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18초'·'오픈런'...MZ세대 돌풍 미술시장 명암 #1분 18초. 12억 원이 순식간에 입금됐다.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서울옥션블루 소투(SOTWO)도 깜짝 놀랐다. 최근 진행한 이우환의 일명 '대화(Dialogue)' 두 작품이 공동구매 대비 각각 ‘최단’ 시간 ‘1분 18초’ (Dialogue 2019 4)와 ‘최고’ 금액 ‘12억’(Dialogue)으로 조기 마감됐다. 기존 공동구매한 이우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금액으로 알려진 작품이었다. #샤넬 오픈런도 아닌데, 갤러리 앞 텐트까지 등장했다. 최근 서울 평창동 프린트베이커리에서 열린 화가 청신 개인전은 '샤넬 오픈런'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시 개막 전날 밤부터 갤러리 근처에 '텐트족'이 등장했다. 그림을 사려고 ‘밤샘 원정’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상업 갤러리에 대기줄이 선 건 미술시장 역사상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선착순 1인당 1점' 대기번호까지 발급됐다. 유명한 작가도 아니라는 점에서 미술시장 사람들은 '해석 불가' 현상이라는 입장이다. #돈 되는 그림에 직진,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한 '2022 화랑미술제'는 문을 열자마자 이색풍경이 쏟아졌다. 개막을 알리는 순간, 점 찍어둔 부스를 향해 돌진하며 뛰는 사람들로 '메뚜기떼'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5시간 동안 3850여명이 입장해 북새통을 이뤘고 이 시간에 약 45억 원어치가 팔렸다. 이는 화랑미술제 최고 매출을 올렸던 지난해 화랑미술제 전체 매출 72억원의 50%를 첫날 하루에 넘기는 수치였다. 느긋하게 미술제를 찾은 50~60대 컬렉터들은 "세상 달라졌다"며 아연실색했다. #인기 작가 신작 작품이 바로 경매에 나온다. 우국원, 장마리아, 김희수, 김선우, 콰야 등 젊은 작가들의 신작들이 경매에 쏟아진다. 길어야 1년전, 불과 몇달전 개인전에서 판매했던 그림들이 벽에 걸리기도 전에 경매장으로 직행한다. 작가들은 허탈하다. 작품에 대한 관심보다 시세차익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이젠 무섭다고 했다. 작품이 상품으로 전락하는 현상을 보고만 있을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작가나 화랑이 방어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 소투에 따르면 블루칩 대표주자 이우환 작품 공동구매는 'MZ세대'의 미술 열풍을 확인하는 '1분18초'였다고 했다. 이우환 공동구매 회원 60%는 1980년 이후 출생자인 MZ세대다. 그 중 58%가 여성회원으로 2030세대 여성 고객 파워를 입증했다. 단순히 숫적 공세 뿐만이 아니다. 12억 규모의 공동구매액 중 52%인 약 6억 1000만원을 MZ세대가 구매했다. 이들의 1인당 평균 구매금액은 58만8292원으로 집계됐다. 50~60만원대는 자유롭게 지갑을 여는 MZ세대의 재테크 문화도 엿볼 수 있다. 해외 미술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미술시장 전문 컨설팅 기관인 아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밀레니얼 세대가 세계 고액 자산가 컬렉터 중 64%를 차지한다. 이들의 미술작품에 대한 지출은 평균 37만8000달러로 전체 세대 중 최고다. 평균 11만8000달러를 쓴 X세대보다 훨씬 높고, 베이비부머들의 4배에 가깝다. ◆MZ세대는 왜 아트테크에 꽂혔나 MZ세대가 미술시장에 뛰어든 것은 취미가 돈이 되는 '덕테크' 문화 현상과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소투 관계자는 "MZ세대는 국내 블루칩 작가인 이우환 뿐만 아니라 글로벌 작가들까지 아트테크 대상으로 삼는다"고 했다. 조엘 메슬러, 아모아코 보아포, 야요이 쿠사마, 힐러리 페시스 등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도 정보를 습득하고 투자하는 ‘덕테크’에 익숙하다는 것.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 김재욱 대표는 "이는 SNS,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투자 관련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는 것도 배경"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를 소비하고 재확산하는 주요 고객층이 MZ세대"라며 "이들은 기존에 얻기 힘들었던 투자 정보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투자상품을 찾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MZ세대의 핫한 투자 아이템이 된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에는 회원 6000여명이 매월 몰려들어 매출 성장률 250%를 기록중이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게 아니라, '아는 만큼 돈 번다'는 일환이다. 미술투자자문사 마스터웍스(Masterworks)가 현대미술과 금융투자자산의 25년간(1995~2020년)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현대미술(1945년 이후 제작 작품) 수익률(14.0%)은 기존 안정적인 전통적 투자품인 '금(6.5%)'보다도 높아 재테크 수단도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재욱 대표는 "미술품은 단순히 구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짐에 따라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고 이를 표출하려는 MZ세대의 니즈와 부합하는 것도 작용하지만, 공동구매 또는 조각투자가 등장하면서 고가의 미술품에 대한 가격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미술품 투자에 열광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특히 "미술품은 고위험 고수익 상품으로 인식되어 있어, P2P와 코인투자에 익숙한 MZ세대가 중장년층보다 고위험군에 속한 미술품 투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보다 유연한 것도 아트테크 열풍에 한 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국제적인 아트페어나 글로벌 수준의 주요 갤러리들이 내수시장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유튜브 등 인터넷 매체 활성화로 해외미술 콘텐츠가 큰 장벽 없이 열리면서 MZ세대의 소비문화가 미술문화로 확장하고 있다. ◆"돈 된다"...MZ세대가 미술품에 열광하는 이유 "원하는 작품이 있다면, 중개채널(화랑 경매딜러 외)의 실적이나 유명세를 따지지 않더라고요." 16~20일 열린 2022화랑미술제는 역대 최대 매출인 177억원 어치의 판매고를 열렸다. 유명 대형 화랑뿐만 아니라 중소형 화랑들도 예년과 다른 매출 실적을 냈다. 화랑미술제와 키아프(KIAF)를 운영하는 한국화랑협회 김동현 팀장은 "작년부터 진짜로 미술시장 트렌드가 바뀌었다"며 이를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트를 소장하고 컬렉터가 되는 게 이전처럼 정말 부자들이 즐기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 모두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즐거움이 되는 느낌이에요." 김 팀장은 "미술 행사에 찾아오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독특한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이고 라이프 스타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방탄소년단 RM 등 연예인 스타들과 셀럽들이 미술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젊은층이 예술쪽에도 눈을 뜨기 시작해 새로운 붐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MZ세대에 인기인 작품들은 유명인의 집에 걸렸거나, 스타가 소장한 작품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다. "MZ세대 컬렉터들은 작가 개인의 역량보다 본인이 선호하는 대중스타(인플루언서)에 의해 대외적으로의 노출 빈도수를 높이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게 미술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도 한몫했다. 집에 있는 시간도 길어졌고, 인테리어 소비가 대폭 늘면서 동시에 그림을 집에 두고 즐기는 문화 자체가 모든 세대와 성별로 넓혀지고 있다. 김동현 팀장은 "이로인해 예술에 접근을 막았던 허들이 낮아지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새로운 트렌드 중심으로 아트가 부각되면서 네트워크 방식의 틀과 구조도 변모해가는 것 같다"면서 "이젠 기업들도 브랜딩과 프로모션에 아트를 포함한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 역시 미술시장의 대중화를 넓여주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야요이 쿠사마, 카우스 등 블루칩 작가의 작품들이 아트 상품과의 결합되면서 과거 중장년층 컬렉터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보다 친숙한 형식으로 MZ세대에게 다가가는 것도 이유다. 이전 팝아트보다 더 가볍고 단순한 된 필체의 웹툰 스타일 그림이 뜨는 배경이다. ◆MZ세대, 디지털 문화 온라인 소비세대…NFT도 부담감 없이 접근 "MZ세대는 구입한 작품을 장기간 보유하기보다 단기적인 수익창출의 목적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젊은 수요층 중심으로 미술품 공동구매 열기가 뜨거운 현상도 그 연장선으로 보이죠." 김윤섭 미술평론가는 "기성 컬렉터인 부모세대가 생산세대라면, MZ세대는 소비세대"라며 "이들의 아트테크 접근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부모세대는 신중하고 이성적 소비패턴이라면, MZ세대는 즉흥적이고 감성적 소비패턴 성향이 강합니다. 또한 이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인플루언서 팬덤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도 있죠." MZ세대는 디지털 문화권의 주역으로서, 온라인 소비주체다. 가상공간(SNS 사회관계망, 인스타, 블로그, 메타버스 등)의 일상화를 통해, 실물보다 이미지 소비에 익숙한 세대로, 메타버스 혁신 시대의 실질적인 주체적 그룹으로 급부상했다. NFT와 미술품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가상자산이 코인거래소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암호화폐로 고수익을 올리고, IT기업에서 연봉이 높은 젊은 기업인들의 문화소비 수준도 높아지면서 미술품 투자의 새로운 신규 고객층으로 부각되었다. 국내 미술시장 갤러리의 세대교체 변화와도 맞물렸다. 1세대 창립자에서 2세대 자녀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MZ세대 등장과도 시기적으로 맞물렸다. 이로인해 주요 갤러리에서는 해외 미술품 국내 전시가 늘고 있고, 서울옥션에 이어 올해 케이옥션이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보다 공격적인 미술품 투자 시장의 열기가 높아졌다. ◆올해 미술시장도 벌써 흥행 예고...