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자작나무에 천착한 사진가…이만우 ‘침잠의 숲’ 흔들리는 가지들이 마치 털이 아니라 ‘시간의 결’처럼 보인다. 나무가 서 있는 게 아니라, 바람 속에서 존재가 해체되며 다시 생성되는 장면 같다. 프랜시스 베이컨 회화의 진동감과 동양 수묵의 기운생동이 동시에 스친다. 사진인데 회화처럼 읽힌다. 사진가 이만우가 자작나무에 천착해온 15년의 시간을 담은 두 번째 개인전 ‘자작: 침잠의 숲’을 공근혜갤러리에서 선보인다. 오는 26일부터 6월 6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22년 공근혜갤러리 개인전 이후 더욱 깊어진 작가의 시선과 태도를 보여준다. 이만우는 강원도, 몽골, 내몽골, 시베리아 등을 오가며 자작나무 숲을 촬영해왔다. 혹독한 자연 속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빛과 풍경이 만나는 순간을 포착한 작업들이다. 작가는 자연을 정복하거나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의 사진은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대상 앞에 오래 머무르는 겸허한 태도를 드러낸다. 쓰러진 자작나무에서는 상실과 회한의 감정을, 곧게 선 자작나무에서는 순백의 고결함과 침묵의 시간을 길어 올린다. 전시에서는 사진과 영상 작업이 함께 소개된다. 숲과 물가, 바람과 빛이 교차하는 장면들은 단순한 풍경 기록을 넘어 존재와 시간에 대한 사유를 환기한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는 작가의 태도 역시 전시 전반에 스며 있다. 이만우는 작가 노트에서 “숲과 물가에 곱게 누운 순백의 자작나무, 물결과 바람의 숨결이 시간을 멈추게 한 듯 고요하다”며 “나는 침잠의 숲에 화석처럼 머문다”고 적었다. 공근혜갤러리는 “이번 전시는 자작나무라는 하나의 주제를 평생의 과업처럼 탐구해온 작가의 집요함과 겸허함을 보여준다”며 “관람객은 사진과 영상 속 자작의 형상 너머로 자연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6/05/20
영국 작가 조지 몰튼-클락 부산 첫 개인전 영국 작가 조지 몰튼-클락(George Morton-Clark)의 부산 첫 개인전이 열린다. OKNP 부산은 오는 21일부터 6월 21일까지 조지 몰튼-클락 개인전 ‘The Last Saturday Show’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아트부산 시즌에 맞춰 마련된 부산 첫 개인전으로, 작가가 직접 부산을 방문해 국내 관객과 만난다. 1982년 영국 런던 남부에서 태어난 조지 몰튼-클락은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뒤 회화로 작업 영역을 확장했다. 반복과 리듬, 속도와 정지에 대한 감각은 그의 회화 전반에 스며 있으며, 화면 안에서는 만화적 형상과 추상적 붓질, 대중문화 이미지와 물감의 물성이 충돌하고 중첩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 텔레비전 속 만화 캐릭터와 대중문화 이미지를 차용하지만, 단순한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형상은 덧칠되고 지워지며 흐려지고, 익숙한 이미지는 낯선 감각으로 변형된다. 전시 제목 ‘The Last Saturday Show’는 어린 시절 토요일 아침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만화영화와 시리얼, 텔레비전의 소음과 반복되는 루틴 같은 유년의 풍경을 호출하지만, 동시에 순수함이 사라지는 순간의 감각을 함께 다룬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형 회화를 중심으로 ‘Childhood Echoes’ 연작과 드로잉, 조각 작업 등이 소개된다. 작가는 전시 노트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마지막 토요일이 있다”며 “이 회화들은 순수가 미끄러지듯 사라져 기억의 안개 속에 남겨지는 그 찰나에 머문다”고 밝혔다. 이어 “캐릭터를 재현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왜곡되고 반쯤만 기억되는 메아리로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관심이 있다”고 전했다. 2026/05/19
피카소에서 한국 작가까지…베일벗은 ‘퐁피두센터 한화’[박현주 아트클럽] 서울 여의도에 들어선 ‘퐁피두센터 한화(Centre Pompidou Hanwha)’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서울 진출’이라는 상징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공간이 단순한 해외 미술 수입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 1000평 규모 전시장 가운데 절반은 파리 퐁피두센터 컬렉션 기반의 근대미술 기획전, 나머지 절반은 동시대 글로벌 미술과 한국 작가를 연결하는 자체 기획전으로 채워진다. 즉, 과거의 모더니즘과 현재 진행형의 현대미술이 한 건물 안에서 동시에 호흡하는 구조다. 