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서도호 상상은 현실이 된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서도호'가 서울에 출현했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s)’로 등장한 서도호(62)는 청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민 머리와 바싹 마른 몸의 자태로 수행한 스님 같기도 했다. 그의 화두는 '만약에(What If)’.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술적 상상력이 힘으로 어쩐일인지 세계 각국 미술관들이 러브콜한다. "다른 세계들을 상상하게 해주는 급진적인 잠재력이 사변적 사유에 있다고 믿는다." 영국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세계적인 K아트 설치미술가인 서도호는 올 한 해 유난히 진격하고 있다. 상반기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워싱턴DC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데 이어 하반기에는 한국에서 아트선재센터, '프리즈 서울'에서 전시를 선보인다. 내년 5월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거장은 혼자 작업하지 않는다. 서울 전시는 LG OLED와 코오롱스포츠의 협업으로 무장했다. LG OLED와 작업은 오는 9월4일 개막하는 '프리즈 서울 2024 아트페어'에서 한국 수묵 추상의 창시자'인 아버지 故서세옥(1929~2020)을 오마주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아트선재센터 전시는 코오롱스프츠가 동참, 그의 상상을 이뤄냈다. 16일 아트선재센터에서 20년 만에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회견은 성황을 이뤘다.(2010년 리움미술관 개인전 이후 14년 만의 국내 대규모 전시다) 2003년 아트선재센터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열고 이름을 알린 그는 한옥으로 분신했다. 성북동 한옥집서 살던 기억과 공간이 현실로 뛰쳐 나왔다.뉴욕 고층 아파트에 한옥을 올리는가 하면, 허공에서 떨어진 별똥별처럼 한옥이 공동주택에 박히기도 하고, 영국 런던 고층 빌딩 사이 육교에도 한옥을 세워 이주민의 향수병을 자극한다. 천’으로 지은, 이동 가능한 ‘집’까지 만들어냈다. '완벽한 집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미국 뉴욕으로 다시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유목민적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날 단독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진지하게 말을 풀어냈다. 서도호에 질문하고 답한 대화를 그대로 전한다. ◆전시 제목이 국문으로 사변적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큘레이션스'다. 사변적 사유의 작업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사변적 사유'라는 제목이 한글로는 어려운 제목일 수 있다. 쉽게 풀어서 말씀 드린다면 '만약에'라는 설정을 하고,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해 나가는 작업 과정이라는 뜻으로 '스페큘레이션스'라는 영어 제목을 붙였다. 제 작업 대부분이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작품이 된다. 잘 아는 '천으로 만든 건축물'들, 그것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서 작업이 전개가 됐다. 예를 들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로 작업이 발전이 된 거다. '만약에', 영어로 다시 이야기를 하면 왓 이프(what if)라는 전제로 상상을 시작 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작품들을 구상 할 수 있게 되더라. 상상의 날개를 펴다 보면 중력의 지배를 받는 3차원 세계 안에서 만들 수 없는 그런 작품들까지 구상을 하게 되는데 그런 거를 스케치북 안에 그림을 그려서 계속 가지고 있었다. 스케치북에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게 1991년이다. 제가 미국으로 처음에 유학을 가서 사용하기 시작한 스케치북 그 포맷을 지금도 쓰고 있다. 그 안에 계속 생각나는 것을 일기를 쓰듯이 그림을 그리고 기록을 해 왔다. 대학 졸업을 하고 작가로 데뷔를 해서 작품을 세상에 공개를 하고 전시를 하다 보니까 어떤 경험을 하게 됐냐면, 관객 분들 입장에서는 작품 한 점 보고 그다음 작품을 보려면 1년, 2년을 기다렸다가 보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큰 규모의 작품들이 주다 보니까 작품 하나 만드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니까 전시를 다른 작가들만큼 자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평론가든 큐레이터들이 저희 스튜디오에 와서 많이 놀란다. 전시회에서 보여주는 거 외에 굉장히 다른 것들이 스튜디오에서 진행이 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프로젝트들을 저만 가지고 있으면 관객 분들은 영원히 모르시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거를 어떤 형식으로 시각화 해서 같이 나눈다면 띄엄띄엄 제가 보여드리는 작품 사이에 빈 갭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제 작품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더 쉽게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2003~2004년경부터 스케치북에 담아뒀던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라는 가제를 가지고 시작을 한 15개 정도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프로젝트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고 있다가 지금 많이 모여서 이번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를 하게 된 거다. 그런데 전시장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은 예를 들면 건축가의 전시를 가본 경험이랑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거다. 제가 건축가들 전시에 가서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실제 큰 건축을 전시장 안에 가지고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모형을 만드는 거다. 축소된 모형이 있고 구상을 했는데 실패한 프로젝트도 모형으로 나오고, 드로잉을 하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런 식으로 따서 건축적인 스케일 모델 다음에 드로잉, 다음에 애니메이션들을 제 아이디어로 표현을 한 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처음에 시작했을 때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프로젝트라고 생각 했는데 시각화 하고 만들어 놓으니까 그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이 오더라. 이번 전시장에서도 아마 한 3분의 1 정도는 그때 만든 작품들이 실제로 들어가 있다. 물론 제가 최초에 구상했던 거랑은 조금은 다르지만 스페큘레이션스 안에 있었던 아이디어들이 나중에 현실화가 된 것들이 이번 전시에 포함이 됐다. ◆건축적 작업들의 개념, 이주민으로서 불완전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작업의 목적성 지향성은 무엇인가? =사실 목적성이 없다. '브릿지 프로젝트' 예를 들면 제가 항상 이동이 가능한 작품을 전시를 전제로 생각을 할 때는 종착역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고 한다. 제 기본적인 태도다. '브릿지(다리)프로젝트'를 보셨겠지만 서울에서 북극점까지의 어떤 다리를 만드는 작업이다. 저한테 제일 중요했던 집, 세계도시 제일 가운데에 '퍼펙트홈', 완벽한 집을 짓겠다는 그런 설정을 하고 사유를 하기 시작한 작업이다. 사실 서울에서 북극점까지의 거리가 굉장히 긴 거리다. 비행기를 타도 몇 시간을 타고 가야 이동할 수 있는 그런 거리인데, 빠른 이동을 생각한 게 아니라 발로 걸어서 도보로 이동을 하는 거를 전제로 했다. 그래서 가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다. 너무 길이 멀어서. 사실 '퍼펙트 홈'이라는 건 핑계고 여정, '서유기'를 읽는 경험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천축'이라는 목적지를 설정해 놓고 가는 과정에 일을 풀어놓은 것이 '브릿지 프로젝트'다. 도보로 걷는다면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긴 여정 중에 환경 문제도 부딪혀서 그걸 공부하게 되고 북극해가 얼음으로 덮여 있고 춥다는 것은 다 알지만, 그게 유기물로 이뤄져서 그 안에 해류가 있어서 한 방향으로 한 참 돌다가 2년 후에 반대 방향으로 도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장소이고 집을 지을 수가 없는 곳이다. 계속 돌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다 집을 짓겠다는 신념을 세우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또 배운 것이 그 사람이 살기가 힘든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원주민들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주민들은 저희랑 피가 섞여 있는 분들이다. BBC 다큐를 딸들이랑 보는데 '아빠랑 똑같은 사람이 나오네' 그러더라. 그 순간에 5000km가 단축이 되면서 집 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됐다. 그러니까 묘하게 서울의 집 생각을 더 하게 됐다. 북극에 집을 짓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서울의 집을 더 생각하게 되고 ‘과연 우리한테 집이라는 게 뭔가, 과연 이게 우리가 물리적으로 서울에서 사는 집을 떠난다고 하면 서울에서 사는 집은 우리한테 존재하지 않는 건가? 하는 묘한 경험을 했다. 북극은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분쟁의 여지가 많은 지역이다. 수많은 자원이 북극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은 '공해'다. 유엔의 법규를 찾아봤더니 '공해'에는 나라를 설립할 수 있더라. 유엔에 전화했다. 하하. '지금 집을 지을려고 하는데 나라로 선포할 수 있느냐' 했더니 '잠깐 기다려봐라' 하더라. 다시 전화를 해 알아보니 현실적으로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데 법적 제약이 많은데 일일이 설명하긴 그렇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좌충우돌하면서 신문 언론이나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 조금 심화된 정보와 지식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공부하는 게 사실은 목적이다. 