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위험하다"…'자연국가' 최재은 '아름다운 경고' "지구가 위험하다. 바로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늦는다." 숲 회복 'DMZ 프로젝트'를 10년째 이어오고 있는 설치 미술가 최재은(72)이 "지구를 지키는 일에 절실하게 작업하고 있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20일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자연국가'개인전을 연 최재은은 "자연은 인간이 필요 없지만 인간은 자연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며 "자연 생명에 주권을 찾아주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숲이 망가지고 있다. 'DMZ'는 누구의 땅도 아닌 상징적인 공간이다. 생태계가 주인이지 않나. 생명체들과 멸종위기종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게 그들의 주권을 찾아주고 싶다." 작가 최재은은 "그렇다고 계몽가는 아니다"라며 "예술가이니까 작업으로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연국가' 최재은은 누구? 국제갤러리 K2와 K3에서 펼친 최재은 개인전 '자연 국가' 전시는 아름다운 경고다. 조각, 설치, 건축, 사진,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로 생명의 근원과 시간, 존재의 탄생과 소멸, 자연과 인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사유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1970년대 중반 도쿄로 건너간 최재은은 도쿄의 소게츠 아트 센터에서 ‘이케바나(生け花)’의 문법을 수학,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으로 미술에 입문했다. 1985년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가 설계한 소게츠 아트 센터 내 실내 정원 'Heaven'을 13톤의 흙으로 덮고 그 위에 씨앗을 뿌린 '대지(Earth)'를 선보이며 첫 개인전을 개최 주목받았다. 생명의 흐름과 시공간성에 대한 자신의 고유한 철학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이후 1986년부터 시작된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World Underground Project)'를 통해 자연 생명과 순환에 대한 '프로젝트 작업'은 최재은을 상징화 했다. 종이를 오랜 시간 땅 속에 묻었다가 꺼내어 종이에 축적되는 시간의 흔적으로 생명과 순환에 대해 고찰하는 작업은 종이 속 미생물의 소우주를 관찰하는 등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시도로 확장됐다. 특히 2015년부터 진행해 온 '대지의 꿈(Dreaming of Earth)'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DMZ의 숲을 회복하기 위해 전문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 해결 방안과 실천적인 방법론들을 작업의 형태로 구축해 오고 있다. ◆국제갤러리 개인전…자연에 집중한 '숲의 빛과 소리' 이번 전시를 통해 최재은은 ‘숲’의 생명력을 다채롭게 해석해냈다. K2의 1층을 수놓은 '숲으로부터' 회화 연작은 기발하다. 매일 숲을 산책하는 작가의 일상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영어 흘림채로 써 있는데 대화하듯 읽히고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분홍색과 황토색, 옅은 갈색으로 보이는 캔버스는 자연적인 소리가 담겼다. 작가가 거주하는 일본 교토의 동네 숲을 산책하며 주워 모은 낙엽과 꽃잎을 재료로 물감의 안료를 만들고 캔버스에 칠했다. 숲 속을 거닐면서 들었던 바람소리, 새소리, 빗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을 들리는 그대로 음차해 흑연으로 적었다. 'Sar r r r r'(2025)는 늦가을 낙엽이 ‘사르르’ 떨어지는 소리이며, 'Hu u u u'(2025)는 숲 너머의 먼 산에서 들려오는 산울림 소리다. 한글로 '쉿!'도 써 있어 입에 손을 대고 '쉿'하게 한다. K2의 2층 전시장 안쪽에서 만나는 영상 작품 'Flows'(2010)는 명상으로 이끌며 자연에 집중하게 한다. 거대한 고목의 밑동을 느리게 360도 회전하며 17분 동안 보여주는 작품은 거대한 시간의 흐름이 남기는 자연 변화의 움직임을 전한다. ◆10년 간 'DMZ 프로젝트'…"종자 볼 기부 하세요" K3 전시장에는 작가가 지난 10년 간 진행해 온 ‘DMZ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대지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최재은의 DMZ 프로젝트는 '자연국가(Nature Rules)'의 단계로 진입해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생태 회복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작가는 "DMZ 내부의 생태 환경은 애초 가졌던 환상과는 달리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며 "‘생태 현황 분석도’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 남북의 군사적 개입으로 인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 지역의 숲이 파편화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비무장지대의 생태 현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각 구역 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식재의 종류와 양을 정리하는 데만 수 년이 걸렸다. 작가는 여전히 수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비무장지대에 나무 종자를 품은 직경 3~5 cm의 자그마한 ‘종자 볼(seed bomb)’을 빚어 드론으로 뿌리겠다는 야심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회복될 수 있는 이 땅의 미래를 함께 꿈꾸고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작가는 "이번 전시를 보면서 종자 볼 기부를 해 달라"고 바랐다. 말린 꽃잎으로 제작한 병풍 안에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다. 관람객은 작가가 만든 웹사이트에 들어가 DMZ의 지도를 살펴보며 자신이 원하는 구역에 맞춰 ‘종자 볼 기부 약속’을 등록할 수 있다. 100원에 한 개의 종자 볼을 기부할 수 있어 DMZ의 숲을 회복하는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전시는 5월 11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5/03/20
렘브란트 충격→'돌가루 화가' 김근태 '담론' "나는 보이지 않는 사유의 끝을 향해 걸어간다." 젊은 시절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에 빠졌던 그는 '언어의 변화'를 느끼며 항상 변해간다는 것, 그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물 흐르듯이 돌고 '자꾸 변해가는 것', 하지만 또 '변해가는데 그렇지 않은 것'. 그 시작된 지점이 어디일까 궁금해 했던 그는 "일생을 그 부분을 찾아가는 작업에 집중한 것 같다"고 했다. 작품 제목을 ‘담론(Discussion)’으로 지은 이유기도 하다. "오랜 세월 알게 모르게 공부를 해왔는데 '시작 점'은 분명히 있어요. 제 작업을 어떻게 본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그 '시작 점'을 찾아가는 거꾸로 가는 세계에 있는 것 같아요. 몸이 좀 더 젊어지면 좋겠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몸은 자꾸 세월을 지나가고 있지만 정신은 되레 처음 출발점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덤벙 '돌가루 화가' 김근태 "예술은 자신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나이 고희를 넘긴 화가 김근태는 이제야 '수분각위(隨分覺位: 이제 조금씩 되어간다)'라고 했다.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0년대부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담론' 주제로 연작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돌가루와 러버(rubber)를 사용해 직접 제작한 석분 물감으로 작업한다. '돌가루'를 무기로 도자의 표면 같은 ‘숨’ 연작, 유화 물감의 두꺼운 마띠에르로 이루어진 ‘결’ 연작을 만든다. "외국 그림만 멋있다며 우리 것 김홍도, 정선의 그림 가치를 몰랐다. 우리의 도공들, 석공들이 스승이다. 만나 뵙지 못했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드린다." 13일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그는 물감의 흔적만 있는 그림처럼 모호하고 추상적인 언어로 말을 쏟아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담은 것이 그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20번 넘게 밑 칠을 하고 '덤벙 분청'처럼 물감을 쓱 빼내듯 칠한 붓 질은 수행의 선조들인 도공, 석공들에 대한 오마주(hommage)가 담겼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변곡점도 있고 어려움도 많이 있었겠지만 어느 순간에 다 그걸 포용하고 안에서 끌어들이면서 오로지 작품으로만 다 승화 시켰고 만들어낸 것에 대한 감사함, 이 분들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림은 잘 그리는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40대인 1993년 처음 간 유럽 여행에서 본 '렘브란트 자화상'은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을 가했다. "학창시절 이미지로만 봤던 진짜 그림은 에너지가 너무 달랐다. 