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팔' 문형태 랩소디…볶음밥이 전하는 초심 그 가난했던 시절 먹었던 '볶음밥'은 이제 완벽한 그림이 됐다. 전업 작가로 데뷔하고 늘 쪼들렸다. 중국집에 주문한 볶음밥이 좋았다. 밥, 짜장 소스, 짬뽕 국물을 따로 먹을 수 있어서였다. 밥만 지어두면 한 끼를 1/3씩 셋으로 나눠 세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볶음밥을 먹었는데도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건 볶음밥이네요. 환경이 바뀌고 주머니 사정이 좋아졌지만 작가로서의 일상이나 고단함, 노동의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문형태(48)의 신작 'Chinese Fried Rice'(2024)는 그의 초심을 보여준다. 볶음밥을 가슴에 품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 그림 속 문형태는 수저 들기를 멈추고 먼저 숫자를 쓰고 있다.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1/3을 적는 과정인데 2처럼 보인다. 구질구질했던 시절 그를 배불리 했던 볶음밥은 희망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제 그는 안다. “모든 순간들은 항상 완벽한 그림"이 된다는 것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문형태 개인전(Perfect Picture)은 그의 저력을 다시 보여준다. 2022년 'CHOCKABLOCK'개인전 이후 2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신작 50여점이 공개됐다. 문형태의 작업 근간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동화 속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한 상상력을 함축하고 있다.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더 깊은 내면으로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작품은 희로애락이 빛난다. 그에게 고독과 동시에 행복을 준 그림은 보는 순간 눈길을 잡아 당기는 마력이 있다. 동화 같은 그림이지만, 볼수록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전하는 '묘한 그림'이다. 진득한 화면의 색감이 이상하게 마음을 끄는 이유가 있다. 작업의 밑 재료는 ‘흙’이다. 화면 위에 은은한 황토색이 만들어내는 따스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는 흙 물을 사용한 작업 방식 덕분이다. “흙은 저의 일상을 시작하는 곳과 마무리하는 곳, 또한 생성과 소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의 삶의 흔적인 흙을 작업에 입힌다. 캔버스에 황토와 물을 섞어 바른 다음 표면에서 건조 된 흙을 걷어낸다. 노랗게 흙 물이 든 캔버스 위에 오일이나 크레파스로 형상을 탄생시킨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모든 존재는 흙으로 회귀한다'는 깨달음에서 기인했다. “대학 시절 돌아가신 이모의 시신을 보고 인간의 죽음을 처음 느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문형태는 모든 작품에 흙을 바름으로써 자신의 손을 떠나는 작품들과 인사를 나눈다. 흙을 매개로 한 이러한 의식과도 같은 행위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자연으로의 귀환과 삶의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본 작품은 구상인데도 초현실주의로 흐른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상반된 감정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최근작 'Merry-go-Round' 는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만, 빙글빙글 회전하는 목마는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듯이 우리의 삶 역시 끝없는 오르내림의 반복임의 표현이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숫자는 '관계 코드로 1은 자신, 2는 관계, 3은 가족, 4는 사회, 5는 고독을 의미한다. 독특한 이 표현 방식은 유년시절 외조부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외조부는 자신이 빌려준 돈을 달력 뒷면에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보고 인간의 생전 기억이 숫자로 단순화되어 각인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문형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의 코드화라는 독자적 방식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시각화했고, 그 관계가 만들어 내는 희노애락에 집중, 신비로움을 더욱 강조한다. '잘 팔리는 그림'의 작가는 매번 부담감이 컸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그는 이렇게 전했다. 30대에 미술시장 스타 작가로 부상한 그는 작품이 마르기도 전에 팔려나가 '마팔'이라는 별명도 있다. 전시 때마다 '솔드아웃' 품귀 현상을 빚는 마법 같은 그림이다. 중독성 있는 이번 신작도 날개가 돋았다. 자세히 보면 이상하고 기괴한 형상인데 묘하게 아름답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은 '관계의 미학'을 전한다. 신작도 완벽한 디테일로 마음을 훔친다. 밀도감이 높아져 더 진득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작가로서 혼신을 다한 200호 크기도 나왔다. 작품 값은 2년 전보다 10% 올라 20호 크기(볶음밥)는 1500만 원이다. 전시는 10월9일까지. 2024/09/14
