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억 투입한 허스트 전시…국립현대미술관은 무엇을 보여주나 지난해 연말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을 달군 이름이 서울에 도착했다. 죽음을 진열해온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1)다. 미술관 최초로 정부 예산 33억 원이 투입된 이번 전시는 관람료를 8000원으로 인상하며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한물 갔다고 말하기엔 여전히 시끄럽다. 논쟁적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2)는 지금 무엇을 팔고 있는가. 국립현대미술관이 내건 전시 제목은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다. 이 문장은 그의 현재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낸다. 18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기자간담회는 그의 작품처럼 화려하지만 허무하게 끝났다. 그의 이름값에 몰린 100여 명의 취재진은 포토타임만 지켜봐야 했다. 이날 허스트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며 약 3분간 인사말을 한 뒤 5분간 촬영을 진행하고 자리를 떠났다. 미술관 측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으로 급히 출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스트는 짧게 말했다. “작품 자체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설명 대신 전시장에 놓인 작품과 노트를 보라고 했다. 영국에서 방한한 그는 짧은 일정 속에서도 ‘현대미술계 악동’다운 행보를 보였다. 별다른 발언 대신,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으로 존재를 각인시켰다. 급히 간담회장을 빠져나온 그는 작품 앞에서 몸을 던졌다. 혀를 내밀고, 바닥에 눕고,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사진기자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하나의 퍼포먼스를 남긴 채 한국을 떠났다. 허스트의 책을 출간하며 개인적 인연 속에서 이번 전시를 적극 추진한 김성희 관장은 그를 “현대미술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이름”이라 규정했다.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중심 인물이자 죽음과 욕망을 다뤄온 작가라는 설명과 함께, 이번 전시가 회고전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40년에 걸친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허스트는 이미 미술사에 등록된 작가다. 1988년 ‘프리즈’ 전시를 통해 YBA의 흐름을 이끌며 등장했고,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로 ‘죽음’을 하나의 이미지로 구축했다. 그 충격은 곧 브랜드가 됐다. 문제는 작품이 아니라 시점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반복 소비된 이미지들이 뒤늦게 서울에 도착했다는 인식이 따라붙는다. 한때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그의 작업이 이제는 ‘신선함’보다 ‘익숙함’으로 읽힌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허스트의 대표작을 집약적으로 선보인다. 상어와 동물 사체를 활용한 ‘내추럴 히스토리’, 다이아몬드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 약과 의학을 모티프로 한 ‘메디슨 캐비닛’ 시리즈 등 50여 점이 소개된다. 전시는 익숙한 그의 이미지를 충실히 재현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충격은 반복되며 스타일이 됐고, 이미지는 소비 가능한 기호로 자리 잡았다. 전시장에는 수족관 속 상어, 파리가 날아앉는 잘린 소머리, 다이아몬드 해골, 형형색색 알약과 점화 시리즈 등 대표작 50여 점이 소개된다. 하나의 브랜드처럼 굳어진 작업들은 죽음, 신념, 과학, 자본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믿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설명은 이제 하나의 관용구처럼 반복된다. 또 실제 운영됐던 레스토랑 ‘약국’을 옮긴 공간과 런던 작업실을 재현한 스튜디오도 함께 구성돼, 미완의 회화와 작업 도구까지 공개된다.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은 미국 뉴욕 컬렉터로부터 대여된 작품이다. 1991년 초기작인 상어는 빛바랜 부패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다. 푸른 포름알데히드도 끝내 봉인하지 못한 죽음의 형상이다. 반면 다이아몬드 해골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실제 치아를 남긴 두개골 위에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를 뒤덮은 작품은 여전히 찬란한 허무를 발산한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는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작품으로, 약 1000억 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비 날개로 구성된 푸른빛 삼면화도 눈길을 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이 작업은 잔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관람객의 시선을 붙든다. 전시장 내부에는 1998년 런던에서 운영됐던 레스토랑 ‘약국’을 재현한 공간도 마련됐다. 실제 약국으로 오해될 만큼 정교하게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의학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시각적 체계로 구축되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런던 작업실이 그대로 옮겨졌다. 미완의 회화와 작업 도구가 뒤섞인 공간은 작가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드러낸다. 그는 최근 분홍색 벚꽃 시리즈를 통해 회화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직접 연출한 그는 이 공간의 거울 위에 한글로 “대한민국 사랑해요”라는 문구를 남겼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가장 최근 작업일지도 모른다. 허스트는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했다. 골드스미스 대학교 재학 시절인 1988년 직접 기획한 전시 ‘프리즈’를 통해 주목받았다. 낡은 부두 창고를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작가들이 공간을 직접 연출하며 기업 후원을 이끌어낸 이 전시는 이후 YBA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는 곧 강렬한 작업으로 이름을 각인시켰다. 죽은 소의 머리와 파리 유충을 이용한 ‘천년’(1990),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를 통해 죽음을 시각화한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은 현대미술계에 강한 충격을 남겼다. 허스트의 관심은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태도와 믿음에 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영생을 꿈꾸고, 종교와 과학, 의학과 자본에 의지한다. 그는 이러한 믿음의 구조를 드러내며, 우리가 절대적이라 여겨온 가치들이 서로 닮아 있음을 질문해왔다. 이 지점이 허스트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철학적 위치다. 허스트는 창작에 머물지 않고 유통과 전시 시스템에도 개입해왔다. 작가가 경매사와 직접 거래한 사례, 레스토랑 ‘약국’ 운영,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행보는 미술 생태계의 구조를 실험한 시도로 평가되는 동시에, 그를 ‘장사꾼’으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낳았다. 허스트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은 블록버스터급 전시지만, 미리 공개된 구성은 새로운 제안이라기보다 기존 ‘허스트 브랜드’를 재배치한 방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작품 대부분이 글로벌 미술관과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된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특히 허스트가 10년의 공백을 깨고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화제를 모은 ‘믿을 수 없는 난파선에서 건진 보물’ 등 최근 주요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제외됐다. 미술관은 “전시의 결이 맞지 않아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술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약 5년 전부터 추진됐다. 이전과 달리 작가 측의 적극적인 협조로 작품 선정이 비교적 수월했으며, K-콘텐츠 확산과 함께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체감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지금 왜 허스트인가. 미술관은 “이미 미술사의 아이콘이 된 작가를 조망하는 것이 공공적 역할”이라며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평가가 축적된 대표작 중심의 전시가 동시대적 문제의식보다는 기존 명성을 재확인하는 데 머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논쟁 속에서도 이번 전시는 대중적 관심 속에 흥행이 예상된다. 지난해 ‘론 뮤익’ 전시(58만 명)에 이어 데이미언 허스트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 기획이라는 점에서다. 유행은 돌고 돈다. 20년 전 국내 미술관이 샤갈, 피카소 등 해외 명작전을 선보였다면, 최근에는 동시대 글로벌 작가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서울에서도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는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술관은 ‘원본 경험’의 가치를 강조한다. 학예사는 “이미지로 소비된 작품이라도 실물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다르다”고 말했다. 허스트의 작업이 예술과 자본,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다뤄온 만큼, 이를 몸으로 체감하는 전시라는 설명이다.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는 허스트의 말처럼, 이번 전시를 둘러싼 논의 역시 이어질 전망이다. 공공 미술관의 역할과 전시 기획 방향이 그 중심에 놓인다. 흥행과 담론 사이,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이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열린다. 2026/03/18
