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인간,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박현주 아트에세이 ④] 세상은 너무 빠르게 움직인다. 휴대폰의 진동처럼, 도시의 심장은 쉴 틈 없이 뛰고, 인간의 몸은 그 속도에 몸을 맡긴다. 그러다 어느새, 우리는 기계의 일부가 된다. 미디어아티스트 김아영의 영상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팬데믹 시기, 그녀는 실제 배달노동자들을 따라 달리며 ‘움직임’ 속에 숨은 인간의 존엄을 기록했다. 그 질주는 단순한 생계의 몸부림이 아니었다. 삶을 이어가는 가장 원초적 형태의 몸의 언어였다. ‘딜리버리 댄서’ 3부작은 AI와 게임엔진, 실사 촬영이 교차하는 복합적 구조 속에서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해졌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안에서 김아영이 진짜로 붙잡은 건 기술이 아니다. 데이터의 속도 속에서도 여전히 느끼는 존재, ‘생각하는 인간’을 다시 꺼내 보인다. 그녀의 인물들은 말 대신 움직인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몸이 생각한다. 그들의 몸짓은 언어보다 진실하고, 침묵은 차가운 고립이 아니라 서로를 감싸는 연대다. 스크린 속에서 여성들은 달리고, 흔들리고, 사라지지만 그 궤적은 곧 우리 모두의 초상처럼 남는다. 김아영은 기계의 시선으로 인간의 감정을 다시 번역한다. 냉철한 기술의 문법 속에서 온기를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그녀의 예술이다. AI의 계산 너머에 남은 불완전한 감정. 바로 그 불완전함이, 인간이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딜리버리 댄서’는 도시에 던진 질문을 확장하며 인간의 미래를 묻는 하나의 언어로 진화하고 있다. 도시는 오늘도 달리고 있다. AI가 명령을 내리고, 인간이 속도를 맞춘다. 그 속에서 김아영은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배달되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가 향하는 곳은 또 다른 인간의 심장일지도 모른다. 2025/11/15
김환기 '답교' 71년 만에 경매…시작가 15억원 김환기(1913~1974)의 1954년작 ‘답교’가 경매에 처음 등장한다. 시작가 15억 원, 추정가 15억~25억 원으로 책정됐다. 케이옥션은 오는 26일 서울 신사동 본사에서 열리는 11월 경매에 김환기 작품 5점을 포함한 총 108점을 출품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인 ‘답교’는 정월대보름 풍속인 ‘다리밟기’를 김환기 특유의 조형 언어로 해석한 1950년대 대표작품이다. 1975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회고전', 1999년 갤러리현대 '김환기 25주기 추모전', 2012년 현대화랑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 김환기', 2023년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 김환기' 등 김환기 화백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가장 중요한 전시에 선보인 바 있다. 케이옥션은 "청회색 화면 위에 크게 떠오른 달과 절제된 형태의 인물·나무가 배치돼 한국적 서정성을 강하게 드러낸다"며 "한국 근현대미술 관련 주요 전시에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는 희소성이 높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함께 출품된 김환기 ‘무제’는 하단의 새 형상과 상단의 선·점 구성 등에서 파리·뉴욕 시기의 조형 실험이 교차하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추정가는 5억9000만~12억 원이다. 한국적 풍경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온 이대원의 초대형 2폭화 ‘농원’(추정가 2억5000만~4억5000만 원), 한국 추상회화 1세대 이봉상의 ‘고양이와 정물’(1300만~4000만 원) 등 근현대 대표 작가들의 작품도 경매에 오른다. 해외 작가로는 데이비드 호크니, 야요이 쿠사마, 카즈오 시라가, 안소니 카로 등의 작품이 포함돼 국내외 컬렉터들의 관심이 예상된다. 출품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프리뷰는 15일부터 경매 당일인 26일까지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열린다. 전시장은 무휴로 운영되며 관람은 예약 없이 무료로 가능하다. 2025/11/14
