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동시성'..서승원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 50년간 '동시성'을 천착하고 있는 그를 미술평론가 서성록은 "만리우보(萬里牛步) 작가"라고 했다. '소처럼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간다'는 뜻의 '우보만리'와 비슷한 말이지만 '만리를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온' 서승원 화백(77)이다. 1960년대부터 기하학적 패턴을 기초로 한 작품을 반세기 이상 탐구하고 있다. '새 것 콤플렉스’로 대부분 화가들이 10년 주기로 작업의 변화를 꾀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로 세파에 편승하지 않고 화업을 이어오고 있다. 50년~60년간 미니멀리즘에 집중했던 팔순의 화가들이 '단색화'로 재조명받고 위상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LTE급으로 변하는 시대에서 한가지 주제의 작업은 양날의 검이다. 단색화 거장으로 등극한 박서보 화백의 명언처럼 "예술이 시대의 산물이라면 변화해야 하지만, 변하면 또 추락"하는게 작품의 속성이다. 컬렉터나 감상자 입장에서는 지루함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반면 장점도 있다. '그 작품 하면 그 작가'가 바로 떠올라 이미지 싸움인 미술시장에서 'OO 작가'라는 브랜드화 된다. 그런측면에서 서승원 화백의 추상화 '동시성'은 '서승원'이다. 50여년간 '동시성'은 호밀빵에서 카스테라 처럼 변해왔다. 기하학적 추상에 오방색을 접목해온 작품은 세월의 더께를 받아들인 듯 원색보다 파스텔화같은 부드러움으로 귀결되고 있다. 마치 안개가 낀듯, 또는 아지랑이가 피어 뿌옇고 아련하게 보이는 것 처럼 그림은 색과 형태가 분리되지 않고 완전히 밀착되어 있다. 서 화백이 추구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동시성’은 “형태와 색채와 공간 세 요소가 등가(等價)로서 하나의 평면 위에 동시에 어울린다”는 의미로, 예술가의 전위적 사명감으로 회화의 본질과 한국적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작가의 고민이 녹아 있다. 긴 시간동안 '동시성'은 변한듯 안변한듯 변해왔다. 색감과 형태가 점차 동시에 부드러워지며 화면을 채워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2000년대부터 작품은 깊이감이 한층 더 깊어졌다. 화면을 채우고 있던 명료한 마름모꼴도 흐트러지거나 종적을 감추고 부드러운 색채는 더욱 중첩되어 그 경계를 허문다. 서 화백도 “모서리를 없애고, 색채도 저녁노을 같은 부드러운 빛의 표현”으로 대체했다고 했다. 뭉개진, 흐릿한 그림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다 보인다. 멀리서 보면 안보이던 선들이 겹겹이 보이기도 한다. 실선과 마름모꼴이 얽히고, 색면들이 서로 포개져 있는게 '보이는데, 안보인'다. 그래서 평면 회화인데 입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간과 형태가 뒤섞여 희미해져 온화해진 절제된 화면은 과묵한 모습의 화백과 닮음꼴이다. 평생 어떻게 '동시성'에 매달렸을까. 서성록 평론가는 "인생을 살면서 작가인들 시련의 계절이 왜 없었겠는가"라며 "모든 정념을 떨쳐버리고 나 자신조차 내려놓을 때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고 선인들은 말해왔는데 이 말을 증명이나 하듯이 서화백은 오롯이 순수한 현존을 맛보고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무엇을 쟁취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집착과 욕망과 작별하는 순간 더 심오하고 자유로운 세계가 열린다. 서 평론가는 "화면 바탕을 조성하는 데에 거듭된 정지작업(밑칠)을 하는 것에서는 ‘극기(克己)’의 자세랄까, 예스러운 회사후소(繪事後素)의 회화 정신마저 엿볼 수 있게 한다"고 평했다. 오랜 화업의 경륜이 말해주듯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종일관한 자세로 추상회화를 탐색해 '한국 추상화'의 물꼬를 텄다. 1960년대 국내 화단의 주류였던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중심의 사실주의와 비정형 추상회화운동인 앵포르멜(Informel) 사이에서 독자적 경향을 모색했던 추상화가로 유명하다. 1950년대 말부터 불어온 앵포르멜(Informel) 선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심 차게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시도했다. 1963년 기하추상회화 그룹 ‘오리진(Origin)’ 을 창설했고, 1967년 젊은 작가들이 파격적 시도를 대거 선보였던 '청년연립작가전'에 ‘오리진’의 멤버로 참여하여 사각형과 삼각형, 색 띠 패턴과 빨강, 노랑, 파랑 등 오방색(五方色)을 사용한 기하 추상 회화를 선보였다. 또 1969년 작업과 이론 모두에서 전위를 추구했던 ‘한국 아방가르드협회(A.G)’ 의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화단에 새로운 미의식을 정립하고자 했다. 예술가로서 끈덕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70년대에 캔버스의 평면성을 고집하면서 색면과 선, 그리고 기하학적 요소로 구성된 정연한 공간을 밀고 나갔다. 이후 1990년대의 확산적 공간은 자신의 그림에 대한 확고한 철학없이는 나올수 없는 작업이라는 평가다. 한국 단색화의 신호탄이 된 동경 화랑 전시(한국 5인의 작가, 5인의 백색 전) 에 참여했고, '오리진', 'A.G', '에꼴드 서울', '서울현대미술제' 등 한국 현대미술의 물줄기를 형성한 전람회에 빠짐없이 참여한 일은 우리나라 미술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을 짐작게 해준다. ‘오방색’을 접목시키고 ‘중용’의 정신을 불어넣고, 문창살과 은은한 한지 등 우리의 ‘생활감정’에서 비롯된 작품을 예술로 승화시킨 일 등은 그가 현대미술을 자기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보여준다. 서 화백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수 있는 전시가 8일부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를 타이틀로 50여년 화업의 중추인 '동시성'시리즈를 중심으로 총 23점을 선보인다. 최신작은 물론, 그간 전시장 나들이를 하지 않았던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 회화 작품부터 작가의 1970~80년대 대표작들이 대거 소개된다. 1960~1980년대 절제와 엄격한 질서를 보이던 작품이 주관적 해석과 자기화를 거쳐 사색과 명상, 자유의 화면으로 변화한 과정을 보여준다. 고희가 넘은 현재까지도 회화에 대한 고집스런 탐구를 멈추지 않고 있는 서승원 화백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전진해왔다. 50년전 의아했던 '동시성'은 21세기 융복합시대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은 분명한 색상을 띠지도, 무언가를 발언하지도 않으며, 어떤 틀을 갖고 있지도 않다. 손에 잡힐 듯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 마치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화면에 그렇게 떠 있다. 온화한 화면으로 '관조적 고요'를 전하는 그림은 평생 '동시성'에 매달려온 작가의 '화광동진(和光同塵])'한 예술혼을 보여준다. 4월29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3/07