제가 장황하게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드렸는데 이 목적 자체가 없는 프로젝트인데 또 모순적으로 서울과 북극을 잇는 다리를 지을 수 있다. '돈 만 있다'면 그 안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신념, 자기 최면을 걸면서 하는 프로젝트다. 결론적으로 종착역은 없다. 완전히 오픈된 프로젝트다. 10년 전에 런던에 이사를 가기 전 뉴욕에서 살 때 서울하고 뉴욕 사이를 잇는 다리를 짓고 그때는 태평양에 완벽한 집이 올라가게 됐었다. 당시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렇게 까지 심화된 프로젝트를 할 줄 몰랐다. 지금 이 프로젝트는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계속 발전이 될 거다. 이번 전시 버전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데 캠브리지대학 철학과 교수님, 미국 라이스 대학교 구조공학과 대학생들과 교수님과 같이 협업을 했고 지금은 북극해 근처에 사는 원주민 전문가 휴고 브로디라는 전설적인 인류학자와 작업한다. 원주민의 목소리를 그분을 통해서 듣는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고 있다. 또 물방울로 다리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박테리아가 어떤 방울을 만들어서 부력을 가지는 어떤 구조체, 생물학적인 다리를 지으면 어떨까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건축가와 동시에 생물학자가 보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해서 이것도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여튼 그런 식으로 일이 많이 번지고 있어서 제 스튜디오에 오면 여~러가지가 많이 진행이 되고 있다. 그래서 화랑이랑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은 내 작업의 빙산의 일각이다. 건축물, 생활용품 등 '천 작업'이 저를 대표하는 작품처럼 됐지만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이다. 사실은 '아트선재 스페큘레이션' 같은 작업이 내 머리에 꽉 차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어떤 점을 느끼고 경험 했으면 하나? =사실 제가 통계적인 숫자는 모르겠지만 서울 인구에서 서울 토박이는 많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주는 너무나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다. 제 작품들의 대부분은 저의 자전적인 그런 성격이 크다. 제 경험이 많은 분들의 경험을 대변할 수는 없다. 100% 제 작품이 관객들이랑 소통할 거라는 그런 전제도 하지는 않고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묘한 게 자라난 환경이나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도 제 작품에 대해 공감을 하시는 거를 경험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특별하게 한국 사람이라서 어떻고 또 외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르고 그런 건 것 같지는 않다. 제가 작가로서 전문적으로 활동을 한 지가 한 30년 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인종과 국가, 성별을 초월한 아주 기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그런 코드가 제 작품에 있지 않나'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옥 집을 천으로 만들어 영국에서 전시 하면 한옥은 영국 사람한테는 너무나 낯선 건축 구조물이다. 한 번도 보지도 않았고 들어 가보지도 않았던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앞에서 우는 분들도 계신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공감하는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 작품들속에 결이 다른 '사천왕사를 위한 제안'이라는 작품을 흥미롭게 봤다. 종교 유적지고 지금 터만 남아 있는 불교 유적지다. 사천왕사 터를 관심 있게 생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또 실제 유적지 건설하는 것을 염원한다고 했는데 사천왕사 터에 이 작품을 실제로 설치할 계획이 진행 중인가? =사천왕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전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와 프로젝트를 몇 번 하면서다. 2012~13년에 덕수궁을 주제로 한 전시가 있었다. 당시 김 학예연구사가 저를 초대했는데 그때 저는 함녕전, 고종의 침실을 골라 거기에 설치 작업을 하게 됐다. 함녕전에 대해 리서치를 하다가 고종이 거기서 뭘 마시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궁녀인 신분이 나중에는 후궁처럼 되셨다. 70년대에 살아계신 조선조 말기 궁녀나 내시 분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책이 있었는데 거기에 있는 한 줄의 글이 나온다. '고종황제가 밤에 주무실 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보료 세 채를 놓고 주무셨다'. 그 한줄을 가지고 함녕전 프로젝트도 풀어 나갔다. 그것도 사실은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종 황제가 시카고 박람회 때 여러 가지 물건을 기증을 했는데 그때 보료가 있었다. 시카고 박물관에 연락을 해서 보료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연결이 안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알고 있는 김 학예연구사가 삼국유사에 나온 이야기를 추적해 알려줬다. 문무왕 때 당나라가 신라로 쳐들어오는 거를 알고 있었다. 이미 서해에 당나라 해군이 몇백 척이 몰려와 있었다. 준비할 틈이 없어 회의를 열고 고민을 했는데 그때 명랑법사라는 고승을 불렀다. 명랑법사가 시간이 없으니까 화려한 색의 비단을 가지고 절을 지어서 기도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12명의 유명한 스님을 모셔서 기도를 한 모양이다. 실제로 이것은 역사에 남은 건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풍랑이 불어서 다 가라 앉아 당의 침공이 무산이 된 거다. 그 이후에 거기다 실제로 절을 지은 게 사천왕사다. 사천왕사 작업은 김 학예연구사가 그 한 줄을 보고 저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작업이다. 현장에 가서 남은 사적지를 봤는데 아이러니컬한 게 사천왕사 사적지가 다 흙으로 덮여 있었는데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발굴한 거더라. 철도를 내기 위해서 서브웨이를 하다가 발견이 됐던 거로 기억을 하는데, 철도가 사실 가로질러 가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지은 터에는 대웅전 법당 자리도 있고 그 앞에 또 자리도 있다. 지금 학계에서도 어떤 용도의 자리였는지 모르는 터가 쌍으로 남아 있는 거다. 기록에 많이 남지 않았지만 스님들이 모여서 하신 그런 의식이 '문두루', 그러니까 고대 불교의 한 유파인데 그런 비법을 이용을 했다고 그러는데 나도 그것에 대해 리서치를 했다. 이 역시 스페큘레이션스, 그러니까 항상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의 저변에는 리서치가 기반이 된다. 그러나 리서치를 하고 항상 한계에 부딪친다. 고종 황제 때도 자료가 하나도 안 남아 있다. 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고 몇천 년 전 이야기니까 자료가 안 남았다는 게 한계이기도 하지만 아티스트한테는 상상력을 마음대로 발휘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사실 제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그게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다. 왜냐면 자료가 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래서 굉장히 자유스럽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그런 스타일 때문에 제가 스페큘레이션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사천왕사에 대한 논문이라는 논문은 다 읽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남은 자리는 천을 만든 구조물이 서 있을 때가 아닌 거다. 왜냐면 대웅전은 이미 그 이벤트가 끝난 다음에 지은 거기 때문에. 그런데 제일 문두루 비법을 행했을 장소가 그 2개인 것 같아서 거기를 제 버전의 천, 비단으로 만든 사찰의 형태를 만든 거다. 사실 실제로 작품을 설치하려고 문화재청에 연락해 당시 문화재청장도 보고 작업을 만들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그래서 그때 그냥 흐지부지됐다. 그렇지만 제 바람은 스페큘레이션스에 있는 모든 프로젝트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 그러면 이루고 싶은 것들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작품도 인연이 닿아야 한다. 장소, 시간, 사람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제 태도는 일단 가지고 있으면 인연이 닿으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아트선재서 20년 만의 전시, 2003년 전시와 무엇이 다른가? 작가가 생전에 한 미술관에서 두 번 전시를 하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좋은 후배 작가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생전에 두 번 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 김선정 전시감독이 전시 하자고 했을 때 흔쾌히 한 이유가 몇 가지가 있다. 하나가 우리가 2003년에 하고 20년 시간이 지났는데 둘이 어쨌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미술계에 아직 남아서 한 분은 큐레이터를 계속 하시고 저는 지금 계속 작품을 하고 그래서 그게 참 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2003년 전시 때는 전시 공간의 물리적인 조건을 굉장히 많이 고려해서 작품을 했다. 그때 아트선재라는 공간을 완전히 제가 소진을 했다. 진이 빠지도록 공간을 들여다보고 연구를 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그런 것을 떠나서 자유롭게 전시한 게 차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는 선정 씨랑 우정(friendship)ㅡ같은 길을 걸어 온 동료로서 '전시를 함께 한다'는 의미가 큰 전시다. 1시간 가량 서도호는 대본 없는 '사변'을 순수하게 토해냈다. 