'연출 사진 거장' 우에다 쇼지, 한국 첫 사진전 20세기 일본 사진계를 대표하는 작가 우에다 쇼지(植田正治, 1913~2000)의 사진전이 한국에서 처음 열린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전시 공간 피크닉(piknic)은 오는 10월12일부터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Ueda Shoji Theatre of the Dunes)' 사진전을 개최한다. 피크닉은 "우리나라에도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지만 전시를 통해 정식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작가가 생전에 직접 인화한 오리지널 프린트 170여 점을 공개, 우에다의 초기 습작부터 생애 마지막 작품까지 망라하는 대규모의 회고전으로 펼친다"고 밝혔다. ◆우에다 쇼지는? 연출 사진의 선구자이자 모노크롬의 대가인 우에다 쇼지는 일본 사진 역사에서 압도적인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일본 돗토리현에서 신발 사업을 하는 집안에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웃집 청년이 집에서 현상을 하는 장면을 구경하면서 처음으로 ‘카메라’라는 매체에 강렬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열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자신의 첫 사진기로 수많은 습작을 찍으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19세에 집 근처에 사진관을 개업했고, 22세에 결혼한 아내 노리에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다. 모델이자 뮤즈이기도 했던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젊은 우에다는 지역의 여러 사진가와 활발히 교류하며 전시와 공모전에 쉼 없이 참여하는 등 왕성한 창작 의욕을 불태웠다. 관행을 벗어난 과감하고 참신한 구도, 현실의 시공간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연극적인 연출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집 근처 바닷가로 마을 소녀들을 데려와 각각의 포즈를 섬세하게 구성한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少女四態)'는 그가 26세였던 1939년에 촬영한 것으로, 이후 우에다 쇼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초기 걸작 중 하나다. ◆고향 바닷가 모래언덕에서 꽃피운 '우에다 스타일' 우에다 쇼지는 일본의 주류 사진가들 중 드물게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 거주하며 작업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그가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돗토리현은 인구나 산업 등 여러 측면에서 규모가 아주 작은 일본의 변방이다. 세간의 이목에서 멀리 떨어진 촌락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토와 문화, 그리고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을 사랑했다. 특히 거친 바닷바람에 의해 퇴적된 거대한 모래언덕(砂丘)은 작가에게 더없이 좋은 촬영의 무대였다. 우에다는 이 광활한 야외 공간을 마치 스튜디오나 세트장처럼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그 안의 여러 인물을 ‘오브제’처럼 철저히 계산된 방식으로 배치한 특유의 연출 사진들을 남겼다.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를 연상시키는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모래언덕 사진들은 훗날 서구에서 ‘우에다조(Ueda-cho, 우에다 스타일)’라고 불리던 독특한 사진 세계의 중심축을 이룬다. 모래언덕에서의 촬영은 인물 군상뿐 아니라 정물, 풍경, 추상, 패션과 상업사진 등 작가 평생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확장된다. ◆영원한 아마추어 정신 우에다 쇼지는 주류 사진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늘 그 주류로부터 한발 비껴 서 있었던 독특한 위치의 작가다. 시대를 풍미했던 어떠한 유행이나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통념적인 사진 작법을 벗어나 보려는 노력을 평생 게을리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그는 이미 일본 안에서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지닌 대가였지만 80년대와 90년대에도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 시리즈를 계속 선보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아내와의 사별로 인한 상심을 극복하고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패션 사진에 도전한 것도 흥미로운 이력이다. 20대에 데뷔해 30대에 이미 정점을 맞이하는 패션 사진가의 일반적인 커리어 