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래 'Open Wound'…'피부 조각' 기괴함 육감 자극 피부 조각들이 걸려있는 풍경은 SF영화 한 장면 같다. 징그럽고 끔찍하면서도 기괴한 느낌으로 오감에서 육감까지 깨운다.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대규모 전시장 터바인 홀(Turbine Hall)에서 선보인 허물 벗은 듯한 '피부 조각'들은 한국의 설치미술가 이미래의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미래 작가의 작품은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고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9일 개막한 '현대 커미션: 이미래: Open Wound'전시다. 현대자동차와 영국 테이트 미술관의 장기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펼친 이 전시는 현대미술의 발전과 대중화를 지원하기 위해 2014년 체결한 장기 파트너십에 따라 진행되는 전시 프로젝트다. 2015년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 2016년 필립 파레노 (Philippe Parreno), 2017년 수퍼플렉스(SUPERFLEX), 2018년 타니아 브루게라(Tania Bruguera), 2019년 카라 워커(Kara Walker), 2021년 아니카 이(Anicka Yi), 2022년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2023년 엘 아나추이(El Anatsui)에 이어 올해는 이미래(Mire Lee)가 아홉 번째 현대 커미션 작가로 참여했다. ◆'현대 커미션: 이미래: Open Wound' 전시 이미래의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영국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대규모 전시다. 과거 화력 발전소였던 건물을 개조하여 탄생한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에 깃든 영국 산업의 역사에 주목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설치 작업으로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공존하는 생산 현장으로 전시 공간인 터바인 홀을 재구성했다. 전시장 내부는 '피부(Skin)'라고 표현된 직물 조각 작품들이 49개의 금속 체인에 걸려 천장으로부터 늘어뜨려져 있으며, 터바인 홀 끝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재가동된 옛 크레인에 7미터 길이의 터빈이 매달려 있다. 과거 석탄 광부들이 도르래에 옷을 걸어 작업복을 말리던 일과 휴식 사이의 경계 공간인 탈의실을 연상시킨다. 또한 짙은 분홍빛의 액체를 뿜어내는 실리콘 튜브가 회전하고 있는 터빈을 둘러싸고 있으며 튜브 아래 설치된 트레이로 액체가 모이고, 건축용 그물망과 같은 섬유 조각들이 액체를 흡수해 새로운 피부 조각으로 탄생되는 모습을 선보인다. 전시 기간 동안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을 현장 기술자가 건조대로 옮기는데 이 모습이 마치 장인이 작업을 하는 모습 같으면서 동시에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부 조각들이 걸려있는 풍경은 과거 석탄 광부들이 도르래에 옷을 걸어 작업복을 말리던 일과 휴식 사이의 경계 공간인 탈의실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천천히 회전하는 터빈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전시 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피부' 조각들로 건물이 점차 허물을 벗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다. 산업 재료를 사용하는 이미래 작가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가 반영된 이번 전시는 인간과 기계, 부드러움과 단단함, 내부와 외부, 개인과 집단 사이의 조화와 갈등을 경험하는 기회를 마련해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유도한다. 인간의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다. [[[[:newsis_inyoung_center_start:]]]]"전복적이며 여러 감각을 확장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이미래 작가는 오늘날 가장 흥미롭고 독창적인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이다. 이미래 작가의 작품을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테이트 모던 카린 힌즈보(Karin Hindsbo)관장) [[[[:newsis_inyoung_center_end:]]]]이번 전시 진행은 테이트 모던 국제 미술 큐레이터 알빈 리(Alvin Li)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비랄 아쿠시(Bilal Akkouche)가 맡았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이번 현대 커미션 전시는 대비되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 속에 병치함으로써 규정할 수 없는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내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상호 연결된 미래를 향한 존재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도록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16일까지 열린다. ◆이미래(Mire Lee)작가는? 1988년 한국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와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현재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철, 시멘트, 실리콘 등 산업 재료를 붓거나 떨어트리고 부풀리며 날 것 그대로의 유기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조각 작품들은 모터나 펌프 등 기계 부품으로 작동되거나 좁은 틈새로 액체를 뿜어내는 등 불안정한 형태를 극대화하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주요 개인전은 2020년 한국 서울 아트선재센터《Carriers》 전시, 2022년 독일 베를린 싱켈 파빌리온 'HR Giger & Mire Lee' 전시, 2022년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ZOLLAMTMMK, MMK Frankfurt 'Look, I'm a fountain of filth raving mad with love》 전시, 2023년 미국 뉴욕 뉴 뮤지엄 'Black Sun'전시가 있다. 단체전은 2018년 제12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2019년 제15회 리옹 비엔날레(15th Biennale de Lyon, Lyon), 아트선재, 샤르자 미술 재단(Sharjah Art Foundation), 2020년 상하이 안테나 스페이스(Antenna Space, Shanghai), 2021년 쿤스트페어라인 프라이브루크(Kunstverein Freiburg, Freiburg), 2022년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와 제11회 부산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2018년 암스테르담 라익스 아카데미(Rijksakademie van beeldende kunste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24/10/09
'마팔' 문형태 랩소디…볶음밥이 전하는 초심 그 가난했던 시절 먹었던 '볶음밥'은 이제 완벽한 그림이 됐다. 전업 작가로 데뷔하고 늘 쪼들렸다. 중국집에 주문한 볶음밥이 좋았다. 밥, 짜장 소스, 짬뽕 국물을 따로 먹을 수 있어서였다. 밥만 지어두면 한 끼를 1/3씩 셋으로 나눠 세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볶음밥을 먹었는데도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건 볶음밥이네요. 환경이 바뀌고 주머니 사정이 좋아졌지만 작가로서의 일상이나 고단함, 노동의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문형태(48)의 신작 'Chinese Fried Rice'(2024)는 그의 초심을 보여준다. 볶음밥을 가슴에 품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 그림 속 문형태는 수저 들기를 멈추고 먼저 숫자를 쓰고 있다.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1/3을 적는 과정인데 2처럼 보인다. 구질구질했던 시절 그를 배불리 했던 볶음밥은 희망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제 그는 안다. “모든 순간들은 항상 완벽한 그림"이 된다는 것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문형태 개인전(Perfect Picture)은 그의 저력을 다시 보여준다. 2022년 'CHOCKABLOCK'개인전 이후 2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신작 50여점이 공개됐다. 문형태의 작업 근간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동화 속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한 상상력을 함축하고 있다.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더 깊은 내면으로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작품은 희로애락이 빛난다. 그에게 고독과 동시에 행복을 준 그림은 보는 순간 눈길을 잡아 당기는 마력이 있다. 동화 같은 그림이지만, 볼수록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전하는 '묘한 그림'이다. 진득한 화면의 색감이 이상하게 마음을 끄는 이유가 있다. 작업의 밑 재료는 ‘흙’이다. 화면 위에 은은한 황토색이 만들어내는 따스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는 흙 물을 사용한 작업 방식 덕분이다. “흙은 저의 일상을 시작하는 곳과 마무리하는 곳, 또한 생성과 소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의 삶의 흔적인 흙을 작업에 입힌다. 캔버스에 황토와 물을 섞어 바른 다음 표면에서 건조 된 흙을 걷어낸다. 노랗게 흙 물이 든 캔버스 위에 오일이나 크레파스로 형상을 탄생시킨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모든 존재는 흙으로 회귀한다'는 깨달음에서 기인했다. “대학 시절 돌아가신 이모의 시신을 보고 인간의 죽음을 처음 느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문형태는 모든 작품에 흙을 바름으로써 자신의 손을 떠나는 작품들과 인사를 나눈다. 흙을 매개로 한 이러한 의식과도 같은 행위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자연으로의 귀환과 삶의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본 작품은 구상인데도 초현실주의로 흐른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상반된 감정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최근작 'Merry-go-Round' 는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만, 빙글빙글 회전하는 목마는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듯이 우리의 삶 역시 끝없는 오르내림의 반복임의 표현이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숫자는 '관계 코드로 1은 자신, 2는 관계, 3은 가족, 4는 사회, 5는 고독을 의미한다. 독특한 이 표현 방식은 유년시절 외조부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외조부는 자신이 빌려준 돈을 달력 뒷면에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보고 인간의 생전 기억이 숫자로 단순화되어 각인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문형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의 코드화라는 독자적 방식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시각화했고, 그 관계가 만들어 내는 희노애락에 집중, 신비로움을 더욱 강조한다. '잘 팔리는 그림'의 작가는 매번 부담감이 컸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그는 이렇게 전했다. 30대에 미술시장 스타 작가로 부상한 그는 작품이 마르기도 전에 팔려나가 '마팔'이라는 별명도 있다. 전시 때마다 '솔드아웃' 품귀 현상을 빚는 마법 같은 그림이다. 중독성 있는 이번 신작도 날개가 돋았다. 자세히 보면 이상하고 기괴한 형상인데 묘하게 아름답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은 '관계의 미학'을 전한다. 신작도 완벽한 디테일로 마음을 훔친다. 밀도감이 높아져 더 진득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작가로서 혼신을 다한 200호 크기도 나왔다. 작품 값은 2년 전보다 10% 올라 20호 크기(볶음밥)는 1500만 원이다. 전시는 10월9일까지. 2024/09/14
