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은 국력...박생광·박래현 ‘위대한 만남’ "박생광과 박래현은 매우 평가절하되어 있다." 국내 미술시장 호황 속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각광받는 단색화를 비롯해 서양화 장르가 대세인 시대다. 상대적으로 한국화 장르는 존재감이 미약한 현실이다. 같은 시대를 풍미한 서양화 한국화의 대표 작가 작품의 경제적 가치는 수십 배에서 수백 배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단지 미술시장 유통 구조 이전에 미술사적 담론의 측면에서도 한국화의 위기로 진단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현대 채색화의 무한한 확장성과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 주목된다. 한국화 대가 내고 박생광(1904~1985)과 우향 박래현(1920~1976) 2인전-위대한 만남전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전관에서 7일 개막한 전시는 '위대한 만남' 타이틀처럼 두 화가가 남긴 '위대한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박생광의 작품 181점과 박래현 작품 88점 등 총 269점이 걸렸다. 전시장을 압도한 채 빼곡히 걸린 작품들은 그야말로 '한국화란 이런 것'이라고 증명하는 모습 같다. 한국화의 미래를 위해 40여 년간 개인이 소장해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전시다. 전시를 주최한 주영갤러리(조영무 대표)는 "해방 전후 동시대를 함께 한 대표적인 한국화가인 두 작가는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비전’을 일궈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화의 잠재적 역량을 재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생광·박래현 위대한 만남' 위대한 걸작 269점 전시 박생광 작품 181점과 박래현 작품 88점 등 총 269점이 선보인 전시는 미술사 교과서 같다. 그간 논문이나 도록 등에서 소개됐지만 실물이 공개된 적은 많지 않았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방대한 작품 수를 자랑한다. 작가별로 200호(약 가로 240, 세로 180cm)가 넘는 대작부터 대표적인 중소품까지 150여 점의 원화가 나왔다. 특히 쉽게 보기 힘든 박생광의 스케치 100점이 포함되어 있어 작품 특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작가별 특성을 고려해 관람 동선을 만들었다. 박생광 작품은 소재별로 구분했고, 박래현은 시대순으로 작품의 변모 과정을 보여준다. 박생광이 1980년대 강렬한 인상의 채색화 작업이 절대적인 중심을 차지했다면, 박래현은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개별적인 특성을 고르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인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김윤섭 대표는 "한국적인 색감이 지닌 강렬한 인상을 독창적이고 확고한 조형언어로 재탄생시킨 박생광 화백은 ‘전통적 미감을 기반으로 한 현대채색화의 가능성’을, 수묵과 채색, 구상과 추상, 판화와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넘나든 박래현 화백은 ‘현대 한국화의 무한한 확장성과 비전’을 명징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우향 박래현:대표작 '단장'부터 200호 대작 '이른 아침' 등 원화 75점 한자리' 박래현의 작품 세계는 어떻게 한국화의 현대성을 모색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 총독상 수상작인 '단장'과 김기창 화백과 함께 부부전에 출품됐던 '부엉이' 등 박래현의 88점 중 원화가 75점, 스케치 13점이 전시됐다. 특히 수간채색 기법을 활용한 특유의 번짐 효과는 시대를 넘어선 현대적 미감을 자아낸다. 1967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참석을 계기로 중남미여행과 1973년까지 뉴욕에 체류하며 익힌 태피스트리(7점)나 판화(23점) 및 콜라주(2점)도 한 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 우향 박래현은 평안남도 진남포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1940년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에 이어 1943년 작품 '단장'으로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수상했다. 1974년 제6회 신사임당상,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성신여자사범대학교 동양화과 교수(1966~1967)를 역임했다. 남편은 '청록산수'로 유명한 운보 김기창이다. 생전 남편과 함께 동양화(한국화)의 전통적 관념을 타파하고, 판화·태피스트리(직물공예) 등 다양한 기법과 매체를 활용해 여성 특유의 감성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주목 받았다. 특히 섬세한 설채(設彩)와 수간채색, 면 분할에 의한 독창적인 화면구성을 통해 끊임없이 조형적 실험에 매진했다. 박래현 화백은 생전 “예술은 본디 마음의 휴식처를 제공하고 주변 환경을 좀 더 아름답게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 처럼 작품은 순수미술을 기반으로 장식미술과 생활미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중남미의 토기, 아메리카 원주민의 편물, 중국 고대 청동기, 우리의 백자, 토기, 소반, 맷방석, 떡살 등에서도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 작품의 소재나 부분적 문양 혹은 패턴으로 응용한 부분이 이채롭다. ◆박생광:오방색 화려한 무속시리즈부터 스케치 100여 점까지 박생광 작품 181점은 원화 71점, 스케치 100점, 기타(연하장·도자화·글씨) 10점을 공개했다. 채색화 중심의 작품을 십장생, 불교, 모속, 용과 범, 모란, 단청 등 소재별로 구분해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박생광은 한국 채색화의 대가로 손꼽힌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호는 내고(乃古), '그대로'라른 뜻을 담고 있다. 자신의 색채와 미감이 ‘그 자체로 한국적인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믿음’으로 한글 ‘그대로’를 호로 사용했다.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다녔으며 이 시기에 한국 불교계의 거목 청담스님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1920년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지금의 교토예술대학)에서 일본 화단의 ‘근대 교토파’라고 불렸던 다케우치 세이호우(竹內炳鳳), 무라카미 가가쿠(村上華岳) 등에게 새로운 감각의 일본화를 배웠다. 해방을 맞아 귀국 후에는 진주에 머물다가 서울의 홍익대에 재직하면서 진채(塡彩)를 사용하여 민속, 불교, 무속 등의 다양한 한국적인 소재를 독창적인 조형어법으로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박생광 작품은 크게 수련기(1950년대 후반기), 추상화 시기(1950년대 후반~1974년), 2차 일본시기(1974년~1977년), 한국적 미감의 전성기(1977년 이후) 등으로 구분된다. 1980년대 백상기념관(1981년)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1984년) 전시 등을 통해 한국화단에 큰 반향과 새로운 채색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작품에서 색채는 강렬함을 넘어서 신기, 광기 어린 ‘경이로움의 채색화’로 보여진다. 1982년 인도 성지순례를 마친 이후 말년의 작품들은 ‘박생광 스타일을 완성시킨 대표작’으로 꼽힌다. 1985년 파리 그랑팔레미술관 '르 살롱-85' 특별 초대전에 참여해 세계 미술계에 한국 채색화를 드높였다. 한때 '왜색 화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투철한 예술가적 창작 의지와 실험정신으로 확고하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뤄냈다. ◆한국화 '위대한 만남' 미술사적 재조명...아카이브존 운영·강연회도 이번 '위대한 만남'전은 소외된 한국 현대미술의 그림자를 밝히고, 미술품의 공공적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다. 한국화의 새로운 비전을 재조명한다는 취지와 함께 전문 필진이 두 화가를 미술사적으로 재조명한 도록도 발간했다.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가 박생광 작가와 작품을 분석했고, 송희경 이화여대 초빙교수가 박래현의 작품세계를 시대에 따라 깊이 있게 조명했다. 미술계 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승현 홍익대 외래교수와 한국문화산업연구소 황규성 대표가 각각 두 화백의 작품을 해석한 글도 담았다. 전시 기간 중 이승현과 황규성 필자를 비롯해,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역임한 최웅철 웅갤러리 대표가 특별 강사로 나선 강연회도 열린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협력한 작가들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존도 운영한다. 그림 명상실도 마련됐다. 박래현의 1960년 전후 대표적인 작품과, 같은 시대 생산된 빈티지 가구에 앉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 아이프칠드런과 함께 문화소외계층을 초청해 무료 관람을 제공해 문화 향유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하는 전시로 열린다. 역대급 한류 흑자 달성으로 K 콘텐츠는 수출 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K-아트도 K-팝 못잖게 국격을 높이는 K-콘텐츠다. 미술품은 국력이다. 우리 그림, 한국화의 저력을 다시 한번 살펴볼 때다. 전시는 29일까지. 2023/03/08
아이돌 군단처럼 등장한 조선백자들 뭉클…"역시 리움미술관" "와~이럴수가 있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조선 백자들이 마치 아이돌 군단 같은 위용을 뽐낸다. 위엄과 품격, 세련된 변화와 혁신의 풍모다. 검은 공간에 나란히 줄지어 조명빛을 받은 백자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우리의 전통', '우리의 얼'의 자존심을 위풍당당하게 보여 뭉클함까지 전한다. 리움미술관이 조선백자 명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전이 28일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리움미술관이 2004년에 개관한 이래 도자기 만을 주제로 기획한 첫 특별전이다. 국가지정문화재 59점 (국보18점, 보물 41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국보 10점, 보물 21점)과 일본에 소재한 수준급 백자 34점을 포함하여 총 185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그간 장식기법이나 주요 기종에 맞추어 소개되어온 조선백자 전시와는 다르다. 방대한 조선백자를 총괄하여 소개하는 동시에 그 안에 투영된 조선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함께 살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파노라마같은 전시...조선백자 42점 한눈에 펼쳐지도록 가벽 모두 없애 조선백자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더 면밀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 전시장 연출이 환상적이다. 하이라이트인 1부 전시장은 들어서는 순간 최고의 조선백자 42점이 한 눈에 펼쳐진다. 전시장 가벽을 모두 없앤 효과다. 도자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사방을 유리로 제작한 쇼케이스를 사용하고 작품을 고정하는 지지대도 간소화했다. ‘청화백자’, ‘철화·동화백자’, ‘순백자’로 장식기법과 제작지역으로 구분하여 총 4부로 구성됐다. ▲청화백자’에서는 품격과 자기 수양의 의지, ▲‘철화·동화백자’는 곤궁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굳센 마음, ▲‘순백자’에서는 바름과 선함으로 조명한다. 특히 조선백자 안에 조선사람들이 이상적 인간상으로 여기던 ‘군자(君子)’의 풍모가 담겨있다는 해석을 더하여 조선백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감상법을 전한다. ◆조선백자 절정...국보 보물 한자리 1부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절반이 넘는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 등 최고 명품 42점을 한 공간에 모아 이번 전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 초기 청화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널리 알려진 ▲'백자청자 매죽문 호'(국보), 고려의 매병에서 조선의 호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백자청화 홍치명 송죽문 호'(국보), 특유의 강렬한 색과 묵직한 힘으로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백자철화 포도문 호'(국보) 등을 선보인다. 