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다 머리를 흔드는 전시…'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장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반복된다. 관객들은 작품보다 설명문 앞에 더 오래 머문다. 휴대폰 카메라가 향하는 곳도 작품보다 캡션이다. 작품을 본 뒤 다시 설명문으로 돌아가고, 설명문을 읽은 뒤 다시 작품을 바라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8일 개막한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그런 전시다. 보는 전시라기보다 읽는 전시, 더 정확히는 읽고도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개념미술 소개전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사의 또 다른 계보를 복원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김범, 김순기, 김용익, 김홍석, 박이소, 안규철, 오인환, 이건용 등 28명의 작가와 회화, 사진, 영상, 오브제, 퍼포먼스 등 140여 점의 작품 및 아카이브를 통해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을 조망한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개념미술을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021년 한국 실험미술전 이후 그 다음 장을 고민했다"며 "한국 현대미술을 구성하는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인 개념미술을 본격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미술사는 오랫동안 두 개의 축으로 설명돼 왔다. 단색화와 실험미술이다. 물질을 밀고 나가는 회화와 몸으로 밀고 나가는 행위의 역사다. 그러나 그 사이에 개념미술은 늘 존재했음에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충분히 읽히지 못했던 개념미술의 계보를 다시 호출한다. 김 관장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을 국제 미술사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내고자 한다"며 "이번 전시는 한국 개념미술을 세계 미술사 안에서 새롭게 위치시키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한국 개념미술 전체를 다루기보다 언어적 차원에 집중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1970년대 ST(Space and Time) 그룹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 한국 개념미술을 언어와 논리의 관점에서 본 적이 거의 없었다"며 "작가들이 왜 언어철학을 공부했고 그것을 행위와 결합하려 했는지 다시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를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질문 가운데 하나는 단색화의 부재다.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은 흔히 단색화와 실험미술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돼 왔다. 그렇다면 왜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같은 단색화 작가들은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배 연구사는 이에 대해 "단색화가 관념적이라고 해서 개념미술인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색화가 물성과 표면, 마티에르에 방점을 둔다면 개념미술은 작품의 시각적 완성도보다 아이디어와 언어적 사고에 중심을 둔다"며 "단색화가 관념적이기 때문에 개념미술이라는 해석은 오해가 있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ST그룹의 작업은 단순한 실험미술이 아니라 언어철학과 논리학에 대한 관심 속에서 탄생했다. 배 연구사는 "당시 작가들의 작업실에는 언어철학 관련 서적들이 많았다"며 "왜 언어를 공부했고 그것을 행위와 연결하려 했는지 들여다보는 것 역시 이번 전시의 중요한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사물의 전시라기보다 사유의 전시에 가깝다. 배 연구사는 이를 "눈을 건드리는 미술이 아니라 머리를 건드리는 미술"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이건용에서 시작해 홍명섭, 안규철, 박현기, 김순기, 성능경, 오인환, 김범, 박이소, 코디 최, 김홍석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전시장을 돌고 나면 개별 작품보다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언어는 과연 세계를 설명하는가, 아니면 세계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질문이다. 홍명섭의 작업에서는 검은 리놀륨 바닥이 길게 깔려 있지만 관객은 그것이 작품인지조차 모른 채 그 위를 걷는다. 제목은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기'. 작가는 관객에게 작품을 감상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 속을 지나가게 만든다. 보는 행위보다 경험하는 행위가 먼저 등장한다. 박현기의 돌은 더 이상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작가는 "나는 돌이 아니다(I am not a stone)"라는 문장을 통해 인간과 사물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김순기의 작업은 '나, 여기, 지금'이라는 가장 단순한 언어를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전환시키고, 오인환의 숫자는 주소를 잃어버린 채 순수한 기호 체계로 남는다. 김용익의 지도 작업 역시 국가와 국경, 좌표와 측정이라는 체계가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언어적 약속임을 드러낸다. 김민주의 '이름 프로젝트: 당신을 찾습니다'는 관객 참여형 작업이다. 작가는 수집한 이름들을 벽면에 적어두고,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관람객은 그 이름 옆에 직접 서명을 남길 수 있다. 이름은 단순한 기호이면서도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익명의 문자였던 이름은 실제 인물의 참여를 통해 다시 살아 움직이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확장된다. 박이소와 코디 최의 작업은 이러한 질문을 번역과 혼성의 문제로 확장한다. 원본과 번역본, 한국과 미국,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박이소가 커피와 콜라, 간장으로 그린 국수를 '삼위일체'라 부르는 순간, 언어와 이미지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간극이 생겨난다. 코디 최 역시 한국전쟁과 미국 문화, 소비사회와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뒤섞으며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제3의 지대를 보여준다. 전시 후반부에서 만나는 김홍석의 영상 작업 '더 토크'는 특히 인상적이다. 동티모르 노동자 인권 문제를 다룬 인터뷰처럼 보이지만 사실 노동자도 가짜, 통역도 가짜, 자막도 가짜다. 한국 배우(안내상)가 동티모르 노동자로 분장했고 흘러나오는 언어 역시 실제 언어가 아니다. 20년 전 작품으로, 당시 관객은 한동안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TV 인터뷰라는 형식과 영어 자막이라는 장치가 진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실제 내용인지, 아니면 형식과 권위인지 묻는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거대한 연보가 등장한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개념미술의 시간 지도다. 보통 전시는 작품으로 끝나지만 이 전시는 질문의 계보를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전시의 진짜 작품은 돌도, 숫자도, 인터뷰 영상도 아니다. 그 작품들을 가능하게 한 질문들이다.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한국 개념미술을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현대미술 안에 존재했지만 충분히 읽히지 못했던 또 하나의 사유의 전통을 드러낸다. 단색화가 물감의 역사를 만들었다면, 이번 전시가 소환한 개념미술은 언어의 역사를 만들었다. 전시장 벽면에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부정문조차 개념미술의 문법이다. 르네 마그리트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이후 현대미술은 줄곧 보이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의 균열을 탐색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 균열의 한국적 계보를 정리한다. 전시장을 돌다 보면 때로는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러나 그 낯섦 역시 개념미술의 일부다. 전시장을 나설 때 작품의 이미지보다 질문이 먼저 남는다. 이것은 '개념미술인가. 아니면 개념미술이 아닌가.' 전시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개념미술다운 결말이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입장료 2000원. 2026/06/18
"90년대엔 내가 불멸이라 믿었다"…데이미언 허스트의 고백 "90년대에는 내가 불멸이라고 느꼈다. 지금은 아니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로 현대미술사를 뒤흔든 데이미언 허스트(60)가 나이 듦과 죽음, 그리고 예술의 의미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내놓았다. 1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허스트는 "지나온 시간이 앞으로 남은 시간보다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며 "이제는 죽음을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한때 죽음을 전시하며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렸던 그는 이날 놀랄 만큼 차분했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로 죽음을 붙잡으려 했던 작가는 이제 불멸보다 유한함을, 충격보다 삶을 이야기했다. 세상에 도발하던 그는 '지금'에 충실한 모습이다. 죽음은 허스트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1991년 제작한 대표작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은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상어를 통해 현대미술사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그는 이날 "죽음을 붙잡아 두려 했던 상어도 이제 늙어가고 있다. 결국 시간이 이긴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그 작품의 의미를 판단할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허스트는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가능한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며 "작품이 시간을 이겼는지 아닌지는 미래 세대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작품이 얼마나 오래 갈 것 같냐고 물었더니 호크니가 말했습니다. '너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답해라.'" 