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지하벙커 재정비…전시·문화 활동 공간 운영 2017년 시민에게 공개된 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공간으로 활용돼 온 '여의도 지하벙커'가 재정비됐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곳은 1970년대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조성됐다 2017 공개된 여의도 지하벙커는 올 하반기 시민에 공개되는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시는 "독특한 공간성이 살아있으면서 일상에서 영감을 주고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심 속 복합문화플랫폼으로 조성해 지속 가능한 전시·문화 활동 공간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지하벙커 재개관에 앞서 시는 오는 5일부터 14일까지 스포티파이와 '엔하이픈(ENHYPEN) 팝업 행사'를 연다. 이번 행사는 지하 공간 활용 가능성을 실험하고 내·외국인에게 지하벙커라는 장소를 각인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K팝이라는 문화 콘텐츠와 장소 기반 공공 자산을 결합해 도시 공간 재생과 문화 마케팅을 위한 새 모델로 발돋움시킨다는 게 시의 계획이다. 이번 스포티파이×엔하이픈 팝업 행사가 끝난 뒤 지하벙커는 새 단장을 거쳐 하반기부터 정식 전시를 시작할 예정이다. 스포티파이×엔하이픈 팝업 행사는 현장 등록을 통해 무료 입장할 수 있다. 임창수 미래공간기획관은 "지하벙커는 잊힌 도시 공간을 시민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상징적 플랫폼이자 새로운 개념의 문화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민간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저이용 공공 공간을 매력적인 장소로 재탄생시켜 시민에게 돌려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25/06/04
‘붉은 산수’ 세계 진출…이세현, 아트바젤·프리즈 아트페어 출격 '붉은 산수' 화가로 유명한 이세현(56)작가가 올해 세계 주요 아트페어 무대에 잇따라 이름을 올리며 국제적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이세현 작가는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미술장터 ‘아트 바젤 바젤 2025’에 참여한다.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갈레리 페터 칼츠만(Galerie Peter Kilchmann)의 부스에서 대표작 ‘붉은 산수(Red Landscape)’ 연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부스에는 프란시스 알리스, 레이코 이케무라, 테레사 마르골레스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들도 함께 출품된다. ‘붉은 산수’ 시리즈는 한국의 전통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단색의 붉은색만으로 격동하는 풍경과 기억의 잔재를 압축해낸다. 분단과 근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시적으로 은유하는 이세현의 작업은 동양적 이미지와 서구적 시각 언어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세현은 이번 아트 바젤을 시작으로 9월 서울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2025)’, 10월 런던의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 2025)’에도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프리즈 서울은 국내외 주요 컬렉터와 갤러리스트가 집중되는 자리로, 한국 작가로서의 입지를 재확인할 기회가 될 전망이다. 스위스에서 서울, 다시 런던으로 이어지는 이세현의 행보는 단순한 전시 참여를 넘어 한국 현대회화의 세계화 가능성을 상징한다. 동양적 조형성과 정치적 감수성을 동시에 품은 ‘붉은 산수’가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2025/06/04
서울시, 24개 문화예술축제 담은 서울축제지도 여름편 발행 서울시가 올 여름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축제 24개의 정보를 담은 '서울축제지도' 여름편을 펴냈다. 3일 서울시에 따르면 오는 7일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다시 찾은 의정부 터, 모두 함께 여민락(與民樂)'을 주제로 서울국악축제가 열린다. 사물놀이를 비롯한 국악 공연과 국악 수업 등이 진행된다. 이어 8일 월드컵천(중동교~성산천 합류부)에서 열리는 제1회 월드컵천 청보리 축제에 가면 양귀비와 청보리가 어우러진 꽃길을 걸어볼 수 있다. 13일부터 14일까지 노들섬에서 개최되는 '2025 서울썸머바이브'에서는 세대공감 싱어롱 콘서트, 8댄스 온 스테이지 등이 마련된다. 