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 미디어아트로 개관전 연 이유? 3일 아모레퍼시픽그룹 미술관이 공개됐다. 서울 한강로 신용산역과 연결된 신사옥 1층에 마련된 미술관은 동시대 최첨단 미술의 향연을 보여준다. 개관 기념전은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작가 라파엘 로자노 헤머(52)의 작품이 들어찼다. 26년간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대중과 교감해 온 미디어아티스트다. 이 전시는 작가의 최초 한국 개인전이자, 아시아 회고전이다. 미술관측은 "작가가 강조하는 사람과 관계, 공동체의 가치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잘 맞기 때문에 첫 기획 전시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활발히 펼쳐온 작가답게 전시는 '함께', '다같이'를 추구한다. 미디어아트의 기본은 인터렉티브(interactive)다. 작품은 관람객이 참여해야 완성된다. 작가를 알린 1992년도 초기작 'Surface Tension'(표면 긴장)부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맞춘 신작 5점을 포함, 총 29점을 전시했다. 사옥 1층 미술관 로비부터 작품이 시작된다. 지름 3m의 거대한 3D 원형 조각 'Blue Sun'이 끌어들인다. 지난 10년간 태양에 대해 나사(NASA)와 작가가 협업한 결과물로, 태양 표면에서 포착되는 불꽃과 얼룩, 요동치는 움직임이 원형으로 구현됐다. 작품은 342개의 널에 부착된 25580개의 LED 전구들이 켜졌다 꺼졌다 하며 오로라같은 신비함을 선사한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과 퀘백 현대미술관의 공동지원으로 제작됐다. 지하 전시장은 그야말로 '한바탕 놀이마당'처럼 연출됐다. 첫번째 작품은 '모래판'이 등장한다. 미국 LA의 산타 모니카 해변에서 진행한 공공프로젝트를 실내로 옮겨와 거대한 인공 해변을 꾸몄다. 70톤의 모래를 깔아놓은 작품은 관람객이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다. 신발을 벗고 모래판에 들어가 움직이면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 미술관측이 작가에게 제안한 작품으로 가장 예상밖의 즐겁고 새로운 작품이어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다.서로 만지고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 바라보고 함께 있다는 느낌을 경험으로 완성된다. 하나의 놀이로서 관람객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이 컨셉이다. 나의 지문을 기록할수도 있는 작품도 있다. 220배로 확대 가능한 전자 현미경과 심장 박동 측정기가 내장된 센서에 손가락을 넣으면, 센서를 통해 지문이 곧바로 화면의 가장 큰 칸에 나타나며 심장박동에 맞추어 진동한다. 지문을 사용한 일종의 죽음의 상징, 즉 메멘토 모리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마치 거대한 영상 회화처럼 보인다. '우리는 같은 사람, 인간'이라는 것을 벅차게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240 개의 투명 백열전구로 구성된 'Pulse Room'은 검은 방의 울림을 심장소리로 완성한다. 전시장 한 켠에 위치한 내장된 센서를 두 손으로 잡으면 심장 박동을 측정한다. 관객이 인터페이스를 잡으면 컴퓨터는 맥박을 감지하고, 참여자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전구가 맥박의 속도에 따라 깜빡이기 시작한다. 인터페이스가 측정한 데이터가 전시장에 방출되는 순간, 모든 전구들은 꺼지고 기록된 시퀀스가 한 칸씩 이동하며 빛을 내며 심장 박동소리로 맹렬하게 화답한다. 전시된 모든 작품들은 키네틱 조각, 생체측정 설치작품, 사진, 상호반응 우물, VR, 나노 기술, 사운드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구현됐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뉴스, 문학, 취조실 거울, CCTV와 같은 감시장치 등이 작품 내용을 구성하며, 맥박, 목소리, 지문, 초상, 발화시 공기의 파장, 인체의 움직임, 상대방과의 거리 등 우리의 몸과 움직임이 인터페이스로 활용된다. 데이터 과학 용어이자 이번 전시 제목인 ‘Decision Forest’는 관람객의 선택, 그리고 관람객과 작품의 상호작용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값을 의미하기도 한다. 3일 한국 기자들을 만난 라파엘 로자노헤머 작가는 "지난해 4월 방한해 공사중인 신사옥을 보면서 구상한 전시를 완성했다"며 "1992년 최초 작품부터 월드 프리미어 5점이 포함되어 있어서 중간 회고전 성격이다. 한국 관객이 어떻게 봐줄지 긴장되고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캐나다 콘코디아대학교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작가는 컴퓨팅 기술을 예술화해 대중과 예술의 쉬운 소통을 주선하고 있다. 최신 기술을 이용하는 미디어아티스트 작가인데 "뉴미디어로 불리는게 싫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은 전혀 새로운게 없다"고 했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컴퓨터, 프로젝터, 사운드 디바이스, 센서, 로봇 등 전자 기기 기술을 이용한 대규모 인터랙티브 설치를 통해 관람객과 실시간 소통하는 작가로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미디어아티스트로서 "대중을 작품의 일부로 참여시킨 것에 대해 백남준에 빚지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의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더욱 궁금해 했다. 작가는 그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과 교감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작품 일부가 되어 직접 체험하고 느끼라고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전시가 끝난후에야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즐겼다, 어떻게 반응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 같아요. 작품 전반이 테크놀러지의 양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여서, 과연 이것이 유희적일지, 무섭고 폭력적일지 그 반응이 무척 궁금합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전은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걸린 그림, 세워놓은 조각이 아니라, 미디어아트를 선정한 건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의지다. 관람객이 작품에 끼어들도록 유도하는 전시 작품들처럼 대중과 가깝고 친밀하게 소통하는 미술관이 되겠다는 바람이다. 신사옥과 함께 눈길을 끌지만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첫 개관이 아니다. 1979년 태평양박물관이 모태다. 2009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꿔 경기도 오산과 용인에서 미술관을 운영해오다, 올해 2월 신사옥으로 들어왔다. 우리나라도 '박물관·미술관 1000개 시대'지만 미술관 문턱은 여전히 높다. 서울에만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은 10곳이다. 삼성미술관리움(삼성), 아트센터나비(SK), 아트선재센터(대우), 금호미술관(금호아시아나), 성곡미술관(쌍용), 대림미술관(대림), 한미사진미술관(한미약품), 포스코미술관(포스코),세화미술관(태광그룹), 일우스페이스(한진그룹)등이 있지만 대중들과 공감을 이루는 미술관은 손에 꼽기 힘들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열린 공간’을 표방하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또 하나의 '재벌 미술관'이 될지, '열린 미술관'이 될지는 기획력에 달렸다. 이번 개관전에 초대된 라파엘 로자노헤머 작가가 말했다. "한국에도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가 많다. 문경원·전준호는 물론, 장영혜중공업, 최우람 작가와도 친하다. 그런분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그런면에서 '재벌 미술관'들의 개관전은 늘 해외 작가로 열리는 건 아쉬운 점이다. 전시는 8월26일까지. 관람료 1만2000원. [email protected] 2018/05/03
