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RM이 좋아하는 '윤형근의 기록'…PKM 갤러리 자부심 "인간적인 척도가 곧 예술의 척도다." 故 윤형근 화백(1928~2007)은 생전 '선비 같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청색(Ultramarine)’과 흙의 빛깔인 ‘다색(Umber)’의 안료를 혼합하여 깊은 농도로 화폭에 풀어내 작업했다. 표백 처리를 하지 않은 마포나 면천 위에 스미게 한 물감의 자연스러운 번짐 효과가 윤형근 작업의 특징으로,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이 극치다. 일체의 작위와 기교가 배제된 그의 작업은 서화를 고매한 인격의 자연스러운 발현으로 여겼던 옛 선비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윤형근은 자신의 그림은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의 쓰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생전 '침묵의 화가'로 유명했지만, 사후에 작품은 떠들썩해졌다. 미술컬렉터들에 없어서는 안 될 '블루칩 작품'으로 등극했다. 묵직하고 둔탁한 그림이지만 MZ세대에게도 통한다. 방탄소년단 RM이 좋아하는 작품으로도 더 알려졌다. RM은 2018년 윤형근 베니스 전시때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관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가 사후에도 꾸준하게 작가와 작품이 부각되는 건 이유가 있다. 윤형근 작품을 관리하는 갤러리의 역할이 크다. 故 윤형근 화백이 부활한 건 PKM 갤러리 박경미 대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업화랑으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일이 주된 일이지만 화랑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숨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미래 자산'으로 키운다. 작가들도 어느 화랑과 손잡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물론 콧대높은 화랑은 아무 작가와 손을 잡지 않는다. 화랑도 생존 퀘스트 같은 머니게임판이다.다만 장사인 듯 장사같지 않은 문화 사회적 기업이라는 차이가 있다) 윤형근도 사후 관리가 안된 채 작품이 경매 시장에서 거래되기만 했다면, 국내외에서 '단색화 거장'이라는 위상을 굳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누렇고 까만 심심하기까지 한 그림은 국내 손꼽히는 기획 화랑인 PKM 갤러리가 손 대면서 고품격 마케팅 효과가 발휘됐다. '김환기 사위'에서 '단색화 거장'으로 업그레이드 되며 국내외에서 유명세를 올린 배경이다. 국내 미술시장에 '단색화 붐'이 일면서 함께 떠오른 윤형근은 경매시장에서 낙찰가가 고공행진했다. '잘 팔리는 작가'에서 박서보 하종현 이우환과 함께 '단색화 거장'으로 불리며 국내외 미술계를 평정했다. 2018년 여느 단색화 거장보다 먼저 사후 11년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회고전을 열었다. 이어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윤형근 열풍이 일었다. 베니스 시립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연 순회전은 해외 언론의 찬사가 이어지며 세계 미술계에서 화제가 됐다.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데 괄목할 만한 성과의 시작이었다. 작품 판매보다 작가 위상에 초점을 맞춘 PKM 갤러리의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으로, 작가와 윈윈(win-win)하며 진정한 화랑의 역할을 보여준 결실이기도 했다. 故 윤형근 화백이 코로나 시대에도 부활해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윤형근 개인전을 열고 윤형근 작품을 노래한 김오키의 재즈 음반을 한정판으로 발매한 PKM 갤러리는 올해는 단행본을 출간해 윤형근의 면모와 위상을 강화했다. '윤형근의 기록' 출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22일 개막한 전시는 단행본과 연관된 미공개 드로잉 수십여 점과 초기작을 포함한 주요 회화, 편지·수첩·사진 등 엄선된 아카이브 자료들이 일반에 최초로 공개됐다. (개막일 방탄소년단 RM이 전시장을 방문, 윤형근을 좋아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그는 공식 트위터에 그림옆에 선 사진을 공개하며 예술을 사랑하는 '인간적인 척도'를 인증했다.) 단행본 '윤형근의 기록'은 생전에 화첩, 메모첩, 서신 등에 남긴 소박한 기록들을 엮었다. 윤 화백의 평소 생각과 생활 속의 감정들이 솔직담백하게 드러난다. 1977 년에 선포된 ‘천지문千字文: BLUE 는 하늘이요, UMBER 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天地)라 했고 구도는 문(門)이다'라는 개념에서부터 작업 중간 중간에 남긴 고뇌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말이 없던 화가의 속내도 엿볼수 있다. 동료 예술가들과의 외국 여행담, 아버지라고 불렀던 장인 김환기 화백과의 추억, 아내와 아들에게 쓴 정다운 편지까지, 잔존하는 그의 기록들이 단행본에 수록됐다. 책에는 아들 윤성열과 윤 화백의 오랜 벗이었던 최종태 조각가,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의 에세이도 함께 실려 윤형근 고유의 서사와 작업 세계관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수 있다.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는 "지난 2년 여간 윤형근의 서교동 작업실에서 수집하고 판독해 온 글 300 여 점을 중심으로 심혈을 기울여 단행본을 제작했다"며 "'윤형근의 기록'이 더욱 울림 있게 대중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치 '윤형근 갤러리'처럼 매년 펼치는 '윤형근 알리기'는 PKM 갤러리의 '예술의 척도'로 보여진다. 한편, 단행본 '윤형근의 기록' 은 PKM 갤러리에서 새롭게 출범한 PKM BOOKS에서 발간하는 첫 번째 책이다. 출간에 맞춰 '아트 패키지' 198개의 한정판 에디션도 선보인다. 아트 패키지는 '윤형근의 기록' 1권과 윤 화백이 생전에 남긴 메모첩 중 3점을 재현한 실물 복각판, 회화 작업 이미지로 제작된 최고급 아트 프린트 1 종으로 구성됐다. 이 견본은 특별전에도 전시됐다. 박경미 대표는 "''윤형근의 기록'은 디자인부터 구성까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최고의 책과 아트패키지"라며 "아트컬렉션으로서의 소장 가치를 높였다"고 자신했다. 전시는 11월14일까지. 2021/10/23
