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은 '숨결의 지구'…박우량·올라퍼 엘리아슨 '예술로 통한 뚝심' "와서 보면 꼭 사진관에서 조명을 켠 것 같은 느낌이 나요. 정말 환상적인 공간입니다. 하늘이 뚫려서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천재적인 작가는 다르구나 느꼈어요."(박우량 신안군수 ) "천재는 아닙니다. 하하~ 첨언을 하자면 천장이 뚫려있는 것에 대해 군수님이 말씀하셨는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변화는 예측 가능한 것에서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함께 했던 팀원, 강형기 예술감독도 예술의 힘을 믿어주셨습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적으로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올라퍼 엘리아슨) "작가의 말은 너무 철학적이어서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시골 군수와 "예측불가능성의 예술의 힘"을 진지하게'설파하는 세계적인 설치작가의 사고의 차이는 컸지만 '공동체 의식'을 함께 한 열정은 예측된 세상을 바꾸고 있다. 15일 '1섬 1뮤지엄'을 추진하고 있는 신안군 박우량 군수가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서울 미술기자단과 만나 예술섬 프로젝트의 첫 완공 작품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 작품 설명회를 열었다. 박 군수는 신안군청 직원들과 보라색 자켓을 함께 입고 와 서울에 '움직이는 퍼플섬' 인지도를 강화했다. 지난 13일 수국의 섬으로 유명한 신안군 도초도에 개관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는 도초도의 생태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대지의 미술관'으로 탄생됐다. 4년간 총 사업비 47억 원이 투입되어 가장 먼저 완성된 이 작품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참여한 신안군 '예술섬 프로젝트'의 실체를 드러내 주목된다. ◆올라퍼 엘리아슨 '숨결의 지구' "지구를 위해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대지를 위한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건 진보적인 방법"이라며 "이번 작업을 하면서 무감각하고 둔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민감해지려고 노력했고 도초도를 방문하면서 주민들의 열정과 행복해 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예술의 의미와 공동체 의식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주민들은 엘리아슨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팔목에 이름을 적고 외우며 지인들에 엘리아슨을 알리고 작품에 기대를 했다고 한다. 엘리아슨은 1997년부터 설치,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덴마크관 대표작가로 참여했고, 같은 해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 홀에 '날씨 프로젝트'를 설치하여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왔다. 2022년에는 카타르 도하 외곽 사막의 섬세한 생태계에 주목한 거울 파빌리온의 군집 '한낮의 바다를 유영하는 그림자들'을 공개했다. 2023년에는 일본 황실로부터 프리미엄 임페리얼 상을 수상했다. UNDP 굿윌 기후 행동 친선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PKM갤러리(대표 박경미)가 전속으로 엘리아슨을 지원 홍보하고 있다. 도초도에 설치한 '숨결의 지구'는 과거 화산 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도초도의 독특한 지형에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 자연의 흐름과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작품으로 자연의 생명력과 자연의 에너지를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직경 8m의 공모양 구조물로 입구는 어두운 동굴처럼 시작된다. 이어 안으로 들어서면 이탈리아산 용암석 타일로 붉은 색과 녹색이 정교하게 구성되어 찬란한 햇빛을 반사하며 입체감을 연출한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과 공간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엘리아슨은 "지구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인간으로서 지구를 존중하려고 했다"며 "보는 방법을 배우는 명상적인 효과로 성찰하는 순간 지구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는 예측가능성의 아트지만 아트는 예측불가능성의 정치"라는 독일의 비스마르크의 말을 인용하며 "지금 현재 기후와 관련해서 매우 불안정한 시대에 살고 있다.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자연도 인간도 모두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상대적인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구 안에 들어가면 바닥도 천정도, 지평선도 없다. 지구의 자궁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지구의 숨결을 느끼면 된다." 신안군 예술섬 프로젝트 강형기 총감독은 "연꽃잎이 대지에 떠 있는 형상인 '숨결의 지구'는 자연의 에너지를 급속충전할 수 있는 곳"이라며 "340만평 땅에 설치되어 주민들의 경작 작물을 심는 삶과 일상이 뮤지엄을 형성하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코 뮤지엄"이라고 자부했다. ◆"1섬 1뮤지엄" 진짜 실천하고 있는 박우량 신안군수 "예술섬 프로젝트는 살아 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전국 민선자치단체에서 보기 힘든 '1섬 1뮤지엄' 문화관광정책을 펼치고 있는 신안군 박우량 군수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신안군을 살리고 알리기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돈키호테형 스타일이다. 서울의 22배 크기 지만 인구 소멸 지역 1위이자 전국 재정자립도 최하위권인 신안군을 '살고 싶은 섬'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마늘, 대파, 양파 농사 짓는 게 다가 아니다"라며 "문화예술이 꽃 피는 섬으로 만든다는 '1섬 1뮤지엄' 정책은 '생존 경쟁'에서 시작됐다. 특히 올해 보라색으로 물든 반월·박지도의 '퍼플섬'은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이런 가운데 '꼭 올 수 밖에 없는 곳으로 만들려면 세계적인 유명한 작가들의 뮤지엄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는 목표로 세계적 예술가가 참여하는 미술관을 짓고 있다. 박 군수는 27개 사업 계획 중 현재 17개를 완성하고 11개를 만들어가고 있다. 김환기 화백의 고향인 안좌도에는 일본의 야나기 유키노리가 참여한 물 위에 떠 있는 미술관을 건립 중이다. 자은도에는 2026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박은선 조각가와 건축의 거장 마리오 보타가 공동으로 설계한 인피니또 미술관을 짓고 있다. 비금도에는 영국 출신 조각가 안토니 곰리가 바다의 미술관을 조성, 내년 완공할 예정이다. 박 군수는 "시골에서 추진하는 일로 영어도 안되고 직원들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고 최고의 퀄리티를 요구하는 세계적인 작가와 팀들의 생각에 대해 편차가 커 어려움이 많다"면서도 "이번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설치로 한 단계를 넘어섰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에 뿌듯하다"고 했다. "하늘이 뚫려서 유리나 천막을 씌울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작가님이 지구의 숨결을 느끼려면 비를 맞게 하고 눈을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길래 어떻게 하나, 비가 고일 텐 데, 걱정했는데 배수로가 있더라고요, 비도 눈도 녹아서 빠져 나가요. 하하하" 박 군수는 "숨결의 지구에 들어가면 사진관에서 나한테만 조명을 켠 것 같은 느낌"이라며 "화사한 타일과 어울려 공간안에서 정말 환상이어서 정말 감탄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한 음악 선생님이 그곳에서 첼로 연주를 했는데 스피커가 없는데도 공명이 울리는 게 더욱 환상적이어서 개막식에 공연을 해볼까 기획했었다는 박 군수는 "'지구의 숨결인데 조용하게 들어야지 무슨 첼로냐'는 주변의 지적에 공연 예약도 취소하고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 박 군수는 "드디어 '숨결의 지구'가 지난 6년 간 준비를 마치고 그제 준공을 마치고 서울 기자들에게 설명회를 하고 있다"며 "전국에서 제일 열악하게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제적인 아티스트를 모셔 노력하고 있는 점 이해해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예술섬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강조했다. "천사의 섬 신안군은 신재생 에너지가 되면서 전 바다가 중동의 기름보다 황금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는 박 군수의 열정과 자부심은 성공적인 '1섬 1뮤지엄'의 자신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는 신안군 예술섬의 '숨통'이 되고 있다.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가의 작품 설치로 신안군 도초도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잇단 작품 설치 기획으로 '1004섬 신안군'이 '예술섬'으로 '꼭 가볼 수 밖에 없는 미술 여행지'이자 동아시아 예술 중심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한편 도초도에 설치된 올라퍼 엘리아슨의 '숨결의 지구'는 오는 25일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신안군은 예약을 받아 한 명씩 입장해 5분 간 감상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도초도는 2300명이 살고 있는 섬으로 목포에서도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들어가야 한다. 2024/11/15
남들은 작품을 어떻게 걸고 살까?…디뮤지엄 '취향가옥' 집은 곧 사는 사람의 정체성이자, 취향의 집약체다. 남다른 심미안을 가진 컬렉터들의 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김환기, 박서보, 파블로 피카소 등 '작품 있는 남의 집'을 구경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대림문화재단 디뮤지엄은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아트&디자인 전시를 선보인다. 15일부터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마스터 피스와 디자인 가구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취향가옥: Art in Life, Life in Art'를 개최한다. 장 푸르베, 핀 율의 오리지널 디자인 가구까지 70여 명의 작품 300여 점이 어우러진 집안을 보여준다. 영상 감독, 티 소믈리에, 플랜티스트, 셰프, 갤러리스트 등 다섯 명의 컬렉터가 개성 넘치는 특별한 페르소나를 담아냈다. 약 2000㎡ 규모의 미술관에서 방대하고 몰입감 있는 형태로 펼쳐지는 전시는 미술관 세 개 층 각각을 서로 다른 취향이 담긴 ‘하우스(House)’로 탈바꿈 시켰다. 첫 번째로 M2에 구현된 스플릿 하우스(SPLIT HOUSE)에는 상반된 두 취향이 공존한다. 두 개의 입구로 분리된 집 중, 영상 감독으로 활동하며 대중문화에 관심을 둔 20대 아들의 미감이 오롯이 반영된 공간에서는 애니메이션 또는 그래픽적 스타일이 돋보이는 유 나가바, 아오카비 사야, 심래정, 코이치 야이리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어 티 소믈리에로 활동하며 단아한 미감이 깃든 작품을 수집하는 50대 어머니가 거주하는 곳은 이승조, 김환기, 박서보, 차우희, 준 타 카하시, 곽철안, 잉고 마우러, 장 마리 마소, 렌조 프라 ×피에로 포르나세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마스터피스가 코이치로 타카기, 타이드, 아츠시 카가와 등 젊은 작가들의 위트 있는 작품과 함께 집안 곳곳에 배치되어 다른 듯 비슷한 감각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M3의 테라스 하우스(TERRACE HOUSE)는 자연과 건강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둔 30대 부부의 취향이 녹아든 공간이다. 