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칼더×이우환…'국제갤러리'라는 재능 기부 국내 상업 화랑중 가장 전시를 잘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국제갤러리다. 가나, 현대와 함께 국내 3대 화랑으로 불리지만, 이미 2곳을 제치고 이름답게 국제적인 면모를 발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견은 없을 것이라 본다. 물론 자사 굵직한 작가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작가들을 품고 있는 화랑의 위세는 타 화랑들을 압도한다. 특히 같은 작품도 달라보이는 '있어빌리티'한 세련된 전시 연출 미학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82년 서울 인사동에 국제화랑으로 개관한 후 40년 간 확장세다. 루이스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알렉산더 칼더, 우고 론디노네, 장-미셸 오토니엘, 제니 홀저, 줄리안 오피 등 세계적인 작가 전시를 잇따라 열었고,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최욱경 양혜규 문성식 등 K아트의 세련된 현대미술을 국내외에 알렸다. 국제화랑 창업주 이현숙 회장은 전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영국 잡지 '아트리뷰 '파워100'에 매년 선정되고 있다. 미술 사업은 그림 장사이지만 단순하게 장사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문화가 국력이 되는 시대, 갤러리 운영은 나라의 문화 품격과 국격을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술관이 아닌 상업화랑에서 미술관급 전시를 선보이며 국민에 문화향유 기회를 넓히는 일은 갤러리의 '재능 기부'다. 수천~수십억짜리 작품도 공짜로 공개하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기여한다. 국제갤러리는 올해도 다른 화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전시로 치고 나가고 있다. 4일 개막한 '이우환+알렉산더 칼더' 전시는 단지 유명 작가를 나열하는 전시가 아닌, 두 거장의 작업세계를 '알집'처럼 선보여 의미가 있다. '교과서에 나와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거나, '철판에 돌하나 놓고 작품이라니'라며 대단치 않게 여겼다면 이번 전시는 천천히 보고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대형 전시지만 회고전 처럼 방대하게 작품을 늘어놓지 않아 작품의 감각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관람료도 없다. 작품에 맞춰 전시장을 꾸미고 최선을 다한 작가와 화랑의 마음이 녹아 있다. 모두 관람객을 위해 존재한다. 미술은 그래서 '아름다운 술'이라 부르며 혼자 취하게 한다. ◆모빌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움직이는 조각의 마법 '모빌'은 균형감의 극치다. 독특한 생동력과 공간적 역동성이 잘 드러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조각가로 꼽히는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다. 조각을 조각으로부터 해방시킨 혁신가다. '움직이는 조각'은 받침대 위의 ‘고정적 오브제로서의 조각’이라는 관습적 개념을 깼을 뿐만 아니라 브론즈와 돌 등 양감에서도 해방시켜 현대 조각 미술사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189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조각가의 손자이자 아들로 태어났다. 스티븐스 공과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1923년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다시 입학하여 4년 간 회화를 전공했다. 철사를 구부리고 일그러뜨리는 방식으로 대상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조각의 시작이었다.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후 그는 철사를 비롯하여 평범한 조각적 재료들을 사용한 퍼포먼스 작품 '칼더의 서커스'를 제작하여 당대 파리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 1930년 피에트 몬드리안의 스튜디오 방문을 계기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하는 전환점이 되면서 그의 유명한 '키네틱 조각'이 발명됐다. 변기 '샘'으로 현대미술사를 뒤바꾼 마르셸 뒤샹에 의해 '모빌(mobile)'이라 명명된 이 조각들은 초기에는 손이나 작은 전기 모터로 구동되었으나, 1934년부터 기류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조각으로 발전했다. 1950년대 이후부터 칼더는 거대한 규모의 야외 설치 작업에 몰두했다. 1960년대 대형조각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알록달록한 모빌은 비행장, 미술관, 광장, 정원 등을 장악하며 세계 각지의 공공 기관에 세워졌다. (리움미술관 야외정원에도 있다.) 이번 전시는 대표적인 ‘모빌(mobile)’과 과슈 작업을 선별했다. 국제갤러리에서 2014년 전시 이후 9년 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이자 2004년의 첫 개인전 이후 마련된 네 번째 전시인 만큼, 이번에는 작가가 방대한 양의 작품을 제작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인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작품들을 조명한다.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모빌은 공간의 마법사다. K2와 K3에 나뉘어 전시된 칼더의 작품들은 살랑이는 바람에도 반응하며 분위기를 바꾼다. 스리슬쩍 일렁이는 '움직이는 조각'은 황금보다 빛난다. '지금' 이 순간, 그 소중함을 알려준다. ◆이우환 '관계항'의 키스, 그리고 무한 만남 “돌은 시간의 덩어리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다. 돌에서 추출된 것이 철판이다. 그러니까 돌과 철판은 서로 형제 관계인 것이다. 돌과 철판의 만남, 문명과 자연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내 작품의 발상이다." 국내 살아있는 최고 비싼 작가로 더 유명한 이우환(87)화백은 심오한 철학가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단순함으로 가장한다. 철판 위에 돌을 하나 놓거나 화폭에 점 하나 찍어 놓고 '예술'이라 주창해 '예술의 위대한 허세'를 자극한다. 돌 나무 등 가공되지 않은 자연물과 물질 그 자체의 상태를 '예술 언어'로 활용하는 그의 작품은 애써 '그린다는 것'과 애써 '만드는 것'의 의미를 허물어트린다. 그는 젊은 시절인 1960년대 후반 일본으로 유학 가 전위적 미술운동인 '모노하'를 창시하며 1970년대까지 일본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일본미술계에서도 '살아있는 현대미술' 전설로 통한다. 1980년대 부터 이어지고 있는 철판 위에 돌을 올려놓은 '관계항(Relatum)' 연작이 대표적이다. 자연을 상징하는 돌, 그리고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강철판을 공간에 설치한다. 작품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이 작품에 개입하게 되는 시점으로 두 사물과의 세계가 열리고 이어지는 '관계', 즉 문명과 자연, 그 만남의 문이 열리는 '관계항'이 작동된다. 국내에서 12년 만에 열리는 이우환 전시는 1관의 2개 공간과 2관 2층, 그리고 정원에 걸쳐 전개된다. 이우환의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아우르는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공개했다. 특히 1관에 설치된 신작(Relatum – The Kiss)은 의인화된 은유의 예시를 보여준다. 작품의 부제는 ‘키스’로 사람 같은 두 개의 돌과 돌을 둘러싼 바닥의 두 개의 쇠사슬 또한 포개어지고 교차하면서 교집합 양상으로 '만남'을 제공한다. 입벌린 듯한 돌이 기대 키스하는 듯한 작품은 처음 선보여 이전 돌들보다 주목하게 만든다. 풀어내는 말이 어렵지만 작품은 단순하다. 자연물과 인공물이 함께한 작품은 공백이 있고, 공명이 있다. '이게 뭐지?' 하는 호기심이 미끼다. 그 순간 작품 안으로 끌려들어 가 ‘무한’한 만남의 장에 빠지게한다. 억겁의 시간을 뚫고 전시장까지 온 돌 들의 묵언수행속에 '현실을 느끼고 생각하는 지금에 충실하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우환 화백이 '관계항' 연작 등 자신의 작품 메시지를 설명한 글을 전한다. “현시대가 신이나 ‘인간’이라는 망령 그리고 정보라는 망령한테 홀려서 맥을 쓸 수 없습니다. 이 망령이 전세계, 어쩌면 우주론까지 뒤덮으려고 하고 있어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신체일 수도 없고, 손에 닿지도 않고,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 실체나 외부가 없는 닫혀진 세계입니다. 이제 우리는 망령된 ‘인간’을 넘어서 ‘개체로서의 나’와 외부와의 관계적인 존재로 재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남(Encounter)이 중요한 것이지요. 나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독특한 신체성을 띠고 있으며, 대상 그 자체도 아니고 정보 그 자체도 아닌, 이쪽과 저쪽이 보이게끔 열린 문, 즉 매개항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타자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고 이것은 새로운 리얼리티의 제시입니다.” 전시는 5월28일까지. 2023/04/04
