의 ‘문법(syntax)’으로 풀어낸다. “문법이라는 게 사실 규칙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오류도 있고, 어긋남도 포함돼 있고요. 저는 늘 정상적이지 않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3일 오전 전시장에서 만난 백현진은 변한 듯 아닌 듯, 그러나 분명히 더 맑아진 상태로 작품 앞에 서 있었다. ‘모범택시’의 갑질 회장, 직장인 백부장의 얼굴은 그 자리에 없었다. ◆ 번아웃 이후, ‘덜 그리는’ 그림 이번 전시에 소개된 페인팅과 드로잉은 이전 작업에 비해 눈에 띄게 비워져 있다. 밀도 높은 화면 대신 여백이 늘어났고, 붓질은 한층 느슨해졌다. 그는 이를 스타일의 변화라기보다 몸의 변화라고 설명한다. 특히 누런 장지에 그린게 눈길을 끈다. “젊었을 때는 덜 그리면 불안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덜 그리는 그림이 제 몸에 가장 맞아요. 물리적으로도 그렇고요.” 작품의 상당수는 2025년 노르웨이에 머물며 전시를 준비하던 시기에 시작됐다. 북유럽의 날씨와 개인적인 사정이 겹치며 감정이 깊게 가라앉았고, 그 상태로 서울에 돌아와 작업실에 머물며 붙잡고 있던 그림들이다. “아,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번아웃이구나 싶었어요.” 오십견이 찾아왔고,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몸에 맞는 속도를 다시 배웠다. 평생 함께 갈 업으로서의 그림은 더 이상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라, 조율하는 일이 됐다. ◆ 제목은 의미가 아니라 ‘별명’ 작품 제목은 가볍다. ‘PW’, ‘멈춤’ 같은 단어들은 명확한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다. 패스워드(password)일 수도, 페이퍼워크(paperwork)일 수도 있다. “제 작품에서 제목은 중요하지 않아요. 의미라기보다는 친구들 별명 붙이듯이 붙여놓는 거죠.” 그는 먼저 그림을 그리고, 그다음에야 언어가 아주 조금 개입된다고 말한다. 설명을 덧붙이기보다, 관객 각자가 보이는 만큼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 ‘전방위 예술가’라는 말에 대하여 백현진은 배우·미술가·음악가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로 불린다. 그러나 그는 이 표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전방위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직업이 세 개인 거죠. 다 동등해요.” 오히려 이 ‘혼업’ 구조가 자신에게는 하나의 안전망이 됐다고 말한다. 배우로 벌어들인 수입이 미술 작업의 배심이 되어주고, 미술에서의 성과가 음악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는 이를 “의도하지 않은 분산 투자”에 비유한다. “한 바구니에 계란을 다 담지 않은 셈이죠. 운이 좋았어요.” 유명 배우가 되며 생긴 ‘뱃심’은 그에게 자유를 줬다. 돈 걱정 없이, 시장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세 개의 업은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떠받치는 하나의 포트폴리오 시스템처럼 작동하고 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분명 멀티 인간, 멀티 예술가다. ◆ PKM과의 오래된 인연, 그리고 오해에 대하여 백현진과 PKM갤러리의 인연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는 2004년 첫 전시 이후, 2010년대 초반부터 다시 관계를 맺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당시 그는 배우로서의 성과도, 시장의 주목도 없던 시기였다. “젊었을 때는 진짜 가난했어요.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PKM과 인연을 맺기 전, 그는 아라리오 프로젝트를 통해 5년간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지원을 받았다. 배우 이전, 오롯이 시각예술가로서의 시간이었다.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는 “단편 영화를 만들고 직접 출연하며 음악 작업을 병행해도, 이를 ‘비주얼 아티스트가 다른 일을 하는 것’으로 분리해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번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포괄적인 예술가로 봤던 거죠.” 그럼에도 그는 종종 ‘배우로 유명해진 뒤 미술을 한다’는 오해를 마주한다. 그는 이 질문에 담담하다. “제가 배우로 시장에서 성과가 생긴 건 사실 5년도 안 됐어요. 정확히 말하면 ‘모범택시’ 이후죠. 그전에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배우 이전에 그림이 있었고, 명성 이전에 작업이 있었다. 지금의 그는 그 모든 시간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다. 백현진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대만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일민미술관, 아트선재센터를 비롯해 상하이 민생현대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노르웨이 베스트포센 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7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작가로 선정됐다. 또한 인디밴드 1세대인 ‘어어부 프로젝트’와 프로젝트팀 ‘방백’의 멤버이자 솔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왔으며, 영화 ‘북촌방향’, ‘경주’, ‘브로커’와 드라마 ‘무빙’, ‘모범택시’ 등에 출연한 배우로서도 전방위적인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배우의 몸, 화가의 전환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한 뒤 작업실로 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모범택시’에서의 빌런 연기는 신체적으로도 큰 소모를 남겼다. “너무 화가 많은 역할을 하고 오면 바로 붓을 들지는 않아요. 그 모드를 최대한 지우려고 하죠.” 작업복을 갈아입고, 공간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훈련이 됐다. 연기, 음악, 미술은 서로를 방해하기보다 각자의 회로를 정리해주는 장치로 작동한다. ◆ AI 시대, 또 하나의 ‘나’ 최근 그는 AI와의 협업 가능성도 탐색 중이다. 챗GPT와 제미나이를 유료로 사용하며, 스스로 묻고 답하던 사고 과정을 AI와 나눈다. 계기는 책 ‘듀얼 브레인’이었다. “AI가 못하는 걸 내가 해야지, 이런 생각은 아니에요. 그냥 나 하나가 더 생긴다고 가정해보는 거죠.” 그는 AI를 대체가 아닌 확장의 도구로 다룬다. 혼자 생각할 때와 둘이서 오갈 때, 전혀 다른 사유의 경로가 열린다고 했다. ◆ “그냥 봐주세요” 배우로서의 인지도를 따라 전시장에 들어오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얄미우면서도 백현진다운 시니컬한 말이다. “재미없으셨으면 미안하고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상회화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그는 안다. 하지만 그림도 결국 많이 본 사람일수록 더 재밌게 볼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 내면의 두께를 쌓는 일 1972년생인 그는 오십을 넘겼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천진함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세상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응의 깨달음도 함께 있다. 장자·노자의 무위자연처럼, 그는 정해진 마음으로 사는 것을 경계하며 자신을 운용한다. “지금은 분노나 우울을 최대한 지우고, 내가 앞으로 보고 싶은 그림이 뭔지 생각하면서 그려요. 담담해지려고 계속 훈련 중이에요. 아마 이건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일 거예요.” 그는 이미 2년 전부터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2~3년 뒤 또 하나의 개인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멈추지 않기 위해, 그는 지금도 내면의 함량을 키우는 중이다. ◆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시작된 그림들 ‘Seoul Syntax’는 백현진이 지금의 자신을 살아내는 방식에 대한 조용한 기록이다. 모든 위대함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 그는 어린 시절 만화와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넘기던 그때처럼, 다시 가장 원초적인 자리로 돌아간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나 유명한 배우 됐지’ 이런 생각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하는 거죠.” 전시는 3월 21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6/02/03