프리즈+키아프 등 개최 1조원대 돌파 전망 지난해 국내 경매시장 낙찰총액은 3296억 원대로 2020년보다 3배 커진 183.2%까지 치솟았다. 아트페어와 갤러리 시장까지 합치면 9000억원을 훌쩍 넘기면서, 유례없는 매출 팽창세로 지난 5년간 최고 수준의 매출 기록이다. 올해 미술시장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서울옥션 메이저 경매인 3월 경매는 91% 낙찰률을 보이며 흥행 열풍을 예고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2022년 1분기 경매 결과가 약 184억 증가, 85% 늘어난 실적이다. 서울옥션도 컬렉터층이 젊어졌다. 지난해 온라인으로 가입한 신규 회원 약 3500명중 MZ세대인 30대가 가장 많다. 올해는 세계적인 아트페어 중 하나인 영국 런던 프리즈(Frieze)가 9월 서울에서 열린다. 화랑협회는 "프리즈와 공동 개최하는 올해 KIAF 아트페어를 통해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아시아 최고 미술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이로인해 국내 미술시장 사상 첫 1조원을 무난히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MZ세대 미술시장 돌풍속 명과 암 뚜렷...생태계 선순환 대책도 시급 MZ세대가 미술시장에 출몰을 알린 건 지난해 열린 '키아프(KIAF)'였다. 이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빨간 딱지를 남겼고, 화랑들은 오랜만에 돈바람에 취했다. '작품만 사러온' 사람들이 밀려와 화랑 주인들이 뒷걸음쳤다는 후문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고객들은 작가와 작품에는 관심이 없었다. 작품을 몇번을 보러 오고 작가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이전 고객들과 달리 작품가격, 판매 여부만 묻는 젊은 고객에 무서울 정도였다는 외국계 한 화랑주는 MZ세대로 인한 미술시장 흥행 열풍이 새로운 미술시장이 열린 것이 아닌 '한탕주의 투기 열풍'은 아닐까 우려했다. MZ세대 ‘아트테크’ 열풍으로 미술시장 ‘빅뱅’이 시작됐다. 미술 산업을 흔들며 팽창시키고 있다. 하지만 재테크에만 매몰된 과도한 투기 심리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온라인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MZ세대 중심의 수요층 세대교체 바람의 급물살도 미술시장의 확산세는 긍정적이지만, 지나친 과열 현상은 미술품 투기의혹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여 우려되는 점도 있다"고 밝혔다. 미술시장의 안정적인 생태계 구축을 위해 선순환 시스템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창작자들의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과 미술 산업을 지원하는 기업에 세제혜택 등 미술품 수집을 장려하는 정책적 뒷받침 등도 요구되고 있다. 김영석 이사장은 "현물에 투자하고 현물중심으로 소비하는 방식을 넘어, 창작가인 작가에 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지원책 마련이 급선무"라며 "결국 MZ세대도 머지않아 또 다른 기성세대가 될 것이니, 경매사·화랑 등은 트렌드나 일시적인 유행에 너무 민감한 것보다 MZ세대 열풍 이후를 미리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2022/03/26
김재욱 대표 "미술품 쪼개기 개척..부자들만의 리그' 깬 보람" "누가 그림을 쪼개 사냐.", "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했지만 그 "뭘 몰라서"가 세상을 뒤집었다. 일명 '미술품 쪼개기 투자'로 불리는 미술품 공동구매다. '부자들만의 리그' 벽을 깼다. '나만의 그림'이 아닌, '우리의 그림'으로 판을 넓혔다. '미술품 공동 구매' 방식을 국내 최초로 시도한 김재욱(41)열매컴퍼니 대표다. 공인 회계사에서 미술사업에 뛰어든 '청년 벤처 사업가'다. 미술품 공동구매는 미술시장 대중화와 미술품 투자까지 두마리 토끼를 잡고, 승승장구세다. 1만원으로도 김환기, 이우환, 피카소, 야오이 쿠사마 작품을 살 수 있다. 수억 짜리 그림도 공동구매에 올리면 순식간에 팔린다. 1분에서 7분은 골드타임이다. '쪼개사는 그림', MZ세대에 핫한 '아트테크'가 됐다. 20~30대의 일석이조 투자처가 된 '그림 투자'는 코로나속에도 뜨거운 미술시장 열풍의 배경이다. '미술품 공동구매'는 화랑과 경매시장의 사이를 비집고 흥행중이다. 현재 국내 미술품공동구매 시장은 열매컴퍼니의 아트앤가이드를 선두로, 후발주자인 아트투게더, 타사 등 3개 업체가 활발하게 운영중이다. 김재욱 대표는 "매번 공동구매때마다 예상외로 뜨거운 열기를 이루고 있다"며 "미술품은 '큰 손 사모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벗게 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설계된 공동구매 방식은 투명성과 신뢰성이 무기다. '미술품 공동구매' 시장이 열린지 5년. 2019년 첫 회 16억 원 매출에서 지난해 180억원 규모로 성장한 열매컴퍼니는 올해 최대 700억 원까지 공동구매를 확대한다는 목표다. 한달 평균 4회 공동구매를 진행하며 평균 수익률은 18%를 기록하고 있다. 회원수는 6000명, 매출 성장률은 250%를 기록중이다. "올해 코스닥 상장까지 준비한다"며 분주한 김 대표를 만나 미술품공동구매를 추진하게 된 배경과 성장 비결을 들어봤다. ◆'금융맨'에서 '미술시장 혁신가'로...미술품공동구매 창업 배경은 회계사로 간송미술관에서 근무하면서 사업 준비를 했다. 애초 미술에 관심이 있었다. 2013년 2월, 인사동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산 첫 작품(단순 프린트였다)을 시작으로 10년간 200점이 넘는 작품을 컬렉팅했다. 신진작가부터 유명작가까지, 원작부터 판화, 프린트, 조각에 미디어아트까지, 다양한 작품을 샀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도 만들었었다. 의욕이 넘쳤고 내가 산 작품은 모두 비싼 가격에 되팔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투자를 위한 작품은 정해져 있었고, 배경 지식 없이 좋아서 산 작품들은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그렇게 3년쯤 지나다보니 회의감이 들더라. 그때 나같은 월급쟁이들은 투자로 연결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서 전문적인 지식과 네트워크를 쌓고 다시 컬렉팅을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산 작품을 팔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 사가려고 할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이후 컬렉팅이 더 즐거워졌다. 다만, 투자가치가 높은 유명작가의 작품은 가격이 비싸서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미술품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이다. 2018년 10월 30일 론칭했다. 처음 작품을 컬렉팅하는 고객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방식의 가격 정보와 작품 정보를 제공하고, 소유권 분할을 통해 가격 진입장벽을 낮췄다. 하지만 국내에 없는 일이어서 시행착오도 겪고 홀대도 받았다." ◆공동구매 첫 작품은 김환기 '산월'...7분만에 마감 화제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미술품 공동구매를 론칭하자 미술시장 관심이 모아져 더욱 떨렸다.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가득 채우며 선매입을 한 작품으로 공동구매 전날 밤은 정말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 2018년 10월30일이었다. 4500만원에 공동구매로 내놓은 김환기 ‘산월’(1963)은 오픈 7분만에 마감됐다. 구매자 전원이 30분 내 입금을 완료하고 구매를 확정했다. 30~40대가 전체 63%를 차지했다. 한달만에 작품은 5500만원에 매각됐고 수익률 22%는 바로 참여자들에 배분했다. 이때 미술품 투자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기대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미술시장을 대중화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내 생각이 적중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MZ세대들에 인기...매월 30억 원대 공동구매 진행 "공동구매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한다. 물론 MZ세대 비율이 60% 정도 차지하고 있다. 남성보다 여성의 비중이 조금 높다. 미술시장 흥행과 함께 그림투자 열풍이 일면서 미술품 공동구매시장도 급증세다. 단골 고객만 2000명 이상이다. 아트앤가이드는 2019년 16억 원, 2020년 31억 원, 2021년 18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2021년 말 월 20억원 정도 공동구매를 진행했다면 2022년 들어 매월 30억원 이상을 공동구매하고 있다. 올해는 최소 500억원에서 최대 700억원까지 공동구매를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빠르면 1분만에 늦어도 10분안에 마감되는 이유는 투자도 하면서 동시에 예술을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NFT와 같은 최신 기술이 적용되면서 전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장기적인 전망도 긍정적이다." ◆아트앤가이드 공동구매 차별화는 "선매입한 작품을 1만 원에서 많게 100만 원까지 분할 판매한다. 구매수는 작품가격에 따라 10점 안팎으로 제한한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소액투자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또한 공동구매 시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공동구매 작품에 회사도 5~10%를 함께 투자한다. 공동구매자와 수익과 리스크를 나누어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이유다. 공동구매한 120점 이상의 작품 중 재매각율이 60% 이상이고 평균수익률이 34%(평균보유기간 10개월)에 달한다는 점이 타 업체와 차별화다. 소유권 현황, 매각현황등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한다. 특히 후발업체들의 경우 IT나 거래소 등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트앤가이드는 본질에 집중한다. 공동구매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한번도 작품을 사보지 않은 분들이고, 재매각에 관심이 높으실 수 밖에 없다보니 유명 작가의 작품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에 집중했다. 특히 가격 산정 능력이 경쟁력이다 보니 내부에 작품 가격을 합리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가격산정시스템을 구축했고 미술전문분석팀을 운영하여 작품 선매입과 재매각에서 탁월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굵직한 기업서 투자 잇따라...200억 규모 펀딩 진행 사업 성장세 "3명에서 시작한 사업은 현재 25명이 근무하는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작품 소싱, 재판매, 가격 분석 담당은 물론 약점으로 지적되던 IT팀도 제대로 구축할 수 있게됐다. 