패스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사진가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자신을 ‘시골에 사는 아마추어’라 표현했는데, 이러한 자기인식 속에는 겸손함과 더불어 ‘돈 되는 것’ 대신 ‘찍고 싶은 것’에만 순수하게 열중하는 아마추어로서의 자유와 기쁨, 그리고 열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는 87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이 아마추어의 정신으로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70년에 걸쳐 그가 남긴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도쿄도 사진 미술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1989년 일본사진협회로부터 공로상을, 199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상했다. 1995년 9월, 우에다 쇼지의 작품 1만 2000점을 소장한 ‘우에다 쇼지 사진 미술관’이 돗토리현에 개관했다. 피크닉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에다 쇼지에 큰 명성을 안겨준 '모래언덕(砂丘)' 연작, '작은 이야기(小さい伝記)' 연작, '아이들의 사계절(童暦)' 연작 등과 함께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컬러 걸작인 '하얀 바람(白い風)'연작과 후기 패션 사진 등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든 주요 작품들이 소개할 예정이다. 관람료 1만8000원. 18일까지 50% 할인된 얼리버드 티켓을 판매한다. 2024/09/13
'키아프가 프리즈 했다'…"달라졌다" 8만2000명 깜짝 "키아프가 프리즈 했다." 3라운드 '키아프리즈'는 이전과 달랐다. 키아프(KIAF)의 달라진 면모로 '프리즈(Frieze)가 키아프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지붕 두 가족'의 '키아프리즈'는 상생의 아트페어로 거듭났다. 3회 만에 '서울을 글로벌 미술 도시'로 올려 세우며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가 됐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전쟁과 선거로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도 해외 갤러리들과 컬렉터들이 늘고 인기 작가들의 수십억 작품들이 솔드아웃을 기록하는 등 올해 '키아프리즈'는 글로벌 미술 시장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같은 기간 열린 '뉴욕 아모리 쇼'를 눌렀다는 평가다. 세계적인 미술 전문지인 아트뉴스는 “아모리 쇼는 프리즈 서울에 밀려서인지 활기를 잃었고, 프리즈는 출품작과 판매 분위기 모두 흠잡을 데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아모리 쇼'가 예전에는 롤스로이스였다면 지금은 기껏해야 테슬라"라며 심지어 "커피도 맛도 없고 샌드위치는 더 나빴다"는 혹평도 나왔다. 7~8일 폐막한 키아프리즈는 활기찬 분위기로 내년을 더 기대하게 했다. 키아프 서울은 총 5일 간 8만2000여명, 프리즈 서울은 4일 간 7만 명이 방문했다. ◆키아프, 확장된 공간세련미 장착 8만2000명 방문 "와우 키아프 맞아?", "정말 달라졌다." 4일 키아프에 온 VIP들은 깜짝 놀랐다. 확장된 공간과 전시 연출력과 함께 무엇보다 작품 퀄리티가 높아졌다는 평가로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1, 2회 프리즈와 너무 비교되어 자존심이 상했는데, 역시 K갤러리들의 안목과 전시 구성이 좋아져 인상 깊었다"는 반응이 잇띠랐다. 실제로 방문객 수는 작년과 비슷했으나 효율적으로 개선된 동선, 넓어진 전시 공간에 관람객이 분산 되면서 관람 환경이 한층 쾌적했다. 투자한 효과다. 1, 2회와 달리 젊은 건축가 장유진과의 협업을 통해 부스 배치 디자인을 개선한 점이 돋보였다. A홀, B홀, 그랜드볼룸으로 이어지는 1층 전시장은 공간을 특성별로 나누어 쉽고 편안한 관람을 제공했다. 예년보다 강화된 심사도 한몫했다. 국내 갤러리들의 부스 구성 등 전시 퀄리티도 업그레이드 됐다는 평가다. 키아프는 Art of the World Gallery(휴스턴), DIE GALERIE(프랑크푸르트), Sundaram Tagore Gallery(뉴욕), PERES PROJECTS(베를린), Carl Kostyal(런던) 갤러리 외에도 Albarran Bourdais(마드리드), PIERMARQ*(시드니), Lechbinska Gallery(취리히), SNOW Contemporary(도쿄) 등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갤러리들이 처음으로 합류해 자리를 빛냈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는 총 22개국 206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특히 전체 참가 갤러리 중 3분의 1 이상이 해외 갤러리로, 국제적인 참여도가 더욱 높아졌다. 국내갤러리를 대표하는 국제갤러리(서울), 갤러리 현대(서울), 가나아트(서울), 학고재(서울), PKM 갤러리(서울), 조현화랑(부산), 아라리오갤러리(서울)를 비롯해 서정아트(서울), 드로잉룸(서울), 초이앤초이 갤러리(서울) 등 젊고 혁신적인 갤러리들도 참여해 대작부터 실험적이고, 새로운 작품까지 동시대 미술 트렌드를 모두 볼 수 있는 축제의 장을 완성했다. 