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경매시장 결산]낙찰 총액 1565억, 작년보다 629억 줄어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연 매출 규모가 2016년 이전으로 크게 줄어든 약 1565억원으로 집계됐다. 30일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이사장 차대영)와 아트프라이스(대표 김영석)가 발표한 2019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연말 결산에 따르면 낙찰 총액은 약 1565억원(국내 경매사 해외법인 포함)이다. 2018년 2194억원, 2017년 1900억원, 2016년 1720억원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결과로, 사상 유례없이 미술시장이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김영석 감정위원장은 “올해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가 수년 전으로 퇴보한 것은 그만큼 미술시장 경기가 크게 위축된 반증이며, 단순히 단색화 열풍이나 거품이 꺼졌다는 평가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 어느 때보다 미술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경기 부양책을 고민할 시기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대상은 국내에서 운영되는 8개 경매사(서울옥션, K옥션, 마이아트옥션, 에이옥션, 아이옥션, 아트데이옥션, 칸옥션, 꼬모옥션)에서 1월부터 12월 말까지 진행한 온오프라인 경매의 분석결과이다. 참고로 서울옥션의 비공개 이브닝세일 낙찰총액도 포함됐고, 서울옥션 블루 12월 26일 및 K옥션의 12월 30일의 온라인 경매는 제외됐다. 전체 집계결과 총 출품작은 2만5962점. 낙찰작은 1만7279점으로 낙찰률 66.55%를 기록했다. 2018년은 총 출품작 2만6290점중,낙찰 1만7175점., 낙찰률 65.33%였다. 2017년은 총 출품작 2만8512점중 1만8623점이 팔려 낙찰률 65.32%였다. 주목할 점은 지난해와 비교해 똑같은 낙찰작품과 비슷한 낙찰률였음에도 낙찰 총액이 큰 폭으로 낙찰총액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이는 김환기 최고가 경신에도 불구하고, 단색화 열풍 저조 및 미술경기 위축 등의 부정적인 요인들이 훨씬 많았던 결과로 해석된다. 김환기의 작품은 약 249억6000만원어치가 팔려 낙찰률 72.95%로 낙찰총액 1위를 차지했다. 2018년에도 1위로 약 354억7000만원, 낙찰률 81.68%를 기록했었다. 반면, 르네 마그리트가 약 72억4750만원으로 개인별 최고 낙찰가 1위에 올랐다. 2018년에는 루이스 부르주아가 약 95억1400만원으로 1위였다. 국내 8개 경매사의 총 거래액은 1565억. 이 가운데 서울옥션이 약 823억원으로 전체 규모에서 52.6%를 점령했다. 작년(2018년 약1286억원ㆍ58.6%, 2017년 약 950억원ㆍ50%)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선두다. 반면 K옥션은 약 574억원ㆍ36.7%를 기록해 작년(2018=715억원ㆍ32.6%, 2017=약 739억원ㆍ39%) 대비 큰 폭으로 매출규모가 줄었다. 결국 양대 경매사가 국내 경매시장의 89%로 작년(2018=91%, 2017=89%)에 이어 여전히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 규모에서 경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큰 상태이며, 양대 경매사의 비중 역시 90% 대의 절대적인 비중을 유지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김영석 감정위원장은 “미술시장에 대한 경기 부양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건강한 생태계와 균형발전을 위한 상생의 지원육성책, 미술품 소비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도 여전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경매사별 상위 5순위 낙찰총액을 살펴보면, ▲서울옥션 823억원(2018=약1286억원),▲K옥션 574억원(약715억원),▲마이아트옥션 49억원, ▲아이옥션 38억원 ▲에이옥션 37억원’ 순이다. 여기에서 지난해에 72억원으로 3순위였던 아트데이옥션이 32억원으로 6순위로 떨어진 것이 눈길을 끈다. 작품 경매는 회화에서 점차 다양한 품목으로 확산중이다. 현재 미술품 경매에서 장르별로 차지하는 비중은 회화부분이 지난해 77.8%(2017년 79.7%)에 비해 크게 줄어든 55%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3년 연속 줄어든 수치다. [[[[:newsis_bold_start:]]]]◆낙찰가 기준 30순위...김환기 1위 2위는 이우환, 3위 마그리트 [[[[:newsis_bold_end:]]]] 올해 국내 미술품 경매에 출품된 작품의 낙찰가 기준 30순위를 살펴보면, 여전히 11점을 포함시켜 ‘김환기 열풍시대’를 이어갔으며, 1위엔 72.5억원으로 르네 마그리트가 새롭게 등극했다. 1위인 김환기가 약 250억원으로 지난해(약355억원) 보다 약 100억원 이상 감소한 금액을 기록했다. 2위는 지난해와 같이 이우환 134억원으로 지난해(152억원)보다 20억원 정도 감소했고, 3위는 르네 마그리트(72.5억원), 4위는 박수근(60.3억원), 5위는 마르크 샤갈(45.8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낙찰총액 기준 30순위에서 해외 작가 비중은 8명으로 25%였으며, 이 중에 현재 생존 작가는 지난해 6명보다 다소 늘어난 10명(33.3%)으로 집계됐다. 10순위 주요 작가의 더욱 자세한 낙찰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9/12/30
'미술시장 불황' 빈말 아니었네...거래금 4482억 전년比 9.3%↓ 화랑가의 '미술시장 불황'이라는 말이 입증됐다. 30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19 미술시장실태조사(2018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작품거래금액 4482억 원(전년대비 9.3% 감소), 작품거래 수 3만9368점(전년대비 10.2% 증가)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화랑의 작품 판매금액은 2013년을 제외하고 2000억 원 이상 규모를 유지하다가 처음으로 1900억 원대로 하락했다. 이는 매출규모 10억 원 이상의 화랑들에서 약 500억 원 정도 작품판매가 줄어든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경매시장은 불황속 호황이다. 작품 판매규모는 1500억 원대(해외 개최 경매 미포함)를 돌파하면서 조사 이래 가장 높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작품가격대 1억 원 이상 작품 판매 비중이 경매 총 거래금액의 56.9%를 차지,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매 회사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중간 매출규모의 경매회사가 부재하면서 10억 원 미만과 50억 원 이상 매출 경매회사만 남아있는 양상이다. 아트페어는 증가세다. 2018년도 아트페어 수는 2014년도 대비 54.3% 늘어 총 54개이며 작품판매금액은 17.6%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화랑참가형 아트페어 수는 거의 동일하나, 작가참가형 아트페어(‘14년 15개→’18년 33개)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18년 화랑참가형 평균 1점당 판매 작품가격 약 1,400만원, 작가참가형 약 88만원) 미술관 및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전시 공간(복합문화공간 등 40개)을 추가하여 2018년도 유료전시관람 규모 현황을 조사했다. 개최된 전체 전시 2,924회 중 유료전시는 684회, 유료전시 관람객은 993만3414명이다. 미술시장실태조사는 2009년에 처음 실시됐다. 올해 조사는 2018년 기준으로 주요 유통영역인 화랑(460개) 경매회사(10개), 아트페어(54개)와 공공영역인 미술관(244개)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로 진행됐다. 2019 미술시장실태조사 보고서는 2020년 2월 중 조사에 응답한 유관기관과 온라인 신청자에게 배포할 예정이며, 자세한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누리집 자료공간(www.gokam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9/12/30
