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들의 부활…앤디워홀이 살려낸 요셉 보이스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1921∼1986)가 서울에서 다시 살아났다. '미국 팝아트 황제' 앤디 워홀(1928∼1987)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부활한 보이스는 앤디워홀의 존재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에서 29일 개막한 '앤디 워홀 개인전'은 펠트 중절모에 낚시 조끼 차림의 보이스 초상 연작을 전시한다. 갤러리 측은 "워홀과 보이스의 역사적인 초기 만남을 재조명한다"며 "보이스의 초상화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처음 기획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요셉 보이스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플럭서스(Fluxus·전위예술 운동)운동을 펼친 작가로, 백남준 첫 개인전에 도끼를 들고 나타나 전시 중인 피아노 한 대를 부숴버린 일화가 유명하다. 이번에 공개된 워홀과 보이스의 44년 전 빛바랜 사진도 작품처럼 보인다. 1980년 이탈리아 나폴리 사자 조각상 앞에서 손을 맞잡고 찍은 두 사람이 모습이 흥미롭다. 진지한 표정의 보이스와 달리 사자상 입에 손을 넣고 찍은 워홀의 장난기가 보인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 절정기를 이룬 두 사람은 7살 차이로 보이스가 죽은 뒤 1년 만에 워홀도 세상을 떠났다. 앤디 워홀과 요셉보이스는 1979년 독일 한스마이어 갤러리(Hans Mayer, Düsseldorf)에서 열린 전시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둘의 만남에 대해 미국의 저술가인 데이비드 갤러웨이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아비뇽에서 두 명의 라이벌 교황이 마주한 것과 같은 의식적인 아우라’가 감돌았다고 했다. 유럽과 미국 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접선하며 중요한 접점을 이룬 순간이라고 평가됐다. 두 사람은 1979년 10월 30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보이스 회고전을 비롯하여 그해 여러 차례 다시 만났다. 워홀이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 보이스도 사진 촬영을 위해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워홀은 자신의 폴라로이드 카메라(Polaroid Big Shot)를 사용해 펠트 모자와 낚시 조끼를 입은 보이스의 상징적인 모습을 담아냈고, 이이미지는 1980년부터 1986년 사이에 제작된 스크린 프린팅 초상화 연작의 근간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이다. 색을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사진을 찍어내는 워홀은 타인의 자기양식화(self-stylisation)를 포착해 냈다. 당시 초상화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진행했다. 사진의 네거티브 효과를 보다 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색조를 반전시킨 작품은 '워홀 스타일'이 되었다. 이 전시에서 선보이는 '트라이얼 프루프(Trial Proof)', 라인 드로잉, 종이 작품에서 다이아몬드 가루를 활용한 작가의 초기 실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워홀은 이후 마릴린 먼로, 모나리자, 마오쩌둥 등 같은 주요 인물을 재현하는 연작 '리버설(Reversal)'을 지속했다. 원본 사진의 이미지를 단순화함으로써 인물을 상징적이고 아이콘스럽게 표현했고, 실크 스크린 프린팅 기법을 통해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했다. 이미지 자체보다 색상, 구성,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변화를 꾀했다. 워홀은 생전 최종본을 위한 실험 작업인 '트라이얼 프루프'를 자신의 판화 에디션이나 회화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작업군으로 여겼는데, 1980년대 워홀과 협력했던 출판업자 외르크 셸만도 이를 인정했다. "트라이얼 프루프를 워홀의 원화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워홀이 보이스를 현대 미술의 ‘살아 있는 전설’로 여겼던 것 같다”는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워홀과 보이스가 예술에 접근하는 미학적, 철학적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각자의 작품 전반에서 일상적인 사물과 이미지를 활용하고 더 나아가 낯설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집념이 있다는 데서 교차한다"고 설명했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이번 워홀-보이스 전시는 로팍(64)대표에 감회가 깊다. 20대 시절 보이스 작업실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워홀 작업실 팩토리에서 일하기도 했다. 로팍 대표는 1983년 갤러리 개관전에 워홀 전시를 열고 싶었는데 당시 워홀은 자신보다는 젊은 작가의 전시를 여는 게 좋을 것이라며 추천서를 써줬다. 그렇게 만난 작가가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장-미셰 바스키아(1960∼1988)로, 타데우스 로팍 첫 전시로 문을 열었다. 한편 오스트리아에서 출발, 유럽 대표 갤러리로 성장한 타데우스 로팍은 지난 2021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울점을 열었다. 서울 개관전은 독일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였다. 현재 타데우스 로팍의 서울 갤러리는 황규진 디렉터가 총괄 운영하고 있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2024/05/30
칸디다 회퍼 '영원한 고전 미학'…"후보정은 없다" “현대적이지 않지만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다.” 독일 사진 작가 칸디다 회퍼(80)는 '세계적인 사진 작가'로 불린다. 미술 컬렉터들의 '잇템(it item)'으로 소장품 목록에 꼽힌다. 유럽의 클래식한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내부를 유려하게 담아내 회화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마이애미 루벨 패밀리 컬렉션, 취리히 프리드리히 크리스찬 플릭 재단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 갤러리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에 알려진 건 국제갤러리가 한몫했다. 국내외 각종 아트페어에 칸디다 회퍼의 사진을 꾸준히 소개해 처음 봐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국제갤러리는 지난 2020년 부산점에서 전시 이후 4년 만에 서울에서 회퍼의 개인전을 펼친다. ‘다시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직역되는 전시 제목 ‘Renascence’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팬데믹 기간 리노베이션 중이었던 건축물과 과거에 작업한 장소를 재방문해 작업한 신작 14점을 선보인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 Paris)을 찍은 사진은 르네상스 시대 정교한 고전 명화 같다. 회퍼는 2021년 재개관을 앞둔 2020년 이 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철제와 나무 재질의 나선형 계단이 새로 생긴 공간을 담아냈다. 모더니즘. 미니멀한 사진처럼 보이지만 '회퍼 풍'은 여전하다. 부드러운 고전미가 시간처럼 흐른다. 공간을 압도하는 자연광 때문이다. 투명성과 광도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대칭 구도나 역동적 장식 등의 조형 요소로 공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회퍼의 특징이 녹아있다. 스위스의 장크트갈렌(St. Gallen) 수도원 부속 도서관 연작도 팬데믹 기간 중 재방문한 작업으로 새롭게 나왔다. (장크트갈렌 시에 위치한 이 수도원은 18세기에 대대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됐고,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을 담은 2001년 작품은 정교한 프레스코화와 로코코식 몰딩으로 장식된 아치형 천장이 압도했다. 반면 새로 촬영한 2021년 작품은 인물의 요소를 배제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이 교차하는 내부 공간을 조명했다. 완벽한 대칭 구도는 시공간이 이어진 SF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람의 존재를 없앤 후 공간에 남은 흔적과 빛, 미묘한 공기의 감각까지 진동하게 한다. 회퍼는 툭 눌렀을 뿐인데 시간의 흐름이 포착된, 영원성을 담은 공간의 초상으로 아우라를 뿜어낸다. 모든 작업은 한번에 딱!, 후보정 없이 나온 작품이다. 현재 작품 값은 1억 원 선으로 사진 장 당 에디션은 6개다. 전시는 7월28일까지. 관람은 무료. ◆칸디다 회퍼는? 1944년 독일 에베르스발데에서 태어났다. 1973년부터 1982년까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첫 3년 동안 올레에게 영화를, 그 이후에는 현대 독일 사진을 이끈 베른트 베허(1931~2007)와 힐라 베허(1934~2015) 부부로부터 사진을 수학했다. 당시 수업을 함께 들었던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 안드레아스 거스키 등과 함께 ‘베허 학파’ 1세대로 불린다. 1975년 뒤셀도르프의 콘라드 피셔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작가는 지난 50여 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며 공적인 장소, 특히 인간이 부재한 건축의 내부를 특유의 정교한 구도와 빼어난 디테일로 구현해왔다.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선보인 작가는 2002년에 제11회 카셀 도큐멘타에 참여했으며,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틴 키펜베르거와 공동으로 독일관을 대표했다. 2018년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사진공로상을 수상했다. 오는 9월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2024 케테 콜비츠 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2024/05/23
