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되지 않은 유산"… '오늘'을 사는 경주 양동마을·옥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경주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은 과거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아니었다. 종손과 후손들이 일상을 이어가고,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진 제향이 지금도 거행되는 '살아있는 세계유산'이었다. 17일 '제8회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 참가자들은 경주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을 찾아 세계유산이 보존을 넘어 오늘의 삶 속에서 이어지는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 "양동마을 모든 행정은 주민들 안위에 맞춰져 있어요. 관광은 그렇게 관심이 많진 않아요. 오는 손님들이 있다 보니 카페나 식당이 생기기도 하지만, 관광지처럼 돼서 주민들이 불편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종손 어른과 후손들이 살고 있거든요." 이지관 운영위원장은 포럼 참가자들에게 '경주 양동마을'에 대해 이같이 소개하며 과거의 기억을 품은 유산인 동시에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이 활력을 불어넣는 삶의 터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참가자들도 양동마을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와 세계유산 등재 이후 후손들의 삶에 대해 질문했다. 23년째 양동마을에 거주하는 12년차 해설사 이경희씨는 "세계유산 등재 후 주민들은 조상들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이 생기고, 애향심이 많이 고취됐다"며 "무분별하게 관람객이 들어오면 주민들의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동마을은 2013년부터 관람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이후 연평균 18만7000명 정도(외국인 10%)가 양동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총 223만4000여명이 양동마을을 다녀갔다. 이 해설사는 "사실 '많이 온다, 적게 온다'보다 어떤 마음으로 들어오는지가 중요하다"며 "아직 민속촌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방문을 열고, 숟가락을 확인하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기에 관람 예절을 지키고 우리 문화를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관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양대 문벌이 이어져 온 씨족마을이자 양반마을로 경주에서 형산강 줄기를 따라 동북 포항 쪽으로 40리 정도 들어간 곳에 자리 잡은 곳이다. 산 계곡을 따라 펼쳐진 경관, 오랜 전통을 간직한 집들, 양반을 대표할 수 있는 자료들과 문화 등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로 평가받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이라는 이름으로 2010년 7월 31일 우리나라 10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장관리자들은 우재 손중돈 선생의 옛집인 보물 '경주 양동 관가정'에 이르자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종가일수록 높고 넓은 산등성이에 자리해 집에서 뒤돌 볼 때 수려한 자연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150명 정도의 주민들이 양반 문화의 계승과 보존관리에 힘쓰고 있다. 라트비아 출신 야나 야콥소네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본 것과 다르다"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게 마음에 든다"고 했다. 무첨당은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이의용의 호가 사용된 건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 이언적 종가의 일부로 손님 접대 및 쉼터 따위로 사용되던 별당이었다. 한 시간가량 양동마을을 답사한 이들은 인근에 있는 '경주 옥산서원'으로 향했다. 국보 '삼국사기' 완질본이 있는 옥산서원은 2019년 7월 우리나라 14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연속유산 '한국의 서원' 9곳 중 한 곳이다. 등재 당시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고 평가받았다. 이날 포럼 참가자들은 이영환 옥산서원 위원장을 비롯한 유생들의 환대를 받았다. 이 위원장은 "옥산서원은 과거에 멈춰 있는 박제된 유적이 아니다"라며 "한국 유교와 성리학의 원천이자 한국인의 정체성이 응집돼 있고, 나아가 인류 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인문학의 발상지로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향 공간에 들러 454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사당에 모셔진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향해 인사를 올리는 '알묘례'가 진행됐다. 자메이카의 세계유산 '17세기 포트 로얄의 고고학적 풍경'의 현장관리자 샤본 캠벨은 "이번 답사가 내가 가진 생각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고용 등 유산을 유지하는 방법 같은 것들을 고향에 돌아가서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메이카에서 미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는 데만 사흘이 걸렸지만, "주변 경관이나 거주민과 전통의 융합을 보는 게 너무 좋은 경험"이라고 했다. 2026/07/18
