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텔란도 놀랄 김범 세계관…'임신한 망치~노란 비명 지르기' 김 범? 누구지? 갸우뚱하는 순간부터 전시가 시작된다. 허리가 휠 정도로 휘몰아치게 달리는 치타 영상으로 맞이한다. KBS '동물의 왕국' 한 장면을 따 온 영상은 이 전시의 핵심이다. 아 그 '동물의 왕국!'쯤으로 여기고 무심코 지나가면 안된다.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13년 만에 김범(60) 작가를 전시장으로 끌어낸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은 "김범은 1990년대 한국 동시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작가"라며 "이번 전시는 김범의 작업을 주의 깊게, 오래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실제로 치타와 영양이 쏜살같이 내달리는 장면은 알고 보면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다. 영양이 치타를 쫓는 장면이다. 김 범 작가가 "약육강식의 세계가 뒤바뀌면 어떤 세계가 될까?"라는 의심에서 재편집한 영상으로 우리의 고정관념에 도발한다. 김 범 작가는 미술시장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들과 미술학도들에겐 전설적인 작가로 알려져있다. 그의 독특한 작품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전시가 없어 작품을 쉽게 볼 수 없는 작가였다. 25일부터 리움미술관 하반기 새 전시로 펼치는 김범 개인전은 김범의 1990년대부터 2010년 중반까지 회화부터 해외 소장품 등 국내에서 만나볼 기회가 없었던 작품을 포함하여 총 70여 점을 전시한다. 작품은 장난스럽게 보인다. 반면 자세히 보면 관습을 뒤집는 유머와 부조리한 제안이 허를 찌른다. 그렇다고 '엄근진’(엄격·근엄·진지)관람은 금물이다. 요즘 MZ세대를 관통하는 트렌드인 '병맛(맥락없고 어이없는)코드'가 깔렸다. 사물을 의인화로 비튼다. 생명이 없는 사물을 마치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물활론적 세계관'이 담겼지만 전시장에 나와서인지 어설픈 '아재 개그'와는 차원이 다르다. '임신한 망치'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배불뚝이 망치'일 뿐이고 기형의 망치인데, 제목이 한 몫 한다. '임신한 망치'라 붙여놓자, 그렇게 보인다. 공구가 지닌 생산적 기능성을 동물적 생명력과 연결 시켜 웃음을 유발시키고 생각하게 한다. "그럼 누가 임신시킨 거지?" 뿐만 아니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2010),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2010), '새라고 배운 돌' 등의 ‘교육된 사물들’ 연작은 '병맛'을 넘는다. 피식 웃다가 '현타'오게 하는 작품으로 돌과 배에게 열심히 강의하는 선생들의 진지함이 향수를 자극하면서 새삼 각인된다. 교육 과정의 맹점과 교육된 현실의 ‘부조리’를 뒤돌아 보게 한다. 상반기 리움미술관에서 연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를 봤다면, 우리나라에도 카텔란 못지않은 작가가 진작에 있었다는 게 새롭다. 카텔란이 정치 종교 예술의 권위와 신념에 대해 노골적으로 도발했다면 김범은 이 모든 것들을 해학적으로 비틀어 깨닫게 한다. 특히 카텔란의 '노란 바나나'와 김범의 '노란 비명 지르기'는 비견 할 만하다. 카텔란이 바나나 1개 달랑 벽에 붙여 놓고 어차피 썩을 바나나도 작품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현대 미술계의 현실을 조롱했다면, 김 범의 '노란 비명 그리기'는 예술가로서 한 수 위다. '으아아악~' 힘껏 소리를 지르며 한 획씩 추상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튜토리얼 영상은 보는 순간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1990년대 '미술 참 쉽죠' 유행어를 남긴 '밥 아저씨'를 패러디해 작품을 생산하지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해학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이상과 관념을 포착하는 불가능한 과업에 매진하는 예술가의 애환을 드러낸다. 배우가 소리를 지르며 한 획 한 획 칠해진 그림은 결국 '노란 단색화'가 되어 이번 전시장 벽에 걸려있다. 이번 전시 제목은 '바위가 되는 법'이다. 김범 작가의 아티스트 북 '변신술'(1997)에 수록된 글의 제목으로 생존을 위한 자기 변화와 가변적인 인간의 모습을 주제 삼아 독자에게 다양한 생물이나 사물이 되는 법을 지시한다. 영어로 쓰여진 글씨 작품 앞에 선 관람자는 지시어를 따라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행동하게 만든다. 도구 없이도 누리는 '인터렉티브(Interactive)'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김성원 부관장은 “김범의 작업은 보이는 것과 그 실체의 간극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의 결과라 할 수 있다”며 “특유의 재치로 우리를 웃게 만들지만 농담처럼 툭 던진 의미심장한 이미지는 자기성찰의 장을 열어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제안한다”고 소개했다. 30년 전에 부조리를 주시하며 '돌아이' 기질을 보였던 작가의 철학적 반항이 이젠 웃음 코드로 다시 세상과 접속하고 있다. 돌멩이, 주전자, 다리미 등을 이용한 소박한 표현과 덤덤한 유머로 무장해 우리의 삶과 산다는 것에 대해, 미술에 대해 질문하며 가치를 부여하고 있어 신선하다. 이미 30대에 사물들의 체험 삶의 현장 같은 드라마를 만들며 세상에 달관한 듯한 그의 모습이 궁금했지만 사진도 내보이지 않았다. 작가들의 꿈의 공간 리움미술관에서 초대한 개인전이자 13년 만의 전시인데도 김범 작가는 기자 간담회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형식적인 것을 싫어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제작한 고 김세중 조각가와 김남조 시인의 아들이다. 전시는 12월3일까지. 카텔란 전시는 무료였지만 김범 전시는 관람료를 받는다. 1만2000원에 사전 온라인 예약해야 한다. 2023/07/24
'하얀 그림' 정상화 화백의 신화..'반복·노력일지'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 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중) "매일매일 새로운 걸 하려고 했는데 매일매일 똑같은 게 나왔다." 일명 '하얀 그림'으로 유명한 91세 정상화 화백(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은 시지프(Sisyphe)와 닮았다. 바위 하나를 산 정상까지 쉬지 않고 굴려 올리고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뜯어내고 메우기'를 무한 반복한다. 50여 년간 한결같다. 흰색을 바르고, 뜯어내고 메우고, 뜯어내고 메우는 그의 반복되는 작업은 우리의 삶 자체다. 누군가에게는 '의미없는 짓'으로 보이지만, 그는 이 무한 반복을 즐겁게 했다. 아무 의미 없는 이 세상에서 또 뜯고, 메우고, 또 뜯고 메우며 삶을 이어갔다. 팔순이 넘어 빛이 났다. '한국의 그림' 단색화가로 세계 미술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코로나19 사태에도 그의 그림은 '힐링 아트'로 주목받았다. 2020년 런던 레비고비 갤러리에서 개인전,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아무 것도 없는 하얀 그림은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호평이다. 2년 만에 다시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연다. 현대화랑과의 의리는 40여 년 째 이어지고 있다. 그가 파리에서 활동할 때 박명자 회장이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1983년 첫 개인전을 열며 '정상화'를 알렸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에서 2014년 이후 10년 만에 펼친 개인전으로 197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40여 점을 소개한다. ◆무엇을 그렸나?..."내 그림은 무한한 숨결" "90이 넘어서도 개인전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1일 개막식을 앞두고 만난 화백은 정정했다. 몇년 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소문과 달리 지팡이도 없이 나타난 그는 깨끗한 모습이었다. 무한 작업한 흔적은 얼굴에 있었다. 형형한 눈빛과 입을 꾹 다문 표정은 '고집쟁이 노인'처럼 보이게 했다. "그림 이야기를 해야 밥맛이 돈다. 그림 생각 하는 것 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샴페인과 와인을 곁들인 점심에서 정 화백은 그림 이야기로 신이 났다. "무엇이든 질문하라"고 했다. '그림이 어딨습니까?' 숱하게 들어온 물음을 다시 묻자 (박진영 처럼)이렇게 말했다. "나만의 삶과 공기에 물들어 있어요. 그날, 그 계절이 들어있지요. 날씨, 공기, 감정이 섞여있어요." 무엇을 그리셨나요? "나의 숨결을 그렸지요.' 그는 "바르고 말리고 접고 뜯어내고, 메우고 다시 뜯어내고 메우고...매순간 똑같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라면서 "미술대학에서 공부한 것을 총동원했고, 면, 공간, 그 양상 등...내 몸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했다"고 말했다. 같아 보이는 그림이지만 그에겐 새로움이 동력이다. 국전을 반대하며 1950년대 결성해 앵포르멜 운동을 펼친 현대미술가협회와 '악뛰엘'(1962)이념 정신이 있다. "불필요한 걸 가미 시킬 필요가 없는 그냥 전위성이다. 이건 이래야만 한다 등 구구한 잔소리하면 안돼, 그냥 확 밀어 들어가는 거지. 무서운 게 없었으니까. 그땐 관전도 싫지 돈도 싫은 거야. 우리들 아니었으면 요즘 젊은 세대는 못해. 우리였기 때문에 한국 화단에 역사에 남았고 세계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계기가 된 거지. 그나마도 (현대미술가협회)만들어진 것이 오늘날 새로운 일에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주축이 됐다고 봐요." ◆"지우고 다시하는 것에 희열 감동" 조용한 그림이지만 입체주의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다. 대학시절 그린 그의 자화상이 보여준다. "안되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지우고 다시 한다. 지우고 다시 하는 것에서 면이 생기고 공간이 생기는 것에 희열이 있고 느낌이 나에게 감동적이었어요." 1932년 경북 영덕 출생으로 마산중학교 2학년때 그림에 빠졌다. 우연히 미술실을 지나가는데 하얀 석고가 보이고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 뭔가 느낌이 있었다. 그림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학교 방과 후 그림만 그렸고, 사생대회에서 늘 상을 받았다. 중학교 4학년때 학제가 개편되면서, 마산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대학시험은 6.25 사변이 나고 였다. 동란이 심각할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였다. 서울이 부산으로 환도하던 때, 서울대도 부산으로 왔다. 1953년도에 부산에서 서울대에 입학했다. 1년 있다가 서울로 갔다. "학도병 친구들은 죽은 사람이 많아. 용케...나는 집에서 그림만 그리고 밖을 나가지 않았어." 그는 대학 4학년 졸업식보다 앞서 '미술 선생님'이 됐다. 인천사범학교 선생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문공부 장관이 발령한 선생이어서 월급도 달랐다. 화폐개혁 전이어서 꽤 두툼했다. 