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이왈종·배병우·오수환·윤광조…가나아트 컬렉션으로 보는 한국미술 한 갤러리의 40년은 곧 한 시대의 미술사다. 가나아트와 가나문화재단은 소장품 기획전 ‘Gana Art Collection: Artists 1’을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와 Space 97에서 개최한다. 15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1983년 설립 이후 축적해온 컬렉션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조망하는 자리다. 회화, 사진, 도자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5인의 작가 황재형, 이왈종, 배병우, 오수환, 윤광조의 작품 80여 점이 소개된다. 이들은 한국 리얼리즘, 현대 동양화, 사진, 추상회화, 도예를 대표하는 작가들로, 서로 다른 매체와 조형 언어를 가로지르며 한국 미술의 다층적 전개를 드러낸다. 전시는 작가별로 공간을 나눠 각 작업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1전시장에서는 황재형의 ‘사망진단서’(1985) 등을 통해 산업화 시대 현실을 직시한 리얼리즘을, 2전시장에서는 이왈종의 ‘제주생활의 중도’ 연작을 중심으로 동양화의 확장 가능성을 살핀다. 이어 3전시장에서는 경주 풍경과 한국의 고건축물을 담은 배병우의 사진 작업을 통해 자연과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한다. Space 97에서는 오수환의 추상회화를 조망한다. ‘곡신’에서 ‘대화’에 이르는 연작을 통해 그의 회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드러낸다. 공예관에서는 윤광조의 분청 도자를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르는 조형 세계를 소개한다. 올해 팔순을 맞은 두 작가의 작업은 축적된 시간의 밀도를 함께 보여준다. 전시는 29일까지 열린다. 전시와 함께 가나아트센터 인근에는 가나문화재단의 신규 전시 공간 ‘Gana Art Collection’이 문을 연다. 상설 공간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가나아트가 40여 년간 축적해온 국내외 컬렉션을 공개하는 자리다. 1층에서는 안토니 곰리, 안젤름 키퍼, 장 뒤뷔페, 세자르 발다치니 등 유럽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세자르의 ‘Le Hibou Aile’과 뒤뷔페의 ‘Mire G 79’ 등은 가나화랑 초창기 수집작으로, 컬렉션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2층에서는 이우환, 김창열, 권진규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공개된다. 가나아트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소장품 공개를 넘어 컬렉션의 미술사적 의미를 환기하는 자리”라며 “향후 이어질 ‘아티스트(Artists)’ 시리즈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6/04/15
서울시립미술관, 가나아트컬렉션 상설전…민중미술~뉴미디어까지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은 어떻게 변했을까.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소문본관에서 가나아트컬렉션 기획상설전 ‘기술의 저변: 경계에 선 장면들’을 개최한다. 16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여는 이번 전시는 가나아트컬렉션과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기술 발전이 바꿔놓은 한국 사회의 풍경과 그 이면의 인간적 감각을 조망한다. 민중미술부터 뉴미디어까지 18명의 작가, 2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가나아트컬렉션은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가 기증한 200점 규모의 소장품으로, 민중미술과 신표현주의 등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작업을 포함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를 바탕으로 예술과 시대의 관계를 탐구하는 상설 전시를 지속적으로 기획해왔다. 전시는 ‘기술’을 올해의 의제로 삼아 산업화와 도시화, 매체 환경 변화 속에서 형성된 사회 구조와 감각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읽어낸다. 구성은 ‘균열’ ‘재편’ ‘내면’ 세 개의 축으로 나뉜다. 첫 번째 섹션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전환기,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공동체가 해체되는 장면을 다룬다. 작가 이종구의 ‘국토–고추모종’은 기술과 자본이 농촌에 남긴 균열을 드러내고, 이명복의 ‘식사’는 화려한 만찬과 빈곤한 현실을 병치해 성장의 그늘을 보여준다. 