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상 "포스트 단색화가? 난 한국적 추상미술 3세대" "나는 '김택상다운 그림'을 그릴 뿐이다." 화가 김택상(65)은 의외였다. 맑고 옅은 조용한 그림과 달리 '반항아 기질'을 보였다. 지독한 탐구주의자였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가 렛잇비(Let It Be)에요. 내버려 두면 되거든요. 제 작업에 비밀이 있다고 한다면 '렛잇비'입니다." 26일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그는 4년 만에 신작 '플로우(FLOW)'시리즈를 선보였다. "감동이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고 강조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김택상은 '물 빛 회화 Breathing Light' 연작으로 유명하다. 빛과 색을 물로 담은 '스밈의 미학'으로 국내외 컬렉터를 사로잡았다. 물을 머금은 은은한 색의 작업은 '숨 쉬는 빛의 회화'로 각광받으며 '단색화 후세대 대표 작가'로 꼽혔다. 스며드는 물빛의 명상적인 작업과 달리 신작 '플로우'는 '발광의 미학'이다. 머금은 빛을 마치 '폰딧불이'처럼 발현 시킨다. 어둠 속에 연출한 플로우 연작은 핀 조명을 받아 '은은한 빛무리'로 빨아들인다. 보는 순간 시공간에 떠있는 무중력 상태로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색을 쓴 그림일 뿐인데, 무슨 현상일까? '타임 오딧세이(Time Odyssey)'를 전시 주제로 빛과 색의 다차원적 경험을 선사하는 그의 세계관을 들어봤다. ◆어릴 적 꿈? 천문학자·축구협회장 장래 희망이 천문학자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는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시절 내 손가락에 피를 내서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완전 신세계였다. 동시에 별빛 가득한 하늘을 보며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광대한 우주에 흠뻑 빠져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2학년까지 수학을 잘했는데 그림이 좋았다. 선생님도 그림을 그려라 하더라. 그러나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지나서는 축구를 좋아해 축구협회장도 되고 싶었다. 운동을 하게 되면 몰입하게 된다. 그림 그리는 거랑 똑같다. 호기심이 많고 몰입을 잘 한다. 빨리 결과를 얻고 싶어하지 않는다 기질적으로. 기다리는 것을 잘한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바라는 것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관심 있는 것은? 지금, 그리고 현재다. 작업도 미리 계획을 세워 놓기보다 그때 그때 몰입해서 들어간다. 계획 없이 작업 했을 때 날 것들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이 색을 쓰고 싶다, 이 색이 더 좋겠다, 이렇게 넣는 것이 좋겠다 하는 계속해서 올라오는 무엇이 있으면 그것에 충실한다. 그렇게 계획 없이 했었을 때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미리 기획해 놓은 것은 결국 머리가 기획하는 것이다. 사실 머리에서 결정을 해서 판단해서 행하는 일들은 전부 다 과거에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을 통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뻔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날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주변 예술가들을 관찰했을 때 홍상수 감독도 그렇게 일을 하더라. 미리 대본을 주지 않는다든지, 촬영할 장소를 미리 정해 놓지 않고 하는…이런 전략이 결국 날 것을 뽑아내기 위해서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간 소묘를 했고 사실적인 그림을 연습해온 사람이다. 똑같은 것을 그리는데 너무나 능숙하다. 다큐멘터리 방법론을 쓰는 감독들을 통해서 나도 이런 맥락에서 작업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린 것이 10년 정도 됐다. ◆개인전 제목 '타임 오딧세이'는? 어릴적 꿈처럼 어느 순간 내가 그림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주라는 무한 공간을 탐험하며 미지의 세계(그림)를 발견해 가는 여정을 전시로 풀어내고 싶었다. 내 작품에서 은은한 빛 무리가 나오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작품의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번 전시 제목 '타임 오딧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인 스탠리큐브릭의 영화 '2001 Space Odyssey'에서 영감을 받아 정했다. 작업 중 새로운 행성이나 성운과 같은 느낌의 작업이 나오면(발견하면) 마치 천문학자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해서 그 행성의 이름을 명명하듯이 나도 그림에 마치 새롭게 발견한 행성처럼 PlanetA16(예)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Planet는 행성을 의미하고, A는 August(8월)의 줄임말 A이고, 16은 발견된 날짜를 의미한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공간 전체로 확장한 이번 전시는 다양한 은하들에 공존하는 우주의 오로라들을 작품으로 옮긴 듯한 ‘작품을 타고 떠나는 행성 여행’을 보여준다. ◆투명한 스크린 같은 '플로우' 신작의 비밀 물로 작업하는 것은 이전과 동일하다. 평면 캔버스인데 비밀이 있다. 공개하지 못할 영업 비밀은 아니고, 일단 캔버스는 내가 개발했다. 브라켓도 개발을 했다. 내가 원하는 작품을 위해서다. 물론 나 혼자 개발한 것은 아니다. 동료 작가 중에 이진우 작가가 있는데, 그의 절친 중에 섬유 전문가가 있다. 내가 재료를 갖고 고민 고민하는 걸 보고 연결해줬다. 그래서 4년 전에 만나서 상의를 하고 (빛이 발광하는)캔버스 개발을 시작했다. 4년 동안 고생 끝에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만들 수 없었다. 대형 작품을 선호해서 폭이 270cm는 나와야 했다. 개발자가 지난 수 년 간 중국을 오가고 내가 또 수 없는 실험 과정을 거쳐 작년에 비로소 만들었다. 돈도 억대가 들었다. 나한텐 R&D예산이다. 