투자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도 운영하고 있다. 회사 성장 비결은 기업투자가 이어진 것도 크게 작용했다. 소프트뱅크벤처스, 베이스인베스트먼트, 산업은행, 산은캐피탈, 이에스인베스터, 위메이드, 이앤벤처파트너스, 한양증권 등이 주주다. 최근 200억원 규모의 추가 펀딩을 진행 중에 있다." ◆블록체인 기반, NF T시대 준비는? "분명 앞으로 메타버스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당연히 미술품공동구매 시장도 준비를 할 수 밖에 없고 NFT를 비롯한 최신 기술을 충분히 활용할 예정이다. 다만, 법의 테두리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누구도 피해를 보지않고 안전하게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목표다." ◆미술시장 전망 미술품 투자 매력은? "국내 미술시장(4000억 원 규모)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은 규모 면에서나 사업 면에서 많이 뒤쳐져 있다. 반대로 말하면 아직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분야라는 말과 같다. 국력이 증가하고 세계에서 인지도가 증가하며 국민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문화가 발전할 것으로 생각한다. 유명작가의 미술품은 희소성을 지닌 자산으로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가 증가하고, 안정적인 수익률과 높은 환금성, 폭넓은 세제혜택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향유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까지 가지고 있는게 큰 매력이다. 미술품 투자가 부자들의 전유물에서 대중으로 확대될수록 미술시장이 산업화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술품공동구매 시장을 개척한 열매컴퍼니는 미술애호가의 폭발적 수요 증가에 미술금융 시장에 진출하는 한편 미술품 인테리어 제작을 지원하는 매니지먼트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2022/02/19
'도도새' 김선우 작가와 서울옥션 그리고 가나아트센터 김선우(33)작가. 미술시장에 무명의 작가가 이름을 빛낸 건 지난해 서울옥션 경매에서다. 우국원 작가와 함께 억대에 낙찰행진을 기록하며 떠올랐다. 멸종한 '도도새'를 주인공으로한 작품은 '이상 현상'이라 할 만큼 높은 가격에 팔려나갔다. 지난해 10월 서울옥션에 출품된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오마주 한 ‘모리셔스섬의 일요일’은 1억1500만원에 낙찰됐고, 양대 경매사에 출품될 때마다 추정가의 수배를 웃돌며 팔려나갔다. 경매장에 출품후 2년반만에 그림값이 20배가 급등하며 주목받았다. 이 때문에 단기간에 작품 가격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양상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이는 2006~2007년 경매시장에서 부상한 반짝 스타 작가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경매장이 만든 작가'라는 시선속에 옥션이 띄운 김선우 작가를 가나아트에서 다시 개인전을 예고해 주목받고 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는 김선우 개인전 'Paradise'를 오는 27일부터 2월 27일까지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작가 발굴하고 전시하는 화랑의 역할을 경매사가 먼저 하고 '돈이 되는 작가'로 선정되면 화랑에서 전시, 작품을 판매하는 식으로 보인다.(작가는 가나아트가 만든 프린트베이커리 전속작가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서울옥션은 가나아트가 모체로, 1983년 이호재 현 서울옥션 회장이 개관했다. 1998년 설립한 서울옥션은 이호재 회장과 가족이 경영한다. 가나아트 덕분에 국내 미술시장이 대중화되고 급성장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미술시장에서는 '가나에서 전시하고 경매에서 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2022년 새해 벽두 한국화랑협회가 작심하고 양대 경매사에 "우리도 경매를 한다"고 선전포고 한 것은, 이같은 현상에 반발하는 배경이다. 협회는 그간 옥션사의 젊은 작가들의 직거래로 인한 작가 성장 저해와 지나친 개최에 미술시장의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분노를 터트렸다. 가격 유동성이 야기하는 투기 조장, 주요 거래 작가 이외의 작가들에 대한 평가절하 등을 꼬집으며 이러한 시장의 불균형은 향후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가나아트센터는 국내 최고 화랑으로 꼽힌다. 작가 입장에서 대형 화랑에서 전시는 '성공한 작가'라는 이미지가 구축된다. 하지만 좋은 작가, 성장하는 작가로의 발판이 '일회용'이라면 이는 전체 미술시장 구조에서도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한다. 이같은 현상은 20~30대 스타작가로 반짝이며 대형 화랑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40~50대 중견작가가 되어 '잊히는 작가'로 전락한 현재 미술시장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신선한 그림이 지루한 그림으로 되는 건 화랑의 역할도 크다. 컬렉터들의 입맛에만 길들여진 그림만 양산하는 건 글로벌 마켓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지양해야 될 일이다. 한편 김선우 작가는 동국대학교 서양화과(2015)를 졸업했다. 2014년부터 ‘새(鳥)상’이라는 말로 세상(世上)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15년 을지 아트 프로젝트 선정 작가로 미술계에 데뷔, 2019년 삼성 비스포크 랑데뷰 디자인 공모전 우수상, 2019년 광화문 국제 아트 페스티벌 EBS방송공사사장상을 수상했다. 2022/01/21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 백남준 말이 맞았다 1977년 백남준이 마흔다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발표한 글과 LP음반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다. 그의 말처럼 사후 16년째에도 '그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 백남준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 예술인'으로 불린다.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예술의 매체로 사용한 ‘비디오 아트’ 아버지로 세계 미술사에 등극되어 있다. 2006년 미국 타임지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수많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펼치기도 했다. 1932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유명했던 그는 2006년 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 자택에서 74살, 숙환으로 별세했다. 10여년간 뇌졸중을 앓아온 그는 투병중에도 전위적이고 실헌적인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아, 예술가들에 귀감이 됐다. 올해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전시계획을 통해 올해는 '다다익선'을 재가동하고 백남준 축제를 추진한다고 밝힌바 있다. 과천관 로비에 설치된 '다다익선' 복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백남준 아카이브', '백남준 효과'전시를 개최한다. 백남준이 한국 동시대 미술사에 남긴 발자취를 짚어보는 첫 전시로 추진 주목받고 있다. 이와함께 백남준아트센터도 11일 2022년 전시 계획을 발표하며 '대체 불가능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라는 선언으로 '백남준이 한다면'이라는 상상력으로 다채로운 전시와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백남준아트센터 김성은 관장은 "90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백남준을 끝없는 긍정의 모습으로 기억하고자 한다"며 "기술과 예술과 사람을 대하는 백남준의 다정한 태도를 환기하며, 백남준아트센터를 찾는 이들을 더욱 환대하고 찾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기획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백남준의 축제'는 연극, 실험음악,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비디오 월, 멀티 비디오 프로젝션, 레이저 설치 등과 같이 무한히 확장하는 새로운 차원의 신비한 공간으로 선보여 한계가 없었던 백남준의 예술적 도전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로 포문...백남준 기일인 29일 서비스 공개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전으로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로 포문을 연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백남준의 비디오 아카이브를 물리적으로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전시와 열람을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해 왔다. 2021년 스마트 미술관 사업을 통해 구축한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는 백남준아트센터의 비디오 아카이브를 웹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백남준의 기일인 오는 29일 0시에 서비스를 공개한다. 이어 3월과 7월에는 백남준의 끝없는 예술적 도전을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의 특별전을 개최하며, 백남준의 생일인 7월 20일에는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를 시작한다.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는 1977년 백남준이 발표한 LP음반의 제목으로, 여기에는 쇤베르크의 음악을 4배로 천천히 재생한 음원이 담겨있다. 원문인 “My Jubilee ist Unverhemmet”는 독일어와 영어가 섞여 있는 자유로운 백남준의 언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22년 백남준의 탄생 90주년을 맞이하여, 백남준이 사용한 ‘쥬빌리(Jubilee)’를 단순한 기쁨의 뜻을 넘어 ‘축제’로, ‘운베르헤메트(Unverhemmet)’는 ‘한계가 없다, 거칠 것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 백남준의 예술적 근원을 보여줄 예정이다.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1월29일 봉은사에서 매년 추모재 한편 백남준아트센터는 2008년 10월 경기 용인 기흥구에 개관했다. 백남준(1932~2006)은 생전에 그의 이름을 딴 이 아트센터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했다. “예술은 사유재산이 아니다”라고 그가 주장한 철학을 이어받은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구현하기 위해 백남준의 사상과 예술활동에 대한 창조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연구를 발전시키는 한편, 이를 실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2006년 1월29일 별세한 백남준의 유해는 봉은사 법왕루에 안치되어 있다. 고인의 사진과 하영진 조각가가 주조한 작품인 백남준의 데드마스크(사후 고인의 얼굴을 청동으로 본떠 만든 상)가 설치되어 있다. 봉은사는 백남준을 기리는 많은 이들과 함께 백남준의 예술 세계가 후대에 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추모재를 2007년부터 지내고 있다. 2022/01/11