그는 스스로를 '죽음의 작가'로 규정하는 시선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예술 속에 죽음은 있을 수 있지만 '죽음의 예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어 "예술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예술 없음(No Art)'이다"라며 "죽음을 다룬 작품 역시 결국 삶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때 영국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며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이끌었던 허스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내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이미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한 허스트는 골드스미스대 재학 시절인 1988년 직접 기획한 전시 '프리즈(Freeze)'를 통해 미술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낡은 부두 창고를 전시장으로 바꾸고 젊은 작가들이 공간을 직접 연출한 이 전시는 훗날 YBA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이후 허스트는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 점화(Spot) 시리즈 등을 통해 죽음과 신념, 과학과 자본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며 동시대 미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에는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상어를 비롯해 잘린 소머리 작업, 다이아몬드 해골, 점화 연작 등 대표작 50여 점이 소개된다. 하나의 브랜드처럼 굳어진 이 작업들은 죽음과 삶, 믿음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존재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러나 이날 허스트가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었다. 그가 말한 것은 시간과 변화, 그리고 결국 삶이었다. "지금은 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성공을 정의해야 한다면 언젠가 내 묘비명에 '위대한 예술가'보다 '좋은 아버지'라고 적혀 있기를 바랍니다." 실제 이날 인터뷰에서 드러난 허스트의 관심은 죽음보다 삶에 가까웠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매일 바뀐다면서도 오히려 두려움은 줄어들었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서 오히려 죽음은 덜 무서워졌습니다." 동물 표본 작업에 대한 변화된 입장도 밝혔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앞에서 열린 동물권 단체의 시위와 관련한 질문에 그는 "30~35년 전과 지금은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답했다. 과거 실제 동물을 사용했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진짜 동물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진짜가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기술이 발전했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소머리 설치작업은 과거 24시간마다 실제 소머리를 교체해야 했지만 현재 전시에 사용되는 것은 정교하게 제작된 모형이다. AI에 대한 질문에도 열린 태도를 보였다. AI가 허스트의 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데미안 허스트 스타일'의 작품을 만든다면 그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먼저 봐야 알 수 있다"고 웃으며 답했다. 이어 "AI로부터 안전한 직업은 없다"며 "AI는 훌륭한 작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관객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종료 20일을 앞두고 누적 관람객 44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관람객은 5600여 명으로 지난해 화제를 모은 론 뮤익 전시와 비슷한 흥행 추세를 보이고 있다. 관람객 가운데 20~30대 비중은 62%에 달한다. 허스트는 "영국에서는 1990년대에 들었던 이야기를 지금 한국에서 듣고 있다"며 "젊은 한국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모습을 보면 놀랍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다가와 '당신 때문에 내 삶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 영국에서 듣던 말을 지금 한국에서 다시 듣고 있습니다." 이어 "40년 전 만든 작품들이 지금도 사람들의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예술가로서의 성취"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작가와의 대화에는 1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 객석을 가득 채웠다. 허스트는 관객들의 질문을 직접 받으며 한국에서의 높은 관심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허스트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작가는 질문을 답처럼 위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폴 고갱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언급하며 "모든 회화와 조각은 답인 척하지만 실제 답은 관객의 손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예술가로 프랜시스 베이컨, 프란시스코 고야, 뱅크시를 꼽았다. 음악가 데이비드 보위 역시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허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정돈된 아름다움보다 인간 존재의 불안과 욕망, 육체와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며 "젊을 때와 늙었을 때의 작업이 모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의 작품은 하나의 인생 지도(map of life)와 같다"며 "나 역시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젊은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로는 '질문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예술은 정치와 과학, 종교와 분리돼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이번 인터뷰를 관통하는 한 문장을 남겼다. "예술의 가장 중요한 힘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이미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불멸을 믿던 청년은 사라졌다. 대신 시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60세의 작가가 남았다.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는 늙어가고 있다. 하지만 허스트가 평생 붙들어온 질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삶과 죽음, 믿음과 욕망, 그리고 인간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서울에서 만난 허스트는 그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전은 오는 28일까지 이어진다. 2026/06/11
“다음 피노키오는 더 좋아질 것”…91세 화가 짐 다인의 현재진행형 예술 “나는 평생 피노키오와 함께 걸어왔다.” 91세 미국 현대미술 거장 짐 다인(Jim Dine)은 서울 전시장 벽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I have walked with him my whole life.” 서울 삼청동 피비갤러리(PBG)에서 열린 개인전 ‘My Words and Pinocchio’ 전시장에는 붉은 피노키오 조각과 거대한 텍스트 드로잉, 시처럼 흩어진 단어들이 뒤엉켜 있었다. 동화 속 캐릭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늙고 불완전한 인간 같은 피노키오가 어둡게 서 있었다.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짐 다인은 피노키오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예술을 설명하는 “은유”라고 말했다. “시를 쓰는 일과 피노키오를 그리는 일은 다르지 않다. 모두 같은 곳에서 나온다.” 그는 여섯 살이던 1941년, 어머니와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처음 본 기억을 떠올렸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고 당나귀 귀가 생기는 장면은 어린 소년에게 강렬한 공포로 남았다. “작은 소년에게 그것은 무섭고도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성인이 된 뒤 그는 한 철물점에서 1941년 제작된 피노키오 인형을 우연히 발견했다. 실제 옷을 입고 있던 그 인형은 오랫동안 작업실 선반 위에 놓여 있었고,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럽게 작업 속으로 들어왔다. 짐 다인은 “피노키오는 결국 인간이 되어가는 존재”라며 “그 여정 자체가 예술의 메타포”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나무 조각이었던 존재가 인간이 되어간다. 우리가 연필을 들어 그림을 그리는 순간 역시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된다.” 피노키오는 짐 다인에게 동화 속 인형이 아니다. 늙어가는 인간, 실패와 허영, 상처와 회복을 평생 끌고 온 또 하나의 자화상이 됐다. 그는 피노키오 이야기가 단순한 어린이 동화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피노키오는 발이 불에 타고, 코가 길어지고, 당나귀 귀가 생기는 수많은 시련을 겪는다. 결국 인간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인간이 더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고통의 서사다.” 이어 “삶의 역경과 두려움, 인간 존재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며 “기독교적 서사와도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동화 속 캐릭터라기보다 어둡고 불완전한 인간처럼 보이는 피노키오에 대해 그는 “디즈니식 피노키오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나의 피노키오는 큰 미소와 공허한 눈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긴 여정을 통과한 인간이다.” 그는 원작 ‘피노키오’를 이탈리아 서민의 삶을 담은 하나의 알레고리로 읽고 있었다. “피노키오는 단순히 고통과 역경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표현한 이야기다. 