'이건희컬렉션' 덕분에…"미술품 기증, 모두를 위한 예술" 결국 미술품은 '공공의 것'이다. 같이 누려야 더 빛난다. '미래 문화자산'이기 때문이다. '이건희컬렉션' 104점 등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 된 작품 150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은 "예술을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기증자의 뜻이 전시장을 찾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향유의 즐거움을 주고 한국 미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기증 미술품은 전체 소장품 1만1560점 가운데 6429점으로 전체 대비 55.6%를 차지한다. 1971년 시작 된 미술품 기증은 2021년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개인 소장가나 작가 유족 등이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2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전이 개막했다. 최근 5년 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작품 가운데 1960~1970년대 구상회화를 선별해 재조명한다. 특히 2021년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늘어난 다수의 기증 작품들로 구성되어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는 1부‘한국 구상미술의 토양’, 2부‘새로운 의미의 구상’으로 선보인다. ◆1부‘한국 구상미술의 토양’ 국전을 통해 아카데미즘 미술의 초석을 다진 1세대 유화 작가들을 중심으로 근대 서양화 양식의 사실주의 작품을 다수 소개한다. 자연주의적 발상을 토대로 엄격한 사실성을 보인 이병규, 도상봉, 김인승, 이종무, 김숙진, 김춘식 등의 작가들 작품이 나와있다.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인상주의적 색채를 구사하여 주변 풍경과 인물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병규의 '고궁일우(古宮一隅)'(1961)와 '자화상'(1973), 작가의 취향이 스며든 정물을 자연스럽고 안정되게 화면에 채워나간 도상봉의 '국화'(1958), '포도와 항아리'(1970), 어촌 풍경이나 노동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일상을 한국적인 인상주의 화풍으로 담아낸 김춘식의 '포구(浦口)'(1977)등이 대표적이다. ◆2부 ‘새로운 의미의 구상’ 변화하는 미술 조류에 감응하며 구상과 비구상의 완충지대에 속했던 작가들을 망라한다. 자연에 바탕을 둔 조형적 질서를 추구했던 윤중식, 박수근, 황염수를 시작으로 황유엽, 이봉상, 최영림, 박고석, 홍종명 등 1967년 구상전을 발족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들은 종래의 아카데믹한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 대상에 대한 수동적 태세를 지양하고 내면의 이미지를 독자적으로 표출한 작가들이다. 야수주의와 표현주의 양식을 바탕으로 대담한 요약과 강렬한 색채의 구사를 특징으로 하는 윤중식의 '금붕어와 비둘기'(1979), 모래나 흙을 화면에 첨가하여 독특한 질감을 만들며 민담이나 설화로 해학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최영림의 '만상(滿想)'(1975), 특유의 마티에르와 대담하고 거친 화풍으로 전국의 명산을 다뤄 산의 화가로도 불렸던 박고석의 '도봉산'(1970년대) 등이 출품된다. ◆‘기증, 모두를 위한 예술’ 의미 전시장 복도에서는 ‘기증, 모두를 위한 예술’을 주제로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최근 5년 여간(2018년~2023년) 기증받은 작품의 경향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동시대 회화 등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대량 수집되어 소장품의 양과 질이 상향된 부분을 도식화하여 보여준다.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추가 기증도 이뤄지고 있다. 이병규와 윤중식의 작품은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되어 각 5점, 4점이 기증 된 후, 유족들에 의해 2021년 하반기에 각 13점, 20점 추가 기증으로 이어졌다. 이병규, 윤중식, 김태 유족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기증의 뜻과 공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 및 수어해설, 점자책과 큰 글자 감상 자료가 제공된다. 전시는 9월22일까지. 관람료 2000원. 2024/05/22
"자수가 교양? 여성 혁명"…박혜성 학예연구사 "근현대 자수 담론 확장됐으면" 미안하다 몰라봤다. '자수'는 '여성 혁명'이었다는 것을. 그 옛날 있는 집 여식의 '교양 수업'처럼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자수가 AI시대 새로운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박혜성 학예연구사 덕분이다. 미술이 아닌 자수를 덕수궁미술관에 보란 듯이 전시한 그는 "취미생활이자 일상 용품이라는 편견과 폄훼로 예술적인 작품들을 남기고도 수많은 자수인들이 무명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사실 20세기 이후 우리나라에는 자수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않은 것처럼 근현대 자수는 낯설다. 작가 생전 본인의 이름을 내건 자수박물관을 개관한 박을복(1915~2013)정도를 제외하면 자수 작가는 일찍이 일본 유학을 다녀왔건, 조선미술전람회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수상했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건 미술계예서 알려진 경우가 드물다. "이는 자수가 기존의 밑그림에 여성들의 반복적인 손동작만으로 만들어져 창의성도, 개성도 부족하다는 인식, 즉 개성, 독창성, 천재성 등을 중시한 모더니즘 미학이 만들어낸 선입견 및 가치절하와 무관하지 않아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특히 그녀의 짧은 시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가 떠올랐다고 했다. "19세기 엄숙한 청교도 및 가부장적 사회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던 그녀는 주변의 일상과 자연을 시에 담에 사랑, 죽음, 상실, 영원, 아름다움, 글쓰기와 읽기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게 되는 20세기 한국의 자수 작가들 역시 근대화=서구화, 식민, 전쟁, 분단 산업화 등 특수한 사회 조건 아래서 혹은 조건에 맞서 자신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 사랑과 소망 절망과 고통, 저항 등을 한 땀 한 땀 자수에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5월1일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 펼치는 한국 근현대 자수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전시는 반전이다. '이 시대에 웬 자수?'라거나 '미술관에서 왜 자수전?'이라는 어설픈 의혹을 타파한다. 19세기 말 이후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시대 상황과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해 온 한국 자수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1점)과 필드 자연사박물관(3점), 일본민예관(4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 국내외 60여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근현대 자수, 회화, 자수본 170여 점, 아카이브 50여 점이 출품됐다. "전시는 실과 바늘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한 여성 작가들의 마법에 경지에 다다른 바느질을 보여준다." 