지금은 아주 편안하데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 캔버스가 나왔기 때문에 이번 신작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곰팡이 방지 처리까지 했다. 내가 쓰는 천은 사실은 '수채화 용 캔버스'다. 일반적으로 수채화용 캔버스가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왜냐하면 캔버스라고 하는 것은 원래 서양에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물감이 얹혀지는 데 특화돼 있는 재료로 스미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을 했고 결국 찾아냈다. 이번 빛을 내는 캔버스 사용은 내가 국내 최초다. 보다 많은 작가들이 쓰면 좋겠다. 발색이 너무 좋다. ◆'빛의 발광'…내 색은 구조색과 관련 있다. 이 세상 있는 색은 색소색과 구조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색소색은 나팔꽃을 문지르면 색소가 나온다. 이게 물감이다. 구조색은 구조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색이다. 나비 날개의 휘황찬란한 색깔, 앵무새의 색, 전복 색 등 아무리 문질러도 색소가 나오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체 구조가 있다. 투명한 구조들에 빛이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서 빛의 회전 굴절 난반사를 통해서 무지개 빛이 나오는 거다. 원래 거기에 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구조색을 알게 된 것은 어릴적부터 물색, 하늘색, 우주색, 황혼색에 마음을 뺏겼다. 구조색을 박서보 선생은 '공기 색'이라고 표현했다. 무지개는 물방울 수증기가 하늘에 떠 있다가 빛의 굴절로 만들어진다. 내가 관심 있는 색들은 손에 안 잡힌다. 원래 작가들은 개념이 앞서는 사람이 아니다. 감각적으로 먼저 끌린다. 왜 이렇지? 라고 가슴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올라가 분석을 시작하는 게 실험이다. 재료를 찾고 나를 감동시켜서 이미지를 찾고 구체화 되는 것. 그리고 나를 감동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내 작업은 그런 프로세스를 통해서 나온다. ◆몰입 속 철저한 전략과 전술 몰입을 해서 특별한 계획 없이 들어간다는 것은 작업 과정에서 몰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런 계획 없이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를 예를 들면 영화과 교수가 제자한테 만들어온 작품을 같이 보면서 '그냥 놔둔다고 자연스런 작업이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한다. 생각해 봐라. 서커스 하는 분들이 공을 돌릴 때, 관객에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수많은 연습과 힘든 과정이 없이는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오지 않는다. 내 작업도 똑같다. 퀄리티의 문제다. 감동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다. 당연히 철저한 전략과 철저한 전술로 나온다. 보여지는 전시에서 모든 하나하나의 요소는 철저하게 계획된 거다. 필요 없는 건 다 제거한다. ◆후기 단색화가? "관심 없다" 오해가 무진장 많은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단색화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후기 단색화라고 얘기 한 적도 없다. 미술사가들은 당대의 미술 현상을 카테고리화 한다. 시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리하는 거다. 하지만 나 김택상은 내가 단색화에 속하는지, 담화에 속하는지 관심 없다. 반면 이런 염려와 걱정은 있다. 한국 미술계에 서식하는 작가로서, 더 잘 됐으면 좋겠고 글로벌화되길 바란다. 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단색화 사조는 한국미술상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브랜딩 된 거다. 우리는 철저한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 작가로서 경쟁하면서 산다. 국제 미술계에서 우리 한국 미술은 단색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1세대 윤형근 박서보 선생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산 작가다. 시대 정신도 다르다. 치열하게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 이전 세대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일때 열등감과 함께 '나는 누구인지' 질문을 던졌을 거다. 한국성에 천착했을거다. 작가는 원래 독립적이다. 당대에 우리는 무엇이지? 했던 것처러 단색화는 집단적인 행동이다. 나도 그때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후진국을 거쳐 중진국, 선진국까지 경험한 유일한 세대다. 근본적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내가 40대인 2000년 초에 인터넷이 등장했다. 축구로 전 국민이 세계에 '대한국민'을 알렸고 경제발전이 이뤄졌다. 역동성이 생겼다. 원래 한국 문화에 있었다. 역동성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 '케이 컬처'로 발전했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스스로에 문화적 자긍심이 부족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후진국에서 선진국까지 다 경험한 당사자로서 이제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문화적 자긍심을 제대로 찾아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예술 분야 종사하는 작가들은 그런 근본적으로 자긍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김택상은? "한국적 추상미술 3세대" 나는 한국적 추상미술이라는 틀로 봐야 한다. 근대미술관이 만들어지면 한국적 추상미술 계보를 만들어야 한다. 김환기, 유영국이 1세대, 윤형근, 박서보, 하종현이 2세대, 그리고 내 세대가 3세대다. 포괄적인 정리가 이뤄지면 한국적 추상미술의 1세대, 2세대, 3세대의 계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담론이 풍성해진다. 