대충 그렸는데 쿨내 진동...알렉스 카츠 "저는 앤디워홀에 약간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 뛰어납니다." 최근 미국 뉴욕 가고시안갤러리 출판담당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인 데릭 블라스버그와 인터뷰에서 그는 "1960년대 함께 활동했지만 워홀을 파티에서 보기만 했을뿐 어울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좀 더 문학적인 모임에 속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쩔수 없다. 그의 작품에서는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1928~1987)의 그림자가 있다. 영화 장면같거나, 광고판 같은 그림이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을 내세운 초상화 같은 작품으로 일명 '카츠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알렉스 카츠(91). 독창적인 초상회화 세계를 구축한 그는 현재 '현대 초상 회화의 거장'으로 불린다. 1960년대 이래 인물초상을 그리며 가장 '뉴욕적인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앤디워홀이 '미술계 끝판왕'으로 활약했던 1960년대 알렉스 카츠도 뉴욕에 살고 있었다. 미국 산업사회 부흥기와 함께 뉴욕은 TV, 영화, 광고 등 새로운 미디어의 도시이자 바넷 뉴먼, 프란츠 클라인으로 대표되는 색면 추상, 잭슨 폴록의 올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 제스퍼 존스, 앤디워홀의 팝아트 등 새로운 시각 예술이 공존하는 예술의 도시였다. '부흥의 도시'에서 화가로 살아내야 했던 그는 특정 미술 사조에 편승하지 않았다. 다만 거장들의 기법을 모방해 섞었다. 색면과 인물의 모습을 결합한 카츠만의 독창적인 '초상화 스타일'을 창조한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과 앤디워홀 팝아트, 또 '액션 페인팅' 잭슨폴록의 기법이 들락날락한다. 가장 큰 특징은 단색의 대형 화면에 인물을 배치하는 것. ‘크롭-클로즈업’의 방식을 이용한 대담한 구도로, 광고 사진이나 영화의 클로즈업 장면 같아 관람자가 인물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이 같은 기법은 '카츠 스타일'이 됐다. 그림은 묘하다. 팝아트도 아니다. 최근에 제작한 작품 '코카콜라'는 브랜드명도 없지만, 색채만으로 코카콜라를 보여주며 여유와 휴식을 나타낸다.앤디워홀의 작품 '캠벨수프', '코카콜라'와 다른 차이다. 워홀의 코카콜라가 대통령도, 마릴린 먼로도 마시는 기회와 평등의 나라의 가치를 보여준다면, 카츠의 '코카콜라'는 평등의 의미보다는 쿨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전한다. 특히 선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면서 선과 색, 브랜드의 이미지가 결합된 새로운 화면을 보여준다. 캘빈 클라인 속옷을 입은 작품도 마찬가지. 캔버스는 카메라의 프레임이 되고 캘빈 클라인 로고에 담긴 자신감과 세련됨이 독특한 화풍으로 완성됐다. 거장이라고 하는데,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대충 그린 느낌이 강하다. 배경도 명암이나 그림자도 없이 단색으로만 칠해져있다. 여성의 동작을 포착하며 순간 순간의 제스추어에 집중하는 그만의 기법이다. 이 때문에 젝슨폴록의 페인팅을 이어받았다는 평이다. 자세히 봐도 더욱 결코 잘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균형이 맞지 않고 왜곡된 느낌을 연출한다. 이주은 미술사학자는 "순간 포착을 하기때문에, 카츠가 순간에 봤기 때문에 너무 공들여 그리면 그 느낌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며 "카츠가 그린 인물은 현재성에 가두어놓은 작품"이라고 했다. "초상화속에 인물이 가진 상징이 아니라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속적인 현재 시제속에 머물게하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감수성을 입힌 작업"이라는 것. 구상과 추상이 혼성되어 있는게 '카츠 스타일'의 매력이다. 배경을 한가지 색으로만 칠해 색면추상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마크 로스코처럼 영혼이 깃든 것은 아니고 '쿨하고 세련되게' 사물을 바라본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물어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장르인 초상화를 가장 아방가르드한 기법으로 재해석해냈다는 평가다. '카츠 스타일'을 한자리에서 볼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롯데뮤지엄은 ‘알렉스 카츠, 모델&댄서’전시를 25일 개막한다.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개최되는 대형 전시로 초상화, 풍경화, 설치작품(컷아웃)등 7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올해 92 세의 고령에도 열정적으로 작업한 최신작 CK, 코카콜라 시리즈를 세계 최초로 서울에서 공개하는 의미있는 전시다. 전시에는 60여년간 평생을 그려온 영원한 뮤즈인 부인 ‘아다(Ada)’ 작품도 나왔다. 카츠의 화면에서 아다는 우아함과 신비함을 가진 주인공이다. 뉴욕 상류사회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단색의 대형 화면에 클로즈업된 인물을 배치하는 카츠만의 표현방식은 아다의 고혹적인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했다. 알렉스 카츠는 그의 부인 ‘아다’의 초상화를 250여점 이상 그렸다. 아다를 만난 1957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다를 그려내고 있다. 카츠의 초상화가 인기를 끌수록 아다는 아름다움의 표본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카츠도 자랑스럽다. "아다는 유럽적인 아름다움과 미국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진 완벽한 모델이다. 만약 그녀가 지금보다 2인치만 더 컸다면 미스 아메리카가 되었을 것"이라며 "그녀는 무용수와 같이 풍부한 제스처를 표현해주었다. 나는 진정한 행운아”라고 했다. 아흔이 넘은 그는 여전히 주 7회 매일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전업화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족을 부양하고 싶었지만 일이 풀리지 않았다. "작가로서 삶을 산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대가들과 경쟁하고 싶었다"고 했다. 늘 거대한 화면에 그림을 그리는 카츠는 "제품을 생산하고 싶지는 않다"며 워홀의 후예들과는 다르다는 뉘앙스로 선을 그었다. "내 작품들은 전부 다 다른 사이즈의 캔버스에 그려지고 소재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고 자부했다. 간단하고 쉽게 보이는 만화같은 작품이지만 "내 작업의 근간은 사실에 기반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 도록에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새로운 댄서 시리즈는 그들이 보여주는 표정과 제스처를 묘사하고 있다"며 "캘빈 클라인과 코카콜라시리즈는 현실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러브콜하는 작가로 현대미술 대가가 된 알렉스 카츠는 1951년부터 200여 건의 개인전과 500여 건의 단체전을 진행했다. 메트로폴리탄, 모마 미술관, 휘트니, 브루클린,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사치 컬렉션, 테이트 미술관 등 전 세계 100곳의 국공립 미술관에 알렉스 카츠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살아남은 자가 강자다.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보다 오래 살아남은 그는 '세계 10대 화가'로 등극해 동시대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뉴요커'로' 뉴욕 사람들'을 브랜드화해 '뉴욕적인 화가'로 불리는 카츠는 결국 '삶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왜 현대인들은 '카츠 그림'에 열광하게 됐을까. 현실은 예측할수 없는 변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써놓은 알렉스 카츠의 '쿨내 진동'하는 멘트가 힌트다. "그림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신에게 그림이 필요할 뿐. 그림이 바로 당신이 되어야 한다." 전시는 7월23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4/24