두 번째 ‘새로운 질서의 심연’은 기술과 자본이 결합하며 재편된 사회 구조를 응시한다. 신제남의 ‘인간회귀’는 기술문명의 환상을, 박불똥의 ‘돈쟁’은 군사·정치·자본이 얽힌 현실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세 번째 ‘찬란한 공허’는 물질적 풍요 아래 축적된 공허와 소외의 감각을 다룬다. 신학철의 ‘부자’는 폐기물로 형성된 인물과 아이의 대비를 통해 기술문명이 남긴 공허와 인간의 가능성을 함께 묻는다. 전시는 2000년대 이후 작업으로 확장된다. 김세진의 뉴미디어 작업, 이원철의 사진, 박은태의 회화는 1980년대 제기된 기술 비판이 동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기술 발전의 이면에서 변화해 온 인간의 삶과 감각을 되짚는 전시”라며 “과거의 기술 풍경을 통해 오늘날 기술문명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매일 오후 2시 작품 해설이 진행된다. 2026/04/15
청사초롱 불 밝히자 되살아나는 왕실 이야기…'창덕궁 달빛기행' 날이 저물고 달이 떠오르자 청사초롱이 창덕궁의 밤을 밝혔다. 대금 가락이 통금의 적막을 깨며 밤 공기를 채우자, 효명세자의 특별한 초대를 받은 40여 명이 금호문을 지나 조선의 시간과 서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운영하는 '2026년 상반기 창덕궁 달빛기행'이 15일 특별 초청 행사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평소 야간에 공개되지 않는 창덕궁을 해설과 함께 둘러보는 대표 고궁 야간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번 달빛기행은 정조의 사색이 머문 후원과 효명세자의 효심이 깃든 연경당 등을 따라 조선 왕실의 밤을 되짚는 여정으로 꾸며졌다. 청사초롱을 든 참가자들이 금천교를 건너자 순라군이 모습을 드러냈고, 곳곳에서 "와, 멋있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월대에 오르자 용상과 일월오봉도가 환히 밝힌 불빛 아래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비어 있는 어좌마저 금방 왕이 자리에 들 것 같은 위엄을 품고 있었다. 왕실의 발자취를 따라 낙선재로 향하는 길목에는 복원된 희정당 신관이 보였다. 동궁을 지나 이내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가족이 머물렀던 낙선재에 이르자 분위기는 한층 차분해졌다. 다른 전각들과 달리 단청이 없는 낙선재는 화려함 대신 소박하고 단아안 멋을 품고 있었다. 대신 정교하게 짜인 창살 문양이 시선을 오래 붙들었다. 김지완 해설사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고 설명했다. 밤바람이 스치는 상량정에서는 대금 가락이 다시한번 고요한 공기를 채웠다. 달빛기행의 백미는 후원 부용지였다. 연못 위로 비친 규장각의 그림자가 일렁였고, 청사초롱 불빛이 수면에 번지자 참가자들의 발걸음도 자연스레 멈췄다. 물 위에 겹쳐진 전각의 윤곽은 마치 정사를 마친 정조가 거닐던 밤의 풍경을 불러낸 듯했다. 애련지를 지나 효명세자가 순원왕후의 생신연을 열었던 연경당에 이르자 본격적인 공연이 펼쳐졌다. '봄의 도드리'의 선율이 흐르고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의 생신을 위해 만든 '예도무'가 펼쳐졌다. 악사 5명의 연주가 어우러진 공연은 고궁 밤의 깊이를 더했다. 달빛 기행 참여자들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봄밤 궁궐의 추억을 새겼다. 스페인에서 온 아나페레르(35)는 "멋지고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이런 여행을 하고 싶었고, 모든 친구에게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6년 상반기 달빛기행은 오는 16일부터 내달 31일까지 이어진다. 2026/04/15
아기상어, AI 체험전 ‘비커밍 샤크’…6월 DDP 개막 전 세계를 사로잡은 ‘아기상어’가 이번엔 인공지능(AI) 전시로 돌아온다. 글로벌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기업 더핑크퐁컴퍼니는 아기상어 IP를 활용한 AI 인터랙티브 전시 ‘아기상어 비밀 초대장: 비커밍 샤크(Baby Shark The Experience: Unlock the Secret Ocean)’를 개최한다. 전시는 오는 6월 18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 2관에서 개막한다. 약 20여 개 체험형 콘텐츠가 마련된다. 관람객은 ‘뾰족이빨마을’, ‘심해’, ‘블루홀’, ‘별빛 산호숲’ 등으로 구성된 공간을 탐험하며 아기상어 캐릭터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한다. 단순 관람을 넘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참여형 경험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는 생성형 AI 기술을 적용한 체험형 콘텐츠다. 대규모 언어모델(LLM), 음성 인식·합성(STT·TTS), 컴퓨터 비전(CV) 기술이 결합돼 관람객의 음성·표정·행동에 반응하며 캐릭터와의 대화와 감정 교류를 구현한다.