백남준 '나의 파우스트' 소유권 분쟁…故김우중 배우자 승소 비디오 아트 예술가 고(故) 백남준의 '나의 파우스트-경제학'과 '나의 파우스트-영혼성'의 소유권이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배우자 정희자씨에게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창모)는 지난 10일 정씨가 우양산업개발(옛 대우개발)을 상대로 낸 동산인도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정씨는 우양산업개발을 상대로 우양미술관이 점유하고 있는 미술품 188점을 돌려달라는 이번 소송을 냈는데, 법원은 백남준 작가의 두 작품과 독일 작가 지그마르 폴케의 작품 등 총 3점만 정씨 소유권을 인정해 반환을 명했다. 정씨는 1991년께 남편이 지배하던 우양산업개발의 경주 힐튼호텔과 아트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에 자신이 소유한 미술품을 보관했는데, 회사 경영권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반환되지 않았다며 지난해 7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작품들을 판매한 화랑 대표와 미술관 큐레이터의 진술, 계좌 송금 내역 등을 바탕으로 백남준 작품 2점 등 3점에 대해 정씨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정씨가 2014년 4월 회사 측에 '수십 년에 걸쳐 개인 자금으로 구입한 여러 미술품 등을 회사가 보관하며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하며 필요하면 언제든 회수하겠다고 누누이 이야기를 했다'는 문서를 보낸 점도 고려했다. 정씨는 나머지 185점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정씨는 소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소장품 자료 카드에 'M'이라는 표현을 적어 넣었다고 주장했으나, 증인으로 나온 큐레이터가 "소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일단 'M'을 기재했다"고 밝힌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우양산업개발 측은 지난 14일 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2026/07/18
"우리도 같은 고민입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세계 공통 과제였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비치면 영화처럼 그림이 살아나요. 20㎞ 떨어진 동해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이 여기에 그림을 남기고 천전리에 가서도 그림을 남겼죠." 17일 오후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 앞. 박미현 학예연구사의 설명이 이어지자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세계유산 현장관리자들은 바위면을 유심히 바라봤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들어 암각화를 기록했고, 또 다른 참가자는 메모를 남기며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공식 사전행사인 '제8회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 참가자 100여 명은 이날 울산을 찾아 한국의 세계유산인 반구천의 암각화를 답사했다. 포럼에는 아시아·태평양 28명, 아프리카 14명, 유럽·북미 13명, 남미 8명, 아랍권 6명 등 세계 각국의 현장관리자와 국내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보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암각화를 아우르는 단일 세계유산이다. 신석기 말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약 6000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래와 고래잡이 장면을 비롯해 육지동물과 해양동물 등 200여 점의 그림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는 이 유산에 대해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표현과 독창적인 구도를 통해 선사시대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걸작"이라며 "고래와 고래잡이 과정을 담은 희소한 주제를 창의적으로 표현한 뛰어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참가자들은 전망대에서 인공지능(AI)과 확장현실(XR)을 접목한 지능형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살펴본 뒤 반구천으로 내려가 실제 암면을 마주했다. "해가 들지 않아 안타깝네요. 11개 면 중 하나에 그림이 집중돼 있어요. 중앙에 크랙을 중심으로 봐주세요. 왼쪽에 해양 동물, 오른쪽에 육지 동물이 있어요. 야외 계측기를 부착해서 유산을 계속 확인하고 있어요. 이 암면만 주변에 비해 깨끗한 이유는 위쪽 암면이 보호해 주기 때문이에요." 박 연구사의 설명처럼 암면 곳곳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과 함께 보존을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반구천의 암각화를 둘러싼 고민은 참가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마리엘라 인코바 불가리아 국립역사박물관 수석 조교수는 "자연 속에 암각화가 있어서 경이롭다"며 "불가리아에도 '마다라 기수상'이 기후로 훼손될 위기에 놓여 같이 해결법을 찾는 이 순간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압둘 카림 네비에 학예연구관도 "베냉,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3개국에 걸친 'W-아를리-펜쟈리 복합유산'에 안전 등 많은 문제가 있다"며 고민을 털어 놓았다. 