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채우는 감각의 실험장…생각의 벙커 ‘999.9 프로젝트’ 예술인지, 아닌지. 공연인지, 아닌지. 그 애매한 경계에 질문을 던지는 실험적 예술 프로젝트가 충북 청주의 ‘생각의 벙커’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름하여 ‘999.9 프로젝트’. 완벽에 가까운 수치를 표방하면서도 단 0.1의 여백을 남긴다. 그 틈은 관객의 감각으로 채워진다. 충청북도와 충북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프로젝트는 7월 20일까지 이어진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땀인지 알게 뭐야!’라는 부제를 단 이 전시는, 장소 특정적 공간인 벙커를 실험적 예술 무대로 확장한다. 충북문화재단 전시운영TF팀의 한석현 씨는 “‘999.9’는 금속의 순도에서 따온 숫자이자, 예술이 언제나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행사는 미술, 공연, 설치, 패션, 음악을 넘나든다. 김남균 작가는 복싱 링 위에서 클래식 연주가 펼쳐지는 ‘네 쇼는 재미없다’를 선보이며 장르와 신체의 이질적 충돌을 연출한다. 이상홍의 작품은 흑과 백으로 채워지는 관객 참여형 평면 작업이다. 이외에도 ▲장회영의 ‘Van Gogh Cats’, ▲황정경의 벙커 속 바다, ▲빈&골 블랙죠 콜렉터의 빈티지 오브제, ▲청주대학교 아트앤패션디자인학과의 실험 의상, ▲발달장애인과 청년 예술가의 협업 전시 등 다층적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공연 또한 풍성하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클럽 모다트의 DJ 퍼포먼스가 벙커의 밤을 채운다. 오는 28일 오후 2시와 5시에는 왓와이 아트의 국악 실험 공연 ‘in:out’, 같은 날 저녁 7시에는 한국재즈협회 청주지부의 촛불 아래 재즈×탱고 콜라보 공연이 예정돼 있다. 전기·조명 없이 진행되는 이번 무대는 자연 잔향과 불빛만으로 감각의 깊이를 더한다. 이어지는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양금과 해금, 라이트 퍼포먼스, ▲탱고 강습과 연회, ▲춤공장댄스컴퍼니의 퍼포먼스, ▲관객 참여형 플래시몹 등 매주 새로운 장르의 무대가 펼쳐진다. ‘999.9 프로젝트’는 예술의 정답이 아닌 질문을 전시한다. 물리적 폐쇄성과 긴장감을 지닌 벙커라는 장소는 장르와 형식을 해체하는 창조적 무대로 변모하고, 관객은 감각으로 반응하고, 울림으로 완성하는 동반자로 초대된다. 모든 전시는 무료로 진행되며, 일부 특별공연은 사전 예약제(선착순)로 운영된다. 2025/06/26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홍보대사에 배우 김규리 위촉 전남도가 26일 배우 김규리를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위촉식에선 김영록 전남지사와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해 위촉을 축하하고, 수묵을 통해 전남의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 김규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예술인으로, 깊은 감성과 예술적 소양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수묵의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릴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홍보대사 위촉으로, 수묵비엔날레 국내외 홍보는 물론 전남의 예술자산과 관광 자원을 널리 소개하는데 앞장설 예정이다. 김 지사는 "김규리 홍보대사께서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 사회를 맡은 모습이 인상깊었다"며 "사회적 이슈에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서 예술인으로서 진정성과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비엔날레 기간 중 도청 갤러리에서 개인전시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홍보대사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줘 감사드린다"며 "윤재갑 총감독과도 평소 잘 아는 사이로, 두 분의 협력이 좋은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남도는 김규리 홍보대사와 함께 전시프로그램, 체험 콘텐츠, 글로벌 홍보 캠페인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추진하고 있으며 시민과 관람객이 함께 즐길 참여형 콘텐츠를 강화해 수묵비엔날레의 대중성과 국제적 위상을 높일 계획이다. 2025/06/26