클 로드 비알라, 이강소, 구성연, 유카리 니시, 이은, 파블로 피카소, 프랭크 스텔라, 남진우,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 소 피 닐센 & 롤프 크누센, 지오 폰티의 화려한 작품들은 넘치는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이닝 룸에는 역동적 몸짓을 추상화 한 서세옥 작품이 중심에 자리해 시선을 압도하고, 작은 쉼터로 조성된 테라스에는 아트 퍼니처와 도예 작품을 제작하는 로마넬리 부부의 가구와 오브제가 세이어 고메즈, 알폰소 곤잘레스 주니어의 회화와 한데 어우러진다. 마지막으로 M4의 듀플렉스 하우스DUPLEX HOUSE는 맥시멀한 취향을 바탕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을 수집하는 40대 남성 갤러리스트의 집이다. 마치 갤러리를 옮겨 놓은 듯, 화이트 월과 복층 구조의 공간을 채운 알렉산더 칼더, 요 시키 무라마츠, 백남준, 하로시, 하비에르 카예하, 코이치 사토, 장 푸르베, 폴 헤닝센, 핀 율의 작품은 신예와 거장, 빈 티지와 컨템포러리를 넘나드는 안목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기묘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리옹 팩, 로비 드 위 안토노, 레이몬드 렘스트라, 노상호의 작품과 강렬한 색채 대비가 눈에 띄는 히로키 츠쿠다, 스티키몽거, 케이이치 타나아미, 마사토 모리의 작품이 밀도 있게 설치됐다. 비싼 그림, 가구에 '돈 많으면 나도 저렇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돈이 많아도 작품이 없는 집이 있고, 부자가 아니어도 작품과 함께 하는 집도 있다. 안목과 취향은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어떤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단박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전시는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으로 변한 시대에 어떻게 살 것 인가에 대한 인테리어 팁도 제공한다. 디뮤지엄은 "본인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비 트렌드가 지속되는 가운데, 집은 더 이상 단순히 의식 주를 해결하는 곳이 아닌 거주하는 사람의 감각적 기호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하나의 전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 이번 전시는 우리 삶의 가장 사적이고도 내밀한 공간인 집에서 저마다 아이덴티티와 감각을 표현하는 컬렉션을 통해 개인의 감각적 기호를 표현하는 공간으로서 집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2025년 5월18일까지. 2024/11/15
피라미드 앞에 첫 '한글신전' 세운 전시 기획자 이규현 "애국자 된 듯" 그야말로 '맨 사막에 헤딩'했다. 이집트 사막, 피라미드 앞에 강익중의 '한글 신전'을 세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지난 1년 간 무대포로 덤벼 사막에 꽃을 피운 'K-아트'는 찬란했다. 거대한 삼각형 피라미드와 이제야 만난 듯 어울려 세계 각국의 미술인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막과 바람 사이에서 알록달록 존재감을 뽐내며 한글과 K아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누구보다 더 벅찬 감동을 받은 이는 전시 기획자 이규현(52)이앤아트 대표다. 이집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미술 전시회인 '포에버 이즈 나우(Forever Is Now)'에 올해 처음으로 한국 작가를 입성시켜 성공적인 '글로벌기획자'로서의 발판을 마련했다. 2021년부터 매년 열리는 이 전시는 이집트 문화부, 관광유물부, 외무부, 유네스코(UNESCO) 후원으로 열려 개막 리셉션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서 성대하게 진행됐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12개국 12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는 '미술 문화 국력'을 뽐내는 경쟁의 장이기도 하다. 이집트에 따르면 매년 피라미드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000만 명이 넘는다. 현재 카이로 등 이집트는 지난해 인구 1억2000만 명을 돌파, 관광대국으로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다. 피라미드 앞에 세운 강익중의 5m 높이 '네 개의 신전(Four Temples)'은 모든 감각을 자극한다. 한글, 아랍어, 영어, 상형문자로 이뤄진 신전은 글 이전의 그림을 넘어 모든 감정을 번역해낸다. 세계의 모든 고통과 갈등을 포용하고 노래하는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5016개의 그림이 가로 20x세로 20cm의 포맥스 보드에 인쇄가 되어 하나하나 철골 구조에 매달렸다. 사막에서 부는 거센 모래 바람으로 그림이 흔들리고 서로 부딪치면서 작품은 오히려 힘이 세졌다. 마치 방울이 흔들리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소리가 울리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이면서 희망의 빛으로 치환되고 있다. 카이로 기자지구 피라미드 현장에서 만난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64)은 "피라미드 앞에서 전시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라고 감격했다. 그는 "4000년 동안 피라미드가 한글이 오기를 기다린 것 같다. 밤에 피라미드가 한글에게 '이제 왔냐'고 대화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서 피라미드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반짝이는 '한글 신전'에 대해 자부심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번 작업은 바람과의 싸움이었다"면서 "피라미드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지만 한글 신전은 바람 덕분에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움직여 호흡하고 상생하고 통합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보람 있다"며 "이 작품이 세계를 화해시키고 치유하는 해독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집트에 처음 선보인 한국의 작가 강익중 작품은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포에버 이즈 나우' 디렉터 나딘 압델 가파르 감독은 "강익중의 작품은 올해 작품들 중에 가장 드라마틱하고 가장 주제를 잘 녹여낸 작품이다. 사막에 한글, 아랍어, 영어, 파피루스에 기록된 상형문자가 어우러진 이런 템플이 세워져 놀랍기 그지 없다"며 "내년에도 한국 작가 작업을 선보였으면 한다"는 러브콜을 보냈다. 실제로 10월24일 개막과 함께 공개된 작품은 사막에 설치된 12개국 작가 12명의 작품 중 가장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집트의 한국어 열풍으로 개막 첫날 강익중은 아이돌 못지않은 사진 세례와 각국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다. 3년째 이집트에 거주하며 국제미술전에 도전장을 내민 이규현 대표는 전직 미술 담당 기자(조선일보) 출신으로 미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있다. 12년 간 근무하던 기자직을 내려놓고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중동 이집트까지 이동했지만, 미술의 끈을 잇고 있다. '글로벌 전시 기획자가 되어보겠다'고 장난처럼 했던 말은 끝이 창대해졌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와 함께 시작한 전시 진행은 디테일에 강한 작가와 이규현 대표의 완벽성에 우여곡절 파도를 수백 번은 타야 했다. 이론과 현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특히 사막에서 작업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 속이 타 들어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글로벌 전시 기획자'가 되겠다'는 야심은 순간 순간 흔들렸지만, 행사를 개막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불끈 솟아 올랐다. 작품 설치부터 마무리까지 감독하고 관람객을 맞이하며 작품을 설명하고 바람에 떨어지는 작품을 다시 붙이고, 작가와 작품을 국내외 언론에 홍보까지 1인 10역을 소화하고 있는 이규현 대표와 현지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강익중 전시' 기획은 영리한 전략이었다, 이규현 대표는 "이집트에도 분 한국어 열풍 덕분으로, 한국문화가 통해 너무 보람이 있다"고 했다. 특히 사막에서의 작업은 전시 기획자로서 대지 미술의 진리를 맛보며 기획자(큐레이터)로서 진정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떨어지고 찢기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법도 배웠다. "강익중의 작품은 한 면으로 인쇄해서 붙이면 편리한데 한 글자 한 글자 5016명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작업하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살렸다"고 했다. "작업을 해 놓고 다음날이면 떨어진 작품들을 다시 붙이고 철골이 기울어져 있어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면서 마치 건물을 짓는 것처럼 공사한 작업"이다. 그칠 줄 모르는 사막의 바람에 애를 태우고 있는 이 대표는 전시가 폐막하는 11월16일까지 마음을 졸이고 있다. 이제 이집트에 한국 전문 전시 기획자로 이름을 알린 이 대표는 "애국자가 된 것 같다"고 설렘을 보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그림자 같은 '전시 기획자'의 일이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왜 강익중이었나? 이집트에 살면서, 이집트 사람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사랑, 특히 한국어 배우기에 대한 열정에 깜짝 놀랐다. 한국문화원에서 하는 한국어수업은 1년에 1000여명씩 웨이팅 리스트에 있다고 하고, 사설 어학원에도 한국어 수업이 많다. 카이로의 명문대학인 아인샴스대학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은 과는 한국어과라고 한다. 그러던 차에, 한글을 소재로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강익중 작가가 전세계인과 함께 한글로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화와 소통을 주제로 하는 작가이니 분쟁 상시지역이기도 한 중동에서 그의 작품을 선보이면 장소특수성과 시의성에도 맞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작년 가을에 피라미드 앞에서 하는 국제미술전 ‘포에버 이즈 나우’ 를 보았다. 4500년 전의 문화유산인 피라미드 앞에서 세계 각국의 현대미술을 보여준다는 이 전시의 컨셉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지금까지 한국작가가 한명도 들어가지 않았던 게 아쉬웠다. 이 전시에 첫 한국 작가로 강익중을 선보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잇고 소통과 화합을 추구하는 이 전시의 취지에도 맞고, 한글을 소재로 하는 그의 작품이 이집트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시는 어떻게 추진했나? 이집트에서 전시기획을 하는 호다 카멜이라는 현지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고, 호다의 도움으로 강익중 작가에 대한 제안서를 ‘포에버 이즈 나우’ 주최측인 아르데집트의 전시기획팀에 보냈다. 와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겠느냐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긴장했는데, 막상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하니, 한국 작가라는 것으로 이미 점수를 어느 정도 따고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 디렉터인 나딘 압델 가파르는 물론이고 주최측 큐레이터들이 한국현대미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관심도 많았다. 