흔한 사물의 예술 반란...'악동 미술가' 빔 델보예 산업디자이너 측면에서 보면 대체 왜 이렇게까지 물건을 비틀고, 굳이 힘들게 문양까지 새겨야 했는지가 더 고민일 것 같은 작품이 전시장에 등장했다. 벨기에 신개념미술 (Neo-Conceptualism) 대표작가 빔 델보예(53)의 한국 첫 개인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7일 개막했다. 2017년 스위스 바젤 팅켈리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 이후 개최되는 올해 첫 전시다. 빔 델보예는 데미언 허스트와 꼽히는 세계미술시장 악동 미술가다. 돼지 몸에 문신한 후 키워 자연사하면 캔버스에 박제해 전시판매하는 기괴한 아티스트로, 그의 기행은 남성용 '소변기'를 출품한 마르셀 뒤샹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다. 인간의 소화기관을 재현한 '똥 만드는 기계'를 제작 충격을 선사했다. 기계에서 생산된 똥을 진공 포장해 사인하고 판매(천달러)했다. '똥도 예술이 될수 있다' 것과 '모든 것은 똥이 된다'는 그의 철학은 희귀품에 허세작렬하는 미술시장에 똥침을 날리며 아이러니하게도 동시대 핫한 예술가로 등극했다. '똥 작품' 이후 그는 첨단기술과 합세해 별것 아닌 것을 극강의 예술품으로 만들어낸다. 지난 2012년 파리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안에 높이 11m ‘쉬포(Suppo)’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신비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뽀족한 탑 같은 조각은 알고보니 '나선형의 좌약'이었다. 섬세한 고딕양식으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위대한 예술품으로 변신한 일반 사물의 아름다운 반란이었다. 충격과 파격사이에서 미술시장을 희롱하는 빔 델보예는 '비틈의 미학'이 특기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비틀고 해체해 재구성한 작품들은 기발하고 변덕스럽고, 어딘가 초현실적이어서 더욱 가치를 올리고 있다. 고딕양식과 페르시안 문양으로 무장한 그는 벨기에 베르빅 출신으로 현재 벨기에 겐트와 영국 브라이튼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자동차, 여행 가방, 삽, 살라미와 햄으로 만든 대리석 문양의 바닥 사진 등 총 30여 점이 선보였다. 뫼비우스 띠 같은 타이어(Tyre) 연작의 경우 바퀴에 불과했던 타이어가 마치 숭배물처럼 재탄생 된 듯하다. 자동차 또는 트럭 타이어에 꽃, 소용돌의 무늬(scroll), 잎사귀 등 아르누보의 섬세한 문양들이 새겨져 오뜨꾸뛰르(haute couture)같다. 'Tapisdermy'도 마찬가지. '박제’라는 의미의 'taxidermy' 와 ‘직물’이라는 뜻을 지닌 'tapestry'에서 나온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이자 연작이다. 돼지 모양의 작품도 페르시안 카페트를 입혀 동물의 가치를 올리는 동시에 현 시대 미술 시장의 허상적인 면을 공략한다. 실제 토끼를 박제하여 슬리퍼에 응용을 한 '토끼 슬리퍼'도 작품과 상품의 경계를 오간다. 하찮은 것들을 섬세하고 자극적으로 변신시키며 그가 노리는 건 ‘불변’이라는 개념이다.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대비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모든 것은 변하고 무용하다는(아무것도 아니다는) 의미를 새긴다. 기존 사물이 오로지 기능 위주라면 빔 델보예의 손에 들어온 사물들은 화려한 장식으로 럭셔리해진다. 귀족의 문양들과 기호들을 더해 사물의 사회적인 위치를 바꾸고 높인다. 삽질하는 삽인데 더이상 삽이 아닌 것 처럼 보이게하는 능력이다. '팝아트 황제' 앤디 워홀이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사물과 이미지를 고급 문화로 정당화했다면, 빔 델보예는 서민적인 사물에 고급 문화의 장식물을 덧붙여 그것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승격시킨다. 이 때문에 빔 델보예의 작품들은 대량생산되는 물신화의 메커니즘을 휘젓는다는 평이다. 고정관념과 지배적 문화 코드에 대항하며 예술세계를 발칵 뒤집어 유명세를 탄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Gothic Works', 고딕 양식에 집중하고 있다. 금속 구조물을 레이저로 잘라 만든 작품은 건축 구조적 차원을 넘어서며 SF영화속같은 신비함까지 뿜어낸다. 이번 전시에 나온 '고딕 작품' 은 '클로아카(Cloaca· 음식을 똥으로 바꾸는 기계)'와 함께 빔 델보예의 대표 연작이다.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럭, 콘크리트 믹서(레미콘)등에 성당, 타워, 게이트(gate)같은 건축모양을 레이저-컷 기술로 잘라 고딕 스타일의 섬세한 조각으로 재탄생시켰다. 장식의 과잉과 기계적인 형태가 독특한 작품은 신성시하게 여기는 전통의 가치와 예술을 비판하며 모든 것은 대체될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사물이 제 자리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는 빔 델보예의 예술적 도발과 수공예적 아름다움이 빛난다. 기존의 쓰임과 용도를 탈출한 작품들은 미학적 충격을 선사한다. 재치있고 풍자적이면서 정교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속삭이는 건 결국 '일상이 예술'이라고. 그러니 고정관념과 경계를 해체하고 관습에 맞서라고 자극한다. 전시는 4월8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2/27
법고창신한 韓國畵...박대성,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 한국 미술계에서 수묵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소산 박대성(73)화백의 개인전이 인사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린다. 가나문화재단이 펼치는 이 전시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깊은 뜻을 그림으로 알리는 전시이기도 하다. 박대성 화백은 빈사상태인 한국전통화의 맥박을 뛰게하는 심장같은 존재다. 국내미술시장 수묵화의 대가로 고희가 넘어서도 왕성한 활력을 자랑한다. 1972년 대만 공작화랑에서 개인전을 연이후 1984년 가나화랑 개관화 함게 전속화가가 된 박화백은 독창적인 화풍에 힙입어 리얼리티 현대미술 대세속에서도 수묵화의 위엄을 떨쳐왔다. 전통화의 위기속에 박 화백의 생존전략은 새 것을 받아들인데 있다. 옛것에 머물지 않고 현대화단의 세계적 조류인 모더니즘에 올라탔다. 1994년 현대미술을 탐구하기 위해 뉴욕 소호에서 1년간 거주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2000년대부터 박대성의 작품에 나타나는 추상성에 영향을 미쳤다. 뉴욕에서 현대미술을 접하며 오히려 우리 전통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는 이후 ‘서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1999년 경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작가는 이러한 ‘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김생, 김정희, 모택동, 갑골종정 등의 작품을 통해 ‘서’의 연마에 매진, 2000년 이후 작업의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서’에 대한 관심은 ‘서’자체의 조형적 탐구로 이어지면서 작품 안에서 이전과 눈에 띄게 다른 선의 변화로 나타난다. 여전히 자연풍경을 담아냈지만 선 자체가 힘찬 기(氣)를 내뿜고 필획의 힘이 돋보이면서 화면은 기운생동(氣韻生動)과 긴장감을 전한다. 이러한 조형성은 그가 찾은 한국화의 해답이기도 하다. 박 화백이 서의 필법을 회화에 사용함으로써 극도로 날카롭고 긴장감있는 느낌을 주고자 한 것은 ‘서’로 단련된 필획이 그림의 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중국의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새로운 수묵화를 그리겠다"고 결심한 박화백은 대만 고궁박물원의 송•원•명 시대의 그림이 지닌 장대한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서(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 화백이 수묵화의 대가가 된 것은 서파와 학파에 휩쓸리지 않은 덕도 있다.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여의고 자신의 왼쪽 팔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림이 좋았던 작가는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연습을 거듭하는 고행의 길을 걸었다. 독학으로 그림을 익히던 그는 집안어른의 소개로 18세 때부터 서정묵의 문하에서 5년간 그림을 배웠고 이후 이영찬 화백과 서울대 동양화과 박노수 교수의 조언을 받으며 공부했다.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열린 국제 미술대전에서 1965년 첫 입선을 시작으로 6년 연속 입상하며 한국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974년 1년간의 대만 유학기간 중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그림을 매일 두점씩 볼 수 있는 참관증을 받았고 이때의 공부는 그의 작업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천부적인 감각과 소재 선택의 탁월함으로 한국화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며 작업을 이어간 그는 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고 동양화단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이제 소산 박대성 화백은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수묵을 현대화 한다는 점에서, 겸재에서 소정과 청전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의 계보를 잇는 한국화의 거장으로 회자된다. 