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 등 4개 언어를 지원해 글로벌 관람 환경도 구축했다. 관람객 참여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아기상어송’을 만드는 AI 음악 인터랙션도 마련됐다. 더핑크퐁컴퍼니는 “AI 기술을 통해 캐릭터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새로운 경험을 구현했다”며 “세대와 국경을 넘어 누구나 몰입할 수 있는 차세대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얼리버드 티켓은 15일부터 NOL티켓과 카카오톡 예약하기에서 판매된다. 정상가 2만3000원 대비 최대 50% 할인된 1만1500원에 한정 제공된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K-콘텐츠 AI 혁신 선도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더핑크퐁컴퍼니를 중심으로 피플리, 셀렉트스타, 포자랩스, 다베로아트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으로 진행된다. 전시는 오는 12월 19일까지 열린다. 2026/04/15
‘백남준 이후의 백남준' 국제 심포지엄…23일 아르코예술극장 백남준은 끝났는가. 아니면 지금도 계속 작동하고 있는가. 서거 20주기를 맞은 올해, 그의 예술을 동시대의 언어로 다시 읽는 국제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백남준아트센터는 오는 23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국제 학술 심포지엄 ‘백남준 이후의 백남준(Paik After Paik)’을 공동 개최한다. 이번 심포지엄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1932~2006)의 서거 20주기를 기념해 마련됐다. 국내외 연구자 9인이 참여해 지난 60여 년간 축적된 연구사를 점검하고, 오늘날 예술·기술·문화 담론 속에서 그의 유산을 재해석하는 자리다. 특히 백남준을 하나의 완결된 역사적 인물이 아닌, 동시대 기술 환경 속에서 계속 재구성되는 ‘열린 연구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심포지엄은 기조강연과 2개 세션, 패널토론으로 진행된다. 기조강연은 한나 히긴스 시카고 일리노이대 교수가 맡아, 1960년대 백남준의 실험을 인공지능 시대의 학습과 지식 생산 조건과 연결해 재해석한다. 제1부 ‘백남준 연구의 구조적 지형’에서는 큐레토리얼, 미디어 이론,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연구 방법론과 제도적 기반을 점검한다. 이숙경 맨체스터대 휘트워스 미술관장, 레프 마노비치 뉴욕시립대 대학원센터 특훈교수, 한나 페이셔스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백남준 아카이브 컬렉션 코디네이터, 손부경 미술사 연구자가 참여한다. 제2부에서는 데이터 사이언스, 기계와 노동, 포스트휴먼, 초국가적 문화 실천 등 21세기 담론과의 접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우정아 포항공대 교수, 더글라스 바렛 시라큐스대 조교수, 이현애 중앙대 학술연구교수, 준 오카다 에머슨칼리지 부교수가 참여한다. 이번 심포지엄은 연구자와 예술기관, 아카이브를 연결하는 국제 연구 네트워크 구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백남준아트센터가 지난해 12월 체결한 업무협약 이후 첫 공동 학술사업으로, 향후 아카이브 조사와 학술지 발간, 연구자 교류 등으로 협력이 이어질 예정이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심포지엄이 백남준 연구 확장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을 과거의 인물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구성하는 열린 연구 대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은 전석 무료로 공개되며 사전 예약을 권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백남준아트센터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6/04/15