또 13일부터 17일까지 중랑천변 일대(도봉구청~세월교)에서 개최되는 2025 도봉별빛축제에서는 LED 빛 조형물이 있는 중랑천에서 초여름 정취를 즐길 수 있다. 14일부터 15일까지 영등포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리는 문래메탈시티 2025에서는 크랙샷, 디아블로,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등이 공연한다. 22일 백초월길 진관사 대웅전 앞 야외무대에서 개최되는 '2025 백초월길 예술축제 진관 아리랑'에 가면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진전, 태극기 만들기 체험 행사 등 시민 참여형 거리 축제가 열린다. 28일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리는 '나라사랑 대한민국 페스티벌 창작 뮤지컬 김마리아'에서는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삶을 재조명하는 창작 뮤지컬 공연이 펼쳐진다. 3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개최되는 제46회 서울연극제에서는 올해 공식 선정작 8작품과 자유 경연작 30작품을 선보인다. 다음 달 12일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는 '서울 어린이 나라 사랑 아트 페스티벌'에서는 광복의 의미를 기념할 수 있는 그림그리기 대회, 태극기 엽서 만들기 행사 등이 진행된다. 같은 달 22일부터 27일까지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리는 2025 서울 아시테지 여름축제에 가면 국내외 우수 아동 청소년 연극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는 8월 22일부터 31일까지 나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25 보훈무용제'에 가면 독립 운동과 호국 보훈 정신을 주제로 한 무용 작품이 공연된다. 8월 23일부터 24일까지 안양천 신정교 하부에서 열리는 '안양천 수변 페스티벌 안양천 여름축제'에서는 워터 슬라이드, 대형 에어 풀장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8월 30일 인왕산 자락 홍난파가옥에서 열리는 '2025 홍난파 선셋 콘서트'에서 작곡가 홍난파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축제지도 여름편은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별도 앱 설치 없이 확인할 수 있다. 24개 축제 정보와 함께 길 찾기, 지도 복사 등 기능을 제공한다. 마채숙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문화 예술로 나라 사랑의 가치를 전할 축제들이 개최되니 기억에 남는 여름을 보내실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 예술 축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해 축제도시 서울을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25/06/04
손끝으로 남긴 안부, '이만 총총'…김환기·백남준 등 101명 미술인 편지 “이만, 총총.” 편지를 마치며 바삐 남겼을 작별 인사가, 한 세기 예술가들의 삶과 마음을 담은 기록으로 되살아났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펼친 '이만, 총총: 미술인의 편지' 전시는 김환기, 백남준, 박서보, 이우환 등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101명이 남긴 편지를 만나볼 수 있다. 봉투, 엽서 등 136점을 선별해 그들이 나눈 문장 속 감정과 관계, 그리고 시대의 정서를 조명한다. 전시 제목 ‘총총(悤悤)’은 바삐 걷는 모습을 뜻하는 한자어이자, 별빛처럼 반짝이는 순우리말의 이미지로도 읽힌다. 박물관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총총’을 따라, 편지를 단순한 기록이 아닌 예술 아카이브로 재조명한다. 3개의 섹션으로 나뉜 전시는, 시대의 풍경과 미술인들의 인연, 그들의 자취를 따라간다. 1부 ‘시대를 말하는 글월’은 편지 봉투와 엽서를 연대순으로 전시하며, 필체와 우표, 종이의 질감 등을 통해 시대의 공기를 비춘다. 1927년 오지호가 친형에게 보낸 편지부터, 2014년 박서보의 친필 봉투까지, 한국 미술의 흐름을 편지의 외피로 따라가게 한다.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사운드 아카이브 '미술인의 편지'는 20세기 중반까지 존재했던 ‘전기수’ 개념에서 착안해 김기창, 오광수 등이 쓴 주요 편지 8점을 낭독 콘텐츠로 구성했다. 2부 ‘인연을 띄우는 서신’은 미술인들이 가족, 제자, 동료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그들 사이의 애정, 존경, 미안함, 격려 같은 감정의 교차를 보여준다. 김환기가 제자 신종섭에게 “자네들은 훌륭한 예술가가 될 것일세”라고 전한 편지, 이우환이 선배 이세득에게 “고국에서 따뜻이 감싸주는 선생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했는지를 밝힌 글 등에서 그 진심이 묻어난다. 관람객은 전시실 중앙에 별처럼 매달린 편지들을 직접 펼쳐 읽으며, 그 관계의 결을 따라가게 된다. 3부 ‘편지 속 발자취, 총총’은 편지와 함께 원고, 아카이브, 작품 등을 함께 제시해 문장 뒤에 있는 예술가의 삶과 실천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1968년 백남준이 '공간' 편집부에 보낸 ‘뉴욕단상’ 친필 원고와 그의 서명, 기호 등이 담긴 자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 전 백남준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1968~77년 평론가 오광수가 조각가 김청정에게 보낸 25통의 편지는 당시 부산 지역 미술계의 흐름과 단체 활동의 면면을 드러낸다. 