박화백이 즐기는 모티브는 소나무다. 솔 사랑은 작업장에서도 돋보인다. 소나무 천지인 경주 남산자락에서도 포석정과 가까운 삼릉계(三陵溪) 솔밭이 특히 아름다워 유명 사진작가의 작업현장이 되곤 하는데, 박 화백의 화실은 바로 그 국립공원 경계에 있다. 덕분에 삼릉의 상징인 그 잘 생긴 솔들이 화실 마당 안으로도 우람하게 밀고 들어와 자란다. 그 특권에 보답하듯, 집 마당의 솔을 열심히 그려놓고선 '솔거의 노래'(종이에 수묵, 500 x 436cm, 2015) 제목으로 현재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선보인 '남산자락의 소산수묵'(2017.9.12.-2018.3.25) 개인전 대표작으로 걸렸다. "미술관의 천정 높이까지 닿은 두 그루 소나무는 멀찌감치 바라보면 그 크기가 압도적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세세하고 정밀하게 수많은 솔잎을 그려낸 작가의 내공에 기가 죽는다"는 반응이다. 이번 전시는 자연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사물의 본질을 찾는데 주력한 작업들을 볼 수 있다. 폭이 5m에 이르는 대작들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긴장감과 힘찬 기운을 쏟아내는데 이는 크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운생동이 활약하는 현대적 수묵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나문화재단 김형국 이사장은 "소산의 산수화는 언뜻 동양화기법 가운데 특히 조감법(鳥瞰法)의 과감한 도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내 보기론 기암괴석의 봉우리가 하늘에 닿을수록 더 거대해지고 짙게 검은 빛깔을 뿜어냄은 큐비즘의 극치"라고 극찬했다. "극사실주의의 한 경지이면서도 특유의 서예를 보태서 동양의 서화일치의 한 경지를 환기 시켜주고 있는 이번 전시가 한국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를 타이틀로 한 이번 전시에는 서예작품과 함께 경주 불국사 시리즈 등 신작 100여점을 선보인다. 한국화의 갈길을 찾은 박 화백은 "이번 전시는 내 일생을 다 보여주는 전시"라고 했다. 3월4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2/07
에폭시 레진이 품은 '21세기 단색화'...김현식 개인전 이 작품은 직접 봐야 진가가 빛난다. 화면 이미지보다 실물이 더 신기하고 아름답다. 수많은 선긋기로 완성한 색색의 작품에 대해 해외평론가들은 "동양적 신비로움"을 언급했고, '미니멀 아트'로 다가섰다가 독특한 기법에 호기심과 감동을 표한다. 매끈하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작품, 그림을 보면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말끔하게 칠한 회화에 두꺼운 투명 코팅 처리를 해 놓은 것 같은 작품의 비밀은 '에폭시 레진'(epoxy resin)덕분이다. 공업용 투명 접착제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유리액자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도 있다. 에폭시 레진 위에 빼곡히 색선을 긋는 반복적 행위로 물감과 레진이 만나 작품은 회화를 넘어 착시를 일으키는 반입체로까지 보인다. 5년전부터 런던, 브뤼셀, 아트마이애미, 아트 뉴욕, 아트 파리스등 해외에서 입소문을 탄 작품은 2016년 상하이 학고재갤러리에 개인전을 연 이후 '김현식'의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국내에서 '머리카락' 작품으로 유명세를 탔던 작가의 위대한 변신이었다. 서울 삼청로 학고재는 여세를 몰아 7일부터 김현식의 개인전을 연다. '빛이 메아리치다(Light Reverberates’)를 타이틀로 총 4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상하이 전시 이후의 신작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대표적인 연작으로 꼽을 수 있는 ‘Who Likes Colors?’와 함께, 영국의 동화 '퍼시 더 핑크 Percy the Pink'(2003)에서 제목을 차용한 ‘퍼시 더 컬러 Percy the Color’ 연작을 새롭게 선보인다. 각 연작마다 형태와 색상 등에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 김현식은 "이 전시를 통해 평면으로부터 입체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구현하고 싶다"고 했다. 평면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겠다는 의도다. 그가 에폭시 레진에 집착한 건 "나만의 그림, 나만의 작업을 하겠다"는 욕망이었다. 1992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후 유화로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곧 좌절했다. 다 비슷비슷한 그림에 자신보다 더 테크닉이 뛰어났다. 회화 전공자로서 평면을 놓고 싶지 않았던 그는 투명 접착제류인 에폭시 레진을 발견하면서 차별화를 꾀했다. 10여년간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기엔 작품 소재 자체를 레진에 통째로 담그기도 했다가 레진의 특성을 파악했다. 레진의 얇은 층을 여러 겹 쌓아 굳히고, 그 위에 송곳으로 긁은 드로잉 선(線)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그 다음 팬 선들에 원하는 색을 입히고 닦아내면 상감기법처럼 무수한 선들이 색으로 변환된다. 이 과정을 대략 10여 회 이상 반복해야 완성된다. 웬만한 크기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진 적어도 1만 번 이상의 송곳 선 긋기를 거쳐야 한다. 30년 넘게 지속된 에폭시 레진과의 싸움은 김현식을 '사이 공간'으로 오가게 했다. 레진에 중첩된 수많은 드로잉 선들은 평면에서 입체로, 외피에서 내면으로 나아가게했다. 2차원적인 평면회화가 수천, 수만 가닥의 선들로 3차원 공간을 품을 수 있게된 '통찰의 예술'로 진보한 것. 수많은 색선(色線)으로 이뤄진 작품은 생동하는 색채의 울림을 전한다. '단색화'의 '21세기 버전'같다. 무념무상의 행위속에 한가지색으로 나온 단색화의 개념과 맞닿아있는 셈이다. 작가의 작품을 처음부터 지켜봐오고 전시 서문을 쓴 홍가이 박사는 "그가 빚은 화면 속 무수한 틈새들이 시간을 붙잡아두는 것 같다"며 "미세한 사이의 틈새들이 ‘적막의 울림’을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국내에서는 8년만에 개인전을 연 김현식은 "작업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화가로서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는 여정의 입구를 관객에 제시하겠다"는 의지로 "스스로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는 여행가와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촘촘히 그어진 색선들 사이 사이로 반사되는 빛과 그림자가 기존의 색채에 깊이감과 공간감을 더한다. 바라보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 빛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의 색상이 시시각각 변한다. 균일한 두께로 그어진 반입체적 선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위 아래로 교차하며 운율을 만들어내는 작품은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의 입구를 마주한 듯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화면을 바라보는 순간 투명한 레진 표면에 그림자가 비쳐 작품 프레임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든다. 2006~2007년 국내미술시장 활황때 '김현식 머리카락' 작품에 꽂혔던 컬렉터라면 놓치지 말아야할 전시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신한 것 같지만, 결국 초기에 선보인 머리카락의 흔적을 떨칠수 없다. 굽이쳐 흐르던 머리카락이 '스트레이트 퍼머'를 한듯 탱탱하고 찰랑찰랑 해진 듯한 느낌이다. 전시는 3월4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2/07