'연출 사진 거장' 우에다 쇼지, 한국 첫 사진전 20세기 일본 사진계를 대표하는 작가 우에다 쇼지(植田正治, 1913~2000)의 사진전이 한국에서 처음 열린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전시 공간 피크닉(piknic)은 오는 10월12일부터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Ueda Shoji Theatre of the Dunes)' 사진전을 개최한다. 피크닉은 "우리나라에도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지만 전시를 통해 정식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작가가 생전에 직접 인화한 오리지널 프린트 170여 점을 공개, 우에다의 초기 습작부터 생애 마지막 작품까지 망라하는 대규모의 회고전으로 펼친다"고 밝혔다. ◆우에다 쇼지는? 연출 사진의 선구자이자 모노크롬의 대가인 우에다 쇼지는 일본 사진 역사에서 압도적인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일본 돗토리현에서 신발 사업을 하는 집안에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웃집 청년이 집에서 현상을 하는 장면을 구경하면서 처음으로 ‘카메라’라는 매체에 강렬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열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자신의 첫 사진기로 수많은 습작을 찍으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19세에 집 근처에 사진관을 개업했고, 22세에 결혼한 아내 노리에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다. 모델이자 뮤즈이기도 했던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젊은 우에다는 지역의 여러 사진가와 활발히 교류하며 전시와 공모전에 쉼 없이 참여하는 등 왕성한 창작 의욕을 불태웠다. 관행을 벗어난 과감하고 참신한 구도, 현실의 시공간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연극적인 연출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집 근처 바닷가로 마을 소녀들을 데려와 각각의 포즈를 섬세하게 구성한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少女四態)'는 그가 26세였던 1939년에 촬영한 것으로, 이후 우에다 쇼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초기 걸작 중 하나다. ◆고향 바닷가 모래언덕에서 꽃피운 '우에다 스타일' 우에다 쇼지는 일본의 주류 사진가들 중 드물게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 거주하며 작업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그가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돗토리현은 인구나 산업 등 여러 측면에서 규모가 아주 작은 일본의 변방이다. 세간의 이목에서 멀리 떨어진 촌락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토와 문화, 그리고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을 사랑했다. 특히 거친 바닷바람에 의해 퇴적된 거대한 모래언덕(砂丘)은 작가에게 더없이 좋은 촬영의 무대였다. 우에다는 이 광활한 야외 공간을 마치 스튜디오나 세트장처럼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그 안의 여러 인물을 ‘오브제’처럼 철저히 계산된 방식으로 배치한 특유의 연출 사진들을 남겼다.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를 연상시키는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모래언덕 사진들은 훗날 서구에서 ‘우에다조(Ueda-cho, 우에다 스타일)’라고 불리던 독특한 사진 세계의 중심축을 이룬다. 모래언덕에서의 촬영은 인물 군상뿐 아니라 정물, 풍경, 추상, 패션과 상업사진 등 작가 평생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확장된다. ◆영원한 아마추어 정신 우에다 쇼지는 주류 사진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늘 그 주류로부터 한발 비껴 서 있었던 독특한 위치의 작가다. 시대를 풍미했던 어떠한 유행이나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통념적인 사진 작법을 벗어나 보려는 노력을 평생 게을리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그는 이미 일본 안에서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지닌 대가였지만 80년대와 90년대에도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 시리즈를 계속 선보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아내와의 사별로 인한 상심을 극복하고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패션 사진에 도전한 것도 흥미로운 이력이다. 20대에 데뷔해 30대에 이미 정점을 맞이하는 패션 사진가의 일반적인 커리어 패스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사진가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자신을 ‘시골에 사는 아마추어’라 표현했는데, 이러한 자기인식 속에는 겸손함과 더불어 ‘돈 되는 것’ 대신 ‘찍고 싶은 것’에만 순수하게 열중하는 아마추어로서의 자유와 기쁨, 그리고 열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는 87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이 아마추어의 정신으로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70년에 걸쳐 그가 남긴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도쿄도 사진 미술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1989년 일본사진협회로부터 공로상을, 199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상했다. 1995년 9월, 우에다 쇼지의 작품 1만 2000점을 소장한 ‘우에다 쇼지 사진 미술관’이 돗토리현에 개관했다. 피크닉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에다 쇼지에 큰 명성을 안겨준 '모래언덕(砂丘)' 연작, '작은 이야기(小さい伝記)' 연작, '아이들의 사계절(童暦)' 연작 등과 함께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컬러 걸작인 '하얀 바람(白い風)'연작과 후기 패션 사진 등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든 주요 작품들이 소개할 예정이다. 관람료 1만8000원. 18일까지 50% 할인된 얼리버드 티켓을 판매한다. 2024/09/13
'키아프가 프리즈 했다'…"달라졌다" 8만2000명 깜짝 "키아프가 프리즈 했다." 3라운드 '키아프리즈'는 이전과 달랐다. 키아프(KIAF)의 달라진 면모로 '프리즈(Frieze)가 키아프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지붕 두 가족'의 '키아프리즈'는 상생의 아트페어로 거듭났다. 3회 만에 '서울을 글로벌 미술 도시'로 올려 세우며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가 됐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전쟁과 선거로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도 해외 갤러리들과 컬렉터들이 늘고 인기 작가들의 수십억 작품들이 솔드아웃을 기록하는 등 올해 '키아프리즈'는 글로벌 미술 시장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같은 기간 열린 '뉴욕 아모리 쇼'를 눌렀다는 평가다. 세계적인 미술 전문지인 아트뉴스는 “아모리 쇼는 프리즈 서울에 밀려서인지 활기를 잃었고, 프리즈는 출품작과 판매 분위기 모두 흠잡을 데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아모리 쇼'가 예전에는 롤스로이스였다면 지금은 기껏해야 테슬라"라며 심지어 "커피도 맛도 없고 샌드위치는 더 나빴다"는 혹평도 나왔다. 7~8일 폐막한 키아프리즈는 활기찬 분위기로 내년을 더 기대하게 했다. 키아프 서울은 총 5일 간 8만2000여명, 프리즈 서울은 4일 간 7만 명이 방문했다. ◆키아프, 확장된 공간세련미 장착 8만2000명 방문 "와우 키아프 맞아?", "정말 달라졌다." 4일 키아프에 온 VIP들은 깜짝 놀랐다. 확장된 공간과 전시 연출력과 함께 무엇보다 작품 퀄리티가 높아졌다는 평가로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1, 2회 프리즈와 너무 비교되어 자존심이 상했는데, 역시 K갤러리들의 안목과 전시 구성이 좋아져 인상 깊었다"는 반응이 잇띠랐다. 실제로 방문객 수는 작년과 비슷했으나 효율적으로 개선된 동선, 넓어진 전시 공간에 관람객이 분산 되면서 관람 환경이 한층 쾌적했다. 투자한 효과다. 1, 2회와 달리 젊은 건축가 장유진과의 협업을 통해 부스 배치 디자인을 개선한 점이 돋보였다. A홀, B홀, 그랜드볼룸으로 이어지는 1층 전시장은 공간을 특성별로 나누어 쉽고 편안한 관람을 제공했다. 예년보다 강화된 심사도 한몫했다. 국내 갤러리들의 부스 구성 등 전시 퀄리티도 업그레이드 됐다는 평가다. 키아프는 Art of the World Gallery(휴스턴), DIE GALERIE(프랑크푸르트), Sundaram Tagore Gallery(뉴욕), PERES PROJECTS(베를린), Carl Kostyal(런던) 갤러리 외에도 Albarran Bourdais(마드리드), PIERMARQ*(시드니), Lechbinska Gallery(취리히), SNOW Contemporary(도쿄) 등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갤러리들이 처음으로 합류해 자리를 빛냈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는 총 22개국 206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특히 전체 참가 갤러리 중 3분의 1 이상이 해외 갤러리로, 국제적인 참여도가 더욱 높아졌다. 국내갤러리를 대표하는 국제갤러리(서울), 갤러리 현대(서울), 가나아트(서울), 학고재(서울), PKM 갤러리(서울), 조현화랑(부산), 아라리오갤러리(서울)를 비롯해 서정아트(서울), 드로잉룸(서울), 초이앤초이 갤러리(서울) 등 젊고 혁신적인 갤러리들도 참여해 대작부터 실험적이고, 새로운 작품까지 동시대 미술 트렌드를 모두 볼 수 있는 축제의 장을 완성했다. 글로벌 경기불황에 우려했던 매출 실적도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2021년부터 참가한 독일화랑 이사벨 리젤레스터는 "키아프는 저희 갤러리가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훌륭한 출발점이 되었다"고 했고, 중동에서 온 베이번 갤러리 디렉터는 "서울에서 활기찬 이란 현대 미술을 선보일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보았다"면서 "앞으로도 이란 예술가들이 서울의 주요 미술관과 컬렉터의 소장품에 눈에 띄게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갤러리그림손 최지환 대표는 “극심한 불경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넘쳐나는 관람객의 즐거운 표정과 정신없이 응대하는 갤러리스트의 표정에서 밝은 한국 미술의 미래를 봤다"고 전했다. Sundaram Tagore Gallery(뉴욕)가 선보인 Hiroshi Senju의 Waterfall on Colors(2024)로 약 5억6000만 원(USD 420,000)에 팔렸다. 국제갤러리는 김윤신의 회화와 조각이 조화를 이루는 솔로 부스로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 작품을 2000만 원에서 1억5000만 원에 판매했다. 갤러리현대는 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인 성능경, 이건용,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정상화를 비롯하여 국내외로 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강승, 이슬기, 김성윤 등의 작가와 케니 샤프, 토마스 사라세노와 같이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해외 작가의 작품까지 판매되며 큰 성과를 이뤘다. 올해 새롭게 도입된 모던 및 마스터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그랜드볼룸은 매일 많은 컬렉터들이 방문하여 판매 성과도 호조를 보였다. 금산갤러리에서는 백남준의 대형 오브제 작품이 팔려나갔다. 갤러리 윤에서는 약 1억2000만 원에 판매된 이강소의 대형 작품을 포함해 박서보의 작품 여러 점이 판매됐다. 동산방화랑은 산정 서세옥을 비롯해 운보 김기창, 김호득의 작품이 다수 거래됐다. Mark Hachem Gallery(파리)에서는 Seock Son, Yoshiyuki Miura, Jose Margulis 등 작가별로 다양한 작품이 판매됐고, Art of the World Gallery(휴스턴)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대작으로 주목 받았다. DIE GALERIE(프랑크푸르트)는 키아프 참여 20주년을 기념해 피카소 스케치로 가득한 스페셜 룸을 구성, 피카소와 앙드레 마송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판매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등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배의 대형 회화 작품은 갤러리 비앤에스에서 약 2억6000만 원, 올미아트스페이스는 전광영의 작품을 1억 대에 판매했다. 