새소리 흐르고 지진파 울리는 아르코미술관…‘드리프팅 스테이션’ 개막 “언어는 근대의 도구였어요. 그 언어 아래 비인간은 배제되고 열등하게 여겨졌죠. 이번 전시는 소리·후각·촉각처럼 ‘말 이전의 감각’을 깨우고 싶었습니다.” 2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한 창작산실 협력전 '드리프팅 스테이션―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는 ‘떠도는 미술관(Drifting Museum)’이라는 파격적 모델을 제안한다. 과정과 관계의 생성을 전시에 앞세우며, 인간 중심 제도·언어를 비틀고 비인간 존재와의 감응을 시험한다. 기획자 조주현 큐레이터는 2021년 출범한 국제 다학제 네트워크 ‘드리프팅 커리큘럼’의 중간 경유지라고 전시를 규정한다. “애초엔 충남 천수만 철새도래지를 무대로 한 모바일 공공미술이었어요. 전시는 탈(脫) 인류세 뮤지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전시 제목인 ‘드리프팅(Drifting)’은 정착·제도화·언어화된 흐름에서 벗어나 떠도는 행위, ‘스테이션(Station)’은 잠시 머무는 간이역을 뜻한다. 조 큐레이터는 “법·학교·뮤지엄 같은 근대 시스템을 해체하고 다시 짜는 비서사적 큐레이션”이라며, ‘행성 시학(Planetary Poetics·지구를 넘어선 시공 상상력)’아래 감정·기억·공존의 감각을 확장한다고 설명했다. 20여년간 미술기관에서 일한 뒤 2021년 독립 큐레이터로 전향한 그는 예술·과학·환경을 넘나드는 다학제형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전시장에는 데이터, 사운드, 오브제, AR 등 다양한 매체가 동원돼 총 8팀의 작가가 구축한 ‘다종 오페라’가 펼쳐진다. 전시장 입구 바닥에서 시작되는 김정모의 작업은 관객의 ‘발걸음’을 매개 삼는다. 바닥에 깔린 센서는 움직임을 수집해, 멸종 생명종의 신호를 호출하는 데이터로 바꾼다. 조용한 관람도, 북적이는 동선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어지는 천경우의 설치작 '버드 리스너'는 청각장애인의 상상 속 ‘새소리’를 사운드로 구현했다. 지휘자와 협업해 녹음한 다채로운 음향은 전시장 전체를 감싸며, 보이지 않는 새들의 서식지를 감각적으로 상기시킨다. 한편 벽면엔 관람객이 완성하는 ‘초록의 판화’도 준비돼 있어, 시각뿐 아니라 참여의 경험도 유도한다. 대만 작가 장은만은 아프리카 대왕달팽이의 이주 경로와 대만 원주민 여성의 서사를 엮는다. 느리고 무거운 존재의 궤적은, 신화와 기억의 층위를 따라 전시장 안을 이동한다. 안정주, 전소정, 안데스는 각기 다른 형식으로 데이터를 청각과 촉각의 감각으로 전환한다. 특히 안데스의 작업은 지질 데이터와 테크노 리듬을 혼합한 ‘지질학적 테크노’로, 지진파가 바닥과 벽면을 울리는 다중 설치작이다. 마지막으로 인도 기반 콜렉티브 ‘하이로조익/디자이어스’는 새의 시선을 상상해 구성한 오페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비인간 존재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감정과 신화를 조합한 이 작업은, 다종 존재들과 감응하는 윤리를 탐색한다. 이 전시는 끝이 아닌 프로젝트의 시작이기도 하다. 조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와 함께 '드리프팅 스테이션'은 오는 7월 천수만 철새도래지 현장 워크숍이 예정돼 있고, 2027년에는 영국 리버풀예술대학 미디어고고학자들과 확장형 전시가 추진된다"고 말했다. “협업을 플랫폼 삼아 환경운동가·인문학자·행동주의자들과 다학제 실험을 계속할 겁니다.” 오감으로 체험하며 쉽게 다가오는 전시와 달리, 영어로 쓰인 긴 제목은 마치 ‘개념의 교도소’에 갇힌 듯하다. 언어가 과잉일 때 감각은 오히려 닫히기도 한다. ‘드리프팅 스테이션’이라는 명칭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 조 큐레이터는 “결국 부제로 단 찬미와 애도가 감정이자 윤리를 강조하는 의미”라며, “제목이 낯설어도 관람객들이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면 자연스럽게 와 닿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팬데믹 이후 꾸준히 이어온 기후위기 담론과 예술 실천을, 인류세 연구자·기획자들과 함께 심화·확장할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8월 3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5/06/26