조선의 절제된 화려함과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조형감각이 빚어낸 수작인 ▲'백자청화철재동채 초충난국문 병'(국보), 조선초기 백자가 가진 순백의 아름다움과 품격 높은 기형을 두루 갖춘 ▲'백자 개호'(국보), 생활의 미를 추구하며 티 없이 깨끗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백자 달항아리'(보물) 등도 만날 수 있다. 2부는 높이 60cm가 넘는 크기로 현존하는 용이 그려진 항아리 중 가장 큰 크기인 ▲'백자청화 운룡문 호', 소나무와 매화의 세부적인 표현과 안료의 농담 활용이 뛰어난 ▲'백자청화 송매문 호' 등이 전시된다. 3부에서는 ▲‘백자철화 운룡문 호’ 중 최대 크기로 힘찬 용의 표현과 박력있는 구름이 인상적인 ▲'백자철화 운룡문 호', 꽃 모양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으로 그리고 뒷면에 가지와 너른 잎들을 여백을 두고 표현하여 인상적인▲ '백자철화 초화문 호' 등은 청화백자와는 또 다른 품격을 선보인다. 4부에서는 흰 눈같이 맑고 청명하다가 우윳빛 같기도 하고 푸른빛이 반짝거리는 벽옥 같은 색을 선보이는 순백자의 고요하게 응축된 색을 만나 볼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백자 호'는 눈처럼 흰 빛깔로 단정하고 산뜻한 순백을 보여주고, 조선 후기의 ▲'백자양각 연판문 병;은 몸체를 깎아 표현한 3중의 연꽃 잎과 음각선으로 표현한 잎맥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청초한 색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선보인다. 전시를 담당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조선백자의 최고 명품부터 수수한 서민의 그릇까지 백자의 다양한 면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라며 “아름다운 문양과 같은 외적인 형식과 의식을 반영한 형태와 같은 내적인 본질이 잘 조화된 조선백자의 진정한 매력을 ‘군자’의 덕목과 연결시켜 새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국내 8개 기관(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부산박물관, 호림박물관, 간송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동국대학교박물관)과 일본 6개 기관(도쿄국립박물관, 일본민예관, 이데미츠미술관,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 야마토문화관, 고려미술관) 등이 참여하여 다채로운 작품이 출품됐다. 특히 우수한 한국 도자 컬렉션을 보유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특별협력기관으로서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전시장 입구와 내부에 리움 DID가 설치되어 한 눈에 보기 어려운 백자의 무늬를 한 폭의 그림처럼 평면으로 펼쳐서 보여준다. '역시 리움미술관 전시는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관람은 무료다.(단 관람 2주 전부터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다) 전시는 5월 28일까지. 2023/02/24
팔순 '아무것도 아닌'...성능경 '예술행각' 재개 ‘예술은 착란의 그림자‘(2001), ’예술은 무광의 아우라’(2001), ‘어디 예술 아닌 것 없소’(2007). 그의 어록은 세월이 지날수록 생생하다. 성능경(79). '한국 미술의 1세대 전위예술가'다. 이 수식어는 유행이 지나고 잊혀도 그를 되살려내는 힘이다. 1970년대를 풍미했다. 지금은 뒤로 그리는 그림 '하트'로 유명한 이건용 작가와 한패였다. 단색조 회화가 국내 화단을 지배하던 1970년대 초 전위미술로 화단을 깜짝 놀라켰다. ST그룹 회원으로 Space and Time의 약자인 모임 답게 공간과 시간이라는 개념을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성능경의 대표작은 '신문 오리기 퍼포먼스'다. '1974. 6. 1 이후'라는 제목으로 벽면에 하얀 패널 4장 준비하고, 신문을 네 장 붙이고, 매일 가서 기사만 오려내는 '이벤트'였다. 신문과 사진 등의 매체를 주로 활용해 주제를 전달하는 그의 작업은 탈장르적인 개념미술로 분류된다. 시대에 따라서는 권력에 대한 저항, 신체 회복의 표현, 일상에 대한 주목이다. ◆한국미술 1세대 전위예술가..."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그는 비주류의 개념미술가, 망친 모더니즘 미술의 독보적인 존재다. 1974년 유신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시기, 통제와 억압에 대해 비판하는 '조용한 반항'을 온 몸으로 전하는 자생적인 '개념미술' 선구자였다. 체제 비판적 성향은 여전하다. 지난 2015년 윤진섭이 기획한 '한국미술의 거장 3인의 동거동락(同居同樂)'전에서 김구림 이건용화 함께한 성능경은 '사색당파' 작품으로 한국 정치를 겨냥하며 자유로운 정치 발언과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현실을 야유하기도 했다. 1세대 전위예술가로 유명세를 탔지만 세월은 급변했다. 80년대 민중미술 대세속 성능경에 참혹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하지만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배우 고 강수연의 말은 그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작가로서 상업적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2015년 남산한옥골 전시때 성능경을 만난 윤진섭 평론가가 '그 배고픈 시절 극심한 공항장애를 겪고 정신병원 통원치료까지도 했는데 돈이 되는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봤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내 예술이 중요했어요. 예술을 한다고 해서 돈 버는 게 나쁠 건 하나도 없죠. 돈 버는 게 왜 나쁘겠습니까. 다만 예술로 돈을 벌고자 했을 때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영어로 창녀라는 글자인prostitute의 두 번 째 뜻이 뭐냐면, “돈을 위해서 예술의식을 굽히는 화가”라고 나와 있어요. 언어라는 게 다 역사성이 있는 거 아닙니까? 내가 돈을 목적으로 예술 행위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prostitute가 되는 지름길인 거죠. 그런데 그런 지름길을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내가 예술가라고 타인에게 명칭을 부여받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조금 탈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려서 파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다만 그것만이 목적이 되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팔순 생애 두 번째 상업화랑서 개인전...사진·퍼포먼스 작가 자존감 팔순이 된 성능경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 백아트(BAIK Art) 서울에서 성능경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을 시작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5월 국립현대미술관 단체전,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전, 2024년 2월부터는 로스앤젤레스의 해머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린다. '성능경의 예술행각'을 펼치는 백아트 서울 전시는 그의 상업화랑에서 생애 두번째 전시다. 1991년 대구 삼덕갤러리에서 개인전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을 가졌지만, 그의 아방가르드 미술은 미술계의 관심을 받는 대상이 아니었다. 미술관에서는 개인전을 했지만 다 합쳐도 개인전은 55년간 겨우 5회에 불과하다. 2009년에서야 생전 처음 아르코 미술관에 작품을 판매했다는 놀라운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물론 29년간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켰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인이 든든한 후원자로 곁을 지킨 덕분이다. 상업적 성공과 거리가 먼 것은 작업 탓(?)이기도 하다. 주로 사진 매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에디션이 없는 유니크 피스(Unique Piece)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로 스캔을 받아서, 에디션을 생산할 수는 있지만 작가는 이것은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본다. ◆예술은 꿈꾸는 자유...55년간 파격 충격 퍼포먼스 그는 지난 55년 한번도 작업을 멈춘 적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신작을 작업하고 있다. 그래서 보여줄 작품도 많다. 그동안 170여 회의 퍼포먼스는 '성능경'이라는 이름 석자를 재생하며 부활하기를 거듭했다. 검은 팬티 한 장만 입고, 권투 선수와 같은 붉은 가운을 걸친 작가가 부채와 여행 가방을 들고 전시장에 입장하면서 시작되는 퍼포먼스는 웃음과 동시에 교감하는 예술로 치환된다. 성능경 개념미술은 천박성으로 힘을 낸다. 조수진 미술사학자는 "70~80년대 정신적인 것의 추구에 몰두하던 당대 주류미술과는 대조되는, 그것의 일상적인 성격에서 비롯되었다"며 "그의 예술의 개념은 신문을 읽고, 먹고, 운동하고, 담배 피우는 등의 인간 삶의 수행에 뿌리를 두었기에 서구식도, 일본식도 아닌 성능경만의 개념이었다"고 평가했다. 퍼포먼스의 즐거움은 아픔 뒤에 찾아왔다. 1990년대 잠시 공황장애를 앓았는데,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하루에 응급실에 3번 실려가기도 했을 정도였다. 1980년대에 미술가로서 전시할 기회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오히려 전시가 많았던 1990년대에 아팠던 것에 대해 작가는 숨겨두었던 마음의 병이 드러났던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아프고 나서 퍼포먼스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삶이 힘들지, 예술은 쉽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예술은 빈사상태이거나 폐기처분되었다. 나는 그런 예술을 치유하고 소생시키기 위해 삶을 모험하면서 아직 예술 아닌 것을 찾아 나선다"고 했다. "예를 든다면 신문 읽기·오리기, 돈 세기, 스트레칭 하기, 사탕·콜라·케이크·떡 먹기, 이빨 쑤시기, 줄넘기, 경구·신문 일상영어 읽기, 광고·영화 카피 읽기, 훌라후프 하기, 아령 하기, 고무줄 새총으로 탁구공 쏘기, 트렁크 끌고 다니기, baby oil 바르기, 박박 긁기, 부채질하기, 옷 갈아입기, 폴라로이드 촬영하기, 오줌 누기·마시기, 신문의 일상영어 읽기, 면도크림 바르기, 자위행위하기, 구음하기, 물구나무서기 등등인데 이는 삶의 일상에서 발굴된 망각의 파편들이다.” 지금도 예술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일으킬 것 같은 그의 작업은 기행 같은 행각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아무것도 아닌 듯’ 하던 성능경의 예술행각은 이제 와 돌아보니, 거대한 의미의 숲을 이룬 것"이라며 "고수의 수에 넘어갔다"고 했다. ◆백아트서울 전시...'아무것도 아닌 듯…' 주목 성능경의 '예술행각'을 전시 타이틀로 쓴 건 55년간 스님처럼 도 닦듯 한 '탁발행각'에서 차용했다. 백아트 서울 전에서는 1970~1980년대 초반의 대표적인 오리지널 사진 작품들부터 최근작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끽연'(1976), '수축과 팽창'(1976), '손'(1976) 등과 백두산 생수병을 이용한 '백두산'(2018),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2003-2018)' 연작, 여전히 매일 작업하고 있는 '밑 그림'(2020) 연작 등을 선보인다. 특히 '그날그날 영어'는 수년간 신문에 연재되었던 영어 교육 섹션을 스크랩하고, 여기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을 남기고 그림을 남긴 연작이다. 초기에는 심플한 형태를 보였으나, 점차 글자와 콜라주가 정교해지고 한 장의 또 다른 작품이 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개막일인 22일 오후 5시 성능경의 진짜 퍼포먼스가 열린다. “야! 이 나이에 똑같은 거 하기도 어렵다." 즉흥 이벤트와 대중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위들로 충격을 선사한 퍼포먼스 뚝심 대가는 여전히 '싱싱한 악동'이다. “나는 살아 있는 예술로써 여러분의 피부와 골수에 소름 돋게-끼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의도이고 그것이 내 예술의 힘이다.” 전시는 4월30일까지. 2023/02/22
