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증오했다 '거미 엄마'된 '루이스 부르주아' 영화에 '스파이더맨'이 있다면, 미술에는 '거미 엄마'가 있다. 스파이더맨이 스크린에서 세상을 구한다면, '거미 엄마'는 진짜 현실에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일명 '거미 엄마(Spider maman)'로 불리는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다. '루이스 부르주아'. 그 이름만으로도 장르가 된 '20세기 최고의 페니미즘 작가'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를 연민했던 어린 여자 아이였다. 상처를 딛고 '20세기 최고 조각가'가 된 그녀는 '치유의 미술' 상징이기도 하다. ◆'거미 엄마' 루이스 부르주아는 누구" 1911년 프랑스 출신으로 27세에 미국인 미슬사학자와 결혼하면서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60년 가까이 무명 시절을 보내다 70세가 넘어 찬란한 작가로 빛을 냈다. 1982년 70세에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열면서다. 이후 내공은 거침없이 발휘됐다. 80세인 1999년, 작품을 출품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부르주아의 작품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건 자신을 내놓은 '고백 예술(confession art)'덕분이다. 어린시절 트라우마와 화해하기 위해 분투했던 작업은 동시대 현대미술 최고봉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 불륜'을 목격했다. 자신의 가정교사와 한 침실에서 나오는 아버지는 당당했다. 외도를 어린 부르주아에게도 숨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10여년간 아버지의 불륜을 묵묵히 받아들이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를 연민했던 그녀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세상 혼자되어 아파했다. 그러다 미술로 돌파구를 찾았다. 1930년 19세에 소르본대학 입학해 대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하던 그녀는 에꼴 데 보자르에 다시 입학 미술공부를 했다. (당시 아버지는 "현대 예술가들은 게으른 낭비자"라며 그녀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부르주아의 대표작이자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거미 조각 '마망'은 이때 싹을 틔웠다. 어린시절 환경과 무관치 않다!. 어머니는 태피스트리(tapestry)로 작업장에서 열심히 실을 짓곤 했는데, 거미가 거미줄로 집을 짓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그리움은 어머니가 늘 잡고 있던 천과 바늘을 집어들게 했다. 솜씨좋던 어머니를 거미로 표현하던 그녀는 크고 작은 거미를 만들어내다 1990년대 마침내 거대한 '청동 거미' 조형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름은 ‘마망(Maman).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하는데 모성애를 상징한다. 여덟 개의 가늘고 긴 다리를 곧추세우고 서 있는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 세계 명소에 6점이 설치되어 있는데 국내에 2점이 있다. 2010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과 리움미술관에 설치되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 리움에서 용인 호암미술관으로 이동된 '마망'은 호수 주변에 설치되어 묘한 공포감속 숭고함과 압도적인 조형미를 뽐낸다. 높이 9m, 지름 10m의 거대한 거미 조각에 대해 생전 부르주아는 "자기 배에 품은 알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인한 모성애를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가늘고 약한 다리는 상처받기 쉬운 여성으로서의 불안한 내면을 표현했다"고 했다. 2010년 5월31일 미국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99세에 타계한 부르주아는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전 국제갤러리와 인연으로 2002년부터 한국에서 다섯차례 전시를 열었다.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거대한 바늘 조각 '콰란타니아'가 2018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95억 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초기 시리즈 중 하나로, 성경 속에서 예수가 40일간 금식할 때 사탄의 유혹을 받은 곳으로 알려진 콰란타니아산에서 작품명을 따 왔다. 작품가격 95억 원은 당시 국내 최고 낙찰가인 김환기 점화(86억 원)을 뛰어넘은 금액으로 국내 경매사에서 거래된 조각품 중 최고가 기록도 썼다.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거래된 작가의 작품 가격 중 5번째로 비싸게 팔린 작품으로, 현재까지 국내 경매사 최고 낙찰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부르주아의 작품중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은 1997년에 캐스팅된 ‘거미(Spider)’로 2015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약 2800만 달러에 거래됐다. 조각 회화 설치 회화 판화 수많은 작업을 넘나든 그녀의 작품은 그중에서도 조각이 가장 인기다. 크리스티등 세계적인 경매 거래가 기준 상위 10점 가운데 8점이 ‘거미’ 시리즈, 2점이 ‘콰란타니아’ 시리즈의 조각 작품이다. '전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0명의 가장 잘 팔리는 현대작가'로 여성작가로는 야요이 쿠사마와 함께 이름이 올라있다. ◆국제갤러리, 10년만에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유칼립투스의 향기' "항상 불안해했다. 똑똑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어린애같이 구는 사람"(부르주아 조수 제르 고르보이의 말)이었던 그녀가 하늘로 떠난지 11년, 국제갤러리가 2012년에 이후 10년만에 부르주아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전시타이틀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유칼립투스의 향기 The Smell of Eucalyptus'다. 부르주아의 후기 작품에서 특히 주요하게 조명되는 기억, 자연의 순환과 오감을 강조하는 문구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거주하며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던 젊은 시절의 부르주아는 당시 유칼립투스를 약용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로인해 유칼립투스는 작가에게 있어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징하게 되었고, 특히나 작가의 노년기에 두드러지게 표면화된 모성 중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기능했다. 국제갤러리 윤혜정 디렉터는 "작가는 생전 스튜디오를 정화 및 환기시키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태우곤 했다"며 "유칼립투스는 무엇보다도 작가의 삶 곳곳에서 실질적, 상징적으로 쓰인 매개체로 부르주아에게 미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면으로 #4 Turning Inwards Set #4' 연작으로 선보인다. 부르주아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 간 작업한 종이 작품들이다. 낙엽 및 식물을 연상시키는 상승 곡선, 씨앗 내지 꼬투리 형상의 기이한 성장 모습, 다수의 눈을 달고 있는 인물 형상, 힘차게 똬리 틀고 있는 신체 장기 등을 묘사한 드로잉들이 눈길을 끈다. 꽃을 주제로한 드로잉에 대해 생전 부르주아는 "꽃은 나에게 있어 보내지 못하는 편지와도 같다. 이는 아버지의 부정을 용서해 준다"고 말한 바 있다. 꽃을 통해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했던 그녀의 작품은 기억, 사랑, 두려움, 유기 등이 맞물린 그의 복잡하고도 영명 높은 작업 세계의 핵심이다. 이번 전시는 이제 '완전한 침묵 속으로 사라진' 그녀가 미술로 치유한 흔적들을 마주하게 한다. 기이한 형상이지만 평온해 보이는 작품은 '미술은 영혼의 치료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는 2022년 1월 30일까지. 2021/12/17
아이 웨이웨이 "표현의 자유, 모두가 반드시 옹호해야" '중국 반체제 예술가'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아이 웨이웨이의 한국 첫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지난 1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펼친 전시는 억압의 저항과 난민 문제등을 다루고 있는 작가의 면모를 총체적으로 살펴볼수 있다. 설치,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대표작부터 최신작까지 120여 점을 소개한다. 중국의 자존심 톈안먼 광장과 미국 백악관 등을 배경으로 가운뎃 손가락을 올려 권력을 조롱한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을 비롯해 12m 크기의 대나무 구조물 '옥의'(2015),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로힝야'(2021),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까지 아이 웨이웨이가 걸어온 여정처럼 전시됐다.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후 거침없는 표명으로 중국이 부조리를 세상에 알린 그는 중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체제 예술가로 낙인됐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고 2015년 중국을 떠나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각가, 설치미술가, 다큐멘터리 감독, 사진작가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그는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무기로 사회정의와 진실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예술은 압제에 맞설 수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라는 신념이다. '행동하는 예술가', '사회운동가 예술가'로 유명한 그는 국내 언론과 메일로 만나 근황과 함께 코로나 시대 예술가와 역할, 이번 한국 전시 작품, 작업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현재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고 영국과 독일에 작업하느랴 자주 간다면서 자신은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다. ◆최근 홍콩의 M+문화박물관이 대표작인 '원근법 연구' 작품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관내 전시에서도 제외한 일이 있었다. 중국정부의 문화예술검열 강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이고, 왜 중요한 가치라고 보는가. "보통 표현의 자유는 좁은 의미로 어떤 정치환경이나 정치체제 안에서 개인이 실제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라 여겨지지만 더 중요하게는 표현의 자유는 생명 본연의 속성이란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생명의 중요한 특성, 인간으로서의 특성은 더이상 없게 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어떤 정치체제에 대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인권의 기본적 가치인 것이다. 