큐레이터들이, 자녀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한국음식을 좋아한다 등의 얘기를 해서, 두시간의 프리젠테이션이 즐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잘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라미드에서 하는 전시이기 때문에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의 허가도 받아야 한다고 작품제안서에 수정을 몇번 요구 받았고, 작가가 여러번 수정을 하고 제안서가 몇번 오간 뒤, 올해 3월에 최종 초청서를 받았다. ◆사막의 바람 대단하다. 전시 작업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가지고 올 때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전시를 코앞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작품이 도착했다. 설치 기간은 한국에서 할 때를 기준으로 4일로 잡았는데 전시 바로 전날 저녁까지 꼬박 열흘이 걸렸다. 유네스코가 관리하는 세계인류문화유산이라 작업할 때 제한도 많았고 이집트의 인력과 소통하는 것도 어려웠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사막 모래바람이 평소보다 훨씬 세게 불어서 철골이 옆으로 기울고, 드로잉을 매달아 수시로 떨어져서 다시 달아야 하는 것이었다. 철골이 심하게 기울자 설치를 맡은 한국 회사의 대표님이 자동차를 가져와 밧줄로 철골과 차를 연결한 다음 차를 움직여서 작품을 다시 90도로 세우고 바닥을 용접해 고정했다. 작가는 물론이고 설치팀 인력 모두가 거센 모래바람을 맞아가며 열흘 동안 꼬박 많이 고생 했다. 하지만 막상 다 설치하고 나니, 모래 바람에 드로잉이 하나하나 흔들릴 때 나는 딸그락 소리가 마치 5016명 사람들의 소리 같아서 정말 아름다웠다. 여러 드로잉을 한번에 인쇄하면 설치하기 훨씬 쉬웠을텐데 굳이 5016개를 따로 제작해서 하나하나 매다는 것으로 설계한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나타나니 놀라웠다. 4개의 언어가 알록달록하게 표현된 강익중의 작품은 사막의 흙빛깔과 참 잘 어울린다. ◆'한글신전' 안에서 사진 찍는 학생들도 많고 작품 반응이 좋다 인상적인 평은? 주말에는 작품 안에서 돌아다닐때 부딪칠 정도로 관람객들이 많은데, 다들 이 작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참 좋아한다. 전시 사흘째 되는 날 카이로 시내에서 전시 참여작가들의 패널이 있었는데 그때 어느 영국 청년이 지나가는 강익중 작가를 알아보고 붙들더니, 당신 작품에 들어간 노인들의 그림에서 지도는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었다. 한국전쟁 실향민들이 북한에 있는 고향 집 위치를 그린 것이라고 하자, 너무나 감동받는 표정이었다. 잦은 분쟁으로 곳곳에서 실향민들이 아픔을 겪는 중동의 정세와 한국전쟁 실향민들 그림이 통하는 게 있는 것이다. 여름에 이 작품 제작에 들어갈 드로잉을 수집할 때엔 이집트의 문화센터, 국제학교, 난민학교를 찾아갔었다. 이집트에는 아프리카 각국의 난민들이 900만명 정도 산다고 한다. 난민학교에서 받은 그림을 보면, 세계 어느나라 아이들과 다름없이 똑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과 언젠가는 평화로워질 고향을 꿈꾸는 어른들의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배경이 아무리 달라도 지금 이 시기를 사는 우리 현대인들은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런 방법을 통해 보여줬다. 또 여기에 한국의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의 협력으로 탄자니아와 한국의 어린이 각각 100여명의 작품들도 선보일 수 있었다. 전시 첫날은 KBS 정용실 아나운서가 이 작품의 소재인 ‘아리랑’의 가사를 한국어로 가르치는 헹사를 했는데, 아인샴스대학의 한국어과 학생들이 그 이벤트에 가고 싶다고 그날 오후 수업을 취소해달라고 그 학과의 오세종 교수님께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업을 취소하고 교수님과 학생들이 왔는데, 학생들이 이 작품에 참여한 자신들의 그림을 들고 자신들의 꿈을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아리랑을 열심히 배우는 것에 크게 감동 받았다. ◆올해 처음 한국작가 참여다 주최측 평가는 어떤가? 전시 오프닝날 디렉터 나딘이 “이집트인들이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 작품을 이렇게 사랑하는 것을 보니 정말 기쁘다. 내년에도 한국 작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순간적으로 피곤함이 싹 사라졌다. 전체 참여 작품이 12점인데 디렉터와 큐레이터들이 강익중의 작품에 매일 찾아오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흐뭇해한다. ◆내년에도 한국 작가 참여를 원하더라. 내년도 준비하나? 아직 내년 계획까지 생각할 기력이 없다. 지난 1년 간 이번 전시 준비를 하면서 몇년 일할 기운을 다 쓴 느낌이다. 하지만 피라미드에서 처음 하는 것이 어려웠던 만큼, 강익중 작가가 만들어 놓은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살리면 좋을 것 같다. 우선 이 전시를 무사히 마치고 나면 내년 전시에 한국 작가 제안서를 또 내고 싶다. 앞으로 피라미드에서 한국현대미술이 계속 소개되면 좋겠다. ◆이집트에 첫 한국 작가 전시 환대받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감동이다. 국위선양했다 솔직히 국위선양하겠다는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집트인들의 한국어에 대한 열정이 놀랍고, 중동이라는 장소특수성과 시의성에 강익중 작가가 맞기 때문에, 피라미드 앞에서 그의 작품을 선보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했다. 그런데 막상 이집트인들만이 아니라 전세계 관광객들이 이 작품을 즐기고 감탄하는 것을 보면서 문화수출이 이렇게 보람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어느 이탈리아인이 한글을 보면서 “저게 일본어인가요? 한국어인가요?”라고 물어서 한국어라고 하니 “글자가 너무 예쁘다”고 하더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이 접하는데도, 감각적으로 이 작품을 좋아하고, 전세계인들을 하나로 묶고싶다는 작가의 의도를 잘 읽고 있었다. 현대미술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사람으로서, 외국인들이, 특히 이집트인들이 한국의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것을 보니 행복하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집트에 K아트 물꼬를 텄다. 이집트에서 한국 미술 교류 전망은? 내년이 한국과 이집트의 수교 30주년이라 양국의 문화 교류를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것으로 안다. 지금까지 이집트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 중심 행사가 많았는데, 이번에 강익중 작가의 피라미드 전시를 계기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집트의 현대미술은 아랍 세계에서 가장 발전되어 있는 만큼 이집트에도 눈여겨볼 현대미술작가들이 많다. 이번 전시가 양국의 현대미술 교류를 시작하는 작은 계기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 2024/11/03
"4000년 만에 만난 피라미드와 한글"…'강익중 한글신전' 이집트서도 통했다 강익중의 한글 작업이 이집트에서도 통했다. 피라미드 앞에 세운 '한글 신전'은 사막과 바람 사이에서 알록달록 존재감을 뽐내며 K콘텐츠와 K아트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4000년 동안 피라미드가 한글이 오기를 기다린 것 같아요. 밤에 피라미드가 한글에 '이제 왔냐'고 대화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25일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에서 만난 설치 미술가 강익중(64)은 "40여년간 한글 작업을 하며 피라미드에 작품 설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보였다. 강익중은 올해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며 '강익중 시대'를 열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청주시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청주시립미술관에서 특별 전시회를 열었고, 9월엔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뉴욕한국문화원 신청사에 가로 8m, 높이 22m의 한글벽화를 세웠다. 이 작품 설치 후 뉴욕한국문화원 홈페이지를 방문한 인원은 82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강익중은 2021년부터 매년 가을 피라미드에서 열리는 국제미술제 ‘포에버 이즈 나우(Forever Is Now)’에 한국작가로는 올해 처음 참가했다. 이집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미술 전시회로 이집트 문화부, 관광유물부, 외무부, 유네스코(UNESCO) 후원으로 이집트의 문화예술기획사인 아르데집트(Art D’Égypte)가 주관해 개최된다. 올해 4회를 맞는 이번 전시는 24일 개막, 11월16일까지 진행된다. 한국의 강익중 외에도 크리스 레빈(영국), 페데리카 디 카를로(이탈리아), 제이크 마이클 싱어(남아프리카 공화국), 장 보고시안(벨기에/레바논), 장 마리 아프리우(프랑스), 칼리드 자키(Khaled Zaki, 이집트), 루카 보피(이탈리아), 마리 후리(캐나다/레바논), 샤일로 시브 술맨(인도), 나씨아 잉글레시스/스튜디오 INI(그리스), 자비에르 마스카로(스페인/라틴 아메리카) 등 12명이 참여하여 시간과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주제 아래 거대한 모래사막에 대지미술의 아름다움을 꽃피웠다. ◆아리랑 노래와 5016개 그림으로 만든 '한글 신전' "사막에 작품 설치는 운송부터 설치까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올해 최고의 보람찬 작업이었습니다." 피라미드 앞에 세운 '네 개의 한글 신전(Four Temples)'은 세계의 모든 고통과 갈등을 포용하고 노래하는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24일 행사 개막과 함께 공개된 작품은 사막에 설치된 12개의 작품 중 가장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집트의 한국어 열풍으로 개막 첫날 강익중은 아이돌 못지않은 사진 세례와 각국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이어져 피신할 정도였다. 이날 한글신전 안에서는 카이로의 아인샴스(Ain Shams) 대학 한국어 학생들 30명이 참여한 ‘Learn Arirang with Hyundai Rotem(현대로템과 함께 하는 아리랑 배우기)’ 워크샵에 KBS 정용실 아나운서가 참여해 주목 받았다. ‘아리랑’ 가사를 배우고,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제출했던 학생들이 드로잉 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의 꿈을 한국어로 얘기하는 행사였다. 실제로 카이로에서 한국어와 한국인은 '핫한 트렌드'다. 아인샴스 대학 한국어과는 이집트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학과로 이들은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이고 세계 부강한 나라로 미국, 프랑스, 한국을 꼽는다. 피라미드 등 관광지를 방문하면 중고생 등 학생들은 '안녕하세요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사진을 찍자고 카메라를 내밀기 일쑤다.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로 적힌 ‘네 개의 신전’ 강익중의 ‘네 개의 신전’은 과거(피라미드)와 미래(전 세계 사람들의 꿈)를 주제로 탐구하는 작품이다. 4개의 정육면체에 외벽에는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로 적힌 한국 민요 ‘아리랑’이 새겨져 있다. 내벽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그린 5016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글은 강익중이 즐겨 쓰는 소재로, 개별 자음과 모음이 모여 완전한 단어를 형성하는 과정이 작가가 추구하는 ‘화합’의 주제와 맞는다. 