색으로 드러난 정주영...그림의 기후 '생생화화' 미술은 생생화화(生生化化)다. 와~ 이 그림, 보라빛 아우라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감각을 열어준 것일까? 소름도 올라온다. 새털 같은 붓질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일렁이는 그림은 색감으로 압도한다. 산등성이 같기도 하고 뭔지 모를 형상은 알고 보면 뜻밖이다. "어느 여름날 만났던 '먹구름'이 지나간 하늘이에요." '몹시 검은 구름'의 아름다운 변신은 무죄. 색으로 '생생화화'한 구름은 시간과 붓질이 짜여진 공간이다. 교묘한 환상을 직조해낸 정주영 작가는 "매일매일 변화무쌍한 하늘과 구름, 그 형태가 없는 혼돈의 근간이자 모호함을 색으로 치환했다"고 했다.('빛은 색이니, 그림자는 색의 결핍'이라고 했던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의 기법이 스며있다.) 먹구름이 보랏빛으로 나온 건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먹구름은 굉장한, 특별한 회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빨노파' 3원색을 섞으면 회색이 되는데 거기에 명도를 높여 흰색을 섞고, 옅은 분홍색, 파랑색을 덧칠한 색들의 중첩에서 나온 색입니다." 이전 산의 풍경을 그려온 작가의 대변신은 성공적이다. 신작 '기상학 연작'은 색이 도드라지는 변화로 '산의 작가'가 맞아? 할 정도다. "예전 작품에 색이 억제되어 있었다면 이번엔 모든 색을 겹치고 지우고 다시 만들어내는 과정이 작품을 만들어냈죠. 감각에 대한 것도 관람객에게 감성적으로 직관적으로 갈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밝은 색감의 정서는 물론 코로나 사태 영향이기도 하고요." 2017년 이후 갤러리현대에서 6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은 '그림의 기후'전으로 펼친다. '산-풍경’ 시리즈 중 '알프스' 연작의 최신작과 ‘기상학’을 주제로 산 너머의 하늘과 구름, 대기 등의 풍경으로 시선을 넓힌 새로운 연작까지 60여 점을 소개한다. 색의 변화로 시간 계절 날씨의 변화를 기록했다. 작품의 '생생화화'는 직관의 힘이다. 북한산, 인왕산, 도봉산, 알프스 까지 직접 가서 보고 들어내고 드러낸 '풍경의 초상'이다. '그림의 기후'전의 출발점에는 '알프스' 연작이 초심이 담겨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뾰족한 봉우리들과 빙하가 어우러진 일대를 2006년 답사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촬영한 사진 자료와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2018년부터 '알프스' 연작이 시작됐다. 지각변동과 침식작용 끝에 생겨난 절묘한 형상과 마그네슘, 칼슘, 철 등이 함유되어 있어 붉은색을 띠는 암석을 그리다 인식과 감각의 전환을 맞이한다. "산의 모습에서 사람의 얼굴과 손, 다리 등 신체의 일부가 연상 되더라고요." 빙하가 녹아있는 알프스 연작은 그래서 살포시 포갠 거대한 손가락이 보이기도 하고, '뼈미남' 같은 건장한 체구의 몸선도 드러난다. '알프스'에서 마주한 웅대하고 낭만주의적인 하늘 풍경은 ‘기상학’을 주제로 새롭게 선보인 하늘 연작과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알프스'연작을 준비하며 계절과 시간을 나타내는 하늘에 처음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변화의 상태가 더 긴박하게 다가왔고, 예상치 못한 사고의 전환을 갖게 됐죠." 하늘과 구름, 일몰 일출...실체가 없지만 우리 눈앞에 분명히 펼쳐지는 이 풍경들의 존재감은 작가 특유의 선묘적인 필법이 무기다. 경계 없고 한계 없는 풍경을 색으로 끄집어낸 건 작가의 '긋기' 내공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리드미컬한 색색의 선들의 흔적이 오로라 현상까지 전한다. "일몰의 순간, 장엄함 레퀴엠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빨리 뜨고 빨리 지지만 느린 시간처럼 지나가는 그 일몰의 경험을 색으로 치환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해서 나왔죠. 그렇다고 단박에 그려진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아랫부분이 파랗게, 위에는 빨간색으로 칠했는데, 칠하기를 덧칠하기를 반복하면 색깔이 바뀌어 집니다. 위로 아래로 옆에서 옆으로 겹쳐 칠하면 지우는 것과 같아져요." 겹침과 혼돈의 수많은 붓질이 만든 몽환적인 색감의 화면은 경쾌하고 산뜻하다. 마치 수채화나 오일 파스텔의 흔적처럼 보이지만 기름 섞은 유화로 제작됐다. 캔버스가 아닌 린넨에 그린 덕분이기도 하다. 전시의 부제인 ‘Meteorologica’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공기와 물, 땅에 관한 여러 기후 현상들을 관찰하고 이를 자연 철학적으로 기술한 책 '기상학(Meteorology)'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연작의 제목이 'M'으로 시작하는 이유다. 기상학(Meteorology)의 이니셜 M을 사용해 작가가 그린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의 기후를 색으로 포착해낸 정주영의 신작은 오랜만에 '그림 보는 맛'을 전한다. '고정관념이 멍청이를 만드는 거야'(故 정주영 회장 어록)라는 말 처럼 '색화'된 수행적인 붓질의 무게가 보여준다. '우리의 삶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도 여전히 새롭고 나날이 새로운(생생화화 生生化化)인식과 정신의 지평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전시는 3월26일까지. ◆정주영 작가는? 1969년 서울 출생으로 1992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1997년 독일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 네덜란드 드 아뜰리에를 졸업했다.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얀 디베츠(Jan Dibbets)교수로부터 마이스터슐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누크갤러리(2021), 이목화랑(2020), 갤러리현대(2017, 2013), 몽인아트센터(2010), 갤러리 175(2006), 아트선재센터(2002), 금호미술관(1999)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신세계 갤러리, 아트선재센터, 몽인아트센터, 경기도 미술관, 대구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3/02/15
복선을 넘은 색채의 쾌감…홍승혜 "20년 만에 네모 감옥 탈출" 국제갤러리에 먼저 봄이 왔다. 노랑, 파랑,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 색채가 천진하게 난만하다. 9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홍승혜 작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보여준다.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물들입니다." 9일 국제갤러리 서울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마티스가 스승"이라며 "색채가 주는 기쁨을 오마주 했다"고 말했다. 어린이 유치원 같기도 한 전시장은 알록달록 색채의 향연이다. 전시장 1관에 노랑색 파란색으로 칠한 벽은 마티스에게 헌정하는 벽화다. 말년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벽면 가득 장식하던 마티스의 파피에 데쿠페(papier découpé)를 기리며 1관 각 방의 벽면 모서리를 오려낸 '레몬 자르기(Le Citron découpé/Homage à Matisse)'와 '하늘 자르기(Le ciel découpé/Homage à Matisse)'를 제시한다. 이전 흑백의 사람, 계단 등 픽셀 작업과 달리 색채로 채워진 면과 선 드로잉들은 막힘이 없다. 단순해 보이지만 묘한 리듬감이 공간을 흔들고 있다. "유기적인 형태죠. 풀, 꽃을 그리던 시절로 돌아갔어요. 20년 만의 (네모)감옥 탈출이기도 해요." 2004년 국제갤러리에서 연 '복선伏線을 넘어서(Over the Layers)'의 2탄으로 펼친 이번 전시는 '네모의 그리드'에서 탈출한 해방감을 전한다. 픽셀 기반의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모양새의 도형으로 '아마추어' 같은 정직한 노동의 즐거움을 보여준다. 별 꽃 타원 등으로 나온 평면 작업들은 새롭게 배운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에서 나온 작품이다. 작가는 '일러스트 연습장'이라고 했다. 독특한 가구처럼 보이는 작품도 "하다 보니 나왔다." 모든 게 유기적인 형태로 무계획적으로 나왔다는 작품들이지만 반듯하고 단정하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하나도 어긋남이 없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나이가 들고 보니 자연스러움도 충분히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가치를 깨달았다"고 했다. 화가지만 표현하고 싶은 게 없었고 그릴게 없어 오히려 색을 칠할 때 마음이 편했다는 그는 1997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붓을 버리고 픽셀로 구성된 자신만의 무대를 꾸준히 확장해 왔다. "추상적인 상태, 순수한 형태, 그 위치에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미술 그 자체, 구조적인 측면에 관심이 있었어요." 홍승혜 작업 특징은 ‘유기적 기하학’. 어렵게 들리는 이 말에 대해 작가는 '조형적인 쾌(快)'라는 말로 설명했다. "'마티스가 정물이나 풍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상들이 화면들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했던 것처럼 저도 공간과 공간에 들어가 있는 대상이 맺는 관계들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디스플레이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작가에게 결국 유기적 기하학의 논리는 '근원적인 예술론이자 삶의 방식'이다. 그는 "백지에서 싹이 돋는다"면서 "예측 불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내 안에 있었던 형태"라고 했다. "물감 하나를 툭 떨어뜨려 놓아도 아름다운 것 처럼, 그 공간에서 주는 울림을 전하고 싶어요." 디자인을 융합해 순수 미술의 금기를 깨트린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이미지들이 '쾌'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여긴다. "어디에 놓여 있고 배경에 무슨 색이 있고 오브제가 어떻게 놓여 있을 때가 쾌적한가의 그 조형 자체, 공간을 장악해가는 '조형적인 쾌'가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 동화책 한 권을 20번씩 읽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는 작가는 유년기의 추억이 사고를 지배한다며 환갑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소녀 감성을 보였다. 이번 전시 제목도 1939년 빅터 플레밍 감독의 '오즈의 마법사' 영화 주제가 ‘Somewhere Over the Rainbow’에서 착안했다. 순수한 미술 조형물 뿐 아니라 테이블과 조명 기구 등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러 오브제가 유희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3관에 선보인 전시는 홍승혜표 작업의 총합으로 무도회장 같은 분위기를 선사한다. 표지판 같던 픽셀의 사람들이 입체화되고 오르골 같은 음악소리와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무대는 그야말로 '인스타 각' 인증을 부르는 장면이다. 공간을 구축한 유기적 기하학 추상이 실천되는 공간이자 낮과 밤을 장악한 색채의 쾌감을 전한다. 3월19일까지. ◆홍승혜 작가는?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사각 픽셀을 조합, 분해, 반복하여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증식시켜왔다. 모니터에서 탄생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점차 실재의 공간으로 나와 평면, 입체, 애니메이션, 가구, 건축으로 확장되며 조형적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1959년 서울 출생으로 198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1986년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부터 현재까지 '유기적 기하학'(국제갤러리, 1997), '광장사각廣場四角'(아뜰리에 에르메스, 2012), '회상回想'(국제갤러리, 2014), '점·선·면'(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6)을 비롯하여 30여 회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1997년 토탈 미술상, 2007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성곡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3/02/09
리움미술관에 웬 노숙자?...누군가 동전을 놓고 갔다 "돈을 줘야 하는 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는 아저씨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거의 '노숙자급' 분위기의 아저씨 옆에는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와 100원짜리 동전 2개가 바닥에 놓여있다. 주변은 "진짜 사람인가, 아닌가"로 '호기심 천국'이 열렸다. 사실 노숙자급 아저씨는 조각 작품이다. 이미 소문을 듣고 온 관람객도 바구니까지 놓인 작품 앞에서 멈칫했다. "동전이 없는데"라며 주머니를 뒤지기도 했다. 배낭을 옆에 붙인 채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기둥에 기댄 아저씨는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발길을 붙잡지만 그 옆의 플라스틱 바구니는 그의 것이 아니다. 미술관 관계자는 "언제 누가 놓고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누군가의 짖궂은 장난이지만 동정심의 발로로 보여진다. 미술관에 웬 노숙자? 라는 의아함이 드는 것부터 이 작품 감상의 시작이다. ‘현대미술계 악동’으로 불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의도다.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다.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그는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고 했다 리움 미술관 입구부터 웅크리고 드러누운 노숙자로 출발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는 문턱 높은 미술관의 환상을 깬다. 철저한 경호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지만, 우아하게 드나드는 전시장 입구에서 사회적 제지와 금기에 대한 의식이 작동된다. 한 관람객은 "처음엔 왜?라는 생각이 들다가 왜 미술관에 노숙자가 누워있으면 안되는데? 이 생각이 들고 그러다 이 겨울 노숙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까지 다양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동훈이와 준호'로 명명된 노숙자 한 쌍의 작품 제목도 화제다. 