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과수원 화가?"…이대원을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종합) 사과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분홍과 흰 꽃잎은 서로 다른 빛을 머금고, 풀잎은 초록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의 초록으로 살아 움직였다. 검은 벽을 가득 채운 대형 화면은 덕수궁을 하나의 거대한 풍경으로 바꾸었다. 가까이에서는 촘촘한 붓질이 추상처럼 다가오고, 몇 걸음 물러서면 석양이 스며든 우리 산천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왜 이대원을 '과수원 화가'로만 기억했을까. 국립현대미술관(MMCA) 덕수궁에서 6일 개막하는 '이대원(1921~2005):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다. 그동안 '과수원 화가'라는 익숙한 수식어로 기억됐던 이대원을 한국적 현대회화를 평생 탐구한 문화적 지식인이자, 한국 자연의 빛과 계절을 가장 깊이 그려낸 화가로 다시 읽는 전시다. 전시는 1933년 초기작부터 말년의 5m 대형 '농원' 연작· '담'까지 유화 120여 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 평생 수집한 고미술품을 통해 약 70년에 걸친 화업을 총망라했다. 이대원과 장욱진, 유영국의 스승이었던 일본인 화가 사토 구니오의 희귀 회화 '설정(雪庭)'도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의 이 한 문장이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를 압축한다. 5일 전시장에서 만난 배 학예연구사는 "이대원은 한국 작가로서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한국적 현대회화는 어떻게 가능한지를 평생 고민한 화가"라며 "소재뿐 아니라 양식과 기법, 미감까지 한국적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전시를 준비하며 "행복했다"는 배 학예연구사는 작품을 연구하고 수집하는 과정에서 '팔자가 좋은 화가', '행복한 화가'라는 익숙한 이미지가 이대원의 본질을 가려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이대원은 화가인 동시에 한국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 운영자였고, 홍익대 미대 초대 학장과 총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문화홍보대사 등을 맡으며 한국 근현대미술의 토대를 만든 문화적 지식인"이라며 "그동안 '과수원 화가', '색채의 화가'라는 수식어에 가려 그의 회화를 너무 피상적으로 읽어왔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김원룡은 생전 이대원을 두고 "팔자가 제일 좋은 화가"라고 평했고, 그의 그림에는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적었다. 하지만 배 학예연구사는 "이 말을 단순히 그의 삶이 순탄했다는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대원은 화랑을 경영하고 대학을 이끌며 한국 미술계를 위해 쉼 없이 일했고, 그렇게 얻은 경험과 책임을 자신의 화면으로 되돌려 놓았다"며 "그의 밝은 화면은 순진한 낙관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오랜 관찰과 축적, 절제를 거쳐 얻어낸 회화적 질서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화려한 색채나 대중적 인기보다 그 화면이 어떤 탐구와 축적 끝에 만들어졌는지 70년 화업 전체를 다시 살펴보려는 전시"라며 "이대원을 단순히 밝은 풍경을 그린 화가가 아니라 한국 현대회화의 조형 언어를 구축한 작가로 새롭게 읽고자 했다"고 말했다. ◆ 법대 출신, 5개 국어를 구사한 문화적 지식인 '과수원 화가', '색채의 마법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 이대원을 따라다닌 수식어다. 그러나 그는 미술대학 대신 법학을 선택한 화가였다. 청운공립보통학교 시절 유화를 처음 접한 그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를 만나 서양미술과 조선 공예를 함께 배웠다.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와 공예부에 입선하며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부친의 반대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회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후 화가를 넘어 한국 미술계의 기반을 만든 문화적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1959년부터 약 8년간 한국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을 운영하며 국내 화랑 문화의 기틀을 마련했고, 5개 국어를 구사하며 박수근·김환기·장욱진·유영국 등을 해외에 소개했다. 홍익대 미술대학 초대 학장과 총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문화홍보대사 등을 맡으며 미술교육과 문화외교에도 큰 역할을 했다. ◆ 열두 살 '백일홍'에서 5m '농원'까지 이번 전시는 이대원의 시작도 새롭게 조명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인 1933년작 '백일홍'을 처음 공개했다. 열두 살 소년이 그린 작은 정물화지만 강렬한 색채 대비와 두터운 물감, 형태의 단순화가 이미 드러난다. 훗날 '농원' 연작으로 이어질 색채 감각의 출발점이다. 초기작 '북한산' 역시 실제 풍경을 재현하기보다 계절의 감각을 색채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그동안 '북한산'으로 알려졌던 작품의 원제가 '가을 산'이었음도 새롭게 확인됐다. 전시장에는 스승 사토 구니오의 작품도 함께 놓였다. 이대원은 생전에 "사토 선생은 틀에 박힌 미술교육에서 벗어나 피카소와 입체파를 이야기해준 매우 진보적인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스승의 작품을 함께 배치하면서 그의 조형 감각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이번 회고전의 백미…'빛을 보는 공간' 이번 전시의 백미는 단연 2전시장이다. 검은 벽 위를 가득 메운 대형 '농원' 연작들이 사방에서 관람객을 감싼다. 흑경(黑鏡)처럼 연출한 바닥은 그림을 또 하나의 풍경으로 확장시킨다. 화면과 반영이 겹치면서 현실과 시간, 공간이 하나로 포개지는 듯한 압도적인 몰입감을 만든다. 작품 앞 벤치에 앉으면 연출의 의도가 더욱 선명해진다. 가까이에서는 수없이 겹친 색점과 붓질이 추상처럼 보이지만, 몇 걸음 물러나면 사과나무와 배꽃, 연못과 들판이 하나의 풍경으로 완성된다. 공간 디자인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다수 맡아온 김용주 디자인기획관이 담당했다. 작품을 단순히 나열하는 대신 회화 속 빛을 공간 전체로 확장시키며 이대원의 색채를 새롭게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이대원의 그림은 가까이에서 보면 추상이고, 멀리서 보면 풍경이다. 무엇보다 그의 흰 꽃은 하나의 흰색이 아니다. 미색과 분홍빛, 푸른 기운을 머금은 수많은 흰색이 서로 겹쳐 살아 있는 빛을 만든다.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빛이 머무는 순간을 그려낸 회화다. 전시장에는 그가 평생 수집한 목가구와 도자기, 민예품도 함께 전시된다. 생활과 예술이 하나였던 그의 미감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자화상이다. 입구를 장식한 대표작 '담(秘苑)'도 눈길을 끈다. 가로 5m가 넘는 이 작품은 미국 주재 한국대사관 소장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액자를 해체하지 않은 채 항공편으로 국내에 옮겨왔다. 이대원은 1986년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에 작품이 설치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현지를 찾을 만큼 이 작품을 각별히 아꼈다. 멀리서 보면 흰 담과 나무가 어우러진 고요한 풍경이 먼저 다가온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흰 담은 하나의 흰색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미색과 분홍빛, 푸른 기운을 머금은 여러 흰색이 서로 섞이지 않은 채 나란히 놓여 화면 전체에 깊이를 만든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 같은 색채의 운용은 색실 하나하나가 고유한 색을 유지하는 전통 자수의 방식과 닮아 있다"며 "어두운 옻칠 바탕 위 자개가 저마다의 빛을 내듯, 이대원의 색 역시 서로 뒤섞이지 않으면서 화면 안에서 깊이 있는 울림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이대원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외교통상부 문화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 힘썼다. 외교부는 그의 작품 2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담' 역시 오랜 기간 재외공관에 걸려 한국 회화의 아름다움을 전해왔다. ◆"농원 화가가 아니라 한국의 빛을 그린 화가" 이번 회고전을 보고 나면 한 가지 생각이 바뀐다. 이대원은 사과나무를 그린 단순한 '과수원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의 시간을 그린 화가였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그리고 그 사이 이름 붙이기 어려운 계절의 결을 색으로 기록했다. 그래서 그의 흰 꽃은 모두 다른 흰색이고, 그의 초록은 모두 다른 초록이다.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전시 제목과 달리, 이번 회고전은 오히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이대원을 몰라봤다는 사실을 가장 슬프게 한다. 전시장을 나서는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진작 이대원을 샀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대원을 '과수원 화가'라는 한 줄의 수식어 안에 가둬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번 전시는 잊힌 화가를 복원하는 전시가 아니다. 한국 자연의 빛과 계절을 가장 찬란한 색으로 현대회화에 새긴 거장을 비로소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K-아트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금, 이대원의 회화는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뿌리를 새롭게 증명한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열린다. 2026/08/05