이 가치는 천부인권으로 어떤 권력이나 정치, 종교적 명분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권리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표현의 자유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즉 현실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생명으로서 개체가 당연히 자신만의 특징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거다. 표현의 자유 없이는 그 누구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이 자유는 사회적인 약속이어야 하며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니다. 다시 M+미술관 문제로 돌아가면,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홍콩 정부 산하의 문화기구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앞으로 어느 수준의 검열을 받고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보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홍콩에 대해서만 이러는 게 아니다. 중국은 1949년 신정부 수립 이래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만을 허용했고, 대부분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 만약 한국에서 '원근법 연구' 작업을 한다면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 "바로 대답하기는 좀 어렵다. 내 작품은 모두 즉흥적으로 제작된 것이며, 따로 계획한 것이 아니다. 내가 도착한 곳에서 셀프 촬영을 했던 것이며, 언젠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찍고 싶다." ◆코로나 펜데믹이 일상생활과 작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나?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을 무렵 나는 로마에서 새롭게 각색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만들고 있었다. 공연을 앞두고 이탈리아 정부가 이 공연을 갑자기 취소해 충격이 컸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사태가 막 폭발했고, 이후 유럽으로 확산되는 출발지였다. 그래서 2020년 3월로 예정되었던 공연을 취소했고, 내년 3월에 오페라 '투란도트'를 다시 공연할 예정이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로 제한된 생활을 했는데, 계속 스스로의 상태를 조정해 새로운 제약에 적응하려 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정부와 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을 제한하는지도 보았는데, 정부가 개인이 스스로의 생명을 관장하는 일에 제한을 가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개인의 기본권으로, 생로병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정부가 과도하게 권력을 사용했고, 중국이 가장 심했다. 그들은 군사적인 방식으로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사실 예술가로서 저는 이렇게 제약이 많은 환경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정치 난민으로서 아주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그래도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바퀴벌레', '로힝야', 그리고 우한 코로나 상황을 다룬 입니다. 네 번째 다큐멘터리인 '나무'도 이미 완성했다. 내 작업에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은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예술이나 예술가의 역할이 변했다고 생각하나? 예술이나 예술가에게 정해진 역할은 없다. 만약 역할이란 것이 있다면 인류의 환경이나 인류가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생기는 것이겠다. 그래서 예술의 역할은 반드시 변한다. 인류가 직면한 정신적∙사회적 대위기 상황에서 예술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송장이나 마찬가지이다.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예술은 이미 반은 죽은 상태이고, 예술에 관한 이론이나 미학, 철학적 사유는 사실 마비 상태에 있다. 세계화가 낳은 문제다. 이렇게 큰 인류의 고난과 불안에 대한 예술의 반응은 너무나 미약하다. 한국에 전시된 '검은 샹들리에'는 사람의 두개골과 인체의 골격을 가지고 만들었다. 이것은 죽음에 직면한 어둠 속에 있는 인류를 묘사한 것이다. ◆ 최근의 시진핑 체제 강화가 중국 예술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 영향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중국 예술계가 더 나아지지 않겠지만, 바이든이 중국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로 지지부진할 것이다. ◆중국이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다른 종류의 미디어 작품을 시도할 수도 있나? "예술은 문제와 모순으로부터 나오고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정치 환경이 엄혹한 상황에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면 작품이란 것이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어떤 채널이나 미디어를 통해 국제 이슈를 파악하나? 또 현재 어떤 작업을 하나? "저 스스로가 바로 국제 이슈다. 제 생명, 생명에 대한 이해, 제가 처한 상황이 세계적 문제의 일부분이다. 저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인터넷 공간에서 보내고, 거기서 이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본다. 일이라는 것은 생활의 일부다. 저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지만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제가 보기에 일하기와 작업은 다른 것 같다. 일하기란 무언가를 계속 찾아서 한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반드시 완성해야만 하는 것 같은 건 없다. ◆'Coronation'을 제작한 동기는 무엇인가? 상영 후 불이익이 있었나?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모두 기록할 가치가 있는 소재가 있었기 때문다. 우리는 모두 이런 기록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건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건 없다. 역사에 증언을 남기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도 있었다. 유럽에서 팬데믹이 심각해지던 시기에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지인 우한의 상황을 다룬 Coronation을 완성했고,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하려 했다. 처음에는 다들 반겼지만 결국 모두 거절했다. 이 사건은 현재 중국의 국가 위상이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환경과 중국 시장에 대한 그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중국은 유럽,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들의 행동에 모든 면에서 그 국가들의 행동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나 중국 미술계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사실 중국미술계와 중국은 하나이다. 중국이 직면한 도전은 갈수록 막강해지는 정치적, 경제적 힘과 보잘것없는 가치체계로 어떻게 서방 자본주의, 가치체계를 설득하고 정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도전은 점점 거세게 압박할 것이다. 중국 미술계는 태생적인 결함이 있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추구와 사실 추구라는 입장을 포기했다. 언어와 다른 수단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중국 미술이 생존하려면 이러한 태도를 전환해야할 것이다.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제 자신만을 놓고 보자면,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미 얘기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 생명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없다." 2021/12/13
아이 웨이웨이는 왜 '중국 반체제 예술가'가 되었나 “사실 우리가 현실의 일부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생산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현실이지만, 현실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이웨이웨이 블로그' 책 중에서)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후, 아이 웨이웨이(Ai Weiwei·64)는 더 이상 예술가로만 머물지 않았다. 시민조사단을 결성하며 행동에 나섰다. 피해자 가족, 관리,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죽은 아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집계해 블로그에 올렸다. 당국이 사망자 숫자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중국의 부조리를 세상에 알렸다.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은 무료로 배포했다. 그 해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참여했지만, 그는 중국 당국의 정치범 구금과 김시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국 정부에 미운털이 콱 박히는 순간이었다. 중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체제 예술가로 낙인됐다. 2011년 81일간 탈세 혐의로 독방에 구금됐고, 정치 탄압 논란이 일었다. 여권이 압류당해 4년만인 7월 되돌려 받았고 2015년 중국을 떠나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 중국의 부조리한 현상을 세계에 집중시킨 그의 예술적 영향력은 강력하다. 어쩔 수 없이 중국을 떠난 그는 유럽에 체류하면서 주로 난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중국을 향한 통쾌하고 직설적인 외침은 2014년 발간한 책 '아이웨이웨이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이웨이웨이가 온라인에 발표했던 텍스트를 골라 엮은 책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이웨이웨이의 블로그에 올라 왔던 글들로 여기에 소개된 1백여 편의 짧은 에세이들은 미술, 건축, 사진,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중국의 민감한 문제까지 거론하며 진짜 중국의 민낯을 보여준다.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무기로 사회정의와 진실폭로를 이어가는 그는 "예술은 압제에 맞설 수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라는 신념이다. 아트리뷰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1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선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 개막...120점 전시 조각가, 설치작가, 사진작가, 영화감독, 사회운동가...