자료 사고 캔버스도 사고, 못 사서 못했던 재료를 마음대로 샀다. 현대미술협회도 참가해서 남이 못하는 것을 했고, 학생이라는 제약에서 해방됐다. 국전, 관전 국민 세금가지고 하는거 철폐해야 한다'는 반대 운동을 일으켰다." (2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가와의 대화 중) 현대미술가협회, 앵포르멜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새로운 미술 흐름에 올라탔다. 표현주의 앵포르멜이 한창이던 시기 일본으로 갔다. 이웃나라 일본에 구타이(구체미술)가 앵포르멜과 같은 행동파였다. 우리보다 앞서 있던 일본, 고베였다. "7년 간 있으면서 구타이 작가들과 접촉해서 보니 우리하고 별 다른 게 없었구나를 터득했다." 일본에서 개인전을 하던 그때가 전성기였다. 1962년 첫 개인전 '원시'는 그렇게 나왔다. 지금의 '백색 회화'가 시작된 시대다. '전부 드러내고 부풀어 오르면 터져내고 쓸어내는' 평면적이면서 입체적인 그림의 시작은 전쟁을 겪은 충격이 바탕이 됐다. "파괴성은 아니다.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 '폐허'는 허물어진 상황이다. 요철이 올라왔던 상황이 전부 가라앉아 없어져 버린, 완전히 평면화 되버린 상황이다. 있던 게 없어진 허탈감, 이런 것들이 정신적으로 상당히 충격이 컸지요." 거무죽죽한 그림에서 변한 '백색'은 일본에서 나왔다. "그 동기는 작업속에서 자연적으로, 백색으로 돌아간 거다. 점차 색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 색이 내용에 장애가 된다는 결론에 의해서 점점 색을 억제하다 보니 백색으로 돌아선 거다." 이후 1977년 프랑스 파리로 가 20년 간 살았다. "새로운 흐름, 자극이 됐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다." 일본 고베 시기에 진행된 화풍의 완성도를 향해 모든 집념이 고취됐다. 이전의 백색의 격자 무늬 작품에서 좀 더 나아가 검은색, 푸른색, 적색 등 다양한 색, 단색화를 선보이게 됐다. "백색, 하얀 그림은 좋긴 한데 집에 걸면 밋밋하다는 거야. 그래서 푸른색, 빨간색으로 그려 달라는 주문이 많았지." 1992년 11월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1996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짓고 자리 잡은 후 그곳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하얀색 전부 다르다. "이 작업은 같으면 안돼" 하얀 그림은 격자무늬로 완성된다. 정교한 밀도 속에서 각각의 그리드가 독립된 개별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어울려 조화로운 화면을 구축한다. 그의 평면은 이제 무한대로 끝없이 멀리 들어간다. 그래서 결국 캔버스가 드러난다. "이 작업은 색이 같으면 안돼." 흰색은 모두 같은 색이 아니다. 메워져 있는 것은 하나의 톤이다. 그는 "색깔이 전부 다르고 톤의 질도 모두 다르다"고 했다. "나를 받아들이는 색이 있고, 나를 멀리하는 색도 있어요" 조수 한 명 없이 반복의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 "오롯이 나 혼자 작업합니다. 나는 일 시키면서 못한다. 성품이 그래요. 옆에 사람이 있으면 소리를 지릅니다." 무작위적인 행위. "사실 고달프다. 요즘엔 기력이 없어 못한다. 3~4시간 캔버스를 잡고 있으면 툭 떨어진다." 정 화백은 "내 작품은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모두 봐줘야지, 단순히 보고 흘러버리면 안된다"고 했다. 그는 "오고 가고, 오고 가고, 오고 가는 것을 작가가 만들기 위해서는 전부 질서와 순서가 있다"면서 "작가의 일은 그런 거다 금방 나오는 게 아니다"고 했다. 작품이 되기까지 6개월 이상 소요된다. "과정 과정 과정 연결이 완성체"라고 강조했다. "내 그림, 내용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보고 느끼면 그대로 끝이에요." 어떻게 봐야 하냐고 하자 "쓱 지나 가는 게 아니고 발을 멈추고 보는 것에 대한 느낌, 생각을 내 그림에 둔다면 내 그림은 완전히 성공한 거"라고 했다. "생활 속에서 언젠가 본 사람을 통해서 내 그림을 생각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좋은 겁니다." 사실, 미술 애호가들은 '하얀 벽지'를 볼 때마다 그의 그림이 떠올라 '벽지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맞아요. 현대미술을 알려고 하지 말고 같이 생활에 더불어 살면 돼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거든. 추상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겠어요?" 와인 한잔을 다 비워 얼굴이 불그스레해진 그는 "건강은 타고 나지만 그림은 타고 난 게 아니다"며 젊은 화가들에게 조언도 남겼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하고 싶어요. '노력이다'. 절대 급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환경이 아니라 노력이 만드는 것이다." 또 미술애호가들에도 당부했다.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세요. 문화가 달라집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때 그의 말처럼 "입에 거품 물게 가난했던 시대"를 뚫고 평생 그림만 그려온 그는 "아버지한테도 이긴 그림"이라고 했다. "학창시절 아버지는 내가 그리던 그림을 뺏어 대문 앞에 집어던졌고, 미대를 가는 걸 반대했었다." "그래도 화가 하길 잘했지요. 그 선택을 최고로 했다. 다른 것 했으면 난리가 날 뻔 했다"면서 뿌듯함을 보였다. 딸, 아들에 이어 손녀까지 그림을 그린다며 행복하다고 했다. 구순이 넘은 화가로서 자부심, '예술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웃기네!"라고 생뚱맞게 표현했다. 그는 "예술은 정말 '웃기다'"라면서 흰 그림처럼 공간을 떠도는 고독한 생각을 전했다. "웃기다는 것은 좋은 말입니다. 장난 아니다"라며 "그림은 참 신기한 거다"며 혼잣말처럼 되새겼다. "내 꿈이요? 아직도 재밌는 그림 많이 그리고 싶어요.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즐거워요." 전시는 7월16일까지. 2023/06/04
우리 한국화 흥망성쇠와 '동산방 박주환' 좋은 그림은 혼자 보는 것이 아니다. 공공자산이다. 성공한 화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난다.' '광주 화단의 전설' 의제 허백련(1891~1977), 한국화 라이벌 거장 변관식(1899~1976)과 이상범(1897~1972), 월전 장우성(1912~2005), 서세옥(1929~2020)등 거장들은 죽지않고 부활한다. 이들을 되살리는 건 미술품 수집가다. 동산방 컬렉션이 증명한다. 지금은 시들하지만 40~50년 전 '동양화{한국화)'의 위력은 'K-팝' 못지 않았다. '풍류의 끝판왕'으로 시서화의 정점을 찍으며 70~80년대 '화선지 화백'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고관대작의 '귀한 선물'이었고, 품위의 상징 이었다. 당시 화가들과 상생한 이들은 화랑주들.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그림을 팔며 화가를 키웠다. 그 중심에 인사동 ‘동산방 화랑' 박주환 사장이 있었다. 박 사장은 1961년 동산방 표구사를 연 이후 1974년 동산방 화랑을 개관했다. 청전 이상범과 월전 장우성, 천경자, 박노수 등 국내 내로라 하는 동양화가들이 단골 손님이었다. 동산방에서 전시는 곧 스타 작가 데뷔장이기도 했다. 한국화의 혁신을 이룬 민경갑·이종상·송수남 등이 동산방 화랑을 통해 알려졌다. 동양화 표구의 독보적인 실력으로 '표구는 동산방'으로 유명했다. 훗날 진위 논란이 불거진 천경자의 ‘미인도’도 동산방 표구였다. ◆'한국화 산실' 동산방 화랑...故 박주환 회장 화랑협회 산파-기증문화 이끌어 동산방 화랑은 인사동 화랑가를 거점으로 한국화 전문 화랑으로 거듭났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개인전은 물론 '한국 동양화가 30인 초대전'(1977), '제3전'(1989) 등 괄목할 만한 그룹전의 기획·전시로 당대 화가들의 예술적 발전과 성취를 도모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기능했다. 화랑은 단순한 장사가 아니다. 작가를 발굴하고 선보이고 사주고 판매하며 교감시켜 시대를 나아가게 하는 문화사업이다. 당시 한국화 작가들은 청토회, 한국화회, 신수회 등 미술 단체 활동을 통해 현대 한국화단의 예술적 전망과 실천 방향을 도모하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묵림회(1960-1964)의 활동과 수묵화 운동(1980년대)은 동양 전통 수묵화의 정신성과 질료적 표현의 가능성을 연구함으로써 현대 한국화의 추상적 실험을 이끌었다. 모두 동산방 화랑의 역할이 컸다. 가난한 화가들을 키우며 몸집이 커진 동산방은 한국화의 흥망성쇠와 결을 함께한다. 국내 1세대 화랑주인 동산방 박주환 사장의 더 큰 공로는 기증문화의 물꼬를 튼 데 있다. 1971년 청전 이상범의 ‘초동’(1926)을 예산이 부족했던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면서 화랑의 작품 기증문화를 이끌어냈다. 그는 1975년 한국화랑협회를 창립한 산파로, 제 2대(1978~1981)와 6대 회장(1987~1991) 화랑협회장을 역임했다. '아파트 세상'으로 급변하면서 한국화는 서양화에 밀렸고, 동산방 화랑의 영광도 뒷전으로 물러났다. 화랑은 대를 이었지만 옛날의 동산방이 아니었다. 2020년 동산방 화랑 박주환 회장은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현재 동산방 화랑은 제17대 한국화랑협회장을 지낸 아들 박우홍 대표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 박우홍 대표는 아버지의 유산이자, 우리문화 유산인 그림을 기증하는 큰 결심을 했다. 지난 2021년~2022년, 2회에 걸쳐 국립현대미술관에 ‘동산 박주환 컬렉션'이름으로 209점을 기증했다. 한국화 154점을 포함한 회화 198점, 조각 6점, 판화 4점, 서예 1점 등이다. 이 기증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화 소장품 수는 총 1542점이 되어 보다 폭넓은 한국화 연구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펼친 '박주환 컬렉션'특별전은 기증된 209점 중 90여 점의 한국화 대표작을 선보인다. 기증작 중 192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한국화의 변모와 실험의 단층들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에서 ‘동녘’의 의미는 기증자의 호인 ‘동산(東山)’을 기념하는 동시에 해가 떠오르는 이상향의 자연을 상징한다. 근대 이래 한국화가들이 꿈꾸고 그려온 삶의 세계와 비전을 조망한다. 사진사이자 사군자 화가로서 한국 근대미술의 미적 가치를 탐구한 김규진(1868~1933)부터 현대인의 삶을 수묵으로 표출하는 유근택(1965~)에 이르기까지 작가 57인의 예술적 실천을 통해 한국미술, 특히 한국화의 시대적 변천과 그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근현대 한국 미술사의 생생한 현장으로, 미술을 공부하거나 애호가들이 놓치면 안될 전시다. 전시실 밖 회랑 공간에서는 동산방 표구와 동산방화랑이 걸어온 발자취를 아카이브와 인터뷰 영상을 통해 조명한다. 아카이브에서 표구 디자인 개발 등으로 한국화가들의 작품 활동을 뒷받침한 동산방 표구의 행적도 확인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는 근 50년 역사의 한국화 전문 화랑의 수장이 수집한 작품의 기증으로 미술관 한국화 연구 기반의 확장과 함께 국내 수집가들의 기증 문화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동산방 컬렉션'은 기증 문화를 알리는 전시지만 단순한 전시는 아니다, 한국화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국화의 저평가속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전시는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가늠하는 기준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작품의 소장가가 전통 한국 미술에 대한 최고의 식견을 지닌 전문가였고,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과 친밀한 관계는 물론 작품 활동에 직접 후원을 하며 수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2024년 2월 12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3/05/22