“사라짐은 끝이 아니다”…민병훈 개인전 ‘소멸’ “영화는 많은 것이 구속된 매체라면, 영상 작업은 자연 안에서 구속되지 않은 시나리오, 즉 즉흥곡에 가깝다.” 영화감독 민병훈(56)은 더 이상 서사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머문다. 파도가 부서지고, 구름이 흩어지고, 무지개가 사라지는 순간 앞에서 오래 서 있다. 사라짐을 기록하지만, 그 안에서 끝내 지속을 발견한다. 아라리오뮤지엄은 오는 29일부터 4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민병훈 개인전 ‘소멸(Dissolution)’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영화감독 민병훈이 작가로서 선보이는 다섯 번째 개인전으로, 전시 제목과 동명의 신작 영상 ‘소멸’(2025)을 최초 공개한다. 영상 4점과 사진 19점이 소개된다. 민병훈의 전시 ‘소멸(Dissolution)’은 죽음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운동에 가깝다. 흰 눈이 쌓인 무덤, 파도와 구름, 무지개처럼 반복적으로 사라지고 다시 생성되는 자연의 리듬 속에서, 소멸은 종결이 아니라 다른 상태로 이어지는 과정이 된다. 작가가 말하는 ‘소멸’은 하루가 저물고 다시 시작되듯, 매일 소멸되고 다시 살아나는 시간의 감각에 닿아 있다. 영화감독으로 출발한 민병훈은 이제 스스로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영화감독이 아니다, 작가다”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영화와 전시 사이를 오가며, 매체의 구분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영화는 많은 것이 구속된 매체라면, 영상 작업은 자유롭다. 자연 안에서 구속되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그의 말은, 인물과 서사를 밀어내고 응시와 체류의 시간을 선택한 이유를 압축한다. 이번 전시에서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제주의 파도와 구름, 무지개 등 자연의 순환이 화면을 채운다. 민병훈은 이러한 ‘소멸의 시선’을 앞으로 제주 구도심의 거리와 가옥 등, 사라져가는 도시의 풍경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그는 끊임없이 허물고 새로 짓는 풍경을 바라보며, 왜 우리는 부수는 일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라지는 빨래터와 오래된 골목에는 여전히 삶의 흔적과 생명성이 남아 있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기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아내와의 사별 이후, 그는 아들과 함께 제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상실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슬픔을 말하지 않기로 한 태도는 오히려 작업을 더 차분하게 만든다. 아들은 이제 엄마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를, 제주의 자연이 대신 채운다. 그는 자신이 ‘잘 찍는 자연’의 길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의 미학적 선언이다.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대신, 보이지 않는 것을 걸러내는 일. 완성도를 낮추는 선택은, 소멸과 재생의 과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 상태에서만, 소멸은 과정으로 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태도는 작품의 유통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영상을 제주대학교병원 로비에 기증해 상영하고 있다.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광고 영상 대신 제주 자연의 느린 화면 앞에 멈춰 선다. 작가는 이를 ‘치유’라는 말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이 함께 존재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 잠시 머무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작품은 소유되기보다, 필요한 곳에서 작동하길 바란다는 태도다. OTT 플랫폼의 상영 제안을 고사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엄마가 떠난 후 부자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약속’은 이미 영화제로 향했고, 상업적 유통의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를 보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슬픔의 이미지’로 고정되는 순간, 영화는 더 이상 순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그는 이 영화를 20분 분량의 영상 작업으로 재구성해 전시에 포함시켰다. 영화는 그렇게 또 하나의 매체를 넘어, 작품으로 전이된다. 민병훈에게 아들 시우의 존재는 작업의 배경이 아니라,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실존적 동반자다. 그는 “아이와 나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아이는 시를 쓰고, 나는 영화를 만들지만 그 태도는 서로 오간다”고 말했다. 작업을 마친 뒤 가장 먼저 보여주는 대상 역시 아들이다. 시우의 반응은 다시 작업으로 돌아가게 하는 감각의 기준이 된다. 무덤을 촬영하게 된 이유는 명확한 의도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어느 날 길을 잃고 기대어 잠이 들었던 장소. 처음엔 두려웠지만, 반복해 머무는 시간 속에서 무덤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점차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는 무덤에서 변화하는 자연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생명성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순환의 일부라는 감각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무덤은 ‘소멸’ 연작으로 이어졌고, 그의 작업은 사라짐과 생성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축은 아들 시우의 시다. 장편 영상의 제목이기도 한 ‘나를 눈뜨게 한 순간’은 민병훈의 언어가 아니라, 아이의 문장에서 출발한다. 다섯 살에 엄마를 잃고 슬픔을 시로 건너온 시우는 ‘어린이 시인’이라 불리던 시간을 지나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시우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두려움이 녹으면 희망이 된다. 슬픔을 잊고 나면 나를 살게 한다. 엄마가 없는 세상이 내가 없는 세상과 같다는 끄덕임이 나를 살게 한다.” 이 문장은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태도로 작동한다. 상실을 극복하거나 설명하기보다,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시선이다. 민병훈에게 소멸은 부활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늘 하루가 소멸되듯, 이 순간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파도처럼, 다시 생성된다. 그는 사라지는 것에 머무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라지기 때문에 남겨야 한다.” '소멸’은 끝을 말하는 전시가 아니다. 사라짐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법에 대한 기록이다. 2026/01/28