서울에서 새로운 현대미술의 흐름을 생산하려는 실험에 가깝다. “오늘, 우리의 새로운 별 하나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로랑 르 봉(Laurent Le Bon) 퐁피두센터 관장은 서울 프로젝트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퐁피두센터가 문을 닫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콩스텔라시옹(Constellation·별자리)’이라는 글로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서울에서 새로운 별 하나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큐비즘으로 시작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퐁피두센터는 지난해 가을부터 약 5년간 대규모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며 주요 소장품의 해외 전시를 확대하고 있다. 개관전 ‘큐비즘: 시각의 혁신(The Cubists: Inventing Modern Vision)’은 바로 그 선언을 압축한 전시다. 르 봉 관장은 “큐비즘은 단순한 예술운동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 운동”이라며 “20세기 시각 혁명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서울 프로젝트의 첫 전시로 큐비즘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피카소·브라크 총출동…‘큐비즘: 시각의 혁신’ 112점 전시는 1907년부터 1927년까지 큐비즘의 생성과 확산, 전쟁과 변형의 과정을 9개 섹션으로 풀어낸다. 세잔의 영향 아래 시작된 초기 실험에서 출발해 분석적 큐비즘, 오르픽 큐비즘, 살롱 큐비즘, 전쟁 이후의 변형과 1920년대 양식적 변주까지를 하나의 흐름 안에서 조망한다. 이를 통해 큐비즘을 단순한 미술사조가 아니라, 근대 이후 인간의 시각과 인식 구조 자체를 바꿔놓은 ‘시각 혁명’으로 제시한다. 전시는 큐비즘을 단순한 양식 실험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각 체계를 재편한 사건으로 읽어낸다. 르 봉 관장은 “1907년 피카소의 ‘여인의 흉상’으로 시작하는 이번 전시는 지난 50년간 아시아에서 열린 가장 중요한 큐비즘 전시 가운데 하나”라며 “100점이 넘는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고, 퐁피두 컬렉션뿐 아니라 한국 작가들의 작업도 함께 소개된다”고 말했다. 큐비즘은 하나의 대상을 한 시점에서 바라보던 전통 회화의 질서를 깨뜨린 운동이다.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바라보고 이를 하나의 화면 안에 재구성하며, 인간의 시각과 인식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실제로 전시장 벽면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큐비즘은 다가올 시대의 표현이라고들 한다. 그것이 인간 정신의 고양과 동시에 그 해방을 예고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전시에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 소니아 들로네, 후안 그리스, 프란시스 피카비아 등 20세기 모더니즘을 뒤흔든 작가들이 총출동했다. 피카소 작품 12점을 포함해 총 54명 작가의 원화 112점이 소개된다. 작품들은 항공기 6편에 나뉘어 서울로 들어왔으며, 총 보험가액은 약 1조5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큐비즘이 과거의 미술사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 미술시장과 제도 안에서 작동하는 현대미술의 핵심 언어임을 보여주는 규모다. ◆곡선 구조·순환형 동선…큐비즘 다중 시점 같은 공간 전시장 구성도 흥미롭다. ‘새로운 언어의 탄생’, ‘대중과 마주하다’, ‘오르피즘’, ‘종합적 큐비즘’, ‘국경을 넘는 큐비즘’, ‘전쟁기 큐비즘’, ‘1920년대 큐비즘’ 등으로 이어지며 큐비즘이 하나의 양식에서 국제적 감각 체계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장 연출 역시 큐비즘적이다. 직선 벽 대신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 구조와 순환형 동선이 적용돼 관객은 작품을 단일 시점으로 소비하지 않게 된다. 위층과 아래층이 서로 관통되고 사람과 작품의 움직임이 겹쳐지며, 마치 큐비즘의 다중 시점을 건축 공간으로 번역한 듯한 인상을 준다. 현장에서는 ‘100년 전 그림인데 지금 작품처럼 느껴진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전시는 큐비즘을 단순한 근대미술사의 한 장면이 아니라, 오늘날 디지털 이미지 감각의 기원으로 다시 호출한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크리스티앙 브리앙(Christian Briend) 퐁피두센터 수석 큐레이터는 “큐비즘은 20세기 모든 미술 발전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운동”이라며 “큐비스트들은 형태를 ‘보이는 방식’이 아니라 ‘지성을 통해 인식하는 방식’으로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전시는 단일한 큐비즘이 아니라 ‘복수의 큐비즘들’을 보여주려 했다”며 “브라크와 피카소의 실험뿐 아니라 살롱 큐비즘, 국제적 확산, 추상으로의 이동까지 함께 조망한다”고 말했다. 특히 입구에 설치된 퐁피두센터 소장품 레몽 뒤샹-비용(Raymond Duchamp-Villon)의 검은 청동 조각 ‘대형 말(The Large Horse·1914/1976)’은 전시 전체를 상징하는 작품처럼 기능한다. 