'인왕제색도' 등 ‘이건희 기증품’ 330점 첫 해외 순회전…워싱턴서 개막 정선의 ‘인왕제색도’부터 김환기와 박수근까지, 한국미술의 정수가 워싱턴 D.C.에 상륙했다. 이건희 컬렉션을 포함한 순회전 ‘한국의 보물’은 워싱턴에서 출발해 시카고와 런던으로 이어지며, 한국문화의 뿌리가 세계 미술관 지도 위에 새로운 궤적을 그리기 시작한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과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성희)은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기증품의 첫 국외 순회전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를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72건 297점(국보 7건, 보물 15건 포함)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근·현대미술 24점을 아우르며 총 330여 점을 선보인다. 특히 정선의 국보 ‘인왕제색도’가 미국에서 처음 공개된다.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은 스미스소니언 산하 기관으로, 미국에서 가장 먼저 한국미술을 소개한 곳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출발지로 상징성이 크다. 박물관 측은 미국 연방정부의 일시 업무 중지로 개막을 한 차례 연기했으나, 지난 12일 업무 재개와 함께 정상 개막하게 됐다. ◆ “어느 수집가의 초대”, 세계로 확장 2021년 이건희 회장 유족이 기증한 2만여 점의 소장품은 지난 4년간 국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전국 순회 누적 116만 명,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컬렉션 전시는 146만 명이 관람했다. 두 기관 합산 262만 명이 기증품을 찾았다. 이번 해외 순회전은 이러한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기획됐으며, 워싱턴을 시작으로 시카고(2025.3~7), 런던 영국박물관(2025.9~2027.1)으로 이어진다. ◆한국미술 1700년을 가로지르는 10개 섹션 전시는 고려청자·조선백자 등 도자기, 삼국시대 금동불, 고려 사경, 조선 서화, 왕실미술, 근현대 회화까지 한국미술의 창의성과 기술, 미학을 총망라한다. 정선 ‘인왕제색도’, 김홍도 ‘추성부도’, '월인석보', 조선 책가도, 고려 '대방광불화엄경', 김환기 ‘산울림’, 박수근 ‘농악’ 등 대표작이 대거 포함됐다. 근현대 부문에서는 한국화·조각의 재해석, 20세기 격동기를 반영한 실험적 회화, 여성 작가 작업 등 한국 동시대 미술의 확장과 다양성을 조명한다. ◆워싱턴→시카고→런던…K-컬처의 뿌리를 세계로 이번 전시는 한국실 지원사업의 성과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2년 시카고박물관, 2023년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과 한국실 협약을 체결했고, 이후 순회전이 추진됐다. 각 전시관에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파견돼 안전한 전시 운영을 돕는다. 전시와 연계해 인왕제색도 부채·조명, 고려청자·달항아리 키링 등 인기 문화상품 ‘뮷즈’도 함께 소개된다. 내년 1월에는 한국미술과 수집을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도 열릴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1일 폐막 후, 워싱턴 D.C.를 떠나 미국 중서부 지역의 중심지, 시카고로 이동하여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시카고박물관(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다시 열린다. 이후 전시는 대서양을 건너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으로 이동해 9월 10일부터 2027년 1월 10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워싱턴 D.C에서 시작된 이번 전시가 시카고와 런던으로 이어지며, K-컬쳐의 원류로서 한국문화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전달되기를 기대한다”며, “이번 전시는 문화유산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정신, 시대를 초월한 미적 가치가 세계인과 소통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국의 문화와 미술이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역사적 다양성과 혼성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뜻깊은 전시”라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두 국가기관이 힘을 합쳐 워싱턴 D.C.와 시카고에 이어 런던까지 한국 문화예술을 해외 곳곳으로 펼쳐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2025/11/14
한일, 한지 공예로 만나다…제11회 고현한지공예전 '생활 속의 한지' 제11회 고현한지공예전 '생활 속 한지'가 오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경인미술관 제3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지난 12일 개막한 '생활 속 한지'전에는 국내 작가 정계화, 박수진, 남현숙 등과 일본의 노나카미나코, 미즈무라스미코, 다니구치 유미코 등이 참여한다. 이번 전시는 전통공예의 정신과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전통 소재인 한지를 조형과 실용 등 예술과 생활 속에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일상 용품에 사용된 한지를 보며 질감과 구조 등을 느낄 수 있다. 공예전 관계자는 "우리가 빚어낸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공예품 만이 아니다. 