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트렌드페어, 학고재·이화익 등 21개 갤러리 참여…‘더 컬렉션’ 첫 선 올해 20주년을 맞은 국내 최대 공예 박람회 ‘공예트렌드페어’가 공예를 K-컬처 산업의 한 축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창작과 유통을 연결해 공예 생태계를 확장하고, 갤러리 중심의 시장 구조를 본격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페어는 12월 11~14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약 300여 공방과 공예가가 참여한다. 올해 주제는 ‘손끝의 미학’으로, 공예를 단순한 수공예품이 아닌 삶의 감각과 공동체적 가치를 담는 문화적 매체로 조명한다. 가장 큰 변화는 갤러리 전용관 ‘더 컬렉션(The Collection)’ 신설이다. 기존의 ‘작가 직접 판매’ 구조에서 벗어나 학고재·이화익갤러리·예화랑 등 국내외 21개 갤러리가 참여해 공예가를 선별·전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벽을 없앤 개방형 전시 구조를 도입해 갤러리와 작가가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총괄감독 최웅철 갤러리웅 대표는 국내 공예 시장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공예가 오랫동안 파인아트와 분리된 ‘오브제’로 취급돼 시장 형성이 더뎠다”며 “이번 시도는 공예를 전시·판매를 넘어 컬렉션 시장으로 연결하는 경로를 제시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공예는 이미 미술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지만 한국에는 공예 전문 갤러리가 거의 없다”며 “새롭고 진취적인 미술시장 구조를 만들기 위해 갤러리관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기획관은 두 섹션으로 구성된다. 중견 공예가 10인의 기량을 보여주는 ‘더 마스터: 공예가 정신’, 만 39세 이하 신진 23인이 참여하는 ‘더 넥스트: 내일의 공예’다. 참가사관은 ‘신진공예가관’ ‘공예공방관’ ‘공예매개관’으로 나뉘며, 신진공예가관에는 공모로 선정된 85팀, 공예공방관에는 186개사가 참여해 테이블웨어·가구·조명 등 생활 공예 전반을 선보인다. 장동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20년 동안 공예는 생활 공방 중심 시장에 머물러 있었다”며 “앞으로는 갤러리가 작품성과 가치를 보증해 공예가 K-컬처 산업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변화가 공예의 ‘하이엔드 시장’ 진입을 여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공예트렌드페어는 2006년 출범 이후 공예·디자인 기반 창작 생태계를 확장하며 국내 대표 공예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왔다. 진흥원은 올해를 시작으로 공예의 산업적·문화적 체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시장 전환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2025/11/27
Z세대 작가 그림은 무엇이 다를까?…하이트컬렉션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하이트컬렉션이 2025년 하반기 기획전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을 선보이고 있다. 2014년부터 이어온 젊은작가전의 일환으로, 네 명의 Z세대 작가 강예빈·이오이·조은시·조은형의 회화를 소개한다. 전시는 온라인 이미지와 도시·기술·자연의 감각이 뒤섞인 Z세대의 시각 경험이 회화라는 재료 안에서 어떻게 변환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미술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둔 작가들은 긴 회화사보다 주변 환경의 공기·습기·정서를 먼저 포착하며 몸으로 감각하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주변 환경을 예민하게 관찰하면서 개인의 정서와 상상에 기반을 둔, 공기나 습기처럼 온몸으로 감각되는 그림들에 몰두한다. 전시 제목은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에서 가져왔다. 사회 진출 초년의 불안과 기대, 충만함과 공허함 사이에서 흔들리는 20대의 정서를 오늘의 Z세대 현실과 겹쳐 읽는다. 이상과 냉소, 저항과 무력감이 동시에 차오르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이들의 회화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전시는 이성휘·이선주가 공동기획하고 하이트문화재단이 주최한다. 12월 13일까지 열린다. 2025/11/27
BB&M갤러리, 90년대생 조재·이해반·성시경 3인전 서울 성북로 BB&M갤러리(공동 대표 제임스 리 & 허시영)은 1990년대생 작가 조재, 이해반, 성시경이 참여하는 그룹전 ‘유동 근대(Liquid Modernity)’를 개최한다. BB&M갤러리는 전시 제목 ‘유동 근대’에 대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바우만은 산업화 시대의 안정된 구조를 ‘고체 근대(Solid Modernity)’로, 1970년대 이후 제도와 관계가 빠르게 변하며 존재 기반이 불확실해진 시대를 ‘유동 근대(Liquid Modernity)’로 구분했다. 