이번 전시에서 강익중은 처음으로 한글 이외에도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를 넣어 네 개의 언어를 사용했다. ‘포에버 이즈 나우’ 전시 주최측은 이번 전시의 전체주제인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문명’이라는 점을 작품에 반영해달라는 요청을 모든 작가들에게 했고, 강익중 작가는 네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 주제를 반영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이집트와 한국의 문화기관 및 학교들과 협력해 어린인들의 '꿈그림'과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 난민들의 그림도 함께 설치했다. 한국 전쟁 실향민들의 그림과 함께 이 작품은 사람들의 꿈, 아픔, 도전을 상징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난민들이 '부모님이 그리워요'라는 글귀와 '전쟁이 없어져서 우리나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는 그림과 고향집 약도를 적어 그린 실향민의 그림 등 한 장 한 장 담긴 염원과 소원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5016개의 그림은 가로 20x세로 20cm의 포맥스 보드에 인쇄가 되어 철골구조에 하나하나 매달렸다. 사막에서 부는 거센 모래 바람으로 그림이 흔들리고 서로 부딪치면서 작품은 오히려 힘이 세졌다. 마치 방울이 흔들리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소리가 울리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이면서 희망의 빛으로 치환되고 있다. 사막의 바람에 순응한 작가 강익중의 계산된 작업이다. "이번 작업은 바람과의 싸움이었어요.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듯이 결국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노래하듯이 보여 더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피라미드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지만 한글 신전은 바람 덕분에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움직이고 어쩌면 기도하는 것처럼 숨을 쉬고 내쉬고…굴뚝을 청소하는 거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있고. 그래서 이번 작업이 더 보람찹니다." 4일이면 될 것 같았던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집트에는 없는 철골을 한국에서 운송하는 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사막에 철골을 설치하는 것도 어려워 10일이 걸려 완성됐다. 강익중 작업을 기획한 전시 기획자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는 "한 면으로 인쇄해서 붙이면 편 한데 한 글자 한 글자 5000명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작업하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살렸다"면서 "작업을 해 놓고 다음날이면 떨어진 작품들을 다시 붙이고 철골이 기울어져 있어 다시 세우며 마치 건물을 짓는 것처럼 공사한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사막에서의 작업은 대지미술의 진정성을 깨닫게 한다. "떨어지고 흔들리고 찢어지는 것도 대지미술의 일부"라는 것을. 올해 ‘포에버 이즈 나우’는 관람객들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예술을 통해 탐험의 여정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것을 주제로, 예술가와 관람객이 모두 현대의 고고학자가 되어 창의성을 도구로 삼아 평범한 것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도록 한다. 강익중은 이런 점을 반영해, 관객들이 작품 안에 들어와 바닥의 모래를 파내면 전시 작품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북마크를 발견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집트에 거주하며 올해 첫 한국 작가를 '포에버 이즈 나우'에 입성 시킨 이규현 대표는 "전 세계 미술인들과 관광객들이 한글신전에서 기뻐하고 감동 받는 모습을 보며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집트에 한국 작가를 알리겠다는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분이 좋고 주최측이 내년에도 한국 작가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며 뿌듯함을 보였다. 매년 1000만 명 넘게 방문하는 이집트 피라미드 사막에 한글을 꽃 피우고 K-콘텐츠의 힘을 보이고 있는 '포에버 이즈 나우' 전시는 11월16일까지 이어진다. ◆'포에버 이즈 나우' 아르데집트(Art D’Égypte)는? '포에버 이즈 나우' 는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펼치는 연례 국제전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세계 각국 현대미술작가를 보여주는 사막의 대지미술전시다. 행사를 주관하는 아르데집트는 나딘 압델 가파르가 설립한 이집트의 예술 문화 기획사로, 다양한 창작 예술에서 민간 및 공공기관과 협력하며, 이집트 문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집트 문화예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청중을 위한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2017년이집트 박물관에서 'Eternal Light', 2018년 마니엘 궁전에서 'Nothing Vanished, Everything Transformed',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장소인 카이로의 알-무이즈 거리의 4개 지점에서'Reimagined Narratives' 등의 전시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으며, 2021년부터는 국제 전시인 '포에버 이즈 나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기자 피라미드에서 매년 열린다. 2024/10/26
검은 인물들 연극 무대 같은 전시…오원배 '치환, 희망의 몸짓' 몸짓은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총체다. 섬세한 신체 근육의 뒤틀림에 인간의 실존 탐구를 담아온 오원배(70) 화백의 '치환, 희망의 몸짓'이 완벽한 안정감을 전한다.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템포러리에서 17일 개막한 오 화백 개인전은 마치 연극 무대처럼 연출됐다. 전시 벽면을 감싼 길이 15m의 대형 화면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됐다. 목탄화처럼 검정색의 알몸 인물들이 공간을 유영하며 에워싸는 분위기로, 이는 마치 전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작품으로 보이도록 한다. 전시 공간과 작품의 긴밀성, 그 몰입감에 대해 그간 몰두해 왔던 작가의 의도가 만들어 낸 결과다. 공간과 공명하고 반응하는 가변적인 작품들은 관람객과의 간격을 좁히며 즉흥적인 소통과 생동감을 유발한다. 몸통형을 축으로 돌아가는 역동적 동세와 기둥, 연결되지 않은 둥근 단면이 보이는 파이프 같은 모티프들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인물들이 또 다른 층위의 회전을 만들어내며 특정한 공간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동적인 에너지의 힘이 넘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동작 한 동작 춤을 추는 무용수와 같아 보인다. 오 화백의 이전 작품들이 인물의 얼굴과 그 표정까지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얼굴의 측면과 후면만을 노출해 신체의 움직임에 더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목탄화같은 검정색의 인물들은 투박하면서도 섬세하다. 볼륨감 있는 근육의 해부학적 요소가 그대로 담긴 오 화백의 손맛이 압권이다. 형상의 움직임을 체제의 저항에서부터 인간 본질에 관한 문제, 사회 제도와 부조리,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미묘한 이야기들과 AI와 인간의 문제 등 사회와 밀접하게 맞물린 이슈들을 온 몸으로 전한다. 특히 인물들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부감(俯瞰)적인 시점은 뒤로 넘어가는 듯한 상체의 움직임을 조망하기에 탁월한 것 같다. 작품을 보는 관람객을 저 위의 무언가를 희구하는 대상의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마치 극장의 높은 좌석에서 보듯 춤을 관람하는 관람자가 된다. 이는 한쪽 벽면을 타고 흐르듯 전개되는 작품과 함께 제작된 금속의 느낌이 나는 작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의 구조상 한쪽 벽면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염두에 두어 제작된 작품들은 전시 공간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또한 인물을 사이에 두고 그들의 시선 사이에는 엉겅퀴나 호랑가시나무와 같은 식물들이 병치되어 변주적 형태로 은유적 질문을 던진다. 이들은 극복 의지를 상징하는 생명체들로서 대비된 양옆의 인물들과 어우러져 진정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장에 어지러이 놓인 고장난 저울이 눈길을 끄는데 균형 잃은 사회를 상징한다. "절망이 있어 희망을 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숫자가 새겨진 조각난 파이프와 설치된 저울 사이에 흩어져 있는 원통형의 조형물들은 순서대로 연결되어 저울이 제 기능을 찾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오원배는 질문하는 화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하는 행간을 놓치지 않고 작품에 투사한다. 동시대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며, 예술을 통해 그 복잡한 관계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몸짓과 다양한 상징물의 기표와 감춰진 이면에 쌓인 층위를 넘나 들며 무감각해지는 사회와 현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전시는 11월16일까지. ◆'인간 실존 탐구' 오원배 화백은? 1953년 인천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1985년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수료했다. 국내·외 주요 개인전으로 “부유/현실/기록”(인천 아트플랫폼, 2023), “오원배: 인간-비인간, 그리고대위법 형식의 조형언어”(아트사이드 갤러리, 2019), “오원배 초대전-회화적 몸의 언어”(금호미술관,2012) 등이 있다. 단체전은 “이미지로 건너오는 시들”(한국근대문학관, 2023), “한국전쟁 정전 70주년 기념전”(연강 갤러리, 2023), “인공윤리-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2022), “재난과 치유”(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1) 등 300여 회 참여했다. 1984년 파리국립미술학교 회화1등상, 1985년 프랑스 예술원 회화3등상, 1992년 올해의 젊은 작가상, 1997년 제9회 이중섭 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인천문화재단, 금호미술관, 소마미술관, OCI미술관, 동국대학교, 원광대학교, 경주통일전, 인천 지하철 문화예술회관역, 전등사, 정토사, 해인사,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법무법인태평양, 조선일보사, 프랑스 문화성, 파리국립미술학교,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4/10/18