'회화의 시녀'는 옛말...정재규 '조형 사진-일어서는 빛' 19세기 '회화의 시녀'로 불렸던 사진은 20세기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진은 버라이어티하게 영역을 확장하며 위세를 보였다. 10여년전 국내에서도 '그림같은 사진' 열풍이 불었다. 배병우·민병헌등 사진작가들의 존재감을 드높였고 작품도 유례없이 고가에 팔려나갔다. 하지만 '회화의 권력'은 뛰어넘지 못했다. 반짝 강등세를 보였던 사진 시장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며 다시 회화의 부상을 알렸다. 구상에서 추상, 추상은 단색화로 인기몰이 하며 미술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사진이 주줌하고 있는 가운데 '조형 사진'이 등장 눈길을 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가 기획한 조형사진 작가 정재규의 개인전이 열린다.2월 2일부터 '조형 사진-일어서는 빛'을 주제로 사진과 설치 작품 100여 점을 전시한다. 사진은 '회화의 시녀'가 아니라 '회화의 동반자'라는 의미가 보인다. 작품은 설치 조각까지 넘본다. 작가는 한국의 고건축이나 조형물, 예를 들어 경주 불국사의 극락전, 대웅전, 석가탑, 다보탑, 돌사자상 등을 찍은 사진들을 자르고 재배열해 화면을 만들어낸다. 가나아트 김나정 큐레이터는 "사진을 찍고 인화한 이미지들을 자르고 조합하는 행위는 화면 속 정해진 시공간의 이미지뿐만이 아닌, 작가의 사적인 기억과 역사적 사건이 개입된 ‘시간의 올짜기’"라고 소개했다. 사진을 자르고 엮은 '조형사진'의 시작은 24년전 경주를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국립 경주 박물관 뜰에서 머리가 없는 불상(佛像/無頭石佛)들 약 50여 구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접하면서다. "예기치 못한 이 끔찍한 장면 앞에서 나도 모르게 얼른 사진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끔찍한 불두 참수의 사건을 기록한다거나 다른 이에게 보이고자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것은 순간적인 나의 반사 작용 같은 것으로서 참혹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조화롭고 완전한 조형미를 갖춘 불상들을 또 다르게 볼 수 있는 한 방식 혹은 또 다른 시선의 한 선택이기도 했다."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서 보이는 머리 없는 불상들은 여전히 부동(不動)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셔터의 소리와 함께 나는 불상의 그 참수 현장에 있는 듯한 인상을 순간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작가는 "과거의 한 순간과 현재의 한 순간이 사진 촬영의 한 순간에서 서로 겹쳐지고 교차되는 듯 했다"며 "한여름 고요한 경주 박물관 뜰에서 동시성(同時性)에 대한 기이한 사진적 체험을 했다"고 밝혔다. 1978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는 당시프랑스, 이씨ㅡ레ㅡ물리노의 아뜰리에로 되돌아와 머리 없는 불상들의 사진 이미지 절단 작업을 시작했다. 그 이미지들을 자르면서, 자르는 순간 순간들이 이번에는 경주 박물관 뜰에서의 그 촬영 순간과 겹쳐지고 교차되는 듯한 인상을 느끼게 되었다. 잘려져서 다시 배열된 머리 없는 불상 이미지의 표면은 사진적 사건을 위한 또 다른 장소( 또 다른 정원)로 여겨졌다는 것. 197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1977년 제10회 파리비엔날레 참여를 계기로, 1978년부터 파리에서 살고 있다. 1980년대에 파리 1대학에서 수학하며 러시아 전위 미술 운동가인 말레비치의 절대주의(Suprematism)와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 등 서양 미술이론 연구에 전념했고, 1990년 초부터 이론 연구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조형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사진을 잘라 엮어낸 '조형 사진'은 복제가능성과 복수성을 부정하고 순간성과 기록성이라는 정체성도 해체됐다. '이미지가 가지는 시공간 구조'에 집중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포장용 크래프트지 위에 수묵작업과 함께 복제된 이미지를 자르고 붙여 다양한 기호들을 조합하여 미술사를 재해석한 작품을 보여준다. 크래프트지 위에 동양의 수묵 기법으로 선을 그린 작업은 중국 명청대의 화가 팔대산인(八大山人, 1626~1705)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또한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만 레이 등 서양 미술가들의 작품을 사진과 크래프트지를 5~10mm 폭의 띠로 잘라 '올짜기 기법'의 조형사진과 설치작품도 선보인다. 누구나 사진작가인 이 시대에 정재규의 '조형 사진'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찍기만 열중했지 왜 엮을줄을 몰랐을까' 라는 생각과 '별것 아닌데'라는 마음이 교차한다. 하지만 일반인들과 예술가들의 차이는 시간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소설가들이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데, 미술가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 평을 쓴 장-루이 푸아트뱅 미술평론가(소설가)는 "정재규의 작품은 느림에 대한 찬사"라고 했다. "끝없는 인내는 조형작가 정재규의 일상적인 작업에서도 핵심"이라는 그는 "무한히 느린 시간으로서, 마치 맹점처럼 잊혀졌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 ‘시간의 힘'을 정재규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환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3월4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1/31
삼성 리움? 롯데 '롯데뮤지엄' 개관..댄플래빈 '위대한 빛' 삼성 미술관 리움이 지난해부터 개점 휴업 사태속 재벌그룹 미술관이 다시 등장했다. 롯데그룹 롯데문화재단이 롯데월드타워 7층에 26일 개관한 롯데뮤지엄이다.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롯데월드타워(555m, 123층)에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미 국내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을 내세우는 곳이 있다. 한화그룹이 63빌딩 60층에 운영하는 63아트미술관이다.) 롯데월드타워 7층 1320㎡(약 400평)을 미술관으로 꾸몄다. 전시공간은 심플한 자연미가 특징인 건축가 조병수(60)가 설계했다. 초고층 미술관인 모리미술관과 협업해 기존 3m였던 층간 높이를 5m까지 올려 시공하는 등 1년여 간 심혈을 기울여 세계적 수준의 현대 미술 전시공간으로 완성했다.타 워 내부 공간을 최대한 기능적으로 해석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예술작품들이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이태원 부자들 저택속에 위치한 삼성 리움이 럭셔리한 이미지를 과시하는 반면 롯데뮤지엄은 백화점안에 있어 부담감의 거리는 좁혔다. 롯데측도 "상업시설과 오락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잠실지역에서 대한민국의 예술적 위상을 보여주는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 세계 시각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기획 전시를 매년 3~4회 개최하겠다는 의지다. 국내 최고 미술관 리움의 휴업 상태로 국내에 세계 유명 작가의 굵직한 전시가 뚝 끊긴 가운데, 롯데뮤지엄의 개관전은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새해, 롯데월드타워 '카운트다운 불꽃쇼'로 '라이트 아트'의 팡파레를 울린 롯데는 '빛'에 꽂했다. ◇롯데뮤지엄 개관...라이트 아트 댄 플래빈 국내 첫 전시 개관전도 ‘빛 예술’이다. 미국 '라이트 아트' 거장 댄 플라빈(1933~1996)의 대규모 기획전을 펼친다. ‘빛’을 통해 변화되는 시공간을 창조한 댄 플래빈의 혁신적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뉴욕 디아 아트파운데이션(Dia Art Foundation)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댄 플래빈이 창조한 ‘위대한 빛’을 타이틀로 달았다. 