쇠라도 울고 갈 '주사기 점묘법'…윤종석 '창백한 푸른 점' 이 그림, 보고도 안 믿긴다. 가까이서 보면 오돌토돌 수많은 점이 박혔다. 알고보면 더 놀랍다. 정말? 이걸? 주사기로? 감탄도 기겁하게 한다. 주사기 통에 아크릴 물감을 넣고 밀어냈다. 1~2mm 작은 점들이 수만 번, 수십만 번 찍혀 환영을 만들어냈다. 19세기 후반 등장한 점묘화 창시자 쇠라도 울고 갈 '마이크로 점묘화'다. 윤종석(52)작가. 미술시장에서 이미 ‘주사기 화가’로 유명하다. 전생에 주사기였을까? 아니면 주사기를 만든 사람이었을까? “무의식의 틀을 깨고,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를 해방 시켰을 때, 비로소 새로운 앎(知)의 탐구가 시작된다.”(미셀푸코 '지식의 고고학' 중에서) ◆붓으로 점 찍다 '주사기'로 신세계 주사기로 점 찍기 달인이 된 건 허무와 절망에서 시작됐다. 대학원 시절 마티에르나 오브제 표현 기법에 집중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걸 내 거라고 할 수 있나? 물감 덩어리들만 턱턱 붙어 있는데,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붓으로 점을 찍었다. 밋밋하고 단순했다. "이것 저것 다른 도구들을 시도해본 끝에 찾은 게 바로 주사기였어요." 2000년에 시작한 '주사기 회화'는 옷으로, 늑대로, 꽃으로 일상을 채집하며 진화했다. 수행보다 더한 고행스럽게 작업하는 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겪으면서다.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다 내적인 결단을 내렸죠. 그 모든 덧없음을 작업에 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예술에 적당히는 없다. 수도자처럼 작업한다. 작품은 수십만 개 이상의 점이 태동한 결과다. 정직한 노동의 대가는 유려함을 선사한다. "점은 켜켜이 쌓인 과거를 밟고 살아가는 현재의 나를 알아가는 방법이자 제 스스로 여러 단계의 질문을 풀어가며 내면을 알아가는 심리 테스트와도 같습니다.” 깨알보다 작은 점은 하찮음을 위대함으로 올려 세운다. 시간을 잡은 수많은 점이 만든 화면은 그래서 빛나게 강렬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표면의 깊이' 이후 2년...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제 작업은 세상에 대한 감정적 반응입니다." 2021년 ‘표면의 깊이’ 전시 이후 2년 만에 나온 신작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에서 영감 받았다.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촬영한 ‘0.12화소에 불과한 작은 점의 지구 사진’이다.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라는 칼 세이건의 말에 공감했다. 그도 작은 점에서 살아온 모든 이의 인생을 수많은 점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미지와 형상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 (점으로 된) 선(線)은 시공간을 잇는 ‘반복된 윤회의 선’이기도 하다. 윤종석 작가는 "우리는 과거의 흔적을 딛고 살아간다. 화면에 어우러진 제각각의 모티브는 현재의 나를 알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며 "점은 현재의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 연결해준다"고 했다. ◆윤종석의 점...:"세상에 대한 감정적 반응" 이번 전시에는 한쪽 벽면 전체를 꽉 채운 특별한 대작이 눈길을 끈다. 가로 3m가 넘는 '여자의 일생(0907-어머니)작품은 작가가 처음 시도한 역작이다. 제목대로 어머니의 일생을 한 폭에 담았다. 나뭇가지처럼 뻗은 황금 줄기에 여러 모양의 저울이 달렸고, 곳곳에 어머니와 연관된 소재들이 얹어져 있다. "운동회에서의 독보적인 달리기 실력은 바통, 유독 좋아하신 동백꽃과 평소 즐기셨던 소주잔, 식당 일을 오래 하셨던 고단한 삶의 일상은 요리용 칼 등으로 표현했어요." 이번 작품은 형상이 확실했던 2년 전과 달리 형체가 흐트러졌다. 시간의 흐름,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을 의미한다. 20년 넘게 이어온 '주사기 점묘법'이 본능적인 감각으로 자유롭게 발휘된 자신감이다. 청색 빛이 스민 검은색으로 칠한 전시장 벽면도 인상적이다. 어두운 밤하늘의 우주 속에 작품이 빛나고 있는 듯 연출한 것으로 모든 것을 작가에 내어준 분위기다. 2m~3m 넘는 대작들을 건 상업화랑에서 흔치 않은 미술관 같은 전시다. 전시 무대가 적은 50대 작가들의 새로운 도전을 재조명하는 취지로 "작가적 역량이 커질 때 K아트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도 담보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환상적인 그림,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뚫고 나왔다. '유한 인생 게임'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주사기 점묘화'가 지루한 일상에 따끔 주사를 놓는다. 전시는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4월22일까지. ◆'주사기 화가' 윤종석은? 1970년 대전 출생으로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 동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일본·이탈리아·중국·싱가포르 등에서 20여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2006 화랑미술제 Best Top 10 작가 선정, 롯데화랑 유망작가 지원 프로그램 선정,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 청년미술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및 특선, 대전광역시 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중국 베이징 아트사이드스튜디오, 장흥가나스튜디오, 프랑스 파리씨떼 예술공동체, 대만 타이페이 아티스트빌리지 등의 레시던시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참여했다. 작품은 코오롱, 하나은행, 외교통상부, 두바이왕실, 벤타코리아, ㈜파라다이스 아트센터 쿠, 가나아트센타, 대전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보바스 기념병원. 골프존 문화재단, 제주현대미술관, 스텐다드 차타드 은행,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수원시립미술관, 롯데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3/03/31
차분해진 아트바젤 홍콩…'프리즈+키아프' 승산 있다 미술은 마술이다. 환각과 중독의 세계에서 주머니를 털어간다. 기괴하고 못 알아볼수록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물론 브랜드가 확실해야 한다. 유명 갤러리와 유명 작가의 협업은 '큰손'들을 쉽게 유혹한다. '나중에 돈 된다'는 귓속말이 최대 자극제다. '아트바젤 홍콩'이 여실히 증명했다. 지난 21~25일 4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행사는 묘하고 알 수 없는 이상한 작품들이 수십억 가격을 알리며 순식간에 거래가 이뤄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정식 개최된 아시아 최대 미술 장터로, '미술시장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불안정한 국제적인 경기 침체 전망도 이곳에선 통하지 않았다. ◆아트바젤 홍콩 차분한 반면 판매는 강력 2019년에 비해 행사의 분위기는 차분했던 것과 달리 세일즈는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폐막한 아트바젤 홍콩에 따르면 아시아권에서 온 컬렉터들의 관심 속에 대부분의 메가 화랑들은 출품작을 완판하고 가벼운 손으로 돌아갔다. 런던에서 온 유니온퍼시픽의 그레이스 스코필드 이사는 “전 작품을 첫날 모두 솔드아웃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VIP 개막 첫날 부터 수십억 대 작품이 턱턱 팔려나갔다는 소리가 터졌다. 100만 달러 이상의 대표작들을 내놓은 메가 화랑들은 화려한 '홍콩의 밤'을 만끽했다. VIP 개막 이틑 날인 22일 전시장이 한산한 이유라고도 했다. (코로나로 억제된 중국 본토 큰손들이 스트레스를 '돈질'로 풀고 갔다는 뒷얘기도 나왔다.) 최고의 세일즈를 기록한 화랑 중 하나는 뉴욕 런던 홍콩 등에 진출한 LGDR이다. ‘NFT의 제왕’인 비플의 NFT 영상 설치 작품인 ‘S.2122’가 900만 달러(117억 원)에 판매됐는데, 중국 난징의 데지 미술관(Deji Art Museum)이 구매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갤러리는 파블로 피카소의 ‘Fillette au bére’는 550만달러(71억 원), 니콜라스 파티의 ‘Birds Fighting for Worms’는 280만달러(36억 원)에 팔았다. 화이트큐브는 안젤름 키퍼의 ‘Rapunzel’을 100만유로(14억 원)에 팔았다. 글래드스톤은 알렉스 카츠의 회화 2점을 각각 130만달러(17억원), 120만달러(15억6000만원)에 판매했다. 쿠사마 야요이, 마크 브래드포드, 앨리스 닐, 조지 콘도, 카즈오 시라가,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은 줄줄이 팔려나갔다. 하우저앤워스는 조지 콘도의 ‘Purple Compression’을 475만달러(62억 원), 마크 브래드포드의 ‘A Straight Line’을 350만달러(45억 원), 로니 혼의 조각 ‘무제’를 175만달러(23억 원)에 팔아치웠다. 야요이 쿠사마는 동시대 미술시장 대세의 저력을 보였다. '노란 호박' 조각이 350만 달러(45억5000만원·오타 파인아츠 갤러리)에 팔린 데 이어 그 다음날 초록 호박이 600만 달러(78억 원·빅토리아 미로 갤러리)에 판매됐다. 현재 92세의 일본의 살아있는 전설인 쿠사마는 현재 홍콩을 대표하는 문화 명소 M+뮤지엄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루이비통과의 협업으로 명품부터 전시까지 '땡땡이 세상'을 만들고 있다. 쿠사마에 이어 이번 행사에서는 일본 1세대 행위예술가 카즈오 시라가(1924~2008)의 회화도 주목 받았는데, 1991년에 제작한 추상화가 500만 달러(65억 원)에 판매됐다. 캔버스에 붓이 아닌 몸을 뒹굴어 만든 붉은 피같은 그림이다. 전 세계 블루칩 작가의 수작이 쏟아져 나온 가운데 K아트도 선전했다. 특히 국제갤러리는 월등한 판매 실적을 보였다. 하종현의 대표작 ‘Conjunction 22-38’ 7억 원대, 이승조의 ‘Nucleus’ 4억 원대, 박서보의 신작 세라믹 묘법도 점당 2억5000만원, 최욱경의 ‘God Damn’을 1억 원대에 판매했다. 우고 론디노네와 제니 홀저도 2억 원대에 각각 팔았다. 이우환 작품은 외국화랑에서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파리 메누르 부스에 나온 이우환의 ‘대화’(2014)는 100만 유로(14억 원), 페이스에서는 100만 달러(13억 원)에 팔렸다. 조현화랑은 이배 대형 숯 회화 8점이 첫날 완판됐고, 학고재도 문을 열자마자 정영주의 판잣집 풍경화 4점을 모두 판매했다. ◆서구에서 아시아로 시장 재편 확연...중국 본토~한국 필리핀 등 아시아 큰손 부상 "2019년과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다." 아트바젤 홍콩 마이크 호머 데이비드 코단스키 시니어 디렉터도 인정했다. 세계 32개국 177개 화랑이 참여, 지난해보다 47곳이 늘었지만 서구 쪽 중견 화랑들이 상당수 불참하면서 아트바젤 홍콩 위상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VIP개막에도 여유롭게 진행되는 행사에서 참가 화랑들은 '홍콩의 중국화' 현상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권의 '홍콩 엑소더스' 여파로 서양 컬렉터들이 보이지가 않는다"는 한 갤러리 관계자는 "이전 활기찼던 홍콩 경제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에 "홍콩은 정치적 불안과 코로나19라는 두 개의 병을 앓고 이제 나아졌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파비오 로씨 홍콩 화랑협회장은 "정치적 불안감이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직결할 순 없으나 여전히 불안감은 상존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시장엔 백인 등 서양인 보다는 중화권, 한국인 컬렉터들과 관계자들로 붐볐다. 갤러리 부스는 활기보다는 넓고 쾌적함이 돋보였다. 참가 화랑들은 "홍콩과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방글라데시에서 온 새로운 고객과 만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 아트바젤 홍콩 위상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분위기를 반전시킨 건 주변 박물관과 갤러리, 경매사들이다. 가고시안, 펠렘 갤러리등이 있는 패더빌딩과 하우저앤워스, 페이스,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스톤 갤러리 등이 몰려있는 'H Queen’s' 빌딩은 마크 브래드포드, 마이클 보레만스, 장샤오강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개인전을 열어 '아트바젤 홍콩 특수'를 누렸다. 