이우성, 인물에서 풍경으로…감정의 회화로 확장 “이 그림을 보고 나갔을 때, 뭔가 감정이 남았으면 좋겠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이우성(43)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는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는 인물 중심으로 전개해온 작가의 회화가 ‘풍경’으로 확장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3년만에 열린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와 전속계약 후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이우성의 작업에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인물이다. 그동안 친구와 가족, 일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작업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강대교, 종로3가역, 제주 애월과 성산일출봉 등 익숙한 장소를 호출하며 기억과 감각이 중첩된 풍경을 제시한다. 초기 작업이 구체적 인물과 시대적 서사를 통해 동시대 청년의 초상을 드러냈다면, 최근 작업은 인물의 정체성을 지우고 풍경 속 익명적 존재로 전환되며 존재론적 감각으로 확장된 변화를 보여준다. 풍경은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그 위에 시간의 흐름과 감정, 관계의 흔적이 겹쳐지며 하나의 복합적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구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띤다. 보랏빛 하늘과 물, 과장된 초록의 밀도 노을의 붉은 색 등 비현실적 색채는 특정 순간의 정서와 감각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풍경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니라, 경험된 시간의 집합으로 전환된다. 특히 인물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인간 같기도, 생명체 같기도 한 만화적 형상은 성별과 나이, 개별적 특징이 지워진 채 단순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인물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풍경 안으로 스며들게 한 결과에 가깝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우성은 이를 “누구도 아니지만 누구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사람을 그리는 데에는 부담이 있었어요. 아무리 그려도 실제와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성을 덜어낸 화면에서 인물은 초상이 아닌, 기억 속에 남은 감정의 형상으로 작동한다. 익명성과 낯섦이 공존하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정서를 환기한다. 인물의 노란 윤곽선은 이번 작업의 핵심 요소다. 작가는 “빛을 받았을 때 드러나는 실루엣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 윤곽선은 형태를 채우는 색이 아니라, 존재의 경계를 드러내는 빛의 흔적이다. 해가 지기 직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경계의 시간에 대한 관심 역시 화면 전반에 스며 있다. 물결과 구름, 인물의 이동은 곡선적 리듬으로 표현되며, 정적인 화면 속에서도 흐름과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 물결의 리듬은 겸재 정선의 산수에서 착안한 것으로, 전통적 풍경 감각을 동시대적으로 변주한 결과다. AI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그린다’는 행위의 밀도를 환기시키는 작업이다. 익숙한 구상회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감각은 오히려 새롭다. 이우성의 풍경은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분포하는 장면이다. 세밀하게 묘사된 도시와 자연 풍경 위에 단순화된 인물이 겹쳐지며, 현실과 감정의 이중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상반된 표현이 아니라, 이전 자화상을 그리던 시선의 연장선이다. 작가는 “눈을 그리듯 풍경을 들여다봤다”며 “풍경도 하나의 얼굴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결국 사람을 드러내기 위해 풍경을 그린 셈이다. 이러한 시선의 배경에는 어린 시절 즐겨 봤다는 쾨테 콜비츠와 뭉크, 신학철, 최민화 등 감정과 서사를 다뤄온 작가들, 그리고 신문 만평과 겸재 정선의 풍경까지 서로 다른 계보가 겹쳐져 있다. 이 이질적인 흐름은 그의 화면 안에서 교차한다. 그 결과 풍경은 재현이 아니라 감정이 작동하는 장면으로 변한다. 대형 걸개그림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2021)는 이러한 시선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Real DMZ Project)’ 커미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김포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 해물 선전마을 풍경을 담고 있다. 4m가 넘는 대형 화면에는 산속 마을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풍경은 한눈에 포착되지 않는다. 작가는 “애기봉에서 북쪽을 바라봤지만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쌍안경으로 봐야 했고, 그러면 또 전체를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화면을 확장했다. “북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지 상상하며 한 인물을 그렸다”며 “결국 이 작은 인물을 그리기 위해 큰 풍경을 그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화면 하단, 산길 가장자리에는 개미처럼 작게 그려진 한 인물이 서 있다. 보이지 않는 타자를 향해 서 있는 이 장면은, 성소수자이자 탈북자의 서사를 다룬 장영진의 소설 ‘붉은 넥타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감정의 표현 방식도 변화했다. 작가는 “이번 작업은 일기처럼 시작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 했다”고 말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분출하기보다, 시간 속에서 가라앉은 상태로 다루는 방식이다. 과거 ‘불’이 내면의 불안을 드러내는 이미지였다면, 이번 전시에서의 불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감정은 더 이상 분출되지 않고, 공유되는 상태로 이동한다. 이우성은 지난 15여 년간 ‘현재’라는 시간에 주목해온 작가다. 자화상에서 출발한 초기에는 불안과 분열의 정서를 강하게 드러냈고, 이후 실제 마주한 사람과 순간을 보다 밀도 있게 화면에 담아왔다. 작업에 더욱 몰두하며 그가 탐구해온 ‘현재’는 고정된 순간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중첩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성되는 감각이다. 결국 이우성의 회화는 ‘현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감각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이전보다 그리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은 풍경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제 작업을 보며 풍경의 상징이나 장소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만,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포착할 수 있는 시간의 밀도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유망작가로 학고재와의 5년 전속을 마치고 갤러리현대와 새롭게 전속을 맺은 그는, 청년작가에서 40대 작가로 이동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전업작가이지만 생활과 작업을 분리하지 않는 태도로 동시대의 감각을 화면에 반영해 나가고 있다. 약 40여 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개막 전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 작품은 예약과 판매가 이뤄지며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작품 가격은 100호 기준 1800만 원 선이다. 전시는 4월 26일까지 이어진다. ◆작가 이우성은? 1983년생으로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08년 첫 그룹전을 시작으로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서 전시를 이어왔다. 그동안 학고재(서울, 2023·2017), OCI미술관(서울, 2013), 서교예술실험센터(서울, 2012)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립타이완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기관에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년 OCI 영 크리에이티브 수상 작가로 선정됐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OCI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2026/03/17
“나는 나무예요”…91세 김윤신, 호암에서 다시 본 70년 조각 “나무는 바로 나입니다.” 구순을 넘긴 조각가 김윤신의 말은 단순한 비유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오히려 그 말이 가장 정확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11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한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한국 현대조각의 한 축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전시다. 동시에 한 조각가가 자연이라는 재료와 평생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조각들이다. 거칠게 절단된 면과 벌어진 틈, 다시 맞물린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나무의 껍질과 내부 결이 동시에 보이고 전기톱의 흔적도 숨기지 않는다. 김윤신의 조각은 완성된 형태라기보다 과정이 드러난 조각에 가깝다. 그는 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결과 색, 재료의 성질을 관찰하다 어느 순간 형상이 떠오르면 전기톱을 든다. 밑그림은 없다. 나무 안에 이미 존재하는 형태를 끌어낸다는 방식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자르고 나누고 작가와 재료가 하나가 되고, 그 만남 속에서 또 다른 존재가 탄생한다는 뜻이다. ◆죽은 나무를 다시 세우다 김윤신에게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1935년생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인 그는 전쟁 중 어머니와 함께 오빠들을 찾기 위해 시신이 쌓인 곳을 뒤집어 보며 가족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 기억은 훗날 죽은 나무를 다시 세우는 일과 이어진다. 그가 말한 또 하나의 장면도 있다. 전쟁 뒤 기름을 얻기 위해 뿌리째 거꾸로 파헤쳐진 소나무들이다. 그는 그 나무들을 친구처럼 느꼈다고 했다. 버려진 나무를 작품으로 남기는 것이 친구를 기억하는 마음이었다는 그의 말. 그 고백 앞에서 김윤신의 조각은 더 이상 단순한 추상이 아니다. 삶과 죽음, 상실과 복원, 그리고 기도의 흔적을 품은 조형이 된다. 어쩌면 그의 수직의 조각들은 쓰러진 것을 다시 세우려는 몸짓인지도 모른다. 