박용만 “나는 사진작가다”…50년간 바라본 '인간의 순간' 사람은 언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말할 때가 아니라, 등을 보일 때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대한상공회의소 회장(같이 걷는 길 이사장·71)이 사진가로서 첫 개인전 ‘HUMAN MOMENT’를 열었다. 전시는 1월 16일부터 2월 15일까지 서울 중구 전시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열린다. 50여 년간 그가 기록해온 사진 가운데,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아 있던 장면 약 80점이 처음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전직 기업인의 취미 공개전’이 아니다. 15일 전시를 앞두고 만난 그는 스스로 분명히 선을 그었다. “나는 이제 기업인이 아니라 사진작가다.” ◆ ‘HUMAN MOMENT’, 인간의 순간을 기록하다 전시 제목 ‘HUMAN MOMENT’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지시하지 않는다. 사람이 직접 등장하든, 이미 떠난 흔적만 남아 있든 그의 사진은 늘 ‘사람의 존재감’을 중심에 둔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순간’은 극적인 장면이 아니다. 사진을 찍던 그때의 시선이,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따뜻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홍대 앞에서 포착한 커플의 뒷모습, 캄보디아의 가난한 도시에서 아이 둘이 앞에 서 있고 아버지가 생계를 이어가는 장면, 관광객으로 가득 찬 축제 한복판에서 유독 고요한 한 사람의 모습. 사진 속 인물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삶은 충분히 읽힌다. 그의 사진은 사건보다 사람이 머문 시간에 반응한다. 사진은 늘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멀리서, 설명 없이. 그리고 천천히 가까워진다. 그가 직접 말했듯, 이번 전시는 “먼 데서부터 시작해 갈수록 가까워지는” 구조를 취한다. 뒷모습, 측면, 다시 얼굴. 시선의 이동은 곧 삶을 대하는 거리의 변화다. “가깝게 가서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짐작의 힘이 이 전시를 지탱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의 거리 감각이다. 그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대신 오래 본다. 페트라에서 행상에 나서 울고 있는 아이를 찍을 때도 관광객을 일부러 프레임에서 밀어냈다. 흔한 대비 구도를 피한 선택이다. 결과적으로 사진에는 아이와 당나귀만 남는다. 그는 그 장면을 두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 전시는 연출이 아니라, 그런 마음의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비극적인 장면, 과도하게 슬픈 이미지, 의미를 과잉 생산하는 사진들을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보고 편안한 사진, 다시 보고 싶은 사진만 남겼다”는 그의 기준은 전시 전체의 온도를 결정한다. ◆ 50년의 기록, 그러나 지금에서야 꺼낸 이유 그는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찍은 사진으로 상을 받으며 처음 사진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이후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진은 늘 곁에 있었지만, 전시는 선택하지 않았다. “그동안 사진에 대한 확신이 없어 개인전을 열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전시는 확신이 생겨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는 상태 그대로 한 번쯤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 선택한 자리에 가깝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그는 젊은 사진가들과 함께 사진을 다시 분류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찍어온 사진의 흐름을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됐다. “남의 눈으로 보니까, 내가 어떤 사진을 찍어왔는지가 보이더라.” ◆ 정치 하마평과의 거리, 그리고 분명한 선언 그의 이름 앞에는 여전히 서울시장, 국무총리 등 각종 정치적 하마평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그런 일과는 상관없다. 가능성은 제로(0)%다.” 이 말은 선을 긋기보다 자리를 옮겼다는 선언에 가깝다. 성장과 효율의 언어를 다뤄온 사람이, 이제는 관찰과 기다림의 언어로 세계를 읽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성과도, 결론도 없다. 대신 시간이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선언의 연장선에 있다. 미래를 설계하던 기업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미 지나간 순간들을 다시 바라보는 관찰자로 서겠다는 선택이다. ◆ 사진은 취미가 아니라 태도다 그가 처음 사진을 찍은 것은 1975년이다. “처음 찍은 게 75년이니까 거의 50년이 됐죠. 실제로 필름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한 40년쯤 됩니다.” 어린 시절 그는 사진가를 꿈꿨다. 그러나 아버지의 강한 반대로 그 꿈을 접었다. “아버지가 너무 무섭게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포기했죠.” 사진은 그렇게 마음속에만 남았다. 그러다 1990년, 다시 불이 붙었다. “집사람한테 ‘여보, 나 일을 도저히 못 하겠어’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가 다시 사진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에는 사진가 강홍구가 있었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사진이 뭔지도 몰랐는데,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강 선생님하고 친해지면서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취미로 찍기 시작한 사진은 점점 분명한 방향을 갖게 됐다. “취미로 찍어도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게 나하고 어울리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말하는 ‘인간다움’은 의식되지 않은 순간에 있다. “누구나 가장 인간다운 건 가장 편안할 때 아닐까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모습, 보이고 싶은 모습이 아닌 그 상태요.” 그래서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대부분 카메라를 인식하지 않는다. “제가 찍는 사진 속 사람들은 다 저를 의식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모습들이 가장 인간답다고 생각해요.” 박용만의 사진은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다. 연출도, 조작도, 극적인 장치도 없다. 다만 오래 바라보고, 조용히 기다린 시선이 남아 있을 뿐이다. 노숙인과 노인, 이름 없는 사람들, 그리고 압축성장이 남긴 도시의 틈새까지. 그의 사진은 개인의 얼굴을 통해 구조의 초상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전시는 한 개인의 사진 데뷔전이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한 관찰자가 남긴 잔상 기록에 가깝다. 그는 말했다. “아름답고 따뜻한 사진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쯤 오면 우리가 직면한 현실도 같이 생각했으면 했어요.” 이 말은 전시의 방향을 정확히 말해준다. 그의 사진은 개인의 삶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압축성장이 남긴 불균형의 풍경을 증언한다. 사람의 얼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진은 말을 바꾼다. 개인의 시간이 아니라, 구조의 시간에 대해.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공간을 읽는 방식이다. 물의 반사를 지워 새와 물고기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듯 보이게 하거나, 창살 너머로 거친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을 포착한다. 소란한 축제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고요를 건져 올린다. 그의 사진은 프레임 안과 밖을 대비시키며 세계를 읽는다. 보호받는 안과 거친 밖, 소음과 침묵, 속도와 정지가 한 장의 사진 안에 나란히 놓인다. “메시지는 없습니다. 그냥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 전시는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다. 한 장 앞에 서서 오래 머물게 만든다. 설명이 없어도 우리는 안다. 저 사람들이 지나온 시간, 지금의 관계,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마음을. AI가 이미지를 대신 기억하는 시대에, 이 전시는 오래된 사진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회상의 속도를 지키려는 기록에 가깝다. 전시와 함께 HUMAN MOMENT도 동시 출간된다. 사진집에는 박용만 작가가 지난 50여 년간 기록해온 사진 200여 점이 수록되며, 전시보다 확장된 구성으로 그의 시선과 시간의 기록이 담겼다. 2026/01/15