내가 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그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피비갤러리가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서 짐 다인의 신작을 선보인 이후 마련한 한국 첫 개인전이다. 1935년 미국에서 태어난 짐 다인은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과 함께 팝아트와 행위예술의 흐름 속에서 주목받았다. 이후 회화, 드로잉, 조각, 시, 사진, 퍼포먼스,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하트, 가운, 공구 같은 반복적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 세계를 지탱해온 ‘쓰기(write)’와 ‘그리기(draw)’에 집중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와 드로잉이 결합된 작업들이다. 짐 다인은 지난 50여 년 동안 12권 이상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검은 목탄과 거친 붓질로 쓰인 문장들이 회화처럼 펼쳐져 있다. 그는 “글과 이미지는 같은 대상”이라고 말했다. “시는 읽는 문장이 아니라 보는 언어다.” 짐 다인에게 예술은 결국 손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기억하는 행위였다. 그는 어린 시절 난독증으로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학교에서는 글자들이 뒤집혀 보였고, 긴 소설을 끝까지 읽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에 직접 단어를 크게 써 내려갔다. 위에서 아래로 단어를 적고, 지우고, 다시 덧붙이며 “콜라주처럼 단어를 재배열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읽는 언어라기보다 ‘보는 언어’에 가까워졌다. 검게 긁힌 목탄의 흔적과 반복되는 단어들은 화면 안에서 이미지처럼 떠다닌다. 이번 전시에서도 시 드로잉은 회화와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손으로 밀고 긁고 문지른 흔적들은 화면 위에 그대로 남아, 짐 다인 특유의 육체적 감각과 시간을 드러낸다. 그는 “지금은 책 읽기에 훨씬 자신감이 생겼다”고 웃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 감각 역시 그 결핍에서 시작됐음을 인정했다. 그에게 난독증은 장애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예술적 감각의 출발점이었다. 그의 시 원고와 자료들은 미국 예일대학교 베이네키 희귀본 및 필사본 도서관(Beinecke Rare Book & Manuscript Library)에 소장돼 있다. 짐 다인은 뼛속까지 예술가였다. 자신을 두고 “예술가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두 살 때 이미 자신이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를 “멍청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작업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컴퓨터도 잘 못 쓰고 운전도 서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으로 만드는 일뿐이다.” 그의 작업은 “보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1970년대에는 회화를 멈추고 약 5년 동안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매일 모델 드로잉만 반복했다. “1년에 열 점 정도밖에 그리지 않았다. 계속 지우고 수정하면서 손과 눈을 훈련했다.” 너무 오래 바라보는 탓에 모델들이 견디지 못하고 떠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없이 보는 훈련”을 통해 손이 눈을 따라가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본 것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서른다섯 살 때 느꼈던 감정까지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들이 현재의 그림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만큼은 스스로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머릿속에서는 통제가 가능할지 몰라도, 손으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AI 시대에도 그가 끝까지 드로잉을 놓지 않는 이유다. 그 기억 위에서 지금의 피노키오는 탄생했다. 젊은 시절보다 더 늙고, 더 결핍 많고, 더 인간적인 피노키오다. 거짓과 욕망, 인간의 연약함까지 끌어안은 또 하나의 자화상에 가깝다. “처음 피노키오를 그렸을 때 나는 어린 소년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다음에 그릴 피노키오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그에게 작업은 이미 습관을 넘어 삶의 본능에 가까웠다. 그는 예술을 “멈출 수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예술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을 것이다.” 짐 다인에게 예술은 철학이나 메시지 이전의 문제였다. 그는 예술이 자신이 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일이라고 말했다. “예술은 세계 평화나 정치적 메시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부산과 서울을 여러 차례 찾았던 그는 한국과도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대부분 시각적인 것들”이라며 “그래도 계속 한국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 역시 2017년 리안갤러리 시절 연을 맺은 피비갤러리 김혜경 대표와의 의리로 성사됐다. 그는 2013년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 앞 광장에 높이 9m, 무게 55t 규모의 대형 피노키오 조각 ‘희망으로 나아가는 소년’을 설치한 바 있다. 빽빽한 빌딩 숲 사이를 걸어 내려오는 목각 인형 피노키오는 오랫동안 부산의 상징적 공공미술로 자리해왔다. 91세의 거장에게 예술은 직업 이전에 존재 방식이었다. “예술은 내 생각이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행위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를 “결핍이 많은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결핍이 자신을 계속 작업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피비갤러리 전시장 한복판에 지팡이를 짚은 화가와 붉은 피노키오는 어느 순간 하나의 존재처럼 보였다. 12년 전 그가 만든 긴 코의 나무 인형은 지금도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왜 두 팔을 벌리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모르겠다”며 아이처럼 껄껄 웃었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관람은 무료다. 2026/05/28
반가사유상과 불이(不二)…이종구가 건너간 세계 "예전 같았으면 그걸 그렸죠. 그런데 이미 넘어섰고.” 화가 이종구(72)는 잠시 말을 멈췄다. 윤석열 정부 시기 갈등과 계엄 논란, 팔레스타인 전쟁 같은 현실을 말하던 순간이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복판에서 농민과 노동, 시대의 폭력을 그려온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싸움을 그리던 화가는 이제 ‘왜 인간은 끝없이 싸우는가’를 묻고 있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20일 개막한 개인전 ‘사유(Pensive): 思惟’는 바로 그 질문 위에 서 있다. 사회적 리얼리즘이 자기 내부의 ‘자아적 리얼리즘’으로 이동한 풍경이다. 전시장에는 반가사유상 18점과 인간의 몸이 함께 등장한다. 불꽃과 촛불, 자신의 노화된 육체, 천년 은행나무와 진돗개까지 서로 다른 존재들이 검은 화면 위에서 마주 앉아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를 “불이(不二)의 세계”라고 설명했다.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닙니다. 일부러 캔버스를 두 개씩 붙였어요. 둘이 붙어서 하나가 되고, 또 하나가 둘이 되기도 하는 거죠.”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것은 반가사유상 옆에 놓인 누드의 인간 형상이다. 그러나 이 누드는 관능이나 에로스와는 거리가 멀다. “옷을 벗기면 신분도 계급도 없어지잖아요. 원래는 늙은 할머니 몸을 그리고 싶었어요. 생로병사가 몸에 그대로 새겨진 사람. 그런데 3년 동안 찾았는데 아무도 안 하시더라고요.” 그는 실제로 시골의 고모를 모델로 생각했다. 농사만 짓다 몸의 기름기가 다 빠져버린 노인의 육체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대로 끝내 무산됐다. 결국 전문 누드 모델의 몸을 빌렸지만, 작가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젊음의 육체가 아니라 시간과 병, 노동과 늙음이 새겨진 인간 존재 자체였다. 그 변화의 배경에는 코로나 팬데믹과 위암 수술이 있었다. “밖의 현실이 안의 현실로 들어온 거죠.” 팬데믹 시기 사회적 단절을 겪었고, 이후 위암 수술로 위 일부를 절제했다. 몸무게는 20kg 가까이 줄었다. 병원복을 입고 링거 거치대를 든 자화상이 등장하는 이유다. 전시 제목인 ‘사유’ 역시 단순한 명상이나 종교적 사색과는 다르다. 학고재는 이를 “삶을 성찰하고 치유하는 구도적 리얼리즘”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종구는 이번 전시가 불교 포교를 위한 그림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가 끌어온 반가사유상은 법당의 신앙 대상이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마주한 공공의 미학적 존재다. “우리 전통미술은 결국 다 불교미술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예배 대상으로 가져온 게 아니에요. 반가사유상이라는 존재의 태도, 사유의 자세를 본 거죠.” 그래서 이번 전시의 불상들은 촛불과 강물 사이에 등장하면서도 끝내 현실과 충돌한다. 팔레스타인 전쟁의 비극적 군상과 병치된 반가사유상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예술과 사유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작가는 “반가사유의 정신은 이런 세상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품에서 불꽃은 상징적이다. 화면을 가득 메운 화염은 한편으로는 번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광배(光背)다. 민중미술 시절 그리던 분노의 불길은 이제 번뇌를 태우고 지혜를 밝히는 불교적 빛으로 변환된다. 세속의 비극적인 화염이 곧 깨달음의 서광으로 변모하는 역설적 공간이다. 이번 작업은 민중미술 이후 이종구 회화의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초기 작업이 농민과 농촌, 사회 구조의 모순을 집요하게 기록한 사회적 리얼리즘이었다면, 최근 작업은 존재론적 질문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실비판을 버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직접 그렸겠죠. 그런데 지금은 싸움도 넘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말처럼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무무명(無無明)’이라는 개념이 놓여 있다. 