추상화를 하는 내 작업만 해도 선배 세대와 관계성이 있다. 김환기, 곽인식 작가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나하고 비슷한 감수성을 갖고 있네'를 단박에 안다. 유영국 선생과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유영국 선생은 색을 서늘하게 잘 쓴다. 풍토와 연관이 있다. 나도 강원도 출신으로 추운 지역에 살다 보니 색을 서늘하게 쓴다. 어떤 분이 '그 지점을 자꾸 윤형근과 연결시켜서 이야기 하지만 유영국과도 관계가 있다며 그쪽으로 전시나 크리틱을 해보면 재미난 이야기꺼리가 나올거야'라고 말하는데 단박에 동의되더라. ◆한국 근대미술 출발 "겸재 정선 선배 가장 존경" 겸재 정선 선배님을 존경해 마지 않는다. 한국의 근대미술의 출발을 겸재 정선으로 본다. 서구의 근대는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시작됐다. 왕권 시대에서 시민 개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난 계기였다. 한국의 근대는 혹자는 일본의 의해서 대리 근대화됐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근대는 '인라이트먼트(Enlightenment)', 내 안에서 불이 켜지는 것이다. 나는 누군인가하는 내 안의 자각이다. 나는 왕의 백성도 아니고 귀족의 머슴도 아니고 완전한 인격체로서 한 시민으로 인권과 자유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미술분야에서 겸재 정선이 실경산수를 그렸다. 이전엔 관념산수였다. 당시 중국은 현재 지금 미국과 같은 존재였다. 관념산수 시절에 겸재는 내 몸뚱아리가 있는 주변, 이 땅을 그렸다.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나. 그래서 나는 겸재 선배님을 한국의 근대미술의 출발로 보는 거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하나씩 써나가야 할 시점이다. 조그마한 성취도 격려하고 칭찬하고 다독거리는 사회 분위기. 그 속에서 서로 힘 받아서 앞으로 치고 나가는 분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긴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기른 머리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기질과 상관있다. 대학생때 장발 단속을 당했다. 길에서 잡혀 머리를 깎였다. 장발 단속을 당하면서 경찰 서장하고도 많이 싸웠다. 내가 이렇게 살고 싶은데 왜 그러지? 아버지도 남자가 왜, 머리가 그게 뭐냐고 혼을 냈다. 그래서 머리 역사를 공부했다. 짧은 머리는 나폴레옹시대때 나왔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병사들의 머리가 이가 드글드글했다. 전쟁을 위해 머리를 자른 거다. 조선은 원래 상투를 틀고 머리를 길렀다.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서 단발령 때문에 머리가 짧아졌다. 그게 지금까지 굳어 진거다. 그래서 공부를 해서 갖고 다닌거다. 당신들이 얼마나 무식한가 봐라. 그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박해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단히 의식화됐다. 사회과학, 인류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계속 물고 들어가서 탐구하고 파고 드는 스타일이다 보니 지금의 이런 작업을 하게 됐다. ◆'물 작업 회화' 배경 재미있는 것은 제 사주에 물이 부족하다. 우습게 들었는데 사주는 통계학이다. 10여 년 전 우연히 산을 갔는데 '선생님 물이 부족하세요 물 장사를 해야 된 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물 장사'를 하고 있더라. 사주가 터무니 없는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내가 딸을 좋아한다 물 수가 많다. 하하. ◆빛 작업은? 구조 색과 관련된 것인데, 구조 색을 구현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색을 쫓아가다 보니 방법론적으로 결과 되어진 거다. 작가들은 행동이 먼저 인 사람이다. 플로우 신작은 빛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블랑켓을 썼다. 벽에 띄운 이유는 비존재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이렇게 작업하는 작가가 아니쉬 카푸어다. 핀 조명은 맞는 작업이 따로 있다. 내 작업은 구조색이라 발광하는 느낌을 낼 수 있다. 표면 아래는 입자가 납작해보이지만 대단히 많은 구조가 시간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미세 공간에 빛이 들어가는거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고려해서 나온 거다. 바탕에 칠한 건 아크릴 물감이다. 하지만 액상화된 물감을 쓰지 않는다. 물로 희석을 한다. 양동이에 물을 넣고 안료(물감)를 물로 해체한다. 중력에 의해서 입자들(알갱이)이 가라앉은 것을 쓴다.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 등 단색화가들의 수행적 방법과 같다. 한국문화적 밈이다. 우리가 색을 다루는 방법이다. 고려청자에서 시작됐다. 청자는 내가 색을 다룬 방법과 똑같다. 고려청자의 비색이 나오는데 '아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선조들의 방법과 다르지 않구나'를 알았다. ◆'빛 작가' 제임스 터렐과 차이는? 빛을 다룬다는 입장에서는 같다. 하지만 터렐과 나는 기질이 다르다. 나는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게 삶의 지표다. 서양 작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나는 애초에 안 한다. 차이는? 수련과 공력이 필요하다. 기계를 활용해서 3m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나 장인이나 무술가들은 수련을 통해서 일반인은 못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맞는 근육이 만들어진다. 나는 그 쪽이다. 제임스 터렐은 3차원의 빛을 3차원적 방법으로 보여준다. 나는 3차원의 빛의 문제를 2차원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원리냐면 고차방정식을 차원을 낮춰 초등생이나 유치원생에 이해시키는 것과 같다. 상당한 공력이 필요하다. 대학생이 고등학생을 이해시키는데는 가능한데, 유치원생을 이해 시키려면 특별한 노하우와 공력이 필요하다. 동북아시아 특징이라고 본다. 1세대는 그걸 '수행'이라고 했다. 