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응축한 일상…94세 마치 에이버리 한국 첫 개인전 미국 모더니즘 계보를 잇는 화가 마치 에이버리(94)가 국내 첫 개인전을 연다. 에스더쉬퍼 서울이 2026년 첫 주요 전시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작품 11점을 포함해 약 40년에 걸친 작업 세계를 조망한다. 전시는 3월 3일부터 4월 2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밀튼 앤 샐리 에이버리 아트 재단(Milton and Sally Avery Arts Foundation)과 밀튼 에이버리 트러스트(Milton Avery Trust)의 후원 아래 재단 어드바이저 와카스 와자하트의 지원으로 성사됐다. 당초 에이버리의 아들과 와카스 와자하트가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뉴욕주에 발생한 극심한 눈보라로 항공 일정이 취소되며 방한이 무산됐다. 에이버리 역시 고령으로 장시간 비행이 어려워 내한하지 못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에스더쉬퍼 서울 김선일 대표의 기획으로 마치 에이버리의 작품을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게 됐다”며 “과거 Blum & Poe 도쿄 지점에서 개인전이 열린 적은 있지만, 이후 아시아권 전시는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고 전했다. 김선일 대표는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 작품을 최초 공개작으로 구성했다”며 “정물화·풍경화·인물화 세 갈래를 통해 에이버리의 다양한 구도와 색채 감각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여성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해 온 에스더쉬퍼 서울의 기획 흐름을 잇는 자리다. 193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에이버리는 화가 샐리 마이클과 밀튼 에이버리 사이에서 성장했다. 마크 로스코, 아돌프 고틀립, 바넷 뉴먼 등과 교류하던 환경 속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으며, 1963년 첫 개인전 이후 60여 년간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브루클린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 주요 공공기관에 소장돼 있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제작된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를 아우른다. 에이버리는 일상의 장면을 단순화된 형태와 절제된 색채로 재구성해왔다. 가족과 친구, 해변과 실내 공간, 자연 풍경 등 친밀한 삶의 순간은 포화된 색면과 평면적 공간 구성 속에서 심리적 풍경으로 전환된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선 화면은 직관적이면서도 응축된 감각을 전달한다. 선홍, 라일락, 세이지 그린, 머스터드 옐로 등 강렬하면서도 균형 잡힌 색 조합은 인물과 사물을 상징처럼 부각시키며 고요한 긴장을 형성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 출품된 11점은 정물화·풍경화·인물화로 구성돼 에이버리의 다양한 구도와 색채 감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모더니즘 계보에 뿌리를 두면서도 개인적 시각을 확고히 유지해 온 에이버리는 색에 대한 평생의 매혹을 “나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부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표현한 바 있다. 미공개 작품을 중심으로 60여 년간 이어진 에이버리의 색채 탐구를 압축해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일상의 한 장면을 조용히 건져 올린 듯한 화면 속에서 밝지만 소란스럽지 않은 색으로 친밀한 시간을 환기한다. 2026/02/28
존재는 마찰에서 생긴다…엄정순, ‘보푸라기 회화’[박현주 아트에세이 ⑰] 보푸라기는 마찰의 흔적이다. 옷감이 닳을 때 생겨나는 작은 덩어리. 정돈된 표면에서 밀려난 잔여물. 그러나 그것은 결함이 아니다. 어딘가와 맞닿았다는 증거다. 마찰이 없으면 보푸라기도 없다. 스침이 없으면 흔적도 없다. 완벽하게 매끈한 표면은 아직 아무것도 만나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마찰은 관계를 만든다. 관계는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흔적은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의 중심, 단단한 덩어리로 믿지만 실은 끊임없이 닳고 긁히며 생성되는 느슨한 표면에 가깝다. 엄정순의 화면 위에서 보푸라기는 더 이상 섬유의 잔여가 아니다. 손끝으로 긁어 모으고, 떼어 붙이고, 다시 눌러 붙이는 반복 속에서 화면은 붓질이 아니라 접촉의 기록이 된다. 그 표면은 매끈하지 않다. 빛은 고르게 반사되지 않고, 미세한 돌기와 결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보는 행위는 자연스레 더듬는 감각으로 바뀐다. 이 회화는 시각이 아니라 촉각을 호출한다. 