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해 주세요" 했는데…털 옷 입은 이중섭 마지막 편지 "아빠가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남덕군(야마모토 마사코) 야스카타군(태현) 야스나리군(태성) 기뻐해 주세요." 1954년 겨울 추운 날이었다. 제3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통영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양피 점퍼를 선물로 가져왔다. 피난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통영 시절(1953년 11월 ~ 1954년 5월)’에 만난 '통영의 친구들'은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양피 점퍼를 입은 이중섭과 팔짱을 끼고 포즈를 취한 유강열(1920~1970)과 친구들은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 영원한 우정을 자랑한다. 양피 점퍼를 받은 이중섭은 가족들에게도 뽐냈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털 달린 옷을 입은 모습을 그려 두 아들에 똑같이 그림 편지를 썼다. ‘아빠는 친구들이 준 양피 점퍼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일본에 있는 가족을 안심시키는 이중섭의 가장으로서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진다. 4명이 이어진 그림은 부질없는 희망이 됐다. 가족 상봉을 고대하던 이중섭은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이 편지를 보내고 2년 후인 1956년 9월 영양실조와 간암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향년 39세, 무연고자 시신으로 망우리 공원묘지에 묻혔다. 이중섭의 애틋하고 희망에 찼던 마지막 편지가 공개되어 또다시 가슴을 울리고 있다. 서울미술관이 2년 만에 선보인 기획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전에 '이중섭 마지막 편지화' 3점이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서울미술관을 설립한 유니온약품 안병광 회장은 "최근 1954년 첫째 아들 태현에게 쓴 이중섭의 편지화 3점을 소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중섭은 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같은 그림과 글을 담은 똑같은 편지를 두 개 제작하여 태현, 태성에게 각각 보내곤 했다. 두 아들을 공평하게 대하려는 아빠 이중섭의 자상한 배려심이 느껴진다. 편지화는 2022년 타계한 야마모토 마사코(한국 이름 이남덕) 여사의 집을 가족들이 정리하던 중 발견된 여러 통의 편지 중 하나다. 당시 발견된 편지는 대부분이 글로만 작성된 글과 편지였으며, 그 중 아들 태현과 태성에게 보낸 해당 삽화 편지가 함께 발견되었다. 서울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편지는 누상동 시절 이중섭의 마지막 편지로 추정된다"며 "봉투는 현재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생전 1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화가였던 이중섭은 글과 더불어 가족과의 추억이나 재회하고자 하는 열망을 그림으로 담은 편지를 전했고, 오늘날 이중섭의 편지들은 ‘편지화’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그림을 담은 그림 편지와, 그림과 글을 함께 실은 삽화 편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전시에서는 글 편지 1장과 삽화 편지 2장으로 구성된 3장의 편지화를 소개한다. 이중섭의 편지화는 볼수록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두 팔을 벌려 아들을 안고 있는 마사코와 이중섭을 중심으로 가족이 원형 구도를 이루는 모습은 단란한 가족을 연상시키며, 네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이중섭의 소망을 드러낸다.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재는 ‘복숭아’로, 천도복숭아는 악한 기운을 막는 벽사의 힘을 지니고 있어 신선의 과일로 알려져 있고, 복숭아 나무가 무성한 곳은 ‘무릉도원’ 이라 칭하며 이상향을 뜻한다. 이중섭은 부처와 같은 자태를 취하고 있는 마사코와 탐스러운 복숭아 위에서 놀고 있는 아들들의 모습을 통해 천국에 있는 가족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외로웠던 이중섭의 삶에 늘 가족과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었던 이중섭의 편지는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어머니의 인품에 아버지도 경애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평생을 사랑했던 아버지 이중섭의 조국인 한국을 잊지 않으려고 한국어를 배우시기도 했습니다.” 둘째 아들 야마모토 야스나리(태성)는 "2022년 8월13일, 100세까지 장수하고 떠나신 어머니와 한국 미술계 및 언론 관계자들의 인연이 생전 어머니의 삶에 큰 지지대가 되어줬다"며 그간의 감사의 마음을 한국에 전했다. 