서울시, 서울뷰티위크 홍보단 가동…레오제이·박진이 등 활동 서울시가 뷰티 박람회인 '2025 서울뷰티위크'를 알릴 홍보단을 가동한다. 서울시는 26일 오전 시청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2025 서울뷰티위크' 공식 홍보단 발대식을 개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인플루언서 레오제이를 비롯한 홍보단 26명, 박진이 프로골퍼가 참석했다. 올해 홍보단은 메이크업, 패션, 일상 브이로그 등에서 활약 중인 크리에이터 26인으로 꾸려졌다. 홍보단에는 유튜브 구독자 132만명인 '한나 코레아나(Hanna Coreana)' 등이 참여했다. 홍보단 전체 누리소통망(SNS) 팔로워 수는 약 670만명이다. 홍보단 대표를 맡은 레오제이는 142만 팔로워를 보유한 인기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지난해 레오제이가 제작한 서울뷰티위크 홍보 콘텐츠는 조회 수 103만회, 좋아요 33만개를 기록했다. 홍보단은 26일 발대식 이후부터 8월까지 약 2개월간 서울뷰티위크를 비롯한 참여 브랜드 제품 관련 품평 등 콘텐츠를 통해 K-뷰티 산업을 알릴 계획이다. 올해는 인플루언서들이 직접 브랜드 품평회에 참여한다. 발대식에 참석한 오세훈 시장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에 동참했다. 오 시장은 MZ세대 뷰티 취향을 탐구하고 대화를 나눴다. 홍보단 대표 레오제이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이 자리를 맡게 돼 매우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라며 "브랜드와 소비자, 현장과 콘텐츠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 서울뷰티위크와 함께 K-뷰티 산업의 성장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박진이 프로는 "K-뷰티는 자신을 표현하고 아끼는 하나의 방식"이라며 "뷰티에 관심이 많은 스포츠인으로서 두 분야를 잇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2025 서울뷰티위크는 오는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서울뷰티위크에는 뷰티・테크 분야 대·중소기업, 바이어, 유통사, 투자사 등이 참여한다. 기업 전시, 수출 상담, 강연, 체험 등이 열릴 예정이다. 2025/06/26
김종영미술관 '창작지원작가'전시…김미현 vs 박도윤 ‘검은 무지개’가 뜨고, 시간은 반대로 풍화된다. 김종영미술관 별관에서 열린 'CREATIVE YOUNG ARTIST: 창작지원작가'전시는 올해 선정된 김미현, 박도윤 두 작가의 개인전이 나란히 펼쳐진다. 조각과 설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전시로, 김종영(1915~1982)의 추상 조각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기획전다. ◆김미현, 검은 무지개의 환상 정원 김미현 작가의 전시 제목은 '검은 무지개가 뜬 정원'. 동화 같은 이름이지만, 정원 속 조각들은 한눈에 봐도 낯설고 위태롭다. 천장에 매달린 작품은 꽃이면서도 뼈고, 촉수이자 샹들리에다. 섬세한 세라믹 조각들이 하나의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있고, 고전 조각을 뒤틀듯 장식적 곡선을 따라 자라난다. 작가는 다운증후군, 샴쌍둥이 등 비표준 신체에 대한 조형적 상상에서 출발해, 아름다움과 기괴함, 사랑과 폭력,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그로테스크하게 가시화한다. 특히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차용하면서도, 그 질서와 위계를 전복하는 방식은 '21세기 장식의 미학'이라 부를 만하다. 검은 색채의 세공된 질감은 우아하면서도 날카롭고, 조각이 아닌 ‘괴물 식물’처럼 생동하며 뻗어나간다. ◆박도윤, 역행하는 풍화, 영상 속 조각 2·3전시실에서 이어지는 박도윤 작가의 전시 'Reverse Weathering'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작가는 자르고, 쪼개고, 흩뿌리는 방식으로 조각을 확장시킨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흰 스크린들이 터널처럼 늘어서고, 영상은 흑백의 번짐으로 감정과 기억의 파편을 시각화한다. 