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조각’ 엄태정, 87세에 말하다…“조각은 세계를 건립하는 일” “예술(조각)이 세워지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장소 위에 건립하는 것이다.” 조각가 엄태정(87·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의 13번째 개인전 '세계는 세계화한다'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18일 개막한다. 1970년대 대표작부터 신작 조각, 회화, 드로잉까지 총 27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존재와 세계를 탐구해온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집약한다. 전시 제목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개념에서 따왔다. 세계는 단일하고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인간과 사물, 장소와 시간이 관계를 맺으며 드러나는 ‘살아 있는 장’이라는 사유다. 그는 ‘법과 정의의 상(象)’(1995)으로 대표되는 대법원 정문 조각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조각가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라며 “대법원이라는 물리적 건물이 완성된 이후, 그 상징성과 정신성을 조각이 부여했다”고 회고했다. “대법원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제 작품이 바로 그것입니다. 조각이 세워지면서 예술성과 상징성이 더해졌고, 법의 공간에 신성한 영혼 같은 정신을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조각이 세계를 세우는 일이죠.” 엄태정은 조각을 ‘탈마법화된 세계에 저항하는 예술’로 정의했다. 정치화되거나 도덕화된 예술이 아닌, 무의식과 신비, 직관이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예술. “예술은 반드시 마법과 영혼, 신비로운 세계가 내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 구리, 청동, 알루미늄 등 다양한 금속을 다뤄온 그는 “쇠의 물성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며 "그 안에서의 변화, 열기, 섬광, 밀도는 창작의 충동을 일으킨다”고 했다. 1969년 데뷔 이래 40여 년간 서울대학교 조소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평균 5년 주기로 개인전을 열어왔다. 이번 전시는 1970~80년대 구리 조각부터 최근의 알루미늄, 회화, 드로잉까지 이어지며 조형 언어의 변주를 보여준다. "작가의 세계는 늘 진보 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 신작과 구작이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이은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구조’로의 현재 진행형 작업이다." 엄태정은 1960년대 초부터 조각의 형태와 재료에 관한 지속적인 탐구를 이어왔다. 초기에는 동양적 자연관에 기반한 추상 조각을 선보였다. 1970년대 중반에는 철에서 구리로 재료를 전환하면서 조형 언어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1990년대에는 조각의 공간성을 보다 심화시켰고, 2000년대 이후에는 조용하고 시적인 미학을 추구하며 알루미늄을 주요 재료로 삼았다. 그의 작업에는 동양철학, 우주론, 자연관이 깊게 스며 있다. 티벳 불교, 이태백의 객정(客情), 철학자 한병철의 관조적 사유까지, 세계를 바라보는 다층적인 관점이 조각에 투영됐다. 특히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나의 아버지”로 칭하며 정신적 계보를 잇고 있다. 네 차례에 걸쳐 브랑쿠시 고향을 방문했고, 수도원 수행과 불심의 전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브랑쿠시는 동양적 사유와 신비, 수행적 예술의 정신을 품은 인물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객정’ 시리즈처럼 유목적 존재로서의 조각도 등장한다. “객정이란, 우주 전체가 손님이라는 뜻입니다. 태양도, 달도, 모두 스쳐 가는 존재죠. 객정은 이태백의 시 제목으로 나이 드니 이 말이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작품 '1000개의 찬란한–막고굴 시대'는 불교적 세계관과 동양적 시간성, 신성과 역사, 수행이 교차하는 장소성을 품는다. 막고굴, 바미얀,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조각의 영적 계보를 암시하며, 조각을 자비와 구원의 공간으로 보여준다. 조각에 그치지 않고 평면으로도 사유를 확장했다. 드로잉과 회화는 작가의 수행적 과정을 담은 도구다. 반복되는 비움과 채움, 섬세한 선과 빛의 조화를 통해 공간성과 시간성이 응축된다. 특히 이번 전시의 평면 작업은 브랑쿠시의 ‘무한주’를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조각과 회화, 사유가 맞닿는 경계를 보여준다. “예술작품의 의미는 무궁무진하다”는 엄태정은 “조각은 우주이며 하늘이고, 땅이고 산이며 인간이며, 강이 될 수도 있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일까지 모두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각은 세계의 모든 존재를 열어놓는 예술이라는 그의 신념이다. 