고미술 공간 호암미술관 변신...김환기 120점, 역대급 전시 한국미술의 자존심을 세운 김환기의 '132억 원'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화가 중 최고 '블루칩 작가'로 꼽히는 김환기(1913~1974)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전시가 호암 미술관에서 열린다. 국내 최고의 미술관에서 펼치는 국내 최고 화가의 전시로, 미술사적 의미를 더한다. 규모 면에서도 역대 최대일 뿐 아니라 그간 도판으로만 확인되던 초기작과 미공개작, 드로잉을 최초로 선보여 '비싼 작가'로만 알려진 '김환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한국미술의 선구자로 조명하는 김환기의 구상에서 추상으로 40년 예술세계 전반을 살펴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913년 전라남도 남해 신안군 가좌도에서 태어나 세계 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예술의 꽃을 피운 그는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다. 한국적 추상 미술을 추구했던 그의 작품은 현대적이며 미래적으로 K-아트 위엄을 제대로 전한다. 삼성문화재단(이사장 김황식)이 운영하는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이 1년 반 간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18일부터 '한 점 하늘-김환기 a dot a sky_kim whanki'를 개최한다. 코로나19로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2020년 예정됐다가 취소된 전시로 3년 만에 여는 전시다. 호암미술관은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고급스런 공간이었다. 자연 경관이 예술로, 봄 가을 정원의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동안 토기와 도자기, 서화와 금속공예품 등 고미술품 전시를 열다, 현대 미술품의 대규모 전시는 처음 선보인다. 이번 김환기 회고전은 호암미술관답게 품격있고 섬세하게 개최한다. 그간 전시를 통해 보기 어려웠던 김환기의 여러 초기작뿐 아니라 최초로 공개되는 1950년대 스케치북과 70년대 점화 등이 소장가들의 협조로 선보인다. 또한 작가의 유족이 수십 년 간 간직해온 김환기의 유품과 자료의 일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된다. 스물네살 청년 김환기의 사진, 작가가 애장한 도자기와 선반, 삽화와 기고문이 꼼꼼히 정리된 스크랩북, 파리 개인전의 방명록, 문화예술인 160명이 이름을 올린 1974년 추도식 팸플릿 등 흥미로운 자료들을 볼 수 있다. ◆호암미술관 김환기 회고전...한국 미술 추상 선구자 김환기는 20세기 한국 미술사에 추상이라는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구축주의 등 당시의 전위미술인 추상미술사조를 익히고 1937년 귀국하여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가 되었다. 1930년대 후반은 김환기가 작업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인 한국의 전통과 자연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다. 민족예술의 계승을 주창한 김용준, 이태준, 최순우 등과 교류하며 전통미술에 대한 식견과 사랑을 키웠고, 자연과 전통의 현대적 표현을 목표로 평생을 추상에 매진했다. 김환기는 전쟁 직후의 열악한 사회문화 조건 속에서 우리 미술의 발전과 국제적 성장을 꿈꾼 20세기 한국미술의 리더이기도 했다. 동시대 미술과의 조화로운 융화와 동참을 열망하며 스스로 국제 미술계에 도전한 그는 전통에 근간한 자신의 예술을 굳건히 지키고 한편으로는 미술 조류의 변화를 흡수하면서 집요하게 작업을 전개했다. 그의 한결같은 예술 여정을 이끈 것은 한국적 예술에 대한 굳은 신념과 자신감, 절망을 이겨내는 인내였다. 50세에 건너간 뉴욕에서 김환기는 무수한 이방인 무명 작가의 한 사람이었지만,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을 찾기 위해 치열하고 꾸준하게 조형실험을 이어갔고, 만년에 이르러 자연과 인간, 예술에 대한 동양적 사유와 관조를 담은 전면점화에 도달한다. 김환기의 점화에는 1930년대부터 이어져온 그의 추상 여정이 함축되어 있고, 그 작은 점 하나하나에는 자연과 인간, 예술을 아우르는 보편적 세계에 대한 확장된 사유가 담겨 있다. 이번 회고전의 제목인 ‘한 점 하늘’은 이러한 김환기의 40년 예술 세계의 특징을 담고 있다. 달을 바라보며 달항아리를 그리고 별을 바라보며 고국과 친구를 그리워하던 그에게 하늘은 예술의 큰 원천인 동시에 자연과 삶, 세상을 함축하는 개념이기도 했다. ◆'한 점 하늘_김환기' 120점 전시...초기작~미공개작 첫 공개 1,2층 전시실 전관에서 약 120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김환기가 한국적 추상에 대한 개념과 형식을 구축한 후 치열한 조형실험을 거쳐 점화에 이르는 과정의 변화와 연속성을 주지하며 살펴본다. 시대별 대표작은 물론, 도판으로만 확인되던 여러 초기작들과 미공개작,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스케치북과 드로잉들을 최초로 선보인다. 또한 유족의 협조로 김환기의 유품과 편지, 청년시절의 사진, 낡은 스크랩북 등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자료들은 작가의 회고전을 더욱 의미있고 풍성하게 해주며 이후 작가 연구를 위한 귀중한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 1부:달 항아리 (2층 전시실) 전시 1부는 김환기의 예술이념과 추상형식이 성립된 193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을 동일시하며 작업의 기반을 다지고 발전시켜 갔다. 달과 달항아리, 산, 구름, 새 등의 모티프가 그림의 주요 주제로 자리잡으며 그의 전형적인 추상 스타일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론도'(1938)는 물론, 김환기 특유의 한국적 추상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 '달과 나무'(1948), 도자기가 빼곡한 성북동집 작업실 나무선반을 연상시키는 '항아리'(1956), 시간을 초월한 자연과 예술의 영원성을 표현한 '영원의 노래'(1957), 전통미술양식과 점화의 씨앗이 함께 공존하는 '여름달밤'(1961) 등이 전시되며, 다수의 초기 작업들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호암미술관은 "작가의 유일한 벽화대작 '여인들과 항아리'(1960)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발견된 작가 수첩을 통해 제작 연도가 1960년으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이건희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개되어 주목 받은 작품이다. ▶전시 2부. 거대한 작은 점 (1층 전시실) 2부는 김환기가 뉴욕 이주 이후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며 한국적 이면서도 국제 무대에서 통할 새로운 추상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뉴욕 시기 초기까지 이어지던 풍경의 요소를 점과 선으로 흡수하여 추상성을 높이고 다채로운 점, 선, 면의 구성으로 수많은 작업을 시도한 끝에 점화에 확신을 얻고 1969년과 1970년 사이에 전면점화의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달과 산 등 풍경요소들이 선과 점, 색면으로 대체되는 '북서풍 30–Ⅷ–65'(1965), 김환기의 점화를 처음으로 알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 ‘우주’(132억 원)라는 별칭으로 사랑받고 있는 '5–IV–71 #200'(1971), 동양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하늘과 땅24–Ⅸ–73 #320'(1973)등이 함께 전시되며, 작고 한 달 전에 죽음을 예감하듯 그린 검은 점화 '17–VI–74 #337'(1974)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김환기는 한국 현대미술 역사...작가 연구 세미나도 개최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김환기는 한국현대 미술의 역사이자 상징같은 존재로 ’고전’을 만들고자 했던 작가의 바람대로 그의 예술은 오늘날에도 공명한다”며 “그러나 김환기를 수식하는 최근의 단편적인 수사들은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다시 한번 총제적으로 살펴보는 전시가 필요함을 일깨운다”고 회고전의 의미를 밝혔다. 전시와 연계하여 김환기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사유를 확장해 보는 프로그램들이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태현선 실장이 전시 완성까지의 과정과 기획의도 등을 직접 소개하는 큐레이터 토크가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또한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사유를 확장해 볼 수 있는 작가연구 세미나 시리즈가 △백승이(환기미술관 학예사), △김현숙(근대미술사학자), △함돈균(문학평론가), △장석주(시인), △진지영(리움미술관 보존연구원)의 참여로 호암미술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9월10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하며 현장 발권도 가능하다. 관람료 1만4000원. ◆호암미술관은? 호암 이병철(1910~1987)삼성그룹의 창업주가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미술품 1200여 점을 바탕으로 1982년 4월 개관했다. 경기 용인시 포곡읍에 위치, 호수와 정원 등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 자리하고 있는 호암미술관은 전통한옥 형태의 본관 건물과 전통정원 희원(熙園)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앞으로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은 ‘하나의 미술관, 두 개의 장소’로서 전시 및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기획, 운영 할 계획”이라며 “이번 김환기 회고전을 필두로 호암미술관은 고미술과 국내외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기획전 및 소장품특별전 등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호암미술관의 이번 건축 내부 리노베이션은 최소한의 디테일로, 과장되지 않는 기존의 건축과 어우러지는 공간디자인을 완성했다. 과거와 현재, 외부와 내부, 건축과 사람, 자연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공간을 지향한다. 또한 기존의 건축 소재와 조화를 이루도록 돌(석재), 나무(목재), 철(금속) 가공을 최소화해 사용했다. 로비는 기존의 굵은 선을 유지하여 단정히 정리했고 공간 일부를 확장해 안내데스크를 새롭게 설치해 편의와 개방감을 더 했다. 2층 라운지는 창호를 확대하여 내외부의 경계를 없애 희원과 외부전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강연 및 체험프로그램을 위한 워크숍룸을 조성하고, 희원의 찻집은 젊은 작가 전시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멀티룸으로 변경했다. 2023/05/15