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미학적 성취와 함께 이뤄낸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문제적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1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막하는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은 아이 웨이웨이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억압의 저항과 난민 문제등을 다룬 설치,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대표작부터 최신작까지 120여 점을 소개한다. 중국의 자존심 톈안먼 광장과 미국 백악관 등을 배경으로 가운뎃 손가락을 올려 권력을 조롱한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을 비롯해 12m 크기의 대나무 구조물 '옥의'(2015),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로힝야'(2021),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까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120여 점은 작가가 걸어온 여정처럼 전시됐다. 전시명 ‘인간미래’는 아이 웨이웨이 예술세계의 화두인 ‘인간’과 그의 예술활동의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아이 웨이웨이는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책임감과 휴머니즘(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강조하며 미래세대가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작품을 통해 역설한다. ◆난민 인권문제 다룬 대표작 '빨래방', 영상 '살아 있는 자'까지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작가의 대표작 '빨래방'(2016)도 만나볼 수 있다. 난민들의 옷과 신발 등 물품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작가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했던 이도메니 난민캠프에서 수집한 것이다. 2016년 5월 말, 그리스 정부는 이도메니 캠프를 비우고 거주 중인 난민들을 이동시켰다. 아이 웨이웨이는 캠프에 남겨진 물품을 모아 베를린 스튜디오로 운반하여 세탁, 수선하고 다림질한 뒤 목록을 만들었다. 신생아를 위한 옷부터 어린이용 드레스, 알록달록한 물방울 무늬 바지 등 유아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의 옷들이 망라된 '빨래방'은 지금 여기, 부재한 사람들의 존재를 불편하게 환기시킨다. 영상 '살아 있는 자'는 멕시코에서 부패한 지역 경찰이 교육대학 학생들이 탄 버스를 지역 갱단에 적군 갱단이라고 허위정보를 전달하여 43명의 학생들을 납치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이다. 가족들은 실종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탄원하고 시위를 벌였지만 학생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개인전에 실종된 학생들의 초상화를 전시했고, 그때의 조사 과정과 인터뷰 등을 모아 발표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웃집 아이들이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된 지 4년이나 지났는데 정부가 아직 사건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게 무슨 정부인가. 그게 무슨 사회인가”라고 비판하며 "예술가인 것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이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혀 여전히 세상에 날카로운 그의 사고를 드러낸바 있다. 그의 작품이 여전히 중국에 파장을 미치고 세계 예술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우리가 사는 동시대 정치 사회 문화를 저격하는 메시지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전시에 선보이는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 설치 작품이 보여준다. 금빛의 화려함이 빛나지만 트위터의 상징인 ‘새’와 수갑, 감시카메라 등을 조합해 만든 이미지다. 그가 감시 카메라에 감시당하는 동안 외부와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던 트위터가 영감이 됐다. 대형 쇼핑몰,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현대 사회의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존재를 종종 망각한다. 안전을 이유로 설치된 수많은 감시 카메라는 안전을 보장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의 일상을 과도하게 침해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빛의 문양으로 빛나는 공간은 수많은 카메라로 둘러싸인 감옥과 같다. 전시 복도공간에서는 작가의 폭넓은 예술활동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이 마련된다. ‘표현의 자유’, ‘예술과 행동주의’, ‘정부, 권력, 그리고 도덕적 선택’, ‘디지털 세상’, ‘역사, 역사적 순간, 미래’, ‘개인적 사유’ 등 여섯 개 주제로 펼친다. 신간도서 '천년의 기쁨과 슬픔'(1000 Years of Joys and Sorrows, Crown, 2021)을 포함한 도서 30여 권 등이 소개되어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시는 작가가 제안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성찰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필람'을 당부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왜중국 반체제 예술가가 되었나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인 아이 칭과 가오 잉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화혁명기에 아버지가 반우파 운동으로 인해 ‘하방’(下放, 중국 문화혁명기에 도시 청년과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민과 살게끔 한 정치 운동) 되면서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복권된 후 1975년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 1979년 현대미술 그룹 ‘성성화회’에서 활동했다.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1993년 베이징으로 귀국 이후, 베이징 동쪽 지역 차오창디 예술촌 형성에 참여했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인 ‘베이징 국가 체육장’ (종종 ‘새의 둥지’로도 불린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거침없는 견해 표명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원치 않는 관심을 받았지만 중국 국경을 넘어서는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미 그의 작품은 유수한 세계적인 전시회들에서 점점 더 많이 전시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을 담은 작품은 예술가로서, 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 내의 구성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요건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수록 그 중요성은 더 커지고, 인권의 필요성은 더 절실해진다. 미술, 건축, 사진, 사회, 정치 등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아이 웨이웨이의 예술과 삶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생각하고 꿈꾸고 현실로 만든다. 오미크론 확산 여파로 내한하지 못한 작가는 2022년 초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시는 2022년 4월 17일까지 열린다. 2021/12/11
'꽃 그리는 94세 화가' 알렉스 카츠의 위로 이번엔 미국의 세계적인 작가 '알렉스 카츠'(94)다. 지난 10월 서울점 개관 첫 전시로 독일 현대회화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개인전을 열었던 타데우스 로팍이 이번엔 미국 출신 세계적인 작가 알렉스 카츠의 그림을 선보인다. 카츠는 '세계 10대 화가'로 등극한 살아있는 현대미술 거장이다. 유럽 명문 화랑의 자존심을 보이는 전시로, 국내 미술시장에 풍성함을 더해 눈길을 끈다. 1983년 잘츠부르크에 첫 갤러리를 연 타데우스 로팍은 40여년간 현대미술을 선보이며 세계 정상급 갤러리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브렉시트(Brexit)에도 런던에 지점 갤러리를 열어 화제가 된 후 코로나19 시대에도 서울 한남동에 아시아 최초 지점을 개관 주목받고 있다. 타데우스 로팍 Thaddaeus Ropac 대표는 "그동안 설치미술작가 이불을 비롯한 한국 작가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해와 서울이 위대한 예술가와 세련된 컬렉터가 있는 활기찬 예술 도시"라고 확신하며 독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에 한국 갤러리 개막 전시를 요청해 개관전을 화려하게 선보였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개관 두 번째 전시 미국 작가 알렉스 카츠 '꽃' 개인전 9일부터 서울점 두번째 전시로 펼치는 알렉스 카츠의 개인전은 '꽃'을 주제로 한 회화를 조명한다. 지난 20년간 작가가 작업해 온 '꽃 시리즈' 중 이전에 소개된 적 없던 작품들과 더불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까지 아우른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점은 "한 장르의 작품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시아에서의 첫 번째 전시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한국 전시에 선보이는 '꽃 시리즈'는 팬데믹이 시작된 작년에 그려진 것이다. 9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붓을 놓지 않고 다시 이 주제로 회귀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작가는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팬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카츠는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지난 2018년 롯데뮤지엄과 대구미술관(2019)에서 대규모 전시를 개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그의 '꽃 시리즈'는 미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컬렉터라면 판화라도 한 점은 있어야할 그림으로 소장품에 꼽힌다. 사람 얼굴이나 꽃을 크게, 또 간결하게 담아내지만 경쾌함과 함께 현대적이면서 묘하게 세련미를 풍기는 그림은, 마치 '잇템'처럼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한국서 인기 '꽃 시리즈', 1950년대부터 시작 운동감 연구 "비가 오기에 꽃을 잘라 화병에 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이와 동일한 과정이긴 했지만, 그때는 꽃병보다 꽃에 더 관심이 갔다." 카츠는 1950년대 미국 메인(Maine) 주에 위치한 여름 별장에서 화병에 꽂힌 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꽃 회화는 1960년대에 걸쳐 구현했던 단체 초상화와 관련이 있다. "꽃 또한 인물과 마찬가지로 형상들이 겹쳐져 있는데, 당시 그가 그렸던 칵테일 파티 장면에서는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운동감에 대해 연구할 수 있었다." 