눈으로 읽기보다, 피부로 감지하게 만든다. 존재는 완결된 본질이 아니라 세계와의 접촉 속에서 조금씩 일어나는 사건이다. 엄정순의 화면 위 보푸라기는 그 사건의 잔여다. 지워지지 않은 관계의 조각. 우리는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무엇과 마찰하며 살아왔는가로 설명된다. 예술은 완성을 향한 기술이 아니라 마찰을 견디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닳아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그 태도 속에서 보푸라기는 사소함을 벗는다. 작고 질긴 생명으로 존재의 가장자리에서 다시 중심이 된다. 존재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치며 생겨난다. 그리고 남겨진 보푸라기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증명한다. 2026/02/28
서울옥션, 3월 ‘국세청 특별경매’…쿠사마·최영욱 등 76점 서울옥션은 오는 3월 11일 오후 2시 온라인을 통해 ‘국세청 특별경매’를 개최한다. 이번 경매는 국세청으로부터 압류된 예술품 등의 매각을 위탁받아 진행되는 것으로, 미술품과 럭셔리 섹션을 포함해 총 76점이 출품된다. 낮은 추정가 총액은 약 3억원, 높은 추정가 기준 약 7억원 규모다. 서울옥션은 국세청이 전문성과 실적 심사를 거쳐 지정한 ‘예술품 전문매각기관’으로, 이번 경매의 매각 절차를 수행한다. 미술품 섹션에는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출품된다. 하이라이트는 쿠사마 야요이의 1989년 작 ‘Flower Garden’이다. 작가 특유의 반복적 패턴과 강렬한 색채가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화면 속 나비 모티프는 생명과 자유를 상징한다. 김창열의 ‘회귀’도 출품된다. 천자문을 배경으로 맺힌 물방울을 통해 사유적 화면을 구현한 작품이다. 최영욱의 ‘Karma’는 도자기 표면의 빙렬을 수행적 행위로 표현한 회화로,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밖에 줄리안 오피,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원화 및 에디션 작품도 포함됐다. 럭셔리 섹션에는 에르메스의 켈리 35와 쉐도우 버킨 35 등이 출품된다. 주류 섹션에는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딸보 등 와인 세트와 희귀 주류가 포함됐다. 이번 경매는 국세징수법 제104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75조에 따라 세무서장 또는 지방국세청장이 압류한 예술품 등을 전문 매각기관이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국세청은 2년마다 전문성과 실적 등을 기준으로 매각기관을 지정하고 있다. 서울옥션은 예금보험공사 등 주요 공공기관 및 파산재단 자산 매각을 수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경매를 진행한다. 출품작은 3월 5일부터 서울옥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6일부터 10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프리뷰 전시가 열린다. 프리뷰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경매는 3월 11일 오후 2시 서울옥션 홈페이지에서 진행된다. 2026/02/27
노동의 현실 그린 ‘광부 화가’ 황재형 별세…향년 74세 한국 리얼리즘 미술을 대표해온 '광부 화가' 황재형 화백이 27일 새벽 5시 별세했다. 향년 74세. 유족과 가나아트센터에 따르면 황 화백은 췌장암 투병 중 최근 병원에 입원했으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 강원도 태백에 정착해 일하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직접 들어가 노동 현장과 삶의 터전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산업화의 그늘에 놓인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주요 화두로 삼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러한 태도는 1980년대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1982년 태백에서 실제 광부로 일한 경험은 그의 작업 세계를 결정지은 전환점이었다. 탄광 노동의 고단함과 위험, 광산촌 공동체의 애환을 몸으로 겪은 뒤 이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광부 화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개발과 성장의 이면에 놓인 시대의 얼굴을 기록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2017년 가나아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머리카락 십만여 가닥을 사용해 완성한 작품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물감 대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로 완성한 인물과 풍경은 노동과 삶의 체취를 물질적으로 환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나아트센터는 당시 머리카락을 재료로 온전한 회화를 제작한 사례는 세계 최초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회천(回天)’에서는 탄광촌 노동자 작업복 연작부터 머리카락 초상화까지 40여 년의 작업을 조망하는 65점을 선보이며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황 화백은 2016년 제1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1호(3층)에 마련됐다. 발인은 3월 1일 오전 7시 40분, 장지는 강원도 태백시 황지다. 2026/02/27