'셔플댄스'로 온 줄리안 오피...발목을 싹둑 자른 이유 유행은 돌고 돈다. 다 지나가지만 미술이 잡으면 예술이 돤다. '영국 현대미술 거장' 줄리안 오피도 예상하지 못했다. 2010년 대유행한 춤, '셔플댄스'라니... "유튜브에서 딱 보자마자 이거다. 엄청난 영감을 받았죠." '춤바람'이 나서 온 오피는 '흔들흔들' 긍정 에너지를 퍼트리고 있다. 그의 특기 '걷는 사람들'에 기술을 탑재한 '춤추는 사람들'은 중독성을 선사한다. 강렬한 비트에 댄스가 어우러진 영상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몸이 흥이 난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입한다. 5년 만에 부산 국제갤러리에 귀환한 그의 신작은 성공적이다. 전시장은 그야말로 10년 전 떼지어 추던 셔플댄스의 추억까지 재생된다. 음악소리와 함께한 LED 영상 작품들을 필두로 모두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오랫동안 선보인 ‘걷는 사람들’의 형태를 탈피해 새로운 인체의 움직임을 찾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맞았죠." 줄리안 오피는 굵은 선으로 단순화한 '걸어가는사람들'로 세계를 누벼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서울역 서울스퀘어 빌딩에 '걷는 사람들'이 저녁이면 투사되어 퇴근길을 위로하고 있어 친숙한 작품이다. 195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오피는 1982년 영국 명문인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은 보기에 쉽다. 한눈에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 동물, 건물, 풍경과 같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단순화된 현대적인 이미지로 그려낸다. 고대 초상화, 이집트의 상형문자, 일본의 목판화뿐 아니라 공공 및 교통 표지판, 각종 안내판, 공항 LED 전광판 등에서도 두루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이번 신작은 혹독하게 건너온 코로나 사태가 변화의 물꼬를 텄다. '춤추는 사람들'은 코로나로 영국이 봉쇄된 기간에 탄생됐다. "그때 조용하고 외로운 분위기였어요. 코로나가 끝나갈 즈음 작품을 통해 뭔가 아주 빠르고 동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어느날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찾았는데 틱톡에서 셔플댄스 영상을 봤다. 젊은사람들이 셀프촬영을 하면서 굉장히 빠르고 가볍게 춤추는 영상이었다. 바로 이 때 영감을 받았다. "'걷는 행위 말고 춤추는 행위를 탐구해보자.'" 간단하고 반복적인 동작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닌 셔플댄스에 매료됐지만, 어떻게 구현해야 될지 몰랐다. 현재 프로 댄서로 활동하고 있는 딸이 수호천사가 됐다. 딸과 함께 춤을 고안하고 이미지로 표현하는 동시에 사운드 요소까지 만들어야 했다. "딸과 친구들이 100비트나 되는 빠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춰져서 영상 작품을 마련할 수 있었죠." 눈 앞에서 셔플댄스를 직관한 덕분에 단순한 이미지이지만 한층 더 증폭된 율동감과 생동감을 선사한다. 춤 영상의 스틸컷을 이용해 만든 이미지들은 페인팅과 모자이크 작품으로도 제작됐다. "춤추는 영상은 알고 보면 60개의 다른 드로잉을 이어 붙인 겁니다. 영상을 쪼개보면 각각의 회화가 될 수 있어요.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죠." 그는 "그리스 로마시대나 이집트 시대 회화는 돌을 잘게 쪼개서 이어 붙였다"면서 자신이 모자이크로 작품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 작품중 돌을 쪼개 붙인 댄스 회화는 LED 영상 작품의 픽셀과도 상호 작용합니다. 전시장에 '현대 버전'과 '고대 버전'이 교차되고 있는 것이죠." 생기와 율동감을 더하는 현대적인 작품이지만 수천년 미술사를 관통해 나온 작품이라는 뜻이다. 10년 전 춤이 촌스럽지 않고 경쾌하게 다가오는건 알록달록 색감도 한몫한다. "댄스 프로젝트를 하면서 딸에게 춤을 춰달라 했는데 사실 옷차림이 비비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색상을 언어로서 사용해보고 싶었어요. 어느날 가족과 스키를 타러 갔는데 스키복이 형형색색이더라고요. 그 색을 차용한 겁니다." 3일 부산에서 만난 오피는 댄서로 작품에 공헌한 딸을 소개하고 '걷는 사람' 시연을 하기도 했다. 매번 전시때 마다 프로필 사진도 자신의 그림으로 대신하며 얼굴 공개를 극도로 꺼려온 그는 이번 전시장에서만 자신의 모습 촬영을 허락했다.하지만 그마저도 VR 고글을 쓰거나 무표정한 채 촬영에 응했다. 자신보다 작품이 더 알려지고 보여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그의 작업은 이제 실제와 가상 세계로 관심이 확장됐다. 이번 전시에는 춤추는 사람들 영상과 함께 총 4개의 VR 부스도 설치되어 있다. VR 고글을 끼고 부스 내부를 거닐면 가상 세계에서 ‘재현 된’ 조각, 영상, 페인팅 등의 다양한 작업들을 보게 된다. 마치 메트릭스 세상 같다. 현실에서 또 다른 가상현실의 체험은 우리의 현실이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눈뜨게 한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많은 것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어떤 매개를 통해서 공간을, 현상을 이해하잖아요." 오피는 "오늘날 현대인들은 이미지에 의존하며 특히 디지털 디바이스라는 중간 매개체를 한번 거쳐서 우리의 눈으로 전달되는 방식에 더 익숙해졌다"며 이 문제적 현상을 우리가 스스로발견하게 하는 참여의 미학으로 전시를 풀어냈다. 전시장에 4개의 러닝머신이 놓여 있는 배경이다. 전시기간 내내 사람들이 그 위를 걷는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관람객이면 누구나 직접 걸어볼 수 있는 참여형 작품이다. 그의 회화 ‘걷는 사람들’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작품으로, 평면 작업에서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듯한 감흥을 선사한다. 평면과 입체, VR과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작품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작품을 보거나 사진을 찍으면 순간적으로 작품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는 극도로 계획된 의도다. “사람들은 전시장에서도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을 들고 그림을 보잖아요." 항상 주어진 공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관객이 흥미롭게 작품을 경험하도록 어떻게 조율할지를 고민한다는 그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지 않는 것은 작가에게 큰 도전"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히려 이를 이용해 작품의 일부가 되고 더욱 ‘인증샷’을 찍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예술작품은 시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을 요구하지만 저는 다층적인 감각을 사용해서 몰입할 수 있도록, 관객이 제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기를 원합니다." 경쾌하고 단순한 작품, 몰입하다 자세히 보면 무섭기도 하다. 발목이 싹둑 잘라져 있다.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걸까? "(흐음)발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오브제로서 우아하지 않잖아요. 다른 신체는 동적인 느낌을 자아낼 수 있는데 발은 한 방향만 보일 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요소는 아니에요. 뭐, 완전히 안 그리는 것은 아니고 가끔 그립니다. 굳이 꺼려하는 이유요? 발을 그리게 되면 시선이 아래로 쏠리는데 저는 방해가 된다 생각했어요. 동작을 강조하고 속도를 강조하기 때문이죠. 2000년 전 동굴벽화도 보면 머리도 동그라미로만 그려졌고 팔 다리도 작대기로만 묘사되어 있잖아요. 하하~" 전시는 7월2일까지. 2023/05/04
'엿보기 달인' 에드워드 호퍼와 '햇빛속의 부인' #그림은 '관종의 끝판왕'이다. 관심을 먹고 산다. 부활과 영생을 꿈꾼다. 그러나 결코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멋짐 폭발'한 남자는 심각하다. 깊게 들이킨 낭패의 쾌감이 진한 그림자로 얼굴에 남았다. '서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 그를 주시하고 있는 남자의 불안감 때문일까. 뽀족한 구두를 신은 그를 마치 외줄 타기 하듯 직선에 올려놓았다. 패션 일러스트 같은 '담배 피우는 남자'는 에드워드 호퍼가 1917~1920년경에 그린 그림이다. 빠른 붓터치로 드러난 남자는 세련된 패션 감각에 묻힐 그의 착잡한 심정까지 엿본 느낌이다. 종이는 세월에 눌려 노랗게 낡아졌지만 100살이 넘은 담배 피는 남자는 텅 빈 공간에서 늙지 않고 있다. 흑백영화를 켠 듯 다시 생생하게 향수까지 재생되는 건 필력 덕분이다. 호퍼는 빛의 효과를 강조하는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 1906년 뉴욕에서 삽화가로 일을 시작한 그는 1907년, 당시 예술의 수도였던 파리로 넘어갔다. ‘센강과 강변-건물-하늘’에 빠져 야외 작업에 심취했다. 파리지앵의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한 시기다.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 유행하는 옷을 입은 남녀...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풍경은 '엿보기 대장' 호퍼의 흥미를 돋웠다. “무관심으로 흘려버리는 평범한 것”을 빛과 그림자로 시공간에 담았다. 혼자 있는 사람, 둘이 있는 사람도 그가 그리면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화가 됐다. 빛이 프리즘을 통과해 투사되는 것처럼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그린 그의 작품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모습과 도시의 풍경을 그의 그림처럼 보이게 한다. 혼자 몰래 그린 그림은 스산함, 쓸쓸함, 외로움, 고독감이 스며있다. 그림은 묘하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대사처럼 마음을 잇는 감정의 촉매로 작동된다. 20세기 초 현대인이 마주한 일상과 정서를 섬세한 관찰과 독자적인 시각으로 화폭에 담아낸 호퍼는 미국 국민 화가로 추앙 받고 있다. 뉴욕 도시 벽돌색 건물과 풍경을 볼 때마다 그의 그림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명작은 시공을 초월한다. 21세기에 온 그의 옛 그림이 촌스럽지 않은 이유다. '고독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 작품이 서울에 상륙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작가의 첫 한국 대규모 개인전이다. 