안병광 회장은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이중섭 덕후'다. 2010년 6월 서울옥션 117회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낙찰된 '이중섭 '황소' 구매자로 알려지면서 국내 최고 미술컬렉터로 부상했다. '이중섭 소 그림' 소장 배경 일화도 유명하다. 32년전 영업사원 시절, 비를 피하던 처마밑에서 운명처럼 '소'를 만나면서 '이중섭 마니아'가 됐다. 힘들었던 생활,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황소' 그림은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돈을 벌면 저 그림을 사야지'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 2010년 35억6000만원 낙찰 최고가 기록을 안 회장이 쏘아 올렸고 2012년 서울미술관을 지어 이중섭 '황소'를 위대하게 모셨다. 하지만 미술관 운영은 적자가 계속 됐다. 빛이었던 '황소'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다시 경매에 내놓은 '소'는 2018년 47억에 낙찰, 이중섭의 최고가를 경신했다. 극진 대접한 안 회장에게 8년 보상의 댓가로 12억 원을 안긴 작품이다. 안 회장은 서울미술관을 개관하면서 '이중섭은 죽었다', '이중섭은 살아있다', '중섭 르네상스'전을 잇따라 열며 국민화가 이중섭을 재조명했다. “미술사적인 가치가 있고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만을 수집한다"는 안병광 회장의 컬렉팅 철학은 서울미술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가 소장한 작품을 모두 내놓고 국민이 함께 미술품을 향유하는 전시 공간으로 운영한다. 교과서나 미술 도록 등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원화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년 만에 연 이번 대형 소장품 전시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안 회장의 소장품을 잘 지키고 있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중섭 작품을 비롯해 신사임당부터 김환기 이우환 등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명작이 총망라된 전시는 관람료 2만 원이 아깝지 않다는 분위기다. 이 전시와 함께 현대미술 단체전도 선보인다. '햇빛은 찬란'을 타이틀로 ‘빛’을 테마로 미디어, 설치, 조각, 회화 등을 전시한다. 권용래, 바이런 킴, 박근호(참새), 이상민, 이은선, 정정주, 루시 코즈 엥겔만(Lucy Cordes Engelman), 토시오 이에즈미(Toshio Iezumi)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미술관은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매일 오후 2시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된다. 전시는 12월29일까지. 2024/06/13
"아무것도 없네?"…김기린 흑단색화와 안과 밖 "김기린 작품은 색으로 써진 시(詩)다" 4일 오전 서울 삼청동 현대화랑에서 열린 단색화가 김기린(1936~2021)작품을 프랑스 평론가가 설명하는 이례적인 간담회가 열렸다. 2021년 별세한 후 첫 전시이자 현대화랑서 8년 만에 선보인 김기린 개인전 타이틀 '무언의 영역(Undeclared Fields)'. 평론가 사이먼 몰리가 쓴 에세이 '무언의 메시지(Undeclared Messages)'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김기린의 검은 그림 앞에서 사이먼 몰리는 "아무것도 없네? 이게 무슨 그림일까 할 수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이는 정확하게 의미가 표현이 안됐기 때문인데 그 이면에 뭐가 있다는 것을 다 느낄 수 있다. 김기린 작품은 무언가 메시지가 있다고 느껴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색과 흔적만 남은 질감만 있는 작품. 그렇다면 김기린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 사이먼 몰리는 "김기린 작품은 이름 없는 이름을 말하는 것 같다"며 "반복된 그림의 형태를 일종의 메시지를 쓰는 과정"이라고 봤다. "점의 패턴이 손가락 지문을 연상시키고 비밀 코드가 입력된 것 같은 인상이 있다"면서 사이먼 몰리는 김기린의 회화를 '도가사상'과 연결했다. "(김기린은)진짜 존재에 대한 진실을 과연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가 표현할 수 있을까 회의가 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생각한 유일한 방법은 부정하는 것, 부재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진짜 존재에 대한 진실을 보여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먼 몰리는 모노크롬 작업에 관심이 많아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회고전과 아그네스 마틴 등의 평론을 자주 쓴 평론가로, 그는 "김기린의 작업은 한국 단색조 작가들 달리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다"고 했다. 김기린의 1970년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흑단색화’(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문 같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진짜 진실은 쓰여질 수 없다. 모든 진리는 정확하게 이름이 없지 않나. 