[박현주 아트클럽]벽에 붙인 바나나는 어떻게 1.5억짜리가 되었나 #'예술이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바나나를 작품이라 내걸은 놈이나 그걸 1.5억이라고 책정한 놈들이나, 뭐든간 작품을 먹어치운 놈이나...' # '나도 어제 이거 5개 거실에 붙여놨다 7억 벌었다' # '저걸 1억주고 사는 사람은 뭐냐' 지난 9~10일 뉴시스가 보도한 "1.5억원짜리 '바나나 작품' 꿀꺽한 예술가" 기사가 낳은 댓글은 '리얼리즘의 극치'다. 그 예술가의 궁금증보다, '그 바나나가 대체 뭐길래 1.5억이나 하는가'가 더 초점. 댓글의 압권은 '다. '1.5억원짜리 '바나나 꿀꺽' 사건은 지난 7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벌어졌다. 이 아트페어에 참가한 페로탕 갤러리 부스 벽에 강력한 덕테이프로 붙여진 '바나나'를 한 행위 예술가(데이비드 다투나)가 입안으로 삼켜버린 것. 갤러리의 충격 속 작품을 먹어치운 그는 한 술 더 떴다. 뉴욕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배가 고파서 먹었다"며 이걸 "'헝그리 아티스트' 퍼포먼스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에게 미안하지 않다. 예술로 대화하는 것"이라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인식된 예술가의 면모를 보였다. 이름 탓이었을까? 코미디언 같은 예술가를 끌어당겨, '아트'를 코미디(comedy)로 만들어버린 바나나 작품 제목은 '코미디언'이다. 문제의 바나나가 먹혀 버린 후 몇 분 만에 페로탕 갤러리는 곧바로 새 바나나를 붙여 놓았지만, 결국 제거(?)해야했다. 소문이 나자 관객들이 몰려들어 셀카 사진을 찍는 바람에 주변 작품의 안전 문제를 위협한 것. 원래 바나나, 그러니까 '코미디언' 작품은 떼먹히기 전에 12만달러(한화 1억5000만원)에 팔렸다. 따지고 보면 갤러리측은 아쉬울 게 없다. 팔아야 하는 아트페어에서 이미 팔았고, 화제의 사건으로 작품과 작가를 세계 만방에 알렸으니, 손안대고 코 푼격으로 일석삼조 효과를 누렸다. 그래도 전시장에서 조기 철수는 쉬운 결정은 아니다. 세계 유명화랑 명성을 자랑하는 페로탕 갤러리의 입장은 어땠을까? '바나나 작품'을 내건 페로탕 갤러리 캐서린 위스니에프스키(Katharine wisniewski) 디렉터는 뉴시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트페어 마지막날이었던 8일(일요일),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함께 전시장에 '코미디언'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걸 유감스럽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캐서린 위스니에프스키는 "작가와 나는 아트바젤 마이애미측의 권고에 따라 결국 그날 아침 9시에 바나나 작품을 제거했다"면서, "이렇게 기억할만한 모험(?)에 참여해주신 분들에게 정말로 감사함을 전한다"고 여유를 보였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이번 일에 대해 혹여 '짜고 치는 이벤트'가 아닌가 하는 뉘앙스에 "바나나를 먹어치운 퍼포먼스 예술가와 연계돼 있지 않다"며 먼저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 '코미디언', 바나나 작품 자체에 대한 상태를 정확히 이야기 할 수 있다"면서, '벽에 붙인 바나나 한개가 왜 1억5000만원이나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대신했다. "당신도 개념 예술(conceptual art)에서 '진품 증서(certificates of authenticity))'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것"이라면서 "바나나 '코미디언'은 진품 증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작품이 마우리치오 카텔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서죠. 그 '진품 증서'에는 바나나 작품 설치에 대한 정확한 지시 사항이 포함되어 있어요. 개념 예술에서 진품 증서가 없다면, 그저 물질적 표현과 묘사에 불과할 뿐이잖아요. 결국은 진품 증서를 가져가는 것이 곧 작품 자체를 소장하는 것입니다" 바나나는 사라졌지만 진품증서가 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바나나는 언젠가는 썩어 없어진다는 '발상'의 장치다. 페로탕측에 의하면 그 바나나는 세계 무역을 상징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고전적 유머 장치다. 세계를 들썩거린 '코미디언' 바나나는 분명 1.5억 보다 더 비싸질 것이란 전망이다. 훗날 경매에 오른다면, 수십배 높은 가격에 매겨져 다시 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게 국내 미술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유는? 작가의 유명세 때문이다. 바나나가가 먹혀버린 이벤트까지 더해 '진품 증서'는 언제든 바나나를 벽에 붙일수 있고, 그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며, 그게 바로 '현대 미술'이다. 이쯤되면 '예술 참 쉽죠 잉~' 이지만 미술시장 역사가 증명한다. '코미디언 바나나' 작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은 1917년 4월 시작됐다. '어떤 예술가든 6달러만 내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는 미국 뉴욕 '앙데팡당'전에 화장실 소변기가 등장했다. 검정 물감으로 'R. Mutt'라고 쓰인 소변기는 작품 제목이 '샘'이라 했다. 전시 감독들은 이게 작품이냐며 갑론을박을 벌였고, 급기야 '변기' 출품과 관련 투표까지했다. 결국은 “그것은 전혀 미술품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샘'을 전시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 대중들에게는 실제로 한번도 보이지 않은채 '변기'는 그야말로 핫이슈가 됐다. '본래의 자리에 있으면 매우 유용한 물건이겠지만, 어떤 정의에 의해서도 그것은 예술작품이라 할수 없다'며 치워진 변기가 부활한건 컬렉터 덕분이다. 당시 뉴욕 미술계를 주름잡던 컬렉터 아렌스 버그 부부가 사들였다. 하지만 그 변기를 잃어버리면서 개념미술의 원조가 탄생한다. 그 때 소변기를 출품한 마르셀 뒤샹은 새로 변기를 구입해 서명하고 아렌스 버그에 다시 제공했는데, 이때 변기는 '오브제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지킨 것'이라고 해석됐다.'코미디언 바나나'가 '바나나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의 컨셉'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페로탕갤러리측의 말은 결국 마르셀 뒤샹의 샘, 그러니까 '변기'가 파생시킨 바나나다. 일반적인 상점에서 산 기능적인 물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술의 맥락에 들어온 뒤샹표 '레디메이드(ready-made)'의 발명이었다. 소변기 '샘'의 위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영국미술가 500명이 ‘지난 20세기 100년간 후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20세기 작품’ 1위로 뽑은 작품이다. '위대한 천재 예술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눌렀다. '이게 작품이냐'며 쓰레기 취급됐던 소변기는 몸값도 올렸다. 1917년 굴욕시기를 거쳐 82년이 지난 199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1700만 달러(한화 약 200억)에 낙찰됐다. 뒤샹의 작품 중 최고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이 소변기는 1917년 제작된 바로 그것도 아니고 1964년에 새로 만든 8번째 에디션(복제품)이었다. '바나나'를 벽에 붙인 작가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59)이다. 세계적인 유명화랑 페로탕갤러리 소속으로 그의 이름만으로 미술계에서는 명성을 입증한다. 지난 9월 '18K 황금 변기' 작품을 공개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 작품은 도난 당해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지만 황금으로 도금된 변기는약 480만 파운드(약 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생가 블레넘궁에서 전시 중에 도난당한 '황금 변기'는 인간의 탐닉과 지나친 부를 풍자하는 작품으로 20만원짜리 밥을 먹든, 2000원짜리 밥을 먹든 배설이 되는 건 같다는 의미다. 20세기 미술을 발칵 뒤집어놓은 뒤샹의 후예답게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아이디어 하나로 예술하는 '풍자의 대가'다. 위트와 역설적 유머, 종교 · 정치 · 사회활동 · 미술계에 이르기까지 기존 권위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유명세를 구축했다. 1992년 밀라노에서 열리는 단체전 작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자, 경찰서에 도둑맞은 작품에 대한 신고서를 쓴 후 그 신고서를 다시 갖고 와 액자에 넣어 전시하기도 했고, 암스테르담의 한 갤러리에서 진행중이던 전시물을 통째로 옮겨 다시 설치를 했는데, 절도행위로 취급받자 그는 자리만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 중인 아돌프 히틀러를 미니어처 상으로 만들어 히틀러의 로마 가톨릭교를 풍자적으로 조롱했고, 7m 길이의 축구게임기계를 재현해 이탈리아인들의 축구에 대한 국가적인 집착과 그 부패상을 간접적을 비판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정도로 영리하지는 못했다'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미술전공자도 아니다. 어렸을때부터 한 곳에 오래집중하지 못했다고 한다. '뉴요커' 의 전속 미술평론가 캘빈 톰킨스는 ‘아주 사적인 현대미술’책을 통해 마이루치오 카텔란을 '판의 규칙을 깨뜨려버리는 말썽꾼'이라고 표현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히틀러, 관 속에 누운 케네디, 운석 조각을 맞고 쓰러진 교황 등 카텔란은 ‘이게 예술인가?’ 싶은 의구심을 일으키는 작품들, 충격적이고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을 내보이지만 대개의 관객들은 그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일단 웃고 나서 그 뒤에 숨은 사회적 의미들을 곱씹게 하는 묘한 작품들이다" “전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경향이 있는데, 생각을 많이 하는 식으로는 아니에요. 그건 이상하잖아요. 저는 태생부터 멍청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렇더라도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조금씩 배우고 있죠. 제가 일반적인 미술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형의 관람객을 아우르는 가능성에 혹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제가 작품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바로 대장이에요. 아니면 여주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네요. 작품은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상당한 고뇌를 안겨줍니다. 제가 만든 것이 무엇이든, 그건 제가 아닌 제 안의 무언가에서 나온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것의 주인은 아니죠.” (아주 사적인 현대미술, 마우리치오 카텔란 인터뷰중 p.230) '대체 그 바나나가 무엇이길래 1.5억짜리인가', '예술이란 뭘까?'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세상 모든 기성 체계를 풍자하는 그의 재능에 설득당한 것이다. 여전히 아리송한 '개념예술'의 승리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작가도 갤러리도 아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처럼 '저걸 돈주고 산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네!'다. 결국 작가와 화랑이 부르는게 값인 작품가격()은 컬렉터가 만드는 것이다. 2019/12/12