내 작업은 빛을 다루긴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봤을 때 터렐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질이 아니다. 그 지점에서 터렐과 차별성이 있는데 돈이 덜 든다. 또 쓰레기는 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전시 하는 이유? 감동은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상황, 새로운 어떤 무엇을 맛을 봤는데 정말 처음 보는 맛을 봤을 때 우리가 감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갖고 있는 매커니즘이다. 감동을 받게 되면 그 다음 프로세스가 그걸 나누고 싶어한다. 이거 먹어 봤어? 거기 가봤어? 그렇게 진행이 된다. 나도 똑같다. 그러니까 내가 실험하고 시도한 일이지만 나에게 감동이 있었을 때 나도 감동을 받는다. 그랬을 때 그것을 나누고 싶어진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진짜 세상의 조그만 아름다운 조각`들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같이 나누면 더욱 행복해지니까. ㅡ리안갤러리 서울은 김택상 개인전 '타임 오딧세이'전을 세계 미술인들이 집결하는 키아프-프리즈 기간에 맞춰 선보인다. 전시는 오는 9월4일부터 10월19일까지 열린다. 2024/08/27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서도호 상상은 현실이 된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서도호'가 서울에 출현했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s)’로 등장한 서도호(62)는 청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민 머리와 바싹 마른 몸의 자태로 수행한 스님 같기도 했다. 그의 화두는 '만약에(What If)’.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술적 상상력이 힘으로 어쩐일인지 세계 각국 미술관들이 러브콜한다. "다른 세계들을 상상하게 해주는 급진적인 잠재력이 사변적 사유에 있다고 믿는다." 영국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세계적인 K아트 설치미술가인 서도호는 올 한 해 유난히 진격하고 있다. 상반기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워싱턴DC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데 이어 하반기에는 한국에서 아트선재센터, '프리즈 서울'에서 전시를 선보인다. 내년 5월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거장은 혼자 작업하지 않는다. 서울 전시는 LG OLED와 코오롱스포츠의 협업으로 무장했다. LG OLED와 작업은 오는 9월4일 개막하는 '프리즈 서울 2024 아트페어'에서 한국 수묵 추상의 창시자'인 아버지 故서세옥(1929~2020)을 오마주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아트선재센터 전시는 코오롱스프츠가 동참, 그의 상상을 이뤄냈다. 16일 아트선재센터에서 20년 만에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회견은 성황을 이뤘다.(2010년 리움미술관 개인전 이후 14년 만의 국내 대규모 전시다) 2003년 아트선재센터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열고 이름을 알린 그는 한옥으로 분신했다. 성북동 한옥집서 살던 기억과 공간이 현실로 뛰쳐 나왔다.뉴욕 고층 아파트에 한옥을 올리는가 하면, 허공에서 떨어진 별똥별처럼 한옥이 공동주택에 박히기도 하고, 영국 런던 고층 빌딩 사이 육교에도 한옥을 세워 이주민의 향수병을 자극한다. 천’으로 지은, 이동 가능한 ‘집’까지 만들어냈다. '완벽한 집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미국 뉴욕으로 다시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유목민적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날 단독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진지하게 말을 풀어냈다. 서도호에 질문하고 답한 대화를 그대로 전한다. ◆전시 제목이 국문으로 사변적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큘레이션스'다. 사변적 사유의 작업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사변적 사유'라는 제목이 한글로는 어려운 제목일 수 있다. 쉽게 풀어서 말씀 드린다면 '만약에'라는 설정을 하고,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해 나가는 작업 과정이라는 뜻으로 '스페큘레이션스'라는 영어 제목을 붙였다. 제 작업 대부분이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작품이 된다. 잘 아는 '천으로 만든 건축물'들, 그것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서 작업이 전개가 됐다. 예를 들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로 작업이 발전이 된 거다. '만약에', 영어로 다시 이야기를 하면 왓 이프(what if)라는 전제로 상상을 시작 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작품들을 구상 할 수 있게 되더라. 상상의 날개를 펴다 보면 중력의 지배를 받는 3차원 세계 안에서 만들 수 없는 그런 작품들까지 구상을 하게 되는데 그런 거를 스케치북 안에 그림을 그려서 계속 가지고 있었다. 스케치북에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게 1991년이다. 제가 미국으로 처음에 유학을 가서 사용하기 시작한 스케치북 그 포맷을 지금도 쓰고 있다. 그 안에 계속 생각나는 것을 일기를 쓰듯이 그림을 그리고 기록을 해 왔다. 대학 졸업을 하고 작가로 데뷔를 해서 작품을 세상에 공개를 하고 전시를 하다 보니까 어떤 경험을 하게 됐냐면, 관객 분들 입장에서는 작품 한 점 보고 그다음 작품을 보려면 1년, 2년을 기다렸다가 보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큰 규모의 작품들이 주다 보니까 작품 하나 만드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니까 전시를 다른 작가들만큼 자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평론가든 큐레이터들이 저희 스튜디오에 와서 많이 놀란다. 