또 장우성이 서예가 원충희에게, 하인두가 시인 김규태에게 보낸 편지, 백남순이 강정식에게 보낸 연하장 등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수집된 자료들도 함께 공개된다. 전시장에는 수신인·발신인별로 편지를 검색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가이드도 마련되어 각 편지에 대한 해제와 설명을 통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김달진 관장은 “편지는 가장 사적인 동시에 시대를 관통하는 기록”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인들의 일상에 다가가고, 그들의 문장과 관계에서 한국 미술사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8월8일까지 열린다. 2025/06/03
‘겸재 정선’展 11만 돌파…"이 작품은 꼭 봐야 해요”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을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겸재 정선'전은 4월 2일 개막 이후 관람객 11만 명을 돌파하며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시는 오는 29일 마무리된다. 이번 전시는 국보 2건과 보물 10건을 포함해 총 165점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금강전도’(개인 소장), ‘풍악내산총람’(간송문화재단), 34억 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던 ‘퇴우이선생진적첩’(삼성문화재단 소장) 등 화제의 작품들도 포함됐다. 겸재 정선(1676~1759)은 중국 화풍을 좇던 전통에서 벗어나 한국의 산천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려낸 진경산수화의 선구자다. 그가 담아낸 우리 땅의 풍경은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번 전시는 장대한 금강산을 한 폭에 담은 것처럼, 정선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정선의 대표작들 가운데 “국보 보물 등 문화재 지정 여부를 떠나 꼭 눈여겨봐야 할 그림들”이라며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10선’을 꼽았다. 4월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하는 이 추천작 리스트는 정선의 화풍과 예술관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안내서다. 전시가 끝나기 전, '꼭 챙겨봐야 할 겸재 정선의 작품들'을 짚어본다. ◆보물 '금강내산총도'(1711) 정선의 첫 금강산 여행을 기록한 대표작이다. 내금강의 명소들을 한눈에 담아낸 이 작품은, 마치 여행 지도를 펼쳐놓은 듯한 구성으로 금강산 연작의 시작점을 알린다. 정선은 36세 때, 신태동·김창흡 등이 기획한 가을 금강산 여행에 동행했으며, 당시의 여정을 ‘신묘년풍악도첩’이라는 화첩에 담았다. 이 그림은 그 가운데 하나로,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부터 내금강과 해금강의 절경까지 빠짐없이 포착하며, 젊은 화가 정선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아내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진경산수화 교과서…비로봉 (18세기) 비로봉을 중심으로 한 강렬한 구도와 극적인 대비가 돋보인다.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은 거대한 암석 덩어리처럼 묵직하게 표현됐고, 그 아래를 받치듯 늘어선 만이천봉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묘사됐다. 두 형태의 극명한 대비는 비로봉의 웅장함과 상징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정선은 이처럼 자연의 실경을 마주한 감동을 개성적인 필치로 풀어내며, 풍경이 가진 ‘참(眞)’의 의미까지 담아냈다. 진경산수화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기운 담은 '수태사동구'(1738) 숲 깊은 산중, 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수태사는 지금은 갈 수 없는 땅, 휴전선 북쪽 금화군 오신산에 있던 사찰이다. 정선의 스승 삼연 김창흡이 이곳에 머무르며 남긴 “숲이 빽빽하고 아지랑이 더해 절이 보이지 않는다”는 시구에 영감을 받아, 정선은 절을 드러내지 않고 산과 숲만으로 수태사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보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 공간의 기운과 정서를 깊이 있게 그려낸 이 그림은, 62세 무렵 정선이 진경산수화의 본질을 확립해가던 시기의 대표작이다. ◆80대에 그린 진경산수화의 진수…'통천문암'(18세기 중엽) 색 없이도 생생하다. 잉크 한 자락으로 바다를 흔든다. 문암은 강원도 통천군의 바닷가, 두 개의 바위가 마주 서 있어 문처럼 보이던 그곳이다. 정선은 이 풍경을 수묵으로만 담아냈다. 그런데도 그 생생함은 오히려 더 강렬하다. 화면의 3분의 2를 넘실대는 파도로 채우고, 굵고 가는 선, 짙고 옅은 먹의 농담으로 파도의 리듬을 빚었다. 하늘 위로는 안개가 걷히며 마치 용이 날아간 흔적처럼 상서로운 기운이 퍼진다. 80대에 그렸다고 전해지는 이 그림은, 겸재 정선이 평생 쌓아온 진경산수의 완성형을 보여주는 숨은 걸작이다. ◆푸른색으로 청량한 여름 '수성동'(18세기) 여름이 머무는 골짜기, 수성동의 청량함을 담았다. 