'오용길'로 통하는 '수묵대길' 조선시대 겸재 정선(1676~1759)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한국화가 오용길(70)이 있다.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창시했다면, 오용길은 진경산수화를 이어받아 21세기 버전으로 업데이트중이다. LTE급으로 급변하는 현대미술 흐름속에서도 한눈 팔지 않았다. 먹과 붓, 지필묵이 사라져가도 오로지 '수묵 풍경'에 천착했다. 50년째 한 길로 걸어오자 한국화단은 '오용길'로 이어졌다. 올해 고희가 된 그는 겸재 정선처럼, 새로운 그림을 그려냈다. 지난 몇년간 중국의 명산들을 돌아본 후 터지는 감탄을 화폭에 담아냈다.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오용길 개인전은 한국화단의 기념비적인 전시로 기록 될 것 같다. 100호에서 500호, 2m~3m 이상의 대작들로 웅장하고 수려한 명산의 모습을 포착한 수묵 산수풍경이다. 중국의 명산 (황산, 무이산, 태행산, 안탕산)을 다룬 그림 25점을 걸었다. 생동감 넘치는 봄 풍경을 담은 그림은 수묵담채의 깊은 여운을 살려 빼어난 동양적 미감에 압도된다. 작품에 달린 '태행(太行)'이라는 제목이 이번 전시를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중국의 명산을 만난 과정이 오 화백에게 큰 감흥과 행보였음을 보여준다. 맑고 파릇파릇 청아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나무와 온갖 식물들이 대형 화면속에 어우러져, 감상하고 있으면 마치 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흡입력이 느껴진다. 근경과 중경은 오용길 특유의 잔붓터치로 마감한 담필의 특성을 제대로 살렸다. 가까이 보면 나무 이파리들, 풀 하나에도 생명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원경에 배치된 산의 묘사는 하늘과 맞닿을 만큼 높게 치솟은 기암절벽을 먹색의 연한 담묵으로만 처리함으로써 그 규모와 멀어져가는 자태를 보기 쉽게 대비시켰다. 덕분에 기운생동하는 암벽의 특성을 유지함으로써 풍광의 장엄함과 함께 대형 화면의 긴장감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먹으로 그린 그림, 촌스러운듯 하지만 직접 보면 그 생각이 변한다. 꼼꼼하고 차분하게 이어지는 화면속 리듬과 풍경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옛날 그림 같지만, 우리가 늘 보고 느꼈던 풍경을 거울처럼 비춰내고 있다. 늘 사생을 다니고,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깊은 수묵의 전통미와 신선한 현대적 미감이 교묘하게 융합된 하모니는 새삼 놀라움을 선사한다. 화면 곳곳에 작게 등장하는 점경인물을 찾아보는 맛도 있다. 나들이 나온 듯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등산복을 입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점경인물의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법은 오용길 수묵풍경만이 갖는 특별한 장치다. "일부러 엉뚱하게 그려야 대접받는 시대다. 나처럼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오용길이 그린 그림에 갈채를 보내지만 현대미술 흐름으로 보면 완전 구닥다리다. 하지만 나는 구닥다라라도 상관없다." 전시장에서 만난 오 화백은 자신을 '구닥다리'라고 칭하면서도 즐거움이 넘쳤다. "그림같지 않은게 그림 대접받는 세상은 짜증나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 나는 나 좋은대로 해왔다"며 "나만큼 먹을 잘 다루고 사물을 다뤄 본 사람 있냐, 나는 늘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1980년대부터 그는 실경산수화를 발표해왔다. 기존의 관념적 전통산수화에서 탈피해 친근한 풍경을 다룬 수묵화로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시작한 매화, 산수유, 벚꽃 등을 화면 가득히 그린 화사한 그림은 작가 특유의 화풍으로 많은 작가들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80년대 미술시장에서 이왈종, 이숙자, 황창배, 박대성 등과 함께 스타작가로 꼽혔다. 90년대 서양화의 인기속에 인기 작가들도 '서양화같은 한국화'로 변했지만 그는 먹을 놓지 않았다. 한국화 전문 화랑도 동양화를 외면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전통 수묵화의 대를 이으면서 현대적으로 계승한 독보적인 한국화가로 꼽힌다. 이제 한국 미술사를 이야기할때, 오용길을 빼고는 안될 정도로 존재감 있다. 수묵담채화 대가인 그는 "무엇보다 그림은 품격이 있어야한다"고 정의했다. "서울예고때 김병기 선생이 해준 말씀으로, 지금도 마음 바닥에 그 말이 있다"고 했다.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27세에 1973년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한국화의 권위있는 상인 월전미술상·의재 허백련 예술상·이당미술상·동아미술상 등 상이란 상은 휩쓸었다.1978년 수도사대 교수가 된후 이화여대로 옮겨 미대 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이자 한국 수묵화의 맥을 잇는 후소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화가가 된 건 "팔자"라고 했다. "어떤 시절에 누구를 만나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가 중요하다. 난 태어날적부터 끄적거렸고, 내가 봐도 잘 그렸네! 할 정도였다. 그림 그리는게 좋았다. 누구도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예고에 들어갔다. 당시에 형과 누나가 소질을 살려야 되는 세상이라니까 부모님도 그냥 보내주었다. 좋은 학교 들어가니 좋은 선생을 만났고 교수가 됐고, 그래서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다"며 "그런대로 팔자가 좋았다"며 미소지었다. 한국화를 전공한 것도 그냥 좋아서였다. "중학교때였다. 경복궁 향원정 건물에서 국전을 선보였다. 그곳에서 본 동양화는 멋있고 가슴이 뛰더라. 유화도 있었는데 칠한 물감이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먹으로 그린 작품을 보면 와우~감탄이 났고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한게 벌써 50여년이 넘었다" 왜 그림을 좋아했을까?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좋은데, 시켜서 하는건 안돼, 좋아서 해야지." 그는 그림처럼 담담하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그건 욕심쟁이"라면서 "무리없이 대학도 가고, 교수도 됐고, 화가로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그림이 부끄럽지 않게 나오니까" 화가로서도 만족한다고 했다. '한국화가 죽었다'는 세간의 말들과 달리 그의 해법은 단호했다. "한국화 작가들이 좋은 것을 보여주면 되는데, 그게 약하다. 