글로벌 경기불황에 우려했던 매출 실적도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2021년부터 참가한 독일화랑 이사벨 리젤레스터는 "키아프는 저희 갤러리가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훌륭한 출발점이 되었다"고 했고, 중동에서 온 베이번 갤러리 디렉터는 "서울에서 활기찬 이란 현대 미술을 선보일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보았다"면서 "앞으로도 이란 예술가들이 서울의 주요 미술관과 컬렉터의 소장품에 눈에 띄게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갤러리그림손 최지환 대표는 “극심한 불경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넘쳐나는 관람객의 즐거운 표정과 정신없이 응대하는 갤러리스트의 표정에서 밝은 한국 미술의 미래를 봤다"고 전했다. Sundaram Tagore Gallery(뉴욕)가 선보인 Hiroshi Senju의 Waterfall on Colors(2024)로 약 5억6000만 원(USD 420,000)에 팔렸다. 국제갤러리는 김윤신의 회화와 조각이 조화를 이루는 솔로 부스로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 작품을 2000만 원에서 1억5000만 원에 판매했다. 갤러리현대는 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인 성능경, 이건용,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정상화를 비롯하여 국내외로 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강승, 이슬기, 김성윤 등의 작가와 케니 샤프, 토마스 사라세노와 같이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해외 작가의 작품까지 판매되며 큰 성과를 이뤘다. 올해 새롭게 도입된 모던 및 마스터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그랜드볼룸은 매일 많은 컬렉터들이 방문하여 판매 성과도 호조를 보였다. 금산갤러리에서는 백남준의 대형 오브제 작품이 팔려나갔다. 갤러리 윤에서는 약 1억2000만 원에 판매된 이강소의 대형 작품을 포함해 박서보의 작품 여러 점이 판매됐다. 동산방화랑은 산정 서세옥을 비롯해 운보 김기창, 김호득의 작품이 다수 거래됐다. Mark Hachem Gallery(파리)에서는 Seock Son, Yoshiyuki Miura, Jose Margulis 등 작가별로 다양한 작품이 판매됐고, Art of the World Gallery(휴스턴)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대작으로 주목 받았다. DIE GALERIE(프랑크푸르트)는 키아프 참여 20주년을 기념해 피카소 스케치로 가득한 스페셜 룸을 구성, 피카소와 앙드레 마송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판매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등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배의 대형 회화 작품은 갤러리 비앤에스에서 약 2억6000만 원, 올미아트스페이스는 전광영의 작품을 1억 대에 판매했다. 예화랑은 이환권의 브론즈 조각을 2점 팔았다. 나인갤러리는 4000만 원에 거래된 우병출의 회화 작품을 필두로 여러 점을 추가로 거래했다. 써포먼트 갤러리는 2.6m에 달하는 이인섭 작가의 작품을 1억2000만 원, 맥화랑은 이두원의 작품 9점을 총 1억8000만 원에 거래했다. 솔로 섹션의 옵스큐라는 김호득의 작품을 약 8000만 원에 판매했고, 채성필의 단독 부스를 구성한 갤러리그림손은 솔드아웃을 기록했다. 갤러리나우도 고상우와 김준식 작가의 작품을 모두 팔았다. 에브리데이먼데이는 무나씨의 작품이 솔드아웃됐고, 김희수의 작품이 대거 판매됐다. 더컬럼스갤러리는 김강용의 벽돌 소품 시리즈를 전량 판매했고, 키다리갤러리는 최형길의 작품이 대부분 솔드아웃 되었다. 오션갤러리도 제니박 작가의 작품 10점을 솔드아웃시켰다. 서정아트는 홍순명의 작품을 3000만 원에 거래했고, 김리아 갤러리의 박태훈과 황도유 작품도 각각 1000만 원 이상에 팔았다. '2023 키아프 하이라이트 선정 작가'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갤러리밈은 정정엽의 작품을 4500만 원, Gallery Q(도쿄)는 리정옥의 작품을 약 3700백만 원에 거래했다. 2024 키아프 하이라이트 선정 작가 중에는 디스위켄드룸의 최지원이 솔드아웃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7일 폐막한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 유럽, 미주권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7만 명이 방문, 서울을 미술 도시로 확장 시켰다. 전 세계 46개국 주요 미술관의 큐레이터, 기관 대표와 컬렉터들이 관람하며 도시 전역에서 펼쳐진 미술관 갤러리 행사를 들썩이게 했다. 기대 이상의 판매 실적도 올렸다. 니콜라스 파티의 ‘커튼이 있는 초상화’(약 33억 원)와 게오르그 바젤리츠(약 29억 원), 유영국 (20억 원) 이우환(약 16억 원) 등 첫날 부터 고가의 작품이 팔려나갔다. 올해는 유난히 한국 갤러리와 작가의 선전이 돋보였다. PKM갤러리는 20억 유영국 작품 판매에 이어 정현 청동 조각을 2만 달러에 팔았다. 갤러리현대는 전준호의 작품 7점을 판매해 5억 원 이상의 판매액을 기록했고, 조현화랑도 이배의 작품 10점을 총 7억5000만원 가량에 팔았다. 국제 갤러리는 양혜규, 문성식, 이희준 작품울 잇따라 솔드아웃시켰고, 리만머핀은 김윤신의 작품과 이불의 작품을 각각 2억6000만원, 2억8000만원가량에 판매했다. 타데우스 로팍은 이상소(2억5000만원), 이불의 작품을 19만 달러에 팔아치웠다. 개막 첫날부터 성공적인 판매 실적을 기록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끌어 낸 해외 갤러리들은 도시 전역에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했다며 내년 프리즈 서울 참여 의사를 미리 밝히기도 했다. 