답사에 앞서 열린 포럼에서는 반구천의 암각화를 둘러싼 한국의 보존 경험도 공유됐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개회사에서 "반구천의 암각화 보존을 위해 25년 동안 다양한 방안을 시도해 왔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며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몽골 알타이 암각화 등 세계 각국 사례를 함께 논의하며 더 나은 해법을 찾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욱 울산시장은 "문화유산 보존과 시민 삶의 조화를 이루는 것은 어느 지역이나 마주하는 과제"라며 "반구천의 암각화가 갈등을 협력으로 풀어가는 하나의 모델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규형 국가유산청 건축유산팀장은 반구천 암각화 보존 과정에서의 갈등과 협력 체계를, 이동훈 한국수자원공사 부장은 사연댐 운영과 물 관리 방안을, 이복희 울산시 문화유산과장은 주민협의체 운영과 주변 환경 개선 등 지역사회와 함께한 보존 노력을 소개했다. 오늘날 직면한 기후위기 대응 문제와 지역주민과 공존에 관한 외국 사례를 나누는 현장관리자 발표도 이어졌다. 앤티가바부다에서 온 데슬리 가드너는 "지난 16일 세계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은 '앤티가 해군 선창과 관련 고고학 유적'의 가장 큰 과제는 문화유산 보존과 지역사회 현실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며 "포용적인 참여 접근 방식을 채택해 주민들을 이해관계자로 보는 게 아니라 보존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등재 초기 몇 년 동안은 지역 주민들이 연결감을 느끼지 못했기에 지역사회 참여에 중점을 두고 자원봉사 프로그램, 구술 역사 수집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다"며 "역사를 연결하는 이런 노력으로 공동체를 가꾸는 등 기후변화 회복력을 지닌 강력한 거버넌스를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알바니아에서 온 조리다 무호 부트린트 국립공원 전무이사, 잠비아에서 온 네이선 칼루바 카냔틸라 빅토리아 폭포 현장관리자, 아랍에미리트 벨라센 킨비 알 아민 문화 유적지 유산 보존 전문가도 각각의 유산에서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참여 유도, 이익 공유 등 사례를 나누며 통합 전략을 강조했다. 허 청장은 "25년 동안 대한민국은 수로터널, 임시 제방, 카이네틱 댐(가변형 임시 물막이), 생태 제방, 다른 댐을 통한 용수 공급 등을 시도해 봤지만, 지금까지 해결이 잘 안되고 있다"며 "사연댐에 수로를 설치하는 안으로 합의해 2030년 완공 목표로 올해부터 설계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후변화가 극심해지면서 수로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도 짚었다. 이후 기자단과 만난 허 청장은 "현장관리자 포럼은 우리나라에 있는 세계유산을 보여주며 서로 전 세계 사례를 나누는 게 목표"라며 "'반구천의 암각화'를 답사에 안 넣을 수도 있었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유산의 훼손 우려는 전 세계의 갈등인 만큼 숨기지 말고, 같이 논의해 보자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2026/07/18
전선으로 그려낸 기억의 파편…장수익 개인전 '잔상의 자화상' 전선을 재료로 기억과 감정의 흔적을 표현한 장수익 작가의 개인전이 대구에서 열린다. 18일 대구 행복북구문화재단에 따르면 장수익 개인전 '잔상의 자화상'이 20일부터 내달 8일까지 북구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명봉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지역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2026 EAC 작가 지원 프로젝트'의 두 번째 프로그램이다. 장 작가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정보와 메시지, 그로 인해 남겨지는 감정과 기억에 주목한다. 전선을 전기 전달 장치가 아닌 정보와 감정이 흐르는 통로로 바라보고 머릿속에 남은 희미한 잔상을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작품에는 물감 대신 다양한 색상의 전선이 사용된다. 화면 위에 전선을 배열해 픽셀화된 이미지를 만들고 작업 과정에서 촬영한 사진에도 작가만의 표현 방식을 더한다. 이렇게 완성된 화면에는 현실과 기억, 감정이 겹쳐진다. 익숙한 재료인 전선은 작가의 손을 거쳐 불완전한 기억의 파편과 감정의 흔적을 드러내는 매개로 바뀐다. 장 작가는 안동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2021년 이랜드문화재단 작가와 2024년 화랑미술제 줌인 에디션 작가 등에 선정됐다. 장 작가는 "전선을 통해 끊임없이 유입되는 정보와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선명한 기억이 아닌 잔상으로 남는다"며 "관람객들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되돌아보고 내면에 남은 흔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6/07/18