누군가가 연상되지만 의도는 아니다. 작가는 전시 될 때마다 그 나라의 흔한 이름을 붙이고, 이번에도 역시 한국의 평범한 이름을 골랐다고 한다. 굳이 특정하자면 로비에 웅크린 노숙자가 준호, 밖에 누워있는 노숙자가 동훈이로 누가 누구인지 특정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게 작가 설명이다. 새해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사람들을 홀리고 있다. 카텔란 얼굴로 마치 1인극처럼 펼친 전시는 소외된 것들을 다시 보게 하고 권위에 유쾌하게 도발하는 고품격 파격을 보여준다. 기이하고 천진하게, 또는 기가 막히고 헛헛하게 동시대 정치 사회 미술계를 찌르는 마우리치오는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 받고 있다.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는 자신을 '미술계의 침입자’로 규정하며 작품이 나올때마다 첨예한 토론을 유발하게 한다. 뭐 그렇다고 도덕적 합리성이나 계몽적 이상을 설파하는 예술가의 역할은 거부한다는게 작가의 입장이다.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을 꿇은 히틀러, 12만 달러에 팔렸다는 덕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등 카텔란의 대표작 38점이 모두 나와 있어 전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규모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연 작가의 대형 전시다. 블랙 코미디로 미술계에 도발해온 그는 천진한 아이 같은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하고 있다. 그의 모습을 한 조각은 너무나 사실적인 피부와 손가락 발가락이 귀여움으로 무장 사랑스러울 정도다. 카텔란의 조각들을 보다보면 진짜 사람들이 가짜로 보이기도 한다. 전시장 곳곳에 모여있는 비둘기들에도 움찔하지만 진짜가 아니다. 카텔란은 베니스를 찾는 관람객들을 비둘기떼로 비유하며 '투어리스트'로 박제 비둘기들을 만들었고 이번엔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다. 전시장 난간에서 바닥에서 떼지어 있는 비둘기들은 마치 우리를 관찰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진짜와 가짜가 혼재하는 전시장 속에서 정신 차리라는 듯 가끔 천장에서 울리는 북치는 소년의 북소리가 신선하기도 하다. 고정관념을 깨고 동시대 정치 사회 이슈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그는 관람객에게는 관대하다.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보든 상관 없다"며 열린 자세를 취한 그는 이번 전시에도 아량을 베풀었다. '작품에 가까이 가지 마시오' 라는 무언의 작품 보호라인이나 경보 센서를 두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장은 널린 좌판처럼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세계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를 볼 수 있다는 데에 미술인들은 높아진 한국 미술 위상을 실감한다는 분위기다. 특히 무료 전시로 선사하는 리움미술관의 '포용적 미술관' 변신도 주목받고 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던 삼성미술관 리움은 지난 2021년 10월8일 재개관했다. 2004년 문을 연 리움미술관은 고 이건희 부인인 홍라희(77) 여사가 관장으로 일하다 2017년 3월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이어 홍 전 관장의 여동생인 홍라영 총괄 부관장도 사퇴해 전시 일정도 차질을 빚은 바 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된 데 이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는 등 그룹 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4년 간 기획전 없이 상설전으로 운영됐다. 현재 리움미술관은 이서현(49)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미술관장 격인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는 7월16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지만 온라인으로 사전예약해야 한다. 2023/02/01
무라카미 다카시 말고 이우환, 부산시립미술관 '키다리 아저씨' 모든 이야기는 무한하게 변화하는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다. "부산에 왔다" 1월 초 빅뱅 지드래곤(35) 인스타에 공개된 무라카미 다카시(61)의 인사 영상 배경이 밝혀졌다. 26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막한 그의 개인전 첫 장면은 '727 드래곤', 그러니까 지드래곤 '권지용 컬렉션' 그림으로 시작된다. 다카시가 '부산에 왔다'고 신고할 만큼 지드래곤은 그의 슈퍼 컬렉터다. 6~7년 전 '빅뱅 시대'에 지드래곤 뮤직비디오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결을 같이했다. 컬러풀한 꽃잎을 가진 캐릭터를 지드래곤이 모자로 쓰면서 인기몰이한 다카시의 '스마일 꽃' 캐릭터는 '꽃방석'을 짝퉁 세계화 시키기도 했다. 빅뱅 멤버들이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며 '미술 세계'에 눈 떴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들이 어떤 작품을 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었다. 이번 다카시의 전시처럼 앞으로 K팝의 전사들이 세계미술시장 큰 손으로 드러날 것 같은 예감이다. (이 전시에는 빅뱅 탑의 소장품도 있다) 전시장 입구를 막은 듯 거대하게 걸린 지드래곤 소장품 '727 드래곤'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가로 3m 세로 4.5m 크기로 그의 상징과 특징이 모두 녹아 있다. 다카시를 뜨게 한 '도브( DOB)캐릭터'가 변형된 작품이다. 미키마우스 같은데 이상한 귀여움이 작렬했던 도브는 이 작품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12세기 일본의 유명한 시기산의 전설 에마키(Shigisan Engi Emaki, 信貴山縁起絵巻)에서 영감을 받은 구름을 결합한 작업이다. 2018년에 그린 그림으로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서구와 일본 등을 평평한 구조로 해석한 ‘슈퍼플랫(Superfla)'의 정신을 기괴하게 뿜어낸다. ◆'오타쿠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도쿄예술대 일본화 1호 박사 무라카미 다카시는 영리한 '일본화' 작가다. 인형같은 그림과 현란한 색에 홀려 귀엽다고 다가섰다가 '헉 이게 뭐야!'하고 기겁하게 하는 그림이다. 그는 1993년 도쿄 예술대학 일본화과가 배출한 일본화 1호 박사다. 어릴적 만화광이었다는 그는 스스로 '오타쿠 예술가'로 칭하며 부상했다. 천박한 소비문화와 성 도착 현상 등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귀엽고 환상적이고 묵시론적인 '신 일본화'를 창출했다. 2002년 루이비통에 디자이너로 영입되면서 세계적인 인물로 주가를 경신했고 피규어 등 키덜트 상품을 양산했다. 170억 원이 넘는 작품(My Lonesome Cowboy)부터 피규어, 티셔츠, 인형, 슬리퍼 등의 상품까지 '일상속 예술'을 지배하고 있다. 2008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안에 들기도 했다. 일본 우키요에나 금박을 붙인 회화에서 영감을 받고 서양 현대 회화의 '평면성'과 섞어,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인 '슈퍼플랫'을 만들었다. 2002년 게이사이 아트페어를 세워 12년간 운영, 지금은 월드 스타가 된 아야코 로카쿠를 배출했고 '카이 카이 키키'라는 아트그룹을 설립 MR 등 후배들을 키워내 '아시아의 앤디워홀'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유행이 지난걸까? 아트와 상품의 경계를 넘고 넘은 그의 전략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NFT 바람을 타고 제작한 디지털 아트도 죽을 쒀 판매를 중단했던 그는 영화 '해파리의 눈' 2탄까지 말아 먹고 2년전 "저 거덜났어요"라고 인스타에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이제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아트 상품'같다. 대규모 회고전을 꾸민 이번 전시도 아트페어나 경매장, 또는 명품 컬래버레이션 같은 매장 분위기다. 부산에 온 무라카미 다카시는 천진난만했다. 기자들을 끌고 다니며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하는 그는 '카이카이키키'스럽다.(우리말로 ‘괴괴기기(怪怪奇奇)’란 말로 ‘무섭지만 매력을 준다’는 의미다.) 너무 유명해서 식상하기까지 한 작품 대신 그는 스스로 작품이 되기로 한 듯 했다. 분홍색 젤리피시 인형 모자를 쓰고 나타나 두 손바닥을 펼쳐 내미는가 하면 발한쪽 발을 들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포즈를 취했다. 10년 전 서울 플라토 전시에서 양복을 입고 등장해 '오타쿠 꼰대' 같았던 모습은 이제 덥수룩한 수염과 거친 머릿결로 노숙자나 교주 그 사이의 분위기를 풍겼다. 자신감은 여전했다. 뉴욕 모마에서 연 전시가 역대급 관람객을 동원한 것처럼 이번 전시도 부산시립미술관 역대급 전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술과 상업사이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미술관 문턱을 낮추는데 공헌했다"면서 "현대미술을 보러 오는 관객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파먹고 좀비가 되어 나타난 그에게 동시대 당신의 미술의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자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스포츠에 여러 장르가 있듯이 현대미술도 예술의 한 장르다. 관객들이 제 전시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인지, 앞으로도 이런 미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줄 것인지, 저는 그런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고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이 관점은 새롭네, 이 각도에서 보면 새롭네' 하고 흥미롭게 봐주면 좋겠습니다." ◆지드래곤 아닌, 이우환 때문에 왔다...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덕분 한국에서 10년 만에 170여 점을 선보인 무라카미 다카시 대규모 회고전은 이우환 화백(84)덕분이다. 부산시립미술관에 2015년 상설 전시관인 '이우환 공간'이 생기면서 부산시립미술관이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특히 2020년 방탄소년단 RM이 부산 팬미팅 공연을 앞두고 찾아 온 후 그야말로 '방탄소년단 성지'로 부상했다. "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를 쓴 방명록이 화제가 되면서 RM이 이우환 광팬으로 알려진 계기가 됐다. '이우환 공간'은 2013년 부산과 대구가 ‘원조 경쟁’을 벌이며 치열한 유치전 끝에 부산에 설립된 미술관이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우환 예술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일본 나오시마에 이은 세계 두 번째의 이우환 개인미술관으로 입지 선정부터 건축 기본설계와 디자인까지 이우환 작가가 직접 참여했다. 지상 2층·지하 1층 연면적 1400㎡규모다. '이우환 공간'은 부산시립미술관의 신의 한 수가 됐다. 손 안대고 돈 버는 '봉이 김선달'처럼 부산시립미술관은 '복받은 미술관'이 됐다. '이우환 공간'이 생겼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유명세는 일상의 힘을 이길 수 없다. 거대한 돌, 점 하나만 그려있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날마다 보기란 고역이다. '이우환 제대로 보기'도 하루 이틀이지 관람객들의 반응은 시들해졌다. 상설전 운영의 한계였다. 이우환 화백이 제안을 했다. "내 친구들을 데려오겠다." 그렇게 '이우환과 친구들'전시가 기획됐고 2019년 안토니 곰리가 첫 친구로 부산땅을 밟았다.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조각가인 안토니 곰리의 신작이 소개됐지만 열풍은 일지 않았다. 내홍에 쌓였던 부산시립미술관은 관장이 바뀌면서 급물살을 탔다. 서울시립북서울 관장이었던 기혜경씨가 부산시립미술관장으로 오면서 '이우환과 그 친구들'이 몸집을 키웠다. "2019년 부임해서 보니 이우환 공간에서 곰리 전시를 하고 있더군요. 처음엔 갤러리에서 가지고 온 전시인줄 알았는데 곰리 스튜디오에서 직접 나서서 선보인 전시였더라고요. 세계적인 대가의 스튜디오랑 접촉도 쉽지 않는데 이렇게 전시를 하다니...소 잡는데 쓰는 칼을 과일 깍는 칼로 쓰는 느낌이었어요." 기혜경 관장은 2020년 이우환과 그 친구들 두번째 전시는 시립미술관 본관 3층과 이우환 공간 두 공간에서 펼쳤다.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빌비올라의 개인전으로 국내에서 흔치 않는 전시였다. 2021년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국내 최대 회고전이자 첫 유작전이 열려 화제가 됐다. 사진예술가, 설치작가, 비디오아티스트, 그리고 가장 위대한 프랑스 현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볼탕스키는 부산시립미술관 10월 전시를 준비하다 7월 타계했다. 갑작스런 별세로 작가의 전시 대부분이 취소되었지만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만 열 수 있었다. 