박수근 '고목' 같은 문성식 '겨울나무' 마치 박수근의 '고목'같아 보이는 이 그림은 문성식의 신작 '겨울나무'다. 두터운 물감이 그대로 발려 벽화같은 그림은 화강암 같은 울퉁불퉁한 질감이 특징인 박수근의 작품이 고와 보일 정도로 거친 분위기다. 물감을 두텁게 칠해서 최대한의 질감과 입체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티치아노(Titian)와 틴토레토(Tintoretto)가 처음 사용했다. '임파스토' 기법이 도드라져 보이지만 문성식이 이 기술(?)을 내세운 건 아니다. '드로잉'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이번 신작에도 연필과 유화 간의 마찰에 주목했다. 신작 대부분 두껍게 바른 유화 위에 연필로 그 바탕을 긁어내는 그림을 그리는 ‘유화 드로잉’이다. 마티에르가 두껍게 발리는 표현법인 '임파스토' 기법을 닮은 이 방식을 통해 작가는 연필과 유화 사이의 저항을 이겨내고 캔버스 위에 마치 부조와 같은 형태로 ‘그리려고 하는 의지’, 즉 ‘삶’을 고착한다. 문성식의 신작 개인전이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다. 'Life 삶'을 주제로 21일부터 여는 이번 전시는 2011년, 2019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이다. “연필은 회화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로, 즉흥적이며 소박하다. 이는 과장 없고, 꾸밈이 없는 제 성격과 닮은 것 같다." 대학 시절부터 연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문성식은 이 재료를 단순한 도구로 쓰기보다는 그 특성을 고유한 회화언어 일부로 발전시켰다. '삶'이라는 방대한 주제 안에서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의 소소한 기록들을 제시한다. 일상의 장면들, 주변 동물과 식물 등의 모습을 표현한 약 100여 점의 유화 드로잉 신작을 중심으로, 2019년부터 진행해온 대형 장미 연작 '그냥 삶'의 신작, 지난 2021년 전남 수묵 비엔날레에 선보인 '그저 그런 풍경: 땅의 모습' 연작 중 10여 점도 공개한다. 그림은 작가의 습성과 닮아 있다. 연필의 매력은 의식의 명령을 손이라는 매개를 거쳐 왜곡 없이 솔직하게 보여준다. 전시는 2월28일까지. ◆작가 문성식은? 1980년 경북 김천 출생으로1998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수학했다. 2005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탈리아 몬차 지오바니 비엔날레 'Serrone'(2011), 독일 보훔미술관 '유사한 차이'(2010), 체코 프라하비엔날레 '회화의 확장'(2009), 국제갤러리 'On Painting'(2007) 등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리움 삼성미술관, 두산아트센터, 하이트컬렉션, 소마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22/01/10
아버지 증오했다 '거미 엄마'된 '루이스 부르주아' 영화에 '스파이더맨'이 있다면, 미술에는 '거미 엄마'가 있다. 스파이더맨이 스크린에서 세상을 구한다면, '거미 엄마'는 진짜 현실에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일명 '거미 엄마(Spider maman)'로 불리는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다. '루이스 부르주아'. 그 이름만으로도 장르가 된 '20세기 최고의 페니미즘 작가'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를 연민했던 어린 여자 아이였다. 상처를 딛고 '20세기 최고 조각가'가 된 그녀는 '치유의 미술' 상징이기도 하다. ◆'거미 엄마' 루이스 부르주아는 누구" 1911년 프랑스 출신으로 27세에 미국인 미슬사학자와 결혼하면서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60년 가까이 무명 시절을 보내다 70세가 넘어 찬란한 작가로 빛을 냈다. 1982년 70세에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열면서다. 이후 내공은 거침없이 발휘됐다. 80세인 1999년, 작품을 출품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부르주아의 작품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건 자신을 내놓은 '고백 예술(confession art)'덕분이다. 어린시절 트라우마와 화해하기 위해 분투했던 작업은 동시대 현대미술 최고봉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 불륜'을 목격했다. 자신의 가정교사와 한 침실에서 나오는 아버지는 당당했다. 외도를 어린 부르주아에게도 숨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10여년간 아버지의 불륜을 묵묵히 받아들이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를 연민했던 그녀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세상 혼자되어 아파했다. 그러다 미술로 돌파구를 찾았다. 1930년 19세에 소르본대학 입학해 대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하던 그녀는 에꼴 데 보자르에 다시 입학 미술공부를 했다. (당시 아버지는 "현대 예술가들은 게으른 낭비자"라며 그녀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부르주아의 대표작이자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거미 조각 '마망'은 이때 싹을 틔웠다. 어린시절 환경과 무관치 않다!. 어머니는 태피스트리(tapestry)로 작업장에서 열심히 실을 짓곤 했는데, 거미가 거미줄로 집을 짓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그리움은 어머니가 늘 잡고 있던 천과 바늘을 집어들게 했다. 솜씨좋던 어머니를 거미로 표현하던 그녀는 크고 작은 거미를 만들어내다 1990년대 마침내 거대한 '청동 거미' 조형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름은 ‘마망(Maman).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하는데 모성애를 상징한다. 여덟 개의 가늘고 긴 다리를 곧추세우고 서 있는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 세계 명소에 6점이 설치되어 있는데 국내에 2점이 있다. 2010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과 리움미술관에 설치되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 리움에서 용인 호암미술관으로 이동된 '마망'은 호수 주변에 설치되어 묘한 공포감속 숭고함과 압도적인 조형미를 뽐낸다. 높이 9m, 지름 10m의 거대한 거미 조각에 대해 생전 부르주아는 "자기 배에 품은 알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인한 모성애를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가늘고 약한 다리는 상처받기 쉬운 여성으로서의 불안한 내면을 표현했다"고 했다. 2010년 5월31일 미국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99세에 타계한 부르주아는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전 국제갤러리와 인연으로 2002년부터 한국에서 다섯차례 전시를 열었다.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거대한 바늘 조각 '콰란타니아'가 2018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95억 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초기 시리즈 중 하나로, 성경 속에서 예수가 40일간 금식할 때 사탄의 유혹을 받은 곳으로 알려진 콰란타니아산에서 작품명을 따 왔다. 작품가격 95억 원은 당시 국내 최고 낙찰가인 김환기 점화(86억 원)을 뛰어넘은 금액으로 국내 경매사에서 거래된 조각품 중 최고가 기록도 썼다.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거래된 작가의 작품 가격 중 5번째로 비싸게 팔린 작품으로, 현재까지 국내 경매사 최고 낙찰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부르주아의 작품중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은 1997년에 캐스팅된 ‘거미(Spider)’로 2015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약 2800만 달러에 거래됐다. 조각 회화 설치 회화 판화 수많은 작업을 넘나든 그녀의 작품은 그중에서도 조각이 가장 인기다. 크리스티등 세계적인 경매 거래가 기준 상위 10점 가운데 8점이 ‘거미’ 시리즈, 2점이 ‘콰란타니아’ 시리즈의 조각 작품이다. '전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0명의 가장 잘 팔리는 현대작가'로 여성작가로는 야요이 쿠사마와 함께 이름이 올라있다. ◆국제갤러리, 10년만에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유칼립투스의 향기' "항상 불안해했다. 똑똑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어린애같이 구는 사람"(부르주아 조수 제르 고르보이의 말)이었던 그녀가 하늘로 떠난지 11년, 국제갤러리가 2012년에 이후 10년만에 부르주아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전시타이틀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유칼립투스의 향기 The Smell of Eucalyptus'다. 부르주아의 후기 작품에서 특히 주요하게 조명되는 기억, 자연의 순환과 오감을 강조하는 문구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거주하며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던 젊은 시절의 부르주아는 당시 유칼립투스를 약용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로인해 유칼립투스는 작가에게 있어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징하게 되었고, 특히나 작가의 노년기에 두드러지게 표면화된 모성 중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기능했다. 국제갤러리 윤혜정 디렉터는 "작가는 생전 스튜디오를 정화 및 환기시키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태우곤 했다"며 "유칼립투스는 무엇보다도 작가의 삶 곳곳에서 실질적, 상징적으로 쓰인 매개체로 부르주아에게 미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면으로 #4 Turning Inwards Set #4' 연작으로 선보인다. 부르주아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 간 작업한 종이 작품들이다. 낙엽 및 식물을 연상시키는 상승 곡선, 씨앗 내지 꼬투리 형상의 기이한 성장 모습, 다수의 눈을 달고 있는 인물 형상, 힘차게 똬리 틀고 있는 신체 장기 등을 묘사한 드로잉들이 눈길을 끈다. 꽃을 주제로한 드로잉에 대해 생전 부르주아는 "꽃은 나에게 있어 보내지 못하는 편지와도 같다. 이는 아버지의 부정을 용서해 준다"고 말한 바 있다. 꽃을 통해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했던 그녀의 작품은 기억, 사랑, 두려움, 유기 등이 맞물린 그의 복잡하고도 영명 높은 작업 세계의 핵심이다. 이번 전시는 이제 '완전한 침묵 속으로 사라진' 그녀가 미술로 치유한 흔적들을 마주하게 한다. 기이한 형상이지만 평온해 보이는 작품은 '미술은 영혼의 치료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는 2022년 1월 30일까지. 2021/12/17