전시회에서 보여주는 거 외에 굉장히 다른 것들이 스튜디오에서 진행이 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프로젝트들을 저만 가지고 있으면 관객 분들은 영원히 모르시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거를 어떤 형식으로 시각화 해서 같이 나눈다면 띄엄띄엄 제가 보여드리는 작품 사이에 빈 갭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제 작품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더 쉽게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2003~2004년경부터 스케치북에 담아뒀던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라는 가제를 가지고 시작을 한 15개 정도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프로젝트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고 있다가 지금 많이 모여서 이번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를 하게 된 거다. 그런데 전시장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은 예를 들면 건축가의 전시를 가본 경험이랑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거다. 제가 건축가들 전시에 가서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실제 큰 건축을 전시장 안에 가지고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모형을 만드는 거다. 축소된 모형이 있고 구상을 했는데 실패한 프로젝트도 모형으로 나오고, 드로잉을 하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런 식으로 따서 건축적인 스케일 모델 다음에 드로잉, 다음에 애니메이션들을 제 아이디어로 표현을 한 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처음에 시작했을 때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프로젝트라고 생각 했는데 시각화 하고 만들어 놓으니까 그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이 오더라. 이번 전시장에서도 아마 한 3분의 1 정도는 그때 만든 작품들이 실제로 들어가 있다. 물론 제가 최초에 구상했던 거랑은 조금은 다르지만 스페큘레이션스 안에 있었던 아이디어들이 나중에 현실화가 된 것들이 이번 전시에 포함이 됐다. ◆건축적 작업들의 개념, 이주민으로서 불완전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작업의 목적성 지향성은 무엇인가? =사실 목적성이 없다. '브릿지 프로젝트' 예를 들면 제가 항상 이동이 가능한 작품을 전시를 전제로 생각을 할 때는 종착역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고 한다. 제 기본적인 태도다. '브릿지(다리)프로젝트'를 보셨겠지만 서울에서 북극점까지의 어떤 다리를 만드는 작업이다. 저한테 제일 중요했던 집, 세계도시 제일 가운데에 '퍼펙트홈', 완벽한 집을 짓겠다는 그런 설정을 하고 사유를 하기 시작한 작업이다. 사실 서울에서 북극점까지의 거리가 굉장히 긴 거리다. 비행기를 타도 몇 시간을 타고 가야 이동할 수 있는 그런 거리인데, 빠른 이동을 생각한 게 아니라 발로 걸어서 도보로 이동을 하는 거를 전제로 했다. 그래서 가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다. 너무 길이 멀어서. 사실 '퍼펙트 홈'이라는 건 핑계고 여정, '서유기'를 읽는 경험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천축'이라는 목적지를 설정해 놓고 가는 과정에 일을 풀어놓은 것이 '브릿지 프로젝트'다. 도보로 걷는다면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긴 여정 중에 환경 문제도 부딪혀서 그걸 공부하게 되고 북극해가 얼음으로 덮여 있고 춥다는 것은 다 알지만, 그게 유기물로 이뤄져서 그 안에 해류가 있어서 한 방향으로 한 참 돌다가 2년 후에 반대 방향으로 도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장소이고 집을 지을 수가 없는 곳이다. 계속 돌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다 집을 짓겠다는 신념을 세우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또 배운 것이 그 사람이 살기가 힘든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원주민들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주민들은 저희랑 피가 섞여 있는 분들이다. BBC 다큐를 딸들이랑 보는데 '아빠랑 똑같은 사람이 나오네' 그러더라. 그 순간에 5000km가 단축이 되면서 집 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됐다. 그러니까 묘하게 서울의 집 생각을 더 하게 됐다. 북극에 집을 짓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서울의 집을 더 생각하게 되고 ‘과연 우리한테 집이라는 게 뭔가, 과연 이게 우리가 물리적으로 서울에서 사는 집을 떠난다고 하면 서울에서 사는 집은 우리한테 존재하지 않는 건가? 하는 묘한 경험을 했다. 북극은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분쟁의 여지가 많은 지역이다. 수많은 자원이 북극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은 '공해'다. 유엔의 법규를 찾아봤더니 '공해'에는 나라를 설립할 수 있더라. 유엔에 전화했다. 하하. '지금 집을 지을려고 하는데 나라로 선포할 수 있느냐' 했더니 '잠깐 기다려봐라' 하더라. 다시 전화를 해 알아보니 현실적으로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데 법적 제약이 많은데 일일이 설명하긴 그렇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좌충우돌하면서 신문 언론이나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 조금 심화된 정보와 지식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공부하는 게 사실은 목적이다. 제가 장황하게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드렸는데 이 목적 자체가 없는 프로젝트인데 또 모순적으로 서울과 북극을 잇는 다리를 지을 수 있다. '돈 만 있다'면 그 안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신념, 자기 최면을 걸면서 하는 프로젝트다. 