서울 종로구 인왕산 자락 아래, 옥인동의 깊은 골짜기 수성동. 한때 아파트에 묻혀 잊혔던 그 풍경이, 지금은 복원되어 다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정선의 이 그림은 수성동 복원 사업의 핵심 참고 자료로 활용되며 더욱 주목받았다. 그는 화면 가득 푸른 물감과 먹선을 쏟아내듯 사용해, 여름날 수성동 계곡의 청량함을 맑고 시원하게 그려냈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와 우거진 수풀, 정선이 품은 수성동의 ‘여름’은 지금도 보는 이의 마음을 씻어내린다. ◆경북 영일군 명산·조영석과 우정…'내연산삼용추'(18세기 전반) 경북 영일 내연산의 삼용추 폭포를 그린 작품. 정선이 청하현감으로 재직했던 경북 영일군에 위치한 명산으로, 이 작품은 내연산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다고 하는 삼용추를 생생하게 그린 명작이다. 정선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조선후기 문인화가였던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이 발문에서 “정선의 붓을 따르니 비로소 내연산의 참모습을 알았다”고 극찬하고 있어서,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관아재 조영석의 미감과 둘 사이의 우정을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실제 경치 보는 듯한 문인화…'하경산수도'(18세기) 문인화가로서도 빼어난 성취를 남긴 겸재 정선의 대표 문인화 작품. 이 그림은 중국 문인화의 화보를 바탕으로 한 관념산수화지만,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다. 화면을 가득 채운 장대한 구도 속에 섬세한 디테일을 가미해, 실제 경치를 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자아낸다. 관념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서, 겸재는 회화의 새로운 감각을 실현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 강세황은 “겸재 정선 중년기의 대표작”이라 평가했다. ◆무지개가 미불의 배에 걸린 우정…보물 '홍관미주도'(1740–1741) 무지개로 그은 우정의 다리, 시와 그림의 약속. 겸재 정선과 그의 문인 친구 사천 이병연 사이에는 특별한 약속이 있었다. “시가 가면 그림이 온다(詩去畵來之約)”는 시거화래지약. 이 작품은 이병연의 싯구 “용들이 황산곡 부채를 다툴까 겁내었으나, 무지개는 반드시 미불 집 배에 걸려오리라”를 정선이 그림으로 화답한 장면이다. 전통 회화에 드물게 등장하는 무지개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점이 특히 눈에 띈다. 자연의 경이와 예술가 간의 우정을 한데 아우른, 회화와 시의 아름다운 교류다. ◆고슴도치가 오이를 서리하는 '자위부과도'(18세기) 오이 하나 쏙-정선의 유머 한 입! 고슴도치가 오이밭에서 오이 하나를 몰래 쥐고 달아나는 순간. 익살맞고 생기 넘치는 장면을 담은 이 작품은 겸재 정선의 유쾌한 관찰력이 빛나는 화조영모화다. 고슴도치의 눈망울, 촘촘한 가시, 오이의 디테일까지 놀라울 만큼 정밀하게 그려낸 반면, 꽃과 배경은 여백을 살린 소박한 터치로 서정성을 더했다. 정선이 보여주는 유머와 현실 감각, 그리고 그만의 일상 관찰의 미학이 이 한 장면에 담겼다. ◆붓으로 다시 쓴 중국 여산 거센 폭포…여산폭(18세기) 낙수如銀, 시와 그림이 만났다. 정선의 ‘여산폭포도’ 중국의 명산 여산을 노래한 이백의 시 「망여산폭포」를 겸재 정선은 붓으로 다시 썼다. 세로로 길게 펼쳐진 화면 속, 깎아지른 절벽 끝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마치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 웅장하고도 시원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점은 그 거대한 자연의 위엄을 더욱 극적으로 전하며, 시와 그림의 교차점을 극대화한다. 이 작품은 전시 후반부인 3일부터 새롭게 공개되며,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진경의 세계를 선사한다. 2025/06/03
'예술·블록체인 접목' 정읍서 STO 현대미술전 4일 개막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특별한 실험이 전북 정읍에서 펼쳐진다. 전국을 순회 중인 STO(Security Token Offering) 한국현대미술전이 정읍시생활문화센터에서 열린다. 정읍시는 한국예술가협회가 주최하고 금보성캔버스가 후원하는 STO한국현대미술전이 오는 4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며 올 한해 12개 미술관을 돌며 진행되는 대형 기획프로젝트로 정읍이 다섯 번째 전시 도시라고 2일 밝혔다. 지난 2월부터 인천 '잇다스페이스'를 시작으로 서울 '금보성아트센터', 거제 '해금강테마박물관', 여수 '여수미술관', 고흥 '미르마루갤러리' 등을 거쳐 온 전시는 전국에서 활동 중인 120여명의 작가가 참여해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실험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특히 이번 전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STO 개념을 예술에 적용한 새로운 시도 때문이다. STO는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으로 분산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로 미술작품의 가치와 유통에도 이 개념이 접목됐다. 참여 작가들은 '예술과 기술' '창작과 자본'의 경계에서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생태계를 실험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시민들도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더불어 기술이 접목된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수준 높은 기획 전시를 통해 정읍의 문화 역량을 높이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2025/06/02