한국 자수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시대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현전하는 고대, 중세 유물의 수가 극히 한정적인 탓에 흔히 ‘전통자수’로 불리는 작품의 대부분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조선 시대 여성들이 제작하고 향유한 규방 공예로서의 자수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자수의 변화상은 개항, 근대화 및 서구화, 전쟁, 분단, 산업화, 세계화 등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주류 미술사의 관심 밖에 놓여왔다. 생활 자수, 복식 자수, 병풍 등 조선 시대 규방 공예로서 탈피한 건 일본 유학파들이 생기면서다. 일제강점기 한국 부잣집 여성들은 일본 ‘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 이하 조시비(女子美))’에 유학하여 자수를 전공 하는 게 최고의 학력이었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부터 공예부가 신설되면서 공예품이 ‘미술공예’로 거듭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조시비 출신인 윤봉숙의 작품 '오동나무와 봉황'(1938)이 '회화 같은 자수'가 등장했다. 해방 직후 이화여자대학교에 국내서는 처음으로 자수과가 설치되면서 부흥기를 맞았다. 1950년대 이후 조시비와 이화여자대학교 출신 작가들의 다양한 활동과 작업은 한국 자수가 조시비 자수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전모를 보여준다. 독학으로 예술 자수의 경지를 보이는 송정인의 '작품 A'(1965), 김인숙의 '계절 Ⅱ'(1975) 등은 추상화 같은 자수화의 혁신을 이룬다. 자수는 규방에서 벗어나 여성의 자립기반이 됐다. "1960년대 당시에는 미술품보다 자수가 인기였다 부업으로 자수를 제작했고, 수출용으로 많이 만들었고 혼수로도 수요가 많았다. 자수를 잘 놓는 여성들은 집을 몇 채씩 살 정도로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1980년대 기계 자수가 등장하면서 전통 자수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옛날 여성의 취미정도로 취급받은 자수를 공예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는 1963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수공예학원을 설립한 한상수 씨로, 그는 198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 80호 자수장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고 유 무형의 문화재가 국가적 보호 대상으로 규정된 지 20여 년 만의 일이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1996년 최유현이 두번째 자수장으로 지정되었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한상수(불수)와 최유현(불화)의 전방위적인 활동과 이들의 스승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자수를 배운 신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스승으로부터 전통 자수의 원형을 전수 받고 그대로 보전했다기보다 직접 전통을 찾아내고 전통 자수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산업 공예로만 인식됐다가 이 분들의 노력으로 보존해야 할 전통문화로서 재인식되는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변화된 자수 실천이 어떻게 전개해 왔는지 시대별로 나눠 4부로 구성했다. "20세기 한국자수의 역사라는 아름다운 실의 향연 뒷면에는 서양(일본) 동양(한국) 남성/여성, 근대/전통, 공/사, 순수예술/공예, 독창성/모방 등 무수한 길항의 관계가 존재합니다. 회화의 재료인 붓과 물감이 주로 종이와 캔버스의 표면과 상관한다면, 자수의 재료인 바늘과 실은 바탕 천의 표면을 뚫고 이면을 접촉하고 다시 표면으로 돌아오는데, 이는 마치 세상을 명확하게 구분되는 이분법적 경계에 의문을 던지듯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습니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20세기 후반 이후 현대미술가들은 섬유를 주요 매체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근현대 자수의 실천과 담론에 대한 연구가 보다 심화, 확장되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근현대 자수가들의 작품과 함께 선보인 현대미술가 함경아, 홍영인, 이강승, 이인선 등의 작품은 무한히 연장되고 있는 자수의 혁명으로 새롭게 보인다. 기계 못지않게 제작한 근현대 자수품들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자수장 최유현이 쓴 글은 자수인 뿐 만 아니라 예술가들에 전한 조언이다. "수놓는 기술자에 그치지 말고 혼을 불어넣어 주제 의식을 작품에 제대로 구현하는 작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임할 때 오늘날 자수가 하나의 독립된 예술세계로 인정받게 될 것이며 자연히 자수인 또한 한 명의 작가로서 받아들여 줄 것입니다." 3년 간의 준비로 근현대 자수사를 새롭고 꼼꼼하게 정리한 이번 전시는 자수화가 현대미술 매체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될지 주목된다. 전시는 8월4일까지. 관람료 2000원. 2024/04/30
물방울, 그 '최면의 힘' 여전히 새롭다…김창열 작고 3주기 물방울인가 아닌가. 아무리 가까이 들여다봐도 믿기지 않는다. 들여다 보면 볼수록 한 점 물감의 흔적 뿐이다. 캔버스 화면에서 마술을 부린듯한 물방울 그림은 기묘하고 경이롭고 여전히 매혹적이다. 생전 물방울을 그렸던 화가 김창열(1929~2021)화백은 무엇을 그리려 했던 것일까. “예술의 본질은 결국 일루전(Illusion)일 텐데, 이것을 재검토해 보려는 게 나의 예술입니다.” 그도 어느날 환상(Illusion)속에서 '물방울'을 선택했다. 1969년 뉴욕에서 파리로 예술의 터전을 옮겨 간 김창열은 파리 근교의 마구간에서 생활했다. 1971년 어느 날 아침, 재활용 하기 위해 물을 뿌려둔 캔버스에서 반짝이는 물방울. 그 찰나의 순간은 위대한 발견의 시작이었다. 그가 물방울을 선택한 이유는 이렇다. “캔버스를 뒤집어놓고 직접 물방울을 뿌려 보았어. 꺼칠꺼칠한 마대(麻袋)에 매달린 크고 작은 물방울의 무리들, 그것은 충분히 조형적(造形的) 화면이 성립되고도 남질 않겠어. 여기서 보여진 물방울의 개념, 그것은 하나의 점이면서도 그 질감(質感)은 어떤 생명력(生命力)을 지니고 있다는 새로움의 발견 이었어. 점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감도(感度)라 할까, 기적으로 느껴 졌어.”(『공간』,1976년 6월호) 1976년 현대화랑 개인전을 앞두고 11년 만에 고국에 온 김창열은 미술평론가 이일과 동료 작가 박서보와 나눈 대담이다. 1972년 살롱 드 메(Salon de Mai)에서 그의 물방울이 처음 소개된 이후 '김창열의 물방울은 ‘최면의 힘을 갖고 있다'며 떠들썩했다. '물방울 화가'의 서막을 연 순간이었다. 물방울은 환상이다. 1970년대 나타나는 물방울들은 대체로 실제 물방울이 캔버스 위에 맺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초기의 이 물방울들은 실제처럼 영롱하게 그 빛을 발하며, 중력을 거스른 채 존재감을 드러내며 맺혀 있다. 이 시기의 물방울들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김창열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로 구축됐다. 물방울에 매료된 김창열은 물방울에 미쳤다. 마(麻)천, 모래, 신문, 나뭇잎, 그리고 한자 등 실제 위에 물방울을 그려 놓으며 실재와 가상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중성화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물방울도 응답했다. 중력과 시간을 거스르며 영롱하게 맺혀 있던 물방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맺혀 있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표면에서 흐르고 흡수되며, 물방울이 갖는 다양한 물리적인 형상으로 변화한다. 1979년작 '물방울'에서는 물방울들이 화면 한가득 맺혀 있다. 그중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화면 위에 맺혀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언뜻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물리법칙을 따르고 있는 '기이한 물방울'의 모습이다. '물방울 CSH27-1'(1979)에서는 물방울의 점도가 달라진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같은 물방울이지만 끈적하면서 밀도 있는 느낌을 보이는 이 물방울들은 작가가 다양한 물방울의 성질들을 연구하고 고민한 흔적을 보여준다. 한지 작품들에서는 동양의 전통 사상을 작품에 녹여내려 했다. 붓으로 천자문을 여러 번 겹쳐 쓰면서 빼곡한 글씨와 한지 특유의 질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어릴 적 먹으로 글씨 연습을 하듯 천자문을 가득히 적는 내용적 측면과 더불어, 재료적 측면에서도 해외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온 와중에도 자신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는 한국화가 김창열의 의지다. 