갈라지고 맞물린 형상들은 오빠가 살아 있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기도를 닮아 있다. ◆남미에서 시작된 전기톱 조각 나무 조각 앞에 서면 묘한 장면이 떠오른다. 전기톱을 든 할머니가 나타난다. 나무들이 떨고 있다. 전기톱이 지나가고 나무는 갈라지고 맞물린다. SF 만화 같은 장면이지만 이것이 바로 조각가 김윤신의 하루다. 그러나 그 나무들 이미 죽은 나무들, 버려진 나무들이다. 전기톱은 나무를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다시 살리는 도구가 된다. 일명 '전기톱 할머니'가 지나간 자리에서 나무는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렇게 탄생한 조각이 김윤신이 평생 말해온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다. 김윤신의 작업 방식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게 된 것은 1983년 아르헨티나 이주 이후였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숲이 보였습니다. 한국은 산과 산 사이에 마을이 있는데 거기는 평야였습니다. 그 자연이 나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작업 환경이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작업실도, 재료도 부족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버려진 나무를 주워 작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목재였다. 남미의 나무는 한국에서 쓰던 조각 도구로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했다. 결국 그는 전기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기톱으로 절단한 나무의 결과 틈, 쪼개진 면은 그대로 작품에 남았다. 그 상처는 숨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조각의 생명력이 됐다. ◆돌과 회화로 확장된 작업 이번 전시는 나무조각뿐 아니라 돌조각과 회화까지 함께 보여준다. 1990년대 이후 그는 돌을 사용한 조각으로 재료의 범위를 넓혔다. 단단한 물질을 쪼개고 맞물리게 하는 방식 속에서 조각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색채와 기호가 등장한다. 삼각형, 지그재그 같은 문양은 남미 원주민 문화의 시각 언어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동시에 작가 자신의 기호 체계와 만난다. 이 무렵부터 조각과 회화는 서로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회화 연작 ‘영혼의 노래’에 나타나는 파동과 기호들은 조각의 리듬과 이어지고, 조각은 다시 회화적 표면을 얻는다. 2000년대 이후 김윤신의 조각에는 색채와 기호가 들어오며 조각과 회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조형 세계가 펼쳐진다. ◆잔잔한 리듬의 일상…런웨이 같은 전시 나무 작업이 총망라된 이번 전시는 그 양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 작업하는 사람의 일상처럼 잔잔하고 성실한 리듬으로 공간을 연출했다. 한 점 한 점이 축적의 결과라기보다 오늘도 작업실로 향했을 한 사람의 습관처럼 놓여 있다. 특히 2층 전시장은 런웨이처럼 길게 구성됐다. 관람객은 양쪽에 놓인 작품을 번갈아 응시하며 걷게 되는데, 그 동선은 마치 김윤신의 시간 위를 걷는 경험에 가깝다. 오래된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한 조각가의 열정이 그 공간을 밀고 간다. 이번 전시에만 170여 점이 나왔지만 작가가 남긴 작품은 현재 1500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5년 홍익대 조각과에 입학해 70여 년을 예술에 헌신해온 김윤신이 현재까지 제작한 작품은 평면과 입체를 아우른다. 이번 회고전에는 망실된 1960년대 이전의 작품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가장 초기작인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의 판화와 이후의 실험적인 평면작품들, 그리고 60대에 들어 몰입하기 시작한 다채로운 회화까지 선보인다. ◆코로나가 만든 ‘회화-조각’ 전시 후반부에 등장하는 채색 조각은 코로나 시기의 산물이다. 밖에 나갈 수 없고 재료도 떨어지던 시기, 그는 작업실에 남은 나무 조각들과 공사장에서 나온 폐목재들을 모아 조각을 만들고 그 위에 색을 입혔다. 그렇게 탄생한 작업은 조각이면서도 회화 같고, 회화이면서도 구조물 같다. 작은 캔버스들이 조립된 것 같은 이 형식에 그는 ‘회화-조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버려진 목재 위에 색을 칠하는 행위는 어린 시절 자연과 놀던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다. 쓸모를 다한 재료에 다시 숨을 넣는다는 점에서 이 작업 역시 김윤신 조각의 오랜 테마를 잇는다. ◆뒤늦게 시작된 국제적 조명 김윤신이 국제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프랑스 출신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가 70대 이후 재평가된 것과 비슷하게 그는 80세에 가까워서야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겪으며 성장한 그는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1964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공부했다. 1973년 이우환, 권영우, 김창열 등과 함께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했고 1974년에는 ‘한국여류조각회’를 창립하며 여성 조각가들의 활동 기반을 마련했다. 상명대 교수직도 버리고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그는 40년 가까이 남미에서 작업하며 독자적인 조각 세계를 구축했다. 수양딸인 김란 등 제자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귀국한 그는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개인전을 계기로 그의 작업은 국제갤러리, 리만머핀 전시 등을 통해 국내외 미술계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되며 국제적으로 재조명됐다. ◆호암미술관에서 다시 읽히는 K 조각가 김윤신 90대 '전기톱 할머니 조각가'의 이번 전시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호암미술관에서 한국 여성 조각가 개인전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 열린 여성 조각가 전시는 루이즈 부르주아였다. 호암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윤신 작가는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지만 호암미술관 전시를 계기로 그의 작품 평가는 전과 후가 달라질 것입니다. 살아 있는 ‘올드 파워’ 작가로서 한국 여성 조각가의 미술사적 의미를 국내외적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그런 선언에 걸맞다. 한국에서 출발해 파리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이어진 김윤신의 여정은 한 작가의 개인사에 머물지 않는다. 모더니즘이 어떻게 유럽의 발원지를 넘어 남미와 아시아의 자연, 신앙, 기억과 만나 다른 얼굴로 변형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던하면서도 원시적이고 자연적이면서도 구조적이며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이 조형 세계는 한국 현대미술 안에서도 쉽게 닮은 예를 찾기 어렵다. ◆작가가 꼽은 '원픽'은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특히 애정을 보인 작품은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1987-88'이다. 현재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으로 이번 전시에 특별 대여됐다. 이 작품은 김윤신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지 4년째에 제작한 조각이다. 안정감 있는 밑둥 위로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돌기들이 서로 다른 각도와 밀도로 맞물리며 올라가 마치 조각의 뼈대를 이루는 듯한 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작품은 관람자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하나의 응축된 몸체에서 굴곡이 풍부한 역동적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나무의 껍질과 심부를 넘나드는 시선은 나무의 결뿐 아니라 전기톱이 지나간 흔적까지 함께 읽어 들인다. 1984년 작품과 유사한 형식을 지니면서도 구조적으로 더욱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조형으로 발전한 이 조각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김윤신의 조형 세계가 원숙하게 심화됐음을 보여준다. ◆90대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 90대에도 계속 작업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짧게 답했다. “정신력입니다.” 이는 단순한 근성론이 아니다. 나무와 돌을 다루는 일은 노동이고 오랜 시간 재료를 응시하며 자기 안의 형상을 기다리는 일은 수행에 가깝다. 그는 “내 생각과 내 정신이 하나가 돼야 작업이 된다”고 말했다. "젊을 때는 형태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작품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김윤신의 조각은 손보다 정신이 먼저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됐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순간이 올 줄 몰랐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호암미술관에서 생애 첫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작가는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런 날이 올 줄 진짜 몰랐어요. 이건 사람이 만든 일이 아닙니다. 하늘이 준 기회입니다.” 이 말은 단지 겸손의 수사가 아니다. 그는 70년 가까이 작업해온 사람이고 현재까지 평면과 입체를 합쳐 1500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간이 이제야 도착한 것처럼 말한다. 그 늦은 도착의 감각이 오히려 깊은 울림을 만든다. 전기톱 자국이 남은 나무들, 쪼개진 뒤 맞물린 돌, 기호와 색을 입은 회화와 조각들. 모두가 한 사람의 평생을 관통한 같은 문장을 말하고 있다. “나는 나무예요.” 죽은 나무를 다시 세우고 버려진 것을 다시 생명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김윤신이 평생 해온 작업이다. “91세, 나이를 의식한 적이 없다”는 그는 지금도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꿈이요? 그냥 계속 작업하는 겁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마치 주문처럼 그 말을 되뇌며 또 하루를 조각한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열린다 2026/03/11