기혜경 관장은 "이우환 화백이 직접 나서 챙긴 전시로 볼탕스키와 이 화백의 의리와 예술 교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전시는 한국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희귀 전시가 됐다"고 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성황...부산시립미술관은 리모델링중 "무라카미님의 작품은 얼른 보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화려합니다. 그러나 다시 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 있어 지나칠 수 없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아시아를 휩쓸고 곧 세계 미술계에 무라카미 바람이 분 것을 기억해요. 야릇한 만화 수법이랑 때로 키치하기도 하고 시니컬한 패러디는 보는 이를 사로잡았지요. 기상천외의 헤프닝을 벌리는 소녀 소년상이라던가 앞면이 자애로운 미소인가 하면 뒷면은 잔인한 악마의 표정인 불상 같은 작품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히고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어쨌거나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힘찬 표현은 보는 이를 웃게 하고 생기 차게 합니다. 언제나 넘치는 패기와 부정과 긍정 반전 역전의 드라마성에 놀랍니다. 코로나로 위축된 상황에 힘찬 예술가의 외침이 필요합니다."(이우환 편지 중) 무라카미 다카시 좀비' 전은 '이우환과 그 친구들' 4번째 전시다. 이우환 화백이 직접 손 편지를 써 무라카미 다카시의 마음을 흔들었다. 다카시는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의 초대를 받고 기뻤다며 부산에서 전시가 열려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는 보험가액만 950억 원어치 작품이 공수됐다. 당초 이 전시는 지난해 9월 개막 예정이었지만 작품이 설치되던 중 태풍이 문제가 됐다. 노후한 미술관 건물에 누수가 발생하면서 결국 미뤄졌다. (개관한 지 23년이 돼 시설 노후화, 자동 항온항습 시스템 부재 등으로 운영에 애로를 겪어 왔다. 결국 부산시는 260억 원을 투입해 1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2024년 4월 준공과 재개관할 예정이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4번째로 온 무라카미 다카시 좀비 전은 대규모 회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기간이 짧다. 1만원으로 책정됐던 관람료도 무료로 전환했다. 세계적인 인기 작가의 파격적인 전시다. 공짜 전시가 되면서 아트 상품인 굿즈 판매는 포기했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혜경 관장은 "원래 굿즈 판매 매장까지 공간을 잡아놨는데 다카시측의 까다로운 조건과 짧은 전시기간 때문에 굿즈 판매는 없던 걸로 했다"면서도 아쉬움을 보였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이번 전시 예산은 9억50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우크라 전쟁에 유류와 운송비가 미친 듯 오르면서 상황은 급박해졌다. "정해진 예산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데 고민 고민하다가 부산시의 허락을 받고 외부에서 펀딩을 받으려 했죠. 투자사와 협의해서 티켓 가격을 결정하는데 전시 기간이 짧아지면서 난감한 상황이 됐어요. 투자사도 밑지는 장사는 할 수 없잖아요." 기혜경 관장은 이번 전시 유치는 부산시 덕분이라며 부산시에 공을 돌렸다. "시에서 전시 기간도 짧아졌는데 오히려 다 오픈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는 게 나은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기 관장은 "박형준 시장이 어차피 미술관이 돈을 받아 받자 남는 장사도 아니라면서 문화복지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이번에 예산지원 등 시에서 풀어주지 않았으면 이번 전시는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흔희 볼 수 없는 거장의 개인전을 '무료 전시'라는 통큰 전략을 쓴 부산시는 국제문화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우환 공간이 생기면서 부산시립미술관의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기혜경 관장은 "지역 거점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은 기본이고 부산시립미술관은 관광문화와 연동되어서 가는 것이 필수"라며 "미술관은 영화와 매칭하고 해양성에 타깃을 맞춘 동남아시아 아시아권역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미술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는 '이우환 공간'덕분이 크다. 사실, 이우환이 아니었으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무슨 전시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기혜경 관장은 "이우환 선생님한테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했다. 앞으로 이우환 공간을 어떻게 활성화 시키고, 또 공간 자체는 작지만 이우환이라는 빅네임을 활용해서 어떻게 프로모션 해야 하는지가 숙제로도 남았다고 했다. '이우환 공간'은 미술 작가들의 새로운 미술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유명 작가의 고향에 짓는 수장고 같은 미술관이 아닌, 동시대 살아있는 작가로서 현대미술을 공유하고 교감하며 상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머, 이 전시는 꼭 봐야 해!" 새해 벽두 미술계는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로 떠들썩하다.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등장한 '무라카미 좀비'는 입소문을 내며 부산행에 오르게 하고 있다. 좀비 서사가 강화된 21세기는 '생존 강박' 시대다. 귀엽지만 기괴하고 덧없고 끝이 없는 '슈퍼플랫한 삶'을 넘어서기 위해 미치도록 현란하게 몸부림친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는 3월12일까지다. 2023/01/29
'얼굴 없는 패션 천재' 마틴 마르지엘라, 심오한 예술가 변신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부분일까. 눈길을 끌어당기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작품 앞에서 미술관 직원의 노고가 수고스럽다. 프로젝터 스크린을 내려서 이미지를 공개한 후, 다시 스크린 올리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캔버스에서 번지고 떨어져 나온 흔적이 생기는데, 이 또한 작품이라는 것. 작품이 변형되는 과정까지 그대로가 작품의 일부다. 마틴 마르지엘라(65)의 작품 '바디 파트 블랙 앤 화이트 (Bodypart B&W)'이다. 인체의 한 부분을 촬영하여 크게 확대한 작품들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부분인지 알아볼 수 없게 표현했다. 우연성으로 작품이 변형되는 과정을 작품의 일부로 차용한 그는 기존 미술관의 엄격한 작품 보존 방법으로부터 작품을 해방시키고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의도라고 했다. 마틴 마르지엘라. '패션계의 악동'으로 베일에 싸인 천재 디자이너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충격과 파격 속 품격으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명품 패션 반열에 올렸다. 런웨이 피날레 무대에도 등장하지 않고 언론 매체에 실체를 드러내지 않아 신비주의 디자이너이자 '얼굴 없는 천재'로 패션계에 영향을 끼쳤다. 미니멀하고 해체주의 디자인이 특징으로 낯설고 독특해 '아방가르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솔기가 노출된 재킷, 버려진 스키 장갑으로 만든 재킷으로 고정관념을 파괴했다. 가발 재킷, 트럼프 카드, 비닐백 등으로도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대중적으로 타비 슈즈가 유명하고, 모든 의상에 '4개의 땀' 바느질로 마무리한 마크가 특징이다.) 2008년 돌연 패션계를 은퇴했던 그가 심오하고 철학적인 순수 예술 창작자로 돌아왔다. 관습적인 사고에 도전하는 독창적이고도 전위적인 스타일은 옛날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상식과 경계를 뒤엎는 마르지엘라의 독창적인 시각 예술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그의 열정을 느껴볼 수 있다. 롯데뮤지엄은 '마틴 마르지엘라'의 국내 최초 대규모 기획 전시를 24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순회전이다. 2021년 프랑스 파리 소재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Lafayette Anticipation)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올해 베이징 엠 우즈(M Woods)에서 선보인 후, 세번째 전시로 서울을 택했다.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다양한 재료와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독특한 전시다. 미로 같은 미술관에 맞춰 특정형(site-specific) 작품을 선보이는 등 일상도 산업화되어 버린 우리의 현실을 일깨운다. 신체를 소재로 삼아 확대 재생산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극적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체취를 인위적으로 은폐하게 한 '데오도란트(Deodorant)'를 시작으로 인체의 일부를 3D 스캔하여 만든 실리콘 조각으로 고대 조각상의 관념에서 탈피하는 한편 젠더의 의미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레드 네일즈 (Red Nails)'는 붉은 손톱을 거대한 규모로 형상화 한 작품으로 변화하는 아름다움의 개념과 구성 원리에 대해 연구한 작가의 사유가 담겨있다. 전시장엔 유독 머리카락에 관한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바니타스(Vanitas)'에서는 모발로 얼굴이 덮힌 두상을 볼 수 있는데, 머리카락 색상만으로 유년부터 노년까지 나타내며 인간의 생애 흐름을 드러낸다. 작가는 인공 피부를 입힌 실리콘 구체에 자연 모발을 하나하나 이식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지도 제작법’이라는 뜻의 '카토그래피(Cartography'는 한 방향으로만 쏠리는 인공 모와는 달리 정수리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자라나는 자연 모발의 방향을 작가가 심도 있게 연구한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롯데뮤지엄은 "이번 전시는 작은 부분까지 마틴 마르지엘라가 세심하게 신경 쓰며 자신이 만들어낸 시공간에서 관람객이 독창적인 예술 경험을 하기 바랐다"고 전했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작품을 모든 시간 동안 노출시키지 않는다. 스태프가 작품을 하얀 천으로 덮었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작품 관람 시간을 제한한다. 관람객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작품을 더 밀도 있게 감상하며 퍼포먼스까지 작품의 범주에 포괄하며 작품을 흥미롭게 감상하게 될 것이다. 전시장 중반에는 '모뉴먼트(Monument)' 작품이 관람객에게 잠깐의 휴식을 제공한다. 거대한 소파에서 관람객은 휴식을 취하면서도 자신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전시는 마르지엘라가 1980년대부터 깊게 고민해온 ‘예술, 물질과 신체, 성별의 관념, 시간의 영속성, 직접 참여’를 주제로 작업한 작품들이 총 망라됐다. 설치, 조각, 영상, 퍼포먼스, 페인팅 등 총 50여점을 선보인다. 패션의 시스템과 ‘인체’라는 매체의 한계를 넘어 예술적 시도를 지속하는 마르지엘라의 세계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깊게 배어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마르지엘라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 도슨트 작품 해설과 오디오 가이드가 마련됐다. 도슨트 김찬용과 이남일, 심성아 도슨트가 마르지엘라의 작품과 그 이면에 내재된 이야기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설명할 예정이다. 평일 11시, 13시, 15시에 전시장을 방문하면 전문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전시는 2023년 3월23일까지. ◆마틴 마르지엘라는 누구? 명품 패션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설립자로 유명한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는 1957년 벨기에 루뱅(Leuven)에서 태어났다. 마르지엘라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향수를 팔았다. 마르지엘라는 6세가 되던 해, 1960년대 가장 영향력 있었던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앙드레 쿠레주(1923~2016)의 컬렉션 중 하나를 TV에서 접하고, 그 파격적인 디자인에 매료되어 패션 디자이너에 관심을 가진다. 이후 10대의 마르지엘라는 벨기에 하셀트(Hasselt)에 있는 신트루카스 예술학교(Sint-Lukas Kunsthumaniora art school)에서 공부했고, 중고 의류 가게에서 여러 소재의 헌 옷과 장신구 등을 모아 다양한 방법으로 연출하는 것에 몰두했다. 1980년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Royal Academy of Fine Arts in Antwerp)를 졸업한 마르지엘라는 이탈리아와 벨기에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패션계에 입문한다. 