작가의 언어는 침묵 속에서 흘러간다. 침수된 책 더미, 물방울 막 너머 서로를 응시하는 인물들, 사라졌다 되살아나는 발자국. 이 모든 장면들은 '시간의 흔적'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으로 제시된다. 조각은 더 이상 물질이 아니라, 이미지의 흐름을 따라 구성된 ‘분절된 감각의 구조’가 된다. 채길원 학예사는 "김미현, 박도윤 작가의 작품 세계를 통해 예술의 또 다른 면과 마주하며, 아름답고도 추악한 삶의 진실과 우리가 경험했던 삶의 모습을 다른 방식과 각도에서 다시금 보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2025/06/26
불통의 땅이 소통의 광장이 되기까지…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0년 10년은 건축에 있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설계자의 의도는 풍화되고, 공간은 시민들이 쌓아 올린 또 다른 기억의 층위로 채워진다. 건축가 민현준의 신간 '셰이프리스 미술관'(열화당)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MMCA 서울)의 건축적 탄생을 기록하는 동시에, 도시와 건축, 예술, 역사, 그리고 공공성에 대한 집요하고 예민한 사유를 담아낸다. 서울관이 어떻게 ‘불통의 땅’에서 ‘소통의 광장’으로 변모했는지, 그 과정은 한 건축가가 자신의 언어로 건축을 통해 답한 여정이다. 2023년 11월, 개관 10주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민현준이 제안한 ‘셰이프리스(shapeless)’, 즉 무형(無形)의 개념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대표 사례다. ◆ 공간의 레이어, 도시의 문맥을 읽는 설계 서울관의 부지는 조선시대 종친부부터 일제강점기의 경성의학전문학교, 이후 기무사령부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과한 장소다. 폐쇄성과 권력의 상징이었던 이 땅은 이제 열린 문화 인프라로 탈바꿈했다. 단순한 건축 해설서를 넘어, '셰이프리스 미술관'은 도시사적 역전극의 기록이다. 민현준은 공모전 단계부터 문화재 심의, 주민 협상, 고도제한을 고려한 구조 설계까지 직접 관여하며, ‘공간은 전략이자 대화’라는 원칙을 실천해 보였다. ◆ ‘형상에서 전략으로’: 비물질적 건축을 향하여 그는 서울관을 “형상이 없는 미술관”이라 정의한다. 이는 조형미의 완성도보다 제약과 장소성에 따른 ‘움직이는 전략’으로 건축을 접근하겠다는 선언이다. 설계 도중 종친부 유구가 출토되면서 마당이 설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했고, 전시 공간 대부분이 지하에 배치되는 등 공간 구조는 수차례 조정됐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 자체가 서울관 건축의 핵심 서사이자 “선례가 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 이상과 그에 대한 아쉬움을 솔직히 기록한 대목은 책의 진정성을 더한다. ◆ 건축은 껍데기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서울관은 형태보다 ‘작동 방식’에 주목한 건축이다. 화이트큐브, 매직박스, 블랙박스 등 각기 다른 전시실 포맷은 동시대 미술의 다양성을 반영한 공간적 시스템이다. 이는 관람객이 전시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체류자가 되도록 설계된 구조이기도 하다. 건축은 ‘무대’가 아니라 ‘도구’다. 선형이 아닌 군도형(群島型) 구조, 하나의 전시실이 하나의 건물이 되고, 연결 동선이 골목이 되는 방식. 이는 미술관을 ‘작은 도시’로 탈바꿈시킨다. 셰이프리스 미술관은 건축의 언어로 ‘공공성의 재구성’을 시도한 셈이다. ◆ 십 년이 흐른 후에야 꺼낸 고백 저자가 책을 십 년 후에 낸 이유는 단순하다. 이제야 비로소 “건축 자체로 말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간은 시민들의 걷는 길이 되고, 쉼이 되고, 일상 속의 열린 장이 되었다. 서울관은 단지 전시의 배경이 아니라, 사람들이 감응하고 작동시키는 장소가 되었다. '셰이프리스 미술관'은 한 미술관의 설계 보고서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동시대 도시 공간과 예술, 그리고 건축이 어떻게 긴장하고 협력하며, 공공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형식으로 묶이는지를 사유하는 지도다. 시행착오와 이상, 타협과 전진이 켜켜이 담겨 있다. 서울관은 여전히 움직이는 건축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움직임을 기록하며 묻는다. “공공을 위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2025/06/26