이마쿼크로 번역된 금강산…안두진 ‘겸재한 뾰족’ 개인전 금강산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다. 붓질의 집합, 하나의 ‘비트’로 분해된다. 이화익갤러리는 15일부터 안두진 개인전 ‘겸재한 뾰족’을 연다. 이번 전시는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동시대 회화의 언어로 재구성한 작업을 선보인다. 안두진은 ‘이마쿼크(Imaquark)’라는 개념을 통해 회화를 해체해 온 작가다. 이미지(Image)와 물질 최소 단위(Quark)를 결합한 이 개념은 ‘이미지의 최소 단위’를 뜻한다. 화면은 작가의 표현이 아니라, 이마쿼크들의 충돌과 축적에 의해 생성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주인 없는 그리기’를 겸재 정선의 회화에 적용한다. 작가의 감정과 의도를 배제한 채 반복되는 붓질의 운동을 통해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안두진은 “완성된 진경산수를 번역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그리기’를 번역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물감을 옮기는 매개자”로 규정한다. 핵심은 ‘번역’이다. 작가는 겸재의 금강산을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금강산을 그려낸 ‘그리기’ 자체를 번역한다. 겸재의 붓질을 정보 단위, 즉 ‘비트(bit)’로 해석하고 이를 이마쿼크의 구조와 연결시킨다. 이 과정에서 풍경은 해체된다. 산과 바위, 폭포는 대상이 아니라 패턴으로 환원되고, 붓질은 미학적 완성도가 아닌 반복된 운동의 흔적으로 남는다. 결국 화면에 남는 것은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려졌는가’다. 그는 “겸재의 붓질을 비트로 보면 금강산이라는 대상은 사라지고 미시적 구조만 남는다”며 “이마쿼크와 겸재의 붓질이 하나의 패턴으로 중첩될 때 새로운 형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겸재의 붓질과 안두진의 이마쿼크는 ‘쌓기·뒤섞기·나누기’라는 단위에서 맞닿는다. 이화익갤러리는 "이마쿼크의 붓질 단위가 패턴처럼 적용되는 순간, 새로운 흐름과 형태가 만들어진다"며 "안두진의 '겸재한 뾰족'전시는 회화가 발생한 시간과 장르의 경계를 넘어, 회화 이미지의 생성과 인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30일까지. 2026/04/15
"40년간 장터 누빈 이유 있죠"…다큐 사진가 정영신 ‘장날’ 열린다 “장터에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40년간 전국 600여 개 장터를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정영신은 “처음에는 사람을 보러 갔지만, 어느 순간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장터에서 담아낸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관계를 맺고 시간을 나누던 삶의 자리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소비가 일상화되며 장터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문을 닫은 곳도 많고, 남아 있는 장터 역시 현대식으로 변화하거나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장터를 떠나지 않는다. 사진가이자 소설가 정영신의 사진전 ‘장날’이 오는 21일 서울 대안공간 스페이스22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후반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흑백 사진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약 80점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사라진 장날을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도 이어지는 관계와 삶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진 속 장터는 단순한 거래의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모여 관계를 맺고 시간을 나누던 생활의 현장으로 드러난다. 물건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고, 풍경보다 시간이 먼저 느껴지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특히 초상사진은 당시를 살아간 이들의 얼굴을 통해 한 시대의 삶과 공동체의 밀도를 보여준다. 빠른 소비와 화면 중심의 시대 속에서, 이 전시는 우리가 무엇을 잊었고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6/04/14
소반, 세계 무대로…서울 라이프스타일 밀라노 입성 한국의 ‘소반’이 밀라노로 간다. 낮은 상 하나가, 서울의 라이프스타일과 디자인 정체성을 들고 세계 무대에 오른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오는 20일부터 5월 10일까지 이탈리아 ADI 디자인뮤지엄에서 국제 전시 ‘SEOUL LIFE 2026 MILAN: Heritage Reimagined, Soban’을 개최한다. 세계 최대 디자인 행사인 밀라노 디자인위크 기간에 맞춰 열리는 프로젝트다. 이번 전시는 한국 전통 생활문화의 상징인 ‘소반’을 동시대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해 서울의 라이프스타일과 디자인 정체성을 세계에 소개하는 자리다. 전시의 중심에는 ‘소반’이 있다. 좌식 생활과 독상(獨床) 문화를 반영한 소반은 낮고 이동이 용이한 구조, 균형 잡힌 비례, 곡선 다리 형태 등 한국 가구 디자인의 고유한 미감을 담고 있다. 