김기린 작품은 그것과 연결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양인 평론가의 개념적이고 진지한 설명이 더욱 작품을 난해하게 하지만 동양인이라면 다 느낀다. 정신적 자유의 경지인 '몰아일체', 수행 속에 나온 명상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김기린은 생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1차, 2차, 3차 공간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공간 '지각 현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했다. "순수한 색의 유화 물감을 겹겹이 쌓아가는 회화를 지속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반듯이 서기 위해 그림을 하는 거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이번 전시는 김기린의 단색적인 회화 언어가 구축된 시기인 1970년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부터, 1980년대부터 2021년 작고할 때까지 지속한 '안과 밖' 연작을 선보인다. 또한 생전에 공개된 적 없는 종이에 유화 작업까지 40여 점의 작품과 그가 직접 창작한 시, 아카이빙 자료를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텍스트 없이 색으로 써진 시'라는 맥락"으로 해석한 프랑스 평론가 사이먼 몰리의 말처럼 김기린은 불문학과 출신이다. 초기 단색 화가들과 결을 달리하는 배경이다. 김기린은 1961년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에 관한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20대 시절인 그 때 랭보(Arthur Rimbaud),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의 시를 읽고 시 집필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다 30대 초반 미술사를 공부하며 뒤늦게 그림 작업을 시작했다. 1960년대에 원고지에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시는 보일 듯 말 듯 그려진 격자 모양 단색의 캔버스 화면에 점점이 쌓아 올린 물감 덩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청년 김기린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세계와 파리에서 경험한 다양한 장르의 문화적 자극을 캔버스 위에 텍스트가 아닌 물감의 양감으로 표현했다. 물감으로 점을 찍기를 30번 씩 거듭하며 나오는 작업은 2년의 시간이 숙성됐다. 김기린은 가로와 세로의 선으로 그리드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작은 단위의 네모꼴 속에 비슷한 크기의 색점들을 일률적으로 찍고, 그 위에 색을 수십 번씩 반복해 칠하고 쌓아 올린 후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그림을 ‘하는 것’이지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색을 놓지, 바르지 않으며 점과 줄을 팠지, 찍거나 긋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그림의 과정이 ‘제조’의 개념이기보다 ‘인식 작용’을 수반한 ‘실천’의 의미다. 생전 김기린은 점을 찍는 순간이 스스로를 뛰어넘는 제일 충만 된 시간이라고 했다. 한 점 한 점 쌓여 생성된 수십 겹의 붓 자국의 흐름을 따라 작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작업해 간 흔적을 읽어 가게 된다. "사각형 패턴을 해서 찍는데도 찍는 순간마다 점이 다 다르다. 그게 내 그림의 생명력이라 생각한다."(2021년 인터뷰 중에서) 색과 물감 덩어리 그 너머, '김기린 회화'는 '무언의 영역’으로 초대한다. 무언가 알 수 없어 다가왔다가 명상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이미지로는 모른다. 진짜 그림을 봐야 느낀다. 가까이 다가오라고 끌어당긴다. 전시는 7월14일까지. ◆단색화가 김기린(金麒麟, 1936~2021)은? 함경남도 고원 출생으로 14세에 월남했다. 본명은 김정환. '기린'이라는 이름은 고교 동창이 '너는 목이 짧으니 기린이라고 하라'고 붙여준 별명이다. 시인을 꿈꿨던 김정환이 화가로 변신하면서 김기린이 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프랑스로 이주하여 디종 대학교(현재 부르고뉴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수학했다. 이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를 거쳐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학위(1971)를 받았다. 1960년대 말부터 서정적인 추상 회화를 시작하여 검은색과 흰색을 사용하여 평면성을 추구하는 회화 작업을 했다. 1970년대 초반에 흑단색화 작업만을 소개하는 파리에서 개인전이 한국에도 화제가 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색채 사용이 두드러지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왔던 지각에 관한 문제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에서 풀어냈고, 1980년대 외부와 내부의 개념적인 차원의 탐구를 '안과 밖' 연작에서 지속하며 작업을 심화시켰다. 적색·청색·황색·녹색·갈색 등의 선명한 색채를 사용했다. 프랑스에서 살던 그는 2021년 숙환으로 향년 85세에 별세했다. 대표작은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우종미술관, 리움미술관, 파리시립현대미술관, 프랑스 디종미술관에 소장 되어 있다. 2024/06/04