구멍·내장이 걸린 십자가…장파 ‘Gore Deco’ 도발 한국 작가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장파(44)의 회화는 익숙한 규범에서 과감히 탈주한다. 한국 회화가 오랫동안 외부 풍경·추상 자연·정서적 여백을 중심으로 미학을 구축해왔다면, 그는 정반대로 ‘육체의 내부’를 전면에 세운다. 장기, 구멍, 성적 이미지, 살덩이의 덩어감이 화면을 점령하는 이른바 ‘wet한 회화’-서구 표현주의나 라틴아메리카 바디 페인팅에서는 낯설지 않지만, 한국 미술사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핑크–살구–장기색으로 이어지는 층위는 해부학보다 더 해부학적이고, 감각보다 더 감각적이다. 장파는 피부를 벗기고 내부를 펼친 뒤, 그것을 곧장 우주의 지도처럼 확장한다. 화면 곳곳에 새겨진 ‘hole’, ‘love’, ‘origin of the world’ 같은 단어들은 몸의 입구·상처·섹슈얼리티·탄생의 출구·권력의 통로를 한데 엮는 기호다. 한국 여성 작가들에게 오랫동안 금기시되던 감각을 장파는 과감히 열어젖혔다. 국제갤러리는 이 급진적 감각을 정면으로 끌어안으며 9일 개인전 ‘Gore Deco’를 개막했다. K1·K2 전시장에는 동명 회화 연작을 비롯해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약 45점이 펼쳐진다. 국제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장파와 전속계약을 맺고, 그의 미학적 실험을 장기적 파트너십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 “시각은 가장 우위적인 감각… 그 위계를 찢고 싶었다” “시각은 사실 가장 우위적인 감각이에요. 후각·촉각·내장의 감각에 비하면 위계적으로 맨 위에 놓인 감각이죠.” 장파는 자신의 미학적 세계관을 설명하며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를 호출했다. “바타유는 눈·성기·항문·장기처럼, 보통 위계가 매겨지는 기관들을 동일한 지평에서 다시 사유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저 역시 눈과 내장, 생식기 같은 기관들을 뒤섞어 하나의 연속된 현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의 위계를 해체하는 일이다. 시각과 비시각, 고귀함과 저속함, 숭고와 혐오-회화를 지배해온 이 모든 이분법은 그의 화면에서 조용하면서도 기습적으로 붕괴한다. ◆ 장파 작가는? 화가 장파는 2006년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와 미학을 함께 전공했고, 2017년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초기부터 회화 구조와 몸의 언어를 동시에 탐구해온 그는 인천아트플랫폼(2020), 두산갤러리 뉴욕(2017), 소마미술관(2016), OCI 미술관(2011)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감각의 위계’를 뒤흔드는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견고히 구축해왔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2024),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24), 송은(2023), 아르코미술관(2023), 서울시립미술관(2015) 등 주요 기관의 그룹전에서 주목받았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며, ‘육체–감각–장식’이라는 세 축을 통해 동시대 회화의 감각 구조를 재편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K1-뒤집힌 삼각형, 내장이 걸린 십자가 K1 전시장에 들어서면 삼각형 캔버스들이 공간을 지배한다. 성삼위일체의 상징, 원근법의 질서를 뜻하던 삼각형은 장파의 손에서 과감히 뒤집힌다. 십자가는 더 이상 영적 기호가 아니다. 내장의 질감으로 장식된 ‘여성화된 성물’로 변모한다. 마치 내장이 걸린 교회 안으로 들어선 듯한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벽면을 감싸는 실크스크린 벽화는 고대 건축의 프리즈를 연상시키며, 역사 속 여성 재현의 이미지사와 장식의 위계를 한 화면에 응축한다. 십자가 형태의 작품은 거의 ‘몸의 성상화(Iconification of Flesh)’에 가깝다. 구멍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세계가 처음 열리는 인터페이스, 존재가 통과해야 하는 문과 관문이다. 구원이 상징하던 구조와, 장기가 드러내는 존재의 조건은 장파의 화면에서 하나의 패턴으로 서로 뒤엉킨다. ◆ K1 2층 해골보다 배경이 더 강하다…색채와 장식의 반란 2층에 오르면 관람객은 즉시 충돌을 마주한다. 해골보다 먼저 눈을 훑는 것은 화면 전체를 뒤덮는 폭발적 색채다. 이는 장파가 의도적으로 배경을 형상보다 앞세우는 전략이다. 금속 하드웨어, 머리카락, 스티커, 거즈 같은 비전통적 재료들이 캔버스에 부착되며 ‘고귀한 재료’와 ‘비천한 물질’의 구분은 여기서 무력화된다. 고통의 흔적은 장식이 되고, 상처는 문양이 된다. 이는 파괴가 아니라 압도적인 시각적 쾌감으로 전환된 반란이다. K2에서는 여성혐오 이미지, 에밀리 디킨슨의 문장, 파편화된 신체가 한 장면에서 충돌한다. 눈, 입술, 항문, 상처… 이 전시의 핵심 구조는 ‘구멍(hole)’이다. 구멍은 통로이자 문지방, 기억의 입구이면서 몸의 취약성과 힘을 동시에 드러내는 존재론적 장치다. 여기서 몸은 더 이상 피해의 대상이 아니다. 고통은 장파의 손에서 유머·조롱·유희로 비틀리며 새로운 감각으로 재탄생한다. 그 웃음은 위로가 아니라 폭력적 질서에 생긴 균열이다. ◆ ‘문담피'의 노골화에 저항 캔버스 위에는 해부된 장기, 피어싱, 문신, 담배, 성형, 낙태의 기호가 한 장면에 뒤엉킨다. 여기에 장파는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를 겨냥해 생산된 은어를 그대로 가져온다. 작품 제목 ‘Gore Deco: Tattoo, Cigarette, Piercing'도 그 연장선이다. “댓글창에서 혐오 언어가 활활 타오르는 걸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반격’의 기분이 들어요. 20대 내내 그 언어를 실시간으로 겪으며 자랐으니까요.” 텍스트와 기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한 세대가 통과해온 감각의 지형도다. ◆ “몸은 세계를 통과하는 장치”… 금기 이후의 회화 장파는 자신을 “영페미니즘의 쇠락과 인터넷 혐오 언어의 전면화를 동시에 목격한 세대”라고 말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오빠와 함께 성장하며 계급·성별·장애가 교차하는 폭력을 가족 단위에서 체감했다고도 전했다. 그의 회화 속 몸은 언제나 통과 중이다. 열리고, 해부되고, 뒤집히고, 다시 봉합된다. 파괴가 아니라 다시 태어나기 위한 해체다. ◆ 장파의 회화가 결국 묻는 것 장파의 거대한 화면은 하나의 신체를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신체를 거쳐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는 포털에 가깝다. 여성 형상, 젠더 기호, 심장, 뱀, 지문, 작은 태양 같은 도상들은 하나의 거대한 '퀴어 바이오-신화(bio-myth)'로 결집한다. 살과 신화가 얽힌 장파의 그림은 인간이 얼마나 다층적 괴물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그 잔혹한 진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 ‘위계를 찢어버린 회화’가 던지는 질문 육체의 내부와 장식의 외부, 혐오의 언어와 웃음의 전략, 숭고와 저속함이 뒤섞인 장파의 세계는 결국 이렇게 묻는다. 어떤 감각이 더 고귀하고, 어떤 감각이 더 저급한가. 그 위계를 결정해 온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위계를 찢어버린 이후의 회화는 어떤 몸을, 어떤 세계를 그릴 수 있을까. 여기에 하나의 질문이 더 생긴다. 장파의 도발적 이미지 앞에서, 남성 관람객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기괴함? 불편?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데자뷔 같은 당혹’? 오랫동안 여성 신체를 바라보는 관습적 시선에 기대온 감상법이 이 전시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파의 화면에서 남성의 시각적 권력, 오랫동안 미술사를 지배해온 그 시선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붕괴한다. 그 ‘당황–흥미–저항–몰입’의 스펙트럼이야말로 이번 전시가 촉발하는 가장 현재적 도발이며, 올 연말 한국 시각예술 현장에서 가장 뜨겁게 흔들릴 질문이다. 전시는 2026년 2월 15일까지. 관람 무료. 2025/12/09