이미래 'Open Wound'…'피부 조각' 기괴함 육감 자극 피부 조각들이 걸려있는 풍경은 SF영화 한 장면 같다. 징그럽고 끔찍하면서도 기괴한 느낌으로 오감에서 육감까지 깨운다.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대규모 전시장 터바인 홀(Turbine Hall)에서 선보인 허물 벗은 듯한 '피부 조각'들은 한국의 설치미술가 이미래의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미래 작가의 작품은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고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9일 개막한 '현대 커미션: 이미래: Open Wound'전시다. 현대자동차와 영국 테이트 미술관의 장기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펼친 이 전시는 현대미술의 발전과 대중화를 지원하기 위해 2014년 체결한 장기 파트너십에 따라 진행되는 전시 프로젝트다. 2015년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 2016년 필립 파레노 (Philippe Parreno), 2017년 수퍼플렉스(SUPERFLEX), 2018년 타니아 브루게라(Tania Bruguera), 2019년 카라 워커(Kara Walker), 2021년 아니카 이(Anicka Yi), 2022년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2023년 엘 아나추이(El Anatsui)에 이어 올해는 이미래(Mire Lee)가 아홉 번째 현대 커미션 작가로 참여했다. ◆'현대 커미션: 이미래: Open Wound' 전시 이미래의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영국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대규모 전시다. 과거 화력 발전소였던 건물을 개조하여 탄생한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에 깃든 영국 산업의 역사에 주목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설치 작업으로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공존하는 생산 현장으로 전시 공간인 터바인 홀을 재구성했다. 전시장 내부는 '피부(Skin)'라고 표현된 직물 조각 작품들이 49개의 금속 체인에 걸려 천장으로부터 늘어뜨려져 있으며, 터바인 홀 끝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재가동된 옛 크레인에 7미터 길이의 터빈이 매달려 있다. 과거 석탄 광부들이 도르래에 옷을 걸어 작업복을 말리던 일과 휴식 사이의 경계 공간인 탈의실을 연상시킨다. 또한 짙은 분홍빛의 액체를 뿜어내는 실리콘 튜브가 회전하고 있는 터빈을 둘러싸고 있으며 튜브 아래 설치된 트레이로 액체가 모이고, 건축용 그물망과 같은 섬유 조각들이 액체를 흡수해 새로운 피부 조각으로 탄생되는 모습을 선보인다. 전시 기간 동안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을 현장 기술자가 건조대로 옮기는데 이 모습이 마치 장인이 작업을 하는 모습 같으면서 동시에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부 조각들이 걸려있는 풍경은 과거 석탄 광부들이 도르래에 옷을 걸어 작업복을 말리던 일과 휴식 사이의 경계 공간인 탈의실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천천히 회전하는 터빈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전시 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피부' 조각들로 건물이 점차 허물을 벗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다. 산업 재료를 사용하는 이미래 작가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가 반영된 이번 전시는 인간과 기계, 부드러움과 단단함, 내부와 외부, 개인과 집단 사이의 조화와 갈등을 경험하는 기회를 마련해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유도한다. 인간의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다. [[[[:newsis_inyoung_center_start:]]]]"전복적이며 여러 감각을 확장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이미래 작가는 오늘날 가장 흥미롭고 독창적인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이다. 이미래 작가의 작품을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테이트 모던 카린 힌즈보(Karin Hindsbo)관장) [[[[:newsis_inyoung_center_end:]]]]이번 전시 진행은 테이트 모던 국제 미술 큐레이터 알빈 리(Alvin Li)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비랄 아쿠시(Bilal Akkouche)가 맡았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이번 현대 커미션 전시는 대비되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 속에 병치함으로써 규정할 수 없는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내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상호 연결된 미래를 향한 존재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도록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16일까지 열린다. ◆이미래(Mire Lee)작가는? 1988년 한국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와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현재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철, 시멘트, 실리콘 등 산업 재료를 붓거나 떨어트리고 부풀리며 날 것 그대로의 유기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조각 작품들은 모터나 펌프 등 기계 부품으로 작동되거나 좁은 틈새로 액체를 뿜어내는 등 불안정한 형태를 극대화하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주요 개인전은 2020년 한국 서울 아트선재센터《Carriers》 전시, 2022년 독일 베를린 싱켈 파빌리온 'HR Giger & Mire Lee' 전시, 2022년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ZOLLAMTMMK, MMK Frankfurt 'Look, I'm a fountain of filth raving mad with love》 전시, 2023년 미국 뉴욕 뉴 뮤지엄 'Black Sun'전시가 있다. 단체전은 2018년 제12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2019년 제15회 리옹 비엔날레(15th Biennale de Lyon, Lyon), 아트선재, 샤르자 미술 재단(Sharjah Art Foundation), 2020년 상하이 안테나 스페이스(Antenna Space, Shanghai), 2021년 쿤스트페어라인 프라이브루크(Kunstverein Freiburg, Freiburg), 2022년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와 제11회 부산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2018년 암스테르담 라익스 아카데미(Rijksakademie van beeldende kunste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24/10/09
'마팔' 문형태 랩소디…볶음밥이 전하는 초심 그 가난했던 시절 먹었던 '볶음밥'은 이제 완벽한 그림이 됐다. 전업 작가로 데뷔하고 늘 쪼들렸다. 중국집에 주문한 볶음밥이 좋았다. 밥, 짜장 소스, 짬뽕 국물을 따로 먹을 수 있어서였다. 밥만 지어두면 한 끼를 1/3씩 셋으로 나눠 세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볶음밥을 먹었는데도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건 볶음밥이네요. 환경이 바뀌고 주머니 사정이 좋아졌지만 작가로서의 일상이나 고단함, 노동의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문형태(48)의 신작 'Chinese Fried Rice'(2024)는 그의 초심을 보여준다. 볶음밥을 가슴에 품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 그림 속 문형태는 수저 들기를 멈추고 먼저 숫자를 쓰고 있다.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1/3을 적는 과정인데 2처럼 보인다. 구질구질했던 시절 그를 배불리 했던 볶음밥은 희망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제 그는 안다. “모든 순간들은 항상 완벽한 그림"이 된다는 것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문형태 개인전(Perfect Picture)은 그의 저력을 다시 보여준다. 2022년 'CHOCKABLOCK'개인전 이후 2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신작 50여점이 공개됐다. 문형태의 작업 근간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동화 속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한 상상력을 함축하고 있다.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더 깊은 내면으로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작품은 희로애락이 빛난다. 그에게 고독과 동시에 행복을 준 그림은 보는 순간 눈길을 잡아 당기는 마력이 있다. 동화 같은 그림이지만, 볼수록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전하는 '묘한 그림'이다. 진득한 화면의 색감이 이상하게 마음을 끄는 이유가 있다. 작업의 밑 재료는 ‘흙’이다. 화면 위에 은은한 황토색이 만들어내는 따스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는 흙 물을 사용한 작업 방식 덕분이다. “흙은 저의 일상을 시작하는 곳과 마무리하는 곳, 또한 생성과 소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의 삶의 흔적인 흙을 작업에 입힌다. 캔버스에 황토와 물을 섞어 바른 다음 표면에서 건조 된 흙을 걷어낸다. 노랗게 흙 물이 든 캔버스 위에 오일이나 크레파스로 형상을 탄생시킨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모든 존재는 흙으로 회귀한다'는 깨달음에서 기인했다. “대학 시절 돌아가신 이모의 시신을 보고 인간의 죽음을 처음 느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문형태는 모든 작품에 흙을 바름으로써 자신의 손을 떠나는 작품들과 인사를 나눈다. 흙을 매개로 한 이러한 의식과도 같은 행위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자연으로의 귀환과 삶의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본 작품은 구상인데도 초현실주의로 흐른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상반된 감정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최근작 'Merry-go-Round' 는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만, 빙글빙글 회전하는 목마는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듯이 우리의 삶 역시 끝없는 오르내림의 반복임의 표현이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숫자는 '관계 코드로 1은 자신, 2는 관계, 3은 가족, 4는 사회, 5는 고독을 의미한다. 독특한 이 표현 방식은 유년시절 외조부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외조부는 자신이 빌려준 돈을 달력 뒷면에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보고 인간의 생전 기억이 숫자로 단순화되어 각인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문형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의 코드화라는 독자적 방식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시각화했고, 그 관계가 만들어 내는 희노애락에 집중, 신비로움을 더욱 강조한다. '잘 팔리는 그림'의 작가는 매번 부담감이 컸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그는 이렇게 전했다. 30대에 미술시장 스타 작가로 부상한 그는 작품이 마르기도 전에 팔려나가 '마팔'이라는 별명도 있다. 전시 때마다 '솔드아웃' 품귀 현상을 빚는 마법 같은 그림이다. 중독성 있는 이번 신작도 날개가 돋았다. 자세히 보면 이상하고 기괴한 형상인데 묘하게 아름답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은 '관계의 미학'을 전한다. 신작도 완벽한 디테일로 마음을 훔친다. 밀도감이 높아져 더 진득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작가로서 혼신을 다한 200호 크기도 나왔다. 작품 값은 2년 전보다 10% 올라 20호 크기(볶음밥)는 1500만 원이다. 전시는 10월9일까지. 2024/09/14