"1년 내 반환 시 80% 환불”…미술시장 새 실험 ‘아트서울’ 미술품을 샀다가 마음이 바뀌면 돌려줄 수 있을까. 마니프(MANIF) 아트서울 조직위원회가 디지털 플랫폼 기반 온라인 전시 ‘20!2026 ART SEOUL’을 열고, 작품 구매 후 1년 이내 환불 요청 시 구입가의 80%를 환급하는 ‘80% 개런티 제도’를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다. 개인 소장 작품까지 다시 거래할 수 있는 리마켓(재판매) 구조도 함께 운영한다. 4일 뉴시스와 만난 아트서울조직위원회 김영석 대표는 “미술시장은 작품을 팔 수는 있지만 다시 팔 수 있는 시장이 거의 없다”며 “작품이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아트서울’ 플랫폼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매 데이터를 보면 일부 작가만 거래가 되고 대부분 작가의 작품은 2차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번 ‘아트서울’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작가의 전시 무대와 판로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김 대표는 1995년 국내 최초로 ‘작가 군집형 아트페어’인 마니프를 창설해 ‘가격 정찰제’ 도입 등 미술시장 투명화 실험을 이어온 인물이다. 1993년 갤러리아미 대표로 국내 화랑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피악 아트페어(FIAC Art Fair)에 참가했으며, 1994년에는 바젤 아트페어에도 참여했다. 그는 2003년에는 월간 미술경제지 ‘아트프라이스(Art Price)’를 창간해 20여 년간 운영했다.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인가로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를 통해 미술품 가격 평가와 시장 데이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오프라인 아트페어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미술 유통 방식을 모색해왔다. 2025년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아트서울(artseoul.com)은 작품 판매와 재판매를 동시에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작품을 구매한 뒤 1년 이내 반환하면 구매 가격의 80%를 환급받는 구조로, 에스크로 계좌를 통한 안전 거래를 전제로 한다. 김 대표는 “구매자가 작품을 샀을 때 최소한 1년 동안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며 “고객은 취향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시장성과 작품성에 대한 구조는 플랫폼이 책임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 배분 구조도 기존 화랑 중심의 5대5가 아닌 작가 60%, 아트서울 40% 구조를 적용한다. 그는 “70% 환불은 손해라고 느끼지만 80%는 거의 다 돌려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구매 부담을 줄여 작품을 취향 중심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술 입문자들이 부담을 느끼는 환금성과 가격 투명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작품 가격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협력해 정찰가 방식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부르는 게 값’으로 인식되는 미술품 가격 구조 역시 미술시장 활성화와 가격 투명성 확보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미술품 판매 가격은 경매 낙찰가와 다른 경우가 많고, 낙찰가를 근거로 가격이 과도하게 오르거나 내려가는 사례도 발생한다. 작가 경력에 따라 가격이 일률적으로 상승하거나 화랑에서 호가와 판매가가 다른 이중 가격 구조 역시 시장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가격 구조 문제는 작품 가치 평가와 세금 문제로도 이어진다. 실제로 일부 원로 작가들이 상속세 부담 등을 우려해 생전에 작품을 폐기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는 현재 미술시장 구조의 문제로 작가 가격과 시장 가격의 괴리를 지적했다. “미술시장에는 두 가지 가격이 있습니다. 작가가 정하는 전시 가격과 경매에서 형성되는 거래 가격입니다. 경매 가격은 기록으로 남지만 전시 가격은 작가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미술품 시장이 위축되는 가장 큰 요인은 불안정한 가격 체계와 저조한 환금성”이라며 “80% 개런티는 미술 애호가의 입문 문턱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장치”라고 말했다. 또 작품이 반환될 경우 작가 역시 가격 조정이나 작품 방향을 다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지난 5년간 이 플랫폼 개발에 몰두했으며, 지난해 ‘티마니프 서울’로 첫 선을 보였다. ‘아트서울’ 섹션은 1000만원 이하 중저가 원화 작품을 소개하는 온라인 군집 개인전 형식으로 운영된다. 작가별 전시 이력과 평론, 작가 노트, 작품 이미지 등을 ‘아트레조네’ 시스템으로 축적해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 역할을 수행하도록 구성했다. 또 작가의 창작 계보와 활동 이력을 정리하는 ‘화계도(畵系圖)’ 개념을 도입하고 작품 이미지와 보증서에 블록체인 기반 인증 시스템을 적용했다. 플랫폼에서는 개인이 소장한 작품도 리마켓에 등록할 수 있다. 판매자는 희망 가격을 제시해 작품을 올릴 수 있으며 시장 가격과 괴리가 큰 경우 플랫폼이 가격 조정 방안을 안내한다. 또한 지난해 오픈한 ‘티마니프(t-MANIF)’ 섹션도 운영한다. 티마니프는 에디션 12점 한정 판매, 프리미엄 피그먼트 프린트, 블록체인 기반 작품 보증서, 구매자 텍스트 입력이 가능한 디지털 포스트카드 제공, 이모티콘 16종 포함 등 디지털 기반 콘텐츠를 선보인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미술품 구매가 여전히 투자 중심으로 인식되는 점도 지적했다. “그림을 사면 얼마 오르느냐를 먼저 묻습니다. 그래서 구매자가 신뢰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번 제도의 목표는 가격 상승 기대보다 취향 중심의 컬렉팅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집이나 화랑 수장고에 있는 작품도 다시 거래될 수 있어야 한다”며 “작품이 순환되지 않으면 시장 밖으로 이탈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리마켓 운영에서 변수로 꼽히는 위작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반 중고 거래와 달리 미술품은 진위 확인이 중요하다”며 “1차 자료를 받아 검증 과정을 거친 뒤 플랫폼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내 미술시장의 또 다른 문제로 가격 정보 부족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림 가격을 모르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시장 가격이 8000만원 수준인데 3억원에 거래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작품 사진과 정보를 보내면 최근 거래를 기준으로 시장 가격을 안내하는 상담 서비스도 운영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이번 시도를 미술시장 구조 변화를 위한 실험이라고 강조했다. 아트페어 기획자이지만 김영석 대표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10회 경력의 작가이기도 하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신여대 미술대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며 “다만 지금은 시장 구조가 따라주지 않는다. 작가와 컬렉터가 편안하게 작품을 소장하고, 필요할 때 자유롭게 다시 되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20!2026 ART SEOUL’에는 총 65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온라인 전시는 오는 16일부터 4월 13일까지 진행된다. 참여 작가는 고민철, 구자승, 권영범, 권의철, 권치규, 김경민, 김경자, 김리윤, 김리현, 김만근, 김미혜, 김선기, 김성복, 김수수, 김숙, 김영선, 김운규, 김일해, 김재학, 김정희, 김주철, 김준, 김현일, 남궁원, 남여주, 류영도, 박강정, 박동수, 박영인, 박지오, 박창범, 손일, 심지혜, 안용선, 양화정, 엄윤숙, 엄윤영, 오용길, 유종욱, 유휴열, 윤옥순, 윤정수, 이강화, 이경우, 이명화, 이범헌, 이영박, 이정웅, 이창수, 임근우, 장동문, 장석수, 장욱희, 정규순, 정병헌, 정성희, 조안석, 채성숙, 최송대, 최양선, 콜트카미, 한명욱, 한은주, 황신영 등이다. 2026/03/04
“한국화는 빼기가 안 돼요”…오용길 화백, ‘봄의 기운’ 벚꽃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분홍빛은 화사하지만 화면은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화가 오용길(79· 이화여대 명예교수) 화백의 산수는 계절의 정취보다 붓의 태도를 먼저 드러낸다. 작은 차이를 축적해 온 필선, 우연을 허용하되 구조를 놓지 않는 계산이 화면을 지탱한다. 그는 장르 구분에 선을 긋는다. “동양화냐 서양화냐, 그건 나한텐 의미가 없어요.” 지필묵을 기반으로 하지만 공간 개념과 조형 감각은 서양화의 시각을 끌어온다. 여백을 비워두기보다 화면을 밀도 있게 채운다. 유채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수채화처럼 보인다는 반응도 있지만, 그는 차이를 ‘필선’과 ‘종이’에서 찾는다. “유화는 더하고 빼고가 다 되는데, 한국화는 빼기가 안 되는 거예요. 더하기는 돼도 빼기가 안 돼.” 먹과 물이 한지에 스며들면 다시 걷어낼 수 없다. 그래서 한 번의 선택이 곧 결과가 된다. 그는 작품을 거의 한 붓으로 완성한다. 세필을 여러 번 쓴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번의 붓질 안에서 농담과 속도를 조절한다. 붓을 떼지 않고 힘을 누르고 풀며 화면의 밀도를 만든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밑그림을 그린다. “안 그러면 100전 100패죠.” 3일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만난 그는 누구보다 먼저 봄을 화폭에 옮긴 사람처럼 환한 표정이었다. 55년째 수묵채색화의 한길을 걷고 있는 그는 “아직 건강하다”며 “늘 그리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전시장에는 20여 점이 걸렸다. 화면은 빛을 머금은 인상파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벚꽃은 화사하게 번지고 색채는 유연하게 겹쳐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먹의 선이 단단히 구조를 잡고 있다. 분홍빛의 부드러움 아래 계산된 필선이 놓여 있다. “너무 조심스러우면 안 돼요. 위축되면 안 되고.” 그의 풍경은 실경이면서도 구성이다. “자연을 그대로 그리면 그림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고 조정을 해야 돼요.” 경남 산청 용원정 등 이번 전시에 등장한 벚꽃 풍경 역시 가을에 본 장면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봄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축적된 벚꽃의 기억을 재구성한 결과다. “봄을 보고 그린 게 아니에요. 제 머릿속에 있는 벚꽃은 수도 없이 그렸으니까… 안 보고도 만들 수 있죠.” 한지와 화선지의 물성에 대한 그의 설명은 단호하다. “내가 화낸다고 재료가 따라오진 않아요. 내가 거기에 맞춰줘야지.” 우연을 허용하되 방치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그의 화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그의 30번째 개인전이다. “벌써 30회라니,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뜻이겠지요.” 