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할퀸 베니스비엔날레…최빛나 감독 “99개 국가관, 왜 순위 매기나” “‘노(No) 러시아’, ‘집단학살관은 물러나라(No Genocide Pavilion)’, ‘팔레스타인은 세계의 미래다(Palestine is the future of the world)’.”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에서 개막한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는 미술 전시를 넘어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를 되묻는 현장으로 변모했다. 전쟁과 검열, 국가와 대표성을 둘러싼 긴장 속에 열린 행사장에는 시위대와 연막탄, 팔레스타인 연대 포스터가 등장했다. 세계 미술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비엔날레는 개막 전부터 국제정치의 축소판이 된 셈이다. 총감독 고(故) 코요 쿠오의 갑작스러운 별세와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 국가관 황금사자상 폐지, 이란의 불참까지 겹치며 예술의 축제는 시작 전부터 논쟁의 장이었다. 현장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단됐던 러시아관은 올해 제한적으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거센 반발과 시위가 이어졌다. 이스라엘관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러시아와 이스라엘 참여 문제는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까지 불러오며 이번 비엔날레의 정치적 긴장감을 드러냈다. 국가관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국가는 누구를 대표하는가. 예술은 국경을 초월하는가. 비엔날레는 과연 예술의 올림픽인가, 아니면 난민선처럼 흔들리는 정치적 무대인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이 질문들 사이를 흔들리며 항해하고 있다. 99개 국가관과 31개 공식 병행전시가 베네치아 전역에서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관은 다른 길을 택했다. 최빛나 감독은 국가관을 임시적 광장으로 재구성하며 국가 대표성을 최소화하고 시민적 연대와 관계를 강조했다. 일본관과의 사상 최초 협업은 역사적 갈등을 넘어선 실험으로, 국가주의적 전시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내는 시도였지만 여전히 ‘한국관’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제도적 긴장은 남는다. 전시 개막 후 해외 미술 전문 매체들은 한국관을 주목했다. 미국 문화매체 Observer는 한국관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살아 숨 쉬는 기념비(living, breathing monument)”라 평했고, ARTnews는 올해 ‘톱10 국가관’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Whitewall 역시 한국관을 “반드시 봐야 할 국가관”으로 꼽으며 가장 사유적이고 울림 있는 전시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예술감독 최빛나가 기획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미완 상태와 균열, 냉전 이후의 감각을 다루되 이를 거대한 역사 서사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고은·노혜리 작가를 비롯해 연구자, 음악가, 농부, 소설가 등 비시각예술 영역까지 포함한 ‘펠로우십’ 구조를 통해 느슨한 관계망을 전시 형식으로 끌어들였다. 출발점은 한국의 탄핵 정국과 광장 경험이었다. 최빛나 감독은 “2024년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시위를 보며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했다”며 “나도 내 방식대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단순한 국가관 전시라기보다 임시적인 시민 광장에 가까웠다. 뮤지션 이랑, 사진작가 황예지, 청년 농부 김후주, 소설가 한강,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암페타 등이 참여하며 제주 4·3, 5·18, 탄핵 집회와 여성 연대, 씨앗과 돌봄의 감각을 함께 엮었다. 특히 이번 한국관은 베니스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관과 협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경쟁과 대표성 중심으로 작동해온 비엔날레 구조 속에서 인접한 두 국가관이 대화와 교류의 플랫폼을 시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 감독은 “옆집 일본관과의 협업도 기념비를 확장하는 시도”라며 “두 국가관이 품고 있는 공유된 역사와 새로운 가능성을 연결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르디니의 한국관은 일본관, 독일관, 영국관, 러시아관 사이에 위치해 있다. 최 감독은 이를 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영향을 끼쳤던 나라들이 한국관을 둘러싸고 있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자르디니 공원 끝자락, 독일관과 일본관 사이 옛 화장실 부지에 자리한 한국관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가운데 26번째로 뒤늦게 들어섰다. 당시 비엔날레 재단은 더 이상 국가관을 늘리지 않겠다는 방침이었지만, 1993년 백남준의 황금사자상 수상 이후 한국관 건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지금의 한국관이 세워졌다. 작고 좁은 한국관의 구조 자체를 ‘해방공간’의 은유로 읽은 최빛나 감독은 “사실 한국관은 숨겨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일본관이나 독일관을 방문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되는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한국관 전시는 그 구조를 내부에서 조용히 흔든다. 최고은의 설치 ‘메르디앙(Meridian)’은 한국관 내부를 지나 일본관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동파이프는 일본관 울타리를 넘어 땅속으로 파고들었다가 다시 지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막힌 혈관을 뚫는 침처럼, 봉인된 경계를 찌르는 가느다란 신경처럼 보였다. 시각적 스펙터클은 크지 않았다. 대신 ‘메르디앙’은 굳어버린 시대의 혈전을 침술처럼 찌르며 자르디니의 지정학을 은밀하게 흔들었다. 거대한 선언 대신 수행하는 조용한 반란이었다. 노혜리의 설치 ‘베어링’ 역시 얇은 오간자 구조를 통해 관람객이 의례처럼 천천히 한국관을 순환하도록 만들었다. 강강술래처럼 빙글빙글 돌며 이동하는 동선. 요새와 둥지, 내부와 외부, 보호와 저항 사이를 오가는 감각 자체가 ‘해방공간’의 은유였다. 이는 기존 비엔날레의 소비 방식과도 어긋났다. 강렬한 이미지 한 컷이나 SNS용 스펙터클보다 함께 머무는 시간과 감각의 층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현장 반응은 엇갈렸다. 강렬한 시각적 장면과 대형 설치 중심 국가관에 관람객이 몰린 반면, 한국관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일부는 “너무 개념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해외 비평계는 오히려 그 ‘조용한 반란’을 더 예민하게 감지했다. 전쟁의 흔적은 비엔날레 현장을 더욱 무겁게 한다. 예술은 이를 치유하거나 초월하기보다 갈등을 반영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이나 러시아·이스라엘관 앞 시위는 예술이 정치적 현실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술이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데 그친다면, 비엔날레는 결국 국제정치의 부속품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한국관을 비롯한 일부 국가관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정치적 발언과 연대의 장으로 변모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에 동참한 국가관들이 하루 동안 문을 닫았고, 전시장 곳곳에서는 국가관 체계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올해 비엔날레는 경쟁과 위계 중심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국가관 황금사자상 시상을 진행하지 않았다. 최빛나 감독은 경쟁 중심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는 “황금사자상이 폐지됐는데 다시 ‘인기 국가관’을 선정하는 것은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며 “99개 국가관이 함께 펼치는 비엔날레에서 단 하나를 뽑는 방식은 결국 순위를 매기는 상업적 마케팅 구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국가관들과 함께 이런 경쟁 구조 자체를 재고하자는 논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감독의 “왜 순위를 매기나”라는 질문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비엔날레의 근본적 모순을 겨냥한다. 예술이 국가 단위로 경쟁하는 구조는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을 외교적 자산으로 소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제 올해 비엔날레는 국가관 경쟁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본전시 ‘In Minor Keys’ 참여 작가 52명은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에 연대하며 수상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프랑스·리투아니아·네덜란드 등 16개 국가관 작가들도 이에 동참했다. 올해 비엔날레는 심사위원단 공백 속에 국가관 황금사자상 대신 관람객 투표 방식의 ‘비지터 라이언스(Visitor Lions)’를 도입했으며, 시상은 폐막일인 11월 22일 진행될 예정이다. 해외 언론 역시 올해 비엔날레를 단순한 미술 이벤트가 아니라 지정학적 긴장과 제도 비판이 교차하는 현장으로 읽고 있다. AP통신은 정치적 논란과 국가관 시스템 비판을 집중적으로 다뤘고, 미국 매체 베니티페어는 “낮은 목소리의 감각”이 이번 비엔날레 전반을 관통한다고 분석했다. 한국관은 올해 비엔날레 구조 속에서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어냈다. ‘덜 대표하는 방식’으로 국가주의적 틀을 흔들며, 예술이 국가를 넘어선 연대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국가 브랜드 대신 관계와 공존, 해방 이후의 미완 상태를 낮은 목소리로 호출했지만, 그것이 제도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소음을 키우지 않고도 시대를 관통하는 전시. 올해 처음으로 벤치를 놓고 옥상까지 개방한 한국관 ‘해방공간’은 국가관 사이의 경쟁보다 공존의 감각을 상상하는 또 하나의 광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는 ‘예술의 축제’라기보다, 국가주의와 정치적 갈등 속에서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9일 공식 개막해 11월 22일까지 이어진다. 2026/05/11