플래빈은 ‘형광등’을 미술에 도입하여 ‘빛’의 시공간을 창조했다. 이번 전시는 댄 플래빈의 초기 작품 14점을 한국에 소개하는 첫 번째 대형 전시다. 플래빈의 독창성은 쉽게 구할 수 있는 형광등을 공간에 설치해 관람자가 그 공간을 직접 경험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1963년부터 벽면에 2.4m 형광등을 설치해 형광등의 무한한 가능성을 살려냈다. 하나의 오브제이자 회화적 효과를 내는 색채로서 형광등의 존재감을 발견해냈다. 이후 여러 개의 형광등을 반복적으로 배치하여 빛에 의해 공간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환영을 만들어넀다. 이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 40m길이의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Green Barrier'가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거대한 녹색의 빛은 전혀 다른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전시 마지막길에 348개의 형광등으로 만들어진 초록색 장벽이 압권이다. 초록빛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 공간에 대한 감각은 제거되고 원근법이 파괴된 새로운 공간의 유희를 경험할 수 있다. 그의 초록색 관심은 피에트 몬드리안 덕분이다. 플래빈은 빨강,파랑,노란색을 사용한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선구자 피에트 몬드리안이 빠뜨린 녹색을 사용했다. 몬드리안이 제외한 기본 색의 하나인 초록색을 기분 좋은 색이고 밝으면서 부드러운 색으로 보고 거대한 장벽 작품의 주 색채로 활용했다. ◇'형광등 빛 예술' 댄 플래빈 1933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미 공군으로 복무했고 1954년 한국 오산의 제5공군본부에 주둔하면서 기상정보를 수집하는 기상병으로 근무했다. 1956년 뉴욕으로 돌아간 플래빈은 뉴욕 콜롬비아 대학에서 미술사를 수학했다. 1961년 뉴욕의 저드슨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고 ‘아이콘icons’라는 전자적인 빛으로 된 콜라주 형태의 부조 시리즈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후에는 오직 형광등만을 사용한 작품이 등장하는데 이 들 중 하나가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1963년 5월 25일의 사선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라는 작품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1963년 5월 25일'은 플래빈이 이 작품을 완성한 날 일 뿐만 아니라 이후 그의 빛 작업에 있어 새로운 출발점을 의미하고 있다. 이후 댄 플래빈은 1976년 시카고 현대미술관,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 내셔날 갤러리, 1989년 독일 바덴바덴의카를스루에 주립미술관에서 전시했다. 2004년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은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와 공동으로 댄 플래빈 순회전을 개최했고 1982년 댄 플래빈 인스티튜트를 설립하고 댄 플래빈이 디자인한 공간에 작품을 영구 설치했다. 물질이 내뿜는 빛에 의해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공간의 경험은 새로운 예술의 시작을 알리는 댄 플래빈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다. 그는 집안을 밝히는 형광등을 ‘미니멀리즘 설치예술'로 승화시켰다. 산업사회의 재료, 기성품을 대변하는 형광등을 예술에 도입해 자본주의에 대항한 포스트모더니즘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댄 플래빈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 개념을 넘어선 20세기 미술문화를 대변한다. 댄 플래빈은 “나는 조명기구를 주의 깊고 면밀하게 구성한다면 전시장의 공간이 분리되고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생전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2.4m 길이의 형광등을 모퉁이에 수직으로 설치하면 모서리 공간을 물리적인 구조와 빛, 이중으로 생긴 그림자 등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형광등으로 만든 '빛 예술'은 단순하지만 예기치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공간과 시각적 경험의 간극속에 빛이 주는 신성함, 초월성 등 공간에 퍼져나가는 댄 플래빈의 빛은 황홀한 순간을 선사한다. 결국 예술은 마술이다. 관람료 7000~1만3000원. [email protected] 2018/01/25
'피카소가 시기한 조각가'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검은 커텐을 제치고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히는 전율이 온다. 쏟아지는 빛 조명속에 드러난 '걸어가는 사람'은 이 전시의 백미다. 1m88cm 큰 키가 돋보이는 이 '걸어가는 사람'은 자코메티의 '탑(TOP)오브더 탑(TOP)'이다. 알려진 그의 청동조각이 아니라 '석고 조각'이라는 존재감이 강렬하다. '20세기 미술의 상징'이라는 수식어 때문일까. 마치 무덤속에서 살아나온 듯 뼈만 남은 듯한 외모지만, 소름끼치는 아우라를 전파한다. 컴컴한 동굴속에 있는 듯한 공간속에 울림이 큰 음향연출로 명상센터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걸어가는 사람'은 좌대에 올려져 360도 회전하듯 감상할수 있다. 바닥에는 방석도 깔려있어 앉아서도 볼수 있다. 알베트로 자코메티 특별전을 기획한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이사는 "무엇보다 그의 눈을 보라"고 주문했다. 미이라 같은 '걸어가는 사람'은 부릅뜬 두 눈이 인상적이다. 어떤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벗 삼아 두 눈을 부릅뜬 채 세상을 으이하는 슬픔속 인간의 위대함이다. 이 작품은 자코메티 자신이다. 1901년생 자코메티는 끔찍한 전쟁을 겪은후 "인간은 그래도 살아내야만 하기에 끝없이 걸어나가야 한다"는 자신의 스토리를 이 작품에 불어넣었다. '가늘고 긴 조각'은 자코메티 브랜드다. "작은 조각을 포기하지 못하고 높이를 키우다보니 가늘고 긴 형상이 탄생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온 석고 원본, 1m88cm 걸어가는 사람은 처음으로 거대하게 키운 작품이다. 1958년 뉴욕 체이스 맨하탄 프라자의 공공장소를 위한 프로젝트로 진행되어 1960년에 완성됐다. 부스러질것 같은 앙상한 형체지만 '걸어가는 사람'은 자코메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수천억원의 작품값이 이를 증명한다. '걸어가는 사람'(청동)은 2010년 마지막 경매에서 1200억원에 낙찰되면서, 이전 최고 경매가인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을 누르고 세계 경매신기록을 세웠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석고 원본'은 실거래가의 3배이상 책정된 3800억원에 이른다.) 피카소는 생전에도 자코메티에 굴욕을 당했다. 그는 자코메티의 작품 능력을 시기할 정도로 부러워했다. 피카소가 구현하지 못한 조형적인 새로운 언어를 구현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모사 전문가'일 정도로 사물을 분석하고 분해하는 능력이 있었지만, 자코메티처럼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인물을 근원적 존재로 표현해내지는 못했다. 피카소보다 스무살이나 어린 자코메티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예술가인줄 알았는데 천재에 불과했네."라고. 피카소는 죽을 무렵까지 자코메티에 집착했다. 그는 죽기 직전 누구를 만나고 싶냐는 물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딱 한사람, 자코메티를 만나고 싶다"고 한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서 처음...'