동해안 칠성조선소에서 ‘2025 bac. 속초아트페어’…6월5일 개막 속초의 바닷가, 오래된 조선소가 예술의 항구가 된다. 오는 6월 5일부터 9일까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칠성조선소에서 ‘2025 bac. 속초아트페어’가 열린다. 동해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번 아트페어는 속초·고성·양양은 물론 강릉과 부여까지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아우르며, 미술의 문턱을 낮추는 새로운 실험을 펼친다. 올해 아트페어의 슬로건은 '우리는 C가 된다.' 수집가(Collector), 동료(Companion), 공동체(Community), 장인(Craftsman)을 뜻하는 이 키워드는 예술과 사람, 지역을 잇는 연결의 상징이다. 참가 작가 79명/팀은 1만 원부터 300만 원 사이의 가격대로 회화, 조각, 공예, 굿즈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조선소라는 장소의 역사성을 살린 이번 아트페어는 동해서점, 반려동물 식품 기업 ‘동해형씨’, 식물 작업실 ‘숙주나무’ 등 지역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속초 특유의 분위기를 입혔다. 관람은 무료이며, 반려동물 동반도 가능하다. 이번 아트페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 작가미술장터 등의 후원으로 무소속연구소와 칠성조선소가 공동 기획·운영한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속초의 여름을 앞두고 지역과 예술의 공존을 꿈꾸는 실험 무대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이 행사를 기획한 무소속연구소는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예술가, 기획자, 활동가들과 다양한 분야의 조력자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다. '무소속’이라는 이름처럼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지역과 예술, 도시와 예술의 바람직한 공존을 탐색하며 공공예술 프로젝트와 커뮤니티 기반 예술 활동을 통해 신선한 형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속초아트페어 참여작가 고은정, 권민경, 권소영, 권오상, 김건주, 김기훈, 김성미, 김소연, 김소연, 김수진, 김윤, 김지수, 들로화, 문혜주, 민경호, 박민규, 박민숙, 박연후, 박영환, 박재현, 박현준, 배철, 백도현, 백신, 백재중, 복진아, 불나방, 서인혜, 손미정, 손준렬, 송신규, 송인영, 승영, 신승연, 안민주, 안지용, 양재혁, 양지인, 양혜정, 어고스튜디오, 엄소, 연소영, 윤지영, 이봉욱, 이소은, 이수빈, 이수진, 이예지, 이주영, 이지은, 이혜선, 이혜주, 임서윤, 임정은, 임진성, 임하경, 임호경, 장성우, 장한나, 잭지방, 전누리, 전우현, 정보아, 정진경, 정해강, 지수김, 지현아, 진유리, 차지량, 청람, 최규연, 최도영, 최정화, 최하나, 키와림, 핀앤핏, 한석경, 홍연재, makerso (총 79명/팀) 2025/06/02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25, 참여 작가 49팀 발표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은 오는 8월 26일 개막하는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Spirit-writing: Technologies of the Soul)'의 참여 작가 49명/팀을 발표했다. 올해 비엔날레는 예술과 초월, 영성, 오컬트적 실천을 매개로, 동시대 미디어 예술의 경계를 실험적으로 확장한다. 2일 서울시립미술관이 공개한 명단에는 백남준, 요셉 보이스, 힐마 아프 클린트, 마야 데렌, 마이크 켈리 등 역사적 예술가들과 더불어, 슈 챠웨이, 안리 살라, 앤젤라 수, 아노차 수위차콘퐁, 카라빙 필름 콜렉티브 등 동시대 작가들이 대거 포함됐다. 총감독은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가 공동으로 맡았다. 이들은 “이번 전시는 ‘강령(降靈)’이라는 개념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세계와 접속해왔는지를 탐구하는 실험”이라며, “정신분석, 신비주의, 샤머니즘을 가로지르며 예술의 초월성과 사회적 실천을 함께 살펴보는 자리”라고 밝혔다. 비엔날레는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시대와 조응하는 순간을 포착한 예술가들의 작업을 조명한다. 매개자형 인물로는 조지아나 하우튼, 데구치 오니사부로, 엠마 쿤츠 등이 포함됐으며, 초기 실험영화의 계보로는 마야 데렌과 조던 벨슨이 소환됐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에게서 발견되는 샤머니즘의 영향도 주요 축이다. 