분홍 심장, 푸른 동물…고상우의 공존 미학 푸른 화면 속, 동물들은 우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고통을 외면해 왔는가. 상처 입은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중심 사회의 폭력을 되묻는 전시가 열린다 사비나미술관에서 5월 2일 개막하는 고상우 기획전 ‘스틸 브리딩: 아직 숨 쉬고 있다(Still Breathing)’는 인간의 욕망과 시스템 속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미술로 상처 입은 동물을 위로하는 전시 제목 ‘스틸 브리딩’은 단순한 상태의 묘사가 아니다.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이 문장은 꺼지지 않는 생명의 의지이자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품는다.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숨을 이어가는 존재들을 통해 이번 전시는 묻는다. 우리는 어떤 생명들을 외면해 왔으며, 그 침묵에 어떤 방식으로 가담해 왔는가. ◆푸른색 네거티브 기법으로 드러낸 생명의 서사 사진작가이자 현대미술가인 고상우(48)는 ‘인간과 생물 다양성을 이루는 종들과의 공존’이라는 세계관을 예술로 실천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사진과 퍼포먼스를 전공한 그는 사진, 퍼포먼스, 회화, 디지털 드로잉 등 장르를 넘나들며 일관된 메시지를 구축해왔다. 그의 시그니처인 네거티브 필름 효과를 활용한 ‘푸른색 반전 기법’을 통해 현실을 낯설게 뒤집는다. 이 기법은 1990년대 후반 미국 유학 시절, 자신의 피부색이 파란색으로 반전되어 보이는 경험에서 출발해 2001년 자화상 ‘꽃을 든 남자’를 통해 알려졌다. 이후 멸종위기 동물 시리즈로 확장되며 작가를 대표하는 조형 언어로 자리 잡았다. 고상우의 ‘블루’는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타자의 시선에서 비롯된 감각이다. 이민자로 살았던 어린 시절, 언어와 문화, 피부색의 차이를 체감하며 그는 늘 ‘바깥의 사람’으로 존재했다. 그 경험은 약자를 향한 시선으로 이어졌고, 인간을 향하던 관심은 동물로 확장됐다. 작가는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운 존재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서커스단에서 구조된 동물을 본 경험이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 속 동물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보호받았어야 할 존재들이다. 2022년 발표한 ‘운명’은 이러한 시선이 응축된 작업이다. 한국전쟁과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사라진 생명의 흔적을 추적해 복원한 이 작품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눈동자는 재현을 넘어 존재에 대한 애도이자 기억의 호출로 작동한다. 푸른 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분홍빛 하트는 고상우 작업의 핵심 장치다. 차갑고 깊은 색감 속에 놓인 작은 하트는 강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 하트는 장식이 아니다. 상처 입은 존재의 중심에 남아 있는 감정,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온기를 상징한다. 차가운 세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감각, 끝내 꺼지지 않는 어떤 마음에 가깝다. 또한 그의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동물들의 눈이다. 화면 속 동물들은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시선의 방향을 뒤집는다. 가로·세로 150㎝에 달하는 대형 화면 속 눈빛은 쉽게 피할 수 없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은 질문이 된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 혹은 누구에게 바라보이고 있는가. 이 응시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선언이다. 동물 역시 감각하고 기억하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존엄과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환기한다. 인간 중심적 위계에 균열을 내는 이 장치는 강렬하다. 동물은 더 이상 열등한 종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로 다시 호출된다. 이번 전시는 거시적 담론에서 나아가 개별 생명의 구체적인 서사에 집중한다. 화장품 실험에 사용되는 토끼 ‘랄프’, 탈출을 시도했던 얼룩말 ‘세로’, 밀렵을 피해 뿔을 제거당한 코뿔소 ‘디혼’ 등 상처 입은 존재들은 더 이상 사례가 아닌 하나의 얼굴을 가진 생명으로 다가온다. ◆청주동물원 협업…현실과 맞닿은 예술 청주동물원과의 협업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축이다. 실제 보호와 치료를 받고 있는 동물의 삶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예술이 현실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표작 ‘하나(하나·Hana)’는 선천적 부리 기형으로 구조된 독수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청주동물원에서 날카로운 눈빛의 ‘하나’와 마주한 순간, 맹금류의 본능 깊은 곳에 자리한 광활한 하늘을 향한 갈망을 읽어냈다. 그 감각은 작품의 조형 언어로 번역된다. 푸른 화면 속에서 분홍빛 하트를 품은 노란 눈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붙든다. 상처 입고 보호 아래 놓인 조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비상의 본능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하늘을 향하는 존재의 모습은 보호와 존엄, 회복과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경계 위에서 드러난 공존의 가능성 고상우는 세계자연기금(WWF)과 협력해 백령도와 가로림만 일대에서 점박이물범을 기록해왔다. 북방한계선(NLL)이라는 군사적 긴장의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물범의 모습은 인간이 만든 경계의 인위성을 드러낸다. 대표작 ‘국경 없는 얼굴들 2026’, ‘경계선 2026’은 분단의 바다 한가운데서도 지속되는 생명과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긴장과 대립의 상징인 공간이, 물범에게는 오히려 위협이 적고 먹이가 풍부한 생존의 공간이 된다. 이 역설은 우리가 만든 경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게 한다. 이 전시는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응답을 요청한다. 가장 약한 존재의 곁에 서는 일, 그리고 보이지 않던 고통을 인식하는 일이다. ‘스틸 브리딩’은 애도의 문장이 아니라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신호다. 예술은 보게 하고, 느끼게 하고, 결국 행동하게 만든다. 그 힘은 지금, 우리의 선택을 향하고 있다. 전시는 사비나미술관 2층과 5층에서 5월 30일까지 열린다. 2026/04/30
‘농부의 아들’ 이배, 숯으로 쌓은 염원…뮤지엄 산, 첫 한국 작가 조명 “나는 농부의 아들입니다.” 숯을 쌓고, 흙을 갈고, 검정을 세운 작가 이배(70)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정체성으로 돌아갔다. 강원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열린 개인전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지난 3년간 20여 차례 미술관을 오가며 준비한 이번 전시는 그에게 “나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6일 뮤지엄 산에서 만난 그는, 질문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40년 가까이 외국에서 떠돌며 작업하다 보니, 내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다시 묻게 됐습니다.” 그에게 작업은 캔버스 위의 표현이 아니라, 흙 → 나무 → 불 → 숯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몸으로 되짚는 행위다. “이번 전시는 근원에 대해, 다시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죠.” 숯은 더 이상 재료가 아니다. 이배라는 작가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숯의 작가’ 이배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외에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작품은 나오자마자 팔려나간다. 이른바 ‘품절 작가’다. 파리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1995년부터 '숯의 작가'로 떠올랐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3년 한국미술비평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하며 한국 화단에서도 인정 받았다. 2015년에는 유럽 최대의 동양예술품 박물관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독일 에스더 쉬퍼 갤러리 전속 합류 등을 통해 국제적 위상도 더욱 공고해졌다. 그가 30년간 붙들어온 ‘숯’은 소멸 이후 남은 물질에서 출발해, 시간과 존재를 사유하는 하나의 언어로 확장됐다. ◆ “화가를 반대했던 아버지…나는 농부의 아들이었다” 이배의 작업은 캔버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출발점은 논과 흙, 그리고 아버지의 기억이다. “아버지는 제가 화가가 되는 걸 굉장히 반대하셨습니다. 농부가 되기를 바라셨죠.” 경북 청도 출신인 그는 과수원을 일구던 아버지 아래서 자랐다. 아버지는 아들이 붓이 아닌 땅을 이어받기를 바랐다. 1982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파리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전시를 연 이배는 "이번 전시는 기도에 가까운 행위였다"고 표현했다. “저에게 굉장히 두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공간도 크고 개념적으로도 강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농부가 땅을 파면서 기도하듯이… 저도 그런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가 반복해서 언급한 ‘농부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은 이 지점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전시에서 흙을 직접 만지고 쓸어내는 퍼포먼스는 그래서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논에 물을 대고, 땅을 고르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때 그곳에서 자랐고 뛰어놀았죠. 