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m 그림에 담긴 인간 실존과 소외…오원배 개인전 박현주 기자 =전시장 1층 벽면을 감싼 32m그림. 마치 전체주의 병영이나 산업 현장에 유폐된 듯한 군상이 담겼다. 거대한 파이프와 가스통, 담벼락 아래 위축된 인간의 모습은 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몸짓으로 획일화되어 있다. 한편에선 매끈한 금속체 인조 인간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도 있다. 전시장 일부에 직접 안료를 흩뿌린 거친 현장 페인팅이 생동감을 더한다. 화가 오원배(64·동국대 교수)가 '화가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전시를 펼친다. OCI미술관(관장 김경자) 초대로 11월 2일부터 개인전을 연다. 미술관 1, 2, 3 전시장 전층에 40여년간 천착해온 화업을 공개한다. 폭 32m의 대작을 비롯하여, 800호, 500호 이상 크기 신작으로 압도한 전시장은 파워있는 화가의 면모를 발휘한다. 집단화된 인간의 통제된 신체와 인조 인간의 자율성이 강한 대비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통해 이 시대 ‘휴머니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2층 전시장에서는 인간 소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배경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계단, 온기 하나 없는 공장의 철골 구조, 일거수일투족을 뒤쫓는 감시의 시스템 등 그림 속 적막한 사회의 모습은 기계적 시스템과 인간의 도구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하여 균질한 톤으로 꿰어진다. 3층에는 작가가 일상 속에서 꾸준히 그려온 드로잉 40여 점을 선보인다. 평상시 생활 곳곳에서 마주치는 주변 인물과 소소한 사건을 면밀히 기억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포착하여 화폭으로 옮긴 것으로, 삶의 매 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상상을 특정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이미지화한 것이다. 선 몇 개로 단순하게 표현하거나, 대상을 기호화하거나, 재료 자체의 속성이 드러나게끔 한 작업으로 드로잉은 오원배에게 관찰의 기저이자, 변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임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기능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사회 구조가 어떻게 인간을 도구화하고 집단 명령의 체계를 형성해 가는지, 그리고 과학과 기계 문명의 발달이 어디로 치닫게 되는지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각종 기계와 인공지능을 개발했지만 결국 그 기계들에 의하여 지배당하는, 인간과 기계의 전도된 관계를 그려내며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라는 시대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3개 층의 전시 구성은 삼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계관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작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그의 회화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또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놓치않고 평생 그려온 '오원배 회화'의 모습을 한자리에서 느껴볼수 있다. 전시는 12월 23일까지. [email protected] 2017/10/24
나무에 시간을 담았다···김덕용 '오래된 풍경'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 김덕용의 ‘오래된 풍경’ 전이 열린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는 11일부터 김덕용 신작 회화 25점을 선보인다. 작가의 17번째 개인전이다, 작가는 작품에 시간의 축적을 담는다. 오래된 나뭇결 위에 옛날 풍경을 담아내 아련한 추억과 따스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가구나 문짝 등의 나무판을 깎고, 다듬어서 그 위에 단청기법으로 그리거나 자개를 이용한 작품은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해 해외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종이가 아닌 나무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재료의 근본'에 접근하겠다는 의지였다. 동양화를 전공하며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수많은 목조 건물을 새롭게 발견했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목조건물에서 포근함과 안락함을 느꼈고, '나무'라는 재료로 관심이 옮아갔다. 이번 전시에서 김덕용은 전통 건축의 조형을 응용해 차경으로서의 풍경을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그는 "손때가 묻은 오래된 사물들은 시간의 기록이 담겼다"며 "하나의 그림으로 보여지지만 이번 전시는 마치 목수처럼 각 조각을 연결시켜 옛날 그 날, 그 순간을 떠올리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창문은 차경을 위한 프레임일 뿐만 아니라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통로다. 매화, 산수유, 백일홍 등은 작가가 어릴 적 살던 집 안방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들이며, 지금도 그가 즐기고 찾아다니는 풍경들이다. 차경을 통해 옛 선인들을 만나고, 그들을 자신의 그림에 불러들인다. '결-자미화(紫微花)'에서는 대청마루에 누워 자신이 좋아하는 배롱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다 낮잠에 들었을 안평대군을 상상하고, '관해낙조(觀海落照)'에서는 정자에 앉아 책을 읽다 노을빛이 저무는 다도해를 바라보았을 다산 선생의 쓸쓸한 마음에 감정을 이입했다. 오래된 나무와 반짝이는 자개가 어우러진 작품은 수많은 시간을 담금질한 장인 정신을 전한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작품속 풍경이 고즈넉하다. 조용하게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전시는 31일까지. [email protected] 2017/10/11
임옥상 "난 투사가 아니다···그래서 흙덩어리를 던졌다" 의외다. 30호 캔버스 108개를 연결한 대형 그림 '광장에, 서'는 거침보다 부드러움으로 스며든다. 작년 광화문 광장에서 '이게 나라냐'며 격렬하게 응집된 '촛불 시위'를 담아낸 작품인데, 그동안 (봉기 도발하는) '임옥상 스타일'과는 다른 분위기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를 흙으로 그려내고, '데미언 허스트 땡땡이'같은 원형 패턴으로 촛불파도를 묘사했다. 마치 폭풍우가 지나고 모든 것이 잠잠해지며 아스라함으로 파고들며 여운을 전한다. '민중미술가 1세대' 딱지가 붙은 '원조 블랙리스트' 임옥상(67)화백이 변한 것일까. 22일 개인전을 앞두고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임 화백은 "난 투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민중미술 작가'로만 묶지 말고, 그냥 임옥상으로 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가 걸어온 길은 철저하게 '리얼리즘 미술가'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시각언어'로 정권에 대항했다.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현실과 발언'의 창립 멤버였고, 미술의 사회 참여를 위해 다방면에서 활동해왔다. “미술은 전통에 기반을 두되 역사 의식과 현실 인식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그림에서 보여줬다. 환갑이 지나고 고희가 가까운 나이 탓일까. 그는 여유감이 넘쳤다. "기본은 변하지 않았지만 연륜이 있으니까···파마를 해서 그런가"라며 눙쳤다. 가로 1620cm, 대작중 대작 '광장에, 서'를 108개의 캔버스에 담아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에겐 쉬워보이는 작품인데, "갈피를 못잡았다. 촛불을 어떻게 작업을 할수 있을까, 자꾸 미뤄, 이호재 회장(서울옥션)이 세번이나 찾아와 아직 안그렸냐"고 채근할 정도였다. 실제 사건의 복사판, 새로운 걸 제시하지 못하는 작업은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미 사진을 통해서 훨씬 더 잘 보여줬는데, 그걸 중복되는, 중복언어는 할수 없지 않나"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새롭게 쳐다볼수 있어야 하지 않나. 임옥상은 또다른 풍자를 할수있는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작업 의지는 성공한 듯 보인다. 장대한 파노라마로 전개된 '촛불' 작품은 전시장에 들어와 '기념비적인 역사 기록화'로 위상을 전한다.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얼굴 찌푸리게하는 작품이 아닌 누구도 공감할수 있는 새로운 '민중미술 스타일'로 보인다. 임 화백 스스로도 만족했다. 작업할때는 너무 커서 한번에 볼수 없었는데, 전시장에 세팅을 하고 조명을 켜니 와우~감탄이 절로 나왔다면서 "자기 감동이 없으면 제 것이 아니다. 자기 감동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민중미술가'로만 보는 것은 "오해다"라며 자신은 "좌우도 아니고 아나키스트"라고 했다. 대부분 "임옥상은 왜 자기 이야기가 없냐"며 '사적인게 없고 공적인거만 있어 매력 없다고들 한다"며 민중미술가로 굳어진 프레임의 안좋은 예를 설명했다. "나는 남녀의 상열지사를 굉장히 좋아하고 누드도 그리는데, 보는 사람들은 내 의지와 달리 해석한다"고 했다. 남녀가포옹한 그림을 만들면 "임선생 드디어 남북이 만났군요"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완전히 선입견으로 나를 보는 거다"며 답답해했다. 하지만 그 틀은 자신이 만들어왔다. 지난 30여년간 임옥상은 전시장 밖으로 뛰쳐나가 주로 거리에서 광장에서 작업을 해왔다. 퍼포먼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벽화도 제작했고, 사회적 정치적 집회에서 현장작업을 거칠게 해왔다. 요즘 듣는 말이 있다고 했다. "임옥상의 최대 위기"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독재든 뭐든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성장한 작가라는 인식때문. "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용기있고 행동하는 작가인데, '민주화가 됐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진담반 농담반같은 말들이 꽂히고 있다. 