이번 전시는 조각이 어떻게 존재를 드러내고, 또 다른 세계를 여는 방식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는 “조각 예술은 희로애락을 함께 초대하며, 그 안에서 신성과 상징성을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예술관을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유로 갈음했다. “조각 작품을 제작하여 세워놓음은 봉헌과 찬양이라는 의미에서 세워 놓음이다. 봉헌한다는 것은, 조각이 세워짐으로써 성스러운 예술 작품이 성스러운 것으로서 개시되고 신이 그 현존성의 열린 장으로 들어오도록 부름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예술의 ‘성스럽게 함’을 뜻한다.” 전시는 8월 22일까지. 관람은 무료. ◆조각가 엄태정은? 193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세인트 마틴스에서 수학했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1981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2013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제16회 국전 국무총리상(1967),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1971), 김세중 조각상(1989), 이미륵상(2012) 등을 수상했다. 그동안 게오르그 콜베 미술관(베를린, 독일, 2005), 성곡미술관(서울, 2009), 아라리오갤러리(서울, 천안, 2019),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서울, 2022) 등에서 주요 개인전을 개최했다. 상파울루 비엔날레(브라질, 1973, 1975), 프리즈 런던 스컬프처(영국, 2019) 등 국제 무대에서도 활동했다. 서울 올림픽공원(한국, 1988), 두브로바 조각공원(크로아티아, 1990), 인천국제공항(한국, 2002), 베를린 총리공관(독일, 2002) 등 국내외 주요 공공장소에 작품이 설치되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등 국내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5/06/18
튀르키예 앙카라서 발달장애 예술가 전시…'사랑은 국경을 넘어'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은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아르브뤼코리아 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사랑은 국경을 넘어, Sergi Sinir Tanimaz' 전시회를 다음 달 25일까지 앙카라 소재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아르브뤼코리아 소속 작가 9명이 참여해 총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테이프를 활용한 독창적인 작업으로 주목받는 있는 박태현 작가의 오랜 꿈에서 출발했다. "튀르키예 갈 거예요!"라는 말을 작업 중에도, 전시 중에도 반복해온 박 작가의 바람은 그의 어머니 김선화 씨가 아르브뤼코리아 소속 작가들을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에 직접 소개하고, 전시 초청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며 현실이 됐다. 전승철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장은 "이번 전시가 발달장애 한국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들의 작품이 한국 예술의 저변을 넓히고 한국-튀르키예 간 우정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은 앞으로도 예술을 매개로 한국과 튀르키예의 우정을 증진시키고, 누구나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2025/06/17
PKM, 구현모 4년 만의 개인전…‘생각의 캐비닛’ 열린 감각 “생각은 울림이 되고, 그 울림은 다시 질문이 된다.” '섬세한 미감의 끝판왕' 구현모(51)작가가 4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 'Echoes from the Cabinet'은 감각에서 비롯된 사유가 조형 언어로 번역되고, 다시 관람자의 내면으로 되돌아오는 ‘질문들의 메아리’로 가득하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18일부터 열리는 이번 전시는 조각, 회화, 세라믹 등 총 28점의 신작을 통해 자연과 인공, 감성과 이성, 기억과 현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적 사유의 공간을 펼쳐 보인다. 전시 제목 ‘Echoes from the Cabinet’은 기억과 감각이 저장된 공간, 즉 ‘생각의 캐비닛’에서 출발한다. 구현모는 “이번 작업은 내 ‘생각의 캐비닛’에서 꺼내온 감각의 메아리를 시각적으로 울리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의 생각은 울림이 되고, 그 울림은 관람자의 내면에서 다시 질문으로 되돌아오며, 작품과 관객 사이에 순환하는 메아리를 만든다. 작가는 그간 조각, 회화, 브론즈 캐스팅, 우레탄 폼 등 다양한 재료를 넘나들며 작업해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으로 세라믹 조각에 도전했다. 홍익대 도예과 졸업 이후 30년 만에 다시 손에 쥔 세라믹은 그의 손을 거쳐 전통을 넘어서 감각적인 조형 언어로 새롭게 재해석됐다. “세라믹의 전통적인 방식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거기엔 또 다른 자유가 있더군요. 생활도자에 국한되지 않은, 진짜 조각으로서의 세라믹을 하고 싶었어요.”