예화랑은 이환권의 브론즈 조각을 2점 팔았다. 나인갤러리는 4000만 원에 거래된 우병출의 회화 작품을 필두로 여러 점을 추가로 거래했다. 써포먼트 갤러리는 2.6m에 달하는 이인섭 작가의 작품을 1억2000만 원, 맥화랑은 이두원의 작품 9점을 총 1억8000만 원에 거래했다. 솔로 섹션의 옵스큐라는 김호득의 작품을 약 8000만 원에 판매했고, 채성필의 단독 부스를 구성한 갤러리그림손은 솔드아웃을 기록했다. 갤러리나우도 고상우와 김준식 작가의 작품을 모두 팔았다. 에브리데이먼데이는 무나씨의 작품이 솔드아웃됐고, 김희수의 작품이 대거 판매됐다. 더컬럼스갤러리는 김강용의 벽돌 소품 시리즈를 전량 판매했고, 키다리갤러리는 최형길의 작품이 대부분 솔드아웃 되었다. 오션갤러리도 제니박 작가의 작품 10점을 솔드아웃시켰다. 서정아트는 홍순명의 작품을 3000만 원에 거래했고, 김리아 갤러리의 박태훈과 황도유 작품도 각각 1000만 원 이상에 팔았다. '2023 키아프 하이라이트 선정 작가'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갤러리밈은 정정엽의 작품을 4500만 원, Gallery Q(도쿄)는 리정옥의 작품을 약 3700백만 원에 거래했다. 2024 키아프 하이라이트 선정 작가 중에는 디스위켄드룸의 최지원이 솔드아웃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7일 폐막한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 유럽, 미주권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7만 명이 방문, 서울을 미술 도시로 확장 시켰다. 전 세계 46개국 주요 미술관의 큐레이터, 기관 대표와 컬렉터들이 관람하며 도시 전역에서 펼쳐진 미술관 갤러리 행사를 들썩이게 했다. 기대 이상의 판매 실적도 올렸다. 니콜라스 파티의 ‘커튼이 있는 초상화’(약 33억 원)와 게오르그 바젤리츠(약 29억 원), 유영국 (20억 원) 이우환(약 16억 원) 등 첫날 부터 고가의 작품이 팔려나갔다. 올해는 유난히 한국 갤러리와 작가의 선전이 돋보였다. PKM갤러리는 20억 유영국 작품 판매에 이어 정현 청동 조각을 2만 달러에 팔았다. 갤러리현대는 전준호의 작품 7점을 판매해 5억 원 이상의 판매액을 기록했고, 조현화랑도 이배의 작품 10점을 총 7억5000만원 가량에 팔았다. 국제 갤러리는 양혜규, 문성식, 이희준 작품울 잇따라 솔드아웃시켰고, 리만머핀은 김윤신의 작품과 이불의 작품을 각각 2억6000만원, 2억8000만원가량에 판매했다. 타데우스 로팍은 이상소(2억5000만원), 이불의 작품을 19만 달러에 팔아치웠다. 개막 첫날부터 성공적인 판매 실적을 기록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끌어 낸 해외 갤러리들은 도시 전역에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했다며 내년 프리즈 서울 참여 의사를 미리 밝히기도 했다. 프리즈 서울 디렉터 패트릭 리(Patrick Lee)는 '서울을 글로벌 미술 도시'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표했다. “올해 프리즈 서울은 전 세계 예술 캘린더에서 중요한 행사로서 그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며 "앞으로 프리즈 서울은 더 생동감 넘치는 프리즈 서울의 미래를 고대하며 '프리즈 서울 2025'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키아프리즈'로 합체된 5년 간 계약은 유명무실해졌다. 프리즈 사이먼 폭스 CEO는 “런던에서는 20년 넘게, 뉴욕에서는 10년 넘게 프리즈를 열고 있다. 우린 한 도시에서 아트페어를 시작한 뒤 중단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도 10년, 20년, 50년 계속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프리즈는 서울에서 계속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키아프는 내년 한국화랑협회장 선거로 프리즈와 1~3회를 치른 황달성 회장의 임기가 끝난다. 키아프가 5회를 마치고도 프리즈와 같이 하느냐, 독립하느냐 문제가 남아있다. 황달성 회장은 공약으로 내세운 키아프의 해외 진출을 추진한다. "내년에 시카고 엑스포와 함께 펼치는 키아프에는 25개 화랑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2024/09/09
김택상 "포스트 단색화가? 난 한국적 추상미술 3세대" "나는 '김택상다운 그림'을 그릴 뿐이다." 화가 김택상(65)은 의외였다. 맑고 옅은 조용한 그림과 달리 '반항아 기질'을 보였다. 지독한 탐구주의자였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가 렛잇비(Let It Be)에요. 내버려 두면 되거든요. 제 작업에 비밀이 있다고 한다면 '렛잇비'입니다." 26일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그는 4년 만에 신작 '플로우(FLOW)'시리즈를 선보였다. "감동이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고 강조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김택상은 '물 빛 회화 Breathing Light' 연작으로 유명하다. 빛과 색을 물로 담은 '스밈의 미학'으로 국내외 컬렉터를 사로잡았다. 물을 머금은 은은한 색의 작업은 '숨 쉬는 빛의 회화'로 각광받으며 '단색화 후세대 대표 작가'로 꼽혔다. 스며드는 물빛의 명상적인 작업과 달리 신작 '플로우'는 '발광의 미학'이다. 머금은 빛을 마치 '폰딧불이'처럼 발현 시킨다. 어둠 속에 연출한 플로우 연작은 핀 조명을 받아 '은은한 빛무리'로 빨아들인다. 보는 순간 시공간에 떠있는 무중력 상태로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색을 쓴 그림일 뿐인데, 무슨 현상일까? '타임 오딧세이(Time Odyssey)'를 전시 주제로 빛과 색의 다차원적 경험을 선사하는 그의 세계관을 들어봤다. ◆어릴 적 꿈? 천문학자·축구협회장 장래 희망이 천문학자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는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시절 내 손가락에 피를 내서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완전 신세계였다. 동시에 별빛 가득한 하늘을 보며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광대한 우주에 흠뻑 빠져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2학년까지 수학을 잘했는데 그림이 좋았다. 선생님도 그림을 그려라 하더라. 그러나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지나서는 축구를 좋아해 축구협회장도 되고 싶었다. 운동을 하게 되면 몰입하게 된다. 그림 그리는 거랑 똑같다. 호기심이 많고 몰입을 잘 한다. 빨리 결과를 얻고 싶어하지 않는다 기질적으로. 기다리는 것을 잘한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바라는 것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관심 있는 것은? 지금, 그리고 현재다. 작업도 미리 계획을 세워 놓기보다 그때 그때 몰입해서 들어간다. 계획 없이 작업 했을 때 날 것들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이 색을 쓰고 싶다, 이 색이 더 좋겠다, 이렇게 넣는 것이 좋겠다 하는 계속해서 올라오는 무엇이 있으면 그것에 충실한다. 그렇게 계획 없이 했었을 때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미리 기획해 놓은 것은 결국 머리가 기획하는 것이다. 사실 머리에서 결정을 해서 판단해서 행하는 일들은 전부 다 과거에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을 통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뻔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날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주변 예술가들을 관찰했을 때 홍상수 감독도 그렇게 일을 하더라. 미리 대본을 주지 않는다든지, 촬영할 장소를 미리 정해 놓지 않고 하는…이런 전략이 결국 날 것을 뽑아내기 위해서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간 소묘를 했고 사실적인 그림을 연습해온 사람이다. 똑같은 것을 그리는데 너무나 능숙하다. 다큐멘터리 방법론을 쓰는 감독들을 통해서 나도 이런 맥락에서 작업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린 것이 10년 정도 됐다. ◆개인전 제목 '타임 오딧세이'는? 어릴적 꿈처럼 어느 순간 내가 그림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주라는 무한 공간을 탐험하며 미지의 세계(그림)를 발견해 가는 여정을 전시로 풀어내고 싶었다. 내 작품에서 은은한 빛 무리가 나오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작품의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번 전시 제목 '타임 오딧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인 스탠리큐브릭의 영화 '2001 Space Odyssey'에서 영감을 받아 정했다. 작업 중 새로운 행성이나 성운과 같은 느낌의 작업이 나오면(발견하면) 마치 천문학자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해서 그 행성의 이름을 명명하듯이 나도 그림에 마치 새롭게 발견한 행성처럼 PlanetA16(예)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Planet는 행성을 의미하고, A는 August(8월)의 줄임말 A이고, 16은 발견된 날짜를 의미한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공간 전체로 확장한 이번 전시는 다양한 은하들에 공존하는 우주의 오로라들을 작품으로 옮긴 듯한 ‘작품을 타고 떠나는 행성 여행’을 보여준다. ◆투명한 스크린 같은 '플로우' 신작의 비밀 물로 작업하는 것은 이전과 동일하다. 평면 캔버스인데 비밀이 있다. 공개하지 못할 영업 비밀은 아니고, 일단 캔버스는 내가 개발했다. 브라켓도 개발을 했다. 내가 원하는 작품을 위해서다. 물론 나 혼자 개발한 것은 아니다. 동료 작가 중에 이진우 작가가 있는데, 그의 절친 중에 섬유 전문가가 있다. 내가 재료를 갖고 고민 고민하는 걸 보고 연결해줬다. 그래서 4년 전에 만나서 상의를 하고 (빛이 발광하는)캔버스 개발을 시작했다. 4년 동안 고생 끝에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만들 수 없었다. 대형 작품을 선호해서 폭이 270cm는 나와야 했다. 개발자가 지난 수 년 간 중국을 오가고 내가 또 수 없는 실험 과정을 거쳐 작년에 비로소 만들었다. 돈도 억대가 들었다. 나한텐 R&D예산이다. 지금은 아주 편안하데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 캔버스가 나왔기 때문에 이번 신작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곰팡이 방지 처리까지 했다. 내가 쓰는 천은 사실은 '수채화 용 캔버스'다. 일반적으로 수채화용 캔버스가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왜냐하면 캔버스라고 하는 것은 원래 서양에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물감이 얹혀지는 데 특화돼 있는 재료로 스미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을 했고 결국 찾아냈다. 이번 빛을 내는 캔버스 사용은 내가 국내 최초다. 보다 많은 작가들이 쓰면 좋겠다. 발색이 너무 좋다. ◆'빛의 발광'…내 색은 구조색과 관련 있다. 이 세상 있는 색은 색소색과 구조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색소색은 나팔꽃을 문지르면 색소가 나온다. 이게 물감이다. 구조색은 구조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색이다. 나비 날개의 휘황찬란한 색깔, 앵무새의 색, 전복 색 등 아무리 문질러도 색소가 나오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체 구조가 있다. 투명한 구조들에 빛이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서 빛의 회전 굴절 난반사를 통해서 무지개 빛이 나오는 거다. 원래 거기에 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구조색을 알게 된 것은 어릴적부터 물색, 하늘색, 우주색, 황혼색에 마음을 뺏겼다. 구조색을 박서보 선생은 '공기 색'이라고 표현했다. 무지개는 물방울 수증기가 하늘에 떠 있다가 빛의 굴절로 만들어진다. 내가 관심 있는 색들은 손에 안 잡힌다. 원래 작가들은 개념이 앞서는 사람이 아니다. 감각적으로 먼저 끌린다. 왜 이렇지? 라고 가슴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올라가 분석을 시작하는 게 실험이다. 재료를 찾고 나를 감동시켜서 이미지를 찾고 구체화 되는 것. 그리고 나를 감동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내 작업은 그런 프로세스를 통해서 나온다. ◆몰입 속 철저한 전략과 전술 몰입을 해서 특별한 계획 없이 들어간다는 것은 작업 과정에서 몰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런 계획 없이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를 예를 들면 영화과 교수가 제자한테 만들어온 작품을 같이 보면서 '그냥 놔둔다고 자연스런 작업이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한다. 생각해 봐라. 서커스 하는 분들이 공을 돌릴 때, 관객에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수많은 연습과 힘든 과정이 없이는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오지 않는다. 내 작업도 똑같다. 퀄리티의 문제다. 