평생 물방울만 그렸지만, 같은 물방울은 없다. 70년 후반과 80년 이후의 작품들에서 작가는 한 화면에서 물방울들의 점도와 흐르는 속도를 서로 다르게 하거나, 혹은 중력을 다르게 적용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재질 위에서의 물방울들을 통해 사실인 듯 보이나 철저하게 조형화된 화면을 보여 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물방울을 연구하면서 이를 더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는 지지체를 찾는 실험에 몰두했다. 글자를 비롯한 다양한 표면과 물방울이 상호 작용하는 다양한 연출들을 살펴보면 작가가 가졌던 수많은 고민과 치열함, 조형 언어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을 엿볼 수 있다. 물방울은 표면의 글자를 확대하거나, 가리거나, 혹은 지워내기도 한다. 글자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글자 위에 색을 칠한 후 글자 부분만 뜯어내는 기법을 사용하거나, 글자 부분만 비워놓고 색을 칠하는 등 다양한 기법 실험을 관찰할 수 있다. '회귀 DRA97009'(1997)에서는 물방울 옆에 먹으로 글자가 지워져 있는데, 이는 마치 물방울의 그림자처럼 기능하며 제3의 공간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처럼 평면이 아닌 표면 위에 물방울들을 놓고, 표면과 글자, 글자와 물방울과의 관계를 탐구하며 다차원적인 화면 구성을 시도했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다. ‘수행’, ‘성찰’, ‘회귀’ 그리고 전쟁으로 죽어간 많은 영혼에 대한 ‘레퀴엠’ 등 서사를 품고 마술같은 미술로 명상과 치유의 공간으로 나아갔다. 김창열 화백 작고 3주기를 맞아 '물방울 그림'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현대는 김창열 개인전 '영롱함을 넘어서'를 열고 마대 위 물방울이 처음 등장하는 1970년대 초반 작품부터 2010년대 제작된 근작까지 김창열 화백의 예술 여정을 회고할 수 있는 주요 작품 38점을 선보인다. 이 작품 중에는 방탄소년단 RM이 소장 한 작품도 나와 있다. RM은 윤형근, 유형국과 달리 생전의 김 화백과 만나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구매한 작품을 어느 작품보다 소중하게 여긴다며 이번 전시 섭외에 선뜻 내놓았다는 후문이다. 갤러리현대와 김창열 화백의 인연은 사후에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1976년 현대화랑은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 중인 김창열 화백의 초대전을 개최하며, 그의 물방울 작품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했다. 이후 김 화백의 마지막 전시가 된 'The Path'(2020)까지 열 네 번의 전시를 함께하며 반세기 동안 소중한 인연을 이어 왔다.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김창열 화백의 열다섯 번째 개인전이다.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에 이어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대를 이어 조명하고 있는 도형태 갤러리 현대 대표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고 3주기 전시가 아니다"며 "추상화의 시대가 저물고 이젠 구상화의 시대가 오고 있는 흐름 속에서 전 세계에서도 볼 수 없는 물방울화, 초현실 구상화의 면모를 재조명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창열 화백은 1971년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물방울을 선택한 이후, 물방울(Illusion)과 물방울이 존재하는 표면(Real)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본질을 평생에 걸쳐 재검토해 왔다. 전시 제목 '영롱함을 넘어서'는 처음 물방울을 대면했던 그 순간의 영롱함을 화면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온 작가의 조형적 의지의 표상이자,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1970년대 물방울을 또다시 뛰어넘어야 했던 50년간의 미적 여정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수행에 가까운 물방울을 통한 예술의 본질, 즉 일루전(Illusion)에 대한 도전과 이를 통해 당도하고자 했던 조형적 아름다움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는 6월9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2024/04/24
전기톱 작가 김윤신 "이런 순간 상상도 못해…나를 완전히 미술로 내놓겠다"[2024베니스비엔날레] "이런 순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90세 전기톱 조각가로 유명한 김윤신 작가가 베니스비엔날레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7일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 본전시관에서 만난 김 작가는 "그동안 작업만 하면서 비엔날레 전시는 생각도 못했는데…이렇게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주고…이제부터가 아니겠어요?"라며 자신감에 찬 '백발의 카리스마'를 보였다. 2024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참가해 전기톱으로 썰고 깎아 만든 나무 조각과 대리석(돌)조각을 선보인 김윤신은 휘황찬란한 현대미술작품속에서 정중동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시 입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김윤신의 작품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수많은 회화를 병풍 삼아 전시장 한 가운데에 목조각들이 설치됐다. 김윤신 작가는 "다른 작품들은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데, 나는 거꾸로 돌아간 거 같다"며 "내 작품 속 내용은 원초적이다. 내가 그것을 찾아가지 않았나 싶다. 이젠 나를 완전히 미술을 통해서 내놓겠다"고 했다. "하마터면 놓칠 뻔한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준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197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후로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해왔는데, 무려 50년이 지나 이런 크고 중요한 전시에 초대되리라곤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24년이 내게 큰 행운이 깃든 해인 만큼,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세상에 응답하고자 한다." 구순의 나이에도 아르헨티나와 한국을 오가며 영원한 이방인을 자처하는 김윤신의 세계관은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다. 이번 본 전시에서도 이 연작에 속하는 4점의 나무 조각과 4점의 돌 조각을 선보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탄생한 출품작 중 나무 조각 4점은 소나무 혹은 호두나무와 같은 원목을 사용한 반면 나머지 돌 조각 4점은 오닉스(onyx)와 재스퍼(jasper)와 같은 준보석이 재료다. 원목과 준보석을 조각하는 과정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재료의 속살과 표면의 시각적인 대조와 조화가 이번 출품작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강인한 동시에 예리한 작가적 접근이 돋보이는 본 조각 작업들은 낯선 땅과 마주한 '이방인'이 새로운 소재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개발해온 과정을 선명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주제와도 완벽하게 만난다. 김윤신 작가는 올해 초 국제갤러리와 리만머핀 갤러리와 공동 소속 계약을 체결하며 60여 년 예술 인생 처음으로 주요한 상업 갤러리와의 협업을 시작했다. 생애 첫 전속을 맺은 김 작가는 국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오는 28일까지 선보인다. 1970년대부터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철학에 기반한 목조각 연작과 함께 꾸준히 지속해온 '회화 작업'등 총 51점을 국제갤러리 서울점 K1과 K2 공간에 전시했다. 한편 김윤신 전속인 국제갤러리는 이번 본전시에 전속인 수퍼플렉스도 선정되어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수퍼플렉스는 1993년 결성된 이래 민주주의, 기후, 도시, 난민 등의 범세계적 주제를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다뤄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Foreigners, Please Don’t Leave Us Alone With The Danes!'(2002)를 재해석한 작업을 소개한다. 