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에 웬 노숙자?...누군가 동전을 놓고 갔다 "돈을 줘야 하는 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는 아저씨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거의 '노숙자급' 분위기의 아저씨 옆에는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와 100원짜리 동전 2개가 바닥에 놓여있다. 주변은 "진짜 사람인가, 아닌가"로 '호기심 천국'이 열렸다. 사실 노숙자급 아저씨는 조각 작품이다. 이미 소문을 듣고 온 관람객도 바구니까지 놓인 작품 앞에서 멈칫했다. "동전이 없는데"라며 주머니를 뒤지기도 했다. 배낭을 옆에 붙인 채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기둥에 기댄 아저씨는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발길을 붙잡지만 그 옆의 플라스틱 바구니는 그의 것이 아니다. 미술관 관계자는 "언제 누가 놓고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누군가의 짖궂은 장난이지만 동정심의 발로로 보여진다. 미술관에 웬 노숙자? 라는 의아함이 드는 것부터 이 작품 감상의 시작이다. ‘현대미술계 악동’으로 불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의도다.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다.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그는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고 했다 리움 미술관 입구부터 웅크리고 드러누운 노숙자로 출발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는 문턱 높은 미술관의 환상을 깬다. 철저한 경호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지만, 우아하게 드나드는 전시장 입구에서 사회적 제지와 금기에 대한 의식이 작동된다. 한 관람객은 "처음엔 왜?라는 생각이 들다가 왜 미술관에 노숙자가 누워있으면 안되는데? 이 생각이 들고 그러다 이 겨울 노숙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까지 다양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동훈이와 준호'로 명명된 노숙자 한 쌍의 작품 제목도 화제다. 누군가가 연상되지만 의도는 아니다. 작가는 전시 될 때마다 그 나라의 흔한 이름을 붙이고, 이번에도 역시 한국의 평범한 이름을 골랐다고 한다. 굳이 특정하자면 로비에 웅크린 노숙자가 준호, 밖에 누워있는 노숙자가 동훈이로 누가 누구인지 특정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게 작가 설명이다. 새해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사람들을 홀리고 있다. 카텔란 얼굴로 마치 1인극처럼 펼친 전시는 소외된 것들을 다시 보게 하고 권위에 유쾌하게 도발하는 고품격 파격을 보여준다. 기이하고 천진하게, 또는 기가 막히고 헛헛하게 동시대 정치 사회 미술계를 찌르는 마우리치오는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 받고 있다.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는 자신을 '미술계의 침입자’로 규정하며 작품이 나올때마다 첨예한 토론을 유발하게 한다. 뭐 그렇다고 도덕적 합리성이나 계몽적 이상을 설파하는 예술가의 역할은 거부한다는게 작가의 입장이다.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을 꿇은 히틀러, 12만 달러에 팔렸다는 덕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등 카텔란의 대표작 38점이 모두 나와 있어 전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규모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연 작가의 대형 전시다. 블랙 코미디로 미술계에 도발해온 그는 천진한 아이 같은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하고 있다. 그의 모습을 한 조각은 너무나 사실적인 피부와 손가락 발가락이 귀여움으로 무장 사랑스러울 정도다. 카텔란의 조각들을 보다보면 진짜 사람들이 가짜로 보이기도 한다. 전시장 곳곳에 모여있는 비둘기들에도 움찔하지만 진짜가 아니다. 카텔란은 베니스를 찾는 관람객들을 비둘기떼로 비유하며 '투어리스트'로 박제 비둘기들을 만들었고 이번엔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다. 전시장 난간에서 바닥에서 떼지어 있는 비둘기들은 마치 우리를 관찰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진짜와 가짜가 혼재하는 전시장 속에서 정신 차리라는 듯 가끔 천장에서 울리는 북치는 소년의 북소리가 신선하기도 하다. 고정관념을 깨고 동시대 정치 사회 이슈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그는 관람객에게는 관대하다.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보든 상관 없다"며 열린 자세를 취한 그는 이번 전시에도 아량을 베풀었다. '작품에 가까이 가지 마시오' 라는 무언의 작품 보호라인이나 경보 센서를 두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장은 널린 좌판처럼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세계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를 볼 수 있다는 데에 미술인들은 높아진 한국 미술 위상을 실감한다는 분위기다. 특히 무료 전시로 선사하는 리움미술관의 '포용적 미술관' 변신도 주목받고 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던 삼성미술관 리움은 지난 2021년 10월8일 재개관했다. 2004년 문을 연 리움미술관은 고 이건희 부인인 홍라희(77) 여사가 관장으로 일하다 2017년 3월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이어 홍 전 관장의 여동생인 홍라영 총괄 부관장도 사퇴해 전시 일정도 차질을 빚은 바 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된 데 이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는 등 그룹 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4년 간 기획전 없이 상설전으로 운영됐다. 현재 리움미술관은 이서현(49)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미술관장 격인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는 7월16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지만 온라인으로 사전예약해야 한다. 2023/02/01
무라카미 다카시 말고 이우환, 부산시립미술관 '키다리 아저씨' 모든 이야기는 무한하게 변화하는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다. "부산에 왔다" 1월 초 빅뱅 지드래곤(35) 인스타에 공개된 무라카미 다카시(61)의 인사 영상 배경이 밝혀졌다. 26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막한 그의 개인전 첫 장면은 '727 드래곤', 그러니까 지드래곤 '권지용 컬렉션' 그림으로 시작된다. 다카시가 '부산에 왔다'고 신고할 만큼 지드래곤은 그의 슈퍼 컬렉터다. 6~7년 전 '빅뱅 시대'에 지드래곤 뮤직비디오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결을 같이했다. 컬러풀한 꽃잎을 가진 캐릭터를 지드래곤이 모자로 쓰면서 인기몰이한 다카시의 '스마일 꽃' 캐릭터는 '꽃방석'을 짝퉁 세계화 시키기도 했다. 빅뱅 멤버들이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며 '미술 세계'에 눈 떴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들이 어떤 작품을 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었다. 이번 다카시의 전시처럼 앞으로 K팝의 전사들이 세계미술시장 큰 손으로 드러날 것 같은 예감이다. (이 전시에는 빅뱅 탑의 소장품도 있다) 전시장 입구를 막은 듯 거대하게 걸린 지드래곤 소장품 '727 드래곤'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가로 3m 세로 4.5m 크기로 그의 상징과 특징이 모두 녹아 있다. 다카시를 뜨게 한 '도브( DOB)캐릭터'가 변형된 작품이다. 미키마우스 같은데 이상한 귀여움이 작렬했던 도브는 이 작품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12세기 일본의 유명한 시기산의 전설 에마키(Shigisan Engi Emaki, 信貴山縁起絵巻)에서 영감을 받은 구름을 결합한 작업이다. 2018년에 그린 그림으로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서구와 일본 등을 평평한 구조로 해석한 ‘슈퍼플랫(Superfla)'의 정신을 기괴하게 뿜어낸다. ◆'오타쿠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도쿄예술대 일본화 1호 박사 무라카미 다카시는 영리한 '일본화' 작가다. 인형같은 그림과 현란한 색에 홀려 귀엽다고 다가섰다가 '헉 이게 뭐야!'하고 기겁하게 하는 그림이다. 그는 1993년 도쿄 예술대학 일본화과가 배출한 일본화 1호 박사다. 어릴적 만화광이었다는 그는 스스로 '오타쿠 예술가'로 칭하며 부상했다. 천박한 소비문화와 성 도착 현상 등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귀엽고 환상적이고 묵시론적인 '신 일본화'를 창출했다. 2002년 루이비통에 디자이너로 영입되면서 세계적인 인물로 주가를 경신했고 피규어 등 키덜트 상품을 양산했다. 170억 원이 넘는 작품(My Lonesome Cowboy)부터 피규어, 티셔츠, 인형, 슬리퍼 등의 상품까지 '일상속 예술'을 지배하고 있다. 2008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안에 들기도 했다. 일본 우키요에나 금박을 붙인 회화에서 영감을 받고 서양 현대 회화의 '평면성'과 섞어,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인 '슈퍼플랫'을 만들었다. 2002년 게이사이 아트페어를 세워 12년간 운영, 지금은 월드 스타가 된 아야코 로카쿠를 배출했고 '카이 카이 키키'라는 아트그룹을 설립 MR 등 후배들을 키워내 '아시아의 앤디워홀'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유행이 지난걸까? 아트와 상품의 경계를 넘고 넘은 그의 전략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NFT 바람을 타고 제작한 디지털 아트도 죽을 쒀 판매를 중단했던 그는 영화 '해파리의 눈' 2탄까지 말아 먹고 2년전 "저 거덜났어요"라고 인스타에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이제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아트 상품'같다. 대규모 회고전을 꾸민 이번 전시도 아트페어나 경매장, 또는 명품 컬래버레이션 같은 매장 분위기다. 부산에 온 무라카미 다카시는 천진난만했다. 기자들을 끌고 다니며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하는 그는 '카이카이키키'스럽다.(우리말로 ‘괴괴기기(怪怪奇奇)’란 말로 ‘무섭지만 매력을 준다’는 의미다.) 너무 유명해서 식상하기까지 한 작품 대신 그는 스스로 작품이 되기로 한 듯 했다. 분홍색 젤리피시 인형 모자를 쓰고 나타나 두 손바닥을 펼쳐 내미는가 하면 발한쪽 발을 들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포즈를 취했다. 10년 전 서울 플라토 전시에서 양복을 입고 등장해 '오타쿠 꼰대' 같았던 모습은 이제 덥수룩한 수염과 거친 머릿결로 노숙자나 교주 그 사이의 분위기를 풍겼다. 자신감은 여전했다. 뉴욕 모마에서 연 전시가 역대급 관람객을 동원한 것처럼 이번 전시도 부산시립미술관 역대급 전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술과 상업사이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미술관 문턱을 낮추는데 공헌했다"면서 "현대미술을 보러 오는 관객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파먹고 좀비가 되어 나타난 그에게 동시대 당신의 미술의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자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스포츠에 여러 장르가 있듯이 현대미술도 예술의 한 장르다. 관객들이 제 전시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인지, 앞으로도 이런 미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줄 것인지, 저는 그런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고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이 관점은 새롭네, 이 각도에서 보면 새롭네' 하고 흥미롭게 봐주면 좋겠습니다." ◆지드래곤 아닌, 이우환 때문에 왔다...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덕분 한국에서 10년 만에 170여 점을 선보인 무라카미 다카시 대규모 회고전은 이우환 화백(84)덕분이다. 부산시립미술관에 2015년 상설 전시관인 '이우환 공간'이 생기면서 부산시립미술관이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특히 2020년 방탄소년단 RM이 부산 팬미팅 공연을 앞두고 찾아 온 후 그야말로 '방탄소년단 성지'로 부상했다. "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를 쓴 방명록이 화제가 되면서 RM이 이우환 광팬으로 알려진 계기가 됐다. '이우환 공간'은 2013년 부산과 대구가 ‘원조 경쟁’을 벌이며 치열한 유치전 끝에 부산에 설립된 미술관이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우환 예술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일본 나오시마에 이은 세계 두 번째의 이우환 개인미술관으로 입지 선정부터 건축 기본설계와 디자인까지 이우환 작가가 직접 참여했다. 지상 2층·지하 1층 연면적 1400㎡규모다. '이우환 공간'은 부산시립미술관의 신의 한 수가 됐다. 손 안대고 돈 버는 '봉이 김선달'처럼 부산시립미술관은 '복받은 미술관'이 됐다. '이우환 공간'이 생겼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유명세는 일상의 힘을 이길 수 없다. 거대한 돌, 점 하나만 그려있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날마다 보기란 고역이다. '이우환 제대로 보기'도 하루 이틀이지 관람객들의 반응은 시들해졌다. 상설전 운영의 한계였다. 이우환 화백이 제안을 했다. "내 친구들을 데려오겠다." 그렇게 '이우환과 친구들'전시가 기획됐고 2019년 안토니 곰리가 첫 친구로 부산땅을 밟았다.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조각가인 안토니 곰리의 신작이 소개됐지만 열풍은 일지 않았다. 내홍에 쌓였던 부산시립미술관은 관장이 바뀌면서 급물살을 탔다. 서울시립북서울 관장이었던 기혜경씨가 부산시립미술관장으로 오면서 '이우환과 그 친구들'이 몸집을 키웠다. "2019년 부임해서 보니 이우환 공간에서 곰리 전시를 하고 있더군요. 처음엔 갤러리에서 가지고 온 전시인줄 알았는데 곰리 스튜디오에서 직접 나서서 선보인 전시였더라고요. 세계적인 대가의 스튜디오랑 접촉도 쉽지 않는데 이렇게 전시를 하다니...