렘브란트의 충격, 그 감성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유럽의 역사, 지식이 축적된 걸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이건 아니구나. 내 옷은 아니었다는 것을…" "서구 모더니즘에 바쳤던 20년 작가 인생의 붕괴였다"는 그는 "화가는 결국 사람, 사람의 마음을 그리는 존재"라고 자각했다. 3~4년을 그림을 못 그리고 방황하던 시절, 경주 남산에서 알아차렸다. "남산의 유적들을 보면서 아 이거구나. 내가 찾던 것을 알겠더라. 그래서 석굴암을 다시 가봤는데, 가서 보니까 알겠더라. 설명은 못하겠다. 그 당시도 지금도 못하겠지만 알겠더라. 몇 시간 사이에 전체 흐름이 눈에 펼쳐졌다. 3~4개월 만에 이루어진 일로 이후 사비나갤러리 개인전에서 돌 가루 작업이 처음 나왔다. 그때가 1997년이었다." 천 년 전, 이천 년 전 이름 모를 석공이 돌을 다듬어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돌 가루를 물감에 개어 쓰는 방식을 실험했다. 경주 남산의 탑들과 도자기를 관찰한 후, 석분과 접착제를 물감과 혼합하여 분청 사기의 질감을 구현하는 지금의 기술적 방법에 이르게 되었다. 각 작품은 평면의 캔버스를 채우는 붓 놀림의 미묘한 차이와 섬세한 깊이로 구현된 변주와 화음을 통해 무한한 이미지로 그때 그때 탈바꿈한다. ◆'숨결' 순수한 붓질의 감각 "나 답게 살고 싶다. 나 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 젊은 시절 뭔가 항상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았던 걸 비움으로써 '선(禪)의 세계'를 찾은 그는 오직 그리는 행위의 에너지에 몰입했다. 여백인 듯 여백 아닌 듯 화면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붓 질은 그의 '숨'과 '결'로 호흡한다. '숨'이란 제목의 작품들은 주로 화면을 수평으로 분할 하는 백색과 황토색의 매끈한 표면을 가진 연작으로 나타난다. '결'은 분할된 영역 대신 푸루시안 블루, 바이올렛, 흰색, 검은색 등의 단색조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지르는 붓질의 흔적을 강하게 드러낸다. 김근태는 이 두 연작을 묶어 '숨결'이란 덩어리로 묶어 놓았다. "숨을 쉬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강렬한 욕망에 속한다. 숨을 쉬지 않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붓질의 흔적들은 자연스러운 무의식 속에 나온다. 행위의 연속된 시간 속에서 단호한 한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 생각이 들어가는 순간, 붓도 욕망에 취한다. "요즘 그림이 너무 날씬해지는 것은 아닌가? 괜히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 아닌가?" 그래도 이런 마음을 가다듬고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간다. 단번에 스윽~ 숨을 쉬듯 덤덤하게 그리는 이유다. ◆"그림이 좀 모자라면 어때요?" 거친 붓질과 투박한 물감의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여유를 보이는 작품은 서양화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 이번 리안갤러리에서 공개된 물감이 덕지덕지 두꺼운 '검은 그림'(Discussion 130x250cm)과 '하얀 그림'(Discussion 160x130cm)은 '사물의 실체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소동파의 '여산진면목'이 담겼다. "작업실에 인접해 있는 북한산 암벽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다. "암벽은 늘 그렇듯 알 수 없는 세계로 나를 초대한다. 이름 모를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간과 깊이에 숨이 막힌다. 암벽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는 순간, 바람 소리와 구름 한 점이 나를 벗어나게 한다.” 숨 막히는 암벽의 느낌을 물감의 질감으로만 표현한 작품은 시간의 깊이를 새겨 놓은 듯하다. (유화 물감 마르기는 몇 십년이 걸린다. 하지만 밀도감 질감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유화 물감을 그대로 짜 캔버스에 올려놓고 기름기를 쫙 빼서 만든 '검은 그림'은 "안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상태를 더 존중한 마음, 그 암벽의 감흥을 계산 없이 그린 것"이라고 했다. 화면의 표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이 질감은 마치 동양화에서 산이나 암석의 표현할 때 쓰는 '부벽준(斧劈皴)'을 닮았다. 도끼로 나무를 찍어내었을 때 생기는 수직의 단면을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하다. 하지만 그는 "이 또한 부벽준을 의식 한 것은 아니다"며 '회화가 단지 그림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 시킨다. "경험이 많아 다른 것은 안 보려고 하는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 겹겹이 쌓인 것을 한방에 벗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는 작품"이라며 "환하게 진면목이 드러난 자기 모습으로 '그래, 인생이 이런 겁니다. 악수하고 술 한잔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선문답 같은 말을 했다. 무심의 경지에 오른 김근태는 다시 '담론의 세계'에서 소통을 원한다.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변주 되고 있는 '담론'은 이번 리안갤러리에서 초심으로 돌아간 설렘의 감정이 있다. "내 그림을 부닥쳤을 때 어떤 마음일까? 궁금합니다. 그런 의문점을 던져 주는 장치를 한 게 제 그림의 태도입니다.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이게 뭐지 도대체?, 내가 생각했던 건 이거였는데 다르네?, 왜 이게 있지? 왜 하얗지? 두께가 두껍지? 라는 반응을 기대합니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건드리고 같이 호흡하고 싶어요. 제 그림을 보는 분들이 대화하고자 한다면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전시는 4월 30일까지. 2025/03/14
유선태 '동시적 풍경'…추구미는 '화이부동'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림이 조각이 되고, 조각이 그림이 되는 작품. 유선태 작가는 이를 두고 ‘동시적인 풍경’이라고 표현했다. 상반된 개념, 자연과 오브제를 한 화면에 배치하는 ‘동시적 풍경’의 '추구미'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상태다. 두 요소 간의 순환과 조화를 이루는 작업 세계다. '말과 글' 오브제 풍경 작가로 유명한 유선태(67)가 5년 만에 귀환했다. '자연을 담은 오브제, 오브제를 담은 자연'을 타이틀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Space 97’과 ‘공예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회화와 오브제 작품 총 40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말과 글'의 새로운 시리즈인 ‘우연과 필연’을 최초로 공개했다. 유선태의 '동시적인 풍경'은 크게 '말과 글'과 '문'에서 나타나며, 이번 전시에서 두 시리즈 모두 감상할 수 있다. 2006년 시작된 '말과 글'은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저서 『말(Les Mots)』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 지어진 것으로 작가가 우연히 본 창밖 풍경에서 출발했다. "작업을 하던 어느 날 앞뜰의 나무 주위에 나뭇잎이 가득 떨어진 모습을 보았는데 이때 나무에 달린 잎은 '말', 떨어져 낙엽이 된 잎은 '글씨'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잎이 떨어져 거름이 되고 다시 새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말은 글이 되고 글은 다시 말이 된다는 느낌. 이러한 발견 후 말과 글의 관계처럼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을 찾아서 작품으로 옮겼지요." '말과 글' 시리즈에는 대표적으로 책이 들어있다. 책은 인쇄 활자, 즉 글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초기 '말과 글'에서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책은 자연과 가장 대비되는 오브제다. 인간의 곁에 오랫동안 존재하면서 인간에 대한 것들을 기록한 문명의 결과가 책이다. 