그는 "그렇다면 내가 한쪽 편들기 내지는 가담한다는 건데, 예술가로서 그게 말이되냐"며 "인간 임옥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예술가는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마치 대립각을 세워서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온다고 보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임 화백은 "노무현정부때도 기대한 것이 있어서인지 제일 불편했고, 김대중 정부때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정권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다만 정권을 세우는데에는 일조를 했다"고 자부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그는 "엄청난 변화가 있지만 권력은 다스리지 않으면 맘대로 튄다"며 "결국 권력은 민중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배반할수 밖에 없다"고 했다. "고삐를 바짝 조여야합니다. 연은 연줄이 있기때문에 높이 나는 것이죠. 노무현정부도 느슨한 연줄을 갖고 있는 바람에 정권도 놓치지 않았나, 깨어있는 시민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가가 필요하다"는 그는 "잠들지 않는 깨끗한 영혼, 임옥상은 위기가 아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민중 작가로 불러주는건 영광스럽지만 부끄러운게 많다"고 고백했다. 그러기에는 제대로 하는 것이 없고, 해놓은 것이 없다는 그는 이제 민중미술가에서 공공미술가로, 커뮤니티 아트 마을미술가로 진화중이다. 미술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관심을 갖고 1996년 광화문 지하철역 '광화문의 역사' 작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공미술 작업을 선보였다. 또한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집중하여 대중의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내는 문화 활동가로서 폭넓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창신동에 '창신소통공작'에 이어 새로운 개념의 어린이 놀이터를 개관할 예정이다. 변한 듯 아닌 듯하지만 분명한건 여전히 현실정치에 안테나를 세우고 정력적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점이다. 23일부터 여는 개인전 '바람 일다'는 2011년가나아트센터 개인전 이후 6년만이다. 작품들은 정치 사회적 소재들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풍자·비판·상징화한다. 전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트럼프, 아베 등 국내외 14인의 국가 원수들의 초상을 대형 가면으로 만든 설치작품 '가면무도회'로 시작한다.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과 용산 화재 참사를 주제로 물과 불의 대립을 보여주는 드로잉 작품도 나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윌리엄 모리스', '존 버거', '자화상 I' 등 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그린 초상화 작품들이 눈에 띈다. 또한 민들레 꽃씨로 제작한 노무현과 문재인 두 전/현직 대통령의 초상화도 전시됐다. 한편 '여기, 흰꽃'과 '여기, 무릉도원'은 북한산의 산세를 흙 바탕에 선묘로 재현하고, 작품 하단은 만발한 꽃들로 가득 채우고 있다. “실제 풍경을 풍유적으로 번안한 일종의 관념적 실경화이자 현대판 무릉도원으로서 이 작품들은 암울한 현재를 극복하고 희망찬 내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의 신세계를 향한 작가의 꿈을 대변”한다. 촛불이 바꾼 나라, 변화된 정부덕분일까. 정권에 대항하며 핏대를 올리던 이전 모습과 달리 임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흙 작업'에 집중해달라고 주문했다. '민중미술'보다 '흙을 왜 썼나'하는 함의가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인간은 땅위의 존재다. 하지만 땅위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착각할때가 있다. 도시에 살면서 땅, 흙을 밟지 못하고, 유리되어 살고 있다. 흙의 정신을 잊어버리면 삭막할수 밖에 없다. 내가 흙으로 작업을 한 것은 흙에 대한 관심과 흙과 친할수 있는 그런 세상으로 기본 문명의 방향을 옮겨야겠다는 의지다. 흙을 제일 느끼고 감촉할수 있는 방법은 농사다. 하나의 생명을 기르고 보람을 느끼고 생명을 감촉할수 있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질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번에 흙덩어리를 던졌다." 전시는 9월 17일까지. [email protected] 2017/08/22
김정숙 여사, '푸른그림', 그리고 정영환 세상은 변덕스럽다. 어제와 오늘을 천지차이로 바꾼다. 무명에서 유명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다. 이 화가도 그렇다. '푸른 그림'을 그린지 17년만에 세상이 달라졌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지난 6월 29일 오후, 그 화가의 판을 바꿨다. 그날 TV에서 김정숙 여사 패션이 화제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방미에 오른 김 여사가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선보인 의상은 흰색과 푸른색의 조화였다. 한·미 양국간 신뢰에 바탕해 첫 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은 의상은 '영부인의 품격'을 선사했다는 호평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옷에 그려진 '푸른 그림'이 누구 것이냐에 초점이 모아졌다. 청와대가 국내 회화 작가 작품이라고만 공개했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그날 떠올랐다. 뉴시스가 단독 보도(김정숙여사 패션외교···'푸른색 그림' 누구인가 봤더니 정영환 작가')하면서 세상에 그의 이름 '정영환'이 새겨졌다. 서울지역 작가도 아니고 미술시장 스타작가도 아니어서 쉽게 알아보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독특한 색 덕분이었다. 아트페어에 간간히 선보였던 그림은 푸른색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날 그도 어리둥절했다. 방미 행사에 자칫 누가 되지 않을까 나서기를 꺼려했고 조심스러워했다. 영부인과는 개인적 인연도 없고, 패션 디자이너의 선택이었다며 부끄러워했다. 인생은 타이밍이고 기회도 타이밍이다. 결국 '하늘을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작품은 미술시장 대세인 팝아트도 아니다. 어쩌면 푸른색 한가지 색이기에 지난 2~3년간 열풍이던 '단색화' 영향을 받은 그림이냐고도 할수 있다. 하지만 모노크롬화의 여파인 단색화와는 결이 다르다. 물론 단색화가 추구하는 몰아일체, 정신성과 연관을 짓는다면 꿰어맞출 수는 있다. 그 '푸른 그림'을 2010년부터 현재까지 17년째 묵묵히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푸른 그림 제목은 '그저 바라보기(just looking)'. 나무 풍경은 푸른색 안경을 쓰고 본 것처럼 온통 파랗다. 푸른색에 묻혔지만 나무들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나뭇잎 하나하나를 일일이 묘사한 구상화로, 반복이 이뤄낸 붓질의 내공이 전해진다. 나무의 푸르름, 자연의 녹색을 푸른색으로 바꾼건 차별화가 생명인 화가의 본능같은 일이기도 했지만 희망과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저 바라보기' 시리즈가 탄생한 건 아버지 덕분이다. 15년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간호하는 어머니를 위해 경기도 양평 산이 있는 곳에 작은 집을 마련해드리면서다. "산과 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힘을 내었으면 하는 희망"과 "내게 던지는 위로"를 그림에 담았다. 위로와 안정감, 성공과 희망 등의 뜻말을 담은 푸른색에 온전히 색의 감정을 담자 그림은 달라졌다. '그린'을 '블루'를 바꿨을 뿐인데 친밀했던 풍경과 자연은 생경해졌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정을 연결했다. 희망과 슬픔이 교차하고 낯설면서도 신비롭고, 서늘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수원대 미대를 졸업하고 화가가 되기까지 삶의 무게를 견뎌왔다. 예고에서 미술선생으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입시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었다. 지치고 힘들고 시간이 빠듯했지만 붓을 놓지 않았다. 늦은 밤 미술학원 한켠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자신과 싸웠다. '오늘 선택한 것의 결과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그림에 대한 갈망은 '푸른 숲'으로 이어졌고 스스로 힐링했다. '푸른 그림'은 어제의 그림이 아니다. '패션 외교'후 대접이 달라졌다. 그룹전이 초대 개인전으로 바뀌고 아트페어에도 초대 부스 개인전으로 명칭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기쁜건 작품을 더 많이 보일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 화가 정영환은 "이제 그 이슈 보다는 제 작업에 더욱 관심을 가져주는게 감사하다"면서 "작업에만 몰두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림은 ‘그저 바라보기'다. 그림 앞에선 말이 필요없다. 그의 푸른 그림 '그저 바라보기'는 휴식같은 풍경으로 반사한다. 희망과 위로를 담고 수행하듯 그려온 그림은 이제 응원이 필요하다. '푸른 그림의 전설'이 시작됐다. 8월2일부터 9월 5일까지 서울 마포 삼진제약 건물 2층에 위치한 벽과나사이 갤러리에서 정영환 6회 개인전이 열린다. [email protected] 2017/07/31