소 잡는데 쓰는 칼을 과일 깍는 칼로 쓰는 느낌이었어요." 기혜경 관장은 2020년 이우환과 그 친구들 두번째 전시는 시립미술관 본관 3층과 이우환 공간 두 공간에서 펼쳤다.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빌비올라의 개인전으로 국내에서 흔치 않는 전시였다. 2021년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국내 최대 회고전이자 첫 유작전이 열려 화제가 됐다. 사진예술가, 설치작가, 비디오아티스트, 그리고 가장 위대한 프랑스 현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볼탕스키는 부산시립미술관 10월 전시를 준비하다 7월 타계했다. 갑작스런 별세로 작가의 전시 대부분이 취소되었지만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만 열 수 있었다. 기혜경 관장은 "이우환 화백이 직접 나서 챙긴 전시로 볼탕스키와 이 화백의 의리와 예술 교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전시는 한국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희귀 전시가 됐다"고 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성황...부산시립미술관은 리모델링중 "무라카미님의 작품은 얼른 보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화려합니다. 그러나 다시 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 있어 지나칠 수 없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아시아를 휩쓸고 곧 세계 미술계에 무라카미 바람이 분 것을 기억해요. 야릇한 만화 수법이랑 때로 키치하기도 하고 시니컬한 패러디는 보는 이를 사로잡았지요. 기상천외의 헤프닝을 벌리는 소녀 소년상이라던가 앞면이 자애로운 미소인가 하면 뒷면은 잔인한 악마의 표정인 불상 같은 작품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히고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어쨌거나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힘찬 표현은 보는 이를 웃게 하고 생기 차게 합니다. 언제나 넘치는 패기와 부정과 긍정 반전 역전의 드라마성에 놀랍니다. 코로나로 위축된 상황에 힘찬 예술가의 외침이 필요합니다."(이우환 편지 중) 무라카미 다카시 좀비' 전은 '이우환과 그 친구들' 4번째 전시다. 이우환 화백이 직접 손 편지를 써 무라카미 다카시의 마음을 흔들었다. 다카시는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의 초대를 받고 기뻤다며 부산에서 전시가 열려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는 보험가액만 950억 원어치 작품이 공수됐다. 당초 이 전시는 지난해 9월 개막 예정이었지만 작품이 설치되던 중 태풍이 문제가 됐다. 노후한 미술관 건물에 누수가 발생하면서 결국 미뤄졌다. (개관한 지 23년이 돼 시설 노후화, 자동 항온항습 시스템 부재 등으로 운영에 애로를 겪어 왔다. 결국 부산시는 260억 원을 투입해 1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2024년 4월 준공과 재개관할 예정이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4번째로 온 무라카미 다카시 좀비 전은 대규모 회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기간이 짧다. 1만원으로 책정됐던 관람료도 무료로 전환했다. 세계적인 인기 작가의 파격적인 전시다. 공짜 전시가 되면서 아트 상품인 굿즈 판매는 포기했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혜경 관장은 "원래 굿즈 판매 매장까지 공간을 잡아놨는데 다카시측의 까다로운 조건과 짧은 전시기간 때문에 굿즈 판매는 없던 걸로 했다"면서도 아쉬움을 보였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이번 전시 예산은 9억50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우크라 전쟁에 유류와 운송비가 미친 듯 오르면서 상황은 급박해졌다. "정해진 예산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데 고민 고민하다가 부산시의 허락을 받고 외부에서 펀딩을 받으려 했죠. 투자사와 협의해서 티켓 가격을 결정하는데 전시 기간이 짧아지면서 난감한 상황이 됐어요. 투자사도 밑지는 장사는 할 수 없잖아요." 기혜경 관장은 이번 전시 유치는 부산시 덕분이라며 부산시에 공을 돌렸다. "시에서 전시 기간도 짧아졌는데 오히려 다 오픈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는 게 나은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기 관장은 "박형준 시장이 어차피 미술관이 돈을 받아 받자 남는 장사도 아니라면서 문화복지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이번에 예산지원 등 시에서 풀어주지 않았으면 이번 전시는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흔희 볼 수 없는 거장의 개인전을 '무료 전시'라는 통큰 전략을 쓴 부산시는 국제문화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우환 공간이 생기면서 부산시립미술관의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기혜경 관장은 "지역 거점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은 기본이고 부산시립미술관은 관광문화와 연동되어서 가는 것이 필수"라며 "미술관은 영화와 매칭하고 해양성에 타깃을 맞춘 동남아시아 아시아권역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미술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는 '이우환 공간'덕분이 크다. 사실, 이우환이 아니었으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무슨 전시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기혜경 관장은 "이우환 선생님한테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했다. 앞으로 이우환 공간을 어떻게 활성화 시키고, 또 공간 자체는 작지만 이우환이라는 빅네임을 활용해서 어떻게 프로모션 해야 하는지가 숙제로도 남았다고 했다. '이우환 공간'은 미술 작가들의 새로운 미술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유명 작가의 고향에 짓는 수장고 같은 미술관이 아닌, 동시대 살아있는 작가로서 현대미술을 공유하고 교감하며 상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머, 이 전시는 꼭 봐야 해!" 새해 벽두 미술계는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로 떠들썩하다.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등장한 '무라카미 좀비'는 입소문을 내며 부산행에 오르게 하고 있다. 좀비 서사가 강화된 21세기는 '생존 강박' 시대다. 귀엽지만 기괴하고 덧없고 끝이 없는 '슈퍼플랫한 삶'을 넘어서기 위해 미치도록 현란하게 몸부림친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는 3월12일까지다. 2023/01/29
'얼굴 없는 패션 천재' 마틴 마르지엘라, 심오한 예술가 변신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부분일까. 눈길을 끌어당기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작품 앞에서 미술관 직원의 노고가 수고스럽다. 프로젝터 스크린을 내려서 이미지를 공개한 후, 다시 스크린 올리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캔버스에서 번지고 떨어져 나온 흔적이 생기는데, 이 또한 작품이라는 것. 작품이 변형되는 과정까지 그대로가 작품의 일부다. 마틴 마르지엘라(65)의 작품 '바디 파트 블랙 앤 화이트 (Bodypart B&W)'이다. 인체의 한 부분을 촬영하여 크게 확대한 작품들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부분인지 알아볼 수 없게 표현했다. 우연성으로 작품이 변형되는 과정을 작품의 일부로 차용한 그는 기존 미술관의 엄격한 작품 보존 방법으로부터 작품을 해방시키고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의도라고 했다. 마틴 마르지엘라. '패션계의 악동'으로 베일에 싸인 천재 디자이너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충격과 파격 속 품격으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명품 패션 반열에 올렸다. 런웨이 피날레 무대에도 등장하지 않고 언론 매체에 실체를 드러내지 않아 신비주의 디자이너이자 '얼굴 없는 천재'로 패션계에 영향을 끼쳤다. 미니멀하고 해체주의 디자인이 특징으로 낯설고 독특해 '아방가르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솔기가 노출된 재킷, 버려진 스키 장갑으로 만든 재킷으로 고정관념을 파괴했다. 가발 재킷, 트럼프 카드, 비닐백 등으로도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대중적으로 타비 슈즈가 유명하고, 모든 의상에 '4개의 땀' 바느질로 마무리한 마크가 특징이다.) 2008년 돌연 패션계를 은퇴했던 그가 심오하고 철학적인 순수 예술 창작자로 돌아왔다. 관습적인 사고에 도전하는 독창적이고도 전위적인 스타일은 옛날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상식과 경계를 뒤엎는 마르지엘라의 독창적인 시각 예술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그의 열정을 느껴볼 수 있다. 롯데뮤지엄은 '마틴 마르지엘라'의 국내 최초 대규모 기획 전시를 24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순회전이다. 2021년 프랑스 파리 소재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Lafayette Anticipation)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올해 베이징 엠 우즈(M Woods)에서 선보인 후, 세번째 전시로 서울을 택했다.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다양한 재료와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독특한 전시다. 미로 같은 미술관에 맞춰 특정형(site-specific) 작품을 선보이는 등 일상도 산업화되어 버린 우리의 현실을 일깨운다. 신체를 소재로 삼아 확대 재생산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극적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체취를 인위적으로 은폐하게 한 '데오도란트(Deodorant)'를 시작으로 인체의 일부를 3D 스캔하여 만든 실리콘 조각으로 고대 조각상의 관념에서 탈피하는 한편 젠더의 의미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레드 네일즈 (Red Nails)'는 붉은 손톱을 거대한 규모로 형상화 한 작품으로 변화하는 아름다움의 개념과 구성 원리에 대해 연구한 작가의 사유가 담겨있다. 전시장엔 유독 머리카락에 관한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바니타스(Vanitas)'에서는 모발로 얼굴이 덮힌 두상을 볼 수 있는데, 머리카락 색상만으로 유년부터 노년까지 나타내며 인간의 생애 흐름을 드러낸다. 작가는 인공 피부를 입힌 실리콘 구체에 자연 모발을 하나하나 이식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지도 제작법’이라는 뜻의 '카토그래피(Cartography'는 한 방향으로만 쏠리는 인공 모와는 달리 정수리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자라나는 자연 모발의 방향을 작가가 심도 있게 연구한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롯데뮤지엄은 "이번 전시는 작은 부분까지 마틴 마르지엘라가 세심하게 신경 쓰며 자신이 만들어낸 시공간에서 관람객이 독창적인 예술 경험을 하기 바랐다"고 전했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작품을 모든 시간 동안 노출시키지 않는다. 스태프가 작품을 하얀 천으로 덮었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작품 관람 시간을 제한한다. 관람객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작품을 더 밀도 있게 감상하며 퍼포먼스까지 작품의 범주에 포괄하며 작품을 흥미롭게 감상하게 될 것이다. 전시장 중반에는 '모뉴먼트(Monument)' 작품이 관람객에게 잠깐의 휴식을 제공한다. 거대한 소파에서 관람객은 휴식을 취하면서도 자신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전시는 마르지엘라가 1980년대부터 깊게 고민해온 ‘예술, 물질과 신체, 성별의 관념, 시간의 영속성, 직접 참여’를 주제로 작업한 작품들이 총 망라됐다. 설치, 조각, 영상, 퍼포먼스, 페인팅 등 총 50여점을 선보인다. 패션의 시스템과 ‘인체’라는 매체의 한계를 넘어 예술적 시도를 지속하는 마르지엘라의 세계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깊게 배어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마르지엘라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 도슨트 작품 해설과 오디오 가이드가 마련됐다. 도슨트 김찬용과 이남일, 심성아 도슨트가 마르지엘라의 작품과 그 이면에 내재된 이야기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설명할 예정이다. 평일 11시, 13시, 15시에 전시장을 방문하면 전문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전시는 2023년 3월23일까지. ◆마틴 마르지엘라는 누구? 명품 패션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설립자로 유명한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는 1957년 벨기에 루뱅(Leuven)에서 태어났다. 마르지엘라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향수를 팔았다. 마르지엘라는 6세가 되던 해, 1960년대 가장 영향력 있었던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앙드레 쿠레주(1923~2016)의 컬렉션 중 하나를 TV에서 접하고, 그 파격적인 디자인에 매료되어 패션 디자이너에 관심을 가진다. 이후 10대의 마르지엘라는 벨기에 하셀트(Hasselt)에 있는 신트루카스 예술학교(Sint-Lukas Kunsthumaniora art school)에서 공부했고, 중고 의류 가게에서 여러 소재의 헌 옷과 장신구 등을 모아 다양한 방법으로 연출하는 것에 몰두했다. 1980년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Royal Academy of Fine Arts in Antwerp)를 졸업한 마르지엘라는 이탈리아와 벨기에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패션계에 입문한다. 