서울은 지금 인상주의의 계절…액자까지 작품 올겨울 서울은 인상주의의 수도다. 서울 주요 미술관들이 동시에 대형 인상주의 전시를 선보이며, 도심 전체가 보기 드문 ‘인상주의 시즌’에 돌입했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이 겹친 것은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서울이 아시아 미술 전시 허브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신호”라고 평가한다. ◆세종문화회관, 600년을 관통하는 서양 회화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는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으로, 65점의 서양 회화가 최초로 대규모 해외 반출됐다. 특히 100년 동안 외부로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상설 컬렉션 25점이 포함돼 미술계의 관심을 모았다. 1520년경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리스도의 체포’ 등 르네상스부터 초기 모더니즘까지 600년 회화의 변화를 따라가는 구성이 특징이다. 세종미술관의 문이 열리는 순간, 공기는 단숨에 16세기 르네상스의 온도로 바뀐다. 단순한 명작 나열을 넘어 인상주의가 등장하기까지 서양 회화의 빛·구도·사유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흐름’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 2월22일까지 열린다. ◆예술의전당, 르누아르와 세잔의 ‘두 개의 빛’ 예술의전당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르누아르’는 오랑주리 미술관 소장품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전시다. 유화 51점과 사진·영상 70여 점을 운송하기 위해 비행기 4대가 투입되는 등 전례 없는 규모를 갖췄다. 이번 전시는 인상주의의 두 대표 화가인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폴 세잔의 작품을 주제별로 병렬 배치해 비교 감상이 가능하도록 했다. 르누아르는 부드러운 색채와 인간의 온기를, 세잔은 형태·질서를 강조하며 회화의 구조를 탐구했다. 이번 전시는 두 화가가 인상주의 안에서 얼마나 다른 시각언어를 구축했는지를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한가람디자인미술관서 내년 1월까지다. ◆국립중앙박물관, 인상주의의 ‘기술과 실험’ 국립중앙박물관의 ‘빛을 수집한 사람들’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로버트 리먼 컬렉션에서 회화·드로잉 81점을 선별해 소개한다. 이 전시의 강점은 ‘명작 감상’보다 인상주의가 어떤 기술적 실험을 통해 탄생하고, 어떻게 초기 모더니즘으로 이어졌는가를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연구형 구성에 있다. 리먼 컬렉션은 두 세대에 걸친 수집가의 안목이 축적된 컬렉션으로, 프랑스 미술과 인상주의의 핵심 변화를 포착해 온 사적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전시는 고갱·르누아르·세잔 등의 작품을 통해 색은 어떻게 해체되고, 빛은 어떻게 분절되며, 형태는 어떻게 재구성되었는가를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실에서 내년 3월 14일까지 열린다. ◆왜 지금, 인상주의인가 세 전시가 동시에 열린 것은 서울의 문화적 위상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첫째, 해외 주요 미술관들이 한국을 아시아 관람객의 중심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반출이 어려운 작품들이 한국을 향하는 사례가 늘며 전시 유치 경쟁에서도 서울의 비중이 커졌다. 둘째,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인상주의 회화가 다시 주목받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감정·빛·위로의 요소를 가진 인상주의는 위기 시기일수록 관객 유입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셋째, 세 전시의 구성 자체가 “이번이 아니면 다시 보기 어렵다”는 희소성을 가진다. 관계자들 역시 “동일 구성으로 재편성이 불가능한 수준의 조합”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전시를 봐야 할까 전체 미술사 흐름을 보고 싶다면 → 세종문화회관.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의 600년 대서사를 파악할 수 있다. 인상주의 핵심 화가를 비교하고 싶다면 → 예술의전당. 세잔과 르누아르의 빛·구조·감정의 차이를 읽는 자리다. 인상주의를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 국립중앙박물관. 빛·색·형태의 원리를 해부하는 연구형 전시다. 지금의 서울은 유럽 미술관이 선택한 하나의 ‘정거장’이다. 세종에서 인상주의의 뿌리를 보고, 예술의전당에서 인상주의의 두 심장을 보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상주의의 기술을 본다면 유럽 미술관에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더 이상 남지 않는다. 그리고 놓치기 쉬운 즐거움이 하나 더 있다. 세 전시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액자 자체가 시대의 흔적을 품고 있다. 19세기 특유의 장식적 목재 프레임은 오늘날의 미니멀한 액자와 달리, 화면의 빛과 호흡을 함께 품어내며 또 하나의 시각적 층위를 만든다. 액자까지가 작품으로 느껴진다. 올겨울 서울은 그 자체로 ‘인상주의 올인원 패스’다. 19세기 유럽 회화의 가장 깊은 결을 서울 한가운데서 경험하는 일, 이 또한 K-문화의 힘이다. 2025/12/06
신상호 "반복은 No, ‘무한변주’가 내 체질"…흙으로 재부팅한 60년(종합) 흙은 한 번 굽히면 사라지는 재료지만, 어떤 예술가에게는 끝없이 되살아나는 세계의 문이다. 올해 일흔여덟, 한국 현대 도예의 지형을 바꾸어 온 신상호는 그 문을 반세기 넘게 두드려왔다. 26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막한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 제목 그대로, 흙의 무한한 변주(變奏)를 실감하는 자리다. 전통 도자에서 출발해 조각·회화·건축으로 끝없이 확장해 온 그의 궤적을 도자·조각·회화·설치 160여 점으로 조망한다. 전시를 기획한 윤소림 학예연구사는 신상호를 “구상·추상의 구도를 고민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핵심 축은 호기심·경외·생명성”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형식에도 고정되지 않는 작가”라는 말은 이번 전시에서 명확해진다. ◆ “나는 같은 방법을 반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날 과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상호는 특유의 꾸밈없는 어조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정리했다. “점 찍으면 평생 점 찍고, 물방울 하면 평생 그것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한 방법에 안주할 수가 없어요. 흙을 만지면 새로운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을 따라가면 또 다른 길이 열립니다.” 그 말은 작품 곳곳에서 그대로 읽힌다. 도자기, 도자 조각, 추상 회화, 건축 타일까지 뻗어가는 작업들은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채롭다. 흙의 질감과 빛, 추상적 패턴, 생명체의 울림이 결합된 작업들은 그가 말한 ‘흙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입증한다. 그가 말한 또 하나의 핵심 문장은 이번 전시의 존재론적 바탕을 요약한다. “흙은 보관되지 않는 자원입니다. 아이디어도 보관되지 않죠. 둘이 만나면 계속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젊은 도예가들에게는 이렇게 당부했다. “어렵다는 이유로 멈추지 마세요. 극복하면 어렵지 않아요. 넘어서면 새로운 것이 되고, 자기 것이 됩니다.” ◆ ‘흙의 예술가’가 걸어온 60년…도예 국제화의 출발점 신상호의 작업은 한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한국 도예의 현대화 과정이다. 1965년 홍익대 입학과 동시에 이천의 장작가마를 인수해 전통 도자를 익힌 그는, 국내 최초로 가스가마를 들여오며 “전통에 과학을 더한 현대 도예”를 직접 개척했다. 