'연출 사진 거장' 우에다 쇼지, 한국 첫 사진전 20세기 일본 사진계를 대표하는 작가 우에다 쇼지(植田正治, 1913~2000)의 사진전이 한국에서 처음 열린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전시 공간 피크닉(piknic)은 오는 10월12일부터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Ueda Shoji Theatre of the Dunes)' 사진전을 개최한다. 피크닉은 "우리나라에도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지만 전시를 통해 정식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작가가 생전에 직접 인화한 오리지널 프린트 170여 점을 공개, 우에다의 초기 습작부터 생애 마지막 작품까지 망라하는 대규모의 회고전으로 펼친다"고 밝혔다. ◆우에다 쇼지는? 연출 사진의 선구자이자 모노크롬의 대가인 우에다 쇼지는 일본 사진 역사에서 압도적인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일본 돗토리현에서 신발 사업을 하는 집안에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웃집 청년이 집에서 현상을 하는 장면을 구경하면서 처음으로 ‘카메라’라는 매체에 강렬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열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자신의 첫 사진기로 수많은 습작을 찍으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19세에 집 근처에 사진관을 개업했고, 22세에 결혼한 아내 노리에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다. 모델이자 뮤즈이기도 했던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젊은 우에다는 지역의 여러 사진가와 활발히 교류하며 전시와 공모전에 쉼 없이 참여하는 등 왕성한 창작 의욕을 불태웠다. 관행을 벗어난 과감하고 참신한 구도, 현실의 시공간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연극적인 연출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집 근처 바닷가로 마을 소녀들을 데려와 각각의 포즈를 섬세하게 구성한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少女四態)'는 그가 26세였던 1939년에 촬영한 것으로, 이후 우에다 쇼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초기 걸작 중 하나다. ◆고향 바닷가 모래언덕에서 꽃피운 '우에다 스타일' 우에다 쇼지는 일본의 주류 사진가들 중 드물게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 거주하며 작업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그가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돗토리현은 인구나 산업 등 여러 측면에서 규모가 아주 작은 일본의 변방이다. 세간의 이목에서 멀리 떨어진 촌락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토와 문화, 그리고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을 사랑했다. 특히 거친 바닷바람에 의해 퇴적된 거대한 모래언덕(砂丘)은 작가에게 더없이 좋은 촬영의 무대였다. 우에다는 이 광활한 야외 공간을 마치 스튜디오나 세트장처럼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그 안의 여러 인물을 ‘오브제’처럼 철저히 계산된 방식으로 배치한 특유의 연출 사진들을 남겼다.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를 연상시키는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모래언덕 사진들은 훗날 서구에서 ‘우에다조(Ueda-cho, 우에다 스타일)’라고 불리던 독특한 사진 세계의 중심축을 이룬다. 모래언덕에서의 촬영은 인물 군상뿐 아니라 정물, 풍경, 추상, 패션과 상업사진 등 작가 평생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확장된다. ◆영원한 아마추어 정신 우에다 쇼지는 주류 사진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늘 그 주류로부터 한발 비껴 서 있었던 독특한 위치의 작가다. 시대를 풍미했던 어떠한 유행이나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통념적인 사진 작법을 벗어나 보려는 노력을 평생 게을리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그는 이미 일본 안에서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지닌 대가였지만 80년대와 90년대에도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 시리즈를 계속 선보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아내와의 사별로 인한 상심을 극복하고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패션 사진에 도전한 것도 흥미로운 이력이다. 20대에 데뷔해 30대에 이미 정점을 맞이하는 패션 사진가의 일반적인 커리어 패스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사진가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자신을 ‘시골에 사는 아마추어’라 표현했는데, 이러한 자기인식 속에는 겸손함과 더불어 ‘돈 되는 것’ 대신 ‘찍고 싶은 것’에만 순수하게 열중하는 아마추어로서의 자유와 기쁨, 그리고 열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는 87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이 아마추어의 정신으로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70년에 걸쳐 그가 남긴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도쿄도 사진 미술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1989년 일본사진협회로부터 공로상을, 199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상했다. 1995년 9월, 우에다 쇼지의 작품 1만 2000점을 소장한 ‘우에다 쇼지 사진 미술관’이 돗토리현에 개관했다. 피크닉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에다 쇼지에 큰 명성을 안겨준 '모래언덕(砂丘)' 연작, '작은 이야기(小さい伝記)' 연작, '아이들의 사계절(童暦)' 연작 등과 함께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컬러 걸작인 '하얀 바람(白い風)'연작과 후기 패션 사진 등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든 주요 작품들이 소개할 예정이다. 관람료 1만8000원. 18일까지 50% 할인된 얼리버드 티켓을 판매한다. 2024/09/13
'키아프가 프리즈 했다'…"달라졌다" 8만2000명 깜짝 "키아프가 프리즈 했다." 3라운드 '키아프리즈'는 이전과 달랐다. 키아프(KIAF)의 달라진 면모로 '프리즈(Frieze)가 키아프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지붕 두 가족'의 '키아프리즈'는 상생의 아트페어로 거듭났다. 3회 만에 '서울을 글로벌 미술 도시'로 올려 세우며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가 됐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전쟁과 선거로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도 해외 갤러리들과 컬렉터들이 늘고 인기 작가들의 수십억 작품들이 솔드아웃을 기록하는 등 올해 '키아프리즈'는 글로벌 미술 시장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같은 기간 열린 '뉴욕 아모리 쇼'를 눌렀다는 평가다. 세계적인 미술 전문지인 아트뉴스는 “아모리 쇼는 프리즈 서울에 밀려서인지 활기를 잃었고, 프리즈는 출품작과 판매 분위기 모두 흠잡을 데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아모리 쇼'가 예전에는 롤스로이스였다면 지금은 기껏해야 테슬라"라며 심지어 "커피도 맛도 없고 샌드위치는 더 나빴다"는 혹평도 나왔다. 7~8일 폐막한 키아프리즈는 활기찬 분위기로 내년을 더 기대하게 했다. 키아프 서울은 총 5일 간 8만2000여명, 프리즈 서울은 4일 간 7만 명이 방문했다. ◆키아프, 확장된 공간세련미 장착 8만2000명 방문 "와우 키아프 맞아?", "정말 달라졌다." 4일 키아프에 온 VIP들은 깜짝 놀랐다. 확장된 공간과 전시 연출력과 함께 무엇보다 작품 퀄리티가 높아졌다는 평가로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1, 2회 프리즈와 너무 비교되어 자존심이 상했는데, 역시 K갤러리들의 안목과 전시 구성이 좋아져 인상 깊었다"는 반응이 잇띠랐다. 실제로 방문객 수는 작년과 비슷했으나 효율적으로 개선된 동선, 넓어진 전시 공간에 관람객이 분산 되면서 관람 환경이 한층 쾌적했다. 투자한 효과다. 1, 2회와 달리 젊은 건축가 장유진과의 협업을 통해 부스 배치 디자인을 개선한 점이 돋보였다. A홀, B홀, 그랜드볼룸으로 이어지는 1층 전시장은 공간을 특성별로 나누어 쉽고 편안한 관람을 제공했다. 예년보다 강화된 심사도 한몫했다. 국내 갤러리들의 부스 구성 등 전시 퀄리티도 업그레이드 됐다는 평가다. 키아프는 Art of the World Gallery(휴스턴), DIE GALERIE(프랑크푸르트), Sundaram Tagore Gallery(뉴욕), PERES PROJECTS(베를린), Carl Kostyal(런던) 갤러리 외에도 Albarran Bourdais(마드리드), PIERMARQ*(시드니), Lechbinska Gallery(취리히), SNOW Contemporary(도쿄) 등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갤러리들이 처음으로 합류해 자리를 빛냈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는 총 22개국 206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특히 전체 참가 갤러리 중 3분의 1 이상이 해외 갤러리로, 국제적인 참여도가 더욱 높아졌다. 국내갤러리를 대표하는 국제갤러리(서울), 갤러리 현대(서울), 가나아트(서울), 학고재(서울), PKM 갤러리(서울), 조현화랑(부산), 아라리오갤러리(서울)를 비롯해 서정아트(서울), 드로잉룸(서울), 초이앤초이 갤러리(서울) 등 젊고 혁신적인 갤러리들도 참여해 대작부터 실험적이고, 새로운 작품까지 동시대 미술 트렌드를 모두 볼 수 있는 축제의 장을 완성했다. 글로벌 경기불황에 우려했던 매출 실적도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2021년부터 참가한 독일화랑 이사벨 리젤레스터는 "키아프는 저희 갤러리가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훌륭한 출발점이 되었다"고 했고, 중동에서 온 베이번 갤러리 디렉터는 "서울에서 활기찬 이란 현대 미술을 선보일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보았다"면서 "앞으로도 이란 예술가들이 서울의 주요 미술관과 컬렉터의 소장품에 눈에 띄게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갤러리그림손 최지환 대표는 “극심한 불경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넘쳐나는 관람객의 즐거운 표정과 정신없이 응대하는 갤러리스트의 표정에서 밝은 한국 미술의 미래를 봤다"고 전했다. Sundaram Tagore Gallery(뉴욕)가 선보인 Hiroshi Senju의 Waterfall on Colors(2024)로 약 5억6000만 원(USD 420,000)에 팔렸다. 국제갤러리는 김윤신의 회화와 조각이 조화를 이루는 솔로 부스로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 작품을 2000만 원에서 1억5000만 원에 판매했다. 갤러리현대는 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인 성능경, 이건용,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정상화를 비롯하여 국내외로 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강승, 이슬기, 김성윤 등의 작가와 케니 샤프, 토마스 사라세노와 같이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해외 작가의 작품까지 판매되며 큰 성과를 이뤘다. 올해 새롭게 도입된 모던 및 마스터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그랜드볼룸은 매일 많은 컬렉터들이 방문하여 판매 성과도 호조를 보였다. 금산갤러리에서는 백남준의 대형 오브제 작품이 팔려나갔다. 갤러리 윤에서는 약 1억2000만 원에 판매된 이강소의 대형 작품을 포함해 박서보의 작품 여러 점이 판매됐다. 