이효리 '다이아몬드'와 문형태 '다이아몬드' '그대는 이미 다이아몬드 맑고 영롱한 다이아몬드 깨트릴 수 없는 다이아몬드 사라지지 않은 영원한 다이아몬드' 이효리가 4년만에 발표한 신곡 '다이아몬드'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노래라고 알려지면서 반응이 뜨겁다. 손석희 앵커가 "가사를 보니 뭉클하다"고 말해 더욱 주목받고 있는 노래다. 예술가들의 텔레파시일까. 이 노래를 압축한 듯한 그림이 전시장에 걸려 주목받고 있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35회 개인전을 열고 있는 문형태(43)의 '다이아몬드' 작품이다. 미술시장 스타작가답게 이 그림은 걸리자 마자 팔렸다. 동그란 빨간 딱지를 붙이고 전시되어 한발 늦은 컬렉터들의 속을 쓰리게 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작품은 보는 순간 마음을 부풀게 한다. 그깟 손가락이 아니라 보름달같은 여자 얼굴에 '다이아 반지'를 왕관을 씌우듯 끼워준다. 남자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경건함마저 감돈다. 기분을 좋아지게 그림이지만 '낭중유추(囊中有錐·주머니에 든 송 곳)'다. 그림은 상처와 고통, 모든 결핍된 것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왕관과 머리를 쓰다듬는 뾰족한 다섯 손가락, 별과,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모든 것들은 날카로운 끝을 가지고 있었다"며 "반짝이면서도 날카로운 것들, 선과 악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들은 내게 친구, 연인,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했다. 만화같고, 동화처럼 보이는 문형태의 그림은 미술시장의 '다이아몬드'같은 존재감이 있다. 여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다이아몬드처럼 컬렉터들의 욕망을 건드린다. '보기만 해도 사고 싶다'는 마법이 걸릴 정도로 전시만 열면 그림은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조지콘도, 피카소 같은 입체파의 탈을 쓴 듯한 만화같은 그림은 묘한 마력을 풍긴다. 어른같기도 아이같기도 한 캐릭터들의 천진난만함과 생동감이 돋보인다. 살펴보면 눈코입이 세로로 달리고 몸통이 분리되어 기괴하지만 유쾌하게 마음을 터지게 하는 건 기발한 상상력이다. 이번 전시 타이틀은 유니콘(Unicorn)이다. 반짝거리면서 날카롭고, 온순함과 포악함이 공존하는 선과 악을 동시에 상징하는 의미로 작가의 복잡한 생각을 '유니콘'으로 묶었다. 작가는 "모든 종류의 기억이란 상처였고 우리를 자라게 한다"며 "가족이, 친구가, 당신이, 제게는 제가 만드는 작업들이 저를 아프게 하는 동시에 튼튼히 자라게 하는 유니콘들"이라고 했다. "저는 작업을 할 때 '가난'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느끼는 쌀쌀한 추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고독하게 만들며 때로 그래서 더 다정하고 사랑하게 만듭니다. 본능적인 감정을 이해받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미술시장에 데뷔한지 10년. 무명에서 '완판작가'로 등극했다. 조선대 서양화과를 졸업후 서울로 올라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딴짓을 했다. 홍대 놀이터 앞에서 직접 디자인한 액세서리를 팔았고, 웹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로도 살았다. 2007년 기회를 잡았다. 첫 개인전을 연 후 '문형태' 이름이 떠올랐다. 어둡고 거칠지만 묘한 그림, 극사실화가 판을 치던 미술시장에 균열을 내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작업하던 그의 살림살이도 나아졌다. 그림이 팔려나가면서 작업실은 커졌고 쾌적해졌다. "저는 항상 작업만큼 쉬운 것은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화가에게 그림만큼 쉬운 일은 없습니다. 허세의 말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살면서 매일 한 점 이상의 작업을 했다. 해매다 개인전을 열었고 러브콜 오는 기획전 그룹전(150여회)을 마다하지 않고 참여했다. "마치 국내 컬랙터에게 모두 소품 하나씩을 소장하게 만들자는 오기"였다. 마르기도 전에 팔려나가 화랑가에서 '마팔'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림은 변한듯 안변한듯 썸을 탔다. 10년동안 늘 작업이 한결 같을수도 없는일이다. 하지만 "작업이 어두울때도 밝을때도 더하거나 모자랄때도 변함없이 사랑받았다"며 "작가가 사랑하는 작가라는 칭찬도 들었고, 유행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강력한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자랑"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영감은 어디에서 얻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너에게'라는 완벽한 답변을 드릴 수 있다"는 작가는 "내가 그리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까지 단언하기란 힘이 들지만 결국 저에게 영감을 주고 경험을 주는 수많은 타인들에 의한 얘기"라고 했다. "고민은 늘 작업실 밖으로부터 오며 그것들은 결국 '관계'에 대한 것들입니다. 저는 한달에 한 두 번도 외출하지 않는 집돌이입니다. 가끔 외부로 나오면 인지도나 인기에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어색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에 흔들리는 시기는 지났다지만 외부에서 건드리는 손짓들에 늘 무감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견뎌왔고, 살아내며 단단해졌다. 강산도 변하게 하는 10년 세월은 힘이 세다. 무언가 도사리는 듯 거칠고 오싹한 화폭은 이제 부드러워졌다. 색감도 밝아지고 깊어졌다. "살이 쪘다고들 하더군요." 화려하면서도 무거운 독특한 색감은 흙물 덕분이다. 황토를 섞은 물을 먼저 캔버스에 바른 뒤 마르면 흙을 걷어내고 흙물이 노랗게 든 캔버스에 크레파스로 밑바탕을 그린다. 캔버스에 흙물을 바르는 이유는 알고보면 비장하다. 작품들과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 이모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기본 명제를 떠올려 자신이 죽은 뒤 곳곳에 남아 떠돌아다니게 될 작품과 미리 인사를 하려고 이런 작업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혼돈은 질서의 분신'이다. 인물과 풍경이 풍경이 합체된듯 복잡하게 엮여진 작품은 허공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그릴지, 계획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는다. 연필로 끼적이다가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고 구체화된 그림은 기괴하면서도 익살스러운 강렬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보는 순간 그림맛에 빠지게 하는 '문형태표 그림'은 동심을 넘어 '일상의 위대함'을 전한다. "작품의 메시지요? 간단합니다. '사랑'입니다.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길은 오직 사랑뿐이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가볍거나 즐겁거나 그로데스크한 그림들은 모질게 짜증내는, 진짜 가족같은 사랑의 오묘함을 표현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딱 소장하기 좋은 10호(310만원)크기 회화와 드로잉 오브제 등 75점이 전시됐다. 8월 19일까지. [email protected] 2017/07/05
시간의 먼지를 털었다···이진용 '컨티뉴엄' 딱 보면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다. 사전적으로 따져보면 '극도로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리얼리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그림'. 그러나 이 그림, 보기와 다르다. 하이퍼리얼리즘의 탈을 쓴 니힐리즘(nihilism·허무주의)이다. 사진을 확대한듯 한 고서화는 바짝 다가서고 꼼꼼히 보아야 붓질을 느낀다. 또 마치 금속활자같은 돌방석처럼 보이는 작품은 페이크(fake)의 진수다. 그림이나 '활자 조각'은 눈의 감각을 의심할 정도로 진짜 같아, '아 이게 뭐야' 하는 놀라움과 허무감을 동시에 전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시장에서 이런 그림 흔하다. 이미 사진같은 그림은 넘치고 넘쳐 신기함이 마비될 정도다. 이 작업을 한 작가도 그걸 충분히 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는 것과 "더 이상의 감동을 만드는 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오는 30일부터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4년만에 개인전을 여는 이진용(56)작가다. 그는 완벽하게 정제된 자신의 작품같았다. 검은 니트셔츠에 나란히 달린 단추 3개를 목까지 모두 잠근 반듯한 체형과 말간 얼굴이었다. "그는 스스로 화가처럼 보이는게 두렵다"고 했다. "거울을 볼때 수염이 있고 힘들어 보이면 내가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어 싫다"면서 "항상 노는 사람처럼, 미련한 선비처럼 보이고 싶다"고 했다. ◇반복과 반복의 에너지 극사실화처럼 보이는데, 작가는 "어떤 형상을 그리려고 한게 아니"라고 했다. 니힐리즘처럼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 물음 조차도 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 할수 없는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아리송한 말로, 작가가 입을 열자 작품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명확하게 보이던 오래된 책들과 활자 조각이 먼지 바람이 이는 것처럼 흩어지는 형세를 보였다. '이진용:컨티뉴엄(CONTINUUM)'이라는 전시 타이틀이 답이다. '반복'은 그의 화두다. 책으로 활자로 형상이 나타났지만 이는 그저 수없이 쌓이고 쌓인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로 뭉친 에너지라는 것. "사물의 본질, 진실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걸 만질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요.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려고 하고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은 것 같은 작업이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작업한다고 했다. "일상적으로 먹고 자는 생활로는 이 같은 작업을 할 수 없어요. 사람이 할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내 작업입니다." 그는 "뭘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순간 피곤하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데,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알면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계라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작품은 귀신에 홀린듯 나온다. 일반적으로 먹고자고놀고해서는 이런 작품이 나올수 없다고 했다. '책(Hardbacks)시리즈'는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긋고, 닦아내고, 다시 긋고, 다시 지워 시간과 색이 축적되고 누적되어 나왔다. 선 하나만 그어도 7~8시간 걸린다.