153억 낙찰 김환기 '우주'...우정이 빚은 '한국 미술 빅뱅' 한국 미술시장 ‘황제주’ 김환기가 '세계 미술시장 블루칩'으로 등극했다. 단 10분만에 한국 미술 사상 최초로 100억원대를 돌파하면서다. 23일 오후 홍콩 컨벤션센터 그랜드 홀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11월 경매에서 1971년 작 푸른점화 '우주'가 한화 약 153억 4930만원( HKD 101,955,000(구매자 수수료 포함가)에 낙찰됐다고 크리스티 코리아가 밝혔다.김환기 작가 세계 최고 기록이자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이다. 60억원대에 경매에 오른 '우주'을 갖기 위한 열기가 뜨거웠다. 10여분만에 현장과 전화 경합이 33번이나 치열하게 이어졌다. 이후 132억원을 부른 전화 응찰자가 낙찰 망치 세례를 받았다. 크리스티측은 고객 정보 보호를 위해 ‘신원 미상의 전화 응찰자’로 밝혔지만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구매자로 알려졌다. 홍콩 시위 격화 속에서도 홍콩미술시장은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한국 미술시장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국내 미술품경매사가 아닌 해외 유명 경매사, 크리스티 홍콩에서 100억원대를 돌파했다는데 큰 의미를 뒀다.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85억원에 최고가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100억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 5년간 김환기의 작품은 경매에 나오기만 하면 최고가를 경신했다. 자신의 신기록을 계속 바꾸며 국내 미술품 낙찰가 톱10 중 1위부터 8위까지 차지했다. 김환기 질주는 2015년 10월 서울옥션홍콩경매에서 시작됐다. 1971년작 푸른색 전면점화 ‘19-Ⅶ-71 #209’가 약 47억2100만원에 낙찰되면서, 당시 국내 미술품 낙찰가 1위 기록이었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제치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김환기의 작품은 총 141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 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부터 국내 미술시장이 좀처럼 활기를 띄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세 김환기'도 숨죽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크리스티 홍콩경매에 김환기 대작이 나온다고 알려지면서 미술시장의 촉각이 곤두세워졌다. , 크리스티측은 "작품성·희귀성을 모두 갖춰 최고가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며, "100억원 낙찰"을 전망했다. 이러한 자신감은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이례적으로 '우주'의 단독 도록을 출간하며 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대작이 나오기까지 타이밍은 필수. 이 작품은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 부문 총괄 에블린 린 부회장이 5년을 숙성시켰다. 그가 경쟁사인 소더비에 근무할때부터 눈여겨봤던 작품. 계속 소장자를 찾아갔고, 결국 지난 7월 뉴욕에서 소장자의 OK를 받아냈다. 크리스티측은 "'우주' 작품은 자연의 본질을 화폭에 담고자 매진하며, 예술사상과 미학의 집대성을 위해 헌신한 그의 인생의 최고 절정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경매사 크리스티가 153억원에 쏘아올린 '우주'는 김환기를 '아시아 미술시장 100억대 작가'로 등극시켰다. 현재 100억대를 넘어선 작가는 중국 산유·자오우키, 일본 무라카미 다카시, 나라 요시토모 등 6~7명이 올라있다. '153억 낙찰'은 세계 미술시장에 김환기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품의 인식과 관심도를 새롭게 바꾸는 연쇄 반응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newsis_bold_start:]]]] ◇김환기 주치의였던 김마태 박사 47년간 소장 작품 [[[[:newsis_bold_end:]]]]그림도 주식처럼 장기투자의 미학이다. 153억원을 쏘아올린 김환기의 '우주'는 우정이 빚어낸 산물이다. '우주'를 47년간 소장했던 김마태 박사(91·본명 김정준)의 선한 마음이 담겼다. 김 박사가 크리스티 부회장에게 설득 당했지만, 단순한 판매가 아니었다. “미술 시장 내에서 김환기에게 걸맞은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1971년 제작된 이후 ‘우주’는 그동안 환기미술관에서만 전시됐었고, 2013년 에블린 린 부회장이 보게 되면서 세상밖 유혹에 시작됐다. 대박을 터트린 이번 경매는 '우주'의 첫 경매다. 김마태 박사는 김환기 주치의였고, 그를 마지막까지 챙긴 친구이자 후원자 컬렉터였다. 김 박사와 김 화백의 만남은 전쟁이 맺어줬다. 1951년 부산으로 피난 온 시절, 광복동에 있는 한 다방에서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들던 그 다방에는 소설가 김말봉도 있었다. 그녀의 딸 전재금이 김 박사의 약혼자였고, 전재금과 함께 우연히 만난 김환기와의 인연은 뉴욕까지 이어진다. 1953년 김 박사는 미국으로 떠나 의사가 됐고, 김환기 화백도 홍익대 학장직도 버리고 한국을 떠나 파리로 갔다. 1959년 서울로 귀국했지만 50세인 1963년 뉴욕으로 이주할 것을 결심했다. 그때 그의 부인(김향안)이 이듬 해에 합류할 때, 항공권 비용을 김 박사가 도왔다고 한다 이에 김환기 화백은 김 박사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자신의 1959년작, '섬의 달밤'을 선물했다. 이후 두 부부는 점점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 병원 개업과 함께 김 박사는 더 많은 김화백의 작품을 구매하며 컬렉션이 점차 커져갔다. '우주'는 김환기가 뉴욕으로 이주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 254×254㎝ 크기로, 김환기의 전작 가운데 유일한 두폭화다. 1971년 완성된 이 그림을 김마태(91·본명 김정준)박사가 포인덱스터 화랑 개인전때 구입했다. 이들은 47년 후 이런 일을 상상을 했을까? 김 박사는 "김환기 화백은 언제나 환영 받는 손님이었다. 친화력 있는 웃음과 짓궂은 농담으로 인해 그는 중심 인물로 종종 주목을 받곤 했다"고 회상하며 김 박사의 거실에 걸린 '우주' 앞 쇼파에 앉아 두 팔을 벌리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찍은 김 화백의 단독 사진을 공개, 이번 김환기 '우주' 경매 도록에 실었다. 1972년 뉴욕 김마태 박사 자택. 벽면을 가득 채운 '푸른 점화' 아래서 김환기와 부인 김향안이 김마태 박사와 함께 쇼파에 앉아 기념 사진도 찍었다. 김환기의 그림을 구매한 후 벽에 걸던 날 이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김환기는 '우주'의 기쁨을 누린 2년 후인 1974년 7월 25일 뇌일혈로 별세했다. 그 해 7월 7일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뉴욕의 한 병원에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그림을 그려 드로잉을 포함한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1913년 2월 27일 전남 신안 섬에서 태어나 일본 도코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파리, 뉴욕에서 열정적인 화가로 살아낸 그는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 외곽에 있는 묘지에 이름을 남겼다. 그 옆에는 2004년 3월 그를 따라간 부인 김향안(1916∼2004) 여사도 나란히 묻혀 있다. 2019/11/24