손끝에서 피어난 한 조각 한 조각에 우리의 열정과 전통을 향한 애정이 녹아있다"며 "한국과 일본의 공예문화가 만나 서로의 감성과 가치를 함께하고 두 나라가 가까워지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2025/11/14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뉴욕 이민·간척사 기획전 개막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은 오는 21일부터 기획전 "뉴욕 물 위에 쌓은 꿈의 도시"를 공개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26년 5월 31일까지 이어지며 '간척'과 '이민'이라는 두 축을 통해 뉴욕의 성장 동력을 재조명한다. 전시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미국 이민의 관문이었던 엘리스섬(Ellis Island)의 역사로 시작한다. 당시 입국 심사 절차, 아일랜드 출신 17세 소녀 애니 무어의 기록, 항만 및 간척 현장에서 노동하던 이민자들의 삶을 담은 사진과 자료가 소개된다. 이어 뉴욕 항만 확장과 함께 본격화된 마천루 건설 과정과 세계 자본·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한 도시의 변화상을 지도·사진·기록물로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은 인력·기술·희망이 모여 도시의 지평을 넓혀온 과정이 곧 간척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김항술 관장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기회를 향해 나아간 이민자들의 도전은 오늘날 우리가 맞이할 미래 사회의 변화와도 연결된다"며 "이번 전시가 새로운 비전을 함께 그려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5/11/14
22년간 사라졌던 클림트 '여인의 초상', 서울 온다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미술관에서 사라진 클림트의 초상이 22년 뒤, 담쟁이로 덮인 외벽 틈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검정 비닐봉투에 숨겨져 있었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여인의 정체와 클림트의 의도 역시 미스터리로 남았다. 이 ‘여인의 초상’이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떠난다. 서울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은 12월 19일부터 내년 3월 22일까지 특별전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이탈리아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컬렉션’을 연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리치오디 현대미술관(Galleria d’Arte Moderna Ricci Oddi)과 공동 기획한 자리로,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여인의 초상’을 비롯해 소장품 70여 점이 서울에 온다. 리치오디 현대미술관은 법학자이자 예술 후원가였던 주세페 리치오디(1868~1937)의 개인 수집품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그는 40여 년간 이탈리아 각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압축한 방대한 컬렉션을 구축했다. 이번 서울 전시는 그의 유산을 대표하는 주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특히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은 도난·은닉·재발견이라는 극적인 서사를 품고 있다. 1997년 도난된 뒤 사라졌던 작품은 2019년 정원사가 미술관 외벽의 숨겨진 공간에서 우연히 발견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X선 조사 결과 그림은 이중 초상이었으며, 클림트가 왜 같은 여인의 얼굴을 두 번 덧그렸는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명작의 분실과 귀환,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미스터리를 지닌 ‘여인의 초상’을 비롯해, 전시에는 안토니오 만치니, 도메니코 모렐리, 페데리코 잔도메네기 등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이탈리아 거장들의 인물화·풍경화·장르화가 대거 선보인다. 전시 기간에는 정우철·이지안·한지원 도슨트가 참여하는 해설 프로그램과 어린이를 위한 키즈 아틀리에 등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2025/11/14
빛에 민감한 눈으로 그린 낮은 톤의 '드로잉 숲'…신경철 개인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20여 점의 드로잉이 거대한 숲처럼 펼쳐진다. 밑색 위에 목탄을 얹고, 손의 압력과 지우개의 흔적을 더해 완성된 화면들은 ‘그리기’보다 ‘남기기’에 가까운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종이 위에 쌓인 시간과 감각의 층위는 하나의 풍경처럼 흐른다.