프리즈 서울 디렉터 패트릭 리(Patrick Lee)는 '서울을 글로벌 미술 도시'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표했다. “올해 프리즈 서울은 전 세계 예술 캘린더에서 중요한 행사로서 그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며 "앞으로 프리즈 서울은 더 생동감 넘치는 프리즈 서울의 미래를 고대하며 '프리즈 서울 2025'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키아프리즈'로 합체된 5년 간 계약은 유명무실해졌다. 프리즈 사이먼 폭스 CEO는 “런던에서는 20년 넘게, 뉴욕에서는 10년 넘게 프리즈를 열고 있다. 우린 한 도시에서 아트페어를 시작한 뒤 중단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도 10년, 20년, 50년 계속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프리즈는 서울에서 계속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키아프는 내년 한국화랑협회장 선거로 프리즈와 1~3회를 치른 황달성 회장의 임기가 끝난다. 키아프가 5회를 마치고도 프리즈와 같이 하느냐, 독립하느냐 문제가 남아있다. 황달성 회장은 공약으로 내세운 키아프의 해외 진출을 추진한다. "내년에 시카고 엑스포와 함께 펼치는 키아프에는 25개 화랑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2024/09/09
김택상 "포스트 단색화가? 난 한국적 추상미술 3세대" "나는 '김택상다운 그림'을 그릴 뿐이다." 화가 김택상(65)은 의외였다. 맑고 옅은 조용한 그림과 달리 '반항아 기질'을 보였다. 지독한 탐구주의자였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가 렛잇비(Let It Be)에요. 내버려 두면 되거든요. 제 작업에 비밀이 있다고 한다면 '렛잇비'입니다." 26일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그는 4년 만에 신작 '플로우(FLOW)'시리즈를 선보였다. "감동이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고 강조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김택상은 '물 빛 회화 Breathing Light' 연작으로 유명하다. 빛과 색을 물로 담은 '스밈의 미학'으로 국내외 컬렉터를 사로잡았다. 물을 머금은 은은한 색의 작업은 '숨 쉬는 빛의 회화'로 각광받으며 '단색화 후세대 대표 작가'로 꼽혔다. 스며드는 물빛의 명상적인 작업과 달리 신작 '플로우'는 '발광의 미학'이다. 머금은 빛을 마치 '폰딧불이'처럼 발현 시킨다. 어둠 속에 연출한 플로우 연작은 핀 조명을 받아 '은은한 빛무리'로 빨아들인다. 보는 순간 시공간에 떠있는 무중력 상태로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색을 쓴 그림일 뿐인데, 무슨 현상일까? '타임 오딧세이(Time Odyssey)'를 전시 주제로 빛과 색의 다차원적 경험을 선사하는 그의 세계관을 들어봤다. ◆어릴 적 꿈? 천문학자·축구협회장 장래 희망이 천문학자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는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시절 내 손가락에 피를 내서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완전 신세계였다. 동시에 별빛 가득한 하늘을 보며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광대한 우주에 흠뻑 빠져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2학년까지 수학을 잘했는데 그림이 좋았다. 선생님도 그림을 그려라 하더라. 그러나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지나서는 축구를 좋아해 축구협회장도 되고 싶었다. 운동을 하게 되면 몰입하게 된다. 그림 그리는 거랑 똑같다. 호기심이 많고 몰입을 잘 한다. 빨리 결과를 얻고 싶어하지 않는다 기질적으로. 기다리는 것을 잘한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바라는 것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관심 있는 것은? 지금, 그리고 현재다. 작업도 미리 계획을 세워 놓기보다 그때 그때 몰입해서 들어간다. 계획 없이 작업 했을 때 날 것들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이 색을 쓰고 싶다, 이 색이 더 좋겠다, 이렇게 넣는 것이 좋겠다 하는 계속해서 올라오는 무엇이 있으면 그것에 충실한다. 그렇게 계획 없이 했었을 때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미리 기획해 놓은 것은 결국 머리가 기획하는 것이다. 사실 머리에서 결정을 해서 판단해서 행하는 일들은 전부 다 과거에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을 통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뻔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날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주변 예술가들을 관찰했을 때 홍상수 감독도 그렇게 일을 하더라. 미리 대본을 주지 않는다든지, 촬영할 장소를 미리 정해 놓지 않고 하는…이런 전략이 결국 날 것을 뽑아내기 위해서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간 소묘를 했고 사실적인 그림을 연습해온 사람이다. 똑같은 것을 그리는데 너무나 능숙하다. 다큐멘터리 방법론을 쓰는 감독들을 통해서 나도 이런 맥락에서 작업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린 것이 10년 정도 됐다. ◆개인전 제목 '타임 오딧세이'는? 