작품에는 침묵하는 듯이 닫혀 있거나, 때로는 활짝 펼쳐진 채로 날개 단 듯 부유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신작에도 수십 권의 책이 차곡차곡 쌓여 마치 개선문처럼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작가는 "스스로 존재하여 우연적인 자연과 달리 책은 필연적"이라며 "이 작품을 '말과 글', 그 중에서도 ‘우연과 필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newsis_inyoung_left_start:]]]]"각각 우연과 필연을 상징하는 자연과 책을 하나의 화면에서 다룸으로써 약간의 긴장을 만드는데, 이와 동시에 책과 자연은 모두 인간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책을 통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하나의 문처럼 쌓여 있는 책의 기둥들 사이로 자연의 풍경이 보이고 그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통과하며 자연으로 향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두 대상 간의 조화를 이루려는 표현이다. " [[[[:newsis_inyoung_left_end:]]]]유선태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졸업 후 1980년대 초 파리로 건너가 국립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랜 유학기간 동안 동서양의 감성을 절묘하게 혼합한 화법을 고안하며 작업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유학 시절부터 평면과 입체를 동시에 시도한 유선태는 매체의 경계를 허무는 조형 실험을 거듭한 끝에 2006년 '말과 글' 연작을 시작하며 그림과 오브제가 순환하는 작업 세계를 만들었다. "애초에 예술이란 것도 인간이 규정한 것일 뿐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드러냄과 표현만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기성의 관념이나 위계, 범주를 거부하는 작가의 태도가 작업에서 엿보인다. 유선태는 오브제에 풍경을 덧그리기도 한다. 푸른 하늘과 숲이 울창한 풍경이 그려진 첼로, 세계지도 대신 단풍으로 물든 산이 그려진 지구본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전 골동품 오브제를 껴 놓은 작품은 너무 장식적이어서 흠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당당했다. "오브제를 보는 순간 작품이 떠오른다. 나는 뼈 속까지 장식적"이라며 "프랑스 유학시절 벼룩시장에 만난 '골동품'이 작품의 영감이 됐다"고 했다. (골동품)오브제는 '멈추지 않는 시간을 도입한 것"이라는 것.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말과 글'의 ‘온실 시리즈’도 첫 선을 보였다. 자신만의 아뜰리에를 꿈꾸며 ‘나의 아뜰리에’ 시리즈를 그렸던 유선태는 그 희망대로 독립적인 아뜰리에를 갖게 되었고, 이제는 나만의 온실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린다. 시공간을 오가는 작품은 경계가 하나밖에 없는 뫼비우스띠처럼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자연과 건축, 외부와 내부, 순간과 영원, 말과 글, 오브제와 자연물 등이 하나로 엮어진다. 자전거를 탄 작가의 모습은 가로 막힌 것처럼 보이는 두 대상을 오가며, 소녀상이 보고 있는 거울에는 소녀의 얼굴이 아닌 풍경이 비쳐 입체와 평면의 순환이 이뤄졌음이 드러난다. 하나의 풍경에서 또 다른 풍경이 생성되고 중첩되는 건 그의 '쌍둥이 기질'이 담겼다. 본능적으로 또 다른 하나를 항상 생각한다는 그는 화가로, 형은 의사로 살고 있다. 오브제와 그림이 분별이 없는 작품은 마치 입체화 같은 환영에 빠지게 한다. 화려한 색채와 정면승부한 자신감, 식물을 화폭에 부활시킨듯한 붓질의 정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찰나의 순간을 찬란하게 빚는 예술가로서 '끊임없는 호기심'이 식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시는 30일까지. 2025/03/08
"떳떳하다"…'목탄화 끝판왕' 이재삼 자부심 "저도 고흐를 빙자해 먹고 사는 사람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의 답은 의외였다. "고흐가 그 수많은 사람을 제치고 왜 고흐를 이야기하는가. 이전 종교나 귀족, 황제들에 기생하는 게 서양의 미술이었다면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 한 처절한 화가다." '검은 그림' 목탄 작업을 하면서 깨달았다. "학교 다닐 때 봤던 건 예술의 역사가 아니구나. 예술은 한 인간의, 자기 삶에 대한 절박한 절실함이 묻어나느냐, 아니냐에 따른 것이다. 그걸 알면 행해야지." '목탄 회화''선구자 이재삼(65)은 수행자다. 음지에서도 마디 마디 쑥 크는 대나무처럼 반듯하고 흑과 백이 분명한 그림처럼 예술 신념이 확고했다. 주로 소묘나 밑그림에 사용되는 목탄을 회화의 경지에 이르게 한 '밤의 시인'으로도 불리는 그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어떻게 그렸는지 모를 정도로 불가사의한 '검은 그림' 앞에서 그의 비범한 열정을 들어봤다. "과연 나는 재능이 있는가?" 이 화두는 깨우침으로 나아갔다. "대학 졸업 후에 그림은 배우거나 가르쳐서 작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미술계 화단에도 정치판, 사회판이 존재하므로 이 울타리를 넘어서서 초연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 땅에 작가처럼이 아닌 작가로서 산다는 게 무엇인가?" 37세에 혼란스럽게 시작된 고민은 그를 다시, 그림 앞에 앉혔다. "아이들은 유치원 다니고 작업실도 유지해야 하는데…" 그를 치열하게 몰아세웠다. "어떻게 작업을 해야 잊혀지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일까?" 직업의 사춘기가 왔다. "로컬(지역)작가라고 인식하는 시간이 있었다. 세상은 컨템포러리 아트를 만들어 스타를 양성시키고 자국 문화에 대해 현대성을 이야기한다. 어느 날 그것이 내 옷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교때 크레파스, 중학교때 수채화, 고등학교 때 석고데생, 대학 때 개념미술, 대학원 때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말로 작업을 대변하기 바빴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한국 사람이 그리는 한국 회화는 어떨까. 동양화가 아니라…" 그렇게 나이 마흔 줄 '목탄 회화'로 이재삼을 갈아 넣었다. 왜 '목탄 회화'인가. "목탄 회화를 시작하기 이전 5년 간 큐빅 공간을 해석하는 설치미술을 했었다. 당시 버려진 나뭇가지, 썩은 나무에 드로잉을 하는 작업을 했다. 그때 블랙의 미학에 천착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젊은모색전에 전시도 했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말빨이 더 필요했다. 논리와 협업 도 해야 했다. 조수를 써야 하고 기획자, 평론가가 공유되어야 했다. 헤게모니에서 발을 빼니 미술이 보이더라. 내가 해야 할 일이." 명분은 따로 있었다. 한국 화가 자존심이다. "영국 프랑스 미술관 박물관에서 본 오일 페인팅에 질리고 의기소침해졌다. 르네상스 이전까지 물감이 문화이고 중국은 먹이 문화였다." 따지고 보니 "물감도 먹도 재능이나 재주를 보여주기 위한 매체였다." 그는 자유를 택했다. 모든 자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재료를 탐구했다. 온갖 검정색을 위한 흑연, 갈탄, 그렇게 목탄이 다가왔다. "목탄은 일반적인 미술재료가 아니라, 숲의 영혼을 환생시키는 신성한 도구다. '목탄 회화'는 인간 초월의 경지다. 목탄은 바르는 순간 날리는 분진 가루이면서 둔탁한 재료다. "제가 태생이 끙끙 앓느니 아예 죽지 뭐 스타일이다." 목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3년을 칩거하면서 목탄을 회화의 세계로 끌어올렸다. 인물을 표면에 내세우는 목탄의 기법을 승화 시켰다. 왜 '검은 그림'인가. "어느 날, 자연에 대한 것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 왜? 나무를 그리고 싶어하지?" 모든 것은 안에 있다. "제가 강원도 영월 출신이다. 그냥 살아온 게 아니더라. 내 심장, 가슴 밑바닥에 숨어 있던 나무, 숲 병풍이 각인 된 것이 솟구쳐 올라와서 그림으로 나타난 거다." 1960년생으로, 어린 시절은 가로등도 없는 시대였다. "외갓집이 영월에 살았다. 부모님은 이모집이 농사지을 때면 초등학생인 나를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땐 버스가 없으니 10리, 20리를 걸어 다녔다. 일을 마치고 땅거미 지을 무렵에 나와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은 깜깜한 밤, 달밤을 걸었다. 제 어린 시절 그 기억, 그것이 튀어나왔다." 검은 그림 '달빛 녹취록'은 극도의 쾌감이다. "이재삼의 몸에서, 인식의 두께가, 그림의 상상의 두께가 나타났다. 저한테는 운명이고 필연적 목탄의 달빛 정경이다." 편리하고 가벼운 시대에 이토록 어렵게 미치도록 작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newsis_inyoung_left_start:]]]]"내 성향과 내 유전자에 대한 추적이다. 결국은 세상에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던져 놓았을 때 세상이 알아주든 아니든 상관없다. 작가는 최소한의 소명 의식이 없다면 세상이 먼저 안다. 잔머리는 필요없다. 작가는 작가끼리 사짜인지 아닌지 알아본다.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어쩌면 작은 종교 같은 예술 속에서 떳떳하고 싶다." [[[[:newsis_inyoung_left_end:]]]]그는 "형식적인 칭찬이 오가는 전시는 비극적"이라고 했다. "예술은 해야만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사람이 작가다. 