감동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다. 당연히 철저한 전략과 철저한 전술로 나온다. 보여지는 전시에서 모든 하나하나의 요소는 철저하게 계획된 거다. 필요 없는 건 다 제거한다. ◆후기 단색화가? "관심 없다" 오해가 무진장 많은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단색화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후기 단색화라고 얘기 한 적도 없다. 미술사가들은 당대의 미술 현상을 카테고리화 한다. 시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리하는 거다. 하지만 나 김택상은 내가 단색화에 속하는지, 담화에 속하는지 관심 없다. 반면 이런 염려와 걱정은 있다. 한국 미술계에 서식하는 작가로서, 더 잘 됐으면 좋겠고 글로벌화되길 바란다. 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단색화 사조는 한국미술상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브랜딩 된 거다. 우리는 철저한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 작가로서 경쟁하면서 산다. 국제 미술계에서 우리 한국 미술은 단색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1세대 윤형근 박서보 선생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산 작가다. 시대 정신도 다르다. 치열하게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 이전 세대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일때 열등감과 함께 '나는 누구인지' 질문을 던졌을 거다. 한국성에 천착했을거다. 작가는 원래 독립적이다. 당대에 우리는 무엇이지? 했던 것처러 단색화는 집단적인 행동이다. 나도 그때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후진국을 거쳐 중진국, 선진국까지 경험한 유일한 세대다. 근본적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내가 40대인 2000년 초에 인터넷이 등장했다. 축구로 전 국민이 세계에 '대한국민'을 알렸고 경제발전이 이뤄졌다. 역동성이 생겼다. 원래 한국 문화에 있었다. 역동성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 '케이 컬처'로 발전했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스스로에 문화적 자긍심이 부족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후진국에서 선진국까지 다 경험한 당사자로서 이제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문화적 자긍심을 제대로 찾아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예술 분야 종사하는 작가들은 그런 근본적으로 자긍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김택상은? "한국적 추상미술 3세대" 나는 한국적 추상미술이라는 틀로 봐야 한다. 근대미술관이 만들어지면 한국적 추상미술 계보를 만들어야 한다. 김환기, 유영국이 1세대, 윤형근, 박서보, 하종현이 2세대, 그리고 내 세대가 3세대다. 포괄적인 정리가 이뤄지면 한국적 추상미술의 1세대, 2세대, 3세대의 계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담론이 풍성해진다. 추상화를 하는 내 작업만 해도 선배 세대와 관계성이 있다. 김환기, 곽인식 작가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나하고 비슷한 감수성을 갖고 있네'를 단박에 안다. 유영국 선생과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유영국 선생은 색을 서늘하게 잘 쓴다. 풍토와 연관이 있다. 나도 강원도 출신으로 추운 지역에 살다 보니 색을 서늘하게 쓴다. 어떤 분이 '그 지점을 자꾸 윤형근과 연결시켜서 이야기 하지만 유영국과도 관계가 있다며 그쪽으로 전시나 크리틱을 해보면 재미난 이야기꺼리가 나올거야'라고 말하는데 단박에 동의되더라. ◆한국 근대미술 출발 "겸재 정선 선배 가장 존경" 겸재 정선 선배님을 존경해 마지 않는다. 한국의 근대미술의 출발을 겸재 정선으로 본다. 서구의 근대는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시작됐다. 왕권 시대에서 시민 개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난 계기였다. 한국의 근대는 혹자는 일본의 의해서 대리 근대화됐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근대는 '인라이트먼트(Enlightenment)', 내 안에서 불이 켜지는 것이다. 나는 누군인가하는 내 안의 자각이다. 나는 왕의 백성도 아니고 귀족의 머슴도 아니고 완전한 인격체로서 한 시민으로 인권과 자유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미술분야에서 겸재 정선이 실경산수를 그렸다. 이전엔 관념산수였다. 당시 중국은 현재 지금 미국과 같은 존재였다. 관념산수 시절에 겸재는 내 몸뚱아리가 있는 주변, 이 땅을 그렸다.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나. 그래서 나는 겸재 선배님을 한국의 근대미술의 출발로 보는 거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하나씩 써나가야 할 시점이다. 조그마한 성취도 격려하고 칭찬하고 다독거리는 사회 분위기. 그 속에서 서로 힘 받아서 앞으로 치고 나가는 분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긴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기른 머리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기질과 상관있다. 대학생때 장발 단속을 당했다. 길에서 잡혀 머리를 깎였다. 장발 단속을 당하면서 경찰 서장하고도 많이 싸웠다. 내가 이렇게 살고 싶은데 왜 그러지? 아버지도 남자가 왜, 머리가 그게 뭐냐고 혼을 냈다. 그래서 머리 역사를 공부했다. 짧은 머리는 나폴레옹시대때 나왔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병사들의 머리가 이가 드글드글했다. 전쟁을 위해 머리를 자른 거다. 조선은 원래 상투를 틀고 머리를 길렀다.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서 단발령 때문에 머리가 짧아졌다. 그게 지금까지 굳어 진거다. 그래서 공부를 해서 갖고 다닌거다. 당신들이 얼마나 무식한가 봐라. 그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박해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단히 의식화됐다. 사회과학, 인류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계속 물고 들어가서 탐구하고 파고 드는 스타일이다 보니 지금의 이런 작업을 하게 됐다. ◆'물 작업 회화' 배경 재미있는 것은 제 사주에 물이 부족하다. 우습게 들었는데 사주는 통계학이다. 10여 년 전 우연히 산을 갔는데 '선생님 물이 부족하세요 물 장사를 해야 된 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물 장사'를 하고 있더라. 사주가 터무니 없는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내가 딸을 좋아한다 물 수가 많다. 하하. ◆빛 작업은? 구조 색과 관련된 것인데, 구조 색을 구현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색을 쫓아가다 보니 방법론적으로 결과 되어진 거다. 작가들은 행동이 먼저 인 사람이다. 플로우 신작은 빛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블랑켓을 썼다. 벽에 띄운 이유는 비존재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이렇게 작업하는 작가가 아니쉬 카푸어다. 핀 조명은 맞는 작업이 따로 있다. 내 작업은 구조색이라 발광하는 느낌을 낼 수 있다. 표면 아래는 입자가 납작해보이지만 대단히 많은 구조가 시간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미세 공간에 빛이 들어가는거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고려해서 나온 거다. 바탕에 칠한 건 아크릴 물감이다. 하지만 액상화된 물감을 쓰지 않는다. 물로 희석을 한다. 양동이에 물을 넣고 안료(물감)를 물로 해체한다. 중력에 의해서 입자들(알갱이)이 가라앉은 것을 쓴다.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 등 단색화가들의 수행적 방법과 같다. 한국문화적 밈이다. 우리가 색을 다루는 방법이다. 고려청자에서 시작됐다. 청자는 내가 색을 다룬 방법과 똑같다. 고려청자의 비색이 나오는데 '아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선조들의 방법과 다르지 않구나'를 알았다. ◆'빛 작가' 제임스 터렐과 차이는? 빛을 다룬다는 입장에서는 같다. 하지만 터렐과 나는 기질이 다르다. 나는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게 삶의 지표다. 서양 작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나는 애초에 안 한다. 차이는? 수련과 공력이 필요하다. 기계를 활용해서 3m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나 장인이나 무술가들은 수련을 통해서 일반인은 못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맞는 근육이 만들어진다. 나는 그 쪽이다. 제임스 터렐은 3차원의 빛을 3차원적 방법으로 보여준다. 나는 3차원의 빛의 문제를 2차원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원리냐면 고차방정식을 차원을 낮춰 초등생이나 유치원생에 이해시키는 것과 같다. 상당한 공력이 필요하다. 대학생이 고등학생을 이해시키는데는 가능한데, 유치원생을 이해 시키려면 특별한 노하우와 공력이 필요하다. 동북아시아 특징이라고 본다. 1세대는 그걸 '수행'이라고 했다. 내 작업은 빛을 다루긴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봤을 때 터렐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질이 아니다. 그 지점에서 터렐과 차별성이 있는데 돈이 덜 든다. 또 쓰레기는 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전시 하는 이유? 감동은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상황, 새로운 어떤 무엇을 맛을 봤는데 정말 처음 보는 맛을 봤을 때 우리가 감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갖고 있는 매커니즘이다. 감동을 받게 되면 그 다음 프로세스가 그걸 나누고 싶어한다. 이거 먹어 봤어? 거기 가봤어? 그렇게 진행이 된다. 나도 똑같다. 그러니까 내가 실험하고 시도한 일이지만 나에게 감동이 있었을 때 나도 감동을 받는다. 그랬을 때 그것을 나누고 싶어진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진짜 세상의 조그만 아름다운 조각`들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같이 나누면 더욱 행복해지니까. ㅡ리안갤러리 서울은 김택상 개인전 '타임 오딧세이'전을 세계 미술인들이 집결하는 키아프-프리즈 기간에 맞춰 선보인다. 전시는 오는 9월4일부터 10월19일까지 열린다. 2024/08/27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서도호 상상은 현실이 된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서도호'가 서울에 출현했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s)’로 등장한 서도호(62)는 청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민 머리와 바싹 마른 몸의 자태로 수행한 스님 같기도 했다. 그의 화두는 '만약에(What If)’.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술적 상상력이 힘으로 어쩐일인지 세계 각국 미술관들이 러브콜한다. "다른 세계들을 상상하게 해주는 급진적인 잠재력이 사변적 사유에 있다고 믿는다." 영국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세계적인 K아트 설치미술가인 서도호는 올 한 해 유난히 진격하고 있다. 상반기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워싱턴DC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데 이어 하반기에는 한국에서 아트선재센터, '프리즈 서울'에서 전시를 선보인다. 내년 5월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거장은 혼자 작업하지 않는다. 서울 전시는 LG OLED와 코오롱스포츠의 협업으로 무장했다. LG OLED와 작업은 오는 9월4일 개막하는 '프리즈 서울 2024 아트페어'에서 한국 수묵 추상의 창시자'인 아버지 故서세옥(1929~2020)을 오마주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아트선재센터 전시는 코오롱스프츠가 동참, 그의 상상을 이뤄냈다. 16일 아트선재센터에서 20년 만에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회견은 성황을 이뤘다.(2010년 리움미술관 개인전 이후 14년 만의 국내 대규모 전시다) 2003년 아트선재센터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열고 이름을 알린 그는 한옥으로 분신했다. 성북동 한옥집서 살던 기억과 공간이 현실로 뛰쳐 나왔다.뉴욕 고층 아파트에 한옥을 올리는가 하면, 허공에서 떨어진 별똥별처럼 한옥이 공동주택에 박히기도 하고, 영국 런던 고층 빌딩 사이 육교에도 한옥을 세워 이주민의 향수병을 자극한다. 