20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막한 전시는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160여 점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Sanborn Hopper Archive)의 자료 110여 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눠 조망한다. 쓸쓸한 그림에 가려 미처 못 봤던 드로잉과 에칭 판화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하나의 명작과 다양한 밑그림을 함께 선보인 전시는 수없이 그리고 그린 화가의 집념을 느껴볼 수 있다. 옆으로 넘어진 한쪽 구두조차 쓸쓸한 감정이 전해지는 이유다. 매일 매일 연습에 쏟아부은 노력이 세기의 걸작을 만들었다. 수평 수직의 방에서 벌거벗은 채 서 있는 호퍼의 유명 작품 '햇빛 속의 여인'(1961)도 왔다. 모델은 호퍼의 부인, 조세핀 호퍼다. 남편의 명성을 빛낸 그림은 부인 덕분이기도 하다. 조세핀의 코너를 따로 만들 정도로 호퍼의 그림속을 지배하고 있다.(이 전시는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것도 보여준다.) 부인 조세핀 호퍼(1883~1968)는 호퍼의 뉴욕예술학교 동창이자 작가였다. 또 호퍼의 뮤즈이자 훌륭한 조력자였다. 수채화에 두각을 보이던 조세핀의 영향으로 호퍼는 1923년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 함께 야외 작업을 하며 수채화를 시도했다. 티격태격 불화도 많은 부부였지만 조세핀은 호퍼의 구세주다. 그의 전시 이력, 작품 판매 등 상세한 정보가 적힌 장부 관리를 30년 이상 지속하는 매니저 역할도 수행했다. 특히 호퍼의 사망 이후 거의 2500여 점에 달하는 작품과 자료 일체를 휘트니미술관에 기증했다. 말수가 적은 편이던 호퍼가 언급하지 않았던 작품의 세부 사항들을 조세핀이 세세하게 기록한 덕분에 그의 작품과 생애가 담긴 낙서 같은 장부도 미술사료적 가치로 평가 받고 있다. 이번 전시가 메모 자료까지 풍성하게 전시된 배경이다. 올해 미술계 최고 기대 전시답게 티켓 예매가 뜨겁다. 대개 3000원이거나 무료인 시립미술관 관람료와 달리 1만 원이 넘는 티켓에도 벌써 10만 장이 매진됐다고 알려졌다. 2019년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에 관람객 30만 명이 몰려 ‘초대박’이 터진 서울시립미술관이 또 흥행 청신호를 켰다. '해외 소장품 걸작전'같은 영리한 기획전이 서울시립미술관을 살리고 있다.전시는 8월20일까지. 2023/04/20
알렉산더 칼더×이우환…'국제갤러리'라는 재능 기부 국내 상업 화랑중 가장 전시를 잘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국제갤러리다. 가나, 현대와 함께 국내 3대 화랑으로 불리지만, 이미 2곳을 제치고 이름답게 국제적인 면모를 발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견은 없을 것이라 본다. 물론 자사 굵직한 작가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작가들을 품고 있는 화랑의 위세는 타 화랑들을 압도한다. 특히 같은 작품도 달라보이는 '있어빌리티'한 세련된 전시 연출 미학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82년 서울 인사동에 국제화랑으로 개관한 후 40년 간 확장세다. 루이스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알렉산더 칼더, 우고 론디노네, 장-미셸 오토니엘, 제니 홀저, 줄리안 오피 등 세계적인 작가 전시를 잇따라 열었고,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최욱경 양혜규 문성식 등 K아트의 세련된 현대미술을 국내외에 알렸다. 국제화랑 창업주 이현숙 회장은 전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영국 잡지 '아트리뷰 '파워100'에 매년 선정되고 있다. 미술 사업은 그림 장사이지만 단순하게 장사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문화가 국력이 되는 시대, 갤러리 운영은 나라의 문화 품격과 국격을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술관이 아닌 상업화랑에서 미술관급 전시를 선보이며 국민에 문화향유 기회를 넓히는 일은 갤러리의 '재능 기부'다. 수천~수십억짜리 작품도 공짜로 공개하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기여한다. 국제갤러리는 올해도 다른 화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전시로 치고 나가고 있다. 4일 개막한 '이우환+알렉산더 칼더' 전시는 단지 유명 작가를 나열하는 전시가 아닌, 두 거장의 작업세계를 '알집'처럼 선보여 의미가 있다. '교과서에 나와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거나, '철판에 돌하나 놓고 작품이라니'라며 대단치 않게 여겼다면 이번 전시는 천천히 보고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대형 전시지만 회고전 처럼 방대하게 작품을 늘어놓지 않아 작품의 감각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관람료도 없다. 작품에 맞춰 전시장을 꾸미고 최선을 다한 작가와 화랑의 마음이 녹아 있다. 모두 관람객을 위해 존재한다. 미술은 그래서 '아름다운 술'이라 부르며 혼자 취하게 한다. ◆모빌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움직이는 조각의 마법 '모빌'은 균형감의 극치다. 독특한 생동력과 공간적 역동성이 잘 드러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조각가로 꼽히는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다. 조각을 조각으로부터 해방시킨 혁신가다. '움직이는 조각'은 받침대 위의 ‘고정적 오브제로서의 조각’이라는 관습적 개념을 깼을 뿐만 아니라 브론즈와 돌 등 양감에서도 해방시켜 현대 조각 미술사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189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조각가의 손자이자 아들로 태어났다. 스티븐스 공과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1923년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다시 입학하여 4년 간 회화를 전공했다. 철사를 구부리고 일그러뜨리는 방식으로 대상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조각의 시작이었다.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후 그는 철사를 비롯하여 평범한 조각적 재료들을 사용한 퍼포먼스 작품 '칼더의 서커스'를 제작하여 당대 파리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 1930년 피에트 몬드리안의 스튜디오 방문을 계기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하는 전환점이 되면서 그의 유명한 '키네틱 조각'이 발명됐다. 변기 '샘'으로 현대미술사를 뒤바꾼 마르셸 뒤샹에 의해 '모빌(mobile)'이라 명명된 이 조각들은 초기에는 손이나 작은 전기 모터로 구동되었으나, 1934년부터 기류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조각으로 발전했다. 1950년대 이후부터 칼더는 거대한 규모의 야외 설치 작업에 몰두했다. 1960년대 대형조각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알록달록한 모빌은 비행장, 미술관, 광장, 정원 등을 장악하며 세계 각지의 공공 기관에 세워졌다. (리움미술관 야외정원에도 있다.) 이번 전시는 대표적인 ‘모빌(mobile)’과 과슈 작업을 선별했다. 국제갤러리에서 2014년 전시 이후 9년 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이자 2004년의 첫 개인전 이후 마련된 네 번째 전시인 만큼, 이번에는 작가가 방대한 양의 작품을 제작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인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작품들을 조명한다.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모빌은 공간의 마법사다. K2와 K3에 나뉘어 전시된 칼더의 작품들은 살랑이는 바람에도 반응하며 분위기를 바꾼다. 스리슬쩍 일렁이는 '움직이는 조각'은 황금보다 빛난다. '지금' 이 순간, 그 소중함을 알려준다. ◆이우환 '관계항'의 키스, 그리고 무한 만남 “돌은 시간의 덩어리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다. 돌에서 추출된 것이 철판이다. 그러니까 돌과 철판은 서로 형제 관계인 것이다. 돌과 철판의 만남, 문명과 자연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내 작품의 발상이다." 국내 살아있는 최고 비싼 작가로 더 유명한 이우환(87)화백은 심오한 철학가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단순함으로 가장한다. 철판 위에 돌을 하나 놓거나 화폭에 점 하나 찍어 놓고 '예술'이라 주창해 '예술의 위대한 허세'를 자극한다. 돌 나무 등 가공되지 않은 자연물과 물질 그 자체의 상태를 '예술 언어'로 활용하는 그의 작품은 애써 '그린다는 것'과 애써 '만드는 것'의 의미를 허물어트린다. 그는 젊은 시절인 1960년대 후반 일본으로 유학 가 전위적 미술운동인 '모노하'를 창시하며 1970년대까지 일본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일본미술계에서도 '살아있는 현대미술' 전설로 통한다. 1980년대 부터 이어지고 있는 철판 위에 돌을 올려놓은 '관계항(Relatum)' 연작이 대표적이다. 자연을 상징하는 돌, 그리고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강철판을 공간에 설치한다. 작품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이 작품에 개입하게 되는 시점으로 두 사물과의 세계가 열리고 이어지는 '관계', 즉 문명과 자연, 그 만남의 문이 열리는 '관계항'이 작동된다. 국내에서 12년 만에 열리는 이우환 전시는 1관의 2개 공간과 2관 2층, 그리고 정원에 걸쳐 전개된다. 이우환의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아우르는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공개했다. 특히 1관에 설치된 신작(Relatum – The Kiss)은 의인화된 은유의 예시를 보여준다. 작품의 부제는 ‘키스’로 사람 같은 두 개의 돌과 돌을 둘러싼 바닥의 두 개의 쇠사슬 또한 포개어지고 교차하면서 교집합 양상으로 '만남'을 제공한다. 입벌린 듯한 돌이 기대 키스하는 듯한 작품은 처음 선보여 이전 돌들보다 주목하게 만든다. 풀어내는 말이 어렵지만 작품은 단순하다. 자연물과 인공물이 함께한 작품은 공백이 있고, 공명이 있다. '이게 뭐지?' 하는 호기심이 미끼다. 그 순간 작품 안으로 끌려들어 가 ‘무한’한 만남의 장에 빠지게한다. 억겁의 시간을 뚫고 전시장까지 온 돌 들의 묵언수행속에 '현실을 느끼고 생각하는 지금에 충실하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우환 화백이 '관계항' 연작 등 자신의 작품 메시지를 설명한 글을 전한다. “현시대가 신이나 ‘인간’이라는 망령 그리고 정보라는 망령한테 홀려서 맥을 쓸 수 없습니다. 이 망령이 전세계, 어쩌면 우주론까지 뒤덮으려고 하고 있어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신체일 수도 없고, 손에 닿지도 않고,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 실체나 외부가 없는 닫혀진 세계입니다. 이제 우리는 망령된 ‘인간’을 넘어서 ‘개체로서의 나’와 외부와의 관계적인 존재로 재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남(Encounter)이 중요한 것이지요. 나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독특한 신체성을 띠고 있으며, 대상 그 자체도 아니고 정보 그 자체도 아닌, 이쪽과 저쪽이 보이게끔 열린 문, 즉 매개항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타자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고 이것은 새로운 리얼리티의 제시입니다.” 전시는 5월28일까지. 2023/04/04