최은주 관장은 “이번 비엔날레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초월적 감각과 인식의 층위를 다루는 미디어 예술을 선보인다”며 “비물질적 영상, 사운드, 아카이브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예술 경험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8월 26일부터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 전역에서 분산 개최된다. 기자간담회 및 VIP 프리뷰는 8월 25일 열린다. 세부 프로그램과 전시 장소는 추후 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mediacityseoul.kr)와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sema.seoul.go.kr)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강령: 영혼의 기술' 작가 49명/팀 과달루페 마라비야, 권병준, 노무라 자이, 데구치 오니사부로, 라우라 우에르타스 밀란, 라파엘 케네디트 모랄레스, 루돌프 슈타이너, 뤼실 올랭프 오뜨, 마누엘 마티유, 마야 데렌, 마이크 켈리, 메리 코리타 켄트 수녀, 모하메드 가베르, 백남준, 비올렛 아스티에, 샤나 몰튼, 수잔 트라이스터, 슈 챠웨이, 스카이 호핀카, 아노차 수위차콘퐁, 아밋 두타, 안리 살라, 안민정, 안젤라 수, 어니스트 A. 브라이언트 3세, 엠마 쿤츠, 온다 아키, 요셉 보이스, 요아킴 쾨스터, 요한나 헤드바, 윙 포 소, 윤형민, 이승택, 인주 첸, 제인 진 카이젠, 조던 벨슨, 조지아나 하우튼, 주역과 예술품, 카라 디테 한센, 카라빙 필름 콜렉티브, 콜렉티보 로스 잉그라비도스, 크레이 첸, 키부 루호라호자와 크리스티안 니암페타, 타마르 귀마래스와 카스페르 악호이, 타카미네 고, 하룬 미르자, 히와 케이, 힐마 아프 클린트, ORTA (알렉산드라 모로조바와 루스템 베게노프) 2025/06/02
"여성이 그린 섬세함"…청백여류화가회 정기전 3일 개최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독창적인 미학이 담긴 전시가 대구 동구에서 열린다. 대구동구문화재단 아양아트센터는 '제46회 청백여류화가회 정기전'을 3일부터 8일까지 아양갤러리에서 개최한다. 1980년 창립한 청벽여류화가회는 여성 예술인의 예술적 정체성과 역량을 높여온 여류화가 단체다. 회화를 향한 열정과 꿋꿋이 걸어온 예술 여정을 조명하고자 기획됐다. 단체는 이번 전시에서 주봉일의 '2025+A', 신문광의 '시절풍경', 김향주의 'Spirit', 조여진의 'Again' 등 작품 60여점을 소개한다. 이들은 회화 전통의 깊이를 유지함은 물론 동시대적 감성과 실험정신을 아우르는 작품 세계를 통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여성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 '대구미술과 청백여류화가회'를 주제로 여성 예술의 현재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함께 모색하는 세미나도 마련한다. 청백여류화가회 관계자는 "회화에 대한 사랑으로 걸어온 46년이라는 시간이 관람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5/06/02
서울시립사진미술관 한정희 관장 “공공성과 예술성, 함께 열겠다”[문화人터뷰] “사진은 기억을 담는 그릇이자, 시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국내 최초 사진 매체 특화 공립미술관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10여 년의 준비 끝에 서울 도봉구 창동에 문을 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으로 설립된 이 미술관은 '오직 사진을 위한 미술관'이다. 사진 전시와 교육, 연구, 수집이 가능한 국내 첫 공공기관으로, ‘사진의 도시 서울’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연면적 7048㎡,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의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전시실 외에도 교육실, 암실, 포토라이브러리, 포토북카페, 사진 필름 원본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할 수 있는 필름 수장고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췄다. 특히 검은색 큐브형 외관이 돋보인다. 사진의 픽셀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구현됐다. 건물 전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에 반응함으로써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공간적으로 드러낸다. 건축은 오스트리아 건축가 믈라덴 야드리치(Mladen Jadric)와 일구구공도시건축(윤근주 소장)이 협업해 완성했다. 초대 관장에는 디뮤지엄과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역임한 한정희 관장이 임명됐다. 한 관장을 만나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이 지향하는 방향성과 비전을 들어봤다.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이 ‘국내 최초 공립 사진 특화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입니다. 