[K-artprice]경매낙찰가격이 작품가격은 아니다 미술작품 가격 정보는 어디서 얻을까? 또 작품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 작품 가격은 (화랑)전시장과 경매장에서 알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물어보면 된다. '이거 얼마에요?'라고. 백화점이나 매장에서 쇼핑하는 것과 같다. 가격은 작가와 화랑이 정해서 판다. 경매장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예를 들어 100만원에 경매에 올라왔다고 치자. 그것을 사고 싶으면 110만원, 130, 150... 갖고 싶은 사람이 더 더 더 높게 부르는 식이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 허세와 '돈 질'의 끝장판이 미술품 경매장이다. 전시장과 경매장의 작품 가격의 허와 실이다. 전시장의 작품가격과 경매장 작품가격은 차이가 크다. 높거나, 낮거나로 극명하게 갈린다. 그래서 화랑주들은 답답하다. 경매가격이 작품가격이 아닌데 헛갈리는 '고객님'들 때문이다. 화랑에서 파는 가격보다 경매에서 낮게 팔리는데, 왜 비싸게 받느냐는 것. 깎아달라 일쑤고, 발길도 끊는다. (반면 전시가격보다 높게 낙찰됐을때는 반대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경매가격이 작품가격일까? 절대 아니다. 대개 작고 작가가 블루칩으로 낙찰총액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동시대 현대미술작가들, 특히 신진-중견작가들은 소외되어있다. 경매장에서는 100~200명 안팎의 작가 작품만 거래된다. 반면 현재 한국미술협회 등록 화가만 2만여명이 넘는다. 경매 낙찰 금액이 화를 부르기도 한다. 급매로 나오거나,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경우도 있어 일부 작가들은 속앓이를 하기도 한다.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경매장에 나왔다는 정보가 확보되면, 그 작품을 작가가 사들인다는 소문도 있다. 가격 하락세를 막기위한 안타까운 조치다. 예상외 낙찰행진도 있지만, '반짝 특수'다. 경매가는 특정 상황의 낙찰가격일 뿐, 절대적인 작품가격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한다. 미술품 작품가격도 도매가 소매가 유통가처럼 종류가 많다. 작품가격은 크게 ▲전시 가격, ▲경매 가격, ▲실거래 가격, ▲미술관 가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전시가격은 작가가 작품 전시때 정하는 호가(呼價)이다. 이때 전속화랑이나 전담 기획자가 있을 경우엔 이들 중개자들과 서로 상의해서 정해지지만, 개인으로 활동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주변 동료들의 경우를 감안하여 혼자 정한다. 전시 이력이나 경력이 누적되면서 가격도 조금씩 정비례로 올리는 경우가 많고, 인기를 끌면 그 만큼 가격을 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진위감정도 중요하지만, 시가감정도 중요해지는 이유다. 반대로 ▲경매가격은 경매장에서의 낙찰가격을 말한다. 작가나 중개자의 의견과 상관없이 철저하게 소비자에 의해 정해진다. 그래서 경매의 낙찰가격을 시장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큰 무리가 따른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시장의 선호도를 파악할 수 있는 재료다. 굳이 따져 본다면 경매 시작가나 추정가가 현재 미술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에 근접한다고 보면 된다. ▲실거래 가격은 한 번 전시장이나 경매장에서 판매된 작품이 다시 리세일 되면서 형성된 가격이다. 일명 '나까마 화랑(상설화랑)'에서 이뤄지는데 급전이 필요하거나, 개인 기호가 바뀌어 작품 교환 혹은 빠른 처분을 원할때 활용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이런 상설화랑은 기획전시가 아닌, 작품 판매만을 위한 화랑이다. 또한 일반 화랑에서 리세일까지 책임지는 예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리세일 장의 대안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관 가격(뮤지엄 프라이스)은 작가의 동의하에 시장가격보다 일정 비율(20~30%) 낮게 책정된다. 미술관의 경우 상업화랑과 달리 수익창출을 위해 작품을 구입하지 않기때문이다. 소장된 작품을 되파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오히려 그 작가나 작품을 지속적으로 재평가 해주는 역할을 한다. 특수 목적으로 수집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술관 가격 역시 시장가격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이처럼 미술품의 가격 형성은 유동적이다. 목적성이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술시장이 안정된 문화선진 국가의 경우, 작품가격 책정의 룰 역시 안정되어 있다. 철저하게 작가적 역량과 미술시장의 선호도가 동시에 작용하여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10여년전 우리나라도 미술시장 호황을 거치면서 미술품 가격지수 개발이 한창이었지만 사그라들었다. 증권 시장과 달리 미술시장은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특히 통상 작가가 작품가격을 정하기 때문에 작품가격을 신용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술품 소비자 및 미술애호가, 일반 대중들 누구나 작품가격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또 신뢰도가 확보될때 건강한 미술시장으로 발전한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미술품 투자는 최고의 재테크 수단으로 올라서기 때문이다. 한편 국내 최대 민영 뉴스통신사 뉴시스(NEWSIS)가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 '케이 아트프라이스(K-Artprice)'는 쉽고 편하게 작품 가격을 찾아볼 수 있다. 모바일 버전으로도 오픈해 언제 어디서나 작품가격을 살펴볼수 있다. 스마트폰 주소창에 url ()을 입력하거나 포털사이트 등에서 ‘k-artprice'를 검색하면 모바일 버전에 접속할 수 있다.원하는 작가의 이름을 클릭하면 작가 정보와 함께 지난 5년간 국내미술품 경매사에서 낙찰된 거래 가격을 확인 할 수 있다. K-Artprice()는 현재 200명의 작품가격 제공에 이어 올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1000여명의 작품가격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경매사의 낙찰 가격 뿐만 아니라, 전시·아트페어에서 판매된 작가별 작품가격과 함께 객관화된 자료를 제시하기 위해 작품가격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활용범위를 넓혀갈 예정이다. 2019/11/12
경매 시작가 '0원'...서울옥션 온라인 '제로베이스' 론칭 서울옥션 온라인 경매는 새로운 방식의 온라인 경매 '제로 베이스'를 론칭한다고 7일 밝혔다. 작가 선정 기준, 경매 시장의 가격 결정 시스템 등이 기존 경매 시장 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식을 제안한다. 서울옥션은 "기존 경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재판매(resale) 시장이 형성돼 있는 작품이 출품되다보니, 10만명에 달하는 전업작가 중 약 0.1%만을 미술시장에 소개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제로 베이스'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술시장은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경매 '제로 베이스는 경매시장의 문턱을 낮춘게 특징. 기존 경매 기록이 없더라도 작가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가격 결정도 구매자들이 할 수 있도록 했다. 경매에 출품된 작품은 모두 0원에서 시작된다. 제로 베이스 첫 경매는 3명의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가 선정한 6인(김완진 김상현 함미나 이언정 정다운 장은우)의 작가 작품을 출품한다. 작가 1명당 약 10여 점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인체를 모티브로 삼아 작업 활동을 펼쳐온 김완진, 비닐봉지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통해 일상의 가치 판단에 의문을 던지는 김상현, 자신의 기억 속 풍경과 인물의 흔적을 화폭에 담는 함미나, 건물과 낯선 골목을 소재로 작업을 하고 있는 장은우, 패브릭으로 자유로운 조형성을 추구하는 정다운, 도시의 이미지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판화 작업으로 보여주는 이언정 작가가 참여했다. 서울옥션은 앞으로 평면 회화뿐만 아니라 사진,조각,설치,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연령 제한 없는 다양한 작가를 선정해 '제로 베이스'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제로 베이스' 첫 경매는 오는 15일 오후 2시부터 순차마감한다. 출품작은 오는 15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볼수 있다. 2019/11/07