파리로 이주한 이후,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장 폴 고티에(Jean Pal Gaultier, 1952-)의 첫 번째 어시스턴트로 활동한 마르지엘라는 1988년에 사업 파트너인 제니 메이렌스와 함께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하며, 1989년 파리의 황폐한 지역에 있는 버려진 운동장에서 1990년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폐허와 같은 런웨이, 비틀거리는 모델들의 모습을 통해 패션계에 충격을 주고, 관습적인 사고에 도전하는 독창적이고도 전위적인 스타일을 내세우며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에서의 활동 외에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에르메스(Hermès)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총 12시즌의 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벨기에 보자르 미술관(Bozar), 보이만스 반 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독일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 LA 카운티 미술관(LA County Museum of Art), 런던 서머셋 하우스(Somerset House) 등 해외의 다양한 기관에서 개최된 여러 전시에 참여하며 예술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2008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20주년 기념 쇼를 마지막으로 패션계를 은퇴했다. 이후 마르지엘라는 시각 예술 아티스트로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2021년 10월 파리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의 초청으로 진행된 첫 번째 대규모 개인전 '마틴 마르지엘라 엣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 Martin Margiela at Lafayette Anticipation'을 시작으로 세계 순회전을 열고 있다.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적인 방식은 구성요소를 파괴하고 재배치하여 모호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사용한 흔적과 생산 과정을 드러내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의복이라는 일상적인 매체에서 시작된 상식과 경계를 뒤엎는 마르지엘라의 독창적인 시각 예술은,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다양한 재료와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통해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2022/12/24
크리스티 벨린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 "1년에 딱 2번 마스터피스 작품 출품 최고가 비결" "2022년 상반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 낙찰액은 39억1000만 홍콩달러(한화 약 6593억4330만 원)로 이미 2019년 상반기에 비해 46% 상승했습니다." 크리스티 홍콩의 올해 마지막 경매를 앞두고 있는 프랜시스 밸린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은 여유감이 넘쳤다. 11월 경매 최고 하이라이트인 이브닝 경매를 앞두고 29일 홍콩컨벤션 센터에서 만난 벨린 사장은 중국 고가구 등 고미술품이 100% 낙찰됐다며 상기된 모습이었다. 크리스티홍콩은 11월 경매에 한화 약 2040억 규모의 경매를 치룬다. 크리스티 홍콩은 그야말로 아시아 각국의 미술품 최대 격전지로 컬렉터들의 머니게임의 각축장이다. 28일부터 보석, 와인, 럭셔리, 고미술, 현대미술 등 총 5개 경매를 펼치며 올해 세계 미술 경매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30일 여는 하이라이트 경매인 이브닝 경매에는 중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산유의 매화 (Potted Prunus)가 한화 약 144억~169억, 조안 미첼의 '무제(Untitled)'가 한화 약 135억~203억 원에 아시아 경매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또 조지콘도의 인위적인 사실주의 시리즈 작품이 54억 4896만 원, 아드리안 게니의 '퇴폐 미술(귀에 붕대를 감은 빈센트 반 고흐로서의 자화상)'이 한화 약 81억~115억 등이 이번 경매 대표작으로 선보였다. 한국작가 이성자의 '무제'가 한화 약 2억 2136만 원에 출품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벨린 사장은 "1년에 딱 2번 마스터피스(masterpiece) 작품들이 출품되기 때문에 이번 경매도 작품마다 최고가 경신이 기대된다"고 자신했다. 아시아 시장 강세로 벨린 사장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실적이 증명한다. 크리스티는 2021년 코로나 사태에도 역대급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총 16억 8000만 USD(2조 2108억 8000만 원)를 구매했고 이는 2019년에 비해 32% 상승한 결과다. 특히 크리스티 홍콩의 20세기 및 21세기 미술품 부문의 기록적인 실적을 달성했다. 2021년 봄 경매 총 판매액 18억 HKD(한화 약 3035억5200만 원), 2021년 가을 경매 판매 총액 20억 HKD(한화 약 3371억 6000만 원), 2022년 봄 이브닝 & 데이 경매 총액이 18억1000만 HKD(한화 약 3053억6510만 원)를 기록하며 승승장구세다.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또 한국미술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를 들어봤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등 시장 불안 요인이 많은데 미술시장만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크리스티의 실적도 여전히 좋다 비결은 무엇인가? "실제로 시장 변동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크리스티의 실적은 상승세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서도 46% 증가된 기록이다. 중저가 미술품 및 럭셔리 제품들 역시 지속적으로 높은 판매 실적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티는 다양한 금액대를 아우르면서도 양질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경매를 진행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열정적인 경합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추정가가 다양하면서도 최고 수준인 작품들 및 럭셔리 제품들을 선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방식의 접근은 기록적인 작품 낙찰율을 이뤄내면서 아주 성공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2022년 상반기 아시아 태평양 지역 현장 낙찰율은 93%였다." ◆출품작 프리뷰를 보니 전시 연출도 인상적이다. 마치 유명 아트페어 현장같다. 투자를 많이 한 티가 난다 "결국 경매는 작품이 다하는 것이다. 크리스티는 세계적으로 80개의 카테고리를 선보인다. 작품을 모으고 경매를 큐레이팅하는 것이 저희가 하는 첫 번째 일이다. 물론 작품들을 한데 모으고 나면, 저희는 여기서 작품을 설명하고 소개한다. 작품이 스토리를 이야기해준다. 그래서 조명도 있어야 하고, 액자도 되어 있어야 하지만, 주인공은 작품이다. 그래서 저희 프리뷰를 기획하고 작품을 공개할 때 항상 작품이 가장 눈에 띄길 바란다. 좋은 예를 들자면, 입구에서 들어오시면 저희가 경매를 마친 매우 굉장한 가구 컬렉션이 있다. 추정가의 몇 배에 달한 2억 3천만 홍콩달러에 판매됐다. 좌대를 보시면, 좌대에 관심이 가기보다는 가구가 돋보인다. 하지만 좌대를 자세히 보면 디자인, 모양, 음영 등 디테일들이 있지만 프리뷰장에 들어오시면 컬렉션을 보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티는 한국 시장에 공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9월 서울에서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의 작품을 경매가 아닌 전시로 처음 선보였다. 한국시장 전망은 어떤가? "우리는 한국 미술 시장의 밝은 미래를 믿는다. 한국 예술 시장은 정부의 지원 증가와 아트페어, 국내외 유수 갤러리들 및 경매 회사 등으로 번창하면서 여전히 활기를 띄고 있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가득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년에 문화 예술 부문에만 18억 USD의 예산을 편성하면서 한국 예술과 문화 번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9월 키아프와 함께 열린 첫 번째 프리즈 서울은 전 세계의 관심을 이끌어냈지 않은가. 페로탕, 페이스, 타데우스 로팍, 쾨닉, 리만머핀, 글래드스톤 등의 해외 갤러리들이 한국으로 몰려들었다. 한국 컬렉터들의 생태계가 번창하고 있다는 증거다. 기록이 말해준다. 한국 컬렉터들의 구매 참여도가 2021년 상반기에 비해 235% 상승했다. 홍콩 현장에서 구매 참여도도 2021년 상반기보다 5배 더 높았다." ◆'베이컨-게니' 특별전, 한국 컬렉터들의 반응은 어땠나, 인상적인 성과는? "역동적이었던 서울 아트 위크에 베이컨 게니 전시와 함께 참여할 수 있어서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컬렉터들과 예술 애호가들과 더 깊이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총 4억4000만 달러의 가치에 달하는 두 거장의 16점의 미술관급 걸작들을 선보인 전시는 크리스티 고객들, 국내외 언론사, 일반 관람객 모두에게 열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예약제로 진행되었던 5일 간 총 1600명 이상이 방문했다. 특히 방탄소년단 RM효과는 대단했다. 그가 방문한 후 SNS에 사진을 올리자 30분만에 350만 명이 뷰잉하는 것을 봤다. 물론 우리 전시의 퀄리티가 매우 우수하고 한국 전시회의 기준을 높였다는 고객들의 훌륭한 피드백이 성과라면 큰 성과다." ◆한국 시장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한국 컬렉터들을 위해 따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나. "크리스티는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995년에 설립된 서울 사무소는 한국 컬렉터들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이학준 대표가 이끄는 현지 팀은 한국 컬렉터들과의 교류 뿐만 아니라 글로벌 크리스티 경매 시장에 한국 예술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팀은 우리 글로벌 팀과의 시너지, 전문 지식, 고객 네트워크와 시장 지식을 기반으로 현지 내에서 또한 원격으로도 한국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크리스티는 세계 미술시장에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번 경매에도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218'(From Line No. 218 (1974년, 추정가 2,500,000 ~3,500,000 HKD)을 선두로 홍콩 가을 경매는 강력한 라인업의 한국 예술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과 인연은 깊다. 2004년 홍콩 가을 경매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 최초로 한국 예술 작품을 선보인 경매회사다. 김환기의 우주 05-iv-71 #200 (Universe) 가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가을 경매에서 101,955,000 HKD에 낙찰되어 사상 최고가의 한국 미술품 경매를 달성했지 않은가.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는 뉴욕에서 한국 고미술 단독 경매를 진행하고 있는 유일한 해외 경매회사다. 이는 한국 문화유산의 반환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보여준다. 한국 컬렉터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크리스티 코리아 전용 인스타그램도 개설했다." ◆한중일 외에 아시아 지역에서 최근 주목하는 국가는 어디인가? "모든 아시아 나라를 좋아한다. 시장은 어쩔 수 없이 트렌드라는 것을 따라가게 된다. 우리 자체가 상업적인 단체이기 때문에 현재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중심은 미술사다. 미술사는 상업적 가치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서 말하는 미술사란 수작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좋은 작가들을 찾을 수 있는지, 그들을 빚어낸 영향력이 누구 혹은 무엇이었는지, 국경을 넘어서서 그들이 어떻게 서로 교류하는지, 이런 점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우리를 나타내는 가치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재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전 지역이 미술시장 열기가 뜨겁다. 이 지역 신규 컬렉터들의 수요도 급증세다. 글로벌 경매에서 그들의 기여도는 2021년 상반기 대비 2022년 상반기에는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얼마나 증가세인가 "2021년 봄과 비교하여 200% 상승했다.