"무덤 들어가 후회 안하려 지금도 최선"...박서보 화백 '금관 문화훈장' "나는 그림 그리기가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색칠과 선 긋기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깊은 맛은 서양인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에요. 누구도 따라못할 밀도감을 담으려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 '단색화 거장' 박서보(91)화백이 정부가 수여하는 금관 문화훈장 수상자로 선정됐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우고 국민 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금관, 은관, 보관, 옥관, 화관 총 5등급으로 분류된다. 박서보 화백이 받는 ‘금관 문화훈장’은 1등급의 최고 영예로, 공적기간 30년 이상의 해당분야 개척자에게 수여된다. 21일 문체부는 “박서보 화백은 세계에서 한국미술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단색화’의 선구자로서 한국미술의 추상화를 세계에 알렸으며, 홍익대학교 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행정가이자 교육가로 한국미술 발전에 공헌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앞서 박 화백은 1984년 국민훈장 석류장, 1994년 옥관 문화훈장, 2011년 은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의 역대 금관 문화훈장 수여자로는 故 정지용 시인(2018년), 故 황병기 가야금 명인(2018년), 연극인 임영웅(2016년) 등이 있다. "지구에 살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아흔이 넘은 고령의 화백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아직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이중섭·박수근·김환기 등 '죽은 화가'와 달리 '박서보'는 살아 생전 화가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단색화 거장'으로 불리며 지난 10여 년 전 팔순에 최고의 화가로 등극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화가는 환갑 이후부터가 절정이라는 말을 박서보 화백이 증명했다. 내년에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전시계획도 잡혔다. 캔버스 크기는 200호(259× 195cm) 대작들에 신작을 선보인다. 2019년부터 시작한 작품으로 올해 말 끝낸다는 의지다. 일본 유학파 등 이전 세대와 달리 '토종 미술인'인 그의 그림 '묘법'은 마법이 됐다 '장르가 박서보'라 할 정도로 독보적인 작품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끝까지 살아남아 단색화를 일궈내고 세계화시켰다"는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닌 이유다. 박서보 화백은 1950년대 문화적 불모지였던 한국미술에 추상미술을 소개했다. 1957년 한국 엥포르멜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현대미술가협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한 뒤, 1961년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에 참가하여 추상표현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 ‘원형질’ 시리즈를 전개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유전질’, ‘허상’ 연작을 발표하며 보다 발전된 추상표현주의를 선보인 데 이어 1970년대 이후 ‘묘법’을 통해 새로운 전환을 시도했다. 일명 '손의 여행'으로 일컫는 그의 대표 작품 '묘법(描法·Ecriture)은 박 화백의 회화 인생의 정점을 이룬다는 평과 함께 지금까지도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후기묘법’에서는 종이 대신 한지를 사용한 화면 안에 반복적인 선 긋는 행위를 통해 고도의 절제된 세계를 표현한다. '묘법'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로 부상, 세계 미술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올해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는 간결함과 단아함이 돋보이는 박서보의 2012년 후기묘법 작품의 영구 소장을 확정하며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단색화의 열풍을 입증했다. 지난 6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 미술계의 거장, 자신의 유산을 세상에 남기려 하다(A Towering Figure in South Korean Art Plans His legacy)’라는 기사를 통해 박서보의 인생과 예술철학,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아울러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와이너리이자 수준 높은 현대미술품을 선보이는 샤토 라 코스테(Château La Coste)의 리처드 로저스 갤러리(Richard Rogers Gallery)에서는 박서보의 개인전이 지난 8월 23일부터 열리고 있다. 국제갤러리는 전속화가인 박서보 화백의 작품 세계를 국내외에 집중적으로 알리고 있다. 국제갤러리는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이후, 박서보 예술 세계의 ‘현재’를 다시 조망하는 전시 'Park Seo-Bo'(10월 31일까지)를 진행 중이다. ‘후기 묘법’과 ‘색채 묘법’으로 알려진 2000년대 이후 근작 16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선명한 색감과 주변 도시 경관의 보다 단조로운 색감이 혼재된 치유의 공간을 선사하며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국제갤러리 K1 공간에서는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을, 그리고 K1의 안쪽 전시장에서는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박서보가 자연에서 화면으로 유인한 색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박서보 화백은 누구? 박서보(1931·본명 박재홍)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미술의 전위적 흐름을 이끌어왔다. 1962년 처음 강단에 선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62-1997) 및 학장(1986-1990)을 역임, 2000년에는 명예교수로 임명됐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 및 고문(1980)으로 활동했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대형 회고전을 비롯, 같은 해 독일 랑엔 재단(Langen Foundation), 2006년 프랑스 메트로폴 생떼띠엔느 근대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제갤러리와 손잡고 전시를 열고 있다. 국제갤러리와 박서보는 국제갤러리(2014),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2016), 상하이 파워롱미술관(2018) 등에서 열린 그룹전들을 통해 단색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여정을 함께 해왔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도쿄도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아부다비, 홍콩 M+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1/10/21