사자들의 부활…앤디워홀이 살려낸 요셉 보이스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1921∼1986)가 서울에서 다시 살아났다. '미국 팝아트 황제' 앤디 워홀(1928∼1987)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부활한 보이스는 앤디워홀의 존재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에서 29일 개막한 '앤디 워홀 개인전'은 펠트 중절모에 낚시 조끼 차림의 보이스 초상 연작을 전시한다. 갤러리 측은 "워홀과 보이스의 역사적인 초기 만남을 재조명한다"며 "보이스의 초상화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처음 기획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요셉 보이스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플럭서스(Fluxus·전위예술 운동)운동을 펼친 작가로, 백남준 첫 개인전에 도끼를 들고 나타나 전시 중인 피아노 한 대를 부숴버린 일화가 유명하다. 이번에 공개된 워홀과 보이스의 44년 전 빛바랜 사진도 작품처럼 보인다. 1980년 이탈리아 나폴리 사자 조각상 앞에서 손을 맞잡고 찍은 두 사람이 모습이 흥미롭다. 진지한 표정의 보이스와 달리 사자상 입에 손을 넣고 찍은 워홀의 장난기가 보인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 절정기를 이룬 두 사람은 7살 차이로 보이스가 죽은 뒤 1년 만에 워홀도 세상을 떠났다. 앤디 워홀과 요셉보이스는 1979년 독일 한스마이어 갤러리(Hans Mayer, Düsseldorf)에서 열린 전시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둘의 만남에 대해 미국의 저술가인 데이비드 갤러웨이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아비뇽에서 두 명의 라이벌 교황이 마주한 것과 같은 의식적인 아우라’가 감돌았다고 했다. 유럽과 미국 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접선하며 중요한 접점을 이룬 순간이라고 평가됐다. 두 사람은 1979년 10월 30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보이스 회고전을 비롯하여 그해 여러 차례 다시 만났다. 워홀이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 보이스도 사진 촬영을 위해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워홀은 자신의 폴라로이드 카메라(Polaroid Big Shot)를 사용해 펠트 모자와 낚시 조끼를 입은 보이스의 상징적인 모습을 담아냈고, 이이미지는 1980년부터 1986년 사이에 제작된 스크린 프린팅 초상화 연작의 근간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이다. 색을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사진을 찍어내는 워홀은 타인의 자기양식화(self-stylisation)를 포착해 냈다. 당시 초상화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진행했다. 사진의 네거티브 효과를 보다 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색조를 반전시킨 작품은 '워홀 스타일'이 되었다. 이 전시에서 선보이는 '트라이얼 프루프(Trial Proof)', 라인 드로잉, 종이 작품에서 다이아몬드 가루를 활용한 작가의 초기 실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워홀은 이후 마릴린 먼로, 모나리자, 마오쩌둥 등 같은 주요 인물을 재현하는 연작 '리버설(Reversal)'을 지속했다. 원본 사진의 이미지를 단순화함으로써 인물을 상징적이고 아이콘스럽게 표현했고, 실크 스크린 프린팅 기법을 통해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했다. 이미지 자체보다 색상, 구성,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변화를 꾀했다. 워홀은 생전 최종본을 위한 실험 작업인 '트라이얼 프루프'를 자신의 판화 에디션이나 회화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작업군으로 여겼는데, 1980년대 워홀과 협력했던 출판업자 외르크 셸만도 이를 인정했다. "트라이얼 프루프를 워홀의 원화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워홀이 보이스를 현대 미술의 ‘살아 있는 전설’로 여겼던 것 같다”는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워홀과 보이스가 예술에 접근하는 미학적, 철학적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각자의 작품 전반에서 일상적인 사물과 이미지를 활용하고 더 나아가 낯설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집념이 있다는 데서 교차한다"고 설명했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이번 워홀-보이스 전시는 로팍(64)대표에 감회가 깊다. 20대 시절 보이스 작업실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워홀 작업실 팩토리에서 일하기도 했다. 로팍 대표는 1983년 갤러리 개관전에 워홀 전시를 열고 싶었는데 당시 워홀은 자신보다는 젊은 작가의 전시를 여는 게 좋을 것이라며 추천서를 써줬다. 그렇게 만난 작가가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장-미셰 바스키아(1960∼1988)로, 타데우스 로팍 첫 전시로 문을 열었다. 한편 오스트리아에서 출발, 유럽 대표 갤러리로 성장한 타데우스 로팍은 지난 2021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울점을 열었다. 서울 개관전은 독일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였다. 현재 타데우스 로팍의 서울 갤러리는 황규진 디렉터가 총괄 운영하고 있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2024/05/30