그림은 직업인이 아니다. 업보다." 작가로서 예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싫다고 했다. 뒤에 '술'자가 붙는다는 것. "술책, 기술. 그런 부분 보다는 자기의 그 모습에 '끝판왕'으로 가는 사람. 그리고 세상에서 한발 짝 물러나는 사람이 예술가"라는 입장이 단호했다. "작가에게 성공은 없다. 성취만 있을 뿐"이라는 그는 화가로서 자부심이 넘쳤다. "예술가는 세상을 향해 활을 당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 안에 활을 당기는 사람이다. 나는 육체의 주름보다 영혼의 주름에 민감한 작가다." 2018년 제3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다. 칩거와 몰두, 온전히 그림에 내 맡긴 삶. 하지만 그도 흔들린다. "1년에 몇 번 주기가 온다. 암시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로컬리티하다고 (미국)모마 미술관을 가지 말란 법 없지 않나? (그곳에서 전시할 것이라는)그 암시가 없으면 못 산다." 유언 같은 말도 남겼다. "자식한테 부끄럽지 않고 싶다. 내 작품이 쓰레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 화가로서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도리다." "쨍쨍한 태양을 거부하고 칠흑 같은 밤을, 밤의 감성 향수를 화면에 그리는 작가 이재삼입니다." 19일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이재삼 '달빛녹취록 2020-2024'세계가 열렸다. 작가가 지난 4년 간 작업한 결과물을 최초로 공개하는 전시다. 20여 년간 달빛에 매료되어 밤의 풍경을 탐구해 온 그의 예술적 여정이 집약된 '달빛' 연작의 완결판이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몰입감에 말문이 막힌다. '오십 줄에 작정하고 시작한 도전, '구차한 말이 필요 없는 그림'은 웅장함과 동시에 화가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특히 2층에 선보인 달빛과 물안개에 젖은 왕버들나무는 압권이다. 높이 5.4m, 가로 22.7m 캔버스 21개의 압도적인 규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김제 종덕리의 왕버들나무(수령 약 300살)는 달빛과 물빛에 일렁이며 숭고함을 드러낸다. 수백 년 동안 호수나 물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왕버들나무는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집념의 작가 모습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3층까지 개방된 미술관 공간을 활용해 5미터 높이에서도 달을 볼 수 있어 전시장 전체를 달빛으로 감싸는 분위기로 연출됐다. "손으로 만져봐도 된다. (목탄이)떨어지거나 묻지 않는다"며 그는 캔버스 검은 화면을 탕탕 쳤다. 전시는 ‘수중월(水中月)’, ‘심중월(心中月)’, ‘검묵의 탄생’ 3가지 섹션으로 선보인다. 각 섹션은 달빛이 머무는 물, 달빛이 비추는 내면, 목탄을 통해 구현된 검은색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드로잉도 없이 즉흥적 재즈처럼 나온, 헌신의 노동집약적 화면은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예술은 말이 필요없다. 오로지 목탄으로만 풀어낸 '달빛 녹취록'은 '검묵'의 신비함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 물보라가 치는 듯한 폭포의 입체감과 빽빽한 이파리 속 팔색조가 머리를 내밀고, 대나무 숲 속 고양이가 빼꼼 얼굴을 내민 '숨은그림찾기' 같은 재미도 선사한다. 서울 시내에서도 1시간 가량 걸리는 외진 미술관이지만 시간이 아깝지 않게 한다. 압도적인 대규모 회화와 공간적 연출로 몰입도를 극대화한 '진심의 미술관' 경험도 할 수 있다. 전시는 4월 20일까지 열린다. 2025/02/19
명작은 명작끼리 통한다…유홍준 "겸재·추사·윤형근은 K아트 뿌리" "18세기 겸재 정선, 19세기 추사 김정희, 20세기 윤형근. 최고들의 만남이다." 을사년 새해, 유홍준(전 문화재청장·이애주문화재단 이사장)명지대 석좌교수가 기획자로 나선 전시가 눈길을 끌고 있다. 글로벌세아그룹이 운영하는 S2A 신년 기획전으로 4일 개막한 '필(筆)과 묵(墨)의 세계: 3인의 거장'전은 ‘명작은 명작끼리 통한다‘라는 격언의 진리를 보여준다. (S2A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그림 김환기 우주(132억)를 소장하고 있는 김웅기 회장이 2022년 개관한 문화예술공간이다.) 누리끼리하고 거무스름한 그림들, 한자로 도배 된 글씨들로 자칫 올드해 보일 수 있는 전시지만, 시대를 초월한 명작의 힘에 매료된다. [[[[:newsis_inyoung_left_start:]]]]"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형미술은 ‘필과 묵’의 세계다. 이 전시회는 이런 관점에서 한국 회화사를 대표하는 3인 거장, 조선 시대 회화의 겸재 정선, 조선 시대 서예의 추사 김정희, 현대추상 미술의 윤형근의 예술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명하고 감상하고자 이 전시회를 마련했다."(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newsis_inyoung_left_end:]]]]전시 '필(筆)과 묵(墨)의 세계'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장대한 조형 세계를 펼쳐 보인다. 겸재 정선의 '연강임술첩', 추사 김정희의 '대팽고회', 윤형근의 'Burnt Umber' 등 40여 점의 주요 작품이 출품됐다. 특히 겸재의 '연강임술첩'은 10년만에 대중 앞에 공개되는 작품으로 진경산수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정형화된 관념산수(觀念山水)에 머물던 조선 시대 회화의 흐름을 벗어나 조국 산천의 아름다움을 감동적으로 그린 진경산수(眞景山水)의 길을 개척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개성적인 서체로 서예를 높은 차원의 조형 세계로 끌어올린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다. 윤형근(1928~2007)은 우리나라 현대 추상 미술이 추구한 단색조(單色調)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로 세계가 주목하는 K 아트의 선봉에 서 있다. ◆겸재 정선: 사실정신(寫實精神) 겸재가 구사한 필과 묵의 기법은 대단히 섬세하고 다채롭다. 이번 전시에서 10년 만에 다시 공개된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 임술년 연천강에서의 뱃놀이)'과 '서울 백운동(白雲洞)', '평해 월송정(越松亭)', '낙화암(洛花岩)' 등은 겸재 진경산수의 명품들이다. 유 교수는 "겸재 정선은 대상을 정확하게 또는 감동적으로 그렸다"면서 "겸재가 우리나라 산천의 풍광을 포착한 진경산수는 회화의 사실정신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조형세계"라고 했다. 유 교수는 "특히 겸재는 우리나라 산천 곳곳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아주 사랑하여 그의 산수화에서 무리 지어 있는 소나무 모습들이 거의 반드시 나온다"면서 "이 겸재의 소나무 표현법은 중국의 화본에는 나오지 않는 겸재만의 독특한 수지법(樹枝法)이어서 애칭으로 ‘겸재 소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겸재 노년의 명작으로 꼽히는 대작 '연강임술첩'은 놓치면 안된다. 양천현령을 지내던 67세(1742, 임술년) 때 경기도 관찰사, 연천군수 등과 셋이서 임진강(연강)에서의 뱃놀이를 한 뒤 이를 기념하여 모두 세 벌을 그려 나누어 가진 것 중 겸재 소장본이다. ◆추사 김정희: 입고출신(入古出新) 추사의 서예는 개성적이고 다양하다. 특히 추사는 쥐수염 붓인 '서수필(鼠鬚筆)'을 애용해 '살아있는 붓놀림'의 정점을 보여준다. 유 교수는 "필획의 구사로 이루어지는 서예는 그 자체로 추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추사는 옛 비문 글씨의 예서(隷書)체를 적극 도입하여 현대 조형으로서 서예의 세계를 아름답고도 다양하게 전개했다"면서 "추사의 조형 세계는 고전으로 들어가 새것으로 나오는 입고출신의 창작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며 옛날 선비의 글로 설명을 대신했다. 추사의 작품 세계는 간찰(簡札, 편지), 시고(詩稿, 원고), 편액(扁額, 횡액 현판), 대련(對聯, 쌍폭작품) 등 다양한 형식을 띠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각 형식의 대표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유 교수는 "간찰은 본격적인 서예 작품은 아니지만 서예가의 체질적인 서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작품 못지않은 서예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추사의 간찰은 이번 전시에 장년 시절(39세)에 황주목사에게 보낸 편지, 노년의 제주도 유배 시절(55~64세) 제주목사 장인식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 최만년(70세) 과천 시절 석동(石童)에게 보낸 편지 등 4점이 출품되어 추사체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스승인 옹방강의 글씨를 본받아 쓴 '반야심경(般若心經)' 등이 선보여 추사의 작지만 칼 날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글씨 맛을 느낄 수 있다. 