파리로 이주한 이후,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장 폴 고티에(Jean Pal Gaultier, 1952-)의 첫 번째 어시스턴트로 활동한 마르지엘라는 1988년에 사업 파트너인 제니 메이렌스와 함께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하며, 1989년 파리의 황폐한 지역에 있는 버려진 운동장에서 1990년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폐허와 같은 런웨이, 비틀거리는 모델들의 모습을 통해 패션계에 충격을 주고, 관습적인 사고에 도전하는 독창적이고도 전위적인 스타일을 내세우며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에서의 활동 외에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에르메스(Hermès)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총 12시즌의 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벨기에 보자르 미술관(Bozar), 보이만스 반 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독일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 LA 카운티 미술관(LA County Museum of Art), 런던 서머셋 하우스(Somerset House) 등 해외의 다양한 기관에서 개최된 여러 전시에 참여하며 예술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2008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20주년 기념 쇼를 마지막으로 패션계를 은퇴했다. 이후 마르지엘라는 시각 예술 아티스트로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2021년 10월 파리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의 초청으로 진행된 첫 번째 대규모 개인전 '마틴 마르지엘라 엣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 Martin Margiela at Lafayette Anticipation'을 시작으로 세계 순회전을 열고 있다.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적인 방식은 구성요소를 파괴하고 재배치하여 모호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사용한 흔적과 생산 과정을 드러내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의복이라는 일상적인 매체에서 시작된 상식과 경계를 뒤엎는 마르지엘라의 독창적인 시각 예술은,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다양한 재료와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통해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2022/12/24
크리스티 벨린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 "1년에 딱 2번 마스터피스 작품 출품 최고가 비결" "2022년 상반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 낙찰액은 39억1000만 홍콩달러(한화 약 6593억4330만 원)로 이미 2019년 상반기에 비해 46% 상승했습니다." 크리스티 홍콩의 올해 마지막 경매를 앞두고 있는 프랜시스 밸린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은 여유감이 넘쳤다. 11월 경매 최고 하이라이트인 이브닝 경매를 앞두고 29일 홍콩컨벤션 센터에서 만난 벨린 사장은 중국 고가구 등 고미술품이 100% 낙찰됐다며 상기된 모습이었다. 크리스티홍콩은 11월 경매에 한화 약 2040억 규모의 경매를 치룬다. 크리스티 홍콩은 그야말로 아시아 각국의 미술품 최대 격전지로 컬렉터들의 머니게임의 각축장이다. 28일부터 보석, 와인, 럭셔리, 고미술, 현대미술 등 총 5개 경매를 펼치며 올해 세계 미술 경매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30일 여는 하이라이트 경매인 이브닝 경매에는 중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산유의 매화 (Potted Prunus)가 한화 약 144억~169억, 조안 미첼의 '무제(Untitled)'가 한화 약 135억~203억 원에 아시아 경매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또 조지콘도의 인위적인 사실주의 시리즈 작품이 54억 4896만 원, 아드리안 게니의 '퇴폐 미술(귀에 붕대를 감은 빈센트 반 고흐로서의 자화상)'이 한화 약 81억~115억 등이 이번 경매 대표작으로 선보였다. 한국작가 이성자의 '무제'가 한화 약 2억 2136만 원에 출품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벨린 사장은 "1년에 딱 2번 마스터피스(masterpiece) 작품들이 출품되기 때문에 이번 경매도 작품마다 최고가 경신이 기대된다"고 자신했다. 아시아 시장 강세로 벨린 사장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실적이 증명한다. 크리스티는 2021년 코로나 사태에도 역대급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총 16억 8000만 USD(2조 2108억 8000만 원)를 구매했고 이는 2019년에 비해 32% 상승한 결과다. 특히 크리스티 홍콩의 20세기 및 21세기 미술품 부문의 기록적인 실적을 달성했다. 2021년 봄 경매 총 판매액 18억 HKD(한화 약 3035억5200만 원), 2021년 가을 경매 판매 총액 20억 HKD(한화 약 3371억 6000만 원), 2022년 봄 이브닝 & 데이 경매 총액이 18억1000만 HKD(한화 약 3053억6510만 원)를 기록하며 승승장구세다.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또 한국미술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를 들어봤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등 시장 불안 요인이 많은데 미술시장만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크리스티의 실적도 여전히 좋다 비결은 무엇인가? "실제로 시장 변동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크리스티의 실적은 상승세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서도 46% 증가된 기록이다. 중저가 미술품 및 럭셔리 제품들 역시 지속적으로 높은 판매 실적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티는 다양한 금액대를 아우르면서도 양질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경매를 진행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열정적인 경합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추정가가 다양하면서도 최고 수준인 작품들 및 럭셔리 제품들을 선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방식의 접근은 기록적인 작품 낙찰율을 이뤄내면서 아주 성공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2022년 상반기 아시아 태평양 지역 현장 낙찰율은 93%였다." ◆출품작 프리뷰를 보니 전시 연출도 인상적이다. 마치 유명 아트페어 현장같다. 투자를 많이 한 티가 난다 "결국 경매는 작품이 다하는 것이다. 크리스티는 세계적으로 80개의 카테고리를 선보인다. 작품을 모으고 경매를 큐레이팅하는 것이 저희가 하는 첫 번째 일이다. 물론 작품들을 한데 모으고 나면, 저희는 여기서 작품을 설명하고 소개한다. 작품이 스토리를 이야기해준다. 그래서 조명도 있어야 하고, 액자도 되어 있어야 하지만, 주인공은 작품이다. 그래서 저희 프리뷰를 기획하고 작품을 공개할 때 항상 작품이 가장 눈에 띄길 바란다. 좋은 예를 들자면, 입구에서 들어오시면 저희가 경매를 마친 매우 굉장한 가구 컬렉션이 있다. 추정가의 몇 배에 달한 2억 3천만 홍콩달러에 판매됐다. 좌대를 보시면, 좌대에 관심이 가기보다는 가구가 돋보인다. 하지만 좌대를 자세히 보면 디자인, 모양, 음영 등 디테일들이 있지만 프리뷰장에 들어오시면 컬렉션을 보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티는 한국 시장에 공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9월 서울에서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의 작품을 경매가 아닌 전시로 처음 선보였다. 한국시장 전망은 어떤가? "우리는 한국 미술 시장의 밝은 미래를 믿는다. 한국 예술 시장은 정부의 지원 증가와 아트페어, 국내외 유수 갤러리들 및 경매 회사 등으로 번창하면서 여전히 활기를 띄고 있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가득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년에 문화 예술 부문에만 18억 USD의 예산을 편성하면서 한국 예술과 문화 번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9월 키아프와 함께 열린 첫 번째 프리즈 서울은 전 세계의 관심을 이끌어냈지 않은가. 페로탕, 페이스, 타데우스 로팍, 쾨닉, 리만머핀, 글래드스톤 등의 해외 갤러리들이 한국으로 몰려들었다. 한국 컬렉터들의 생태계가 번창하고 있다는 증거다. 기록이 말해준다. 한국 컬렉터들의 구매 참여도가 2021년 상반기에 비해 235% 상승했다. 홍콩 현장에서 구매 참여도도 2021년 상반기보다 5배 더 높았다." ◆'베이컨-게니' 특별전, 한국 컬렉터들의 반응은 어땠나, 인상적인 성과는? "역동적이었던 서울 아트 위크에 베이컨 게니 전시와 함께 참여할 수 있어서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컬렉터들과 예술 애호가들과 더 깊이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총 4억4000만 달러의 가치에 달하는 두 거장의 16점의 미술관급 걸작들을 선보인 전시는 크리스티 고객들, 국내외 언론사, 일반 관람객 모두에게 열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예약제로 진행되었던 5일 간 총 1600명 이상이 방문했다. 특히 방탄소년단 RM효과는 대단했다. 그가 방문한 후 SNS에 사진을 올리자 30분만에 350만 명이 뷰잉하는 것을 봤다. 물론 우리 전시의 퀄리티가 매우 우수하고 한국 전시회의 기준을 높였다는 고객들의 훌륭한 피드백이 성과라면 큰 성과다." ◆한국 시장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한국 컬렉터들을 위해 따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나. "크리스티는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995년에 설립된 서울 사무소는 한국 컬렉터들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이학준 대표가 이끄는 현지 팀은 한국 컬렉터들과의 교류 뿐만 아니라 글로벌 크리스티 경매 시장에 한국 예술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팀은 우리 글로벌 팀과의 시너지, 전문 지식, 고객 네트워크와 시장 지식을 기반으로 현지 내에서 또한 원격으로도 한국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크리스티는 세계 미술시장에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번 경매에도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218'(From Line No. 218 (1974년, 추정가 2,500,000 ~3,500,000 HKD)을 선두로 홍콩 가을 경매는 강력한 라인업의 한국 예술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과 인연은 깊다. 2004년 홍콩 가을 경매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 최초로 한국 예술 작품을 선보인 경매회사다. 김환기의 우주 05-iv-71 #200 (Universe) 가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가을 경매에서 101,955,000 HKD에 낙찰되어 사상 최고가의 한국 미술품 경매를 달성했지 않은가.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는 뉴욕에서 한국 고미술 단독 경매를 진행하고 있는 유일한 해외 경매회사다. 이는 한국 문화유산의 반환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보여준다. 한국 컬렉터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크리스티 코리아 전용 인스타그램도 개설했다." ◆한중일 외에 아시아 지역에서 최근 주목하는 국가는 어디인가? "모든 아시아 나라를 좋아한다. 시장은 어쩔 수 없이 트렌드라는 것을 따라가게 된다. 우리 자체가 상업적인 단체이기 때문에 현재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중심은 미술사다. 미술사는 상업적 가치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서 말하는 미술사란 수작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좋은 작가들을 찾을 수 있는지, 그들을 빚어낸 영향력이 누구 혹은 무엇이었는지, 국경을 넘어서서 그들이 어떻게 서로 교류하는지, 이런 점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우리를 나타내는 가치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재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전 지역이 미술시장 열기가 뜨겁다. 이 지역 신규 컬렉터들의 수요도 급증세다. 글로벌 경매에서 그들의 기여도는 2021년 상반기 대비 2022년 상반기에는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얼마나 증가세인가 "2021년 봄과 비교하여 200% 상승했다.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강한 욕구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5월 홍콩 봄 경매에서 그들의 낙찰율은 98%에 달했고 총 해머가(낙찰가)는 경매 전 합산 추정가를 214% 뛰어넘었다. 작가들도 최고 경매 기록도 경신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의 신규 컬렉터들은 밀레니얼 세대라는 점이다. 1981년과 1996년 생 사이의 신규 고객들 중 30%를 차지한다. 이는 1990년대부터 설립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연락 사무소들 덕분이기도 하다. 싱가폴 (1990년), 인도네시아 (1996년), 태국 (1998년)에 지역 사무소가 있는데 올해 10월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전 카테고리 가을 경매 프리뷰를 진행했다. 시장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최근 중국이 락다운 됐는데 미술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작년은 아시아에서 기록적인 한 해였다. 우리의 글로벌 경매에서 활약한 아시안 컬렉터들에 대해서도 기록적인 해였다. 아시아 지역에서만 10억 미국 달러 이상을 판매했고 글로벌 구매의 31%를 달성했다. 올 상반기에 아시아에서는 39억 홍콩 달러를 판매했고 뉴욕의 아시아 위크에서도 아시아 지역의 아주 높은 참여율을 볼 수 있었다. 지난 5월 20/21세기 경매의 90%는 아시아 구매자들이었다. 6월 파리의 지방시 경매, 7월 런던 경매, 그리고 9월 런던 경매와 2주 전의 폴 앨런 경매까지 아시아 지역은 28%의 구매율을 기여했다. 중국이 약하면 아시아가 강할 수 없다. 