그 기억이 이번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화가를 반대했던 아버지는 그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그때 저는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말을 아끼는 짧은 문장이었지만, 이번 전시가 왜 ‘근원’으로 향하는지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전시장 청조갤러리3은 이러한 정체성을 집약한 공간이다. 9m 높이 스크린 속 작가의 진심이 녹은 퍼포먼스와 청도에서 옮겨온 흙 설치가 결합되며, 땅·신체·시간이 하나의 순환 구조로 작동한다. ◆ “파리에서 무너진 정체성…숯이 시작이었다” 이배의 숯 작업은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됐다. “전 세계 문화가 모여 있는 곳이었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정체성의 혼란을 안겨준 공간이었습니다.” 문제는 ‘언어’였다. 서양 미술의 개념으로는 동양의 감각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수묵이나 먹, 여백 같은 개념은 정확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겸재 정선이나 추사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이해하지 못하지만, 미켈란젤로나 고야를 말하면 바로 통하죠.” 그 간극 속에서 숯은 하나의 해법이 됐다. ◆ “가난해서 시작한 숯…결국 나의 언어가 됐다” “물감을 살 수 없어서 바비큐용 숯을 샀습니다.” 우연한 선택은 작업의 방향을 바꿨다. “숯이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내가 말할 수 있는 방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숯은 먹처럼 동양적이면서도 물질성을 드러내는 매체다. 그에게 숯은 설명이 아니라 ‘직접 드러내는 언어’였다. “재료 자체가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는 동양성을 드러내는 것이 장벽이었지만, 지금은 확 달라졌다. 물질의 숯에서 동양의 정신 문화 숯으로, 이배의 숯으로 불린다. “이제는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가 됐습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 “30년 붙잡은 숯은 반복 아니다…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다” 이배에게 숯은 끝난 재료가 아니다. 불에 타고 남은 것, 그러나 동시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태다. “아직도 숯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불의 근원으로써 숯은 인간의 의도를 벗어났다, 그에게 숯은 완성된 언어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질문이다. ◆ “재앙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강원 고성 산불 현장을 직접 봤습니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스페인, 캐나다로 이어진 대형 산불. 숯은 더 이상 재료가 아니라 재앙 이후의 기억이 됐다. “우리는 재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의 숯은 이제 치유와 염원으로 나아간다. 야외에 세운 거대한 '숯 조형물'은 기념비가 아니라 염원이다. "다시는 이런 재앙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바람이 담겼다.” 검게 타다 남은 숯덩이 같은 나무들이 서 있는 장면은 압권이다. 약 10m 규모의 브론즈 ‘붓질(Brushstroke)’ 6점은 주변의 나무와 건축, 산세를 하나의 풍경으로 묶으며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조각의 표면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림 같은 조각을 할 수 없을까, 늘 생각합니다.” 덩어리가 아닌, 서체처럼 흐르는 표면. 그 조각은 부피가 아니라 불이 남긴 흔적으로, 탑처럼 쌓인다.“그 조각으로 인해 산과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이 더 잘 보이면 좋겠다”며 “예술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처음의 만남이다. 생소해도, 예술이기에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란 무엇인지, 예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며 “그래서 더 순수해지려 노력한다”고 했다. ◆ 공간 전체를 걷는 전시…‘보는 것’에서 ‘경험’으로 이번 전시는 공간 전체를 따라 이동하며 완성된다. 입구의 거대한 숯덩이 묶음 ‘불로부터(Issu du feu)’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어지는 서체 같은 ‘붓질’ 회화는 유연하게 흐르며 고요한 울림을 남긴다. 청조갤러리 1, 2는 ‘White’와 ‘Black’로 나뉜다. 검정은 모든 색을 품은 심연, 흰색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가능성이다. 안도 타다오 건축물과 어우러진 회화, 조각, 설치, 영상까지, 작가의 작업은 전례 없는 스케일로 펼쳐진다. 그러나 이 전시는 ‘보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관람객이 공간을 따라 걷고, 작품 사이를 통과할 때 비로소 예술과 자연은 하나의 경험으로 완성된다. “제게 뮤지엄 산은 현대적인 수도원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엇을 보려 하기보다, 천천히 이 공간을 지나며 무언가를 느끼길 바랍니다.” 전시 제목 ‘기다리며’는 완성 이전, 생성 직전의 시간을 의미한다. 뮤지엄 산이 이배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관 이후 해외 작가 중심의 전시를 이어온 뮤지엄 산이 처음으로 한국 작가를 전면에 내세운 기획이다. 뮤지엄 산 안영주 관장은 “해외 거장들만 전시하던 기획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 작가를 조명하자는 방향 속에서 작품성과 동시대성을 갖춘 작가로 이배를 선택했다”며 “3년간의 준비 끝에 완성된 전시”라고 밝혔다. 숯이라는 가장 단순한 물질에서 출발한 이배의 작업은 이제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강력한 조형 언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는 K-아트의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서체적 추상 회화에서 대형 설치로 확장된 그의 작업은 이미 유럽 미술계에서 검증된 언어다. 그러나 이 같은 규모와 밀도의 전시는 여전히 국내 공공미술관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뒤늦게 국내에서 재소환되는 흐름이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다시 불러내야 하는가. 이배의 이번 전시는 이 질문도 다시 꺼내고 있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2026/04/06
“달항아리는 이제 블루칩이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하다. 기울어진 균형, 미세한 흔들림, 그리고 비어 있는 중심. 18세기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뉴욕에서 다시 한 번 가격의 궤도를 밀어 올렸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가 24일(현지시간) 진행한 ‘아시아 위크 세일’에서 높이와 지름이 각각 42.5cm에 이르는 대형 달항아리가 318만 달러(한화 약 43억원)에 낙찰됐다. 당초 추정가(100만~200만 달러)를 크게 웃돈 결과다. 달항아리는 원래 완벽할 수 없는 그릇이다. 위아래 반구를 이어 붙이는 제작 방식 탓에 중심은 미묘하게 어긋나고, 표면은 균일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틈, 그 어긋남이 이 도자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결핍처럼 보이는 요소가 오히려 형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 비대칭의 조형은 동양의 미학적 전통, 특히 와비사비와 맞닿아 있다.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각. 달항아리는 그 철학을 가장 간결한 형태로 구현한 오브제다. 시장도 이를 읽고 있다. 크리스티는 2007년 127만 달러, 2023년 456만 달러(한화 60억원), 지난해 283만 달러, 그리고 올해 318만 달러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보였다. 이는 일시적 상승이 아니라 가격대의 재편이다. 고점 이후 급락이 아닌, 일정 구간을 형성하며 다시 상승을 시도하는 전형적인 ‘블루칩’ 자산의 궤적이다. 이번 작품은 일본을 거쳐 출품된 대형 기물로, 안정적인 비례와 뛰어난 발색을 갖춘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컬렉터 시장에서 검증된 이력과 희소성이 더해지며 경쟁을 끌어올렸다. 조선의 달항아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창적 도자기다. 문화유산보호법으로 인해 국내 백자의 해외 반출은 제한적이지만, 해외에 남아 있던 작품들이 글로벌 경매를 통해 다시 조명되며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달항아리가 더 이상 ‘전통 공예’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색의 백자, 단순한 구형, 절제된 표면. 이 형식은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도 충분히 읽힌다. 미니멀리즘 조각과 나란히 놓여도 이질감이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여백과 긴장을 만들어낸다. 꾸밈 없이도 힘이 느껴지는 달항아리는 소박하고 담백한 절제미의 결정체다. 특히 지름 45cm 이상 대형 기물은 극히 드물다. 국보·보물로 지정된 작품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20여 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도자가 완벽한 기술을, 일본 도자가 장식과 의식을 향해 나아갔다면, 조선의 달항아리는 느슨한 균형과 비어 있는 중심을 택했다. 그 선택이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BTS RM이 사랑한 달항아리로 대중적 인지도 역시 높아졌다. 달항아리는 이제 단순한 고미술이 아니다. 형태의 철학이자, 감각의 언어이며, 동시에 가격을 견디는 자산이다. 그리고 시장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완벽하지 않은 그릇이, 가장 완전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다만 그 가치는 이제, 우리나라가 쉽게 가질 수 없는 '가격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거리를 뒤늦게 실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6/03/30