동산방화랑은 산정 서세옥을 비롯해 운보 김기창, 김호득의 작품이 다수 거래됐다. Mark Hachem Gallery(파리)에서는 Seock Son, Yoshiyuki Miura, Jose Margulis 등 작가별로 다양한 작품이 판매됐고, Art of the World Gallery(휴스턴)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대작으로 주목 받았다. DIE GALERIE(프랑크푸르트)는 키아프 참여 20주년을 기념해 피카소 스케치로 가득한 스페셜 룸을 구성, 피카소와 앙드레 마송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판매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등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배의 대형 회화 작품은 갤러리 비앤에스에서 약 2억6000만 원, 올미아트스페이스는 전광영의 작품을 1억 대에 판매했다. 예화랑은 이환권의 브론즈 조각을 2점 팔았다. 나인갤러리는 4000만 원에 거래된 우병출의 회화 작품을 필두로 여러 점을 추가로 거래했다. 써포먼트 갤러리는 2.6m에 달하는 이인섭 작가의 작품을 1억2000만 원, 맥화랑은 이두원의 작품 9점을 총 1억8000만 원에 거래했다. 솔로 섹션의 옵스큐라는 김호득의 작품을 약 8000만 원에 판매했고, 채성필의 단독 부스를 구성한 갤러리그림손은 솔드아웃을 기록했다. 갤러리나우도 고상우와 김준식 작가의 작품을 모두 팔았다. 에브리데이먼데이는 무나씨의 작품이 솔드아웃됐고, 김희수의 작품이 대거 판매됐다. 더컬럼스갤러리는 김강용의 벽돌 소품 시리즈를 전량 판매했고, 키다리갤러리는 최형길의 작품이 대부분 솔드아웃 되었다. 오션갤러리도 제니박 작가의 작품 10점을 솔드아웃시켰다. 서정아트는 홍순명의 작품을 3000만 원에 거래했고, 김리아 갤러리의 박태훈과 황도유 작품도 각각 1000만 원 이상에 팔았다. '2023 키아프 하이라이트 선정 작가'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갤러리밈은 정정엽의 작품을 4500만 원, Gallery Q(도쿄)는 리정옥의 작품을 약 3700백만 원에 거래했다. 2024 키아프 하이라이트 선정 작가 중에는 디스위켄드룸의 최지원이 솔드아웃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7일 폐막한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 유럽, 미주권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7만 명이 방문, 서울을 미술 도시로 확장 시켰다. 전 세계 46개국 주요 미술관의 큐레이터, 기관 대표와 컬렉터들이 관람하며 도시 전역에서 펼쳐진 미술관 갤러리 행사를 들썩이게 했다. 기대 이상의 판매 실적도 올렸다. 니콜라스 파티의 ‘커튼이 있는 초상화’(약 33억 원)와 게오르그 바젤리츠(약 29억 원), 유영국 (20억 원) 이우환(약 16억 원) 등 첫날 부터 고가의 작품이 팔려나갔다. 올해는 유난히 한국 갤러리와 작가의 선전이 돋보였다. PKM갤러리는 20억 유영국 작품 판매에 이어 정현 청동 조각을 2만 달러에 팔았다. 갤러리현대는 전준호의 작품 7점을 판매해 5억 원 이상의 판매액을 기록했고, 조현화랑도 이배의 작품 10점을 총 7억5000만원 가량에 팔았다. 국제 갤러리는 양혜규, 문성식, 이희준 작품울 잇따라 솔드아웃시켰고, 리만머핀은 김윤신의 작품과 이불의 작품을 각각 2억6000만원, 2억8000만원가량에 판매했다. 타데우스 로팍은 이상소(2억5000만원), 이불의 작품을 19만 달러에 팔아치웠다. 개막 첫날부터 성공적인 판매 실적을 기록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끌어 낸 해외 갤러리들은 도시 전역에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했다며 내년 프리즈 서울 참여 의사를 미리 밝히기도 했다. 프리즈 서울 디렉터 패트릭 리(Patrick Lee)는 '서울을 글로벌 미술 도시'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표했다. “올해 프리즈 서울은 전 세계 예술 캘린더에서 중요한 행사로서 그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며 "앞으로 프리즈 서울은 더 생동감 넘치는 프리즈 서울의 미래를 고대하며 '프리즈 서울 2025'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키아프리즈'로 합체된 5년 간 계약은 유명무실해졌다. 프리즈 사이먼 폭스 CEO는 “런던에서는 20년 넘게, 뉴욕에서는 10년 넘게 프리즈를 열고 있다. 우린 한 도시에서 아트페어를 시작한 뒤 중단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도 10년, 20년, 50년 계속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프리즈는 서울에서 계속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키아프는 내년 한국화랑협회장 선거로 프리즈와 1~3회를 치른 황달성 회장의 임기가 끝난다. 키아프가 5회를 마치고도 프리즈와 같이 하느냐, 독립하느냐 문제가 남아있다. 황달성 회장은 공약으로 내세운 키아프의 해외 진출을 추진한다. "내년에 시카고 엑스포와 함께 펼치는 키아프에는 25개 화랑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2024/09/09
김택상 "포스트 단색화가? 난 한국적 추상미술 3세대" "나는 '김택상다운 그림'을 그릴 뿐이다." 화가 김택상(65)은 의외였다. 맑고 옅은 조용한 그림과 달리 '반항아 기질'을 보였다. 지독한 탐구주의자였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가 렛잇비(Let It Be)에요. 내버려 두면 되거든요. 제 작업에 비밀이 있다고 한다면 '렛잇비'입니다." 26일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그는 4년 만에 신작 '플로우(FLOW)'시리즈를 선보였다. "감동이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고 강조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김택상은 '물 빛 회화 Breathing Light' 연작으로 유명하다. 빛과 색을 물로 담은 '스밈의 미학'으로 국내외 컬렉터를 사로잡았다. 물을 머금은 은은한 색의 작업은 '숨 쉬는 빛의 회화'로 각광받으며 '단색화 후세대 대표 작가'로 꼽혔다. 스며드는 물빛의 명상적인 작업과 달리 신작 '플로우'는 '발광의 미학'이다. 머금은 빛을 마치 '폰딧불이'처럼 발현 시킨다. 어둠 속에 연출한 플로우 연작은 핀 조명을 받아 '은은한 빛무리'로 빨아들인다. 보는 순간 시공간에 떠있는 무중력 상태로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색을 쓴 그림일 뿐인데, 무슨 현상일까? '타임 오딧세이(Time Odyssey)'를 전시 주제로 빛과 색의 다차원적 경험을 선사하는 그의 세계관을 들어봤다. ◆어릴 적 꿈? 천문학자·축구협회장 장래 희망이 천문학자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는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시절 내 손가락에 피를 내서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완전 신세계였다. 동시에 별빛 가득한 하늘을 보며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광대한 우주에 흠뻑 빠져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2학년까지 수학을 잘했는데 그림이 좋았다. 선생님도 그림을 그려라 하더라. 그러나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지나서는 축구를 좋아해 축구협회장도 되고 싶었다. 운동을 하게 되면 몰입하게 된다. 그림 그리는 거랑 똑같다. 호기심이 많고 몰입을 잘 한다. 빨리 결과를 얻고 싶어하지 않는다 기질적으로. 기다리는 것을 잘한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바라는 것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관심 있는 것은? 지금, 그리고 현재다. 작업도 미리 계획을 세워 놓기보다 그때 그때 몰입해서 들어간다. 계획 없이 작업 했을 때 날 것들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이 색을 쓰고 싶다, 이 색이 더 좋겠다, 이렇게 넣는 것이 좋겠다 하는 계속해서 올라오는 무엇이 있으면 그것에 충실한다. 그렇게 계획 없이 했었을 때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미리 기획해 놓은 것은 결국 머리가 기획하는 것이다. 사실 머리에서 결정을 해서 판단해서 행하는 일들은 전부 다 과거에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을 통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뻔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날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주변 예술가들을 관찰했을 때 홍상수 감독도 그렇게 일을 하더라. 미리 대본을 주지 않는다든지, 촬영할 장소를 미리 정해 놓지 않고 하는…이런 전략이 결국 날 것을 뽑아내기 위해서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간 소묘를 했고 사실적인 그림을 연습해온 사람이다. 똑같은 것을 그리는데 너무나 능숙하다. 다큐멘터리 방법론을 쓰는 감독들을 통해서 나도 이런 맥락에서 작업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린 것이 10년 정도 됐다. ◆개인전 제목 '타임 오딧세이'는? 어릴적 꿈처럼 어느 순간 내가 그림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주라는 무한 공간을 탐험하며 미지의 세계(그림)를 발견해 가는 여정을 전시로 풀어내고 싶었다. 내 작품에서 은은한 빛 무리가 나오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작품의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번 전시 제목 '타임 오딧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인 스탠리큐브릭의 영화 '2001 Space Odyssey'에서 영감을 받아 정했다. 작업 중 새로운 행성이나 성운과 같은 느낌의 작업이 나오면(발견하면) 마치 천문학자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해서 그 행성의 이름을 명명하듯이 나도 그림에 마치 새롭게 발견한 행성처럼 PlanetA16(예)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Planet는 행성을 의미하고, A는 August(8월)의 줄임말 A이고, 16은 발견된 날짜를 의미한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공간 전체로 확장한 이번 전시는 다양한 은하들에 공존하는 우주의 오로라들을 작품으로 옮긴 듯한 ‘작품을 타고 떠나는 행성 여행’을 보여준다. ◆투명한 스크린 같은 '플로우' 신작의 비밀 물로 작업하는 것은 이전과 동일하다. 평면 캔버스인데 비밀이 있다. 공개하지 못할 영업 비밀은 아니고, 일단 캔버스는 내가 개발했다. 브라켓도 개발을 했다. 내가 원하는 작품을 위해서다. 물론 나 혼자 개발한 것은 아니다. 동료 작가 중에 이진우 작가가 있는데, 그의 절친 중에 섬유 전문가가 있다. 내가 재료를 갖고 고민 고민하는 걸 보고 연결해줬다. 그래서 4년 전에 만나서 상의를 하고 (빛이 발광하는)캔버스 개발을 시작했다. 4년 동안 고생 끝에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만들 수 없었다. 대형 작품을 선호해서 폭이 270cm는 나와야 했다. 개발자가 지난 수 년 간 중국을 오가고 내가 또 수 없는 실험 과정을 거쳐 작년에 비로소 만들었다. 돈도 억대가 들었다. 나한텐 R&D예산이다. 지금은 아주 편안하데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 캔버스가 나왔기 때문에 이번 신작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곰팡이 방지 처리까지 했다. 내가 쓰는 천은 사실은 '수채화 용 캔버스'다. 일반적으로 수채화용 캔버스가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왜냐하면 캔버스라고 하는 것은 원래 서양에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물감이 얹혀지는 데 특화돼 있는 재료로 스미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을 했고 결국 찾아냈다. 이번 빛을 내는 캔버스 사용은 내가 국내 최초다. 보다 많은 작가들이 쓰면 좋겠다. 발색이 너무 좋다. ◆'빛의 발광'…내 색은 구조색과 관련 있다. 이 세상 있는 색은 색소색과 구조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색소색은 나팔꽃을 문지르면 색소가 나온다. 이게 물감이다. 구조색은 구조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색이다. 나비 날개의 휘황찬란한 색깔, 앵무새의 색, 전복 색 등 아무리 문질러도 색소가 나오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체 구조가 있다. 투명한 구조들에 빛이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서 빛의 회전 굴절 난반사를 통해서 무지개 빛이 나오는 거다. 원래 거기에 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구조색을 알게 된 것은 어릴적부터 물색, 하늘색, 우주색, 황혼색에 마음을 뺏겼다. 