특히 ‘M+뮤지엄’은 홍콩 문화의 체면을 살렸다. 런던 테이트모던을 설계한 건축가 헤르조그&드 뫼롱이 설계한 이 뮤지엄은 2021년 서구룡문화지구에 문을 열었지만 아트페어 기간인 지난 20일 ‘뮤지엄 나이트’를 통해 세계 미술계에 개관 신고를 했다. "홍콩을 중국의 문화중심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홍콩 정책 기조로, 이 행사에 미술계 관계자만 2000여 명, 갈라 디너 참석자가 30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야요이 쿠사마 회고전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텀블러, 컵 등을 판매한 굿즈는 벌써 동이 났고 양말과 수첩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새계적인 3대 옥션사도 대목을 누렸다. 중국 본토 등 슈퍼 컬렉터들의 방문에 맞춰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등 3대 글로벌 옥션회사는 앞다퉈 명작들의 프리뷰를 펼쳤다. 크리스티는 5월 뉴욕 메이저 경매의 프리뷰를 홍콩 알렉산드라 하우스에서 열었다. 미국의 근현대미술 최고봉인 S.I.뉴하우스의 컬렉션과 지난해 단일 컬렉션 경매로는 사상 최대규모(1조 4000억원)를 기록한 폴 앨런 컬렉션을 동시에 선보였다. 뉴하우스는 지난 2019년 제프쿤스의 1996년 조각 ‘토끼(Rabbit)’를 크리스티 경매에 내 놓아 9017만 5000달러(1158억원)에 낙찰시켜 제프쿤스를 생존작가 중 가장 비싼 경매기록 보유 작가로 등극시킨 이력이 있다. 필립스도 서구룡지구 M+뮤지엄 바로 앞에 신사옥을 개관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컬렉터들을 맞았다. 나라 요시토모의 황금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시작가 130억 원)등을 비롯해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한화 57억~84억 원)등 오는 31일 여는 3월 메이저 경매에 나온 작품들을 선보여 북새통을 이뤘다. ◆홍콩, 예전같지 않다...'한국, 잠자는 거인' 아트바젤홍콩 위협 "이번 행사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이 보여준 열기만 못했다." 한 해외 갤러리의 지적처럼 홍콩은 이전과 달라졌다. 수십미터 줄을 서며 입장만 30분 넘게 걸리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던 4년 전과는 달라진 아트바젤 홍콩은 '한국이 덤벼 볼만 하다'는 자신감을 키우게 한다. '한국(키아프)과 싱가포르(아트 에스지)등이 아시아 최대 미술 시장인 홍콩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는 CNN의 보도도 나왔다. 중국의 홍콩 민주화 탄압 움직임과 함께 아트바젤 홍콩과 관련 위상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과 함께 '잠자는 거인(sleeping giant)'으로 표현한 한국을 깨우고 있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홍콩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지만 프리즈와 함께 손잡은 키아프(KIAF)는 아트바젤 홍콩에 위협 요인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속에서도 지난해 프리즈 키아프는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깜짝 기록을 세웠다. 특히 아시아 시장 큰 손으로 부상한 한국의 MZ 컬렉터들의 위상은 증명됐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도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리며 한국 방문객이 넘쳐났다. ‘홍콩시 서울구’로 불렸던 이전처럼 '프리즈에 눈뜬' 한국인들은 "와서 보니 홍콩이 별거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미술 애호가들이 탄탄하게 자리매김했다는 증거다. 홍콩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거점으로 떠오른 건 '면세의 힘'이다. 미술품 수출입에 세금을 매기지 않고 미국 달러와 홍콩 달러 가치를 연동하는 달러 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는 덕분이다. 우리나라도 미술품 관세만 풀린다면, "아시아에서 다른 경쟁지는 없다'는 세계적인 옥션사들의 단언도 흔들릴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승산 있다." 오는 9월 열릴 프리즈서울+키아프가 더욱 기대감을 낳고 있다. 아트페어는 국가 전략산업이다. '홍콩을 중국의 문화중심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홍콩 정부 정책 기조처럼, 우리 정부의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 단 5일간 세계에서 온 10만 여명이 1조원을 쏟아낼 수 있다. 교통과 언어의 문제가 있지만, K팝 K관광 K먹방 K뷰티 등 K콘텐츠 대세가 뒷심이다. 아트바젤이 홍콩의 토종 아트페어를 먹어치우고 자랐다면, 키아프는 독자적으로 승승장구세다. 프리즈 서울에 안방을 내줬다는 비판도 있지만, 키아프는 자생력을 갖춰 올해 첫 인도네시아로 진출한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판도와 주도권을 두고 한국이 아트바젤 홍콩을 넘볼 줄은 4년 전만 해도 예정에 없던 일이다. 물론 그 사이 아트바젤은 47년 역사의 '피악'도 파리에서 퇴출시켰다. 세상에 독주는 없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 2023/03/27
"조선백자 보러 가세요?"...'리움미술관 BTS' 이준광 연구원의 'TOP 10'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요즘 리움미술관은 '문턱이 없어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고급 미술관의 콧대 높던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부터 '오픈런'에 폐장 시간까지 북적여 '시민 공원'처럼 보인다. 유료에서 무료로 전시를 개방한 것도 큰 이유지만 '다시 못 볼 전시'라는 입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MZ세대들의 '필람' 코스이자, 6070세대들의 나들이 장소로도 인기다. 세계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대규모 전시와, 국보와 보물이 쏟아진 '조선의 백자'전이 '이건희 컬렉션' 전시 못지 않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도발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도 깜짝 놀랐다. '돈을 벌 수 있는' 자신의 전시를 무료로 선보인 리움의 통 큰 배포와 논란을 낳던 이전 전시와 달리 경건하게 감상하는 모습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무료 전시'가 아깝다는 평이 많다. 오히려 '입장료를 받아라'는 민원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특히 총 185점이 나온 '조선의 백자'전은 전대미문의 최대 규모 전시로 한번은 아쉬워 'N차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의 백자:군자지향(君子志向)'전을 기획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연구원은 그 어느 해보다 행복하다. 현대미술에 치중했던 리움에서 고미술전문가로 12년을 숨죽였던 내공을 유감없이 발산했다. 조선 백자 감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과 함께 신박한 설명으로 얼굴을 알아보는 관람객들까지 생겨 '리움미술관 BTS'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사람도 백자도 사랑을 먹고 산다. '햇살처럼 화사하고 달빛처럼 고요한' 조선 백자의 위용은 이준광 연구원의 열정이 차이를 만들었다. 앞면만 보여주는 도자 전시가 아니다.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사방팔방에서 뽐낸다. 유리로 제작한 쇼케이스에 들어간 도자들은 뒤태는 물론 뒷면의 그림까지 볼 수 있어 품격을 더한다. 특히 용이 몸통을 휘감은 '백자청화 운룡문호'는 디지털 화면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구불구불한 용 무늬를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보여지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연구원의 야심작으로 당시 그 자체로 곧 왕이었던, '용 그림'의 위엄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수백억 국보와 보물, 달항아리가 특히 눈길을 끌고 있지만 전시에 나온 모든 도자가 귀하고 보배에요. 모두 무가지보(無價之寶)입니다." 검은 배경에 조명을 받고 있는 조선백자들은 압도적이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덕분일까? 더 없이 환희에 찬 풍모로 우리를 맞이한다. 청화백자, 철화백자, 순백자, 지방 순백자까지 도자 역사를 '일타강사'처럼 전시장에 정리한 이준광 연구원이 '185점 중 이 백자는 꼭 다시 한번 더 봤으면' 하는 10점을 꼽았다. (이 연구원은 성공적 전시에 힘입어 내년에 선보일 '분청 사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백자도 그렇다. 전시는 5월28일까지. ◆①백자청화 매죽문 호(白磁靑華梅竹文壺):조선 15세기 높이 41.0cm, 입지름 15.7cm, 굽지름 18.2cm, 몸지름 34.2cm. 개인 소장, 국보.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최고의 명품입니다. 표면에는 푸른빛의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매화와 대나무를 정교하게 그렸는데, 붓놀림이 회화적이어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합니다. 청화 안료는 중국을 거쳐 수입된 페르시아산으로 조선 초에는 그 값이 금보다도 비쌌기 때문에 왕실용 백자의 제작에만 사용하도록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에 청화백자 제작 기술이 조선에 도입되면서 조선백자가 새롭게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로, 학술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②백자철화 포도문 호(白磁鐵畵葡萄文壺):조선 18세기 전반 높이 30.8cm, 입지름 15.0cm, 굽지름 16.4cm, 몸지름 28.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국보. "조선백자에 사용된 안료 중 최고급품은 파란색을 내는 청화이지만, 변화무쌍한 짙은 갈색으로 강인한 힘을 전달하는 철화 안료는 백자가 가진 매력을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풍만한 곡선을 이루며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의 항아리에 포도와 포도잎은 넓은 면을 이루도록 짙고도 짙게 그렸는데, 그 과감성이 응축된 색과 어울려 강렬하게 전해집니다. 이와는 반대로 가지에서 내려오는 잔 덩굴은 구불구불 섬세하고 여리게 표현되어 대비를 이룹니다. 정적인 포도 문양이 있는 이 작품에 하나의 파문을 던지는 것은 덩굴 사이를 건너 뛰는 원숭이의 모습입니다. 