큐비즘 조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새하얀 로비 중앙, 둥근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 아래 놓인 검은 조각은 인간과 동물, 기계의 속도감을 하나의 구조로 압축한다. 큐비즘과 미래주의가 공유했던 ‘근대의 운동성’이 공간 한가운데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관람객은 이 작품과 마주하며 전시의 첫 장면 속으로 들어간다. ◆‘전시 수입’ 아닌 ‘시스템 이식’…퐁피두의 서울 전략 이번 전시는 ‘수입형 블록버스터’와는 결이 다르다. 작품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퐁피두의 연구·기획 시스템 자체를 한국에 이식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단순히 서구 모더니즘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근대미술과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병치했다. 2층 특별 섹션 ‘KOREA FOCUS : 모던 아방가르드를 향한 꿈의 지도’는 1920~1930년대 한국 예술가들이 받아들인 모더니즘 감각과 큐비즘의 흔적을 조명한다. 김환기, 유영국, 변영원, 박래현, 하인두, 함대정 등의 작품과 함께 사운드 설치, 아카이브, 애니메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됐다. 관람객은 2층에서 아래층 큐비즘 전시를 내려다보며 서구 모더니즘과 한국 근대미술이 교차하는 장면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브리앙 큐레이터는 “한화재단이 한국 작가와 문학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보완 전시를 함께 연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 관객에게 큐비즘의 가장 완전한 파노라마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주현 큐레이터는 “당시 한국 예술가들에게 파리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모던’의 상징이었다”며 “식민지 경성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시각 언어를 향한 열망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큐비즘을 단순한 영향 관계로 보기보다, 한국 작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자기 언어로 번역하고 변형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1930년대 문화 실험이 해방 이후 한국 추상미술과 입체주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연결하려 했다”고 말했다. 1920~30년대 프랑스 큐비즘이 한국 문학과 회화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는 영상 전시도 함께 구성됐다. 설치 공간에는 거울 기둥과 텍스트, 사운드, 영상 작업이 함께 배치됐다. 아카이브를 단순 재현하는 대신, 관람객이 공간 안을 걸으며 시대의 감각을 몸으로 통과하도록 설계했다. 이 때문에 한국 작가 섹션은 오히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에 가깝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정체성 역시 결국 “서울에서 무엇을 새롭게 생산할 것인가”라는 질문 위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앞으로 동시대 글로벌 기획전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한 전시장은 퐁피두 컬렉션 기반 전시가 순차적으로 열리고, 다른 전시장은 한국과 세계 현대미술을 연결하는 자체 기획 공간으로 운영된다. 공개된 계획안에 따르면 향후 영상·사운드·조각·XR·향·빛 등을 결합한 몰입형 프로젝트와 예술·과학·기술·인문학을 아우르는 융합형 프로그램이 추진된다. 우주과학, 데이터 문화, 이동성, 생태 감각 등 동시대 이슈를 주요 화두로 삼는다. 첫 프로젝트는 2026년 말 공개될 예정이다. 교육 프로그램 역시 단순 부대행사 수준을 넘어선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파리 퐁피두센터 교육팀과 협업해 개발한 프로그램을 국내 관객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다. 도슨트 투어와 워크숍, 퍼포먼스, 키즈 프로그램 등 영유아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한 관객층을 아우르는 참여형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단순 관람을 넘어, 관객이 전시를 보다 입체적이고 다층적으로 이해하도록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작품뿐 아니라 퐁피두의 교육·매개 방식까지 함께 공유하려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퐁피두센터 한화’…분관 아닌 글로벌 파트너십 모델 이성수 한화문화재단 이사장은 “각각 500평 규모의 전시관 가운데 한 곳은 퐁피두 컬렉션 기반 전시를, 다른 한 곳은 자체 기획 전시 공간으로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성격에 대해서는 “분관이 아니라 파트너십”이라고 선을 그었다. 퐁피두센터가 직접 운영하는 프랑스 메스(Metz) 분관과 달리, 서울 프로젝트는 한화문화재단이 운영 주체가 되고 퐁피두센터와 장기 협력하는 방식이다. 