지독한 탐구자이자'사변가라는 것을 증명한 자리였다. 불가능할 거 같은 예술가의 상상력이 구현되는 게 놀랍다고 하자 그도 "만들어 지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이미지가 넘치는 메트릭스 같은 세상에서 마르지 않는 수공예적 아이디어 때문에 스튜디오 직원들이 고생이 많다. 그가 "아이디어 새로 나왔어. 이것 좀 이야기하자"고 하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건축가, 생물학자, 공학가, 인류학자 산업디자이너 등과 작업하며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모형과 도면, 영상 등을 제작하는 그는 '21세기 다빈치'같다. 복잡하고 미묘하고 끈질긴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20년 만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여는 개인전은 스페큘레이션화 된 그의 머릿속을 풀어놓은 듯하다. 그의 유명한 작업인 '천으로 만든 집'은 없지만 엉뚱한 상상력이 빛나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인 '공인들'(1998)을 키네틱 버전으로 마침내. 구현해 최초 공개한다. '우리는 누구를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해야 하느냐'를 묻는 '공인들'은 지난 4월 말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 미술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정원에 설치됐다. 초록 잔디를 밟고 두 손을 번쩍 들어 동상을 떠 받치는 군상, '공인들'의 놀라운 힘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 나온 '공인들'은 분주하다. 원작 6분의 1 크기의 움직이는 버전의 이 작품은 고정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동상의 성질에 도전한다. 300명의 작은 인물들이 '정렬의 힘'으로 동상대를 이동시키고 있다. 집이 고정된 개념이 아니듯, '서도호'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열정 많은 이주민으로, 보이지 않는 사유의 전략가로 이 세계를 조금 더 세밀하게 보여주는 욕심이다. 동상 밑에서 상생하며 촘촘하게 움직이는 '공인들'은 '서도호 세계관'의 기둥으로 보인다. 전시는 11월3일까지. 2024/08/17
어떻게 살고 싶어요?…'58채 집 이야기'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 '집’은 결국 우주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집에서 시작된다.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도 이제 텃밭 있는 주택으로 집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집이라는 공간의 소중함이 새삼 부각됐다. '미드센츄리 인테리어', '식물테리어'가 떠오른 배경이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 사는 것이 달라진다.' 공간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을 찾는 추세 속 주거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펼쳐 더욱 주목된다. 과천에서 선보인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로, 가족제도와 생활양식 변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집과 건축의 이야기다. 2000년 이후 동시대 한국 현대 건축과 도시 속 다양한 주거 방식과 미학적 삶의 형식을 조명한다. 30명(팀) 건축가의 58채 단독·공동주택을 소개한다.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는 총 6개 주제 '58채의 집 이야기'롤 선보인다. '선언하는 집’,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관계 맺는 집’, ‘펼쳐진 집’, ‘작은 집과 고친 집’, ‘잠시 머무는 집’ 등으로 나눴다. 참여하는 건축가는 승효상, 조민석, 조병수, 최욱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성 건축가부터 양수인, 조재원 등 중진, 그리고 비유에스, 오헤제건축 등 젊은 건축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이들은 집을 통해 가족 구성원 및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기후위기 등 점점 빠르게 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질문한다. 특히 '아파트 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한국 사회에서 대안적 선택으로 자리 잡은 집들을 통해 삶의 능동적 태도가 만든 미학적 가치와 건축의 공적 역할을 전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집’을 통해 삶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전시”라며 "현대미술의 장르 확장과 함께 건축예술과 삶의 미학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펼쳐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선언하는 집’ 공간 개념과 형식을 강조하는 집이다. 집 내외부의 공간 경험을 극대화하고, 건축 요소들이 일상 활동에 집중하기보다 심미적인 측면에 맞춘 특징을 드러낸다. '수백당'(승효상, 1999-2000), '땅집'(조병수, 2009), '축대가 있는 집'(최욱, 2006-2022), '베이스캠프 마운틴'(김광수, 2004)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가족의 규범이었던 4인 가족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반려 개념을 재구성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홍은동 남녀하우스'(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2018), '고개집'(양수인, 2016), '정릉주택 & 지하서재'(조남호, 2018), '맹그로브 숭인'(조성익, 2020) 등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요즘 사람이 아닌 동·식물과 함께 사는 집, 3대가 함께 사는 집, 1인 가구를 위한 집을 만나볼 수 있다. ◆‘관계 맺는 집’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를 상상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로 더불어 살아가는 집짓기 실천에 주목한다. '대구 앞산주택'(김대균, 2008), '써드플레이스 홍은 1-8'(박창현, 2020-2024), '이우집'(박지현+조성학, 2023) 등 단독주택이지만 그 안에 회합의 장소가 있는 집, 타인과 공유하는 집을 들여다본다. ◆‘펼쳐진 집’ 시골의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농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집짓기 사례들을 통해 과거 전원주택으로 대표되었던 시골 집짓기의 변화를 살펴본다. '목천의 세 집'(이해든+최재필, 2018), '와촌리 창고 주택'(정현아, 2012), '볼트 하우스'(이소정+곽상준, 2017), '아홉칸집'(나은중+유소래, 2017) 등이 소개된다. ◆‘작은 집과 고친 집’ 도시의 한정된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이다. 대규모로 조성된 신도시 필지가 아니라 도심 속 독특한 형태의 땅을 찾아 올린 집부터 오래된 집을 고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픽셀 하우스'(조민석, 2003), '얇디얇은 집'(안기현+신민재, 2018), '쓸모의 발견;(박지현+조성학, 2018), 'Y 하우스 리노베이션-만휴당'(서승모, 2019) 등이다. ◆‘잠시 머무는 집’ 생의 주기와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주거의 시간성을 논의한다. '여인숙'(임태병, 2020), '뜬 니은자 집'(조재원, 2010), '고산집'(이창규+강정윤, 2017) 등 일상과 여가의 중간 지대에서 잠시 머무는 숙박 시설과 최근 한국 사회의 주요 공간 소비 장소로 떠오른 ‘스테이’와 주말 주택을 소개한다. 전시 감상의 폭을 넓히기 위한 워크숍, 영화 상영, 강연 등 풍부한 연계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전시실 중앙에 마련된 가변 극장에는 6개의 주제로 구성된 단편 영화 및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는 ‘주말극장’도 운영한다. 전시는 2025년 2월2일까지. 관람료 2000원. 2024/07/20
존원·덜크·안토니 곰리·제임스 터렐…'월드클래스' 모이는 신안 '1004섬' "세계적인 (그래피티)월드클래스가 뭉쳤다." 신안군 압해도에서 '위대한 낙서마을'에 참여한 미국 작가 존원(JonOne), 스페인 작가 덜크(Dulk)가 자부심을 보였다. 압해도에서 만난 존원은 "아름다운 신안에서 경쟁적인 스트리트 아티스들과 작업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했다. 덜크는 "자연적인 것들과 연관된 작품을 하는데, 신안은 자연환경이 매우 잘된 친환경적인 공간이다. 신안군의 관문인 압해도 섬에 그래피티와 스트리트아트를 소개할 수 있는게 특별하고 감사하다. 내 작품을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Expedition Expert로 유명한 덜크(Dulk)는 신안 압해읍사무소 우면에 달랑게, 저어새, 쇠제비갈매기 등 세계자연유산인 신안 갯벌의 동물들과 한국의 멸종위기 동물인 호랑이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을 완성했다. 신안군의 위대한 그래피트 마을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추진된 벽화 마을과는 다르다. 세계 최초의 '그래피티 아일랜드' 조성에 착수한 신안군은 기존 전국에서 추진한 '벽화 마을'과는 달리 '글로벌한 섬'으로 판을 키우고 있다. 2023년 아시아 최대 어반&스트리트 아트 페스티벌인 어반브레이크가 신안군과 MOU를 체결하면서다. ◆신안군, 한국 최초 그래피티 타운 조성…"벽화마을 아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어반아트브레이크 장원철 대표는 '벽화마을이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했고 작가들을 섭외했다. 이전 국내 벽화마을 프로젝트가 어떤 업체가 그렸거나, 이미지를 그렸다면 이번 신안군 '그래피티 마을'은 세계적인 거장들의 참여로 '글로벌한 그래피티 타운'이 조성된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차별화다. 존원과 덜크 외에도 포르투갈 출신의 아티스트 빌스(Vhils)등 유명 작가들이 잇따라 참여한다. 존원은 "신안의 그래피티 마을은 세계적인 월드클래스가 모여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게 큰 차이다. 세계적이고 열정적인 작가들이 그 열정을 신안군과 나눈다고 생각한다"면서 "예술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다. 