미술 작품가격 "이젠 손안에서 편안하게 보세요" 국내 최대 민영 뉴스통신사 뉴시스(NEWSIS)가 국내 언론 최초로 지난달 론칭한 작품가격 사이트 '케이 아트프라이스(K-Artprice)'를 모바일 버전으로 25일 오픈했다. 스마트폰 주소창에 url ()을 입력하거나 포털사이트 등에서 ‘'를 검색하면 모바일 버전에 접속할 수 있다. K-Artprice는 지난 9월 첫 런칭이 후 미술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애호하는 작가의 작품가격을 신속하고 파악해볼 수 있다며 큰 호응을 보였다. 특히 미술애호가와 컬렉터, 갤러리스트들은 아트페어와 경매장에서도 바로 원하는 작품의 이전 가격을 찾아볼 수 있어 편리하다는 반응이다. 이같은 성원에 힘입어 모바일 버전으로도 오픈한 케이아트프라이스는 더욱 손쉽고 편하게 작품가격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국내외 유명 작가 200명의 작품 거래 기록을 바로 볼 수 있다. K-Artprice 모바일 버전()은 쉽고 편하게 작품 가격을 찾아볼 수 있는 기능에 최적화 되어 있다.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깔끔한 디자인으로 차별화됐다. 원하는 작가의 이름을 클릭하면 작가 정보와 함께 지난 5년간 국내미술품 경매사에서 낙찰된 거래 가격을 확인 할 수 있다. K-Artprice()에는 국내술품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이 1차 공개되어 있다. 이중섭·박수근 국민화가를 비롯해 미술시장 블루칩 작가인 김환기·이우환·천경자·김창열·장욱진과 국내 단색화 열풍을 일으킨 박서보·정상화·윤형근 등 국내에서 거래된 국내외 작가의 2만2400점의 낙찰기록이 포함됐다. 지난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국내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과 마이아트옥션 등 10여개 미술품경매사 낙찰 기록을 종합 분석했다. 작품 가격은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국내 미술품 최고가인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3-II-72 #220)김환기 작품까지 총 망라됐다. 근현대 회화부터 동시대 현대미술, 조각, 해외 유명 작가의 5년간 거래된 작품과 가격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K-Artprice()에 등록된 모든 미술작품의 가격 순위와 함께 '작가별 낙찰총액 순위 Top 200', '작가별 매매건수 순위 Top200'도 제공하고 있다. 뉴시스가 선보인 'K-Artprice'는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대표 김영석)의 데이터 제공으로 분석한 자료다. 뉴시스는 지난 8월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업무 제휴를 맺고 작품가격 사이트를 개발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문체부가 법인인가해 2008년 설립한 전국 단위의 유일한 미술품 시가감정 사단법인이다. 앞으로 뉴시스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현재 200명의 작품가격 제공에 이어 올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1000여명의 작품가격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경매사의 낙찰 가격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트페어에서 판매된 작가별 작품가격과 함께 객관화된 자료를 제시하기 위해 작품가격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활용범위를 넓혀갈 예정이다. 'K-Artprice'는 '도대체 미술품 가격은 얼마인가?'에 대한 미술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한편 미술품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미술 문화의 대중화와 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더욱 자세한 작품가격 정보는 'K-Artprice'()'에서 확인 할 수 있다. #터치☞ 'K-Artprice'() 2019/10/25
[윤형근 작품가격 TOP 10]잔소리 싹 뺀 '누리끼리한 검은 그림' 최고 4억 국내미술시장은 '장인과 사위가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 비싼 그림(85억)의 작가 수화 김환기(1913~1974)가 장인이고, 단색화가 윤형근(1928~2007)이 사위다. 스승과 제자에서 가족이 됐다. 스승의 집에 드나들다 수화의 장녀 김영숙과 결혼했다. 장인과 사위였지만 나이 차이가 불과 15살밖에 나지 않아 선후배 같았고 예술 동지로 끈끈했다. 사위와 장인, 같은 추상화가지만 판은 완전 다르다.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등 색점이 빛나는 김환기와 달리 윤형근은 거무튀튀한 갈색과 검은색을 썼다. 김환기는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윤형근은 장인 작품을 "잔소리가 많고 하늘에서 노는 그림"이라고 견제했다. 자신은 "잔소리를 싹 뺀 외마디 소리를 그린다"고 했다. 그림처럼 묵직해 '침묵의 화가'로 불렸던 윤형근은 '한국현대미술의 침목'이 되고 있다. 미술시장 '김환기 대세'속에 윤형근의 진격이다. 생전 사후 장인도 못 누렸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후 11년만에 회고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첫 수출 전시로 베니스 포루트니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회고전을 열고 있다. "어떤 고요의 순간,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원한다면, 포르투니미술관의 윤형근 전시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호평속에 11월까지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꼭 봐야 할 전시'로도 꼽혔다. 윤형근은 일명 '단색화 4인방'(박서보 하종현 정상화 윤형근)으로 2015년부터 특히 활기가 돌았다. 2017년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인 뉴욕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서는 작품이 완판, 한국의 단색화가로 명성을 높였다. 누렇고 검은 그림. 깊은 수묵향이 풍기지만 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비주의와 단색화 열풍속에 격이 계속 높아졌다. 6~7년전, 1978년작 30호 크기 작품은 3600만원이었다. 하지만 3년전엔 1억2000만원, 최근에는 2억5000만원 선에 거래된다. 현재 최고가는 1977년 제작한 '엄버 블루'로 4억7064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2016년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낙찰됐다. 지난 5년간 윤형근의 그림은 252점이 경매에 나와 213점이 팔렸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약 100억원의 매출로, 낙찰총액 9위에 올라있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 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 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262점중 윤형근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윤형근 Umber-Blue1977린넨에 유채67.7×199.7cm 서울옥션 홍콩2016.11.27 2윤형근 Untitled1978마대에 유채162.6×130.3cm 서울옥션 홍콩2015.05.31 3윤형근 무제1990린넨에 유채193.8×253.5cm 서울옥션 홍콩2015.10.05 4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 Blue1997캔버스에 유채208.5×333cm 서울옥션 홍콩2015.11.29 5윤형근 Umber-Blue1975~78린넨에 유채116.8×91cm K옥션 홍콩2016.05.29 6윤형근 무제 1989린넨에 유채145.5×97cm K옥션2017.10.18 7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1996린넨에 유채97×162.2cm K옥션2019.03.20 8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1993린넨에 유채97×162.2cm K옥션2019.01.23 9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1993린넨에 유채97×162.2cm K옥션2018.05.23 10윤형근 Burnt Umber and Ultramarine1996린넨에 유채97×162.2cm K옥션2018.03.21 = 최고가 10순위를 분석한 결과, 70년대 작품이 선호도가 가장 높다. 70년대 중반에서 80년 초반까지 작품이 시장 가격을 이끌고 있다. 70년대 작품 가격을 살펴보면 소품 중심으로 형성됐다. 3호 크기 3500만원, 30호 크기 2억5000만원 전후로 10호 미만은 호당 1300만~1500만원선으로 파악됐다. 최근 5년간 낙찰가격 상위 10순위 중 1~5위까지 모두 서울옥션과 K옥션의 홍콩경매에서 기록을 세웠다. 특히 1~4위까지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했다. 반면 6~10위까지는 모두 K옥션 국내 경매의 기록이다. 모두 90년대 초중반 작품이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선 상대적으로 시장 선호도가 높은 70년대 작품의 큰 거래는 보기드문 것을 알 수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국내의 경우 윤형근의 검은색 바탕을 크게 선호하지 않은 편이지만, 해외는 동양적인 정신성에 빗대어 깊이감으로 받아들인다는 평가다. 국현 서울관 초대전과 베니스 포르투니미술관 회고전이 호재로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형근 작품가격은 제작 연대, 번짐, 컨디션(보존상태) 등 3가지가 주요 변화요인이다. 70년대는 얼룩이 넓게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부드러움이 돋보이고, 기둥은 대개 2개인 경우가 많고, 바탕색은 갈색톤이 배어 있다. 80년대는 바탕의 검은 색조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번짐이 적어지는 편이다. 90년대는 검은 색조 바탕이 아주 진해지고, 번짐은 거의 없으며, 단단하고 경직된 느낌의 넓은 벽면기둥이 주를 이룬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은 각진 부분이 더 심해지고, 건조한 거친 느낌, 딱딱하고 유광의 느낌이 강해진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70년대~80년대 초반 작품은 지속적인 상승세로 전망했다. 