천’으로 지은, 이동 가능한 ‘집’까지 만들어냈다. '완벽한 집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미국 뉴욕으로 다시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유목민적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날 단독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진지하게 말을 풀어냈다. 서도호에 질문하고 답한 대화를 그대로 전한다. ◆전시 제목이 국문으로 사변적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큘레이션스'다. 사변적 사유의 작업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사변적 사유'라는 제목이 한글로는 어려운 제목일 수 있다. 쉽게 풀어서 말씀 드린다면 '만약에'라는 설정을 하고,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해 나가는 작업 과정이라는 뜻으로 '스페큘레이션스'라는 영어 제목을 붙였다. 제 작업 대부분이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작품이 된다. 잘 아는 '천으로 만든 건축물'들, 그것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서 작업이 전개가 됐다. 예를 들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로 작업이 발전이 된 거다. '만약에', 영어로 다시 이야기를 하면 왓 이프(what if)라는 전제로 상상을 시작 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작품들을 구상 할 수 있게 되더라. 상상의 날개를 펴다 보면 중력의 지배를 받는 3차원 세계 안에서 만들 수 없는 그런 작품들까지 구상을 하게 되는데 그런 거를 스케치북 안에 그림을 그려서 계속 가지고 있었다. 스케치북에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게 1991년이다. 제가 미국으로 처음에 유학을 가서 사용하기 시작한 스케치북 그 포맷을 지금도 쓰고 있다. 그 안에 계속 생각나는 것을 일기를 쓰듯이 그림을 그리고 기록을 해 왔다. 대학 졸업을 하고 작가로 데뷔를 해서 작품을 세상에 공개를 하고 전시를 하다 보니까 어떤 경험을 하게 됐냐면, 관객 분들 입장에서는 작품 한 점 보고 그다음 작품을 보려면 1년, 2년을 기다렸다가 보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큰 규모의 작품들이 주다 보니까 작품 하나 만드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니까 전시를 다른 작가들만큼 자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평론가든 큐레이터들이 저희 스튜디오에 와서 많이 놀란다. 전시회에서 보여주는 거 외에 굉장히 다른 것들이 스튜디오에서 진행이 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프로젝트들을 저만 가지고 있으면 관객 분들은 영원히 모르시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거를 어떤 형식으로 시각화 해서 같이 나눈다면 띄엄띄엄 제가 보여드리는 작품 사이에 빈 갭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제 작품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더 쉽게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2003~2004년경부터 스케치북에 담아뒀던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라는 가제를 가지고 시작을 한 15개 정도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프로젝트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고 있다가 지금 많이 모여서 이번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를 하게 된 거다. 그런데 전시장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은 예를 들면 건축가의 전시를 가본 경험이랑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거다. 제가 건축가들 전시에 가서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실제 큰 건축을 전시장 안에 가지고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모형을 만드는 거다. 축소된 모형이 있고 구상을 했는데 실패한 프로젝트도 모형으로 나오고, 드로잉을 하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런 식으로 따서 건축적인 스케일 모델 다음에 드로잉, 다음에 애니메이션들을 제 아이디어로 표현을 한 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처음에 시작했을 때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프로젝트라고 생각 했는데 시각화 하고 만들어 놓으니까 그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이 오더라. 이번 전시장에서도 아마 한 3분의 1 정도는 그때 만든 작품들이 실제로 들어가 있다. 물론 제가 최초에 구상했던 거랑은 조금은 다르지만 스페큘레이션스 안에 있었던 아이디어들이 나중에 현실화가 된 것들이 이번 전시에 포함이 됐다. ◆건축적 작업들의 개념, 이주민으로서 불완전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작업의 목적성 지향성은 무엇인가? =사실 목적성이 없다. '브릿지 프로젝트' 예를 들면 제가 항상 이동이 가능한 작품을 전시를 전제로 생각을 할 때는 종착역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고 한다. 제 기본적인 태도다. '브릿지(다리)프로젝트'를 보셨겠지만 서울에서 북극점까지의 어떤 다리를 만드는 작업이다. 저한테 제일 중요했던 집, 세계도시 제일 가운데에 '퍼펙트홈', 완벽한 집을 짓겠다는 그런 설정을 하고 사유를 하기 시작한 작업이다. 사실 서울에서 북극점까지의 거리가 굉장히 긴 거리다. 비행기를 타도 몇 시간을 타고 가야 이동할 수 있는 그런 거리인데, 빠른 이동을 생각한 게 아니라 발로 걸어서 도보로 이동을 하는 거를 전제로 했다. 그래서 가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다. 너무 길이 멀어서. 사실 '퍼펙트 홈'이라는 건 핑계고 여정, '서유기'를 읽는 경험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천축'이라는 목적지를 설정해 놓고 가는 과정에 일을 풀어놓은 것이 '브릿지 프로젝트'다. 도보로 걷는다면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긴 여정 중에 환경 문제도 부딪혀서 그걸 공부하게 되고 북극해가 얼음으로 덮여 있고 춥다는 것은 다 알지만, 그게 유기물로 이뤄져서 그 안에 해류가 있어서 한 방향으로 한 참 돌다가 2년 후에 반대 방향으로 도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장소이고 집을 지을 수가 없는 곳이다. 계속 돌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다 집을 짓겠다는 신념을 세우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또 배운 것이 그 사람이 살기가 힘든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원주민들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주민들은 저희랑 피가 섞여 있는 분들이다. BBC 다큐를 딸들이랑 보는데 '아빠랑 똑같은 사람이 나오네' 그러더라. 그 순간에 5000km가 단축이 되면서 집 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됐다. 그러니까 묘하게 서울의 집 생각을 더 하게 됐다. 북극에 집을 짓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서울의 집을 더 생각하게 되고 ‘과연 우리한테 집이라는 게 뭔가, 과연 이게 우리가 물리적으로 서울에서 사는 집을 떠난다고 하면 서울에서 사는 집은 우리한테 존재하지 않는 건가? 하는 묘한 경험을 했다. 북극은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분쟁의 여지가 많은 지역이다. 수많은 자원이 북극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은 '공해'다. 유엔의 법규를 찾아봤더니 '공해'에는 나라를 설립할 수 있더라. 유엔에 전화했다. 하하. '지금 집을 지을려고 하는데 나라로 선포할 수 있느냐' 했더니 '잠깐 기다려봐라' 하더라. 다시 전화를 해 알아보니 현실적으로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데 법적 제약이 많은데 일일이 설명하긴 그렇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좌충우돌하면서 신문 언론이나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 조금 심화된 정보와 지식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공부하는 게 사실은 목적이다. 제가 장황하게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드렸는데 이 목적 자체가 없는 프로젝트인데 또 모순적으로 서울과 북극을 잇는 다리를 지을 수 있다. '돈 만 있다'면 그 안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신념, 자기 최면을 걸면서 하는 프로젝트다. 결론적으로 종착역은 없다. 완전히 오픈된 프로젝트다. 10년 전에 런던에 이사를 가기 전 뉴욕에서 살 때 서울하고 뉴욕 사이를 잇는 다리를 짓고 그때는 태평양에 완벽한 집이 올라가게 됐었다. 당시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렇게 까지 심화된 프로젝트를 할 줄 몰랐다. 지금 이 프로젝트는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계속 발전이 될 거다. 이번 전시 버전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데 캠브리지대학 철학과 교수님, 미국 라이스 대학교 구조공학과 대학생들과 교수님과 같이 협업을 했고 지금은 북극해 근처에 사는 원주민 전문가 휴고 브로디라는 전설적인 인류학자와 작업한다. 원주민의 목소리를 그분을 통해서 듣는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고 있다. 또 물방울로 다리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박테리아가 어떤 방울을 만들어서 부력을 가지는 어떤 구조체, 생물학적인 다리를 지으면 어떨까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건축가와 동시에 생물학자가 보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해서 이것도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여튼 그런 식으로 일이 많이 번지고 있어서 제 스튜디오에 오면 여~러가지가 많이 진행이 되고 있다. 그래서 화랑이랑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은 내 작업의 빙산의 일각이다. 건축물, 생활용품 등 '천 작업'이 저를 대표하는 작품처럼 됐지만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이다. 사실은 '아트선재 스페큘레이션' 같은 작업이 내 머리에 꽉 차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어떤 점을 느끼고 경험 했으면 하나? =사실 제가 통계적인 숫자는 모르겠지만 서울 인구에서 서울 토박이는 많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주는 너무나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다. 제 작품들의 대부분은 저의 자전적인 그런 성격이 크다. 제 경험이 많은 분들의 경험을 대변할 수는 없다. 100% 제 작품이 관객들이랑 소통할 거라는 그런 전제도 하지는 않고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묘한 게 자라난 환경이나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도 제 작품에 대해 공감을 하시는 거를 경험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특별하게 한국 사람이라서 어떻고 또 외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르고 그런 건 것 같지는 않다. 제가 작가로서 전문적으로 활동을 한 지가 한 30년 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인종과 국가, 성별을 초월한 아주 기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그런 코드가 제 작품에 있지 않나'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옥 집을 천으로 만들어 영국에서 전시 하면 한옥은 영국 사람한테는 너무나 낯선 건축 구조물이다. 한 번도 보지도 않았고 들어 가보지도 않았던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앞에서 우는 분들도 계신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공감하는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 작품들속에 결이 다른 '사천왕사를 위한 제안'이라는 작품을 흥미롭게 봤다. 종교 유적지고 지금 터만 남아 있는 불교 유적지다. 사천왕사 터를 관심 있게 생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또 실제 유적지 건설하는 것을 염원한다고 했는데 사천왕사 터에 이 작품을 실제로 설치할 계획이 진행 중인가? =사천왕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전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와 프로젝트를 몇 번 하면서다. 2012~13년에 덕수궁을 주제로 한 전시가 있었다. 