깡촌이고 이름도 몰랐던 섬의 프로젝트지만 그래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존원은 (젊은 사람들이 없어)신혼부부에 1만 원에 빌려주는 아파트인 팰리스파크 2개의 벽면에 생기 넘치는 그래피티 작업을 선보인다. "전쟁과 고통 갈등의 사회 속에서 대긍정적인 작품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게 중요하다. 스트리트아트를 접하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 제 부모님은 박물관을 데려간 적이 없었다. 스트리트 아트를 통해서 문화를 접했다. 거리에서 그런 작품을 보면서 그때 3가지를 질문했다. 누가 했고 왜 했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그래서 관심이 생겼고 그래피티 작가가 됐다. 아마 거리에서 작품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뉴욕에서 맥도날드를 먹는 그냥 미국인이 됐을거다. 그러면 신안에 와서 탕탕탕 낙지도 못 먹었을 것이다." 그래피티는 회화씬에서 비주류 마이너로 낙서화 정도로 취급됐지만, 이젠 파인아트 영역까지 올라와 문화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퐁피두센터·영국의 테이트 모던·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네덜란드의 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갤러리들이 앞 다퉈 그래피티 작가들을 초대해 전시를 열고 있다. 존원은 2015년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문화예술훈장을 수상하며 동시대 그래피트 아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LG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수많은 협업을 통해 예술세계를 확장해왔고, 국내에서는 가수 윤종신과 앨범 컬래버레이션으로 화제가 됐다. 오는 11일 개막하는 ‘2024어반브레이크’에서 뮤지션 홍이삭과 협업 무대를 펼칠 예정이어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존원은 "K팝을 좋아한다. 특히 뉴진스, 에스파 팬"이라며 뉴진스의 노래를 들으며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세계 미술거장들 모이는 신안군…‘1섬 1뮤지엄’ 아트 프로젝트 신안군이 어반브레이크와 함께 진행하는 '위대한 낙서마을' 프로젝트는 문화예술을 통한 인구 소멸 대응 및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한 ‘1섬 1뮤지엄’ 아트 프로젝트 일환이다. 신안군의 아름다운 경관과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개성을 담은 특색 있는 작품들을 신안 곳곳에 채우고 있다. 한국 최초로 '위대한 그래피티(낙서)마을)을 조성하고 있는 배경에는 박우량 신안 군수의 열정적인 추진력이 힘이다. 전국 지자체 226곳 중 221위를 기록하며 국내 대표 인구 소멸 지역이던 신안군을 '1004섬'으로 브랜드화했다. 보라색으로 물든 퍼플섬, 노란 수선화의 섬, 12개의 예배당이 있는 순례자의 섬, 붉은 맨드라미섬, 수국 팽나무 섬에 이어 미술관이 있는 '예술의 섬'으로 변화 시키고 있다. 유명 작가들이 경쟁심을 갖고 참여하는 '위대한 낙서마을' 조성도 단순한 그림장식이 아닌 저항과 희망의 상징인 그래피티로 젊은 사람들을 이끌기 위한 플랫폼이자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관광 자원으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그래피티 워크숍 등 청년 아티스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안토니 곰리·올라퍼 엘리아슨 작품·제임스터렐 미술관 건립 추진 현재 신안군의 각 섬에는 세계 거장들의 작품과 미술관이 건립되거나 작업 중이어서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안좌도 플로팅미술관, ▲비금도(바다의 미술관) 안토니 곰리, ▲도초도(대지의 미술관) 올라퍼 엘리아슨, ▲자은도(인피니토 미술관)마리오보타+박은선, ▲신이도(동아시이인권평화미술관) 홍성담, ▲노대도 제임스 터렐 미술관 등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조각가 안토니 곰리 작품과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 미술관, 강남 교보타워를 설계한 마리오보타가 박은선 미술관을 설계하고 있어 기대감이 높다. 김환기 생가 근처에 있어 눈길을 끄는 '플로팅 미술관'은 일본 작가 야나기 유키노리(柳幸典)가 설계에 참여했다. 박우량 군수는 "외벽이 온통 거울로 만들어진 이 미술관은 공동 묘지에 버려진 땅 5만 평을 사서 조성했다"며 "세계 최초의 물에 뜨는 뮤지엄이 될 것이다. 완공되면 아침부터 밤까지 예약제로 운영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우량 군수 '남이 가지 않는 길' 정책… '1섬 1정원'~'1도 1뮤지엄' 추진 신안군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정책 방향으로 잡고 '1섬 1정원 문화예술이 꽃피는 섬'으로 만들고 있다. 각 마을마다 색이 다른 꽃을 심어 보라색, 노랑색, 빨강색, 파란색으로 무장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섬의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각 마을 주택의 지붕도 마을 정원에 맞게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해 섬 전체가 하나의 캔버스, '열린 뮤지엄'같은 분위기다. 신안군 전체를 색을 입은 섬으로 꾸미고 있는 박우량 군수의 꿈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 김환기의 생가가 있는 섬으로 '1도 1뮤지엄'을 추진하며 세계적인 미술 거장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섬에도 문화예술이 꽃 피는 신안'을 테마로, 박물관 11개, 미술관 13개, 전시관 2개 등 총 26곳을 조성할 계획으로, 현재 11곳이 건립 중이다.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비금도에 설치되는 안토니 곰리 작품은 설계가 다 끝나고 제작 중이다. 소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아시아 최고 최대 규모로 물 속에 작품을 설치할 예정이어서 벌써 화제다. "최소 설계비만 수십억이 넘는 비싼 작품이고 거장이 과연 해줄까 하며 고민을 많이 했다"는 박 군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토니 곰리 작품을 꼭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더니 '내 작품이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영감을 얻고 쉬어 갈 수가 있다면 신안의 바다 비금도에 작품을 설치하는 의미'가 있다고 흔쾌히 수락했다"며 곰리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박 군수는 "지난 4일 비금도에 1박2일 방문한 곰리가 카프리 섬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다"며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진 신안군 섬에 사는 높은 자긍심을 보였다. 세계 거장들의 작품이 유치되기 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004섬'으로 이름이 나고 있는 신안군은 행운이 이어지고 있다. 곰리에 이어 강남 교보타워를 설계한 현대건축 거장 마리오 보타도 박은선 미술관(인피니토 뮤지엄)을 짓는 것으로 확정되어, 이들 작품과 미술관이 완성되면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될 전망이다. 박우량 군수는 '문화가 밥 먹여준다'는 모토다. 서울의 22배인 신안군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친다. 피아노 축제를 열고 '음악이 있는 섬'을 열면서 섬 사람들도 예술의 감동을 맛봤다. 문화예술이 꽃피는 '천사 섬'을 만들고 있는 민선 4선의 박 군수는 집념의 사나이로 통한다. "문화 예술이 융성하면 오래 살 수 있다"며 섬에 꿈을 입히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군민들도 슬리퍼 신고 흙 묻은 바지 입고도 당당하게 미술관에 가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문화 예술은 도시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를 입힌 섬들의 기적을 체감하고 있어요. 퍼플섬, 애기동백 정원 등 4계절 사람들이 방문이 이어집니다. 다양한 꽃이 피면서 사람이 꽃피는 마을로 되고 있어요. BTS가 안 와도 됩니다.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 미술관 하나만 있어도 경쟁력인데, 안토니오 곰리, 마리오보타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과 미술관이 설치되고 있어 신안군은 세계적인 '예술 섬'이 될 것입니다." 2024/07/07
이재용· RM도 호암미술관…하반기 '니콜라스 파티' 연다 "백제의 미소 이제 봤다. 진짜 오묘하다", "와~잘생겼다" 경기 용인 골짜기에 있는 호암미술관 불교미술 첫 기획전이 대박이 터졌다. 최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방탄소년단 RM이 봤다고 알려지면서 관람객 발길이 더 이어지고 있다. 1주일새 1만 명이 늘어 7만 명을 넘어섰다. 오는 16일 전시 종료를 앞두고 미술관은 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최근 찾은 전시장은 평일임에도 관람객이 넘쳤다. "다시 볼 수 없는 전시일 것 같아 끝나기 전에 부랴부랴 왔다"는 미술계 인사부터 "한·중·일 불상이 모셔진 전시는 꼭 봐야 해서 마음먹고 왔다"는 스님들까지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7세기 중반, 개인 소장)'은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관람객들의 사진 세례를 받으며 앞태 뒤태 미모를 뽐냈다. 모델 포즈같은 자세와 오묘한 미소까지 자아내 감탄을 일으키고 있는 이 불상은 국내 첫 공개여서 더 주목받고 있다. 높이 27cm로 은은하게 웃는 모습이 압권이어서 '백제의 미소'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가져갔다가 2018년 6월 존재가 드러난 이 불상은 문화재청이 42억 원에 매입하려 했으나 환수가 불발됐다. 소유자가 150억 원을 제시하면서다. 호암미술관은 "개인소장품인 이 불상을 이번 전시를 위해 대여해 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리움미술관 이승혜 학예연구사가 5년 간 절치부심한 내공이 발휘됐다. 2021년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이 임명되면서 추진됐다. 기획안만 갖고 있던 이 학예사가 김 부관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시작된 전시는 섭외력이 큰 힘이다. 고미술품의 경우 대개 사찰에 있고 국보 보물급이어서 쉽게 내주지 않지만, 이 학예사의 친화력과 적극적인 열정으로 중국과 일본의 고미술품을 호암미술관까지 들어오게 한 원동력이 됐다. 해외에 흩어져 있던 조선 15세기 불전도(석가모니 일생의 주요 장면을 그린 그림) 세트의 일부인 '석가탄생도'(일본 혼가쿠지)와 '석가출가도'(독일 쾰른동아시아미술관)를 세계 최초로 한 자리에서 전시해 화제가 됐다. 