알베트로 자코메티'특별전 새해, 세계적인 거장의 조각전이 미술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알베트로 자코메티(1901~1966)전시가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열린 이 전시는 국내에서 보기드문 조각전이다. 파리의 자코메티 재단과 협업으로 코바나 컨텐츠와 국민일보 30주년 기념전으로 마련됐다. 작가의 상징적인 작품 '걸어가는 사람'의 유일무이한 원본 석고상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돼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초기 시절부터, 말기의 작품 120여 점 이상을 조명한다. 고향 스위스 스탐파에 있는 그의 아버지 작업실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마지막 기간(1960~1965) 동안의 그의 예술적 성취 과정을 모두 보여준다. 또한 작가가 죽기 바로 직전 작업한 가장 마지막 작품인 '로타르 흉상'도 함께 선보인다. 작가가 평생을 통해 깨달은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이 녹여져 마치 작가 자신을 빚어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죽기 전 해탈한 구도자의 면모가 보여지는 듯하다. 인간존재의 의미와 비장한 존엄성까지 한눈에 보여주는 '로타르 흉상'과 '걸어가는 사람'은 자코메티의 위대한 통찰이 느껴지는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꼽혀,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전시다. ◇코바나컨텐츠의 3번째 세계적인 작품전 "이번 자코메티 서울 조각전은 무엇보다 특별합니다. 테이트 모던 전시와 상하이 유즈미술관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걸어가는 사람' 석고원본을 전시하기 때문입니다. 석고 원본 작품은 아시아 최초 공개라 더욱 그 의미가 특별합니다."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얼마전 일본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린 자코메티 회고전에서도 전 작품이 청동 작품이었는데 반해 이번 서울 전시는 석고 원본 15점을 비롯해 자코메티의 말기 전성시 걸작선으로 선정된 작품"이라며 전시의 자부심을 보였다. 이번 전시 작품 평가액은 사상 최대인 2조 1000억원에 이른다. 지난 마크로스코 전시(2조5천억원)에 이어 국내에서 쉽게 유치하기 어려운 전시다. 이 전시를 유치하기까지 프랑스 파리를 집처럼 드나들었다. 일본 전시를 그대로 가져오려고 했으나 코바나컨텐츠의 애초 목표인 '순회전은 없다'로 의지를 다졌다. '전혀 다른 전시'를 추진하기 위해 "석고 원본에 집착했다"는 김 대표는 "이전에 진행한 전시(마크로스코, 르코르뷔지) 덕분에 자코메티 재단이 신뢰감을 보였다"고 했다. 재단은 '걸어가는 사람' 은 20세기 상징작품이라 빌려주는 것을 꺼려했다. 테이트 모던에도 대여해주지 않은 작품이지만 코바나컨텐츠의 집책에 가까운 열정에 손을 들었다. 자코메티 재단측의 "한국은 전쟁의 위험이 있는데 욕심내지 마라. 로타르 좌상 원본까지 대여는 빅뉴스다"는 충고까지 들을 정도였다. 김건희 대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코메티 전시를 유치한 것에 자랑스럽다"면서 "그만큼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인 전시로 남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전시 사업 횟수로 10년째를 맞은 코바나 컨텐츠는 국내 미술 전시기획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8년 '까르티에 보석'전으로 시작한 코바나 컨텐츠는 '마크리브'전, '점핑위드러브'(15만 관람)에 이어 '마크 로스코'(2015. 25만 관람), 르코르뷔지에(2017. 20만 관람)전시로 히트했다. 김 대표는 "이전 전시때도 설마 진짜가 오겠어? 라는 의심과 불신의 우려가 있었지만 전시후에는 신선하고 대단하다는 평가와 반응이 좋아 대체로 성공했다"면서 "코바나컨텐츠는 '문화로 정신을 깨우는 기업'으로 사람들에게 문화 가치를 주고 정신을 새롭게 할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길고 앙상한 조각...자코메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느날 젊은 소녀를 그리고 있는 동안 뭔가가 떠올랐다. 영원히 살아남을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시선'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결국 죽음과 살아있는 개인을 구별해주는 것은 시선이다." 1958년 57세인 자코메티는 몽파르나스 술집에서 만난 스무살도 안된 매춘부 카롤린과 사랑에 빠졌다. 세계적인 명성이 높은 부유한 조각가와 카롤린은 어울리지 않은 상대였지만 그녀는 자코메티의 중요 모델이 되어 주었다. 카롤린 작품을 통해 자코메티가 삶의 마지막 시기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준다. 부스러질 것 같은 연약함과 앙상함, 마치 불교에서 다비식을 한 듯한 수없이 반복된 '붙임 모습'인 자코메티의 조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해골같은 모습에서도 부릅뜬 듯한 두 눈이 각인된 '걸어가는 사람'에 대해 생전 자코메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걸어다닐 때면 자신의 몸무게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가볍게 걷는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고 가볍다. 내가 보여주려는 건 바로 그 것, 그 가벼움이다." 어디로 가는지, 그 끝도 알수 없는게 인간의 숙명이고 고독이다. '걸어온 사람'들이 '걸어가는 사람'을 만나 58년간 공감하고 있는 이유다. 움직여 걸어가는 것, 결국 '인간의 실존'의 문제이니까. 전시는 4월 15일까지. 8000~1만6000원. [email protected] 2018/01/04
새해 또 단색화?…윤진섭×리안갤러리 '한국의 후기단색화' '단색화' 창시자인 미술평론가 윤진섭이 다시 '후기 단색화'전을 기획해 눈길을 끈다. '한국의 후기단색화'전을 타이틀로오는 5일부터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에서 펼친다. 윤진섭 평론가와 리안갤러리가 1970년대부터 단색조 작업을 꾸준히 해온 11명의 작가들을 뽑았다. 대부분 1세대 단색화 작가들의 제자들로, 이번 전시에는 김근태, 김이수, 김춘수, 김택상, 남춘모, 법관, 이배, 이진우, 장승택, 전영희, 천광엽의 '단색화 같지만 다른(개념의)단색화'를 보여준다. '단색화'라는 고유 명칭은 윤진섭 미술평론가가 처음으로 썼다. 지난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 특별전으로 연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 영문판 도록에 '단색화(Dansaekhwa)'를 쓰면서 우리나라 '모노크롬(monochrome)'화가들을 '단색화가'들로 구분한게 시작이었다. 이후 '단색화'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에서 존재감을 가졌지만 유명세는 덜 했다. 2년후 국제갤러리가 단색화작가들을 마케팅하면서 'K팝' 같은 한류 열풍을 몰고왔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서 '단색화 특별전'을 비롯해 소더비 크리스티등 세계적인 경매사에서 수십억대에 낙찰되며 '한국 그림' 돌풍을 일으켰다. '단색화'는 말 그대로 한 가지 색으로 그린 그림인데, 서양의 모노크롬 미니멀 아트나 색면추상과 다른 평가다. 50~60년대 서양 현대미술을 주도했던 모노크롬이 쇠퇴한 반면, 한국의 단색화는 50~60년만에 세계미술시장에 급부상했다. 1950~60년대 서양 모노크롬에 매료됐던 젊은 화가들이 나이 70~80세가 되어서야 빛을 본 단색화는 '힐링의 시대' 타이밍이 맞았다. 바르고 뜯고 덧칠하며 오랜세월 수행하듯 반복의 미학이 빚어낸 작품은 곰삭은 깊이로 '명상적인 작품'으로 부상했다. 반면 '단색화'는 색 그대로 극단적이었다. 세계미술시장에서 인기를 얻자 한국미술시장을 점령하면서 쏠림 현상을 심화시켰다. 오로지 '단색화'뿐인 것처럼 팝아트와 다색화를 무산시킨 단색화는 시장 논리에 편승했다. 상업적인 붐으로 '단색화=돈'이 됐고, 미술관 갤러리 경매사마다 쏟아진 단색화, 단색화에 진부해질 정도였다. 실제로 2014년부터 약 3년간 국내외적으로 선풍을 일으켰던 단색화는 2017년부터 둔화된 조짐이다. 유명화랑, 미술관에서 1세대 단색화가들이 초청을 받거나, 옥션의 동향이나 전시와 관련된 소식을 뉴스로 다루었던 것에 비하면 주춤한 기색이 역력하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국내외의 컬렉터, 기관, 미술품투자자들이 선호하는 70~80년대의 작품들이 물량적 측면에서 이젠 어느정도 고갈 될 단계에 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팔릴만큼 팔렸다는 의미다. 