2만5000점 ‘냉장·자동화’…송영숙 관장, 뮤지엄한미 수장고 첫 공개 “유럽 미술관에서도 이 시설을 보러 오겠다고 연락이 옵니다.” 뮤지엄한미 송영숙 관장이 자동화된 수장고를 공개했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장고를 보는 사람들마다 놀란다”며 “사진 보존에 특화된 한미 수장고는 국제적 수준”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26일 기자들에게 깜짝 공개된 수장고는 층고 7m, 온도 4~5도, 습도 35%를 유지하는 냉장 보존 시스템이다. 송 관장은 “온도를 5도로 낮추면 사진 수명이 500년 이상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은 전시 공간보다 수장고가 중심입니다. 사진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수장고는 사진을 ‘미이라처럼’ 보존하는 장치에 가깝다. 국내에서는 드문 항온·항습 수장고로, 모든 작품에 QR코드가 부착돼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계절에 따라 온도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방식도 적용하고 있다. 자동화 시스템이 특징이다. 한미약품 생산라인에서 착안한 설비로, 작품 번호 입력이나 QR코드 인식만으로 사진을 자동 호출할 수 있다. 트레이 한 칸당 최대 200kg까지 수용 가능하며, 한 시스템에 70여 개 트레이가 적재된다. 현재 뮤지엄한미가 보유한 사진은 약 2만5000여 점. 이 가운데 40%가 역사사진과 빈티지 작품이다. 송 관장은 “국가 기관이 사지 않는 작품들이 많았다”며 "한미 사진 수장고는 대한민국의 국력"이라고 자신했다. 그동안 열정적인 사진 수집이 소문나자 박물관에도 넘기지 않는 작품들이 들어왔다. “사진은 박스를 통째로 사들이는 ‘묻지마’ 방식으로 모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고종 장례식과 왕실 사진 등 희귀 아카이브 상당수도 이 과정에서 확보됐다. 19세기 알부민 프린트(버지니아 울프의 할머니인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 작품)도 보관돼 있다. 미술관은 "알부민 프린트는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해 상설 전시가 어렵다"며 "이를 위해 일부 작품을 공개할 수 있는 개방형 수장고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 “AI 이미지엔 영혼 없다”…사진의 본질은 ‘시간’ “사진은 우리 어머니 때문에 처음 접했어요.” 송 관장은 사진과의 인연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의 평생 작업으로 이어졌다. 한미그룹 회장이자 사진가인 그는 1969년 숙명여대 재학 시절 ‘숙미회’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새한살롱 ‘남매전’으로 데뷔했고, 1980년 개인전 ‘폴라로이드 SX-70’에서 일상의 감정과 순간을 포착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주요 갤러리에서 전시를 이어오며 작업 세계를 확장해왔다. AI와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 사진의 의미를 묻자 답은 단호했다. “요즘 이미지들은 디테일은 있지만 마음이 없어요. 영혼이 없으면 아무리 정교해도 떠 있는 느낌입니다.” 그는 디지털 이미지를 “조합된 결과물”로 규정했다. “사진은 다릅니다. 시간의 축적이 있어요. 그 안에 역사성과 삶이 함께 쌓입니다.”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신념도 분명하다. “사진은 오리지널로 가야 합니다. 필름으로 찍고 암실에서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해요. 그 과정이 색감과 깊이를 만듭니다.” 1970~80년대 인스턴트 사진 작업 당시에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는 “결국 다 지나간다”며 “그래서 내가 선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관장은 현재 개인전 ‘Meditation on the Road 길 위에서’를 현대화랑에서 31일까지 열고 있다. SX-70 폴라로이드 필름 단종 이후, 인스턴트 컬러 필름 위에 회화적 개입을 더한 작업으로 필름 원본 250여 점과 대형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요즘은 화면으로만 작품을 보지만, 원본을 직접 보면 다릅니다. 가슴을 울리는 게 있어요.” 그는 사진의 본질을 ‘시간’으로 정의했다. “사진에는 시간이 쌓입니다. 그게 다른 어떤 이미지와도 다른 이유입니다.” ◆ ‘사진의 시간’…'육명심·홍순태·한정식·박영숙’전시 이 같은 집념은 전시로 이어진다. 송 관장이 직접 기획한 ‘육명심·홍순태·한정식·박영숙’전은 생전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을 기리는 자리다. 27일부터 삼청 본관에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육명심·홍순태·한정식·박영숙’전을 펼친다. 전시 제목은 정현종 시인의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에서 착안했다. 네 작가가 포착한 순간들을 오늘의 시선에서 다시 읽고, 그들의 삶과 작업을 기리는 자리다. 육명심은 ‘백민’ 연작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인물 군상을 기록했고, 홍순태는 ‘청계천’과 ‘서울’ 연작으로 50년에 걸친 도시의 변화를 담아냈다. 한정식은 ‘고요’ 연작에서 절제된 풍경을 통해 사유의 시간을 제시하며, 박영숙은 ‘36인의 포트레이트’를 통해 개인과 시대를 함께 기록했다. ◆ “사진 이후의 예술로”…뮤지엄한미의 확장 한편 뮤지엄한미는 2003년 (주)한미약품이 설립한 국내 최초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초기에는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한미약품 본사 19층에서 운영됐다. 전시·출판·교육을 통해 한국 사진의 기반을 구축해왔으며, 2009년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설립, 2012년 사진아카데미 개원 등 연구와 교육 영역을 확장했다. 2022년 삼청동으로 이전하며 ‘뮤지엄한미’로 재출범한 이후에는 비디오아트와 뉴미디어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26/03/26
33억 투입한 허스트 전시…국립현대미술관은 무엇을 보여주나 지난해 연말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을 달군 이름이 서울에 도착했다. 죽음을 진열해온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1)다. 미술관 최초로 정부 예산 33억 원이 투입된 이번 전시는 관람료를 8000원으로 인상하며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한물 갔다고 말하기엔 여전히 시끄럽다. 논쟁적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2)는 지금 무엇을 팔고 있는가. 국립현대미술관이 내건 전시 제목은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다. 이 문장은 그의 현재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낸다. 18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기자간담회는 그의 작품처럼 화려하지만 허무하게 끝났다. 그의 이름값에 몰린 100여 명의 취재진은 포토타임만 지켜봐야 했다. 이날 허스트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며 약 3분간 인사말을 한 뒤 5분간 촬영을 진행하고 자리를 떠났다. 미술관 측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으로 급히 출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스트는 짧게 말했다. “작품 자체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설명 대신 전시장에 놓인 작품과 노트를 보라고 했다. 영국에서 방한한 그는 짧은 일정 속에서도 ‘현대미술계 악동’다운 행보를 보였다. 별다른 발언 대신,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으로 존재를 각인시켰다. 급히 간담회장을 빠져나온 그는 작품 앞에서 몸을 던졌다. 혀를 내밀고, 바닥에 눕고,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사진기자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하나의 퍼포먼스를 남긴 채 한국을 떠났다. 허스트의 책을 출간하며 개인적 인연 속에서 이번 전시를 적극 추진한 김성희 관장은 그를 “현대미술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이름”이라 규정했다.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중심 인물이자 죽음과 욕망을 다뤄온 작가라는 설명과 함께, 이번 전시가 회고전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40년에 걸친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허스트는 이미 미술사에 등록된 작가다. 1988년 ‘프리즈’ 전시를 통해 YBA의 흐름을 이끌며 등장했고,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로 ‘죽음’을 하나의 이미지로 구축했다. 그 충격은 곧 브랜드가 됐다. 문제는 작품이 아니라 시점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반복 소비된 이미지들이 뒤늦게 서울에 도착했다는 인식이 따라붙는다. 한때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그의 작업이 이제는 ‘신선함’보다 ‘익숙함’으로 읽힌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허스트의 대표작을 집약적으로 선보인다. 상어와 동물 사체를 활용한 ‘내추럴 히스토리’, 다이아몬드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 약과 의학을 모티프로 한 ‘메디슨 캐비닛’ 시리즈 등 50여 점이 소개된다. 전시는 익숙한 그의 이미지를 충실히 재현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충격은 반복되며 스타일이 됐고, 이미지는 소비 가능한 기호로 자리 잡았다. 전시장에는 수족관 속 상어, 파리가 날아앉는 잘린 소머리, 다이아몬드 해골, 형형색색 알약과 점화 시리즈 등 대표작 50여 점이 소개된다. 하나의 브랜드처럼 굳어진 작업들은 죽음, 신념, 과학, 자본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믿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설명은 이제 하나의 관용구처럼 반복된다. 또 실제 운영됐던 레스토랑 ‘약국’을 옮긴 공간과 런던 작업실을 재현한 스튜디오도 함께 구성돼, 미완의 회화와 작업 도구까지 공개된다.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은 미국 뉴욕 컬렉터로부터 대여된 작품이다. 1991년 초기작인 상어는 빛바랜 부패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다. 