이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중국의 락다운은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모두 어렵게 했고 이러한 점들이 미술 시장의 역동성에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아시아 시장의 강세를 볼 수 있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각국이 약해졌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추가로, 수적인 데이터를 말씀드리자면 폴 앨런 경매가 진행되었던 그 주에 제네바에서 럭셔리 경매가 있었다. 시계, 와인, 쥬얼리를 모두 포함한 제네바 경매 결과의 50%가 아시아 구매자들이었고 이는 1억 미국 달러 이상이었다. 이번 시즌은 약 40% 가까이 지났고 럭셔리 카테고리를 마무리했다. 2022년은 아시아 지역 럭셔리 부문에 있어서 기록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 아시아가 구매한 것이고 이러한 아시아 구매에 중국이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누구인지 밝힐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약 한 시간 전, 기록적인 900만 USD 이상에 팔린 역대 가장 비싼 인센스 테이블은 아무래도 중국 가구다 보니 중국 구매자가 샀을 확률이 높다. 이렇게 수치들을 봤을 때 시장이나 컬렉터들의 취향 등이 누그러진다고 확실히 말씀드리긴 힘들다.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스페셜리스트들이 각 경매를 구성해낼 때 들이는 어마어마한 노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컬렉터들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선별하고 한 군데에 모아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굉장히 심사숙고 하여 큐레이팅한다." ◆미술품 외에도 럭셔리가 경매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한국도 럭셔리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한국에도 계획이 있나. "럭셔리 부분은 실제로 시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컬렉터들이 한몫하고 있다. 크리스티의 럭셔리 부문 글로벌 경매는 약 40%의 기여도를 자랑하는데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구매자들이 이끌었다. 물론 우리는 럭셔리 부문을 포함해 모든 부문을 한국 내에서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들을 살펴보고 있다. 동시에 현장 경매, 온라인 경매, 그리고 크리스티 라이브와 크리스티 코리아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들을 통해 한국 수집가들과 지속적으로 연결하며 교류할 것이다." ◆홍콩에 거점을 본격화 하는 모양새다. 2024년 핸더슨 빌딩으로 확장이전 한다. 비전은 무엇인가. "2024년에 크리스티 홍콩은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센트럴에 위치한 랜드마크, 핸더슨 빌딩으로 아시아 태평양 본사를 이전하여 확장할 계획이다. 규모는 총 4층으로 전체 면적 약 1405평에 달한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과 홍콩 경매는 기존의 방식이었던 일년에 두 개의 주요 시즌에서 일년 내내 진행하는 것으로 변형할 예정이다. 홍콩과 아시아를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수집가들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물론 새로운 공간은 전체 글로벌 경매의 1/3에 달하는 기여도를 자랑하는 아시아 지역의 급증하는 고객들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핸더슨 빌딩과의 임대 계약은 10년으로, 전례 없는 우리의 진취력은 홍콩을 향한 크리스티의 헌신, 투자, 신뢰가 장기간 지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5만평방피트(약 1405 평)의 예술적인 감각을 갖춘 공간에서 크리스티는 아시아 최초로 연중무휴 경매장 및 최고 수준의 갤러리를 통해 고객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는 코로나 이후로 처음 오픈하는 경매장이고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생중계를 더 많이 하고, 고객과 교류하는 방식,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온라인 경매 뿐 아니라 웨비너(webinar) 등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디지털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경매장 자체도 뒤편이 대형 스크린으로 변신했다. 생중계를 위한 프로덕션 시설들은 매우 흥미롭다. 오피스는 또 다른 집과 같기 때문에 직원들과 동료들, 스페셜리스트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어야한다. 갤러리 공간에서 경매장, 사무실, 고객을 위한 공간까지 통합되게 한다는 논리다. 핸더슨 빌딩으로 확장 이전은 코로나 이후 처음이기 때문에 매우 새로운 컨셉이기도 하다." ◆ 올해 마지막 경매에서 화제가 됐던 티라노 사우르스 화석 경매가 취소됐다. "소장자가 공공 전시 목적으로 표본을 박물관에 대여할 예정이라고 밝혀 수용했고 이번 경매에서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때문에 티라노사우르스 골격 프리뷰 역시 취소됐다. 복제뼈 이야기도 나오지만 우리는 카탈로그에 매우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소개했다. 경매에서는 작품을 철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건 위탁자와 함께 내린 결정이었다. 공공 전시를 위해 기관에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번 프리뷰에 내년 뉴욕서 진행하는 백자 달항아리도 전시했는데 미국으로 돌아가 보지 못해 아쉽다. "하하 뉴욕으로 가셔야 한다. 저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인데...한국 미술의 경우 현대 미술, 동시대 미술이든, 고미술이든 저희 라인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미술이다.(내년 3월21일 개최하는 크리스티 뉴욕의 일본 및 한국 미술(Japanese and Korean Art) 경매에 조선시대 달항아리가 추정가 100만달러(한화 약 14억원)에 출품됐다.) 크리스티 뉴욕에서 고미술 경매를 진행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크리스티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이 나왔다. 3000만 미국 달러에 판매된 김환기 이야기를 늘 한다. 제가 구매자와 전화 응찰을 했는데 이게 저희가 하는 일이다. 한국 및 아시아 각지에서 온 국제적 대중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것, 홍콩은 매우 아름다운 쇼케이스장 같다. 달항아리를 놓치셨다니 아쉽다. 하하"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친다. 크리스티 경매의 장점, 차별화 전략이 무엇인가. "수집가들이 자신들의 소장품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미술시장의 중요 역할을 하는 곳으로써 시장이 유동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작품의 진짜 금액을 알 수 있는가? 모두들 갤러리에서 프라이빗하게만 구매를 한다면 작품의 진가가 어떻게 공개될 수 있을까? 이러한 공개성은 예술 시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팀들이 예술 및 럭셔리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강력한 결과를 달성해내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특히 경매는 단순히 각 작품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작업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번 이브닝 경매를 보면 조안 미첼, 장 폴 리오펠, 자오 우키, 피에르 술라주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데, 4명의 다른 배경, 다른 사조를 지닌 작가들이 모두 동시대에 파리에 거주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추상적 표현주의에 접근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대화이기 때문에 그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기 아주 좋은 기회다. 그렇기 때문에 동남아 이든 한국 미술이든, 근대 미술 또는 현대미술 이든 저희에게 똑같다. 물론 작품이 특정 문화에 속하기 때문에 지역으로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단색화의 경우도 한국문화 뿐 아니라 다른 문화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경우는 발리 등의 마을 풍경 등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문화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작품들의 구성 요소는 또 다른 이야기다. ◆크리스티 이브닝 세일은 왜 중요한가? 예술과 그의 영향력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고 그게 바로 우리가 보여드리려고 하는 포인트다. 물론 이는 미술관들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컬렉터들에게 최고 수준을 제공하고 싶다. 컬렉팅이란 일종의 과정 혹은 여행으로 절대 쉬운 길이 아니다. 돈과 시간을 그만큼 써야 하고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단지 특정 지역의 특정 작가들만 보여드리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분야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선별해 보여드리고자 한다. 동남아시아는 우리에게 중국, 한국, 일본만큼이나 중요한 지역이다. 그들 모두를 애정 한다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그 지역 국가들 모두 우리 경매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 이곳은 어떤 지역인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다. 이 점을 추가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서양까지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서양을 한데 모아 대화를 나누고 교류한다. 이것이 이브닝 세일의 주된 포인트다." ◆참, 스타 경매사인 조지나와 인터뷰 했는데 최고가 낙찰 행진에도 받는 인센티브가 없다고 들었다. 진짜인가? "하하하하 없다. 허그(hug)해준다. 크리스티에서는 그 누구도 경매사만 하는 사람은 없다. 다 다른 롤이 있고 경매사도 한다. 우리는 그들을 훈련하고 조지나도 그 중 하나다. 지금 조지나도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경매사만 하는 직원은 없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다. 굉장히 열정적이다. 코미션(commission)을 받지 않는 그저 다른 재능이라 훈장과도 같다. 코미션이 있다면 저도 연단에 있을 것 같다. 하하하하" 크리스티 홍콩의 프랜시스 벨린 시장은 2019년 1월부터 크리스티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을 맡고있다. 2016년 아시아 아트 글로벌 매니징 디렉터로 크리스티에 합류했다. 이전에 유럽과 아시아의 McKinsey & Co.에서 경영 컨설팅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스와로브스키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비즈니스를 담당한 경력이 있다. 현재 일본의 어린이 지구 기금 자문 위원회의 멤버이며, 비상임 이사장 및 독립 비상임 이사로서 다양한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ESSEC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 학위, 독일 만하임 대학교에서 경영학 및 심리학 Diplom-Kaufmann(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벨린 사장은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 소속 팀을 관리하며 온라인 경매 참여, 프라이빗 세일 등 전 세계적 거래를 총괄하고 책임지고 있다. 그의 지휘 하에 크리스티 아시아 미술시장은 기록적인 결과를 창출하며 미술계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190cm가 넘는 장신의 키다리 아저씨같은 벨린은 인터뷰 중 메이크업사들이 화장을 해주자 허리를 반으로 굽혀 얼굴을 내려 보였다. 친밀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벨린 사장은 "우리의 힘", 크리스티의 단단하 조직력을 강조했다. 크리스티 홍콩 직원은 200여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우리는 하반기 경매에 여전히 자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홍콩의 코로나19 관련 규제가 완화되고 해외 여행을 위한 국경이 점차 개방됨에 따라 우리는 경매의 생동감과 흥분감을 관람객들과 컬렉터들 모두에게 실시간으로, 화상으로 제공합니다. 이번 올해 마지막 경매도 또 한번의 강력한 시즌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2022/11/30
