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 신작·전시 한정 판화 공개" 신세계百, '日 작가' 키네 개인전 신세계백화점은 일본 작가 키네(KYNE)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개인전은 이날부터 4월4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세계갤러리 청담에서 진행된다. 키네의 팬은 물론 작가를 처음 접하는 관객도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 키네의 지난해 신작과 대표작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작가의 영감의 원천인 후쿠오카의 국도 3호선 'ROUTE 3'을 제목으로 삼고 키네의 시그니처인 여성 인물과 작가가 도시를 지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특히 미공개 신작 50점가량을 포함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조망하는 대표작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작가가 갤러리 벽면에 직접 제작한 대형 벽화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 오픈과 함께 전시 한정 판화 3종을 출시하며 전시 굿즈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키네는 일본 후쿠오카(福岡)를 기반으로 활동해왔다. 1980년대 만화와 여성 팝 아이돌의 레코드 재킷 등 팝과 거리문화에서 추출한 이미지를 시작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패션 브랜드 협업, CD 재킷 디자인, 광고 등 다양한 영역으로 작품 활동을 확장했으며 2010년대를 지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2026/01/30
서울공예박물관 '금기숙 기증전', 개관 이래 최다 관람…전시 연장 서울공예박물관이 지난해 12월 23일 개막한 '금기숙 기증특별전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이 개막 4주 만에 누적 관람객 2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박물관 개관 이래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 '패션아트'의 선구자이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피켓 요원 의상의 주인공인 금기숙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기증특별전이다. 박물관은 뜨거운 호응과 기간 연장 요청에 힘입어 전시를 1주일 연장 운영한다고 30일 밝혔다. 기간 연장에 따라 당초 3월 15일까지였던 전시가 3월 22일까지 운영된다. 예약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매주 금요일에는 오후 9시까지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전시 흥행의 주요 요인으로는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관람 후기와 추천이 빠르게 확산된 점이 꼽힌다. '2026년 꼭 봐야 할 전시'로 언급되며 관람객 유입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3층 전시장 도입부 'Dreaming' 공간이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화제의 공간이자 주요 포토스폿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어둠 속 중심에 전시된 '백매(白梅)' 드레스는 검은 거울과 조명 연출을 통해 몽환적인 장관을 만들어낸다. 금 작가는 1990년대 초부터 '미술의상' 개념을 한국적 맥락으로 재해석하며, 철사·구슬·노방·쓰고 버려지는 폐기물(스팽글·빨대·스펀지·은박지 등) 등 비전통적 재료를 활용한 독창적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의상을 '입는 예술(Wearable Art)'이자 공간을 구성하는 조형예술로 확장하며 패션아트의 지평을 넓혔다. 전시에 앞서 금 작가는 한국 패션아트의 역사를 작가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공공의 자산으로 환원하고자 평생에 걸쳐 작업한 작품 총 56점과 아카이브 자료 총 485점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번 전시는 금 작가와 함께하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이 작가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이번 금기숙 기증특별전은 공예 분야에서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패션아트를 주제로 했음에도 폭넓은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의미 있는 흥행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전시 기간 연장을 통해 더 많은 시민과 국내외 관람객이 이번 전시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6/01/30