서예와 달리 소외 받던 편액이 이번 전시에서는 존재감을 보인다. 전서·예서·행서가 어우러지면서 현대적인 조형이 느껴져 명품으로 꼽혀온 '은지법신(銀地法臣)'과 ‘임금에게 하사받은 책이 있는 서재’라는 뜻인 '사서루(賜書樓)'가 올려다보게 한다. 유 교수는 "사서루는 규장각 선비였던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서재 이름인데 글씨의 대담한 구성으로 일찍부터 추사의 명작으로 꼽혀 왔으며 그 원작품이 전하고 있다"고 했다. 추사의 편액은 나무판에 새겨 건물과 서재에 현판으로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나무에 새긴 편액은 모각(模刻)이 가능하여 추사의 명작들이 많이 복각(復刻)되었다. 이 때문에 나무 편액은 비록 유일품으로 가치를 지니지는 않지만, 오래된 목판 편액들은 추사 글씨의 아름다움과 멋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윤형근:순수조형(純粹造形) "기법적으로 윤형근은 현대 미술에서 ‘필과 묵’, 그중에서도 묵법(墨法)을 가장 극대화한 화가였다." 한국 미술 거장 중의 거장 겸재와 추사 사이에 윤형근을 끼어 넣은 유 교수는 "단색조 회화로 규정된 그의 그림은 '사짜'가 없다"며 윤형근 그림의 진정성을 꼽았다. 윤형근은 BTS의 RM이 좋아하는 화가로도 유명하다. RM이 2022년 발표한 정규앨범 1집 'Indigo'에 윤형근의 육성을 담은 곡 'Yun'을 첫 번째 트랙으로 선보인 바 있다. 윤형근의 작품 세계는 ‘엄버 블루(Umber-Blue)’로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단순한 그림이다. 면포(또는 마포)에 다색(Umber)과 청색(Blue, 또는 Ultramarine)을 섞어 큰 붓으로 푹푹 찍어 내려 그으면서 화면을 분할했다. 면포와 물감사이에 나타나는 그 미묘한 번지기로 순수 추상 미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청색은 하늘을, 다색은 땅을 상징하여 윤형근 자신은 이를 ‘천지문(天地門)’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45년 전인 1979년, '계간미술' 기자로 근무할 당시 윤형근을 취재하며 만났던 설(說)을 풀었다. [[[[:newsis_inyoung_left_start:]]]]"당시로서는 크게 유명한 화가도 아니고 그의 작업은 난해한 추상화의 하나로 생각되어 「오늘의 작가 연구」란에 소개하는 글을 쓴 것이다. 그때 윤형근의 언급 중에 좀 심한 비약이다 싶기도 한 것과 심한 자화자찬 같다고 생각되기도 한 것 두 가지는 내 글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지금 와 되새겨 보니 그것은 윤형근 예술의 뿌리를 말하는 중요한 예술적 고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한 것은 추사체에 대한 그의 언급이었다. “내 붓질의 뿌리는 추사 김정희에 있어요. 추사의 필, 정확하게는 획을 긋는 법에서 배웠다오." 그때 나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추사의 필획과 윤형근의 ‘엄버 블루’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윤형근은 정말로 추사에 매료되어 있었다. 윤형근이 추사에 심취하게 된 과정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추사체에서 영향받은 것이 진심이었음을 누누이 말해왔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의 화실엔 추사의 나무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유홍준)[[[[:newsis_inyoung_left_end:]]]]또 하나는 자신의 장인이기도 한 수화 김환기(1913~1974)와 비교해 말한 것이었다. 유 교수는 당시 윤형근이 “장인어른에게 작업한 것을 보여드려도 좀처럼 칭찬을 듣지 못했는데 내가 현대 문학에 ‘엄버블루’로 표지화 그린 것을 보고는 처음으로 내 작업을 칭찬했어요.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셨죠. 그때 이후 수화 어른은 하늘을 그렸지만, 나는 땅을 그릴 것이라고 말했죠"라고 했는데 "그때는 윤형근이 아직 유명한 때가 아니어서 장인의 명성을 빌려서 자신을 지나치게 미화시켜 말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윤형근의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유 교수는 윤형근의 추상 미술은 필과 묵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며 최대한의 조형 효과를 나타내는 순수 조형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자리에서 대련하는 3인 거장의 작품은 ‘필과 묵’의 세계가 아름답고, 신비롭고, 다채롭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게 한다." 작품 설명을 하던 유 교수는 작품마다 '멋있다'는 말을 연신 쏟아내며 녹슬지 않은 입담을 자랑했다. 18세기, 19세기 20세기 최고의 화가들을 한자리에 만나게 한 그는 자신은 '21세기 최고의 해설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세상이 물구나무 서도 문화는 문화 그대로 가야 한다"며 혼란한 시국 속에도 전시를 열고 관람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3인의 거장을 묶은 이번 전시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예술 세계가 혼연히 어울리는 감동이 있다"며 "감히 말하자면 이는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K 아트의 뿌리"라고 자부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오는 8일, 22일 유홍준 교수의 강연이 열린다. 유 교수의 작품 설명은 흥미진진하고 유익해 오래된 그림들이 생기를 띠고 마무리 시간이 되면 한국 미술의 힘을 절로 느끼게 한다. 전시는 3월22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5/02/05
면에서 선으로 빛으로…광활하고 찬란한 김병호 '탐닉의 정원' 부풀어 오른 듯한 촘촘히 맺힌 금속 타원구들이 은빛 풍경을 광활하게 흡수하고 찬란하게 내뿜는다. '57개의 수직 정원'은 그야말로 풍요로운 입체미로 탐미주의자의 취향을 보여준다. 26일 아라리오 서울에서 개막한 조각가 김병호(50)의 개인전 '탐닉의 정원(Lost in Garden)'은 금속 정원수들이 가득한 '기계정원, 미래의 공간'처럼 보인다. 반사하고 흡수하며 '그림자 미학'까지 더해 '3D 공간'으로 연출되고 있다. 금속 모듈을 재료 삼아 심미적 조형이 돋보이는 김병호의 작품은 기하학적 미감이 화려하고 웅장하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3개 층에서 여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대표작과 신작을 포함하여 다양한 규모의 조각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우거진 숲을 다듬어 인공 정원을 가꾸듯 꾸려진 작품들은 빼곡히 돋아난 '빛 점의 집합체'다. 주위의 광원을 반사하는 찬란한 금속 타원구들이 시선을 사로잡고 부피를 확장한다. 면에서 선으로, 더욱 커다란 점으로 나아가 부피를 부풀려 유려한 정경을 만들어낸다. 지하 1층에 가로 놓인 '수평 정원'(2018)은 은 천장부로부터 늘어뜨린 가는 줄에 거대한 몸을 맡긴 채 공중에 뜬 모습으로, 바닥면에 드리운 다채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1층에 전시한 두 개의 형태로 구성된 회전형 기계 형태의 작품 '두 개의 충돌'(2024)도 회전하면서 그림자 미학을 전한다. 거울 같은 은빛과 흑연 같은 먹빛의 표면을 지닌 두 모듈이 각자의 회전축을 중심 삼아 상반된 방향으로 돌아간다. 작가는 금속 타원구 형태의 조각들을 ‘문명의 혹’이라고 부른다. 섬세하게 계획된 설계 도면에 기반하여 철저히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 속에서 진행되는 김병호의 작업 과정은 현대 사회의 일면을 투영한다. 작업과정은 '평면의 부활'이다. 재단된 종이 위 드로잉과 설계도로부터 정제된 금속의 단면에 이르기까지, 김병호의 기계 정원 속 입체는 모두 규격화된 평면으로부터 일어선다. 납작한 철재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원통형 획으로서 가공되고, 그 뚜렷한 금속 선의 끝자락마다 둥근 구의 형상이 숨처럼 차오른다. 곡면의 기하학적 구성을 펼쳐 놓은 '정원의 단면'(2024)은 면의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다. 두께를 지닌 금속 판을 각기 다른 곡률로 구부려 정교하게 결합한 조각의 몸체는 장소 안에 우뚝 서거나 가로 누운 자세로 유기적 자연의 풍경을 품어낸다. 검은 피막을 입은 잎사귀 형태의 단면들이 조형성을 강조하는 한편, 매끈하게 연마된 윤곽부의 가느다란 선이 본연의 재질을 내비친다. 특히 형태의 능선을 타고 흐르는 조명의 빛은 가공된 재단 면 모서리에 이를 때마다 섬광처럼 가파르게 선명해진다. 가공된 세계의 유려한 미학을 발휘하는 김병호의 조각들은 '물신주의적 사회의 양면적 초상'이다. 황홀하게 빛나는 수백의 점들, '문명의 혹'이 드러내는 탐미적 욕망은 냉소와 찬미의 태도를 동시에 표방한다. 국내 화랑가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조각 전시로, 낯익은 듯 하면서도 신선하고 완벽한 마감으로 눈길을 끈다. 전시는 2025년 2월8일까지. 