불교에서 무명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집착을 뜻하지만, 작가는 “번뇌와 깨달음조차 분별하면 안 된다”고 했다. 양극화와 전쟁, 혐오와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둘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종구가 여전히 자신을 노동의 감각 안에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림은 노동이에요.” 농부였던 아버지를 보며 자란 그는 젊은 시절 소를 키우는 노동과 그림값을 비교하며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극사실 회화조차 기술 과시가 아니라 몸의 노동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화면에는 손으로 밀어 올린 시간의 밀도와 육체의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반가사유상의 청동 질감과 녹의 표면, 금속의 차가운 광택까지 그림이 아니라 실물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노동집약적으로 밀어붙인 붓질은 사진보다 더 깊은 리얼리즘의 감각을 만든다.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금빛 화면이었다고 했다. “평생 뭔가를 그려왔는데, 비어 있는 화면을 만든다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그 고백은 상징적이다. 현실의 싸움을 빼곡히 기록해온 화가가 이제 비어 있음과 침묵, 사유의 상태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현실주의의 계보를 이어온 이종구의 회화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문제로 확장되며 생로병사와 생명의 근원을 향한다. 초기 작업이 시대적 모순을 고발하는 집요한 기록이었다면, 최근 작업은 생명의 본질을 향한 깊은 질문으로 그 무게중심을 옮겼다. 그는 반가사유상을 그리며 ‘깨달음’보다 오히려 끝없는 질문의 상태에 가까워졌다고 했다. 충남 서산 출생인 이종구는 농민의 아들로 자라며 농촌 현실과 민중의 삶을 집요하게 그려온 대표적 민중미술 작가다. 정부미 쌀포대 위에 농민의 얼굴을 그려 넣은 작업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산업화의 그늘을 드러내며 ‘농민 화가’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 그의 시선은 비판을 넘어 생태와 생명성, 인간 존재의 존엄을 향해 확장되고 있다. 인간과 대지, 생산과 소멸, 삶과 죽음의 순환을 사유하는 그의 작업은 생명의 존엄이 흔들리는 시대를 향한 또 다른 성찰이다. 평생 현실의 싸움을 그려온 화가는 이제 말한다. “번뇌와 깨달음조차 분별하면 안 된다”고. 전시장 한쪽, 검은 화면 속 반가사유상은 오래된 미소로 침묵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고통과 평화가 둘로 나뉘지 않는다는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회화로 풀어낸 그는 이제 광장의 촛불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어둠을 비추는 작은 불빛 앞에 앉아 있다. “둘이 아닙니다.” 그 말은 불교의 교리라기보다, 끝없이 갈라진 시대를 건너온 한 늙은 화가의 조용한 기도처럼 들렸다. 전시는 6월 20일까지 열린다. 2026/05/20
피카소에서 한국 작가까지…베일벗은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 여의도에 들어선 ‘퐁피두센터 한화(Centre Pompidou Hanwha)’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서울 진출’이라는 상징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공간이 단순한 해외 미술 수입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 1000평 규모 전시장 가운데 절반은 파리 퐁피두센터 컬렉션 기반의 근대미술 기획전, 나머지 절반은 동시대 글로벌 미술과 한국 작가를 연결하는 자체 기획전으로 채워진다. 즉, 과거의 모더니즘과 현재 진행형의 현대미술이 한 건물 안에서 동시에 호흡하는 구조다. 서울에서 새로운 현대미술의 흐름을 생산하려는 실험에 가깝다. “오늘, 우리의 새로운 별 하나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로랑 르 봉(Laurent Le Bon) 퐁피두센터 관장은 서울 프로젝트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퐁피두센터가 문을 닫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콩스텔라시옹(Constellation·별자리)’이라는 글로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서울에서 새로운 별 하나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큐비즘으로 시작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퐁피두센터는 지난해 가을부터 약 5년간 대규모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며 주요 소장품의 해외 전시를 확대하고 있다. 개관전 ‘큐비즘: 시각의 혁신(The Cubists: Inventing Modern Vision)’은 바로 그 선언을 압축한 전시다. 르 봉 관장은 “큐비즘은 단순한 예술운동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 운동”이라며 “20세기 시각 혁명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서울 프로젝트의 첫 전시로 큐비즘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피카소·브라크 총출동…‘큐비즘: 시각의 혁신’ 112점 전시는 1907년부터 1927년까지 큐비즘의 생성과 확산, 전쟁과 변형의 과정을 9개 섹션으로 풀어낸다. 세잔의 영향 아래 시작된 초기 실험에서 출발해 분석적 큐비즘, 오르픽 큐비즘, 살롱 큐비즘, 전쟁 이후의 변형과 1920년대 양식적 변주까지를 하나의 흐름 안에서 조망한다. 이를 통해 큐비즘을 단순한 미술사조가 아니라, 근대 이후 인간의 시각과 인식 구조 자체를 바꿔놓은 ‘시각 혁명’으로 제시한다. 전시는 큐비즘을 단순한 양식 실험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각 체계를 재편한 사건으로 읽어낸다. 르 봉 관장은 “1907년 피카소의 ‘여인의 흉상’으로 시작하는 이번 전시는 지난 50년간 아시아에서 열린 가장 중요한 큐비즘 전시 가운데 하나”라며 “100점이 넘는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고, 퐁피두 컬렉션뿐 아니라 한국 작가들의 작업도 함께 소개된다”고 말했다. 큐비즘은 하나의 대상을 한 시점에서 바라보던 전통 회화의 질서를 깨뜨린 운동이다.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바라보고 이를 하나의 화면 안에 재구성하며, 인간의 시각과 인식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실제로 전시장 벽면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큐비즘은 다가올 시대의 표현이라고들 한다. 그것이 인간 정신의 고양과 동시에 그 해방을 예고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전시에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 소니아 들로네, 후안 그리스, 프란시스 피카비아 등 20세기 모더니즘을 뒤흔든 작가들이 총출동했다. 피카소 작품 12점을 포함해 총 54명 작가의 원화 112점이 소개된다. 작품들은 항공기 6편에 나뉘어 서울로 들어왔으며, 총 보험가액은 약 1조5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큐비즘이 과거의 미술사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 미술시장과 제도 안에서 작동하는 현대미술의 핵심 언어임을 보여주는 규모다. ◆곡선 구조·순환형 동선…큐비즘 다중 시점 같은 공간 전시장 구성도 흥미롭다. ‘새로운 언어의 탄생’, ‘대중과 마주하다’, ‘오르피즘’, ‘종합적 큐비즘’, ‘국경을 넘는 큐비즘’, ‘전쟁기 큐비즘’, ‘1920년대 큐비즘’ 등으로 이어지며 큐비즘이 하나의 양식에서 국제적 감각 체계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장 연출 역시 큐비즘적이다. 직선 벽 대신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 구조와 순환형 동선이 적용돼 관객은 작품을 단일 시점으로 소비하지 않게 된다. 위층과 아래층이 서로 관통되고 사람과 작품의 움직임이 겹쳐지며, 마치 큐비즘의 다중 시점을 건축 공간으로 번역한 듯한 인상을 준다. 현장에서는 ‘100년 전 그림인데 지금 작품처럼 느껴진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전시는 큐비즘을 단순한 근대미술사의 한 장면이 아니라, 오늘날 디지털 이미지 감각의 기원으로 다시 호출한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크리스티앙 브리앙(Christian Briend) 퐁피두센터 수석 큐레이터는 “큐비즘은 20세기 모든 미술 발전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운동”이라며 “큐비스트들은 형태를 ‘보이는 방식’이 아니라 ‘지성을 통해 인식하는 방식’으로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전시는 단일한 큐비즘이 아니라 ‘복수의 큐비즘들’을 보여주려 했다”며 “브라크와 피카소의 실험뿐 아니라 살롱 큐비즘, 국제적 확산, 추상으로의 이동까지 함께 조망한다”고 말했다. 특히 입구에 설치된 퐁피두센터 소장품 레몽 뒤샹-비용(Raymond Duchamp-Villon)의 검은 청동 조각 ‘대형 말(The Large Horse·1914/1976)’은 전시 전체를 상징하는 작품처럼 기능한다. 큐비즘 조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새하얀 로비 중앙, 둥근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 아래 놓인 검은 조각은 인간과 동물, 기계의 속도감을 하나의 구조로 압축한다. 큐비즘과 미래주의가 공유했던 ‘근대의 운동성’이 공간 한가운데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관람객은 이 작품과 마주하며 전시의 첫 장면 속으로 들어간다. ◆‘전시 수입’ 아닌 ‘시스템 이식’…퐁피두의 서울 전략 이번 전시는 ‘수입형 블록버스터’와는 결이 다르다. 작품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퐁피두의 연구·기획 시스템 자체를 한국에 이식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단순히 서구 모더니즘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근대미술과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병치했다. 2층 특별 섹션 ‘KOREA FOCUS : 모던 아방가르드를 향한 꿈의 지도’는 1920~1930년대 한국 예술가들이 받아들인 모더니즘 감각과 큐비즘의 흔적을 조명한다. 김환기, 유영국, 변영원, 박래현, 하인두, 함대정 등의 작품과 함께 사운드 설치, 아카이브, 애니메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됐다. 관람객은 2층에서 아래층 큐비즘 전시를 내려다보며 서구 모더니즘과 한국 근대미술이 교차하는 장면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브리앙 큐레이터는 “한화재단이 한국 작가와 문학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보완 전시를 함께 연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 관객에게 큐비즘의 가장 완전한 파노라마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주현 큐레이터는 “당시 한국 예술가들에게 파리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모던’의 상징이었다”며 “식민지 경성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시각 언어를 향한 열망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큐비즘을 단순한 영향 관계로 보기보다, 한국 작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자기 언어로 번역하고 변형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1930년대 문화 실험이 해방 이후 한국 추상미술과 입체주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연결하려 했다”고 말했다. 1920~30년대 프랑스 큐비즘이 한국 문학과 회화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는 영상 전시도 함께 구성됐다. 