이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초기작 '금잔화(Marigolds)'(200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풀밭에 흩어져 있는–약간씩 다르게 표현된 각각의 꽃들은 자연의 움직임에 대한 순간적인 인상을 전달한다. 작품들은 작가의 고유한 붓놀림과 화면 구성력, 단순화된 색면이 돋보인다. 신작들은 꽃의 음영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켜 조각적인 존재감을 부여했다. ‘형상과 부피 자체의 묘사’에 치중하는 그는 먼저 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음 획을 더하는 ‘웻 온 웻(wet-on-wet)’ 기법을 사용하여 신속하게 작업한다. 웻온웻 기법은 작가의 전매특허다. 카츠는 "꽃은 그리기 가장 어려운 형태를 지녔다"고 했다. "꽃의 물질성과 표면, 색상, 그리고 공간적 측면을 모두 잡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꽃의 색감은 유화 물감으로 온전히 묘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물감을 섞는 과정에서 선명했던 안료가 기름에 의해 탁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색상의 명도를 높이기 위해 보색을 사용하여 신중하게 색의 균형을 맞춘다. 그래서 그가 기대하는 건? "회화를 마주한 사람들이 마치 실제 꽃을 보는 듯한 그 찬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이다. 이번 전시에는 카츠의 신작 초상화 '밀짚모자 3'도 선보인다. 인물이 녹색 배경에 배치되어 있는데, 윙크 또는 옅은 미소를 띤 인물이 미묘하게 연결되며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 ◆'움직이는 것 같은 거대한 꽃·초상화 대가' 알렉스 카츠는 누구? 알렉스 카츠(94)는 '현대초상회화 거장'으로 불린다. 1927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알렉스 카츠는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1960년대 이래 인물초상을 그리며 가장 '뉴욕적인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장면같거나, 광고판 같은 그림이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을 내세운 초상화 같은 작품으로 일명 '카츠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에서는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1928~1987)의 그림자가 있다. 앤디워홀이 '미술계 끝판왕'으로 활약했던 1960년대 알렉스 카츠도 뉴욕에 살고 있었다. 미국 산업사회 부흥기와 함께 뉴욕은 TV, 영화, 광고 등 새로운 미디어의 도시이자 바넷 뉴먼, 프란츠 클라인으로 대표되는 색면 추상, 잭슨 폴록의 올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 제스퍼 존스, 앤디워홀의 팝아트 등 새로운 시각 예술이 공존하는 예술의 도시였다. '부흥의 도시'에서 화가로 살아내야 했던 그는 특정 미술 사조에 편승하지 않았다. 다만 거장들의 기법을 모방해 섞었다. 색면과 인물의 모습을 결합한 카츠만의 독창적인 '초상화 스타일'을 창조한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과 앤디워홀 팝아트, 또 '액션 페인팅' 잭슨폴록의 기법이 들락날락한다. 특히 선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면서 선과 색, 브랜드의 이미지가 결합된 화면을 보여준 '코카콜라 시리즈'도 유명하다.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대충 그린 느낌이 강하다. 배경도 명암이나 그림자도 없이 단색으로만 칠해져있다. 자세히 봐도 더욱 결코 잘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균형이 맞지 않고 왜곡된 느낌을 연출한다. "순간 포착을 하기때문이다. 카츠가 순간에 봤기 때문에 너무 공들여 그리면 그 느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카츠가 그린 인물은 초상화속에 인물이 가진 상징이 아니라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속적인 현재 시제속에 머물게하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감수성을 입힌 작업이다."(미술사학자 이주은) 살아남은 자가 강자다.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보다 오래 살아남은 그는 '세계 10대 화가'로 등극해 동시대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뉴요커'로' 뉴욕 사람들'을 브랜드화해 '뉴욕적인 화가'로 불리는 카츠는 결국 '삶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1954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회화, 드로잉, 조각, 판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빌보드 작업(1977)과 할렘역에 알루미늄 벽화(1984)를 제작하는 등 여러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으며, 최근 뉴욕 지하철역에 19점의 대형 작품을 설치하여 주목 받았다. 2022년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다. 2021/12/09
리만머핀서울 손엠마 대표 "한국, 미술품 거래 비과세 매력" "한국미술시장을 수년간 지켜본 결과 시장 안정성의 장점, 성장 가능성의 강점을 발견했다. 좋은 작가와 좋은 미술관이 많은 것도 긍정적이다." 리만머핀(Lehmann Maupin)의 테스트는 끝났다. 4년간 20평 남짓 서울 지점을 운영한 리만머핀 서울이 이태원으로 확장 이전한다. 리만머핀은 미국 뉴욕에서 1996년 설립한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다. 이불은 물론 서도호와 서세옥 작품을 해외시장에 알리는데 역할을 했다. 2013년 홍콩에 이어 2017년 서울 갤러리를 개관, 아시아 미술시장을 점령해오고 있다. 내년 프리즈 아트페어 공동개최를 앞두고 해외 갤러리들의 서울 진출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리만머핀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서울 안국동에서 한남동으로 넓히는 리만머핀 서울은 제일기획 본사와 구찌 한남점 매장, 리움미술관 등에 가까운 위치다. 그동안 세계 굴지의 화랑 지점이 협소하고 옹색했다는 이미지를 탈피할 전망이다. 확장세는 건물에서도 뽐낸다. 지난 2015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에스오에이가 디자인을 담당했다. 두 개의 층의 약 70평 규모로 특히 조각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야외 테라스까지 갖췄다. 리만머핀 서울은 손엠마 수석 디렉터가 운영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리만머핀을 성공적으로 이끈 보람은 확장 이전으로 돌아왔다. 엠마 디렉터는 20년간 큐레이터이자 갤러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으로 맥아서 비니언, 맨디 엘-사예, 길버트 앤 조지, 샹탈 조페, 라이자 루, 데이비드 살레, 세실리아 비쿠냐, 나리 워드 등 저명한 현대미술가들의 한국 첫 개인전을 성사시키며 리만머핀 갤러리의 정체성을 부각시켰다. 엠마 디렉터가 전한 리만머핀 비전과 한국미술시장에 대해 들어봤다. ◆2017년 서울 개관 당시와 현재 한국미술시장, 얼마나 분위기가 다른가. "2017년에 비해 현재 한국 미술시장은 그 규모가 훨씬 커졌고 컬렉터 베이스도 젊은층부터 중장년층까지 확대되었다. 이는 미술시장이 이전보다 성장한 것은 물론 활발해졌음을 방증하기에, 지금 분위기는 매우 긍정적이다. 내년에는 프리즈 서울까지 열리게 되면서, 이러한 성장세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세계적인 화랑의 서울 진출, 리만머핀이 한국 시장에서 기대한 건 무엇이었나. "리만머핀의 두 대표(라쉘 리만(Rachel Lehmann)과 데이비드 머핀(David Maupin))들은 한국과의 인연이 굉장히 오래된 편이다. 서도호 작가와 1990년대 말 부터 인연을 맺으며, 한국과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이 후 이불 작가와 일을 하면서 그 연결고리는 더 탄탄해져 서세옥, 김기린 등 여러 한국작가들의 전시로 이어져 왔다. 한국 작가분들과 일찌감치 시작된 두 대표들의 관계는 한국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으로 발전되었다고 본다. 라쉘 리만 대표는 자신이 이전 생에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라는 농담을 자주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다. 따라서 한국에 갤러리를 낸다는 것은 두 대표들의 오랜 염원이자 목표 중 하나였다고 본다. 이런 한국 시장에 갤러리가 지난 20여년간 함께 성장해온 다국적 작가들의 작업들을 소개하고 선보이는 것과 더불어 한국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작가들, 그리고 우리의 문화에 대해 더 깊이 배워나가는 것에 항상 큰 기대를 해왔다." ◆서울 진출, 어떤 성과가 있었나? "성과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봐야할 것 같다. 인지도 면에서 리만머핀은 이미 국내 주요 작가, 서도호와 이불을 대표하는 국제 화랑 중 하나로 홍콩 아트바젤 후 한국 고객들에게 어느 정도는 알려진 화랑 중 하나였다. 이로 인해 한국에 진출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또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본다. 한국 진출 후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리만머핀 작가들이 국내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의 전시에 소개되는 일이 더 잦아진 점을 꼽고 싶다. 주요하게 카데르 아티아(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2018), 맨디 엘사예(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2020), 오스제미오스(현대카드 스토리지, 《오스제미오스: 유 아 마이 게스트》, 2020), 헤르난 바스(스페이스K 서울, 《헤르난 바스: 모험, 나의 선택》, 2021)를 비롯하여 이불(서울시립미술관, 《이불 - 시작》, 2021)을 들 수 있다. ◆리만머핀이 아시아, 홍콩에 이어 서울을 택한 가장 주요 요인은 무엇이었나? "서울에는 홍콩보다 더 탄탄한 미술계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고 본다. 홍콩은 아트바젤 홍콩이 시작된 후 급성장한 아트 도시인 반면, 서울 나아가 한국은 이전부터 국공립 및 사립미술관들, 비영리 공간 그리고 높은 수준의 국제비엔날레(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미술품 거래의 대부분이 비과세인 점도 판매에 있어 홍콩에 못지않은 매리트가 있는 곳이 한국이다."(현재 한국에서 판매하는 미술품은 가격이 6000만원 이하면 비과세다. 또 6000만원 이상이라도 국내 생존 작가의 경우 거래 가격과 상관없이 세금이 없다. 작고작가의 작품 중 6000만원 이상에만 기타 소득세가 적용된다.) ◆해외 유명 갤러리들 한국 진출속 리만머핀의 전략, 차별화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 작가 발굴에 대한 관심은 현재진행형이다. 지속적으로 작가 자료를 수집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작가 스튜디오 방문도 진행하면서 열심히 보고 연구하고 있다." ◆작품 구매층은? MZ세대 컬렉터 진짜 많은가? "구매층은 다양하다. 요즘 들어 MZ세대 컬렉터들이 이전에 비해 늘어난 것을 확실히 경험하고 있다. 키아프(Kiaf)에서 뿐만 아니라 갤러리에 문의하시는 분들 또한 월등히 높은 비율로 젊은 층이 늘어났다." ◆리만머핀 서울서 가장 흥행한 전시는? "샹탈 조페(2020-2021),세실리아 비쿠냐(2021), 그리고 맨디 엘사예(2021), 세 여성 작가들의 개인전을 연달아 개최한 것에 큰 의미를 둔다. 특히 세실리아 비쿠냐는 전시와 같은 시기에 광주비엔날레에서, 맨디 엘사예는 작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작업 세계가 폭 넓게 다뤄진 바 있기에 리만머핀 서울에서의 전시에 더욱 많은 관객들이 호응해준 것 같다." ◆아시아서 한국미술시장 매력은? "한국미술시장의 인프라 수준은 굉장히 수준이 높다. 