세부가 표현되지 않았음에도 자세, 안료의 발색, 번짐에서 역동성이 묻어나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조선 도자사에서 철화백자의 전성기였던 시기는 17세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인데, 이 작품은 이 시대의 집약체입니다." ◆③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白磁靑華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 풀벌레, 난초, 국화 문양 병, 조선, 19세기, 높이 42.3cm, 입지름 4.1cm, 굽지름 13.3cm 간송미술관, 국보 정갈한 순백색의 단정함과 절제된 청화 장식에서 조선백자의 전통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수요층의 요구에 대응하며 등장한 채색 백자가 품은 색다른 분위기도 조선 후기에 형성된 새로운 전통입니다. 가느다란 목에 비해 풍만한 몸체, 그 위에 곤충과 난, 국화가 도드라지도록 깎거나 붙여 1차적인 장식을 했습니다. 여기에 난은 청화 안료를 덧입히고, 국화 줄기와 잎, 곤충은 철화 안료로 채색했습니다. 국화꽃은 철 안료, 동 안료로 잎마다 정성껏 칠한 것도 있고, 순백인 채로 둔 것도 있어 색색깔로 피어난 국화를 재치있게 표현했습니다. 청화, 철화, 동화 안료를 함께 사용하여 색을 내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이 병을 제작한 장인의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조선백자에 새롭게 대두되는 창의적이고도 진보적인 조형감각이 빚어낸 수작입니다. ◆④백자 개호(白磁蓋壺):조선, 15세기 총 높이 34.0cm, 입지름 13.0cm, 굽지름 14.7cm, 몸지름 27.8cm 개인 소장, 국보 조선 초기의 백자는 새 왕조가 지닌 활기찬 기운을 반영하듯 형태가 당당하고 의젓합니다. 특히 질이 우수한 백자들은 왕실의 취향에 따라 순백의 아름다움과 품격 높은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이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두루 갖춘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뚜껑에 달린 봉오리 모양의 꼭지나 매우 깨끗한 흰빛을 띠는 색도 조선 초기 백자에 보이는 특징입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여러 백자 가운데서도 전체의 모양과 백자의 색깔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우리 백자의 예술성과 기술 수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⑤백자 달항아리(白磁滿月壺)조선, 18세기 높이 44.5cm, 입지름 21.5cm, 굽지름 16.7cm, 몸지름 43.0cm, 개인 소장, 국보 왕실용 백자를 제작하던 경기도 광주의 가마에서 만든 둥근 항아리로, 풍만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마치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만한 크기와 둥그스름함이 달항아리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둥글고도 단순한 형태에서 조선 후기 순백자의 격조미가 가장 잘 나타난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몸체의 위와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이기 때문에 대개는 접합 부분이 변형되어 의도한 둥근 형태가 나오는 예가 극히 드뭅니다. 이 항아리는 다른 달항아리에 비해 큰데다 중앙의 이음새 흔적도 깨끗하게 마무리되어 있어, 순백자의 은은하고 품위 있는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⑥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잔받침(白磁靑華寶相華唐草文盞托) 조선, 15세기 높이 2.2cm, 입지름 21.8cm, 굽지름 14.0cm, 개인 소장 넓고 편평한 바닥, 꺾여 면을 이룬 입술, 지름이 길고 높이가 낮은 굽, 키가 매우 낮은 몸체 등 15세기 잔받침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상상의 꽃인 보상화(寶相華)와 이를 잇는 덩굴을 주요 문양 소재로 삼았는데, 중앙의 보상화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보상화와 덩굴이 주변을 가득 채우도록 배치하였습니다. 꺾여 면을 이룬 입술에는 파도문을 장식하여 마무리하였습니다. 보상화는 중국의 공예의장화된 보상화 문양이 조선 초기에 유입되어 사용된 것으로 이 시기 크게 유행한 뒤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잔받침을 뒤집어 보면 일곱 개의 칠보문(七寶文)을 배치하였습니다. 칠보문은 본래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한 문양이지만 조선에서는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상서로운 문양이라는 인식만 남은 채 사용되었습니다. 금속기(金屬器)를 모방한 듯한 날렵한 형태, 눈부시게 흰 유약의 색, 그 위에 그려진 화려한 문양 등이 특징인 초창기 청화백자의 빼어난 미가 듬뿍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⑦백자철화 운룡문 호(白磁鐵畵雲龍文壺) 조선, 17세기 높이 48.0cm, 입지름 17.0cm, 굽지름 17.3cm, 몸지름 38.6cm 개인 소장 용이 그려진 항아리는 조선 왕실 주요 행사에 사용된 중심적 기종으로 용준(龍樽)이라 불렸습니다. 본래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장식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처럼 17세기 전 중반경에는 철 안료를 사용해 장식한 예도 전합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어려워진 조선의 경제적 사정, 중국의 명청 교체기 등 복합적인 이유로 고급 재료인 청화 안료를 구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선 왕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순백자 위에 임시로 용을 그린 가화(假畵) 용준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지워지는 등 문제가 있어 철 안료로 장식한 철화백자 용준을 제작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왕실에 왕이나 왕비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삼우제(三虞祭)까지에 해당하는 흉례(凶禮) 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항아리의 크기는 물론 힘찬 용의 표현, 용의 몸을 휘감고 있는 박력 있는 구름 등이 인상적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철화백자 용준과 비교해 보아도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사례로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⑧백자철화 매화문 편병(白磁鐵畵梅花文扁甁)조선, 17세기 높이 19.0cm, 입지름 4.1cm, 굽 5.0×7.6cm, 몸지름 16.5cm, 개인 소장 편병은 편평한 양면이 둥글면서도 측면으로 이어지는 선이 반듯하게 각져 있어 편안함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기종입니다. 보통 원형으로 구획된 공간을 활용해 각각의 면을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작품은 장식 소재로 삼은 매화를 한 면에 유감없이 그려낸 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과감하게 어깨를 타고 넘어가 반대 면에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그림이 양면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그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독특한 것으로 이 매화를 그린 장인의 과감함에 탄성이 나올 정도입니다. 매화 가지의 굵고 가는 표현, 이에 따른 철화 안료의 짙고 옅음의 변화,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소담한 매화가 잘 조화되어 훌륭한 명작을 만들어냈습니다. ◆⑨백자철화 초화문 호(白磁鐵畵草花文壺)조선, 17세기 후반 높이 33.2cm, 입지름 15.6cm, 굽지름 12.3cm, 몸지름 31.6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아타카 테루야[安宅昭弥] 기증 항아리 몸체에 꽃들이 가득 피어 있어 생명력 넘치는 대향연이 펼쳐지는 듯한 기운찬 작품입니다. 항아리는 정선된 흙으로 목부터 어깨, 하부에 이르기까지 단정한데, 밑동에서 굽에 이르는 부분에서 직각을 이루는 것이 독특합니다. 장식은 철화 안료를 이용하였는데, 구도와 비례에 대한 구속 없이 어린아이가 그린 듯 천진스러운 꽃들로 한가득 봄을 펼쳐 담았습니다. 꽃 모양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으로 그려 마치 현대의 막대 사탕 같은데, 비슷한 시기 제작된 철화 백자의 구름 표현과 닮아 흥미롭습니다. 뒷면은 꽃은 적고 앙상한 가지와 널은 잎들이 여백을 두고 자리하고 있어 앞면과 달리 호젓한 느낌이 감돕니다. 항아리의 품질은 경기도 광주 관요에서 만든 듯 양질이지만, 그림은 지방 가마에서 만든 듯 자유로와 묘한 이질감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⑩백자동화 호작문 호(白磁銅畵虎鵲文壺)조선, 18세기 높이 28.7cm, 입지름 13.6cm, 굽지름 13.5cm, 일본민예관 18세기 조선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상서로운 의미를 담은 민화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민화는 자연스럽게 백자에도 스며들었는데 이 항아리에 있는 호랑이, 까치, 소나무는 우리에게 까치 호랑이 그림으로 잘 알려진 호작도(虎鵲圖)의 요소들입니다. 배경의 세세한 묘사들은 생략한 채로 한 면에 비스듬히 앉아 앞을 보고 있는 호랑이를 큼직하게 표현하였는데, 무심한 선들을 더해 호랑이 털의 질감을 표현해낸 기술이 감탄스럽습니다. 나머지 너른 면에는 소나무를 펼치고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치 한 마리를 그려 완성했습니다. 까치 호랑이 그림의 주요 요소들만을 채택해 배치한 과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18세기 동화 백자의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2023/03/18