박대성 화백같은 비중있는 작가들이 많아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런 작가가 많지가 않은게 문제다" "젊은작가들도 지필묵을 아예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화는 몇년해서 되지 않는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견딜 재간이 없다. 환호와 반응도 없고, 그러니 얄궂은 울긋불긋 그림으로 가지 않나" 한국화 호시절도 있었다. 그는 "80년대는 한국화가 걸리기만 해도 팔리던 시대였다"며 "당시 송영방 이영찬 이종상 같은 선배들이 한국화 붐이 일었을때, 일명 '돈맛'을 본 세대였다. 이젠 그 세대가 너무 조용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 화백은 "급변하는 시류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화단은 좋은 작가들이 좋은 그림을 보여주면 살아난다. 한국화가 침체된 요인 중 하나가 작가들이 좋은 것을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대규모 전시장으로 웬만한 화가들이 엄두를 못내는 전시장이다. 대개 그룹전과 아트페어로 활용하는 전시장으로 이번 오 화백의 전시는 그래서 주목된다. 최근 몇년간 보기 드문 대형 한국화전시여서 이례적이다. "나는 자랑할게 있다면 내 그림에는 누구하나 털끝 하나 안 건들었다. 오용길이가 다했다, 이건 자랑"이라며 활짝 웃었다. 주변에서는 젊은 작가들보다 더 왕성하게 작업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지런하고 성실함과 정확함은 오 화백의 최고 덕목이다. 이번 전시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차곡차곡 그려 쌓았다 공개하는 신작이다. 중견작가의 잠재된 역량과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는 대작을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서양화 일색인 현대미술시장속에서 한국화는 죽었다고 단정하는 시선이 있지만, 제 몫을 해내는 중견화가의 활약이 있기에 한국화의 또다른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당연히 하겠지. 조바심 낼 것도 없고, 좋은 것 계속 보여주면, 오용길 안 부르고 누굴 부르겠어. 입으로 떠들어선 안돼. 이번 그림 보고 아, 역시~오용길이는 한국화에서 빼먹으면 안되겠네 이런 소리 나올 것 같지 않아?" 나이 70에도 대형 작품을 완성해 전시하는 화백은 신바람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인 '오용길 삼행시'를 건네자, 역시나 자신감과 자부심을 과시했다. 오~. "오호라" 용~."용길이가 힘 좀 썼네" 길~. "길길이 날뛰면서, 좋아하면 미쳤다고 그렇겠지? 하하하!" 전시는 21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4/14
강박증이 만든 그림...최병진 '팟홀' 최근 몇년간 미술시장서 보기 드문 화풍이 등장했다. 매끈한 극사실회화와 팡팡튀는 팝아트류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면, 이 그림은 한마디로 규정할수 없어서 신선하다. 그렇다고 아주 색다르거나 독특한 기법은 아니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오래된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감이 묘한 '표현주의나 입체파 그림' 같기도 하다. "미술사적으로 접근한건 아니다. 파편화돼 보인다는 그런 느낌때문에 차용했다." 화가 최병진(45)은 예술가로서의 천형을 견디고 있다. 말로는 글로는 쓸 수없는 느낌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그림은 모든 걸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라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의 그림은 자신의 몸에서 나온다. '강박'과 '콤플렉스'가 작업 밑천이다. 13년전부터 시작된 강박증 때문이다. 강박에 쌓일때면 일어나는 "경화되는 느낌"이 강력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물질의 위협과 공포는 상상이 더해져 "숨을 쉬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압도된다. 병원에서도 딱히 치료법은 없다.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치료가 고작이다. 강박이 시작되면 몸이 딱 굳는다. "공포에 감각이 곤두서며 살결에 닿는 모든 공기가 느껴지고 임계점(臨界點)에 다다르면 서서히 얼어붙는 것 같은 말로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그러다 "작업으로 해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이전에도 그 같은 증상이 나왔지만 밖으로 나타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틀안에 가두고 감췄다. 그 '경화된 느낌'을 화폭에 끄집어내자 증상이 완화되는 듯했다. 강박으로 일어나는 기분 나쁜 몸의 변화와 그 체험을 그려본 작업은 공포의 무게와 강박의 공기를 점점 누그러트렸다. 그렇게 나온 그림은 철벽을 두른 듯하다. 회색의 조각들이 들러붙어 얼굴을 감싼 그림, '초상 시리즈'가 탄생한 계기다. 강박을 그려내면서 점차 자아의 실마리를 찾아갔고, 무심코 콤플렉스가 고개를 다시 들었다.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소년으로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화폭은 다시 콤플렉스를 꺼내왔고, '군상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자신의 강박과 콤플렉스를 '팟홀'에 빗대어 설명했다. "반복해서 복구해도 비가 오면 다시 드러나는 팟홀처럼 인간의 강박과 콤플렉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극복되리라 기대했지만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는 것. '팟홀'은 하천 침식작용에 따른 기반암의 구멍이나, 빗물에 의해 도로 아스팔트 포장에 생기는 구멍을 말한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팟홀(Pothole)'을 주제로 최병진의 제 4회 개인전을 열고있다. 2007년 그룹전에서 이화익 대표가 눈여겨본 후 2012년 개인전을 열었고, 6년을 기다려 최병진의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초상 시리즈와 군상시리즈 25점을 걸었다. '초상' 시리즈가 강박을 테마로 삼고 있다면 '군상'시리즈는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가 뿌리다. '군상 시리즈'중 이번 전시 대표작으로 내세운 '사랑의 막대기'는 작가의 성장기 성적인 콤플렉스를 표현했다. 남자 3명이 기둥에 묶여 있는 그림에 대해 작가는 "보이지 않는 막대기를 짊어지고 뭔지 모르지만 신체를 부벼가면서 싸우는, 늪에 빠진 것 같았던 삐뚤어진 학창시절을 담았다"고 했다. 웬지 '겉늙어'보이는 인물들은 작가의 모습이다. 그는 "나이를 먹어도 콤플렉스가 하나도 해소가 안되고 컸구나라는 생각이 이 작업의 동기가 됐다"며 "그래서인지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모습과 그로데스크하게 신체를 왜곡시키고 자연스럽게 명암과 면을 파편화시킨 작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성장기의 콤플렉스'를 담아낸 군상 시리즈는 자조적인 유희, 블랙 코미디에 바탕을 뒀다. ‘어른의 탈을 쓴 미숙한 청년’같은 화면속 인물들은 꽉차게 들어앉아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준다. 작가는 "꿈틀대고 일그러진 몸짓, 접촉하여 욕구를 채우는 인물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배치되는 공간을 좁아보이게 왜곡시켰다"면서 "결여를 채우지 못한 채 시간에 의해 어른으로 포장되어서 어색하게 자리 잡은 나의 모습"이라고 했다. 평면이면서 입체적으로도 보이는 작품은 탄탄한 기본기로 무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미술입시를 거친 예원예고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작가의 '강박'과 '콤플렉스'가 완성한 그림은 아이러니하다. 회색톤의 철갑을 두른 듯한 '초상 시리즈'는 마치 게임속 캐릭터 같아 재미있다는 반응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보는이의 다양하고 열린 해석이 그림의 매력이다. 대개 그림 제목에 '무제'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게임 캐릭터 같은 초상 시리즈는 군상시리즈와 달리 제목이 없다. 딱딱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숫자를 달았다. 전시는 30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4/12