웃으며 말했지만 화면에는 시간의 두께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는 지난해 화가로서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됐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안 해줘요.” 한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라 여겼지만, “나도 한번 대접받고 싶더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55년. 한지와 먹, 붓을 붙들고 보낸 시간이다. 그는 매년 꽃도, 나무도 다르다고 했다. “감동을 주려면 화폭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그의 작업 태도를 요약한다. 묵묵하고 담담한 그의 태도는 기운생동의 수묵 필치로 번져, 꽃향기처럼 은은하게 시선을 붙든다. 오용길이 말하는 ‘성공한 그림’은 관람자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화면이다. “사람이 지나가다가 ‘야 멋있어’ 하면 가까이 가서 보고 싶잖아요. 그림도 그래요. 쓱 보고 패스하면 감동이 없는 거예요.” 그는 관람자의 감각 역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감성이 메말라 있으면 아무리 잘해도 감동을 못 준다”는 말은, 결국 그림과 관람자가 맺는 관계의 문제다. 익숙한 벚꽃과 한옥, 산수라는 소재는 관람자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화면을 붙드는 것은 화려한 색이 아니라 필선의 밀도다. 벚꽃은 흩날리지만 화면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산수는 ‘옛날 그림 같다’는 인상을 넘어, 성실하게 쌓아온 작업의 태도에서 기운생동한다. 여든의 나이지만 그 태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우리 그림의 계보를 겸재 정선에서 잇는다. 전통의 후예라는 자부심 역시 분명하다. “수묵화가 점점 잊혀가는 시대지만, 우리 그림을 끝까지 제가 담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9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을 포함해 우리 산천을 담은 대작 전시를 준비 중이다. 전시는 18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6/03/03
“역시, 이건용은 이건용”…50년이 지나도 파격, 퍼포먼스의 현재형 흰 백묵으로 원을 삥 둘러 그었다. 반듯하게 서서 원의 금을 밟고,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딱 펴 ‘저기’를 가리켰다. 다시 원 안으로 들어가 ‘여기’. 원 밖으로 나와 손가락을 뒤로 돌려 ‘거기’. 이내 원을 차례차례 밟으며 “어디, 어디, 어디”를 중얼거리듯 외치고, 원의 둘레를 돌다 사라졌다. 퍼포먼스는 끝났지만 관객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행위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자리를 지켰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반응은 같았다. “이게 뭐지?”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1975년 퍼포먼스 ‘장소의 논리’를 재연한 이건용(84)은 여전히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해맑았다. 그는 “원 하나를 그은 것이 정확한 하나의 설정”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설정이 만들어내는 사건성이다. 정해진 중심을 향해 수렴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을 밟으면서 계속 이동”하는 방식. 그 이동 속에서 ‘여기’와 ‘거기’는 고정된 좌표가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와 몸의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는 관계어가 된다. “거창한 걸 올리는 게 아니라, 흔적만 만들어 장소를 설정했어요.” 이건용의 퍼포먼스는 즉흥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지시문과 수행 규칙을 갖춘 ‘Event Logic(논리적 사건)’의 체계다. 그는 퍼포먼스 이전에 작가 노트를 통해 시나리오를 짜고, 지시문을 남겼다. 사진과 영상, 메모는 회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행위 자체’를 증명하는 아카이브가 된다. 그가 말하는 ‘정확성’은 미술의 기술이 아니라 언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언어의 정확성과 소통의 불가능성을 혼자 고민했다고 회고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문장을 붙들었던 시간도 떠올렸다. “나는 그전부터 혼자 공부했어요. 언어의 정확성에 대해서.” 그러나 그는 동시에 과잉 해석을 경계한다. ‘원’에 지나친 상징과 거대한 철학을 덧씌우는 순간, 작업은 끝없이 부풀어 오르고, 그때부터 ‘정확한 설정’은 흐려진다는 것이다. “원을 그어놓고 그 이상의 상상이나 철학을 붙이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럼에도 그의 퍼포먼스는 때때로 누군가의 사유를 ‘리셋’시켰다. 한 연구자는 이건용의 ‘여기·거기’ 퍼포먼스를 본 뒤 “쇼크를 받았고 감동을 받았다”며 “이제까지 쓴 글을 다 없애버리고 새로 써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몇 년 뒤 우연히 길에서 그를 붙잡은 그 관객은 “그 이후 많은 글을 썼다”고 고백했다. 이름도 주소도 남지 않았지만, 사건은 남았다. 이건용의 ‘정확한 행위’는 누군가의 언어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하지만 1970년대 한국에서 그 ‘정확한 행위’는 종종 위험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 사건성은 미학의 차원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공기를 통과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은밀한 저항처럼 읽힌 그의 작업은 정권의 탄압 대상이 됐다. 그는 1970년대 경복궁 인근에서 ‘폭발물 의심’을 받으며 작업 해체를 요구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미술교사 시절,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려던 퍼포먼스가 강제로 중단됐다. “청와대와 가깝기 때문에 폭발물 장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가 작업 전체를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목사 아들이고, 공산주의자도 아니며 청와대를 폭파하려 한 적도 없다”며 당시의 억울함과 황당함을 전했다. 이후 ‘이리 오너라’ 등 퍼포먼스를 이유로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돼 고문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10년간 다리를 절었다고 말했다. 감시 또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앞으로 이벤트 퍼포먼스를 할 수 없다”는 취지의 공문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젊은 동료들을 불러 그 공문을 불태워버렸다는 일화도 덧붙였다. 국립군산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할 수 있었던 것조차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역설적으로 “세상이 잘 이해해주지 않았던 순간이 오히려 좋았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그대로 다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면, 오히려 새로운 일을 할 계기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이건용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주요 인물이자, 한국 전위예술 그룹 ST(Space and Time)의 창립 멤버로 활동해 온 한국 행위미술의 대표 작가다. 1975년 스스로 ‘이벤트(Event)’라 명명한 퍼포먼스를 본격적으로 전개하며 ‘장소의 논리’(1975), ‘이어진 삶’(1977), ‘달팽이 걸음’(1979) 등 한국 행위미술의 지형을 형성한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화면이 생성되는 ‘바디스케이프(Bodyscape)’ 연작은 이러한 방법론을 회화로 확장한 대표작이다. 그는 캔버스 앞에서 서서 팔을 뒤로 돌려 붓질하는 방식으로, 회화와 제작 행위의 관습 자체를 질문해왔다. 2022년 80세의 나이에 세계적인 갤러리 페이스와 전속 계약을 맺은 그는, 지금도 신체를 매개로 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몸이 젊든, 늙든, 떨리든, 힘이 부족하든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있어요. 그 조건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죠. 힘이 모자라서 드러나는 것도, 그 자체로는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어요.”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Body as Thought(사유하는 몸)’는 이건용의 1970년대 퍼포먼스와 회화를 다시 현재형으로 불러낸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 활동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으며, 초기 퍼포먼스의 기록 영상과 사진, 작업 노트, 회화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특히 ‘동일면적’(1975), ‘실내측정’(1975)의 초연 영상과 함께 ‘건빵먹기’(1977), ‘화랑 속의 울타리’(1977), ‘손의 논리 3’(1975) 등 당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들을 작품으로서 처음 공개한다. 50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파격적이다. 반세기 만에 다시 본 자신의 작업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이건용은 이건용이죠. 하하하.” 전시는 3월 28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6/02/04