갤러리는 이번 전시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1990년대생 작가들이 고정된 형식 대신 유연한 조형 언어와 실험적 접근을 통해 속도·불확실성·지각의 파편화를 회화적 방식으로 풀어낸 과정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조재는 도시의 잔여물과 기계 부품 등을 손으로 빚어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 뒤 다시 캔버스에 정착시키는 방식을 반복해 물성과 비물질성의 왕복을 실험한다. 빠른 시각 환경 속에서 소거된 감각을 회복하는 ‘쿨 다운 타임’의 회화적 리듬을 제시한다. 이해반은 DMZ 인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장면을 구성한다. 물감의 흔적과 희미한 빛으로 이루어진 ‘배틀 그라운드’ 시리즈는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내부에 긴장이 흐르는 경계의 심리적 지형을 드러낸다. 성시경은 자유로운 붓질과 색채로 즉흥성과 구조 사이의 긴장을 그린다. 신작은 개방적 구성의 추상과 반복 패턴으로 확장된 ‘개미놀이(Ant Play)’ 연작으로 나뉘며, 우연성이 만들어내는 회화적 변주를 보여준다. 전시는 2026년 1월 10일까지. 2025/11/27
모란미술관, 김희자 ‘심리학적 풍경' 개인전 모란미술관은 별관 모란스페이스 전관에서 김희자 작가의 전시 ‘심리학적 풍경: 나무의 영혼을 찬미하다’를 개최한다. 나무판을 활용한 입체 회화와 영상 작품을 12월 31일까지 선보인다. 김희자 작가는 미국 롱아일랜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나무의 결에서 얻은 정서를 작업으로 풀어내왔다. 특히 그의 회화는 캔버스 대신 울퉁불퉁한 나무결을 그대로 화면으로 사용하는 입체회화로, 원목 100여 장 중 2~3장만을 골라낼 정도의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친다. 최상의 나무판은 옹이와 나이테를 그대로 드러내며, 작가는 그 결을 따라 형상을 만들거나 부정형의 화면을 구성한다. 나뭇결은 잔잔한 물결이나 퍼져나가는 진동처럼 보이며 자연의 생명력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이번 전시는 지역전시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영은미술관과 공동 진행된다. 오프닝은 28일 오후 4시 열리며, 김복기 미술평론가의 대담이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2025/11/27
AI·XR 전시 ‘괴물정원: 아츠츠 박사와 기억의 세계’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동화책 읽기→인터랙티브 체험→가상현실(VR) 감상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방식의 AI·XR 전시가 열리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과 창작 그룹 레벨나인(Rebel9)이 선보인 ‘괴물정원: 아츠츠 박사와 기억의 세계’는 디지털 생명체 ‘디지피톤’을 호출하고 VR 세계 ‘피그로’에서 직접 만나는 관람객 참여형 전시다. ‘우리는 연결되지 않아도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기억·관계·디지털 존재성을 탐구한다. 레벨나인(Rebel9)은 기획자, 디자이너, UX 엔지니어, 개발자, 아카이브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내일의 문화 경험을 만드는 창작 그룹이다. 레벨나인은 '정보의 집을 짓는' 고유한 창작 방식을 바탕으로 데이터와 아카이브를 감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김선혁 레벨나인 디렉터는 “기술 체험을 넘어 서사가 있는 AI·XR 경험을 만들고자 했다”고 전했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열린다. 2025/11/27
리움미술관, 국보 ‘신라백지묵서’ 최초 공개…보존 심포지엄 연다 리움미술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寫經)인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이하 신라백지묵서)의 보존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 ‘다시 피어나는 경전’을 12월 5일 오후 1시 리움미술관 강당에서 개최한다. 리움미술관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유물의 현황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향후 보존 방향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신라백지묵서’는 통일신라 경덕왕 13년(754) 황룡사 연기법사의 발원으로 쓰이기 시작해 755년 2월 14일 완성된 사경이다. 약 6개월 14일에 걸쳐 제작된 이 경전은 현존하는 신라 사경 가운데 제작 연대가 명확히 확인되는 유일한 사례로, 한국 불교미술과 사경사, 전통 제지기술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리움미술관은 해당 유물이 1978년 처음 공개된 뒤 1979년 국보 제196호로 지정됐으며, 두 개의 두루마리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한 축은 1989년 보존처리를 마쳐 현재 리움 고미술 전시장(M1)에 전시 중이지만, 다른 한 축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보존처리 미실시본으로 제작 당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은 이 미공개본의 상태와 재질 등 구체적인 정보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다. 