미술품은 국력...박생광·박래현 ‘위대한 만남’ "박생광과 박래현은 매우 평가절하되어 있다." 국내 미술시장 호황 속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각광받는 단색화를 비롯해 서양화 장르가 대세인 시대다. 상대적으로 한국화 장르는 존재감이 미약한 현실이다. 같은 시대를 풍미한 서양화 한국화의 대표 작가 작품의 경제적 가치는 수십 배에서 수백 배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단지 미술시장 유통 구조 이전에 미술사적 담론의 측면에서도 한국화의 위기로 진단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현대 채색화의 무한한 확장성과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 주목된다. 한국화 대가 내고 박생광(1904~1985)과 우향 박래현(1920~1976) 2인전-위대한 만남전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전관에서 7일 개막한 전시는 '위대한 만남' 타이틀처럼 두 화가가 남긴 '위대한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박생광의 작품 181점과 박래현 작품 88점 등 총 269점이 걸렸다. 전시장을 압도한 채 빼곡히 걸린 작품들은 그야말로 '한국화란 이런 것'이라고 증명하는 모습 같다. 한국화의 미래를 위해 40여 년간 개인이 소장해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전시다. 전시를 주최한 주영갤러리(조영무 대표)는 "해방 전후 동시대를 함께 한 대표적인 한국화가인 두 작가는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비전’을 일궈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화의 잠재적 역량을 재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생광·박래현 위대한 만남' 위대한 걸작 269점 전시 박생광 작품 181점과 박래현 작품 88점 등 총 269점이 선보인 전시는 미술사 교과서 같다. 그간 논문이나 도록 등에서 소개됐지만 실물이 공개된 적은 많지 않았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방대한 작품 수를 자랑한다. 작가별로 200호(약 가로 240, 세로 180cm)가 넘는 대작부터 대표적인 중소품까지 150여 점의 원화가 나왔다. 특히 쉽게 보기 힘든 박생광의 스케치 100점이 포함되어 있어 작품 특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작가별 특성을 고려해 관람 동선을 만들었다. 박생광 작품은 소재별로 구분했고, 박래현은 시대순으로 작품의 변모 과정을 보여준다. 박생광이 1980년대 강렬한 인상의 채색화 작업이 절대적인 중심을 차지했다면, 박래현은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개별적인 특성을 고르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인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김윤섭 대표는 "한국적인 색감이 지닌 강렬한 인상을 독창적이고 확고한 조형언어로 재탄생시킨 박생광 화백은 ‘전통적 미감을 기반으로 한 현대채색화의 가능성’을, 수묵과 채색, 구상과 추상, 판화와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넘나든 박래현 화백은 ‘현대 한국화의 무한한 확장성과 비전’을 명징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우향 박래현:대표작 '단장'부터 200호 대작 '이른 아침' 등 원화 75점 한자리' 박래현의 작품 세계는 어떻게 한국화의 현대성을 모색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 총독상 수상작인 '단장'과 김기창 화백과 함께 부부전에 출품됐던 '부엉이' 등 박래현의 88점 중 원화가 75점, 스케치 13점이 전시됐다. 특히 수간채색 기법을 활용한 특유의 번짐 효과는 시대를 넘어선 현대적 미감을 자아낸다. 1967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참석을 계기로 중남미여행과 1973년까지 뉴욕에 체류하며 익힌 태피스트리(7점)나 판화(23점) 및 콜라주(2점)도 한 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 우향 박래현은 평안남도 진남포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1940년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에 이어 1943년 작품 '단장'으로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수상했다. 1974년 제6회 신사임당상,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성신여자사범대학교 동양화과 교수(1966~1967)를 역임했다. 남편은 '청록산수'로 유명한 운보 김기창이다. 생전 남편과 함께 동양화(한국화)의 전통적 관념을 타파하고, 판화·태피스트리(직물공예) 등 다양한 기법과 매체를 활용해 여성 특유의 감성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주목 받았다. 특히 섬세한 설채(設彩)와 수간채색, 면 분할에 의한 독창적인 화면구성을 통해 끊임없이 조형적 실험에 매진했다. 박래현 화백은 생전 “예술은 본디 마음의 휴식처를 제공하고 주변 환경을 좀 더 아름답게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 처럼 작품은 순수미술을 기반으로 장식미술과 생활미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중남미의 토기, 아메리카 원주민의 편물, 중국 고대 청동기, 우리의 백자, 토기, 소반, 맷방석, 떡살 등에서도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 작품의 소재나 부분적 문양 혹은 패턴으로 응용한 부분이 이채롭다. ◆박생광:오방색 화려한 무속시리즈부터 스케치 100여 점까지 박생광 작품 181점은 원화 71점, 스케치 100점, 기타(연하장·도자화·글씨) 10점을 공개했다. 채색화 중심의 작품을 십장생, 불교, 모속, 용과 범, 모란, 단청 등 소재별로 구분해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박생광은 한국 채색화의 대가로 손꼽힌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호는 내고(乃古), '그대로'라른 뜻을 담고 있다. 자신의 색채와 미감이 ‘그 자체로 한국적인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믿음’으로 한글 ‘그대로’를 호로 사용했다.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다녔으며 이 시기에 한국 불교계의 거목 청담스님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1920년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지금의 교토예술대학)에서 일본 화단의 ‘근대 교토파’라고 불렸던 다케우치 세이호우(竹內炳鳳), 무라카미 가가쿠(村上華岳) 등에게 새로운 감각의 일본화를 배웠다. 해방을 맞아 귀국 후에는 진주에 머물다가 서울의 홍익대에 재직하면서 진채(塡彩)를 사용하여 민속, 불교, 무속 등의 다양한 한국적인 소재를 독창적인 조형어법으로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박생광 작품은 크게 수련기(1950년대 후반기), 추상화 시기(1950년대 후반~1974년), 2차 일본시기(1974년~1977년), 한국적 미감의 전성기(1977년 이후) 등으로 구분된다. 1980년대 백상기념관(1981년)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1984년) 전시 등을 통해 한국화단에 큰 반향과 새로운 채색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작품에서 색채는 강렬함을 넘어서 신기, 광기 어린 ‘경이로움의 채색화’로 보여진다. 1982년 인도 성지순례를 마친 이후 말년의 작품들은 ‘박생광 스타일을 완성시킨 대표작’으로 꼽힌다. 1985년 파리 그랑팔레미술관 '르 살롱-85' 특별 초대전에 참여해 세계 미술계에 한국 채색화를 드높였다. 한때 '왜색 화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투철한 예술가적 창작 의지와 실험정신으로 확고하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뤄냈다. ◆한국화 '위대한 만남' 미술사적 재조명...아카이브존 운영·강연회도 이번 '위대한 만남'전은 소외된 한국 현대미술의 그림자를 밝히고, 미술품의 공공적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다. 한국화의 새로운 비전을 재조명한다는 취지와 함께 전문 필진이 두 화가를 미술사적으로 재조명한 도록도 발간했다.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가 박생광 작가와 작품을 분석했고, 송희경 이화여대 초빙교수가 박래현의 작품세계를 시대에 따라 깊이 있게 조명했다. 미술계 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승현 홍익대 외래교수와 한국문화산업연구소 황규성 대표가 각각 두 화백의 작품을 해석한 글도 담았다. 전시 기간 중 이승현과 황규성 필자를 비롯해,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역임한 최웅철 웅갤러리 대표가 특별 강사로 나선 강연회도 열린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협력한 작가들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존도 운영한다. 그림 명상실도 마련됐다. 박래현의 1960년 전후 대표적인 작품과, 같은 시대 생산된 빈티지 가구에 앉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 아이프칠드런과 함께 문화소외계층을 초청해 무료 관람을 제공해 문화 향유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하는 전시로 열린다. 역대급 한류 흑자 달성으로 K 콘텐츠는 수출 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K-아트도 K-팝 못잖게 국격을 높이는 K-콘텐츠다. 미술품은 국력이다. 우리 그림, 한국화의 저력을 다시 한번 살펴볼 때다. 전시는 29일까지. 2023/03/08
아이돌 군단처럼 등장한 조선백자들 뭉클…"역시 리움미술관" "와~이럴수가 있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조선 백자들이 마치 아이돌 군단 같은 위용을 뽐낸다. 위엄과 품격, 세련된 변화와 혁신의 풍모다. 검은 공간에 나란히 줄지어 조명빛을 받은 백자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우리의 전통', '우리의 얼'의 자존심을 위풍당당하게 보여 뭉클함까지 전한다. 리움미술관이 조선백자 명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전이 28일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리움미술관이 2004년에 개관한 이래 도자기 만을 주제로 기획한 첫 특별전이다. 국가지정문화재 59점 (국보18점, 보물 41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국보 10점, 보물 21점)과 일본에 소재한 수준급 백자 34점을 포함하여 총 185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그간 장식기법이나 주요 기종에 맞추어 소개되어온 조선백자 전시와는 다르다. 방대한 조선백자를 총괄하여 소개하는 동시에 그 안에 투영된 조선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함께 살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파노라마같은 전시...조선백자 42점 한눈에 펼쳐지도록 가벽 모두 없애 조선백자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더 면밀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 전시장 연출이 환상적이다. 하이라이트인 1부 전시장은 들어서는 순간 최고의 조선백자 42점이 한 눈에 펼쳐진다. 전시장 가벽을 모두 없앤 효과다. 도자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사방을 유리로 제작한 쇼케이스를 사용하고 작품을 고정하는 지지대도 간소화했다. ‘청화백자’, ‘철화·동화백자’, ‘순백자’로 장식기법과 제작지역으로 구분하여 총 4부로 구성됐다. ▲청화백자’에서는 품격과 자기 수양의 의지, ▲‘철화·동화백자’는 곤궁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굳센 마음, ▲‘순백자’에서는 바름과 선함으로 조명한다. 