사라진 절판본…열린 미술관은 무엇으로 신뢰를 지킬까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지금도 한 권의 책을 기다리고 있다. 유영국 탄생 110주년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장에 열람용으로 비치했던 절판본 『유영국: 삶과 창조의 지평』(오광수)이 전시 기간 중 사라졌다. 외부 기관에서 어렵게 빌려온, 재발행도 불가능한 절판본이었다. 최근 미술관은 안내문을 통해 "가져가신 분은 꼭 돌려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고, 관계자는 "다들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라진 것은 책 한 권이지만, 이 사건은 참여형 미술관이 안고 있는 새로운 과제를 드러냈다. 최근 미술관은 작품을 바라보는 공간에서 작품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기록을 읽고, 작품을 만지고, 전시장에 오래 머무는 시간까지 전시의 일부가 되는 시대다. 지난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열린 마틴 파 전시는 사진집 90권을 자유롭게 펼쳐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당시 손현정 학예연구사는 "분실 위험도 있었지만 책을 직접 보여주는 것 자체가 전시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위험을 알면서도 자유 열람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책을 읽는 경험 자체가 전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와 개방은 새로운 책임도 함께 요구한다.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만질 수 있도록 설치한 고사리 작가의 작품 '건져올린 돌' 일부가 전시 도중 사라졌다. 이번에는 절판본이다. 대상은 달랐지만 두 사건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열린 미술관은 무엇으로 신뢰를 지킬 것인가. 귀한 책을 누구나 펼쳐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운영의 허점이었을까, 아니면 포기할 수 없는 전시 철학이었을까. 미술관은 원래 사람을 믿는 공간이다. 관람객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전제하지 않는다. 그 신뢰 위에서 우리는 작품을 보고, 책을 읽고, 예술을 경험한다. 물론 신뢰는 관리의 반대말이 아니다. 절판본처럼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면 복제본을 활용하거나, 원본은 관리자가 있는 열람 공간에서 공개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관람객 증가에 맞춰 안전관리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자유 열람 도서와 전시물 관리 교육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참여형 전시의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운영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고민은 이제 한 미술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미술관은 더 많이 열릴 것이다. 작품을 만지고, 기록을 읽고, 공간에 오래 머무는 전시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미술관이 고민해야 할 것은 얼마나 개방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개방을 어떻게 오래 지켜낼 것인가다. 좋은 전시는 관람객을 신뢰한다. 좋은 운영은 그 신뢰를 오래 지켜낸다. 그 믿음은 제도 위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신뢰와 무방비는 같은 말이 아니다. 사라진 것은 절판본 한 권이었다. 그러나 미술관이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열린 미술관을 가능하게 하는 신뢰의 방식이다. 2026/08/01
호크니는 빠지고, 도라에몽은 시작가…미술시장이 보내는 신호 그림이 안 팔린다? 미술시장은 숫자로 움직이지만, 분위기는 사건으로 읽힌다. 국내 양대 경매사의 7월 경매는 지금 한국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서울옥션에서는 시작가 5억 원에 출품된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이 경매 직전 철회됐다. 케이옥션에서는 추정가 3억7000만~8억 원에 나온 블루칩 작가 유영국의 '산'이 출품 목록에서 빠졌다. 최고 추정가 11억 원으로 관심을 모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도라에몽'은 최저 추정가를 밑도는 시작가 6억6000만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7월 경매 낙찰률도 녹록지 않았다. 서울옥션은 55.75%, 케이옥션은 58%를 기록했다. 출품작 10점 가운데 4점 이상이 유찰됐다는 의미다. 개별 경매 결과만으로 시장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출품 취소와 추정가 하회 낙찰, 50%대 낙찰률이 동시에 나타난 것은 시장이 보내는 하나의 신호로 읽힌다. 지금 시장은 사려는 사람만이 아니라, 파는 사람도 조심스러워진 시장이다. 기대한 가격에 낙찰되지 않거나 유찰 가능성을 우려해 출품을 미루거나 철회하는 위탁자도 늘고 있다. 시장이 위축되면 신중해지는 것은 컬렉터만이 아니다. 매도자 역시 시장을 관망하기 시작했다. 물론 경매 결과는 출품작 구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경매마다 모인 작품에 따라 결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지난해부터는 특히 고가 낙찰작의 유무가 시장 분위기를 좌우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최근 경매 결과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과거에는 총 낙찰액과 낙찰률 등 시장 전체를 보여주는 지표가 강조됐다면, 최근에는 대표 출품작이나 고가 낙찰 사례를 중심으로 시장 분위기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장의 상징적인 거래가 주목받는 흐름이지만, 전체 시장의 체력을 읽을 수 있는 지표의 중요성 역시 여전히 크다. 현재 한국 미술시장은 대내외 악재가 겹치며 침체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다.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쏠리고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금리·고물가로 실질 구매력이 감소하면서 미술품 소비심리도 위축됐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치며 투자자들은 위험자산보다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시장 구조 역시 돌아볼 시점이다. 해외 메이저 경매사들은 뉴욕·런던·홍콩 메이저 세일에 최고가 작품과 수요를 집중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반면 국내 경매시장은 매달 메이저 경매와 온라인 경매가 이어진다. 활황기에는 거래 기회를 넓히는 장점이 있지만, 침체기에는 한정된 수요가 여러 경매로 분산되면서 출품 확보와 낙찰률 모두 부담을 안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래량 경쟁이 아니라 시장의 체질을 다지는 일이다. 작품가격심의에 참여하는 미술시장 전문가는 단기적인 유동성에 기대온 양적 확장에서 벗어나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1차 시장인 갤러리는 미술사적 가치와 이력이 검증된 근현대 작가와 중진 작가를 꾸준히 재조명하며 작품의 가치를 축적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1000만 원 이하 중저가 작품과 판화 시장을 활성화해 새로운 컬렉터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을 통해 컬렉팅 저변을 넓혀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국내 수요층은 물론 K아트에 관심을 보이는 해외 신흥 컬렉터를 확보하는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만의 현상도 아니다. 한국미술품감정센터가 발간한 '아트마켓 2026'은 올해 미술시장을 움직일 핵심 키워드로 '선택적 회복(Selective Recovery)', '비대칭 시장(Asymmetric Market)'의 심화, 중동·아프리카·동남아시아 신흥시장의 부상, Z세대 컬렉터의 본격 등장, 인공지능(AI)의 시장 침투, 비공개 거래(Private Sales)의 확대를 꼽았다. 시장은 언제나 순환한다. 유명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 작품값이 오른다는 말도 이제는 공식이 아니다. 미술시장은 이름보다 수요와 심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호크니의 경매 출품 취소와 도라에몽의 시작가 낙찰은 시장의 위기를 단정하는 사건이 아니다. 다만 지금 한국 미술시장이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다. 침체기일수록 중요한 것은 거래량보다 시장의 체질을 다지는 일이다. 시장은 숫자로 회복되기 전에 먼저 분위기가 바뀐다. 2026/07/23