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상상속의 이미지가 붓질의 반복으로 나온 것이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손으로 만져질 듯 생생하다. "매일매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1년에 열심히 한들 몇점을 만들겠어요?" 월화수목금토요일까지 중노동을 반복한다.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뭘하고 있는지를 내 스스로가 모르게" 작업하며, 오로지 일요일만큼은 '믿음의 세계'에서 쉰다고 했다. "제 책을 보세요. 따지고 보면 왜 한장한장 그려야 합니까? 왜 굳이 한 선을 숨도 안쉬고 그려야 할까요? 굳이 한장한장을 그릴 필요는 없는거잖아요?" 반문하듯 묻던 그는 다시 되돌이표로 돌아갔다. "하지만 저에게는 반드시 한장의 개념의 중요합니다. 그 작은 빈도,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수 있는 건 미세한 빈도잖아요. 그게 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반복은 그를 살게 하는 힘이다. ◇먼지 색에 매료···누적과 축적의 고행 8살 무렵, 사찰에서 그는 깨달았다. 처마위에 있는 먼지가 제일 궁금했던 아이는 처마위로 올라가 급기야 손으로 먼지를 만졌다. "몇백년된 누적된 빛, 그 색이 너무 매력적"이었다는 아이는 그때부터 "걸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여겼다. 어린시절은 기행 소년이었다. 백과사전 3개를 통째로 외우고, 교탁 옆 노란 주전자를 똑같이 그려 '천재 소년 화가'로 불렸다. 중학교 1학년때인 13세때부터 든 붓질은 44년째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부산 동아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아크릴, 유화, 나무조각, 돌 조각, 에폭시, 꼴라주등 다방면의 작업을 했다. 관심이 가는 소재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걸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재료나 기법을 연구했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제작과 파기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시도했던 여러 경험들이 지금의 작가를 만들어 냈다. 어떠한 직업도 가져본 적 없이 화가로 살면서 부산에 5개의 작업실을 가졌고, 즐거운 놀이처럼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말고 그가 집착하는 것은 30년 넘게 수많은 골동품과 차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집품인 목판활자와 열쇠, 화석, 책 등은 작품으로 나온다. 과거의 작가는 누구보다 잘 그리고 누구보다 잘 표현하는 것을 지향했으나 요즘은 그런 부분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수도승들이 수행을 하듯 작품 하나하나에 반복적 행위와 고도의 집중을 통해 마치 굴러오는 돌을 다시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하루 하루 날마다 같은 작업을 잇고 있다. "활자 작업은 2012년 아라리오갤러리를 나오면서 시작됐어요. 작업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제주도에 내려가 유배하는 심정으로 2년6개월간 서랍작업을 한 이후 육지로 나왔는데, 할만하구나하는 마음의 평정심이 생겼지요." '활자 시리즈'는 2014년 학고재 상하이에서 첫 선을 보인후, 다시 작업을 거쳐 이번 전시에 180여점을 선보인다. 골동품 수집광인 그가 25년전부터 중국을 들락거리며 모아온 400~500년된 중국 목판활자를 똑같이 만들어냈다. 마치 금속활자처럼 단단해보이는 활자 시리즈는 반복과 빈도의 에너지를 전한다. 작은 활자가 모여 커다란 원의 파장을 이루며 우주를 만들어내는 듯 연출됐다. 눈이 아니라 오감으로 봐야하는 작품, 결국 작품의 메시지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으로 번져나간다. "붓을 든지 44년만에 이제야 제가 해야 할일을 알았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제 작품은 '막연한 설레임'으로 만드는 빅뱅입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저는 무언가를 관람객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마치 고분을 발굴하듯 '4년간의 고행'을 통해 나온 이번 개인전은 '시간의 먼지를' 턴 듯하다. 일반적으로 30여점을 보이는 개인전과는 판이 다르다. '컨티뉴엄'을 주제로한 '책' 연작(Hardbacks Series)과 '활자(Type)' 작업 220여점을 학고재 신관과 본관에 걸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훈련된 일이다. 특히 화가의 작업은 "천재적인 순발력이 아니라 꾸준히, 아주 미세한 빈도의 에너지가 있어야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보여주는 전시다. 7월30일까지. [email protected] 2017/06/29
'삐에로' 하정우와 화가의 무게 일명 '아트테이너', 배우이거나 가수인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 요즘엔 흔하다. 화가로 변신은 이색 취미와는 다른 '연예인의 품격'으로 '있어 보이게' 하는 효과도 난다. 대표적으로 심은하·김혜수가 화려하게 주목 받았고, 이후 수많은 연예인이 '나도 화가'라고 커밍아웃 했다. 한창 아트테이너 상승세일때 찬물을 끼얹은건 '아트테이너 원조'였다. 미술시장에서도 잘팔리는 작가였는데, 그의 작품은 정작 대작(代作)이어서 문제가 컸다. 법정까지 갔고 전시는 뚝 끊겼다. 희열은 고통에서 생긴다. 아픔을 예술로 승화한 이들이 다시 등장했다. 가수 솔비·이혜영이 아트테이너 대열에 올랐다. 대중적 인기는 작품 판매에도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에서 들뜨는 전시 홍보로 작품도 대부분 팔려나간다. 유명세는 독이다.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특히 '진짜 화가'들 입장에선 영업 침해다. 반면 프렌차이즈 가맹점처럼 '보복 영업'도 할수 없다. 화가들은 화가나도 지켜만 보는 추세다. '얼마나 하겠어' 라며 제쳐 놓지만, 싸이의 노래(좋은 날이 올거야) 가사처럼 '결국, 질긴 놈이 이긴다'. '노력하는 놈은 즐기는 놈 절대 못 이겨' 이런 가사 측면에서 화가들을 긴장하게 하는 아트테이너가 있다. “쉬운 시작은 아니었지만 작업은 내게 큰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는 배우 하정우다. “집중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필요해 그림을 그리게 됐다"는 그는 2010년부터 해마다 개인전을 열고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수많은 그룹전과 해외전을 치르며 '배우 화가'라는 명성까지 쌓았다. 유명세 덕분에 그림값도 상승세다. 지난해 3월 한 경매장에서 그의 작품 '킵 사일런스'(Keep Silence)가 1400만원에 낙찰되면서 공개된 그림값은 화가로서 몸값도 올렸다. 하정우의 '팬덤'이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화랑이 아닌 경매장에서 판매는 의미가 다르다. 그림을 산다는 건 영혼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다. 돈을 모아서 집을 사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그러니까 화가 하정우는 배우 유명세에서 '순수 미술가'로 인정받고 있는 단계에 와있는 셈이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내 의식과 무의식이 사이의 균형을 얻는다”는 그의 그림은 '하정우 표 초상'으로 굳히기를 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초기, 뉴욕 낙서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를 떠오르게 했다. 실제로 하정우는 "바스키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피에로(’wig’)로 나온 그림들은 배우인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며 공감을 얻었다. 시간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초기 바스키아풍에서 벗어나면서 하정우만의 패턴과 이미지로 진화하고 있다. 배우로서 틈틈히 작업하며 7년만에 벌써 11회째 개인전을 연다. 28일부터 서울 이태원 표갤러리에서 'PLAN B'를 타이틀로 인물화등 신작 50여점을 전시한다. 이전 '삐에로'에 그림에서 'WORK'를 명제로 단 신작들은 형형색색 입술을 가진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서울과 하와이에서 제작된 그림속 인물들은 하정우가 만나고 스쳐지나간 사람들이다. 특유의 유쾌함과 자유로움이 넘치는 그림은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동안 그림이 도안적인 펜드로잉 같았다면 신작은 회화적인 느낌으로 변화를 보인다. 자신감있는 면의 붓질과 선 드로잉이 부드러워졌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게 휴식을 주었고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하정우의 작업은 이제 '개인기'를 벗어났다. 상업화랑에서 전시한다는 것은 작품을 판매하는 일이다. 인기 배우인 만큼 대중은 '아트테크'까지 꿈꾼다. 아직 인기는 여전하다. 표갤러리는 "전시 소식과 함께 작품값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하정우 작가가 원치 않아 전시전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2014년이후 표갤러리에서 3년만의 여는 전시로 작품값은 올랐다. 107.7x77.9cm 크기 작품은 1000만원에 판매한다. 권불십년 (權不十年)처럼, 배우 이름세로 그림이 팔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진짜 화가, 중견화가들의 개인전이 뜸한 이유다. 똑같은 그림, 매번 사주고 봐줄수는 없다. “변해도 추락하고 변하지 않아도 추락한다”(단색화가 박서보 화백 대표 어록)는 말은 화가들의 삶의 무게다. 하정우의 개인전 'PLAN B' 는 기로에 서있다. 지켜보는 눈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시는 7월27일까지. [email protected] 2017/06/27