특히 조선백자 안에 조선사람들이 이상적 인간상으로 여기던 ‘군자(君子)’의 풍모가 담겨있다는 해석을 더하여 조선백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감상법을 전한다. ◆조선백자 절정...국보 보물 한자리 1부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절반이 넘는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 등 최고 명품 42점을 한 공간에 모아 이번 전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 초기 청화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널리 알려진 ▲'백자청자 매죽문 호'(국보), 고려의 매병에서 조선의 호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백자청화 홍치명 송죽문 호'(국보), 특유의 강렬한 색과 묵직한 힘으로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백자철화 포도문 호'(국보) 등을 선보인다. 조선의 절제된 화려함과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조형감각이 빚어낸 수작인 ▲'백자청화철재동채 초충난국문 병'(국보), 조선초기 백자가 가진 순백의 아름다움과 품격 높은 기형을 두루 갖춘 ▲'백자 개호'(국보), 생활의 미를 추구하며 티 없이 깨끗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백자 달항아리'(보물) 등도 만날 수 있다. 2부는 높이 60cm가 넘는 크기로 현존하는 용이 그려진 항아리 중 가장 큰 크기인 ▲'백자청화 운룡문 호', 소나무와 매화의 세부적인 표현과 안료의 농담 활용이 뛰어난 ▲'백자청화 송매문 호' 등이 전시된다. 3부에서는 ▲‘백자철화 운룡문 호’ 중 최대 크기로 힘찬 용의 표현과 박력있는 구름이 인상적인 ▲'백자철화 운룡문 호', 꽃 모양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으로 그리고 뒷면에 가지와 너른 잎들을 여백을 두고 표현하여 인상적인▲ '백자철화 초화문 호' 등은 청화백자와는 또 다른 품격을 선보인다. 4부에서는 흰 눈같이 맑고 청명하다가 우윳빛 같기도 하고 푸른빛이 반짝거리는 벽옥 같은 색을 선보이는 순백자의 고요하게 응축된 색을 만나 볼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백자 호'는 눈처럼 흰 빛깔로 단정하고 산뜻한 순백을 보여주고, 조선 후기의 ▲'백자양각 연판문 병;은 몸체를 깎아 표현한 3중의 연꽃 잎과 음각선으로 표현한 잎맥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청초한 색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선보인다. 전시를 담당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조선백자의 최고 명품부터 수수한 서민의 그릇까지 백자의 다양한 면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라며 “아름다운 문양과 같은 외적인 형식과 의식을 반영한 형태와 같은 내적인 본질이 잘 조화된 조선백자의 진정한 매력을 ‘군자’의 덕목과 연결시켜 새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국내 8개 기관(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부산박물관, 호림박물관, 간송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동국대학교박물관)과 일본 6개 기관(도쿄국립박물관, 일본민예관, 이데미츠미술관,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 야마토문화관, 고려미술관) 등이 참여하여 다채로운 작품이 출품됐다. 특히 우수한 한국 도자 컬렉션을 보유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특별협력기관으로서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전시장 입구와 내부에 리움 DID가 설치되어 한 눈에 보기 어려운 백자의 무늬를 한 폭의 그림처럼 평면으로 펼쳐서 보여준다. '역시 리움미술관 전시는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관람은 무료다.(단 관람 2주 전부터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다) 전시는 5월 28일까지. 2023/02/24
팔순 '아무것도 아닌'...성능경 '예술행각' 재개 ‘예술은 착란의 그림자‘(2001), ’예술은 무광의 아우라’(2001), ‘어디 예술 아닌 것 없소’(2007). 그의 어록은 세월이 지날수록 생생하다. 성능경(79). '한국 미술의 1세대 전위예술가'다. 이 수식어는 유행이 지나고 잊혀도 그를 되살려내는 힘이다. 1970년대를 풍미했다. 지금은 뒤로 그리는 그림 '하트'로 유명한 이건용 작가와 한패였다. 단색조 회화가 국내 화단을 지배하던 1970년대 초 전위미술로 화단을 깜짝 놀라켰다. ST그룹 회원으로 Space and Time의 약자인 모임 답게 공간과 시간이라는 개념을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성능경의 대표작은 '신문 오리기 퍼포먼스'다. '1974. 6. 1 이후'라는 제목으로 벽면에 하얀 패널 4장 준비하고, 신문을 네 장 붙이고, 매일 가서 기사만 오려내는 '이벤트'였다. 신문과 사진 등의 매체를 주로 활용해 주제를 전달하는 그의 작업은 탈장르적인 개념미술로 분류된다. 시대에 따라서는 권력에 대한 저항, 신체 회복의 표현, 일상에 대한 주목이다. ◆한국미술 1세대 전위예술가..."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그는 비주류의 개념미술가, 망친 모더니즘 미술의 독보적인 존재다. 1974년 유신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시기, 통제와 억압에 대해 비판하는 '조용한 반항'을 온 몸으로 전하는 자생적인 '개념미술' 선구자였다. 체제 비판적 성향은 여전하다. 지난 2015년 윤진섭이 기획한 '한국미술의 거장 3인의 동거동락(同居同樂)'전에서 김구림 이건용화 함께한 성능경은 '사색당파' 작품으로 한국 정치를 겨냥하며 자유로운 정치 발언과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현실을 야유하기도 했다. 1세대 전위예술가로 유명세를 탔지만 세월은 급변했다. 80년대 민중미술 대세속 성능경에 참혹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하지만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배우 고 강수연의 말은 그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작가로서 상업적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2015년 남산한옥골 전시때 성능경을 만난 윤진섭 평론가가 '그 배고픈 시절 극심한 공항장애를 겪고 정신병원 통원치료까지도 했는데 돈이 되는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봤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내 예술이 중요했어요. 예술을 한다고 해서 돈 버는 게 나쁠 건 하나도 없죠. 돈 버는 게 왜 나쁘겠습니까. 다만 예술로 돈을 벌고자 했을 때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영어로 창녀라는 글자인prostitute의 두 번 째 뜻이 뭐냐면, “돈을 위해서 예술의식을 굽히는 화가”라고 나와 있어요. 언어라는 게 다 역사성이 있는 거 아닙니까? 내가 돈을 목적으로 예술 행위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prostitute가 되는 지름길인 거죠. 그런데 그런 지름길을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내가 예술가라고 타인에게 명칭을 부여받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조금 탈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려서 파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다만 그것만이 목적이 되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팔순 생애 두 번째 상업화랑서 개인전...사진·퍼포먼스 작가 자존감 팔순이 된 성능경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 백아트(BAIK Art) 서울에서 성능경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을 시작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5월 국립현대미술관 단체전,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전, 2024년 2월부터는 로스앤젤레스의 해머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린다. '성능경의 예술행각'을 펼치는 백아트 서울 전시는 그의 상업화랑에서 생애 두번째 전시다. 1991년 대구 삼덕갤러리에서 개인전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을 가졌지만, 그의 아방가르드 미술은 미술계의 관심을 받는 대상이 아니었다. 미술관에서는 개인전을 했지만 다 합쳐도 개인전은 55년간 겨우 5회에 불과하다. 2009년에서야 생전 처음 아르코 미술관에 작품을 판매했다는 놀라운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물론 29년간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켰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인이 든든한 후원자로 곁을 지킨 덕분이다. 상업적 성공과 거리가 먼 것은 작업 탓(?)이기도 하다. 주로 사진 매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에디션이 없는 유니크 피스(Unique Piece)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로 스캔을 받아서, 에디션을 생산할 수는 있지만 작가는 이것은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본다. ◆예술은 꿈꾸는 자유...55년간 파격 충격 퍼포먼스 그는 지난 55년 한번도 작업을 멈춘 적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신작을 작업하고 있다. 그래서 보여줄 작품도 많다. 그동안 170여 회의 퍼포먼스는 '성능경'이라는 이름 석자를 재생하며 부활하기를 거듭했다. 검은 팬티 한 장만 입고, 권투 선수와 같은 붉은 가운을 걸친 작가가 부채와 여행 가방을 들고 전시장에 입장하면서 시작되는 퍼포먼스는 웃음과 동시에 교감하는 예술로 치환된다. 성능경 개념미술은 천박성으로 힘을 낸다. 조수진 미술사학자는 "70~80년대 정신적인 것의 추구에 몰두하던 당대 주류미술과는 대조되는, 그것의 일상적인 성격에서 비롯되었다"며 "그의 예술의 개념은 신문을 읽고, 먹고, 운동하고, 담배 피우는 등의 인간 삶의 수행에 뿌리를 두었기에 서구식도, 일본식도 아닌 성능경만의 개념이었다"고 평가했다. 퍼포먼스의 즐거움은 아픔 뒤에 찾아왔다. 1990년대 잠시 공황장애를 앓았는데,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하루에 응급실에 3번 실려가기도 했을 정도였다. 1980년대에 미술가로서 전시할 기회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오히려 전시가 많았던 1990년대에 아팠던 것에 대해 작가는 숨겨두었던 마음의 병이 드러났던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아프고 나서 퍼포먼스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삶이 힘들지, 예술은 쉽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예술은 빈사상태이거나 폐기처분되었다. 