구조색을 박서보 선생은 '공기 색'이라고 표현했다. 무지개는 물방울 수증기가 하늘에 떠 있다가 빛의 굴절로 만들어진다. 내가 관심 있는 색들은 손에 안 잡힌다. 원래 작가들은 개념이 앞서는 사람이 아니다. 감각적으로 먼저 끌린다. 왜 이렇지? 라고 가슴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올라가 분석을 시작하는 게 실험이다. 재료를 찾고 나를 감동시켜서 이미지를 찾고 구체화 되는 것. 그리고 나를 감동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내 작업은 그런 프로세스를 통해서 나온다. ◆몰입 속 철저한 전략과 전술 몰입을 해서 특별한 계획 없이 들어간다는 것은 작업 과정에서 몰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런 계획 없이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를 예를 들면 영화과 교수가 제자한테 만들어온 작품을 같이 보면서 '그냥 놔둔다고 자연스런 작업이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한다. 생각해 봐라. 서커스 하는 분들이 공을 돌릴 때, 관객에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수많은 연습과 힘든 과정이 없이는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오지 않는다. 내 작업도 똑같다. 퀄리티의 문제다. 감동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다. 당연히 철저한 전략과 철저한 전술로 나온다. 보여지는 전시에서 모든 하나하나의 요소는 철저하게 계획된 거다. 필요 없는 건 다 제거한다. ◆후기 단색화가? "관심 없다" 오해가 무진장 많은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단색화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후기 단색화라고 얘기 한 적도 없다. 미술사가들은 당대의 미술 현상을 카테고리화 한다. 시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리하는 거다. 하지만 나 김택상은 내가 단색화에 속하는지, 담화에 속하는지 관심 없다. 반면 이런 염려와 걱정은 있다. 한국 미술계에 서식하는 작가로서, 더 잘 됐으면 좋겠고 글로벌화되길 바란다. 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단색화 사조는 한국미술상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브랜딩 된 거다. 우리는 철저한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 작가로서 경쟁하면서 산다. 국제 미술계에서 우리 한국 미술은 단색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1세대 윤형근 박서보 선생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산 작가다. 시대 정신도 다르다. 치열하게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 이전 세대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일때 열등감과 함께 '나는 누구인지' 질문을 던졌을 거다. 한국성에 천착했을거다. 작가는 원래 독립적이다. 당대에 우리는 무엇이지? 했던 것처러 단색화는 집단적인 행동이다. 나도 그때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후진국을 거쳐 중진국, 선진국까지 경험한 유일한 세대다. 근본적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내가 40대인 2000년 초에 인터넷이 등장했다. 축구로 전 국민이 세계에 '대한국민'을 알렸고 경제발전이 이뤄졌다. 역동성이 생겼다. 원래 한국 문화에 있었다. 역동성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 '케이 컬처'로 발전했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스스로에 문화적 자긍심이 부족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후진국에서 선진국까지 다 경험한 당사자로서 이제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문화적 자긍심을 제대로 찾아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예술 분야 종사하는 작가들은 그런 근본적으로 자긍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김택상은? "한국적 추상미술 3세대" 나는 한국적 추상미술이라는 틀로 봐야 한다. 근대미술관이 만들어지면 한국적 추상미술 계보를 만들어야 한다. 김환기, 유영국이 1세대, 윤형근, 박서보, 하종현이 2세대, 그리고 내 세대가 3세대다. 포괄적인 정리가 이뤄지면 한국적 추상미술의 1세대, 2세대, 3세대의 계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담론이 풍성해진다. 추상화를 하는 내 작업만 해도 선배 세대와 관계성이 있다. 김환기, 곽인식 작가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나하고 비슷한 감수성을 갖고 있네'를 단박에 안다. 유영국 선생과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유영국 선생은 색을 서늘하게 잘 쓴다. 풍토와 연관이 있다. 나도 강원도 출신으로 추운 지역에 살다 보니 색을 서늘하게 쓴다. 어떤 분이 '그 지점을 자꾸 윤형근과 연결시켜서 이야기 하지만 유영국과도 관계가 있다며 그쪽으로 전시나 크리틱을 해보면 재미난 이야기꺼리가 나올거야'라고 말하는데 단박에 동의되더라. ◆한국 근대미술 출발 "겸재 정선 선배 가장 존경" 겸재 정선 선배님을 존경해 마지 않는다. 한국의 근대미술의 출발을 겸재 정선으로 본다. 서구의 근대는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시작됐다. 왕권 시대에서 시민 개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난 계기였다. 한국의 근대는 혹자는 일본의 의해서 대리 근대화됐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근대는 '인라이트먼트(Enlightenment)', 내 안에서 불이 켜지는 것이다. 나는 누군인가하는 내 안의 자각이다. 나는 왕의 백성도 아니고 귀족의 머슴도 아니고 완전한 인격체로서 한 시민으로 인권과 자유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미술분야에서 겸재 정선이 실경산수를 그렸다. 이전엔 관념산수였다. 당시 중국은 현재 지금 미국과 같은 존재였다. 관념산수 시절에 겸재는 내 몸뚱아리가 있는 주변, 이 땅을 그렸다.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나. 그래서 나는 겸재 선배님을 한국의 근대미술의 출발로 보는 거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하나씩 써나가야 할 시점이다. 조그마한 성취도 격려하고 칭찬하고 다독거리는 사회 분위기. 그 속에서 서로 힘 받아서 앞으로 치고 나가는 분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긴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기른 머리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기질과 상관있다. 대학생때 장발 단속을 당했다. 길에서 잡혀 머리를 깎였다. 장발 단속을 당하면서 경찰 서장하고도 많이 싸웠다. 내가 이렇게 살고 싶은데 왜 그러지? 아버지도 남자가 왜, 머리가 그게 뭐냐고 혼을 냈다. 그래서 머리 역사를 공부했다. 짧은 머리는 나폴레옹시대때 나왔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병사들의 머리가 이가 드글드글했다. 전쟁을 위해 머리를 자른 거다. 조선은 원래 상투를 틀고 머리를 길렀다.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서 단발령 때문에 머리가 짧아졌다. 그게 지금까지 굳어 진거다. 그래서 공부를 해서 갖고 다닌거다. 당신들이 얼마나 무식한가 봐라. 그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박해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단히 의식화됐다. 사회과학, 인류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계속 물고 들어가서 탐구하고 파고 드는 스타일이다 보니 지금의 이런 작업을 하게 됐다. ◆'물 작업 회화' 배경 재미있는 것은 제 사주에 물이 부족하다. 우습게 들었는데 사주는 통계학이다. 10여 년 전 우연히 산을 갔는데 '선생님 물이 부족하세요 물 장사를 해야 된 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물 장사'를 하고 있더라. 사주가 터무니 없는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내가 딸을 좋아한다 물 수가 많다. 하하. ◆빛 작업은? 구조 색과 관련된 것인데, 구조 색을 구현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색을 쫓아가다 보니 방법론적으로 결과 되어진 거다. 작가들은 행동이 먼저 인 사람이다. 플로우 신작은 빛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블랑켓을 썼다. 벽에 띄운 이유는 비존재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이렇게 작업하는 작가가 아니쉬 카푸어다. 핀 조명은 맞는 작업이 따로 있다. 내 작업은 구조색이라 발광하는 느낌을 낼 수 있다. 표면 아래는 입자가 납작해보이지만 대단히 많은 구조가 시간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미세 공간에 빛이 들어가는거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고려해서 나온 거다. 바탕에 칠한 건 아크릴 물감이다. 하지만 액상화된 물감을 쓰지 않는다. 물로 희석을 한다. 양동이에 물을 넣고 안료(물감)를 물로 해체한다. 중력에 의해서 입자들(알갱이)이 가라앉은 것을 쓴다.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 등 단색화가들의 수행적 방법과 같다. 한국문화적 밈이다. 우리가 색을 다루는 방법이다. 고려청자에서 시작됐다. 청자는 내가 색을 다룬 방법과 똑같다. 고려청자의 비색이 나오는데 '아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선조들의 방법과 다르지 않구나'를 알았다. ◆'빛 작가' 제임스 터렐과 차이는? 빛을 다룬다는 입장에서는 같다. 하지만 터렐과 나는 기질이 다르다. 나는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게 삶의 지표다. 서양 작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나는 애초에 안 한다. 차이는? 수련과 공력이 필요하다. 기계를 활용해서 3m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나 장인이나 무술가들은 수련을 통해서 일반인은 못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맞는 근육이 만들어진다. 나는 그 쪽이다. 제임스 터렐은 3차원의 빛을 3차원적 방법으로 보여준다. 나는 3차원의 빛의 문제를 2차원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원리냐면 고차방정식을 차원을 낮춰 초등생이나 유치원생에 이해시키는 것과 같다. 상당한 공력이 필요하다. 대학생이 고등학생을 이해시키는데는 가능한데, 유치원생을 이해 시키려면 특별한 노하우와 공력이 필요하다. 동북아시아 특징이라고 본다. 1세대는 그걸 '수행'이라고 했다. 내 작업은 빛을 다루긴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봤을 때 터렐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질이 아니다. 그 지점에서 터렐과 차별성이 있는데 돈이 덜 든다. 또 쓰레기는 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전시 하는 이유? 감동은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상황, 새로운 어떤 무엇을 맛을 봤는데 정말 처음 보는 맛을 봤을 때 우리가 감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갖고 있는 매커니즘이다. 감동을 받게 되면 그 다음 프로세스가 그걸 나누고 싶어한다. 이거 먹어 봤어? 거기 가봤어? 그렇게 진행이 된다. 나도 똑같다. 그러니까 내가 실험하고 시도한 일이지만 나에게 감동이 있었을 때 나도 감동을 받는다. 그랬을 때 그것을 나누고 싶어진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진짜 세상의 조그만 아름다운 조각`들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같이 나누면 더욱 행복해지니까. ㅡ리안갤러리 서울은 김택상 개인전 '타임 오딧세이'전을 세계 미술인들이 집결하는 키아프-프리즈 기간에 맞춰 선보인다. 전시는 오는 9월4일부터 10월19일까지 열린다. 202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