마리 관장 "미술관 법인화 여부 빨리 결정해라" 국립현대미술관 새해 첫 전시가 불발됐다. 2월 서울관에서 열 예정이었던 '앤디 워홀'은 무기한 연기됐다. '외국인 관장 1호'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의 체면은 구겨졌다. 지난해 12월 취임 1주년때 앤디워홀, 리처드 해밀턴, 파블로 피카소 등 서양의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전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시작부터 틀어졌다. 기대했던 '마리 관장표'전시는 1년간 기다린 보람도 없이 김빠진 모습이다. "임기중 목표는 계약서에 적힌대로 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 마리 관장(51)에게 무슨일이 있는 걸까. "2017년은 본격적으로 내게 부여된 미션을 수행하겠다"고 했고, '히딩크'처럼 성공했으면 한다는 그였다. '열정의 나라' 스페인에서 온 그가 조용하다. 22일 서울관에서 마리 관장을 만났다. -'2017년과 2018년 전시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했는데, 결과는 다르다 ▲부임후 1년간 조직 체계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뒀다. 미술관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해 개선점을 제안했고, 개선된 상황이다. (지난 1월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관 3개관을 통합, ‘하나의 미술관(원 뮤지엄)’ 으로 조직개편했다. 서울관, 과천관에 분리돼 있던 학예분야와 행정지원(기획운영) 분야를 융합해 업무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이제야 포커스를 옮겼다. 전시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조직과 프로그램의 질적 제고는 맞물려 있는 연계된 주안점이라 할수 있다. 전시는 관람객이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조직이 어떤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수는 없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프로그램이 중요한 반면 성공적으로 시행이 되려면 조직체계가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잡혀있어야 된다. 즉 전시 프로그램의 성패가 조직체계에 달려있기 때문에 지난 한해 동안은 조직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개선점을 마련하고 제안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시기였다. 2017년은 실질적인 열매, 결실을 볼수 있는 해가 될 것 같다. -전시 계획 발표에 ‘뜬구름같다’는 반응도 있었다.'앤디워홀', '이집트 전', '피카소'라니… '뻔한 블록버스터' 전시 아닌가 하는 실망이 있었다. ▲이집트 전시는 뻔한 전시가 아니다. 비서구권에서 펼쳐진 놀라운 단면을 이집트가 보여주고 있다. 뻔하다는 이유를 꼽자면 피라미드 등으로 알려진 것 때문에 편견을 가질수 있다. 이제 서구예술에서 벗어나 아시아만의 예술의 특성에 집중할 필요할 있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 4월부터 7월까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1930년대 이후 이집트의 전위예술운동을 보여줄 전시는 이집트가 근대독립국가로 성장한 뒤 활성화한 아방가르드예술운동의 궤적을 통해 제3세계의 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서구의 예술운동과 연관을 맺고 독자적으로 발전해나갔는지를 보일 예정이다. 이집트 초현실주의 미술의 놀라움을 발견할 것이다. 기대해달라. -첫 전시로 내세운 '앤디워홀'전은 왜 무기한 연장됐나 ▲앤디워홀은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 취합해서 고퀄리티의 전시를 하려고 했었다. 앤디 워홀이 1978년 제작한 ‘그림자들’ 연작 102점을 한꺼번에 보여주려고 했다. 많은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합리적인 비용으로 하려고 했다. 그러나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재정적인 차원에서 부담이 컸다. 경기불황이 맞물려가기 때문에 무기 연기 할 수밖에 없었다. 알려진 것 처럼 상하이에서 순회전'이 그대로 오는 전시가 아니었다. 그 전시는 이미 1월 15일 끝나고 뉴욕 디아파운데이션으로 돌아갔다. 다시 추진할수도 있겠지만 아직 결정된게 없다. (느닷없는 폭탄발언)'피카소전'은 취소 됐다. 2018년 전시였는데, 아예 취소됐다. -이쯤되면 ‘마리관장의 굴욕‘이다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앤디워홀은 '그림자' 시리즈를 들어오는 것이었다면, 피카소전은 미술관에서 기획하는 대형 전시였다. 아쉽게도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전시를 하는것은 대규모 관객을 유치하거나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피카소전시는 알려진 그림을 가져오는게 아니라, 미술관에서 자체 기획을 해서 MMCA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진 전시를 추진했는데 어쩔수 없이 취소됐다. 하지만 얻은 교훈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떤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한지, 어떤 것을 시정해야 되는지를 알게됐다. -개선과 시정해야 되는 것은 무엇인가 ▲국립미술관으로서 한계점이 있다. 행정적인 규제로 인한 제약이 없어져야 한다. 유수의 기관과 협업을 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행정적인 규제가 심하다. 절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문제, 이러한 행정규제는 미술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기관, 공공기관의 규제다. 오랫동안 규제들이 진일보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정부 공공기관이, 해외 기관과 협업하는데 한계가 있다.현재 상태로는 국가 미술관 국가 박물관만 일을 할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계가 있다.(한계를 강조했다) -'뭣이 중헌지'를 모른것 같다. 1년동안 뭘했나. ▲우선 추진한건 조직체계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부적인 규제등을 온전하게 보고를 받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따지고보면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어떤 부분은 허비하기도 하고 지연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규제를 알아야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피카소, 가장 대중적이면서 기대되는 전시였는데 아쉽다 ▲전시를 연기하고 취소된 건 정말 아쉽지만, 막상 그 당시에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미술관이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현실에 맞게 계획을 시정하고 변경하는 것이 관장으로서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그런 대규모 전시를 열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기다렸다가 재정비하고 준비해서 좋은 전시를 여는게 좋을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앤디워홀 라우센버그등 팝아트 대가들, 미술사 중요한 작가들 전시를 유치하려면 500만~600만불이상이 든다. 그런데 미술관이 감당할수 있는 금액은 미화로 80만달러밖에 안된다. 수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어떻게 질 높은 전시를 유치할 것인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마리 관장은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취소된 전시도 있지만 관람객들이 매우 즐겁게 즐길만한 전시가 많다. 2017, 2018, 2019년 고퀄리티의 전시가 대기하고 있다. 4월 이집트전을 시작으로 10월 페미니즘과 연결된 '신 여성전'이 있다. 신 여성전은 역사 사학자 대중문화 작가등이 연구에 참여해서 햇수로 3년만에 준비한 전시다. 세계 곳곳도 마찬가지만 한국도 남성지배적인 사회다. 성역할이 근대 예술이나 대중문화에서 대변되는 역사로만 보여왔는데, 성 역할, 여성의 역할이 어떤식으로 변화됐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김은호·김인승·나혜석·이인성·이쾌대·장우성·천경자 등이 그린 200여점의 작품과 관련 자료를 선보인다. -굳이 지적하자면 국제적인 전시기획가로서 '마리 관장의 글로벌 컬러'가 안보인다 ▲할말이 있다. 해외 주요 미술관은 주요 전시는 3~4년전에 사전 기획한다. 우리 미술관은 1년 정도 미리 기획하는 상황이다. 다른 유수 기관들이 사전 기획한다는 걸 고려했을때, 우리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이 예측된다. 네트워킹을 한다든지 해외미술관과 공동 프로듀싱을 하기까지 사전기획 체계가 셋팅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이 내가 가장 크게 힘들게 싸우고 있는 부분중 하나다. 중요한 건 우리 미술관도 3~5년 사전 기획이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게 중요하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서울관에 주요 대형 전시로 열던 '대한항공박스프로젝트'가 폐지됐다. ▲ 미술관의 재원 마련하는 것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재원의 출처를 다양하게 하는게 중요하다. 한 곳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후원처의 상황에 따라 계획하는게 중요하다. 향후에는 자체적으로 수익 위주로 돌아갈수 있게끔 자유롭게 전시를 기획하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시행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런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게 해야한다. 2016년에 목표를 가지고 일했던 것이 비용이 많이 들지라도 모두가 즐길수 있는 대중문화, 대중예술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미술관 수익을 위해, 또한 기부나 후원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나 ▲ 사실. 수익을 다양화할 여러방법이 있다. 감히 경험이 많다고 이야기할수 있다. 내가 이전에 일하던 기관에 공공섹터 부분에서 큰 경제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타격으로부터 공공기관을 보호하는 법을 체득했고 그런 방법을 알고 있다. 큰 해결책은 민간재원을 통해서 기관을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지 공공재원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공공재원 민간재원을 섞어서 해하는데, 한국은 잘 안되고 있다. 공공기관이 결국 추구해야할 지향할 미래상은 민간공공재원을 섞는거다. 후원자를 늘리고 티켓 할인 멤버쉽 도록판매등 수익원을 늘리고 재원 활성화 방안은 많이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건 이미 해외유수 기관에서 행하고 있는 기법들이고 솔류션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좋은 해외 사례들을 차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술경영지원센터도 이것과 관련 세미나도 열고 있는데 정부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재원 마련에 노력을 기해야 한다.