스페인 말라가와 중국 상하이에 이어 추진되는 세 번째 해외 협력 모델이다. 한화문화재단은 매년 70억원 이상의 브랜드 로열티와 작품 대관료, 컨설팅 비용 등을 부담하며 4년간 운영권을 확보했다. 이 기간 동안 매년 두 차례 퐁피두 컬렉션전을 열고, 별도로 연 2회의 자체 기획전도 선보일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말라가와 상하이 역시 같은 파트너십 구조지만 규모 면에서는 서울 프로젝트가 가장 크다”며 “퐁피두 입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협력 공간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4년 이후의 별도 계획은 아직 없지만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계속된다면 리뉴얼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개관 현장 밖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방산기업 기반의 아트워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방위산업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한화그룹이 예술 후원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재구성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이성수 이사장은 “관련 우려를 표명한 분들의 말씀을 계속 경청할 것”이라며 “중요한 목소리인 만큼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반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술을 예술 자체로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대중과 호흡하는 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 미술관 본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전에도 불구하고, 개관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시장 안에는 '큐비즘은 인간 정신의 해방을 예고한다'는 100년 전 문장이 떠 있고, 전시장 밖에서는 예술기관의 윤리와 자본의 역할을 둘러싼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까지 포함해, 퐁피두센터 한화는 지금 가장 ‘현재형’인 현대미술의 풍경인지도 모른다. 전시는 6월 4일 공식 개막한다. 관람료는 2만8000원이다. ◆퐁피두센터 한화(Centre Pompidou Hanwha)는? 과거 아쿠아리움이 있던 63빌딩 별관을 전면 리모델링한 미술관으로, 지하 3층~지상 4층, 연면적 약 3만1152㎡ 규모다. 미술관은 약 500평 규모 전시실 두 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설계는 루브르 박물관 리노베이션과 인천국제공항 프로젝트를 맡았던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Jean-Michel Wilmotte)가 담당했다. 건물은 낮에는 자연광이 스며들고 밤에는 빛이 퍼지는 ‘빛의 상자(Box of Light)’ 개념을 적용했다. 수평으로 이어진 빛의 띠와 한국 전통 기와 곡선을 연상시키는 외관이 특징이다. 1층에는 오디토리움과 스튜디오, 멀티스테이션 등 교육·강연 프로그램 공간이 들어선다. 통창을 따라 배치된 카페에서는 야외 정원 ‘아우돌프 가든’을 조망할 수 있어 자연과 예술, 건축이 어우러진 경험을 제공한다. 2층과 3층에는 두 개의 대형 전시실이 마련됐다. 제1전시실은 층고 7m의 더블하이트 공간으로 퐁피두센터 소장품 전시가 펼쳐진다. 메자닌 구조를 갖춘 제2전시실에서는 개관전 이후 한화문화재단이 기획하는 동시대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4층에는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옥상 공간과 레스토랑이 들어선다. 2026/05/19
AI·XR·미디어파사드까지…아트코리아랩, 29일까지 공모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예술기술 융합 창작 지원사업 ‘2026 아트코리아랩 예술기술 융합 수퍼 테스트베드’와 ‘2026 아트코리아랩 초대형 미디어파사드 프로젝트’ 참여자를 모집한다. 접수는 오는 29일 오후 4시까지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NCAS)을 통해 진행된다. ‘수퍼 테스트베드’는 예술기술 융합 창·제작 역량 교육과 실험을 희망하는 예술인 및 예술단체(팀)를 대상으로 한다. 지원 규모는 과정별 10명(팀) 내외, 총 40명(팀)이다. 참여자는 ▲사운드 디자인 ▲다이내믹 XR ▲인터랙티브 매핑 ▲액티브 키네틱 등 4개 과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지원할 수 있다. 선정된 참여자에게는 AI 공통 교육과 과정별 기술 교육, 예술실험 지원, 멘토링 등이 단계별로 제공된다. 실험 결과물은 오는 12월 예정된 과정공유회 ‘랩들이’에서 전시·쇼케이스·렉처 등 다양한 형태로 공개될 예정이다. ‘초대형 미디어파사드 프로젝트’는 서울 중구청 산하 명동스퀘어와 협력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추진된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미디어아트 제작 역량을 갖춘 예술인 및 예술단체(팀) 7명(팀)을 선정해 3D 입체 아나모픽 기법 교육과 1대1 멘토링 등을 지원한다. 