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은 13일부터 12월 30일까지 신경철 개인전 ‘Light Between Air’을 연다. 2023년 대구 개인전 ‘In the Distance’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세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는 ‘빛과 공기 사이에서 회화가 스스로 쓰여지는 과정’을 탐구한 신작 30여 점을 공개한다. 13일 열린 간담회에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한 신경철(47)은 “10여 년 전 시력이 갑자기 저하되며 수술을 받았다”며, 그때부터 화면의 톤이 자연스럽게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인보다 빛에 민감한 특유의 시각 경험 때문에, 밝음과 어둠이 미세하게 떨리는 풍경을 먼저 감각하게 되었고, 이번 드로잉과 회화 역시 그러한 ‘보이는 방식’에서 출발한다. 신경철은 “구상처럼 보이지만 추상이고, 추상 같지만 풍경의 잔상에서 나온 그림”이라며 자신의 회화를 “빛이 만든 구조”라고 정의했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의 확장된 개념을 탐구해온 그의 작업은 직관과 절제, 우연과 필연이 공존하는 회화적 행위를 통해 감각·기억·풍경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작가의 회화는 유년기의 감각적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형광펜 글씨를 따라 그리던 반복 행위는 이후 외곽선을 추적하고, 이미지를 해체·재조립하는 화면 구성 방식으로 확장됐다. 그의 풍경들은 익숙한 나무와 산맥의 형태를 닮았지만, 확대·압축·왜곡을 거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린다. 작업은 일반적 제작 순서를 뒤집는다. 밑그림 위에 채색하는 방식과 달리 그는 먼저 금속성 단색으로 화면을 밑칠하고, 즉흥적 붓질로 형상을 만든 뒤, 마지막에 연필선으로 경계를 따라가며 화면의 질서를 만든다. 반사성 색면은 깊이를 지우고 비현실적 공간감을 부여하며, 그 위의 연필선은 시간의 흔적처럼 새겨진다. 입구를 채운 대규모 드로잉 시리즈 ‘T-Here-D’는 밑색 위에 목탄을 얹고, 손으로 문지르거나 파스텔·지우개로 흔적을 더해 완성한 작업이다. 화면 곳곳에 남은 물감 잔여와 서로 다른 농도의 질감은 평면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으며, ‘그림’이라기보다 ‘감각의 기록’으로 작동한다. 지하 1층에서는 대형 회화와 신작 조형물이 이어진다. 금속 안료의 반사, 반투명한 표면, 명암의 미묘한 떨림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며 빛의 현상을 공간적으로 드러낸다. 팔레트에 남은 물감의 조각을 본떠 알루미늄으로 주조한 오브제는 회화의 부산물을 ‘빛의 조형물’로 전환한 작품이다. 계원예술대학교 유진상 교수는 “신경철의 작업은 ‘그리기’이자 ‘쓰기’이며, 언어 이전의 감각을 불러내는 세계의 글쓰기”라고 평한다. 그는 신경철의 드로잉을 “짧은 선들의 연속이 만들어낸 텍스처이자, 부재의 흔적에서 비롯된 근원적 드로잉”으로 설명했다. 2025/11/13
이헌정, 사유의 도예·항아리…우손갤러리 서울·대구서 개인전 흙을 주무르고, 물감을 올리고, 손끝으로 미세한 리듬을 이어가며 몸속에 쌓인 기억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과정. 도예작가 이헌정은 이를 “결과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난 정신적 여행”이라 설명한다. 13일부터 우손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 동시에 개막한 이헌정 개인전은 도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다. 전통을 넘어선 실험을 거친 그의 작업은 도예 같으면서도 도예가 아닌, 파괴 속에서 자유를 획득하는 미묘한 긴장을 품고 있다. 서울 전시 ‘흙의 기억에 색을 입히기’는 회화로 확장된 도예적 사유를, 대구 전시 ‘항아리’는 도예의 원형으로 돌아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울 전시는 그의 몸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흙을 쌓고, 물레를 돌리고, 유약을 입히는 반복의 리듬은 캔버스 위 점과 선으로 번역된다. 흙이 시간을 거쳐 형상으로 응결되듯, 회화 역시 즉각적이면서도 집중을 요구하는 수행적 행위다. [[[[:newsis_inyoung_left_start:]]]] “가슴으로부터 손끝으로 이루어지는, 결과에 대한 기대감으로부터 자유로운 행위들은 내 몸 속에 쌓인 기억을 밖으로 풀어내며 정신적 여행을 반복하게 한다.”(이헌정 작가)[[[[:newsis_inyoung_left_end:]]]] 1층에 펼쳐진 색채 페인팅은 도예의 ‘기다림’과는 다른 속도의 자유를 보여준다. 색은 화면 위에서 곧장 반응하며, 손끝은 흙을 만지듯 유연하게 리듬을 잇는다. 반면 2층은 흑백의 장면으로 구성돼 점·선·면의 긴장과 작가의 내면적 구조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도자 조각 ‘Boy(소년)’와 ‘Island(섬)’은 흙이 불을 통과하며 얻는 생명력을 응축한 작업이다. 의도와 우연, 노동과 관념의 경계에서 탄생한 미세한 비정형의 굴곡은 완벽함 대신 생명성을 품는다. 작가가 말하는 ‘소성된 생명’은 기술을 넘어선 정신적 통로다. 우손갤러리 대구의 ‘항아리’ 전은 그의 도예적 태도를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회화, 만다라 형식의 작업, 비디오 영상 등을 병치해 ‘노동하는 예술가’로서의 이헌정을 드러낸다. 