아이 웨이웨이 "표현의 자유, 모두가 반드시 옹호해야" '중국 반체제 예술가'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아이 웨이웨이의 한국 첫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지난 1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펼친 전시는 억압의 저항과 난민 문제등을 다루고 있는 작가의 면모를 총체적으로 살펴볼수 있다. 설치,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대표작부터 최신작까지 120여 점을 소개한다. 중국의 자존심 톈안먼 광장과 미국 백악관 등을 배경으로 가운뎃 손가락을 올려 권력을 조롱한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을 비롯해 12m 크기의 대나무 구조물 '옥의'(2015),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로힝야'(2021),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까지 아이 웨이웨이가 걸어온 여정처럼 전시됐다.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후 거침없는 표명으로 중국이 부조리를 세상에 알린 그는 중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체제 예술가로 낙인됐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고 2015년 중국을 떠나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각가, 설치미술가, 다큐멘터리 감독, 사진작가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그는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무기로 사회정의와 진실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예술은 압제에 맞설 수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라는 신념이다. '행동하는 예술가', '사회운동가 예술가'로 유명한 그는 국내 언론과 메일로 만나 근황과 함께 코로나 시대 예술가와 역할, 이번 한국 전시 작품, 작업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현재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고 영국과 독일에 작업하느랴 자주 간다면서 자신은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다. ◆최근 홍콩의 M+문화박물관이 대표작인 '원근법 연구' 작품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관내 전시에서도 제외한 일이 있었다. 중국정부의 문화예술검열 강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이고, 왜 중요한 가치라고 보는가. "보통 표현의 자유는 좁은 의미로 어떤 정치환경이나 정치체제 안에서 개인이 실제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라 여겨지지만 더 중요하게는 표현의 자유는 생명 본연의 속성이란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생명의 중요한 특성, 인간으로서의 특성은 더이상 없게 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어떤 정치체제에 대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인권의 기본적 가치인 것이다. 이 가치는 천부인권으로 어떤 권력이나 정치, 종교적 명분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권리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표현의 자유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즉 현실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생명으로서 개체가 당연히 자신만의 특징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거다. 표현의 자유 없이는 그 누구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이 자유는 사회적인 약속이어야 하며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니다. 다시 M+미술관 문제로 돌아가면,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홍콩 정부 산하의 문화기구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앞으로 어느 수준의 검열을 받고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보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홍콩에 대해서만 이러는 게 아니다. 중국은 1949년 신정부 수립 이래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만을 허용했고, 대부분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 만약 한국에서 '원근법 연구' 작업을 한다면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 "바로 대답하기는 좀 어렵다. 내 작품은 모두 즉흥적으로 제작된 것이며, 따로 계획한 것이 아니다. 내가 도착한 곳에서 셀프 촬영을 했던 것이며, 언젠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찍고 싶다." ◆코로나 펜데믹이 일상생활과 작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나?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을 무렵 나는 로마에서 새롭게 각색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만들고 있었다. 공연을 앞두고 이탈리아 정부가 이 공연을 갑자기 취소해 충격이 컸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사태가 막 폭발했고, 이후 유럽으로 확산되는 출발지였다. 그래서 2020년 3월로 예정되었던 공연을 취소했고, 내년 3월에 오페라 '투란도트'를 다시 공연할 예정이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로 제한된 생활을 했는데, 계속 스스로의 상태를 조정해 새로운 제약에 적응하려 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정부와 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을 제한하는지도 보았는데, 정부가 개인이 스스로의 생명을 관장하는 일에 제한을 가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개인의 기본권으로, 생로병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정부가 과도하게 권력을 사용했고, 중국이 가장 심했다. 그들은 군사적인 방식으로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사실 예술가로서 저는 이렇게 제약이 많은 환경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정치 난민으로서 아주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그래도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바퀴벌레', '로힝야', 그리고 우한 코로나 상황을 다룬 입니다. 네 번째 다큐멘터리인 '나무'도 이미 완성했다. 내 작업에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은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예술이나 예술가의 역할이 변했다고 생각하나? 예술이나 예술가에게 정해진 역할은 없다. 만약 역할이란 것이 있다면 인류의 환경이나 인류가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생기는 것이겠다. 그래서 예술의 역할은 반드시 변한다. 인류가 직면한 정신적∙사회적 대위기 상황에서 예술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송장이나 마찬가지이다.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예술은 이미 반은 죽은 상태이고, 예술에 관한 이론이나 미학, 철학적 사유는 사실 마비 상태에 있다. 세계화가 낳은 문제다. 이렇게 큰 인류의 고난과 불안에 대한 예술의 반응은 너무나 미약하다. 한국에 전시된 '검은 샹들리에'는 사람의 두개골과 인체의 골격을 가지고 만들었다. 이것은 죽음에 직면한 어둠 속에 있는 인류를 묘사한 것이다. ◆ 최근의 시진핑 체제 강화가 중국 예술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 영향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중국 예술계가 더 나아지지 않겠지만, 바이든이 중국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로 지지부진할 것이다. ◆중국이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다른 종류의 미디어 작품을 시도할 수도 있나? "예술은 문제와 모순으로부터 나오고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정치 환경이 엄혹한 상황에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면 작품이란 것이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어떤 채널이나 미디어를 통해 국제 이슈를 파악하나? 또 현재 어떤 작업을 하나? "저 스스로가 바로 국제 이슈다. 제 생명, 생명에 대한 이해, 제가 처한 상황이 세계적 문제의 일부분이다. 저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인터넷 공간에서 보내고, 거기서 이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본다. 일이라는 것은 생활의 일부다. 저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지만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제가 보기에 일하기와 작업은 다른 것 같다. 