죽다 살아난 제주비엔날레 무지개 떴다…박남희×자연공생 선전 "삶에 새로운 빛을 비추는 일은 조용히 일어난다." 제주비엔날레에 무지개가 떴다. 존폐의 갈림길에서 5년 만에 살아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제1회 개최 이후 졸속 추진, 내부 갈등 논란 진통 속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추진 도중 무산됐다. 제주비엔날레는 기형적이다. 타비엔날레와 달리 독립된 조직위원회도 없다. 주최하는 제주도립미술관은 인력과 예산문제로 버겁다. 미술인·도민 등 투표까지 실시해 폐지 위기를 딛고 살아났다. 올해는 18.5억이 투입됐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제3회로 다시 시작된 제주비엔날레는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대한민국 비엔날레 풍년(16개)속 "비엔날레의 답을 제주에서 찾았다"는 호평도 나왔다. 예술감독 인맥 자랑이거나 작가들의 잔치, 난해하고 허세 들린 미술행사라는 메아리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다. 16일 개막한 16개국 55명(팀)의 작가의 165점이 제주 땅 6곳에 펼쳐졌다. 주제관은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2곳, 위성 전시관은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 AiR, 미술관옆집 제주 4곳이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을 주제로 뭉친 작가들은 제주의 신화와 신비, 자연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을 전한다. 1박2일 코스로 관람한 현장은 작지만 알차다. 지역서 여는 '국제 비엔날레 정체성'을 찾은 분위기다. 자연과 공생한 박남희(52)예술감독의 영리한 전략이 통했다. ◆박남희 예술감독의 영리함...인간과 자연 공생의 법칙 "자연은 곧 우주다." '2022 제주 비엔날레’는 박남희 예술감독을 선임한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생명은 우주 본연의 창조성", 우주적 자연 공명’을 주창하는 박 감독의 사고가 이번 전시를 관통한다. ‘우주의 별들은 줄지어 펼쳐져 있고’,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존재가 자연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지구 공동체'라는 개념은 전시 작가들 뿐만 아니라 관람자까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지난 3월 선임 된 후 쏜살같은 '시간의 틈'을 넘나들었다. 제주비엔날레의 미션은 '올해 안에 개막'이었다. 대개 봄 여름에 펼치는 비엔날레와 달리 겨울을 맞는 11월 개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6개국 작가들 섭외는 그간 쌓아온 경험이 밑천이 됐다. 동시대 사회적 현상들을 현대미술로 성찰하며 담론화하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제주도의 자연 지형과 버무렸다. 알아먹지도 못하는 현대미술, 그들만의 잔치의 비엔날레를 제주도민의 문화향유 확산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자연과 공생'으로 풀어냈다. 6곳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어떤 장소에서 만나든 현대미술의 사치스럽고 허망한, 모호함과 막연함을 벗고 있다. 땅이라는 자연 속에서 호흡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관계적 행위를 제주의 바람과 하늘, 그리고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제주의 독특한 자연과 역사·문화 등 지역적 특성이 비엔날레의 중심축으로 작동된다. 박남희 예술감독은 “지구적 전염병과 기후 위기 등의 상황 속에서 전 지구적 공생의 방향은 자연의 순환성과 생동성의 회복”이라며 "공존과 조화 등을 다룬 제주비엔날레 출품작들을 통해 삶의 태도, 예술적 실천도 성찰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①주제관, 제주도립미술관:자연 주제 밀도 있는 작업 펼쳐온 국내외 33명 작가 회화 설치 영상 작품 김수자의 신작 무지개빛 설치 작품 '호흡'을 품은 미술관 로비를 시작으로 거대한 작품들이 전시장을 압도한다. 최선 작가가 해녀들의 숨을 불어 만든 9m 대작 '나비', 파도 영상과 함께 선보인 강요배의 세로 6m의 '폭포 속으로'는 제주의 물과 바람, 자연의 장엄함을 드러내고 있다. 강미선의 '지혜의 숲 2 - 금강경' 공간은 제주 스님들의 '필람'전시로 등극했다. 불교의 공(空) 사상이 깃든 지혜의 경전인 '금강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명상적 공간을 구현했다. 제주도립미술관에는 미술관 입구 진입로부터, 전체 전시실, 건축물 뒤편까지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강승철 최병훈, 갈라 포라스 킴, 박종갑 정보영, 문경원&전준호, 이소요, 김기라, 레이첼 로즈, 자디에 사 등 38명의 작가 작품을 선보인다. 30년 넘게 인종, 정체성, 탈식민주의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고심해 온 흑인 문화운동의 중심에 있는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 가나)의 '트로피코스', 자연에서 얻은 소재로 가구를 만드는 아트 퍼니처 예술가 최병훈의 '태초의 잔상 2022' 등도 눈길을 받고 있다. ◆②제주현대미술관:김기대 바실리카~강이연~심승욱~윤석남~황수연~앤디휴즈 미술관 들어가기전 김기대의 '바실리카'는 꼭 보고 가야 한다. 마치 중세 교회 뼈대처럼 보이는 건물은 비닐하우스에서 착안했다. 미술관 공터에 세워져 작품인지 모를 정도다. 제주의 빈집과 쓰레기 문제를 공간 작품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폐허같은 건물안에는 배추 고추 파 등 작은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구조물 출구는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숙여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자신을 낮춘다면 비로소 밖으로 나가 자연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제주의 환경에 대해 환기시킨다. 제주현대미술관에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콰욜라(Quayola, 이탈리아)의 기계의 눈으로 본 자연을 주제로 한 '프롬나드(Promenade)' 작업을 필두로 종이와 연필로 물성과 형태를 구축한 조각한 황수연의 '큰머리 파도', 제주의 자연과 역사 속의 인물 김만덕의 오마주가 드러나는 윤석남과 박능생의 작업이 흥미를 더한다. ◆③위성전시관 이웃집미술관:검은 퇴비에 굴복하라 제주현대미술관 골목에 자리한 미술관옆집 제주는 자연 공동체 삶의 태도가 예술공간으로 이어진 독특한 장소로 비엔날레 위성전시관이다. 제주도 전통가옥의 형태를 살려 안거리(본채)와 밖거리(별채), 귤 창고, 작은 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레지던스를 토대로 장소 전체가 작품의 공간이다. 태국 작가 리크릿 티라바닛가 '검은 퇴비에 굴복하라'는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다. 삶의 순환과 공유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다. 관람객은 공간에 방문하여 작가가 경험한 것들을 함께 공유하며 관계를 형성한다. 난로가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④위성전시관 가파도 AiR:해양쓰레기 경각심 홍이현숙~심승욱 '검은 괴물' 환영 위성 전시관으로서 가파도의 지형과 생태를 가득 느낄 수 있는 가파도 AiR(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와 글라스하우스, 섬 안의 곳곳에서 비엔날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동식물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해양쓰레기에 대한 경각을 불러일으키는 홍이현숙의 설치는 냄새(악취)까지작품으로 변환되고, 가파도의 폐가에 프레스코화를 그린 아그네스 갈리오토(Agnese Galiotto, 이탈리아)의 '초록 동굴'은 폐가를 작품처럼 변신시켜 으스스하면서도 공공재로서의 미술품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 가파도 아티스트 레지던스에는 심승욱의 플라스틱 비닐수지로 만든 검은 설치 작품이 강렬하게 시선을 끈다. 시멘트 건축물 구조에 매달린 검은 괴물처럼 보이는 작품은 가파도의 강한 바람에 저항하는듯 한 몸부림으로도 보이며 환영의 틈을 보여준다. 제주도 본섬과 마라도 사이에 있는 섬 가파도에 자리한 가파도 AiR는 2018년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2021년부터제주문화예술재단이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국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다. 가파도는 예능 방송 여파로 '가파도 짬뽕집' 투어 관광객이 많다. ◆⑤제주국제평화센터:준초이 '해녀', 해녀복 이승수 '불턱', 노석미 '바다의 앞모습', 이이남 ‘탐라순력도’ 미디어작업 제주국제평화센터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시설이다. 자연 공동체 지구를 위한 평화와 상생의 기원의 장소로 비엔날레 위성 전시관 중 하나다.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된 후 2006년 제주국제평화센터가 상징적인 시설물로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에 건립됐다. '평회의 섬' 상징 전시장답게 제주의 특장을 똑 떨어지게 선보인다. 준초이가 1년간 우도에서 해녀들의 삶과 자취를 담아낸 '해녀' 흑백 사진 시리즈가 맞이한다. 해녀복과 오리발로 만든 이승수의 ('불턱')원형 설치작품은 마치 바닷속처럼 연출됐다. 불턱은 위험한 물속작업을 대비하여 후배를 가르치고 서로의 안전을 살피던 제주 해녀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다. 그 옆에는 1년 내내 제주의 바다를 그렸던 노석미의 '바다의 앞모습'이 순환하는 계절을 전하고, ‘탐라순력도’를 재해석한 이이남의 미디어작업은 자연을 하나로 보는 동양의 세계관을 전한다. ◆⑥삼성혈:제주 태고의 신비를 예찬한 박지혜~신예선~팅통창 제주도 개벽 신화의 장소인 '삼성혈'은 자연 공동체로서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위성 전시관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인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 구멍을 말한다.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들이 혈을 향해 경배하듯 고개를 숙여 신비한 자태를 하고 있다. 1698년 삼성전과 삼성문, 1827년 전사청, 1849년 숭보당, 1971년 건시문 등이 건립되었다. 숭보당과 전사청,야외 숲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박지혜가 대형 화면에 담은 '세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 작품이 초록숲을 경배하듯 신비감을 선사하고 명주실을 하나 하나 붙여 나무를 이은 신예선의 '움직이는 정원'은 수백년을 살아낸 나무들의 시간의 흐름을 홀로그램처럼 보여준다. 빛에 따라 그림자까지 수용하는 명주실 작품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경이로움을 전한다. 숭보당에서는 자연으로부터 신화로 연결된 세계를 현대무용으로 담아낸 팅통창(Ting tong Chang, 대만)의 '푸른 바다 여인들' 영상이 상영된다. '삼성혈' 전시는 비행기 타기전 꼭 보기를 강추한다. 제주비엔날레의 시작과 끝이 담긴 이 전시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푸른 나무 사이를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그 느낌을 배가시키는 건 작품들이 한몫한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다시 일깨운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바람, 돌, 사람 많은 제주를 '생태 미술관'으로 재발견하게 한다. 땅에 발을 딛고 걷고 숨을 크게 들이켜 호흡하며 '다가서는 땅'으로 찾아다니며 자연과 호응하며 공명하길 바라는 주제 의식 덕분이다. 셔틀버스가 없는 이유다. 행사는 2023년 2월12일까지. 2022/11/27
어둠을 빛으로 꺼내온 예술가들...조덕현·서문근·김용택 "세상은 누군가의 상상 속 현실이다." 108년 세월을 품은 도정 공장이 폐허를 딛고 예술이 됐다. 쓰레기 더미에 '개굴창' 같던 공장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에너지 넘치는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거듭남의 미학'이 흐르게 된 건 세 남자의 상상과 열정, 그리고 기쁨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전북 익산 '춘포 도정 공장' 갤러리는 마치 '웜홀(Wormhole)'같았다. 서울에서 KTX 기차로 1시간 20분, 익산에서 춘포까지 20분 거리에 그 건물이 있다. '춘포 도정 공장'. 일제 강점 시기인 1914년 춘포 일대를 소유했던 일본인 대지주 호소카와 모리다치(細川護立, 1883~1970)가 인근 농토에서 거둬들인 벼를 현미로 가공하여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세운 정미소였다. 이후 1998년까지 운영하다 버려졌다. 108년의 역사속에서 흔들렸지만 부러지지 않은 공장은 질긴 운명이었다. 20년 만에 한 남자를 만나면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쓰레기 10톤을 치웠어요."(서문근 대표) 그러자 죽어 있던 건물, 거칠게 긴장하던 풀과 나무들이 부드러워졌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어둠을 빛으로 끄집어내 온 세 남자를 익산에서 만났다. 춘포도정공장을 운명처럼 사들인 서문근 대표, 우연히 사진 찍다 들어온 작가 조덕현(이대 명예교수), 섬진강 시인 김용택. 이들은 이전에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다. 오로지 '춘포 도정 공장'이 처음 이어준 인연이다. ◆'춘포 도정 공장 갤러리' 서문근 대표 VS 작가 조덕현 "상상력은 일반적인 능력을 비범하게 확대시킨다." 서울에서 퇴직을 하고 고향에 내려온 서문근 대표는 이리저리 건물을 알아보고 다녔다. 4년 전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춘포 도정 공장이었다. 완전한 폐가였다. '다크 투어'팀들이 몰래 오가곤 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약 700여평의 공장, 터는 좋았다. 딱 가지고 있던 돈 만큼 흥정이 됐다. 그렇게 사들인 공장건물에 대해 말이 많았다. 아파트를 지어라 건물을 새로 지어라...그는 "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방치한 시간의 무게는 10톤의 쓰레기로 처리됐다. '귀신 나올 것 같던' 폐공장이 그 옛날 미곡을 쌓아 보관하는 창고의 모습을 드러냈다.(익산은 예로부터 곡창지대로 이름이 높았다.) 매일 청소하고 매만지고 바라보며 그는 춘포 공장에 푹 빠졌다. "멍때릴 때가 많았어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너른 공간을 어떻게 살려낼까. 어느 날 그가 나타났다. "작년 7월15일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조덕현 작가) 작가 조덕현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춘포 도정 공장은 진짜 우연히, 99% 우연으로 왔습니다." 그의 인생에 도정 공장은 물론 춘포는 없었다. 이화여대 교수직을 퇴임하고 우리나라 오래된 지역에서 사진을 찍고 다녔다. 그날도 전북 지역 마을을 찍으러 왔다. 충남과 전북이 마주치는 지역 강경에 도착해 새벽에 촬영하러 갔다가 낭패를 당했다. 골목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알았다. 좁은 길에서 렌트카는 반파가 됐다. "새 차인데...오늘은 완전히 망쳤다. 재수가 없으니 호텔 가서 쉬자"하고 차를 모는데 맑은 물 같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 한테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런 일이..." 33년간 운전했지만 자동차 사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전주에 있는 숙소에 가는 중 중간 기착지로 네이버 지도를 찾아보니 '춘포'가 보이더라. 점심을 먹으려고 춘포 맛집 사랑방 한식 백반집에 갔어요." 밥을 먹고 나니까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동네를 볼 겸 식당 건너편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거기에 그 공장이 있었다. 마침 철문 쪽문이 열려 있었다.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제가 웬만하면 문열렸다고 안 들어갑니다. 사진 찍을 때 나의 예술행위를 빙자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철학이거든요. 