(미술관은 '관장은 정기적으로 후원회를 미팅하고 기업의 오너등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조직개편에도 반영됐는가 ▲ 이번 개편을 통해서 재원문제를 담당하는 전담부서를 신설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고객 서비스 및 공공프로그램 연구·출판·미디어·커뮤니케이션 기능 강화를 위해 기획운영단에 고객지원개발팀과 소통홍보팀을, 학예연구실에 연구기획출판팀을 신설했다. 고객지원개발(디벨로먼트)팀은 패트론 관리부터 후원 마케팅을 담당한다. 경제가 불황이라고 하지만 유럽에 비하면 한국경제가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는건 희소식이다. 경험은 많지 않지만 미술관은 현재, 적어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늘 들어서 지겹겠지만 미술계 '히딩크'로 불린다. 기대감이 크다는 이유다 ▲ 하하. 하지만 난 히딩크와는 다르다. 아시다시피 히딩크 감독은 누가 선발을 뛸지 바로 지명을 했는데, 미술관은 복잡 다난한게 있어서 관장이 직접적으로 간여하기가 어려운점이 있다. 히딩크는 행정규제가 없이 자유롭게 선수를 기용했다는 점이다. 그 큰 차이점을 알아달라. -문체부 산하기관이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 법인화를 할지 말지를 빨리 결정해달라는거다. 미술관 법인화는 필요하다. 문체부와 정부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법인화할지 안할지에 대한 정확한 결정을 내려달라. 하려면 구체적인 계획을 빨리 수립해야 한다. 안할거면 상황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2009년부터) 법인화를 하자고 이야기는 나왔는데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다. 쉬운건 아니지만 굉장히 중요한 미술관의 현안이자 이슈다. 현재 미술관이 주요한 변혁의 때를 맞아서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 이런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 다이내믹하고 활발하고 신속한 변화를 이끌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속한 빠른 변화는 성급한 결정이 아니라 명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는 거다. 왜냐하면 '마리 관장이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는 여론이 있기 때문이다. -규제에 발목이 묶여 있다는 것인가 ▲ 미술관은 문체부 산하기관이다. 문체부가 주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물론 현재 정치적인 상황이 어렵고, 정리되고 기다려야 되는 시기가 있다는 건 이해한다. 법인화는 복잡한 문제이니까. 하지만 현재와 같은 규제나 제약이 존재하는 한 내가 취임 당시에 계약한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는게 어찌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다시 한번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이런 행정적인 규제와 제약속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점을 한번 더 말하고 싶다. -문체부 반응은 ▲묵묵부답이다. 내가 보니 법인화 있어서는 충분한 소통을 하면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서 나아가는 것 같지 않다. 마치 '금기어'처럼 느껴진다. 생산적인 논의의 결과물이 안나온다. 문체부가 정부를 좀 더 설득을 하고(법인화가 무엇인지, 왜 좋은지, 어떤 의미를 띄게 되는지)설명할수 도 있는데(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게 아니니까)그런 부분에서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침묵) 사실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변화될 부분이긴 때문에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건 국회나 공공기관에서 예산을 1년 단위로 주는데, 이 부분도 공공재원으로 부터 독립적인 형태로 나아가가서 민간재원을 확대할수 있는 방향으로 전진해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중의 하나다. 그래서 법인화가 중요하고 그 과정이 될 것이다. -미술관 법인화 왜 해야하나 ▲행정적이거나 조직적인 제약들로 훨씬 자유로워질수 있다. 자유는 경제적인 것과 독립된 기관으로 나가는 조직적인 자유를 포함한다. 물론 법인화가 만병통치약이다 말할수 없지만 미술관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80%를 해결할수 있다. -법인화 문제, 언뜻 들으면 핑계라고 할수 있다 ▲아 분명한 건, 행정적인 규제와 제약이 있다고 해서 관장으로서 받은 미션들을 성공할수 없다거나 성공하지 못하게 놔두는건 아니다. 오히려 미술관의 확신에 찬 계획을 내부와 외부 관계자를 설득하고 한데 모을수 있어야 한다.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중에게도 미술관을 설득하는게 중요한 부분이다.어쨌든 외국인 관장으로서 주어진 미션이 있다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변화의 초점에 맞춰서 계속 나아갈 것이다. -정치적으로,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나라가 어려운 시기다. ▲그럼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중요한 기회의 때에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술관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아시아에서 1위 미술관을 지향하는데 그 목표에는 근접해 있다. 고민해봐야 하는 질문이 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심오하게 변화를 꾀하고자 하느냐’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그는 별자리가 황소자리라고 했다.(고집이 세다는 의미로 들렸다) 또 자신의 '마리' 이름을 한자로 변환하면 ‘말의 힘’ , ‘마력’이라고 설명했다. 마리 관장은 "현재 힘든 상황이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포기하지 않고. 나의 갈길을 집중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 이름이 마리, 마력인 만큼, 미술관에 변화를 이끄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1년전 '안녕하세요'를 하던 마리 관장은 이제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그는 "앞으로 서울시립미술관장, 한국미술협회장,한국화랑협회장들을 만날 것"이라면서 "늘 열린마음으로 미술인들과 의견을 나누고, 협력할게 있으면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조만간, 몇 달안에 깜짝 놀랄만한 한국어를 구사할 것"이라며 "할일이 많다"며 활짝 웃었다. ‘외국인 관장 1호' 마리 관장 임기는 2018년 말 까지다. 그가 임명됐을때 ‘한국말, 한국현대미술을 이해할 듯 할 때쯤 임기가 끝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관의 3관 체제로 2018년 청주관이 개관하면 4관 체제의 거대한 조직이 된다. 잠자던 '미술관 법인화' 문제를 깨워야 할때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 대행 체제이고, 문체부도 장관없이 대행 체제다. [email protected] 2017/02/23
국격을 대변하는 그림…'한국미술사의 절정' 절정(絕頂). 최고의 경지에 달한 상태를 뜻한다. 절정은 도전이고 파괴적이다. 절정에 오른다고 하고, 치달은다고 한다. 절정의 끝은? 결국 추락이거나 꺾임이다. 지난해 연말, 절정으로 치닫던 탄핵정국이 지지부진해지고 있는 가운데, 주춤하던 미술시장에 '미술품의 절정'을 맛볼수 있는 전시가 개막한다. 원래 작년 11월 30일 하려고 했지만 '촛불혁명'의 시국때문에 미뤄진 전시다. '한국미술사의 절정'전이 15일부터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린다. 유독 '절정'이라는 글자를 키운 도록도 눈길을 끌지만, 전시 제목에 '절정'이라고 단 것도 독특하다. 노화랑 노승진 사장(69)이 '야하다'고 하며 '절정'을 '클라이막스'라고 영어로 말하자, 전시를 기획한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65)가 '오르가즘'이라며 껄껄 웃었다. 제목만 보면 섹시한데, 알고보면 품격있다. 다른길을 가던 노 사장과 이 교수는 미술인들로서 의미있는 재능기부에 나섰다. '가장 한국적인 명작'이란 대의 아래 지난 13년전 2004년 의기투합했다. 당시 노화랑에서 '20세기 7인의 화가들'이란 전시를 하면서다. '가장 한국적인 명작' 2탄격으로 기획한 이번 '한국미술사의 절정'전은 40년 전통 노화랑의 '문화 사회공헌'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명작'을 선보인다는 취지로 마련한 이 전시는 상업화랑이라는 노화랑의 면모를 달리하고 있다. 화랑은 그림을 파는 곳이지만, 이번 전시는 판매하고는 거리가 멀다. 모두 개인소장자들이 대여한 전시로, 우리 한국미술을 남녀노소 누구나 가까이서 볼수 있게한다는 취지다. 관람료도 없다. 이태호 교수는 "공사립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못지않은, 개인 소장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전시장을 채운다"며 "16점으로 꾸민 소규모이지만 한국미술사의 절정에 걸맞는 대형전시"라고 자부했다.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이렇게 '호들갑일까'. 전시에 나오는 18세기 달항아리, 겸재 '박연폭도', 단원 김홍도의 '죽하맹호도', 이중섭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 박수근 '독서하는 소녀', 김환기 '산월'과 '무제'등 전시작품 총 16점은 국내 명품중의 명품이다. 모두 개인소장품으로, 미술관 박물관도 아닌 화랑에 대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알차고 학구적인 전시기획과 40여년 전통 노화랑의 신뢰 덕분이다. 그 마음을 아는 노 사장은 소장자들을 위해 보험가액만 400억대의 보험을 들었다. 국내 상업화랑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노화랑은 "전시기간 작품의 안전을 위해 야간 경비도 세울 것"이라고 했다. 일단 전시는 지난 300년간 한국미술사의 대표 거장 다섯명을 뽑았다. 민족의 자존감으로 내세울만한 18세기 조선미(겸재 단원)와 그 조선미를 토대로 삼은 20세기 세 화가(이중섭 박수근 김환기)가 주인공이다. 전시 간판은 겸재 정선이 말년인 1750년대 그린 '박연폭도(朴淵瀑圖)' 다. 정선의 3대 명작(금강전도·인왕제색도·박연폭도)가운데 유일한 개인소장품이다. 국내 전시장에 이 그림이 나온 것은 7년 만이다. 이태호 교수는 "30년전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그 폭포소리의 위력에 그만 뒤로 넘어질뻔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고, 소장자는 '지금도 여전히 폭포물보라에 온몸이 젖는 듯하다'고 한다. 과장같지만, 그림을 보면 문외한이라도 좀 이해가 된다. 시원하게 쫙 흐르는 폭포가 압도적이다. 