'내일의 작가'...노화랑 '新 200만원'전 서울 인사동 노화랑이 개관 40주년을 맞아 새 변신에 나섰다. 매년 봄이면 완판 행진하던 '200만원'전을 올해는 '미래 작가'들을 화려하게 선보인다. 1999년 '미니아트 마켓'을 타이틀로 매년 봄 열어온 '작은 그림-200만원'전은 미술시장 대중화의 활력이다. 국내 유명원로 작가 소품 한점을 200만원씩 파는 이 전시는 작품을 걸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이두식 윤형근 서세옥 민경갑 송영방 이우환 하종현 이왈종 전광영등 원로부터 이석주 황주리 이수동 주태석 지석철 등 중견작가까지 매년 20명의 작가당 10점씩, 200점이 순식간에 솔드아웃되는 사태로 노화랑은 해마다 즐거운 비명이었다. 안전하게 진행하던 '효자 아이템’을 제치고 젊은 작가로 새 기획전을 여는 건 인사동 터줏대감 화랑의 사명감때문이다. 노승진 대표는 "그동안 일반 미술애호가들이 컬렉션하기 쉽지 않은 중견과 원로작가들을 선보이며 미술시장 대중화에 나섰다면, 올해부터는 유능한 작가들을 소개해 새내기 미술애호가들의 컬렉션 진입문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미술시장의 성장은 예술성 높은 작품과 진정으로 미술문화를 사랑하는 미술애호가들을 확대하는 것"이라는 그의 화랑 운영 철학이다. 새 봄 전시 타이틀은 ‘내일의 작가-행복한 꿈’이다. 올해는 김덕기, 김동유, 노세환, 박성민, 박형진, 송명진, 윤병락, 이강욱, 이동재, 이호련 작가가 초대됐다. 이들 작가 10명의 3~12호 소품 100여 점을 전시 판매한다. 점당 판매가격을 시중보다 최고 30% 낮은 균일가 200만원으로 책정했다. 김덕기는 가족 모두가 꿈꾸는 행복을 화려하고 즐겁게 그림에 담아낸다. 색채는 점점 더 화려하고 과감하고, 현란하게 변화하고 있다. 김동유는 이중초상, 크렉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일이 더 많은 그의 작품은 작은 픽셀을 쌓아 제작하는 작가다. 유명인의 초상으로 또 다른 유명인을 그리는 그의 작품은 이진법을 사용하는 디지털과 닮아 있다. 노세환은 회화작가같은 사진작가다. 바나나는 바나나고 사과는 사과인데, 작품 속에 흐르는 에로틱한 느낌이 그의 작품을 약간 낯설게 한다. 박성민은 얼음 속에서도 싱싱하게 빛나는 식물과 과일을 사진보다 더 정밀한 극사실화로 담아낸다. 박형진은 동화같은 그림이다. 연한 초록색을 품은 커다란 새싹, 역시 화면 전체를 차지할 만큼 큰 개와 아이를 주로 그린다. 송명진은 눈에 친숙한 것들인 것 같지만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윤병락은 사과작가로 재현의 정치경제학이 작동되는 현대사회의 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강욱은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세포와 생물, 가시공간과 비가시공간을, 이동재는 쌀을 하나하나 붙여 형상을 만들고, 유명노래의 알파벳을 하나씩 붙여 제작한다. 이호련은 섹시한 작가로도 알려져있는데 여인들의 옷차림과 포즈를 통해 관음증을 자극하는 작품을 보여준다. 이번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서울대, 홍익대, 중앙대, 경희대, 동국대, 경북대, 목원대 등 출신 학교도 모두 다르고, 40대에서 50대 초반으로 연령도 다양하다. 그만큼 개성이 뚜렷하다.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없고, 주제와 소재 역시 개성이 두드러져 이들의 그림은 말 그대로 한국현대미술의 다양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한국현대미술이 다양함과 복합성을 갖추어 나가고 있을 정도로 작가 계층이 두터워졌다. 다시 말하면 미술시장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미술애호가 계층도 확대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미 화랑가에서 유명세를 탄 작가들을 모은 전시라고 치부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작가들이 소품을 내놓기는 더욱 이례적인 전시로 화력 40년의 노화랑 내공이기에 가능한 전시다. 대부분 10여년전 미술시장 호황기때 작품이 날개돋힌듯 팔려나간 '스타작가'로 경쟁 아닌 경쟁을 해왔다. 이들은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 기획전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화랑과 국내외 옥션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며 믿고 사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작품들은 제각각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소재와 기법의 차별화는 있지만 모두 '노동집약적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작다고 허투루 그린 그림이 아니다. '스타 작가'들의 100점이 걸린 이번 전시, 과연 누구 작품이 먼저 완판 될지 주목된 가운데 윤병락, 김동유, 이동재 작품이 벌써 품절됐다. 작가들도 긴장모드다. 전시는 20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4/09
혼족 시대 '가족 판타지’ '머니 머니' 해도 가족이 최고다. 늘 함께해 투닥거리며 웬수같아도 가족은 '우리 편, 내편'의 최전선이다. 가족에 죽고 사는 작가 하면 미술시장에서 화가 김덕기(50)가 꼽힌다. 가족을 소재로 동화같은 풍경화를 담아낸다. 밝고 경쾌한 색감으로 가족의 행복을 전달한다. 그림은 작가의 그림일기다. 서울에서 10여년간의 교직생활을 접고 경기 여주로 내려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한적한 마을의 정원이 딸린 주택에서 아내, 아이와 함께 지낸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화폭에 풀어낸 작품은 화려함으로 눈부신 그림처럼 "가족이야말로 삶을 지탱해주는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아이가 그린듯한 사람들과 현란한 원색에 가려졌지만, 그림속을 살펴보면 민주적이다. 똑같은 크기로 반복적으로 찍은 점점점이 '화룡정점'이다. 나무와 나무, 꽃들이 동등한 모습으로 자연에서 노니는 가족을 지켜주고 있다. 물감을 찍어 그린 '점묘법'같은 그림은 튜브에서 바로 짜낸 원색으로 칠해졌다. 팔레트에서 물감을 혼합해 쓰지 않는게 특징이다. 서양화 재료인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지만,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이라는 흔적이 숨어있다. 화면 전체 색감은 우리 전통색인 '오방색'으로 완성한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작업실에 재고가 없을 정도'로 인기를 누린 작가다. 처음 미술시장에 등장했을땐 뻔한 구상화였는데 이제 그의 그림은 초현실화같은 느낌을 준다. '혼족'시대와 '아파트 공화국'에 사는 현실에서 큰 나무가 있는 정원 딸린 집에서 4명 가족이 사는 모습은 '판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년 봄이 되면 화랑가에서 러브콜하는 그림으로 올해는 롯데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선보인다. 5일부터 '가족, 함께하는 시간'을 타이틀로 50호 신작 한 점과 작가의 스타일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1호 크기 20여점을 전시한다. 초기작부터 근작, 완성작으로 탄생하진 못했지만 자체로도 비구상 작품이 될법한 비컷 작품들도 공개한다.전시기간인 7일, 28일 2차례 '김덕기 작가의 미술학교'를 진행한다. 선착순 11팀 (1팀당 최대 4명, 부모님 포함 초등학생&미취학아동)이 작가와 함께 '가족’ 그림을 그려볼수 있다. 전시는 29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4/05