이미 3대 국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으며, 유수의 국, 공립 미술관 및 사립미술관들과 더불어 실력 있는 갤러리 그리고 작가들이 굉장히 많다. 이와 더불어 수준 높은 (개인 및 기관) 컬렉터들이 많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4년간 운영 디렉터로 인정받았다. 해외 지점 갤러리스트의 비법이 있나. "서로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된 본사와의 긴밀한 소통. 내가 20여년간 갤러리스트로 활동하며 쌓아온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한 견해와 개인 컬렉터 및 기관과 다져온 탄탄한 네트워크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기에 이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는 방향을 함께 모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확장 이전 재개관 의미는. 앞으로 전시계획. 경쟁 상대는? "확장 이전에 대한 논의는 2019년 경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시장에 대한 믿음과 한국이 아시아의 허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래리 피트먼(Lari Pittman)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최근 리만머핀의 아시아 공식 전속 작가로 이름을 올린 톰 프리드먼(Tom Friedman)의 전시 또한 예정되어 있다. 두 작가 모두 이미 20여년 이상 다수의 개인전과 국제전을 통해 작업을 널리 알려왔고, 또 현대미술사에 분명한 족적을 남겨온 작가들이다. 이처럼 국제적인 작가들의 국내 첫 개인전을 준비한다는 것은 특정 경쟁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다양성을 폭넓게 공유하고자 하는 바램이 원동력이 된다." ◆리만머핀은 진짜 어떤 갤러리인가, 한국인 대표가 느끼는 강점과 단점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갤러리의 방향성은 한국의 서도호, 이불, 서세옥은 물론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다국적 작가들을 새로운 지역에 소개하는 것은 주요하게 여긴다. 나리 워드(Nari Ward)와 안젤 오테로(Angel Otero)는 각각 자메이카와 푸에르토리코 태생으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알제리와 프랑스에서 자라 베를린과 파리에 거점을 둔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활동 중인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 쿠바계 미국인인 테레시타 페르난데즈(Teresita Fernández) 등 리만머핀의 소속 작가들은 지리적으로나 예술사적으로 특정 범주에 묶이지 않고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간다. 특히 리만머핀 서울에서 진행된 나리 워드, 안젤 오테로, 니콜라스 슬로보, 맥아서 비니언, 라이자 루 등의 전시는 작가들의 첫 서울 전시로 기록된다. 이처럼 정체성의 개념에 도전하며,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전속 작가들의 가능성과 힘을 지지하는 것이 리만머핀의 강점이다." 2021/12/05
2040 구매력에 깜짝...해외 갤러리들 서울로 확장세 "아시아 미술시장 새 거점은 한국이다"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기존에 미술중심지 였던 홍콩이 정세 불안으로 흔들리면서 아시아 미술시장 판이 한국으로 움직이고 있다. 독일 베를린 유명 갤러리 쾨닉은 지난해 일본 도쿄 분점을 철수하고 서울을 택했다. 지난 4월 서울 청담동 MCM하우스에 '쾨닉 서울'을 개관한 요한 쾨니히 대표는 "한국이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가지고 있어 갤러리를 오픈하게 됐다"고 했다. "2019년 처음 한국에 왔었다"는 그는 "삼성미술관 리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파라다이스아트스페이스 등 수준 높은 기업 컬렉션에 놀랐다"며 런던에 이어 세번째 분점을 낸 것에 대해 밝혔다. 쾨닉은 비엔날레급 작가 40여명을 거느린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다. 패션 브랜드 MCM과 협업한 쾨닉 서울은 옥상에 조각정원을 마련하고 쾨닉 소속 작가들을 적극 소개하고 있다. 쾨닉처럼 이미 서울에 지점 분점을 낸 글로벌 갤러리들도 한국이 올 들어 20~40대 MZ세대 컬렉터들의 구매력이 급증, 새로운 전초기지로 한국을 찾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화이트큐브, 독일 에스터 쉬퍼, 스프루스 마거스, 오스트리아 타데우스 로팍 등은 한국인을 현지 디렉터로 서울에 상주시켜 작품 홍보와 판매를 늘리고 있다. 아시아 미술시장 주도권을 잡던 홍콩에서 서울로 방향키를 튼 것은 그림 거래에 관세가 없다는 점이 큰 배경이다. "서울에서 미술품 양도세는 6000만원 이하 면세이고 조각 및 생존 작가 작품도 양도세가 없어요." 프랑스 파리에 본점을 둔 세계적 화랑 페로탱 강주희 홍콩 서울 디렉터는 "특히 서울이 홍콩보다 나은 점은 바로 '임대료'"라며 "홍콩이 가장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임대료 측면에서도 서울이 유리하다"고 꼽았다. 페로탱은 2016년 서울 팔판동에 분점을 개관했다. ◆유럽 명문 화랑부터 세계 3대 갤러리까지 서울 분관 추진 유럽의 명문 화랑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도 한남동에 개관한데 이어 세계 3대 갤러리로 꼽히는 스위스 하우저앤워스와 독일 스프루스 마거스 갤러리도 서울 분관을 추진중이다. 타데우스 로팍은 파리, 잘츠부르크, 서울에 총 6개의 지점을 두고 70여 명의 작가가 소속되어 있다. 개관전으로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개인전을 열었다. 하우저앤워스는 루이스 부르주아, 헨리 무어, 조지 콘도 등 유명 작가 작품을 관리중이다. 올해 아트페어 열풍을 일으킨 아트부산에서 솔드아웃 사태를 맛 본 독일 베를린 페레스 프로젝트, 미국 뉴욕 글래드슨톤, 투팜스도 내년 서울에 분점을 낸다. 5월 아트부산에서 베스트 부스로 선정된 독일 페레스 프로젝트 조은혜 디렉터는 "아트부산은 2019년도부터 참여 했지만, 올해 아트부산은 기대를 뛰넘는 놀라운 결과였고 한국미술시장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 서울 분점을 결정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페레스 프로젝트는 독일 신진 작가 12명의 작품을 판매했는데 오프닝 전에 판매가 이뤄지면서 '대박 갤러리'로 주목받았다. 조 디렉터는 "1987년생 멕시코 태생 마뉴엘솔라노라고의 작품을 한국에 처음 선보였는데 완판이 되면서 화제가 됐다"고 했다. "작가가 시각장애인이면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고 있는 트렌스젠더라는 배경에 깜짝 놀라는 컬렉터들은 오히려 그러한 점에 더욱 관심을 보이며 감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국미술시장의 성숙도를 느낄수 있었다" 조 디렉터는 "작품을 구매한 층은 20~40대 초반으로, 낯선 신진 작가 작품도 거부감 없이 반응하며 그림을 사는 MZ세대의 구매력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페레스 프로젝트는 2002년 변호사 출신의 쿠바계 미국인 하비에르 페레스에 의해 샌프랜시스코에서 설립됐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점을 두고 활발하게 다양한 배경의 젊은 신진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표인 하비에르 페레스는 2006년 '아트리뷰'의 '파워 100'에 오른 인물이다. 내년 상륙하는 페레스 프로젝트 서울 분점은 강북에 위치할 예정으로 뷰잉 공간 및 오피스 혹은 전시 공간으로 유연하게 활용할 계획이다. ◆세계적 화랑 페이스·리만머핀 등 서울지점 확장세...공간 넓혀 이태원으로 이전 "지난 5년간 매출액이 증가해왔다. 앞으로 가능성을 보고 전시장 규모를 키운다"(페이스 서울 이영주 디렉터) 2017년 3월 이태원에 서울지점을 연 페이스서울은 지난 4월 이전 전시공간보다 4배 큰 661㎡(200평) 규모로 확장 이전했다. 세계적인 화랑으로 꼽히는 페이스는 뉴욕이 본점으로 파블로 피카소, 데이비드 호크니 등 유명 작가 작품을 관리하며 국내 블루칩 작가 이우환이 소속된 갤러리다. 페이스갤러리 서울 지점은 이전 기념 전시로 89세 미국 흑인 작가 샘 길리엄의 개인전을 아시아 최초로 선보였다. 같은 해 국내에 진출한 서울 안국동 리만머핀 갤러리도 내년에 이태원으로 확장 이전한다. 4년여 만의 재개관은 같은 동네에 확장 이전한 페이스와 경쟁하며 젊은 미술애호가들과 MZ세대들을 공략할 전망이다. 1996년 미국 뉴욕에서 문을 연 리만머핀은 2013년 홍콩에 이어 2017년 서울 갤러리를 개관했다. 라쉘 리만과 또 한 명의 공동설립자인 데이비드 머핀(David Maupin)은 지난 30년간 한국을 수 차례 왕복한 끝에 서울 지점을 결정했다. 리만머핀 서울 확장 이전 후에도 손엠마(Emma Son) 수석 디렉터가 운영한다. 리만머핀 서울은 새로운 공간에서의 첫 전시로 동시대 가장 중요한 회화 작가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현대미술가 래리 피트먼의 개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시아 미술시장서 한국미술 급성장세 매력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한국 시장은 미술 투자를 목적으로 한 개인 컬렉터들의 구매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미술품 관세가 없고 전시 공간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싱가포르, 홍콩과 더불어 아시아 미술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손꼽힌다."(페레스 프로젝트 조은혜 디렉터) 세계적인 화상들은 한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매력적이라는데에 입을 모은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 미국과의 교류가 용이한 중심지에 있고 한국 특히 서울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뛰어넘는 사회 인프라는 세계적인 아트마켓이 성장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위치한 미술관과 이미 국내에 진입하는 세계 주요 갤러리의 한국 지점들은 한국이 글로벌 아트마켓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더불어 전세계 최고의 국제공항을 1시간 거리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하기 위한 한국화랑협회는 키아프와 인천공항공사와의 협업도 진행, 아트페어 마중물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김동현 화랑협회 전시기획 팀장은 "특히 K 콘텐츠의 위력으로 아시아 문화 시장을 주도하는 분위기는 대중음악, 영화, 드라마 등 문화 컨텐츠의 성장과 동시에 미술과 디자인 등 아트 앤 컬쳐 기반의 활동을 하기에 매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가 650억 원의 역대급 매출 대박이 나면서 세계적인 화랑들은 한국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해외 갤러리들은 이번 키아프에서 작품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것에 깜짝 놀라 내년 행사 참가도 적극적으로 나서 확정했다. 이들은 정해진 부스에 맞게 작품을 가지고 온 것을 아쉬워하며 이미지로도 작품 판매를 했다는 후문이다. 키아프를 주최한 한국화랑협회 황달성 회장은 코로나 사태속에서도 미술시장의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다. "내년에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서울이 키아프와 동시에 열려 세계적 컬렉터들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한국 미술시장이 기존 4000억 원 규모에서 5배에 달하는 2조원대로 성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21/12/04