지역과 장인에 따라 달라지는 목재 짜임, 옻칠, 나전 장식 역시 한국 공예의 정교한 기술을 보여준다. 전시에는 국내외 디자이너 17인(팀)이 참여해 소반을 각자의 언어로 재해석했다. 전통 공예 기술에 3D 프린팅, 인공지능(AI) 기반 설계 등 문화기술을 접목해 소반을 ‘현재형 오브제’로 확장했다. 한국 디자이너 김진식, 손동훈, 앤디엔종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지오반노니, 안나 질리, 프랑스 건축가 오딜 데크 등 세계적 창작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전통의 형태를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재료와 구조, 감각을 통해 소반을 동시대 디자인 언어로 다시 썼다. 전시 공간은 한국 전통 가옥의 대청마루에서 착안했다. 중앙의 긴 플랫폼을 따라 관람객이 ‘마루를 걷듯’ 이동하며 작품을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한지로 만든 반투명 가벽과 독립적 배치는 ‘한 사람, 하나의 상’이라는 독상 문화를 공간적으로 구현한다. 또한 디자이너 인터뷰 영상과 ‘서울색(Seoul Color)’을 반영한 소반 제품을 함께 선보여, 전통 오브제가 도시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디자인재단과 ADI 디자인뮤지엄 간 협약 이후 첫 협력 프로젝트다. 전시 작품은 향후 DDP 소장품으로 편입돼 서울에서 후속 전시로 이어질 예정이다. 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는 “전통 소반을 통해 서울의 일상과 문화, 동시대 디자인이 만나는 방식을 보여주는 전시”라며 “서울의 디자인 정체성을 세계와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지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4/14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나들이…충무아트센터 갤러리 '청록미로' 서울시립미술관은 중구문화재단과 협력해 ‘SeMA Collection: 청록미로’를 오는 15일부터 5월 1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갤러리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작품 가운데 ‘청록’의 미감을 중심으로 회화, 사진, 공예, 조각, 뉴미디어 등 33점을 선보인다. 파랑과 초록이 교차하는 색채를 통해 도시의 일상 풍경과 감각을 새롭게 환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청록미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2013년부터 이어온 ‘자치구 협력전시’의 일환이다. 미술관 소장품을 자치구 공간으로 확장해 보다 많은 시민이 일상 속에서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젝트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자치구 협력전시는 시민의 자산인 소장품을 도시 곳곳으로 순환시키는 공공미술관의 책무를 실천하는 전시”라며 “푸르름이 시작되는 계절, 청록의 미감을 통해 도시의 빛과 온도를 새롭게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6/04/14
사진과 회화 사이 ‘이정진’…한지에 새긴 ‘Unseen’·‘Thing’ “저도 헷갈립니다.” 사진인지 회화인지 묻자 이정진은 웃으며 답했다. 한지 위에 인화된 그의 작업은 사진이면서도 회화처럼 보인다.목탄화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질감과 분위기를 띤다. 그는 “사진을 가지고 시를 쓴다고 생각해본다”며 “경계에 있는 상태 자체를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명확한 규정 대신 ‘사이’를 택한 그의 작업은 명상적이면서도 사유를 확장시킨다. 6년 만에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신작 ‘Unseen’ 시리즈가 한국 최초로 공개됐다. 아이슬란드의 격렬하고 원초적인 자연을 담아낸 이 작업은 더 가디언, FT 매거진 등 해외 언론에서 “내면의 울림을 담아낸 풍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슬란드 작업은 기존 사막 시리즈와 대비된다. 그는 이를 “공포스러울 정도로 거칠고 다이나믹한 자연”으로 기억했다. “사막에서는 고요함 속에서 내면으로 침잠했다면, 아이슬란드에서는 경외와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것 같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거친 파도, 역동적인 공기가 지배하는 장소였다. 그는 이 낯선 환경 속에서 자연이 자신을 통과하는 감각을 이미지로 끌어냈다. 이 극단적인 조건은 작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자연의 강한 에너지는 화면의 대비와 밀도를 끌어올렸고, 시선은 내부가 아닌 외부로 향했다. ‘Unseen’ 속 검은 화산암과 흰 눈, 파도와 바위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연과 마주하며 형성된 내면의 풍경을 드러낸다. 