리움미술관은 또한 신라백지묵서에 사용된 닥종이가 현대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수준의 고도의 제지기술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두루마리 끝에 적힌 제작기록(造成記)에는 발원자, 종이 제작 장인, 필사자, 표지화를 그린 화사 등 참여 인물들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유물의 진정성과 역사적 맥락을 입증한다. 심포지엄은 이승혜 동아대 조교수가 8세기 신라 불교에서 경전 신앙과 사리 신앙이 결합해 사경이 제작된 배경을 설명하고, 후지타 레이오 전 일본 문화청 조사관이 일본 고사경의 보존 사례를 발표한다. 이어 남유미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장이 유물의 현황과 보존 과제를 소개하고, 스즈키 유타카 일본국보수리 장황사연맹 명예이사가 원형 보존을 위한 미래 전략을 제안한다. 종합 토론은 정제규 국가유산청 상근 전문위원이 좌장을 맡아 보존 기준과 개입 범위 등 핵심 쟁점을 논의한다.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장 남유미는 “신라백지묵서는 경전이자 제작기술·문헌·회화가 결합된 복합 유산”이라며 “이번 심포지엄이 원형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가치를 오래도록 이어갈 보존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심포지엄 참가 신청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할 수 있다. 2025/11/27
화이트 큐브 서울, 새해 첫 전시는 이성자·에텔 아드난 2인전 화이트 큐브(White Cube)가 전 세계 지점에서 열릴 2026년 전시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현대미술 주요 작가들의 개인전과 대규모 프로젝트로 펼치는 내년 전시는, 각 도시의 문화적 흐름과 글로벌 아트 페어 일정과의 연계를 강화한다. 화이트 큐브 서울은 에텔 아드난(Etel Adnan)과 이성자(Seundja Rhee)의 2인전으로 새해 시즌을 연다. 이어 아트 바젤 홍콩 기간에 맞춰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개인전이 서울과 홍콩 두 공간에서 동시 개최된다. 상반기에는 타키스(Takis)의 개인전이 이어지며, 홍콩에서는 ‘Inside the White Cube’ 프로그램을 통해 샤킬 화이트(Shaqúelle Whyte)의 전시가 소개된다. 런던 버몬지에서는 클라라 호스네들로바(Klára Hosnedlová)의 영국 첫 개인전과 왕슈이(WangShui)의 ‘Inside the White Cube’ 전시로 시즌을 시작한다. 새롭게 갤러리에 합류한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 Grosse)의 개인전도 예정돼 있으며, 프리즈 런던 기간에는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의 대규모 전시가 펼쳐진다. 메이슨스 야드(Mason’s Yard)에서는 사라 모리스(Sarah Morris)가 화이트 큐브와의 30년 협업을 기념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이어 제시카 랜킨(Jessica Rankin), 샤오 판(Shao Fan), 피렌체 라이(Firenze Lai)의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화이트 큐브 파리는 레온 위더(Léon Wuidar), 티에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 단색화 거장 박서보(Park Seo-Bo)의 전시로 시즌을 시작한다. 아트 바젤 파리 기간에는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전시가 열린다. 뉴욕에서는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와 싱가 삼손(Cinga Samson)의 신작 시리즈가 공개된다. 2025/11/27
공근혜갤러리, 연말 선물을 위한 소형 작품전 세계적인 사진가와 화가들의 소형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연말 기획전이 열린다. 공근혜갤러리는 12월 2~13일 ‘Art and Warmth: 연말 선물을 위한 소형 작품전’을 개최한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을 맞아, 소중한 이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세계적 작가들의 사진·회화 소품을 한자리에 모은 특별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공근혜갤러리 전속으로 활동하는 6인의 국제적 작가들이 참여한다. 따뜻한 아날로그 은염 인화로 인간적 온기를 담아내는 핀란드의 거장 펜티 사말라티, 서정적 풍경사진의 대가 마이클 케나, 그린란드 설원을 색채미로 담아낸 티나 이코넨, 암스테르담 시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진행 중인 어윈 올라프의 정물 사진이 소개된다. 회화 부문에서는 독일의 미니멀 추상화가 리차드 슈어, 재미교포 작가 젠 박의 소형 회화가 함께 전시돼 사진과 회화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연말 아트 컬렉션을 구성한다. 작품 가격은 150만~2000만원대다. 공근혜갤러리 대표는 “연말은 마음을 나누는 계절이다. 작은 작품 안에도 따뜻한 감정과 온기가 담겨 있기를 바라며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2025/11/27