"피규어 작가로만 보지 말아달라"…카우스의 진짜 얼굴 카우스(KAWS)를 떠올리면 XX 눈의 캐릭터와 거대한 공공 조형, 아트토이와 패션 협업이 먼저 생각난다. 대중에게는 '피규어 작가' 이미지가 가장 강하다. 2018년 서울 석촌호수에 가로 25m, 세로 28m의 거대한 '컴패니언'을 띄우며 한국에도 '카우스 열풍'을 일으킨 작가다. 하지만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에서 만난 카우스(본명 브라이언 도널리)는 그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조용했고 담담했다. 질문 하나하나를 오래 생각한 뒤 천천히 답했다. 스타 작가다운 화려한 제스처보다 작업에 대한 고민을 먼저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한마디가 한국 첫 미술관 개인전 '친구, 그리고 이웃(FRIENDS AND NEIGHBORS)'을 이해하는 열쇠였다.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카우스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이다. '친구, 그리고 이웃'을 주제로 대표 캐릭터를 새롭게 풀어낸 신작 회화와 조각 등 20여 점을 선보인다. 카우스는 회화와 조각, 디자인과 제품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실제로 카우스는 미키마우스를 변형한 컴패니언을 비롯해 첨(Chum·미쉐린맨), BFF(엘모), 스몰 라이(피노키오), 아스트로보이 등 대중문화 캐릭터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재해석해 왔다. XX 눈과 해골 형태의 머리가 특징인 컴패니언은 그의 작업을 상징하는 존재다. 2024~2025년에는 넷플릭스와 협업한 '오징어게임' 영희·철수 피규어로 화제를 모으며 서울 팝업스토어에서 오픈런을 이끌었다. 이번 전시는 '피규어 작가'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넘어 동시대 미술가 카우스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전시 제목인 '친구, 그리고 이웃'은 그가 최근 품게 된 질문이기도 하다. 카우스는 정치적 갈등과 코로나19를 거치며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했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감사가 동시에 생겼고, 그 감정이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 됐다.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신작 '막상막하(NECK AND NECK)'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Neck and Neck'은 원래 승부를 가릴 수 없을 만큼 박빙인 상황을 뜻하는 관용구다. 그러나 카우스는 이를 서로의 목을 붙잡고 밀고 당기는 듯한 두 인물의 대치 장면으로 바꿨다. 과거 서로를 끌어안거나 기대던 캐릭터들은 이제 맞서고 밀어내며 관계의 긴장을 몸으로 드러낸다. 카우스는 "갈등은 원래부터 제 작업 안에 있었다"며 "예전에는 하나의 캐릭터를 탐구했다면 이제는 둘 사이의 관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에게 카우스는 피규어 작가지만, 그의 출발점은 1990년대 미국 뉴저지와 뉴욕 거리의 그라피티였다. 광고판과 버스정류장에 개입하는 작업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회화와 조각, 그래픽, 아트토이, 패션, 공공미술을 넘나들며 순수미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었다. 'KAWS'라는 이름에도 특별한 뜻은 없다. 10대 시절 그라피티를 하며 만든 태그(tag)로, 단지 네 글자의 형태가 마음에 들어 붙인 이름이다. 익명을 위해 시작한 거리의 서명이 이제는 세계 주요 미술관과 경매장을 오가는 이름이 됐다. 브루클린미술관,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토론토 온타리오미술관, 앤디 워홀 미술관,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현대미술가로서의 입지도 확고히 했다. 이번 회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캐릭터보다 공간이다. 놀이터와 방, 뒷마당…. 사람들이 함께 머무는 장소가 처음으로 본격 등장한다. 카우스는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 시절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며 "어른에게는 사소한 일도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진다. 그런 기억들이 이번 회화의 방향이 됐다"고 말했다. 대표작 '치유(THERAPY)'에서는 열한 명의 '첨(CHUM)'이 각자 바다가 그려진 캔버스를 들고 서 있다. 가까이에서는 서로 다른 그림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 물러서면 하나의 거대한 바다가 완성된다. 카우스는 미술 수업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그림을 들어 보이는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서로 다른 그림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관계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최근 회화에 등장하는 점묘 같은 질감 역시 오랜 실험 끝에 다시 꺼내 든 표현 방식이다. 카우스는 1990년대 스프레이 캔의 압력을 뺀 채 분사하다 발견한 기법을, 몇 년 전 시리얼의 바삭한 질감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다시 떠올렸다. 그는 "그 기법 덕분에 이전에는 부족했던 깊이감과 양감을 더할 수 있었다"며 "새로운 제작 과정이라기보다 이미지를 구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회화의 화려한 색채와 조각의 절제된 색감이다. 모자부터 신발까지 온통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전시장 대형 조각도 모두 검은색으로 만들었다. 반대로 회화에서는 누구보다 과감하게 색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웃으며 말했다. "저는 색을 사랑합니다. 다만 색 있는 옷을 입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색은 화려하지만 그의 캐릭터는 늘 말보다 몸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카우스의 캐릭터들은 XX로 눈 표정을 지운 대신 몸짓은 굉장히 인간적이다.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리고, 포옹하고, 앉아 있고,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 밀치고 싸운다. 표정은 지워졌는데 감정은 몸으로 말한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XX 눈의 의미도 의외였다. 많은 사람이 슬픔이나 죽음의 상징으로 읽지만 그는 "그건 그냥 그들의 눈"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서울 관객들에게 "디지털 화면이 아니라 실제 회화와 조각 앞에 서서 작품을 경험해 달라"고 부탁했다. 카우스는 스트리트웨어와 패션 협업 역시 회화나 조각과 다르지 않은 창작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표현의 통로나 소통 방식을 발견하면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하나를 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제로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늘 호기심이 생기면 직접 탐구해 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는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조각 '펠로우(FELLOW)'에도 이어진다. 목이 잘려 붉은 단면이 드러난 모습 때문에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카우스는 "특별한 상징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라며 "역사적인 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조형적 역동성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3일부터는 전 세계 2000개 한정 제작된 '펠로우' 피규어도 스페이스K에서 판매된다. 가격은 59만 원이다. 수줍게 말하던 그는 간담회가 끝날 무렵 기자들을 향해 휴대전화를 들었다. "이번에는 제가 여러분 사진을 찍어 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스타 작가의 마지막 행동은 의외로 소박했다. 피규어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고, 캐릭터보다 관계를 먼저 이야기했던 카우스. 기자들의 사진을 찍던 그의 마지막 모습은 '친구, 그리고 이웃'이라는 전시 제목을 가장 카우스답게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전시는 23일부터 12월 27일까지 열린다. 2026/07/21