“인생 짧다, 오롯이 즐겨야”…'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정신없이 산다. 캐머마일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텐데."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성황리에 진행중인 ‘스틸, 타샤 튜더: 행복의 아이콘’ 전시와 맞물려, 타샤 튜더의 자전적 에세이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윌북)가 특별 양장본으로 출간됐다. 소박하고 절제된 삶으로 ‘행복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타샤 튜더(1915~2008)는 미국 버몬트 산골에서 약 30만 평의 땅을 일구며 활동한 그림책 작가이자 삽화가다. 평생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실천해온 인물이다. 책에는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 그의 일상과 행복에 대한 생각이 사진과 삽화, 담담한 문장으로 담겼다. 그는 “인생은 짧으니 오롯이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꽃을 가꾸고, 동물을 돌보고, 손수 천을 짜 옷을 만들며 하루를 채우는 삶.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 감각도 자리한다. “난 상업적인 화가고, 쭉 책 작업을 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내 집에 늑대가 얼씬대지 못하게 하고, 구근도 넉넉히 사기 위해서!”(41쪽) 이 고백은 전원적 삶의 이미지를 한층 현실에 붙인다. 느림은 도피가 아니라 선택이었고, 예술은 생존과 맞닿아 있었다. 타샤가 버몬트 깊은 산골에서 사계절 꽃이 지지 않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56세 때였다. 그림책 삽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 네 명의 아이를 키워낸 그는, 아이들이 자란 뒤에야 오래 품어온 꿈을 실행에 옮겼다. 모아둔 인세로 땅을 마련해 집을 짓고 정원을 일구기 시작했다. 감자 농사를 짓던 척박한 땅은 수십 년의 시간과 노동을 거쳐 울창한 정원으로 변모했다. 그 풍경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타샤는 말한다. “이곳의 모든 것은 내게 만족감을 안겨준다. 내 가정, 내 정원, 내 동물들, 날씨, 버몬트주 할 것 없이 모두.” 거창한 성공담 대신 반복과 시간에 대한 신뢰. 이 책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는 그 조용한 실천을 담은 기록이다. 2026/02/27
요즘 보기 드문 청동 조각 전시…갤러리 시몬, 배형경 개인전 인간 실존을 꾸준히 탐구해온 배형경 작가의 개인전 ‘What Still Remains’가 3월 5일부터 5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갤러리 시몬에서 열린다. 최근 보기 드문 대규모 청동 조각 전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오랜 시간 인간 형상만을 반복해 빚어온 그는 흙을 붙이고 깎아내는 과정을 거쳐 캐스팅에 이르는 수행적 작업을 통해 실존의 흔적을 새겨왔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청동과 철로 제작된 군상들이 공간을 채운다. 대부분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움츠린 채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인물들 사이의 여백은 팽팽한 긴장과 깊은 고요로 감돈다. 거대한 군상은 한 편의 장면처럼 압도적이면서도, 동시에 한 개인의 고독과 침묵을 응시하게 만든다. 단단한 금속 매체는 오히려 유약한 신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표면에 스며든 시간의 흔적은 조각에 층위를 더하고, 함께 선보이는 드로잉은 조각이 담아내지 못한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보완한다. 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 속에서 무너짐 이후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견디는 몸과 마음’을 조용히 비추는 자리”라고 밝혔다. 2026/02/27