그는 전통을 단순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개념’으로 봤다. 일본 백화점 전시를 비롯해 국제 도예전, 화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도예의 국제화를 몸으로 열어젖혔다. 1980년대 이후 그는 도예의 규범을 과감히 벗었다. 도자 조각의 개척자로 흙으로 동물 형상을 빚어낸 ‘꿈’·‘아프리카의 꿈’ 연작은 흙을 생명체의 에너지를 담는 매체로 바라본 대표작들이다. 이후 도자 타일을 이용한 외벽 설치 ‘구운 그림’, 센트럴시티 ‘밀레니엄 타이드’, 금호아시아나 사옥 외벽(현 콘코디언 빌딩) 등 건축과의 결합까지 이어졌다. 그의 변주는 전통 → 조각 → 회화 → 건축 → 회화적 도자 → 생명·추상 결합으로 이어진다. 흙에서 출발하지만, 흙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흙이 언어가 되고, 빛이 되고, 또 다른 예술이 되는 과정이다. ◆ 손가락 자국, 적층된 색, 조각된 화면…장르가 무너진 회화적 도자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회화적 패널들이다. 손가락 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표면, 수십 번 구워낸 색의 적층, 흙의 양감을 밀어 올린 화면. 회화인지 조각인지 장르가 무너진 작품들이다. 흙의 질감과 빛, 추상적 패턴, 생명체의 울림이 섞인 작품들은 그가 말한 ‘흙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거대한 토템 형태의 얼굴은 도자이면서 조각이고, 동시에 회화다. 이 '장르 해체의 지대'야말로 신상호가 60년간 밀어붙여온 본질적 질문, '흙은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강렬한 답변이다. ◆ “도예과 폐과 1순위였던 시절…이제 흙의 시대가 돌아온다” 신상호는 도예의 생존을 위해 싸워온 세대다. “홍익대 21개 학과 중 도예과가 항상 폐과 1순위였어요. 정말 억울하고 분했죠. 그래도 도예의 생존력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근의 변화를 ‘기적’처럼 바라본다. “요즘 젊은 세대에서 도예 관심이 커졌대요. 정말 고맙고 기쁘죠. 흙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재료니까요.” 몇 달간 파주 작업실과 과천을 오가며 전시를 준비했다는 신상호는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그 말은 단순한 소감이 아니다. 이번 회고전은 한 예술가의 수고와 열정이 만들어낸 기록이며, 한국 도예가 세계적 현대미술의 언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전시는 내년 3월 29일까지. 2025/11/26
피라미드가 수신한 박종규 ‘영원의 코드’…"이집트 현재진행형 문명국" 이집트 기자 사막에 피라미드가 두 겹으로 서 있다. 뒤로는 7000년 전 석조 피라미드가, 앞으로는 빨강·노랑·파랑 3원색 구조물이 또 다른 피라미드의 윤곽을 그린다. 사각 프레임 안 삼각 구조물이 사막의 수평선을 가르고, 바닥에 박힌 아크릴 미러 조각은 돌처럼 빛을 튀긴다. 한국 작가 박종규의 신작 대지미술 ‘영원의 코드(Code of the Eternal)’가 고대 유산과 디지털 시대를 동시에 호출하는 순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기자 피라미드(Pyramids of Giza)에서 가을마다 열리는 국제현대미술제 ‘포에버 이즈 나우(Forever Is Now)’가 15일(현지시간) 공식 개막했다. 아프리카·중동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야외 국제전으로 꼽히는 이 행사는 이집트 비영리 플랫폼 아르 데집트(Art D’Égypte)가 주최하고, 이집트 외교부·문화부·관광유물부의 후원과 유네스코 협력으로 열린다. 올해는 10개국 작가 10명(팀)이 참여했으며, 한국 작가로는 박종규가 유일하다. 피라미드 앞에서 신작을 선보이는 것은 지난해 강익중에 이어 두 번째다. ◆피라미드의 수학, 사막 위 디지털 구조로 다시 서다 “피라미드는 한국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역사·언어·문명 간의 지속적인 연결을 예술로 표현하기에 완벽한 장소다." 박종규의 ‘영원의 코드’는 피라미드 고유의 기하학적 비례, 한국·이집트 고대 서사를 디지털 언어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빨강, 노랑, 파랑색의 정사각형 철 프레임 속 삼각형 구조는 실제 피라미드의 각도와 높이, 변 길이에서 도출한 수학적 수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겉으로는 추상적이지만, 그 안을 이루는 수열은 임의로 뽑은 숫자가 아닌 ‘고대 피라미드의 비례 코드’다. 삼각의 구조물 앞 모래 위에는 약 1000개의 아크릴 미러 점(dot)이 흩어져 있다. 햇빛을 받으면 픽셀 노이즈처럼 반짝이는 이 점들은 작가가 쓴 시 ‘단군이 파라오에게 보내는 상상의 편지’를 모스 부호로 암호화한 결과물이다. 박종규는 이를 “감상용 텍스트가 아니라, 피라미드가 별자리를 통해 신에게 말을 걸던 것처럼 ‘위에서 보라고 쏘아올린 교감의 언어’”라고 설명했다. 설치물 옆 비석에는 이 암호가 영어·아랍어로 번역돼 새겨져 있다. 현장에서 만난 그는 피라미드 앞에서 작품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두고 “시간이 겹쳐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수천 년 전의 기하학과 제가 만든 디지털 구조가 한 화면처럼 이어져, 피라미드가 제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1년 전 답사에서 이미 전체 구조를 머릿속에 그려두었지만, 실제 설치 과정에서는 사막의 모래바람과 현지 제작 방식의 차이를 견디며 “이집트라는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야 했다”고 말했다. 사막 위에 놓인 기하학 구조와 바닥을 이루는 도트 언어는 그 자체로 한국과 이집트, 고대와 디지털, 신화와 정보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장면을 만든다. 박종규는 동양적 사고가 “보이지 않는 질서와 순환을 읽는 감각”에 기반한다며, 이번 작품에 단군 신화의 문장을 모스 부호로 암호화해 넣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아날로그 언어를 디지털 언어로 전환해, 시공간을 초월한 교감 언어로 다시 쏘아 올리는 장치”라고 정의했다. “한국이 디지털 문명의 중요한 리더로 성장한 지금, 그 감각과 언어를 피라미드라는 인류 문명의 원점 앞에서 다시 발화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박종규 작품을 본 김윤섭 미술평론가는 박종규 작업의 ‘언어성’을 짚었다. “피라미드에서 추출한 숫자열과 단군 신화를 모스 부호로 암호화한 구조는 단순 설치가 아니라 문명 간 언어 교환에 가깝다”며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시대 전환의 경계에서 양쪽을 중계하는 역할을 해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모스 부호처럼 시대·국가·종교를 초월한 공통 기호를 조형 언어로 재해석한 점이 독창적”이라며 “디지털 언어가 결국 1과 0의 구조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조형적으로 환기시키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작품은 전시용 이벤트가 아니라, 디지털 세계를 기반으로 축적해온 박종규 작업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깊이를 더한다”고 덧붙였다. ◆ 박종규 작품이 ‘미래 문명’의 언어가 되는 이유 이규현 큐레이터는 올해 '포에버이즈 나우' 전시의 핵심 키워드를 “디지털과 영원”이라고 규정하며, 박종규가 이를 가장 명확히 구현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피라미드의 수학, 디지털 노이즈, 단군 신화가 한 구조로 엮인 작업”이라며 “고대 문명 한가운데서 K-아트가 자신만의 언어로 발언하는 드문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규현 큐레이터는 사실상 이집트 현장에서 한국 미술의 ‘민간 외교관’이다. 지난해 강익중의 ‘한글 신전’에 이어 올해 박종규의 ‘영원의 코드’까지, 그는 한국 작가들을 최초로 피라미드 앞으로 세워 ‘K-아트’를 고대 문명 중심부로 진입시켰다. 그는 “7000년 문명과 현대예술을 연결하는 일, 그 사이에 한국 예술을 세우는 건 국가 브랜드 확장과 직결된다”고 했다. 이어 “이집트는 단 한 번도 변두리였던 적이 없는 문명국이며, 지금도 지정학·문화·종교 모든 측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나라”라며 “한국 예술이 세계로 향하는 과정에서 이집트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명의 관문’”이라고 말했다. ◆ 고대 문명(이집트) × 미래 문명(한국)…이집트가 노린 큰 그림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문화외교 무대로 삼는 데는 분명한 전략이 있다. 