쇠라도 울고 갈 '주사기 점묘법'…윤종석 '창백한 푸른 점' 이 그림, 보고도 안 믿긴다. 가까이서 보면 오돌토돌 수많은 점이 박혔다. 알고보면 더 놀랍다. 정말? 이걸? 주사기로? 감탄도 기겁하게 한다. 주사기 통에 아크릴 물감을 넣고 밀어냈다. 1~2mm 작은 점들이 수만 번, 수십만 번 찍혀 환영을 만들어냈다. 19세기 후반 등장한 점묘화 창시자 쇠라도 울고 갈 '마이크로 점묘화'다. 윤종석(52)작가. 미술시장에서 이미 ‘주사기 화가’로 유명하다. 전생에 주사기였을까? 아니면 주사기를 만든 사람이었을까? “무의식의 틀을 깨고,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를 해방 시켰을 때, 비로소 새로운 앎(知)의 탐구가 시작된다.”(미셀푸코 '지식의 고고학' 중에서) ◆붓으로 점 찍다 '주사기'로 신세계 주사기로 점 찍기 달인이 된 건 허무와 절망에서 시작됐다. 대학원 시절 마티에르나 오브제 표현 기법에 집중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걸 내 거라고 할 수 있나? 물감 덩어리들만 턱턱 붙어 있는데,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붓으로 점을 찍었다. 밋밋하고 단순했다. "이것 저것 다른 도구들을 시도해본 끝에 찾은 게 바로 주사기였어요." 2000년에 시작한 '주사기 회화'는 옷으로, 늑대로, 꽃으로 일상을 채집하며 진화했다. 수행보다 더한 고행스럽게 작업하는 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겪으면서다.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다 내적인 결단을 내렸죠. 그 모든 덧없음을 작업에 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예술에 적당히는 없다. 수도자처럼 작업한다. 작품은 수십만 개 이상의 점이 태동한 결과다. 정직한 노동의 대가는 유려함을 선사한다. "점은 켜켜이 쌓인 과거를 밟고 살아가는 현재의 나를 알아가는 방법이자 제 스스로 여러 단계의 질문을 풀어가며 내면을 알아가는 심리 테스트와도 같습니다.” 깨알보다 작은 점은 하찮음을 위대함으로 올려 세운다. 시간을 잡은 수많은 점이 만든 화면은 그래서 빛나게 강렬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표면의 깊이' 이후 2년...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제 작업은 세상에 대한 감정적 반응입니다." 2021년 ‘표면의 깊이’ 전시 이후 2년 만에 나온 신작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에서 영감 받았다.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촬영한 ‘0.12화소에 불과한 작은 점의 지구 사진’이다.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라는 칼 세이건의 말에 공감했다. 그도 작은 점에서 살아온 모든 이의 인생을 수많은 점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미지와 형상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 (점으로 된) 선(線)은 시공간을 잇는 ‘반복된 윤회의 선’이기도 하다. 윤종석 작가는 "우리는 과거의 흔적을 딛고 살아간다. 화면에 어우러진 제각각의 모티브는 현재의 나를 알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며 "점은 현재의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 연결해준다"고 했다. ◆윤종석의 점...:"세상에 대한 감정적 반응" 이번 전시에는 한쪽 벽면 전체를 꽉 채운 특별한 대작이 눈길을 끈다. 가로 3m가 넘는 '여자의 일생(0907-어머니)작품은 작가가 처음 시도한 역작이다. 제목대로 어머니의 일생을 한 폭에 담았다. 나뭇가지처럼 뻗은 황금 줄기에 여러 모양의 저울이 달렸고, 곳곳에 어머니와 연관된 소재들이 얹어져 있다. "운동회에서의 독보적인 달리기 실력은 바통, 유독 좋아하신 동백꽃과 평소 즐기셨던 소주잔, 식당 일을 오래 하셨던 고단한 삶의 일상은 요리용 칼 등으로 표현했어요." 이번 작품은 형상이 확실했던 2년 전과 달리 형체가 흐트러졌다. 시간의 흐름,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을 의미한다. 20년 넘게 이어온 '주사기 점묘법'이 본능적인 감각으로 자유롭게 발휘된 자신감이다. 청색 빛이 스민 검은색으로 칠한 전시장 벽면도 인상적이다. 어두운 밤하늘의 우주 속에 작품이 빛나고 있는 듯 연출한 것으로 모든 것을 작가에 내어준 분위기다. 2m~3m 넘는 대작들을 건 상업화랑에서 흔치 않은 미술관 같은 전시다. 전시 무대가 적은 50대 작가들의 새로운 도전을 재조명하는 취지로 "작가적 역량이 커질 때 K아트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도 담보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환상적인 그림,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뚫고 나왔다. '유한 인생 게임'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주사기 점묘화'가 지루한 일상에 따끔 주사를 놓는다. 전시는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4월22일까지. ◆'주사기 화가' 윤종석은? 1970년 대전 출생으로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 동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일본·이탈리아·중국·싱가포르 등에서 20여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2006 화랑미술제 Best Top 10 작가 선정, 롯데화랑 유망작가 지원 프로그램 선정,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 청년미술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및 특선, 대전광역시 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중국 베이징 아트사이드스튜디오, 장흥가나스튜디오, 프랑스 파리씨떼 예술공동체, 대만 타이페이 아티스트빌리지 등의 레시던시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참여했다. 작품은 코오롱, 하나은행, 외교통상부, 두바이왕실, 벤타코리아, ㈜파라다이스 아트센터 쿠, 가나아트센타, 대전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보바스 기념병원. 골프존 문화재단, 제주현대미술관, 스텐다드 차타드 은행,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수원시립미술관, 롯데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3/03/31
차분해진 아트바젤 홍콩…'프리즈+키아프' 승산 있다 미술은 마술이다. 환각과 중독의 세계에서 주머니를 털어간다. 기괴하고 못 알아볼수록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물론 브랜드가 확실해야 한다. 유명 갤러리와 유명 작가의 협업은 '큰손'들을 쉽게 유혹한다. '나중에 돈 된다'는 귓속말이 최대 자극제다. '아트바젤 홍콩'이 여실히 증명했다. 지난 21~25일 4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행사는 묘하고 알 수 없는 이상한 작품들이 수십억 가격을 알리며 순식간에 거래가 이뤄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정식 개최된 아시아 최대 미술 장터로, '미술시장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불안정한 국제적인 경기 침체 전망도 이곳에선 통하지 않았다. ◆아트바젤 홍콩 차분한 반면 판매는 강력 2019년에 비해 행사의 분위기는 차분했던 것과 달리 세일즈는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폐막한 아트바젤 홍콩에 따르면 아시아권에서 온 컬렉터들의 관심 속에 대부분의 메가 화랑들은 출품작을 완판하고 가벼운 손으로 돌아갔다. 런던에서 온 유니온퍼시픽의 그레이스 스코필드 이사는 “전 작품을 첫날 모두 솔드아웃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VIP 개막 첫날 부터 수십억 대 작품이 턱턱 팔려나갔다는 소리가 터졌다. 100만 달러 이상의 대표작들을 내놓은 메가 화랑들은 화려한 '홍콩의 밤'을 만끽했다. VIP 개막 이틑 날인 22일 전시장이 한산한 이유라고도 했다. (코로나로 억제된 중국 본토 큰손들이 스트레스를 '돈질'로 풀고 갔다는 뒷얘기도 나왔다.) 최고의 세일즈를 기록한 화랑 중 하나는 뉴욕 런던 홍콩 등에 진출한 LGDR이다. ‘NFT의 제왕’인 비플의 NFT 영상 설치 작품인 ‘S.2122’가 900만 달러(117억 원)에 판매됐는데, 중국 난징의 데지 미술관(Deji Art Museum)이 구매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갤러리는 파블로 피카소의 ‘Fillette au bére’는 550만달러(71억 원), 니콜라스 파티의 ‘Birds Fighting for Worms’는 280만달러(36억 원)에 팔았다. 화이트큐브는 안젤름 키퍼의 ‘Rapunzel’을 100만유로(14억 원)에 팔았다. 글래드스톤은 알렉스 카츠의 회화 2점을 각각 130만달러(17억원), 120만달러(15억6000만원)에 판매했다. 쿠사마 야요이, 마크 브래드포드, 앨리스 닐, 조지 콘도, 카즈오 시라가,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은 줄줄이 팔려나갔다. 하우저앤워스는 조지 콘도의 ‘Purple Compression’을 475만달러(62억 원), 마크 브래드포드의 ‘A Straight Line’을 350만달러(45억 원), 로니 혼의 조각 ‘무제’를 175만달러(23억 원)에 팔아치웠다. 야요이 쿠사마는 동시대 미술시장 대세의 저력을 보였다. '노란 호박' 조각이 350만 달러(45억5000만원·오타 파인아츠 갤러리)에 팔린 데 이어 그 다음날 초록 호박이 600만 달러(78억 원·빅토리아 미로 갤러리)에 판매됐다. 현재 92세의 일본의 살아있는 전설인 쿠사마는 현재 홍콩을 대표하는 문화 명소 M+뮤지엄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루이비통과의 협업으로 명품부터 전시까지 '땡땡이 세상'을 만들고 있다. 쿠사마에 이어 이번 행사에서는 일본 1세대 행위예술가 카즈오 시라가(1924~2008)의 회화도 주목 받았는데, 1991년에 제작한 추상화가 500만 달러(65억 원)에 판매됐다. 캔버스에 붓이 아닌 몸을 뒹굴어 만든 붉은 피같은 그림이다. 전 세계 블루칩 작가의 수작이 쏟아져 나온 가운데 K아트도 선전했다. 특히 국제갤러리는 월등한 판매 실적을 보였다. 하종현의 대표작 ‘Conjunction 22-38’ 7억 원대, 이승조의 ‘Nucleus’ 4억 원대, 박서보의 신작 세라믹 묘법도 점당 2억5000만원, 최욱경의 ‘God Damn’을 1억 원대에 판매했다. 우고 론디노네와 제니 홀저도 2억 원대에 각각 팔았다. 이우환 작품은 외국화랑에서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파리 메누르 부스에 나온 이우환의 ‘대화’(2014)는 100만 유로(14억 원), 페이스에서는 100만 달러(13억 원)에 팔렸다. 조현화랑은 이배 대형 숯 회화 8점이 첫날 완판됐고, 학고재도 문을 열자마자 정영주의 판잣집 풍경화 4점을 모두 판매했다. ◆서구에서 아시아로 시장 재편 확연...중국 본토~한국 필리핀 등 아시아 큰손 부상 "2019년과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다." 아트바젤 홍콩 마이크 호머 데이비드 코단스키 시니어 디렉터도 인정했다. 