RM도 1타강사도 "내돈내산"...MZ세대 '아트 플렉스' #지난 10월 서울옥션 경매장. 객장은 치열한 경합이 이어지고 있었다. 16억부터 출발한 작품 가격이 36억까지 치솟았다. 긴장감 속 숨죽이던 경매장, 젊은 남자가 패들(Paddle·경매 번호판)을 들었다. 36억5000만원. "낙찰됐습니다." 망치가 탕 내려쳤고, 박수가 터졌다. 그 순간 그 남자가 팔을 스윽 들고 일어났다. 키가 무척 큰 남자는 '승리자' 같았다. '저 그림 낙찰자가 바로 나입니다' 라고 알리는 몸짓처럼 보였다. 그렇게 유유히 객장을 빠져나간 그는 '최고의 자랑'을 세상에 알렸다. 자신의 SNS에 낙찰받은 작품을 사진과 함께 게시했다. 수학 1타강사로 유명한 현우진(34)씨였다. 36억 5000만 원에 사들인 건 일본 거장 쿠사마 야오이 2015년작 '골드 스카이네트(Gold-Sky-Nets)'였다. 알고 보니 그는 '쿠사마 마니아'였다. 현 씨는 올해 쿠사마의 비싼 작품을 모조리 사들였다. 3월, 23억에 낙찰받은 ‘인피니트 네트’를 시작으로, 6월 ‘실버네트’(29억원), 7월 ‘인피니트 네트’(31억원)까지 총액으로만 119억 5000만원어치에 달한다. 현씨는 자신의 SNS 프로필에 '슈퍼 컬렉터'라고 써놨다. ◆현 씨가 산 쿠사마 작품 판매한 사람은?...MZ세대 소장자 현씨가 '아트 플렉스(flex)'한 36억5000만원짜리 작품은 MZ세대 소장품이었다. 미술컬렉터들에 따르면 소장자는 40대 초반 남성 컬렉터다. 그는 2016년 이 작품을 9억 원 정도에 샀다. 5년을 소장하다 판매를 위해 존재감을 알렸다. 올 4월 부산서 열린 한 아트페어에 12억 원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다. 한 고객이 비싸다며 머뭇머뭇거리다 포기했다. 소장자는 7개월 후인 지난 10월 서울옥션에 위탁했고, 결국 36억5000만 원에 팔렸다. 쿠사마가 2015년에 그린 이 그림은 6년만에 30억 넘게 오른셈이다. 쿠사마 작품을 판 이 소장자는 이후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등 국내 블루칩을 비롯해 데이비드 호크니, 우고 론디노네 등 해외 유명작가 작품을 수집하며 '넘사벽 아트 플렉스' 행보를 진행중이다. ◆"이 작품 내가 샀어요" 아트플렉스...이전 컬렉터들과 다른 모습 "이 그림 내가 샀어요"라고 알리는 건 미술시장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컬렉터들은 드러내지 않는게 미덕이었다. '검은 돈?' 이라는 비난의 두려움이 있었다. 경매사는 함구했고 이는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세상이 달라졌다. MZ세대들의 '아트 플렉스'는 당당해졌다. 방탄소년단 RM으로 시작됐다. RM은 미술관 화랑 나들이를 숨기지 않았다. SNS에 그림 앞 사진을 올렸고, 도자기를 끌어안고 므흣한 모습을 자랑했다. RM이 가는 전시마다 줄 서는 풍경이 연출됐고, RM이 픽한 그림은 완판됐다. 'RM이 반한 달항아리’, 'RM이 좋아하는 윤형근, 이우환' 등 'RM 효과'에 매체도 그의 행적을 쫒아 쓰며 아트 행보에 불을 지폈다. '미술시장이 RM에 기댄다'는 말이 나올 정도지만, 20~30대까지 미술판을 확장시켰다는 긍정적 평가다. 미술판을 들어온 MZ세대들은 적극적인 구매력도 보였다. '샤넬백 대신 그림 산다'가 아니라 '샤넬백도 샀고 그림도 산다'라는 분위기다. '3040 싹쓸이'에 미술시장은 대박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역대급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올해 경매사와 아트페어는 사상 유례 없는 흥행 열풍으로 과열을 우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올 정도다. ◆MZ세대 몰려온 키아프 역대 최대 매출 650억 역대급 매출 MZ세대들은 미술시장 역대급 호황을 이끌었다. 지난 10월13~17일 열린 키아프서울(KIAF SEOUL·이하 키아프)’가 증명했다. 첫날 VVIP 오픈에서만 약 350억원치가 거래됐다. 벽에 걸리기도 전에 팔려나간 그림들 때문에 우는 사람까지 생겼다. 단 5일간 열린 행사에서 팔린 금액은 650억치.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키아프 창립 이래 최고 기록이다. 행사를 주최한 키아프에 따르면 올해 처음 방문한 고객은 MZ세대라 불리는 20~40대가 가장 많았다. 새로운 미술 애호가가 늘어났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화랑협회 김동현 팀장은 "올해 키아프에 첫 방문한 사람들의 반 이상이 21세~40세 사람들이었고, 이들 중 약 20% 정도가 적극적으로 작품을 구입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1000만원 대 작품은 쇼핑하듯 구매했다는 것. MZ세대 고객들은 거침없다. 망설이고 몇번을 보러 오던 이전 세대와는 다른 모습이다. 전시 부스에 들어와 "이 작품들 다 얼마에요?" 라며 묻기도 해 화랑주가 더 당황했다는 일도 있다. 오히려 "그림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고 말렸다는 한 화랑주는 "옛날과 정말 달라졌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그림이 좋아서라기보다, 아트테크로만 보는 것 같다"며 안타까운 마음도 드러냈다. ◆"나 만 없어"...김환기 이우환 윤형근 우국원 작품 없어요? 반면 MZ세대들의 컬렉팅은 변화무쌍하다. 주식 부동산에 이어 미술품으로 투자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1타강사 현씨처럼 '아트 플렉스'가 SNS에 이어지면서 자극이 되고 있다. 한 미술품딜러는 "최근 그림을 찾는 MZ세대 컬렉터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이들은 '나 만 없어'라며 김환기 이우환 윤형근 작품을 구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연예인 픽' 그림은 대박이 터지고 있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TV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의 집에 걸린 그림은 없어서 못파는 그림이 됐다. 배우 손예진·조윤희 거실에 걸린 그림 작가인 우국원의 작품값은 폭등했다. 서울옥션 케이옥션 양대경매사에 출품한 그림은한달새 2배 올라 2억을 넘기며 작가 최고가 경신했다. 케이옥션 8월 경매에서 우국원이 미운 오리를 그린 'Ugly Duckling'은 시작가 1500만원에 나와 치열한 경합 끝에 15배 폭등한 2억3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러한 그림 구매력은 '조각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30~40대 직장인들은 공동으로 사는 '그림 투자'에 나서고 있다. 2018년 공동 구매 미술품을 시작한 ‘아트앤가이드’는 공동 구매때마다 5분~10분만에 마감되며 활기다. 지난 7월 28일 공동구매를 시작한 ‘문형태’ 작가의 ‘Diamond(2017)’는 2100만 원에 매각돼 600%의 수익률을 거두기도 했다. 2020년 4월부터 앱 기반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테사도 매각한 작품 모두 10%~30%대 수익률을 달성했다. 지난 3월 조각투자 진행 당시 10분 만에 분할 소유권이 완판되며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아트테크 투자자 몰리면서 미술품 거래 플랫폼들은 작품 확보가 치열하다. 전문 아트 리서치 팀이 작품 상태, 경매 기록, 유찰률 등 글로벌 미술품 시장의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한다. 풍요로움속에 자라 유학파가 많은 MZ세대 컬렉터들의 앞선 정보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MZ세대 아트플렉스 패턴...'게임'처럼 소비 기성세대와는 완전 달라 '게임처럼 클릭하듯 사들인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NZ세대의 아트마켓 소비패턴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MZ세대 등 젊은층의 미술시장 참여와 거침없는 구매는 '감상을 넘어 투자 시대'로, "본격적인 미술품 투자의 시대가 왔다”는 진단이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방탄소년단(BTS) 등 유명 연예인·인플루언서들의 전시장 방문과 작품 구입, 코로나19로 답답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해방감을 느끼며 ‘아트 쇼핑’을 즐기는 측면도 일조했다"고 했다. '아트 쇼핑'은 과감하다. 기성세대가 장기간 면밀한 검토와 객관적인 분석을 토대로 신중하게 지출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면, MZ세대는 대중의 선호도보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개인의 기호를 우선한 구매 패턴을 보인다. 이러한 MZ세대의 '아트 쇼핑'에 대해 김윤섭 미술평론가(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은 이렇게 전했다. "MZ세대 두드러진 성향 중엔 바로 완전한 게임세대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일명 '클릭세대'라는 점이죠. 마치 미술품을 꼭 갖고 싶은 게임아이템을 소장하듯 수집하는 예가 많습니다. 특히 일반 통화(通貨)보다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에 더 익숙한 세대답게, '클릭' 몇 번으로 수억 원의 작품을 손쉽게 구매하기도 하는 것이죠." 실제로 코로나 시대 온라인 경매를 강화한 경매사들은 매월 80~90%의 낙찰률을 기록하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런 현상을 초기 주식세대들이 현실성과 이완된 무감각한 중독현상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살펴보면 확실히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MZ세대는 자신들이 익숙한 가상 디지털 매커니즘이 메타버스처럼 실생활 못지않은 '또 다른 일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MZ세대는 수집한 고가의 미술품을 플렉스한다. 개인의 수장고에 은밀하게 보관하는 게 아니라, 구입과 동시에 인스타나 페북처럼 가상사회관계망에 공개한다. 독점한 현물가치를 디지털 세계에서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가상가치를 추가로 창출하는 셈이다. 게임의 최강 아이템을 뽐내듯, 이런 현상이 MZ세대에겐 자연스럽고 '먹히는' 일상이 된다. 아트쇼핑, 아트테크에 나서 MZ세대 컬렉터들은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었고, 웹 개발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결국 MZ세대 중심의 새로워진 미술품 소비패턴 연구가 중요한 점은 급변하는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아트마켓의 새로운 확장성을 가늠하는 채널이 되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충동적이고 일시적은 중독 현상이라고 다소 자극적인 시선으로 폄훼하지 말아야할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3040 싹쓸이'에 미술시장 투자 과열 양상 우려도 있지만 MZ세대 컬렉터들은 NFT 미술품으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시선이다. "한국의 MZ세대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리더세력이란 점에서도 한국 미술시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바라본다면 미술시장의 새로운 활력이자 음성적이던 미술판이 투명한 시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MZ세대의 급부상으로 미술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맞고 있지만 현재 한국미술미장은 세계미술시장과 비교하면 미미하다. 프랑스의 미술시장 조사업체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2020년 미술품 경매시장 점유율을 보면, 중국(39%)과 미국(27%)·영국·프랑스·독일이 전체의 89%를 차지한다. 아시아 시장은 중국이 67%, 홍콩 26%, 일본 2%, 한국이 1%다. 한국은 시장 규모가 5000억여원으로 작다. 지난 1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12월 경매는 단 2일간 낙찰총액 14억9500만2500 달러(한화 약 2259억 원)을 기록했다. 2021/12/04