완성된 작품은 서울 도심의 초대형 미디어월에 송출될 예정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아트코리아랩 관계자는 “예술 창작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고 실험할 수 있는 기반 지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예술인들이 다양한 기술을 창작 과정에 접목하고 새로운 표현 방식과 창작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공모 관련 세부 내용은 예술경영지원센터와 아트코리아랩 누리집 공지사항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6/05/19
"비어 있는 사무실에 동시대 미술 잠시 입주"…공실 프로젝트 비어 있는 사무실 건물에 다시 ‘감각’이 입주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6층 공실 건물이 영상과 설치, 사진과 사운드 작업으로 채워진 임시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공실 프로젝트는 오는 6월 14일까지 기획전 ‘find and found’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권영환, 배윤재, 손배영, 이연진, 전형배·금지수, 홍다린 등 국내 신진 작가 6팀이 참여한다. 이전 세입자와 다음 세입자 사이 잠시 비어 있는 공간을 임시 점유해 전시장으로 전환하는 ‘공실 프로젝트’의 세 번째 시리즈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는 최근까지 사무실로 사용되던 역삼동 건물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각 층은 과거 탕비실·휴게실·회의실 등의 흔적을 간직한 채 새로운 감각의 장소로 재구성됐다. 전시 제목 ‘find and found’는 ‘찾기(find)’와 ‘발견(found)’ 사이의 차이에 주목한다.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탐색한 대상과 우연히 발견한 잔해·감정·사물 사이를 오가며 익숙한 도시 구조를 낯설게 전환한다. 건물 외벽에는 이연진의 장소특정적 작업 ‘더 몽키 라인-원숭이줄’이 설치됐다. 건물 상단에서 아래로 늘어진 거즈 구조물은 주변 구조물에 기대어 매달린 채 불안정한 점유 상태를 드러낸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속 ‘원숭이 밧줄’을 연상시키는 작업이다. 손배영은 비닐봉지를 마주한 순간 떠올랐던 감정과 생각을 모래 위 짧은 문장으로 남긴 ‘기록하지 못한 만남들의 기억’을 선보인다. 관람객은 공간 곳곳에 흩어진 텍스트를 따라가며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들과 뒤늦게 조우하게 된다. 2층에는 홍다린의 설치 작업 ‘불안줄’이 자리한다. 폐전선과 호스, 밧줄 등을 엮어 만든 거대한 구조물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의 감각을 시각화한다. 작가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그것과 자신을 연결하는 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4층에서는 배윤재가 레이저 수평기, 거울, 형광물질, UV램프 등을 활용한 설치 작업으로 도시 공간의 감각 구조를 탐색한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물들이 연결되며 일종의 실험실 같은 환경을 만든다. 같은 층에서 권영환은 공실 내부를 24시간 기록한 영상 설치 ‘동기화된 유령’을 상영한다. 과거의 빈 공간과 현재의 전시장 풍경이 겹쳐지며 서로 다른 시간층이 병치된다. 지하 1층에서는 전형배와 금지수가 사운드 설치 ‘둥지’를 선보인다. 불 꺼진 회의실 공간에서 관람객은 도시의 잔해물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소리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공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승민은 “이번 전시는 공실 프로젝트의 특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소특정적 설치 중심 전시”라며 “역삼동 일대에서 관람객들이 일상 속 예기치 못한 순간 현대미술과 만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2026/05/19
“판화는 복제품 아니다”…90세 김구림, 550쪽 역작 출간 “판화는 복제품이 아니다. 판(版)을 통해 탄생한 독립적 원작이다.” 90세 현역 미술가이자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김구림이 판화 예술의 본질과 수집의 세계를 집대성한 '판화수집의 모든 것'을 출간했다. 회화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미술시장에 판화의 독자적 예술성과 수집 가치를 환기하는 책이다. 1950년대부터 회화·치·퍼포먼스·영화·무용 등 장르 경계를 허물며 한국 아방가르드를 개척해온 김구림은 뉴욕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서 판화를 공부하며 매체의 물성과 복제성 안에 숨겨진 고유의 예술성을 탐구해왔다. 550쪽 분량의 이 책은 판화의 정의와 역사, 기법, 감정, 수집, 경매, 보존과 복원까지 판화의 전 영역을 총망라했다. 