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년 만에 만난 피라미드와 한글"…'강익중 한글신전' 이집트서도 통했다 강익중의 한글 작업이 이집트에서도 통했다. 피라미드 앞에 세운 '한글 신전'은 사막과 바람 사이에서 알록달록 존재감을 뽐내며 K콘텐츠와 K아트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4000년 동안 피라미드가 한글이 오기를 기다린 것 같아요. 밤에 피라미드가 한글에 '이제 왔냐'고 대화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25일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에서 만난 설치 미술가 강익중(64)은 "40여년간 한글 작업을 하며 피라미드에 작품 설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보였다. 강익중은 올해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며 '강익중 시대'를 열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청주시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청주시립미술관에서 특별 전시회를 열었고, 9월엔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뉴욕한국문화원 신청사에 가로 8m, 높이 22m의 한글벽화를 세웠다. 이 작품 설치 후 뉴욕한국문화원 홈페이지를 방문한 인원은 82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강익중은 2021년부터 매년 가을 피라미드에서 열리는 국제미술제 ‘포에버 이즈 나우(Forever Is Now)’에 한국작가로는 올해 처음 참가했다. 이집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미술 전시회로 이집트 문화부, 관광유물부, 외무부, 유네스코(UNESCO) 후원으로 이집트의 문화예술기획사인 아르데집트(Art D’Égypte)가 주관해 개최된다. 올해 4회를 맞는 이번 전시는 24일 개막, 11월16일까지 진행된다. 한국의 강익중 외에도 크리스 레빈(영국), 페데리카 디 카를로(이탈리아), 제이크 마이클 싱어(남아프리카 공화국), 장 보고시안(벨기에/레바논), 장 마리 아프리우(프랑스), 칼리드 자키(Khaled Zaki, 이집트), 루카 보피(이탈리아), 마리 후리(캐나다/레바논), 샤일로 시브 술맨(인도), 나씨아 잉글레시스/스튜디오 INI(그리스), 자비에르 마스카로(스페인/라틴 아메리카) 등 12명이 참여하여 시간과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주제 아래 거대한 모래사막에 대지미술의 아름다움을 꽃피웠다. ◆아리랑 노래와 5016개 그림으로 만든 '한글 신전' "사막에 작품 설치는 운송부터 설치까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올해 최고의 보람찬 작업이었습니다." 피라미드 앞에 세운 '네 개의 한글 신전(Four Temples)'은 세계의 모든 고통과 갈등을 포용하고 노래하는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24일 행사 개막과 함께 공개된 작품은 사막에 설치된 12개의 작품 중 가장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집트의 한국어 열풍으로 개막 첫날 강익중은 아이돌 못지않은 사진 세례와 각국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이어져 피신할 정도였다. 이날 한글신전 안에서는 카이로의 아인샴스(Ain Shams) 대학 한국어 학생들 30명이 참여한 ‘Learn Arirang with Hyundai Rotem(현대로템과 함께 하는 아리랑 배우기)’ 워크샵에 KBS 정용실 아나운서가 참여해 주목 받았다. ‘아리랑’ 가사를 배우고,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제출했던 학생들이 드로잉 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의 꿈을 한국어로 얘기하는 행사였다. 실제로 카이로에서 한국어와 한국인은 '핫한 트렌드'다. 아인샴스 대학 한국어과는 이집트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학과로 이들은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이고 세계 부강한 나라로 미국, 프랑스, 한국을 꼽는다. 피라미드 등 관광지를 방문하면 중고생 등 학생들은 '안녕하세요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사진을 찍자고 카메라를 내밀기 일쑤다.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로 적힌 ‘네 개의 신전’ 강익중의 ‘네 개의 신전’은 과거(피라미드)와 미래(전 세계 사람들의 꿈)를 주제로 탐구하는 작품이다. 4개의 정육면체에 외벽에는 한글,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로 적힌 한국 민요 ‘아리랑’이 새겨져 있다. 내벽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그린 5016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글은 강익중이 즐겨 쓰는 소재로, 개별 자음과 모음이 모여 완전한 단어를 형성하는 과정이 작가가 추구하는 ‘화합’의 주제와 맞는다. 이번 전시에서 강익중은 처음으로 한글 이외에도 영어, 아랍어, 상형문자를 넣어 네 개의 언어를 사용했다. ‘포에버 이즈 나우’ 전시 주최측은 이번 전시의 전체주제인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문명’이라는 점을 작품에 반영해달라는 요청을 모든 작가들에게 했고, 강익중 작가는 네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 주제를 반영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이집트와 한국의 문화기관 및 학교들과 협력해 어린인들의 '꿈그림'과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 난민들의 그림도 함께 설치했다. 