지난 2002년 수퍼플렉스는 난민을 상대로 배타적 태도를 취하던 코펜하겐 정부를 비판하고 난민 이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이방인들이여, 제발 우리를 덴마크인과 홀로 남겨두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코펜하겐 도심 곳곳에 부착했다. 정치 포스터가 보통 주변환경에 묻혀 본연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한계에 착안, 공공장소 표지판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주황색 배경과 그와 대비를 이루는 검은색 텍스트로 디자인한 이 작업은 외국인, 이민자, 난민, 디아스포라 등의 주제에 대해 경종을 울려왔다. 실제 포스터 형태의 작업은 2002년 이후로 덴마크 내에서만 10만 장 이상 배부되었으며, 2018 광주비엔날레를 포함 국내외에서 다양한 형태로 활발히 전시된 바 있다. 한편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이방인은 어디에나(Stranieri Ovunque – Foreigners Everywhere)'를 전시 주제로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직접 큐레이팅하는 본전시에 한국 작가 김윤신, 이강승(미국 LA) , 작고 화가 이쾌대, 장우성까지 4명을 포함하여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총 330명의 작품 수천 점을 전시했다. '미술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의 프리뷰를 거쳐 오는 20일 공식 개막, 일반 관람객들의 전시 관람이 시작된다. 오는 11월 24일까지 약 7개월간 이어진다. 2024/04/18
친구 아들 손에 닿은 슬픈 이중섭…'시인 구상의 가족' 70년 만에 경매 이중섭의 '시인 구상의 가족'이 70년 만에 경매에 출품 됐다. 1955년 이중섭이 시인 구상에게 준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를 통해 소개된 적 있다. 미술품 경매사 케이옥션은 "24일 오후 4시 여는 4월 경매에 이중섭의 1955년 작품 '시인 구상의 가족'을 출품한다"며 "시작가는 14억 원이 매겨졌다"고 12일 밝혔다. 4월 경매 도록 표지로도 장식한 이 작품은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1955년, 이중섭은 서울의 미도파화랑(1955.1.18-27)과 대구의 미국공보원(1955.4.11-16)에서 연 개인전이 흥행하자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과 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신문의 호평과 절반 이상의 작품 판매가 이뤄지며 성공적인 전시로 보였지만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작품 판매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없게 됐다. 희망이 좌절된 이 때 이중섭은 오랜 친구인 구상의 왜관 집에 머물러 있었다. 구상이 아들과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자 자신의 아들이 생각났다. 약속한 자전거를 사주지 못한 부러움과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그 행복한 가족의 현장에 있던 자신의 모습을 화면 우측에 덩그러니 그려 넣었다. 시인 구상에 의하면 자신이 아이들에게 세발자전거를 사다 주던 날의 모습을 이중섭이 스케치하여 “가족사진”이라며 준 것이라 한다. 케이옥션에 따르면 이 작품 속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화면 왼쪽 끝에서 구상의 가족을 등지고 돌아선 여자아이로, 이소녀는 구상의 집에서 의붓자식처럼 잠시 머물던 소설가 최태응의 딸로 이중섭은 소녀와 동병상련을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특징은 이중섭의 손이 원근법을 무시하고 구상 아들의 손과 닿아 있는 것이다. 이중섭의 다른 작품에서도 길게 늘어난 팔이 가족, 동물, 타인들과 연결되는데, 이는 그만의 고유한 기법으로 현실을 잊고 싶은 이중섭 마음 속 이상 세계인 듯하다. 수없이 연필로 그은 선위에 유화물감으로 칠한 필력에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새겨있다. 한편 케이옥션은 4월 경매에 이중섭 작품을 비롯해 김환기 뉴욕 시대 점화 작품(시작가 35억 원)등 총 130점 약 148억치를 선보인다. 이번 경매에는 앙리 마티스의 아티스트북이 국내 경매에 최초로 출품되어 주목받고 있다. 추정가 9억5000만~12억 원에 나온 이 책은 20점이 완전한 세트로 출품되는 일이 드물어 희소성이 높다는 평가다. 2024/04/12
뮤지엄 산 점령한 알록달록 수도승…우고 론디노네 개인전 “나는 마치 일기를 쓰듯 살아있는 우주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계절, 하루, 시간, 풀잎 소리, 파도 소리, 일몰, 하루의 끝, 그리고 고요함까지.” 스위스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가 2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2022년 국제갤러리에서 2m가 넘는 알록달록 청동 조각을 선보여 주목 받은 그 조각들과 또 다시 내한했다. 한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뮤지엄 산(관장 안영주)에서 우고 론디노네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BURN TO SHINE' 전시를 9월18일까지 개최한다. 뮤지엄 산에서 여는 우고론디노네의 최초의 전시로 백남준관, 야외 스톤가든을 아우르며 조각, 회화, 설치, 영상을 포함한 4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우고 론디노네는 “매일 자연을 볼 수 있고, 도시의 소음이 없는 뮤지엄 산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상적”이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는 전체가 하나의 포괄적인 작업으로, 작가가 지난 30여 년의 작품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성찰해 온 삶과 자연의 순환,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더불어 형성되는 인간 존재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2년 전 하얀 전시장에 갇혔던 거대 청동 조각은 뮤지엄 산 야외와 백남준관에 세워져 자연광과 함께 엄숙함까지 자아낸다. 자연을 통한 정신적 사유를 추구하는 론디노네의 이 같은 시도는 '수녀와 수도승(nuns+monks)'시리즈에서 새로운 정점에 이른다. 백남준관에는 4m 높이의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yellow red monk)'이 원형의 천정으로 내려오는 자연광 아래 중세 시대 성인(聖人)의 엄숙함으로 관객을 맞이하며 야외 스톤가든에는 6점의 수녀와 수도승이 정원의 자연석과 어우러져 선사시대의 거대한 돌기둥을 연상시킨다. 3m가 넘는 이 기념비들은 청동으로 주조 되었지만 작은 규모의 석회암 모형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돌은 내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재료이자 상징"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2013년 록펠러 광장에서 선보인 '휴먼 네이처(human nature)'의 석상 작품에서부터 시작되었고 2016년 네바다 사막에 설치한 '세븐 매직 마운틴(Seven Magic Mountains)'으로 이어졌다. 두 작업 모두 자연석을 아름다움과 사유의 대상으로 탐구하고 감상하려는 시도로서,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바깥세상과 내면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매우 사적이며 명상적인 시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나는 본다는 것이 물리적인 현상인지 혹은 형이상학적인 현상인지에 상관없이 그것이 어떤 느낌이고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조각을 만들었다." '수녀와 수도승' 역시 이러한 내면세계와 외부 자연 사이의 이중적 성찰을 이어 나간다. 한 사람이 바라보는 외부 세계가 그의 내적 자아와 분리될 수 없듯이, '수녀와 수도승'은 여러 층위의 의미들이 서로 가깝고 먼 곳에서 진동하며 작품을 바라보는 이에게 순수한 색채와 형태, 규모에 완전히 몰입되는 감각적 경험과 더불어 동시대적 숭고함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는 불꽃이 타버리고 어둠과 함께 다시 시작되는 영상 '번 투 샤인(burn to shine)'(2022)이 무한 반복으로 재생되는 한편 푸른색 유리로 주조된 11점의 말 조각 시리즈가 함께 전시된다. 세계 각지 바다의 명칭을 제목으로 삼는 이 작품들은 실물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각 작품마다 고유의 푸른색을 지닌다. 동시에 작품의 중앙에는 투명한 수평선이 말의 실루엣을 가로지르며, 이들은 곧 각각의 바다 풍경을 온전히 담은 그릇으로 거듭난다. 우고 론리노네의 말 조각들은 작가가 지난 30여 년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탐색해 온 공간, 시간, 그리고 자연의 개념을 상징한다. 각 작품은 물, 공기, (말의 형태로 표현된) 흙, 그리고 불이라는 4원소의 결합체로서, 이는 유리라는 물질로 응축된다. 반면 작품들은 완벽하게 마감된 유리 표면을 넘어 무한한 공간을 향해 나아가는데, 전시장 곳곳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한한 푸른빛을 비추며 ‘빛의 풍경’을 창조하는 프리즘이 된다. 