설치 공간에는 거울 기둥과 텍스트, 사운드, 영상 작업이 함께 배치됐다. 아카이브를 단순 재현하는 대신, 관람객이 공간 안을 걸으며 시대의 감각을 몸으로 통과하도록 설계했다. 이 때문에 한국 작가 섹션은 오히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에 가깝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정체성 역시 결국 “서울에서 무엇을 새롭게 생산할 것인가”라는 질문 위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앞으로 동시대 글로벌 기획전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한 전시장은 퐁피두 컬렉션 기반 전시가 순차적으로 열리고, 다른 전시장은 한국과 세계 현대미술을 연결하는 자체 기획 공간으로 운영된다. 공개된 계획안에 따르면 향후 영상·사운드·조각·XR·향·빛 등을 결합한 몰입형 프로젝트와 예술·과학·기술·인문학을 아우르는 융합형 프로그램이 추진된다. 우주과학, 데이터 문화, 이동성, 생태 감각 등 동시대 이슈를 주요 화두로 삼는다. 첫 프로젝트는 2026년 말 공개될 예정이다. 교육 프로그램 역시 단순 부대행사 수준을 넘어선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파리 퐁피두센터 교육팀과 협업해 개발한 프로그램을 국내 관객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다. 도슨트 투어와 워크숍, 퍼포먼스, 키즈 프로그램 등 영유아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한 관객층을 아우르는 참여형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단순 관람을 넘어, 관객이 전시를 보다 입체적이고 다층적으로 이해하도록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작품뿐 아니라 퐁피두의 교육·매개 방식까지 함께 공유하려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퐁피두센터 한화’…분관 아닌 글로벌 파트너십 모델 이성수 한화문화재단 이사장은 “각각 500평 규모의 전시관 가운데 한 곳은 퐁피두 컬렉션 기반 전시를, 다른 한 곳은 자체 기획 전시 공간으로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성격에 대해서는 “분관이 아니라 파트너십”이라고 선을 그었다. 퐁피두센터가 직접 운영하는 프랑스 메스(Metz) 분관과 달리, 서울 프로젝트는 한화문화재단이 운영 주체가 되고 퐁피두센터와 장기 협력하는 방식이다. 스페인 말라가와 중국 상하이에 이어 추진되는 세 번째 해외 협력 모델이다. 한화문화재단은 매년 70억원 이상의 브랜드 로열티와 작품 대관료, 컨설팅 비용 등을 부담하며 4년간 운영권을 확보했다. 이 기간 동안 매년 두 차례 퐁피두 컬렉션전을 열고, 별도로 연 2회의 자체 기획전도 선보일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말라가와 상하이 역시 같은 파트너십 구조지만 규모 면에서는 서울 프로젝트가 가장 크다”며 “퐁피두 입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협력 공간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4년 이후의 별도 계획은 아직 없지만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계속된다면 리뉴얼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개관 현장 밖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방산기업 기반의 아트워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방위산업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한화그룹이 예술 후원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재구성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이성수 이사장은 “관련 우려를 표명한 분들의 말씀을 계속 경청할 것”이라며 “중요한 목소리인 만큼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반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술을 예술 자체로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대중과 호흡하는 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 미술관 본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전에도 불구하고, 개관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시장 안에는 '큐비즘은 인간 정신의 해방을 예고한다'는 100년 전 문장이 떠 있고, 전시장 밖에서는 예술기관의 윤리와 자본의 역할을 둘러싼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까지 포함해, 퐁피두센터 한화는 지금 가장 ‘현재형’인 현대미술의 풍경인지도 모른다. 전시는 6월 4일 공식 개막한다. 관람료는 2만8000원이다. ◆퐁피두센터 한화(Centre Pompidou Hanwha)는? 과거 아쿠아리움이 있던 63빌딩 별관을 전면 리모델링한 미술관으로, 지하 3층~지상 4층, 연면적 약 3만1152㎡ 규모다. 미술관은 약 500평 규모 전시실 두 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설계는 루브르 박물관 리노베이션과 인천국제공항 프로젝트를 맡았던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Jean-Michel Wilmotte)가 담당했다. 건물은 낮에는 자연광이 스며들고 밤에는 빛이 퍼지는 ‘빛의 상자(Box of Light)’ 개념을 적용했다. 수평으로 이어진 빛의 띠와 한국 전통 기와 곡선을 연상시키는 외관이 특징이다. 1층에는 오디토리움과 스튜디오, 멀티스테이션 등 교육·강연 프로그램 공간이 들어선다. 통창을 따라 배치된 카페에서는 야외 정원 ‘아우돌프 가든’을 조망할 수 있어 자연과 예술, 건축이 어우러진 경험을 제공한다. 2층과 3층에는 두 개의 대형 전시실이 마련됐다. 제1전시실은 층고 7m의 더블하이트 공간으로 퐁피두센터 소장품 전시가 펼쳐진다. 메자닌 구조를 갖춘 제2전시실에서는 개관전 이후 한화문화재단이 기획하는 동시대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4층에는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옥상 공간과 레스토랑이 들어선다. 2026/05/19
전쟁이 할퀸 베니스비엔날레…최빛나 감독 “99개 국가관, 왜 순위 매기나” “‘노(No) 러시아’, ‘집단학살관은 물러나라(No Genocide Pavilion)’, ‘팔레스타인은 세계의 미래다(Palestine is the future of the world)’.”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에서 개막한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는 미술 전시를 넘어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를 되묻는 현장으로 변모했다. 전쟁과 검열, 국가와 대표성을 둘러싼 긴장 속에 열린 행사장에는 시위대와 연막탄, 팔레스타인 연대 포스터가 등장했다. 세계 미술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비엔날레는 개막 전부터 국제정치의 축소판이 된 셈이다. 총감독 고(故) 코요 쿠오의 갑작스러운 별세와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 국가관 황금사자상 폐지, 이란의 불참까지 겹치며 예술의 축제는 시작 전부터 논쟁의 장이었다. 현장에는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단됐던 러시아관은 올해 제한적으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거센 반발과 시위가 이어졌다. 이스라엘관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러시아와 이스라엘 참여 문제는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까지 불러오며 이번 비엔날레의 정치적 긴장감을 드러냈다. 국가관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국가는 누구를 대표하는가. 예술은 국경을 초월하는가. 비엔날레는 과연 예술의 올림픽인가, 아니면 난민선처럼 흔들리는 정치적 무대인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이 질문들 사이를 흔들리며 항해하고 있다. 99개 국가관과 31개 공식 병행전시가 베네치아 전역에서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관은 다른 길을 택했다. 최빛나 감독은 국가관을 임시적 광장으로 재구성하며 국가 대표성을 최소화하고 시민적 연대와 관계를 강조했다. 일본관과의 사상 최초 협업은 역사적 갈등을 넘어선 실험으로, 국가주의적 전시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내는 시도였지만 여전히 ‘한국관’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제도적 긴장은 남는다. 전시 개막 후 해외 미술 전문 매체들은 한국관을 주목했다. 미국 문화매체 Observer는 한국관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살아 숨 쉬는 기념비(living, breathing monument)”라 평했고, ARTnews는 올해 ‘톱10 국가관’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Whitewall 역시 한국관을 “반드시 봐야 할 국가관”으로 꼽으며 가장 사유적이고 울림 있는 전시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예술감독 최빛나가 기획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미완 상태와 균열, 냉전 이후의 감각을 다루되 이를 거대한 역사 서사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고은·노혜리 작가를 비롯해 연구자, 음악가, 농부, 소설가 등 비시각예술 영역까지 포함한 ‘펠로우십’ 구조를 통해 느슨한 관계망을 전시 형식으로 끌어들였다. 출발점은 한국의 탄핵 정국과 광장 경험이었다. 최빛나 감독은 “2024년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시위를 보며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했다”며 “나도 내 방식대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단순한 국가관 전시라기보다 임시적인 시민 광장에 가까웠다. 뮤지션 이랑, 사진작가 황예지, 청년 농부 김후주, 소설가 한강,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암페타 등이 참여하며 제주 4·3, 5·18, 탄핵 집회와 여성 연대, 씨앗과 돌봄의 감각을 함께 엮었다. 특히 이번 한국관은 베니스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관과 협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경쟁과 대표성 중심으로 작동해온 비엔날레 구조 속에서 인접한 두 국가관이 대화와 교류의 플랫폼을 시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 감독은 “옆집 일본관과의 협업도 기념비를 확장하는 시도”라며 “두 국가관이 품고 있는 공유된 역사와 새로운 가능성을 연결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르디니의 한국관은 일본관, 독일관, 영국관, 러시아관 사이에 위치해 있다. 