나는 그런 예술을 치유하고 소생시키기 위해 삶을 모험하면서 아직 예술 아닌 것을 찾아 나선다"고 했다. "예를 든다면 신문 읽기·오리기, 돈 세기, 스트레칭 하기, 사탕·콜라·케이크·떡 먹기, 이빨 쑤시기, 줄넘기, 경구·신문 일상영어 읽기, 광고·영화 카피 읽기, 훌라후프 하기, 아령 하기, 고무줄 새총으로 탁구공 쏘기, 트렁크 끌고 다니기, baby oil 바르기, 박박 긁기, 부채질하기, 옷 갈아입기, 폴라로이드 촬영하기, 오줌 누기·마시기, 신문의 일상영어 읽기, 면도크림 바르기, 자위행위하기, 구음하기, 물구나무서기 등등인데 이는 삶의 일상에서 발굴된 망각의 파편들이다.” 지금도 예술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일으킬 것 같은 그의 작업은 기행 같은 행각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아무것도 아닌 듯’ 하던 성능경의 예술행각은 이제 와 돌아보니, 거대한 의미의 숲을 이룬 것"이라며 "고수의 수에 넘어갔다"고 했다. ◆백아트서울 전시...'아무것도 아닌 듯…' 주목 성능경의 '예술행각'을 전시 타이틀로 쓴 건 55년간 스님처럼 도 닦듯 한 '탁발행각'에서 차용했다. 백아트 서울 전에서는 1970~1980년대 초반의 대표적인 오리지널 사진 작품들부터 최근작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끽연'(1976), '수축과 팽창'(1976), '손'(1976) 등과 백두산 생수병을 이용한 '백두산'(2018),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2003-2018)' 연작, 여전히 매일 작업하고 있는 '밑 그림'(2020) 연작 등을 선보인다. 특히 '그날그날 영어'는 수년간 신문에 연재되었던 영어 교육 섹션을 스크랩하고, 여기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을 남기고 그림을 남긴 연작이다. 초기에는 심플한 형태를 보였으나, 점차 글자와 콜라주가 정교해지고 한 장의 또 다른 작품이 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개막일인 22일 오후 5시 성능경의 진짜 퍼포먼스가 열린다. “야! 이 나이에 똑같은 거 하기도 어렵다." 즉흥 이벤트와 대중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위들로 충격을 선사한 퍼포먼스 뚝심 대가는 여전히 '싱싱한 악동'이다. “나는 살아 있는 예술로써 여러분의 피부와 골수에 소름 돋게-끼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의도이고 그것이 내 예술의 힘이다.” 전시는 4월30일까지. 2023/02/22
색으로 드러난 정주영...그림의 기후 '생생화화' 미술은 생생화화(生生化化)다. 와~ 이 그림, 보라빛 아우라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감각을 열어준 것일까? 소름도 올라온다. 새털 같은 붓질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일렁이는 그림은 색감으로 압도한다. 산등성이 같기도 하고 뭔지 모를 형상은 알고 보면 뜻밖이다. "어느 여름날 만났던 '먹구름'이 지나간 하늘이에요." '몹시 검은 구름'의 아름다운 변신은 무죄. 색으로 '생생화화'한 구름은 시간과 붓질이 짜여진 공간이다. 교묘한 환상을 직조해낸 정주영 작가는 "매일매일 변화무쌍한 하늘과 구름, 그 형태가 없는 혼돈의 근간이자 모호함을 색으로 치환했다"고 했다.('빛은 색이니, 그림자는 색의 결핍'이라고 했던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의 기법이 스며있다.) 먹구름이 보랏빛으로 나온 건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먹구름은 굉장한, 특별한 회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빨노파' 3원색을 섞으면 회색이 되는데 거기에 명도를 높여 흰색을 섞고, 옅은 분홍색, 파랑색을 덧칠한 색들의 중첩에서 나온 색입니다." 이전 산의 풍경을 그려온 작가의 대변신은 성공적이다. 신작 '기상학 연작'은 색이 도드라지는 변화로 '산의 작가'가 맞아? 할 정도다. "예전 작품에 색이 억제되어 있었다면 이번엔 모든 색을 겹치고 지우고 다시 만들어내는 과정이 작품을 만들어냈죠. 감각에 대한 것도 관람객에게 감성적으로 직관적으로 갈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밝은 색감의 정서는 물론 코로나 사태 영향이기도 하고요." 2017년 이후 갤러리현대에서 6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은 '그림의 기후'전으로 펼친다. '산-풍경’ 시리즈 중 '알프스' 연작의 최신작과 ‘기상학’을 주제로 산 너머의 하늘과 구름, 대기 등의 풍경으로 시선을 넓힌 새로운 연작까지 60여 점을 소개한다. 색의 변화로 시간 계절 날씨의 변화를 기록했다. 작품의 '생생화화'는 직관의 힘이다. 북한산, 인왕산, 도봉산, 알프스 까지 직접 가서 보고 들어내고 드러낸 '풍경의 초상'이다. '그림의 기후'전의 출발점에는 '알프스' 연작이 초심이 담겨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뾰족한 봉우리들과 빙하가 어우러진 일대를 2006년 답사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촬영한 사진 자료와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2018년부터 '알프스' 연작이 시작됐다. 지각변동과 침식작용 끝에 생겨난 절묘한 형상과 마그네슘, 칼슘, 철 등이 함유되어 있어 붉은색을 띠는 암석을 그리다 인식과 감각의 전환을 맞이한다. "산의 모습에서 사람의 얼굴과 손, 다리 등 신체의 일부가 연상 되더라고요." 빙하가 녹아있는 알프스 연작은 그래서 살포시 포갠 거대한 손가락이 보이기도 하고, '뼈미남' 같은 건장한 체구의 몸선도 드러난다. '알프스'에서 마주한 웅대하고 낭만주의적인 하늘 풍경은 ‘기상학’을 주제로 새롭게 선보인 하늘 연작과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알프스'연작을 준비하며 계절과 시간을 나타내는 하늘에 처음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변화의 상태가 더 긴박하게 다가왔고, 예상치 못한 사고의 전환을 갖게 됐죠." 하늘과 구름, 일몰 일출...실체가 없지만 우리 눈앞에 분명히 펼쳐지는 이 풍경들의 존재감은 작가 특유의 선묘적인 필법이 무기다. 경계 없고 한계 없는 풍경을 색으로 끄집어낸 건 작가의 '긋기' 내공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리드미컬한 색색의 선들의 흔적이 오로라 현상까지 전한다. "일몰의 순간, 장엄함 레퀴엠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빨리 뜨고 빨리 지지만 느린 시간처럼 지나가는 그 일몰의 경험을 색으로 치환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해서 나왔죠. 그렇다고 단박에 그려진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아랫부분이 파랗게, 위에는 빨간색으로 칠했는데, 칠하기를 덧칠하기를 반복하면 색깔이 바뀌어 집니다. 위로 아래로 옆에서 옆으로 겹쳐 칠하면 지우는 것과 같아져요." 겹침과 혼돈의 수많은 붓질이 만든 몽환적인 색감의 화면은 경쾌하고 산뜻하다. 마치 수채화나 오일 파스텔의 흔적처럼 보이지만 기름 섞은 유화로 제작됐다. 캔버스가 아닌 린넨에 그린 덕분이기도 하다. 전시의 부제인 ‘Meteorologica’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공기와 물, 땅에 관한 여러 기후 현상들을 관찰하고 이를 자연 철학적으로 기술한 책 '기상학(Meteorology)'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연작의 제목이 'M'으로 시작하는 이유다. 기상학(Meteorology)의 이니셜 M을 사용해 작가가 그린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의 기후를 색으로 포착해낸 정주영의 신작은 오랜만에 '그림 보는 맛'을 전한다. '고정관념이 멍청이를 만드는 거야'(故 정주영 회장 어록)라는 말 처럼 '색화'된 수행적인 붓질의 무게가 보여준다. '우리의 삶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도 여전히 새롭고 나날이 새로운(생생화화 生生化化)인식과 정신의 지평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전시는 3월26일까지. ◆정주영 작가는? 1969년 서울 출생으로 1992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1997년 독일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 네덜란드 드 아뜰리에를 졸업했다.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얀 디베츠(Jan Dibbets)교수로부터 마이스터슐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누크갤러리(2021), 이목화랑(2020), 갤러리현대(2017, 2013), 몽인아트센터(2010), 갤러리 175(2006), 아트선재센터(2002), 금호미술관(1999)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신세계 갤러리, 아트선재센터, 몽인아트센터, 경기도 미술관, 대구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3/02/15
복선을 넘은 색채의 쾌감…홍승혜 "20년 만에 네모 감옥 탈출" 국제갤러리에 먼저 봄이 왔다. 노랑, 파랑,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 색채가 천진하게 난만하다. 9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홍승혜 작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보여준다.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물들입니다." 9일 국제갤러리 서울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마티스가 스승"이라며 "색채가 주는 기쁨을 오마주 했다"고 말했다. 어린이 유치원 같기도 한 전시장은 알록달록 색채의 향연이다. 전시장 1관에 노랑색 파란색으로 칠한 벽은 마티스에게 헌정하는 벽화다. 말년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벽면 가득 장식하던 마티스의 파피에 데쿠페(papier découpé)를 기리며 1관 각 방의 벽면 모서리를 오려낸 '레몬 자르기(Le Citron découpé/Homage à Matisse)'와 '하늘 자르기(Le ciel découpé/Homage à Matisse)'를 제시한다. 이전 흑백의 사람, 계단 등 픽셀 작업과 달리 색채로 채워진 면과 선 드로잉들은 막힘이 없다. 단순해 보이지만 묘한 리듬감이 공간을 흔들고 있다. "유기적인 형태죠. 풀, 꽃을 그리던 시절로 돌아갔어요. 20년 만의 (네모)감옥 탈출이기도 해요." 2004년 국제갤러리에서 연 '복선伏線을 넘어서(Over the Layers)'의 2탄으로 펼친 이번 전시는 '네모의 그리드'에서 탈출한 해방감을 전한다. 픽셀 기반의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모양새의 도형으로 '아마추어' 같은 정직한 노동의 즐거움을 보여준다. 별 꽃 타원 등으로 나온 평면 작업들은 새롭게 배운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에서 나온 작품이다. 작가는 '일러스트 연습장'이라고 했다. 독특한 가구처럼 보이는 작품도 "하다 보니 나왔다." 