기자 피라미드 단지는 2023년에만 1470만 명이 찾았고, 이는 이집트 전체 관광객 수와 거의 동일하다. 2024년에는 방문객이 약 1570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2028년까지 관광객 30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라미드 앞에서 국제 현대미술제를 연다는 것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문화·관광·국가 브랜드를 하나로 묶어 세계에 발신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올해 개막식은 세 개의 피라미드가 동시에 보이는 지점을 특별 개방해 진행됐다. 지난해 스핑크스 앞 개막보다 훨씬 강력한 상징 자본을 활용한 셈이다. ‘포에버 이즈 나우(Forever Is Now)’는 이 전략의 최전선에 배치된 국제전으로, 이집트는 고대 문명의 절대적 상징 위에 현대미술과 각국 작가를 올려놓으며 “이집트는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 문명국”임을 증명하려 한다. 최근 개관한 ‘이집트 대박물관(GEM)’과 피라미드 현대미술제의 정례화는 이러한 국가 전략을 뒷받침하는 수단이다. 관광 수입·해외 송금·수에즈운하 통행료라는 기존 경제 구조의 한계를 넘어, 고대 문명을 21세기형 문화산업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집트를 모르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문명의 원점에서 벌어지는 문화외교 ‘포에버 이즈 나우’는 단순한 야외 설치전이 아니라, 문명의 원점과 오늘의 예술을 직접 연결하는 문화외교의 장이다. 전시를 주최한 나딘 압델 가파르(Nadine Abdel Ghaffar) 아르 데집트 설립자는 “포에버 이즈 나우는 고대 이집트 역사와 현대미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글로벌 대화의 장”이라고 설명했다. 고대 피라미드가 더 이상 ‘과거의 박물관’이 아니라, 세계 각국 작가들이 참여하는 문화외교 무대로 재가동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맥락에서 최병선 주이집트 총영사는 “이집트를 알지 못하면 세계사의 축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곳은 7000년 문명의 발원지이자, 지금도 아랍권 최대 인구(1억 2000만 명)를 가진 지정학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흔히 알려진 5000년보다 더 깊은, 선사시대를 포함한 7000년의 문명 연속성을 품은 나라가 바로 이집트”라며 “처음부터 중심부였던 문명국이 다시 글로벌 예술의 무대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10개 언어가 말하는 ‘영원’…피스톨레토·살라 엘 마스리 등 참여 올해 전시에는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VHILS, 리사이클 그룹, 나딤 카람, 브라질의 아나 페라리, 프랑스–베냉의 킹 우데크핑쿠, 이집트 작가 살라 엘 마스리 등이 함께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피스톨레토는 아르테 포베라의 대표 작가로, 반영(reflection)과 참여를 강조해온 인물이다. 사막에 놓인 그의 스테인리스 구조물과 둘레의 바위들은 일종의 현대적 제의 공간처럼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드러낸다. 피라미드의 거대한 석조 구조와 대구를 이루며 고대의 무게와 현대의 가벼움이 교차하는 경계를 만든다. 특히 카이로 출신 작가 살라 엘 마스리의 설치는 이번 전시의 ‘신화적 무게’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고대 왕이 쓰던 반지를 거대한 스케일로 확대한 구조물로, 정면에는 커다란 환(環)이 뚫려 있다. 관람객이 그 안쪽에 서면 양옆에서 마아트(Maat)가 심장을 재는 고대의 심판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집트에서는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워야 피라미드 너머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고 믿었다. 엘 마스리는 이 오래된 사후 세계의 서사를 현대 조각 언어로 다시 불러내 사막 위에 거대한 ‘균형의 눈’을 세웠다. 박종규의 이번 피라미드 프로젝트는 씨아이에스(CIS)와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AIF)의 후원이 더해져 완성됐다. 기술 산업과 공익 예술이 함께 만든 이 구조물은, 고대 문명의 발원 앞에서 또 하나의 ‘미래 언어’를 쏘아 올렸다. 해 질 무렵, 피라미드는 신화의 출구처럼 빛났다. 사막의 바람이 잠시 멎는 사이, 10개의 작품은 각각의 방식으로 ‘영원’을 말했고, 피라미드는 그 모두를 묵묵히 받아 적는 듯했다. 전시 제목 ‘포에버 이즈 나우(영원은 지금)’은 그 순간 더 이상 전시의 표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가 미래에게 보내는 재발신된 메시지, 지금 이곳에서 다시 가동되는 문명의 선언에 가까웠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이어진다. 2025/11/16
'돌의 틈에서 빛으로'…알록달록 돌아온 박은선, '치유의 공간' 알알이 매달려 기둥을 이룬 구슬이 색색의 빛을 낸다. 멀리서 보면 알사탕처럼 가볍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묵직하다. 대리석이다. 단단하지만 그 안의 온도는 달라졌다. “그때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깨달았어요.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건 결국 작품뿐이었죠.”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췄던 시기, 조각가 박은선은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의 집에 머물며 가족과 함께 ‘멈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절망의 시대 속에서 희망을 전하기 위해 돌에 빛을 심기 시작했다. ‘무한 기둥–확산(Colonna Infinita–Diffusione)’은 조명이 되어 빛을 낸다. 대리석 구 내부에 LED 조명을 넣어, 돌의 결 사이로 은은히 스며드는 빛을 구현했다. 자연석이 인공의 빛을 걸러내며 만들어내는 조각의 광채는 부드럽다. 작가는 “가짜가 아닌 진짜 희망의 빛”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조각은 사람과 나누는 일”이라 말한다. 팬데믹 이후 그의 작품은 ‘무한’보다 ‘공유’를 향했다. “조각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겁니다. 나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세계로 열려야죠.” 1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조각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그리고 존재를 통해 다시 희망을 이야기했다. 12일부터 여는 박은선 개인전은 2023년 이후 국내에서 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자, 2008년 인사아트센터 전시 이후 17년 만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다. 대리석, 브론즈, 알루미늄으로 변주한 조각 작업들을 비롯한 조각작품 22점과 회화 작업 19점까지 총 41점을 선보인다. ◆ 돌의 틈, 숨통이 되다 박은선은 대리석과 화강암을 층층이 쌓고 깨뜨려 틈을 만든다. 그에게 그 틈은 단절이 아니라 삶의 숨통이자 빛의 통로다. “멀쩡한 돌을 깨뜨리고 틈을 만드는 건 나뿐일 겁니다. 하지만 그 틈이 바로 생명의 숨입니다.” 전시장 입구에는 높이 3m 30cm의 대형 신작 ‘Generation–Evoluzione(생성–진화)’가 우뚝 서 있다. 균형과 상승의 조형미를 품은 이 조각은 인간의 성장과 회복을 상징하며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세 개의 구가 세워진 화강암 조각은 무거워 보이지만, 각각 따로 움직이며 아슬아슬한 긴장을 만든다. 대표작 ‘무한 기둥(Colonna Infinita)’은 두 가지 색의 돌을 반복적으로 중첩해 만들어진 수직적 조형물이다. 그가 쌓고, 깨고, 다시 붙이는 행위를 반복하는 이유는 균열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기 위해서다. 번갈아 쌓인 대리석의 줄무늬는 리듬이 되고, 일부러 만든 틈은 해방의 공간이 된다. ◆ 벽의 여백을 본 조각가, 회화를 시작하다 “조각이 공간을 다 채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벽이 비어 보였어요.” 그가 회화를 시작한 이유다. 