또한 석가여래삼존도'(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47건이 한국에서 처음 전시되고, '금동 관음보살 입상',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아미타여래삼존도', '수월관음보살도' 등 9건은 국내에서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되어 호암미술관의 위력을 과시했다. 고서화는 자국 소장처에서도 자주 전시하지 않고, 한번 전시되면 상당 기간 작품 보존을 위해 의무 휴지기를 각별하게 챙긴다. 성황리에 열리지만 연장 전시를 할 수 없는 배경이다. 세계 각지에 소재한 불교미술 걸작품 92건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전시는 오로지 작품 만을 위한 조명을 밝혀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다. 이 때문에 '왜 전시장이 껌껌하냐', '글자가 안 보인다' 등의 항의도 있지만 이 학예사는 '무가지보'의 작품들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작품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욕심을 냈다. 이승혜 학예사는 "불교를 신앙하고 불교 미술을 후원하고 제작했던 ‘여성’들을 진흙에서 피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연꽃’에 비유해 전시장은 여성의 자궁이나 (석굴암)동굴처럼 연출했다"고 밝혔다. 전시 제목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Unsullied, Like a Lotus in Mud)은 여성들의 염원과 공헌의 관점에서 불교미술을 조명하는 새로운 접근이다. 유교적 가치관으로 살아야 하는 조선 시대 왕실에 남긴 '궁중숭불도'를 보면 많은 왕실 여성이 불교 신자였음을 알 수 있고, 12살에 죽은 '순회(順懷)세자'를 위해 '문정왕후'가 제작을 후원한 '석가여래(삼존도)'는 불교미술의 진흥에 빛나는 역할을 했다. 왕후는 자신의 무병장수, 왕손 생산을 기원하며 불화 400점을 그리게 했고, 현존하는 작품은 6점으로 알려졌다. 이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약사여래삼존도’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석가여래삼존도’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시에 전시되어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성은 불교를 지탱한 옹호자이자 불교미술의 후원자와 제작자로 기여해 왔다는 것을 증명한 이번 전시는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속담을 타파한다. 억압된 시대, 사회와 제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기로서 살고자 했던 조선 여성들의 당당한 에너지를 전파한다. '깨달음에 있어선 성별이 없다'는 불교의 평등사상이 새삼 돋보인 전시다. 지난 3월27일 개막한 전시는 오는 16일 폐막한다. 한편 호암미술관 관람 열기는 계속 될 전망이다. 하반기 전시도 뜨겁다. 현재 '동시대 가장 핫 한' 스위스 현대미술작가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42)개인전이 이어진다. 오는 9월 여는 이 전시는 '작품이 없어 못 파는' 작가의 한국 첫 미술관 전시여서 세계 미술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내년에는 삼성문화재단 60주년 기념으로 겸재 정선(1675~1759)의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이건희 컬렉션'인 국보이자 진경산수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을 비롯해 간송미술관과 협업으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2024/06/14
"기뻐해 주세요" 했는데…털 옷 입은 이중섭 마지막 편지 "아빠가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남덕군(야마모토 마사코) 야스카타군(태현) 야스나리군(태성) 기뻐해 주세요." 1954년 겨울 추운 날이었다. 제3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통영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양피 점퍼를 선물로 가져왔다. 피난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통영 시절(1953년 11월 ~ 1954년 5월)’에 만난 '통영의 친구들'은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양피 점퍼를 입은 이중섭과 팔짱을 끼고 포즈를 취한 유강열(1920~1970)과 친구들은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 영원한 우정을 자랑한다. 양피 점퍼를 받은 이중섭은 가족들에게도 뽐냈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털 달린 옷을 입은 모습을 그려 두 아들에 똑같이 그림 편지를 썼다. ‘아빠는 친구들이 준 양피 점퍼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일본에 있는 가족을 안심시키는 이중섭의 가장으로서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진다. 4명이 이어진 그림은 부질없는 희망이 됐다. 가족 상봉을 고대하던 이중섭은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이 편지를 보내고 2년 후인 1956년 9월 영양실조와 간암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향년 39세, 무연고자 시신으로 망우리 공원묘지에 묻혔다. 이중섭의 애틋하고 희망에 찼던 마지막 편지가 공개되어 또다시 가슴을 울리고 있다. 서울미술관이 2년 만에 선보인 기획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전에 '이중섭 마지막 편지화' 3점이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서울미술관을 설립한 유니온약품 안병광 회장은 "최근 1954년 첫째 아들 태현에게 쓴 이중섭의 편지화 3점을 소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중섭은 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같은 그림과 글을 담은 똑같은 편지를 두 개 제작하여 태현, 태성에게 각각 보내곤 했다. 두 아들을 공평하게 대하려는 아빠 이중섭의 자상한 배려심이 느껴진다. 편지화는 2022년 타계한 야마모토 마사코(한국 이름 이남덕) 여사의 집을 가족들이 정리하던 중 발견된 여러 통의 편지 중 하나다. 당시 발견된 편지는 대부분이 글로만 작성된 글과 편지였으며, 그 중 아들 태현과 태성에게 보낸 해당 삽화 편지가 함께 발견되었다. 서울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편지는 누상동 시절 이중섭의 마지막 편지로 추정된다"며 "봉투는 현재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생전 1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화가였던 이중섭은 글과 더불어 가족과의 추억이나 재회하고자 하는 열망을 그림으로 담은 편지를 전했고, 오늘날 이중섭의 편지들은 ‘편지화’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그림을 담은 그림 편지와, 그림과 글을 함께 실은 삽화 편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전시에서는 글 편지 1장과 삽화 편지 2장으로 구성된 3장의 편지화를 소개한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볼수록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두 팔을 벌려 아들을 안고 있는 마사코와 이중섭을 중심으로 가족이 원형 구도를 이루는 모습은 단란한 가족을 연상시키며, 네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이중섭의 소망을 드러낸다.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재는 ‘복숭아’로, 천도복숭아는 악한 기운을 막는 벽사의 힘을 지니고 있어 신선의 과일로 알려져 있고, 복숭아 나무가 무성한 곳은 ‘무릉도원’ 이라 칭하며 이상향을 뜻한다. 이중섭은 부처와 같은 자태를 취하고 있는 마사코와 탐스러운 복숭아 위에서 놀고 있는 아들들의 모습을 통해 천국에 있는 가족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외로웠던 이중섭의 삶에 늘 가족과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었던 이중섭의 편지는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어머니의 인품에 아버지도 경애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평생을 사랑했던 아버지 이중섭의 조국인 한국을 잊지 않으려고 한국어를 배우시기도 했습니다.” 둘째 아들 야마모토 야스나리(태성)는 "2022년 8월13일, 100세까지 장수하고 떠나신 어머니와 한국 미술계 및 언론 관계자들의 인연이 생전 어머니의 삶에 큰 지지대가 되어줬다"며 그간의 감사의 마음을 한국에 전했다. 안병광 회장은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이중섭 덕후'다. 2010년 6월 서울옥션 117회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낙찰된 '이중섭 '황소' 구매자로 알려지면서 국내 최고 미술컬렉터로 부상했다. '이중섭 소 그림' 소장 배경 일화도 유명하다. 32년전 영업사원 시절, 비를 피하던 처마밑에서 운명처럼 '소'를 만나면서 '이중섭 마니아'가 됐다. 힘들었던 생활,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황소' 그림은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돈을 벌면 저 그림을 사야지'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 2010년 35억6000만원 낙찰 최고가 기록을 안 회장이 쏘아 올렸고 2012년 서울미술관을 지어 이중섭 '황소'를 위대하게 모셨다. 하지만 미술관 운영은 적자가 계속 됐다. 빛이었던 '황소'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다시 경매에 내놓은 '소'는 2018년 47억에 낙찰, 이중섭의 최고가를 경신했다. 극진 대접한 안 회장에게 8년 보상의 댓가로 12억 원을 안긴 작품이다. 안 회장은 서울미술관을 개관하면서 '이중섭은 죽었다', '이중섭은 살아있다', '중섭 르네상스'전을 잇따라 열며 국민화가 이중섭을 재조명했다. “미술사적인 가치가 있고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만을 수집한다"는 안병광 회장의 컬렉팅 철학은 서울미술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가 소장한 작품을 모두 내놓고 국민이 함께 미술품을 향유하는 전시 공간으로 운영한다. 교과서나 미술 도록 등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원화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년 만에 연 이번 대형 소장품 전시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안 회장의 소장품을 잘 지키고 있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중섭 작품을 비롯해 신사임당부터 김환기 이우환 등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명작이 총망라된 전시는 관람료 2만 원이 아깝지 않다는 분위기다. 이 전시와 함께 현대미술 단체전도 선보인다. '햇빛은 찬란'을 타이틀로 ‘빛’을 테마로 미디어, 설치, 조각, 회화 등을 전시한다. 권용래, 바이런 킴, 박근호(참새), 이상민, 이은선, 정정주, 루시 코즈 엥겔만(Lucy Cordes Engelman), 토시오 이에즈미(Toshio Iezumi)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미술관은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매일 오후 2시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된다. 전시는 12월29일까지. 2024/06/13