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면을 따라 설치된 세라믹 조각 연작과 평면 작업들이 관객을 맞고, 공중에 매달린 행잉 조각과 바닥에 놓인 스탠딩 조각들이 그 흐름을 잇는다. 공중 조각은 금속과 자연물, 무게감과 부유함의 경계를 흐리며 공기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세라믹 조각은 밀도 있는 재료감과 유려한 곡선 구조를 통해 긴장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형태를 드러낸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은 "나무는 왜 아름다울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구현모는 “자연은 그 자체로 정교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자연이란 것도 사실은 인간의 해석일 뿐이죠. 인공적인 재료를 자연스럽게 보이게, 혹은 그 반대로 만들며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스탠딩 조각은 각목 하나하나를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 완성한 작품이다. 손으로 깎아낸 가느다란 조형물은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흔들리는 구조 속에 인간적인 빈틈과 조형적 긴장을 담아낸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자코메티처럼 앙상하면서도 존재감이 강한 조각들”이라며, “관객이 걷는 동안 낱개의 작업들이 장면처럼 연결돼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구현모는 홍익대학교 도예과와 독일 드레스덴 예술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마틴 호너트 교수 아래에서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아르코미술관, 뮤지엄 산, 성곡미술관, 아트센터 나비 등 국내 주요 기관 전시에 참여했다. 2009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미술상을 수상했고, 작품은 드레스덴 국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자연이면서 인공이고, 조각이면서 회화이며, 기억이면서 질문인 것들. 구현모의 이번 전시는 그 모든 경계에서 감각의 메아리를 퍼뜨린다. 작가는 “작품 하나하나가 주장하는 게 아니라, 같은 감각이나 질문이 있다면 관객과 나누며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에코는 결국 메아리, 울림이지 않나요. 한쪽에서 질문이 던져지고, 대답이 돌아오고, 또다시 질문이 이어지는 그 울림 자체가 이 전시의 내용입니다.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전시가 아니라, 주고받는 울림 속에서 관객과 작품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감성이나 생각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 관람은 무료. 2025/06/17
도심 속 야간 전시…'미디어아트 서울' 여름 시즌 개막 서울시가 야간 전시플랫폼 '미디어아트 서울' 여름 시즌 운영에 들어간다고 17일 밝혔다. 시가 오는 21일부터 9월 19일까지 ▲아뜰리에 광화 ▲해치마당 미디어월 ▲서울로미디어캔버스에서 미디어아트를 선보인다. 먼저 세종문화회관 정면과 측면부 외벽에 선보이는 대형 미디어파사드 '아뜰리에 광화'는 21일부터 회화 작가 최수인과 미디어아트 작가 김혜경이 협업한 '회화와 미디어 콜라보전'을 선보인다. 광화문광장에서 해치마당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펼쳐진 53m 길이의 대형 미디어월인 '해치마당 미디어월'은 21일부터 '해치 콘텐츠', '계절콘텐츠', '참여콘텐츠', '전문작가 콘텐츠'로 여름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만리동광장 우리은행 외벽 '서울로미디어캔버스'는 미디어아트 활성화를 위해 미디어아트 분야 신진 예술가를 발굴·지원하고자 기획된 전시를 선보인다. 21일부터 '일러스트작가 협력전', '뮤직비디오 연계전', '네이처 프로젝트전'이 차례로 소개될 예정이다. 최인규 서울시 디자인정책관은 "미디어아트 서울 전시플랫폼은 도심 속 일상 공간을 예술과 기술이 어우러지는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왔다"며 "앞으로도 계절별 전시 운영을 통해 시민이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5/06/17
국립농업박물관에서 만난 '앙부일구'…하늘로 농사의 때를 읽다[르포] "절기 따라 씨 뿌리고, 별자리 따라 낫을 들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늘은 농사의 나침반이었다. 해가 뜨고, 달이 기울고, 별이 도는 그 흐름은 땅에서 일어날 모든 일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농부들은 하늘을 관찰하며 '앙부일구'(仰釜日晷)라 불리는 해시계를 통해 시간을 가늠했다. 절기를 짚어 농사의 타이밍도 놓치지 않았다. 시간과 계절을 읽어야 했던 사람들의 지혜는 지금도 유효하다. 뉴시스가 지난 16일 찾은 경기 수원시 국립농업박물관은 이 오래된 농사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했다. 국립농업박물관에서는 지난 13일부터 상반기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이 열리고 있다. 