반면 상업적 붐에 걸맞는 담론의 부재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담론의 창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단색화의 붐업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민간에서보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보다 건강한 한국 단색화의 형성을 위해서는 전기 단색화에 이어 후기 단색화에 대한 관심과 분위기의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단색화가 시장적인 측면에서만 이슈가 되고, 미술사적으로는 사장되는 것은 아쉬움이 크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한국의 후기 단색화'전은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후기 단색화'는 어떻게 분류되는 것일까. 윤진섭 평론가는 "후기 단색화작가들이란 70~80년대에 한국미술의 현장에서 모더니즘 미술을 직접 체험했던 작가군(群)을 지칭하는 것으로 현재 50~60대의 연령에 도달한 세대가 여기에 속한다"면서 "전기 1세대 단색화 작가들의 제자벌에 해당하는 이들은 한국의 근현대화(1960 이후)의 과정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라고 소개했다. 한국에서 수행하듯 그림만 그렸던 단색화가들과는 결이 다르다. 후기 단색화가들은 유교적 생활윤리보다는 합리주의적 사고가 몸에 배어 있다. 일본어 보다는 영어의 구사가 더욱 자연스럽다. 유럽과 미국등 서구 사회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학세대가 많은 것도 후기 단색화 작가들의 특징이다. 단색화로 보이지만 작품에도 차이가 있다. 1세대 단색화 작가들처럼 예술을 수양이나 수신의 과정 혹은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후기 단색화가들은 예술을 의식의 표현수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한국이 산업사회에 접어들기 시작한 70~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이들은 독자적인 재료와 매체 실험을 통해 단색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해봐야 할 이유가있다. 지난 3~4년간 한국 미술 열풍을 일으킨 단색화를 잇는 이번 전시는 '후기 단색화'라는 전시명이 '단색화' 개념으로만 한정 지어질 우려도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에서 시들해진 단색화의 무관심보다 상업갤러리의 이같은 노력은 건강한 한국 현대미술 생태계 조성에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미술애호가와 컬렉터는 물론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다양하고 깊이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진화를 살펴볼수 있는 기회다. 윤진섭 평론가는 "이 전시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의 단색화'전 이후 본격적으로 후기 단색화를 조명한 전시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향후 후기 단색화의 흐름과 향방을 가늠해 볼수 있을 것"라고 자신했다. 전시는 2월24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1/03
이우환 작품이 불러온 '위작죄' "나만의 호흡, 리듬과 색채로 만든 분명한 나의 그림"이 뒤통수를 쳤다. "틀림없는 내 그림"이라는 화가의 주장과 달리 1년후인 지난 8월 이우환 작품 위작범과 화상은 중형을 피할수 없었다. 위작을 그려 팔아넘긴 화상은 징역 7년, 위작을 진품처럼 그린 위작범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화상등 컬렉터들을 속여 판 작품값은 총 52억원어치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이 화백의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등을 모사한 총 9점이었다. 위조한 작품을 팔아넘긴 이들의 죄목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범상 사기죄였다. 하지만 앞으로 위작범은 '위작죄'로 처벌된다. 기존에는 형법상 사기죄, 장물죄, 사서명위조죄등이 적용됐었다. 정부가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의결하면서 위작죄가 신설됐다. '위작죄'가 적용되면 위작 미술품을 제작·유통한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상습범에게는 최고 10년형 또는 1억5천만 원 벌금의 중벌이 가해진다. 또 계약서나 미술품 보증서를 거짓으로 작성해 발급한 자 또는 허위 감정서를 발급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기존 사기죄(10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보다 징역형은 낮지만 벌금을 더 높였다. 상습범은 3배까지 중벌해 사기죄보다 더 높은 처벌이 될 수 있다. 양벌 규정도 적용된다. 법인의 대표자나 고용인이 위반행위를 한 경우 그 법인 또는 개인에게 벌금형 양벌이 가능해진다. 사기죄에서 위작죄 신설은 개인에서 공공으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위작을 사유재산으로 놓고 사기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으로 처벌했다면, 새 법안은 사회 신뢰와 공공질서에 위해를 가한 것의 처벌이라는 점에서의 의미가 있다. 위작문제는 미술시장 존폐에 관한 문제다. 이런 차원에서 시장 자율에 맡겼던 정부가 칼을 빼든건 당연한 이치다. 위작은 화가 개인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 결국 국격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우환 위작 논란'이 뜨거웠던 건 그의 작품이 내수용이 아닌 해외용이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2007년부터 급부상한 '이우환 그림'은 삼성의 후원을 받아 2014년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개인전을 열 만큼 세계 미술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K-아트'의 선봉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존재감을 과시했었다. 이우환 화백이 "틀림없는 내 작품'이라며 위작 논란에서도 그가 외친 건 "국제적으로도 작품거래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항변이었다. 백남준 이후 세계적인 작가로 등극한 이우환 화백에게 떠들썩한 위작 사건은 그야말로 '나라 망신'이라는 자괴감이었다. 위작논란으로 (내수용이었던)박수근·이중섭 그림이 사그라든 것과는 차이가 크다. 이우환 그림은 작품값이 떨어지지 않았고 경매시장에서도 낙찰총액이 급상승했다. 위작시비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2015년에는 한 해 낙찰총액이 117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2014년부터 매년 평균 80% 이상의 낙찰률을 보이며 올해도 이우환 작품은 강세다. 다만 위작이 나왔던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시리즈는 매물이 자취를 감췄고, '바람 시리즈'가 고가 낙찰을 기록하고 있다. 선들이 휘몰아치는 '바람'은 따라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바람 시리즈'는 12월 열린 국내 양대 경매사 겨울 경매에서 2배이상 낙찰되며 눈길을 끌었다. 현재까지 이우환 작가 최고가는 2012년 홍콩 경매에서 기록된 1977년 작 '점'으로 21억3000만원이다. '위작 논란'만 불거지지 않았어도 '김환기 독주'를 막을 '블루칩 작품'이었다. 위작 사건이 터지면 불신의 벽은 높아진다. '믿을수 없다'는 불안감은 '큰 손'들을 해외로 뺏기는 꼴이 된다. 국내미술시장 규모는 3965억원(2016년)이다. 지난 11월 15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00만달러(약 4900억원)에 낙찰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예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 한점 값도 안되는 수치다. 