한국 전쟁 실향민들의 그림과 함께 이 작품은 사람들의 꿈, 아픔, 도전을 상징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난민들이 '부모님이 그리워요'라는 글귀와 '전쟁이 없어져서 우리나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는 그림과 고향집 약도를 적어 그린 실향민의 그림 등 한 장 한 장 담긴 염원과 소원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5016개의 그림은 가로 20x세로 20cm의 포맥스 보드에 인쇄가 되어 철골구조에 하나하나 매달렸다. 사막에서 부는 거센 모래 바람으로 그림이 흔들리고 서로 부딪치면서 작품은 오히려 힘이 세졌다. 마치 방울이 흔들리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소리가 울리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이면서 희망의 빛으로 치환되고 있다. 사막의 바람에 순응한 작가 강익중의 계산된 작업이다. "이번 작업은 바람과의 싸움이었어요.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듯이 결국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노래하듯이 보여 더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피라미드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지만 한글 신전은 바람 덕분에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움직이고 어쩌면 기도하는 것처럼 숨을 쉬고 내쉬고…굴뚝을 청소하는 거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있고. 그래서 이번 작업이 더 보람찹니다." 4일이면 될 것 같았던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집트에는 없는 철골을 한국에서 운송하는 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사막에 철골을 설치하는 것도 어려워 10일이 걸려 완성됐다. 강익중 작업을 기획한 전시 기획자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는 "한 면으로 인쇄해서 붙이면 편 한데 한 글자 한 글자 5000명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작업하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살렸다"면서 "작업을 해 놓고 다음날이면 떨어진 작품들을 다시 붙이고 철골이 기울어져 있어 다시 세우며 마치 건물을 짓는 것처럼 공사한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사막에서의 작업은 대지미술의 진정성을 깨닫게 한다. "떨어지고 흔들리고 찢어지는 것도 대지미술의 일부"라는 것을. 올해 ‘포에버 이즈 나우’는 관람객들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예술을 통해 탐험의 여정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것을 주제로, 예술가와 관람객이 모두 현대의 고고학자가 되어 창의성을 도구로 삼아 평범한 것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도록 한다. 강익중은 이런 점을 반영해, 관객들이 작품 안에 들어와 바닥의 모래를 파내면 전시 작품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북마크를 발견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집트에 거주하며 올해 첫 한국 작가를 '포에버 이즈 나우'에 입성 시킨 이규현 대표는 "전 세계 미술인들과 관광객들이 한글신전에서 기뻐하고 감동 받는 모습을 보며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집트에 한국 작가를 알리겠다는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분이 좋고 주최측이 내년에도 한국 작가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며 뿌듯함을 보였다. 매년 1000만 명 넘게 방문하는 이집트 피라미드 사막에 한글을 꽃 피우고 K-콘텐츠의 힘을 보이고 있는 '포에버 이즈 나우' 전시는 11월16일까지 이어진다. ◆'포에버 이즈 나우' 아르데집트(Art D’Égypte)는? '포에버 이즈 나우' 는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펼치는 연례 국제전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세계 각국 현대미술작가를 보여주는 사막의 대지미술전시다. 행사를 주관하는 아르데집트는 나딘 압델 가파르가 설립한 이집트의 예술 문화 기획사로, 다양한 창작 예술에서 민간 및 공공기관과 협력하며, 이집트 문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집트 문화예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청중을 위한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2017년이집트 박물관에서 'Eternal Light', 2018년 마니엘 궁전에서 'Nothing Vanished, Everything Transformed',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장소인 카이로의 알-무이즈 거리의 4개 지점에서'Reimagined Narratives' 등의 전시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으며, 2021년부터는 국제 전시인 '포에버 이즈 나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기자 피라미드에서 매년 열린다. 2024/10/26