AI 시대, 극사실회화의 힘…'아이스캡슐' 작가 박성민의 '진화' 멀리서 보면 단색의 추상회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화면은 전혀 다른 풍경을 드러낸다. 기포와 티끌, 미세한 균열, 유약이 흘러내린 흔적까지 알고보면 도자기의 표면이다. 고해상도 사진을 출력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지만 모두 붓으로 그린 그림이다. 극사실의 경이로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인간의 인식에 질문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극한까지 밀어붙인 재현은 인간의 손이 어디까지 정교해질 수 있는지를 넘어, 인간의 시선이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서울 강남 슈페리어갤러리는 오는 21일부터 박성민 개인전 '시선이 사유가 될 때(When the Gaze Becomes Thought)'를 개최한다. '아이스 캡슐' 연작으로 이름을 알린 박성민(58)은 얼음 속 딸기와 블루베리 등 과일과 식물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사진보다 더 생생한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판매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0여 년 이어온 극사실의 대상은 2024년부터 달라졌다. 과일 얼음 대신 도자기 표면의 기포와 균열, 유약의 흔적을 집요하게 관찰해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 형태는 추상이 됐지만, 그리기는 더 극단이 됐다. 변화한 것은 대상이지 시선은 아니다. 박성민은 여전히 사물을 오래 바라보며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감각을 회화로 옮긴다. 신작 'Evolution'은 언뜻 거대한 색면추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면을 이루는 색과 질감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 도자기 표면을 집요하게 관찰한 결과다. 기포와 균열, 유약의 번짐을 극도로 확대하는 순간 형상은 사라지고, 물질이 품은 시간과 흔적만 화면에 남는다. 극사실을 끝까지 밀어붙였더니 추상이 나타난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그리는 걸까. 박성민은 그 이유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에서 찾았다. "시간이 갈수록 정답 또한 없는 것 같고, 그렇기에 점점 고민들이 쌓여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사람들은 스쳐 본 순간만으로 사람과 사물을 다 파악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모든 사물은 양파껍질처럼 수많은 층위를 품고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시각만으로 그 본질을 안다고 착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 작업은 무엇을 쉽게 파악하는가보다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인식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며 "초기 작업이 사물에 직접 접근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의 작업은 몇 번의 시각적 레이어를 거쳐야 비로소 의미에 도달하는 간접적인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또 "표면의 질감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극사실은 추상의 영역으로 옮겨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형태보다 '부분'에 집중한다. 도자기의 표면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물질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풍경이다. 극사실은 더 닮게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쉽게 안다고 믿는 시선을 잠시 멈춰 세우는 장치가 된다. 이번 전시는 초기 '아이스 캡슐' 연작과 최근의 도자기 작업을 함께 선보이며 작가의 회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얼음을 그리던 화가는 이제 도자기를, 그 표면을 그린다. 하지만 그가 끝내 응시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다. AI가 이미지를 순식간에 생성하고 복제하는 시대, 회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박성민은 그 답을 재현의 포기가 아니라 극사실의 끝에서 찾는다. 더 세밀하게 그릴수록 사물은 오히려 추상의 얼굴을 드러내고, 관람자는 익숙한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작업노트에 "우리가 무심결에 스쳐 지나친 부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그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내 작업은 무엇을 쉽게 파악하는가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형태보다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도 그 부분이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존재하며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전시 제목 '시선이 사유가 될 때'는 그의 회화를 가장 잘 설명한다. 박성민은 사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안다고 믿어온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화가다.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한 박성민은 2003년 신사임당미술대전 대상, 2004년 동아미술상과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일찍부터 스타작가로 주목받았다. 2006년 첫 개인전 이후 1년마다 꾸준히 전시를 열어 이번이 17번째 개인전이다. 전시는 8월 10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2026/07/18