'빛과 소리의 자화상' 백남준 '브람스'…국립현대미술관 상설전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관이 선보이는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I’(2부)는 로봇을 닮은 ‘얼굴’로 시작해 같은 얼굴로 끝난다. 서막과 피날레를 장식하는 작품은 백남준(1932~2006)의 '브람스'(1993). 기계적 형상 속에 인간적 감각을 이식한 이 조형물은 20세기 후반 한국미술사를 압축한 11개 소주제 사이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안내자처럼 이끈다. 전시는 작가 70여 명, 110점의 작품을 통해 전쟁·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진 격동기를 조망한다. 이 가운데 17점은 ‘이건희컬렉션’이다. 각 섹션은 ‘정부 수립과 미술’,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모더니스트 여성 미술가들’ 등 시대·미학적 화두로 짜였다. ◆ 브람스와 비트, 얼굴 없는 연주 3전시실 입구에서 맞이하는 '브람스'는 두 대의 첼로, 바이올린, 세 개의 CRT 모니터, 형광 네온, 붓글씨, 키보드, 색면 회화를 겹겹이 얽어 만든 복합 오브제다. 영상 채널은 소리를 삭제한 채 반복 재생되지만, 작품은 여전히 무언가를 ‘연주’한다-기억이자 질문이며, 기술로 재조합한 인간의 몸이다. ‘브람스’라는 고전의 이름을 호출했지만, 백남준의 관심은 과거 복원이 아니라 ‘지금 여기’ 기술과 인간의 관계 재점검에 있다. 그는 비트와 픽셀 위에서 “소리를 본다는 것”과 “본다는 것의 의미”를 실험한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악기 배열은 멀리서 하나의 얼굴처럼 보인다. 기계의 얼굴을 한 인간, 인간의 감각을 품은 기계-작품은 말없이 묻는다. “이 기계는 정말 당신의 얼굴을 닮았습니까?” ◆ '한국근현대미술 II'…작가의 방, 감각으로 해석된 미학 눈길 전시의 체험형 공간 ‘작가의 방’은 이번 상설전의 백미다. 김환기 공간에는 맞춤형 향(수토메 아포테케리 협업), 윤형근 공간에는 음악감독 정재일이 큐레이션한 플레이리스트가 더해져 후각과 청각이 시각적 경험과 중첩된다. 이번 전시는 예술이 어떻게 인간의 감각을 구성하고 확장하는지를 공간 자체가 보여준다. 상설전은 일부 작품과 공간을 순환 배치하며 향후 2년간 운영된다. 김성희 관장은 “앞서 개막한 1부와 함께 한국근현대미술 100년사를 조망하는 상설전을 통해, 국내외 관람객에게 한국미술의 역사와 가치를 전하고, 동시대 한국미술의 근원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관람료는 3000원(과천관 통합권) 2025/06/25
‘빛으로 만든 기념비’ 이불 ‘스턴바우’, 국립현대미술관 상설전서 첫 공개 국립현대미술관(MMCA·관장 김성희) 과천관이 26일 개막하는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I’는 1950~90년대를 아우르는 ‘한국미술 타임캡슐’이다.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라는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한국미술의 흐름을, 작가 70여 명의 작품 110점으로 압축해 풀어낸다. 이 중 17점은 ‘이건희컬렉션’이다. 지난달 개막한 1부(1880~1940년대)에 이은 이번 2부 전시는, 20세기 중후반 한국미술사의 전환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두 전시를 합쳐 과천관에서는 총 58점의 이건희컬렉션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이불(61)의 설치작품 '스턴바우 No. 23'(2009)이다. 25일 과천관에서 언론에 먼저 공개된 이 작품은 11개 소주제의 전시 구성을 따라 도착한 마지막 방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는다. 아니, 시선을 흡수한다. ◆“이게 진짜 네가 바라던 미래야?” 