연필선이 만든 산맥…차영석, 화가의 존재를 그리다 멀리서는 안개 낀 산맥이다. 한 걸음 다가서면 풍경은 사라지고 짧은 연필선들이 끝없이 겹쳐진다. 화면은 목판화처럼 거친 결을 드러내다가도 용의 비늘이나 물결을 연상시키는 리듬으로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이 거대한 화면 어디에도 산은 없고, 용도 없다. 차영석(50)이 그린 것은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그리기’다. 그동안 운동화와 시계, 가방과 보석 등 일상의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해온 차영석이 이번에는 대상을 내려놓았다. 구체적인 형태 대신 연필을 쥔 손의 움직임과 호흡, 몸의 긴장, 그날그날 달라지는 시간을 화면에 새겼다. 서울 종로구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차영석 개인전 ‘Smudge(번짐)'는 작가가 약 20년간 이어온 연필 작업의 새로운 전환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반복적인 연필선 자체가 화면의 밀도와 흐름을 만든다.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차영석은 “그전에는 운동화나 가방처럼 구체적인 형태 위에 나의 그리기 방식을 덧댔다면, 이번에는 그리기 자체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2005년부터 사물을 연필로 그려왔다. 빛과 그림자를 배제하고 지우개를 사용하지 않은 채 짧은 선을 반복해 화면을 채웠다. 일상 사물의 형태와 질감을 집요하게 관찰한 그의 작업은 정교한 묘사와 노동집약적인 과정으로 주목받았다. 2009년 금호영아티스트로 선정된 이후 연필을 회화의 언어로 확장하며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2018년 이화익갤러리 개인전 '우아한 노력'에서 그는 파주의 외딴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씩 연필을 잡으며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다. 8년이 흐른 지금도 연필은 그의 손에서 놓이지 않았다. 다만 질문은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왜 그리는가를 묻는다. 사물의 표면을 따라가던 시선은 자신의 몸과 강박, 반복되는 행위 안으로 향했다. “사물을 계속 그리다 보니 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머무는 듯한 답답함이 생겼어요. '나의 그리기란 무엇인가'를 고민한 지 3년 정도 됐습니다.” 그는 사물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사물을 통과했다. 운동화와 시계, 가방은 그의 손을 단련한 대상이었다. 이제 그 손은 더 이상 구체적인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선이다. 반복되는 선은 사물을 재현하기보다 그리는 행위 자체를 드러낸다. 신작 ‘Smudge’는 장지 위에 연필로 짧은 선을 이어 그린 작품이다. 수정하거나 문지르지 않는다. 화면의 크기를 정한 뒤 위쪽 끝에서 시작해 선을 쌓아 내려간다. 연필의 농도와 굵기, 손끝의 힘과 호흡에 따라 화면은 미세하게 달라진다. “연필은 가감이 없어요. 선 하나가 최초의 행위이고, 수정도 문지르기도 없습니다.” 작업에는 톰보 MONO 100과 파버카스텔 Castell 9000 등 6B부터 H 계열까지 다양한 경도의 연필이 쓰인다. 선의 흐름에 변화를 주기 위해 농도를 바꾸고, 심이 무뎌지면 곧바로 다시 깎는다. 원하는 선을 얻기 위해 연필깎이마저 직접 개조했다. 작업하는 날이면 최대 16시간까지 연필을 잡는다. 학교에 나가는 날에도 30분 정도 여유가 생기면 곧바로 책상에 앉는다. 물감을 섞거나 붓을 씻을 필요가 없는 연필은 멈췄다가도 다시 손에 쥐는 순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재료다. 그러나 차영석은 이를 성실함이라는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화면에 쌓이는 것은 선만이 아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몸의 상태에 따라 속도와 선의 밀도는 달라진다. 어떤 날은 손이 자연스럽게 나가지만, 어떤 날은 호흡이 가빠지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지나치게 집중하면 혀가 말리고 숨이 막혀, 의식적으로 호흡을 내쉬며 작업한다. “그림을 보면 그때 내 몸 상태가 어땠는지 저는 보여요. 호흡이 어땠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가감 없이 담깁니다.” 작업은 수행처럼 보이지만 결코 고요하지만은 않다. 오랜 시간 몸을 숙이고 그리면서 목과 허리에는 통증이 생겼다. 화면의 잔잔한 파동 안에는 손의 리듬뿐 아니라 육체가 견딘 피로와 긴장도 함께 스며 있다. 대형 작업은 방 안에서 전체를 펼칠 수도 없다. 한지를 위아래로 말아 놓고, 눈앞에 드러난 부분만 채우며 조금씩 풀어 나간다. 형태를 만들려는 의식적 개입을 막기 위해 작업 도중 전체 화면을 보는 일도 자제한다. 촬영하거나 전시장에 설치할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 전체를 마주한다. 작가는 화면을 만든 사람이면서 동시에 완성된 화면을 뒤늦게 발견하는 첫 관객이 되는 셈이다. 작업이 끝나면 화면을 180도 돌린다.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쌓인 선의 방향을 뒤집어 중력과 손의 습관이 만든 조형적 질서를 흔들기 위해서다. “그림을 그릴 때는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고 조형적으로 통제하려 합니다. 그 자체를 흔들어보고 싶었어요. 끝난 뒤 뒤집으면 시작과 끝이 바뀌고, 제가 통제하지 못한 새로운 흐름이 나옵니다.” 전시 제목인 ‘Smudge’는 번짐이나 얼룩을 뜻한다. 그러나 작품의 선은 물감처럼 번지지 않는다. 짧은 선들이 조금씩 밀리고 겹치면서 경계가 흐릿해지고, 그 틈에서 산맥과 파도, 구름 같은 이미지가 생겨났다 사라진다. 이미지는 붙잡을 수 없는 상태로 머문다. 차영석이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이유에는 그의 강박적 성향도 자리한다. 그는 자신이 왜 비어 있는 시간과 공간을 견디지 못하는지 궁금해 약 7년 전부터 혼자 정신분석학과 라캉을 찾아 공부했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며 학교와 작업을 병행했다. 돈을 벌고, 수업을 듣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하루를 잘게 쪼개 쓰던 습관이 몸에 남았다. 휴가를 가서도 그림을 생각할 만큼 비어 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못했다. 그 강박은 이제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작업을 지속하는 방식이 됐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짧은 선 하나를 부르고, 그 선은 다시 다음 선을 부른다. 그렇게 선이 쌓이는 동안 공백은 화면이 되고, 불안은 리듬이 된다. 2018년의 '우아한 노력'이 외로움과 시간을 견디며 사물의 세계를 완성한 작업이었다면, 이번 'Smudge'는 그 노력의 근원을 스스로에게 묻는 전시다. 노력은 더 이상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리는 동안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존재의 방식이 된다. 운동화도, 시계도, 가방도 사라졌다. 끝내 남은 것은 연필과 장지, 그리고 시간을 견딘 손이다. 차영석은 이번 전시에서 대상을 완성하지 않았다. 대신 화가라는 존재가 매일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그렸다. 산을 그리지 않았지만 선이 쌓이자 산맥이 나타났고,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지만 화면에는 그의 호흡과 몸, 결핍과 시간이 남았다. 그에게 그림은 결과가 아니라, 화가로 존재하는 시간 그 자체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열린다. 2026/07/20
귀여움은 위장…미스터(Mr)가 그린 일본의 초상 귀여움에 빨려든다.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오색찬란한 소녀들이 커다란 눈망울로 관람객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그것은 단순한 귀여움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커다란 눈 안에는 토끼와 하트, 별, 음표, 픽셀 이미지와 게임 아이콘들이 촘촘히 겹쳐져 있다. 어떤 작품에서는 한글 '평화'라는 단어도 눈동자 속에 숨어 있다. 귀여움은 입구일 뿐이다. 그 눈동자는 현실과 환상, 기억과 욕망이 겹쳐지는 또 하나의 우주다. 리만머핀 서울은 일본 네오팝을 대표하는 작가 미스터(Mr.·57)의 개인전 '계절이 두고 간 것. 음? 날이 개었다.'를 개최한다. 지난 2017년 페로탕 서울 개인전 이후 약 10년 만의 한국 개인전이다. 두상 형태의 신작 회화 연작과 조각을 비롯해 실제 작업실 일부까지 전시장 안으로 옮겨왔다. 해외 아트페어를 통해 국내 컬렉터들에게 익숙했던 그의 세계를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 1층 입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작업실이다. 물감이 묻은 붓과 팔레트, 작업 도구들이 흩어진 공간 한가운데 거대한 소녀와 작가의 실물 크기 패널이 관람객을 맞는다. 잠시 자리를 비운 작가가 금세 돌아와 붓을 들 것 같은 풍경이다.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창작의 과정까지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며, 관람객은 그림을 감상하기보다 미스터가 구축한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소녀들의 눈동자로 향한다. 특히 '노도카–쪽빛보다 푸르게 물든'에는 둥근 얼굴의 소녀가 초록과 붉은빛으로 반짝이는 커다란 눈으로 관람객을 응시한다. 은하수를 닮은 눈동자 안에는 토끼와 하트, 음표, 별, 그리고 한글 '평화'가 함께 떠 있다. 눈은 감정을 표현하는 기관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계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토끼와 별, 음표와 픽셀, 게임 아이콘이 서로 겹쳐지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도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최근 연작에서는 여러 인물과 장면을 하나의 화면 안에 중첩하는 구성도 한층 강화됐다. 밝은 색채와 '카와이(Kawaii)' 미학으로 가득 찬 화면은 만화책 한 페이지를 보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보 과잉 시대의 고립과 상실,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갈망이 스며 있다. “미소녀 캐릭터는 평화롭고 희망적이며 젊은 힘을 갖고 있어요.” 전시장에서 만난 미스터는 "밝음과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모든 캐릭터에는 나 자신이 투영돼 있다. 때로는 직접 코스프레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제자이자 카이카이 키키 초기 멤버인 미스터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오타쿠 문화를 현대미술로 끌어올린 '슈퍼플랫'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1996년 도쿄 소케이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2000년 '슈퍼플랫' 전시를 계기로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회화와 조각, 설치를 넘나들며 일본 서브컬처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발전시켜 왔다. 