새해 경매시장 ‘청신호’…서울·케이옥션 낙찰률 70%대 회복 새해 들어 미술품 경매시장에 회복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국내 양대 경매사의 낙찰률이 3개월 연속 70%대를 기록하며 바닥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해외 경매에서도 매출 반등 신호가 포착됐다. 서울옥션은 지난 27일 열린 1월 메이저 경매에서 출품작 113점 가운데 82점이 팔려 낙찰률 72.6%를 기록했다. 낙찰총액은 약 41억5000만원이다. 이번 경매에서는 인기 작가에 대한 선호도가 여전히 뚜렷하게 나타났다. 야요이 쿠사마의 노란 호박 ‘Pumpkin (AAT)’은 시작가인 7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우국원의 2024년작 ‘꿋꿋한 주석 병정(The Steadfast Tin Soldier)’은 시작가 2억원에서 경합이 붙으며 추정가보다 2000만원 높은 2억8000만원에 낙찰됐다. 추정가 4000만~8000만원에 출품된 김선우의 ‘파이오니아(The Pioneer, 2023)’ 는 경합이 붙어 1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28일 열린 케이옥션 1월 경매도 낙찰률 71.7%로 마무리됐다. 최종 출품된 92점 가운데 66점이 낙찰됐으며, 낙찰총액은 약 69억원에 달했다. 블루칩 작품의 거래가 이어졌다. 쿠사마 야요이의 ‘버터플라이 “TWAO”’는 9억8000만원, 이우환의 100호 크기 ‘다이얼로그’ 8억9000만원, 김창열의 1973년작인 ‘물방울 ABS N°2’는 8억8000만원에 낙찰됐다. 전문가들은 미술품 경매시장이 바닥을 다진 뒤 점진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50~60%대에 머물던 낙찰률이 하반기 들어 양질의 작품이 시장에 나오면서 개선됐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났다. 소더비는 지난 27일(현지 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현대미술 경매에서 62점의 작품을 총 1310만 달러(약 186억원)에 낙찰시키며 2023년 이후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기업부설연구소 카이(KAAAI)는 2026년 미술시장을 ‘조용한 회복’의 해로 전망했다. 한국화랑협회 이성훈 회장도 올해 미술시장 전망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 회장은 “최근 코스피 5000을 돌파 하는 등 자산가치 상승과 함께 분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자산 축적이 이뤄져야 미술품 구매 여력도 생기는 만큼, 전반적인 경기 회복이 이어진다면 미술시장도 함께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6/01/29
세상의 끝에서,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경이로움과 고유함이 스며든 그의 여행담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미술비평가인 존 버거의 이 문장은 곧 '세상 끝의 기록'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이자 태도다. 이 책 속 이야기에는 누구도 제외되지 않으며, 그 무엇도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가슴은 피를 흘리지만, 끝내 과장하지 않는다. 존 버거의 말처럼, 이 책은 글과 사진이 서로를 설명하지도, 지배하지도 않는 드문 균형 위에 서 있다. 글은 사진을 해석하지 않고, 사진은 글을 증명하지 않는다. 둘은 나란히 걷는다. ‘세상의 끝’이라는 말은 지리적 종착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장 모르가 말하는 끝은 모든 길이 막힌 듯한 지점에서 마주하는 공허이자, 동시에 한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문턱이다. 성취와 상실, 해방과 고독이 동시에 깃든 자리. 그곳에서 인간은 가장 취약해지고, 동시에 가장 인간다워진다. 장 모르의 사진은 흑백으로 남은 삶, 꾸미지 않은 인간의 얼굴을 기록한다.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 스리랑카의 농장, 멕시코의 반란군 집회…. 세속적 중심에서 벗어난 장소들에서 그는 삶을 견디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연민도, 영웅화도 없다. 다만 함께 서 있으려는 태도만이 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40여 년의 기록 속에서 두 작가는 유독 소외된 이들에게 시선을 건넨다. 인권과 노동, 일상 속 인간 존엄의 문제를 탐구해 온 존 버거의 글과, 인본주의 다큐 사진의 거장 장 모르의 이미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기록’이 아닌 ‘관계’로서의 예술을 마주하게 된다. 1999년 오리지널 초판 이후 20여 년 만에 출판사 더퀘스트가 국내 최초 양장본으로 복간한 이번 판본은 단순한 재출간이 아니다. 사진 에세이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이 책은 1999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예술 분야 스테디셀러로 자리해 왔다. 국내에서는 절판 이후 중고 서적으로만 회자됐으나, 이번 복간을 통해 텍스트와 사진을 보정하고 고급 양장본으로 재탄생했다. 존 버거와 장 모르는 50년의 우정을 바탕으로 1960년대부터 사진과 글 사이의 새로운 대화 형식을 꿈꾸며 협업해 왔다. 이 책은 20세기가 끝나가던 1990년대 말, 노년에 이른 두 거장이 ‘세상의 끝’이라는 주제로 함께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2026/01/29