리움서 故 배영환 추모식…안규철·이불·박찬경 추모사 지난달 별세한 배영환(1969~2026)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기리는 추모식이 오는 23일 오후 4시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강당에서 열린다. 이번 추모식은 고인과 함께 작업하고 교류했던 동료 작가와 기획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의 예술적 유산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추모사와 메모리얼 영상 상영, 클래식 기타 연주로 진행된다. 추모사에는 마미 카타오카 모리미술관 관장, 안소연 아뜰리에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백지숙 전 서울시립미술관장과 작가 안규철, 이불, 박찬경, 이제임스 갤러리스트가 참여한다.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는 고인의 작품 세계와 공명하는 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배영환은 1990년대 후반 등장한 '포스트 민중'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건설 현장의 폐목재와 깨진 술병, 유행가 가사 등 일상적 재료를 통해 한국 사회의 급속한 산업화와 시대 감각을 독창적으로 풀어냈다.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활동하며 동시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추모식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며, 원활한 운영을 위해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한다. 2026/07/17
붉은 달, 푸른 별…이세현이 묻는 '보는 것'의 진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여진 세계를 본다." '붉은 산수' 화가 이세현에게 색은 자연의 색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다.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으로 바라본 최전방의 풍경에서 출발한 그의 '붉은 산수'는 이제 '푸른 산수'와 마주 선다. 같은 풍경도 어떤 렌즈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된다는 질문이다. 이세현 개인전 '붉은 달, 푸른 별'이 서울 강남 아트코드갤러리 개관 10주년 기념전으로 열리고 있다. 작가의 '붉은 산수' 시리즈는 한국의 전통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단색의 붉은색만으로 분단의 기억과 근현대사의 상흔을 압축해낸다. 동양적 산수와 서구적 회화 언어를 결합한 그의 작업은 현실과 기억, 풍경과 심리를 교차시키는 독창적인 회화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붉은 산수와 푸른 산수가 한 공간에서 마주한다. 붉은색이 기억과 상흔을 환기한다면, 푸른색은 같은 풍경을 낯선 거리에서 다시 바라보게 한다. 두 색은 서로 다른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인식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다. 멀리서는 하나의 거대한 산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마을과 길, 사람들의 흔적이 촘촘히 숨어 있다. 결국 이세현이 그리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전시는 22일까지 열린다. 2026/07/17
아르코 '작가의 방: 김채린'…"뜨개실도 만지고 조각도 함께 만들어요" 눈으로만 보던 미술관이 손끝과 귀를 향해 다시 열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은 17일부터 8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미술관 1층 공간열림에서 관객 참여 프로그램 ‘작가의 방: 김채린’을 운영한다. 작품을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재료를 직접 만지고 소리를 들으며 감각하고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나이와 장애 여부, 미술 경험에 관계없이 누구나 각자의 감각과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참여 작가 김채린은 신체가 경험한 감각과 기억을 조각으로 구현해온 작가다. 아르코미술관 ‘여기 닿은 노래’, 부산현대미술관 ‘열 개의 눈’ 등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만지고 들으며 작품을 느끼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 주요 프로그램은 ‘감각을 잇는 뜨개’와 ‘추상초상조각’이다. 25일 열리는 ‘감각을 잇는 뜨개’는 성인을 대상으로 뜨개실의 색과 촉감을 살펴보며 촉각 오브제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추상초상조각’은 형태와 색, 질감, 소리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자신을 닮은 초상을 입체로 표현하는 활동이다. 초등학생 대상 사전 신청 프로그램은 8월 1일 진행되며, 기관 연계 초청 회차도 별도로 운영한다. 예약 없이 현장에서 참여할 수 있는 상시 프로그램 ‘나를 닮은 팔베개’도 마련된다. 참여자들이 만든 결과물은 프로그램 기간 동안 공간열림에 차곡차곡 쌓인다. 서로 다른 감각과 속도로 탄생한 작업들이 모여 하나의 전시를 이루는 방식이다. 아르코미술관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을 작품의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라 직접 감각하고 표현하는 창작 주체로 초대한다.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기존 감상 방식 자체를 확장하는 시도다.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2026/07/17