키아프, 650억치 매출…MZ세대 구매 경쟁·사재기 현상 우려 "보러 온 게 아니라 사러 왔더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에 참가한 한 화랑 주인은 새삼 달라진 미술 애호가들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이전엔 그냥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 대부분 이었다면, 올해는 바로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덕분에 '빨간 딱지'를 빨리 붙이고 작품들을 몇번 교체하기도 했죠." 실제로 지난 13~17일 열린 '키아프 서울 2021'이 역대 최고 매출·최다 방문객 기록을 갈아치웠다. 18일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키아프' 행사 5일간 약 650억원어치를 판매했다. 2019년 매출 310억원의 두 배를 뛰어 넘은 기록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키아프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어 '보복 소비'수요가 폭발했다는 분석도 있다. 방문객도 2019년보다 7% 이상 증가한 약 8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협회는 "토요일 오후 3시경에는 홀 내부 순간 허용 인원인 3063명에 도달하여 모든 입구를 닫고 내부 인원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마지막날인 일요일도 오후 1시경부터 제한 수량을 넘어 입구를 닫았으며 약 2시간가량 순차적 입장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연예인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방탄소년단(BTS) RM과 뷔를 비롯해 전지현, 이병헌·이민정 부부, 소지섭, 노홍철, 이승기, 황신혜, 소유진, 성유리, 한지혜, 청하 등이 현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올해 행사는 세계 10개국이 참여, 170개 갤러리 부스로 3000여점을 전시 판매했다. ◆VVIP(13일)·VIP(14일) 구분 입장...첫날 매출 50% 돌파 매출은 첫날부터 흥행했다. 부스는 작품 판매를 알리는 '빨간 딱지' 전시장이 됐다. 갤러리들은 판매된 작품을 새로운 작품으로 교체하기 바빴다. 화랑들은 "특히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 컬렉터들의 '과감한 소비'에 어리둥절했다"며 "기업 큰손과 부자 사모님들에서 이젠 미술시장의 세대교체가 됐음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화익갤러리의 차영석 작가 작품은 매일 새로운 작품을 보충해야 했고 가나아트도 김구림 작가 등 대부분의 작품이 판매됐다. 국제 갤러리도 박서보 하종현의 수천만원대 작품이 바로 팔렸고, 첫날 걸려있던 칸디다회퍼(Candida Hofer) 작품이 다른 작품으로 교체됐다. 학고재도 마찬가지. 부스 외벽에 건 김현식을 작품은 걸자마자 바로 팔려 다른 작품으로 내걸기 바빴다. 실제로 화랑협회에 따르면 키아프가 열리는 VVIP 오픈일 첫날에 매출의 50%를 돌파했다. 키아프 운영위원회는 "갤러리에 제공한 VVIP 카드 2000여장 중 70~80%에 달하는 손님들이 첫날 입장했고 스폰서와 파트너사의 손님들도 방문, 먼저 작품들을 '쓸어갔다'"면서 "새로운 컬렉터층으로 떠오르는 MZ세대 컬렉터들의 구매 경쟁이 치열했다"고 밝혔다. 한국화랑협회 황달성 회장은 "전 세계의 아트마켓이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한국은 오히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신진 컬렉터들이 미술작품 투자에 많은 관심을 볼 수 있었다"며 "다양한 층의 컬렉터와 MZ세대 컬렉터의 구매력, 메이저 해외갤러리 대표들의 방문을 통해 한층 더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키아프는 올해 처음으로 시도한 '큰 손 따로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개막 이틀전인 13일 먼저 맞이한 'VVIP'는 먼저 작품을 차지했다. VVIP카드(30만원)는 올해 처음으로 한정 판매했다. 협회 관계자는 "이전에는 VIP 카드를 수령한 손님들이 오픈일이나 주말에 혼자 느긋하게 왔다면 올해는 달랐다"고 했다. "구하기 어려운 키아프 VVIP 카드를 받은 손님들은 대부분 동반인과 함께 빠짐없이 방문했고 이로 인해 컬렉션을 기다려오던 주요 손님들이 대부분 첫날에 입장했다"고 밝혔다. ◆ 프리즈 아트페어 전초전...세계 유명화랑 대거 참가 한몫 올해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키아프 서울 2021'은 코로나19로 2020년 오프라인 행사가 취소되어 생긴 공백을 2년만에 회복한 셈이 됐다. 특히 올해는 국내 지점이 있는 해외 갤러리뿐만 아니라 지점이 없는 해외 디렉터들도 참가, 국제아트페어인 '키아프'의 위상 강화를 재확인했다.쾨닉·에스더시퍼·페레스프로젝트·VSF 등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들어왔다. 무라카미 타카시(Murakami Takashi)의 솔로쇼로 키아프에 참가한 페로탕(Perrotin)의 엠마뉴엘 페로탕(Emmanuel Perrotin)이 VVIP날부터 부스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며 대박의 기운을 누렸다.40억원, 25억원으로 추산되는 무라카미의 대형 작업들이 줄줄이 거래됐고 예약되어 있던 작품까지 마지막날 완판했다. 일본에서 참가한 갤러리 에델(Gallery Edel)은 설치한 작품과 창고에 보관중인 작품까지 모두 완판했다. 작은 부스로 준비한 VSF는 전시한 작품을 모두 판매했고 갤러리 스탠(Gallery Stan)을 비롯한 참가 갤러리 여러곳이 솔드아웃으로 부스에 설치한 작품을 모두 판매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미술시장 세대교체 바람...6070에서 3040 신흥 자산가로 이동 코로나19 시대에 뜨거워진 미술시장 흥행세는 수요층의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기존 6070 안정적 자산가 중심에서 '3040' 신흥 자산가로 급속하게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또한 딱 규정할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김영석 이사장은 "국내 미술시장의 폭발적인 흥행은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급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시장 급부상, 기성세대 대기업들의 경영진 세대교체, 국제 사회에서의 한국 위상 강화, K-POP을 시작으로 한 한국문화의 우호적 공감대 확산, 부동산 주식시장 구조조정 정책의 반사작용, 2022 프리즈아트페어 국내 입성의 기대감, 포스트 팬데믹의 지친 일상을 위로할 문화콘텐츠의 절실함, 대중스타나 인플루언서의 일상 노출 과정에서 개인적 기호의 대중적 확산, 국제 무대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과 선호도 증가 등 거의 동시다발적인 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 지금의 현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짚었다. ◆역대급 흥행 '키아프'...과열 양상·사재기 현상도 우려 역대급 매출을 기록한 이번 '키아프 현상'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모든 면에서 너무 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술을 애호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어난 순수한 현상이라기보다, 미술품 투자욕구와 지나친 과시욕의 소비심리를 앞세운 일부 신흥부유층의 사재기 현상이 염려된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번 키아프에 참여한 해외의 유명 갤러리의 경우 마지막날에는 과열된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갤러리 부스에서 자리를 피하는 사례도 있었다. 