결론적으로 종착역은 없다. 완전히 오픈된 프로젝트다. 10년 전에 런던에 이사를 가기 전 뉴욕에서 살 때 서울하고 뉴욕 사이를 잇는 다리를 짓고 그때는 태평양에 완벽한 집이 올라가게 됐었다. 당시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렇게 까지 심화된 프로젝트를 할 줄 몰랐다. 지금 이 프로젝트는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계속 발전이 될 거다. 이번 전시 버전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데 캠브리지대학 철학과 교수님, 미국 라이스 대학교 구조공학과 대학생들과 교수님과 같이 협업을 했고 지금은 북극해 근처에 사는 원주민 전문가 휴고 브로디라는 전설적인 인류학자와 작업한다. 원주민의 목소리를 그분을 통해서 듣는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고 있다. 또 물방울로 다리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박테리아가 어떤 방울을 만들어서 부력을 가지는 어떤 구조체, 생물학적인 다리를 지으면 어떨까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건축가와 동시에 생물학자가 보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해서 이것도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여튼 그런 식으로 일이 많이 번지고 있어서 제 스튜디오에 오면 여~러가지가 많이 진행이 되고 있다. 그래서 화랑이랑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은 내 작업의 빙산의 일각이다. 건축물, 생활용품 등 '천 작업'이 저를 대표하는 작품처럼 됐지만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이다. 사실은 '아트선재 스페큘레이션' 같은 작업이 내 머리에 꽉 차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어떤 점을 느끼고 경험 했으면 하나? =사실 제가 통계적인 숫자는 모르겠지만 서울 인구에서 서울 토박이는 많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주는 너무나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다. 제 작품들의 대부분은 저의 자전적인 그런 성격이 크다. 제 경험이 많은 분들의 경험을 대변할 수는 없다. 100% 제 작품이 관객들이랑 소통할 거라는 그런 전제도 하지는 않고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묘한 게 자라난 환경이나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도 제 작품에 대해 공감을 하시는 거를 경험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특별하게 한국 사람이라서 어떻고 또 외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르고 그런 건 것 같지는 않다. 제가 작가로서 전문적으로 활동을 한 지가 한 30년 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인종과 국가, 성별을 초월한 아주 기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그런 코드가 제 작품에 있지 않나'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옥 집을 천으로 만들어 영국에서 전시 하면 한옥은 영국 사람한테는 너무나 낯선 건축 구조물이다. 한 번도 보지도 않았고 들어 가보지도 않았던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앞에서 우는 분들도 계신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공감하는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 작품들속에 결이 다른 '사천왕사를 위한 제안'이라는 작품을 흥미롭게 봤다. 종교 유적지고 지금 터만 남아 있는 불교 유적지다. 사천왕사 터를 관심 있게 생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또 실제 유적지 건설하는 것을 염원한다고 했는데 사천왕사 터에 이 작품을 실제로 설치할 계획이 진행 중인가? =사천왕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전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와 프로젝트를 몇 번 하면서다. 2012~13년에 덕수궁을 주제로 한 전시가 있었다. 당시 김 학예연구사가 저를 초대했는데 그때 저는 함녕전, 고종의 침실을 골라 거기에 설치 작업을 하게 됐다. 함녕전에 대해 리서치를 하다가 고종이 거기서 뭘 마시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궁녀인 신분이 나중에는 후궁처럼 되셨다. 70년대에 살아계신 조선조 말기 궁녀나 내시 분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책이 있었는데 거기에 있는 한 줄의 글이 나온다. '고종황제가 밤에 주무실 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보료 세 채를 놓고 주무셨다'. 그 한줄을 가지고 함녕전 프로젝트도 풀어 나갔다. 그것도 사실은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종 황제가 시카고 박람회 때 여러 가지 물건을 기증을 했는데 그때 보료가 있었다. 시카고 박물관에 연락을 해서 보료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연결이 안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알고 있는 김 학예연구사가 삼국유사에 나온 이야기를 추적해 알려줬다. 문무왕 때 당나라가 신라로 쳐들어오는 거를 알고 있었다. 이미 서해에 당나라 해군이 몇백 척이 몰려와 있었다. 준비할 틈이 없어 회의를 열고 고민을 했는데 그때 명랑법사라는 고승을 불렀다. 명랑법사가 시간이 없으니까 화려한 색의 비단을 가지고 절을 지어서 기도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12명의 유명한 스님을 모셔서 기도를 한 모양이다. 실제로 이것은 역사에 남은 건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풍랑이 불어서 다 가라 앉아 당의 침공이 무산이 된 거다. 그 이후에 거기다 실제로 절을 지은 게 사천왕사다. 사천왕사 작업은 김 학예연구사가 그 한 줄을 보고 저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작업이다. 