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강한 욕구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5월 홍콩 봄 경매에서 그들의 낙찰율은 98%에 달했고 총 해머가(낙찰가)는 경매 전 합산 추정가를 214% 뛰어넘었다. 작가들도 최고 경매 기록도 경신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의 신규 컬렉터들은 밀레니얼 세대라는 점이다. 1981년과 1996년 생 사이의 신규 고객들 중 30%를 차지한다. 이는 1990년대부터 설립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연락 사무소들 덕분이기도 하다. 싱가폴 (1990년), 인도네시아 (1996년), 태국 (1998년)에 지역 사무소가 있는데 올해 10월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전 카테고리 가을 경매 프리뷰를 진행했다. 시장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최근 중국이 락다운 됐는데 미술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작년은 아시아에서 기록적인 한 해였다. 우리의 글로벌 경매에서 활약한 아시안 컬렉터들에 대해서도 기록적인 해였다. 아시아 지역에서만 10억 미국 달러 이상을 판매했고 글로벌 구매의 31%를 달성했다. 올 상반기에 아시아에서는 39억 홍콩 달러를 판매했고 뉴욕의 아시아 위크에서도 아시아 지역의 아주 높은 참여율을 볼 수 있었다. 지난 5월 20/21세기 경매의 90%는 아시아 구매자들이었다. 6월 파리의 지방시 경매, 7월 런던 경매, 그리고 9월 런던 경매와 2주 전의 폴 앨런 경매까지 아시아 지역은 28%의 구매율을 기여했다. 중국이 약하면 아시아가 강할 수 없다. 이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중국의 락다운은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모두 어렵게 했고 이러한 점들이 미술 시장의 역동성에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아시아 시장의 강세를 볼 수 있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각국이 약해졌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추가로, 수적인 데이터를 말씀드리자면 폴 앨런 경매가 진행되었던 그 주에 제네바에서 럭셔리 경매가 있었다. 시계, 와인, 쥬얼리를 모두 포함한 제네바 경매 결과의 50%가 아시아 구매자들이었고 이는 1억 미국 달러 이상이었다. 이번 시즌은 약 40% 가까이 지났고 럭셔리 카테고리를 마무리했다. 2022년은 아시아 지역 럭셔리 부문에 있어서 기록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 아시아가 구매한 것이고 이러한 아시아 구매에 중국이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누구인지 밝힐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약 한 시간 전, 기록적인 900만 USD 이상에 팔린 역대 가장 비싼 인센스 테이블은 아무래도 중국 가구다 보니 중국 구매자가 샀을 확률이 높다. 이렇게 수치들을 봤을 때 시장이나 컬렉터들의 취향 등이 누그러진다고 확실히 말씀드리긴 힘들다.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스페셜리스트들이 각 경매를 구성해낼 때 들이는 어마어마한 노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컬렉터들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선별하고 한 군데에 모아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굉장히 심사숙고 하여 큐레이팅한다." ◆미술품 외에도 럭셔리가 경매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한국도 럭셔리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한국에도 계획이 있나. "럭셔리 부분은 실제로 시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컬렉터들이 한몫하고 있다. 크리스티의 럭셔리 부문 글로벌 경매는 약 40%의 기여도를 자랑하는데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구매자들이 이끌었다. 물론 우리는 럭셔리 부문을 포함해 모든 부문을 한국 내에서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들을 살펴보고 있다. 동시에 현장 경매, 온라인 경매, 그리고 크리스티 라이브와 크리스티 코리아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들을 통해 한국 수집가들과 지속적으로 연결하며 교류할 것이다." ◆홍콩에 거점을 본격화 하는 모양새다. 2024년 핸더슨 빌딩으로 확장이전 한다. 비전은 무엇인가. "2024년에 크리스티 홍콩은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센트럴에 위치한 랜드마크, 핸더슨 빌딩으로 아시아 태평양 본사를 이전하여 확장할 계획이다. 규모는 총 4층으로 전체 면적 약 1405평에 달한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과 홍콩 경매는 기존의 방식이었던 일년에 두 개의 주요 시즌에서 일년 내내 진행하는 것으로 변형할 예정이다. 홍콩과 아시아를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수집가들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물론 새로운 공간은 전체 글로벌 경매의 1/3에 달하는 기여도를 자랑하는 아시아 지역의 급증하는 고객들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핸더슨 빌딩과의 임대 계약은 10년으로, 전례 없는 우리의 진취력은 홍콩을 향한 크리스티의 헌신, 투자, 신뢰가 장기간 지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5만평방피트(약 1405 평)의 예술적인 감각을 갖춘 공간에서 크리스티는 아시아 최초로 연중무휴 경매장 및 최고 수준의 갤러리를 통해 고객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는 코로나 이후로 처음 오픈하는 경매장이고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생중계를 더 많이 하고, 고객과 교류하는 방식,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온라인 경매 뿐 아니라 웨비너(webinar) 등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디지털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경매장 자체도 뒤편이 대형 스크린으로 변신했다. 생중계를 위한 프로덕션 시설들은 매우 흥미롭다. 오피스는 또 다른 집과 같기 때문에 직원들과 동료들, 스페셜리스트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어야한다. 갤러리 공간에서 경매장, 사무실, 고객을 위한 공간까지 통합되게 한다는 논리다. 핸더슨 빌딩으로 확장 이전은 코로나 이후 처음이기 때문에 매우 새로운 컨셉이기도 하다." ◆ 올해 마지막 경매에서 화제가 됐던 티라노 사우르스 화석 경매가 취소됐다. "소장자가 공공 전시 목적으로 표본을 박물관에 대여할 예정이라고 밝혀 수용했고 이번 경매에서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때문에 티라노사우르스 골격 프리뷰 역시 취소됐다. 복제뼈 이야기도 나오지만 우리는 카탈로그에 매우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소개했다. 경매에서는 작품을 철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건 위탁자와 함께 내린 결정이었다. 공공 전시를 위해 기관에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번 프리뷰에 내년 뉴욕서 진행하는 백자 달항아리도 전시했는데 미국으로 돌아가 보지 못해 아쉽다. "하하 뉴욕으로 가셔야 한다. 저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인데...한국 미술의 경우 현대 미술, 동시대 미술이든, 고미술이든 저희 라인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미술이다.(내년 3월21일 개최하는 크리스티 뉴욕의 일본 및 한국 미술(Japanese and Korean Art) 경매에 조선시대 달항아리가 추정가 100만달러(한화 약 14억원)에 출품됐다.) 크리스티 뉴욕에서 고미술 경매를 진행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크리스티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이 나왔다. 3000만 미국 달러에 판매된 김환기 이야기를 늘 한다. 제가 구매자와 전화 응찰을 했는데 이게 저희가 하는 일이다. 한국 및 아시아 각지에서 온 국제적 대중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것, 홍콩은 매우 아름다운 쇼케이스장 같다. 달항아리를 놓치셨다니 아쉽다. 하하"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친다. 크리스티 경매의 장점, 차별화 전략이 무엇인가. "수집가들이 자신들의 소장품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미술시장의 중요 역할을 하는 곳으로써 시장이 유동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작품의 진짜 금액을 알 수 있는가? 모두들 갤러리에서 프라이빗하게만 구매를 한다면 작품의 진가가 어떻게 공개될 수 있을까? 이러한 공개성은 예술 시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팀들이 예술 및 럭셔리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강력한 결과를 달성해내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특히 경매는 단순히 각 작품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작업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번 이브닝 경매를 보면 조안 미첼, 장 폴 리오펠, 자오 우키, 피에르 술라주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데, 4명의 다른 배경, 다른 사조를 지닌 작가들이 모두 동시대에 파리에 거주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추상적 표현주의에 접근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대화이기 때문에 그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기 아주 좋은 기회다. 그렇기 때문에 동남아 이든 한국 미술이든, 근대 미술 또는 현대미술 이든 저희에게 똑같다. 물론 작품이 특정 문화에 속하기 때문에 지역으로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단색화의 경우도 한국문화 뿐 아니라 다른 문화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경우는 발리 등의 마을 풍경 등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문화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작품들의 구성 요소는 또 다른 이야기다. ◆크리스티 이브닝 세일은 왜 중요한가? 예술과 그의 영향력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고 그게 바로 우리가 보여드리려고 하는 포인트다. 물론 이는 미술관들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컬렉터들에게 최고 수준을 제공하고 싶다. 컬렉팅이란 일종의 과정 혹은 여행으로 절대 쉬운 길이 아니다. 돈과 시간을 그만큼 써야 하고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단지 특정 지역의 특정 작가들만 보여드리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분야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선별해 보여드리고자 한다. 동남아시아는 우리에게 중국, 한국, 일본만큼이나 중요한 지역이다. 그들 모두를 애정 한다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그 지역 국가들 모두 우리 경매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 이곳은 어떤 지역인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다. 이 점을 추가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서양까지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서양을 한데 모아 대화를 나누고 교류한다. 이것이 이브닝 세일의 주된 포인트다." ◆참, 스타 경매사인 조지나와 인터뷰 했는데 최고가 낙찰 행진에도 받는 인센티브가 없다고 들었다. 진짜인가? "하하하하 없다. 허그(hug)해준다. 크리스티에서는 그 누구도 경매사만 하는 사람은 없다. 다 다른 롤이 있고 경매사도 한다. 우리는 그들을 훈련하고 조지나도 그 중 하나다. 지금 조지나도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경매사만 하는 직원은 없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다. 굉장히 열정적이다. 코미션(commission)을 받지 않는 그저 다른 재능이라 훈장과도 같다. 코미션이 있다면 저도 연단에 있을 것 같다. 하하하하" 크리스티 홍콩의 프랜시스 벨린 시장은 2019년 1월부터 크리스티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을 맡고있다. 2016년 아시아 아트 글로벌 매니징 디렉터로 크리스티에 합류했다. 이전에 유럽과 아시아의 McKinsey & Co.에서 경영 컨설팅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스와로브스키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비즈니스를 담당한 경력이 있다. 현재 일본의 어린이 지구 기금 자문 위원회의 멤버이며, 비상임 이사장 및 독립 비상임 이사로서 다양한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ESSEC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 학위, 독일 만하임 대학교에서 경영학 및 심리학 Diplom-Kaufmann(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벨린 사장은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 소속 팀을 관리하며 온라인 경매 참여, 프라이빗 세일 등 전 세계적 거래를 총괄하고 책임지고 있다. 그의 지휘 하에 크리스티 아시아 미술시장은 기록적인 결과를 창출하며 미술계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190cm가 넘는 장신의 키다리 아저씨같은 벨린은 인터뷰 중 메이크업사들이 화장을 해주자 허리를 반으로 굽혀 얼굴을 내려 보였다. 친밀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벨린 사장은 "우리의 힘", 크리스티의 단단하 조직력을 강조했다. 크리스티 홍콩 직원은 200여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우리는 하반기 경매에 여전히 자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홍콩의 코로나19 관련 규제가 완화되고 해외 여행을 위한 국경이 점차 개방됨에 따라 우리는 경매의 생동감과 흥분감을 관람객들과 컬렉터들 모두에게 실시간으로, 화상으로 제공합니다. 이번 올해 마지막 경매도 또 한번의 강력한 시즌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2022/11/30