일하기란 무언가를 계속 찾아서 한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반드시 완성해야만 하는 것 같은 건 없다. ◆'Coronation'을 제작한 동기는 무엇인가? 상영 후 불이익이 있었나?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모두 기록할 가치가 있는 소재가 있었기 때문다. 우리는 모두 이런 기록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건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건 없다. 역사에 증언을 남기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도 있었다. 유럽에서 팬데믹이 심각해지던 시기에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지인 우한의 상황을 다룬 Coronation을 완성했고,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하려 했다. 처음에는 다들 반겼지만 결국 모두 거절했다. 이 사건은 현재 중국의 국가 위상이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환경과 중국 시장에 대한 그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중국은 유럽,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들의 행동에 모든 면에서 그 국가들의 행동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나 중국 미술계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사실 중국미술계와 중국은 하나이다. 중국이 직면한 도전은 갈수록 막강해지는 정치적, 경제적 힘과 보잘것없는 가치체계로 어떻게 서방 자본주의, 가치체계를 설득하고 정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도전은 점점 거세게 압박할 것이다. 중국 미술계는 태생적인 결함이 있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추구와 사실 추구라는 입장을 포기했다. 언어와 다른 수단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중국 미술이 생존하려면 이러한 태도를 전환해야할 것이다.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제 자신만을 놓고 보자면,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미 얘기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 생명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없다." 2021/12/13
아이 웨이웨이는 왜 '중국 반체제 예술가'가 되었나 “사실 우리가 현실의 일부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생산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현실이지만, 현실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이웨이웨이 블로그' 책 중에서)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후, 아이 웨이웨이(Ai Weiwei·64)는 더 이상 예술가로만 머물지 않았다. 시민조사단을 결성하며 행동에 나섰다. 피해자 가족, 관리,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죽은 아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집계해 블로그에 올렸다. 당국이 사망자 숫자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중국의 부조리를 세상에 알렸다.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은 무료로 배포했다. 그 해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참여했지만, 그는 중국 당국의 정치범 구금과 김시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국 정부에 미운털이 콱 박히는 순간이었다. 중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체제 예술가로 낙인됐다. 2011년 81일간 탈세 혐의로 독방에 구금됐고, 정치 탄압 논란이 일었다. 여권이 압류당해 4년만인 7월 되돌려 받았고 2015년 중국을 떠나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 중국의 부조리한 현상을 세계에 집중시킨 그의 예술적 영향력은 강력하다. 어쩔 수 없이 중국을 떠난 그는 유럽에 체류하면서 주로 난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중국을 향한 통쾌하고 직설적인 외침은 2014년 발간한 책 '아이웨이웨이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이웨이웨이가 온라인에 발표했던 텍스트를 골라 엮은 책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이웨이웨이의 블로그에 올라 왔던 글들로 여기에 소개된 1백여 편의 짧은 에세이들은 미술, 건축, 사진,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중국의 민감한 문제까지 거론하며 진짜 중국의 민낯을 보여준다.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무기로 사회정의와 진실폭로를 이어가는 그는 "예술은 압제에 맞설 수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라는 신념이다. 아트리뷰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1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선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 개막...120점 전시 조각가, 설치작가, 사진작가, 영화감독, 사회운동가...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미학적 성취와 함께 이뤄낸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문제적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1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막하는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은 아이 웨이웨이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억압의 저항과 난민 문제등을 다룬 설치,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대표작부터 최신작까지 120여 점을 소개한다. 중국의 자존심 톈안먼 광장과 미국 백악관 등을 배경으로 가운뎃 손가락을 올려 권력을 조롱한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을 비롯해 12m 크기의 대나무 구조물 '옥의'(2015),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로힝야'(2021),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까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120여 점은 작가가 걸어온 여정처럼 전시됐다. 전시명 ‘인간미래’는 아이 웨이웨이 예술세계의 화두인 ‘인간’과 그의 예술활동의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아이 웨이웨이는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책임감과 휴머니즘(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강조하며 미래세대가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작품을 통해 역설한다. ◆난민 인권문제 다룬 대표작 '빨래방', 영상 '살아 있는 자'까지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작가의 대표작 '빨래방'(2016)도 만나볼 수 있다. 난민들의 옷과 신발 등 물품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작가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했던 이도메니 난민캠프에서 수집한 것이다. 2016년 5월 말, 그리스 정부는 이도메니 캠프를 비우고 거주 중인 난민들을 이동시켰다. 아이 웨이웨이는 캠프에 남겨진 물품을 모아 베를린 스튜디오로 운반하여 세탁, 수선하고 다림질한 뒤 목록을 만들었다. 신생아를 위한 옷부터 어린이용 드레스, 알록달록한 물방울 무늬 바지 등 유아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의 옷들이 망라된 '빨래방'은 지금 여기, 부재한 사람들의 존재를 불편하게 환기시킨다. 영상 '살아 있는 자'는 멕시코에서 부패한 지역 경찰이 교육대학 학생들이 탄 버스를 지역 갱단에 적군 갱단이라고 허위정보를 전달하여 43명의 학생들을 납치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이다. 가족들은 실종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탄원하고 시위를 벌였지만 학생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개인전에 실종된 학생들의 초상화를 전시했고, 그때의 조사 과정과 인터뷰 등을 모아 발표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웃집 아이들이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된 지 4년이나 지났는데 정부가 아직 사건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게 무슨 정부인가. 그게 무슨 사회인가”라고 비판하며 "예술가인 것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이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혀 여전히 세상에 날카로운 그의 사고를 드러낸바 있다. 그의 작품이 여전히 중국에 파장을 미치고 세계 예술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우리가 사는 동시대 정치 사회 문화를 저격하는 메시지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전시에 선보이는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 설치 작품이 보여준다. 금빛의 화려함이 빛나지만 트위터의 상징인 ‘새’와 수갑, 감시카메라 등을 조합해 만든 이미지다. 그가 감시 카메라에 감시당하는 동안 외부와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던 트위터가 영감이 됐다. 대형 쇼핑몰,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현대 사회의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존재를 종종 망각한다. 안전을 이유로 설치된 수많은 감시 카메라는 안전을 보장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의 일상을 과도하게 침해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빛의 문양으로 빛나는 공간은 수많은 카메라로 둘러싸인 감옥과 같다. 전시 복도공간에서는 작가의 폭넓은 예술활동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이 마련된다. ‘표현의 자유’, ‘예술과 행동주의’, ‘정부, 권력, 그리고 도덕적 선택’, ‘디지털 세상’, ‘역사, 역사적 순간, 미래’, ‘개인적 사유’ 등 여섯 개 주제로 펼친다. 