관람은 무료. ◆조각가 김병호는? 200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후 2002년부터 예술공학을 연구했다. 2004년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청남대 호수영미술관(청주, 2024), K11 미술관(선양, 중국, 2022; 우한, 중국, 2023), WWNN(서울, 2023), 아라리오갤러리(서울, 2011; 천안, 2013; 상하이, 2018), 소마미술관(서울, 2010), 프랑크푸르트 문화부 스튜디오(프랑크푸르트, 독일, 2009)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제3회 지난국제비엔날레》(2024), 《전남수묵비엔날레》(2023),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2023),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2021),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2014), 《징안국제조각프로젝트》(2012) 등에 작품을 선보여 주목 받았으며 포항시립미술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캔파운데이션, 경주솔거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포스코미술관, 사치갤러리(런던, 영국) 등이 연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한국), 아모레퍼시픽미술관(한국), 프랑크푸르트시 문화부(독일), 서울대학교미술관(한국), 아라리오뮤지엄(한국), 정부종합청사(한국), 상해 판롱천지(Panlong Tiandi, 중국), 뉴월드 개발 유한회사(New World Development, 홍콩), 현대자동차(한국) 등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5년 홍콩 및 중국 선전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2024/12/26
[2024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 낙찰률 46%…5년 만에 최악 올해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이 지난 5년 간 대비 최저치로 급격히 냉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 매출 규모가 작년의 약 75% 수준으로 불황기였던 2020년 수준인 약 1151억 원에 그쳤다.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이사장 김영석)와 아트프라이스(대표 고윤정)가 발표한 '2024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연말 결산'에 따르면 2024년 미술품 경매 낙찰총액 약 1151억원으로, ‘2023년 약 1535억원, 2022년 약 2360억원, 2021년 약 3294억원, 2020년 약 1153억원’ 등 지난 5년간 비교할 때 최저 수준이다. 국내 미술품 경매사 10개 경매사(서울옥션, K옥션, 마이아트옥션, 헤럴드옥션, 아이옥션, 라이즈아트, 에이옥션, 칸옥션, 컨티뉴옥션, 토탈아트옥션)에서 1월부터 12월 말까지 진행한 온·오프라인 경매의 분석결과다. 낙찰총액, 출품작, 낙찰작, 낙찰률, 개인 낙찰총액 등 전 부문이 지난 5년 간 대비 최저 수준으로 집계됐다. ▲총 출품작은 2만2934점, ▲낙찰작 1만641점, ▲낙찰률 46.4%로 지난 5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던 2023년도 수치보다 더 낮은 낙찰률과 낙찰 작품수를 기록했다. (2023 총출품작 2만7814점 낙찰 1만4238점 낙찰률 51.2%, 2022 총출품작 3만985점 낙찰 18,468점 낙찰률 59.6%, 2021 총출품작 3만2955점 낙찰 2만2235점 낙찰률 67.47% / 2020 총출품작 3만276점 낙찰 1만8349점 낙찰률 60.61%) ▲낙찰총액은 김환기가 약 73억 7480만원(낙찰률 약 64.71%)으로 1위 자리를 되찾았지만, 작년 대비 약 50% 수준에 그쳤다. (지난 낙찰총액 1위는 2023 이우환 약 134억6555만원, 2022 쿠사마 야요이 약 276억7436만원, 2021 이우환 약 394억8770만원, 2020 이우환 약 149억7000만원) 반면, 단일 작품 최고가 기록은 2023년 이례적으로 등장한 조선백자를 제치고 김환기의 50억 원이 차지했다. (지난 최고 낙찰가 1위는 2023 백자청화오종룡문호 70억, 2022 쿠사마 야요이 64억2000만원, 2021 쿠사마 야요이 54억5000만원, 2020 쿠사마 야요이 27억8800만원) 2023년은 세계적으로 20점 내외의 희귀한 보물급 유물들이 출품되어 시장을 주도했었다. 특히 고가의 조선백자와 전통 예술품이 다수 낙찰되며 고미술 중심의 특별한 시즌을 보였다. 하지만 올해엔 단색화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다시 전개되어, 이전과 유사한 현대미술 중심의 분위기로 전환됐다. 각 항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매사별 총 거래량 및 낙찰률 올해 경매사별 낙찰총액 1위는 서울옥션이 약 481억원을 기록하면서, 약 436억원을 기록한 K옥션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2023년에 1위의 자리를 내주었던 서울옥션이 다시 정상에 올랐다. 연간 평균 낙찰률에선 서울옥션 49.5%가 K옥션 42.7%를 소폭 앞질렀다. 한편, 낮은 거래량 대비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것은 경매 진행 속도를 조절하여 경쟁을 유도하는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되지만, 이러한 방식은 시장의 신뢰도와 효율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024년 경매사별 비중도 경매사별 상위 5순위 비중도를 살펴보면, ‘서울옥션 41.76% → K옥션 37.81% → 마이아트옥션 11.83% → 아이옥션 3.4% → 라이즈 3%’순이다. 특히 상위 2순위 메이저 경매사들의 합산 비중이 80%으로, 2022년의 85%와 비슷하다. 그러나 메이저 경매의 비중이 적었던 2023년에 비해 다소 늘어난 점은 어려운 경기에 대형 경매사 의존도가 높았음을 보여준다. ◆2024년 국내 미술품경매 낙찰가격 30순위 낙찰총액 30순위 작가 중 생존작가는 16명으로, 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단색화 위주의 작가들 비율이 낮아지고 다양한 성향의 작가와 작품이 고르게 편성되었으나, 올해는 상위 10위 안에 단색화 작가의 비중이 높아지고, 지속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안정적 투자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30순위 내에 한국의 생존작가는 12명이고, 이 중에 2위 이배 작가가 큰 두각, 40대는 우국원과 김선우 2명이다. ◆장르별 비중도 현재 미술품 경매에서 장르별로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과 같이 70% 이상을 차지한 회화 부문이다. 판화까지 합쳐 약 80%가 평면 장르였다. 작년과 비교하였을 때 드로잉은 (3→5%), 서예(3→4%)로 소폭 상승했다. ◆KYS 미술품가격지수 국내 작가 중 낙찰총액 3순위 ‘김환기-이우환-이배’에 대한 ‘KYS미술품가격지수’를 비교해 보면 캔버스 작품 기준 호당가격 순위는 ‘김환기-이우환-이배’ 순이다. 이 중에 호당가격이 가장 높은 김환기의 가격지수를 ‘100’으로 기준하면, 2위 이우환은 ‘75.07’, 3위 이배는 ‘6.11’로 나타났다. 결국 작품의 호당가격을 기준으로 한 KYS 지수는 전체 작가에선 여전히 김환기가 1위이고, 생존작가 중에는 이우환이 비등하게 2위를 차지했지만, 3순위부터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특정 작가 의존도의 쏠림현상이 지나친 상황임을 보여준다. 1위 김환기 작품은 크게 구상과 비구상 성격의 작품으로 시장 선호도가 달라지는데, 지난 2005년부터 현재까지 19년간 주제별 평균 호당가격은 구상 약 3740만 원과 비구상 약 1310만 원으로 여전히 구상 작품이 높았다. 단색화 열풍 이후 최근 작품들로 비교하면 구상과 비구상 호당가격 차이는 크게 줄어들었다. 2순위 이우환 작품의 시장 선호도는 시대순에 따른 표현 기법으로 달라지는데, ‘점→선→바람→조응(다이얼로그 포함)’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세부적으로는 ‘점 시리즈 약 2200만 원, 선 시리즈 약 1900만 원, 바람 시리즈 약 780만 원, 조응(&다이얼로그) 시리즈 약 470만 원’ 선이다. 3순위 이배 작품도 시리즈에 따라 다르다. ‘무제 시리즈 약 60만 원, 불로부터 시리즈 약 170만 원, 붓질 시리즈 약 230만 원’ 등으로, ‘붓질’ 시리즈가 시장의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2024/12/19
'화가의 방' 남경민 작가, 덜어내고 '내면의 풍경으로' "가급적 덜어내고 빼면서 조금은 가벼워지는 작업을 시도했다." 지난 2022년 이화익갤러리에서 7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스타 작가의 열정을 다시 보여준 화가 남경민(55)이 평화로워졌다. 2년 만에 발표한 '화가의 방' 신작은 비움의 미학으로 깊어진 면모를 보인다. 특히 '미티스의 연주하는 여인들' 작품은 밝은 색으로 화려하던 이전과 달리 갈색톤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사유의 세계로 이끈다. 이전 그림 화면의 공간에 가득 찬 구성이 단순화됐다. 작가를 상징하는 중요 오브제인 해골, 날개, 투명병 등의 물체들도 단순하게 배치됐다. 작가는 "내면의 흐름을 상징하는 나비도 적은 수로 공간의 적막감과 고요하고 차분하면서도 평화로운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전엔 화면에 가득하던 오브제와 사물들도 빠져 고즈넉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강조되고 있는 신작 전시가 서울 청담동 갤러리 라루나에서 열리고 있다. '초대받은 N – 내면의 풍경으로' 타이틀로 구작을 포함해 22점을 선보인다. '마티스의 여인들'을 비롯해 반 고흐 '고흐의 방'과 '아를르 침실'도 눈길을 끈다. '고흐의 방'은 남경민 작가의 '내 영원한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 중 가장 애착과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13년 만에 해바라기가 있는 '고흐의 방4'를 그리게 되었다"는 작가는 "고흐의 방 시리즈를 십 수년 만에 다시 그리게 된 것은 세월이 흘러도 내 안에 있는 간직되어있는 고흐의 영적인 에너지를 다시 꺼내어 교감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적막했던 이전 침실과 달리 평온한 분위기가 감돈다. 