모든 게 유기적인 형태로 무계획적으로 나왔다는 작품들이지만 반듯하고 단정하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하나도 어긋남이 없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나이가 들고 보니 자연스러움도 충분히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가치를 깨달았다"고 했다. 화가지만 표현하고 싶은 게 없었고 그릴게 없어 오히려 색을 칠할 때 마음이 편했다는 그는 1997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붓을 버리고 픽셀로 구성된 자신만의 무대를 꾸준히 확장해 왔다. "추상적인 상태, 순수한 형태, 그 위치에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미술 그 자체, 구조적인 측면에 관심이 있었어요." 홍승혜 작업 특징은 ‘유기적 기하학’. 어렵게 들리는 이 말에 대해 작가는 '조형적인 쾌(快)'라는 말로 설명했다. "'마티스가 정물이나 풍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상들이 화면들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했던 것처럼 저도 공간과 공간에 들어가 있는 대상이 맺는 관계들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디스플레이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작가에게 결국 유기적 기하학의 논리는 '근원적인 예술론이자 삶의 방식'이다. 그는 "백지에서 싹이 돋는다"면서 "예측 불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내 안에 있었던 형태"라고 했다. "물감 하나를 툭 떨어뜨려 놓아도 아름다운 것 처럼, 그 공간에서 주는 울림을 전하고 싶어요." 디자인을 융합해 순수 미술의 금기를 깨트린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이미지들이 '쾌'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여긴다. "어디에 놓여 있고 배경에 무슨 색이 있고 오브제가 어떻게 놓여 있을 때가 쾌적한가의 그 조형 자체, 공간을 장악해가는 '조형적인 쾌'가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 동화책 한 권을 20번씩 읽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는 작가는 유년기의 추억이 사고를 지배한다며 환갑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소녀 감성을 보였다. 이번 전시 제목도 1939년 빅터 플레밍 감독의 '오즈의 마법사' 영화 주제가 ‘Somewhere Over the Rainbow’에서 착안했다. 순수한 미술 조형물 뿐 아니라 테이블과 조명 기구 등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러 오브제가 유희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3관에 선보인 전시는 홍승혜표 작업의 총합으로 무도회장 같은 분위기를 선사한다. 표지판 같던 픽셀의 사람들이 입체화되고 오르골 같은 음악소리와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무대는 그야말로 '인스타 각' 인증을 부르는 장면이다. 공간을 구축한 유기적 기하학 추상이 실천되는 공간이자 낮과 밤을 장악한 색채의 쾌감을 전한다. 3월19일까지. ◆홍승혜 작가는?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사각 픽셀을 조합, 분해, 반복하여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증식시켜왔다. 모니터에서 탄생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점차 실재의 공간으로 나와 평면, 입체, 애니메이션, 가구, 건축으로 확장되며 조형적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1959년 서울 출생으로 198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1986년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부터 현재까지 '유기적 기하학'(국제갤러리, 1997), '광장사각廣場四角'(아뜰리에 에르메스, 2012), '회상回想'(국제갤러리, 2014), '점·선·면'(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6)을 비롯하여 30여 회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1997년 토탈 미술상, 2007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성곡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3/02/09
리움미술관에 웬 노숙자?...누군가 동전을 놓고 갔다 "돈을 줘야 하는 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는 아저씨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거의 '노숙자급' 분위기의 아저씨 옆에는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와 100원짜리 동전 2개가 바닥에 놓여있다. 주변은 "진짜 사람인가, 아닌가"로 '호기심 천국'이 열렸다. 사실 노숙자급 아저씨는 조각 작품이다. 이미 소문을 듣고 온 관람객도 바구니까지 놓인 작품 앞에서 멈칫했다. "동전이 없는데"라며 주머니를 뒤지기도 했다. 배낭을 옆에 붙인 채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기둥에 기댄 아저씨는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발길을 붙잡지만 그 옆의 플라스틱 바구니는 그의 것이 아니다. 미술관 관계자는 "언제 누가 놓고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누군가의 짖궂은 장난이지만 동정심의 발로로 보여진다. 미술관에 웬 노숙자? 라는 의아함이 드는 것부터 이 작품 감상의 시작이다. ‘현대미술계 악동’으로 불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의도다.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다.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그는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고 했다 리움 미술관 입구부터 웅크리고 드러누운 노숙자로 출발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는 문턱 높은 미술관의 환상을 깬다. 철저한 경호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지만, 우아하게 드나드는 전시장 입구에서 사회적 제지와 금기에 대한 의식이 작동된다. 한 관람객은 "처음엔 왜?라는 생각이 들다가 왜 미술관에 노숙자가 누워있으면 안되는데? 이 생각이 들고 그러다 이 겨울 노숙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까지 다양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동훈이와 준호'로 명명된 노숙자 한 쌍의 작품 제목도 화제다. 누군가가 연상되지만 의도는 아니다. 작가는 전시 될 때마다 그 나라의 흔한 이름을 붙이고, 이번에도 역시 한국의 평범한 이름을 골랐다고 한다. 굳이 특정하자면 로비에 웅크린 노숙자가 준호, 밖에 누워있는 노숙자가 동훈이로 누가 누구인지 특정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게 작가 설명이다. 새해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사람들을 홀리고 있다. 카텔란 얼굴로 마치 1인극처럼 펼친 전시는 소외된 것들을 다시 보게 하고 권위에 유쾌하게 도발하는 고품격 파격을 보여준다. 기이하고 천진하게, 또는 기가 막히고 헛헛하게 동시대 정치 사회 미술계를 찌르는 마우리치오는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 받고 있다.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는 자신을 '미술계의 침입자’로 규정하며 작품이 나올때마다 첨예한 토론을 유발하게 한다. 뭐 그렇다고 도덕적 합리성이나 계몽적 이상을 설파하는 예술가의 역할은 거부한다는게 작가의 입장이다.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을 꿇은 히틀러, 12만 달러에 팔렸다는 덕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등 카텔란의 대표작 38점이 모두 나와 있어 전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규모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연 작가의 대형 전시다. 블랙 코미디로 미술계에 도발해온 그는 천진한 아이 같은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하고 있다. 그의 모습을 한 조각은 너무나 사실적인 피부와 손가락 발가락이 귀여움으로 무장 사랑스러울 정도다. 카텔란의 조각들을 보다보면 진짜 사람들이 가짜로 보이기도 한다. 전시장 곳곳에 모여있는 비둘기들에도 움찔하지만 진짜가 아니다. 카텔란은 베니스를 찾는 관람객들을 비둘기떼로 비유하며 '투어리스트'로 박제 비둘기들을 만들었고 이번엔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다. 전시장 난간에서 바닥에서 떼지어 있는 비둘기들은 마치 우리를 관찰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진짜와 가짜가 혼재하는 전시장 속에서 정신 차리라는 듯 가끔 천장에서 울리는 북치는 소년의 북소리가 신선하기도 하다. 고정관념을 깨고 동시대 정치 사회 이슈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그는 관람객에게는 관대하다.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보든 상관 없다"며 열린 자세를 취한 그는 이번 전시에도 아량을 베풀었다. '작품에 가까이 가지 마시오' 라는 무언의 작품 보호라인이나 경보 센서를 두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장은 널린 좌판처럼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세계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를 볼 수 있다는 데에 미술인들은 높아진 한국 미술 위상을 실감한다는 분위기다. 특히 무료 전시로 선사하는 리움미술관의 '포용적 미술관' 변신도 주목받고 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던 삼성미술관 리움은 지난 2021년 10월8일 재개관했다. 2004년 문을 연 리움미술관은 고 이건희 부인인 홍라희(77) 여사가 관장으로 일하다 2017년 3월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이어 홍 전 관장의 여동생인 홍라영 총괄 부관장도 사퇴해 전시 일정도 차질을 빚은 바 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된 데 이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는 등 그룹 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4년 간 기획전 없이 상설전으로 운영됐다. 현재 리움미술관은 이서현(49)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미술관장 격인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는 7월16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지만 온라인으로 사전예약해야 한다. 202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