해외갤러리 관계자는 "단골 고객과 신규 고객이 뒤섞여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무조건 사려고만 하는 현상이 무척 우려됐다"며 "일부 작품은 판매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갤러리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책임감은 작품을 판매하는 결과보다, 해당 작가의 활동에 대한 지원과 작가적 비전을 관리해주는 것이 더 우선한다. 올해들어 경매시장의 활황과 함께 뜨거워진 미술시장을 두고 지난 2007년의 미술시장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역대 최고의 호황이었지만, 그 수혜는 지극히 일부에게 돌아가, 오히려 작가나 화랑들 간 부익부 빈익빈의 상대적 편차와 박탈감만 남겼던 뼈아픈 교훈이 있다. 이런측면에서 이번 키아프의 최대 매출 흥행은 새롭게 유입된 젊은 고객층이 지속적으로 든든한 유망 고객으로서 한국 미술시장의 주춧돌이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 하는 숙제를 남겼다. 한편, 키아프가 최초로 시도한 '요일별 관객 구분'도 화제였지만 비싸진 입장료에 비해 사후대책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첫날 'VVIP데이'의 입장료가 30만원이었지만 서비스 혜택은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VVIP고객이 받아든건 무료 커피쿠폰 2장이 전부였다. VVIP 한 고객은 "전에 없던 VVIP 카드를 받아 내심 기대감을 가졌는데 단지 동반 1인까지의 입장료에 그쳤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기다려 입장했는데 작품이 이미 팔려 있어 VVIP 혜택이 무엇이냐"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내년 프리즈아트페어와의 공동 운영에 대한 예행 연습격이라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21/10/18
웅갤러리·갤러리 라온 "하인두 화백을 아십니까" 오방색과 단청, 만다라. 한국적 추상미술은 강렬하다. 한국 현대미술 1세대 추상화가 하인두(1930~1989)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가 2곳에서 동시에 열린다. 서울 부암동 웅갤러리와 갤러리 라온에서 7일 개막한 '하인두, 한국적 공간추상의 기수'전이다. 국내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잊혀지고 있는 상황속에서 두 갤러리가 사명감을 갖고 준비한 전시다. 갤러리 웅에서는 추상회화, 갤러리 라온에서는 드로잉 종이 작품들(Works on paper)을 선보인다. 웅갤러리 최웅철 대표는 "2곳의 전시 구성을 통해 추상화가 하인두의 자유로운 생각과 창작의 방향과 작품 양식의 발전과정, 작가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막일인 7일 웅갤러리에서 심포지엄도 열려 하인두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를 학술적으로 조명한다. 하인두는 경남 창녕 출신으로 서울대 미대를 졸업(1954) 한 후에, 김창렬, 박서보 등과 더불어 한국적 앵포르멜 및 추상 표현주의 화풍의 개척에 기여했다. 한국의 전통과 불교 사상을 기조로 한 비정형의 추상을 선보이며 한국적인 추상화를 실현했다. 당시 유럽에서 유입된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았으나 작업에 내포된 근본적인 정신은 ‘전통’에서 찾고자 했던 하인두는 추상 회화 속에 불교의 원리를 담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해외로 미술세계를 넓혀나갈때 그는 좌절했다. 60년대 이북에서 내려온 친구를 신고하지 않고 재웠다는 이유로 걸린 보안법때문이었다.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로 큰 곤역을 치르면서, 삶과 인생, 생명과 존재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면서 작품도 변화했다. 불교의 탱화 중 하나인 ‘만다라’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우주의 흐름과 그 안에 본질을 깨닫고자 하는 불교 사상은 하인두 작업의 주요한 기반을 이룬다. 그는 오방색 뿐 아니라 단청에서 나타나는 조형 효과나 색채 등, 전통적인 기법을 작업에 적용하여 한국적인 추상화풍을 완성했다. 1980년대에 '피안(彼岸)', '밀문(密門)', '묘환(妙環)', '만다라(曼茶羅)' 등 종교를 통한 삶과 우주체계를 독창적으로 개척한 작품들이 제작됐다. 동양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도상안에 잠재된 무한한 추상성에 주목했다. '역동의 빛', '생의 환희', '태양의 상'을 통해 삶의 의지와 기쁨을 노래했고 마지막 시리즈인 '혼(魂)-불빛의 회오리'를 통해 예술의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시는 11월6일까지. 2021/10/07
'걷는 사람' 줄리안 오피 "이번엔 닭·사슴·건물과 함께 걸어요" “호기심과 놀라움을 선사하고 싶다.” 일명 '걷는 사람'으로 유명한 영국 대표 현대미술작가 줄리안 오피가 7년만에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다.2014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세번째는 열리는 이번 전시는 가장 대규모로 선보인다. 국제갤러리 K2, K3 전시장을 비롯해 정원을 아우르는 다양한 공간에 30여 점을 공개했다. 건물, 사람, 동물 형태의 평면 및 조각 작품을 갤러리 공간에서 함께 체험할 수 있게 꾸몄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다채로운 매체와 기술의 조합을 통해 현대 도시에서 차용한 시각적 언어를 보여준다. 작품은 보기에 쉽다. 작가는 단순하게 축약된 이미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눈에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 동물, 건물, 풍경과 같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단순화된 현대적인 이미지로 그려낸다. 그의 관찰로 재해석된 세상의 이미지들은 고대와 최첨단을 넘나들며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통해 현실로 구현된다. 작가는 고대 초상화, 이집트의 상형문자, 일본의 목판화뿐 아니라 공공 및 교통 표지판, 각종 안내판, 공항 LED 전광판 등에서도 두루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사람 형상과 함께 집중해온 동물 작품이 특별히 제작됐다. 사람을 모티프로 한 작업만큼 다양한 크기와 형태, 색으로 구성되어 있는 생동감 넘치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사슴, 수탉, 소, 강아지 등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동물의 이미지는 친근한 대상에서 상징적 부호로 거듭난 분위기다. 