어두운 문과 대비되는 환한 방안에 활짝 핀 노란 해바라기 꽃을 중앙에 배치했다. 고흐를 추앙하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newsis_inyoung_left_start:]]]]"한 없이 쓸쓸하면서도 한 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졌을 적막하기만한 그의 낡은 작업실. 그의 작은 숨소리가 나는 듯한 생명감이 살아있는 고흐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이 공간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가 죽어서 되찾은 명성에 가장 날개를 달아 준 해바라기그림은 고흐가 가장 많이 병적일 만큼이나 반복적으로 그렸다. 레이저로 살펴본 고흐의 해바라기작품은 어찌나 빠른 터치로 순식간에 그렸는지 그의 깊은 몰입이 광적일만큼 빠르게 표현된 그림이여서 걸작으로 꼽힌다 하던가. 정신병이 집 안 내력이어서 맑은 정신이 늘 아니였기에 언제 정신착란을 일킬줄 몰랐던 스스로를 인지했던 고흐. 정신이 맑은 상태일 때 그 순간을 놓치지않기 위해 캔버스위에 해바라기를 빠른 붓터치로 그리는 그의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더 애닳은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나는 몰입과 집중력이 떨어질 때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들여다보곤한다. 고흐에 대한 시공을 초월한 서양의 선대의 선배화가의 쓸쓸함과 나의 애잔한 마음을 이 그림에 담아내고 싶었다. 고흐의 순수한 영혼이 나비로 승화되고 있다."(화가 남경민)[[[[:newsis_inyoung_left_end:]]]] '고흐의 아를르 침실'을 2017년 이후 두 번째로 그려낸 작가는 고흐 내면의 담담한 의지를 느껴 먹먹해졌다고 했다. '아를르의 침실'은 고흐가 고갱을 아를르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하여 창작 생활을 같이 하기로 하고 꾸민 방이다. 남경민 작가는 이 그림 방 안의 창 밖에 '겨울 풍경'을 그려 넣었다. 고갱과 다툼 후 귀를 자르고 처절하게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그의 심경이 자연 속에서 고요한 평화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과 붕대를 감은 고흐의 자화상을 형형한 눈빛으로 담아 전설적인 화가의 자존심을 살렸다. 부드럽게 조우하는 파스텔톤 분위기로 방안은 평온한 에너지가 감돌고 있다. 한편 갤러리 라루나는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가 2022년 설립된 갤러리로 웹사이트의 온라인 가상 전시관과 서울 청담동 갤러리에서 온오프라인 전시를 동시에 개최하고 있다. 갤러리는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각기 다른 공간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상전시는 희림이 보유한 VR 기술로 만들어져 마치 실제 전시장에 설치된 것과 같은 현장감을 준다. 스마트폰, 노트북 등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전시에 접속할 수 있다. VR 전시관은 도슨트의 해설과 작가 정보를 제공한다. 이번 남경민 개인전 VR 전시관은 작품에 등장하는 정원을 모티브로, 총 5개의 전시실과 1개의 미디어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남경민 작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나비를 조명한다. 관람객이 작품을 자신의 공간에 배치해볼 수 있는 재미도 선사한다. 전시는 2025년 1월24일까지. 2024/12/05
허공에 멈춘 시간·흔들리는 산…빌 비올라가 전하는 '움직이는 고요' 초록 연못을 한 동안 보고 있던 남자가 얍 소리와 함께 뛰어 오른다. 그런데. 허공에 그대로 멈췄다. 무언가 잘못되었나 싶은 순간 일렁이는 물결이 알려준다. 화면은 계속되고 있음을. 결국 남자는 물 속에서 알몸으로 나와 다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옛날 영상 기법으로 촌스럽기도 하지만 보고 난 이후는 달라진다. 물 세례 받은 듯한 정화의 감정이 일렁이는 물결에 반사된 빛과 시간을 의식하게 한다. 흔들흔들…삶이란 순환이라는 것을. 빌 비올라가 1977년 제작한 'The Reflecting Pool'은 그의 트라우마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 호수에 빠져 거의 익사 할 뻔한 찰나의 순간에 목격한 수면 아래에서 빛과 아름다움은 이후 그의 작업 세계에 초월적인 차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1979년 선보인 'Moving Stillness: Mount Rainier' 영상은 일렁거림의 극대화를 보여준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스크린에 투사 되는 산의 이미지가 화면 바로 아래의 물 웅덩이에 반사되는 구조다. 물 표면의 일렁임에 따라 산의 모습도 함께 흔들린다. 오색 빛깔로 반짝이며 ‘흔들리는 산’의 모습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잠잠해지며 안정을 되찾는다. 정적이고 단단한, 시간의 기념비로서 존재하는 산을 취약하고 불안정한 이미지로 제시한 빌 비올라는 이미지로서의 산이 갖는 안정감의 함정에 대해, 또 한편으로는 시간의 축적이 건네는 안식에 대해 되짚어볼 수 있게 한다. 빌 비올라(Bill Viola). 지난 7월, 73세로 타계한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의 추모전 같은 전시가 국제갤러리에 마련됐다. 국제갤러리에서 네 번째 개인전이자 작고 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이 전시는 빌 비올라의 명상적인 작업 세계를 다시 보게 한다. 영상 설치 및 영상 작품 7점을 선보인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한 작품 당 10~30분 정도 소요되는 비디오 영상은 연말 연시 성찰의 시간과 묵상할 수 있는 전시로 제격이다. 1951년 뉴욕에서 태어난 빌 비올라는 지난 50여 년간 비디오아트를 현대미술의 주요 장르로 확립하는 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회화와 뉴미디어, 인지심리학, 전자 음악을 수학하고 미국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1973년 실험적 스튜디오(Experimental Studios) 학과의 학사 학위를 받았다. 강렬한 영상 설치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비올라는 영상 기술을 통해 인식, 인지, 자아 성찰의 다양한 방식을 실험해왔다. 자신의 영상을 '주관적 인식의 언어로 기술한 시각적 시(詩) 내지는 우화'라고 표현하기도 한 그는 불교의 선종, 이슬람의 수피교, 기독교의 신비주의와 같은 영적 전통에 기반을 둔 영상 언어를 특징으로 삼아 심도 깊은 휴머니즘과 내면의 초월적인 비전을 감각적으로 구현했다. 2004년 그리스 올림픽에 초청받아 커미션 작업을 선보였고 2014년, 2016년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위한 두 점의 작품 'Martyrs (Earth, Air, Fire, Water)'와 'Mary'를 제작했는데, 이는 영국 내 성공회 성당에 최초로 영상 작품이 영구 설치된 사례다. 1989년 맥아더 재단 펠로우십(MacArthur Foundation Fellowship), 1993년 스코히건 훈장(Skowhegan Medal), 2009년 XXI 카탈루냐 국제상(XXI Catalonia International Prize), 2011년 일본 미술 협회의 프레미움 임페리얼(Praemium Imperiale from the Japan Art Association) 등을 포함해 수많은 수상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빌비올라 개인전 'Moving Stillness(움직이는 고요)'전시는 2025년 1월26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2024/12/03