이불 ‘스턴바우 No. 23’, 첫 공개 거울, 유리, 금속, 반사 필름 등 다층적 재료가 얽혀 공중에 부유하는 이 설치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된 우주’처럼 다가온다. 작품 제목 ‘스턴바우(Sternbau)’는 독일어로 ‘별 구조’를 뜻한다. 러시아 구성주의와 브루노 타우트의 유리 건축 실험에서 영감을 받은 이 조형물은, 미래에 대한 인간의 낙관과 그에 따른 불편한 뒷면을 동시에 껴안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작가의 세계관은 더욱 분명해진다. 기술과 신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꿈과 현실이 얽힌 이 기괴한 생명체는 찬란하면서도 차갑다. 그 빛은 따뜻하지 않고, 경외감을 주지만 결코 안심하게 두지 않는다. ‘스턴바우’는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조용히 살아 움직이는 존재다. 이불은 이 낯선 구조물을 우리 앞에 띄워두고 묻는다. “이 빛은, 정말 당신이 원했던 것입니까?” 이불 작가는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 ‘프로젝트’ 전시에 초대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냉장 유리 케이스에 날생선 63마리를 넣은 작품 '장엄한 광채'는 강한 악취로 개막 전 철거됐지만, 이를 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의 초청으로 제4회 리옹비엔날레에 출품되며 전환점을 맞았다. 생선이 부패하는 과정을 전시로 승화시킨 이 작업은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을 동시호흡하는 이불의 미학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후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 2000년대 이후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적 건축 실험에 집중하며 ‘모뉴먼트’, ‘스턴바우’ 연작을 이어오고 있다. ◆ 작가의 방, 감각으로 해석된 미학 이번 전시는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들을 ‘정부 수립과 미술’,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모더니스트 여성 미술가들’ 등 11개의 주제로 분해해 풀어낸다. 전시의 백미는 ‘작가의 방’ 체험형 공간이다. 김환기 방에는 맞춤형 향(수토메 아포테케리 협업), 윤형근 방에는 음악감독 정재일이 구성한 플레이리스트가 더해져 시청각·후각이 결합된 감각적 해석을 제공한다. 전시는 순환형 구성으로, 일부 작품과 공간은 매년 교체될 예정이다. 김성희 관장은 “앞서 개막한 1부와 함께 한국근현대미술 100년사를 조망하는 상설전을 통해 국내외 관람객에게 한국미술의 역사와 가치를 전달하고, 동시대 한국미술의 근원을 성찰할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5/06/25
KCDF갤러리, 신진 유리 공예 작가 40人 전시 유리 위에 각자의 도시를 세운 40인의 젊은 작가들이 인사동에 모였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은 25일부터 7월 13일까지 인사동 KCDF갤러리 2층에서 단체 ‘GLASS TO GLASS’의 기획전 유리에서 유리로(GLASS TO GLASS 2025)'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5 KCDF 공예·디자인 공모전시’에 선정된 기획으로, 유리의 물성과 조형성을 탐구하는 신진 유리공예 작가 40인의 실험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은 유리라는 소재를 도시로 은유하며, 각자의 작품을 도시에 들어선 건축물처럼 구성해 유리공예의 다층적 가능성을 드러낸다. 전시는 네 가지 유리공예 기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빠드 드 베르(pâte de verre)’는 유리가루를 반죽해 반투명하고 섬세한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주조(casting)’는 틀을 이용한 자유로운 형태 구현이 특징이다. △‘램프워킹(lamp working)’은 토치로 녹인 유리를 손끝으로 다루는 정밀한 조형 기법이고, △‘블로잉(blowing)’은 불어넣기로 유리를 성형하는 역동적 작업 방식이다. 공진원 전주희 공예진흥본부장은 “이번 전시는 단순한 결과물 전시에 그치지 않고, 작가들이 평론가와의 합평, 선배들과의 교류를 통해 창작 언어를 정립해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며 “젊은 유리공예 작가들의 예술적 잠재력과 확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람은 무료. 2025/06/25