신간도서 '천년의 기쁨과 슬픔'(1000 Years of Joys and Sorrows, Crown, 2021)을 포함한 도서 30여 권 등이 소개되어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시는 작가가 제안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성찰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필람'을 당부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왜중국 반체제 예술가가 되었나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인 아이 칭과 가오 잉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화혁명기에 아버지가 반우파 운동으로 인해 ‘하방’(下放, 중국 문화혁명기에 도시 청년과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민과 살게끔 한 정치 운동) 되면서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복권된 후 1975년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 1979년 현대미술 그룹 ‘성성화회’에서 활동했다.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1993년 베이징으로 귀국 이후, 베이징 동쪽 지역 차오창디 예술촌 형성에 참여했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인 ‘베이징 국가 체육장’ (종종 ‘새의 둥지’로도 불린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거침없는 견해 표명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원치 않는 관심을 받았지만 중국 국경을 넘어서는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미 그의 작품은 유수한 세계적인 전시회들에서 점점 더 많이 전시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을 담은 작품은 예술가로서, 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 내의 구성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요건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수록 그 중요성은 더 커지고, 인권의 필요성은 더 절실해진다. 미술, 건축, 사진, 사회, 정치 등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아이 웨이웨이의 예술과 삶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생각하고 꿈꾸고 현실로 만든다. 오미크론 확산 여파로 내한하지 못한 작가는 2022년 초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시는 2022년 4월 17일까지 열린다. 2021/12/11
'꽃 그리는 94세 화가' 알렉스 카츠의 위로 이번엔 미국의 세계적인 작가 '알렉스 카츠'(94)다. 지난 10월 서울점 개관 첫 전시로 독일 현대회화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개인전을 열었던 타데우스 로팍이 이번엔 미국 출신 세계적인 작가 알렉스 카츠의 그림을 선보인다. 카츠는 '세계 10대 화가'로 등극한 살아있는 현대미술 거장이다. 유럽 명문 화랑의 자존심을 보이는 전시로, 국내 미술시장에 풍성함을 더해 눈길을 끈다. 1983년 잘츠부르크에 첫 갤러리를 연 타데우스 로팍은 40여년간 현대미술을 선보이며 세계 정상급 갤러리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브렉시트(Brexit)에도 런던에 지점 갤러리를 열어 화제가 된 후 코로나19 시대에도 서울 한남동에 아시아 최초 지점을 개관 주목받고 있다. 타데우스 로팍 Thaddaeus Ropac 대표는 "그동안 설치미술작가 이불을 비롯한 한국 작가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해와 서울이 위대한 예술가와 세련된 컬렉터가 있는 활기찬 예술 도시"라고 확신하며 독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에 한국 갤러리 개막 전시를 요청해 개관전을 화려하게 선보였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개관 두 번째 전시 미국 작가 알렉스 카츠 '꽃' 개인전 9일부터 서울점 두번째 전시로 펼치는 알렉스 카츠의 개인전은 '꽃'을 주제로 한 회화를 조명한다. 지난 20년간 작가가 작업해 온 '꽃 시리즈' 중 이전에 소개된 적 없던 작품들과 더불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까지 아우른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점은 "한 장르의 작품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시아에서의 첫 번째 전시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한국 전시에 선보이는 '꽃 시리즈'는 팬데믹이 시작된 작년에 그려진 것이다. 9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붓을 놓지 않고 다시 이 주제로 회귀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작가는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팬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카츠는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지난 2018년 롯데뮤지엄과 대구미술관(2019)에서 대규모 전시를 개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그의 '꽃 시리즈'는 미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컬렉터라면 판화라도 한 점은 있어야할 그림으로 소장품에 꼽힌다. 사람 얼굴이나 꽃을 크게, 또 간결하게 담아내지만 경쾌함과 함께 현대적이면서 묘하게 세련미를 풍기는 그림은, 마치 '잇템'처럼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한국서 인기 '꽃 시리즈', 1950년대부터 시작 운동감 연구 "비가 오기에 꽃을 잘라 화병에 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이와 동일한 과정이긴 했지만, 그때는 꽃병보다 꽃에 더 관심이 갔다." 카츠는 1950년대 미국 메인(Maine) 주에 위치한 여름 별장에서 화병에 꽂힌 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꽃 회화는 1960년대에 걸쳐 구현했던 단체 초상화와 관련이 있다. "꽃 또한 인물과 마찬가지로 형상들이 겹쳐져 있는데, 당시 그가 그렸던 칵테일 파티 장면에서는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운동감에 대해 연구할 수 있었다." 이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초기작 '금잔화(Marigolds)'(200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풀밭에 흩어져 있는–약간씩 다르게 표현된 각각의 꽃들은 자연의 움직임에 대한 순간적인 인상을 전달한다. 작품들은 작가의 고유한 붓놀림과 화면 구성력, 단순화된 색면이 돋보인다. 신작들은 꽃의 음영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켜 조각적인 존재감을 부여했다. ‘형상과 부피 자체의 묘사’에 치중하는 그는 먼저 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음 획을 더하는 ‘웻 온 웻(wet-on-wet)’ 기법을 사용하여 신속하게 작업한다. 웻온웻 기법은 작가의 전매특허다. 카츠는 "꽃은 그리기 가장 어려운 형태를 지녔다"고 했다. "꽃의 물질성과 표면, 색상, 그리고 공간적 측면을 모두 잡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꽃의 색감은 유화 물감으로 온전히 묘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물감을 섞는 과정에서 선명했던 안료가 기름에 의해 탁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색상의 명도를 높이기 위해 보색을 사용하여 신중하게 색의 균형을 맞춘다. 그래서 그가 기대하는 건? "회화를 마주한 사람들이 마치 실제 꽃을 보는 듯한 그 찬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이다. 이번 전시에는 카츠의 신작 초상화 '밀짚모자 3'도 선보인다. 인물이 녹색 배경에 배치되어 있는데, 윙크 또는 옅은 미소를 띤 인물이 미묘하게 연결되며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 ◆'움직이는 것 같은 거대한 꽃·초상화 대가' 알렉스 카츠는 누구? 알렉스 카츠(94)는 '현대초상회화 거장'으로 불린다. 1927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알렉스 카츠는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1960년대 이래 인물초상을 그리며 가장 '뉴욕적인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장면같거나, 광고판 같은 그림이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을 내세운 초상화 같은 작품으로 일명 '카츠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에서는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1928~1987)의 그림자가 있다. 앤디워홀이 '미술계 끝판왕'으로 활약했던 1960년대 알렉스 카츠도 뉴욕에 살고 있었다. 미국 산업사회 부흥기와 함께 뉴욕은 TV, 영화, 광고 등 새로운 미디어의 도시이자 바넷 뉴먼, 프란츠 클라인으로 대표되는 색면 추상, 잭슨 폴록의 올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 제스퍼 존스, 앤디워홀의 팝아트 등 새로운 시각 예술이 공존하는 예술의 도시였다. '부흥의 도시'에서 화가로 살아내야 했던 그는 특정 미술 사조에 편승하지 않았다. 다만 거장들의 기법을 모방해 섞었다. 색면과 인물의 모습을 결합한 카츠만의 독창적인 '초상화 스타일'을 창조한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과 앤디워홀 팝아트, 또 '액션 페인팅' 잭슨폴록의 기법이 들락날락한다. 특히 선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면서 선과 색, 브랜드의 이미지가 결합된 화면을 보여준 '코카콜라 시리즈'도 유명하다.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대충 그린 느낌이 강하다. 배경도 명암이나 그림자도 없이 단색으로만 칠해져있다. 자세히 봐도 더욱 결코 잘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균형이 맞지 않고 왜곡된 느낌을 연출한다. "순간 포착을 하기때문이다. 카츠가 순간에 봤기 때문에 너무 공들여 그리면 그 느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카츠가 그린 인물은 초상화속에 인물이 가진 상징이 아니라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속적인 현재 시제속에 머물게하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감수성을 입힌 작업이다."(미술사학자 이주은) 살아남은 자가 강자다.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보다 오래 살아남은 그는 '세계 10대 화가'로 등극해 동시대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뉴요커'로' 뉴욕 사람들'을 브랜드화해 '뉴욕적인 화가'로 불리는 카츠는 결국 '삶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1954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회화, 드로잉, 조각, 판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빌보드 작업(1977)과 할렘역에 알루미늄 벽화(1984)를 제작하는 등 여러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으며, 최근 뉴욕 지하철역에 19점의 대형 작품을 설치하여 주목 받았다. 2022년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다. 2021/12/09