여기에 산업적 환경을 연상시키는 인공적인 원색을 적용해 독창성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전시장 벽을 장식하는 밝은 라이트 박스에 새겨진 동물 소재의 회화 작품들은 도시를 구성하는 표지판이나 브랜드 로고 혹은 광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K2의 1층 전시장은 도시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작가는 런던의 동쪽에 위치한 작업실 근처에서 겨울옷으로 무장한 채 길을 헤쳐 나가는 낯선 이들의 모습을 포착, 이들의 존재를 LED를 사용한 영상, 라이트 박스, 알루미늄 조각 작품으로 표현했다. 2층 전시장의 선명하고 강렬한 색감과는 반대로 해당 공간에서는 작품 속 개인의 옷, 머리카락, 그리고 피부 톤에서 따온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구성된 팔레트가 펼쳐진다. 기존의 잘 알려진 원색이 아닌 톤 다운된 차분한 색감으로, 특히 검은 배경에서 빛이 드로잉을 투과할 때 각 선이 가진 색은 더욱 강조되면서 입체감까지 드러난다. K3 공간에서는 도시 행인들의 존재와 함께 건축 조각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가상 도시가 펼쳐진다. 펜데믹 상황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와중에 벨기에의 크노케(Knokke)에 방문한 작가의 경험이 담겼다. "런던에 머물면서 도시의 현대적 그리고 역사적 건물을 새삼 눈여겨보게 되었고, 이들을 입체적인 금속 조각으로 재해석했다." 런던 중앙부 구시가지의 건물들로 형성된 2점의 설치물은 각각 4m 규모로, 실물 크기의 인물 조각과 전시장 내에서 조화를 이루며 공간이라는 주제에 대한 작가의 오랜 고민과 탐구를 뒷받침한다.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19 상황은 작가의 작업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작가는 물리적인 여행 대신 가상의 3D 구글 지도를 통해 인천을 둘러보았고, 전시작 중 하나인 '인천, 타워 2208. (Incheon, Tower 2208.)'의 단서를 얻었다. 인천에 위치한 무명의 건물은 특유의 직선적이며 기하학적 선으로 탄생되어 정원에 놓였다. 건물 사이를 걸으면 도시 풍경속 작품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전한다. “항상 주어진 공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관객이 흥미롭게 작품을 경험하도록 어떻게 조율할지를 고민한다”는 줄리안 오피는 "이번 전시를 위해 3D 가상공간에 작품을 배치하고 VR 고글을 낀 채 가상의 전시장을 직접 둘러보는 방식을 거듭하며 동선을 섬세하게 기획하고 구성했다"고 전했다. 대규모 설치작부터 작은 크기의 평면 작품까지 여러 표정으로 꾸려진 이번 전시는 줄리안 오피의 미니멀리즘적 시각을 경쾌하게 감상할수 있다. 전시는 11월28일까지. ◆줄리안 오피는 누구? 195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줄리안 오피는 1982년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포르투갈 일본 호주 중국등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작가의 작품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영국 박물관,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국립 초상화 미술관을 비롯, 뉴욕 현대미술관(MoMA), 보스턴 ICA 미술관,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등 세계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1/10/07
엉성한 픽셀 이미지가 51억?…라바랩, '크립토펑크' 인기 NFT(대체불가토큰) 작품이 전통미술을 또다시 따돌리고 있다. 미국 개발업체 라바랩스(LARVA LABS)의 ‘크립토펑크 9997’이 3385만 홍콩달러에 팔렸다. 한화로 약 51억4000만원. 7억~10억원에 책정된 추정가보다 약 5배 높은 금액이다. 세계적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지난 17~28일 홍콩 온라인 경매에 NFT 작품 14점이 출품돼 모두 팔렸다고 밝혔다. 구매 수수료 포함 낙찰총액은 9599만 홍콩달러(한화 약 146억 원)다. 이번 경매는 크리스티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NFT 경매다. 경매 응찰 고객 168 명으로 65%가 신규 고객으로 주목된다. 주요 구매 지역은 홍콩, 미국, 스위스, 대만 등이었다. 재키 호(Jacky Ho), 크리스티 아시아 20 세기 및 21 세기 미술, 이브닝 세일 헤드는 "크리스티는 NFT 경매 및 아시아 온라인 경매 분야에서 수많은 기록을 세운 이번 경매로 다시한번 신기록을 썼다"며 "크리스티의 글로벌 NFT 경매가 낙찰 총액 1 억 달러를 넘는데 기여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재까지 글로벌 크리스티에서 달성한 NFT 누적 낙찰 총액은 1 억 미국달러(한화 약 1188 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한화 약 51억에 팔린 ‘크립토펑크 9997’은 픽셀로 이뤄진 단순한 아바타 이미지다. 엉성한 눈·코·입으로 이뤄진 초록 얼굴로 ‘크립토펑크'는 최근 NFT 미술품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날 '크립토펑크 819'은 한화 약 2 억 4000만~3 억 7000만 원에 나와 한화 약 13억 5000만 원에 낙찰됐다. NFT는 블록체인의 토큰을 다른 토큰으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한 가상자산을 일컫는다. 별도의 고유한 인식 값을 담고 있어 서로 교환할 수 없다. 한편 NFT 작품은 지난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플의 디지털 아티스트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5000개 이상의 jpeg이미지를 모은 작품이 약 6930만 달러(한화 약 771억원)에 낙찰되어 전 세계적으로 NTF 작품 열풍을 이끌었다. 2021/09/30
이화익갤러리, 차영석 개인전…"운동화, 신지 말고 보세요" 그림이 된 운동화, 욕망의 시험대에 올랐다. '연필 세밀화'로 유명한 차영석 작가가 운동화로 돌아왔다. '그냥 운동화'가 아니라 스니커즈(sneakers)로 불리는 '명품 신발'이다. 트렌드세터(Trend Setter)라면 한개쯤은 소장각인 운동화들이 캔버스에 새겨져 또다시 소유욕을 자극한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는 차영석 작가의 14번째 개인전을 오는 10월6일부터 선보인다. 2018년 이 화랑 전시 후 3년만에 여는 전시다. 차영석 작가는 흔한 일상의 사물들을 아주 세밀하고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화가다. 이번 전시에는 발렌시아가, 샤넬 등 명품 운동화 76점과 그의 대표작인 '매 연작' 4점을 함께 공개한다. '비싼 신발'들이 즐비한전시장은 그야말로 '운동화 매장'같다. 몇 년 전부터 운동화에 꽂혔다는 작가는 여전히 지루하게 반복한 세밀화의 마력을 뽐낸다. 운동화는 한 땀 한 땀 만드는 장인 정신으로 완성했다. 연필에 집중하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컬러펜 아크릴 등 재료를 확장했다. 손맛에 다양한 연장이 더해지니 화려해졌다. 실제 운동화의 색감 뿐 아니라 질감까지도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운동화’가 일상의 파편이자 미적인 대상이라는 것을 더욱 부각시켰다. "운동화는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에요. 