죽다 살아난 제주비엔날레 무지개 떴다…박남희×자연공생 선전 "삶에 새로운 빛을 비추는 일은 조용히 일어난다." 제주비엔날레에 무지개가 떴다. 존폐의 갈림길에서 5년 만에 살아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제1회 개최 이후 졸속 추진, 내부 갈등 논란 진통 속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추진 도중 무산됐다. 제주비엔날레는 기형적이다. 타비엔날레와 달리 독립된 조직위원회도 없다. 주최하는 제주도립미술관은 인력과 예산문제로 버겁다. 미술인·도민 등 투표까지 실시해 폐지 위기를 딛고 살아났다. 올해는 18.5억이 투입됐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제3회로 다시 시작된 제주비엔날레는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대한민국 비엔날레 풍년(16개)속 "비엔날레의 답을 제주에서 찾았다"는 호평도 나왔다. 예술감독 인맥 자랑이거나 작가들의 잔치, 난해하고 허세 들린 미술행사라는 메아리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다. 16일 개막한 16개국 55명(팀)의 작가의 165점이 제주 땅 6곳에 펼쳐졌다. 주제관은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2곳, 위성 전시관은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 AiR, 미술관옆집 제주 4곳이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을 주제로 뭉친 작가들은 제주의 신화와 신비, 자연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을 전한다. 1박2일 코스로 관람한 현장은 작지만 알차다. 지역서 여는 '국제 비엔날레 정체성'을 찾은 분위기다. 자연과 공생한 박남희(52)예술감독의 영리한 전략이 통했다. ◆박남희 예술감독의 영리함...인간과 자연 공생의 법칙 "자연은 곧 우주다." '2022 제주 비엔날레’는 박남희 예술감독을 선임한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생명은 우주 본연의 창조성", 우주적 자연 공명’을 주창하는 박 감독의 사고가 이번 전시를 관통한다. ‘우주의 별들은 줄지어 펼쳐져 있고’,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존재가 자연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지구 공동체'라는 개념은 전시 작가들 뿐만 아니라 관람자까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지난 3월 선임 된 후 쏜살같은 '시간의 틈'을 넘나들었다. 제주비엔날레의 미션은 '올해 안에 개막'이었다. 대개 봄 여름에 펼치는 비엔날레와 달리 겨울을 맞는 11월 개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6개국 작가들 섭외는 그간 쌓아온 경험이 밑천이 됐다. 동시대 사회적 현상들을 현대미술로 성찰하며 담론화하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제주도의 자연 지형과 버무렸다. 알아먹지도 못하는 현대미술, 그들만의 잔치의 비엔날레를 제주도민의 문화향유 확산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자연과 공생'으로 풀어냈다. 6곳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어떤 장소에서 만나든 현대미술의 사치스럽고 허망한, 모호함과 막연함을 벗고 있다. 땅이라는 자연 속에서 호흡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관계적 행위를 제주의 바람과 하늘, 그리고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제주의 독특한 자연과 역사·문화 등 지역적 특성이 비엔날레의 중심축으로 작동된다. 박남희 예술감독은 “지구적 전염병과 기후 위기 등의 상황 속에서 전 지구적 공생의 방향은 자연의 순환성과 생동성의 회복”이라며 "공존과 조화 등을 다룬 제주비엔날레 출품작들을 통해 삶의 태도, 예술적 실천도 성찰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①주제관, 제주도립미술관:자연 주제 밀도 있는 작업 펼쳐온 국내외 33명 작가 회화 설치 영상 작품 김수자의 신작 무지개빛 설치 작품 '호흡'을 품은 미술관 로비를 시작으로 거대한 작품들이 전시장을 압도한다. 최선 작가가 해녀들의 숨을 불어 만든 9m 대작 '나비', 파도 영상과 함께 선보인 강요배의 세로 6m의 '폭포 속으로'는 제주의 물과 바람, 자연의 장엄함을 드러내고 있다. 강미선의 '지혜의 숲 2 - 금강경' 공간은 제주 스님들의 '필람'전시로 등극했다. 불교의 공(空) 사상이 깃든 지혜의 경전인 '금강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명상적 공간을 구현했다. 제주도립미술관에는 미술관 입구 진입로부터, 전체 전시실, 건축물 뒤편까지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강승철 최병훈, 갈라 포라스 킴, 박종갑 정보영, 문경원&전준호, 이소요, 김기라, 레이첼 로즈, 자디에 사 등 38명의 작가 작품을 선보인다. 30년 넘게 인종, 정체성, 탈식민주의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고심해 온 흑인 문화운동의 중심에 있는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 가나)의 '트로피코스', 자연에서 얻은 소재로 가구를 만드는 아트 퍼니처 예술가 최병훈의 '태초의 잔상 2022' 등도 눈길을 받고 있다. ◆②제주현대미술관:김기대 바실리카~강이연~심승욱~윤석남~황수연~앤디휴즈 미술관 들어가기전 김기대의 '바실리카'는 꼭 보고 가야 한다. 마치 중세 교회 뼈대처럼 보이는 건물은 비닐하우스에서 착안했다. 미술관 공터에 세워져 작품인지 모를 정도다. 제주의 빈집과 쓰레기 문제를 공간 작품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폐허같은 건물안에는 배추 고추 파 등 작은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구조물 출구는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숙여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자신을 낮춘다면 비로소 밖으로 나가 자연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제주의 환경에 대해 환기시킨다. 제주현대미술관에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콰욜라(Quayola, 이탈리아)의 기계의 눈으로 본 자연을 주제로 한 '프롬나드(Promenade)' 작업을 필두로 종이와 연필로 물성과 형태를 구축한 조각한 황수연의 '큰머리 파도', 제주의 자연과 역사 속의 인물 김만덕의 오마주가 드러나는 윤석남과 박능생의 작업이 흥미를 더한다. ◆③위성전시관 이웃집미술관:검은 퇴비에 굴복하라 제주현대미술관 골목에 자리한 미술관옆집 제주는 자연 공동체 삶의 태도가 예술공간으로 이어진 독특한 장소로 비엔날레 위성전시관이다. 제주도 전통가옥의 형태를 살려 안거리(본채)와 밖거리(별채), 귤 창고, 작은 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레지던스를 토대로 장소 전체가 작품의 공간이다. 태국 작가 리크릿 티라바닛가 '검은 퇴비에 굴복하라'는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다. 삶의 순환과 공유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다. 관람객은 공간에 방문하여 작가가 경험한 것들을 함께 공유하며 관계를 형성한다. 난로가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④위성전시관 가파도 AiR:해양쓰레기 경각심 홍이현숙~심승욱 '검은 괴물' 환영 위성 전시관으로서 가파도의 지형과 생태를 가득 느낄 수 있는 가파도 AiR(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와 글라스하우스, 섬 안의 곳곳에서 비엔날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동식물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해양쓰레기에 대한 경각을 불러일으키는 홍이현숙의 설치는 냄새(악취)까지작품으로 변환되고, 가파도의 폐가에 프레스코화를 그린 아그네스 갈리오토(Agnese Galiotto, 이탈리아)의 '초록 동굴'은 폐가를 작품처럼 변신시켜 으스스하면서도 공공재로서의 미술품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 가파도 아티스트 레지던스에는 심승욱의 플라스틱 비닐수지로 만든 검은 설치 작품이 강렬하게 시선을 끈다. 시멘트 건축물 구조에 매달린 검은 괴물처럼 보이는 작품은 가파도의 강한 바람에 저항하는듯 한 몸부림으로도 보이며 환영의 틈을 보여준다. 제주도 본섬과 마라도 사이에 있는 섬 가파도에 자리한 가파도 AiR는 2018년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2021년부터제주문화예술재단이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국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다. 가파도는 예능 방송 여파로 '가파도 짬뽕집' 투어 관광객이 많다. ◆⑤제주국제평화센터:준초이 '해녀', 해녀복 이승수 '불턱', 노석미 '바다의 앞모습', 이이남 ‘탐라순력도’ 미디어작업 제주국제평화센터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시설이다. 자연 공동체 지구를 위한 평화와 상생의 기원의 장소로 비엔날레 위성 전시관 중 하나다.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된 후 2006년 제주국제평화센터가 상징적인 시설물로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에 건립됐다. '평회의 섬' 상징 전시장답게 제주의 특장을 똑 떨어지게 선보인다. 준초이가 1년간 우도에서 해녀들의 삶과 자취를 담아낸 '해녀' 흑백 사진 시리즈가 맞이한다. 해녀복과 오리발로 만든 이승수의 ('불턱')원형 설치작품은 마치 바닷속처럼 연출됐다. 불턱은 위험한 물속작업을 대비하여 후배를 가르치고 서로의 안전을 살피던 제주 해녀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다. 그 옆에는 1년 내내 제주의 바다를 그렸던 노석미의 '바다의 앞모습'이 순환하는 계절을 전하고, ‘탐라순력도’를 재해석한 이이남의 미디어작업은 자연을 하나로 보는 동양의 세계관을 전한다. ◆⑥삼성혈:제주 태고의 신비를 예찬한 박지혜~신예선~팅통창 제주도 개벽 신화의 장소인 '삼성혈'은 자연 공동체로서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위성 전시관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인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 구멍을 말한다.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들이 혈을 향해 경배하듯 고개를 숙여 신비한 자태를 하고 있다. 1698년 삼성전과 삼성문, 1827년 전사청, 1849년 숭보당, 1971년 건시문 등이 건립되었다. 숭보당과 전사청,야외 숲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박지혜가 대형 화면에 담은 '세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 작품이 초록숲을 경배하듯 신비감을 선사하고 명주실을 하나 하나 붙여 나무를 이은 신예선의 '움직이는 정원'은 수백년을 살아낸 나무들의 시간의 흐름을 홀로그램처럼 보여준다. 빛에 따라 그림자까지 수용하는 명주실 작품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경이로움을 전한다. 숭보당에서는 자연으로부터 신화로 연결된 세계를 현대무용으로 담아낸 팅통창(Ting tong Chang, 대만)의 '푸른 바다 여인들' 영상이 상영된다. '삼성혈' 전시는 비행기 타기전 꼭 보기를 강추한다. 제주비엔날레의 시작과 끝이 담긴 이 전시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푸른 나무 사이를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그 느낌을 배가시키는 건 작품들이 한몫한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다시 일깨운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바람, 돌, 사람 많은 제주를 '생태 미술관'으로 재발견하게 한다. 땅에 발을 딛고 걷고 숨을 크게 들이켜 호흡하며 '다가서는 땅'으로 찾아다니며 자연과 호응하며 공명하길 바라는 주제 의식 덕분이다. 셔틀버스가 없는 이유다. 행사는 2023년 2월12일까지. 2022/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