푸른 포름알데히드도 끝내 봉인하지 못한 죽음의 형상이다. 반면 다이아몬드 해골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실제 치아를 남긴 두개골 위에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를 뒤덮은 작품은 여전히 찬란한 허무를 발산한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는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작품으로, 약 1000억 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비 날개로 구성된 푸른빛 삼면화도 눈길을 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이 작업은 잔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관람객의 시선을 붙든다. 전시장 내부에는 1998년 런던에서 운영됐던 레스토랑 ‘약국’을 재현한 공간도 마련됐다. 실제 약국으로 오해될 만큼 정교하게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의학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시각적 체계로 구축되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런던 작업실이 그대로 옮겨졌다. 미완의 회화와 작업 도구가 뒤섞인 공간은 작가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드러낸다. 그는 최근 분홍색 벚꽃 시리즈를 통해 회화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직접 연출한 그는 이 공간의 거울 위에 한글로 “대한민국 사랑해요”라는 문구를 남겼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가장 최근 작업일지도 모른다. 허스트는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했다. 골드스미스 대학교 재학 시절인 1988년 직접 기획한 전시 ‘프리즈’를 통해 주목받았다. 낡은 부두 창고를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작가들이 공간을 직접 연출하며 기업 후원을 이끌어낸 이 전시는 이후 YBA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는 곧 강렬한 작업으로 이름을 각인시켰다. 죽은 소의 머리와 파리 유충을 이용한 ‘천년’(1990),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를 통해 죽음을 시각화한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은 현대미술계에 강한 충격을 남겼다. 허스트의 관심은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태도와 믿음에 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영생을 꿈꾸고, 종교와 과학, 의학과 자본에 의지한다. 그는 이러한 믿음의 구조를 드러내며, 우리가 절대적이라 여겨온 가치들이 서로 닮아 있음을 질문해왔다. 이 지점이 허스트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철학적 위치다. 허스트는 창작에 머물지 않고 유통과 전시 시스템에도 개입해왔다. 작가가 경매사와 직접 거래한 사례, 레스토랑 ‘약국’ 운영,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행보는 미술 생태계의 구조를 실험한 시도로 평가되는 동시에, 그를 ‘장사꾼’으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낳았다. 허스트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은 블록버스터급 전시지만, 미리 공개된 구성은 새로운 제안이라기보다 기존 ‘허스트 브랜드’를 재배치한 방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작품 대부분이 글로벌 미술관과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된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특히 허스트가 10년의 공백을 깨고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화제를 모은 ‘믿을 수 없는 난파선에서 건진 보물’ 등 최근 주요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제외됐다. 미술관은 “전시의 결이 맞지 않아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술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약 5년 전부터 추진됐다. 이전과 달리 작가 측의 적극적인 협조로 작품 선정이 비교적 수월했으며, K-콘텐츠 확산과 함께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체감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지금 왜 허스트인가. 미술관은 “이미 미술사의 아이콘이 된 작가를 조망하는 것이 공공적 역할”이라며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평가가 축적된 대표작 중심의 전시가 동시대적 문제의식보다는 기존 명성을 재확인하는 데 머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논쟁 속에서도 이번 전시는 대중적 관심 속에 흥행이 예상된다. 지난해 ‘론 뮤익’ 전시(58만 명)에 이어 데이미언 허스트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 기획이라는 점에서다. 유행은 돌고 돈다. 20년 전 국내 미술관이 샤갈, 피카소 등 해외 명작전을 선보였다면, 최근에는 동시대 글로벌 작가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서울에서도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는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술관은 ‘원본 경험’의 가치를 강조한다. 학예사는 “이미지로 소비된 작품이라도 실물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다르다”고 말했다. 허스트의 작업이 예술과 자본,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다뤄온 만큼, 이를 몸으로 체감하는 전시라는 설명이다.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는 허스트의 말처럼, 이번 전시를 둘러싼 논의 역시 이어질 전망이다. 공공 미술관의 역할과 전시 기획 방향이 그 중심에 놓인다. 흥행과 담론 사이,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이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열린다. 2026/03/18
이우성, 인물에서 풍경으로…감정의 회화로 확장 “이 그림을 보고 나갔을 때, 뭔가 감정이 남았으면 좋겠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이우성(43)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는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는 인물 중심으로 전개해온 작가의 회화가 ‘풍경’으로 확장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3년만에 열린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와 전속계약 후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이우성의 작업에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인물이다. 그동안 친구와 가족, 일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작업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강대교, 종로3가역, 제주 애월과 성산일출봉 등 익숙한 장소를 호출하며 기억과 감각이 중첩된 풍경을 제시한다. 초기 작업이 구체적 인물과 시대적 서사를 통해 동시대 청년의 초상을 드러냈다면, 최근 작업은 인물의 정체성을 지우고 풍경 속 익명적 존재로 전환되며 존재론적 감각으로 확장된 변화를 보여준다. 풍경은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그 위에 시간의 흐름과 감정, 관계의 흔적이 겹쳐지며 하나의 복합적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구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띤다. 보랏빛 하늘과 물, 과장된 초록의 밀도 노을의 붉은 색 등 비현실적 색채는 특정 순간의 정서와 감각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풍경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니라, 경험된 시간의 집합으로 전환된다. 특히 인물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인간 같기도, 생명체 같기도 한 만화적 형상은 성별과 나이, 개별적 특징이 지워진 채 단순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인물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풍경 안으로 스며들게 한 결과에 가깝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우성은 이를 “누구도 아니지만 누구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사람을 그리는 데에는 부담이 있었어요. 아무리 그려도 실제와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성을 덜어낸 화면에서 인물은 초상이 아닌, 기억 속에 남은 감정의 형상으로 작동한다. 익명성과 낯섦이 공존하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정서를 환기한다. 인물의 노란 윤곽선은 이번 작업의 핵심 요소다. 작가는 “빛을 받았을 때 드러나는 실루엣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 윤곽선은 형태를 채우는 색이 아니라, 존재의 경계를 드러내는 빛의 흔적이다. 해가 지기 직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경계의 시간에 대한 관심 역시 화면 전반에 스며 있다. 물결과 구름, 인물의 이동은 곡선적 리듬으로 표현되며, 정적인 화면 속에서도 흐름과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 물결의 리듬은 겸재 정선의 산수에서 착안한 것으로, 전통적 풍경 감각을 동시대적으로 변주한 결과다. AI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그린다’는 행위의 밀도를 환기시키는 작업이다. 익숙한 구상회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감각은 오히려 새롭다. 이우성의 풍경은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분포하는 장면이다. 세밀하게 묘사된 도시와 자연 풍경 위에 단순화된 인물이 겹쳐지며, 현실과 감정의 이중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상반된 표현이 아니라, 이전 자화상을 그리던 시선의 연장선이다. 작가는 “눈을 그리듯 풍경을 들여다봤다”며 “풍경도 하나의 얼굴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결국 사람을 드러내기 위해 풍경을 그린 셈이다. 