개인 욕망의 발현 일 뿐 만 아니라 개인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죠." ‘운동화’는 일상적인 소모품이지만, 요즘 시대는 '재테크'와 '컬렉션'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운동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고가의 수집 아이템으로써 취미생활이자 동시대의 트렌드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일상 사물이 그림이 되면 존재감이 달라진다. 발렌시아가 운동화 그림은 진짜 운동화 가격보다 3배 정도 비싸다. 35 x 50 cm 크기 운동화 그림은 300만원이다. 신발은 닳아 감각상각 하지만 신발 그림은 반대다. 이번 개인전에는 2019년에 제작되었던 '매 연작'도 전시한다. 매 연작은 재현의 의미보다 작가의 특징인 세밀하게 선묘하는 독창적인 화풍이 잘 드러난다. 기존에 벽에 걸었던 설치 방법이 아닌 병풍 형태로 제작했다. 평면 작품에서 입체 작품으로 변환되어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이화익갤러리 이화익 대표는 "차영석 개인전은 서로 다른 것들이 융합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매시업’의 사전적 용어처럼 고전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매 연작)과 동시대의 트렌디함을 보여주는 작품(운동화)이 한 전시장에서 어우러져서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10월26일까지. 2021/09/29
127년전 '福·壽' 100번 쓴 '백수백복도'의 '뱀파이어 미학'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은 사라지지 않고 변할 뿐이다. 1894년 갑오춘서에 나온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는 2021년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보인다. '조선 의주에 사는 장인선'이 제작했다고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이 '문자도'는 '뱀파이어 미학'을 전한다. 100년이 지나도 살아나 현대인의 손맛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백수백복도'는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민화와 달리 이름을 남긴게 가장 큰 특징이다. 복(福)자와 수(壽)자를 번갈아 100번을 반복했지만 지루함이 없는게 특징이다. 모두 다른 형태의 글자로 새긴 이 문자도는 보고 또 보면 독특한 개성미와 세련미의 극치다. 다양한 형태로 그려진 글씨는 '오래 사시고 복을 누리시라는 수복'의 의미를 담은 '찐마음'이 느껴진다. 복(福)자와 수(壽)자. 조선 시대 민화임에도 현대적인 화조화 패턴의 타이포그래피를 연상시킨다. 풍부한 회화성과 세련된 미감이 돋보이는 명작으로 평가되는 이 문자도의 존재감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백수백복도'를 대표작품으로 펼친 현대화랑의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전이다. 현대화랑은 지난 2018년 '민화, 현대를 만나다'전시를 연 이후 우리 민화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당시 ‘화조’를 재조명해, 민화계와 미술애호가들에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 후속 전시인 이번 전시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에서는 빼어난 조선 시대 문자도 11점과 문자도를 새롭게 재해석한 현대미술가 박방영, 손동현, 신제현 3인의 작품 13점을 선보인다. 조선 시대 선조들의 삶 깊숙이 스며들었던 '문자도'는 선조들의 염원과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전시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는 한자를 활용한 동아시아 문자도 가운데서도, 유교의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 8자를 그린 독특한 문자도를 주목한다.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양한 문자도는 18세기에 성행하며 서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유교 덕목을 널리 알리기 위한 교화적인 목적으로 제작됐지만, 문자도는 각 지방의 문화와 결합되어 지방의 예술로 확산되고, 19세기 후반에는 장식화의 경향을 보이며 점차 조선 시대 생활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각 전시공간에는 문자도의 창의적인 해석을 모색한 3인 3색의 작업이 조선 시대 문자도와 함께 펼쳐진다. ▲인간 삶의 이야기를 일필휘지의 필법과 상형그림으로 그려낸 박방영, ▲문자도라는 전통적인 소재와 그라피티와 같은 현대적인 주제를 결합시켜 동양화의 관습적인 경계를 허물고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손동현,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화조문자도를 오마주하고 천하게 여겨지던 민화의 가치를 새로운 인식 속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신제현의 작업이 전시된다. 전시를 기획한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한국회화사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 문자도가 창의적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과 만나 어떻게 독창적인 가치로 변화되는가를 실험하는 하나의 계기라고 할 수 있다"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유쾌한 문자그림들은 탁월한 솜씨와 고졸한 미감을 넘나들면서 그린 이의 개성과 삶의 방식들을 꾸밈없이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해학과 세련미가 돋보이는 민화지만 그림으로 인정받지 못한 배경은 이름 없는 무명화가들의 그림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그린이의 상상력에 따라 신출귀몰하고 불가사의한 표현이 가득한 민화 속에는 자연의 본성을 담아낸 당대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특히 문자도는 전형적 스토리텔링을 구사한 것(prototype)에서 대상을 생략하거나 과장한 것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표현이 풍부하다. 모던한 감각의 화조문자도, 어린아이의 익살맞은 낙서 같은 제주문자도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 민화 문자도는 현대미술로 거듭난 오늘의 현란한 문자도에 견줘도 꿀리지 않는다. 형태와 재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비하고 독특한 개성미가 빛나는 '문자도'를 제대로 살펴볼수 있는 전시는 온라인 사전예약(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85123)으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10월31일까지, 입장료 3000원. 2021/09/23