세계적인 대장암 권위자 박재갑 교수 '펜화가' 변신 "신경 혈관 등 작은 조직도 중요하게 다루는 저 같은 외과 의사에게 펜화나 펜담채화는 어렵지 않게 도전해볼만 합니다." 세계적인 대장암 권위자인 박재갑 국립암센터 명예교수(70)가 두번째 펜화전을 연다. 한땀 한땀 장인정신을 요하는 외과의사로 지낸지 44년째, 그는 이제 칼 대신 펜을 들고 '건강 전도사'로 활약중이다. 지난해 국립암센터안에 위치한 NCC갤러리 동행에서 한국펜담채화가협회 창립 기념전을 연 이후, 올해는 한국펜화가협회전에도 참여했다. 고희에 펜담채화가와 '펜화가'로 전격 데뷔다. 펜화는 0.03mm펜으로 수십만번을 그리고 또 그려야 나오는 그림이다. 또 펜화와 수채화의 느낌이 동시에 나는 펜담채화도 마찬가지. 가는 펜과 불수용 잉크로 윤곽선을 정밀하게 그린 후 수채물감으로 채색한 그림으로, 인쇄가 발달하기 전까지 널리 쓰이는 기법이었다. 미술시장에서 창작기법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로 부상중이다. 박재갑 교수가 펜화에 빠진 건, 시간이 넘치면서다. 지난 2011년 국립중앙의료원장 사표를 내니 부인이 "바쁘던 사람이 시간 여유가 생겼으며 그림으로 취미활동을 하라"고 권한게 계기였다. 1974년 서울대학에서 외과 의사를 시작, 1995년 서울대학교 암연구소 소장, 국립암센터 초대 및 2대 원장, 아세아대장항문학회 회장, 국립중앙의료원 초대원장 겸 이사회 의장, 세계대장외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간을 쪼개 살아오면서 대장암과 종양 관련 38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25권의 책을 집필했다. 2008년 미국대장항문외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으로 최우수 논문상, 황조근정훈장(2001), 자랑스런 한국인대상(2004), 세계금연지도자상(2005), 대한민국친환경대상(2012) 등을 수상했고 2015년 전국 NGO단체연대에서 선정한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의사로서 교수로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멈춰도 될 시간,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에 홍익대 평생교육원에 입학해 그림을 배웠다. 처음엔 유화를 그렸다. 당시 홍익대 미대학장이었던 고 이두식 교수의 권유로 2013년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서양화에 이어 비단 채색, 민화를 배우던 중 "펜화와 펜담채의 세밀한 선에 매료됐다." 펜화 최고 권위자 김영택 작가와 펜담채화가 안석준 화백에 사사를 받았다. 그림을 그리니 마지막 화룡정점은 낙관이라는 점을 알고, 그 낙관을 직접 파야 되겠다는 생각에 전각과 서각도 배웠다. 판화는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됐다. 지난해 '한국펜담채화' 창립전에 출품한 강릉 '해운정'은 이번 한국펜화가협회전에도 나온다. "강릉 해운정에는 제 15대 선조인 정절공 박광우 선생님의 시문현판이 있어 소재로 삼게 되었다"고 했다. 해운정은 조선 중종 때 세워진 정자다. 보물 183호로 지정될 만큼 조선시대 목조건물 가운데서도 단연 아름다움을 뽐낸다. 우암 송시열이 현판을 썼고, 율곡 이이가 시문을 남겼다. 박재갑 교수는 해운정에 갈 때마다 거듭했던 감탄을 펜화에 그대로 옮겼다. 서까래와 기와, 건물을 두른 떡갈나무와 소나무 잔가지까지 촘촘히 바늘땀을 놓듯 이어갔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의 그물망에 빠져야 한다. 적게는 1년, 많게는 3년 꼬박꼬박, 꾸역꾸역 그려야 사진보다 더 정밀한 그림으로 재현된다. 외과 의사로 살면서 몸에 밴 집중력과 정교함이 힘이 됐다. 특히 "선조가 남긴 뛰어난 유산을 화폭에 담는 일은 이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어서 고통보다 힐링이 됐다. 오는 4~10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여는 한국펜화가협회전에는 42×32cm에 인왕산 까치와 호랑이를 야심차게 담아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3일 새벽 6시 박 교수가 한국펜화가협회전에 참가한다며 SNS에 호랑이 그림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온라인 대화는 급기야 인터뷰가 됐다. 그림은 화가를 닮는다. 눈을 똑바로 뜨고 맹렬하게 버티고 있는 호랑이가 박 교수를 닮았다 하자 그는 곧바로 이렇게 보냈다. "제 페이스북에 들어오시면 3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댓글이 100여개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호랑이 작품에 대한 의미도 길게 이야기했다. "이번 제 호랑이 작품명은 원래는 '호작도'인데 뜻을 모르는 분들도 있어 이해하기 쉽게 '인왕산 까치와 호랑이'로 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앞으로 제가 더 진행할 펜담채화와 민화 각 각 두 그림의 밑 그림으로도 활용할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호랑이는 임금이고 까치는 백성입니다. 이 호랑이는 제가 2014년 9월부터 파인 송규태 화백님께 민화를 배우며 호작도를 그리려 한국 호랑이. 사진을 여러장 받아 구상하던 중 작년에 2011년생 숫컷 '계룡'이의 자태가 마음에 들어 인왕산과 함께 그렸습니다. 그림 속에는 여러가지 숨은 식물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 호랑이 그림은 만 3년이 걸렸다. 틈틈히 조금씩 그리다가 전시일을 뒤 늦게 알고 한달간 더욱 몰입했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저녁마다 작업했다." 그는 "민화를 배우고 창작 현대 민화를 그리려 마음 먹고 공개하는 첫 작품"이라며 오랜시간 호랑이에 공들인 점을 강조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을 지켜온 신앙과 같은 상서로운 서수"라고 "일본이 포수를 동원하여 말살시킨 호랑이를 이제는 속히 복원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박재갑 교수는 2013년 서울대 의대 교수 32년을 마친 뒤, 자신이 세워 초대 원장을 지냈던 국립암센터로 돌아와 현재명예교수로 지내고 있다. 명함도 이색적이다. 목을 꺾은 담배를 들고 있는 그의 캐리커처와 함께 '담배제조 및 매매금지, 운동화 출근 생활속 운동, 건강검진'이라는 글이 이름위에 적혀있다. 암 예방을 위해 금연운동을 벌이고, 운동화 출근생활속 운동을 전개해 생활 속 운동을 강조해온 그는 자전거 라이딩족이다. 3년전 국립암센터에서 '소아암 환우 가족들을 위해 자전거 국토 종주 모금' 운동에 참여하면서 타기 시작한 자전거는 그의 또다른 생의 활력이다. 매달 200km 라이딩한다는 그는 "새파란 중년"이라며 정력을 과시한다. "유엔이 새로 정한 평생 연령 기준을 보면 66~79세가 중년"이라는 것. 욕심과 호기심은 늙지 않는다. 의사에서 화가로 변신한 그는 "이제 마지막 취미 활동을 하려고 전통 문인화와 수묵화, 산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펜화는 좋기는 하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저 같은 경우 펜화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여러 분야를 호기심으로 배우며 몇점씩 완성해보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은 붓을 들고 전통 동양화로 돌아갈까 합니다. 하하하." 열정도 재능이다. [email protected] 2018/04/04