"아무것도 없네?"…김기린 흑단색화와 안과 밖 "김기린 작품은 색으로 써진 시(詩)다" 4일 오전 서울 삼청동 현대화랑에서 열린 단색화가 김기린(1936~2021)작품을 프랑스 평론가가 설명하는 이례적인 간담회가 열렸다. 2021년 별세한 후 첫 전시이자 현대화랑서 8년 만에 선보인 김기린 개인전 타이틀 '무언의 영역(Undeclared Fields)'. 평론가 사이먼 몰리가 쓴 에세이 '무언의 메시지(Undeclared Messages)'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김기린의 검은 그림 앞에서 사이먼 몰리는 "아무것도 없네? 이게 무슨 그림일까 할 수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이는 정확하게 의미가 표현이 안됐기 때문인데 그 이면에 뭐가 있다는 것을 다 느낄 수 있다. 김기린 작품은 무언가 메시지가 있다고 느껴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색과 흔적만 남은 질감만 있는 작품. 그렇다면 김기린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 사이먼 몰리는 "김기린 작품은 이름 없는 이름을 말하는 것 같다"며 "반복된 그림의 형태를 일종의 메시지를 쓰는 과정"이라고 봤다. "점의 패턴이 손가락 지문을 연상시키고 비밀 코드가 입력된 것 같은 인상이 있다"면서 사이먼 몰리는 김기린의 회화를 '도가사상'과 연결했다. "(김기린은)진짜 존재에 대한 진실을 과연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가 표현할 수 있을까 회의가 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생각한 유일한 방법은 부정하는 것, 부재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진짜 존재에 대한 진실을 보여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먼 몰리는 모노크롬 작업에 관심이 많아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회고전과 아그네스 마틴 등의 평론을 자주 쓴 평론가로, 그는 "김기린의 작업은 한국 단색조 작가들 달리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다"고 했다. 김기린의 1970년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흑단색화’(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문 같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진짜 진실은 쓰여질 수 없다. 모든 진리는 정확하게 이름이 없지 않나. 김기린 작품은 그것과 연결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양인 평론가의 개념적이고 진지한 설명이 더욱 작품을 난해하게 하지만 동양인이라면 다 느낀다. 정신적 자유의 경지인 '몰아일체', 수행 속에 나온 명상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김기린은 생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1차, 2차, 3차 공간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공간 '지각 현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했다. "순수한 색의 유화 물감을 겹겹이 쌓아가는 회화를 지속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반듯이 서기 위해 그림을 하는 거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이번 전시는 김기린의 단색적인 회화 언어가 구축된 시기인 1970년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부터, 1980년대부터 2021년 작고할 때까지 지속한 '안과 밖' 연작을 선보인다. 또한 생전에 공개된 적 없는 종이에 유화 작업까지 40여 점의 작품과 그가 직접 창작한 시, 아카이빙 자료를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텍스트 없이 색으로 써진 시'라는 맥락"으로 해석한 프랑스 평론가 사이먼 몰리의 말처럼 김기린은 불문학과 출신이다. 초기 단색 화가들과 결을 달리하는 배경이다. 김기린은 1961년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에 관한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20대 시절인 그 때 랭보(Arthur Rimbaud),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의 시를 읽고 시 집필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다 30대 초반 미술사를 공부하며 뒤늦게 그림 작업을 시작했다. 1960년대에 원고지에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시는 보일 듯 말 듯 그려진 격자 모양 단색의 캔버스 화면에 점점이 쌓아 올린 물감 덩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청년 김기린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세계와 파리에서 경험한 다양한 장르의 문화적 자극을 캔버스 위에 텍스트가 아닌 물감의 양감으로 표현했다. 물감으로 점을 찍기를 30번 씩 거듭하며 나오는 작업은 2년의 시간이 숙성됐다. 김기린은 가로와 세로의 선으로 그리드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작은 단위의 네모꼴 속에 비슷한 크기의 색점들을 일률적으로 찍고, 그 위에 색을 수십 번씩 반복해 칠하고 쌓아 올린 후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그림을 ‘하는 것’이지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색을 놓지, 바르지 않으며 점과 줄을 팠지, 찍거나 긋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그림의 과정이 ‘제조’의 개념이기보다 ‘인식 작용’을 수반한 ‘실천’의 의미다. 생전 김기린은 점을 찍는 순간이 스스로를 뛰어넘는 제일 충만 된 시간이라고 했다. 한 점 한 점 쌓여 생성된 수십 겹의 붓 자국의 흐름을 따라 작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작업해 간 흔적을 읽어 가게 된다. "사각형 패턴을 해서 찍는데도 찍는 순간마다 점이 다 다르다. 그게 내 그림의 생명력이라 생각한다."(2021년 인터뷰 중에서) 색과 물감 덩어리 그 너머, '김기린 회화'는 '무언의 영역’으로 초대한다. 무언가 알 수 없어 다가왔다가 명상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이미지로는 모른다. 진짜 그림을 봐야 느낀다. 가까이 다가오라고 끌어당긴다. 전시는 7월14일까지. ◆단색화가 김기린(金麒麟, 1936~2021)은? 함경남도 고원 출생으로 14세에 월남했다. 본명은 김정환. '기린'이라는 이름은 고교 동창이 '너는 목이 짧으니 기린이라고 하라'고 붙여준 별명이다. 시인을 꿈꿨던 김정환이 화가로 변신하면서 김기린이 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프랑스로 이주하여 디종 대학교(현재 부르고뉴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수학했다. 이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를 거쳐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학위(1971)를 받았다. 1960년대 말부터 서정적인 추상 회화를 시작하여 검은색과 흰색을 사용하여 평면성을 추구하는 회화 작업을 했다. 1970년대 초반에 흑단색화 작업만을 소개하는 파리에서 개인전이 한국에도 화제가 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색채 사용이 두드러지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왔던 지각에 관한 문제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에서 풀어냈고, 1980년대 외부와 내부의 개념적인 차원의 탐구를 '안과 밖' 연작에서 지속하며 작업을 심화시켰다. 적색·청색·황색·녹색·갈색 등의 선명한 색채를 사용했다. 프랑스에서 살던 그는 2021년 숙환으로 향년 85세에 별세했다. 대표작은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우종미술관, 리움미술관, 파리시립현대미술관, 프랑스 디종미술관에 소장 되어 있다. 2024/06/04
사자들의 부활…앤디워홀이 살려낸 요셉 보이스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1921∼1986)가 서울에서 다시 살아났다. '미국 팝아트 황제' 앤디 워홀(1928∼1987)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부활한 보이스는 앤디워홀의 존재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에서 29일 개막한 '앤디 워홀 개인전'은 펠트 중절모에 낚시 조끼 차림의 보이스 초상 연작을 전시한다. 갤러리 측은 "워홀과 보이스의 역사적인 초기 만남을 재조명한다"며 "보이스의 초상화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처음 기획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요셉 보이스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플럭서스(Fluxus·전위예술 운동)운동을 펼친 작가로, 백남준 첫 개인전에 도끼를 들고 나타나 전시 중인 피아노 한 대를 부숴버린 일화가 유명하다. 이번에 공개된 워홀과 보이스의 44년 전 빛바랜 사진도 작품처럼 보인다. 1980년 이탈리아 나폴리 사자 조각상 앞에서 손을 맞잡고 찍은 두 사람이 모습이 흥미롭다. 진지한 표정의 보이스와 달리 사자상 입에 손을 넣고 찍은 워홀의 장난기가 보인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 절정기를 이룬 두 사람은 7살 차이로 보이스가 죽은 뒤 1년 만에 워홀도 세상을 떠났다. 앤디 워홀과 요셉보이스는 1979년 독일 한스마이어 갤러리(Hans Mayer, Düsseldorf)에서 열린 전시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둘의 만남에 대해 미국의 저술가인 데이비드 갤러웨이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아비뇽에서 두 명의 라이벌 교황이 마주한 것과 같은 의식적인 아우라’가 감돌았다고 했다. 유럽과 미국 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접선하며 중요한 접점을 이룬 순간이라고 평가됐다. 