흙밭으로 시작한 ‘삭는 미술’…보존을 흔드는 국립현대미술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삭는다. 죽어야 산다. 자연의 순환이 미술관 한복판에서 발효된다. 전시는 흙밭으로 시작한다. 하얗게 정돈된 미술관 바닥 대신,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고르게 다져진 흙이다. 작품보다 먼저 들어온 것은 인간이 아니라 땅의 시간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30일부터 5월 3일까지 서울관 6·7전시실과 전시마당에서 기획전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를 개최한다. 분해와 변화, 순환을 전제로 한 작업들을 통해 미술관의 보존 중심 제도와 인간 중심적 사고를 근본에서 되묻는 전시다. 전시는 이주연 학예연구사가 기획했다. ‘삭다’라는 우리말에는 ‘썩은 것처럼 되다’와 ‘발효되어 맛이 들다’라는 상반된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전시에 참여한 작품들은 분해를 손상이나 실패가 아닌 존재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비인간 존재와 공존하고 자연의 순환에 참여한다. 전시는 이러한 변화를 미술관이 수용할 수 있을지,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묻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다크호스로 불리는 이주연 학예연구사는 “변화하는 물질에 대한 관심, 그리고 미술 제도를 이루는 관념 자체가 이제는 바뀔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전시가 시작됐다”며 “생산·소비·축적의 흐름에서 벗어나, 공유와 순환이 가능한 방식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는 ‘서막’과 1막 ‘되어가는 시간’, ‘막간’, 2막 ‘함께 만드는 풍경’ 등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국내외 작가 15인(팀)의 회화, 조각, 설치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 보존을 거부하는 작품들, 미술관과 충돌하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은 ‘보존’과의 충돌이다. 해조류, 흙, 과일, 불, 미생물 등 시간에 따라 변형되고 분해되는 재료를 사용하는 작품들은 먼저 ‘냄새’로 관람객을 이끈다. 전시장에 실제 흙밭을 조성한 아사드 라자의 '흡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커피 찌꺼기, 택배 상자, 닭 뼈, 은행, 소나무 잎, 이면지, 전선 피복, 튀김 부스러기 등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나온 부산물로 흙을 만든다. 전시 기간 동안 꾸려진 경작자 팀은 이 흙을 돌보고 분석하며 관객과 흙에 대한 앎을 나눈다. 관객은 준비된 주머니나 개인 용기를 이용해 필요한 만큼의 흙을 가져갈 수 있고, 재생된 흙은 다시 자유롭게 흩어진다. 작가는 흙이 특정 이념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와 연결된 존재임을 강조한다. 공동체의 경험이 새겨진 아카이브이자 토대로서의 흙을 되살리고 나누며, 작품은 분해에 내재한 공동성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주연 학예연구사는 “미술관은 오랫동안 ‘불후의 명작’을 보존하는 제도로 기능해 왔지만, 분해를 존재 조건으로 삼는 작품은 그 역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긴장은 미술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계란 노른자 안료를 사용하는 이은재 작가의 작업은 ‘썩기 때문에 팔 수 없다’는 이유로 미술 시장에서도 거리감을 둔다. 이 학예연구사는 “미술관과 미술 시장은 서로 다른 제도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가치가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며 “지속되길 바라는 욕망 앞에서 두 제도는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고 분석했다. ◆ ‘저자성의 후퇴’, 인간은 한 발 물러난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저자성의 후퇴’다. 인간이 유일한 창조자이자 의미의 주체라는 자리에서 물러나, 물질과 시간, 비인간 존재들이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태도다. 전시장 입구에 깔린 흙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는 관객의 진입을 막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흙과 함께 공존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초대하는 조건이다. 불을 전시장 안으로 들이는 대신, 불이 지나간 흔적만 남긴 선택 역시 스펙터클을 거부한 결정이다. 이 학예연구사는 “강한 행위를 보여주는 대신 메시지가 훼손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며 “중요한 것은 얼마나 파워풀하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를 끝까지 유지하느냐”라고 말했다. ◆ ‘되어가는 시간’을 공유하다 1막 ‘되어가는 시간’에서 작품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이행하는 시간으로 제시된다. 작품이 겪는 시간이 찰나인지 억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질은 끊임없이 변하며 수행하고, 인간의 손뿐 아니라 작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하나의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여다함의 '향연'은 이러한 인식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향이 타며 만들어내는 연기의 움직임을 ‘춤’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작가는 2019년부터 뜨개질로 향로를 만들어 왔는데, 이는 형상을 만드는 기술이라기보다 현상을 붙잡는 행위에 가깝다. 반복되는 뜨개질의 리듬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를 횡단하며, 연기가 추는 춤과 닮아 있다. 2막 ‘함께 만드는 풍경’에서는 인간이 아닌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호흡하며 만든 장면들이 펼쳐진다. 