구순 박서보 화백의 식지않는 열정...'색채 묘법' "내 전부를 걸고 그림과 싸우는 거지요.” 박서보 화백의 열정은 여전했다. 구순의 나이에도 지팡이를 짚고 서서 하루 5시간 연필로 선을 긋는다. "늙어 다리에 힘이 없어 작업실에서 자빠져요. 서 있거나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점점 힘듭니다. 그래도 제 인생을 걸고 완성하고 싶어요." 목표가 있다. 내년에 베니스비엔날레 전시할 계획이다. 캔버스 크기는 200호(259× 195cm) 대작들에 신작을 선보인다. 2019년부터 시작한 작품으로 올해 말 끝낸다는 의지다. "지구에 살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중섭·박수근·김환기 등 '죽은 화가'와 달리 '박서보'는 살아 생전 화가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단색화 거장'으로 불리며 지난 10여 년 전 팔순에 최고의 화가로 등극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화가는 환갑 이후부터가 절정이라는 말을 박서보 화백이 증명했다. 자화자찬 화법의 1인자이기도 한 그는 "외국에서는 나를 한국 현대미술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자랑도 잊지 않는다. 일본 유학파 등 이전 세대와 달리 '토종 미술인'인 그의 그림 '묘법'은 마법이 됐다 '장르가 박서보'라 할 정도로 독보적인 작품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끝까지 살아남아 단색화를 일궈내고 세계화시켰다"는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닌 이유다. 2016년 영국 런던 화이트 큐브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데이미언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 스타 작가뿐 아니라 전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취급하는 세계 최고의 화랑에서 연 한국 작가 초대전은 한국 미술계의 쾌거이자 일대 사건이었다. 이후 세계 최고 화랑들의 러브콜이 이어져 파리 페로탕 갤러리, 국립 그랑팔레미술관, 도코갤러리, 홍콩 아시아소사이티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붓을 놓는다'는 팔순 이후부터 후끈한 봄날이 이어진 '행복한 화가'다. 작품값도 10년전보다 최고 20배 정도 상승했다.박 서보 화백은 평균 호당가격이 10여년 전보다 10배 올라 50만원이었던 호당가격은 2015년 400만원을 넘겼다. 100호 크기이면, 기본 4억선에 거래되는 셈이다. '묘법(描法·Ecriture)'연작은1970년대 초 시작됐다. 화면에 물감을 바르고 연필로 수없이 선을 그은 '연필 묘법'이 이어지고 있다. 그림값도 치솟았고, 2007년작 '묘법'은 올해 처음 4억대를 돌파했다. 둘째 아들이 스승이다. "어느날 아들이 노트 네모칸 밖으로 글씨가 삐져 나가자 화가 나서 빗금을 막 그리더라고요. 그걸 옆에서 보고 '저게 체념이다'고 생각했죠." "아들이 하던 짓을 그림으로 흉내내 수없이 반복하니까 '연필 묘법'이 됐다"는 박 화백의 그림은 초기에는 사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의 그림과 비견됐지만, '산 자의 그림'은 생명력이 강했다. 사이 톰블리가 즉흥적인 에너지로 그려냈다면, 박서보는 깊은 내공의 볼수록 명상적인 그림이라는 평가를 획득했다. 지난 2014년 단색화가 세계미술시장에 진입했을때 박 화백의 당당함은 하늘을 찔렀다. 서양인들이 박 화백에 “한국의 피카소 같다”고 하자 “나는 피카소가 아니라 박카소다!”라고 맞받아친 일화는 유명하다. 1970년대 초기(연필) 묘법, 1980년대 중기 묘법, 2000년대 이후의 후기(색채) 묘법으로 구분된다. 연필 묘법이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우고 수신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다면, 색채 묘법은 손의 흔적을 강조하는 대신 일정한 간격의 고랑으로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강조하여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작가의 대표 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작품 제작을 위해 작가는 두 달 이상 물에 충분히 불린 한지 세 겹을 캔버스 위에 붙이고, 표면이 마르기 전에 흑연 심으로 이뤄진 굵은 연필로 선을 그어 나간다. 연필로 긋는 행위로 인해 젖은 한지에는 농부가 논두렁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좌우로 밀려 산과 골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물기를 말린 후 스스로 경험한 자연 경관을 담아 내기 위해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덧입힌다. 이렇게 연필로 그어내는 행위를 반복해 완성된 작품에는 축적된 시간이 덧입혀지고, 작가의 철학과 사유가 직조한 리듬이 생성된다. '회화에 동아시아의 자연과 예술에 대한 관점을 담아냄으로써 한국의 모더니즘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서보의 회화에서 색은 시대상을 드러내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전후 시기의 원형질 연작에서는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불안의 정서를 표현한 검은색, 1960년대 후반 서양의 기하학적 추상에 대응해 전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유전질 연작에서는 전통적인 오방색, 그리고 1970년대에 ‘비워 냄’을 몸소 실천한 연필묘법 연작에서는 색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위해 흰색을 선택했다. 그러던 그가 2000년 이후 강렬하고선명한 색감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급진적인 시도는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하던 그가 새로운 디지털문명을 대면하며 느낀 공포심과 무관하지 않다. 디지털 문명으로의 대대적인 전환이 현대인들 누구나 겪는시대적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상을 녹인 작업을 이어오던 그에게 ‘더 이상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없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고, 이는 스스로 작업 중단까지 고려하기에 충분한 배경이 되었는데, 그 끝에서작가가 찾은 돌파구는 다시금 색이었다. 각종 이미지가 무차별적으로 범람하는 시대, 회화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색채 묘법 연작에서 회화는 더이상 자기표현의 도구로 기능하지 않는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의도된 경험을 강요하거나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화면에 정적인 고요함과 리듬감 있는 활력만을 남겨 보는 이의 스트레스를 흡인(吸引)하는 장을 만든다. 이는 그가 스스로의 작품을 ‘흡인지’라 일컫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라불리는 그가 단색화를 “행위의 무목적성, 행위의 무한반복성, 행위과정에서 생성된 흔적(물성)을 정신화 하는것”의 세 가지 요소로 정의 내린 사실도 이 같은 회화의 새로운 역할을 뒷받침한다. "나는 그림 그리기가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색칠과 선 긋기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깊은 맛은 서양인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에요. 