이 안에서 수직적이고 불투명한 관객의 존재는 마치 환영과 같은 말 사이를 이동하며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뮤지엄 산 관계자는 “오늘날 세계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에서 우리는 삶, 인간, 그리고 자연이라는 세 꼭짓점이 조화롭게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삶을 성찰하는 총체적 예술을 표방하는 작가의 작품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우고 론디노네는? 1964년 스위스 출생으로 동시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폭넓은 매체를 다룬다. 파리 퐁피두 센터(2003),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2006),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2013), 상해 록번드미술관(2014), 파리 팔레 드 도쿄(2015), 로마 현대미술관(2016), 님 까레다르 미술관(2016), 버클리미술관(2017), 마이애미 배스미술관(2017),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2021), 멕시코시티 타마요 현대미술관(2022), 프랑크푸르트 쉬른 쿤스트할레(2022), 파리 프티 팔레(2022), 제네바 미술역사박물관(2013), 뉴욕 스톰 킹 아트센터(2023), 프랑크푸르트 슈테델미술관(2023)에서 개인전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2007년에는 제52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스위스 국가관 작가로 참여했다. 2024/04/08
김윤신 '구순의 봄'…전기톱 든 할머니 조각가 '니들이 전기톱 맛을 알어?' 전기톱을 든 '할머니 조각가'가 현재 미술 세상을 접수하고 있다. 일명 '전기톱 조각가.' 공포 영화 제목 같지만 실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에서 40년 간 나무를 썰었다. 아흔 살이 된 올해도 여전히 전기톱을 들고 썰고 다닌다. "나이? 그런 걸 왜 생각해? 나이가 들어서 못한다? 그런 것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구순에 어느 해보다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맞은 조각가 김윤신은 걸크러쉬 매력을 뽐냈다. "한국에 오니까 주변에서 그 나이에 일을 하다니, 저렇게 무거운 톱을 들다니, 그래요. 듣고 보니 새삼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었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나는 나이 상관없이 그냥 작업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열심히 작업하다가 딱 가는 거, 그게 내 소원이에요. 허허.” ◆아르헨티나서 만난 나무가 너무 좋아서…"묶였다" "내가 이 나라에서 전시하게 해 다오!" 김윤신은 직진했다. 아르헨티나 대사관과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가 다짜고짜 밀어붙였다. 동양 여성의 당당함에 놀랐지만 미술관 관장도 만만치 않았다. "작품을 보여 줘야지요?" "두 달 간 시간을 주세요." 한국에서 교수(상명대)로 살다 1984년 아르헨티나 조카 집에 놀러 가면서 일이 벌어졌다. "아름드리 나무가 여기저기 있는데, 너무 부럽더라고요. 단단하니 나무가 너무 좋더라고. 당시 우리나라에 굵은 나무가 없었거든요." 쓰러져 있는 나무를 주워서 길거리에서 나무를 잘랐다. 활톱으로 나무를 써는데 동네 사람들이 전기톱을 쓰라고 추천했다. 그렇게 전기톱과 인연도 시작됐다. 굉음과 썰림의 미학이 이어진 두 달, 2개의 작품을 끝냈을 때 미술관 관장이 와서 보고 감동을 했다. "내가 30년을 관장 생활을 했지만 껍질을 붙인 채로 속살과 겉 살의 공간의 차이를 두면서 제작한 나무 작품은 처음 봤다. 전시 합시다." 전기톱으로 썰고 망치로 두드리면서 1년 동안 30여 점을 만들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 야외에서 펼친 전시는 그야말로 난리법석이 났다. "여기저기서 전시를 하자고 연락이 오고 신문에도 많이 소개도 되다 보니까…묶였어요." 초청 받은 전시가 3년이나 이어졌다. 선택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예술가가 될 것인가, 교수로 남을 것인가.' "내가 내린 결정은, 나는 예술가로 남을 것이다. 그때 결정이 된 거다. 그 순간부터 한번도 쉰 적이 없어요. 계속 작업을 하게 되니까." 우편으로 상명여대(조소과)에 사직서를 보낸 후 40년을 아르헨티나인, 예술가로 살았다.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1969년 귀국해 10여 년간 대학교수로 활동했고, 한국여류조각가회를 설립했던 1세대 조각가의 이민은 한국 미술계의 '인재 유출'이기도 했다. '단단한 나무'는 김윤신을 강하게 했다. 작품 안에 건축적 구조와 응집된 힘이 표현됐다. "섬세하게 정돈된 수천 년 역사의 동양적 사고와 남미대륙의 강인한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무 찾아 삼만리'가 이어졌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멕시코,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브라질에서 머물며 새로운 나무를 찾았고, 오닉스와 준보석을 만나 새로운 재료에 대한 탐구를 지속했다. 200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윤신 미술관(Museo Kim Yun Shin)을 개관했다. '나무 조각가'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8년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 김윤신의 상설 전시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예술가는 이거야.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작업하는, 이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술이라는 건 작가가 직접 해야 한다고 봐요. 내 작품은 한 번도 누구의 손을 거쳐본 적이 없어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는 거예요." ◆생애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 대박…상업화랑 첫 전속계약까지 지난해 남서울시립미술관 전시가 대박이 터졌다. 생애 첫 국내 국·공립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이었다. '김윤신 발견'이라며 열광적인 호평이 이어졌다. 이 전시를 관람한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과 미국의 세계적인 화랑인 리만 머핀 대표가 김윤신에 날개를 달았다. 생애 첫 상업화랑 2곳과 동시에 전속 계약을 맺었다. "1세대 여성 작가인데도 이제껏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작가를 만나 향후 활동을 논의했고 직접 전시를 추진했다. 이 뿐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행사인 2024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참여 작가로 선정, 4월에 베니스로 진출한다. "한국에 돌아올 계획은 없었어요. 아르헨티나에 멋진 공동묘지에 한 자리 예약도 해두었는데…”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인 1935년생 '할머니 조각가' 김윤신의 대반란이 시작됐다. 상업화랑과 베니스비엔날레서 러브콜은 '한국에서 더 일해 보라'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최근 40년 간 삶의 터전이었던 아르헨티나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40년 묵은 짐과 1000여 점의 작품은 아직도 '한국 행 배'에 머물러 있다. 오기까지 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4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멈추게 됐네요. 이제 지구 전부가 저의 전시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힘이 닿는 데까지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회화 조각'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처음부터 합(合)과 분(分)이에요. 합은 나하고 재료가 서로 충분히 이해를 하는 것이죠."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김윤신의 조각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작품의 제목이다. 나무마다 달라서다. "냄새가 향기로운 것도 있고, 생명적인 느낌을 주는 것, 단단한 것, 조금 연한 것, 껍질이 거칠게 있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이 나무가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가를 며칠 동안 보는 거에요." 그러다 딱 느낌이 왔을 때 톱을 들고 나선다. 전기톱과 정신의 합일의 순간, 거침없이 공간이 만들어진다. 손처럼 터치한 톱의 미감은 투박하면서도 원시적인 생명력을 발한다. "하나와 하나가 합이 돼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서 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남잖아요. 