국립농업박물관은 2022년 12월 문을 연 대한민국 유일의 농업 전문 국립 박물관으로, 조선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농업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축만제(祝萬堤)와 농촌진흥청 구청사 등 한국 농업기술의 역사적 거점인 수원 서둔동에 위치하며, 농업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전시와 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물관은 특히 최근 기후위기와 곡물 가격 급등, 식량안보 이슈가 커지는 가운데 지속 가능한 농업 생태계 방향성을 국민과 공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기획전은 그 메시지를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커다란 영상 화면 속 별자리가 천천히 움직이며 관람객들을 맞았다. 관람객은 마치 옛 농부가 된 듯 별을 따라가며 하늘과의 교감을 체험하게 된다. 1부 '하늘을 바라보다'에서는 하늘을 관찰하고 풍년을 기원하던 선조들의 세계관이 펼쳐졌다. '아득이 별자리 석판'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유물을 통해 고대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천문기록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우제를 올리던 '농기'에는 용과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천지신명'께 한 해 농사를 잘 돌봐달라고 기도하던 옛 선조들의 간절함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2부 '하늘에 물어보다'는 기획전의 중심 공간이다. 박물관이 소장한 조선 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는 물론, 다른 국공립기관에서 빌려온 해시계 12점이 전시돼 있다. 앙부일구는 세 개의 용머리 받침대 위에 반구형 시계판을 얹고, 영침을 통해 태양의 그림자를 읽는 방식이다. 특히 한낮 정오 무렵 가장 정밀하게 작동하며 그 시각 농민들은 하루의 농사 작업 시점을 결정했다. 디지털 미디어아트와 결합된 앙부일구 전시는 옛 시간과 현대 기술이 교차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혼개통헌의' '아스트롤라베' 등 동서양의 천문기기도 함께 전시돼 있다. 3부 '하늘을 읽다'는 절기와 농업의 관계를 풀어낸 공간이다. '칠정산 내외편' '농사직설' '농가집성' 등 고전 속에는 우리나라 고유의 역법과 절기에 맞춘 농사 흐름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계절별 농사 도구와 '빈풍칠월도' '진주성도' 같은 회화작품은 절기의 미묘한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디지털 체험 공간이다. 관람객은 자신이 태어난 날과 가장 가까운 절기를 확인하고, 해당 절기에 맞는 전통 농경 이미지를 스마트폰으로 전송 받을 수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농사의 '때'였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국립농업박물관은 이를 통해 과거의 농업이 단지 노동의 역사만이 아니라, 자연과 시간을 읽는 지식의 역사였음을 말하고 있다. 오경태 국립농업박물관장은 "앙부일구는 농사의 시간을 정밀하게 조율해준 과학기술의 결정체"라며 "이번 전시는 농업이 지나온 길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전은 9월 14일까지 계속된다. 사라진 계절의 지식을 되새기고 싶은 이들에게, 수원 하늘 아래 '농사의 시간'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2025/06/17
두손갤러리, 김정아 '한걸음 다가서면 바꿀 수 있어요'展 버려진 쓰레기에서 피어난 예술. 환경을 향한 작은 걸음이 예술이 된다. 서울 중구 덕수궁길 두손갤러리는 오는 19일부터 7월 15일까지 김정아(55)작가의 개인전 '한걸음 다가서면 바꿀 수 있어요'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쓰레기를 재료 삼아 현대 사회의 소비문화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해온 김정아의 예술적 실천이 응축된 자리다. 작가는 바다로 흘러들고, 땅에 묻히며 우리 눈에서 사라진 쓰레기를 다시 눈앞에 끌어오며 “우리가 외면한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한지 위에 쓰레기를 소재로 그린 회화 작품 ‘꽃꿈’, ‘꽃보다 아름답다’, 바다 쓰레기의 초상을 담은 ‘The Portrait of a Fairy’,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렌티큘러 작업 ‘한걸음 다가서면 바꿀 수 있어요’ 연작 등이 공개된다. 특히 렌티큘러 작품은 관객이 가까이 다가서며 시각적으로 변하는 화면을 통해, 환경을 향한 우리의 작고 반복적인 움직임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체험하게 한다. 김정아는 “버려진 것들이 실용성을 잃었을 때 비로소 예술적 가치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쓰레기를 단순한 오염원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상징으로 되돌려 놓는 이번 전시는 미학적 탐구이자 실천적 질문을 던지는 자리다. 김정아는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같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2011년 바다 쓰레기로 인한 해양 생물 피해를 접한 뒤, 아이와 함께 정기적으로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고 기록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 경험은 작업의 주요 모티브로 이어졌고, 해양 환경 문제를 예술로 환기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현재 (사)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예술과 환경을 잇는 전시 및 기획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해양수산부 공동 주최의 제7차 국제해양폐기물컨퍼런스(2022), UNEP 국제 소식지 표지 작업, ‘Message from the Ocean’ 초대전(2022), 플라스틱 제로 설치 작업(그린피스, 2017) 등을 펼쳐왔다. 2025/06/17