54억5천 만원 '노란 호박'…쿠사마는 누구? "54억5000만원, 54억50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탕!" 일본 대표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92) 회화 노란 '호박'이 대박을 터트렸다. 올해 한국 경매 최고가와 작가 국내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올해 지금까지 국내 경매에서 거래된 최고가 작품은 42억 원에 팔린 마르크 샤갈의 ‘생 폴의 정원’이다. 23일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윈터 세일' 경매에서 쿠사마 '호박' 그림은 52억원에 경매에 올랐다. 1억씩 호가해 최종 54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서면이 아닌 현장에서 낙찰받아 주목됐다. 올해 코로나속에도 아트페어 흥행 얼풍과 낙찰률 80%를 넘는 경매시장 활황인 가운데 정점을 찍었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서울옥션 경매에서 36억5000만원(Gold Sky Nets) 낙찰된 최고가를 한달만에 갈아치운 기록이다. 'Gold Sky Nets'는 메가스터디 수학 1타 강사인 현우진씨가 낙찰받았다고 직접 알려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달 직접 경매장에 나와 36억5000만원짜리 작품을 낙찰받고, 자신의 SNS에 직접 낙찰 소식을 알려 이슈가 됐다. 현 씨는 '쿠사마 애호가'로 올해 붉은색 ‘인피니티 네트' 등 쿠사마 작품을 약 120억원어치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슈퍼 컬렉터'로 등극했다. 하지만 이번 '노란 호박' 낙찰자는 현씨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54억5000만원에 팔린 노란 '호박'은 어떤 그림? 54억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은 쿠사마의 회화 ‘호박’은 국내 소개된 작품 가운데 가장 큰 50호(116.7×90.3㎝)다. 쿠사마의 1981년작으로 추정가가 54억원에 매겨질 정도로 희귀 작품이었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쿠사마가 본격적으로 호박 연작을 시작하던 초기작이라 희소성이 높다. "특히 쿠사마 작품은 구작(舊作)일수록 가격이 높은 편"이라며 "번 작품도 최고 70억선까지도 기대했다"고 했다. 1980년대 초 그린 '호박'은 쿠사마가 한동안 그리지 않았던 작업을 재개하며 본격적으로 '호박' 연작을 시작한 해다. 호박은 일명 '땡땡이 그림'의 최고봉이다. 1950년대 일본에서 미국으로 떠났다가 생활비 부족과 병세 악화로 1972년 고국인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시작됐다. 점의 반복인 물방울 무늬를 캔버스에 가득 채워 넣은 호박은 강박증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쿠사마는 1980년대에 호박에 더욱 집중했다. 물방울무늬에 색을 입혀 생동감을 더했고 2000년대에는 모든 작품에 형형색색의 점이 뒤덮여졌다. 알록달록해진 점들이 회화, 판화, 설치, 패션, 영화 등으로 퍼지며 '쿠사마 땡땡이 호박'의 위력을 과시했다. 쿠사마 '호박'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다. '호박' 중 최고가는 2019년 4월 소더비홍콩경매에서 5446만 홍콩달러(한화 약 82억4300만원)에 낙찰된 2010년 작 노란 '호박' 그림이다. 국내 최고가 경신에 이어 해외 경매도 주목된다. 오는 12월 1일 열리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쿠사마 노란 호박(Pumpkin(LPASG)'이 추정가 68억~99억원에 출품됐다. 또 높이 2m가 넘는 2017년작 호박 조각 'PUMPKIN'도 추정가 43억~58억원에 나와있다. '호박'은 판화가격도 상승세다. 24일 열리는 케이옥션 경매에는 150개 에디션 ‘노란 호박’이 추정가 1억5000만~2억원, 120개 에디션의 ‘붉은 호박’이 1억2000만~1억5000만원에 출품됐다. 쿠사마의 작품은 올해 10월 말 현재까지 국내 경매에서만 약 266억원 어치가 거래됐다. 작가별 낙찰 총액은 이우환(약 350억 원)에 이어 2위다. 한편 '호박' 보다 더 비싼 쿠사마 작품은 '1타 강사'가 애호하는 '그물' 시리즈다. 2019년 4월 소더비 홍콩경매에서 1959년작 ‘끝없는 그물(INTERMINABLE NET) #4’이 795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90억3000만원이었다. 쿠사마가 미국으로 이주한 후 1959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5개의 회화 작품 중 하나다. 쿠사마 특징인 동그란 패턴이 '그물망(網)'처럼 증식되어 끝없는 공간이 무한대로 연결되는 듯한 작품이다. ◆호박 '때땡이 그림' 야요이 쿠사마는 누구? 일명 '땡땡이 작가'로 불리는 세계적인 작가 쿠사마 야요이는 글로벌 아트 마켓을 주름잡는 생존하는 최고의 여성 미술가다. 망(net)과 점(dot) 등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세계를 장악했다.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작품이 판매된 유일한 작가, 여성 아티스트 역대 경매 낙찰가 1위 (2014년 710만 달러), 2016년 타임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자신을 괴롭히는 ‘강박과 트라우마’를 예술을 통해 승화시킨 작가로 유명하다. 1929년 일본 나가노 마쓰모토시 출신으로 1947년 교토시립예술학교에 진학한 쿠사마 야요이는 1952년 첫 개인전을 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폭력적이었다. 부모를 피해 1958년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일본 전후 예술가 중 최초로 뉴욕으로 간 예술가다. 29세에 뉴욕에서 예술가로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혁명의 시작이었다. 도발적인 퍼포먼스를 끊임없이 펼치며 자신의 몸을 캔버스 삼아 점과 그물을 무수히 그렸다. '앤디 워홀'과의 싸움 등 처절하고 치열한 예술세계를 펼치다 1973년 일본으로 귀국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서 검정 땡땡이 무늬의 노란 호박 설치미술로 전 세계 미술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검정색 빨간색 초록색 등 다양한 색감의 '땡땡이 작품'은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작품이지만 ‘최근 10년간 가장 작품값이 많이 오른 여성작가’로 선정됐다. 특히 그의 '노란 호박'은 땡땡이 작품의 진수다. 국내 미술시장 웬만한 컬렉터라면 필수템인 '호박 그림'은 그 중에서도 노란 호박이 최고다. 일본 나오시마 섬에 설치된 그의 '노란 호박'은 바닷가 앞에 거대하게 설치되어 전 세계인의 아트투어 성지로까지 등극했다.(나오시마 상징인 2.4m 크기 '노란 호박'은 지난 8월 태풍 9호 루핏의 영향으로 바다에 떠내려가 쪼개져 미술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했다.) 국내에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로비에 거대한 노란 호박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현재 나이 만 91세. 10살 무렵부터 시작된 땡땡이 그림은 여전히 무한반복되고 있다. '환영'·'강박'·'무한증식'·'물방울 무늬' 등 일관된 개념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물방울 무늬는 그녀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상징한다. 쿠사마 야요이는 “예술가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벽면을 타고 끊임없이 증식해가는 하얀 좁쌀 같은 것들을 벽에서 끄집어내어 스케치북에 옮겨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강박과 환각의 정신질환이 수십년째 이어오고 있지만 쿠사마는 붓을 놓고 있지 않다. 48세부터 현재까지 도쿄 세이와 정신병원에서 종신환자로 입원해 있다. 병원에 스튜디오를 마련, 날마다 출퇴근하며 작업하고 있다. "작품 활동이 유일한 생명 수단과 다름이 없다"는 작가는 "예술이 없었으면 이미 자신의 손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빨간 단발 가발이 트레이드마크다. 명품 패션브랜드 루이비통과 손잡고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고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의 미술관에서 대규모 순회 전을 개최했다. 국내에서도 2013년 대구미술관, 2014년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 열려 3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강박적인 물방울 무늬에 대한 집착은 보는 이의 시선을 현실 너머의 세상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불안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행위에서 나아가 이 세상도 함께 치유되기를 소망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겼다. 2021/11/24
변웅필, 세필로 살려낸 'SOMEONE'...'눈, 코, 입' 므흣 '민머리 자화상'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비비고 부빈다. 변웅필(51)작가의 신작전이 4년만에 열렸다. 22일 서울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에서 선보인 개인전은 '얼굴 잔치'다. 파스텔톤 색감에 얼굴 형상이 담긴 70여점을 선보인다. 작가 변웅필은 "인물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거리두기 시대여서 일까. 마스크도 없이 한 얼굴처럼 맞대고 부비는 모습이 이질적이면서도 옛날 감성을 돋게도 한다. 단순화된 인물들은 '마스크 시대'여서 탄생했다. 작가는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쓴 인물들은 무슨 표정을 짓는지 감정을 갖는지를 알 수 없다"며 "그저 보여지는 모습으로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이번 70명의 인물들 역시 그런 익명성과 보편성을 최대한 단순화시켰다"고 했다. 자신의 얼굴을 짓궂은 놀이를 즐기듯 이리저리 일그러트리고 강렬했던 초기 자화상과 달리 신작은 불필요한 감정이 최대한 배제됐다. "서양화 재료를 사용했지만, 완벽함보다는 뭔가 약간 모자란 듯 비움을 추구한 동양의 감성도 담았다"는 그는 전업작가로서 20년, 여전히 "회화는 무엇인지, 그림이 무엇인지"가 화두다. "화가로서 가장 기본적인 물음을 묵묵히 실천해가고 싶었다"는 그는 "그래서 가장 기본 색깔인 오방색을 나름대로 해석한 색조를 바탕으로 선과 면만으로 기본의 조형성을 완성했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서울은 그를 환대했다. 얼굴을 거대하게 담아낸 '자화상'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2009년 스타작가로 등극했고 미술시장 인기작가로 유명세를 누렸다. 세월이 흘렀고, 촉망받는 젊은 작가에서 어느덧 50대 중견 작가가 되었다. 미술시장은 급변했지만, 화가는 쉽게 변할 수 없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끈질기게 밥벌이를 하고 있다. 서울에서 강화도로 내려가 작업실을 짓고 하루하루 그림을 그리며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매끈하고 깔끔한 그림이 흔적이다. 세필을 사용하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이 힘이다. 한쪽 방향으로만 칠하는 붓질이 특기로, 얼룩하나 없는 붓질로 완결됐다. 온 정신을 작품에 쏟았다는 증거다. 그의 대표작 ‘민머리 자화상’ 시리즈가 독일에서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감성적 결핍의 이야기였다면, 15년간 한국에서 다시 살며 어른이 된 그가 새롭게 내놓은 작품은 '세상에 스며듦'의 미학을 보인다. 강렬한 표정에서 벗어나 가벼워진 드로잉처럼 보이는 이번 신작전 타이틀은 'SOMEONE'. 누군가와 함께한 작품은 뾰족함을 지우고 따뜻함으로 변신한 작가의 모습이다. 아이 같기도 어른 같기도 한 그림은 작가와 닮았다. (나이 지천명을 넘었지만 피터팬 같은 소년의 모습이 있다.) 수많은 인물 그림은 여백의 선으로 단순미가 돋보인다. 색과 색 사이 가느다란 선으로 살린 눈, 코, 입, 어깨라인이 압권이다. 마치 일필휘지로 동양화 난을 친듯한 기운생동 한 선의 미학을 보는 듯하다. 전시는 12월30일까지. ◆변웅필 작가는? 동국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독일 뮌스터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 전공으로 석사와 마이스터과정을 졸업했다. 그동안 부산 아리랑갤러리)2018), 서울 갤러리조은 2014, 서울 UNC갤러리(2014), 서울 갤러리현대 윈도우(2013), 부산 아리랑갤러리(2012), 서울 갤러리현대(2009)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등 1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뮌스터미술대학 대상, DAAD외국인학생 장학금, 쿤스트아스텍프 미술상, 2005 아도 미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지학사 중학교 미술교과서, 천재교육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미진사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등 국내 6종의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림명상', '느낌의 미술관' 등 여러 단행본 표지로 소개됐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OCI미술관, 인천 문화재단, 독일 MARTA현대미술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행정대법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1/11/22