‘내 말 좀 들어봐 –말馬들의 이야기’…다보성갤러리 3월 4일 개막 봄이 오는 길목, 2026년 병오년(丙午年) 말의 해를 맞아 다양한 말(馬) 유물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인사동 다보성갤러리는 말(馬)을 주제로 한 소장 유물 특별전 ‘내 말 좀 들어봐 – 말馬들의 이야기’를 개최한다. 전시는 3월 4일부터 31일까지 다보성갤러리 4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갤러리가 소장한 유물 가운데 말 형상을 중심으로 선별한 작품들을 통해 중국 미술과 문화 속에서 말이 지닌 상징과 의미를 조명한다. 이번 전시에는 춘추전국시대 말 형상의 청동기를 비롯해 당대 채회 마용(彩繪馬俑), 송대 자주요의 말 모양 도자 베개, 원·명·청대 말 문양 도자기, 청 옹정·건륭 연간 경면주사 먹, 말 형상의 옥·호박·목재 조각상, 청대 말 문양 보석 은반지 등 다양한 시대와 재질의 유물이 공개된다. 특히 당대 채회 마용은 당나라 장례 문화와 조형 예술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이다. 생동감 있는 자세와 화려한 채색을 통해 당시 말이 지녔던 위상과 상징성을 전한다. 말은 이동과 교류, 전쟁과 의례의 매개체로서 인간의 역사와 긴밀히 연결된 존재였다. 동시에 권위와 속도, 길상과 이상을 상징하는 문화적 표상이기도 했다. 송대 자주요 베개와 원·명·청대 도자기 등 생활 기물 속 말 문양은 일상과 예술이 결합된 상징 체계를 드러낸다. 문방구와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말 형상은 시대마다 다른 의미와 미감을 담아내며 확장돼 왔다. 다보성갤러리는 “말이 표현된 유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신비롭고 아름답다”며 “말의 형상을 통해 과거의 삶과 가치관을 읽어보고, 오늘날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관람은 무료다. 2026/02/27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작가 111명 확정…韓, 마이클주·요이 2명 베니스 비엔날레 제61회 국제미술전 본전시에 한국 작가 2명이 포함됐다.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25일(현지시간) 본전시 참여 작가 111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별세한 카메룬 출신 큐레이터 코요 쿠오가 기획한 유작 전시 ‘In Minor Keys’로 오는 5월 9일 개막한다. 명단에는 한국계 작가 마이클 주와 한국 작가 요이가 포함됐다. 마이클 주는 생태·과학·역사적 서사를 결합한 개념적 설치 작업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해 왔으며, 요이 작가는 서울과 제주를 기반으로 조각과 설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본전시는 미국, 팔레스타인, 호주, 페루, 남아프리카공화국, 잠비아 등 다양한 국가 출신 작가들이 참여한다. 주요 참여 작가로는 레바논 출신 칼레드 삽사비, 케냐 출신 왕게치 무투, 알제리-프랑스 작가 카데르 아티아, 팔레스타인 화가 모하메드 조하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번 전시는 쿠오의 사후 기획으로 완성된다. 쿠오는 지난해 5월 암 투병 끝에 57세로 별세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인물이다. 그는 전시 제목과 개념, 카탈로그 기획, 작가 선정 등 주요 작업을 상당 부분 진행한 상태였다. 비엔날레 측은 쿠오가 선정한 자문팀의 지도 아래 전시를 이어간다고 밝혔다. 다만 올해는 황금사자 평생공로상(Golden Lion for Lifetime Achievement)은 수여되지 않는다. 쿠오가 생전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In Minor Keys’는 사회적·심리적 조건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해석하는 예술가의 역할에 주목하는 전시다. 자문위원 라샤 살티는 “‘작은 음(minor key)’은 웅장한 행진 대신 낮은 음역과 속삭임, 시적 위로에 귀 기울이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2026/02/27
“부스비 안 받는다”…하이브, 아트페어 판 흔드나 “부스비를 전면 폐지한다.” 오는 5월 서울 코엑스 마곡에서 열리는 ‘하이브 아트페어 2026(HIVE ART FAIR 2026)’가 기존 아트페어 수익 구조에 변화를 예고했다. 하이브는 지난 3년간 행사 연기를 거치며 구조 재설계를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김정연 대표이사는 26일 서울 종로구 서머셋 팰리스 서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형식적인 개최가 아니라, 보다 건강하고 본질에 충실한 아트페어를 만들기 위해 연구와 실험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하이브는 ‘부스비 0원’을 선언했다. 기존 아트페어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결정이다. 전통적인 아트페어 모델에서 부스비는 주 수입원으로 작동해 왔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프리즈 서울의 경우 최소 1000만원대에서 시작해 부스 규모에 따라 1억원에 이르기도 한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갤러리는 고액의 부스비를 보전하기 위해 판매가 용이한 작품 위주로 부스를 구성하고, 주최 측은 부스 수 확보에 집중하는 관행이 반복돼 왔다. 