휴관일도 '열린 리움미술관'…다문화가정 초청 행사 리움미술관이 정기 휴관일을 ‘열린 미술관의 날’로 바꿨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은 정기 휴관일인 16일(월), 용산구가족센터 등 9개 기관과 함께 다문화가정 170여 명을 초청해 특별 관람 행사를 열었다. 재개관 이후 열 번째로 마련된 초청 프로그램이자,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 행사에는 용산구가족센터를 비롯해 이태원글로벌빌리지센터, 마리이주여성쉼터, 동북외국인주민센터(성동) 등 서울 전역 9개 기관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고미술 상설전', '현대미술 소장품전', 피에르 위그 개인전 '리미널(Liminal)'을 관람하며 전통에서 동시대 미술까지 폭넓은 예술세계를 경험했다. 전시 관람에 앞서 미술관과 전시에 대한 소개 시간도 마련돼, 이해를 높이고 감상의 재미를 더했다. 전시 외에도 국악인 신형식과 전통공연예술 단체 ‘잇프피’가 함께한 공연도 펼쳐졌다. 판소리 ‘흥보가’ 중 일부를 중심으로, 국악과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무대가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이날은 생성형 AI 기반의 실시간 문자통역 솔루션이 도입돼, 한국어를 포함한 8개 언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필리핀어, 우즈베키스탄어, 방글라데시어)로 통역 서비스가 제공됐다. 다양한 언어권 참석자들이 언어 장벽 없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조치다. 참석자들은 “전통미술부터 현대 작가,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까지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마치 세계 미술관을 여행한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용산구가족센터 한선규 센터장은 “다문화가정이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포용력이 필수”라며 “이번 행사는 구성원 간 상호 이해를 높이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삼성문화재단 류문형 대표이사는 “리움미술관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분들이 미술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누구에게나 열린 미술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리움미술관은 2022년부터 연 3회 정기 초청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으며, 이번까지 누적 참여 인원은 약 1600명에 달한다. 서울 전역의 기관과 연계한 이번 행사는 복지 현장에서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공공 협력 사례로도 주목받고 있다. 2025/06/17
아이유, '폭싹' 제주 전시회 찾았다 "애순이 약속 지키러 왔주게" 톱 가수 겸 배우 아이유(IU·이지은)가 제주 지역 할머니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회를 찾았다. 아이유는 16일 본인 소셜 미디어에 "제주 그림 할망작가님들 광례똘 애순이 약속 지키러 왔주게"라고 적고 여러 장의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 그림작업장'에서 지난달 2일 개막한 전시회 '폭싹 속았수다 똘도, 어멍도, 할망도'를 찾은 아이유의 모습이 담겼다. 제주 할머니 작가 9명은 이번 전시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그린 그림을 선보였다. 아이유는 할머니 작가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이유는 드라마 속 주인공 '애순'과 '관식'의 등신대에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귀여운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아이유, 예뻐요. 사랑스럽고 따뜻해요", "우리 애순이 최고", "약속을 위해 제주까지 다녀오셨군요. 멋져요. 덕분에 행복한 저녁입니다" 등의 댓글을 올렸다. 한편 아이유는 넷플릭스가 올해 공개한 '폭싹 속았수다'로 다양한 세대에 울림을 전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아이유는 '애순'과 '금명' 두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뛰어난 연기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 작품은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아이유)과 팔불출 무쇠 '관식'(박보검)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냈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2017) '동백꽃 필 무렵'(2019) 임상춘 작가, '미생'(2014) '나의 아저씨'(2018) 등을 만든 김원식 감독이 힘을 합쳤다. 내년 상반기 방송 예정인 MBC TV 드라마 '21세기 대군 부인'(가제)으로 인사한다. 아이유는 배우 변우석과 호흡을 맞춘다. 이 드라마는 모든 걸 가진 재벌이지만 신분은 평민인 '성희주'(아이유)와 왕의 아들이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이안대군'(변우석)의 로맨스다. MBC 드라마 극본 공모 당선작이며, 유아인 작가가 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 박준화 PD가 연출한다. 2025/06/16