세계 32개국 177개 화랑이 참여, 지난해보다 47곳이 늘었지만 서구 쪽 중견 화랑들이 상당수 불참하면서 아트바젤 홍콩 위상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VIP개막에도 여유롭게 진행되는 행사에서 참가 화랑들은 '홍콩의 중국화' 현상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권의 '홍콩 엑소더스' 여파로 서양 컬렉터들이 보이지가 않는다"는 한 갤러리 관계자는 "이전 활기찼던 홍콩 경제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에 "홍콩은 정치적 불안과 코로나19라는 두 개의 병을 앓고 이제 나아졌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파비오 로씨 홍콩 화랑협회장은 "정치적 불안감이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직결할 순 없으나 여전히 불안감은 상존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시장엔 백인 등 서양인 보다는 중화권, 한국인 컬렉터들과 관계자들로 붐볐다. 갤러리 부스는 활기보다는 넓고 쾌적함이 돋보였다. 참가 화랑들은 "홍콩과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방글라데시에서 온 새로운 고객과 만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 아트바젤 홍콩 위상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분위기를 반전시킨 건 주변 박물관과 갤러리, 경매사들이다. 가고시안, 펠렘 갤러리등이 있는 패더빌딩과 하우저앤워스, 페이스,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스톤 갤러리 등이 몰려있는 'H Queen’s' 빌딩은 마크 브래드포드, 마이클 보레만스, 장샤오강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개인전을 열어 '아트바젤 홍콩 특수'를 누렸다. 특히 ‘M+뮤지엄’은 홍콩 문화의 체면을 살렸다. 런던 테이트모던을 설계한 건축가 헤르조그&드 뫼롱이 설계한 이 뮤지엄은 2021년 서구룡문화지구에 문을 열었지만 아트페어 기간인 지난 20일 ‘뮤지엄 나이트’를 통해 세계 미술계에 개관 신고를 했다. "홍콩을 중국의 문화중심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홍콩 정책 기조로, 이 행사에 미술계 관계자만 2000여 명, 갈라 디너 참석자가 30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야요이 쿠사마 회고전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텀블러, 컵 등을 판매한 굿즈는 벌써 동이 났고 양말과 수첩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새계적인 3대 옥션사도 대목을 누렸다. 중국 본토 등 슈퍼 컬렉터들의 방문에 맞춰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등 3대 글로벌 옥션회사는 앞다퉈 명작들의 프리뷰를 펼쳤다. 크리스티는 5월 뉴욕 메이저 경매의 프리뷰를 홍콩 알렉산드라 하우스에서 열었다. 미국의 근현대미술 최고봉인 S.I.뉴하우스의 컬렉션과 지난해 단일 컬렉션 경매로는 사상 최대규모(1조 4000억원)를 기록한 폴 앨런 컬렉션을 동시에 선보였다. 뉴하우스는 지난 2019년 제프쿤스의 1996년 조각 ‘토끼(Rabbit)’를 크리스티 경매에 내 놓아 9017만 5000달러(1158억원)에 낙찰시켜 제프쿤스를 생존작가 중 가장 비싼 경매기록 보유 작가로 등극시킨 이력이 있다. 필립스도 서구룡지구 M+뮤지엄 바로 앞에 신사옥을 개관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컬렉터들을 맞았다. 나라 요시토모의 황금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시작가 130억 원)등을 비롯해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한화 57억~84억 원)등 오는 31일 여는 3월 메이저 경매에 나온 작품들을 선보여 북새통을 이뤘다. ◆홍콩, 예전같지 않다...'한국, 잠자는 거인' 아트바젤홍콩 위협 "이번 행사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이 보여준 열기만 못했다." 한 해외 갤러리의 지적처럼 홍콩은 이전과 달라졌다. 수십미터 줄을 서며 입장만 30분 넘게 걸리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던 4년 전과는 달라진 아트바젤 홍콩은 '한국이 덤벼 볼만 하다'는 자신감을 키우게 한다. '한국(키아프)과 싱가포르(아트 에스지)등이 아시아 최대 미술 시장인 홍콩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는 CNN의 보도도 나왔다. 중국의 홍콩 민주화 탄압 움직임과 함께 아트바젤 홍콩과 관련 위상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과 함께 '잠자는 거인(sleeping giant)'으로 표현한 한국을 깨우고 있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홍콩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지만 프리즈와 함께 손잡은 키아프(KIAF)는 아트바젤 홍콩에 위협 요인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속에서도 지난해 프리즈 키아프는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깜짝 기록을 세웠다. 특히 아시아 시장 큰 손으로 부상한 한국의 MZ 컬렉터들의 위상은 증명됐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도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리며 한국 방문객이 넘쳐났다. ‘홍콩시 서울구’로 불렸던 이전처럼 '프리즈에 눈뜬' 한국인들은 "와서 보니 홍콩이 별거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미술 애호가들이 탄탄하게 자리매김했다는 증거다. 홍콩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거점으로 떠오른 건 '면세의 힘'이다. 미술품 수출입에 세금을 매기지 않고 미국 달러와 홍콩 달러 가치를 연동하는 달러 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는 덕분이다. 우리나라도 미술품 관세만 풀린다면, "아시아에서 다른 경쟁지는 없다'는 세계적인 옥션사들의 단언도 흔들릴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승산 있다." 오는 9월 열릴 프리즈서울+키아프가 더욱 기대감을 낳고 있다. 아트페어는 국가 전략산업이다. '홍콩을 중국의 문화중심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홍콩 정부 정책 기조처럼, 우리 정부의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 단 5일간 세계에서 온 10만 여명이 1조원을 쏟아낼 수 있다. 교통과 언어의 문제가 있지만, K팝 K관광 K먹방 K뷰티 등 K콘텐츠 대세가 뒷심이다. 아트바젤이 홍콩의 토종 아트페어를 먹어치우고 자랐다면, 키아프는 독자적으로 승승장구세다. 프리즈 서울에 안방을 내줬다는 비판도 있지만, 키아프는 자생력을 갖춰 올해 첫 인도네시아로 진출한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판도와 주도권을 두고 한국이 아트바젤 홍콩을 넘볼 줄은 4년 전만 해도 예정에 없던 일이다. 물론 그 사이 아트바젤은 47년 역사의 '피악'도 파리에서 퇴출시켰다. 세상에 독주는 없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 2023/03/27
"조선백자 보러 가세요?"...'리움미술관 BTS' 이준광 연구원의 'TOP 10'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요즘 리움미술관은 '문턱이 없어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고급 미술관의 콧대 높던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부터 '오픈런'에 폐장 시간까지 북적여 '시민 공원'처럼 보인다. 유료에서 무료로 전시를 개방한 것도 큰 이유지만 '다시 못 볼 전시'라는 입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MZ세대들의 '필람' 코스이자, 6070세대들의 나들이 장소로도 인기다. 세계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대규모 전시와, 국보와 보물이 쏟아진 '조선의 백자'전이 '이건희 컬렉션' 전시 못지 않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도발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도 깜짝 놀랐다. '돈을 벌 수 있는' 자신의 전시를 무료로 선보인 리움의 통 큰 배포와 논란을 낳던 이전 전시와 달리 경건하게 감상하는 모습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무료 전시'가 아깝다는 평이 많다. 오히려 '입장료를 받아라'는 민원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특히 총 185점이 나온 '조선의 백자'전은 전대미문의 최대 규모 전시로 한번은 아쉬워 'N차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의 백자:군자지향(君子志向)'전을 기획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연구원은 그 어느 해보다 행복하다. 현대미술에 치중했던 리움에서 고미술전문가로 12년을 숨죽였던 내공을 유감없이 발산했다. 조선 백자 감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과 함께 신박한 설명으로 얼굴을 알아보는 관람객들까지 생겨 '리움미술관 BTS'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사람도 백자도 사랑을 먹고 산다. '햇살처럼 화사하고 달빛처럼 고요한' 조선 백자의 위용은 이준광 연구원의 열정이 차이를 만들었다. 앞면만 보여주는 도자 전시가 아니다.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사방팔방에서 뽐낸다. 유리로 제작한 쇼케이스에 들어간 도자들은 뒤태는 물론 뒷면의 그림까지 볼 수 있어 품격을 더한다. 특히 용이 몸통을 휘감은 '백자청화 운룡문호'는 디지털 화면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구불구불한 용 무늬를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보여지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연구원의 야심작으로 당시 그 자체로 곧 왕이었던, '용 그림'의 위엄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수백억 국보와 보물, 달항아리가 특히 눈길을 끌고 있지만 전시에 나온 모든 도자가 귀하고 보배에요. 모두 무가지보(無價之寶)입니다." 검은 배경에 조명을 받고 있는 조선백자들은 압도적이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덕분일까? 더 없이 환희에 찬 풍모로 우리를 맞이한다. 청화백자, 철화백자, 순백자, 지방 순백자까지 도자 역사를 '일타강사'처럼 전시장에 정리한 이준광 연구원이 '185점 중 이 백자는 꼭 다시 한번 더 봤으면' 하는 10점을 꼽았다. (이 연구원은 성공적 전시에 힘입어 내년에 선보일 '분청 사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백자도 그렇다. 전시는 5월28일까지. ◆①백자청화 매죽문 호(白磁靑華梅竹文壺):조선 15세기 높이 41.0cm, 입지름 15.7cm, 굽지름 18.2cm, 몸지름 34.2cm. 개인 소장, 국보.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최고의 명품입니다. 표면에는 푸른빛의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매화와 대나무를 정교하게 그렸는데, 붓놀림이 회화적이어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합니다. 