박수근, 기분 좋은날...사후 56년만 '국민화가' 대접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오늘은 하늘에 있는 박수근(1914~1965) 기분 좋은 날이다. 생전 꿈꿨던 일이 이뤄졌다. 사후 56년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이 열린다. 정부에서 열어주는 최고의 전시이자 국민화가 칭호를 제대로 인정하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도 개관이래 처음으로 선보이는 박수근 개인전이 11일 개막한다. 덕수궁미술관에서 펼치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시는 국민화가 박수근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점으로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 공개다. 특히 1962년 작품 '노인들의 대화'가 최초로 선보인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인 조지프 리(1918~2009)가 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것이다. 그동안 이 작품의 존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조지프 리가 타계한 후 미시간대학교미술관에 기증되면서 전해졌다. 2016년 박수근 전작도록 발간사업 때 실물이 확인되었고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박수근 회고전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협업하고 유족, 연구자, 소장자 및 여러 기관의 협조로 만들어진 대규모 전시”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당시 시대상과 화단의 토양을 재인식해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박수근, 명동 PX 작가에서 국민화가까지 박수근을 화가의 길로 이끈건 프랑스 농민화가 밀레의 그림때문이다. '만종'을 보면서 “하느님,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18세 때인 1932년 이른 봄의 농가를 모티프로 한 수채화 ‘봄이 오다’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진짜 화가가 됐다. 가난한 화가의 꿈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기록했다. 빨래터의 아낙네들, 시장 사람들, 절구질하는 여인등 당시 우리나라 풍경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가난한 삶을 살아낸 그는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전형적인 서민상을 보여줬다. 49세때 백내장으로 한쪽눈을 실명한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리다가 51세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가난과 싸웠던 화가 박수근은 죽은뒤에야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가 됐고 그렇게 유명해졌다.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대표작 ‘빨래터’(1959)가 45억2000만원에 낙찰되면서다.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이후 위작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국민화가'로 등극하며 작품값은 고공행진했다. 현재 작품값은 호당 가격 2억9000만원선이다. 이후 박수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가나아트센터, 갤러리현대등 국내 메이저화랑에서 박수근을 '제대로 보자'며 전시를 열기도 했다. 미술계는 "박수근이 한국 근대작가의 뿌리"라고 여긴다.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서구의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되어 화단을 풍미했지만, 박수근은 시종일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단순한 구도와 거칠거칠한 질감으로 표현한 그림을 고수했다. 창신동 집에서 명동 PX, 을지로의 반도화랑을 오가며 목도한 거리의 풍경, 이웃들의 모습을 화폭에 주로 담았다. 동시에, 동시대 서양미술의 흐름에도 관심을 가지며 공간, 형태, 질감, 색감 등의 회화요소를 가다듬어 나갔고, 자신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모던한 회화 형식과 화법을 구축했다. 일체의 배경을 제거하고 간략한 직선으로 형태를 단순화하고 거칠게 표면을 마감한 그의 회화는 ‘조선시대 도자기’, ‘창호지’, ‘초가집의 흙벽’, ‘사찰의 돌조각’ 등을 연상시키는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현재 국내 20종의 미술 교과서에서 박수근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필수교육만으로도 박수근을 알고 그림도 익숙하다. ◆덕수궁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시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 ‘선한 화가’,‘신실한 화가’, ‘이웃을 사랑한 화가’,‘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등의 수식어로만 제한되던 박수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우선 박수근이 살았던 전후(戰後) 시대상에 주목하였고, 당시 화단의 파벌주의로 인한 냉대나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불우한 화가였다는 고정관념을 벗겨내고 박수근의 성취를 조망한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시행된 박수근전작도록 발간사업을 통해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과 연구성과를 토대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수근의 활동을 소개한다. 전쟁 전 도청 서기와 미술교사를 지냈던 박수근은 전쟁 후에는 미군부대 내 PX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렸고 그곳에서 소설가 박완서를 만났다. 미군부대는 박수근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온갖 수모를 견뎌내야 했던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을 아끼는 후원자들을 만나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박수근은 해방 후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에서도 외국인들에게 먼저 주목받았고, '동서미술전(Art in Asia and the West)'(샌프란시스코미술관, 1957), '한국현대회화전)'(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1958) 등을 통해 한국 중견작가들과 함께 해외에 소개되었다. 참혹한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고단한 이웃의 생활을 담담하게 표현한 박수근을 통해 전후 1950-60년대 한국의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다. ◆ '밀레를 사랑한 소년' 박수근...예술의 원천은? 전시는 박수근의 시대를 읽기 위해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 4가지 키워드로 꾸몄다.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 2부 '미군과 전람회', 3부 '창신동 사람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으로 구성했다.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된 반도화랑과 그의 그림을 수집한 외국인들을 소개, 이들이 박수근 작품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이것이 어떻게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폭넓은 공감을 얻어냈는지 살펴볼수 있다.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은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박수근이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0대 시절의 수채화부터 1950년대 유화까지 그의 초기 작품들을 선보인다. 박수근이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참고했던 화집, 미술 잡지, 그림엽서 등의 자료들은 그가 다양한 미술 정보를 섭렵하며 화풍을 완성하게 된 과정과 박수근 예술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2부 '미군과 전람회'에서는 한국전쟁 후 재개된 제2회 국전에서의 특선 수상작부터 그가 참여한 주요 전람회 출품작들을 전시한다. 박수근의 미군 PX 초상화가 시절과 용산미군부대(SAC) 도서실에서 열린 박수근 개인전(1962)을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박완서의 소설 '나목'을 매개로 박수근이 견뎌낸 참혹한 시대를 공감하고, 2부에서 소개되는 그의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을 새롭게 감상해 보기를 제안한다. 3부 '창신동 사람들'은 박수근이 정착한 창신동을 중심으로 가족, 이웃, 시장의 상인 등 그가 날마다 마주친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최근 박수근전작도록사업을 통해 조사된 유화 2점이 공개된다. 또한 박수근의 그림과 함께 당시 시대상을 담은 한영수의 사진이 전시되어,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1950-6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을 따스한 시선과 모던한 감각으로 표현한 예술가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박수근이 완성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박수근이 평생 즐겨 그린 소재는 여성과 나무이다. 그의 그림에서 고단한 노동을 하는 여성과 잎사귀를 다 떨군 나목은 ‘추운’시대를 맨몸으로 견뎌낸 한국인의 자화상으로 보인다. 전쟁후 질곡의 삶을 살며 화폭에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았던 가난한 화가의 열정과 성취감을 만나볼 수 있다. 왜 '국민 화가'인지를 제대로 느껴볼수 있는 기회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박수근을 새로운 시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작가의 가방(Artist Box)(가제)’교구재를 개발하여 전시가 종료되는 3월 1일부터 전국 중등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다. 전시는 2022년 3월 1일까지. 202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