정 찍고 싶으면 허락을 받고 촬영하는데, 그날은 안 찍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홀려 들어가듯이 들어갔는데,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어디서 오셨어요?" 심장이 철렁했다. "제가 사진작가인데요(아닌데...아무 말 대잔치였다)" 그렇게 만난 서문근 대표는 기골이 장대했다. "사진 몇 컷 후다닥 찍고 나오려는데 붙잡더라고요. 혹시 알고 왔냐고 묻더니 건물을 소개하겠다 해서 따라 들어갔어요." 서 대표는 한눈에 알아봤다. "아, 이 사람이 이 건물을 좋아하는구나." 그는 "사람들이 공장을 대하는 게 다르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면 걸음이 빨라져요, 잰걸음을 하죠. 조 작가가 그랬어요." 서 대표에 이끌려 들어간 공장은 1번방부터 7개의 공간으로 나눠 있었다. 낡았고 심란했다. "오죽하면 집사람이 와서 보고 전시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무너져서 사람 다칠 것 같다고."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 건물은 제게 엄청나게 미학적으로 보였어요. 한 여름에 (건물에)뻥뻥뻥 구멍이 뚫렸는데 그 아래 빛의 점이 뚝 떨어져 있는데...와우~" 그게 시작이었다. "뭐한 테 씐 것 같이 온 공장, '만물공장설'로 끝나는" 서문근 대표와의 '철렁한 만남'은 어느새 전시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렇게 엉겹결에 조덕현 개인전 '108 and: 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전이 지난 4월22일 개막했다. 허름한 건물을 그대로 살려 자연과 어우러진 전시다. 공장과 내외부에 설치된 작품들을 정원사가 철에 따라 정원을 가꾸듯 손보고 살피는 '실험적' 프로젝트를 1년 동안 진행한다. 조용했던 전시는 "나 혼자 보기 아깝거나", "나만 보고 싶은 전시"로 입소문을 탔다. 전시를 후원한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는 '혼자 보기 아까운' 쪽으로 미술인들을 이끌고 있다. 6개월간의 1부 전시를 끝내고, 최근 2부 전시가 열렸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합류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전시는 마치 '비엔날레급 전시장' 같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시는 '춘포 공장'에서 확장되어 완주 오스 갤러리와 방탄소년단( BTS) 화보촬영지로 더 유명세인 '아원 고택'으로 이어진다. 김용택 시인이 미발표한 짧은 시들이 투명 아크릴과 유리창에 쓰여지거나 물에 담겨 선보이는 전시는 기존의 시화전을 혁신한 분위기다. 미술과 문학의 진정한 공생, 새롭고 신선한 교류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화가 조덕현 vs 시인 김용택 "상생 공생 기쁨 감사함" "결국엔 예술이 남는다." 익산 춘포 도정공장에서 열린 조덕현 개인전이 허름한 전시장에도 '있어빌리티(있어+bility)'한 건 작품과 연출력의 힘이기도 하지만, 윤이상 음악 덕분으로도 보인다. 폐건물이 평화롭게 보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서늘한 가을 바람, 오래된 시멘트 구멍에 집을 진 거미, 땅에 떨어진 갈색 낙엽, 초록의 낮은 풀, 바람에 하늘거리는 담쟁이 이파리, 그리고 투명한 유리창에 써 있는 김용택 시인의 시들을 마음에 와 닿게 하는 건 '윤이상의 음악 선율'이 보일 듯 말 듯 날아다니는 나비의 리듬처럼 흐르기 때문이다. 서걱서걱한 풍경을 말랑하게 물들인다. 이는 작가 조덕현의 꿈이 실현된 상상이다. "윤이상의 음악을 센 것만 생각하는데 말년 윤이상의 음악은 평화롭다"는 그는 "음의 정원' 컨셉의 정원을 꾸미는 것 같은 전시를 반영구적으로 진행하고 싶었는데, 지금 이 전시장 조건이 딱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윤이상 음악을 선택하면서 김용택 시인이 겹쳐 보였어요." 익산에서 40여분 걸리는 섬진강을 찾아가 시인 김용택을 만났다. "짧은 시들이 좋더라고요. 여백이 있으니까. 특히 요즘에 쓴 시들은 서정이 넘쳤어요. 여러 번 읽었지요. 너무 좋아서 더 넣고 싶었는데 공간의 제약으로 뺀 시도 많아요. 시들에 죄송할 정도로요. 하하~" 시인이 내준 미발표 원고 130여편을 읽고 또 읽고 읽고 풀어낸 전시는 그야말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게 모든 문장이 제자리에 놓여있는 느낌이다. 얼키설키한 나무건물 속살이 그대로 내보여진 공간에 시인의 시를 유리에 담아냈다. 희고 얇게 여리게 쓰여진 시들은 시공간을 관통하는 빛처럼 존재감을 발한다. 작가 조덕현은 사진같은 사실적인 회화로 근현대의 시간 속 개인의 실존과 운명을 재조명하고, 망각된 삶의 기억을 섬세하게 복원하여 서사적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도 그 연장선이다. "일단 공장 건물 자체가 슬픈 존재입니다.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을까? 지금까지 오면서 오해와 오명도 많았어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바지한 부분도 있었고 그러다 버려졌지요. 폐가로 있다가 되찾은 것은 사연이 보통이 아니구나. 여기서 내가 작업을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역사성과 대결은 벅찼다. "이 공간과 공간이 주는 물리적인 대상이 있지만 이 지역사람들의 삶, 결국 이 모든 게 '우리나라 근현대사다"라고 생각하자 실마리가 풀렸다." 그러다 이춘기씨를 찾아내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춘포 태생의 실존 인물 이춘기(1906-1991)를 중심으로 전시가 엮어졌다. "이 씨는 무명인으로 처절하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예요.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삶의 열정을 쏟아낸 몸부림, 그 분이 도달하고 싶었던 지점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춘기 씨의 일기는 이중섭 못지않은 필력과 화력이 돋보인다. 무명 촌부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는 편지와 일기는 한쪽 벽에 빼곡히 전시되어 마치 피라미드 같은 '인생 역사 무덤'처럼 보인다. ◆거칠었던 폐공장, 순수해지기까지...'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 108년의 세월을 견디고 서문근, 조덕현, 김용택을 만난 폐공장은 순수해졌다. 전시 제목 '108 and: 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전에 모든게 함축됐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조덕현의 대규모 설치작업과 그림 전시와 함께 살포시 얹혀진 듯한 유리창의 시, 김용택 시인의 시들은 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집중하게 한다. 관심을 받고 있는 건물, 그 땅에서 올라온 풀들은 보들보들하다. 그 사이 사이에 툭 툭 놓여진 물그릇 안에 시가 들어앉았다. 맑은 물속에서 숨을 쉬는 '시어'는 매일 자연을 품어 새로움을 전하고,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경탄한다. 조덕현 개인전에 초대된 김용택 시인도 깜짝 놀랐다. "야외는 장소마다 달라서 평화가 깨트려질 수가 있는데....특히 이곳은 거칠고 거칠어서 예술이 들어가 앉기에 무리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와서 볼때마다 놀란다"고 했다. 조덕현은 "시가 너무 좋아서 그런다"고 겸손함을 보였다. "시는 특히 텍스트가 중요하다"는 조 작가는 "시각적으로 해체해서 비주얼을 덧대기보다 '텍스트'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고 시 그림처럼 찾아낸 게 문체부 정자체"라고 했다. 실제로 감성어린 싯귀에 글씨체가 아름답게 똑 떨어진다. "만약 시인이 시를 낭송한다면 그 목소리와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 글씨체가 맞더라고요." 조 작가는 "미술의 영역에서 문학을 초대한다고 해서 흥분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문학을 짓밟게 된다. 공생, 상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김 시인은 "내 여린 시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했는데, 몸과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이 너무 자연스럽게 시가 담겨 있다"면서 "밥 같기도, 국 같기도 하고 너무 평화로운 상태"라며 전시에 만족감을 보였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것을)죽이지 않고 살려낼 수 있을까.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조 작가와 말을 나누던 일흔다섯살의 김용택 시인이 조용히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아이 같은 모습의 시인은 역시 시인이었다. 그의 감탄은 시처럼 나왔다. "예술이라는 게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것이구나!." 전시는 2023년 4월22일까지. ◆조덕현 작가는? 1957년 강원도 횡성 출신으로 서울대학교에서 회화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 소게츠 미술관(1994), 필라델피아 ICA 미술관(1995), 앙드레 에머리히 갤러리(1997), 버지니아 미술관(1998), 파리 주드폼 미술관(2000) 등 국내외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상파울로 비엔날레(1994), 이스탄불 비엔날레(1995),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1997), 광주 비엔날레(2002), 베니스 비엔날레(특별전) 등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국제적 예술 활동을 전개해 왔다. 2001년 제2회 한불 문화상, 2020년에 제20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미국 허쉬혼 미술관, 일본 히로시마 미술관, 후쿠오카 미술관, 네덜란드 호르컴 시청,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서울 PKM갤러리 전속 작가다. 2022/11/21
'안개 작가' 이기봉의 반전..."이 세상은 그림자 게임의 '환영'"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신비한 풍경화, 버드나무가 흔들거리는 그저 몽롱하고 축축한 초록의 풍경화로만 봤다. 몰라봤다. 그 뿌연 안개 너머의 '환영(幻影)의 세계'를. '안개 작가'로 유명한 이기봉(65)은 반전이었다. 시지각과 언어, 물질감각을 논하는 철학자같은 면모를 보였다. 국제갤러리에 14년 만에 등장한 그는 군살 없는 마른 몸태로 청산유수와 같이 말을 쏟아냈다. 국제 서울점과 부산점에서 동시에 '당신이 서 있는 곳'(Where You Stand) 개인전을 17일 개막했다. 안개 풍경과 '검은 추상' 신작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그는 삶을 포장해온 환영을 일깨우기 위해 애를 썼다. 현재의 삶이 매트릭스의 세상이라는 걸 알아차린 '네오'를 떠올리게 했다. 마치 '매트릭스 세계의 저항군'처럼 삶과 죽음 경계의 이 세계는 '환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기계의 숫자 사이로 문을 열고 다니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작가는 '막과 막 사이'를 넘나든다. 렉시글라스(얇은 아크릴 판)와 '얇은 폴리 천'을 무기로 보이지 않는 환영을 보이려 고도한 정신 노동을 하고 있다. 그는 무엇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투명한 막'...그 안개 같은 천의 무한 세계 "그 막 없이는 '환영'을 볼 수 없거든요" 안개풍경 작품은 파이버(fiber)라는 투명한 천이 겹쳐 있다. 그는 이 천을 '상상속의 투명한 막'으로 사용한다. "막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고 제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죠. 저는 그 막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뚫고 싶기도 하고 깨트리고 싶기도 하고..." 천으로 가린 막은 눈을 뚫고 나갈 수 없는 경계망이다. "작업하면 별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하지만 저 천은 재료로서 오랫동안 진실이어서 끊임없이 쓰게 됩니다. 막을 쳤다고 다 좋아지는 건 아니어서 그래서 투쟁이 있죠. 하지만 진실을 얻게 되는 그 느낌, 환영을 만들어낼 때 그게 좋아서 그냥 하는 겁니다. 밤을 새서 많이 피곤하죠. 하지만 내 마음에 쏙 들게 나오면 그 경계선, 거기까지 도달하면 스스로 위안을 주고 칭찬합니다. '해냈다 잘 살았다'라고" 안개가 낀 듯 부드러워 보이는 작품은 결국 작가 행동의 결과다. "오랫동안 매만지다 보면 순화되고 부드러워지면서 작가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는데 도움이 되죠." 그는 작품의 방향은 '세계성'으로 잡았다고 했다. "일반 풍경하고 좀 다른 접근 방법으로 일종의 풍경화라기보다 세계화"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자연은 꼭 나무 풀만이 아니고 흘러가는 모양태를 하는데 투명한 천, 그 막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안개처럼 보이는 그 흐름을 깊이 있게 인식시켜주고, 우리의 감각이나 지각을 혼란시켜주는 환영의 물질로 시각세계를 넓혀주는 존재감입니다." ◆"회화는 기계"...뇌가 조작해내는 허구들 "물질감각이 회화의 본질입니다." "회화는 일종의 기계"라는 그는 "뇌 안의 이미지들 현상들, 뇌가 조작해내는 허구들 이런 것들을 연출해내는 기계가 회화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생각이 물질화, 표면화 됐을때 감각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회화라는 조건은 안개처럼 미스테리하고, 그것을 우리는 깊이 파악하기에 쉽지 않다는 거죠. 회화의 매커니즘을 이해해야 하는데, 메시지 전달 창구로서 디지털 패널처럼 굉장히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회화는 그렇게 오랫동안 뇌 안의 세계를 반영하고 작동하는 기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죠." 그는 이 세계를 복잡성과 복잡성의 대면이라고 본다. "마치 데카르트의 기계론처럼 단순한 구조가 아닌 디지털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그걸 가르는 '얇은 막' 같은 '섬세함'은 필수조건이다. "회화는 아무리 거친 그림이라고 할지라도 섬세한, 심리적 감각적 흐름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섬세함)없이는 회화가 작동하지 않아요." ◆안개풍경...쌀쌀한 기분 온도 느낌까지 담아 숲과 나무, 왜 사람은 안보이냐고요? "나 혼자 있기 위해서입니다. 인위적인 구조물을 최소한으로 제거했죠. 아무런 보호막도 없고 장치도 없이 홀로 던져졌을 때, 강해지고 싶은 심리적인 감각을 표현한 겁니다." 그에게 물은 생명이다. "'습한걸 좋아합니다. 이 세계는 습도로 운행된다 생각하죠. 제게는 물 자체가 중요한 조건입니다. 물 관찰을 많이 하고 만지려고도 하고, 그러면 불가능성이 생긴다는 걸 인식하지요." '물가 풍경'은 그래서 안개 속 온도, 쌀쌀한 기분이 나는 것까지 생각한다. 물가를 그리는 이유는 또 있다. "화면을 자르는 역할이죠. 선을 그어서 해주면 균형감, 다양성에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그 깊이감 온도의 느낌...10여년간 그려왔지만 물가 표현은 어려워요." 