당시 김 학예연구사가 저를 초대했는데 그때 저는 함녕전, 고종의 침실을 골라 거기에 설치 작업을 하게 됐다. 함녕전에 대해 리서치를 하다가 고종이 거기서 뭘 마시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궁녀인 신분이 나중에는 후궁처럼 되셨다. 70년대에 살아계신 조선조 말기 궁녀나 내시 분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책이 있었는데 거기에 있는 한 줄의 글이 나온다. '고종황제가 밤에 주무실 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보료 세 채를 놓고 주무셨다'. 그 한줄을 가지고 함녕전 프로젝트도 풀어 나갔다. 그것도 사실은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종 황제가 시카고 박람회 때 여러 가지 물건을 기증을 했는데 그때 보료가 있었다. 시카고 박물관에 연락을 해서 보료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연결이 안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알고 있는 김 학예연구사가 삼국유사에 나온 이야기를 추적해 알려줬다. 문무왕 때 당나라가 신라로 쳐들어오는 거를 알고 있었다. 이미 서해에 당나라 해군이 몇백 척이 몰려와 있었다. 준비할 틈이 없어 회의를 열고 고민을 했는데 그때 명랑법사라는 고승을 불렀다. 명랑법사가 시간이 없으니까 화려한 색의 비단을 가지고 절을 지어서 기도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12명의 유명한 스님을 모셔서 기도를 한 모양이다. 실제로 이것은 역사에 남은 건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풍랑이 불어서 다 가라 앉아 당의 침공이 무산이 된 거다. 그 이후에 거기다 실제로 절을 지은 게 사천왕사다. 사천왕사 작업은 김 학예연구사가 그 한 줄을 보고 저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작업이다. 현장에 가서 남은 사적지를 봤는데 아이러니컬한 게 사천왕사 사적지가 다 흙으로 덮여 있었는데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발굴한 거더라. 철도를 내기 위해서 서브웨이를 하다가 발견이 됐던 거로 기억을 하는데, 철도가 사실 가로질러 가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지은 터에는 대웅전 법당 자리도 있고 그 앞에 또 자리도 있다. 지금 학계에서도 어떤 용도의 자리였는지 모르는 터가 쌍으로 남아 있는 거다. 기록에 많이 남지 않았지만 스님들이 모여서 하신 그런 의식이 '문두루', 그러니까 고대 불교의 한 유파인데 그런 비법을 이용을 했다고 그러는데 나도 그것에 대해 리서치를 했다. 이 역시 스페큘레이션스, 그러니까 항상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의 저변에는 리서치가 기반이 된다. 그러나 리서치를 하고 항상 한계에 부딪친다. 고종 황제 때도 자료가 하나도 안 남아 있다. 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고 몇천 년 전 이야기니까 자료가 안 남았다는 게 한계이기도 하지만 아티스트한테는 상상력을 마음대로 발휘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사실 제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그게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다. 왜냐면 자료가 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래서 굉장히 자유스럽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그런 스타일 때문에 제가 스페큘레이션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사천왕사에 대한 논문이라는 논문은 다 읽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남은 자리는 천을 만든 구조물이 서 있을 때가 아닌 거다. 왜냐면 대웅전은 이미 그 이벤트가 끝난 다음에 지은 거기 때문에. 그런데 제일 문두루 비법을 행했을 장소가 그 2개인 것 같아서 거기를 제 버전의 천, 비단으로 만든 사찰의 형태를 만든 거다. 사실 실제로 작품을 설치하려고 문화재청에 연락해 당시 문화재청장도 보고 작업을 만들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그래서 그때 그냥 흐지부지됐다. 그렇지만 제 바람은 스페큘레이션스에 있는 모든 프로젝트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 그러면 이루고 싶은 것들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작품도 인연이 닿아야 한다. 장소, 시간, 사람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제 태도는 일단 가지고 있으면 인연이 닿으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아트선재서 20년 만의 전시, 2003년 전시와 무엇이 다른가? 작가가 생전에 한 미술관에서 두 번 전시를 하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좋은 후배 작가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생전에 두 번 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 김선정 전시감독이 전시 하자고 했을 때 흔쾌히 한 이유가 몇 가지가 있다. 하나가 우리가 2003년에 하고 20년 시간이 지났는데 둘이 어쨌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미술계에 아직 남아서 한 분은 큐레이터를 계속 하시고 저는 지금 계속 작품을 하고 그래서 그게 참 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2003년 전시 때는 전시 공간의 물리적인 조건을 굉장히 많이 고려해서 작품을 했다. 그때 아트선재라는 공간을 완전히 제가 소진을 했다. 진이 빠지도록 공간을 들여다보고 연구를 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그런 것을 떠나서 자유롭게 전시한 게 차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는 선정 씨랑 우정(friendship)ㅡ같은 길을 걸어 온 동료로서 '전시를 함께 한다'는 의미가 큰 전시다. 1시간 가량 서도호는 대본 없는 '사변'을 순수하게 토해냈다. 지독한 탐구자이자'사변가라는 것을 증명한 자리였다. 불가능할 거 같은 예술가의 상상력이 구현되는 게 놀랍다고 하자 그도 "만들어 지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이미지가 넘치는 메트릭스 같은 세상에서 마르지 않는 수공예적 아이디어 때문에 스튜디오 직원들이 고생이 많다. 그가 "아이디어 새로 나왔어. 이것 좀 이야기하자"고 하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건축가, 생물학자, 공학가, 인류학자 산업디자이너 등과 작업하며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모형과 도면, 영상 등을 제작하는 그는 '21세기 다빈치'같다. 복잡하고 미묘하고 끈질긴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20년 만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여는 개인전은 스페큘레이션화 된 그의 머릿속을 풀어놓은 듯하다. 그의 유명한 작업인 '천으로 만든 집'은 없지만 엉뚱한 상상력이 빛나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인 '공인들'(1998)을 키네틱 버전으로 마침내. 구현해 최초 공개한다. '우리는 누구를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해야 하느냐'를 묻는 '공인들'은 지난 4월 말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 미술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정원에 설치됐다. 초록 잔디를 밟고 두 손을 번쩍 들어 동상을 떠 받치는 군상, '공인들'의 놀라운 힘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 나온 '공인들'은 분주하다. 원작 6분의 1 크기의 움직이는 버전의 이 작품은 고정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동상의 성질에 도전한다. 300명의 작은 인물들이 '정렬의 힘'으로 동상대를 이동시키고 있다. 집이 고정된 개념이 아니듯, '서도호'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열정 많은 이주민으로, 보이지 않는 사유의 전략가로 이 세계를 조금 더 세밀하게 보여주는 욕심이다. 동상 밑에서 상생하며 촘촘하게 움직이는 '공인들'은 '서도호 세계관'의 기둥으로 보인다. 전시는 11월3일까지. 2024/08/17
어떻게 살고 싶어요?…'58채 집 이야기'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 '집’은 결국 우주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집에서 시작된다.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도 이제 텃밭 있는 주택으로 집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집이라는 공간의 소중함이 새삼 부각됐다. '미드센츄리 인테리어', '식물테리어'가 떠오른 배경이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 사는 것이 달라진다.' 공간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을 찾는 추세 속 주거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펼쳐 더욱 주목된다. 과천에서 선보인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로, 가족제도와 생활양식 변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집과 건축의 이야기다. 2000년 이후 동시대 한국 현대 건축과 도시 속 다양한 주거 방식과 미학적 삶의 형식을 조명한다. 30명(팀) 건축가의 58채 단독·공동주택을 소개한다.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는 총 6개 주제 '58채의 집 이야기'롤 선보인다. '선언하는 집’,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관계 맺는 집’, ‘펼쳐진 집’, ‘작은 집과 고친 집’, ‘잠시 머무는 집’ 등으로 나눴다. 참여하는 건축가는 승효상, 조민석, 조병수, 최욱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성 건축가부터 양수인, 조재원 등 중진, 그리고 비유에스, 오헤제건축 등 젊은 건축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이들은 집을 통해 가족 구성원 및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기후위기 등 점점 빠르게 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질문한다. 특히 '아파트 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한국 사회에서 대안적 선택으로 자리 잡은 집들을 통해 삶의 능동적 태도가 만든 미학적 가치와 건축의 공적 역할을 전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집’을 통해 삶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전시”라며 "현대미술의 장르 확장과 함께 건축예술과 삶의 미학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펼쳐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선언하는 집’ 공간 개념과 형식을 강조하는 집이다. 집 내외부의 공간 경험을 극대화하고, 건축 요소들이 일상 활동에 집중하기보다 심미적인 측면에 맞춘 특징을 드러낸다. '수백당'(승효상, 1999-2000), '땅집'(조병수, 2009), '축대가 있는 집'(최욱, 2006-2022), '베이스캠프 마운틴'(김광수, 2004)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가족의 규범이었던 4인 가족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반려 개념을 재구성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홍은동 남녀하우스'(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2018), '고개집'(양수인, 2016), '정릉주택 & 지하서재'(조남호, 2018), '맹그로브 숭인'(조성익, 2020) 등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요즘 사람이 아닌 동·식물과 함께 사는 집, 3대가 함께 사는 집, 1인 가구를 위한 집을 만나볼 수 있다. ◆‘관계 맺는 집’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를 상상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로 더불어 살아가는 집짓기 실천에 주목한다. '대구 앞산주택'(김대균, 2008), '써드플레이스 홍은 1-8'(박창현, 2020-2024), '이우집'(박지현+조성학, 2023) 등 단독주택이지만 그 안에 회합의 장소가 있는 집, 타인과 공유하는 집을 들여다본다. ◆‘펼쳐진 집’ 시골의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농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집짓기 사례들을 통해 과거 전원주택으로 대표되었던 시골 집짓기의 변화를 살펴본다. '목천의 세 집'(이해든+최재필, 2018), '와촌리 창고 주택'(정현아, 2012), '볼트 하우스'(이소정+곽상준, 2017), '아홉칸집'(나은중+유소래, 2017) 등이 소개된다. ◆‘작은 집과 고친 집’ 도시의 한정된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이다. 대규모로 조성된 신도시 필지가 아니라 도심 속 독특한 형태의 땅을 찾아 올린 집부터 오래된 집을 고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픽셀 하우스'(조민석, 2003), '얇디얇은 집'(안기현+신민재, 2018), '쓸모의 발견;(박지현+조성학, 2018), 'Y 하우스 리노베이션-만휴당'(서승모, 2019) 등이다. ◆‘잠시 머무는 집’ 생의 주기와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주거의 시간성을 논의한다. '여인숙'(임태병, 2020), '뜬 니은자 집'(조재원, 2010), '고산집'(이창규+강정윤, 2017) 등 일상과 여가의 중간 지대에서 잠시 머무는 숙박 시설과 최근 한국 사회의 주요 공간 소비 장소로 떠오른 ‘스테이’와 주말 주택을 소개한다. 전시 감상의 폭을 넓히기 위한 워크숍, 영화 상영, 강연 등 풍부한 연계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전시실 중앙에 마련된 가변 극장에는 6개의 주제로 구성된 단편 영화 및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는 ‘주말극장’도 운영한다. 전시는 2025년 2월2일까지. 관람료 2000원. 2024/07/20