개관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시립사진미술관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문을 연 사진 특화 미술관이자, 공공기관으로서는 처음입니다. 사진이라는 매체에 집중해 전시하고 연구하며, 교육과 수집 활동이 이뤄질 수 있는 공적 공간이 마련됐다는 점만으로도 뜻깊습니다. 무엇보다 공립미술관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수익성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한국 사진예술의 아카이빙과 전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죠. 또한 이곳은 사진작가, 관련 종사자, 애호가, 일반 대중까지 모두가 자유롭게 드나들며 교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적 가능성을 함께 나누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도시 서울’을 선언하며 개관한 만큼, 미술관이 지향하는 비전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 공간이 사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대화하고 소통하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모두에 열린 공간으로 국내외 사진 작가, 연구자,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영감을 나누고, 사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탐구하는 열린 장이 되었으면 해요. 그 성과들을 전시, 출판, 교육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과 나눌 계획입니다. ◆미술관 건축에도 ‘사진적인 개념’이 담겼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에 중점을 두셨나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을 설계한 믈라덴 야드리치와 윤근주 소장에 따르면, 이 공간은 빛과 어둠, 재료가 만들어내는 조화로 성립되도록 설계됐다고 합니다. 정육면체를 회전시킨 듯한 외관은 시간에 따라 검정과 회색으로 변화하며, 이는 사진이 빛과 시간을 포착하는 방식을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내외부는 주로 검정, 회색, 백색으로 구성되어 흑백사진뿐 아니라 다양한 컬러와 형식의 사진을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의 설계대로 공간 구성을 마무리할 때, 저희 사진미술관 기획자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진이 구현되길 바랐습니다. 2층은 건축물 고유의 독특한 공간 구조를 그대로 살려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전시가 펼쳐질 수 있도록 했고, 3층은 화이트 큐브로 구성해 전통적인 방식의 사진부터 동시대 작업까지 폭넓게 수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또한 1층과 4층은 관람객들이 사진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체험과 휴식 중심의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사진의 RGB 컬러(빨강, 녹색, 파랑), 조리개, 프레임 등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가구들을 배치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만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개관 특별전 '광채'는 10년간의 준비 기간 동안 수집된 소장품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전시 구성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요? '광채: 시작의 순간들'은 단순히 ‘미술품으로서의 사진’을 소개하는 전시가 아닙니다. 기록성과 감각, 시간성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기획된, 수집 관점에서 출발한 전시입니다. 개관 이후 처음 여는 전시인 만큼, ‘공공을 위한 공립미술관이 수집하는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 근현대 사진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작가들이나, 미학적 재평가가 필요한 이미지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단일 작가나 특정 장르 중심이 아닌, 한국 사진문화의 지형과 층위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말하자면, 이 전시는 누락된 기록을 복원하고, 사진사 속 공백을 메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전시 환경 또한 기획 의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섬세한 물성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무반사 유리(뮤지엄 글라스)를 사용했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조도 조절과 보존 조명 설계를 정교하게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시각적 경험을 확장하는 동시에, 향후 사진 전시의 물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기를 바랍니다. ◆'스토리지 스토리'는 미술관 자체를 주제로 삼은 독특한 전시입니다. 