어릴적 꿈처럼 어느 순간 내가 그림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주라는 무한 공간을 탐험하며 미지의 세계(그림)를 발견해 가는 여정을 전시로 풀어내고 싶었다. 내 작품에서 은은한 빛 무리가 나오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작품의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번 전시 제목 '타임 오딧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인 스탠리큐브릭의 영화 '2001 Space Odyssey'에서 영감을 받아 정했다. 작업 중 새로운 행성이나 성운과 같은 느낌의 작업이 나오면(발견하면) 마치 천문학자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해서 그 행성의 이름을 명명하듯이 나도 그림에 마치 새롭게 발견한 행성처럼 PlanetA16(예)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Planet는 행성을 의미하고, A는 August(8월)의 줄임말 A이고, 16은 발견된 날짜를 의미한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공간 전체로 확장한 이번 전시는 다양한 은하들에 공존하는 우주의 오로라들을 작품으로 옮긴 듯한 ‘작품을 타고 떠나는 행성 여행’을 보여준다. ◆투명한 스크린 같은 '플로우' 신작의 비밀 물로 작업하는 것은 이전과 동일하다. 평면 캔버스인데 비밀이 있다. 공개하지 못할 영업 비밀은 아니고, 일단 캔버스는 내가 개발했다. 브라켓도 개발을 했다. 내가 원하는 작품을 위해서다. 물론 나 혼자 개발한 것은 아니다. 동료 작가 중에 이진우 작가가 있는데, 그의 절친 중에 섬유 전문가가 있다. 내가 재료를 갖고 고민 고민하는 걸 보고 연결해줬다. 그래서 4년 전에 만나서 상의를 하고 (빛이 발광하는)캔버스 개발을 시작했다. 4년 동안 고생 끝에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만들 수 없었다. 대형 작품을 선호해서 폭이 270cm는 나와야 했다. 개발자가 지난 수 년 간 중국을 오가고 내가 또 수 없는 실험 과정을 거쳐 작년에 비로소 만들었다. 돈도 억대가 들었다. 나한텐 R&D예산이다. 지금은 아주 편안하데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 캔버스가 나왔기 때문에 이번 신작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곰팡이 방지 처리까지 했다. 내가 쓰는 천은 사실은 '수채화 용 캔버스'다. 일반적으로 수채화용 캔버스가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왜냐하면 캔버스라고 하는 것은 원래 서양에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물감이 얹혀지는 데 특화돼 있는 재료로 스미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을 했고 결국 찾아냈다. 이번 빛을 내는 캔버스 사용은 내가 국내 최초다. 보다 많은 작가들이 쓰면 좋겠다. 발색이 너무 좋다. ◆'빛의 발광'…내 색은 구조색과 관련 있다. 이 세상 있는 색은 색소색과 구조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색소색은 나팔꽃을 문지르면 색소가 나온다. 이게 물감이다. 구조색은 구조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색이다. 나비 날개의 휘황찬란한 색깔, 앵무새의 색, 전복 색 등 아무리 문질러도 색소가 나오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체 구조가 있다. 투명한 구조들에 빛이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서 빛의 회전 굴절 난반사를 통해서 무지개 빛이 나오는 거다. 원래 거기에 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구조색을 알게 된 것은 어릴적부터 물색, 하늘색, 우주색, 황혼색에 마음을 뺏겼다. 구조색을 박서보 선생은 '공기 색'이라고 표현했다. 무지개는 물방울 수증기가 하늘에 떠 있다가 빛의 굴절로 만들어진다. 내가 관심 있는 색들은 손에 안 잡힌다. 원래 작가들은 개념이 앞서는 사람이 아니다. 감각적으로 먼저 끌린다. 왜 이렇지? 라고 가슴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올라가 분석을 시작하는 게 실험이다. 재료를 찾고 나를 감동시켜서 이미지를 찾고 구체화 되는 것. 그리고 나를 감동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내 작업은 그런 프로세스를 통해서 나온다. ◆몰입 속 철저한 전략과 전술 몰입을 해서 특별한 계획 없이 들어간다는 것은 작업 과정에서 몰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런 계획 없이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를 예를 들면 영화과 교수가 제자한테 만들어온 작품을 같이 보면서 '그냥 놔둔다고 자연스런 작업이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한다. 생각해 봐라. 서커스 하는 분들이 공을 돌릴 때, 관객에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수많은 연습과 힘든 과정이 없이는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오지 않는다. 내 작업도 똑같다. 퀄리티의 문제다. 감동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다. 당연히 철저한 전략과 철저한 전술로 나온다. 보여지는 전시에서 모든 하나하나의 요소는 철저하게 계획된 거다. 