그게 '분分'이라는 거에요. '두 개가 하나가 돼서 각각 또 하나를 만든다'는 그런 내용이죠." “합(合)과 분(分)은 동양철학의 원천이며 세상이 존재하는 근본이다. 나는 1975년부터 그런 철학적 개념을 추구해오고 있고, 그래서 나의 작품에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는 두 개체가 하나로 만나며,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서처럼 계속적으로 무한대적으로 합과 분이 반복된다. 나의 정신, 나의 존재, 그리고 나의 영혼은 하나가 된다." 나무를 사랑하는 작가가 초월적 존재에 닿고자 하는 정서는 '염원'이다. 어린 시절 바라본 어머니의 기도에서 비롯됐다. 사라진 오빠를 위해 물을 떠 놓고 기도하며 돌을 쌓던 어머니의 모습은 심상에 각인됐다. "예술 공부를 하면서 미술이 단순히 형태가 아니라 엄마의 보이지 않는 세계, 정신과 혼이 드러나는 것임을 깨달았지요." 이런 기억을 토대로 ‘기원쌓기’가 탄생했고, 다시 나무를 쌓아 올린 형태나 T자 모양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후 형식적 변주는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알가로보(Algarrobo)라는 나무를 좋아해요. 단단하고 묵직하고 생명력 있는 나무죠. 재료 자체가 자연 그대로 살아 있어서 좋아요."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알가로보 나무,라파초 나무, 칼덴 나무, 유창목, 케브라초 나무, 올리브 나무 등 다양한 원목이 그의 손을 거쳐 다채로운 형태의 ‘기도’가 된다. 특히 톱질을 통해 드러나는 나무의 속살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려둔 나무의 거친 껍질이 이루는 시각적 대조는 '김윤신 조각'의 특징으로 차별화됐다. 토속성과 원시성, 추상성을 넘나드는 무기교의 조각이다. ◆화판에 회화·목조각에 채색..'회화 조각 세계에 알리고 싶어" "조각과 그림은 사실 떨어질 수가 없는 거예요." 4월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를 앞두고 국제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목조각 연작과 ‘회화 조각’까지 51점을 4월28일까지 선보인다. ‘회화 조각’은 코로나19 사태 때 만들어진 작품이다. "당시 60세 이상 노인은 꼼짝 없이 안에만 있어야 했어요."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일상 주변의 나무 조각들을 모아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에 몰두했다. 목재 파편이나 폐목을 재활용해 자르고 붙여 색을 칠했다. 심심하니까 시작된 작업은 산골 마을에서 혼자 놀았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게했다. 울타리에서 빼낸 수수깡을 잘라 안경과 소도 만들고, 초를 녹여 물감 비슷한 걸 만들어서 그림을 그렸던 그때처럼나뭇조각에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렸다. "예술이라는 건 어디서 갑자기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알았지요." 목조각에 시도한 채색은 남미의 토속 색과 한국의 오방색에서 영감을 받은 회화 조각은 '기법만 다를 뿐 결국 조각과 그림은 같은 것'이다. '회화 조각'은 회화와 조각을 잇고 나누는 또 하나의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보여준다. “그림을 해야 조각을 하고, 조각을 함으로써 그림을 그릴 수 있지요. 내게 조각과 회화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김윤신의 회화는 화려하고 쨍쨍하다. 원색의 색감으로 완성된 작품은 멕시코 여행을 계기로 아스테카의 흔적을 입기도 하는 등 환경과 심경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제 삶의 흔적을 그대로 표현할 뿐 다른 걸 가미하거나 표현하는 게 아니거든요. 주어진 내 환경, 내 생활 모든 것이 전부 다 내 삶이에요. 그러니 내 삶 전체가 표현되는 거죠.” '이루어지다', '내 영혼의 노래', '원초적 생명력', '기억의 조각들', '진동' 등의 제목의 회화 작업은 판화를 전공한 이력에서도 비롯됐다. 나이프로 물감을 긁는 기법으로 원시적 에너지를 표출하거나, 물감을 묻힌 얇은 나무 조각을 하나하나 찍어내 구사한 다양한 색상의 선과 자유분방한 면을 통해 강인한 생명력의 본질을 찬양한다. “앞으로 조각을 이어붙인 '회화 조각'이라는 것을 연구하려고 결심을 했어요. 이 작품을 세계 미술사에 남기고 싶어요." 뒤늦게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구순의 ‘라이징 스타’는 다시 젊어지고 있다. 예술은 새로운 걸 창작하면서 계속 나아가는 거다. 찰나의 순간을 작품에 잡아내고 있는 김윤신은 황금보다 귀한 '지금'에 충실한다. "예술이 뭐냐고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끝이 없어요. 끝이 없고 완성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요. 매일 아침과 저녁이 반복적으로 오잖아요. 그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죠. 똑같아요. 시작과 끝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냥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죠." 2024/03/23
'제주 핫플' 포도뮤지엄…김희영 "공감전 3탄, 치매 조명" "결국 우리는 육신의 껍데기를 벗고 거대한 흐름속에서 사라져 티끌로 돌아갈 것이다. …삶은 참 잔인하거나 지독할 수 도 있고 풍성할 수도 있었다…당연히 받았어야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 없는 은총이 감사하다."(파스칼) 미술 전시장은 '치유의 공간'이다. 번뇌와 슬픔을 녹이고 산산이 부서진 기억과, 날 선 추억도 뭉클함으로 되살아난다. '감정적인 생기'를 돌게 하는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은 예상치 않게 맞닥뜨린 '선물 같은 전시'다. 제주 포도뮤지엄(총괄디렉터 김희영)에서 마련한 올해 첫 전시로, 노화 가운데서도 인지 저하증(치매)을 조명한다. 회화, 설치, 영상 등 예술가 10명의 작품은 시간에 쫓기는 좀비 같은 삶을 구원 시킨다. '너와 내가 만든 세상'(2021),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2022) 전시에 이은 '공감 전시' 3탄으로, 철학적이고 공감각 넘치는 깊이감을 전한다. 생로병사, 생멸의 운명을 가진 우리가 서로의 연약함과 존엄함을 발견하게 한다. 특히 몰입형 설치미술로 선보인 '테마 공간'은 예술이 어떻게 우리를 치유하는지를 느끼게 한다. 100년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6미터의 거대한 배롱나무는 전시장에서 부활해 생명의 순환성과 회복력을 전한다. 심장박동처럼 울리는 오케스트라 현들의 편안하고 장엄한 선율과 함께 어우러진 작품은 사랑의 마음을 이어지게 한다. 녹음이 우거진 숲 한 가운데 생명의 기운을 머금어 싹을 틔우고, 초록 잎이 무성해지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다가 노쇠한 겨울을 맞이한 후 모든 여정을 마치고 별이 되어 돌아가는 장면이 삶처럼 반복된다. 지난해 포도뮤지엄에서 진행한 ‘추억의 비디오’ 공모전에 참여한 관객들의 실제 비디오 영상도 등장해 공감력을 더한다. ◆포도뮤지엄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치매와 기억의 탐구 "모든 날 중 완전히 잃어버린 날은 한번도 웃지 않은 날이다." 주름진 손으로 백발을 빗고 있는 흑백 사진과 함께 노란벽에 써 있는 글은 김희영 총괄 디렉터가 "이 전시를 해야겠다고 용기를 갖게 한 문구다." 치매를 매개로 기억과 정체성 사이의 관계를 예술적인 시각으로 탐구하는 이 전시는 기억이 무너지는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김희영 디렉터는 "고령화 시대 어느 나라이든 남녀노소 똑같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은 치매"라며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면서 더욱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전시에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캐나다 개념 미술가 알란 벨처(Alan Belcher)의 도자기로 만든 '바탕 화면'으로 시작해 천경우의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로 끝맺음하는 전시는 알찬 포도알처럼 엮어져 진정성이 전해진다. ▲루이스 부르주아 ▲셰릴 세인트 온지 ▲정연두 ▲민예은 ▲로버트 테리엔 ▲더 케어테이커 & 이반 실 ▲데이비스 벅스 ▲시오타 치하루 등 10명의 작품이 하나의 이야기로 흡입력 있게 연결되어 전시 연출력이 돋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20세기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세계적 조각·설치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밀실 1'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미국 글렌스톤 뮤지엄 소장품으로 김희영 디렉터의 '초심 정신'이 통했다. "턱도 없을 것이라며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는데, 흔쾌히 대여해줬다"며 설렘을 보인 김 디렉터는 "복원 전문사가 비행기를 타지 않고 작품과 함께하겠다는 각오로 인천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는데, 뮤지엄의 역할을 하는 적극적인 모습에 감동 받았다"면서 "작품을 공개했을 때 마치 마녀가 살아 나온 것 같은 기운이 전해졌다"고 소개했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문짝들이 벽처럼 둘러 서있는 작품은 문틈 사이로 들여다 보게 한다. 