안개 풍경은 치렁치렁한 '버드나무'가 상징이기도 하다. 어릴 적 무서웠던 기억이 소환되어 있다. "엄청 큰 버드나무가 흑백으로 보였어요. 검은 물체가 흔들리는....으시시하기도 하고 굉장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럼에도 화면 중앙에서 흔들거리는 버드나무는 멋있는 자태다. 그래서 "그림이 잘 안될 때 집어넣으면 화면의 활력소를 주기도 하죠. 제 설치 작품에도 출현하는데 해외에서는 무섭다고 하더군요." 존재감이 강렬한 버드나무는 결과적으로는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삶과 죽음의 힘이다. "존재의식이 강렬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시선을 두고 관찰하면 이 세상은 메시지 투성입니다." ◆신작은 '혼돈의 방'...'언어의 투명성' 막으로 활용 '안개 풍경'이 흐린 세상을 보여준다면, 신작은 '환영의 혼돈'을 제시한다.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내가 움직이는 건지 풍경이 움직이는 건지 혼돈스럽잖아요." '당신이 서 있는 곳'(Where You Stand)'을 이번 전시 제목으로 단 이유다. '안개 풍경'이 '얇은 천 막'으로 나왔다면, '혼돈의 방'은 '글자의 막'이 쳐졌다. 30여 년간 읽고 본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책 '논리 철학논고'를 깨달으면서다. "결국 이 세상은 알 수가 없다는 것.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해도 우리는 언어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영이라는 환영을 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투명성'을 철학적(이론)으로 만들어냈다면, 자신은 "미학적(시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 세계는 진짜를 보는게 아니구나'를 깨닫게 된 놀라움은 언어를 '막'의 조건으로, 레이어의 쓰임새로 자유롭게 활용했다. "텍스트 자체는 내 안의 막입니다. 세상을 볼 때 결국 (언어)막을 통해서 보는 것이죠. 모든 이미지는 텍스트 구조안에 있어요. 그 막이 흥미로워 눈이 반짝반짝 떠졌던 작업입니다. 맑음이 흐림으로 변할 때 레이어처럼 텍스트가 갖는 혼돈의 효과가 과연 뭘까? 하는 불확실한 세계의 미학입니다." ◆이 세상은 '환영의 세계'...'당신이 서 있는 곳'이 중요 "세상은 애매하고 몽롱하며 별것도 아니고 그림자 파편의 조각들로 이뤄진 환영들입니다." 이쪽과 저쪽, 환영의 막을 치고 몽환적으로 그리며 찾아낸 건 '움직여라'는 명제다. 생각하고 움직이면 근거들이 만들어지는게 신기했다. 그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며 "그린다는 것, 그게 나의 본성"이라고 했다. 어릴 적 부터 '피카소가 되는 게 꿈'이었다. "지금도 그런 꿈이 있어요. 피카소처럼 되기를 원했다면, 이젠 피카소처럼 살다가 죽는게 꿈입니다." 그 꿈은 '새디스트적인 쾌락주의'로 완성되고 있다. 수많은 생각의 겹과 막의 층으로 이뤄진 작업은 혼자서 한다. "가끔 제자들이 해주기도 하는데, 결국 혼자 하는 작업입니다. 제 작품에 남의 살을 넣을 수는 없지 않나요? 내 살, 제 걸 갈아 넣는 걸 좋아합니다." '내 살이 들어가는', 내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 통해 알게 된 것도 '환영'이다. "손으로 위로 할 때 보세요 '마음의 환영'이 있잖아요. 그러면 손이 뭐냐. 귀중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구나. 하하 머리가 복잡합니다. 생각할 게 많죠. 관계망과 사고의 접합성 때문에 그래서 깊이감이 생깁니다." 그는 '의식, 장소, 환영'을 삶의 조건으로 본다. 전시 제목 '당신이 서 있는 곳'이 그래서 핵심어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이 진짜 세계라는거죠. 딴 데서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여기 혼자 서서 멀리 도달할 수 없는 곳을 쳐다보는 저기 말고요. 결국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중요하다는 거죠" 이 말은 글자로 만든 설치 작업에 압축됐다.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만 있는 하얀 색의 설치 작품은 중간이 비어 있다. "우리는 텅 빈 시스템에 살고 있어요. 삶과 죽음의 관계, 삶 속에 죽음이 묻어 있고 죽음속에 생명이 묻어 있고, 분열적으로 나눌 수도 있지만,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 사이에 무한대 페이지들이 여기에 있지요." 그의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텅 빈(empty) 공간인데 빛이 찬 진공관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책을 읽고 넘길때 막 넘기지 않지 않고 천천히 한 페이지씩 넘기잖아요. 신체들이 생명들이 삶들이 파노라마속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너는 어디 페이지를 읽고 있니?' 하는 질문을 해봤으면 합니다." 흐리거나 혼란한 '그림자 게임' 같은 세상의 환영을 보여주며 '너는 어디에 있니'를 묻는 그의 작업은 감각과 의식을 촉진한다. 하지만 온전한 밀도감에도 여전히 애매하며 해석되지 않는 이미지를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겠다는 예술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에겐 여러개의 방이 있어요. 모델하우스처럼 이방, 저방, '예술의 방'이 있어요. 모든 사람들한테 원래 있었어요. 그런데 워낙 안 써서 방문이 잠겨 있어요. 저는 그 키를 드리는 거예요. 제 전시는 그 방을 소개하고 이 세계가 이렇게 아름다워요 말씀드리는 시간입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도록 그 '예술의 방'을 여세요." 역시 '예술은 환영'이다. 아름답고 무용(無用)한 것의 가치, '선(善)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전시는 12월31일까지. ◆'안개 작가' 이기봉은?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86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 수상 후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리움미술관, 독일 ZKM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21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단체전, 2016 창원조각비엔날레, 2012 폴란드 포즈난의 미디에이션 비엔날레(Mediations Biennale), 2011 모스크바 비엔날레, 2010 부산비엔날레, 2009 비엔날레 큐베(Biennale Cuvée), 2008 세비야 비엔날레(Sevilla Biennale) 및 싱가포르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2022/11/18
이숙자 화백 "보리밭 그리자 천경자 벗어나...이젠 그림에 나를 바치고 싶어" "늙음은 소멸이 아니더라." '보리밭' 작가로 유명한 이숙자 화백은 팔순의 깨달음, '삶의 기쁨'을 전했다. "지금도 그릴 수 있어 고맙고 좋은 시절입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18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만난 이 화백은 정정했다. 허리가 꼿꼿하고 날씬해 바지 정장 패션이 잘 어울렸다. 80세라는 나이가 무색했다. '선화랑 45주년' 특별전에 초대되어 개인전을 연 이 화백은 여전히 '그림 욕구'가 강했다. 이번 특별전에 대표작인 보리밭 시리즈와 초대형 작품인 '백두산' 등 40여 점을 내놓았다. 이 화백은 홍익대 출신으로 고(故) 천경자 화백(1924~2015)직계 제자다. 196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입선 이후 1980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에서 동시에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채색화의 정통성을 수립하는 작가'로 불린다. 50년 이상 석채를 이용한 채색 작업만을 고집하며 전통 채색화의 명맥을 유지해 온 독보적인 작가다. 청맥, 황맥 등 '보리밭' 시리즈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인 그의 자화상이 눈길을 끈다. '푸른 모자를 쓴 작가의 초상'.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19년에 제작했다. 고운 모습과 함께 처연한 표정이 감도는 자화상에서 어쩐지 천경자 화백의 분위기가 풍긴다. "지금도 인물화는 영향을 받은 선 느낌 등이 나타나요." 이 화백도 안다. "제가 무슨 그림을 그려도 천 선생 흉내 낸다고 했어요. 그 소리가 싫었죠. 그런데 '보리밭'을 그리면서 그 소리가 들어갔어요." 1977년 국전에 출품한 '청맥'을 시작으로 이듬해 1978년 '맥파-청맥'으로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 1980년 '맥파-황맥'으로 제3회 중앙미술 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보리밭 작가'가 됐다. 80년대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보리밭이라는 일관된 주제가 정착했다. 특히 1990년에 선보인 누드화 '이브의 보리밭'은 파격과 도발로 화단을 떠들썩하게 했다. "제 손자들이 지금은 25살, 22살인데 어릴 적에 묻더라고요. '할머니, 할머니는 왜 벌거벗은 여자를 그려?'...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것이었어요. 발가벗은 모습을 이상하지 않은 눈으로, 보통 사람 얼굴 보듯이 낯이 익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요." '파격의 누드화'는 2008년까지 곤혹을 치뤘다. 고양 아람누리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이브의 보리밭'은 유치원생과 초등생에겐 관람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후 8년의 세월이 지나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 초대전때 달라졌다. "예전처럼 이상하지 않은 자연스런 분위기였어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전시를 보고 전시장도 따로 출입금지띠를 만들지도 않았지요." 1990년대 본격적으로 등장한 보리밭 속 여성의 누드는 ‘이브의 보리밭’으로 불린다. 이브가 단순히 성적인 대상이 아닌 더욱 살아있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생명력을 가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은 자연의 원천이자 생명의 근원입니다." 전시장에 나온 누드화 에피소드도 전했다. 음모가 드러난 그림에 대해 "(당시 걸크러쉬였던)천경자 선생도 이것 좀 안 그렸으면" 했고, 선배 화가는 "대중 앞에 저렇게까지 적나라하게 그리면 창피하지 않아?"라는 소리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저렇게 그렸지? 라는 생각을 했다. 자다가 벌거벗고 있는 꿈을 꾸면 부끄럽고 난처한테 왜 그런 그림을 그렸을까? 의문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인권에 대한 반항의식, 인습에 대해 반항하는 것이 내 의식속에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볼테면 봐!라고 그렸죠." 당시 그 음모에 대해 '멀리서 보면 거무스름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터럭 하나하나 자세히 그렸다'는 한 평론가의 평도 있었는데, 실은 '모델의 사실화'다. 이 화백은 "10년간 함께한 누드 모델의 진짜 모습이어서 그리면서도 그리고 나서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고 했다. 이 화백은 "누드화는 당당한 여성의 역할, 여성의 지위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작업하면서 쉬는 시간에 소설 '혼불'을 읽었는데 그 세월이 500년전도 아니고 불과 80년전이더라"면서 "지금 생각하면 똑같은 인간인데...그런데 세상은 변함이 없잖아요. 이란에서 히잡 반대시위가 여전하다"며 여성인권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보였다. "지난 2년은 저를 그림에 바치는 생활을 했어요. 살아오면서 쭉 시간에 쫓기듯 살아왔는데, 요즘은 휴식을 안 하면 그림을 못 그려요. 그래도 마음속으로 기쁨이 일어납니다." 화백은 평생 시간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젊을 땐 쫓기듯 작업을 했다면, 지금은 시간에 눌린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작업실에서 지내며 작업하지만, 2시간 정도 집중하면 힘에 부친다. 쉬기를 반복하며 작업하고 붓을 놓지 않고 있다. "주름은 용서가 안되더라." '푸른 모자의 자화상'으로 다시 이야기가 돌아갔다. "제 늙은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데 주름은 못 그린 것 같이요." "솔직하지 못했다"고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을 못한 작품이 있어요. 더 처절하게 지금의 나를 그리고 싶었어요. 실은 정말 처절한 나를 그리고 있었죠. 지금보다 더 말랐을 때, 주름이 많은 나를 데생을 다하고 색칠도 했는데...아...이번에 냈어야 하는데" 이 화백은 고개를 떨구며 "제 작품은 시간을 오래 끌면서 하는 작품들이다. 전시해야죠. 전시를 할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천경자'를 벗어난 '보리밭 작가'는 이제 그 명성도 벗어나고 싶다. "'보리밭 작가'라는 타이틀도 부담스러워요. 자기복제같이 또 그리고 또 그리고, 그런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보리밭은 아직도 그리고 싶어요. 제가 죽고 나서도 뭔가 사람들 가슴에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보리밭은 아직도 그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그는 "먹고사는 것도 힘든 시절, 화가가 되어야 겠다는 꿈, 그 그림에 대한 꿈 때문에 산 것 같다"고 했다. 이 화백은 "지금껏 그림 그리고 살아온 게 감사하다"고 했다. "'보리밭 작가'든 뭐든 관심 없어요. 나 스스로 바치는 작품, 내가 다 나를 바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삶은 감각의 향년이다. 노년의 그는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변함없는 열정과 집념을 보였다. 여전히 화가로서 늘어나고 있다. 선화랑 한국화가 이숙자 개인전은 11월19일까지 열린다. 2022/10/18