청화 안료는 중국을 거쳐 수입된 페르시아산으로 조선 초에는 그 값이 금보다도 비쌌기 때문에 왕실용 백자의 제작에만 사용하도록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에 청화백자 제작 기술이 조선에 도입되면서 조선백자가 새롭게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로, 학술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②백자철화 포도문 호(白磁鐵畵葡萄文壺):조선 18세기 전반 높이 30.8cm, 입지름 15.0cm, 굽지름 16.4cm, 몸지름 28.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국보. "조선백자에 사용된 안료 중 최고급품은 파란색을 내는 청화이지만, 변화무쌍한 짙은 갈색으로 강인한 힘을 전달하는 철화 안료는 백자가 가진 매력을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풍만한 곡선을 이루며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의 항아리에 포도와 포도잎은 넓은 면을 이루도록 짙고도 짙게 그렸는데, 그 과감성이 응축된 색과 어울려 강렬하게 전해집니다. 이와는 반대로 가지에서 내려오는 잔 덩굴은 구불구불 섬세하고 여리게 표현되어 대비를 이룹니다. 정적인 포도 문양이 있는 이 작품에 하나의 파문을 던지는 것은 덩굴 사이를 건너 뛰는 원숭이의 모습입니다. 세부가 표현되지 않았음에도 자세, 안료의 발색, 번짐에서 역동성이 묻어나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조선 도자사에서 철화백자의 전성기였던 시기는 17세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인데, 이 작품은 이 시대의 집약체입니다." ◆③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白磁靑華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 풀벌레, 난초, 국화 문양 병, 조선, 19세기, 높이 42.3cm, 입지름 4.1cm, 굽지름 13.3cm 간송미술관, 국보 정갈한 순백색의 단정함과 절제된 청화 장식에서 조선백자의 전통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수요층의 요구에 대응하며 등장한 채색 백자가 품은 색다른 분위기도 조선 후기에 형성된 새로운 전통입니다. 가느다란 목에 비해 풍만한 몸체, 그 위에 곤충과 난, 국화가 도드라지도록 깎거나 붙여 1차적인 장식을 했습니다. 여기에 난은 청화 안료를 덧입히고, 국화 줄기와 잎, 곤충은 철화 안료로 채색했습니다. 국화꽃은 철 안료, 동 안료로 잎마다 정성껏 칠한 것도 있고, 순백인 채로 둔 것도 있어 색색깔로 피어난 국화를 재치있게 표현했습니다. 청화, 철화, 동화 안료를 함께 사용하여 색을 내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이 병을 제작한 장인의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조선백자에 새롭게 대두되는 창의적이고도 진보적인 조형감각이 빚어낸 수작입니다. ◆④백자 개호(白磁蓋壺):조선, 15세기 총 높이 34.0cm, 입지름 13.0cm, 굽지름 14.7cm, 몸지름 27.8cm 개인 소장, 국보 조선 초기의 백자는 새 왕조가 지닌 활기찬 기운을 반영하듯 형태가 당당하고 의젓합니다. 특히 질이 우수한 백자들은 왕실의 취향에 따라 순백의 아름다움과 품격 높은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이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두루 갖춘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뚜껑에 달린 봉오리 모양의 꼭지나 매우 깨끗한 흰빛을 띠는 색도 조선 초기 백자에 보이는 특징입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여러 백자 가운데서도 전체의 모양과 백자의 색깔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우리 백자의 예술성과 기술 수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⑤백자 달항아리(白磁滿月壺)조선, 18세기 높이 44.5cm, 입지름 21.5cm, 굽지름 16.7cm, 몸지름 43.0cm, 개인 소장, 국보 왕실용 백자를 제작하던 경기도 광주의 가마에서 만든 둥근 항아리로, 풍만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마치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만한 크기와 둥그스름함이 달항아리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둥글고도 단순한 형태에서 조선 후기 순백자의 격조미가 가장 잘 나타난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몸체의 위와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이기 때문에 대개는 접합 부분이 변형되어 의도한 둥근 형태가 나오는 예가 극히 드뭅니다. 이 항아리는 다른 달항아리에 비해 큰데다 중앙의 이음새 흔적도 깨끗하게 마무리되어 있어, 순백자의 은은하고 품위 있는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⑥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잔받침(白磁靑華寶相華唐草文盞托) 조선, 15세기 높이 2.2cm, 입지름 21.8cm, 굽지름 14.0cm, 개인 소장 넓고 편평한 바닥, 꺾여 면을 이룬 입술, 지름이 길고 높이가 낮은 굽, 키가 매우 낮은 몸체 등 15세기 잔받침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상상의 꽃인 보상화(寶相華)와 이를 잇는 덩굴을 주요 문양 소재로 삼았는데, 중앙의 보상화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보상화와 덩굴이 주변을 가득 채우도록 배치하였습니다. 꺾여 면을 이룬 입술에는 파도문을 장식하여 마무리하였습니다. 보상화는 중국의 공예의장화된 보상화 문양이 조선 초기에 유입되어 사용된 것으로 이 시기 크게 유행한 뒤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잔받침을 뒤집어 보면 일곱 개의 칠보문(七寶文)을 배치하였습니다. 칠보문은 본래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한 문양이지만 조선에서는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상서로운 문양이라는 인식만 남은 채 사용되었습니다. 금속기(金屬器)를 모방한 듯한 날렵한 형태, 눈부시게 흰 유약의 색, 그 위에 그려진 화려한 문양 등이 특징인 초창기 청화백자의 빼어난 미가 듬뿍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⑦백자철화 운룡문 호(白磁鐵畵雲龍文壺) 조선, 17세기 높이 48.0cm, 입지름 17.0cm, 굽지름 17.3cm, 몸지름 38.6cm 개인 소장 용이 그려진 항아리는 조선 왕실 주요 행사에 사용된 중심적 기종으로 용준(龍樽)이라 불렸습니다. 본래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장식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처럼 17세기 전 중반경에는 철 안료를 사용해 장식한 예도 전합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어려워진 조선의 경제적 사정, 중국의 명청 교체기 등 복합적인 이유로 고급 재료인 청화 안료를 구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선 왕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순백자 위에 임시로 용을 그린 가화(假畵) 용준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지워지는 등 문제가 있어 철 안료로 장식한 철화백자 용준을 제작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왕실에 왕이나 왕비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삼우제(三虞祭)까지에 해당하는 흉례(凶禮) 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항아리의 크기는 물론 힘찬 용의 표현, 용의 몸을 휘감고 있는 박력 있는 구름 등이 인상적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철화백자 용준과 비교해 보아도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사례로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⑧백자철화 매화문 편병(白磁鐵畵梅花文扁甁)조선, 17세기 높이 19.0cm, 입지름 4.1cm, 굽 5.0×7.6cm, 몸지름 16.5cm, 개인 소장 편병은 편평한 양면이 둥글면서도 측면으로 이어지는 선이 반듯하게 각져 있어 편안함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기종입니다. 보통 원형으로 구획된 공간을 활용해 각각의 면을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작품은 장식 소재로 삼은 매화를 한 면에 유감없이 그려낸 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과감하게 어깨를 타고 넘어가 반대 면에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그림이 양면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그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독특한 것으로 이 매화를 그린 장인의 과감함에 탄성이 나올 정도입니다. 매화 가지의 굵고 가는 표현, 이에 따른 철화 안료의 짙고 옅음의 변화,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소담한 매화가 잘 조화되어 훌륭한 명작을 만들어냈습니다. ◆⑨백자철화 초화문 호(白磁鐵畵草花文壺)조선, 17세기 후반 높이 33.2cm, 입지름 15.6cm, 굽지름 12.3cm, 몸지름 31.6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아타카 테루야[安宅昭弥] 기증 항아리 몸체에 꽃들이 가득 피어 있어 생명력 넘치는 대향연이 펼쳐지는 듯한 기운찬 작품입니다. 항아리는 정선된 흙으로 목부터 어깨, 하부에 이르기까지 단정한데, 밑동에서 굽에 이르는 부분에서 직각을 이루는 것이 독특합니다. 장식은 철화 안료를 이용하였는데, 구도와 비례에 대한 구속 없이 어린아이가 그린 듯 천진스러운 꽃들로 한가득 봄을 펼쳐 담았습니다. 꽃 모양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으로 그려 마치 현대의 막대 사탕 같은데, 비슷한 시기 제작된 철화 백자의 구름 표현과 닮아 흥미롭습니다. 뒷면은 꽃은 적고 앙상한 가지와 널은 잎들이 여백을 두고 자리하고 있어 앞면과 달리 호젓한 느낌이 감돕니다. 항아리의 품질은 경기도 광주 관요에서 만든 듯 양질이지만, 그림은 지방 가마에서 만든 듯 자유로와 묘한 이질감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⑩백자동화 호작문 호(白磁銅畵虎鵲文壺)조선, 18세기 높이 28.7cm, 입지름 13.6cm, 굽지름 13.5cm, 일본민예관 18세기 조선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상서로운 의미를 담은 민화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민화는 자연스럽게 백자에도 스며들었는데 이 항아리에 있는 호랑이, 까치, 소나무는 우리에게 까치 호랑이 그림으로 잘 알려진 호작도(虎鵲圖)의 요소들입니다. 배경의 세세한 묘사들은 생략한 채로 한 면에 비스듬히 앉아 앞을 보고 있는 호랑이를 큼직하게 표현하였는데, 무심한 선들을 더해 호랑이 털의 질감을 표현해낸 기술이 감탄스럽습니다. 나머지 너른 면에는 소나무를 펼치고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치 한 마리를 그려 완성했습니다. 까치 호랑이 그림의 주요 요소들만을 채택해 배치한 과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18세기 동화 백자의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202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