이러한 시선의 배경에는 어린 시절 즐겨 봤다는 쾨테 콜비츠와 뭉크, 신학철, 최민화 등 감정과 서사를 다뤄온 작가들, 그리고 신문 만평과 겸재 정선의 풍경까지 서로 다른 계보가 겹쳐져 있다. 이 이질적인 흐름은 그의 화면 안에서 교차한다. 그 결과 풍경은 재현이 아니라 감정이 작동하는 장면으로 변한다. 대형 걸개그림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2021)는 이러한 시선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Real DMZ Project)’ 커미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김포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 해물 선전마을 풍경을 담고 있다. 4m가 넘는 대형 화면에는 산속 마을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풍경은 한눈에 포착되지 않는다. 작가는 “애기봉에서 북쪽을 바라봤지만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쌍안경으로 봐야 했고, 그러면 또 전체를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화면을 확장했다. “북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지 상상하며 한 인물을 그렸다”며 “결국 이 작은 인물을 그리기 위해 큰 풍경을 그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화면 하단, 산길 가장자리에는 개미처럼 작게 그려진 한 인물이 서 있다. 보이지 않는 타자를 향해 서 있는 이 장면은, 성소수자이자 탈북자의 서사를 다룬 장영진의 소설 ‘붉은 넥타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감정의 표현 방식도 변화했다. 작가는 “이번 작업은 일기처럼 시작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 했다”고 말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분출하기보다, 시간 속에서 가라앉은 상태로 다루는 방식이다. 과거 ‘불’이 내면의 불안을 드러내는 이미지였다면, 이번 전시에서의 불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감정은 더 이상 분출되지 않고, 공유되는 상태로 이동한다. 이우성은 지난 15여 년간 ‘현재’라는 시간에 주목해온 작가다. 자화상에서 출발한 초기에는 불안과 분열의 정서를 강하게 드러냈고, 이후 실제 마주한 사람과 순간을 보다 밀도 있게 화면에 담아왔다. 작업에 더욱 몰두하며 그가 탐구해온 ‘현재’는 고정된 순간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중첩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성되는 감각이다. 결국 이우성의 회화는 ‘현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감각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이전보다 그리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은 풍경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제 작업을 보며 풍경의 상징이나 장소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만,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포착할 수 있는 시간의 밀도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유망작가로 학고재와의 5년 전속을 마치고 갤러리현대와 새롭게 전속을 맺은 그는, 청년작가에서 40대 작가로 이동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전업작가이지만 생활과 작업을 분리하지 않는 태도로 동시대의 감각을 화면에 반영해 나가고 있다. 약 40여 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개막 전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 작품은 예약과 판매가 이뤄지며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작품 가격은 100호 기준 1800만 원 선이다. 전시는 4월 26일까지 이어진다. ◆작가 이우성은? 1983년생으로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08년 첫 그룹전을 시작으로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서 전시를 이어왔다. 그동안 학고재(서울, 2023·2017), OCI미술관(서울, 2013), 서교예술실험센터(서울, 2012)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립타이완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기관에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년 OCI 영 크리에이티브 수상 작가로 선정됐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OCI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2026/03/17
“나는 나무예요”…91세 김윤신, 호암에서 다시 본 70년 조각 “나무는 바로 나입니다.” 구순을 넘긴 조각가 김윤신의 말은 단순한 비유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오히려 그 말이 가장 정확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11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한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한국 현대조각의 한 축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전시다. 동시에 한 조각가가 자연이라는 재료와 평생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조각들이다. 거칠게 절단된 면과 벌어진 틈, 다시 맞물린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나무의 껍질과 내부 결이 동시에 보이고 전기톱의 흔적도 숨기지 않는다. 김윤신의 조각은 완성된 형태라기보다 과정이 드러난 조각에 가깝다. 그는 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결과 색, 재료의 성질을 관찰하다 어느 순간 형상이 떠오르면 전기톱을 든다. 밑그림은 없다. 나무 안에 이미 존재하는 형태를 끌어낸다는 방식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자르고 나누고 작가와 재료가 하나가 되고, 그 만남 속에서 또 다른 존재가 탄생한다는 뜻이다. ◆죽은 나무를 다시 세우다 김윤신에게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1935년생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인 그는 전쟁 중 어머니와 함께 오빠들을 찾기 위해 시신이 쌓인 곳을 뒤집어 보며 가족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 기억은 훗날 죽은 나무를 다시 세우는 일과 이어진다. 그가 말한 또 하나의 장면도 있다. 전쟁 뒤 기름을 얻기 위해 뿌리째 거꾸로 파헤쳐진 소나무들이다. 그는 그 나무들을 친구처럼 느꼈다고 했다. 버려진 나무를 작품으로 남기는 것이 친구를 기억하는 마음이었다는 그의 말. 그 고백 앞에서 김윤신의 조각은 더 이상 단순한 추상이 아니다. 삶과 죽음, 상실과 복원, 그리고 기도의 흔적을 품은 조형이 된다. 어쩌면 그의 수직의 조각들은 쓰러진 것을 다시 세우려는 몸짓인지도 모른다. 갈라지고 맞물린 형상들은 오빠가 살아 있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기도를 닮아 있다. ◆남미에서 시작된 전기톱 조각 나무 조각 앞에 서면 묘한 장면이 떠오른다. 전기톱을 든 할머니가 나타난다. 나무들이 떨고 있다. 전기톱이 지나가고 나무는 갈라지고 맞물린다. SF 만화 같은 장면이지만 이것이 바로 조각가 김윤신의 하루다. 그러나 그 나무들 이미 죽은 나무들, 버려진 나무들이다. 전기톱은 나무를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다시 살리는 도구가 된다. 일명 '전기톱 할머니'가 지나간 자리에서 나무는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렇게 탄생한 조각이 김윤신이 평생 말해온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다. 김윤신의 작업 방식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게 된 것은 1983년 아르헨티나 이주 이후였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숲이 보였습니다. 한국은 산과 산 사이에 마을이 있는데 거기는 평야였습니다. 그 자연이 나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작업 환경이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작업실도, 재료도 부족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버려진 나무를 주워 작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목재였다. 남미의 나무는 한국에서 쓰던 조각 도구로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했다. 결국 그는 전기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기톱으로 절단한 나무의 결과 틈, 쪼개진 면은 그대로 작품에 남았다. 그 상처는 숨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조각의 생명력이 됐다. ◆돌과 회화로 확장된 작업 이번 전시는 나무조각뿐 아니라 돌조각과 회화까지 함께 보여준다. 1990년대 이후 그는 돌을 사용한 조각으로 재료의 범위를 넓혔다. 단단한 물질을 쪼개고 맞물리게 하는 방식 속에서 조각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색채와 기호가 등장한다. 삼각형, 지그재그 같은 문양은 남미 원주민 문화의 시각 언어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동시에 작가 자신의 기호 체계와 만난다. 이 무렵부터 조각과 회화는 서로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회화 연작 ‘영혼의 노래’에 나타나는 파동과 기호들은 조각의 리듬과 이어지고, 조각은 다시 회화적 표면을 얻는다. 2000년대 이후 김윤신의 조각에는 색채와 기호가 들어오며 조각과 회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조형 세계가 펼쳐진다. ◆잔잔한 리듬의 일상…런웨이 같은 전시 나무 작업이 총망라된 이번 전시는 그 양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 작업하는 사람의 일상처럼 잔잔하고 성실한 리듬으로 공간을 연출했다. 한 점 한 점이 축적의 결과라기보다 오늘도 작업실로 향했을 한 사람의 습관처럼 놓여 있다. 특히 2층 전시장은 런웨이처럼 길게 구성됐다. 관람객은 양쪽에 놓인 작품을 번갈아 응시하며 걷게 되는데, 그 동선은 마치 김윤신의 시간 위를 걷는 경험에 가깝다. 오래된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한 조각가의 열정이 그 공간을 밀고 간다. 