수평선은 흐릿하게 번지고, 바다와 육지는 구분되지만 화면은 명확한 재현을 거부한다.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인상이다. 그에게 풍경은 기록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을 매개하는 장치다. 인간의 흔적을 지운 자연은 외부 세계의 묘사가 아니라, 자신을 통과한 감각의 결과로 남는다. 이번 전시는 아이슬란드 풍경을 다룬 ‘Unseen’과 사물을 다룬 ‘Thing’ 시리즈로 구성됐다. 서로 다른 두 작업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 도자기, 숟가락, 나뭇잎이 둥실 떠 있는 듯한 ‘Thing’ 시리즈는 명상에서 출발했다. 대상은 기능과 이름, 의미를 벗겨낸 뒤 비로소 드러난다. 그는 이를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라 말했다. 그 과정 끝에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기운, 즉 존재의 흔적이다. “숟가락을 숟가락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상이 아니라, 나와 만나는 지점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초기 다큐멘터리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20대 후반 울릉도에서 ‘심마니’처럼 살아가던 노인을 1년간 기록했지만, 작업을 정리하며 예상과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그 할아버지 사진이 없는 거예요. 전부 제 셀프 포트레이트 같았어요.” 타인을 기록한다고 믿었던 사진은 결국 자신의 시선과 감정이 투영된 결과였다. 이후 그는 더 이상 사람을 찍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카메라를 드는 게 불편했어요. 영혼을 훔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정진의 작업은 물질성과도 깊이 연결된다. 한지에 감광 유제를 직접 발라 인화하는 방식은 이미지가 종이 표면이 아닌 내부로 스며들게 한다. 붓질의 흔적과 종이의 질감은 사진을 회화로 전환시키는 촉매다. 작업의 핵심은 촬영 이후에 있다. 찍기보다 인화가 중요하다. 아이슬란드 촬영은 한 달 만에 끝났지만, 프린트 제작에는 약 10개월이 걸렸다. 1989년부터 이어온 전통 한지 인화는 지금도 그의 작업을 관통한다. 그는 한지가 물속에서도 쉽게 풀어지지 않고, 감광 유제가 종이 깊숙이 스며들어 분리되지 않는 특성에 주목했다. 이러한 방식은 사진 매체의 물질적 가능성을 확장한 시도로, 그의 작업이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배경이 됐다. “감광 유제를 발랐을 때 분리가 안 되고 깊이 올라와서 내 작업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인화 방식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사유와 명상을 담는 작업 과정이기도 하다. 이미지는 표면이 아니라 종이 깊숙이 배어든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에 가깝다. 정신성이 깃든 노동집약적 과정 속에서 에디션은 3~5개로 제한된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 선 작업을 35년간 이어온 그는 “앞으로는 그 경계가 더 허물어지길 바란다”며 “사진적 요소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는 25일 오후 2시 국립현대미술관 송수정 학예사의 진행으로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 ◆작가 이정진은? 1984년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한 뒤 1991년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잡지 ‘샘이 깊은 물’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다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사막’(1990~1995) 시리즈를 기점으로 전통 한지에 감광 유제를 직접 도포해 인화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구축했다. 이후 프레데릭 브레너가 기획한 ‘This Place’ 프로젝트에 토마스 스트루트, 스테판 쇼어 등과 함께 유일한 아시아 작가로 참여하며 국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6년 스위스 빈터투어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으며, 해당 전시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으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기관에 소장돼 있다. 202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