백현진 ‘배우로 번 뱃심, 화가의 자유가 됐다’ “언어로 할 수 있었으면, 화가가 안 됐겠죠.” 배우이자 가수인 화가 백현진(54)은 작품 설명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로 닿지 않는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 그는 그림을 그렸고, 음악을 만들었으며, 연기를 해왔다. 그에게 시각예술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감각을 붙잡아 두는 방식이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 별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Seoul Syntax’는 그런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2021년 전시 ‘말보다는’ 이후 5년 만에 열린 이번 전시는, 작가가 나고 자란 도시 ‘서울’을 배경으로 삼지만 도시의 풍경을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서울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낸 리듬과 어긋남, 규칙과 오류의 공존을 작가 고유의 ‘문법(syntax)’으로 풀어낸다. “문법이라는 게 사실 규칙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오류도 있고, 어긋남도 포함돼 있고요. 저는 늘 정상적이지 않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3일 오전 전시장에서 만난 백현진은 변한 듯 아닌 듯, 그러나 분명히 더 맑아진 상태로 작품 앞에 서 있었다. ‘모범택시’의 갑질 회장, 직장인 백부장의 얼굴은 그 자리에 없었다. ◆ 번아웃 이후, ‘덜 그리는’ 그림 이번 전시에 소개된 페인팅과 드로잉은 이전 작업에 비해 눈에 띄게 비워져 있다. 밀도 높은 화면 대신 여백이 늘어났고, 붓질은 한층 느슨해졌다. 그는 이를 스타일의 변화라기보다 몸의 변화라고 설명한다. 특히 누런 장지에 그린게 눈길을 끈다. “젊었을 때는 덜 그리면 불안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덜 그리는 그림이 제 몸에 가장 맞아요. 물리적으로도 그렇고요.” 작품의 상당수는 2025년 노르웨이에 머물며 전시를 준비하던 시기에 시작됐다. 북유럽의 날씨와 개인적인 사정이 겹치며 감정이 깊게 가라앉았고, 그 상태로 서울에 돌아와 작업실에 머물며 붙잡고 있던 그림들이다. “아,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번아웃이구나 싶었어요.” 오십견이 찾아왔고,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몸에 맞는 속도를 다시 배웠다. 평생 함께 갈 업으로서의 그림은 더 이상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라, 조율하는 일이 됐다. ◆ 제목은 의미가 아니라 ‘별명’ 작품 제목은 가볍다. ‘PW’, ‘멈춤’ 같은 단어들은 명확한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다. 패스워드(password)일 수도, 페이퍼워크(paperwork)일 수도 있다. “제 작품에서 제목은 중요하지 않아요. 의미라기보다는 친구들 별명 붙이듯이 붙여놓는 거죠.” 그는 먼저 그림을 그리고, 그다음에야 언어가 아주 조금 개입된다고 말한다. 설명을 덧붙이기보다, 관객 각자가 보이는 만큼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 ‘전방위 예술가’라는 말에 대하여 백현진은 배우·미술가·음악가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로 불린다. 그러나 그는 이 표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전방위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직업이 세 개인 거죠. 다 동등해요.” 오히려 이 ‘혼업’ 구조가 자신에게는 하나의 안전망이 됐다고 말한다. 배우로 벌어들인 수입이 미술 작업의 배심이 되어주고, 미술에서의 성과가 음악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는 이를 “의도하지 않은 분산 투자”에 비유한다. “한 바구니에 계란을 다 담지 않은 셈이죠. 운이 좋았어요.” 유명 배우가 되며 생긴 ‘뱃심’은 그에게 자유를 줬다. 돈 걱정 없이, 시장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세 개의 업은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떠받치는 하나의 포트폴리오 시스템처럼 작동하고 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분명 멀티 인간, 멀티 예술가다. ◆ PKM과의 오래된 인연, 그리고 오해에 대하여 백현진과 PKM갤러리의 인연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는 2004년 첫 전시 이후, 2010년대 초반부터 다시 관계를 맺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당시 그는 배우로서의 성과도, 시장의 주목도 없던 시기였다. “젊었을 때는 진짜 가난했어요.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PKM과 인연을 맺기 전, 그는 아라리오 프로젝트를 통해 5년간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지원을 받았다. 배우 이전, 오롯이 시각예술가로서의 시간이었다.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는 “단편 영화를 만들고 직접 출연하며 음악 작업을 병행해도, 이를 ‘비주얼 아티스트가 다른 일을 하는 것’으로 분리해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번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포괄적인 예술가로 봤던 거죠.” 그럼에도 그는 종종 ‘배우로 유명해진 뒤 미술을 한다’는 오해를 마주한다. 그는 이 질문에 담담하다. “제가 배우로 시장에서 성과가 생긴 건 사실 5년도 안 됐어요. 정확히 말하면 ‘모범택시’ 이후죠. 그전에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배우 이전에 그림이 있었고, 명성 이전에 작업이 있었다. 지금의 그는 그 모든 시간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다. 백현진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대만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일민미술관, 아트선재센터를 비롯해 상하이 민생현대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노르웨이 베스트포센 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7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작가로 선정됐다. 또한 인디밴드 1세대인 ‘어어부 프로젝트’와 프로젝트팀 ‘방백’의 멤버이자 솔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왔으며, 영화 ‘북촌방향’, ‘경주’, ‘브로커’와 드라마 ‘무빙’, ‘모범택시’ 등에 출연한 배우로서도 전방위적인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배우의 몸, 화가의 전환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한 뒤 작업실로 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모범택시’에서의 빌런 연기는 신체적으로도 큰 소모를 남겼다. “너무 화가 많은 역할을 하고 오면 바로 붓을 들지는 않아요. 그 모드를 최대한 지우려고 하죠.” 작업복을 갈아입고, 공간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훈련이 됐다. 연기, 음악, 미술은 서로를 방해하기보다 각자의 회로를 정리해주는 장치로 작동한다. ◆ AI 시대, 또 하나의 ‘나’ 최근 그는 AI와의 협업 가능성도 탐색 중이다. 챗GPT와 제미나이를 유료로 사용하며, 스스로 묻고 답하던 사고 과정을 AI와 나눈다. 계기는 책 ‘듀얼 브레인’이었다. “AI가 못하는 걸 내가 해야지, 이런 생각은 아니에요. 그냥 나 하나가 더 생긴다고 가정해보는 거죠.” 그는 AI를 대체가 아닌 확장의 도구로 다룬다. 혼자 생각할 때와 둘이서 오갈 때, 전혀 다른 사유의 경로가 열린다고 했다. ◆ “그냥 봐주세요” 배우로서의 인지도를 따라 전시장에 들어오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얄미우면서도 백현진다운 시니컬한 말이다. “재미없으셨으면 미안하고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상회화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그는 안다. 하지만 그림도 결국 많이 본 사람일수록 더 재밌게 볼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 내면의 두께를 쌓는 일 1972년생인 그는 오십을 넘겼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천진함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세상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응의 깨달음도 함께 있다. 장자·노자의 무위자연처럼, 그는 정해진 마음으로 사는 것을 경계하며 자신을 운용한다. “지금은 분노나 우울을 최대한 지우고, 내가 앞으로 보고 싶은 그림이 뭔지 생각하면서 그려요. 담담해지려고 계속 훈련 중이에요. 아마 이건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일 거예요.” 그는 이미 2년 전부터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2~3년 뒤 또 하나의 개인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멈추지 않기 위해, 그는 지금도 내면의 함량을 키우는 중이다. ◆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시작된 그림들 ‘Seoul Syntax’는 백현진이 지금의 자신을 살아내는 방식에 대한 조용한 기록이다. 모든 위대함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 그는 어린 시절 만화와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넘기던 그때처럼, 다시 가장 원초적인 자리로 돌아간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나 유명한 배우 됐지’ 이런 생각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하는 거죠.” 전시는 3월 21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6/02/03
“사라짐은 끝이 아니다”…민병훈 개인전 ‘소멸’ “영화는 많은 것이 구속된 매체라면, 영상 작업은 자연 안에서 구속되지 않은 시나리오, 즉 즉흥곡에 가깝다.” 영화감독 민병훈(56)은 더 이상 서사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머문다. 파도가 부서지고, 구름이 흩어지고, 무지개가 사라지는 순간 앞에서 오래 서 있다. 사라짐을 기록하지만, 그 안에서 끝내 지속을 발견한다. 아라리오뮤지엄은 오는 29일부터 4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민병훈 개인전 ‘소멸(Dissolution)’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영화감독 민병훈이 작가로서 선보이는 다섯 번째 개인전으로, 전시 제목과 동명의 신작 영상 ‘소멸’(2025)을 최초 공개한다. 영상 4점과 사진 19점이 소개된다. 민병훈의 전시 ‘소멸(Dissolution)’은 죽음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운동에 가깝다. 흰 눈이 쌓인 무덤, 파도와 구름, 무지개처럼 반복적으로 사라지고 다시 생성되는 자연의 리듬 속에서, 소멸은 종결이 아니라 다른 상태로 이어지는 과정이 된다. 작가가 말하는 ‘소멸’은 하루가 저물고 다시 시작되듯, 매일 소멸되고 다시 살아나는 시간의 감각에 닿아 있다. 영화감독으로 출발한 민병훈은 이제 스스로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영화감독이 아니다, 작가다”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영화와 전시 사이를 오가며, 매체의 구분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영화는 많은 것이 구속된 매체라면, 영상 작업은 자유롭다. 자연 안에서 구속되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그의 말은, 인물과 서사를 밀어내고 응시와 체류의 시간을 선택한 이유를 압축한다. 이번 전시에서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제주의 파도와 구름, 무지개 등 자연의 순환이 화면을 채운다. 