리만머핀서울 손엠마 대표 "한국, 미술품 거래 비과세 매력" "한국미술시장을 수년간 지켜본 결과 시장 안정성의 장점, 성장 가능성의 강점을 발견했다. 좋은 작가와 좋은 미술관이 많은 것도 긍정적이다." 리만머핀(Lehmann Maupin)의 테스트는 끝났다. 4년간 20평 남짓 서울 지점을 운영한 리만머핀 서울이 이태원으로 확장 이전한다. 리만머핀은 미국 뉴욕에서 1996년 설립한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다. 이불은 물론 서도호와 서세옥 작품을 해외시장에 알리는데 역할을 했다. 2013년 홍콩에 이어 2017년 서울 갤러리를 개관, 아시아 미술시장을 점령해오고 있다. 내년 프리즈 아트페어 공동개최를 앞두고 해외 갤러리들의 서울 진출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리만머핀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서울 안국동에서 한남동으로 넓히는 리만머핀 서울은 제일기획 본사와 구찌 한남점 매장, 리움미술관 등에 가까운 위치다. 그동안 세계 굴지의 화랑 지점이 협소하고 옹색했다는 이미지를 탈피할 전망이다. 확장세는 건물에서도 뽐낸다. 지난 2015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에스오에이가 디자인을 담당했다. 두 개의 층의 약 70평 규모로 특히 조각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야외 테라스까지 갖췄다. 리만머핀 서울은 손엠마 수석 디렉터가 운영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리만머핀을 성공적으로 이끈 보람은 확장 이전으로 돌아왔다. 엠마 디렉터는 20년간 큐레이터이자 갤러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으로 맥아서 비니언, 맨디 엘-사예, 길버트 앤 조지, 샹탈 조페, 라이자 루, 데이비드 살레, 세실리아 비쿠냐, 나리 워드 등 저명한 현대미술가들의 한국 첫 개인전을 성사시키며 리만머핀 갤러리의 정체성을 부각시켰다. 엠마 디렉터가 전한 리만머핀 비전과 한국미술시장에 대해 들어봤다. ◆2017년 서울 개관 당시와 현재 한국미술시장, 얼마나 분위기가 다른가. "2017년에 비해 현재 한국 미술시장은 그 규모가 훨씬 커졌고 컬렉터 베이스도 젊은층부터 중장년층까지 확대되었다. 이는 미술시장이 이전보다 성장한 것은 물론 활발해졌음을 방증하기에, 지금 분위기는 매우 긍정적이다. 내년에는 프리즈 서울까지 열리게 되면서, 이러한 성장세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세계적인 화랑의 서울 진출, 리만머핀이 한국 시장에서 기대한 건 무엇이었나. "리만머핀의 두 대표(라쉘 리만(Rachel Lehmann)과 데이비드 머핀(David Maupin))들은 한국과의 인연이 굉장히 오래된 편이다. 서도호 작가와 1990년대 말 부터 인연을 맺으며, 한국과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이 후 이불 작가와 일을 하면서 그 연결고리는 더 탄탄해져 서세옥, 김기린 등 여러 한국작가들의 전시로 이어져 왔다. 한국 작가분들과 일찌감치 시작된 두 대표들의 관계는 한국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으로 발전되었다고 본다. 라쉘 리만 대표는 자신이 이전 생에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라는 농담을 자주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다. 따라서 한국에 갤러리를 낸다는 것은 두 대표들의 오랜 염원이자 목표 중 하나였다고 본다. 이런 한국 시장에 갤러리가 지난 20여년간 함께 성장해온 다국적 작가들의 작업들을 소개하고 선보이는 것과 더불어 한국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작가들, 그리고 우리의 문화에 대해 더 깊이 배워나가는 것에 항상 큰 기대를 해왔다." ◆서울 진출, 어떤 성과가 있었나? "성과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봐야할 것 같다. 인지도 면에서 리만머핀은 이미 국내 주요 작가, 서도호와 이불을 대표하는 국제 화랑 중 하나로 홍콩 아트바젤 후 한국 고객들에게 어느 정도는 알려진 화랑 중 하나였다. 이로 인해 한국에 진출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또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본다. 한국 진출 후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리만머핀 작가들이 국내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의 전시에 소개되는 일이 더 잦아진 점을 꼽고 싶다. 주요하게 카데르 아티아(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2018), 맨디 엘사예(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2020), 오스제미오스(현대카드 스토리지, 《오스제미오스: 유 아 마이 게스트》, 2020), 헤르난 바스(스페이스K 서울, 《헤르난 바스: 모험, 나의 선택》, 2021)를 비롯하여 이불(서울시립미술관, 《이불 - 시작》, 2021)을 들 수 있다. ◆리만머핀이 아시아, 홍콩에 이어 서울을 택한 가장 주요 요인은 무엇이었나? "서울에는 홍콩보다 더 탄탄한 미술계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고 본다. 홍콩은 아트바젤 홍콩이 시작된 후 급성장한 아트 도시인 반면, 서울 나아가 한국은 이전부터 국공립 및 사립미술관들, 비영리 공간 그리고 높은 수준의 국제비엔날레(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미술품 거래의 대부분이 비과세인 점도 판매에 있어 홍콩에 못지않은 매리트가 있는 곳이 한국이다."(현재 한국에서 판매하는 미술품은 가격이 6000만원 이하면 비과세다. 또 6000만원 이상이라도 국내 생존 작가의 경우 거래 가격과 상관없이 세금이 없다. 작고작가의 작품 중 6000만원 이상에만 기타 소득세가 적용된다.) ◆해외 유명 갤러리들 한국 진출속 리만머핀의 전략, 차별화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 작가 발굴에 대한 관심은 현재진행형이다. 지속적으로 작가 자료를 수집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작가 스튜디오 방문도 진행하면서 열심히 보고 연구하고 있다." ◆작품 구매층은? MZ세대 컬렉터 진짜 많은가? "구매층은 다양하다. 요즘 들어 MZ세대 컬렉터들이 이전에 비해 늘어난 것을 확실히 경험하고 있다. 키아프(Kiaf)에서 뿐만 아니라 갤러리에 문의하시는 분들 또한 월등히 높은 비율로 젊은 층이 늘어났다." ◆리만머핀 서울서 가장 흥행한 전시는? "샹탈 조페(2020-2021),세실리아 비쿠냐(2021), 그리고 맨디 엘사예(2021), 세 여성 작가들의 개인전을 연달아 개최한 것에 큰 의미를 둔다. 특히 세실리아 비쿠냐는 전시와 같은 시기에 광주비엔날레에서, 맨디 엘사예는 작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작업 세계가 폭 넓게 다뤄진 바 있기에 리만머핀 서울에서의 전시에 더욱 많은 관객들이 호응해준 것 같다." ◆아시아서 한국미술시장 매력은? "한국미술시장의 인프라 수준은 굉장히 수준이 높다. 이미 3대 국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으며, 유수의 국, 공립 미술관 및 사립미술관들과 더불어 실력 있는 갤러리 그리고 작가들이 굉장히 많다. 이와 더불어 수준 높은 (개인 및 기관) 컬렉터들이 많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4년간 운영 디렉터로 인정받았다. 해외 지점 갤러리스트의 비법이 있나. "서로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된 본사와의 긴밀한 소통. 내가 20여년간 갤러리스트로 활동하며 쌓아온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한 견해와 개인 컬렉터 및 기관과 다져온 탄탄한 네트워크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기에 이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는 방향을 함께 모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확장 이전 재개관 의미는. 앞으로 전시계획. 경쟁 상대는? "확장 이전에 대한 논의는 2019년 경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시장에 대한 믿음과 한국이 아시아의 허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래리 피트먼(Lari Pittman)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최근 리만머핀의 아시아 공식 전속 작가로 이름을 올린 톰 프리드먼(Tom Friedman)의 전시 또한 예정되어 있다. 두 작가 모두 이미 20여년 이상 다수의 개인전과 국제전을 통해 작업을 널리 알려왔고, 또 현대미술사에 분명한 족적을 남겨온 작가들이다. 이처럼 국제적인 작가들의 국내 첫 개인전을 준비한다는 것은 특정 경쟁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다양성을 폭넓게 공유하고자 하는 바램이 원동력이 된다." ◆리만머핀은 진짜 어떤 갤러리인가, 한국인 대표가 느끼는 강점과 단점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갤러리의 방향성은 한국의 서도호, 이불, 서세옥은 물론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다국적 작가들을 새로운 지역에 소개하는 것은 주요하게 여긴다. 나리 워드(Nari Ward)와 안젤 오테로(Angel Otero)는 각각 자메이카와 푸에르토리코 태생으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알제리와 프랑스에서 자라 베를린과 파리에 거점을 둔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활동 중인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 쿠바계 미국인인 테레시타 페르난데즈(Teresita Fernández) 등 리만머핀의 소속 작가들은 지리적으로나 예술사적으로 특정 범주에 묶이지 않고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간다. 특히 리만머핀 서울에서 진행된 나리 워드, 안젤 오테로, 니콜라스 슬로보, 맥아서 비니언, 라이자 루 등의 전시는 작가들의 첫 서울 전시로 기록된다. 이처럼 정체성의 개념에 도전하며,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전속 작가들의 가능성과 힘을 지지하는 것이 리만머핀의 강점이다." 2021/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