누구도 따라못할 밀도감을 담으려고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미술이 곧 방법론임을 주장하는 박서보는 여러 측면에서 회화에 내재한 기존 질서들을 전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캔버스에 유화물감과 연필로 작업해오던 그는 1980년대 이후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양의 종이와는 달리 색과 빛을 흡수하는 성질의 한지는 ‘물아일체’를 실행하고자 하는 작가의 동양적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매체였다. 더 나아가 그 위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 즉 한지가 젖어 있는 동안 연필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골을 만들고 음영을 부여한 건 연필이라는 도구를 종이의 원초적인 물질성에 굴복시켰다고 해석할 수있다. 그 결과 화면에는 연필의 흔적이 아닌 과정과 질서만이 오롯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15일 개막한 박서보 화백 개인전은 '박서보 색(감)'의 묘한 기운 '묘법'을 실감할 수 있다. ‘왜 회화 작업을 하는가?’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변화하는 시대상에 부응하는 새로운 작업방식을 모색해온 그의 ‘후기 묘법’ 내지는 ‘색채 묘법’으로 알려진 2000년대 이후 근작 16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국제갤러리 K1 공간에서는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을, 그리고 K1의 안쪽 전시장에서는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박서보가 자연에서 화면으로 유인한 색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는10월 31일까지. 화가박서보(1931·본명 박재홍)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미술의 전위적 흐름을 이끌어왔다. 1956년 김영환, 김충선, 문우식과 함께 '4인전'을 통해 반국전 선언을 발표, 앵포르멜 기수로 화단의 스타작가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62-1997) 및 학장(1986-1990)을역임했다. 2000년에는 명예교수로 임명되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 및 고문(1980)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대형 회고전을 비롯, 같은 해 독일 랑엔 재단(Langen Foundation), 2006년 프랑스 메트로폴 생떼띠엔느 근대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제갤러리와 손잡고 전시를 열고 있다. 그간 국제갤러리와 박서보는 국제갤러리(2014),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2016), 상하이 파워롱미술관(2018) 등에서 열린 그룹전들을 통해 단색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여정을 함께 해왔다.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은 지난 2010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도쿄도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아부다비, 홍콩 M+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1/09/17
김현식 개인전 '현玄'..."색을 넘어서고 싶었다" '혼을 다한 340점이 현(玄)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는 작가 김현식 개인전 '현玄'을 8일 개막했다. 2018년 학고재 개인전 이후 3년 만의 전시다. 레진이 품은 '21세기 단색화'라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레진(resin)을 붓고 단단히 굳힌 후 긁어내는 행위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평면 속에 드러내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 평면 속 공간을 더 넓고 깊게 구현했다. 수많은 선긋기로 완성한 색색의 작품은 해외평론가들의 "동양적 신비로움"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미니멀 아트'로 다가섰다가 독특한 기법에 감탄하는 작품이다. (말끔하게 칠한 회화에 두꺼운 투명 코팅 처리를 해 놓은 것 같은 작품의 비밀은 '에폭시 레진'(epoxy resin)덕분이다. 공업용 투명 접착제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유리액자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도 있다.) 김현식은 평면 속에 색이나 형태를 이용하여 깊고 아득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노자의 '현은 온갖 신묘함의 문'이라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레진을 붓고 말리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 다다르고자 했다." 겹겹이 쌓아 올린 선들 사이의 투명한 미지의 공간은 색을 넘어선 본질로서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학고재 우정우 디렉터는 "동양에서 말하는 현(玄)으로서의 절대 공간을 표현함으로써, 숭고주의 회화를 재해석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작품 '거울'(2021) 연작은 관찰자의 시선이 점진적으로 심연에 다다르게 한다. 작품을 보다 보면, 표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작품 속 공간 사이를 시선이 넘나들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현식은 이 연작을 큰 규모로(300) 선보여 우주를 구현하고자 했다. 연못에 비친 자신이 모습을 보고 이전에는 몰랐던 감정을 깨닫게 되었던 신화 속 나르시스처럼, 모든 것을 품은 현(玄)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다. 작가는 "표면 너머의 무한한 공간과 조우함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고 바랐다.이번 전시에 '신묘함의 문을 여는 것' 같은 작품 340점을 공개한다. 10월17일까지. 김현식은 1965년 경상남도 산청 출신으로 1992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울산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그동안 학고재, 모거모던아트(런던), 아트 로프트(브뤼셀), 노블레스 컬렉션 등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천), 부산시립미술관(부산), 시안미술관(경북 영천) 등 주요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아트 바젤 홍콩(홍콩), 아트 브뤼셀(벨기에), 아트 파리스(프랑스) 등 해외 아트페어에서 주목받았다. 202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