흙을 주무르고 불 앞에서 땀 흘리며 예술을 만들어내는, 머리보다 몸으로 사유하는 작가의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우손갤러리 이은주 실장은 “이번 전시는 이헌정의 도예적 태도를 바탕으로 이어온 탐구의 궤적을 하나로 연결한다”며 “서울과 대구 전시는 재료나 형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가 몸으로 부딪히며 쌓아온 감각이 사유를 거쳐 다시 다양한 시각 언어로 전이되는 과정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026년 1월 17일까지 열린다. ◆이헌정 작가는? 도예를 기반으로 조각, 가구, 설치, 건축, 회화까지 넘나드는 작가다.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조각을 공부했으며, 귀국 후 건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달항아리와 백색 도자를 비롯해 도자가구, 대형 설치, 회화 등으로 작업을 확장해왔고, 과정·재료·흐름을 중시하는 태도로 정교함과 즉흥성을 조율한다. 청계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2005), 사평역 도자 벽화(2009) 등 공공미술 작업을 진행했으며, 2018년 ‘제1회 올해의 공예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LACMA,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기관과 여러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2025/11/13
고성 당항포에 20만명 몰렸다…공룡엑스포, 매출 52억 '흥행 성공' 경남 고성군은 지난 10월 1일부터 11월 9일까지 40일간 당항포관광지 일원에서 열린 ‘2025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에 유료 관람객 20만여명이 방문하고 총 52억5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행사 대비 관람객 수와 매출이 각각 28% 증가한 수치다. 이상근 경남 고성군수는 13일 군청 중회의실에서 언론브리핑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고성군은 올해 엑스포에 야간 콘텐츠와 체험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전시·공연 등 기존 콘텐츠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행사 기간 중 ‘플라워사우루스’ 등 조형물과 실감형 콘텐츠, 가족 참여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다. 군은 특히 야간 공룡 퍼레이드와 불꽃 연출 프로그램이 관람객 체류 시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지역경제 유발 효과도 일부 확인됐다. 행사 운영 인력 채용 시 지역 인력을 활용했고, 지역 음식점과 연계한 할인 프로모션을 시행했다. 고성사랑상품권 8000만원어치도 배포해 소비 확산을 유도했다. 행사장 내 지역 식당 3곳은 4억1000만원, 푸드트럭 5곳은 2억원, 공방 체험 4곳은 1억3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게 고성군의 설명이다. 고성군은 향후 관람객 만족도 조사 결과를 분석해 콘텐츠 보완 및 시설 개선에 활용할 계획이다. 엑스포가 열린 당항포관광지는 12월 1일까지 휴장 후 재개장할 예정이다. 2025/11/13
샤갈 '꽃다발' 94억 시작…서울옥션, 11월 경매 290억치 출품 서울옥션은 오는 24일과 25일 서울 강남센터에서 총 290억 원 규모의 미술품을 오프라인 경매에 출품한다고 13일 밝혔다. 경매는 고가 주요작 중심의 ‘EVENING SALE: Eternal Emotion’(이브닝 세일), 현대 컬렉터층을 겨냥한 ‘CONTEMPORARY DAY SALE’(데이 세일)로 나뉘어 진행된다. 24일 열리는 이브닝 세일은 글로벌 경매사의 전례를 반영한 ‘하이엔드 야간 경매’ 방식으로 구성됐다. 출품작은 총 26점이며, 낮은 추정가 총액만 약 270억 원으로 2008년 이후 국내 단일 경매 기준 최대 규모다. 이번 경매의 핵심은 마르크 샤갈이다. 'Bouquet de Fleurs'(꽃다발)이 시작가 94억 원에 오른다. 이어 샤갈의 말년 대작인 'Paysage de Paris'(파리의 풍경), 추정가 60억~90억원에 함께 등장한다. 또 샤갈의 1980년대 메소나이트 회화 2점도 출품돼 다양한 시기 작품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주요작도 눈길을 끈다. 김환기의 1969년 뉴욕 시기 작품 '15-VI-69 #71 I'(추정가 7억~12억원), 이우환 1990년작 'With Winds' 100호 대작이 추정가 8억5000만~12억원에 출품됐다.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이불 작가의 초기 조각 시리즈인 2006년 작 'Cyborg W10'가 6억~9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해외 작가 중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세로 2m가 넘는 대형 풍경화가 선보인다. 추정가는 4억 8000만원~8억 원이 매겨졌다. 25일 열리는 데이 세일은 젊은 컬렉터층을 겨냥해 구성됐다. 총 64점, 낮은 추정가 총액 약 21억 원 규모로 회화·에디션·럭셔리 카테고리까지 다양하다. 니콜라스 파티의 강렬한 색조의 수채화(추정가 7000만원~1억 5000만원), 카싱 렁 ‘라부부’ 캐릭터 원화(4000만~7000만원), 스튜디오 렌카의 이민자 정체성을 다룬 작품(1400만~2500만원)이 눈길을 끈다. 국내 작가 이강소의 작품을 비롯해 루이비통×야요이 쿠사마 협업 아트백 등도 출품된다. 서울옥션 이브닝·데이 세일 프리뷰 전시는 13일부터 경매 당일까지 진행되며, 오전 10시~오후 7시 무료 관람 가능하다. 202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