존원·덜크·안토니 곰리·제임스 터렐…'월드클래스' 모이는 신안 '1004섬' "세계적인 (그래피티)월드클래스가 뭉쳤다." 신안군 압해도에서 '위대한 낙서마을'에 참여한 미국 작가 존원(JonOne), 스페인 작가 덜크(Dulk)가 자부심을 보였다. 압해도에서 만난 존원은 "아름다운 신안에서 경쟁적인 스트리트 아티스들과 작업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했다. 덜크는 "자연적인 것들과 연관된 작품을 하는데, 신안은 자연환경이 매우 잘된 친환경적인 공간이다. 신안군의 관문인 압해도 섬에 그래피티와 스트리트아트를 소개할 수 있는게 특별하고 감사하다. 내 작품을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Expedition Expert로 유명한 덜크(Dulk)는 신안 압해읍사무소 우면에 달랑게, 저어새, 쇠제비갈매기 등 세계자연유산인 신안 갯벌의 동물들과 한국의 멸종위기 동물인 호랑이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을 완성했다. 신안군의 위대한 그래피트 마을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추진된 벽화 마을과는 다르다. 세계 최초의 '그래피티 아일랜드' 조성에 착수한 신안군은 기존 전국에서 추진한 '벽화 마을'과는 달리 '글로벌한 섬'으로 판을 키우고 있다. 2023년 아시아 최대 어반&스트리트 아트 페스티벌인 어반브레이크가 신안군과 MOU를 체결하면서다. ◆신안군, 한국 최초 그래피티 타운 조성…"벽화마을 아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어반아트브레이크 장원철 대표는 '벽화마을이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했고 작가들을 섭외했다. 이전 국내 벽화마을 프로젝트가 어떤 업체가 그렸거나, 이미지를 그렸다면 이번 신안군 '그래피티 마을'은 세계적인 거장들의 참여로 '글로벌한 그래피티 타운'이 조성된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차별화다. 존원과 덜크 외에도 포르투갈 출신의 아티스트 빌스(Vhils)등 유명 작가들이 잇따라 참여한다. 존원은 "신안의 그래피티 마을은 세계적인 월드클래스가 모여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게 큰 차이다. 세계적이고 열정적인 작가들이 그 열정을 신안군과 나눈다고 생각한다"면서 "예술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다. 깡촌이고 이름도 몰랐던 섬의 프로젝트지만 그래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존원은 (젊은 사람들이 없어)신혼부부에 1만 원에 빌려주는 아파트인 팰리스파크 2개의 벽면에 생기 넘치는 그래피티 작업을 선보인다. "전쟁과 고통 갈등의 사회 속에서 대긍정적인 작품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게 중요하다. 스트리트아트를 접하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 제 부모님은 박물관을 데려간 적이 없었다. 스트리트 아트를 통해서 문화를 접했다. 거리에서 그런 작품을 보면서 그때 3가지를 질문했다. 누가 했고 왜 했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그래서 관심이 생겼고 그래피티 작가가 됐다. 아마 거리에서 작품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뉴욕에서 맥도날드를 먹는 그냥 미국인이 됐을거다. 그러면 신안에 와서 탕탕탕 낙지도 못 먹었을 것이다." 그래피티는 회화씬에서 비주류 마이너로 낙서화 정도로 취급됐지만, 이젠 파인아트 영역까지 올라와 문화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퐁피두센터·영국의 테이트 모던·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네덜란드의 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갤러리들이 앞 다퉈 그래피티 작가들을 초대해 전시를 열고 있다. 존원은 2015년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문화예술훈장을 수상하며 동시대 그래피트 아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LG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수많은 협업을 통해 예술세계를 확장해왔고, 국내에서는 가수 윤종신과 앨범 컬래버레이션으로 화제가 됐다. 오는 11일 개막하는 ‘2024어반브레이크’에서 뮤지션 홍이삭과 협업 무대를 펼칠 예정이어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존원은 "K팝을 좋아한다. 특히 뉴진스, 에스파 팬"이라며 뉴진스의 노래를 들으며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세계 미술거장들 모이는 신안군…‘1섬 1뮤지엄’ 아트 프로젝트 신안군이 어반브레이크와 함께 진행하는 '위대한 낙서마을' 프로젝트는 문화예술을 통한 인구 소멸 대응 및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한 ‘1섬 1뮤지엄’ 아트 프로젝트 일환이다. 신안군의 아름다운 경관과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개성을 담은 특색 있는 작품들을 신안 곳곳에 채우고 있다. 한국 최초로 '위대한 그래피티(낙서)마을)을 조성하고 있는 배경에는 박우량 신안 군수의 열정적인 추진력이 힘이다. 전국 지자체 226곳 중 221위를 기록하며 국내 대표 인구 소멸 지역이던 신안군을 '1004섬'으로 브랜드화했다. 보라색으로 물든 퍼플섬, 노란 수선화의 섬, 12개의 예배당이 있는 순례자의 섬, 붉은 맨드라미섬, 수국 팽나무 섬에 이어 미술관이 있는 '예술의 섬'으로 변화 시키고 있다. 유명 작가들이 경쟁심을 갖고 참여하는 '위대한 낙서마을' 조성도 단순한 그림장식이 아닌 저항과 희망의 상징인 그래피티로 젊은 사람들을 이끌기 위한 플랫폼이자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관광 자원으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그래피티 워크숍 등 청년 아티스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안토니 곰리·올라퍼 엘리아슨 작품·제임스터렐 미술관 건립 추진 현재 신안군의 각 섬에는 세계 거장들의 작품과 미술관이 건립되거나 작업 중이어서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안좌도 플로팅미술관, ▲비금도(바다의 미술관) 안토니 곰리, ▲도초도(대지의 미술관) 올라퍼 엘리아슨, ▲자은도(인피니토 미술관)마리오보타+박은선, ▲신이도(동아시이인권평화미술관) 홍성담, ▲노대도 제임스 터렐 미술관 등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조각가 안토니 곰리 작품과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 미술관, 강남 교보타워를 설계한 마리오보타가 박은선 미술관을 설계하고 있어 기대감이 높다. 김환기 생가 근처에 있어 눈길을 끄는 '플로팅 미술관'은 일본 작가 야나기 유키노리(柳幸典)가 설계에 참여했다. 박우량 군수는 "외벽이 온통 거울로 만들어진 이 미술관은 공동 묘지에 버려진 땅 5만 평을 사서 조성했다"며 "세계 최초의 물에 뜨는 뮤지엄이 될 것이다. 완공되면 아침부터 밤까지 예약제로 운영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우량 군수 '남이 가지 않는 길' 정책… '1섬 1정원'~'1도 1뮤지엄' 추진 신안군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정책 방향으로 잡고 '1섬 1정원 문화예술이 꽃피는 섬'으로 만들고 있다. 각 마을마다 색이 다른 꽃을 심어 보라색, 노랑색, 빨강색, 파란색으로 무장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섬의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각 마을 주택의 지붕도 마을 정원에 맞게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해 섬 전체가 하나의 캔버스, '열린 뮤지엄'같은 분위기다. 신안군 전체를 색을 입은 섬으로 꾸미고 있는 박우량 군수의 꿈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 김환기의 생가가 있는 섬으로 '1도 1뮤지엄'을 추진하며 세계적인 미술 거장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섬에도 문화예술이 꽃 피는 신안'을 테마로, 박물관 11개, 미술관 13개, 전시관 2개 등 총 26곳을 조성할 계획으로, 현재 11곳이 건립 중이다.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비금도에 설치되는 안토니 곰리 작품은 설계가 다 끝나고 제작 중이다. 소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아시아 최고 최대 규모로 물 속에 작품을 설치할 예정이어서 벌써 화제다. "최소 설계비만 수십억이 넘는 비싼 작품이고 거장이 과연 해줄까 하며 고민을 많이 했다"는 박 군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토니 곰리 작품을 꼭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더니 '내 작품이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영감을 얻고 쉬어 갈 수가 있다면 신안의 바다 비금도에 작품을 설치하는 의미'가 있다고 흔쾌히 수락했다"며 곰리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박 군수는 "지난 4일 비금도에 1박2일 방문한 곰리가 카프리 섬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다"며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진 신안군 섬에 사는 높은 자긍심을 보였다. 세계 거장들의 작품이 유치되기 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004섬'으로 이름이 나고 있는 신안군은 행운이 이어지고 있다. 곰리에 이어 강남 교보타워를 설계한 현대건축 거장 마리오 보타도 박은선 미술관(인피니토 뮤지엄)을 짓는 것으로 확정되어, 이들 작품과 미술관이 완성되면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될 전망이다. 박우량 군수는 '문화가 밥 먹여준다'는 모토다. 서울의 22배인 신안군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친다. 피아노 축제를 열고 '음악이 있는 섬'을 열면서 섬 사람들도 예술의 감동을 맛봤다. 문화예술이 꽃피는 '천사 섬'을 만들고 있는 민선 4선의 박 군수는 집념의 사나이로 통한다. "문화 예술이 융성하면 오래 살 수 있다"며 섬에 꿈을 입히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군민들도 슬리퍼 신고 흙 묻은 바지 입고도 당당하게 미술관에 가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문화 예술은 도시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를 입힌 섬들의 기적을 체감하고 있어요. 퍼플섬, 애기동백 정원 등 4계절 사람들이 방문이 이어집니다. 다양한 꽃이 피면서 사람이 꽃피는 마을로 되고 있어요. BTS가 안 와도 됩니다.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 미술관 하나만 있어도 경쟁력인데, 안토니오 곰리, 마리오보타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과 미술관이 설치되고 있어 신안군은 세계적인 '예술 섬'이 될 것입니다." 2024/07/07