단순 입문서를 넘어 판화 시장의 구조와 국제적 유통 질서를 정리한 국내 최초 수준의 ‘판화 컨설팅북’이자 ‘판화 교과서’에 가깝다. 김구림은 책에서 “좋은 판화는 회화와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다”며 “그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신의 향기가 있다”고 말한다. 이어 “누구든 좋은 판화 한 점을 집 안에 걸어보라. 가격 이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은 크게 네 축으로 구성된다. 먼저 목판화·에칭·애쿼틴트·석판화·실크스크린 등 전통 판화 기법부터 현대적 변용까지를 설명하며 판화의 조형 언어를 짚는다. 이어 에디션 번호, 작가 서명, 카탈로그 레조네 등 ‘오리지널 판화’를 판별하는 기준을 상세히 해설한다. 또 글로벌 판화 시장의 흐름과 경매 참여법, 아트 포스터 수집 전략 등 실전적 컬렉팅 정보도 담았다. 마지막 장에서는 종이 작품의 특성을 고려한 습도·조도 관리와 액자 제작, 복원 기술까지 다루며 판화를 ‘보존과학’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김구림은 특히 회화에만 과도하게 집중된 한국 미술시장의 구조를 지적하며 판화 시장의 재평가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판화는 원화의 복사본이 아니라 독립적인 창작 행위”라며 “국내 시장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판화 이해와 수집 문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출판사 더모던은 “판화를 처음 접하는 입문자부터 화랑 관계자, 미술관 실무자, 컬렉터까지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실전형 레퍼런스”라고 소개했다. 2026/05/19
흰 벽 뒤집은 김동희·우한나…일민미술관 ‘오프 더 화이트’ 미술관은 작품을 보여주는 중립 공간일까. 일민미술관 ‘오프 더 화이트: 주름과 망루’는 그 익숙한 믿음에 균열을 낸다. 흰 벽과 조명, 진열과 보관의 규칙까지, 평소 보이지 않던 미술관의 구조 자체를 전시장 위로 끌어올렸다. 일민미술관은 오는 7월 12일까지 김동희·우한나 2인전 ‘오프 더 화이트: 주름과 망루’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건축 100주년을 기념해 이어지는 릴레이 기획전의 두 번째 순서다. 전시는 ‘화이트 큐브’라 불리는 미술관의 전시 시스템 자체를 탐색한다. 벽과 바닥, 빛, 보관과 운반의 규칙, 감상의 태도 같은 요소들이 어떻게 작품을 보이게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드러낸다. 김동희는 전시장 구조와 맞물려 생성됐다 해체되는 조각과 설치 작업을 통해 ‘미술관의 시선’을 되묻는다. 신작 ‘진열대’, ‘진열 테이블’, ‘진열장: 51개의 남은 돌’ 등은 남겨진 잔해와 보관의 방식을 다시 전시장으로 호출한다. 우한나는 봉제와 비정형 구조를 활용해 미술관의 단단한 전시 질서를 느슨하게 흔든다. 신작 ‘로코코풍 드레스를 입은 여자’, ‘낙수장’ 등은 정돈된 감상의 규범을 비틀며 다른 감각의 틈을 만든다. 전시 제목 속 ‘주름’과 ‘망루’도 상징적이다. ‘주름’은 체계의 표면을 접고 비트는 유연한 움직임이고, ‘망루’는 특정 위치에서 주변을 조망하는 구조를 뜻한다. 미술관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조건들의 집합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겼다. 한편 미술관 외부 옛 출입구에는 임시 수장고 ‘비트린(Vitrine)’도 마련됐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24시간 개방된다. 2026/05/19
현대조각 거장 심문섭, 베니스서 개인전…삼성·가나문화재단 후원 “자연이 조각한다.” 한국 현대조각의 거장 심문섭(82)이 세계 미술의 중심 베니스에서 인간 중심의 조형 개념을 다시 묻는다. 심문섭 개인전 ‘SHIM MOON SEUP: Harnessed From Nature’가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인 오는 9월 30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 카 파카논(Ca’ Faccanon)에서 열린다. 삼성문화재단, 가나문화재단 등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조각·설치·회화 28점을 통해 1970년대 초기 실험 작업부터 2025년 신작까지 작가의 50여 년 예술세계를 집약적으로 조망한다. 전시가 열리는 카 파카논은 베니스 리알토 브리지 인근의 역사적 공간이다. 세계 미술계 인사와 관람객이 몰리는 비엔날레 기간, 한국 현대조각의 흐름을 국제 무대에 다시 각인시키는 상징적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다. 심문섭은 1960~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AG) 운동과 함께 ‘반(反)조각’ 개념을 제시하며 조각의 의미를 확장해온 작가다. 그는 조각을 단순한 입체 형상이 아니라 존재와 관계, 생성의 과정으로 바라봤다. 대표작 ‘관계(Relation)’ 연작은 종이와 돌, 공간의 긴장 관계를 통해 조각의 물질성을 해체한 작업이다. ‘현전(Opening Up)’은 천을 사포로 갈아낸 흔적만으로 시간의 침식과 존재의 상처를 드러낸다. ‘토상(Thoughts on Clay)’은 흙의 순환성과 생명성을, ‘목신(Wood Deity)’은 오래된 목재의 시간성과 영성을 탐구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해외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회화 연작 ‘제시(The Presentation)’도 공개된다. 