이런 가운데 관세청에 따르면 기업이 해외에서 사들인 미술품은 3700억원에 달한다. 2015년보다 81% 증가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7억2300만달러) 이후 최대다. 2016년부터 해외미술품이 증가한 것과 관련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위작 사태의 영향으로 컬렉터들이 국내 시장을 외면하고 해외미술품시장에서 직접 구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술품은 최고의 사치품이다. '부자들의 놀이'라고 할 만큼 알고보면 '머니 게임'이다. 미술의 대중화가 됐다고 하지만 미술의 벽은 예술보다 높다. 올해 2월 화랑협회장이 된 이화익 회장은 "화랑이 돈세탁 창구로 여겨지는 이미지를 씻어낼 것”이라며 10여년간 이어온 화랑협회장 취임 일성을 재생했다. 국내 미술문화수준이 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림은 수백억이 넘는 돈을 주고 손에 넣었더라도 '일시적 점유'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소장품 1만여점을 지역의 공공미술관에 기증한 유명 컬렉터 하정웅은 "미술품 기증은 다 함께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미술품은 결국 공공재이자 국격을 대변한다. 각국의 문화전쟁은 진품과 작품값에서 승부를 가른다. 서울옥션 이호재 회장은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건 나라의 격(格)이 올라가는 것이고 나라의 자존심, 국가 브랜드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화 정보화속에서 컬렉터들은 더 스마트해지고 있다. 화상의 꼼수, 진작같은 위작도 쉽게 통하지 않는 냉정한 시대다. 이번에 정부가 빼든 '위작죄' 시행은 자구책이 아니라, 국내 미술시장을 키울 수 있는 마지막 해법일 수도 있다. [email protected] 2017/12/27
Hi,POP 거리로 나온 미술과 르메르디앙 서울 #1917년 뉴욕 한 전시장. 제목은 '샘(Fountain). ‘R. Mutt(마르셀 뒤샹)'라고 사인만 되어 있던 남성용 소변기가 세계 미술사를 바꿀줄은 누구도 몰랐다. 전시에 출품됐지만 천박하고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돼 전시 뒷편에서 숨죽였던 '변기'는 제목 '샘'처럼 터져 도발했다. 하얀 벽에 걸려 고고함을 내뿜던 그림의 권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으로 기존 예술의 개념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요즘말로 미술의 적폐청산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변기'는 전시장에 나와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쏘아올렸다. 제품과 작품 사이에서 '미술이 별거냐'며 파격과 함께 각성시킨 건 '일상이 예술'이라는 것. 뒤샹의 '샘' 이후 미술세계는 다시 '팝 아트'로 뒤집혔다. #1955년 로버트 라우센버그 '콤바인팅 페인팅' 이 나왔다. 이때 주목할 점은 신문, 거울, 침대 등 일상의 사물이 작품의 주재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이 라우센버그의 사물 활용법을 평면으로 재흡수했고, 이들이 사용한 벤데이(Ben day) 인쇄방식과 실크스크린 기법은 미술사를 경쾌하게 변신시켰다. 진득한 물감과 붓질로 그리던 초상화나 풍경을 프린트해내며 '단 한점뿐'이라는 희귀성까지 침범하며 미술의 권위를 끌어내린 것. 특히 무한 복제가 가능한 반복으로 세계 미술계를 '팝아트 왕국'으로 재편한 건 앤디워홀이다. 작가공장(팩토리)을 차리고 예술노동자를 고용하며 깡통 수프캔부터 마릴린먼로등 유명 초상화까지 색색으로 찍어냈다. 기존의 미술에선 '참을수 없는 가벼움'으로 경박스럽게 보이는 팝아트지만 현재까지 동시대 현대미술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국내미술시장을 이끈 스타작가들 모두 앤디워홀의 후예들이다. 전설이 사라지면 유명세가 대체한다. '미술이 별거냐'며 일상용품처럼 찍어낸 그때 그 시절 작품들은 희귀품으로 천정부지로 치솟은 작품값을 자랑한다. 앤디 워홀의 ‘실버 카 크래시’는 2006년 1억5000만달러에 낙찰됐고 워홀을 추종한 장 미셀바스키아, 키스해링의 작품도 수십억에서 수천억대에 거래된다. #2017년 르 메르디앙서울 호텔 입구에 위치한 M컨템포러리. 팝아트 대표작가 5인의 주요 작품을 전시한 'Hi- 팝아트'전이 15일 개막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중심으로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인디애나 등 대표 팝 아티스트의 다양한 작품 160여점을 선보인다. 현재 89세인 로버트 인디애나를 빼고 사망해 ‘팝아트 전설'이 된 이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M컨템포러리 강필웅 디렉터는 “미국 팝아트 거장들의 향연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를 위해 각국의 개인 소장된 작품 중 엄선해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공동기획사 코메디아팅(ComediArting Srl)의 Maria Dolores Duran Ucar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의 아티스트들은 20세기 후반 생동하는 뉴욕에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연, 미국 팝 아트의 위대한 주인공인만큼,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예술이 최상위 미술이 되기까지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시는 각 작가들의 개인전처럼 꾸몄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을 지나 로버트 인디애나, 키스 해링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팝 아트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활동 시기와 독자적인 주제 의식을 고려하여 각각의 특색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1960년대 팝아트 운동이 일어난 시점부터 미국 팝아트 운동의 부흥을 이끈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삶과 당대의 문화를 피부로 느껴볼 수 있다. 31세,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키스해링의 마지막 작품인 '종말 시리즈' 8점은 국내에서 첫 공개되는 작품이다. 빅뱅 승리와 배우이자 가수인 유준상이 오디오 가이드로 작품설명을 해준다. #팝 아트가 살아남은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18세기 인상파 화풍의 풍경만이 예술이라는 것이 아닌 일상의 사물, 공간,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건 '일상이 어떻게 예술이 되어 미술관 벽에 걸릴 수 있게 되었는가'다. 어디선 본 듯한 '팝아트의 화려함과 단순함'이 그동안 얼마나 우리의 뇌구조를 지배해왔는지도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편,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흐려놓은 팝아트의 진수를 볼수 있는 이번 전시는 '호텔 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팝아트가 말하고자 했던 ‘Life is Art’를 실천한다는 점에서다. 미술관에서만 보는 비싼 미술품이라는 통념을 깨고 이번 전시는 M컨템포러리 전시장에서 르 메르디앙 호텔 1층 로비까지 이어져 '일상과 하나인 예술'을 보여준다. 호텔은 숙박만 하는 곳이 아닌 '문화 아지트'로의 변신이다. 거대한 거리 미술관 처럼 외벽을 장식해 강남의 거리문화도 작품화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림, 그래도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 나온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의 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내 그림과 영화와 나를 보면 거기에 내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어요” 또 콤바인의 혁신성을 보인 '팝아트의 대부' 로버트 라우센 버그 말도 들어보자. "그림은 생활과 예술의 결합이다. 나는 그것을 구분하는 사이에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에디션이 있는 만큼 판매도 한다. 2018년 4월 15일까지. 입장료 1만2000~1만6000원. [email protected] 2017/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