김동현 이사는 “기존 아트페어가 공간을 임대하는 구조에 머물렀다면, 우리는 갤러리를 수익원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보고 있다”며 “부스비라는 진입 장벽을 없애 갤러리가 전시 콘텐츠에 집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부스비를 받지 않는 대신 새로운 수익 모델을 도입한다. 초대권은 무상 제공 대신 갤러리가 필요 수량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전시장 내 특정 위치 지정도 추가 비용으로 선택할 수 있다. 티켓 가격은 전일권 10만원, 일반권은 3만~5만원으로 책정됐다. 토크 라운지 역시 유료화한다. 갤러리가 시간대를 구매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주최 측은 이를 통해 콘텐츠 다양성을 높이고 관람객의 질적 수준을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이사는 “관람객 유치 확대에 따른 입장 수익과 스폰서십 확대, 기업과의 B2B 협업 모델을 병행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마곡 지역의 산업단지·연구소 밀집 특성을 활용해 기업과 갤러리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육각형 부스 도입…동일 구조 제공 공간 구조에도 변화를 준다. 기존 바둑판식 부스 대신 육각형(HIVE) 모듈을 도입한다. 4m·7m 규격의 동일 구조 부스를 제공하고, 중앙 ‘더 코어(The Core)’ 구역에서는 주최 측 큐레이션 특별전이 열린다. 부스 위치가 경합할 경우에는 추가 비용뿐 아니라 전시 기획성을 함께 심사한다는 방침이다. 김정연 대표는 “자본력만으로 자리가 결정되는 방식은 지양하겠다”며 “기획력이 존중받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메이저 유치 경쟁보다 콘텐츠” 해외 메이저 갤러리 유치 경쟁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김동현 이사는 “과거에는 어느 해외 메이저 갤러리가 참여하느냐가 중요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누가 오느냐보다 어떤 콘텐츠를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아트페어를 ‘견본시장’ 본래 기능에 가깝게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판매 중심 장터가 아니라, 갤러리의 기획 역량과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주최 측은 부스비를 받지 않는 구조 전환을 통해 “아트페어의 본질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도형태 대표 운영설 선 그어 한편 하이브가 도형태 대표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김정연 하이브 아트페어 대표이사는 “도형태 대표는 파운딩 멤버이자 주주이지만, 현재 운영 주체는 디엑세스(DXSS)”라며 “행사 운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는 ㈜인터컴과 공동 주최한다. 김 대표는 갤러리현대와 현대카드 등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한 바 있다. 하이브 아트페어는 5월 21일부터 24일까지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다. 현재 이화익, 웅갤러,에스더쉬퍼등 국내외 23개 갤러리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서울에는 이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등 대형 아트페어가 자리하고 있어, ‘부스비 폐지’라는 실험적 모델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주목된다. 김동현 이사는 “기존 아트페어 구조를 반복하기보다 가장 큰 수익원이었던 부스비를 내려놓는 선택을 통해 갤러리들이 보다 실험적이고 기획 중심의 전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성공 여부는 결국 시장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6/02/26
“너무 많이 본 시대, 우리가 졌다”…보푸라기로 돌아온 코끼리 작가 엄정순 “우리가 졌어요. 너무 본 게 많아서 졌어요.” ‘하얀 코끼리’ 작가로 알려진 엄정순(65)이 26일 서울 학고재에서 열린 개인전 ‘보푸라기-촉각적 사건’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는 것의 권력,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가 왜 진 것일까. “이미지는 넘쳐나요. 그런데 감각은 비어 있어요.” 그의 발언은 전시 설명을 넘어, 정보 과잉 시대에 대한 진단에 가까웠다. 이번 전시는 2023년 광주비엔날레 참여작 ‘코없는 코끼리’에서 출발한다. 당시 관객은 작품을 직접 만질 수 있었다. 약 50만 명이 코끼리를 스쳤고, 양모 표면에는 대량의 보푸라기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제거 대상이었다. 지저분하고 통제 불가능하며 의도되지 않은 흔적처럼 보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어떻게 50만 명을 만나겠어요.” 엄 작가는 관점을 바꿨다. “보푸라기는 사람들의 체온입니다.” 관객의 마찰과 온도, 감정의 축적은 더 이상 오염이 아니라 증거가 됐다. 