최 감독은 이를 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영향을 끼쳤던 나라들이 한국관을 둘러싸고 있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자르디니 공원 끝자락, 독일관과 일본관 사이 옛 화장실 부지에 자리한 한국관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가운데 26번째로 뒤늦게 들어섰다. 당시 비엔날레 재단은 더 이상 국가관을 늘리지 않겠다는 방침이었지만, 1993년 백남준의 황금사자상 수상 이후 한국관 건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지금의 한국관이 세워졌다. 작고 좁은 한국관의 구조 자체를 ‘해방공간’의 은유로 읽은 최빛나 감독은 “사실 한국관은 숨겨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일본관이나 독일관을 방문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되는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한국관 전시는 그 구조를 내부에서 조용히 흔든다. 최고은의 설치 ‘메르디앙(Meridian)’은 한국관 내부를 지나 일본관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동파이프는 일본관 울타리를 넘어 땅속으로 파고들었다가 다시 지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막힌 혈관을 뚫는 침처럼, 봉인된 경계를 찌르는 가느다란 신경처럼 보였다. 시각적 스펙터클은 크지 않았다. 대신 ‘메르디앙’은 굳어버린 시대의 혈전을 침술처럼 찌르며 자르디니의 지정학을 은밀하게 흔들었다. 거대한 선언 대신 수행하는 조용한 반란이었다. 노혜리의 설치 ‘베어링’ 역시 얇은 오간자 구조를 통해 관람객이 의례처럼 천천히 한국관을 순환하도록 만들었다. 강강술래처럼 빙글빙글 돌며 이동하는 동선. 요새와 둥지, 내부와 외부, 보호와 저항 사이를 오가는 감각 자체가 ‘해방공간’의 은유였다. 이는 기존 비엔날레의 소비 방식과도 어긋났다. 강렬한 이미지 한 컷이나 SNS용 스펙터클보다 함께 머무는 시간과 감각의 층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현장 반응은 엇갈렸다. 강렬한 시각적 장면과 대형 설치 중심 국가관에 관람객이 몰린 반면, 한국관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일부는 “너무 개념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해외 비평계는 오히려 그 ‘조용한 반란’을 더 예민하게 감지했다. 전쟁의 흔적은 비엔날레 현장을 더욱 무겁게 한다. 예술은 이를 치유하거나 초월하기보다 갈등을 반영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이나 러시아·이스라엘관 앞 시위는 예술이 정치적 현실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술이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데 그친다면, 비엔날레는 결국 국제정치의 부속품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한국관을 비롯한 일부 국가관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정치적 발언과 연대의 장으로 변모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에 동참한 국가관들이 하루 동안 문을 닫았고, 전시장 곳곳에서는 국가관 체계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올해 비엔날레는 경쟁과 위계 중심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국가관 황금사자상 시상을 진행하지 않았다. 최빛나 감독은 경쟁 중심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는 “황금사자상이 폐지됐는데 다시 ‘인기 국가관’을 선정하는 것은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며 “99개 국가관이 함께 펼치는 비엔날레에서 단 하나를 뽑는 방식은 결국 순위를 매기는 상업적 마케팅 구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국가관들과 함께 이런 경쟁 구조 자체를 재고하자는 논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감독의 “왜 순위를 매기나”라는 질문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비엔날레의 근본적 모순을 겨냥한다. 예술이 국가 단위로 경쟁하는 구조는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을 외교적 자산으로 소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제 올해 비엔날레는 국가관 경쟁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본전시 ‘In Minor Keys’ 참여 작가 52명은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에 연대하며 수상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프랑스·리투아니아·네덜란드 등 16개 국가관 작가들도 이에 동참했다. 올해 비엔날레는 심사위원단 공백 속에 국가관 황금사자상 대신 관람객 투표 방식의 ‘비지터 라이언스(Visitor Lions)’를 도입했으며, 시상은 폐막일인 11월 22일 진행될 예정이다. 해외 언론 역시 올해 비엔날레를 단순한 미술 이벤트가 아니라 지정학적 긴장과 제도 비판이 교차하는 현장으로 읽고 있다. AP통신은 정치적 논란과 국가관 시스템 비판을 집중적으로 다뤘고, 미국 매체 베니티페어는 “낮은 목소리의 감각”이 이번 비엔날레 전반을 관통한다고 분석했다. 한국관은 올해 비엔날레 구조 속에서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어냈다. ‘덜 대표하는 방식’으로 국가주의적 틀을 흔들며, 예술이 국가를 넘어선 연대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국가 브랜드 대신 관계와 공존, 해방 이후의 미완 상태를 낮은 목소리로 호출했지만, 그것이 제도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소음을 키우지 않고도 시대를 관통하는 전시. 올해 처음으로 벤치를 놓고 옥상까지 개방한 한국관 ‘해방공간’은 국가관 사이의 경쟁보다 공존의 감각을 상상하는 또 하나의 광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는 ‘예술의 축제’라기보다, 국가주의와 정치적 갈등 속에서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9일 공식 개막해 11월 22일까지 이어진다. 2026/05/11
분홍 심장, 푸른 동물…고상우의 공존 미학 푸른 화면 속, 동물들은 우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고통을 외면해 왔는가. 상처 입은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중심 사회의 폭력을 되묻는 전시가 열린다 사비나미술관에서 5월 2일 개막하는 고상우 기획전 ‘스틸 브리딩: 아직 숨 쉬고 있다(Still Breathing)’는 인간의 욕망과 시스템 속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미술로 상처 입은 동물을 위로하는 전시 제목 ‘스틸 브리딩’은 단순한 상태의 묘사가 아니다.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이 문장은 꺼지지 않는 생명의 의지이자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품는다.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숨을 이어가는 존재들을 통해 이번 전시는 묻는다. 우리는 어떤 생명들을 외면해 왔으며, 그 침묵에 어떤 방식으로 가담해 왔는가. ◆푸른색 네거티브 기법으로 드러낸 생명의 서사 사진작가이자 현대미술가인 고상우(48)는 ‘인간과 생물 다양성을 이루는 종들과의 공존’이라는 세계관을 예술로 실천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사진과 퍼포먼스를 전공한 그는 사진, 퍼포먼스, 회화, 디지털 드로잉 등 장르를 넘나들며 일관된 메시지를 구축해왔다. 그의 시그니처인 네거티브 필름 효과를 활용한 ‘푸른색 반전 기법’을 통해 현실을 낯설게 뒤집는다. 이 기법은 1990년대 후반 미국 유학 시절, 자신의 피부색이 파란색으로 반전되어 보이는 경험에서 출발해 2001년 자화상 ‘꽃을 든 남자’를 통해 알려졌다. 이후 멸종위기 동물 시리즈로 확장되며 작가를 대표하는 조형 언어로 자리 잡았다. 고상우의 ‘블루’는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타자의 시선에서 비롯된 감각이다. 이민자로 살았던 어린 시절, 언어와 문화, 피부색의 차이를 체감하며 그는 늘 ‘바깥의 사람’으로 존재했다. 그 경험은 약자를 향한 시선으로 이어졌고, 인간을 향하던 관심은 동물로 확장됐다. 작가는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운 존재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서커스단에서 구조된 동물을 본 경험이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 속 동물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보호받았어야 할 존재들이다. 2022년 발표한 ‘운명’은 이러한 시선이 응축된 작업이다. 한국전쟁과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사라진 생명의 흔적을 추적해 복원한 이 작품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눈동자는 재현을 넘어 존재에 대한 애도이자 기억의 호출로 작동한다. 푸른 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분홍빛 하트는 고상우 작업의 핵심 장치다. 차갑고 깊은 색감 속에 놓인 작은 하트는 강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 하트는 장식이 아니다. 상처 입은 존재의 중심에 남아 있는 감정,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온기를 상징한다. 차가운 세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감각, 끝내 꺼지지 않는 어떤 마음에 가깝다. 또한 그의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동물들의 눈이다. 화면 속 동물들은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시선의 방향을 뒤집는다. 가로·세로 150㎝에 달하는 대형 화면 속 눈빛은 쉽게 피할 수 없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은 질문이 된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 혹은 누구에게 바라보이고 있는가. 이 응시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선언이다. 동물 역시 감각하고 기억하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존엄과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환기한다. 인간 중심적 위계에 균열을 내는 이 장치는 강렬하다. 동물은 더 이상 열등한 종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로 다시 호출된다. 이번 전시는 거시적 담론에서 나아가 개별 생명의 구체적인 서사에 집중한다. 화장품 실험에 사용되는 토끼 ‘랄프’, 탈출을 시도했던 얼룩말 ‘세로’, 밀렵을 피해 뿔을 제거당한 코뿔소 ‘디혼’ 등 상처 입은 존재들은 더 이상 사례가 아닌 하나의 얼굴을 가진 생명으로 다가온다. ◆청주동물원 협업…현실과 맞닿은 예술 청주동물원과의 협업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축이다. 