이우환, 독일 ‘볼프강 한상’ 수상…한국작가, 양혜규 이어 두 번째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 이우환(87)이 독일 쾰른 루트비히미술관 현대미술협회가 수여하는 제32회 ‘볼프강 한상(Wolfgang Hahn Prize)’을 받았다. 볼프강 한상은 1994년 제정 이후 개념 기반 작업을 펼친 작가들에게 수여되어 왔으며, 한국 작가로는 양혜규에 이어 두 번째다. 이우환은 1968~1975년 도쿄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본 미니멀리즘 ‘모노하(Mono-ha·사물파)’의 공동 창립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사물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배치하며 “사유의 구조를 다시 짜는 예술”을 추구했고, 1970년대 이후 단색조 회화의 정신과 맞닿은 대형 화면 위에 굵은 붓질, 점·선·사각의 형상을 얹으며 국제 미술계에 독보적 위치를 구축했다. 올해의 게스트 심사위원이자 도쿄 모리미술관장 마미 카타오카는 선정 이유에 대해 “이우환은 60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동서의 경계를 넘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왔다. 서구 모더니즘을 따르지도, 동양적 전통에 머물지도 않은 그의 독자적 사유는 오늘 우리가 갈망하는 ‘총체적 인식’을 되살린다”고 말했다. 수상 기념전은 2026년 11월 7일부터 2027년 4월 4일까지 루트비히미술관에서 열린다. 2025/11/27
'직선이 만든 세계'…도널드 저드 가구 국내 최초 공개 직선만으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예술가가 있다. 회화와 조각, 건축과 가구…모든 형식이 결국 같은 철학에서 태어난다고 확신했던 사람. 20세기 미니멀리즘의 아이콘,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다. 현대카드가 27일부터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여는 ‘Donald Judd: Furniture’는 저드의 가구 세계를 전면에 드러낸 국내 최초·최대 규모의 전시다. 저드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 38점, 가구 구조의 뼈대를 보여주는 드로잉 22점, 형태·색채 실험의 계보를 잇는 판화 37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가구 전시’라 부르기엔 너무 미학적이고, ‘예술 전시’라 하기엔 너무 생활적이다. 결국 저드의 세계를 직선으로 체험하는 전시다. ◆ “가구는 예술이 아니다”…그러나 누구보다 예술적인 가구 단정한 직사각형 의자들. 장식은 없다. 솔직함뿐이다. 목재의 결, 금속의 반사, 구조의 균형. 저드는 가구에서도 ‘쓸모와 정직함’을 절대 기준으로 삼았다. 저드는 “디자인적 변주를 더한다고 해서 의자가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가구는 지금 예술의 역사 안에서 더 빛난다. 저드의 아들이자 저드재단 아티스틱 디렉터 플래빈 저드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지는 가구를 예술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명료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철학은 예술과 가구를 가르는 것이 아니었죠.” 1977년 텍사스 마파(Marfa)에 정착한 뒤, 주변 어디에도 ‘괜찮은 가구’를 파는 곳이 없었다. 저드는 결국 직접 만들었다. 임시방편으로 시작된 일은 곧 저드식 미학으로 확장된다. 가구는 기능적이어야 했고, 구조는 명확해야 했으며, 재료는 정직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버틸 품질을 갖춰야 했다. 결국 저드의 가구와 예술이 닮아 보이는 이유는 하나다. 같은 철학이 같은 직선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방’처럼 구성된 전시장 이번 전시의 핵심은 “저드의 공간을 번역한다”는 현대카드 스토리지의 방향성이다. 그래서 전시는 단순한 ‘가구 전시’가 아니다. 저드가 생전 작업하고 생활했던 공간의 분위기를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게 한다. 1층: 목재 가구 + 목판화의 ‘선과 색’의 대화, 2층: 금속 가구의 구조적 존재감, 드로잉 공간: 가구의 구조적 사고가 기록된 설계의 세계. 가구와 드로잉, 판화가 삼각 구도를 이루며 저드의 사고가 재료 → 구조 → 공간 →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저드는 가구의 품질을 타협하지 않기 위해 치수·재료·마감·구조를 모두 기록해뒀고,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30여 점은 그의 설계도를 그대로 따라 제작된 리메이크 작품이다. ◆전시는 ‘저드라는 세계를 살아보는’ 경험 그가 평생 되풀이한 건 단 하나, 직선. 하지만 저드의 직선은 결코 같은 직선이 아니다. 그 미세한 차이가 결국 세계를 새로 그렸다. 저드는 남겼다. “본질만 남겨도 세계는 충분히 아름답다.” 이번 전시는 그 문장을 가구의 언어로 번역한 하나의 거대한 공간적 문장이다. 가구는 기능이고, 조각은 개념이지만 저드의 우주에서는 둘 다 ‘공간을 만드는 행위’로 귀결된다. 선 하나, 비례 하나가 공간의 질서를 재구성한다. 현대카드는 “이 전시는 저드를 기념하는 전시가 아니라, 저드처럼 ‘생각하는 법’을 몸으로 배우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미니멀리즘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덜어냄을 통해 더 깊이 보게 만드는 따뜻한 감각이다. 의자들 사이를 걷고, 책상 앞에 멈추고, 선반의 구조를 따라가며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세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직선 하나로도 세계는 다시 그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아온 건 아닐까. 전시는 내년 4월 26일까지. 202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