동시대 작가들과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나요? 일반적으로 건축 기록에는 사진이나 영상이 활용되곤 하지만, ‘사진 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사진 매체로 해석하고 기록한다면 좀 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건립을 기록할 것인가’보다도, ‘어떻게 예술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가 이 전시입니다. 기획을 맡은 학예사는 사진과 기록을 전공한 분으로, 다양한 사진 형식을 아우를 수 있는 여섯 명의 작가를 섭외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부터 상업사진, 기술 기반의 실험적 작업까지 각기 다른 지향을 가진 작가들이죠. 작가들은 약 1년에서 최대 3년에 걸쳐 미술관 건립 현장을 오가며, 직접 보고 경험한 과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시각화했습니다. 단순한 건설 다큐멘트가 아니라, 건립이라는 사건에 대한 예술적 기록이자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지 스토리'는 그렇게 완성된 작품들을 통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되짚어보는 전시입니다. ◆수집품이 2만여 점에 달한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와도 연계되나요? 네. 개관 전부터 1920~90년대 사진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해왔습니다. 기존 미술관들의 사진 소장품을 분석하고, 한국 사진사의 연표와 주요 인물, 사건들을 정리하면서 수집 전략을 수립했죠. 앞으로는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의 수집 방침과 연계해 미술사적 대표작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을 균형 있게 수집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연구도 병행할 예정입니다. ◆한국 사진사를 체계화하려는 과정에서, 미술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우선은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통해 시대별 작가와 작품들을 조명하고, 그 결과를 세미나나 출판, 전시 등으로 시민들과 공유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지금 이 시대의 사진, 그리고 미래의 사진까지도 함께 포괄할 수 있는 통합적이고 유연한 연구를 지속하려고 해요. ◆서울 동북권 문화 거점으로서 지역사회와는 어떻게 접점을 만들고 계신가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지역사회와의 유기적 연계를 주요 과제로 삼고, 개관 초기인 2025년부터 2027년까지는 미술관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특히 지역 주민과의 연결과 연대를 중심에 두고, ‘우리 동네에 새롭게 생긴 미술관’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양질의 전시 제공에 그치지 않고, 사진을 매개로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고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활동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입니다. 또한 자원봉사와 각종 지원사업 등을 통해 지역 주민이 미술관의 구성원으로 함께할 수 있는 기회도 꾸준히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해 지역과 미술관 간에 탄탄한 신뢰와 유대가 형성되면, 향후 지역의 요구와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로 그 연계를 더욱 심화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아시아 또는 세계 사진미술관들과의 교류 계획도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지난해 사전 프로그램을 통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싱가포르,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사진 전문 기관들과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어요. 저희처럼 사진에 특화된 공공미술관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기 때문에, 해외 기관들도 이번 개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요. 앞으로는 다양한 국제 컬렉션을 소개하거나 공동 기획전을 여는 등 실질적인 교류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함께 고민하고, 더 깊이 있는 연구와 논의도 이어갈 수 있도록 꾸준히 네트워크를 다져가고 싶습니다. 202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