실제 보호와 치료를 받고 있는 동물의 삶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예술이 현실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표작 ‘하나(하나·Hana)’는 선천적 부리 기형으로 구조된 독수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청주동물원에서 날카로운 눈빛의 ‘하나’와 마주한 순간, 맹금류의 본능 깊은 곳에 자리한 광활한 하늘을 향한 갈망을 읽어냈다. 그 감각은 작품의 조형 언어로 번역된다. 푸른 화면 속에서 분홍빛 하트를 품은 노란 눈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붙든다. 상처 입고 보호 아래 놓인 조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비상의 본능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하늘을 향하는 존재의 모습은 보호와 존엄, 회복과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경계 위에서 드러난 공존의 가능성 고상우는 세계자연기금(WWF)과 협력해 백령도와 가로림만 일대에서 점박이물범을 기록해왔다. 북방한계선(NLL)이라는 군사적 긴장의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물범의 모습은 인간이 만든 경계의 인위성을 드러낸다. 대표작 ‘국경 없는 얼굴들 2026’, ‘경계선 2026’은 분단의 바다 한가운데서도 지속되는 생명과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긴장과 대립의 상징인 공간이, 물범에게는 오히려 위협이 적고 먹이가 풍부한 생존의 공간이 된다. 이 역설은 우리가 만든 경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게 한다. 이 전시는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응답을 요청한다. 가장 약한 존재의 곁에 서는 일, 그리고 보이지 않던 고통을 인식하는 일이다. ‘스틸 브리딩’은 애도의 문장이 아니라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신호다. 예술은 보게 하고, 느끼게 하고, 결국 행동하게 만든다. 그 힘은 지금, 우리의 선택을 향하고 있다. 전시는 사비나미술관 2층과 5층에서 5월 30일까지 열린다. 2026/04/30
‘농부의 아들’ 이배, 숯으로 쌓은 염원…뮤지엄 산, 첫 한국 작가 조명 “나는 농부의 아들입니다.” 숯을 쌓고, 흙을 갈고, 검정을 세운 작가 이배(70)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정체성으로 돌아갔다. 강원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열린 개인전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지난 3년간 20여 차례 미술관을 오가며 준비한 이번 전시는 그에게 “나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6일 뮤지엄 산에서 만난 그는, 질문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40년 가까이 외국에서 떠돌며 작업하다 보니, 내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다시 묻게 됐습니다.” 그에게 작업은 캔버스 위의 표현이 아니라, 흙 → 나무 → 불 → 숯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몸으로 되짚는 행위다. “이번 전시는 근원에 대해, 다시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죠.” 숯은 더 이상 재료가 아니다. 이배라는 작가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숯의 작가’ 이배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외에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작품은 나오자마자 팔려나간다. 이른바 ‘품절 작가’다. 파리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1995년부터 '숯의 작가'로 떠올랐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3년 한국미술비평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하며 한국 화단에서도 인정 받았다. 2015년에는 유럽 최대의 동양예술품 박물관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독일 에스더 쉬퍼 갤러리 전속 합류 등을 통해 국제적 위상도 더욱 공고해졌다. 그가 30년간 붙들어온 ‘숯’은 소멸 이후 남은 물질에서 출발해, 시간과 존재를 사유하는 하나의 언어로 확장됐다. ◆ “화가를 반대했던 아버지…나는 농부의 아들이었다” 이배의 작업은 캔버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출발점은 논과 흙, 그리고 아버지의 기억이다. “아버지는 제가 화가가 되는 걸 굉장히 반대하셨습니다. 농부가 되기를 바라셨죠.” 경북 청도 출신인 그는 과수원을 일구던 아버지 아래서 자랐다. 아버지는 아들이 붓이 아닌 땅을 이어받기를 바랐다. 1982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파리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전시를 연 이배는 "이번 전시는 기도에 가까운 행위였다"고 표현했다. “저에게 굉장히 두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공간도 크고 개념적으로도 강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농부가 땅을 파면서 기도하듯이… 저도 그런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가 반복해서 언급한 ‘농부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은 이 지점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전시에서 흙을 직접 만지고 쓸어내는 퍼포먼스는 그래서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논에 물을 대고, 땅을 고르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때 그곳에서 자랐고 뛰어놀았죠. 그 기억이 이번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화가를 반대했던 아버지는 그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그때 저는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말을 아끼는 짧은 문장이었지만, 이번 전시가 왜 ‘근원’으로 향하는지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전시장 청조갤러리3은 이러한 정체성을 집약한 공간이다. 9m 높이 스크린 속 작가의 진심이 녹은 퍼포먼스와 청도에서 옮겨온 흙 설치가 결합되며, 땅·신체·시간이 하나의 순환 구조로 작동한다. ◆ “파리에서 무너진 정체성…숯이 시작이었다” 이배의 숯 작업은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됐다. “전 세계 문화가 모여 있는 곳이었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정체성의 혼란을 안겨준 공간이었습니다.” 문제는 ‘언어’였다. 서양 미술의 개념으로는 동양의 감각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수묵이나 먹, 여백 같은 개념은 정확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겸재 정선이나 추사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이해하지 못하지만, 미켈란젤로나 고야를 말하면 바로 통하죠.” 그 간극 속에서 숯은 하나의 해법이 됐다. ◆ “가난해서 시작한 숯…결국 나의 언어가 됐다” “물감을 살 수 없어서 바비큐용 숯을 샀습니다.” 우연한 선택은 작업의 방향을 바꿨다. “숯이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내가 말할 수 있는 방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숯은 먹처럼 동양적이면서도 물질성을 드러내는 매체다. 그에게 숯은 설명이 아니라 ‘직접 드러내는 언어’였다. “재료 자체가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는 동양성을 드러내는 것이 장벽이었지만, 지금은 확 달라졌다. 물질의 숯에서 동양의 정신 문화 숯으로, 이배의 숯으로 불린다. “이제는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가 됐습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 “30년 붙잡은 숯은 반복 아니다…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다” 이배에게 숯은 끝난 재료가 아니다. 불에 타고 남은 것, 그러나 동시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태다. “아직도 숯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불의 근원으로써 숯은 인간의 의도를 벗어났다, 그에게 숯은 완성된 언어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질문이다. ◆ “재앙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강원 고성 산불 현장을 직접 봤습니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스페인, 캐나다로 이어진 대형 산불. 숯은 더 이상 재료가 아니라 재앙 이후의 기억이 됐다. “우리는 재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의 숯은 이제 치유와 염원으로 나아간다. 야외에 세운 거대한 '숯 조형물'은 기념비가 아니라 염원이다. "다시는 이런 재앙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바람이 담겼다.” 검게 타다 남은 숯덩이 같은 나무들이 서 있는 장면은 압권이다. 약 10m 규모의 브론즈 ‘붓질(Brushstroke)’ 6점은 주변의 나무와 건축, 산세를 하나의 풍경으로 묶으며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조각의 표면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림 같은 조각을 할 수 없을까, 늘 생각합니다.” 덩어리가 아닌, 서체처럼 흐르는 표면. 그 조각은 부피가 아니라 불이 남긴 흔적으로, 탑처럼 쌓인다.“그 조각으로 인해 산과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이 더 잘 보이면 좋겠다”며 “예술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처음의 만남이다. 생소해도, 예술이기에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란 무엇인지, 예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며 “그래서 더 순수해지려 노력한다”고 했다. ◆ 공간 전체를 걷는 전시…‘보는 것’에서 ‘경험’으로 이번 전시는 공간 전체를 따라 이동하며 완성된다. 입구의 거대한 숯덩이 묶음 ‘불로부터(Issu du feu)’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어지는 서체 같은 ‘붓질’ 회화는 유연하게 흐르며 고요한 울림을 남긴다. 청조갤러리 1, 2는 ‘White’와 ‘Black’로 나뉜다. 검정은 모든 색을 품은 심연, 흰색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가능성이다. 안도 타다오 건축물과 어우러진 회화, 조각, 설치, 영상까지, 작가의 작업은 전례 없는 스케일로 펼쳐진다. 그러나 이 전시는 ‘보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관람객이 공간을 따라 걷고, 작품 사이를 통과할 때 비로소 예술과 자연은 하나의 경험으로 완성된다. “제게 뮤지엄 산은 현대적인 수도원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엇을 보려 하기보다, 천천히 이 공간을 지나며 무언가를 느끼길 바랍니다.” 전시 제목 ‘기다리며’는 완성 이전, 생성 직전의 시간을 의미한다. 뮤지엄 산이 이배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관 이후 해외 작가 중심의 전시를 이어온 뮤지엄 산이 처음으로 한국 작가를 전면에 내세운 기획이다. 뮤지엄 산 안영주 관장은 “해외 거장들만 전시하던 기획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 작가를 조명하자는 방향 속에서 작품성과 동시대성을 갖춘 작가로 이배를 선택했다”며 “3년간의 준비 끝에 완성된 전시”라고 밝혔다. 숯이라는 가장 단순한 물질에서 출발한 이배의 작업은 이제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강력한 조형 언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는 K-아트의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서체적 추상 회화에서 대형 설치로 확장된 그의 작업은 이미 유럽 미술계에서 검증된 언어다. 그러나 이 같은 규모와 밀도의 전시는 여전히 국내 공공미술관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뒤늦게 국내에서 재소환되는 흐름이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다시 불러내야 하는가. 이배의 이번 전시는 이 질문도 다시 꺼내고 있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2026/04/06