필요 없는 건 다 제거한다. ◆후기 단색화가? "관심 없다" 오해가 무진장 많은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단색화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후기 단색화라고 얘기 한 적도 없다. 미술사가들은 당대의 미술 현상을 카테고리화 한다. 시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리하는 거다. 하지만 나 김택상은 내가 단색화에 속하는지, 담화에 속하는지 관심 없다. 반면 이런 염려와 걱정은 있다. 한국 미술계에 서식하는 작가로서, 더 잘 됐으면 좋겠고 글로벌화되길 바란다. 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단색화 사조는 한국미술상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브랜딩 된 거다. 우리는 철저한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 작가로서 경쟁하면서 산다. 국제 미술계에서 우리 한국 미술은 단색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1세대 윤형근 박서보 선생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산 작가다. 시대 정신도 다르다. 치열하게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 이전 세대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일때 열등감과 함께 '나는 누구인지' 질문을 던졌을 거다. 한국성에 천착했을거다. 작가는 원래 독립적이다. 당대에 우리는 무엇이지? 했던 것처러 단색화는 집단적인 행동이다. 나도 그때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후진국을 거쳐 중진국, 선진국까지 경험한 유일한 세대다. 근본적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내가 40대인 2000년 초에 인터넷이 등장했다. 축구로 전 국민이 세계에 '대한국민'을 알렸고 경제발전이 이뤄졌다. 역동성이 생겼다. 원래 한국 문화에 있었다. 역동성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 '케이 컬처'로 발전했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스스로에 문화적 자긍심이 부족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후진국에서 선진국까지 다 경험한 당사자로서 이제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문화적 자긍심을 제대로 찾아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예술 분야 종사하는 작가들은 그런 근본적으로 자긍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김택상은? "한국적 추상미술 3세대" 나는 한국적 추상미술이라는 틀로 봐야 한다. 근대미술관이 만들어지면 한국적 추상미술 계보를 만들어야 한다. 김환기, 유영국이 1세대, 윤형근, 박서보, 하종현이 2세대, 그리고 내 세대가 3세대다. 포괄적인 정리가 이뤄지면 한국적 추상미술의 1세대, 2세대, 3세대의 계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담론이 풍성해진다. 추상화를 하는 내 작업만 해도 선배 세대와 관계성이 있다. 김환기, 곽인식 작가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나하고 비슷한 감수성을 갖고 있네'를 단박에 안다. 유영국 선생과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유영국 선생은 색을 서늘하게 잘 쓴다. 풍토와 연관이 있다. 나도 강원도 출신으로 추운 지역에 살다 보니 색을 서늘하게 쓴다. 어떤 분이 '그 지점을 자꾸 윤형근과 연결시켜서 이야기 하지만 유영국과도 관계가 있다며 그쪽으로 전시나 크리틱을 해보면 재미난 이야기꺼리가 나올거야'라고 말하는데 단박에 동의되더라. ◆한국 근대미술 출발 "겸재 정선 선배 가장 존경" 겸재 정선 선배님을 존경해 마지 않는다. 한국의 근대미술의 출발을 겸재 정선으로 본다. 서구의 근대는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시작됐다. 왕권 시대에서 시민 개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난 계기였다. 한국의 근대는 혹자는 일본의 의해서 대리 근대화됐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근대는 '인라이트먼트(Enlightenment)', 내 안에서 불이 켜지는 것이다. 나는 누군인가하는 내 안의 자각이다. 나는 왕의 백성도 아니고 귀족의 머슴도 아니고 완전한 인격체로서 한 시민으로 인권과 자유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미술분야에서 겸재 정선이 실경산수를 그렸다. 이전엔 관념산수였다. 당시 중국은 현재 지금 미국과 같은 존재였다. 관념산수 시절에 겸재는 내 몸뚱아리가 있는 주변, 이 땅을 그렸다.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나. 그래서 나는 겸재 선배님을 한국의 근대미술의 출발로 보는 거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하나씩 써나가야 할 시점이다. 조그마한 성취도 격려하고 칭찬하고 다독거리는 사회 분위기. 그 속에서 서로 힘 받아서 앞으로 치고 나가는 분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긴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기른 머리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기질과 상관있다. 대학생때 장발 단속을 당했다. 