태극기 언덕 조성, 독립유공자 발굴…서울시, 광복 80년 기념사업 추진 서울시가 광복 80주년을 50여일 앞두고 '광복 80년, 서울의 기억'을 주제로 시민과 함께 공감하고 만들어가는 대규모 기념사업을 추진한다고 25일 밝혔다. 8월 15일 전후로 과거의 희생을 되새기는 '기억', 전 세대가 즐기는 '환희', 연대와 희망을 나누는 '미래'라는 3가지 주제로 18개 행사가 열린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던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 500명을 발굴한다. 8월에는 국가보훈부에 그동안 발굴한 미서훈 독립운동가 서훈을 신청할 예정이다. 또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후손 20명(11가족)을 5박6일(8월 12~17일)간 서울로 초청한다. 이들은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서대문형무소 등 독립운동 사적지를 방문하고 광복 80주년 서울시 경축 기념행사 등에 참석한다. 시민이 광복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도록 서울 주요 역사 유적지를 지나는 시내버스(101번, 400번)와 시범 운행하는 한강버스 외부를 태극기로 장식한다. 8월 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전역을 운행한다. 8월부터 10월까지 초등학생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항일 독립운동 유적 답사를 운영한다. 7~8월 두 달간 '광복80주년기념사업 시민위원회' 80명이 독립 유적지와 광복 이후 서울의 발전상을 체험할 수 있는 홍보 사진과 숏츠 등을 제작·공개하는 '광복순례단'으로 활동한다. 8월 15일 광복절 당일 보신각에서 타종 행사가 열린다. 8월 9일부터 16일까지 서울광장에는 광화문, 서울시청, 남대문, 청계천 등 주요 지역을 '렌티큘러 기법(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변화는 인쇄 기법)'을 활용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이상룡 선생의 독립 투쟁을 조명하는 전시와 80년간 광복절 기념식 자료 등을 관람할 수 있는 특별전이 8월 5일부터 개최된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독립 유공자와 서울 시민 80명 서명을 담은 대형 태극기를 박물관 외벽에 건다. 8월까지 태극기 코스프레 등 광복 의미를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개인 SNS에 올린 시민에게 기념품을 제공하는 행사를 연다. 광복절 당일 서울광장 특설 무대에서 경축식이 열린다.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이야기가 인공지능 영상으로 소개되고 유명 가수가 축하 공연을 한다. 8월 16일에는 독립을 주제로 한 뮤지컬 '영웅'과 '레미제라블'의 주연 배우들이 참여하는 갈라 음악회가 개최된다. 8월 9일부터 8월 16일까지는 서울도서관 앞에는 80개 계단으로 이뤄진 대형 상징물 태극기 언덕이 조성된다. 서울도서관 꿈새김판에 가로 19m, 세로 8.5m 대형 태극기를 설치해 태극기의 의미와 감동을 전한다. 광복 이후 최초로 우리 기술로 만들고 우리말 이름을 붙인 열차 '해방자호'와 최신 열차인 'KTX청룡' 모형을 동시에 선보이는 광복 열차 전시가 열린다. 열차 내부는 역사 전시관으로 꾸민다. 대형 태극기 설치 미술 전시, 태극기와 함께한 근현대사 사진전,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 전시 등이 서울문화재단 주최로 노들섬에서 개최된다. 독립 열사들의 모습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한 영상물을 제작해 8월 중으로 서울시 SNS과 미디어 보드 등을 통해 공개한다. 국내 체류 해외 청년 등과 함께 독립 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는 행사도 8월 열린다. 윤종장 서울시 복지실장은 "서울시는 이번 기념사업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재조명하고 시민이 광복의 의미를 함께 나누며 광복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