민병훈은 이러한 ‘소멸의 시선’을 앞으로 제주 구도심의 거리와 가옥 등, 사라져가는 도시의 풍경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그는 끊임없이 허물고 새로 짓는 풍경을 바라보며, 왜 우리는 부수는 일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라지는 빨래터와 오래된 골목에는 여전히 삶의 흔적과 생명성이 남아 있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기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아내와의 사별 이후, 그는 아들과 함께 제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상실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슬픔을 말하지 않기로 한 태도는 오히려 작업을 더 차분하게 만든다. 아들은 이제 엄마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를, 제주의 자연이 대신 채운다. 그는 자신이 ‘잘 찍는 자연’의 길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의 미학적 선언이다.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대신, 보이지 않는 것을 걸러내는 일. 완성도를 낮추는 선택은, 소멸과 재생의 과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 상태에서만, 소멸은 과정으로 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태도는 작품의 유통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영상을 제주대학교병원 로비에 기증해 상영하고 있다.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광고 영상 대신 제주 자연의 느린 화면 앞에 멈춰 선다. 작가는 이를 ‘치유’라는 말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이 함께 존재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 잠시 머무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작품은 소유되기보다, 필요한 곳에서 작동하길 바란다는 태도다. OTT 플랫폼의 상영 제안을 고사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엄마가 떠난 후 부자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약속’은 이미 영화제로 향했고, 상업적 유통의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를 보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슬픔의 이미지’로 고정되는 순간, 영화는 더 이상 순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그는 이 영화를 20분 분량의 영상 작업으로 재구성해 전시에 포함시켰다. 영화는 그렇게 또 하나의 매체를 넘어, 작품으로 전이된다. 민병훈에게 아들 시우의 존재는 작업의 배경이 아니라,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실존적 동반자다. 그는 “아이와 나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아이는 시를 쓰고, 나는 영화를 만들지만 그 태도는 서로 오간다”고 말했다. 작업을 마친 뒤 가장 먼저 보여주는 대상 역시 아들이다. 시우의 반응은 다시 작업으로 돌아가게 하는 감각의 기준이 된다. 무덤을 촬영하게 된 이유는 명확한 의도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어느 날 길을 잃고 기대어 잠이 들었던 장소. 처음엔 두려웠지만, 반복해 머무는 시간 속에서 무덤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점차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는 무덤에서 변화하는 자연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생명성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순환의 일부라는 감각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무덤은 ‘소멸’ 연작으로 이어졌고, 그의 작업은 사라짐과 생성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축은 아들 시우의 시다. 장편 영상의 제목이기도 한 ‘나를 눈뜨게 한 순간’은 민병훈의 언어가 아니라, 아이의 문장에서 출발한다. 다섯 살에 엄마를 잃고 슬픔을 시로 건너온 시우는 ‘어린이 시인’이라 불리던 시간을 지나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시우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두려움이 녹으면 희망이 된다. 슬픔을 잊고 나면 나를 살게 한다. 엄마가 없는 세상이 내가 없는 세상과 같다는 끄덕임이 나를 살게 한다.” 이 문장은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태도로 작동한다. 상실을 극복하거나 설명하기보다,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시선이다. 민병훈에게 소멸은 부활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늘 하루가 소멸되듯, 이 순간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파도처럼, 다시 생성된다. 그는 사라지는 것에 머무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라지기 때문에 남겨야 한다.” '소멸’은 끝을 말하는 전시가 아니다. 사라짐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법에 대한 기록이다. 2026/01/28
박용만 “나는 사진작가다”…50년간 바라본 '인간의 순간' 사람은 언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말할 때가 아니라, 등을 보일 때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대한상공회의소 회장(같이 걷는 길 이사장·71)이 사진가로서 첫 개인전 ‘HUMAN MOMENT’를 열었다. 전시는 1월 16일부터 2월 15일까지 서울 중구 전시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열린다. 50여 년간 그가 기록해온 사진 가운데,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아 있던 장면 약 80점이 처음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전직 기업인의 취미 공개전’이 아니다. 15일 전시를 앞두고 만난 그는 스스로 분명히 선을 그었다. “나는 이제 기업인이 아니라 사진작가다.” ◆ ‘HUMAN MOMENT’, 인간의 순간을 기록하다 전시 제목 ‘HUMAN MOMENT’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지시하지 않는다. 사람이 직접 등장하든, 이미 떠난 흔적만 남아 있든 그의 사진은 늘 ‘사람의 존재감’을 중심에 둔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순간’은 극적인 장면이 아니다. 사진을 찍던 그때의 시선이,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따뜻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홍대 앞에서 포착한 커플의 뒷모습, 캄보디아의 가난한 도시에서 아이 둘이 앞에 서 있고 아버지가 생계를 이어가는 장면, 관광객으로 가득 찬 축제 한복판에서 유독 고요한 한 사람의 모습. 사진 속 인물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삶은 충분히 읽힌다. 그의 사진은 사건보다 사람이 머문 시간에 반응한다. 사진은 늘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멀리서, 설명 없이. 그리고 천천히 가까워진다. 그가 직접 말했듯, 이번 전시는 “먼 데서부터 시작해 갈수록 가까워지는” 구조를 취한다. 뒷모습, 측면, 다시 얼굴. 시선의 이동은 곧 삶을 대하는 거리의 변화다. “가깝게 가서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짐작의 힘이 이 전시를 지탱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의 거리 감각이다. 그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대신 오래 본다. 페트라에서 행상에 나서 울고 있는 아이를 찍을 때도 관광객을 일부러 프레임에서 밀어냈다. 흔한 대비 구도를 피한 선택이다. 결과적으로 사진에는 아이와 당나귀만 남는다. 그는 그 장면을 두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 전시는 연출이 아니라, 그런 마음의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비극적인 장면, 과도하게 슬픈 이미지, 의미를 과잉 생산하는 사진들을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보고 편안한 사진, 다시 보고 싶은 사진만 남겼다”는 그의 기준은 전시 전체의 온도를 결정한다. ◆ 50년의 기록, 그러나 지금에서야 꺼낸 이유 그는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찍은 사진으로 상을 받으며 처음 사진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이후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진은 늘 곁에 있었지만, 전시는 선택하지 않았다. “그동안 사진에 대한 확신이 없어 개인전을 열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전시는 확신이 생겨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는 상태 그대로 한 번쯤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 선택한 자리에 가깝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그는 젊은 사진가들과 함께 사진을 다시 분류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찍어온 사진의 흐름을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됐다. “남의 눈으로 보니까, 내가 어떤 사진을 찍어왔는지가 보이더라.” ◆ 정치 하마평과의 거리, 그리고 분명한 선언 그의 이름 앞에는 여전히 서울시장, 국무총리 등 각종 정치적 하마평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그런 일과는 상관없다. 가능성은 제로(0)%다.” 이 말은 선을 긋기보다 자리를 옮겼다는 선언에 가깝다. 성장과 효율의 언어를 다뤄온 사람이, 이제는 관찰과 기다림의 언어로 세계를 읽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성과도, 결론도 없다. 대신 시간이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선언의 연장선에 있다. 미래를 설계하던 기업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미 지나간 순간들을 다시 바라보는 관찰자로 서겠다는 선택이다. ◆ 사진은 취미가 아니라 태도다 그가 처음 사진을 찍은 것은 1975년이다. “처음 찍은 게 75년이니까 거의 50년이 됐죠. 실제로 필름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한 40년쯤 됩니다.” 어린 시절 그는 사진가를 꿈꿨다. 그러나 아버지의 강한 반대로 그 꿈을 접었다. “아버지가 너무 무섭게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포기했죠.” 사진은 그렇게 마음속에만 남았다. 그러다 1990년, 다시 불이 붙었다. “집사람한테 ‘여보, 나 일을 도저히 못 하겠어’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가 다시 사진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에는 사진가 강홍구가 있었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사진이 뭔지도 몰랐는데,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강 선생님하고 친해지면서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취미로 찍기 시작한 사진은 점점 분명한 방향을 갖게 됐다. “취미로 찍어도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게 나하고 어울리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말하는 ‘인간다움’은 의식되지 않은 순간에 있다. “누구나 가장 인간다운 건 가장 편안할 때 아닐까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모습, 보이고 싶은 모습이 아닌 그 상태요.” 