이재용· RM도 호암미술관…하반기 '니콜라스 파티' 연다 "백제의 미소 이제 봤다. 진짜 오묘하다", "와~잘생겼다" 경기 용인 골짜기에 있는 호암미술관 불교미술 첫 기획전이 대박이 터졌다. 최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방탄소년단 RM이 봤다고 알려지면서 관람객 발길이 더 이어지고 있다. 1주일새 1만 명이 늘어 7만 명을 넘어섰다. 오는 16일 전시 종료를 앞두고 미술관은 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최근 찾은 전시장은 평일임에도 관람객이 넘쳤다. "다시 볼 수 없는 전시일 것 같아 끝나기 전에 부랴부랴 왔다"는 미술계 인사부터 "한·중·일 불상이 모셔진 전시는 꼭 봐야 해서 마음먹고 왔다"는 스님들까지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7세기 중반, 개인 소장)'은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관람객들의 사진 세례를 받으며 앞태 뒤태 미모를 뽐냈다. 모델 포즈같은 자세와 오묘한 미소까지 자아내 감탄을 일으키고 있는 이 불상은 국내 첫 공개여서 더 주목받고 있다. 높이 27cm로 은은하게 웃는 모습이 압권이어서 '백제의 미소'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가져갔다가 2018년 6월 존재가 드러난 이 불상은 문화재청이 42억 원에 매입하려 했으나 환수가 불발됐다. 소유자가 150억 원을 제시하면서다. 호암미술관은 "개인소장품인 이 불상을 이번 전시를 위해 대여해 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리움미술관 이승혜 학예연구사가 5년 간 절치부심한 내공이 발휘됐다. 2021년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이 임명되면서 추진됐다. 기획안만 갖고 있던 이 학예사가 김 부관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시작된 전시는 섭외력이 큰 힘이다. 고미술품의 경우 대개 사찰에 있고 국보 보물급이어서 쉽게 내주지 않지만, 이 학예사의 친화력과 적극적인 열정으로 중국과 일본의 고미술품을 호암미술관까지 들어오게 한 원동력이 됐다. 해외에 흩어져 있던 조선 15세기 불전도(석가모니 일생의 주요 장면을 그린 그림) 세트의 일부인 '석가탄생도'(일본 혼가쿠지)와 '석가출가도'(독일 쾰른동아시아미술관)를 세계 최초로 한 자리에서 전시해 화제가 됐다. 또한 석가여래삼존도'(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47건이 한국에서 처음 전시되고, '금동 관음보살 입상',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아미타여래삼존도', '수월관음보살도' 등 9건은 국내에서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되어 호암미술관의 위력을 과시했다. 고서화는 자국 소장처에서도 자주 전시하지 않고, 한번 전시되면 상당 기간 작품 보존을 위해 의무 휴지기를 각별하게 챙긴다. 성황리에 열리지만 연장 전시를 할 수 없는 배경이다. 세계 각지에 소재한 불교미술 걸작품 92건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전시는 오로지 작품 만을 위한 조명을 밝혀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다. 이 때문에 '왜 전시장이 껌껌하냐', '글자가 안 보인다' 등의 항의도 있지만 이 학예사는 '무가지보'의 작품들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작품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욕심을 냈다. 이승혜 학예사는 "불교를 신앙하고 불교 미술을 후원하고 제작했던 ‘여성’들을 진흙에서 피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연꽃’에 비유해 전시장은 여성의 자궁이나 (석굴암)동굴처럼 연출했다"고 밝혔다. 전시 제목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Unsullied, Like a Lotus in Mud)은 여성들의 염원과 공헌의 관점에서 불교미술을 조명하는 새로운 접근이다. 유교적 가치관으로 살아야 하는 조선 시대 왕실에 남긴 '궁중숭불도'를 보면 많은 왕실 여성이 불교 신자였음을 알 수 있고, 12살에 죽은 '순회(順懷)세자'를 위해 '문정왕후'가 제작을 후원한 '석가여래(삼존도)'는 불교미술의 진흥에 빛나는 역할을 했다. 왕후는 자신의 무병장수, 왕손 생산을 기원하며 불화 400점을 그리게 했고, 현존하는 작품은 6점으로 알려졌다. 이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약사여래삼존도’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석가여래삼존도’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시에 전시되어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성은 불교를 지탱한 옹호자이자 불교미술의 후원자와 제작자로 기여해 왔다는 것을 증명한 이번 전시는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속담을 타파한다. 억압된 시대, 사회와 제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기로서 살고자 했던 조선 여성들의 당당한 에너지를 전파한다. '깨달음에 있어선 성별이 없다'는 불교의 평등사상이 새삼 돋보인 전시다. 지난 3월27일 개막한 전시는 오는 16일 폐막한다. 한편 호암미술관 관람 열기는 계속 될 전망이다. 하반기 전시도 뜨겁다. 현재 '동시대 가장 핫 한' 스위스 현대미술작가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42)개인전이 이어진다. 오는 9월 여는 이 전시는 '작품이 없어 못 파는' 작가의 한국 첫 미술관 전시여서 세계 미술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내년에는 삼성문화재단 60주년 기념으로 겸재 정선(1675~1759)의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이건희 컬렉션'인 국보이자 진경산수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을 비롯해 간송미술관과 협업으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2024/06/14
"기뻐해 주세요" 했는데…털 옷 입은 이중섭 마지막 편지 "아빠가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남덕군(야마모토 마사코) 야스카타군(태현) 야스나리군(태성) 기뻐해 주세요." 1954년 겨울 추운 날이었다. 제3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통영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양피 점퍼를 선물로 가져왔다. 피난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통영 시절(1953년 11월 ~ 1954년 5월)’에 만난 '통영의 친구들'은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양피 점퍼를 입은 이중섭과 팔짱을 끼고 포즈를 취한 유강열(1920~1970)과 친구들은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 영원한 우정을 자랑한다. 양피 점퍼를 받은 이중섭은 가족들에게도 뽐냈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털 달린 옷을 입은 모습을 그려 두 아들에 똑같이 그림 편지를 썼다. ‘아빠는 친구들이 준 양피 점퍼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일본에 있는 가족을 안심시키는 이중섭의 가장으로서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진다. 4명이 이어진 그림은 부질없는 희망이 됐다. 가족 상봉을 고대하던 이중섭은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이 편지를 보내고 2년 후인 1956년 9월 영양실조와 간암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향년 39세, 무연고자 시신으로 망우리 공원묘지에 묻혔다. 이중섭의 애틋하고 희망에 찼던 마지막 편지가 공개되어 또다시 가슴을 울리고 있다. 서울미술관이 2년 만에 선보인 기획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전에 '이중섭 마지막 편지화' 3점이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서울미술관을 설립한 유니온약품 안병광 회장은 "최근 1954년 첫째 아들 태현에게 쓴 이중섭의 편지화 3점을 소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중섭은 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같은 그림과 글을 담은 똑같은 편지를 두 개 제작하여 태현, 태성에게 각각 보내곤 했다. 두 아들을 공평하게 대하려는 아빠 이중섭의 자상한 배려심이 느껴진다. 편지화는 2022년 타계한 야마모토 마사코(한국 이름 이남덕) 여사의 집을 가족들이 정리하던 중 발견된 여러 통의 편지 중 하나다. 당시 발견된 편지는 대부분이 글로만 작성된 글과 편지였으며, 그 중 아들 태현과 태성에게 보낸 해당 삽화 편지가 함께 발견되었다. 서울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편지는 누상동 시절 이중섭의 마지막 편지로 추정된다"며 "봉투는 현재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생전 1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화가였던 이중섭은 글과 더불어 가족과의 추억이나 재회하고자 하는 열망을 그림으로 담은 편지를 전했고, 오늘날 이중섭의 편지들은 ‘편지화’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그림을 담은 그림 편지와, 그림과 글을 함께 실은 삽화 편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전시에서는 글 편지 1장과 삽화 편지 2장으로 구성된 3장의 편지화를 소개한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볼수록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두 팔을 벌려 아들을 안고 있는 마사코와 이중섭을 중심으로 가족이 원형 구도를 이루는 모습은 단란한 가족을 연상시키며, 네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이중섭의 소망을 드러낸다.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재는 ‘복숭아’로, 천도복숭아는 악한 기운을 막는 벽사의 힘을 지니고 있어 신선의 과일로 알려져 있고, 복숭아 나무가 무성한 곳은 ‘무릉도원’ 이라 칭하며 이상향을 뜻한다. 이중섭은 부처와 같은 자태를 취하고 있는 마사코와 탐스러운 복숭아 위에서 놀고 있는 아들들의 모습을 통해 천국에 있는 가족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외로웠던 이중섭의 삶에 늘 가족과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었던 이중섭의 편지는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어머니의 인품에 아버지도 경애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평생을 사랑했던 아버지 이중섭의 조국인 한국을 잊지 않으려고 한국어를 배우시기도 했습니다.” 둘째 아들 야마모토 야스나리(태성)는 "2022년 8월13일, 100세까지 장수하고 떠나신 어머니와 한국 미술계 및 언론 관계자들의 인연이 생전 어머니의 삶에 큰 지지대가 되어줬다"며 그간의 감사의 마음을 한국에 전했다. 안병광 회장은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이중섭 덕후'다. 2010년 6월 서울옥션 117회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낙찰된 '이중섭 '황소' 구매자로 알려지면서 국내 최고 미술컬렉터로 부상했다. '이중섭 소 그림' 소장 배경 일화도 유명하다. 32년전 영업사원 시절, 비를 피하던 처마밑에서 운명처럼 '소'를 만나면서 '이중섭 마니아'가 됐다. 힘들었던 생활,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황소' 그림은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돈을 벌면 저 그림을 사야지'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 2010년 35억6000만원 낙찰 최고가 기록을 안 회장이 쏘아 올렸고 2012년 서울미술관을 지어 이중섭 '황소'를 위대하게 모셨다. 하지만 미술관 운영은 적자가 계속 됐다. 빛이었던 '황소'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다시 경매에 내놓은 '소'는 2018년 47억에 낙찰, 이중섭의 최고가를 경신했다. 극진 대접한 안 회장에게 8년 보상의 댓가로 12억 원을 안긴 작품이다. 안 회장은 서울미술관을 개관하면서 '이중섭은 죽었다', '이중섭은 살아있다', '중섭 르네상스'전을 잇따라 열며 국민화가 이중섭을 재조명했다. “미술사적인 가치가 있고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만을 수집한다"는 안병광 회장의 컬렉팅 철학은 서울미술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가 소장한 작품을 모두 내놓고 국민이 함께 미술품을 향유하는 전시 공간으로 운영한다. 교과서나 미술 도록 등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원화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년 만에 연 이번 대형 소장품 전시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안 회장의 소장품을 잘 지키고 있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중섭 작품을 비롯해 신사임당부터 김환기 이우환 등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명작이 총망라된 전시는 관람료 2만 원이 아깝지 않다는 분위기다. 이 전시와 함께 현대미술 단체전도 선보인다. '햇빛은 찬란'을 타이틀로 ‘빛’을 테마로 미디어, 설치, 조각, 회화 등을 전시한다. 권용래, 바이런 킴, 박근호(참새), 이상민, 이은선, 정정주, 루시 코즈 엥겔만(Lucy Cordes Engelman), 토시오 이에즈미(Toshio Iezumi)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미술관은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매일 오후 2시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된다. 전시는 12월29일까지. 202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