“달항아리는 이제 블루칩이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하다. 기울어진 균형, 미세한 흔들림, 그리고 비어 있는 중심. 18세기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뉴욕에서 다시 한 번 가격의 궤도를 밀어 올렸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가 24일(현지시간) 진행한 ‘아시아 위크 세일’에서 높이와 지름이 각각 42.5cm에 이르는 대형 달항아리가 318만 달러(한화 약 43억원)에 낙찰됐다. 당초 추정가(100만~200만 달러)를 크게 웃돈 결과다. 달항아리는 원래 완벽할 수 없는 그릇이다. 위아래 반구를 이어 붙이는 제작 방식 탓에 중심은 미묘하게 어긋나고, 표면은 균일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틈, 그 어긋남이 이 도자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결핍처럼 보이는 요소가 오히려 형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 비대칭의 조형은 동양의 미학적 전통, 특히 와비사비와 맞닿아 있다.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각. 달항아리는 그 철학을 가장 간결한 형태로 구현한 오브제다. 시장도 이를 읽고 있다. 크리스티는 2007년 127만 달러, 2023년 456만 달러(한화 60억원), 지난해 283만 달러, 그리고 올해 318만 달러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보였다. 이는 일시적 상승이 아니라 가격대의 재편이다. 고점 이후 급락이 아닌, 일정 구간을 형성하며 다시 상승을 시도하는 전형적인 ‘블루칩’ 자산의 궤적이다. 이번 작품은 일본을 거쳐 출품된 대형 기물로, 안정적인 비례와 뛰어난 발색을 갖춘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컬렉터 시장에서 검증된 이력과 희소성이 더해지며 경쟁을 끌어올렸다. 조선의 달항아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창적 도자기다. 문화유산보호법으로 인해 국내 백자의 해외 반출은 제한적이지만, 해외에 남아 있던 작품들이 글로벌 경매를 통해 다시 조명되며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달항아리가 더 이상 ‘전통 공예’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색의 백자, 단순한 구형, 절제된 표면. 이 형식은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도 충분히 읽힌다. 미니멀리즘 조각과 나란히 놓여도 이질감이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여백과 긴장을 만들어낸다. 꾸밈 없이도 힘이 느껴지는 달항아리는 소박하고 담백한 절제미의 결정체다. 특히 지름 45cm 이상 대형 기물은 극히 드물다. 국보·보물로 지정된 작품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20여 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도자가 완벽한 기술을, 일본 도자가 장식과 의식을 향해 나아갔다면, 조선의 달항아리는 느슨한 균형과 비어 있는 중심을 택했다. 그 선택이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BTS RM이 사랑한 달항아리로 대중적 인지도 역시 높아졌다. 달항아리는 이제 단순한 고미술이 아니다. 형태의 철학이자, 감각의 언어이며, 동시에 가격을 견디는 자산이다. 그리고 시장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완벽하지 않은 그릇이, 가장 완전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다만 그 가치는 이제, 우리나라가 쉽게 가질 수 없는 '가격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거리를 뒤늦게 실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6/03/30
2만5000점 ‘냉장·자동화’…송영숙 관장, 뮤지엄한미 수장고 첫 공개 “유럽 미술관에서도 이 시설을 보러 오겠다고 연락이 옵니다.” 뮤지엄한미 송영숙 관장이 자동화된 수장고를 공개했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장고를 보는 사람들마다 놀란다”며 “사진 보존에 특화된 한미 수장고는 국제적 수준”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26일 기자들에게 깜짝 공개된 수장고는 층고 7m, 온도 4~5도, 습도 35%를 유지하는 냉장 보존 시스템이다. 송 관장은 “온도를 5도로 낮추면 사진 수명이 500년 이상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은 전시 공간보다 수장고가 중심입니다. 사진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수장고는 사진을 ‘미이라처럼’ 보존하는 장치에 가깝다. 국내에서는 드문 항온·항습 수장고로, 모든 작품에 QR코드가 부착돼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계절에 따라 온도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방식도 적용하고 있다. 자동화 시스템이 특징이다. 한미약품 생산라인에서 착안한 설비로, 작품 번호 입력이나 QR코드 인식만으로 사진을 자동 호출할 수 있다. 트레이 한 칸당 최대 200kg까지 수용 가능하며, 한 시스템에 70여 개 트레이가 적재된다. 현재 뮤지엄한미가 보유한 사진은 약 2만5000여 점. 이 가운데 40%가 역사사진과 빈티지 작품이다. 송 관장은 “국가 기관이 사지 않는 작품들이 많았다”며 "한미 사진 수장고는 대한민국의 국력"이라고 자신했다. 그동안 열정적인 사진 수집이 소문나자 박물관에도 넘기지 않는 작품들이 들어왔다. “사진은 박스를 통째로 사들이는 ‘묻지마’ 방식으로 모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고종 장례식과 왕실 사진 등 희귀 아카이브 상당수도 이 과정에서 확보됐다. 19세기 알부민 프린트(버지니아 울프의 할머니인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 작품)도 보관돼 있다. 미술관은 "알부민 프린트는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해 상설 전시가 어렵다"며 "이를 위해 일부 작품을 공개할 수 있는 개방형 수장고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 “AI 이미지엔 영혼 없다”…사진의 본질은 ‘시간’ “사진은 우리 어머니 때문에 처음 접했어요.” 송 관장은 사진과의 인연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의 평생 작업으로 이어졌다. 한미그룹 회장이자 사진가인 그는 1969년 숙명여대 재학 시절 ‘숙미회’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새한살롱 ‘남매전’으로 데뷔했고, 1980년 개인전 ‘폴라로이드 SX-70’에서 일상의 감정과 순간을 포착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주요 갤러리에서 전시를 이어오며 작업 세계를 확장해왔다. AI와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 사진의 의미를 묻자 답은 단호했다. “요즘 이미지들은 디테일은 있지만 마음이 없어요. 영혼이 없으면 아무리 정교해도 떠 있는 느낌입니다.” 그는 디지털 이미지를 “조합된 결과물”로 규정했다. “사진은 다릅니다. 시간의 축적이 있어요. 그 안에 역사성과 삶이 함께 쌓입니다.”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신념도 분명하다. “사진은 오리지널로 가야 합니다. 필름으로 찍고 암실에서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해요. 그 과정이 색감과 깊이를 만듭니다.” 1970~80년대 인스턴트 사진 작업 당시에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는 “결국 다 지나간다”며 “그래서 내가 선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관장은 현재 개인전 ‘Meditation on the Road 길 위에서’를 현대화랑에서 31일까지 열고 있다. SX-70 폴라로이드 필름 단종 이후, 인스턴트 컬러 필름 위에 회화적 개입을 더한 작업으로 필름 원본 250여 점과 대형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요즘은 화면으로만 작품을 보지만, 원본을 직접 보면 다릅니다. 가슴을 울리는 게 있어요.” 그는 사진의 본질을 ‘시간’으로 정의했다. “사진에는 시간이 쌓입니다. 그게 다른 어떤 이미지와도 다른 이유입니다.” ◆ ‘사진의 시간’…'육명심·홍순태·한정식·박영숙’전시 이 같은 집념은 전시로 이어진다. 송 관장이 직접 기획한 ‘육명심·홍순태·한정식·박영숙’전은 생전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을 기리는 자리다. 27일부터 삼청 본관에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육명심·홍순태·한정식·박영숙’전을 펼친다. 전시 제목은 정현종 시인의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에서 착안했다. 네 작가가 포착한 순간들을 오늘의 시선에서 다시 읽고, 그들의 삶과 작업을 기리는 자리다. 육명심은 ‘백민’ 연작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인물 군상을 기록했고, 홍순태는 ‘청계천’과 ‘서울’ 연작으로 50년에 걸친 도시의 변화를 담아냈다. 한정식은 ‘고요’ 연작에서 절제된 풍경을 통해 사유의 시간을 제시하며, 박영숙은 ‘36인의 포트레이트’를 통해 개인과 시대를 함께 기록했다. ◆ “사진 이후의 예술로”…뮤지엄한미의 확장 한편 뮤지엄한미는 2003년 (주)한미약품이 설립한 국내 최초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초기에는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한미약품 본사 19층에서 운영됐다. 전시·출판·교육을 통해 한국 사진의 기반을 구축해왔으며, 2009년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설립, 2012년 사진아카데미 개원 등 연구와 교육 영역을 확장했다. 2022년 삼청동으로 이전하며 ‘뮤지엄한미’로 재출범한 이후에는 비디오아트와 뉴미디어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2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