현장에 가서 남은 사적지를 봤는데 아이러니컬한 게 사천왕사 사적지가 다 흙으로 덮여 있었는데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발굴한 거더라. 철도를 내기 위해서 서브웨이를 하다가 발견이 됐던 거로 기억을 하는데, 철도가 사실 가로질러 가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지은 터에는 대웅전 법당 자리도 있고 그 앞에 또 자리도 있다. 지금 학계에서도 어떤 용도의 자리였는지 모르는 터가 쌍으로 남아 있는 거다. 기록에 많이 남지 않았지만 스님들이 모여서 하신 그런 의식이 '문두루', 그러니까 고대 불교의 한 유파인데 그런 비법을 이용을 했다고 그러는데 나도 그것에 대해 리서치를 했다. 이 역시 스페큘레이션스, 그러니까 항상 스페큘레이션스 프로젝트의 저변에는 리서치가 기반이 된다. 그러나 리서치를 하고 항상 한계에 부딪친다. 고종 황제 때도 자료가 하나도 안 남아 있다. 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고 몇천 년 전 이야기니까 자료가 안 남았다는 게 한계이기도 하지만 아티스트한테는 상상력을 마음대로 발휘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사실 제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그게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다. 왜냐면 자료가 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래서 굉장히 자유스럽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그런 스타일 때문에 제가 스페큘레이션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사천왕사에 대한 논문이라는 논문은 다 읽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남은 자리는 천을 만든 구조물이 서 있을 때가 아닌 거다. 왜냐면 대웅전은 이미 그 이벤트가 끝난 다음에 지은 거기 때문에. 그런데 제일 문두루 비법을 행했을 장소가 그 2개인 것 같아서 거기를 제 버전의 천, 비단으로 만든 사찰의 형태를 만든 거다. 사실 실제로 작품을 설치하려고 문화재청에 연락해 당시 문화재청장도 보고 작업을 만들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그래서 그때 그냥 흐지부지됐다. 그렇지만 제 바람은 스페큘레이션스에 있는 모든 프로젝트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 그러면 이루고 싶은 것들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작품도 인연이 닿아야 한다. 장소, 시간, 사람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제 태도는 일단 가지고 있으면 인연이 닿으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아트선재서 20년 만의 전시, 2003년 전시와 무엇이 다른가? 작가가 생전에 한 미술관에서 두 번 전시를 하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좋은 후배 작가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생전에 두 번 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 김선정 전시감독이 전시 하자고 했을 때 흔쾌히 한 이유가 몇 가지가 있다. 하나가 우리가 2003년에 하고 20년 시간이 지났는데 둘이 어쨌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미술계에 아직 남아서 한 분은 큐레이터를 계속 하시고 저는 지금 계속 작품을 하고 그래서 그게 참 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2003년 전시 때는 전시 공간의 물리적인 조건을 굉장히 많이 고려해서 작품을 했다. 그때 아트선재라는 공간을 완전히 제가 소진을 했다. 진이 빠지도록 공간을 들여다보고 연구를 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그런 것을 떠나서 자유롭게 전시한 게 차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는 선정 씨랑 우정(friendship)ㅡ같은 길을 걸어 온 동료로서 '전시를 함께 한다'는 의미가 큰 전시다. 1시간 가량 서도호는 대본 없는 '사변'을 순수하게 토해냈다. 지독한 탐구자이자'사변가라는 것을 증명한 자리였다. 불가능할 거 같은 예술가의 상상력이 구현되는 게 놀랍다고 하자 그도 "만들어 지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이미지가 넘치는 메트릭스 같은 세상에서 마르지 않는 수공예적 아이디어 때문에 스튜디오 직원들이 고생이 많다. 그가 "아이디어 새로 나왔어. 이것 좀 이야기하자"고 하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건축가, 생물학자, 공학가, 인류학자 산업디자이너 등과 작업하며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모형과 도면, 영상 등을 제작하는 그는 '21세기 다빈치'같다. 복잡하고 미묘하고 끈질긴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20년 만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여는 개인전은 스페큘레이션화 된 그의 머릿속을 풀어놓은 듯하다. 그의 유명한 작업인 '천으로 만든 집'은 없지만 엉뚱한 상상력이 빛나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인 '공인들'(1998)을 키네틱 버전으로 마침내. 구현해 최초 공개한다. '우리는 누구를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해야 하느냐'를 묻는 '공인들'은 지난 4월 말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 미술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정원에 설치됐다. 초록 잔디를 밟고 두 손을 번쩍 들어 동상을 떠 받치는 군상, '공인들'의 놀라운 힘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 나온 '공인들'은 분주하다. 원작 6분의 1 크기의 움직이는 버전의 이 작품은 고정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동상의 성질에 도전한다. 300명의 작은 인물들이 '정렬의 힘'으로 동상대를 이동시키고 있다. 집이 고정된 개념이 아니듯, '서도호'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열정 많은 이주민으로, 보이지 않는 사유의 전략가로 이 세계를 조금 더 세밀하게 보여주는 욕심이다. 동상 밑에서 상생하며 촘촘하게 움직이는 '공인들'은 '서도호 세계관'의 기둥으로 보인다. 전시는 11월3일까지. 2024/08/17