작가명 '미스터(Mr.)'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선수 나가시마 시게오의 별명인 '미스터 자이언츠'에서 따왔다. 스스로를 오타쿠라고 말하는 그는 하위문화를 일정한 거리에서 비평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작품으로 옮긴다. 그에게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고 희망을 상상하게 하는 언어다. 미스터의 작품은 늘 환영만 받아온 것은 아니다. 미소녀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업은 롤리타 콤플렉스와 연결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작가는 이러한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작업의 방향을 바꿀 뜻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평화와 희망, 젊은 힘을 담고 싶다”며 “귀엽고 발랄한 캐릭터를 그리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붕괴와 상실의 기억을 작업에 담았다. 거칠게 훼손된 화면 위에 순진한 얼굴의 소녀들을 그려 넣으며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풍경을 만들어 왔다. 그는 “일본은 어느 정도 평화로워 보이지만 밝지는 않은 것 같다”며 “물가는 크게 올랐지만 임금은 30년 가까이 정체돼 있어 사회 전체가 어두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를 그린 그림이 아니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이자,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유니버스다. 멀리서는 만화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회화가 된다. 화면에는 붓질의 결이 살아 있고, 안료를 여러 겹 쌓아 올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평면처럼 보이던 소녀의 얼굴은 미묘한 색층과 터치로 깊이를 얻고, 디지털 이미지처럼 보이던 화면은 손의 시간이 축적된 회화로 다가온다. 전시장 입구에 재현된 작업실과 거대한 소녀 조형은 그 세계가 더 이상 캔버스 안에 머물지 않고 관람자가 직접 들어가는 공간으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귀여움은 그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 눈동자 끝에는 동시대 일본 사회의 불안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작은 평화가 함께 머문다. 어쩌면 미스터는 귀여움을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 불안을 견디기 위해 귀여움을 빚어내는 화가인지도 모른다. 그의 그림은 현실을 잊게 만드는 만화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게 하는 회화로 읽힌다.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만큼 작품 가격도 국내 컬렉터들의 관심사다. 갤러리에 따르면 드로잉은 3만~4만5000달러, 쉐이프드 캔버스는 10만달러, 소형 회화는 12만5000달러, 100호 규모 대작은 25만달러 안팎이다. 미스터의 작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휴스턴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시애틀미술관, 캐나다 밴쿠버미술관, 대구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으며, 일본 네오팝과 슈퍼플랫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관람료는 무료다. 2026/07/02
칼끝으로 긁어낸 순수…이사라 '원더랜드' 25년 "원더랜드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1일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만난 이사라(46)는 자신의 그림 속 소녀처럼 환하게 웃었다. 4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천진한 표정이었다. 작가도, 작품도 그 세계 안에서는 나이를 먹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 천진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십 번 덧바르고 갈아낸 화면, 칼끝으로 하나하나 긁어낸 스크래치, 수없이 반복한 수행 같은 노동…. 순수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25년의 인고 끝에 만들어진 결과다. 서울 인사동 노화랑은 2일부터 23일까지 이사라 개인전 'A Girl From Wonderland'를 개최한다. 프랑스 레지던시를 마치고 귀국 후 처음 선보이는 전시로, 회화 13점과 입체 작품 16점 등 모두 29점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변화는 15년간 이어온 '원더랜드' 시리즈의 주인공 소녀가 처음으로 입체 조각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10여 년 전부터 언젠가는 소녀를 입체로 만들고 싶었다"며 "2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현실로 꺼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면 속 표현도 그대로 이어졌다. 조각의 눈에는 회화에서처럼 스크래치가 새겨졌고, 속눈썹 하나까지 칼끝으로 다듬었다. 돋보기를 쓰고 작업할 만큼 섬세한 손길이 이어졌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달라진 점은 배경을 덜어낸 것이다. 그동안 원더랜드를 채우던 풍경 대신 소녀의 눈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소녀의 눈은 관람객을 각자의 원더랜드로 이끄는 통로입니다." 별과 하트, 꽃무늬가 빼곡히 들어찬 보석 같은 눈동자는 화면의 중심이 된다. 형형색색의 문양은 "섬세함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칼끝을 수없이 움직여 새긴 빛의 흔적이다. 윤기를 덜어낸 매끈한 화면은 파우더처럼 보송한 질감을 만들고, 반짝이는 눈동자는 더욱 또렷하게 살아난다. 그의 작업에서 스크래치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다. 캔버스를 직접 만들고 수차례 바탕을 올린 뒤 마지막에 칼로 긁어낸다. 작품 속 흰색은 칠한 것이 아니라 긁어낸 흔적이다. 눈동자에 새겨진 수많은 빛의 흔적은 수행에 가까운 노동의 결과다. "스크래치는 계속해서 비는 행위입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행 같은 작업이지요." 이사라의 원더랜드는 오래된 순정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천진함과 순수, 그 경계 어딘가에 있다. '동심으로도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런 경계를 의식하느냐'고 묻자, 작가는 잠시 생각한 뒤 "나는 한 번도 내 작품을 유치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항상 아름답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해석은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답했다. 작품 세계에 대한 확신이 담긴 대목이다. "작가는 흔들리면 안 됩니다. 복잡한 생각보다 단순하게 자기 길을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으로 흑백 연작도 선보인다. 행복과 동심만 머물던 원더랜드는 이제 죽음과 이별까지 품기 시작했다. 소멸에서 생성으로 나아가는 장면이기도 하다. 작가는 "원더랜드에서도 이제 죽음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며 "몸은 사라져도 영혼은 빛난다고 믿는다. 슬픔과 고통마저도 결국 아름다움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극사실주의 거장 이석주 화백의 외동딸인 그는 "아버지와는 미술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다만 최근 자신의 입체 작품이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을 때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잘했다"는 말을 들은 일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은 화풍이 아니라 엉덩이를 떼지 않고 끝까지 작업하는 태도입니다." 원더랜드는 이제 회화를 넘어 하나의 세계관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작곡가들이 클래식과 재즈로 원더랜드 음원을 발표한 데 이어 삼성 휴대전화 케이스 등 다양한 아트 굿즈를 선보이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일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사라는 숙명여자대학교 회화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홍익대학교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첫 개인전 이후 국내외에서 46회의 개인전을 열며 'Happy Doll', 'Lucky Bear', 'Wonderland' 시리즈를 통해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해왔다. 오색찬란한 화면 뒤의 순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처럼 웃는 소녀의 눈동자에는 25년의 수행과 인고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 눈동자에 새겨진 작은 빛들은 한 작가가 끝내 포기하지 않은 희망의 흔적이다. "모든 존재는 빛이다." 25년 동안 원더랜드를 그려온 이사라는 오늘도 그 문장을 그림으로 새기고 있다. 2026/07/01