조각가 윤영자가 뿌린 예술의 씨앗…26명의 작가로 피어났다 한 사람의 예술가는 떠났지만, 그가 뿌린 예술의 씨앗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석주 윤영자(1924~2016)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작품, 그리고 그가 길러낸 예술의 계보를 조망하는 기념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별처럼 남은 이름, 석주 윤영자 서거 10주기 기념전'과 석주미술상 수상작가전'이 동시에 열렸다. 이번 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작품만이 아니다. 가족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사진과 기록, 아카이브가 더해지며 조각가 윤영자의 예술 세계는 물론 한 시대를 살아낸 인간 윤영자의 시간까지 함께 복원한다. 석주문화재단 윤재원 이사장과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윤혜정 이사가 보존해온 자료들이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돼 회고전에 깊이를 더한다. 전시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됐다. 한 축은 윤영자의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회고전이다. 초기 석고와 테라코타 작업부터 대리석과 브론즈 조각에 이르기까지 대표작을 소개하며, 작업 노트와 사진, 영상, 미공개 아카이브를 함께 공개한다. 윤영자는 인간과 자연, 모성을 유기적인 곡선으로 형상화하며 독자적인 '생명주의 미학'을 구축했다. 흰 대리석 조각은 인체를 재현하기보다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와 생성의 움직임을 추상화한다. 비어 있는 공간과 둥근 곡선은 비움과 충만이 공존하는 조형 언어를 드러내며, 그의 조각 세계를 압축해 보여준다. 또 다른 축은 '석주미술상 수상작가전'이다. 1989년 제정된 석주미술상은 한국 조각 발전에 기여한 중견·원로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전시에는 역대 수상작가 26명이 참여해 조각은 물론 회화와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인다. 정경연, 김홍희, 박상숙, 송수련, 정보원, 유리지, 석난희, 장진, 이숙자, 권이나, 김승희, 심영철, 홍정희, 홍순주, 원문자, 이자경, 김혜원, 김정희, 조문자, 송인헌, 윤난지, 이소진, 차우희, 이경미, 이불, 안재홍 등이 참여해 서로 다른 세대와 조형 언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펼쳐 보인다. 전시장에는 철과 유리, 회화, 설치, 섬유, 와이어 조각 등 매체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공존한다. 하나의 전시 안에서 윤영자의 유산이 현재진행형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윤영자(1924~2016)는 한국 현대조각의 형성기를 개척한 대표적인 여성 조각가다. 1949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조각과 제1회 입학생으로 한국 현대조각의 출발을 함께했으며, 6·25전쟁으로 학업이 중단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예술 활동을 이어가 1955년 홍익대를 졸업했다. 이후 목원대학교 미술학부 교수와 학부장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1989년 사재를 출연해 석주문화재단과 국내 유일의 여성미술상인 '석주미술상'을 제정하며 후배 예술가 지원에도 힘썼다. 행주산성 권율장군 행주대첩비, 다산 정약용 선생 동상, 김유신 장군상, 춘천 소양강댐 기념조형물,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공공조형물을 제작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별처럼 남은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전시는 윤영자의 조각과 예술정신이 작품에 머무르지 않고 후배 작가들의 작업과 한국 현대조각의 흐름 속에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예술가가 남긴 유산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과정을 조망하는 뜻깊은 자리다. 전시는 8월 16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2026/07/17
유홍준이 보는 '걷는 부처'…'어매이징 타일랜드' 연계 강연회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특별전 '어매이징 타일랜드: 태국미술명품전'과 연계한 강연회에서 불교조각품 감상에 관한 지식을 나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달 4일 오후 2시 교육관 소강당에서 특별강연회 '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특별전은 박물관과 태국 문화부 예술국이 함께 마련한 전시로,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의 왕조까지 태국의 역사와 미술을 종합 조명한다. 강연회는 태국미술의 특징을 장르별로 풀어내는 3개 강연으로 구성됐다. 먼저 전시 기획자 강연이 진행된다. 권강미 학예연구관이 '태국 공예의 흐름'을 주제로 수코타이 시대부터 라따나꼬신 시대까지 태국 공예 흐름과 특징을 설명한다. 이어 노남희 학예연구사가 '태국 불교미술의 세계' 강연을 통해 태국 불교미술의 핵심 주제와 분야별 특징을 살펴본다. 유홍준 관장은 '불상을 보는 눈 - 내가 만난 세계 유명 불상조각 답사기'라는 제목으로 인도, 중앙아시아,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만난 불상을 소개한다. 또 불교조각품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관점을 제시하며, 수코타이 시대 대표작 '걷는 부처'의 미학적 특징을 설명할 예정이다. 강연은 사전 신청 없이 누구나 현장에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유홍준 관장은 "이번 강연회는 전시와 함께 태국미술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회"라며 "장식성과 화려함,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는 태국미술만의 우아함을 느끼며 이번 태국 특별전을 더욱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026/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