검은 인물들 연극 무대 같은 전시…오원배 '치환, 희망의 몸짓' 몸짓은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총체다. 섬세한 신체 근육의 뒤틀림에 인간의 실존 탐구를 담아온 오원배(70) 화백의 '치환, 희망의 몸짓'이 완벽한 안정감을 전한다.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템포러리에서 17일 개막한 오 화백 개인전은 마치 연극 무대처럼 연출됐다. 전시 벽면을 감싼 길이 15m의 대형 화면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됐다. 목탄화처럼 검정색의 알몸 인물들이 공간을 유영하며 에워싸는 분위기로, 이는 마치 전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작품으로 보이도록 한다. 전시 공간과 작품의 긴밀성, 그 몰입감에 대해 그간 몰두해 왔던 작가의 의도가 만들어 낸 결과다. 공간과 공명하고 반응하는 가변적인 작품들은 관람객과의 간격을 좁히며 즉흥적인 소통과 생동감을 유발한다. 몸통형을 축으로 돌아가는 역동적 동세와 기둥, 연결되지 않은 둥근 단면이 보이는 파이프 같은 모티프들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인물들이 또 다른 층위의 회전을 만들어내며 특정한 공간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동적인 에너지의 힘이 넘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동작 한 동작 춤을 추는 무용수와 같아 보인다. 오 화백의 이전 작품들이 인물의 얼굴과 그 표정까지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얼굴의 측면과 후면만을 노출해 신체의 움직임에 더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목탄화같은 검정색의 인물들은 투박하면서도 섬세하다. 볼륨감 있는 근육의 해부학적 요소가 그대로 담긴 오 화백의 손맛이 압권이다. 형상의 움직임을 체제의 저항에서부터 인간 본질에 관한 문제, 사회 제도와 부조리,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미묘한 이야기들과 AI와 인간의 문제 등 사회와 밀접하게 맞물린 이슈들을 온 몸으로 전한다. 특히 인물들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부감(俯瞰)적인 시점은 뒤로 넘어가는 듯한 상체의 움직임을 조망하기에 탁월한 것 같다. 작품을 보는 관람객을 저 위의 무언가를 희구하는 대상의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마치 극장의 높은 좌석에서 보듯 춤을 관람하는 관람자가 된다. 이는 한쪽 벽면을 타고 흐르듯 전개되는 작품과 함께 제작된 금속의 느낌이 나는 작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의 구조상 한쪽 벽면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염두에 두어 제작된 작품들은 전시 공간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또한 인물을 사이에 두고 그들의 시선 사이에는 엉겅퀴나 호랑가시나무와 같은 식물들이 병치되어 변주적 형태로 은유적 질문을 던진다. 이들은 극복 의지를 상징하는 생명체들로서 대비된 양옆의 인물들과 어우러져 진정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장에 어지러이 놓인 고장난 저울이 눈길을 끄는데 균형 잃은 사회를 상징한다. "절망이 있어 희망을 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숫자가 새겨진 조각난 파이프와 설치된 저울 사이에 흩어져 있는 원통형의 조형물들은 순서대로 연결되어 저울이 제 기능을 찾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오원배는 질문하는 화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하는 행간을 놓치지 않고 작품에 투사한다. 동시대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며, 예술을 통해 그 복잡한 관계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몸짓과 다양한 상징물의 기표와 감춰진 이면에 쌓인 층위를 넘나 들며 무감각해지는 사회와 현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전시는 11월16일까지. ◆'인간 실존 탐구' 오원배 화백은? 1953년 인천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1985년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수료했다. 국내·외 주요 개인전으로 “부유/현실/기록”(인천 아트플랫폼, 2023), “오원배: 인간-비인간, 그리고대위법 형식의 조형언어”(아트사이드 갤러리, 2019), “오원배 초대전-회화적 몸의 언어”(금호미술관,2012) 등이 있다. 단체전은 “이미지로 건너오는 시들”(한국근대문학관, 2023), “한국전쟁 정전 70주년 기념전”(연강 갤러리, 2023), “인공윤리-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2022), “재난과 치유”(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1) 등 300여 회 참여했다. 1984년 파리국립미술학교 회화1등상, 1985년 프랑스 예술원 회화3등상, 1992년 올해의 젊은 작가상, 1997년 제9회 이중섭 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인천문화재단, 금호미술관, 소마미술관, OCI미술관, 동국대학교, 원광대학교, 경주통일전, 인천 지하철 문화예술회관역, 전등사, 정토사, 해인사,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법무법인태평양, 조선일보사, 프랑스 문화성, 파리국립미술학교,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4/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