눈보다 머리를 흔드는 전시…'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장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반복된다. 관객들은 작품보다 설명문 앞에 더 오래 머문다. 휴대폰 카메라가 향하는 곳도 작품보다 캡션이다. 작품을 본 뒤 다시 설명문으로 돌아가고, 설명문을 읽은 뒤 다시 작품을 바라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8일 개막한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그런 전시다. 보는 전시라기보다 읽는 전시, 더 정확히는 읽고도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개념미술 소개전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사의 또 다른 계보를 복원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김범, 김순기, 김용익, 김홍석, 박이소, 안규철, 오인환, 이건용 등 28명의 작가와 회화, 사진, 영상, 오브제, 퍼포먼스 등 140여 점의 작품 및 아카이브를 통해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을 조망한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개념미술을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021년 한국 실험미술전 이후 그 다음 장을 고민했다"며 "한국 현대미술을 구성하는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인 개념미술을 본격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미술사는 오랫동안 두 개의 축으로 설명돼 왔다. 단색화와 실험미술이다. 물질을 밀고 나가는 회화와 몸으로 밀고 나가는 행위의 역사다. 그러나 그 사이에 개념미술은 늘 존재했음에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충분히 읽히지 못했던 개념미술의 계보를 다시 호출한다. 김 관장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을 국제 미술사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내고자 한다"며 "이번 전시는 한국 개념미술을 세계 미술사 안에서 새롭게 위치시키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한국 개념미술 전체를 다루기보다 언어적 차원에 집중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1970년대 ST(Space and Time) 그룹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 한국 개념미술을 언어와 논리의 관점에서 본 적이 거의 없었다"며 "작가들이 왜 언어철학을 공부했고 그것을 행위와 결합하려 했는지 다시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를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질문 가운데 하나는 단색화의 부재다.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은 흔히 단색화와 실험미술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돼 왔다. 그렇다면 왜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같은 단색화 작가들은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배 연구사는 이에 대해 "단색화가 관념적이라고 해서 개념미술인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색화가 물성과 표면, 마티에르에 방점을 둔다면 개념미술은 작품의 시각적 완성도보다 아이디어와 언어적 사고에 중심을 둔다"며 "단색화가 관념적이기 때문에 개념미술이라는 해석은 오해가 있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ST그룹의 작업은 단순한 실험미술이 아니라 언어철학과 논리학에 대한 관심 속에서 탄생했다. 배 연구사는 "당시 작가들의 작업실에는 언어철학 관련 서적들이 많았다"며 "왜 언어를 공부했고 그것을 행위와 연결하려 했는지 들여다보는 것 역시 이번 전시의 중요한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사물의 전시라기보다 사유의 전시에 가깝다. 배 연구사는 이를 "눈을 건드리는 미술이 아니라 머리를 건드리는 미술"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이건용에서 시작해 홍명섭, 안규철, 박현기, 김순기, 성능경, 오인환, 김범, 박이소, 코디 최, 김홍석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전시장을 돌고 나면 개별 작품보다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언어는 과연 세계를 설명하는가, 아니면 세계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질문이다. 홍명섭의 작업에서는 검은 리놀륨 바닥이 길게 깔려 있지만 관객은 그것이 작품인지조차 모른 채 그 위를 걷는다. 제목은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기'. 작가는 관객에게 작품을 감상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 속을 지나가게 만든다. 보는 행위보다 경험하는 행위가 먼저 등장한다. 박현기의 돌은 더 이상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작가는 "나는 돌이 아니다(I am not a stone)"라는 문장을 통해 인간과 사물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김순기의 작업은 '나, 여기, 지금'이라는 가장 단순한 언어를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전환시키고, 오인환의 숫자는 주소를 잃어버린 채 순수한 기호 체계로 남는다. 김용익의 지도 작업 역시 국가와 국경, 좌표와 측정이라는 체계가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언어적 약속임을 드러낸다. 김민주의 '이름 프로젝트: 당신을 찾습니다'는 관객 참여형 작업이다. 작가는 수집한 이름들을 벽면에 적어두고,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관람객은 그 이름 옆에 직접 서명을 남길 수 있다. 이름은 단순한 기호이면서도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익명의 문자였던 이름은 실제 인물의 참여를 통해 다시 살아 움직이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확장된다. 박이소와 코디 최의 작업은 이러한 질문을 번역과 혼성의 문제로 확장한다. 원본과 번역본, 한국과 미국,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박이소가 커피와 콜라, 간장으로 그린 국수를 '삼위일체'라 부르는 순간, 언어와 이미지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간극이 생겨난다. 코디 최 역시 한국전쟁과 미국 문화, 소비사회와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뒤섞으며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제3의 지대를 보여준다. 전시 후반부에서 만나는 김홍석의 영상 작업 '더 토크'는 특히 인상적이다. 동티모르 노동자 인권 문제를 다룬 인터뷰처럼 보이지만 사실 노동자도 가짜, 통역도 가짜, 자막도 가짜다. 한국 배우(안내상)가 동티모르 노동자로 분장했고 흘러나오는 언어 역시 실제 언어가 아니다. 20년 전 작품으로, 당시 관객은 한동안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TV 인터뷰라는 형식과 영어 자막이라는 장치가 진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실제 내용인지, 아니면 형식과 권위인지 묻는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거대한 연보가 등장한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개념미술의 시간 지도다. 보통 전시는 작품으로 끝나지만 이 전시는 질문의 계보를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전시의 진짜 작품은 돌도, 숫자도, 인터뷰 영상도 아니다. 그 작품들을 가능하게 한 질문들이다.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한국 개념미술을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현대미술 안에 존재했지만 충분히 읽히지 못했던 또 하나의 사유의 전통을 드러낸다. 단색화가 물감의 역사를 만들었다면, 이번 전시가 소환한 개념미술은 언어의 역사를 만들었다. 전시장 벽면에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부정문조차 개념미술의 문법이다. 르네 마그리트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이후 현대미술은 줄곧 보이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의 균열을 탐색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 균열의 한국적 계보를 정리한다. 전시장을 돌다 보면 때로는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러나 그 낯섦 역시 개념미술의 일부다. 전시장을 나설 때 작품의 이미지보다 질문이 먼저 남는다. 이것은 '개념미술인가. 아니면 개념미술이 아닌가.' 전시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개념미술다운 결말이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입장료 2000원. 2026/06/18