두 사람은 1979년 10월 30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보이스 회고전을 비롯하여 그해 여러 차례 다시 만났다. 워홀이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 보이스도 사진 촬영을 위해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워홀은 자신의 폴라로이드 카메라(Polaroid Big Shot)를 사용해 펠트 모자와 낚시 조끼를 입은 보이스의 상징적인 모습을 담아냈고, 이이미지는 1980년부터 1986년 사이에 제작된 스크린 프린팅 초상화 연작의 근간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이다. 색을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사진을 찍어내는 워홀은 타인의 자기양식화(self-stylisation)를 포착해 냈다. 당시 초상화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진행했다. 사진의 네거티브 효과를 보다 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색조를 반전시킨 작품은 '워홀 스타일'이 되었다. 이 전시에서 선보이는 '트라이얼 프루프(Trial Proof)', 라인 드로잉, 종이 작품에서 다이아몬드 가루를 활용한 작가의 초기 실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워홀은 이후 마릴린 먼로, 모나리자, 마오쩌둥 등 같은 주요 인물을 재현하는 연작 '리버설(Reversal)'을 지속했다. 원본 사진의 이미지를 단순화함으로써 인물을 상징적이고 아이콘스럽게 표현했고, 실크 스크린 프린팅 기법을 통해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했다. 이미지 자체보다 색상, 구성,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변화를 꾀했다. 워홀은 생전 최종본을 위한 실험 작업인 '트라이얼 프루프'를 자신의 판화 에디션이나 회화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작업군으로 여겼는데, 1980년대 워홀과 협력했던 출판업자 외르크 셸만도 이를 인정했다. "트라이얼 프루프를 워홀의 원화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워홀이 보이스를 현대 미술의 ‘살아 있는 전설’로 여겼던 것 같다”는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워홀과 보이스가 예술에 접근하는 미학적, 철학적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각자의 작품 전반에서 일상적인 사물과 이미지를 활용하고 더 나아가 낯설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집념이 있다는 데서 교차한다"고 설명했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이번 워홀-보이스 전시는 로팍(64)대표에 감회가 깊다. 20대 시절 보이스 작업실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워홀 작업실 팩토리에서 일하기도 했다. 로팍 대표는 1983년 갤러리 개관전에 워홀 전시를 열고 싶었는데 당시 워홀은 자신보다는 젊은 작가의 전시를 여는 게 좋을 것이라며 추천서를 써줬다. 그렇게 만난 작가가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장-미셰 바스키아(1960∼1988)로, 타데우스 로팍 첫 전시로 문을 열었다. 한편 오스트리아에서 출발, 유럽 대표 갤러리로 성장한 타데우스 로팍은 지난 2021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울점을 열었다. 서울 개관전은 독일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였다. 현재 타데우스 로팍의 서울 갤러리는 황규진 디렉터가 총괄 운영하고 있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2024/05/30
칸디다 회퍼 '영원한 고전 미학'…"후보정은 없다" “현대적이지 않지만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다.” 독일 사진 작가 칸디다 회퍼(80)는 '세계적인 사진 작가'로 불린다. 미술 컬렉터들의 '잇템(it item)'으로 소장품 목록에 꼽힌다. 유럽의 클래식한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내부를 유려하게 담아내 회화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마이애미 루벨 패밀리 컬렉션, 취리히 프리드리히 크리스찬 플릭 재단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 갤러리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에 알려진 건 국제갤러리가 한몫했다. 국내외 각종 아트페어에 칸디다 회퍼의 사진을 꾸준히 소개해 처음 봐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국제갤러리는 지난 2020년 부산점에서 전시 이후 4년 만에 서울에서 회퍼의 개인전을 펼친다. ‘다시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직역되는 전시 제목 ‘Renascence’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팬데믹 기간 리노베이션 중이었던 건축물과 과거에 작업한 장소를 재방문해 작업한 신작 14점을 선보인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 Paris)을 찍은 사진은 르네상스 시대 정교한 고전 명화 같다. 회퍼는 2021년 재개관을 앞둔 2020년 이 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철제와 나무 재질의 나선형 계단이 새로 생긴 공간을 담아냈다. 모더니즘. 미니멀한 사진처럼 보이지만 '회퍼 풍'은 여전하다. 부드러운 고전미가 시간처럼 흐른다. 공간을 압도하는 자연광 때문이다. 투명성과 광도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대칭 구도나 역동적 장식 등의 조형 요소로 공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회퍼의 특징이 녹아있다. 스위스의 장크트갈렌(St. Gallen) 수도원 부속 도서관 연작도 팬데믹 기간 중 재방문한 작업으로 새롭게 나왔다. (장크트갈렌 시에 위치한 이 수도원은 18세기에 대대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됐고,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을 담은 2001년 작품은 정교한 프레스코화와 로코코식 몰딩으로 장식된 아치형 천장이 압도했다. 반면 새로 촬영한 2021년 작품은 인물의 요소를 배제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이 교차하는 내부 공간을 조명했다. 완벽한 대칭 구도는 시공간이 이어진 SF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람의 존재를 없앤 후 공간에 남은 흔적과 빛, 미묘한 공기의 감각까지 진동하게 한다. 회퍼는 툭 눌렀을 뿐인데 시간의 흐름이 포착된, 영원성을 담은 공간의 초상으로 아우라를 뿜어낸다. 모든 작업은 한번에 딱!, 후보정 없이 나온 작품이다. 현재 작품 값은 1억 원 선으로 사진 장 당 에디션은 6개다. 전시는 7월28일까지. 관람은 무료. ◆칸디다 회퍼는? 1944년 독일 에베르스발데에서 태어났다. 1973년부터 1982년까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첫 3년 동안 올레에게 영화를, 그 이후에는 현대 독일 사진을 이끈 베른트 베허(1931~2007)와 힐라 베허(1934~2015) 부부로부터 사진을 수학했다. 당시 수업을 함께 들었던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 안드레아스 거스키 등과 함께 ‘베허 학파’ 1세대로 불린다. 1975년 뒤셀도르프의 콘라드 피셔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작가는 지난 50여 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며 공적인 장소, 특히 인간이 부재한 건축의 내부를 특유의 정교한 구도와 빼어난 디테일로 구현해왔다.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선보인 작가는 2002년에 제11회 카셀 도큐멘타에 참여했으며,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틴 키펜베르거와 공동으로 독일관을 대표했다. 2018년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사진공로상을 수상했다. 오는 9월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2024 케테 콜비츠 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2024/05/23
'이건희컬렉션' 덕분에…"미술품 기증, 모두를 위한 예술" 결국 미술품은 '공공의 것'이다. 같이 누려야 더 빛난다. '미래 문화자산'이기 때문이다. '이건희컬렉션' 104점 등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 된 작품 150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은 "예술을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기증자의 뜻이 전시장을 찾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향유의 즐거움을 주고 한국 미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기증 미술품은 전체 소장품 1만1560점 가운데 6429점으로 전체 대비 55.6%를 차지한다. 1971년 시작 된 미술품 기증은 2021년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개인 소장가나 작가 유족 등이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2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전이 개막했다. 최근 5년 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작품 가운데 1960~1970년대 구상회화를 선별해 재조명한다. 특히 2021년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늘어난 다수의 기증 작품들로 구성되어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는 1부‘한국 구상미술의 토양’, 2부‘새로운 의미의 구상’으로 선보인다. ◆1부‘한국 구상미술의 토양’ 국전을 통해 아카데미즘 미술의 초석을 다진 1세대 유화 작가들을 중심으로 근대 서양화 양식의 사실주의 작품을 다수 소개한다. 자연주의적 발상을 토대로 엄격한 사실성을 보인 이병규, 도상봉, 김인승, 이종무, 김숙진, 김춘식 등의 작가들 작품이 나와있다.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인상주의적 색채를 구사하여 주변 풍경과 인물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병규의 '고궁일우(古宮一隅)'(1961)와 '자화상'(1973), 작가의 취향이 스며든 정물을 자연스럽고 안정되게 화면에 채워나간 도상봉의 '국화'(1958), '포도와 항아리'(1970), 어촌 풍경이나 노동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일상을 한국적인 인상주의 화풍으로 담아낸 김춘식의 '포구(浦口)'(1977)등이 대표적이다. ◆2부 ‘새로운 의미의 구상’ 변화하는 미술 조류에 감응하며 구상과 비구상의 완충지대에 속했던 작가들을 망라한다. 