그는 이를 ‘촉각적 사건’이라 명명했다. “교통사고 같은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감각과 사고의 방향이 틀어지는 순간이라는 뜻입니다.” 만지는 행위는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감상의 확장이고, 관객의 신체적 참여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된다. 미술관의 “만지지 마세요”라는 규칙이 뒤집히는 순간, 작품은 표면이 아닌 관계가 된다. 엄정순은 오랫동안 시각장애인 미술 교육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그는 ‘본다’는 행위 자체를 의심해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눈을 뜨고 있지만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시각은 가장 불안정한 감각인데도 우리는 지나치게 눈에 의존하고 있어요.” 학고재 전시장에는 천 권이 넘는 점자책이 설치됐다. 송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점자책 페이지가 천천히 넘어간다. 눈으로는 읽히지 않지만, 손끝으로는 접근 가능한 텍스트다. 전시는 읽기와 보기의 관계를 근본부터 다시 묻는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코 없는 코끼리’ 시리즈 역시 같은 문제의식 위에 놓인다. 코끼리는 ‘맹인모상(盲人摸象)’의 은유처럼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사유하는 장치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고전적 비유처럼, 그의 코끼리는 전체에서 부분으로 떼어지고 다시 붙여진다. 본다는 것의 통로를 새롭게 제안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감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파편과 모서리를 통해 전체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해체된 일부를 제시하는 작업은 완결성 대신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엄 작가는 최근 AI 환경과 감각의 문제도 언급했다. “AI는 데이터와 시각 중심으로 작동합니다. 촉각과 후각 같은 근접 감각은 아직 인간의 영역이죠.” 다만 그는 촉각을 신성화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촉각을 특별한 감각으로 올려 세우자는 게 아닙니다. 감각을 수평적으로 확장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는 이를 ‘촉각의 민주화’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눈에 집중된 감각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서로 다른 감각이 동등하게 작동할 조건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번 전시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다. 화면에 한글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전 작업엔 영어로 썼어요. 영자체로 쓰면 있어 보이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일부러 한국어를 썼어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예전에는 우리가 외국 소설이나 기사를 보다가 프랑스어나 독일어가 나오면 일부러 찾아봤잖아요. 이제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어를 찾아봐야죠.” 세계 미술계의 관행처럼 굳어진 영어 중심의 언어 질서에 대한 균열이다. 감각의 위계를 묻는 작업은 동시에 언어의 위계 역시 질문한다. 존재의 마찰면처럼 남은 보푸라기 위에서 새로 태어난 회화와 매트릭스의 기호처럼 공간을 둘러싼 점자책이 새로운 감각을 열어준다. 엄정순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 세계를 만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가. 전시는 3월 28일까지. 관람은 무료. ◆엄정순은 누구? 충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수료했다. 건국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를 역임했다. 1996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을 설립해 맹학교 미술교육, 출판, 전시, 예술교육 프로젝트 등을 이끌어왔다. 2023년에는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상금 10만 달러)의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됐다. 개인전으로는 ‘보푸라기-촉각적 사건’(2026, 학고재), ‘시그널 온 세일: 시간의 주름’(2025, 학고재), ‘흔들리는 코끼리’(2024, 두손 갤러리), ‘엘리펀트 워크’(2015, 앤트러사이트) 등이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민속박물관, 예술의전당, 삼성문화재단 등에 소장돼 있다.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