박은선에게 캔버스는 또 하나의 돌, 또 하나의 조각 재료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보다 던지고, 붙이고, 뜯어내며 조각하듯 회화한다. 이번 전시의 먹화 신작 ‘Untitled’는 수직적 기둥의 형태를 평면에 옮겨온 작품이다. 마(麻)로 짠 캔버스 위에 먹이 자연스럽게 번지며, 물성과 정신성이 교차하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먹의 농담이 번지며 시간의 흔적과 물질의 감각이 교차하고, 돌의 무게가 사라진 자리에는 여백의 차분한 호흡이 남았다. ◆ 이탈리아가 사랑한 한국 조각가 1965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박은선은 1993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카라라 미술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이후 30년 넘게 피에트라산타에 머물며 작업해왔고, 지금은 이탈리아 3대 갤러리 중 하나인 콘티니 갤러리의 전속 작가다. 피렌체, 로마, 피에트라산타 등 주요 도시의 광장에서 개인전을 열며 ‘이탈리아가 사랑한 한국 조각가’로 불린다. 그는 “절벽 끝에 서 있는 듯한 순간이 많았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버티다 보니, 결국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작 ‘무한 기둥’은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2024–2025 한·이 상호문화교류의 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로마 곳곳에 설치되어 국가 간 문화교류의 상징이 되었다. 지난 5월, 대리석 조각의 본산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중심부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 ‘Atelier Park Eun Sun'을 열었다.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설계했으며, 이탈리아에 한국 작가의 이름을 딴 공간이 세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2026년 10월에는 전라남도 신안 자은도에 마리오 보타와 협업한 ‘인피니또 미술관(Infinito Museum)’이 개관할 예정이다. ◆ 치유의 공간에서 빛으로 전시 제목 ‘Spazio della Guarigione’는 ‘치유의 공간’을 뜻한다. 박은선은 단단한 돌의 균열과 틈에 빛을 스며들게 하며 인간 내면의 회복과 성장, 그리고 존재의 숨결을 은유한다. 그의 조각은 멀리서 보면 묵직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가볍다. 돌이지만 움직이고, 소리까지 난다. 무게와 균형, 정적과 동적의 경계가 한 몸 안에서 반전처럼 공존한다. 박은선은 단단한 돌 속에서도 ‘움직이는 생명’을 보여준다. 야외에는 5m 높이의 ‘무한 기둥–증식(2019)’과 ‘무한 기둥–연속(2025)’ 등 대형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가나아트센터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박은선은 “내 작품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숨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조각은 이제 시간의 기록을 넘어, 나눔과 공유로 인간의 존재감을 실천하는 희망의 조각이 되었다. 전시는 2026년 1월 25일까지 열린다. 2025/11/11
‘조용한 진실의 표면’…변웅필 ‘아무렇지 않은 날들’ 하루의 빛이 물감 위로 스며든다. 붓은 천천히 움직이고, 공기마저 멈춘다. 서울 삼청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 걸린 변웅필의 신작들은 조용하지만 고도의 집중으로 빚어진 시간의 표면이다. 그는 스스로를 “특별할 것 없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결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 그 안에는 수천 번의 호흡, 끝없는 반복, 그리고 ‘거짓말하지 않는 회화’에 대한 단단한 신념이 스며 있다. ◆선의 통제, 면의 고요 “선을 남기는 선이 면화(面化)되는 거예요. 얇은 면이 선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죠.” 변웅필의 회화는 선과 면의 경계를 해체한다. 유화의 점성과 두께 때문에 한 번에 그을 수 없기에 그는 수십 번의 반복으로 선을 완성한다. “막 그리는 건 싫어요. 통제하고 싶어요.” 그에게 선은 흔적이 아니라, 수련의 궤적이다. 그의 화면에는 서로를 마주보거나, 가볍게 부비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파스텔톤으로 눌러 앉은 얼굴들은 따뜻하지만 묘하게 긴장돼 있다. 퀴어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그것은 성적 코드라기보다 관계의 온도에 관한 회화적 실험이다. 서로의 경계를 흐리며 맞닿은 얼굴들은 결국 ‘나’와 ‘너’의 거리를 탐색하는 작가의 방식이다. 그 얼굴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다. 변웅필의 인물들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들’이다. 하루를 다 버티고도 여전히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의 초상, 그게 얼마나 묵직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진실의 회화, 노동의 리듬 “화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 뿐이에요.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아야죠.” 변웅필은 붓질하는 사람이다. 화가로서의 정직한 태도는 화면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의 화면은 방향이 일정하고, 얼룩이 없다. 얼룩 하나, 흔적 하나 없는 그의 평면은 진실 그 자체의 표면이다. 매끈한 표면은 우연이 아니라 수천 번의 의도다. 그는 말한다. “화가니까, 내가 만족해야 마감할 수 있어요.” 변웅필에게 회화는 하루의 노동이자 삶의 리듬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하루의 공기와 색을 마주하는 일. 그것이 그에게는 예술이고 생이다. ◆붓질하는 노동자, 장인의 정신 그의 진심은 회화의 태도로 이어진다. 작업실에서 하루에도 여러 개의 붓이 사라진다. “붓 하나로 두 번 못 써요. 다 쓰고 부러뜨릴 때 쾌감이 있어요.” 그 쾌감은 낭비가 아니라 소진의 미학이다. 그는 캔버스도, 나무 액자도 직접 짠다. “짜고 나면 운동 끝난 다음 같은 기분이에요. 내가 작가로서 뭔가를 해냈다는 감정이 들어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일, 손이 닿아야 완성되는 일. 그에게 붓질은 노동이고, 마감은 신앙에 가깝다. ‘그림보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 변웅필은 묵묵히 화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타 작가에서 중견 작가로 성장했지만, 그 발 아래는 오히려 더 단단히 정박돼 있다. ◆아무렇지 않은 것들의 존엄 이번 전시에는 인물과 사물이 함께 등장한다. ‘SOMEONE’이 얼굴이었다면, ‘SOMETHING’은 이름 없는 사물이다. 둘 다 색과 형태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그는 그릇을 구별하지 않는다. 모두가 동등하게 존재하는, 아무렇지 않은 세계다. “변웅필 작가는 4년의 시간 동안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발전시켜왔다.” 호리아트스페이스 김나리 대표는 “이번 전시는 ‘SOMEONE’에서 ‘SOMETHING’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이라고 했다. 전시장 한편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너는 너 대로 나는 나 대로 아무렇지 않은.” “마주 불어오는 바람이 아무렇지 않은.” 변웅필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무심함이 아니라 존중의 상태다. 비교도, 위계도, 욕망도 없이 존재들이 공존하는 세계. 그의 그림은 그 세계의 기록이다. ◆아무렇지 않은 날들의 선언 이번 전시 ‘아무렇지 않은 날들’은 그가 견고하게 지켜온 진실의 회화에 대한 선언이다. 특별하지 않기에 진솔하고, 반복되기에 더 깊어지는 색의 리듬. 그는 말한다. “진짜 별거 아닌 걸로 봐주면 좋겠어요. ‘편하다’, ‘좋다’, 그 정도면 돼요.” 감동을 받든, 비판을 하든, 모두 떠도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의 그림은 관객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보고 싶은 대로 봐요. 그저 보면 돼요. 그것이면 충분해요.” 전시는 12월 6일까지 열린다. 202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