"90년대엔 내가 불멸이라 믿었다"…데이미언 허스트의 고백 "90년대에는 내가 불멸이라고 느꼈다. 지금은 아니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로 현대미술사를 뒤흔든 데이미언 허스트(60)가 나이 듦과 죽음, 그리고 예술의 의미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내놓았다. 1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허스트는 "지나온 시간이 앞으로 남은 시간보다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며 "이제는 죽음을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한때 죽음을 전시하며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렸던 그는 이날 놀랄 만큼 차분했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로 죽음을 붙잡으려 했던 작가는 이제 불멸보다 유한함을, 충격보다 삶을 이야기했다. 세상에 도발하던 그는 '지금'에 충실한 모습이다. 죽음은 허스트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1991년 제작한 대표작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은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상어를 통해 현대미술사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그는 이날 "죽음을 붙잡아 두려 했던 상어도 이제 늙어가고 있다. 결국 시간이 이긴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그 작품의 의미를 판단할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허스트는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가능한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며 "작품이 시간을 이겼는지 아닌지는 미래 세대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작품이 얼마나 오래 갈 것 같냐고 물었더니 호크니가 말했습니다. '너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답해라.'" 그는 스스로를 '죽음의 작가'로 규정하는 시선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예술 속에 죽음은 있을 수 있지만 '죽음의 예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어 "예술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예술 없음(No Art)'이다"라며 "죽음을 다룬 작품 역시 결국 삶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때 영국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며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이끌었던 허스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내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이미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한 허스트는 골드스미스대 재학 시절인 1988년 직접 기획한 전시 '프리즈(Freeze)'를 통해 미술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낡은 부두 창고를 전시장으로 바꾸고 젊은 작가들이 공간을 직접 연출한 이 전시는 훗날 YBA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이후 허스트는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 점화(Spot) 시리즈 등을 통해 죽음과 신념, 과학과 자본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며 동시대 미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에는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상어를 비롯해 잘린 소머리 작업, 다이아몬드 해골, 점화 연작 등 대표작 50여 점이 소개된다. 하나의 브랜드처럼 굳어진 이 작업들은 죽음과 삶, 믿음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존재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러나 이날 허스트가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었다. 그가 말한 것은 시간과 변화, 그리고 결국 삶이었다. "지금은 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성공을 정의해야 한다면 언젠가 내 묘비명에 '위대한 예술가'보다 '좋은 아버지'라고 적혀 있기를 바랍니다." 실제 이날 인터뷰에서 드러난 허스트의 관심은 죽음보다 삶에 가까웠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매일 바뀐다면서도 오히려 두려움은 줄어들었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서 오히려 죽음은 덜 무서워졌습니다." 동물 표본 작업에 대한 변화된 입장도 밝혔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앞에서 열린 동물권 단체의 시위와 관련한 질문에 그는 "30~35년 전과 지금은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답했다. 과거 실제 동물을 사용했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진짜 동물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진짜가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기술이 발전했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소머리 설치작업은 과거 24시간마다 실제 소머리를 교체해야 했지만 현재 전시에 사용되는 것은 정교하게 제작된 모형이다. AI에 대한 질문에도 열린 태도를 보였다. AI가 허스트의 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데미안 허스트 스타일'의 작품을 만든다면 그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먼저 봐야 알 수 있다"고 웃으며 답했다. 이어 "AI로부터 안전한 직업은 없다"며 "AI는 훌륭한 작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관객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종료 20일을 앞두고 누적 관람객 44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관람객은 5600여 명으로 지난해 화제를 모은 론 뮤익 전시와 비슷한 흥행 추세를 보이고 있다. 관람객 가운데 20~30대 비중은 62%에 달한다. 허스트는 "영국에서는 1990년대에 들었던 이야기를 지금 한국에서 듣고 있다"며 "젊은 한국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모습을 보면 놀랍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다가와 '당신 때문에 내 삶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 영국에서 듣던 말을 지금 한국에서 다시 듣고 있습니다." 이어 "40년 전 만든 작품들이 지금도 사람들의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예술가로서의 성취"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작가와의 대화에는 1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 객석을 가득 채웠다. 허스트는 관객들의 질문을 직접 받으며 한국에서의 높은 관심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허스트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작가는 질문을 답처럼 위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폴 고갱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언급하며 "모든 회화와 조각은 답인 척하지만 실제 답은 관객의 손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예술가로 프랜시스 베이컨, 프란시스코 고야, 뱅크시를 꼽았다. 음악가 데이비드 보위 역시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허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정돈된 아름다움보다 인간 존재의 불안과 욕망, 육체와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며 "젊을 때와 늙었을 때의 작업이 모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의 작품은 하나의 인생 지도(map of life)와 같다"며 "나 역시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젊은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로는 '질문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예술은 정치와 과학, 종교와 분리돼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이번 인터뷰를 관통하는 한 문장을 남겼다. "예술의 가장 중요한 힘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이미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불멸을 믿던 청년은 사라졌다. 대신 시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60세의 작가가 남았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는 늙어가고 있다. 하지만 허스트가 평생 붙들어온 질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삶과 죽음, 믿음과 욕망, 그리고 인간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서울에서 만난 허스트는 그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전은 오는 28일까지 이어진다. 2026/06/11