앙상하고 낡은 철제 침대, 유리병과 의료 도구들, 각종 물건들이 가득한 내부는 누군가의 고립된 세월과 위축된 심리를 압축해 보여준다. 루이스 부르주아가 유년 시절 장기간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한 공간으로 그것을 지켜보는 두려움도 서려 있다. ◆참여 작가들 "모든 작품 감정적으로 서로 연결…아름다운 전시" 18일 제주 포도뮤지엄에서 만난 참여 작가들은 전시에 만족한 모습이었다.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작가 데이비스 벅스는 "이번 전시가 생로병사의 주제와 맞닿아 있으면서 폭넓은 분야를 커버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들과 기억과 추억에 대해 많이 대화했는데 누군가 '기억이란 현재가 만들어낸 부속물'이라고 했다며 이 표현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가 실재하고, 실재하는 과거가 계속 진화하는 것"이라는 그는 "사실 기억도 과거도 단지 현재 우리 마음 속에서 어떻게 재해석하고 시뮬레이션하는지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조각난 캔버스와 합판으로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의 풍경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의미의 풍경화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도 여전히 또 다른 풍경을 펼쳐내는 작품이다. 작가는 파괴의 흔적을 그대로 노출해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상실,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새로 제작한 세라믹' jpg 연작'과 파란색 신작을 설치한 캐나다 토론토에서 온 알란 벨처는 "이번 전시를 보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쭉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수년간 방치되었던 노트북을 다시 켠 것처럼 깨진 이미지 파일들을 벽면에 즐비하게 전시한 그는 한때 존재했지만 더 이상 기억해 낼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무력감을 상기 시키며 '기억이 사라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기억과 인지 상실의 주제로 작업해온 이반 실 작가는 "이 전시는 당연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 다양한 작품들의 조합이 흥미롭다"면서 "모든 작품이 명시적인 메시지를 건네지 않고도 연결되는 점이 좋다"고 했다. 설치미술가 민예은은 치매로 인한 쪼개진 기억을 시각화했다. 바닥이 없이 모서리가 날카로운 천장과 벽으로만 이뤄진 작품은 중력에서 벗어나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로버트 테리엔 작품과 함께 선보이는데 마치 한 작품처럼 어울린다. 민 작가는 "로버트 테리엔 재단 관계자들도 '두개의 작품이 브라더 앤 시스터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다며 저도 세트로 묶여서 같이 다니고 싶다"는 기분 좋은 바람을 전했다. 생전 로버트 테리엔과 함께 작업했고 그가 별세 후 재단에서 일하며 이번 전시에 무제(패널룸)를 설치한 폴 채르윅과 딘 애니스는 "이번 전시를 관람하며 밴 다이어그램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모든 작품들이 강력한 개성을 갖고 있고 동시에 감정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전시"라고 평했다. 로버트 테리엔은 미국 출신 현대미술 작가로 평범한 사물의 크기를 확대하거나 축소해 일상적 풍경을 낯선 풍경으로 바꿔 놓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2019년 작가의 작고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2022년 가나아트에서 개인전이 열린 바 있다. 이반 실 작가는 "소리와 회화를 같이 연출하는 공간으로 무엇이 가장 좋을까 뮤지엄측과 지속해서 대화하며, 다양한 아이디어가 순환할 수 있게 이번 전시를 구성했다"면서 "기억과 인지가 소실되어가는 과정 속 현실의 급변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둡고 폐쇄된 원형 극장 같은 공간에서 회화 연작과 향수를 자극하는 멜로디(텅 빈 환희의 끝 어디에나)와 함께 작품을 선보인다. 기억이 점점 소실되어 가는 초현실적인 그림은 부드러운 조명으로 인해 영상을 보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전한다. 그는 "결국 누군가 인지 저하를 겪게 되면 가장 슬퍼하는 사람들은 남은 가족들로, 지금까지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런 느낌을 진지하고 약간 암울한 느낌의 공간으로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의 흑백 사진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뭉클함을 전하는 사진 작가 셰릴 세인트 온지는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와 함께 만든 작품을 아름다운 제주에서 선보일 수 있어 영광"이라며 환한 모습을 보였다.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 제 작품을 보며 새로운 의미가 전달되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고, 엄마와 함께 한 내 작품을 보면 기운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흡족해했다. 쉐릴 세인트 온지의 어머니는 2015년 혈관성 치매를 진단 받았다. 농장에서 수십 년 간 함께 살아온 모녀가 공유하던 추억과 감정은 어머니의 기억과 함께 점점 상실되어 가는 듯해 작가는 사진 작업을 중단했다. 그러다 나른한 햇살이 창에 스며드는 어느 날 오후에 문득 작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변했다. 어머니의 삶 속에서 가볍고도 명랑한 순간들을 포착하기로 결심했다. 작가가 아이폰과 대형 카메라로 담아낸 어머니 모습은 장난꾸러기 아이 같고, 수줍은 소녀 같기도 한 노인의 모습이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됐다. 김희영 총괄 디렉터는 "초고령화 사회에 점차 많은 인구가 겪게 될 인지 저하증이 처참한 질병이 아닌 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사회적 공감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 전시를 기획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이 따뜻하게 교차되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아름다운 날들을 함께 그려갈 수 있기를 소망 한다"고 전했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에 이어 2층에서 보너스 같은 전시도 펼친다. 포도뮤지엄 새 프로젝트인 '아카 인 포도'를 진행, 김지영·강서경의 작품을 전시했다. 예술을 통한 지역적 경계를 넘는 대화와 연결의 장을 추구, 아시아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소개할 예정이다. 전시는 20일부터 1년 간 열린다. ◆제주 포도뮤지엄은? 제주 안덕면에 위치한 포도뮤지엄은 겉으로 작아보이지만 내부는 길게 이어진 대형 전시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이 총괄 디렉터를 맡아 2021년 4월 개관했다. 미래의 가치와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다목적 공간을 표방한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 가운데서 주제를 선정해,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나누고 타인의 입장에 공감해 보자는 취지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전시에 풍부한 서사를 부여하고, 현대미술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해 여행객들의 '제주 핫플'로 부상했다. 2021년 4월 개관전인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은 12만 명이 관람하며 입소문을 탔다. 군중 심리에 선동이 가미 되었을 때 혐오가 탄생하는 해악성을 탄탄한 구성으로 풀어내 호평 받았다. 2022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빠’로 관람해 화제가 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전시는 이주민과 소수를 향한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드러내며 이들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감해 볼 것을 제안했다. 포도뮤지엄 소장품인 세계적인 인기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27명의 광대가 등장하는 설치 작품을 전시해 특히 주목 받았다. 당시 7월 초 종료 예정이었던 전시를 연장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2개월 연장과 무료 개방을 하기도 했다. 2024/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