칸디다 회퍼 '영원한 고전 미학'…"후보정은 없다" “현대적이지 않지만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다.” 독일 사진 작가 칸디다 회퍼(80)는 '세계적인 사진 작가'로 불린다. 미술 컬렉터들의 '잇템(it item)'으로 소장품 목록에 꼽힌다. 유럽의 클래식한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내부를 유려하게 담아내 회화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마이애미 루벨 패밀리 컬렉션, 취리히 프리드리히 크리스찬 플릭 재단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 갤러리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에 알려진 건 국제갤러리가 한몫했다. 국내외 각종 아트페어에 칸디다 회퍼의 사진을 꾸준히 소개해 처음 봐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국제갤러리는 지난 2020년 부산점에서 전시 이후 4년 만에 서울에서 회퍼의 개인전을 펼친다. ‘다시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직역되는 전시 제목 ‘Renascence’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팬데믹 기간 리노베이션 중이었던 건축물과 과거에 작업한 장소를 재방문해 작업한 신작 14점을 선보인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 Paris)을 찍은 사진은 르네상스 시대 정교한 고전 명화 같다. 회퍼는 2021년 재개관을 앞둔 2020년 이 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철제와 나무 재질의 나선형 계단이 새로 생긴 공간을 담아냈다. 모더니즘. 미니멀한 사진처럼 보이지만 '회퍼 풍'은 여전하다. 부드러운 고전미가 시간처럼 흐른다. 공간을 압도하는 자연광 때문이다. 투명성과 광도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대칭 구도나 역동적 장식 등의 조형 요소로 공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회퍼의 특징이 녹아있다. 스위스의 장크트갈렌(St. Gallen) 수도원 부속 도서관 연작도 팬데믹 기간 중 재방문한 작업으로 새롭게 나왔다. (장크트갈렌 시에 위치한 이 수도원은 18세기에 대대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됐고,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을 담은 2001년 작품은 정교한 프레스코화와 로코코식 몰딩으로 장식된 아치형 천장이 압도했다. 반면 새로 촬영한 2021년 작품은 인물의 요소를 배제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이 교차하는 내부 공간을 조명했다. 완벽한 대칭 구도는 시공간이 이어진 SF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람의 존재를 없앤 후 공간에 남은 흔적과 빛, 미묘한 공기의 감각까지 진동하게 한다. 회퍼는 툭 눌렀을 뿐인데 시간의 흐름이 포착된, 영원성을 담은 공간의 초상으로 아우라를 뿜어낸다. 모든 작업은 한번에 딱!, 후보정 없이 나온 작품이다. 현재 작품 값은 1억 원 선으로 사진 장 당 에디션은 6개다. 전시는 7월28일까지. 관람은 무료. ◆칸디다 회퍼는? 1944년 독일 에베르스발데에서 태어났다. 1973년부터 1982년까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첫 3년 동안 올레에게 영화를, 그 이후에는 현대 독일 사진을 이끈 베른트 베허(1931~2007)와 힐라 베허(1934~2015) 부부로부터 사진을 수학했다. 당시 수업을 함께 들었던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 안드레아스 거스키 등과 함께 ‘베허 학파’ 1세대로 불린다. 1975년 뒤셀도르프의 콘라드 피셔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작가는 지난 50여 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며 공적인 장소, 특히 인간이 부재한 건축의 내부를 특유의 정교한 구도와 빼어난 디테일로 구현해왔다.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선보인 작가는 2002년에 제11회 카셀 도큐멘타에 참여했으며,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틴 키펜베르거와 공동으로 독일관을 대표했다. 2018년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사진공로상을 수상했다. 오는 9월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2024 케테 콜비츠 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2024/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