“다음 피노키오는 더 좋아질 것”…91세 화가 짐 다인의 현재진행형 예술 “나는 평생 피노키오와 함께 걸어왔다.” 91세 미국 현대미술 거장 짐 다인(Jim Dine)은 서울 전시장 벽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I have walked with him my whole life.” 서울 삼청동 피비갤러리(PBG)에서 열린 개인전 ‘My Words and Pinocchio’ 전시장에는 붉은 피노키오 조각과 거대한 텍스트 드로잉, 시처럼 흩어진 단어들이 뒤엉켜 있었다. 동화 속 캐릭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늙고 불완전한 인간 같은 피노키오가 어둡게 서 있었다.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짐 다인은 피노키오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예술을 설명하는 “은유”라고 말했다. “시를 쓰는 일과 피노키오를 그리는 일은 다르지 않다. 모두 같은 곳에서 나온다.” 그는 여섯 살이던 1941년, 어머니와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처음 본 기억을 떠올렸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고 당나귀 귀가 생기는 장면은 어린 소년에게 강렬한 공포로 남았다. “작은 소년에게 그것은 무섭고도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성인이 된 뒤 그는 한 철물점에서 1941년 제작된 피노키오 인형을 우연히 발견했다. 실제 옷을 입고 있던 그 인형은 오랫동안 작업실 선반 위에 놓여 있었고,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럽게 작업 속으로 들어왔다. 짐 다인은 “피노키오는 결국 인간이 되어가는 존재”라며 “그 여정 자체가 예술의 메타포”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나무 조각이었던 존재가 인간이 되어간다. 우리가 연필을 들어 그림을 그리는 순간 역시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된다.” 피노키오는 짐 다인에게 동화 속 인형이 아니다. 늙어가는 인간, 실패와 허영, 상처와 회복을 평생 끌고 온 또 하나의 자화상이 됐다. 그는 피노키오 이야기가 단순한 어린이 동화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피노키오는 발이 불에 타고, 코가 길어지고, 당나귀 귀가 생기는 수많은 시련을 겪는다. 결국 인간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인간이 더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고통의 서사다.” 이어 “삶의 역경과 두려움, 인간 존재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며 “기독교적 서사와도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동화 속 캐릭터라기보다 어둡고 불완전한 인간처럼 보이는 피노키오에 대해 그는 “디즈니식 피노키오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나의 피노키오는 큰 미소와 공허한 눈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긴 여정을 통과한 인간이다.” 그는 원작 ‘피노키오’를 이탈리아 서민의 삶을 담은 하나의 알레고리로 읽고 있었다. “피노키오는 단순히 고통과 역경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표현한 이야기다. 내가 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그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피비갤러리가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서 짐 다인의 신작을 선보인 이후 마련한 한국 첫 개인전이다. 1935년 미국에서 태어난 짐 다인은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과 함께 팝아트와 행위예술의 흐름 속에서 주목받았다. 이후 회화, 드로잉, 조각, 시, 사진, 퍼포먼스,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하트, 가운, 공구 같은 반복적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 세계를 지탱해온 ‘쓰기(write)’와 ‘그리기(draw)’에 집중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와 드로잉이 결합된 작업들이다. 짐 다인은 지난 50여 년 동안 12권 이상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검은 목탄과 거친 붓질로 쓰인 문장들이 회화처럼 펼쳐져 있다. 그는 “글과 이미지는 같은 대상”이라고 말했다. “시는 읽는 문장이 아니라 보는 언어다.” 짐 다인에게 예술은 결국 손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기억하는 행위였다. 그는 어린 시절 난독증으로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학교에서는 글자들이 뒤집혀 보였고, 긴 소설을 끝까지 읽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에 직접 단어를 크게 써 내려갔다. 위에서 아래로 단어를 적고, 지우고, 다시 덧붙이며 “콜라주처럼 단어를 재배열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읽는 언어라기보다 ‘보는 언어’에 가까워졌다. 검게 긁힌 목탄의 흔적과 반복되는 단어들은 화면 안에서 이미지처럼 떠다닌다. 이번 전시에서도 시 드로잉은 회화와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손으로 밀고 긁고 문지른 흔적들은 화면 위에 그대로 남아, 짐 다인 특유의 육체적 감각과 시간을 드러낸다. 그는 “지금은 책 읽기에 훨씬 자신감이 생겼다”고 웃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 감각 역시 그 결핍에서 시작됐음을 인정했다. 그에게 난독증은 장애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예술적 감각의 출발점이었다. 그의 시 원고와 자료들은 미국 예일대학교 베이네키 희귀본 및 필사본 도서관(Beinecke Rare Book & Manuscript Library)에 소장돼 있다. 짐 다인은 뼛속까지 예술가였다. 자신을 두고 “예술가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두 살 때 이미 자신이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를 “멍청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작업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컴퓨터도 잘 못 쓰고 운전도 서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으로 만드는 일뿐이다.” 그의 작업은 “보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1970년대에는 회화를 멈추고 약 5년 동안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매일 모델 드로잉만 반복했다. “1년에 열 점 정도밖에 그리지 않았다. 계속 지우고 수정하면서 손과 눈을 훈련했다.” 너무 오래 바라보는 탓에 모델들이 견디지 못하고 떠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없이 보는 훈련”을 통해 손이 눈을 따라가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본 것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서른다섯 살 때 느꼈던 감정까지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들이 현재의 그림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만큼은 스스로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머릿속에서는 통제가 가능할지 몰라도, 손으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AI 시대에도 그가 끝까지 드로잉을 놓지 않는 이유다. 그 기억 위에서 지금의 피노키오는 탄생했다. 젊은 시절보다 더 늙고, 더 결핍 많고, 더 인간적인 피노키오다. 거짓과 욕망, 인간의 연약함까지 끌어안은 또 하나의 자화상에 가깝다. “처음 피노키오를 그렸을 때 나는 어린 소년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다음에 그릴 피노키오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그에게 작업은 이미 습관을 넘어 삶의 본능에 가까웠다. 그는 예술을 “멈출 수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예술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을 것이다.” 짐 다인에게 예술은 철학이나 메시지 이전의 문제였다. 그는 예술이 자신이 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일이라고 말했다. “예술은 세계 평화나 정치적 메시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부산과 서울을 여러 차례 찾았던 그는 한국과도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대부분 시각적인 것들”이라며 “그래도 계속 한국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 역시 2017년 리안갤러리 시절 연을 맺은 피비갤러리 김혜경 대표와의 의리로 성사됐다. 그는 2013년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 앞 광장에 높이 9m, 무게 55t 규모의 대형 피노키오 조각 ‘희망으로 나아가는 소년’을 설치한 바 있다. 빽빽한 빌딩 숲 사이를 걸어 내려오는 목각 인형 피노키오는 오랫동안 부산의 상징적 공공미술로 자리해왔다. 91세의 거장에게 예술은 직업 이전에 존재 방식이었다. “예술은 내 생각이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행위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를 “결핍이 많은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결핍이 자신을 계속 작업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피비갤러리 전시장 한복판에 지팡이를 짚은 화가와 붉은 피노키오는 어느 순간 하나의 존재처럼 보였다. 12년 전 그가 만든 긴 코의 나무 인형은 지금도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왜 두 팔을 벌리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모르겠다”며 아이처럼 껄껄 웃었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관람은 무료다.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