천, 항아리, 마른 꽃, 발효액, 곤충과 곰팡이가 함께 작동하는 댄 리(Dan Lie)의 작업은 미술관을 살아 있는 생태계로 바꿔 놓는다. 에드가 칼렐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는 자연과 공존해 온 고대 마야인의 지혜를 현재로 불러오며, 작품의 가치를 지속하고 공유하는 또 다른 방식을 상상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브라질 출신 작가 댄 리는 10년 넘게 애도와 죽음의 실천을 작업의 중심에 두고 활동해 왔다. 그는 “아주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이 전시를 맞이했다”며 “이번 작업은 나에게 하나의 동결과도 같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놓인 직물과 오브제들은 새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과거 작업에서 사용했던 재료를 다시 수집해 재구성한 것이다. 강황으로 염색된 직물은 햇빛에 노출될수록 점차 색이 옅어진다. 변화와 소멸은 손상이 아니라, 작품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일부 재료에는 한국의 전통 직물과 볏짚을 꼬아 만든 전통 끈이 사용돼, 작가는 이를 “현지 문화와의 대화”라고 설명한다.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인간 주체의 탈중심화를 실험하는 댄 리의 작품은 미술관으로 하여금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작품’으로서 함께 돌볼 것을 요구한다. 식물성 액체가 담긴 도자기는 발효되며 냄새를 풍기고, 씨앗이 심긴 진흙에서는 싹이 올라온다. 어느 구석에서는 버섯이 피거나 달팽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작품 보존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낮은 습도는 이 작업에 치명적이다. 그에게 ‘안전한 환경’이란 생성과 부패, 소멸의 과정을 허용하는 생태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에는 소멸이 예정돼 있다. 작가는 작품을 쌓아 두기 위한 창고를 운영하지도, 작품을 축적하지도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에 따라 5년 이내에 다른 누군가에게 소장되지 않은 작품은 흙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작품이 된다. 2026년은 이 작품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해가 될 것이다. 한편 유코 모리가 썩어 가는 과일로 빛과 소리를 발생시키는 '분해'는, 죽은 사람의 몸이 아홉 단계로 변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일본 전통 불화 '구상도'에서 출발한다. 일본의 옛 스님들이 이 그림을 보며 육신에 대한 집착을 떨쳐 냈듯, 작품은 필멸성을 환기한다. 그러나 불교가 말하는 무상이 상실이 아니라 순환을 가리키듯, '분해'는 서로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에너지의 흐름을 감각하게 한다. 결국은 우리도 삭는다. 소멸의 시학을 내세운 이 전시는 자연이 사라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중심에서 물러나는 연습에 가깝다. 미술관이 그동안 보존해온 것은 작품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라짐을 받아들이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동시대 환경 인식을 반영한 미술작품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 변화에 부응하는 급진적인 미술관의 모델을 상상하려는 시도”라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탐색하는 공적 역할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배우 봉태규가 이번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에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오디오 가이드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안내 앱을 통해 무료로 제공된다. 2026/01/29
행복예술아카데미 수강생 성과 한자리에…공연·전시 동시 진행 대구 어울아트센터 행복예술아카데미 수강생들의 성과를 공유하는 '결과발표회 주간'이 내달 7일부터 26일까지 어울아트센터 일대에서 열린다. 29일 행복북구문화재단에 따르면 이번 발표회는 공연과 전시로 구성된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이 음악·무용·미술 등 여러 분야의 예술 활동을 선보인다. 공연은 내달 7일 오후 2시 어울아트센터 함지홀에서 열린다. 청소년 소수정예 강좌 공연을 비롯해 키즈 밸리댄스, 플루트, 가곡, 드럼, 라인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가 마련된다. 전시는 내달 19일부터 26일까지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금호와 명봉에서 진행된다. 수채화, 민화, 어반스케치, 보타니컬 아트, 연필 드로잉, 캘리그라피 등 8개 미술 강좌 작품이 전시된다. 이번 결과발표회에는 총 23개 강좌, 200여 명의 수강생이 참여한다. 행복예술아카데미 관계자는 "결과발표회는 수강생들의 성장과 노력을 나누는 자리이자 시민들이 예술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2026/01/29