최고가 2위를 차지한 70년대 말 100호 작품이 2015년에 3억원 초반에 낙찰된 후 현재 시장에서 4억~5억원 선에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 인복 많은 화가다. 극내에서 평생 좌파로 찍혀 핍박받았지만 해외에서 온 미술인들이 그를 어둠에서 구원했다. 1974년 미국의 미술평론가 조셉 러브가 한국을 방문했을때다. 누리끼리하고 검은 작품을 보고 한 눈에 빠졌다. "한국 시골의 김칫독처럼 단순하고 흙냄새가 풍긴다"며 일본 동경화랑 창업자인 야마모토 타카시에게 알렸다. 야마모토 타카시는 1975년 단색화의 시발이 된 박서보 이동엽 서승원 허황 권영우의 그룹전 ‘5가지 흰색전’을 기획한 인물이다. 타카시는 1976년 윤형근의 첫 일본 개인전을 열고, 그의 서문을 일본에서 활동하던 이우환에 맡겼다. 42년 후인 2018년. '미술계 히딩크'로 불리던 마리 바르토메우 국립현대미술관장 눈에 들었다. 살아있는 단색화가들도 초대 받지 못한 자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윤형근 회고전이 열렸다. 당시 마리 관장과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윤형근을 제대로 조명하면 한국미술의 풀릴 수 있는 실마리가 많다"며 "단색화의 범주에서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윤형근의 진면모를 총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고 기대감은 적중했다. 2018년 8월 4일부터 12월 16일까지 열린 '윤형근 회고전'은 32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미술관 개인전 최고 관람객을 기록했다.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굳이 따지면 우리나라 윤형근을 단색화의 원조라고 할수 있지만, 그를 단색화 틀안에 넣기에는 옹졸해진다"고 했다. 간결하고 단순한 단색화로만 알려진 그의 진가는 베니스에서 입증했다. 포루투니 미술관에서 회고전은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와 달랐다. 고풍스런 미술관의 낡은 벽돌 벽과 나무 바닥과 조우하면서 강렬한 감동을 선사했다. 묵직한 울림을 전하며 명상적이라는 평이 쏟아졌다. 누리끼리한 검은 그림. 처음부터 어두운 작업은 아니었다. 장인 김환기의 영향을 받아 밝은 색채를 사용했었다. 작업이 변한건 1973년 ‘반공법 위반’의 누명을 쓰고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온 후부터다.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1973년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으로 부정 입학했던 학생의 비리를 따져 물은게 죄가 됐다. 레닌 모자를 쓴다는 이유로 잡혀가 '반공법 위반' 죄목이 붙어 고초를 겪었다. 총 3번의 복역과 치안당국의 감시를 받는 핍박 속에서 채색 그림은 사라졌다. 극도와 분노와 울분이 검은 색면들로 흘러 내렸다. 미술교사도 그만두고 뚜렷한 직업 없이 요시찰인물로 등록된 채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하기 시작한건 그의 나이 만 45세였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서정을 대신한 장인 김환기의 그림과 달리, 윤형근의 누런 작품들은 전란과 핍박속에서 살아남은 피와 땀의 기록이다. 색채는 엄버와 블루 두가지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은 후 테레빈유와 린시드유를 적당히 타서 농담을 조절했다. 이를 큰 붓에 푹 찍어 면포나 마포 위에 내려 그으며 10년간 매달렸다. 1928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6남2녀 차남으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역사적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파평윤씨 문정공파 대장손으로 아버지 윤용한은 경성고보 출신 지식인이었지만 식민지 시기 낙향, 서예와 사군자를 그렸던 문인화가였다. 어쩌면 금수저 출신이지만 식민지탓에 군국주의를 경험하며 녹록치않은 인생이 이어졌다. 1945년 청주상고를 졸업한 후 미원금융조합에 취직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 사직서를 내고 지나가는 트럭을 잡아 가출하듯 서울로 상경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회 입학생이 되면서 스승인 김환기와 인연이 이어졌다. 반골기질이 강했던 그는 미군정청의 ‘국립 서울대 설립안’에 반대했다가 제적됐고, 이후 홍익대학교로 편입할 때에도 김환기가 그를 이끌었다. 1974년 7월 뉴욕에서 타계한 김환기의 죽음을 통보받고 윤형근은 "너무나 불쌍하고 뭔지 모르게 한없이 원통해서 밤새도록 통곡을 했고" 죽음같은 고독속으로 빠져들었다. 말이 없이 살던 그는 "지상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라며 초월해졌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인의 죽음에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고, 허무할 소다"라고 일기를 썼던 그도 2007년 12월 28일 담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였다. 격랑의 시대를 살아낸 사연이 흙빛의 그림 속에 다 녹아있다. 말년에 번짐도 없이 나온 '검은 그림'은 ‘죽음을 생각하라(memento mori)'는 경구로도 보인다. 윤형근 그림과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클릭☞ K-Artprice() 2019/10/06
[장욱진 작품가격 TOP10]1949년 그린 '독' 7억 최고...낙찰총액 90억 10위 #그림은 절로 크지 않는다. 화가는 그림을 낳지만, 그림을 키우는 건 컬렉터다. 시작가는 6억5000만 원. 낙찰되면 2014년 작가의 '진진묘'(1970)가 기록한 역대 최고가(5억6000만 원)을 넘게 된다. 경매장에 오른 '독'(45.8×38cm). 그동안 알려진 화풍과는 사뭇 달랐다. 새·나무·자동차·사람, 동심과 밝은 익살이 가득한 그림들과 달리 어둡고 묵직했다. '된장 맛'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은 우리민족의 질곡의 역사가 담겼다. 1949년 세상에 나와 한국전쟁을 겪고 모진 풍파를 거치면서도 질기게 살아냈다. 그렇게 '깨지지 않은 독'은 68년만에 긴 잠에서 깨어났다. 2017년 3월 서울옥션 경매, 경매사의 '이 작품 팔립니다' 응원과 함께 6억5000만원에 나온 '독'은 1분도 안돼 7억에 올라섰다. '7억!. 풍진 세월을 둥글게 말아 거무튀튀하게 덩어리가 된 '독'은 살아있음의 환희를 누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낙찰받아 '국가 미술품'으로 소장됐다. "나는 심플하다.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다"고 외쳤던 장욱진(1917~1990)화백의 작품이다. 한 개인의 소장품 아닌 국민 모두가 볼 수 있는 '국가 소장품'이 되기까지 사연이 있다. 한 미술품 수집가의 사랑이 빚은 열정 덕분이다.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컬렉터 이우복 前 대우 회장 컬렉션이었다. 8호 크기 '독'은 신사실파 제 2회전에 전시한 그림으로 한국 추상미술사의 초창기를 수놓은 의미가 큰 작품이다. 장욱진은 한국 추상화 선구자들이었던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과 1948년 결성한 ‘신사실파’ 동인이었다. 당시 장욱진이 '독'을 포함, 유화 13점을 전시했는데 구도와 도상의 상징성으로 전시 작품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뒤 행적이 묘연해졌다가 1970년대초 이우복 회장에게 나타났다. 화폭이 너덜너덜해진 그림이었지만 화상은 몸값으로 100만원을 불렀다. 당시로서 거액이었지만 이 회장은 군말없이 돈을 건넸다. 이후 70년대 말 비행기에 갈라지고 찢어진 '독'을 실어 프랑스 파리로 작품 수리를 보냈다. 당시 수복 작업을 했던 재불 원로작가 김기린 화백은 "작품 자체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힘이 느껴져, 삼개월간 작업실에서 온갖 정성을 다해 수리했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렇게 되살아난 '독'은 오랫동안 '이우복 컬렉션'에 속해 있다가 2000년 발행된 장욱진 전작 도록에 실렸다. 1940년대 작품중 희귀한 초기작으로, 장욱진의 개성과 독창성이 잘 드러난 역작으로 평가받았고, 47년만인 개인 수장고에서 나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의 유통기한은 거꾸로 간다. 지난 5년간 장욱진의 그림은 355점이 경매에 나와 262점 팔렸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약 90억원의 매출로, 낙찰총액 10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 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 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262점중 장욱진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장욱진 독1949캔버스에 유채45.1×37.7cm 서울옥션2017.03.07 ▲2.장욱진나무와 새와 모자 1973캔버스에 유채26.5×34.2cm 서울옥션2017.11.09 ▲3.장욱진두 인물1959캔버스에 유채40.5×31cm , 서울옥션2018.09.12 ▲4.장욱진 월목1963캔버스에 유채53.5×38cm , 서울옥션2017.04.26 ▲5.장욱진 들1974캔버스에 유채33×24.6cm 서울옥션 홍콩2016.11.27 ▲6.장욱진 나무와 새와 모자1973캔버스에 유채27.3×34.8cm K옥션2019.03.20 ▲7.장욱진 가족1973캔버스에 유채17.5×25cm K옥션2015.03.10 ▲8.장욱진나무1986캔버스에 유채34.8×24.2cm K옥션2017.08.30 ▲9.