어떻게 살고 싶어요?…'58채 집 이야기'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 '집’은 결국 우주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집에서 시작된다.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도 이제 텃밭 있는 주택으로 집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집이라는 공간의 소중함이 새삼 부각됐다. '미드센츄리 인테리어', '식물테리어'가 떠오른 배경이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 사는 것이 달라진다.' 공간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을 찾는 추세 속 주거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펼쳐 더욱 주목된다. 과천에서 선보인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로, 가족제도와 생활양식 변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집과 건축의 이야기다. 2000년 이후 동시대 한국 현대 건축과 도시 속 다양한 주거 방식과 미학적 삶의 형식을 조명한다. 30명(팀) 건축가의 58채 단독·공동주택을 소개한다.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는 총 6개 주제 '58채의 집 이야기'롤 선보인다. '선언하는 집’,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관계 맺는 집’, ‘펼쳐진 집’, ‘작은 집과 고친 집’, ‘잠시 머무는 집’ 등으로 나눴다. 참여하는 건축가는 승효상, 조민석, 조병수, 최욱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성 건축가부터 양수인, 조재원 등 중진, 그리고 비유에스, 오헤제건축 등 젊은 건축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이들은 집을 통해 가족 구성원 및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기후위기 등 점점 빠르게 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질문한다. 특히 '아파트 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한국 사회에서 대안적 선택으로 자리 잡은 집들을 통해 삶의 능동적 태도가 만든 미학적 가치와 건축의 공적 역할을 전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집’을 통해 삶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전시”라며 "현대미술의 장르 확장과 함께 건축예술과 삶의 미학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펼쳐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선언하는 집’ 공간 개념과 형식을 강조하는 집이다. 집 내외부의 공간 경험을 극대화하고, 건축 요소들이 일상 활동에 집중하기보다 심미적인 측면에 맞춘 특징을 드러낸다. '수백당'(승효상, 1999-2000), '땅집'(조병수, 2009), '축대가 있는 집'(최욱, 2006-2022), '베이스캠프 마운틴'(김광수, 2004)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가족의 규범이었던 4인 가족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반려 개념을 재구성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홍은동 남녀하우스'(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2018), '고개집'(양수인, 2016), '정릉주택 & 지하서재'(조남호, 2018), '맹그로브 숭인'(조성익, 2020) 등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요즘 사람이 아닌 동·식물과 함께 사는 집, 3대가 함께 사는 집, 1인 가구를 위한 집을 만나볼 수 있다. ◆‘관계 맺는 집’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를 상상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로 더불어 살아가는 집짓기 실천에 주목한다. '대구 앞산주택'(김대균, 2008), '써드플레이스 홍은 1-8'(박창현, 2020-2024), '이우집'(박지현+조성학, 2023) 등 단독주택이지만 그 안에 회합의 장소가 있는 집, 타인과 공유하는 집을 들여다본다. ◆‘펼쳐진 집’ 시골의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농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집짓기 사례들을 통해 과거 전원주택으로 대표되었던 시골 집짓기의 변화를 살펴본다. '목천의 세 집'(이해든+최재필, 2018), '와촌리 창고 주택'(정현아, 2012), '볼트 하우스'(이소정+곽상준, 2017), '아홉칸집'(나은중+유소래, 2017) 등이 소개된다. ◆‘작은 집과 고친 집’ 도시의 한정된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이다. 대규모로 조성된 신도시 필지가 아니라 도심 속 독특한 형태의 땅을 찾아 올린 집부터 오래된 집을 고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픽셀 하우스'(조민석, 2003), '얇디얇은 집'(안기현+신민재, 2018), '쓸모의 발견;(박지현+조성학, 2018), 'Y 하우스 리노베이션-만휴당'(서승모, 2019) 등이다. ◆‘잠시 머무는 집’ 생의 주기와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주거의 시간성을 논의한다. '여인숙'(임태병, 2020), '뜬 니은자 집'(조재원, 2010), '고산집'(이창규+강정윤, 2017) 등 일상과 여가의 중간 지대에서 잠시 머무는 숙박 시설과 최근 한국 사회의 주요 공간 소비 장소로 떠오른 ‘스테이’와 주말 주택을 소개한다. 전시 감상의 폭을 넓히기 위한 워크숍, 영화 상영, 강연 등 풍부한 연계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전시실 중앙에 마련된 가변 극장에는 6개의 주제로 구성된 단편 영화 및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는 ‘주말극장’도 운영한다. 전시는 2025년 2월2일까지. 관람료 2000원. 202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