국격 높인 매진 행렬…세계에 K-미술 알렸다[美 이건희 컬렉션③] "삼성은 우리 국민, 우리 문화 속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룬 성과를 우리 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됩니다."(이건희, 1998년 창립 50주년 기념사) 삼성그룹은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념하는 갈라 디너 행사를 열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MAA)에서 진행 중인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기증품 해외 순회전의 첫 번째 전시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개최해 내달 1일까지 일반에 공개 중이다. 스미스소니언은 이건희(KH) 컬렉션 전시에 대해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선보이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 미술전"이라며 "1500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전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전시에는 이미 6만1000여명이 다녀갔으며 폐막까지 누적 6만5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모일 것으로 추산된다. 1월 중순 기준 일 평균 관람인원은 874명이며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는 기존 스미스소니언에서 열렸던 유사한 규모의 전시회 관람 인원 대비 2배 이상이며, 스미스소니언측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미국 공휴일인 '마틴 루터킹 데이'에는 일 최다 관람객인 약 3500명이 전시회를 찾았다. 관람객들은 전시 기간 중 매일 열리는 도슨트 투어에도 꾸준히 참여했으며, 전시장 초입에 놓였던 '달항아리'를 재현한 기념품이나 '인왕제색도' 조명 등은 조기에 매진돼 구입 대기 명단에 등록해도 구매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국외박물관 한국실 지원 사업으로 기획돼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기반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대여한 소장품으로 이뤄졌으며 전시 및 도록 원고 집필에도 두 곳의 학예연구직이 참여했다. KH 컬렉션 글로벌 순회 전시는 이번 스미스소니언 특별전에 이어 ▲미국 시카고미술관(2026년 3~7월)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 (2026년 9월~2027년 1월)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미·영 박물관서 품격 높은 K문화 감상 기회 이번 순회전은 세계 최대 종합 박물관으로 유명한 스미스소니언,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한 곳인 시카고 미술관,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국박물관에서 잇따라 개최되며 한국 고미술품과 근현대 미술품의 아름다움 및 가치를 전 세계에 각인시킬 수 있다. 순회전에 전시된 작품은 백제 금동불상부터 김환기 걸작까지 1500년을 아우르는 한국 미술의 정수가 담겨 있으며, 전 세계에서 성공을 거둔 'K컬처 이면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관람객들은 역동적 K컬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K미술의 걸작을 만나면서, 한층 품격 높은 K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워싱턴포스트 서면 인터뷰에서 "K팝 등 대중문화가 한국의 역동성을 보여줬다면 이번 순회전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섬세함과 깊이를 만날 기회"라고 소개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K컬처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이 이번 특별전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한국 문화의 힘과 예술성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건희 컬렉션은 그 뿌리부터 '국가적 보물'의 유출을 막고 지키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다"며 "단순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 미술품의 컬렉션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현대미술이 체계적으로 국가적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6/01/29
대구 북성로 공구 '망치'가 예술로…중구 '해머 그래피' 전시 대구 중구는 문화시설인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 모루에서 오는 6월30일까지 '망치인의 브리꼴라주_HAMMER GRAPHY' 전시를 개최한다. 29일 구청에 따르면 전시는 인류 문명의 가장 오래된 도구이자 북성로에서 지금도 가장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공구인 망치를 주제로 한 연작 전시의 첫 번째 장이다. 드로잉과 그래픽 디자인, 실물 오브제, 악기 전시 등을 통해 '두드림'이라는 가장 오래된 기술이 문명을 어떻게 전환해 왔는지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전시는 북성로의 산업적 역사와 기술적 감각을 예술 언어로 확장한 것이 특징이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한편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 모루는 1000여개의 공구상이 밀집한 북성로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조성된 공간이다. 기술 장인과 예술가의 협업과 기술 전승을 통해 북성로의 기술자산과 기술 생태계를 확장하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접하고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1/29