자연에 바탕을 둔 조형적 질서를 추구했던 윤중식, 박수근, 황염수를 시작으로 황유엽, 이봉상, 최영림, 박고석, 홍종명 등 1967년 구상전을 발족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들은 종래의 아카데믹한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 대상에 대한 수동적 태세를 지양하고 내면의 이미지를 독자적으로 표출한 작가들이다. 야수주의와 표현주의 양식을 바탕으로 대담한 요약과 강렬한 색채의 구사를 특징으로 하는 윤중식의 '금붕어와 비둘기'(1979), 모래나 흙을 화면에 첨가하여 독특한 질감을 만들며 민담이나 설화로 해학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최영림의 '만상(滿想)'(1975), 특유의 마티에르와 대담하고 거친 화풍으로 전국의 명산을 다뤄 산의 화가로도 불렸던 박고석의 '도봉산'(1970년대) 등이 출품된다. ◆‘기증, 모두를 위한 예술’ 의미 전시장 복도에서는 ‘기증, 모두를 위한 예술’을 주제로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최근 5년 여간(2018년~2023년) 기증받은 작품의 경향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동시대 회화 등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대량 수집되어 소장품의 양과 질이 상향된 부분을 도식화하여 보여준다.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추가 기증도 이뤄지고 있다. 이병규와 윤중식의 작품은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되어 각 5점, 4점이 기증 된 후, 유족들에 의해 2021년 하반기에 각 13점, 20점 추가 기증으로 이어졌다. 이병규, 윤중식, 김태 유족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기증의 뜻과 공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 및 수어해설, 점자책과 큰 글자 감상 자료가 제공된다. 전시는 9월22일까지. 관람료 2000원. 2024/05/22
"자수가 교양? 여성 혁명"…박혜성 학예연구사 "근현대 자수 담론 확장됐으면" 미안하다 몰라봤다. '자수'는 '여성 혁명'이었다는 것을. 그 옛날 있는 집 여식의 '교양 수업'처럼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자수가 AI시대 새로운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박혜성 학예연구사 덕분이다. 미술이 아닌 자수를 덕수궁미술관에 보란 듯이 전시한 그는 "취미생활이자 일상 용품이라는 편견과 폄훼로 예술적인 작품들을 남기고도 수많은 자수인들이 무명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사실 20세기 이후 우리나라에는 자수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않은 것처럼 근현대 자수는 낯설다. 작가 생전 본인의 이름을 내건 자수박물관을 개관한 박을복(1915~2013)정도를 제외하면 자수 작가는 일찍이 일본 유학을 다녀왔건, 조선미술전람회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수상했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건 미술계예서 알려진 경우가 드물다. "이는 자수가 기존의 밑그림에 여성들의 반복적인 손동작만으로 만들어져 창의성도, 개성도 부족하다는 인식, 즉 개성, 독창성, 천재성 등을 중시한 모더니즘 미학이 만들어낸 선입견 및 가치절하와 무관하지 않아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특히 그녀의 짧은 시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가 떠올랐다고 했다. "19세기 엄숙한 청교도 및 가부장적 사회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던 그녀는 주변의 일상과 자연을 시에 담에 사랑, 죽음, 상실, 영원, 아름다움, 글쓰기와 읽기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게 되는 20세기 한국의 자수 작가들 역시 근대화=서구화, 식민, 전쟁, 분단 산업화 등 특수한 사회 조건 아래서 혹은 조건에 맞서 자신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 사랑과 소망 절망과 고통, 저항 등을 한 땀 한 땀 자수에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5월1일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 펼치는 한국 근현대 자수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전시는 반전이다. '이 시대에 웬 자수?'라거나 '미술관에서 왜 자수전?'이라는 어설픈 의혹을 타파한다. 19세기 말 이후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시대 상황과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해 온 한국 자수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1점)과 필드 자연사박물관(3점), 일본민예관(4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 국내외 60여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근현대 자수, 회화, 자수본 170여 점, 아카이브 50여 점이 출품됐다. "전시는 실과 바늘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한 여성 작가들의 마법에 경지에 다다른 바느질을 보여준다." 한국 자수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시대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현전하는 고대, 중세 유물의 수가 극히 한정적인 탓에 흔히 ‘전통자수’로 불리는 작품의 대부분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조선 시대 여성들이 제작하고 향유한 규방 공예로서의 자수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자수의 변화상은 개항, 근대화 및 서구화, 전쟁, 분단, 산업화, 세계화 등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주류 미술사의 관심 밖에 놓여왔다. 생활 자수, 복식 자수, 병풍 등 조선 시대 규방 공예로서 탈피한 건 일본 유학파들이 생기면서다. 일제강점기 한국 부잣집 여성들은 일본 ‘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 이하 조시비(女子美))’에 유학하여 자수를 전공 하는 게 최고의 학력이었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부터 공예부가 신설되면서 공예품이 ‘미술공예’로 거듭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조시비 출신인 윤봉숙의 작품 '오동나무와 봉황'(1938)이 '회화 같은 자수'가 등장했다. 해방 직후 이화여자대학교에 국내서는 처음으로 자수과가 설치되면서 부흥기를 맞았다. 1950년대 이후 조시비와 이화여자대학교 출신 작가들의 다양한 활동과 작업은 한국 자수가 조시비 자수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전모를 보여준다. 독학으로 예술 자수의 경지를 보이는 송정인의 '작품 A'(1965), 김인숙의 '계절 Ⅱ'(1975) 등은 추상화 같은 자수화의 혁신을 이룬다. 자수는 규방에서 벗어나 여성의 자립기반이 됐다. "1960년대 당시에는 미술품보다 자수가 인기였다 부업으로 자수를 제작했고, 수출용으로 많이 만들었고 혼수로도 수요가 많았다. 자수를 잘 놓는 여성들은 집을 몇 채씩 살 정도로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1980년대 기계 자수가 등장하면서 전통 자수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옛날 여성의 취미정도로 취급받은 자수를 공예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는 1963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수공예학원을 설립한 한상수 씨로, 그는 198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 80호 자수장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고 유 무형의 문화재가 국가적 보호 대상으로 규정된 지 20여 년 만의 일이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1996년 최유현이 두번째 자수장으로 지정되었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한상수(불수)와 최유현(불화)의 전방위적인 활동과 이들의 스승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자수를 배운 신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스승으로부터 전통 자수의 원형을 전수 받고 그대로 보전했다기보다 직접 전통을 찾아내고 전통 자수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산업 공예로만 인식됐다가 이 분들의 노력으로 보존해야 할 전통문화로서 재인식되는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변화된 자수 실천이 어떻게 전개해 왔는지 시대별로 나눠 4부로 구성했다. "20세기 한국자수의 역사라는 아름다운 실의 향연 뒷면에는 서양(일본) 동양(한국) 남성/여성, 근대/전통, 공/사, 순수예술/공예, 독창성/모방 등 무수한 길항의 관계가 존재합니다. 회화의 재료인 붓과 물감이 주로 종이와 캔버스의 표면과 상관한다면, 자수의 재료인 바늘과 실은 바탕 천의 표면을 뚫고 이면을 접촉하고 다시 표면으로 돌아오는데, 이는 마치 세상을 명확하게 구분되는 이분법적 경계에 의문을 던지듯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습니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20세기 후반 이후 현대미술가들은 섬유를 주요 매체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근현대 자수의 실천과 담론에 대한 연구가 보다 심화, 확장되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근현대 자수가들의 작품과 함께 선보인 현대미술가 함경아, 홍영인, 이강승, 이인선 등의 작품은 무한히 연장되고 있는 자수의 혁명으로 새롭게 보인다. 기계 못지않게 제작한 근현대 자수품들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자수장 최유현이 쓴 글은 자수인 뿐 만 아니라 예술가들에 전한 조언이다. "수놓는 기술자에 그치지 말고 혼을 불어넣어 주제 의식을 작품에 제대로 구현하는 작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임할 때 오늘날 자수가 하나의 독립된 예술세계로 인정받게 될 것이며 자연히 자수인 또한 한 명의 작가로서 받아들여 줄 것입니다." 3년 간의 준비로 근현대 자수사를 새롭고 꼼꼼하게 정리한 이번 전시는 자수화가 현대미술 매체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될지 주목된다. 전시는 8월4일까지. 관람료 2000원. 202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