장욱진길1987캔버스에 유채35×35cm K옥션 2015.07.14 ▲10.장욱진아침1986캔버스에 유채45.5×23.2cm K옥션2017.12.12 :작품은 10호(53×40cm) 이상의 크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작은 그림' 일색이다. 2017년 같은 해에 낙찰된 2점 중 5호가 3억4000만원으로 2위를 차지한 반면, 10호 작품은 3억으로 4위를 차지했다. 물론 같은 해 다른 5호는 1억9000만원으로 8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매 낙찰가 10순위를 작품 크기에 따라 분석해보면 2호 1점(7위), 4호 1점(5위), 5호 4점(2,6,8,9위), 6호 1점(3위), 8호 2점(1,10위), 10호 1점(4위) 등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소품들만 있다 보니, 크기의 작은 차이나 화면의 구성미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일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장욱진 소품의 위력은 지난 2011년 1월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장욱진 20주기'전에서 보여줬다. 7억에 팔린 '독'도 이 전시에 소개됐었다. 미술시장 유행을 잘 타지 않는 대표적인 작가로, 지난 5년간 낙찰총액 10순위 안을 지키고 있다. 작품의 유통량도 적당하고, 꾸준한 스테디셀러로 분석됐다. 다만 장기적으로 불황이 지속되는 영향으로 낙찰기록의 등락폭은 있다. 낙찰기록 상위 10순위 중 반복 세일을 통해 2위와 6위를 차지한 1973년 작품 ‘나무와 새와 모자’의 경우, 2017년에 비해 2019년에 9000만원 정도 떨어졌다. 하지만 이처럼 짧은 시기에 리세일 한 경우엔 소장자의 사정이나 경매 조건, 한정된 경매장의 고객 구성 등에 따라 낙찰 기록이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 작품가격은 작가의 연령대에 따라 편차가 큰 편으로 나타났다. 50대 중반이었던 1970년대 초중반 작품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 5년간 상위 10순위에서 70년대 50대 중반에 그린 작품은 4점(2,5,6,7위)이다. 이 시기 작품의 공통점은 단란한 가족상을 그렸다는 점이다. 따뜻한 느낌이 감도는 서정성이 돋보인다. 지난 5년간 국내법인 경매에서 9건이 최고가로 낙찰돼 내수시장에서 매우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옥션이 5건(1~5위) 이중에 5위는 서울옥션 홍콩법인이다. K옥션도 5건(6~10위)를 기록했다. 상위 5순위까지 서울옥션에서 낙찰, 하위 5순위는 K옥션에서 낙찰된 것을 보면, 경매시장에서의 장욱진 작품가 낙찰기록은 서울옥션의 완승인 셈이다. 2017년부터 연이어 높은 낙찰기록 5건(1,2,4,8,10위)을 세웠다. 2018년에 3위, 2019년에도 6위를 기록한 점을 감안할 때, 상위 10순위 중 무려 7건을 기록한 셈이다. 최고가 낙찰이 세워진 2017년은 가나문화재단에서 장욱진의 탄생 100주기전을 개최한 해로, 결국 작가 마케팅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느냐도 낙찰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 장욱진 그림에 다시 눈 뜨게 한 작품이다. 2014년 서울옥션 온라인 경매에서 5억6000만 원에 낙찰돼 '장욱진 최고가'를 기록했다. 장욱진이 1970년에 그린 유화 진진묘(眞眞妙41×32㎝)는 장욱진 화백 아내의 법명이다 2017년 가나문화재단이 마련한 장욱진 탄생 100주기 기념전때 장녀 장경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경운박물관 관장)는 "사실 어머니는 이 그림을 썩 좋아하지 않으셨다"며 이야기를 전했다. "어느날 어머니가 그랬다. '다른 화가들은 부인 초상화를 잘도 그려주는데 당신은 왜 내 그림을 한번도 그려주지 않느냐'고 했고, 이 말에 들은 척도 않던 장 화백이 불현듯 덕소로 가 어머니 초상을 그려왔다. 아버지는 당시 불경읽는 어머니를 본 뒤 일주일간 작업에 열중했다. 춥고 혹독한 덕소에서 진진묘를 그린후 서울로 올라와 석달을 앓았다. 그 때 어머니는 '이거 하나 그려놓고 나와 인연을 끝내려는 건가'라는 생각도 하셨다고 한다." 부인 이순경 여사는 서울대 교수도 마다한 채 '자유인'으로 살았던 '0점 남편'의 곁을 지키며 자식을 키워냈다. 장녀는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술도 대단했다"면서 "식구들이 다 굶어죽게 생겨 결국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섰고, 우리가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도 어머니 덕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여사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 서점을 열고 30여년 운영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8년 출판문화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을 설립, 후원한 이 여사는 "장 선생이 준 큰 선물은 전시회였다"고 기억했다. "전시회 날짜를 결혼기념일 또는 내 생일 근처로 정했었다"며 '츤데레 남편'의 사랑법을 알렸다. 올해 100세를 맞은 이 여사가 지난 5월 '진진묘'를 표지로 한 에세이에 공개했다. ★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의 거장 중 한 명이다. '단순함'의 국내 대표 화가로 '나는 심플하다'라는 그의 말대로 체면과 권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평생을 아이, 어른 모두 좋아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렸다. 까치, 가족, 새, 나무, 마을, 아이 등 지극히 소박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순수함과 선함을 표현하며 자신만의 초연한 예술세계를 정립했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났다. 1930년 경성 제2고보에 입학하지만 일본교사의 왜곡된 행동에 항의한 끝에 학교에서 쫓겨났고, 스무살이던 해에 겨우 양정고보 3학년으로 편입했다. 그림 공부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집안 어른의 질책을 받아 수덕사에서 정양(靜養)을 해야만 했다. 거기서 만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1886-1948)으로 부터 “좋은 화가가 되겠다”는 칭찬을 들었다. 조선일보 주최 ‘전조선학생 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이 수상을 계기로 집안 어른의 후원을 받아 1939년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취직하여 전시팀에서 재직하며 2년간 일했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54~1960)로 근무했지만 6년 만에 작품 창작을 위해 사표를 냈다. "화가에게는 문장이 있을 수가 없다. 단지 내 그림과의 대화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1963 서울을 떠나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의 한강가에 화실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혼자 그림과 술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생전 “그림에 동서양이 있을 수가 없다”며 먹그림도 그렸다. 수안보시대 (1980-1985)로 작가의 말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수묵화적 경향의 절정기를 보여준다. 오랜 유화작업을 통해 다져지며 그려온 형태들이 일휘필지의 순발력에 의해 순간적으로 포착됐다. 먹물의 농담과 붓의 움직임, 결의 모양에 따라 모필의 일회성을 표현, 장욱진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새벽 3시엔 항상 일어나 그림을 그려요. 그림을 그리다 재미가 없으면 붓을 놓고 4년 전 내가 제작한 초당인 관어당에 나와 잉어 먹이를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이 시간 그림 구상을 하지요."(1979년 4월 장욱진의 말)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 내 기능은 그림 그리는 거니까"라고 말하던 그는 1990년 12월 27일, 73세로 타계하기전까지 그린 721점을 남겼다. 평생 자연과 더불어 살며 동화 같은 마음을 간직한 그의 삶의 태도가 녹아 있는 작품은 2014년 4월 개관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모여 있다.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을 모티브로 지어진 '하얀색 미술관'은 중정(中庭)과 각각 방들의 독특한 구성으로 2014년 김수근 건축상, 영국 BBC 위대한 8대 신설미술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장욱진 화백의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클릭☞ K-Artprice() 2019/10/04