신안군은 '숨결의 지구'…박우량·올라퍼 엘리아슨 '예술로 통한 뚝심' "와서 보면 꼭 사진관에서 조명을 켠 것 같은 느낌이 나요. 정말 환상적인 공간입니다. 하늘이 뚫려서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천재적인 작가는 다르구나 느꼈어요."(박우량 신안군수 ) "천재는 아닙니다. 하하~ 첨언을 하자면 천장이 뚫려있는 것에 대해 군수님이 말씀하셨는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변화는 예측 가능한 것에서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함께 했던 팀원, 강형기 예술감독도 예술의 힘을 믿어주셨습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적으로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올라퍼 엘리아슨) "작가의 말은 너무 철학적이어서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시골 군수와 "예측불가능성의 예술의 힘"을 진지하게'설파하는 세계적인 설치작가의 사고의 차이는 컸지만 '공동체 의식'을 함께 한 열정은 예측된 세상을 바꾸고 있다. 15일 '1섬 1뮤지엄'을 추진하고 있는 신안군 박우량 군수가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서울 미술기자단과 만나 예술섬 프로젝트의 첫 완공 작품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 작품 설명회를 열었다. 박 군수는 신안군청 직원들과 보라색 자켓을 함께 입고 와 서울에 '움직이는 퍼플섬' 인지도를 강화했다. 지난 13일 수국의 섬으로 유명한 신안군 도초도에 개관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는 도초도의 생태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대지의 미술관'으로 탄생됐다. 4년간 총 사업비 47억 원이 투입되어 가장 먼저 완성된 이 작품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참여한 신안군 '예술섬 프로젝트'의 실체를 드러내 주목된다. ◆올라퍼 엘리아슨 '숨결의 지구' "지구를 위해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대지를 위한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건 진보적인 방법"이라며 "이번 작업을 하면서 무감각하고 둔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민감해지려고 노력했고 도초도를 방문하면서 주민들의 열정과 행복해 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예술의 의미와 공동체 의식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주민들은 엘리아슨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팔목에 이름을 적고 외우며 지인들에 엘리아슨을 알리고 작품에 기대를 했다고 한다. 엘리아슨은 1997년부터 설치,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덴마크관 대표작가로 참여했고, 같은 해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 홀에 '날씨 프로젝트'를 설치하여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왔다. 2022년에는 카타르 도하 외곽 사막의 섬세한 생태계에 주목한 거울 파빌리온의 군집 '한낮의 바다를 유영하는 그림자들'을 공개했다. 2023년에는 일본 황실로부터 프리미엄 임페리얼 상을 수상했다. UNDP 굿윌 기후 행동 친선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PKM갤러리(대표 박경미)가 전속으로 엘리아슨을 지원 홍보하고 있다. 도초도에 설치한 '숨결의 지구'는 과거 화산 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도초도의 독특한 지형에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 자연의 흐름과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작품으로 자연의 생명력과 자연의 에너지를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직경 8m의 공모양 구조물로 입구는 어두운 동굴처럼 시작된다. 이어 안으로 들어서면 이탈리아산 용암석 타일로 붉은 색과 녹색이 정교하게 구성되어 찬란한 햇빛을 반사하며 입체감을 연출한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과 공간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엘리아슨은 "지구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인간으로서 지구를 존중하려고 했다"며 "보는 방법을 배우는 명상적인 효과로 성찰하는 순간 지구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는 예측가능성의 아트지만 아트는 예측불가능성의 정치"라는 독일의 비스마르크의 말을 인용하며 "지금 현재 기후와 관련해서 매우 불안정한 시대에 살고 있다.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자연도 인간도 모두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상대적인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구 안에 들어가면 바닥도 천정도, 지평선도 없다. 지구의 자궁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지구의 숨결을 느끼면 된다." 신안군 예술섬 프로젝트 강형기 총감독은 "연꽃잎이 대지에 떠 있는 형상인 '숨결의 지구'는 자연의 에너지를 급속충전할 수 있는 곳"이라며 "340만평 땅에 설치되어 주민들의 경작 작물을 심는 삶과 일상이 뮤지엄을 형성하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코 뮤지엄"이라고 자부했다. ◆"1섬 1뮤지엄" 진짜 실천하고 있는 박우량 신안군수 "예술섬 프로젝트는 살아 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전국 민선자치단체에서 보기 힘든 '1섬 1뮤지엄' 문화관광정책을 펼치고 있는 신안군 박우량 군수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신안군을 살리고 알리기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돈키호테형 스타일이다. 서울의 22배 크기 지만 인구 소멸 지역 1위이자 전국 재정자립도 최하위권인 신안군을 '살고 싶은 섬'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마늘, 대파, 양파 농사 짓는 게 다가 아니다"라며 "문화예술이 꽃 피는 섬으로 만든다는 '1섬 1뮤지엄' 정책은 '생존 경쟁'에서 시작됐다. 특히 올해 보라색으로 물든 반월·박지도의 '퍼플섬'은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이런 가운데 '꼭 올 수 밖에 없는 곳으로 만들려면 세계적인 유명한 작가들의 뮤지엄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는 목표로 세계적 예술가가 참여하는 미술관을 짓고 있다. 박 군수는 27개 사업 계획 중 현재 17개를 완성하고 11개를 만들어가고 있다. 김환기 화백의 고향인 안좌도에는 일본의 야나기 유키노리가 참여한 물 위에 떠 있는 미술관을 건립 중이다. 자은도에는 2026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박은선 조각가와 건축의 거장 마리오 보타가 공동으로 설계한 인피니또 미술관을 짓고 있다. 비금도에는 영국 출신 조각가 안토니 곰리가 바다의 미술관을 조성, 내년 완공할 예정이다. 박 군수는 "시골에서 추진하는 일로 영어도 안되고 직원들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고 최고의 퀄리티를 요구하는 세계적인 작가와 팀들의 생각에 대해 편차가 커 어려움이 많다"면서도 "이번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설치로 한 단계를 넘어섰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에 뿌듯하다"고 했다. "하늘이 뚫려서 유리나 천막을 씌울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작가님이 지구의 숨결을 느끼려면 비를 맞게 하고 눈을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길래 어떻게 하나, 비가 고일 텐 데, 걱정했는데 배수로가 있더라고요, 비도 눈도 녹아서 빠져 나가요. 하하하" 박 군수는 "숨결의 지구에 들어가면 사진관에서 나한테만 조명을 켠 것 같은 느낌"이라며 "화사한 타일과 어울려 공간안에서 정말 환상이어서 정말 감탄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한 음악 선생님이 그곳에서 첼로 연주를 했는데 스피커가 없는데도 공명이 울리는 게 더욱 환상적이어서 개막식에 공연을 해볼까 기획했었다는 박 군수는 "'지구의 숨결인데 조용하게 들어야지 무슨 첼로냐'는 주변의 지적에 공연 예약도 취소하고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 박 군수는 "드디어 '숨결의 지구'가 지난 6년 간 준비를 마치고 그제 준공을 마치고 서울 기자들에게 설명회를 하고 있다"며 "전국에서 제일 열악하게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제적인 아티스트를 모셔 노력하고 있는 점 이해해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예술섬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강조했다. "천사의 섬 신안군은 신재생 에너지가 되면서 전 바다가 중동의 기름보다 황금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는 박 군수의 열정과 자부심은 성공적인 '1섬 1뮤지엄'의 자신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는 신안군 예술섬의 '숨통'이 되고 있다.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가의 작품 설치로 신안군 도초도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잇단 작품 설치 기획으로 '1004섬 신안군'이 '예술섬'으로 '꼭 가볼 수 밖에 없는 미술 여행지'이자 동아시아 예술 중심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한편 도초도에 설치된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는 오는 25일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신안군은 예약을 받아 한 명씩 입장해 5분 간 감상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도초도는 2300명이 살고 있는 섬으로 목포에서도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들어가야 한다. 202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