그래서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대부분 카메라를 인식하지 않는다. “제가 찍는 사진 속 사람들은 다 저를 의식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모습들이 가장 인간답다고 생각해요.” 박용만의 사진은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다. 연출도, 조작도, 극적인 장치도 없다. 다만 오래 바라보고, 조용히 기다린 시선이 남아 있을 뿐이다. 노숙인과 노인, 이름 없는 사람들, 그리고 압축성장이 남긴 도시의 틈새까지. 그의 사진은 개인의 얼굴을 통해 구조의 초상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전시는 한 개인의 사진 데뷔전이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한 관찰자가 남긴 잔상 기록에 가깝다. 그는 말했다. “아름답고 따뜻한 사진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쯤 오면 우리가 직면한 현실도 같이 생각했으면 했어요.” 이 말은 전시의 방향을 정확히 말해준다. 그의 사진은 개인의 삶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압축성장이 남긴 불균형의 풍경을 증언한다. 사람의 얼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진은 말을 바꾼다. 개인의 시간이 아니라, 구조의 시간에 대해.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공간을 읽는 방식이다. 물의 반사를 지워 새와 물고기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듯 보이게 하거나, 창살 너머로 거친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을 포착한다. 소란한 축제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고요를 건져 올린다. 그의 사진은 프레임 안과 밖을 대비시키며 세계를 읽는다. 보호받는 안과 거친 밖, 소음과 침묵, 속도와 정지가 한 장의 사진 안에 나란히 놓인다. “메시지는 없습니다. 그냥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 전시는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다. 한 장 앞에 서서 오래 머물게 만든다. 설명이 없어도 우리는 안다. 저 사람들이 지나온 시간, 지금의 관계,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마음을. AI가 이미지를 대신 기억하는 시대에, 이 전시는 오래된 사진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회상의 속도를 지키려는 기록에 가깝다. 전시와 함께 HUMAN MOMENT도 동시 출간된다. 사진집에는 박용만 작가가 지난 50여 년간 기록해온 사진 200여 점이 수록되며, 전시보다 확장된 구성으로 그의 시선과 시간의 기록이 담겼다. 2026/01/15
구멍·내장이 걸린 십자가…장파 ‘Gore Deco’ 도발 한국 작가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장파(44)의 회화는 익숙한 규범에서 과감히 탈주한다. 한국 회화가 오랫동안 외부 풍경·추상 자연·정서적 여백을 중심으로 미학을 구축해왔다면, 그는 정반대로 ‘육체의 내부’를 전면에 세운다. 장기, 구멍, 성적 이미지, 살덩이의 덩어감이 화면을 점령하는 이른바 ‘wet한 회화’-서구 표현주의나 라틴아메리카 바디 페인팅에서는 낯설지 않지만, 한국 미술사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핑크–살구–장기색으로 이어지는 층위는 해부학보다 더 해부학적이고, 감각보다 더 감각적이다. 장파는 피부를 벗기고 내부를 펼친 뒤, 그것을 곧장 우주의 지도처럼 확장한다. 화면 곳곳에 새겨진 ‘hole’, ‘love’, ‘origin of the world’ 같은 단어들은 몸의 입구·상처·섹슈얼리티·탄생의 출구·권력의 통로를 한데 엮는 기호다. 한국 여성 작가들에게 오랫동안 금기시되던 감각을 장파는 과감히 열어젖혔다. 국제갤러리는 이 급진적 감각을 정면으로 끌어안으며 9일 개인전 ‘Gore Deco’를 개막했다. K1·K2 전시장에는 동명 회화 연작을 비롯해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약 45점이 펼쳐진다. 국제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장파와 전속계약을 맺고, 그의 미학적 실험을 장기적 파트너십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 “시각은 가장 우위적인 감각… 그 위계를 찢고 싶었다” “시각은 사실 가장 우위적인 감각이에요. 후각·촉각·내장의 감각에 비하면 위계적으로 맨 위에 놓인 감각이죠.” 장파는 자신의 미학적 세계관을 설명하며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를 호출했다. “바타유는 눈·성기·항문·장기처럼, 보통 위계가 매겨지는 기관들을 동일한 지평에서 다시 사유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저 역시 눈과 내장, 생식기 같은 기관들을 뒤섞어 하나의 연속된 현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의 위계를 해체하는 일이다. 시각과 비시각, 고귀함과 저속함, 숭고와 혐오-회화를 지배해온 이 모든 이분법은 그의 화면에서 조용하면서도 기습적으로 붕괴한다. ◆ 장파 작가는? 화가 장파는 2006년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와 미학을 함께 전공했고, 2017년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초기부터 회화 구조와 몸의 언어를 동시에 탐구해온 그는 인천아트플랫폼(2020), 두산갤러리 뉴욕(2017), 소마미술관(2016), OCI 미술관(2011)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감각의 위계’를 뒤흔드는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견고히 구축해왔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2024),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24), 송은(2023), 아르코미술관(2023), 서울시립미술관(2015) 등 주요 기관의 그룹전에서 주목받았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며, ‘육체–감각–장식’이라는 세 축을 통해 동시대 회화의 감각 구조를 재편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K1-뒤집힌 삼각형, 내장이 걸린 십자가 K1 전시장에 들어서면 삼각형 캔버스들이 공간을 지배한다. 성삼위일체의 상징, 원근법의 질서를 뜻하던 삼각형은 장파의 손에서 과감히 뒤집힌다. 십자가는 더 이상 영적 기호가 아니다. 내장의 질감으로 장식된 ‘여성화된 성물’로 변모한다. 마치 내장이 걸린 교회 안으로 들어선 듯한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벽면을 감싸는 실크스크린 벽화는 고대 건축의 프리즈를 연상시키며, 역사 속 여성 재현의 이미지사와 장식의 위계를 한 화면에 응축한다. 십자가 형태의 작품은 거의 ‘몸의 성상화(Iconification of Flesh)’에 가깝다. 구멍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세계가 처음 열리는 인터페이스, 존재가 통과해야 하는 문과 관문이다. 구원이 상징하던 구조와, 장기가 드러내는 존재의 조건은 장파의 화면에서 하나의 패턴으로 서로 뒤엉킨다. ◆ K1 2층 해골보다 배경이 더 강하다…색채와 장식의 반란 2층에 오르면 관람객은 즉시 충돌을 마주한다. 해골보다 먼저 눈을 훑는 것은 화면 전체를 뒤덮는 폭발적 색채다. 이는 장파가 의도적으로 배경을 형상보다 앞세우는 전략이다. 금속 하드웨어, 머리카락, 스티커, 거즈 같은 비전통적 재료들이 캔버스에 부착되며 ‘고귀한 재료’와 ‘비천한 물질’의 구분은 여기서 무력화된다. 고통의 흔적은 장식이 되고, 상처는 문양이 된다. 이는 파괴가 아니라 압도적인 시각적 쾌감으로 전환된 반란이다. K2에서는 여성혐오 이미지, 에밀리 디킨슨의 문장, 파편화된 신체가 한 장면에서 충돌한다. 눈, 입술, 항문, 상처… 이 전시의 핵심 구조는 ‘구멍(hole)’이다. 구멍은 통로이자 문지방, 기억의 입구이면서 몸의 취약성과 힘을 동시에 드러내는 존재론적 장치다. 여기서 몸은 더 이상 피해의 대상이 아니다. 고통은 장파의 손에서 유머·조롱·유희로 비틀리며 새로운 감각으로 재탄생한다. 그 웃음은 위로가 아니라 폭력적 질서에 생긴 균열이다. ◆ ‘문담피'의 노골화에 저항 캔버스 위에는 해부된 장기, 피어싱, 문신, 담배, 성형, 낙태의 기호가 한 장면에 뒤엉킨다. 여기에 장파는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를 겨냥해 생산된 은어를 그대로 가져온다. 작품 제목 ‘Gore Deco: Tattoo, Cigarette, Piercing'도 그 연장선이다. “댓글창에서 혐오 언어가 활활 타오르는 걸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반격’의 기분이 들어요. 20대 내내 그 언어를 실시간으로 겪으며 자랐으니까요.” 텍스트와 기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한 세대가 통과해온 감각의 지형도다. ◆ “몸은 세계를 통과하는 장치”… 금기 이후의 회화 장파는 자신을 “영페미니즘의 쇠락과 인터넷 혐오 언어의 전면화를 동시에 목격한 세대”라고 말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오빠와 함께 성장하며 계급·성별·장애가 교차하는 폭력을 가족 단위에서 체감했다고도 전했다. 그의 회화 속 몸은 언제나 통과 중이다. 열리고, 해부되고, 뒤집히고, 다시 봉합된다. 파괴가 아니라 다시 태어나기 위한 해체다. ◆ 장파의 회화가 결국 묻는 것 장파의 거대한 화면은 하나의 신체를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신체를 거쳐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는 포털에 가깝다. 여성 형상, 젠더 기호, 심장, 뱀, 지문, 작은 태양 같은 도상들은 하나의 거대한 '퀴어 바이오-신화(bio-myth)'로 결집한다. 살과 신화가 얽힌 장파의 그림은 인간이 얼마나 다층적 괴물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그 잔혹한 진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 ‘위계를 찢어버린 회화’가 던지는 질문 육체의 내부와 장식의 외부, 혐오의 언어와 웃음의 전략, 숭고와 저속함이 뒤섞인 장파의 세계는 결국 이렇게 묻는다. 어떤 감각이 더 고귀하고, 어떤 감각이 더 저급한가. 그 위계를 결정해 온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위계를 찢어버린 이후의 회화는 어떤 몸을, 어떤 세계를 그릴 수 있을까. 여기에 하나의 질문이 더 생긴다. 장파의 도발적 이미지 앞에서, 남성 관람객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기괴함? 불편?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데자뷔 같은 당혹’? 오랫동안 여성 신체를 바라보는 관습적 시선에 기대온 감상법이 이 전시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파의 화면에서 남성의 시각적 권력, 오랫동안 미술사를 지배해온 그 시선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붕괴한다. 그 ‘당황–흥미–저항–몰입’의 스펙트럼이야말로 이번 전시가 촉발하는 가장 현재적 도발이며, 올 연말 한국 시각예술 현장에서 가장 뜨겁게 흔들릴 질문이다. 전시는 2026년 2월 15일까지. 관람 무료. 202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