길에서 잡혀 머리를 깎였다. 장발 단속을 당하면서 경찰 서장하고도 많이 싸웠다. 내가 이렇게 살고 싶은데 왜 그러지? 아버지도 남자가 왜, 머리가 그게 뭐냐고 혼을 냈다. 그래서 머리 역사를 공부했다. 짧은 머리는 나폴레옹시대때 나왔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병사들의 머리가 이가 드글드글했다. 전쟁을 위해 머리를 자른 거다. 조선은 원래 상투를 틀고 머리를 길렀다.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서 단발령 때문에 머리가 짧아졌다. 그게 지금까지 굳어 진거다. 그래서 공부를 해서 갖고 다닌거다. 당신들이 얼마나 무식한가 봐라. 그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박해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단히 의식화됐다. 사회과학, 인류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계속 물고 들어가서 탐구하고 파고 드는 스타일이다 보니 지금의 이런 작업을 하게 됐다. ◆'물 작업 회화' 배경 재미있는 것은 제 사주에 물이 부족하다. 우습게 들었는데 사주는 통계학이다. 10여 년 전 우연히 산을 갔는데 '선생님 물이 부족하세요 물 장사를 해야 된 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물 장사'를 하고 있더라. 사주가 터무니 없는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내가 딸을 좋아한다 물 수가 많다. 하하. ◆빛 작업은? 구조 색과 관련된 것인데, 구조 색을 구현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색을 쫓아가다 보니 방법론적으로 결과 되어진 거다. 작가들은 행동이 먼저 인 사람이다. 플로우 신작은 빛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블랑켓을 썼다. 벽에 띄운 이유는 비존재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이렇게 작업하는 작가가 아니쉬 카푸어다. 핀 조명은 맞는 작업이 따로 있다. 내 작업은 구조색이라 발광하는 느낌을 낼 수 있다. 표면 아래는 입자가 납작해보이지만 대단히 많은 구조가 시간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미세 공간에 빛이 들어가는거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고려해서 나온 거다. 바탕에 칠한 건 아크릴 물감이다. 하지만 액상화된 물감을 쓰지 않는다. 물로 희석을 한다. 양동이에 물을 넣고 안료(물감)를 물로 해체한다. 중력에 의해서 입자들(알갱이)이 가라앉은 것을 쓴다.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 등 단색화가들의 수행적 방법과 같다. 한국문화적 밈이다. 우리가 색을 다루는 방법이다. 고려청자에서 시작됐다. 청자는 내가 색을 다룬 방법과 똑같다. 고려청자의 비색이 나오는데 '아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선조들의 방법과 다르지 않구나'를 알았다. ◆'빛 작가' 제임스 터렐과 차이는? 빛을 다룬다는 입장에서는 같다. 하지만 터렐과 나는 기질이 다르다. 나는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게 삶의 지표다. 서양 작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나는 애초에 안 한다. 차이는? 수련과 공력이 필요하다. 기계를 활용해서 3m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나 장인이나 무술가들은 수련을 통해서 일반인은 못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맞는 근육이 만들어진다. 나는 그 쪽이다. 제임스 터렐은 3차원의 빛을 3차원적 방법으로 보여준다. 나는 3차원의 빛의 문제를 2차원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원리냐면 고차방정식을 차원을 낮춰 초등생이나 유치원생에 이해시키는 것과 같다. 상당한 공력이 필요하다. 대학생이 고등학생을 이해시키는데는 가능한데, 유치원생을 이해 시키려면 특별한 노하우와 공력이 필요하다. 동북아시아 특징이라고 본다. 1세대는 그걸 '수행'이라고 했다. 내 작업은 빛을 다루긴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봤을 때 터렐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질이 아니다. 그 지점에서 터렐과 차별성이 있는데 돈이 덜 든다. 또 쓰레기는 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전시 하는 이유? 감동은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상황, 새로운 어떤 무엇을 맛을 봤는데 정말 처음 보는 맛을 봤을 때 우리가 감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갖고 있는 매커니즘이다. 감동을 받게 되면 그 다음 프로세스가 그걸 나누고 싶어한다. 이거 먹어 봤어? 거기 가봤어? 그렇게 진행이 된다. 나도 똑같다. 그러니까 내가 실험하고 시도한 일이지만 나에게 감동이 있었을 때 나도 감동을 받는다. 그랬을 때 그것을 나누고 싶어진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진짜 세상의 조그만 아름다운 조각`들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같이 나누면 더욱 행복해지니까. ㅡ리안갤러리 서울은 김택상 개인전 '타임 오딧세이'전을 세계 미술인들이 집결하는 키아프-프리즈 기간에 맞춰 선보인다. 전시는 오는 9월4일부터 10월19일까지 열린다. 202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