이번 전시에만 170여 점이 나왔지만 작가가 남긴 작품은 현재 1500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5년 홍익대 조각과에 입학해 70여 년을 예술에 헌신해온 김윤신이 현재까지 제작한 작품은 평면과 입체를 아우른다. 이번 회고전에는 망실된 1960년대 이전의 작품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가장 초기작인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의 판화와 이후의 실험적인 평면작품들, 그리고 60대에 들어 몰입하기 시작한 다채로운 회화까지 선보인다. ◆코로나가 만든 ‘회화-조각’ 전시 후반부에 등장하는 채색 조각은 코로나 시기의 산물이다. 밖에 나갈 수 없고 재료도 떨어지던 시기, 그는 작업실에 남은 나무 조각들과 공사장에서 나온 폐목재들을 모아 조각을 만들고 그 위에 색을 입혔다. 그렇게 탄생한 작업은 조각이면서도 회화 같고, 회화이면서도 구조물 같다. 작은 캔버스들이 조립된 것 같은 이 형식에 그는 ‘회화-조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버려진 목재 위에 색을 칠하는 행위는 어린 시절 자연과 놀던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다. 쓸모를 다한 재료에 다시 숨을 넣는다는 점에서 이 작업 역시 김윤신 조각의 오랜 테마를 잇는다. ◆뒤늦게 시작된 국제적 조명 김윤신이 국제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프랑스 출신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가 70대 이후 재평가된 것과 비슷하게 그는 80세에 가까워서야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겪으며 성장한 그는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1964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공부했다. 1973년 이우환, 권영우, 김창열 등과 함께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했고 1974년에는 ‘한국여류조각회’를 창립하며 여성 조각가들의 활동 기반을 마련했다. 상명대 교수직도 버리고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그는 40년 가까이 남미에서 작업하며 독자적인 조각 세계를 구축했다. 수양딸인 김란 등 제자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귀국한 그는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개인전을 계기로 그의 작업은 국제갤러리, 리만머핀 전시 등을 통해 국내외 미술계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되며 국제적으로 재조명됐다. ◆호암미술관에서 다시 읽히는 K 조각가 김윤신 90대 '전기톱 할머니 조각가'의 이번 전시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호암미술관에서 한국 여성 조각가 개인전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 열린 여성 조각가 전시는 루이즈 부르주아였다. 호암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윤신 작가는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지만 호암미술관 전시를 계기로 그의 작품 평가는 전과 후가 달라질 것입니다. 살아 있는 ‘올드 파워’ 작가로서 한국 여성 조각가의 미술사적 의미를 국내외적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그런 선언에 걸맞다. 한국에서 출발해 파리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이어진 김윤신의 여정은 한 작가의 개인사에 머물지 않는다. 모더니즘이 어떻게 유럽의 발원지를 넘어 남미와 아시아의 자연, 신앙, 기억과 만나 다른 얼굴로 변형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던하면서도 원시적이고 자연적이면서도 구조적이며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이 조형 세계는 한국 현대미술 안에서도 쉽게 닮은 예를 찾기 어렵다. ◆작가가 꼽은 '원픽'은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특히 애정을 보인 작품은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1987-88'이다. 현재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으로 이번 전시에 특별 대여됐다. 이 작품은 김윤신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지 4년째에 제작한 조각이다. 안정감 있는 밑둥 위로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돌기들이 서로 다른 각도와 밀도로 맞물리며 올라가 마치 조각의 뼈대를 이루는 듯한 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작품은 관람자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하나의 응축된 몸체에서 굴곡이 풍부한 역동적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나무의 껍질과 심부를 넘나드는 시선은 나무의 결뿐 아니라 전기톱이 지나간 흔적까지 함께 읽어 들인다. 1984년 작품과 유사한 형식을 지니면서도 구조적으로 더욱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조형으로 발전한 이 조각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김윤신의 조형 세계가 원숙하게 심화됐음을 보여준다. ◆90대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 90대에도 계속 작업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짧게 답했다. “정신력입니다.” 이는 단순한 근성론이 아니다. 나무와 돌을 다루는 일은 노동이고 오랜 시간 재료를 응시하며 자기 안의 형상을 기다리는 일은 수행에 가깝다. 그는 “내 생각과 내 정신이 하나가 돼야 작업이 된다”고 말했다. "젊을 때는 형태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작품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김윤신의 조각은 손보다 정신이 먼저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됐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순간이 올 줄 몰랐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호암미술관에서 생애 첫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작가는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런 날이 올 줄 진짜 몰랐어요. 이건 사람이 만든 일이 아닙니다. 하늘이 준 기회입니다.” 이 말은 단지 겸손의 수사가 아니다. 그는 70년 가까이 작업해온 사람이고 현재까지 평면과 입체를 합쳐 1500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간이 이제야 도착한 것처럼 말한다. 그 늦은 도착의 감각이 오히려 깊은 울림을 만든다. 전기톱 자국이 남은 나무들, 쪼개진 뒤 맞물린 돌, 기호와 색을 입은 회화와 조각들. 모두가 한 사람의 평생을 관통한 같은 문장을 말하고 있다. “나는 나무예요.” 죽은 나무를 다시 세우고 버려진 것을 다시 생명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김윤신이 평생 해온 작업이다. “91세, 나이를 의식한 적이 없다”는 그는 지금도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꿈이요? 그냥 계속 작업하는 겁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마치 주문처럼 그 말을 되뇌며 또 하루를 조각한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열린다 2026/03/11
"1년 내 반환 시 80% 환불”…미술시장 새 실험 ‘아트서울’ 미술품을 샀다가 마음이 바뀌면 돌려줄 수 있을까. 마니프(MANIF) 아트서울 조직위원회가 디지털 플랫폼 기반 온라인 전시 ‘20!2026 ART SEOUL’을 열고, 작품 구매 후 1년 이내 환불 요청 시 구입가의 80%를 환급하는 ‘80% 개런티 제도’를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다. 개인 소장 작품까지 다시 거래할 수 있는 리마켓(재판매) 구조도 함께 운영한다. 4일 뉴시스와 만난 아트서울조직위원회 김영석 대표는 “미술시장은 작품을 팔 수는 있지만 다시 팔 수 있는 시장이 거의 없다”며 “작품이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아트서울’ 플랫폼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매 데이터를 보면 일부 작가만 거래가 되고 대부분 작가의 작품은 2차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번 ‘아트서울’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작가의 전시 무대와 판로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김 대표는 1995년 국내 최초로 ‘작가 군집형 아트페어’인 마니프를 창설해 ‘가격 정찰제’ 도입 등 미술시장 투명화 실험을 이어온 인물이다. 1993년 갤러리아미 대표로 국내 화랑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피악 아트페어(FIAC Art Fair)에 참가했으며, 1994년에는 바젤 아트페어에도 참여했다. 그는 2003년에는 월간 미술경제지 ‘아트프라이스(Art Price)’를 창간해 20여 년간 운영했다.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인가로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를 통해 미술품 가격 평가와 시장 데이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오프라인 아트페어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미술 유통 방식을 모색해왔다. 2025년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아트서울(artseoul.com)은 작품 판매와 재판매를 동시에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작품을 구매한 뒤 1년 이내 반환하면 구매 가격의 80%를 환급받는 구조로, 에스크로 계좌를 통한 안전 거래를 전제로 한다. 김 대표는 “구매자가 작품을 샀을 때 최소한 1년 동안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며 “고객은 취향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시장성과 작품성에 대한 구조는 플랫폼이 책임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 배분 구조도 기존 화랑 중심의 5대5가 아닌 작가 60%, 아트서울 40% 구조를 적용한다. 