푸른색의 반복적 붓질은 바다와 하늘, 생성과 소멸의 리듬을 환기하며 자연의 호흡을 화면 위에 펼쳐낸다. 전시 제목 ‘Harnessed From Nature’ 역시 심문섭 작업의 철학을 압축한다. 자연을 인간이 통제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생성하고 움직이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형태를 만드는 제작자가 아니라 자연의 힘이 드러나도록 돕는 ‘조건 설정자(condition setter)’로 위치시킨다. 전시 평론을 맡은 심은록 큐레이터는 “심문섭의 작업은 인간이 자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형상을 드러내는 과정에 가깝다”며 “‘자연이 조각한다’는 선언은 인간 중심의 조형 개념을 넘어서는 급진적 사유”라고 설명했다. 심문섭은 파리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시드니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최근에는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과 해머 뮤지엄 전시 등을 통해 다시 조명받고 있다. 2026/05/18
고래로 그린 ‘생명의 호흡’…이은주 개인전 ‘푸른 시간’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생명의 호흡이었다." 서울 동대문구 김희수아트센터 아트갤러리2에서 열리는 이은주 개인전 ‘푸른 시간(Blue Time)’은 바다를 인간 바깥의 자연이 아닌, 인간 또한 속해 있는 거대한 생명의 흐름으로 바라본다. 화가 이은주는 고래, 물고기 떼, 심연, 흐름 등의 이미지를 통해 생성과 소멸, 공존과 순환의 시간을 회화적으로 풀어낸다. 화면 속 생명들은 하나의 중심이나 서사로 수렴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가며 겹치고 스며든다. 대표작 ‘비상’은 푸른 화면 위로 떠오르는 거대한 고래를 통해 심연에서 상승하는 생명의 에너지를 담아냈다. 검푸른 몸체는 물과 빛, 시간의 층위를 품은 채 화면을 가로지른다. 단순한 동물 재현이 아니라 바다의 깊이와 존재의 리듬을 응축한 형상에 가깝다. 작가는 그동안 사진과 회화, 혼합매체 작업을 넘나들며 시간과 기억, 존재와 부재의 흔적을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바다라는 거대한 생명의 장으로 확장했다. 김희수아트센터는 “이은주의 화면은 구체적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감각의 층위를 통해 바다의 시간과 호흡을 경험하게 한다”며 “자연을 대상화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얽혀 있는 관계의 감각을 회복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은주는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EFT 사진과, 파리1대학 팡테옹-소르본 조형예술 석사과정을 수학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광주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30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2026/05/18
BTS RM 소장품까지…유영국 ‘산’ 170점, 서울시립미술관 무료 회고전 '삼각형의 수행'…산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서울시립미술관에 들어선 순간, 벽마다 산이 걸려 있다. 붉은 산, 푸른 산, 보라빛 산, 거의 추상으로 무너진 산들까지. 어느 한 점의 명작을 감상한다기보다, 한 화가가 평생 반복해온 색과 리듬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에 가깝다. 서울시립미술관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 탄생 11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18일 서소문본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유화 115점을 비롯해 드로잉, 부조, 사진, 아카이브 등 총 170여 점으로 구성됐다. 무료 전시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특히 그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푸른 바다’ 등 일부 미공개작이 포함돼 유영국 예술 세계의 공백을 메우는 드문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 근대 거장’ 시리즈의 첫 프로젝트다. 단순한 연대기 회고전이 아니다. 유영국 예술의 핵심 변곡점인 1964년을 출발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독특한 구조를 택했다. 1964년은 유영국이 49세에 생애 첫 개인전을 연 해다.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신상회 등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그는 이 전시를 기점으로 그룹 활동 대신 오직 개인 작업에 몰두하겠다고 선언한다. 