에스더쉬퍼 전현선, 아트 바젤 ‘언리미티드' 선정 전시 젊은 작가 전현선(36)이 세계 최고 권위의 아트페어 ‘아트 바젤(Art Basel)’의 대표 섹션 ‘언리미티드(Unlimited)’ 부문에 선정됐다. '아트 바젤 2025'는 스위스 메세 바젤(Messe Basel)에서 17일 개막, 22일까지 열린다. 전속화랑인 에스더쉬퍼는 “전현선이 전문가 심사위원단이 주목한 동시대 작가로 선정돼, 대형 설치작품 'Into the Woods to Lose Our Way'를 선보인다”고 16일 밝혔다. ‘언리미티드’는 회화 중심의 전통적인 부스 전시 형식을 넘어서는 설치·조각·영상·퍼포먼스 등 대형 작업을 위한 특별 섹션으로, 아트 바젤 내에서도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플랫폼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이우환, 전광영, 김수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들이 참여한 바 있으나, 전현선처럼 국내에서 주로 활동해온 젊은 작가의 선정은 이례적이다. 전현선은 이번 전시에 30점의 대형 회화로 구성된 설치작품 'Into the Woods to Lose Our Way'를 출품한다. 사인파 곡선을 그리며 공중에 매달린 이 작업은, 분절된 캔버스를 통해 이미지의 다이내믹을 탐구하며 관람자의 움직임과 시선에 따라 의미가 재구성되는 공간적 회화를 시도한다. 이번 진출은 전현선을 오랜 시간 지원해 온 갤러리2, 유럽 무대 진출을 이끈 에스더쉬퍼, 최근 파리에서 작가의 첫 개인전을 개최한 갤러리 르롱의 협업으로 성사됐다. 에스더쉬퍼 서울 디렉터 김선일은 “한국에서 꾸준히 작업해 온 전현선이 본격적으로 유럽 무대에 소개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참여를 통해 작가의 설치미술적 접근과 조형성이 보다 폭넓게 조명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5/06/16
트럼프 압박 속 '전미 초상화 미술관' 최초 여성 관장 사임 미국 스미스소니언 산하 전미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의 킴 사제(Kim Sajet) 관장이 사임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녀의 해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지 불과 2주 만이다. CNN에 따르면, 사제의 사임은 스미스소니언 사무총장 로니 번치(Lonnie Bunch)가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를 통해 알려졌다. 번치 총장은 “사제 관장이 지난 12년간 열정과 창의력으로 미술관을 이끌어왔다”고 밝혔다. 사제는 이 기관 역사상 최초의 여성 관장이었다. 사임은 14일(현지시간) 자로 발효됐으며, 스미스소니언 산하 문화·박물관 부문 부총책임자인 케빈 고버(Kevin Gover)가 관장 대행을 맡는다. 사제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성장했으며 현재는 네덜란드 시민권자다. 다문화적 배경과 이민자 경험은 그녀의 예술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호주 주요 미술관에서 큐레이터 및 관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펜실베이니아 역사협회 회장 겸 CEO,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 부국장, 필라델피아 미술관 기업관계이사 등을 지냈다. 이번 사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SNS 플랫폼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사제를 “편향적이며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의 옹호자”로 지목하며 해고를 촉구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DEI 정책을 “미국 가치를 훼손하는 프로그램”이라 주장해 왔다. 사제는 사임 성명에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옳은 판단이라 믿는다”며, “내 최우선 원칙은 항상 미술관이었다. 지금은 물러나는 것이 기관을 위한 최선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이에 앞서 성명을 내고 “기관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학문 기관이며, 모든 인사 결정은 사무총장이 담당한다”고 강조했다. 협회 이사회(Board of Regents) 역시 “스미스소니언은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기관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미 초상화 미술관은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대표 인물 미술관으로, 스미스소니언이 운영하는 21개 박물관과 국립동물원 중 하나다.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