이것은 마포가 아니다···박장년, 실재와 환영의 경계 헝겊을 말아 묶어 놓은듯 하지만, 분명 그림이다. 얼핏 보면 깜박 속을수 있는 그림, 전문용어로 '트롱프뢰유'라고 한다. 프랑스어로 '눈속임'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눈을 속이는 그림'은 실제와 착각하게 한다.2차원 평면이면서 3차원 입체물인척 한다. 화가 박장년(1938~2009)도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그는 캔버스가 아닌 '마포'(삼베)를 사용해 눈속임을 극대화했다. 마포로 만든 캔버스 표면에 동일한 색조의 물감으로 섬세한 음영만을 그려 넣어 바탕 자체에서 마포의 주름이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 것과 같은 눈속임 효과를 자아냈다. 색채의 절제와 극사실주의적 묘사를 통해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간극을 지워버린 것이다. 그의 회화적 철학은 간단했다. '캔버스 표면을 표면 그 자체로 되돌려준다'는 고집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마포 시리즈'는 2009년 세상을 뜨기전까지 계속됐다. 마포위에 마포를 그리는 일을 반복해 나온 그림은 그야말로 '마포' 그 자체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박 화백은 왜 마포에 꽂혔던 것일까. 장남인 건축가 박윤석씨는 어릴 적 아버지가 부지런히 마포를 씌우고 잡아당기고 호치키스를 박던 모습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1974년부터 1년여 사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수의를 접하시면서 '마포' 영감을 받으셨던 것 같아요." 1938년 전남 고흥 태생의 박장년 화백은 1960년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수학하며, 서양의 엥포르멜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평론가 오광수에 따르면 주변의 앵포르멜 작가들과 달리 박장년의 회화에는 “격렬한 제스처 대신 무겁게 침잠하는 심연과 같은 기운이 지배하고 있었다” 박화백은 동시대 동료 작가들이 주로 단색 추상화를 제작하던 1970년대 당시, 마포의 구김과 주름, 짜임 등을 재현하며 극사실화에 빠졌는데, 단색화의 경향을 띠면서도 세밀한 형상 묘사를 도입한 그의 시도는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다. 마포에 그려진 극사실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단색확 열풍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미술관에서 주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인기작뿐만 아니라 전 시기 작품을 제대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성곡미술관이 박화백 타계이후 첫 회고전을 기획했다. 작품을 소장한 카이스갤러리와 유가족의 협력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박장년 1963-2009-실재와 환영의 경계에서'전을 타이틀로 회화 설치 영상등 약 90여점을 전시한다. 엥포르멜의 경향을 엿볼 수 있는 1960년대 초기작부터 2000년대 후반 작고하기 직전까지 제작한 작품을 볼수 있다. '단색화' 창시자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박장년은 마포 위에 단색으로 마포를 그리는 동어반복적인 작업을 해왔다. 단색화와 극사실주의 회화의 경계에 있는 작가로 미술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가"라고 재평가했다. 박장년 '마포 그림'은 40여년이 지난후에도 생생하게 부활해 실재와 환영의 관계에 대해 다시 묻고 있다. 왜 화가들은 평생을 투자해 실제처럼 똑같이 그리려고 했을까. 잘 그린 그림이란 무엇인가. '실물을 꼭 닮게 그려봤자 어디까지나 실물의 불완전한 모방일 뿐인데', 실물인 척 하는 그림은 발길을 잡고 머물게 한다. 40년이 묵은 그림이지만 보는 순간 '와우!'가 터지는 '와우 이펙트(wow effect)' 효과가 강렬하다. 가짜임을 알고도 몇번을 가까이 들여다보게 하는 이 그림은 그런면에서 여전히 참신하다. 전시는 5월13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3/28
50년간 '동시성'..서승원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 50년간 '동시성'을 천착하고 있는 그를 미술평론가 서성록은 "만리우보(萬里牛步) 작가"라고 했다. '소처럼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간다'는 뜻의 '우보만리'와 비슷한 말이지만 '만리를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온' 서승원 화백(77)이다. 1960년대부터 기하학적 패턴을 기초로 한 작품을 반세기 이상 탐구하고 있다. '새 것 콤플렉스’로 대부분 화가들이 10년 주기로 작업의 변화를 꾀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로 세파에 편승하지 않고 화업을 이어오고 있다. 50년~60년간 미니멀리즘에 집중했던 팔순의 화가들이 '단색화'로 재조명받고 위상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LTE급으로 변하는 시대에서 한가지 주제의 작업은 양날의 검이다. 단색화 거장으로 등극한 박서보 화백의 명언처럼 "예술이 시대의 산물이라면 변화해야 하지만, 변하면 또 추락"하는게 작품의 속성이다. 컬렉터나 감상자 입장에서는 지루함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반면 장점도 있다. '그 작품 하면 그 작가'가 바로 떠올라 이미지 싸움인 미술시장에서 'OO 작가'라는 브랜드화 된다. 그런측면에서 서승원 화백의 추상화 '동시성'은 '서승원'이다. 50여년간 '동시성'은 호밀빵에서 카스테라 처럼 변해왔다. 기하학적 추상에 오방색을 접목해온 작품은 세월의 더께를 받아들인 듯 원색보다 파스텔화같은 부드러움으로 귀결되고 있다. 마치 안개가 낀듯, 또는 아지랑이가 피어 뿌옇고 아련하게 보이는 것 처럼 그림은 색과 형태가 분리되지 않고 완전히 밀착되어 있다. 서 화백이 추구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동시성’은 “형태와 색채와 공간 세 요소가 등가(等價)로서 하나의 평면 위에 동시에 어울린다”는 의미로, 예술가의 전위적 사명감으로 회화의 본질과 한국적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작가의 고민이 녹아 있다. 긴 시간동안 '동시성'은 변한듯 안변한듯 변해왔다. 색감과 형태가 점차 동시에 부드러워지며 화면을 채워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2000년대부터 작품은 깊이감이 한층 더 깊어졌다. 화면을 채우고 있던 명료한 마름모꼴도 흐트러지거나 종적을 감추고 부드러운 색채는 더욱 중첩되어 그 경계를 허문다. 서 화백도 “모서리를 없애고, 색채도 저녁노을 같은 부드러운 빛의 표현”으로 대체했다고 했다. 뭉개진, 흐릿한 그림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다 보인다. 멀리서 보면 안보이던 선들이 겹겹이 보이기도 한다. 실선과 마름모꼴이 얽히고, 색면들이 서로 포개져 있는게 '보이는데, 안보인'다. 그래서 평면 회화인데 입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간과 형태가 뒤섞여 희미해져 온화해진 절제된 화면은 과묵한 모습의 화백과 닮음꼴이다. 평생 어떻게 '동시성'에 매달렸을까. 서성록 평론가는 "인생을 살면서 작가인들 시련의 계절이 왜 없었겠는가"라며 "모든 정념을 떨쳐버리고 나 자신조차 내려놓을 때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고 선인들은 말해왔는데 이 말을 증명이나 하듯이 서화백은 오롯이 순수한 현존을 맛보고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무엇을 쟁취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집착과 욕망과 작별하는 순간 더 심오하고 자유로운 세계가 열린다. 서 평론가는 "화면 바탕을 조성하는 데에 거듭된 정지작업(밑칠)을 하는 것에서는 ‘극기(克己)’의 자세랄까, 예스러운 회사후소(繪事後素)의 회화 정신마저 엿볼 수 있게 한다"고 평했다. 오랜 화업의 경륜이 말해주듯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종일관한 자세로 추상회화를 탐색해 '한국 추상화'의 물꼬를 텄다. 1960년대 국내 화단의 주류였던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중심의 사실주의와 비정형 추상회화운동인 앵포르멜(Informel) 사이에서 독자적 경향을 모색했던 추상화가로 유명하다. 1950년대 말부터 불어온 앵포르멜(Informel) 선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심 차게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시도했다. 1963년 기하추상회화 그룹 ‘오리진(Origin)’ 을 창설했고, 1967년 젊은 작가들이 파격적 시도를 대거 선보였던 '청년연립작가전'에 ‘오리진’의 멤버로 참여하여 사각형과 삼각형, 색 띠 패턴과 빨강, 노랑, 파랑 등 오방색(五方色)을 사용한 기하 추상 회화를 선보였다. 