김환기가 뉴욕으로, 한묵과 문신이 프랑스로 떠난 시기였지만 유영국은 한국에 남았다.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단순한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전시의 중심에는 ‘산’이 있다. 그러나 유영국의 산은 실제 풍경의 재현이라기보다 자연의 본질과 내면의 리듬을 압축한 심상에 가깝다. 반복되는 삼각형 구조와 선명한 원색의 충돌은 어느 순간 산의 형상을 넘어 색과 리듬의 감각으로 읽힌다. 전시장 입구에는 유영국의 문장이 적혀 있다. “산은 추상의 빈 그릇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산은 현실의 풍경이라기보다 마음의 구조에 가깝다. 빨강·파랑·초록·보라 등 강렬한 원색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묘한 균형을 이루고, 단순화된 선과 면은 화면 안에서 긴장과 평온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진 이사장은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영국의 산은 실제 풍경이 아니라 자연의 본질과 내면의 운율을 추상 언어로 압축한 결과”라며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 구조 안에는 자연의 생명감과 긴장감이 함께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영국이 그린 산은 눈에 보이는 실제 산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투영된 산”이라며 “진리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는다는 자기 성찰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보가 너무 많은 AI 시대에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다”며 “이럴 때일수록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태도가 더욱 중요해지고, 유영국의 내면 탐구는 앞으로 더 빛을 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유영국의 대표 연작들을 중심으로 산·바다·석양 등 자연을 기하학적 추상과 강렬한 색면으로 풀어낸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보라·붉은색·파랑·초록 등 원색의 대비와 단순화된 선과 면은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내면의 리듬과 구조를 드러낸다. 후기 작업을 새롭게 조명한 점도 특징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를 ‘심상(心象) 추상’으로 해석한다. 1980년 이후 유영국의 화면은 초기의 강렬한 기하학적 긴장감에서 점차 평온과 절제의 세계로 이동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산이 아니라,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된 내면의 산에 가까워진다. 유영국의 삶 자체도 한국 근현대사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서 추상을 공부했고, 해방과 전쟁 이후에는 어선을 타고 양조장을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약 10년의 공백기를 거친 뒤에도 그는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평생 약 800점의 유화를 남겼다. 시장 평가도 견고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유영국은 생전에 작품 판매보다 작업 자체에 몰두했던 작가여서 시장에 나오는 작품 수가 많지 않다”며 “최근 국내외 주요 컬렉터와 미술관들의 관심 속에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BTS) RM의 소장작으로 알려진 유영국 작품이 화제를 모으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관심이 높아졌다. 해당 작품 역시 이번 전시에 소개된다. 전시는 유영국의 작품 세계를 동시대 감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도 담았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방송인 피터 빈트가 오디오 가이드에 참여했다. 프리즈×서울아트위크 기간에는 서울디자인재단과 협업한 ‘서울라이트 DDP’ 프로젝트도 진행된다. 유영국의 색채 세계가 DDP 외벽 미디어 프로젝션으로 구현될 예정이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기술이 창작의 개념을 흔드는 오늘날, 인간의 직관과 회화 행위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는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사전 예약(yeyak.seoul.go.kr) 및 현장 방문을 통해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관람객을 위한 100여 종의 감각적인 아트 굿즈와 작가의 고향 울진에서 영감을 받은 특별 음료를 선보이는 팝업 카페도 운영될 예정이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열린다. 202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