우레와 같다는 폭포 소리의 리얼리티를 적절히 이미지화한 것으로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낀 순간의 감명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세로로 1m가 조금 넘는 그림의 실제 길이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성미 넘치는 겸재의 박연폭도는 '인왕제색도' 보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걸작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한국미술사에서 회화예술의 최고 절정을 빛낸 작품으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로도 일컫지만 현재 100억대에서 300억대까지 작품값이 논의중으로 알려졌다. 호랑이보다 더 사실적인 단원 김홍도의 '죽하맹호도'도 뽐낸다. 송하맹호도(삼성미술관 리움소장)에 비해 호랑이의 크기가 작지만 동작의 위세와 섬세한 묘사가 빼어난 걸작이다. 소리없이 움직이는 꼬리와 등을 세워 경계를 취한 호랑이의 자세는 생동감 넘친다. 2011년 '화원-조선시대 화원대전'(삼성미술관 리움)에 출품되어 주목받았다. 그림 상단 오른쪽 공간에는 '세상 사람들이 간혹 호랑이를 그릴 때 개처럼 비슷하게 될까 우려한다. 이 그림은 도리어 진짜 호랑이가 자괴감을 갖게 한다'는 자신감이 써있다. 또 '조선이 서호산인 김홍도가 호랑이를 그리고, 수월옹 임희지가 대나무를 그리고, 능산도인 황기천이 평을 쓴다'고 밝혀놓았다. 대나무와 호랑이를 짝지은 죽호도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한 소재다. 이태호 교수는 "그림 화평에 보면 김홍도 앞에 '조선'이라고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죽하맹호도'는 통신사와 관련하여 일본에 건너간 그림으로 짐작되지만 그런 내력을 밝혀줄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본래 호랑이 그림은 궁중의 세화로서 악귀를 막는 벽사를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2점의 백자 달항아리도 출품된다. 한점은 이 48.2cm, 지름 50cm의 균형잡힌 몸매를 과시하는 대호다. 살짝 주저앉은 둥근 형태에 연푸른 기운도 감도는 유백색이 단아하며 아름다운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건너간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2007년 3월 이 달항아리가 환수문화재로 귀국하면서 주목받았다.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 이상준 사장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아, 프리마호텔의 유명브랜드가 된 백자대호다. 다른 한점은 47cm높이로 프리마호텔 소장품보다 일그러짐이 심하다. 굽받침을 보완해서 세울 정도로 아랫부분이 심하게 주저앉았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는 감상 재미가 있다. 이태호 교수는 "백자 대호를 보면 어릴적 끌어안았던 어머니 엉덩이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면서 "달항아리야말로 우리나라 문화재중 가장 한국적이고 조선미의 대표작"이라고 극찬했다. '백자사랑'하면 김환기를 빼놓을수 없다. 김환기는 도자사 연구자인 고 최순우 관장이나 정양모 관장보다도 제일 먼저 달항아리를 높이 평가할 만큼, 그 가치를 일찍이 예찬했다.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이조 항아리'라는 시를 통해 달항아리를 노래했다. '조형미의 극치이자 조형의 전위'에 위치한 예술이라며 달항아리를 극찬한 김환기는 자신의 작품에 항아리를 녹여냈다. 1950~1960년대 그림에 달항리는 누드여인과 등장하기도 하고 달이나 산, 구름, 매화등과 조화를 이루며 늘상 주요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김환기의 작품은 5점중 1960년경 제작한 '산월'이 눈길을 끈다. 두툼하고 거친 질감의 유화작품으로 커다란 블루문을 담았다. 컴퍼스가 아닌 손으로 둥그스름하게 그렸기에 완벽한 원형이 아니어서 오히려 친근하고 약간 좌우로 넓적한 모양새는 김환기가 사랑했던 백자항아리의 넉넉함을 연상시킨다. 훤한 보름달도 푸르게 그린, 푸른 색감을 주조로 한 화면은 미묘하면서 신비롭다. '흰소' 이중섭은 이번 전시에서 동물과 사람이 없는 봄풍경 그림으로 색다르게 다가온다. 1950년대 중반 통영시절에 남긴 그림으로 그동안 '벚꽃과 새'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그림이다. 이태호 교수는 "이그림을 자세히 보니 벚꽃이라기보다 핑크색 꽃잎과 함께 자란 연두색 새싹들이 복사꽃을 닮아 있다"면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제목을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라고 고쳐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지난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에서 소 그림을 제치고 '유화 작품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으로 꼽혔다. 현재 이중섭전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중이지만, 이 그림만은 서울에 남아 노화랑에 전시하게 됐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작품은 1950~60년대 전성기의 걸작 소품들이 나왔다. 특히 1955년작 '독서하는 소녀'는 박수근의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붉은 저고리에 짙은 갈색치마를 입고, 그 아래는 흰 버선이 살짝 보인다. 우툴두툴한 백새조 질감 바탕에 올린 색이 굉장히 화사하다. 색채화가로서의 박수근을 새롭게 보게 한다. ◇달항아리부터 김환기 추상까지 관통하는 건 '조선미' 이번 전시는 조선후기 '조선미'와 근현대 '한국미'를 한자리에 놓고 한국미술의 동질성, 정체성을 확인해보려는 속 뜻이 깔렸다. 겸재, 단원, 달항아리에 이어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의 작품에 조선미, 한국미의 미감이 자연스럽게 스미듯 이어진 건 중국과 일본에서도 따라하지 못한 우리 근현대미술의 백미이자 독보적인 한국미술이라는 자부심이 담겼다. 지난 300년은 한국미술사에서 그야말로 절정을 창출한 시기였다. 한국미술사의 전체 흐름중에서 가장 조선적인 것, 혹은 한국적인 것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현재 최고의 값을 형성하고 있는 점으로 볼때 우리나라 문화사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의 유산으로 최고의 부른 이룬 시기임이 틀림없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 조선말기와 일제 식민지 기간이 커다란 공백기로 남는다. 우리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기준삼아 돈으로 환전한다면 민족적인 재산을 엄청나게 잃은 시기라 할수 있다. 이 혼란기를 딛고 1950~70대에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가 한국미술사의 절정으로 제 2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절정을 끝으로 미술사는 하강기다.1960년대 70년대 민주화 운동과 군파시즘 시절,새로운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 앵포르멜이나 추상주의 단색화물결이 이어졌다.1980년 5월 민주화항쟁이 계기가 되어 민중미술이 맹위를 떨쳤고, 2000년대초 팝아트와 극사실주의 대세로 미술시장을 흔들었다. 이후 다시 단색화 물결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해외에 알리고 있다.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는 "어찌보면 우리시대는 절정을 찍은후 지금은 하강기의 어느 지점일듯 싶다.이는 한국사회가 퇴행 몰락한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기 때문"이라며 "작년부터 열리고 있는 광화문 광장의 열기를 호흡하며 과연 우리가 이 하강기를 딛고 또 하나의 절정기를 맞이할까를 그려보곤 했는데,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지금 이 같은 우리 '한국미술 절정'의 작품들을 톺아보면서 민주주의 사외화 문화의 격조가 상승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번 전시 놓치면 안된다'고 강조하는 이태호교수에 물었다. ◇왜 꼭 봐야하는가? "국립현대미술관은 '겸재'전을 안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김환기'전을 안한다. 근현대가 나눠져 서로가 다른 것은 안본다. 이렇게 양쪽에서 분리해서 할 전시를 상업화랑 노화랑에서 묶은 것이다. 18~19세기, 20세기 미술을 통합한 전시이기도 하다. 한국 미술사는 물론 국내 정치현실이 하강기이지만 우리 민족의 국격이 이 정도로 훌륭하고 품격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번 전시 작품은 국격을 대변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꼭 봐야 한다." 전시는 28일까지. [email protected] 2017/02/12
김용익 "'땡땡이', 데미언허스트보다 내가 먼저다" 지난 9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40년 화업 회고전을 연 김용익 화백(69)이 다시 상업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일민미술관 전시는 70년대 단색화 시기부터 2010년대 공공미술 이후까지 이어지는 그의 작품 100여점을 선보여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미술가로서 고뇌했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어 주목받았다. 특히 40년 남짓 진행해 온 작품 활동의 결과를 수장한다는 취지의 '관 시리즈' 신작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시신을 염하고 장례를 치르는 듯한 작품은 관 형태의 나무 상자에 봉인하고 그 위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도상과 글을 덧붙이는 제의적 행위에 집중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회고전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신작전이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했다. 더욱이 신작은 '땡땡이' 시리즈다. 이미 90년대 초 태동한 작품이다. 국제갤러리는 "지난 2년간의 신작 30점을 선보인다"며 "단색화 이후 세대의 실천적 미술과 경향을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단색화 흐름을 탄 상업화랑의 발빠른 마케팅으로 보였다. 지난 10월 열린 KIAF에 국제갤러리에 출품된 '땡땡이' 작품은 인기를 끌었고 팔려나갔다. 그는 "한두 달 전부터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다"면서 "감개무량하지만 느닷없이 온 행운이라 불안하기도 하다"고 했다. 22일 김용익 화백을 전시장에서 만났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했다. 