[김창열 작품가격 TOP 10] '물방울' 최고 5억...낙찰총액 174억 7위 '불멸의 존재가 되려면 기억될만한 삶을 살아라'(영화 '분노의 질주:홉스앤쇼' 대사 중) 그렇다면, 김창열(90)화백은 이미 살아있는 불멸의 존재다. '물방울'로 한국 현대미술을 평정한 그는 너절하지 않았다. 물방울 속에 모든 것을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린 것처럼 깨끗했다. '돈이 된 작품'. 200점을 제주도에 쾌척했다. 2016년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지구에 개관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자녀에게 물려줄 작품까지 기증해 지어졌다. 타계 후 미술관이 지어지는 것과 달리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 건립을 맞이한 '행복한 작가'다. '미술품은 결국 공공재'다. 2013년 자녀들에게 작품을 물려주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가 건강이 악화되자 마음을 바꿨다. 자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나라 후대에 물려주는 길을 선택했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인 그는 한국전쟁 당시 월남해 제주도에서 1년여간 피난 생활이 인연이 됐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꼭 가볼만한 미술관'으로 꼽혀 연간 6만명 넘게 관람객이 이어지고 있다. 평생 열정을 바친 거대한 대작들이 전시되어 '물방울 회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는 “내 작업의 전체, 내 인생의 전부를 다 내줬다”고 했다. 물방울은 가난이 준 선물이었다. 1972년 파리 근교 마구간에서 살았을때다. 화장실이 없어 밖에서 물통을 만들어놓고 세수를 했다. 어느 날 아침, 세수하려고 대야에 물을 담다 옆에 뒤집어둔 캔버스에 물방울이 튀었다. "크고 작은 물방울이 캔버스 뒷면에 뿌려지니까 햇빛이 비쳐서 아주 찬란한 그림이 되더라고요.” 그때부터였다.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냈고 그 '물방울은 김창열'이 되었다. 70~80년대 파리에서 '물방울을 대신할 한국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절제와 겸손함, 그리고 고집스러운 소재의 반복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다니엘 아바디 前 프랑스 쥬 드 폼 국립현대미술관장) 물방울은 시대에 따라 옷을 갈아입었다. 80년대부터는 캔버스가 아닌 마대의 거친 표면에, 80년대 중반부터는 마대에 색과 면을 그려 넣어 동양적 정서를 살렸다. 90년대부터 천자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화면 전반에 배치한 ‘회귀’ 시리즈가 탄생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절망 속에서 핀 희망, 초심이 담겨서일까. 물방울 그림은 70년대와 80년대 시기의 작품이 인기다. 그가 한 점 한 점 찍어낸 물방울들은 '진짜 물방울' 같아 보기만 해도 바로 홀린다. 지난 5년간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은 455점이 경매에 나와 357점 팔렸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약 173억원의 매출로, 낙찰총액 7위를 기록했다. 국민화가 이중섭(8위)을 넘고 박수근을 추격중으로, 호당 가격은 230만원으로 나타났다. 최고가는 지난 2016년 케이옥션 홍콩경매에서 5억1282만원에 낙찰된 '물방울' (195×123cm)로 1973년 마포에 유채로 그린 그림이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 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357점중 감창열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김창열 물방울 1973 마포에 유채 195×123cm K옥션 홍콩 2016.03.25 ▲2.김창열 물방울 No.L11977 린넨에 유채145.5×112.1cm K옥션2018.03.21 ▲3.김창열Waterdrops 1977 캔버스에 유채 152×152cm K옥션 홍콩 2015.03.15 ▲4.김창열Water Drops1977 마대에 유채162×130.5cm 서울옥션 홍콩2015.05.31 ▲5.김창열물방울1977 마대에 유채162.2×130.3cm K옥션2018.05.23 ▲6.김창열 물방울 1974 마대에 유채 146×114cm 서울옥션 홍콩2016.04.04 ▲7.김창열 회귀 ENS 83031982~83 마대에 유채 181.8×227.3cm K옥션 2015.07.14 ▲8.김창열ENS N 421978 마대에 유채150×150cm 서울옥션 홍콩2015.05.31 ▲9.김창열물방울1979 마대에 유채162×130.2cm 서울옥션2018.12.13 ▲10.김창열 물방울 1977~78 마대에 유채 180×226.5cm 서울옥션 홍콩2016.05.29 : 70년대 중후반 작품이 절대적인 강세다. 최고가 10순위 중 9점이 모두 70년대 중후반 작품으로, 특히 76~79년 작품 선호도가 높다. 이 시기 물방울은 영롱하면서 견고하고, 화면 전체를 균일하게 꽉 채운 구성미가 돋보인다. 제작 시기와 물방울 상태에 따라 가격 편차도 달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작 기법으로는 시즌별 성격 구분이 되지만, 작품가격은 연도별로 차등이 심한 편이다. 미술시장에선 100호 기준, 제작년도에 따라 10배 이상의 큰 폭으로 차이난다.현재 70년대 중후반 6~8억선, 80년대 이후 7000만~1억선이다. 물방울이 줄고 여백이 늘어난 2010년 이후는 7000만~8000만원에 형성되어 있다. 2000년 전후의 ‘한자’시리즈는 시장에서 선호도가 낮은 편으로 집계됐다. 지난 5년간 김창열 물방울 최고가 낙찰은 해외법인에서 거래됐다. 10순위 중 서울옥션과 K옥션 양대 경매사의 낙찰 최고가를 비교해보면, 5개씩 순위가 나눠져 비등해 보이지만, 실적은 K옥션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서울옥션 5건(4,6,8,9,10위) 중 9위를 제외한 나머지 4건이 서울옥션 홍콩세일에서 판매됐다. K옥션 5건(1,2,3,5,7위) 중 홍콩세일 3건, 국내 2건이다. 이 중에 홍콩에서 1위, 국내에서 2위 기록을 냈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단색화 열풍 속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얼핏 극사실화처럼 보이지면 간결한 터치로 완성된 이면에선 명상적이고 추상적인 면모를 동시에 발산하는 김창열 화법의 저력 덕분이다.앞으로 90년대 이후의 '한자' 시리즈 작품이 주목된다. 문자와 결합된 물방울은 작가가 전력투구한 '물방울 회화의 완결판'으로 미술사적인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 "물방울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무색무취한 게 아무런 뜻이 없지. 그냥 투명한 물방울이에요." 1972년 파리 살롱 드 메에 입선한 이후 본격적인 물방울 시리즈가 탄생했다. 고집스럽게 반복한 물방울의 상징적 투명함은 당시 하이퍼 리얼리즘의 등장으로 파리에서 각광을 받았다. '김창열 물방울'은 변주가 가능했다. 방울방울 영롱한 모습으로 존재성을 각인시켰고, 바닥에 스며들어 생명을 다한 흔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 물방울이 흘러내려 긴 자국을 남기면서 아래부분에 가서 가까스로 맺혀있기도 하다. 그림은 눈속임이다. 멀리서 보면 진짜 물방울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면 물감과 붓질의 흔적만 있다. 그는 평생 물방울을 그리면서 "영혼과 닿을 수 있겠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김창열 화업 50년'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 2013년 8월 25일 오전이었다.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 여든 네 살의 화백과 마주 앉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은발의 머리와 하얀 수염이 이어져 도사같은 모습도 풍겼지만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중력이 작용한 피부는 얼굴을 자꾸 아래로 당겼다. 군데 군데 검버섯이 얼룩졌지만 눈빛만은 투명했다. 호기심이 가득해 작고 까만 눈이 입을 따라다녔다. 질문을 눈으로 듣는 듯 했다. 합장하듯 조심스럽게 물컵을 들어올릴때마다 양손의 떨림이 그대로 전달됐다. 그 해 봄 전립선암 수술을 한 후였다. 손 떨림 증상으로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다는 소문이 났다. 그는 "양손을 다 쓰는데 손이 떨리면 한 손으로 받치고 그림을 그린다"며 "젊었을 때보다는 필력이 달라졌다"며 담담했다. 50년동안 그림만 그린 화가. '어떤 작가로 남고 싶냐'고 물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길게 늘어진 하얀 턱수염 사이로 말 문을 열었다. "너절하지 않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느긋하고 나지막하게 나온 말을 잡아 “너절한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라고 되묻자, 그는 '그것도 몰라?'라는 시선으로 작은 눈을 동그랗게 모았다. "있으나 마나 하는 작가지요." 1929년 평북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수학하고 1966년에서 1968년까지 뉴욕 아트 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이후 프랑스에 정착하여 프랑스는 물론 유럽 각지와 미국, 일본 등지에서 개인전과 국제전을 가지며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추구했다. 갤러리현대에서 1976년 이후 2013년까지 12회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다. 2004년 파리 국립 쥬 드 폼 국립미술관(the Musee du Jeu de Paume)과 2012년 대만 국립미술관(National Taiwan Museum of Fine Arts)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바 있다. 1996년 프랑스문화훈장,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김창열 화백의 그림과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클릭☞ K-Artprice() 20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