'지금은 이건용 시대'..."'하트 100점 뮤지엄' 만들고 싶어" '대기만성', '가화만사성'은 이건용 화백에 딱 맞는 말이다. 올해 나이 80. 하반기에도 국내외에서 개인전이 잇따르고 있다. 2016년 뒤늦게 터진 그의 '신체 드로잉'은 현재까지 미술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특히 국내 굴지의 화랑인 현대화랑과 리안갤러리 전속이자, 미국 최고 화랑인 페이스갤러리 전속 작가로 승승장구세다. 국내 내로라 하는 컬렉터들은 모두 소장했다는 그의 작품은 해외 미술관도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LA 시립 '라크마 미술관'에 이어 올해 초 프랑스 '루이뷔통 미술관'에서도 100호 3점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6년부터 활약한 국내 행위 미술 1세대 대표 작가의 환희다. "30일에 구겐하임 관장이 직접 온다고 했어.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지." 19일 리안갤러리에서 만난 이건용 화백은 "구겐하임 관장이 리안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에 오기로 했다"며 "내가 전시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러브콜, 그에게 이젠 낯선 일이 아니다. 올해 초 페이스 홍콩 지점 전시 이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미국 코로나 사태로 열리지 못했다. 북미 최초의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조명하는 첫 도약의 무대로 기대가 큰 전시다. 리안갤러리 서울 전시에 이어 9월엔 예술의전당에서 퍼포먼스 전시와 프랑스 파리에서 개인전이 이어진다. 빡빡한 전시 일정에 걱정은 부인 몫이다. "비타민 한 알도 안 드세요. 한 달 전에 코로나 걸렸는데, 약도 안 먹고 식사도 잘 안 하셔서 살이 더 빠졌어요." 이 화백 옆에서 무궁무진한 작업 활동 자랑을 가만히 듣고 있던 부인 승연례 화백은 걱정스러운 표정이면서도 "남편은 평생 이 몸매다. 마른 것은 집안 내력"이라며 "여전히 생각이 기발하고 창조적"이라고 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난 부부는 존경과 사랑이 넘쳤다. 50년간 부인의 변치 않는 내조는 그를 '대기만성형' 작가로 두각을 나타내는데 공헌이 크다. 작업 이야기로 말이 끊이지 않는 옆에서 "화백님 그림이 너무 좋다"며 칭찬을 이어가는 승 화백은 세상은 그를 청개구리 같다고 하지만 "유머가 있어서 좋다"며 잉꼬부부 면모를 보였다. "저희 아이들도 아빠 그림을 너무 좋아해요. 어쩌다 그림을 그려줄 때면 바로 액자에 끼워 걸어 벽이 다 아빠 그림으로 차 있을 정도"라고 했고 "할아버지의 힘찬 에너지를 받아 손자 손녀들도 그림을 잘 그리고 활발하다"면서 천진난만한 이 화백의 원천인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전했다. 부인의 칭찬 속 남편은 (천사가)승 화백이 9월 개인전을 연다고 귀띔했다. 부인을 '천사'라고 부른다는 이 화백은 의기양양하다. 현재 몸무게가 58kg이라는 그는 건강엔 자신 있다고 했다. 사실 마른 몸매는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40년 넘게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구부려 앉아 흰 분필로 움직이는 만큼 가벼운 몸은 긋고 지워나가는 무기다. "몸으로 선을 그리고 몸으로 선을 지우는 행위"로 그의 대표작인 '달팽이 걸음'은 퍼포먼스때마다 감동을 선사하며 여전히 현대미술계에서 신박한 작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리안갤러리서 세번째 개인전 '재탄생' 25일 개막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은 25일부터 이건용 작가의 개인전 ‘재탄생(Reborn)’을 개최한다. 신체 드로잉에 변주를 가한 다양한 스케일의 회화 및 설치 작품 20여점을 선보인다. 캔버스 앞에 서서 뒤로 팔을 뻗어 그리고, 옆으로 팔을 휘둘러 나온 하트, 양 팔을 펼쳐 나온 복숭아 엉덩이 같은 하트 등 신작 '바디 스케이프(Bodyscape)' 신작은 모두 부인 천사의 말로 완성됐다. 이 화백이 뒤로, 앞으로 팔을 뻗어 그리다가 "어때?" 라고 물으면 "멋져요"라는 대답이 나오면 멈춘 작업이다. 이번 전시 작품은 동시대 작가라면 피해갈 수 없는 주제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를 화폭에 담았다. 쓰레기 더미 사진 배경에 그의 필살기인 '신체 드로잉'을 초록 물감으로 긋는가 하면, 눈이 녹고 있는 빙하에 선 백 곰 두마리 위에 물감이 뚝뚝 흘러내리는 '하트'를 그려내 눈길을 끈다. 리안갤러리는 최근 몇 년간 '이건용 시대'를 구가하며 익숙해진 그림의 변화를 위해 큰 싸리나무를 엮어 전시장을 연출했다. 46년 전 '그린다는 행위'를 혁신한 그의 '몸 짓'은 세상에 축복을 낳고 있다. 그 어렵다는 실험미술과 개념미술로 대중과 소통한 그는 이제 꿈이 하나 있다. "하트 뮤지엄을 만들고 싶어요. 이쁘든 안 이쁘든 이상하든 내 팔로 (휘둘러서)그린 하트 100점만 있는 '이건용의 하트 100점 뮤지엄'. 멋질 것 같지 않나요? 하하하." 2022/08/19
윤병락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과 작가 꿈" ‘사과=윤병락’이다. 흔한 사과지만 미술시장에 오면 다르다. 비싸서 엄두가 안 나는 '사과'다. 가격은 해마다 올라 현재 100호 크기에 담긴 사과값은 9000만 원이다. 윤병락의 사과는 2004년 등장했다. 궤짝에 담긴 사과는 컬렉들을 홀렸다. 덕분에 ‘솔드아웃 작가’다. 국내외 아트페어와 기획전, 아트옥션과 갤러리의 러브콜이 줄을 잇는 인기 작가다. '윤병락 사과'를 차지하려면 기다림은 필수다. 기본 2년 이상은 참아야 할 정도다. '사과' 그림이 나온지 20여 년. 수많은 사과 그림이 쏟아지지만, '윤병락의 사과는 원조의 위엄을 뽐낸다. 명품의 차이는 디테일. '사과 그림'은 '진짜 사과'도 움찔할 정도로 감쪽같다. 맑고 깨끗한 색채와 독창적인 표면 처리는 작가의 노동집약적인 '손맛 덕분'이다. 변형 캔버스, 공간연출도 비법이다. 가정집이든 사무공간이든 사과나 사과 상자만 그려진 그림 만으로도 무한대의 여백을 만들어낸다. 사과 그림은 '윤병락 사과'로 통하지만 제목이 따로 있다. '가을향기'로 명명됐지만 사시사철 싱싱한 향으로 진동한다. 윤병락은 왜 사과를 그리게 된 것일까? 3일 서울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윤병락: 아카이브'전을 연 작가에게 들어봤다. ◆처음부터 과일만 그렸나? 지금의 사과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것은 2003년 연말 이후다. 과일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2년도 접시 모양의 변형 캔버스와 함께다. 이전엔 지금과는 다소 다른 전통적인 미학에 심취해 있었다. 물론 표현기법은 지금과 같은 극사실주의 화법이었다. 대학졸업 후 초기엔 낡고 퇴색된 옛 민속 기물에 주목했다. 시간의 훈장인 먼지가 곱게 내려앉은 기물들에서 남다른 삶의 정취를 보게됐다. ◆윤병락에게 ‘사과는? ‘사과=고향’이다. 경북 영주 출신으로 영천에서 고등학교까지 살았다. 영천은 천지에 사과밭이 널린 곳이다. 아버지께서도 포도 과수원을 운영하고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과일 행상도 마다치 않으셨다. ◆위에서 내려다 본 부감시점(俯瞰視點)’ 화면이 독특하다 정물화 구성법을 정면으로 거스른 화법이다. 보통 정물화라고 하면 물체가 앞쪽부터 뒤쪽으로 겹겹이 쌓여가며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것을 정법으로 삼는다. 대개 앞쪽에 크고 무거운 기물을 배치해 안정감을 도모한다. 하지만 내 그림은 무겁고 큰 물건을 위쪽에 올리고 각각의 기물들은 독립적으로 흩어지게 배치했다. 미술학도 청년시절 새로움을 추구했던 객기로 출발했지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서양화와 동양화 기법이 융합된 나만의 차별화 기법이다. ◆‘변형 캔버스’, 어떻게 나왔나? '변형 캔버스'를 짜는 과정은 쉽지 않다. 튀어나온 모양대로 나무패넬(합판)을 잘라내고 홈을 파내며, 수작업으로 최소 이틀 정도는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작업실 한쪽에 목공실을 따로 마련해뒀다. 원하는 형태를 합판에 스케치한 후 직소(Jigsaw)를 이용해 곡선에 따라 자르는데, 오랜 기간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자작나무 합판을 두 겹으로 덧댄다. 이 위에 찢어도 잘 안 찢어질 정도 두께의 우리나라 전통한지(삼합 닥종이)를 캔버스 천처럼 입혀 붙인다. 붓질이 밀리거나 유화물감이 지나치게 스며들지 않도록 미디엄으로 서너 번 밑칠을 하면 바탕화면이 완성된다. 그 위에 처음부터 다시 스케치를 하고 밑칠을 한 다음 기본 채색에 들어간다. 유채물감의 무게감과 질감, 한지에 스민 부드러운 투명함 등이 어우러져 사과만의 신선도’가 완성된다. ◆자유로운 연출방식과 색다른 공간 구성도 눈길을 끈다 대형 사과상자 그림 주변에 마치 상자에서 굴러 내린 것같이 낱개의 사과 몇 알을 붙여놓다 보면 아주 색다른 생동감을 자아낸다. 낱개 사과를 어디에 어떻게 붙여 놓느냐에 따라 공간은 더욱 무한하게 확장되어, 회화의 평면성을 넘어 입체적인 설치 영역으로 전환된다. 화가의 꿈은 초등학교 2학년 즈음에 키우기 시작했다. 경북대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어릴 적부터 화가는 ‘남들과는 좀 달라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남들이 하지 않은 걸 시도해보는 것으로 발전하고, 대학 재학시절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보기 위한 실험을 쉬지 않았다. 특히 군 제대 후 2학년에 복학하면서 학과의 암실 관리를 맡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 "회화 작업 외에도 사진이나, 실크스크린 작업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계기가 되었다." ◆김흥수 화백 격려 큰 힘…전업작가로 "화가로 성공 살아남기" 목표 1993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을 받으면서 전업작가의 꿈을 시도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흥수 화백이 직접 전화를 걸어 “색감과 구성이 우수했고, 대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앞으로 훌륭한 작가가 될 자질이 있다”고 격려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 대학졸업 후 작가로 등단한 이후에도 늘 고민은 ‘화가로서 성공해 살아남기’였다. 몇 십 명이 한 공간에서 전시하는 그룹 전시에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내 그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관람객이 집에 돌아가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까지 ‘내 그림의 잔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 바람은 졸업하자마자 가진 첫 개인전에서부터 기질을 발휘했다. 당시 그림의 주인공은 사과가 아니었고, 초현실주의적인 형식이었다. 다소 장식성이거나 상징적인 성격에 가까웠다. ◆1995년 대구 봉성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화단 데뷔 1995년 대학졸업후 고금미술연구회 수상 기념으로 대구 봉성갤러리에서 열린 선정 작가로 개인전을 열고 화단에 데뷔했다. 그 첫 시작이 없었다면 지금의 윤병락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작품은 건장한 남성이 정면을 보며 서 있는 형상을 닮은 화면을 연출했다. 떡 벌어진 어깨에 다부지게 주먹 쥔 양팔인데, 곧게 뻗은 두 다리는 다소곳하게 모으고 있다. 이는 제각각 인체 부위의 나무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인데, 현재 ‘윤병락 스타일 변형 캔버스’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겠다. 이를 계기로 199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정형화된 사각 형태의 화면’을 탈피하는 변형 작업을 본격화 했다. 캔버스의 사각 틀을 뭉갠다든가, 더 튀어나오게 덧붙여 나만의 기호에 맞는 화면으로 재구성했다. 이후 처음 배경을 없앤 그림은 2003년 주판을 그린 작품이다. 주판은 사각이니까 캔버스 비율만 맞추면 되겠다 싶어 실험해봤다. 작업을 하고 나니 ‘배경이 없어도 그림이 되는 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간담회 배경 걸려 유명세 위에서 부감시점으로 바라본 그림은 2003년 시작됐다. 반닫이 위에 접시가 놓였고, 뽀얗게 쌓인 반닫이와 접시를 가로질러 나뭇가지를 기다랗게 올려놨다. 이 시기를 전후해 소소한 기물을 올려놓은 접시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작품에 ‘가을향기’라는 제목이 꾸준히 이어졌다. 고가구 반닫이 작품 '가을향기' 작품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념해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 배경으로 걸려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사과는 단지 소재? 사과 궤짝만으로 화면을 구성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경이다. 사과는 단지 소재일 뿐이었다. 변형 캔버스를 통해서 ‘그림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무엇을 그리든지 소재는 중요하지 않았다. 2007년 나온 '가을향기'는 의미있다. 농부의 땀을 훔쳤던 흰 수건도 걸쳐놨다. 이건 화면의 숨구멍 역할이다. 이 시기에는 사과 자체의 묘사보다, 사과 상자가 지닌 공간감으로 ‘열린 조형성’을 연출하는데 더 집중했다. 사과는 전체적인 균형과 긴장감을 조율하는 요소였다. 초창기 사과 그림에선 간혹 반쪽으로 쪼개졌거나, 한 입 크게 베어 문 사과들이 등장한다. ◆사과가 커졌다. 전하는 메시지는? 2010년 전후 사회적으로 환경적 이슈가 크게 부각되었던 시기에 그렸던 사과에는 그러한 고민이 투영됐다. 환경문제의 화두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 기온 상승에 따라 사과의 재배지가 점차 이동하다보면 결국 우리나라에서 사과를 만날 수 없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에 소개된 북극곰이나 돼지를 등장시키거나, 그 위에 사과를 올려놓았다. 이런 작품은 2006년부터 그렸다. 동시대적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언젠가는 새로운 사과시리즈를 건축물과의 콜라보 또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거대하고 독창적인 공간 속 작품설치를 꿈꾸기도 한다. ◆사과 컬렉터, 미술애호가들에 하고 싶은 말은? 내게 사과는 유년시절 기쁨을 동반하는 고향의 향수가 어린 과실이다. 감상자 개인마다 추억과 기억은 다르겠지만, 행복을 소환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햇빛, 비, 바람 등 자연의 수혜 속에 결실을 맺은 사과는 수확의 기쁨이자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온 우주의 에너지가 사과 한 알에 응축되어 있으며 우리는 사과를 통해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고, 또한 인간 존립에 필수적인 자연에 대해 감사함을 잊지 않게 된다. 햇살을 듬뿍 받는 작품 속 사과를 보며 긍정적인 행복의 에너지가 전해지길 기대한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작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과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사과들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트로이 전쟁으로 점화된 그리스신화 속 황금사과, 중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가 대표적입니다. 세잔은 고전적 원근법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다시점으로 입체주의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지요. 나 또한 나만의 시각과 조형 어법으로 완성된 사과 작품으로 훗날 ‘윤병락의 사과’로 회자되는 꿈을 꿉니다.” 202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