그는 “70% 환불은 손해라고 느끼지만 80%는 거의 다 돌려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구매 부담을 줄여 작품을 취향 중심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술 입문자들이 부담을 느끼는 환금성과 가격 투명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작품 가격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협력해 정찰가 방식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부르는 게 값’으로 인식되는 미술품 가격 구조 역시 미술시장 활성화와 가격 투명성 확보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미술품 판매 가격은 경매 낙찰가와 다른 경우가 많고, 낙찰가를 근거로 가격이 과도하게 오르거나 내려가는 사례도 발생한다. 작가 경력에 따라 가격이 일률적으로 상승하거나 화랑에서 호가와 판매가가 다른 이중 가격 구조 역시 시장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가격 구조 문제는 작품 가치 평가와 세금 문제로도 이어진다. 실제로 일부 원로 작가들이 상속세 부담 등을 우려해 생전에 작품을 폐기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는 현재 미술시장 구조의 문제로 작가 가격과 시장 가격의 괴리를 지적했다. “미술시장에는 두 가지 가격이 있습니다. 작가가 정하는 전시 가격과 경매에서 형성되는 거래 가격입니다. 경매 가격은 기록으로 남지만 전시 가격은 작가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미술품 시장이 위축되는 가장 큰 요인은 불안정한 가격 체계와 저조한 환금성”이라며 “80% 개런티는 미술 애호가의 입문 문턱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장치”라고 말했다. 또 작품이 반환될 경우 작가 역시 가격 조정이나 작품 방향을 다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지난 5년간 이 플랫폼 개발에 몰두했으며, 지난해 ‘티마니프 서울’로 첫 선을 보였다. ‘아트서울’ 섹션은 1000만원 이하 중저가 원화 작품을 소개하는 온라인 군집 개인전 형식으로 운영된다. 작가별 전시 이력과 평론, 작가 노트, 작품 이미지 등을 ‘아트레조네’ 시스템으로 축적해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 역할을 수행하도록 구성했다. 또 작가의 창작 계보와 활동 이력을 정리하는 ‘화계도(畵系圖)’ 개념을 도입하고 작품 이미지와 보증서에 블록체인 기반 인증 시스템을 적용했다. 플랫폼에서는 개인이 소장한 작품도 리마켓에 등록할 수 있다. 판매자는 희망 가격을 제시해 작품을 올릴 수 있으며 시장 가격과 괴리가 큰 경우 플랫폼이 가격 조정 방안을 안내한다. 또한 지난해 오픈한 ‘티마니프(t-MANIF)’ 섹션도 운영한다. 티마니프는 에디션 12점 한정 판매, 프리미엄 피그먼트 프린트, 블록체인 기반 작품 보증서, 구매자 텍스트 입력이 가능한 디지털 포스트카드 제공, 이모티콘 16종 포함 등 디지털 기반 콘텐츠를 선보인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미술품 구매가 여전히 투자 중심으로 인식되는 점도 지적했다. “그림을 사면 얼마 오르느냐를 먼저 묻습니다. 그래서 구매자가 신뢰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번 제도의 목표는 가격 상승 기대보다 취향 중심의 컬렉팅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집이나 화랑 수장고에 있는 작품도 다시 거래될 수 있어야 한다”며 “작품이 순환되지 않으면 시장 밖으로 이탈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리마켓 운영에서 변수로 꼽히는 위작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반 중고 거래와 달리 미술품은 진위 확인이 중요하다”며 “1차 자료를 받아 검증 과정을 거친 뒤 플랫폼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내 미술시장의 또 다른 문제로 가격 정보 부족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림 가격을 모르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시장 가격이 8000만원 수준인데 3억원에 거래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작품 사진과 정보를 보내면 최근 거래를 기준으로 시장 가격을 안내하는 상담 서비스도 운영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이번 시도를 미술시장 구조 변화를 위한 실험이라고 강조했다. 아트페어 기획자이지만 김영석 대표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10회 경력의 작가이기도 하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신여대 미술대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며 “다만 지금은 시장 구조가 따라주지 않는다. 작가와 컬렉터가 편안하게 작품을 소장하고, 필요할 때 자유롭게 다시 되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20!2026 ART SEOUL’에는 총 65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온라인 전시는 오는 16일부터 4월 13일까지 진행된다. 참여 작가는 고민철, 구자승, 권영범, 권의철, 권치규, 김경민, 김경자, 김리윤, 김리현, 김만근, 김미혜, 김선기, 김성복, 김수수, 김숙, 김영선, 김운규, 김일해, 김재학, 김정희, 김주철, 김준, 김현일, 남궁원, 남여주, 류영도, 박강정, 박동수, 박영인, 박지오, 박창범, 손일, 심지혜, 안용선, 양화정, 엄윤숙, 엄윤영, 오용길, 유종욱, 유휴열, 윤옥순, 윤정수, 이강화, 이경우, 이명화, 이범헌, 이영박, 이정웅, 이창수, 임근우, 장동문, 장석수, 장욱희, 정규순, 정병헌, 정성희, 조안석, 채성숙, 최송대, 최양선, 콜트카미, 한명욱, 한은주, 황신영 등이다. 2026/03/04
“한국화는 빼기가 안 돼요”…오용길 화백, ‘봄의 기운’ 벚꽃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분홍빛은 화사하지만 화면은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화가 오용길(79· 이화여대 명예교수) 화백의 산수는 계절의 정취보다 붓의 태도를 먼저 드러낸다. 작은 차이를 축적해 온 필선, 우연을 허용하되 구조를 놓지 않는 계산이 화면을 지탱한다. 그는 장르 구분에 선을 긋는다. “동양화냐 서양화냐, 그건 나한텐 의미가 없어요.” 지필묵을 기반으로 하지만 공간 개념과 조형 감각은 서양화의 시각을 끌어온다. 여백을 비워두기보다 화면을 밀도 있게 채운다. 유채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수채화처럼 보인다는 반응도 있지만, 그는 차이를 ‘필선’과 ‘종이’에서 찾는다. “유화는 더하고 빼고가 다 되는데, 한국화는 빼기가 안 되는 거예요. 더하기는 돼도 빼기가 안 돼.” 먹과 물이 한지에 스며들면 다시 걷어낼 수 없다. 그래서 한 번의 선택이 곧 결과가 된다. 그는 작품을 거의 한 붓으로 완성한다. 세필을 여러 번 쓴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번의 붓질 안에서 농담과 속도를 조절한다. 붓을 떼지 않고 힘을 누르고 풀며 화면의 밀도를 만든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밑그림을 그린다. “안 그러면 100전 100패죠.” 3일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만난 그는 누구보다 먼저 봄을 화폭에 옮긴 사람처럼 환한 표정이었다. 55년째 수묵채색화의 한길을 걷고 있는 그는 “아직 건강하다”며 “늘 그리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전시장에는 20여 점이 걸렸다. 화면은 빛을 머금은 인상파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벚꽃은 화사하게 번지고 색채는 유연하게 겹쳐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먹의 선이 단단히 구조를 잡고 있다. 분홍빛의 부드러움 아래 계산된 필선이 놓여 있다. “너무 조심스러우면 안 돼요. 위축되면 안 되고.” 그의 풍경은 실경이면서도 구성이다. “자연을 그대로 그리면 그림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고 조정을 해야 돼요.” 경남 산청 용원정 등 이번 전시에 등장한 벚꽃 풍경 역시 가을에 본 장면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봄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축적된 벚꽃의 기억을 재구성한 결과다. “봄을 보고 그린 게 아니에요. 제 머릿속에 있는 벚꽃은 수도 없이 그렸으니까… 안 보고도 만들 수 있죠.” 한지와 화선지의 물성에 대한 그의 설명은 단호하다. “내가 화낸다고 재료가 따라오진 않아요. 내가 거기에 맞춰줘야지.” 우연을 허용하되 방치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그의 화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그의 30번째 개인전이다. “벌써 30회라니,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뜻이겠지요.” 웃으며 말했지만 화면에는 시간의 두께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는 지난해 화가로서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됐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안 해줘요.” 한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라 여겼지만, “나도 한번 대접받고 싶더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55년. 한지와 먹, 붓을 붙들고 보낸 시간이다. 그는 매년 꽃도, 나무도 다르다고 했다. “감동을 주려면 화폭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그의 작업 태도를 요약한다. 묵묵하고 담담한 그의 태도는 기운생동의 수묵 필치로 번져, 꽃향기처럼 은은하게 시선을 붙든다. 오용길이 말하는 ‘성공한 그림’은 관람자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화면이다. “사람이 지나가다가 ‘야 멋있어’ 하면 가까이 가서 보고 싶잖아요. 그림도 그래요. 쓱 보고 패스하면 감동이 없는 거예요.” 그는 관람자의 감각 역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감성이 메말라 있으면 아무리 잘해도 감동을 못 준다”는 말은, 결국 그림과 관람자가 맺는 관계의 문제다. 익숙한 벚꽃과 한옥, 산수라는 소재는 관람자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화면을 붙드는 것은 화려한 색이 아니라 필선의 밀도다. 벚꽃은 흩날리지만 화면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산수는 ‘옛날 그림 같다’는 인상을 넘어, 성실하게 쌓아온 작업의 태도에서 기운생동한다. 여든의 나이지만 그 태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우리 그림의 계보를 겸재 정선에서 잇는다. 전통의 후예라는 자부심 역시 분명하다. “수묵화가 점점 잊혀가는 시대지만, 우리 그림을 끝까지 제가 담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9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을 포함해 우리 산천을 담은 대작 전시를 준비 중이다. 전시는 18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