또 1969년 작업과 이론 모두에서 전위를 추구했던 ‘한국 아방가르드협회(A.G)’ 의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화단에 새로운 미의식을 정립하고자 했다. 예술가로서 끈덕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70년대에 캔버스의 평면성을 고집하면서 색면과 선, 그리고 기하학적 요소로 구성된 정연한 공간을 밀고 나갔다. 이후 1990년대의 확산적 공간은 자신의 그림에 대한 확고한 철학없이는 나올수 없는 작업이라는 평가다. 한국 단색화의 신호탄이 된 동경 화랑 전시(한국 5인의 작가, 5인의 백색 전) 에 참여했고, '오리진', 'A.G', '에꼴드 서울', '서울현대미술제' 등 한국 현대미술의 물줄기를 형성한 전람회에 빠짐없이 참여한 일은 우리나라 미술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을 짐작게 해준다. ‘오방색’을 접목시키고 ‘중용’의 정신을 불어넣고, 문창살과 은은한 한지 등 우리의 ‘생활감정’에서 비롯된 작품을 예술로 승화시킨 일 등은 그가 현대미술을 자기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보여준다. 서 화백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수 있는 전시가 8일부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를 타이틀로 50여년 화업의 중추인 '동시성'시리즈를 중심으로 총 23점을 선보인다. 최신작은 물론, 그간 전시장 나들이를 하지 않았던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 회화 작품부터 작가의 1970~80년대 대표작들이 대거 소개된다. 1960~1980년대 절제와 엄격한 질서를 보이던 작품이 주관적 해석과 자기화를 거쳐 사색과 명상, 자유의 화면으로 변화한 과정을 보여준다. 고희가 넘은 현재까지도 회화에 대한 고집스런 탐구를 멈추지 않고 있는 서승원 화백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전진해왔다. 50년전 의아했던 '동시성'은 21세기 융복합시대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은 분명한 색상을 띠지도, 무언가를 발언하지도 않으며, 어떤 틀을 갖고 있지도 않다. 손에 잡힐 듯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 마치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화면에 그렇게 떠 있다. 온화한 화면으로 '관조적 고요'를 전하는 그림은 평생 '동시성'에 매달려온 작가의 '화광동진(和光同塵])'한 예술혼을 보여준다. 4월29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3/07
흔한 사물의 예술 반란...'악동 미술가' 빔 델보예 산업디자이너 측면에서 보면 대체 왜 이렇게까지 물건을 비틀고, 굳이 힘들게 문양까지 새겨야 했는지가 더 고민일 것 같은 작품이 전시장에 등장했다. 벨기에 신개념미술 (Neo-Conceptualism) 대표작가 빔 델보예(53)의 한국 첫 개인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7일 개막했다. 2017년 스위스 바젤 팅켈리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 이후 개최되는 올해 첫 전시다. 빔 델보예는 데미언 허스트와 꼽히는 세계미술시장 악동 미술가다. 돼지 몸에 문신한 후 키워 자연사하면 캔버스에 박제해 전시판매하는 기괴한 아티스트로, 그의 기행은 남성용 '소변기'를 출품한 마르셀 뒤샹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다. 인간의 소화기관을 재현한 '똥 만드는 기계'를 제작 충격을 선사했다. 기계에서 생산된 똥을 진공 포장해 사인하고 판매(천달러)했다. '똥도 예술이 될수 있다' 것과 '모든 것은 똥이 된다'는 그의 철학은 희귀품에 허세작렬하는 미술시장에 똥침을 날리며 아이러니하게도 동시대 핫한 예술가로 등극했다. '똥 작품' 이후 그는 첨단기술과 합세해 별것 아닌 것을 극강의 예술품으로 만들어낸다. 지난 2012년 파리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안에 높이 11m ‘쉬포(Suppo)’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신비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뽀족한 탑 같은 조각은 알고보니 '나선형의 좌약'이었다. 섬세한 고딕양식으로 정교하게 제작되어 위대한 예술품으로 변신한 일반 사물의 아름다운 반란이었다. 충격과 파격사이에서 미술시장을 희롱하는 빔 델보예는 '비틈의 미학'이 특기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비틀고 해체해 재구성한 작품들은 기발하고 변덕스럽고, 어딘가 초현실적이어서 더욱 가치를 올리고 있다. 고딕양식과 페르시안 문양으로 무장한 그는 벨기에 베르빅 출신으로 현재 벨기에 겐트와 영국 브라이튼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자동차, 여행 가방, 삽, 살라미와 햄으로 만든 대리석 문양의 바닥 사진 등 총 30여 점이 선보였다. 뫼비우스 띠 같은 타이어(Tyre) 연작의 경우 바퀴에 불과했던 타이어가 마치 숭배물처럼 재탄생 된 듯하다. 자동차 또는 트럭 타이어에 꽃, 소용돌의 무늬(scroll), 잎사귀 등 아르누보의 섬세한 문양들이 새겨져 오뜨꾸뛰르(haute couture)같다. 'Tapisdermy'도 마찬가지. '박제’라는 의미의 'taxidermy' 와 ‘직물’이라는 뜻을 지닌 'tapestry'에서 나온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이자 연작이다. 돼지 모양의 작품도 페르시안 카페트를 입혀 동물의 가치를 올리는 동시에 현 시대 미술 시장의 허상적인 면을 공략한다. 실제 토끼를 박제하여 슬리퍼에 응용을 한 '토끼 슬리퍼'도 작품과 상품의 경계를 오간다. 하찮은 것들을 섬세하고 자극적으로 변신시키며 그가 노리는 건 ‘불변’이라는 개념이다.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대비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모든 것은 변하고 무용하다는(아무것도 아니다는) 의미를 새긴다. 기존 사물이 오로지 기능 위주라면 빔 델보예의 손에 들어온 사물들은 화려한 장식으로 럭셔리해진다. 귀족의 문양들과 기호들을 더해 사물의 사회적인 위치를 바꾸고 높인다. 삽질하는 삽인데 더이상 삽이 아닌 것 처럼 보이게하는 능력이다. '팝아트 황제' 앤디 워홀이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사물과 이미지를 고급 문화로 정당화했다면, 빔 델보예는 서민적인 사물에 고급 문화의 장식물을 덧붙여 그것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승격시킨다. 이 때문에 빔 델보예의 작품들은 대량생산되는 물신화의 메커니즘을 휘젓는다는 평이다. 고정관념과 지배적 문화 코드에 대항하며 예술세계를 발칵 뒤집어 유명세를 탄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Gothic Works', 고딕 양식에 집중하고 있다. 금속 구조물을 레이저로 잘라 만든 작품은 건축 구조적 차원을 넘어서며 SF영화속같은 신비함까지 뿜어낸다. 이번 전시에 나온 '고딕 작품' 은 '클로아카(Cloaca· 음식을 똥으로 바꾸는 기계)'와 함께 빔 델보예의 대표 연작이다.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럭, 콘크리트 믹서(레미콘)등에 성당, 타워, 게이트(gate)같은 건축모양을 레이저-컷 기술로 잘라 고딕 스타일의 섬세한 조각으로 재탄생시켰다. 장식의 과잉과 기계적인 형태가 독특한 작품은 신성시하게 여기는 전통의 가치와 예술을 비판하며 모든 것은 대체될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사물이 제 자리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는 빔 델보예의 예술적 도발과 수공예적 아름다움이 빛난다. 기존의 쓰임과 용도를 탈출한 작품들은 미학적 충격을 선사한다. 재치있고 풍자적이면서 정교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속삭이는 건 결국 '일상이 예술'이라고. 그러니 고정관념과 경계를 해체하고 관습에 맞서라고 자극한다. 전시는 4월8일까지. [email protected] 201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