“NFT 95% 무가치” 시장 붕괴…니프티 게이트웨이 2월 문 닫는다 NFT(대체불가능토큰) 초기 대표 플랫폼이었던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가 오는 2월 23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한다. 2018년 설립돼 2021년 NFT 붐을 이끌었던 니프티 게이트웨이의 폐쇄는, 한때 디지털 미술의 미래로 여겨졌던 NFT 시장의 급격한 침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미술전문지 아트넷 뉴스(Artnet News)에 따르면 니프티 게이트웨이는 현재 출금 전용 모드(withdrawal-only mode)’로 전환된 상태로, 이용자들에게 2월 23일까지 NFT와 자산을 인출할 것을 공지했다. 해당 날짜 이후에는 NFT의 구매·판매·입찰·리스팅이 전면 중단되며, 출금만 가능하다. 아트넷 뉴스는 이와 관련해 ‘현재 유통된 NFT의 약 95%가 사실상 무가치해졌다’고 전했다. 니프티 게이트웨이는 2018년 던컨·그리핀 콕 포스터 형제가 설립했으며, 2019년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Gemini)에 인수됐다. 당시 제미니 창업자인 윙클보스 형제는 NFT가 디지털 경제의 핵심이 될 것이라 전망했고, 실제로 2021년 한때는 그 예측이 현실처럼 보였다. NFT 광풍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 니프티 게이트웨이는 연간 거래액 3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소더비와 협업한 아티스트 팍(Pak)의 NFT 드롭은 1700만 달러에 낙찰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 크리스티는 비플(Beeple)의 디지털 작품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를 6,930만 달러에 낙찰시키며 NFT 미술 붐을 촉발했다. 이후 주요 경매사와 글로벌 브랜드들이 앞다퉈 NFT와 웹3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거품은 오래가지 않았다. NFT 시장은 급속히 냉각됐고, 거래량은 정점 대비 80% 이상 감소했다. 외신 분석에 따르면 NFT 거래 규모는 연간 40억 달러에서 8억 달러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NFT의 95%가 사실상 가치가 없는 상태”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크리스티는 이미 디지털 아트 전담 부서를 폐쇄했고, 소더비 역시 NFT·메타버스 팀을 대폭 축소했다. 아트 NFT 플랫폼인 Async Art, KnownOrigin, MakersPlace, LG 아트랩 등도 잇따라 문을 닫았다. 시장조사기관 댑레이더(DappRadar)는 아트 NFT 거래량이 2021년 29억7000만 달러에서 2024년 1억9700만 달러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NFT가 ‘미술의 미래’로 불리던 시기는 짧았지만 강렬했다. 니프티 게이트웨이의 퇴장은, 기술이 아니라 투기와 기대가 먼저 앞섰던 한 시대의 종언을 보여준다. 2026/01/29
“사라짐은 끝이 아니다”…민병훈 개인전 ‘소멸’ “영화는 많은 것이 구속된 매체라면, 영상 작업은 자연 안에서 구속되지 않은 시나리오, 즉 즉흥곡에 가깝다.” 영화감독 민병훈(56)은 더 이상 서사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머문다. 파도가 부서지고, 구름이 흩어지고, 무지개가 사라지는 순간 앞에서 오래 서 있다. 사라짐을 기록하지만, 그 안에서 끝내 지속을 발견한다. 아라리오뮤지엄은 오는 29일부터 4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민병훈 개인전 ‘소멸(Dissolution)’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영화감독 민병훈이 작가로서 선보이는 다섯 번째 개인전으로, 전시 제목과 동명의 신작 영상 ‘소멸’(2025)을 최초 공개한다. 영상 4점과 사진 19점이 소개된다. 민병훈의 전시 ‘소멸(Dissolution)’은 죽음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운동에 가깝다. 흰 눈이 쌓인 무덤, 파도와 구름, 무지개처럼 반복적으로 사라지고 다시 생성되는 자연의 리듬 속에서, 소멸은 종결이 아니라 다른 상태로 이어지는 과정이 된다. 작가가 말하는 ‘소멸’은 하루가 저물고 다시 시작되듯, 매일 소멸되고 다시 살아나는 시간의 감각에 닿아 있다. 영화감독으로 출발한 민병훈은 이제 스스로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영화감독이 아니다, 작가다”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영화와 전시 사이를 오가며, 매체의 구분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영화는 많은 것이 구속된 매체라면, 영상 작업은 자유롭다. 자연 안에서 구속되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그의 말은, 인물과 서사를 밀어내고 응시와 체류의 시간을 선택한 이유를 압축한다. 이번 전시에서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제주의 파도와 구름, 무지개 등 자연의 순환이 화면을 채운다. 