젊음과 늙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스키니한 자주색 바지와 달리 웃옷은 정장 느낌이 났다. 짙은 회색 목폴라와 재킷엔 자주색빛 행거칩이 꽂혀있다. 이번 전시는 메이저 화랑에서의 개인전은 생애 처음으로, 갤러리 전시는 10년만이다. 2015년부터 2016년에 제작된 '모더니즘의 묵시록', '얇게 더 얇게', '20년이 지난후'등 90년대 땡땡이 연작의 소회를 드러낸 1층과 달리 2층에는 '유토피아'연작이 걸렸다. 땡땡이 색감이 화사하고 부드러운게 특징이다. 그의 작품설명은 미술과 철학을 넘나들었다. '땡땡이 시리즈'에 대한 '우문현답'이 이어졌다. ▶김용익 화백:"'유토피아' 작품을 통해 아련한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단하고 힘들고 울화통이 터지고 분노에 가득찬 삶을 대처하는 방법은 터트리는 방법이다. 뒤집어 엎는 것, 그것은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취했던 태도다. 도저히 불가능한 세계를 꿈꾸어보는 것, 그것을 '유토피아적 아방가르드'라고 부른. 21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꿈꾸었던 세계가 완벽한 꿈으로서 이상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다. 유토피아는 이루어지질 수 없다는 것과, 또 고단한 삶에서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서 이상향을 꿈꾸어보는. 좌절과 절망을 교묘하게 겹쳐진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게 이번 작품의 의도다." ▲기자: '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김용익 화백:"원의 의미? 하하. 일단 그리기가 쉽다. 간단하지만 쉽고 완벽한 형태가 나온다. 왜 원을 사용하게 됐는가? 두가지 의도를 가지고 했다. 처음엔 페인팅을 해놓고, 그걸 원으로 가렸다. 또 나무판에 페인팅을 마치 추상표현주의 잭슨폴락이나 드쿠닝 처럼 흉하게 모사하고 구멍을 뚫어버리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묵시록'이 제목으로 어울릴 정도로, 새까맣게 원으로 가린적도 있다. 왜? 원과 원 사이에 구멍으로 뒤가 살짝 보인다. 제 작품에서 예술가로서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완벽하게 다 가리는게 래디컬하게 나가는게 아니라, 항상 못 미친다는 것, 유보조항을 달고 있다. 과격한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보여줬던, 전복적이고 폭력적 아방가르드가 아닌 예술가다. 거기서 나온 원이 '전유'되면서 변주를 보이고 있다." ▲기자:'데미헌 허스트 작품 같다'는 인식이 있다. (허스트는 90년대 후반부터 매튜 바니와 더불어 세계 예술계 최고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색색 땡땡이'시리즈는 한점쯤은 소장해야 컬렉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2008년에는 세계영향력있는 아티스트1위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김용익 화백:"너무 나이브한 질문이다.(그는 살짝 발끈했다) 데미언 허스트하고 아무 상관없다. 그 사람은 동그라미에다 물감을 기계적으로 몇 %로 섞은 원색이다.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중요한 것은 데미언 허스트보다 내가 먼저했다는 거다. 나는 89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 구사마 야요이, 데미언 허스트등 왜 화가들은 땡땡이를 그리는가. ▶김용익 화백:"영원한 유행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누구랑 비슷한 얘기는 상당히 나이브한 얘기다. 나의 맥락을 읽어줄수 있는게 중요하다. 결국은 데미언 허스트보다 먼저했다는 거다.(그는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데미언 허스트보다 내가 먼저했다." ▲기자: 작품에 연필로 휘갈기듯 사인이 되어있다. 이유가 있는 건가. ▶김용익 화백: "저안에 있는 어쩔수 없는 본능적인 것,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를 더럽히는 의미다. 나의 예술에 대한 원상흔 같은 것이다." ▲기자:(2층 전시장 벽 구석엔 연필로 그린 그림이 있다) 왜 이걸 그린 건가. (땡땡이와는 다른, 구름과 나무가 있는 풍경그림이다) ▶김용익 화백:"2016 11월 22일 벽에 그렸다. '잉여 욕망'이다. 사실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도 발표한다는 것 자체도 이미 라캉 식의 얘기로 하자면 '상징 질서'에 속하는 거다. 내가 작품을 해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상징 질서와 규율과 훈육 으로 이뤄진 세계속에 나를 올려놓는 것이다. 밑바닥에는 '상징 질서'속에 올라올수 없는 욕망이 있다. 담기지 않은 잉여욕망이 없으면 개별 인간들의 삶도 불가능하다. 예술가는 더 심하게, 전시라는 상징틀로 잉여욕망이 많은 사람이다. 그 잉여 욕망의 그 끄트머리를 제시해본 것이다. 이것이 무엇이냐 물어도 대답 안 할 것이다." ▲기자:'미술이 창작의 시대가 아니고 편집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지난 회고전에 수장의 시대로 마감했다. 그런데 이번 신작은 90년대 땡땡이로 회귀했다.무슨 이유인가. ▶김용익 화백:"90년대로 전유했다는 것이다. 옛날 작업을 재전유하고 있다는 프로세스, 현실이 중요한 것이다. '의미 없는 옛날 작업의 반복이네' 이렇게 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의미가 있는지는 내가 판단할 수 없다. (김화백이 흥분감을 보였다. 큐레이터가 치고 들어왔다) ▶국제갤러리 전민경 팀장: "이번 전시와 지난 회고전은 다른 접근이다. 광주·부산비에날레에서 각국 미술계 관장 큐레이터들이 와서 단색화 이후의 세대 작가로서 김용익의 작품을 보면서 역사성을 읽어보게 되고, 원자체가 갖는 의미, 재전유라는 개념들이 서구에서는 익숙한 개념과 연결이 됐다. 이해가 됐고 공유가 된 지점이 컸다. 개념적인 지점, 평면회화의 이 시기에 연작을 더 보여준다는 의미가 크다." ▶김용익 화백:"아, 저 말을 하니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화중의 하나가 '예술은 진보하고 혁신하고 발전하는 것'이라는 것은 20세기 만들어진 모더니즘 신화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느다. 예술은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 시대착오를 통해서, 시대착오가 진보일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또 필요하다. 세상이 바뀌면, 누군가가 앞서가지만 돌아보면 꼴찌가 첫째가 될 수 있다. '시대착오', 20세기 굳어진 수렴되지 않은 지점이 있다는 것을 나는 내면화 시키고 있다. 옛날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 다시 말하자면 "그래서 어쩔래?" "그런데 뭐가 문제야?", 예술은 아나크로니즘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수 있는 거다. 그게 내 대답이다." 그는 이번 신작은 "땡땡이 그 자체가 아니라 조합, 패턴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했다. '재전유'를 강조했다. "진보와 새로움은 모더니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편집이라는 말에 나온다. 그동안 글을 많이 쓰고, 책도 많이 썼다고 했다. ▶김용익 화백:"창작의 불가능성, 창작은 사실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 작가의 경우 자기 복제의 연속으로 이뤄지는게 창작의 일부다. 아무것도 없던 것에 새롭게 이뤄지는 것 창작은 사실상 말자체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예술에 대한 내 신념이다.오래전 부터 글을 썼다. 창작의 불가능성에 대한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있다." (다시 큐레이터가 설명했다) ▶국제갤러리 전민경 팀장: "이전에 '원'이 들어간 작업은 사회비평적인 성향을 풍긴다. 흠집내기, 외부에서 폭력을 가하는게 아니라 균열을 통해서 뭔가를 비틀어 보는 개념이라면, 이번 '원'의 개념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유토피아'라고 한 것 같다. 차별화된 지점을 봐줘었으면 한다." ▶김용익 화백:"나를 조현증 환자로 보면 된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으로 보면 된다. 질문에 갇히면 안된다.무시하고 나가야 한다. 조현증처럼…그 질문에 갇혀서 설명하려고 하면 안된다. 그러면 예술가는 껍데기밖에 안된다." ▲기자: 스스로 개념미술가로 정의하고 있으니까 개념을 명확히 알고 싶고, 설명을 해달라는 얘기였다. ▶김용익 화백:"나한테 미술비평가나 이론가를 기대하면 안된다. 납득이 안가면 안가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진행되면 된다. 내가 올마이티도 아니고…, 하지만 도전적인 질문은 자극적이고 좋다. 이런 논쟁을 즐긴다. 대학에서 오랫동안(30여년간)학생들과 생활했다. 가장 못견디는 것은 아무 질문도 없다는 것이다. 도전적인 질문이 나와야 재미있고, 무시하고 선생의 권위를 무너뜨려야 좋은 것이다." ▲기자:그동안 단색화에서 민중미술로 공공미술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김용익 화백:"그런 질문 많이 받았는데, 이제 너무 피곤하네, 자료로 참고해달라." 그는 질문을 할때마다 가까이 다가와서 한쪽 귀를 바짝 댔다. ▲기자:귀가 안좋으세요? ▶김용익 화백:"왼쪽이 안들린다. 오래전에 병을 앓아서 오른쪽도 조금 들린다." 이번 김용익의 국제갤러리 개인전은 그의 모습처럼 반반이다. ‘가벼움’과 ‘얇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신작들은 얇은 질감과 가벼운 색채로 재전유됐다. 이전 비판적이던 '모더니즘의 묵시록'은 시대착오가 됐지만, 비판적 서사는 다시 모순된 유토피아를 꿈꾼다. 여유와 여운이 주는 나이탓일 수도 있다. 시대착오가 진보일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 '틀린 것이 옳다'는 모순이 예술가 심보로 보인다. ‘밝고 가뿐함’과 ‘아련한 공허감’이 공존하는 전시다. ▲기자:그렇다면 '김용익의 땡땡이'는 무엇인가. ▶김용익 화백:"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무 대답도 안하더라. 이게 내 답이다. 하하하." 팔순에 봄날을 맞은 단색화가들처럼 상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칠순의 김용익 화백도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몰라보거나 잘 보지못했던 '김용익 땡땡이의 반란'이다. 이 전시 이후 해외 전시에 잇따라 초대됐다. 런던과 서울, 상하이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 솔드아웃 여세를 몰아 12월에는 미국 마이애미 아트바젤에도 나간다. 내년 5월에는 뉴욕에서 개인전도 예정돼 있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email protected] 2016/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