민병훈은 이러한 ‘소멸의 시선’을 앞으로 제주 구도심의 거리와 가옥 등, 사라져가는 도시의 풍경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그는 끊임없이 허물고 새로 짓는 풍경을 바라보며, 왜 우리는 부수는 일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라지는 빨래터와 오래된 골목에는 여전히 삶의 흔적과 생명성이 남아 있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기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아내와의 사별 이후, 그는 아들과 함께 제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상실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슬픔을 말하지 않기로 한 태도는 오히려 작업을 더 차분하게 만든다. 아들은 이제 엄마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를, 제주의 자연이 대신 채운다. 그는 자신이 ‘잘 찍는 자연’의 길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의 미학적 선언이다.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대신, 보이지 않는 것을 걸러내는 일. 완성도를 낮추는 선택은, 소멸과 재생의 과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 상태에서만, 소멸은 과정으로 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태도는 작품의 유통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영상을 제주대학교병원 로비에 기증해 상영하고 있다.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광고 영상 대신 제주 자연의 느린 화면 앞에 멈춰 선다. 작가는 이를 ‘치유’라는 말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이 함께 존재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 잠시 머무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작품은 소유되기보다, 필요한 곳에서 작동하길 바란다는 태도다. OTT 플랫폼의 상영 제안을 고사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엄마가 떠난 후 부자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약속’은 이미 영화제로 향했고, 상업적 유통의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를 보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슬픔의 이미지’로 고정되는 순간, 영화는 더 이상 순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그는 이 영화를 20분 분량의 영상 작업으로 재구성해 전시에 포함시켰다. 영화는 그렇게 또 하나의 매체를 넘어, 작품으로 전이된다. 민병훈에게 아들 시우의 존재는 작업의 배경이 아니라,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실존적 동반자다. 그는 “아이와 나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아이는 시를 쓰고, 나는 영화를 만들지만 그 태도는 서로 오간다”고 말했다. 작업을 마친 뒤 가장 먼저 보여주는 대상 역시 아들이다. 시우의 반응은 다시 작업으로 돌아가게 하는 감각의 기준이 된다. 무덤을 촬영하게 된 이유는 명확한 의도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어느 날 길을 잃고 기대어 잠이 들었던 장소. 처음엔 두려웠지만, 반복해 머무는 시간 속에서 무덤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점차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는 무덤에서 변화하는 자연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생명성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순환의 일부라는 감각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무덤은 ‘소멸’ 연작으로 이어졌고, 그의 작업은 사라짐과 생성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축은 아들 시우의 시다. 장편 영상의 제목이기도 한 ‘나를 눈뜨게 한 순간’은 민병훈의 언어가 아니라, 아이의 문장에서 출발한다. 다섯 살에 엄마를 잃고 슬픔을 시로 건너온 시우는 ‘어린이 시인’이라 불리던 시간을 지나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시우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두려움이 녹으면 희망이 된다. 슬픔을 잊고 나면 나를 살게 한다. 엄마가 없는 세상이 내가 없는 세상과 같다는 끄덕임이 나를 살게 한다.” 이 문장은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태도로 작동한다. 상실을 극복하거나 설명하기보다,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시선이다. 민병훈에게 소멸은 부활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늘 하루가 소멸되듯, 이 순간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파도처럼, 다시 생성된다. 그는 사라지는 것에 머무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라지기 때문에 남겨야 한다.” '소멸’은 끝을 말하는 전시가 아니다. 사라짐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법에 대한 기록이다. 2026/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