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250억 1위...2019국내 경매시장 낙찰총액 10순위(표) 2020/01/15
김환기·이우환·박수근·박서보·김창열, "경매 나오면 낙찰" 지난해 김환기 작품은 250억어치가 팔렸다. 서울옥션, 케이옥션등 국내 미술품경매사에 출품된 김환기 작품은 123점. 이 가운데 90점이 낙찰, 낙찰률 73%를 기록했다. 15일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서 낙찰총액 상위 10순위를 공개했다. 미술시장 대세로 꼽히는 김환기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2위에 오른 이우환의 선전도 돋보인다. 이우환 작품은 185점중 131점이 팔려 낙찰총액 135억원을 기록했다.지난 5년간 '바람 시리즈'가 최고가를 경신하며 상승세다. 국내 생존 작가중 가장 비싼 작가다. 호당가격은 약 1475만원으로, 최고 낙찰가는 2017년 3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16억6100만원에 팔린 1990년 제작된 '바람과 함께(With Winds)'다. 지난해 낙찰총액 상위 10순위는 르네 마그리트 야요이 쿠사마등 해외 유명 작가와 함께 박수근, 박서보, 김창열 작품이 순위에 있어 눈길을 끈다. 단색화로 부흥기를 맞은 박서보 화백도 경매시장을 휩쓸었다. 낙찰총액 46억선으로 6위에 랭크된 박서보 작품은 56점이 나와 46점 팔려 낙찰률 80%다. '나오기만 하면 팔리는 작품'이다. 현재 호당가격은 372만원선으로 초기 '묘법'이 인기다. 9위에 올라있는 물방울 작가 김창열 화백도 뒷심이 강하다. 보합세를 유지하며 순위권을 지키고 있다. 김창열 화백의 작품도 낙찰률 73%로, 지난해 74점, 28억어치가 팔렸다. 상위 10순위 국내 작가들의 최고가 작품과 작가 분석은 뉴시스 K-Artprice()에서 확인할수 있다. K-Artprices는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대표 김영석)의 데이터 제공으로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다. 이중섭·박수근 국민화가를 비롯해 미술시장 블루칩 작가인 김환기·이우환·천경자·김창열·장욱진과 국내 단색화 열풍을 일으킨 박서보·정상화·윤형근 등 국내에서 거래된 국내외 작가의 2만2400점의 낙찰기록이 포함됐다. 뉴시스 K-Artprice에는 경매 낙찰가 10순위 작가들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분석도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K-Artprice()는 국내 주요 작가들의 작품 시리즈별 작품 가격 분석을 연재할 예정이다. 2020/01/15
[2019 경매시장 결산]낙찰 총액 1565억, 작년보다 629억 줄어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연 매출 규모가 2016년 이전으로 크게 줄어든 약 1565억원으로 집계됐다. 30일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이사장 차대영)와 아트프라이스(대표 김영석)가 발표한 2019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연말 결산에 따르면 낙찰 총액은 약 1565억원(국내 경매사 해외법인 포함)이다. 2018년 2194억원, 2017년 1900억원, 2016년 1720억원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결과로, 사상 유례없이 미술시장이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김영석 감정위원장은 “올해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가 수년 전으로 퇴보한 것은 그만큼 미술시장 경기가 크게 위축된 반증이며, 단순히 단색화 열풍이나 거품이 꺼졌다는 평가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 어느 때보다 미술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경기 부양책을 고민할 시기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대상은 국내에서 운영되는 8개 경매사(서울옥션, K옥션, 마이아트옥션, 에이옥션, 아이옥션, 아트데이옥션, 칸옥션, 꼬모옥션)에서 1월부터 12월 말까지 진행한 온오프라인 경매의 분석결과이다. 참고로 서울옥션의 비공개 이브닝세일 낙찰총액도 포함됐고, 서울옥션 블루 12월 26일 및 K옥션의 12월 30일의 온라인 경매는 제외됐다. 전체 집계결과 총 출품작은 2만5962점. 낙찰작은 1만7279점으로 낙찰률 66.55%를 기록했다. 2018년은 총 출품작 2만6290점중,낙찰 1만7175점., 낙찰률 65.33%였다. 2017년은 총 출품작 2만8512점중 1만8623점이 팔려 낙찰률 65.32%였다. 주목할 점은 지난해와 비교해 똑같은 낙찰작품과 비슷한 낙찰률였음에도 낙찰 총액이 큰 폭으로 낙찰총액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이는 김환기 최고가 경신에도 불구하고, 단색화 열풍 저조 및 미술경기 위축 등의 부정적인 요인들이 훨씬 많았던 결과로 해석된다. 김환기의 작품은 약 249억6000만원어치가 팔려 낙찰률 72.95%로 낙찰총액 1위를 차지했다. 2018년에도 1위로 약 354억7000만원, 낙찰률 81.68%를 기록했었다. 반면, 르네 마그리트가 약 72억4750만원으로 개인별 최고 낙찰가 1위에 올랐다. 2018년에는 루이스 부르주아가 약 95억1400만원으로 1위였다. 국내 8개 경매사의 총 거래액은 1565억. 이 가운데 서울옥션이 약 823억원으로 전체 규모에서 52.6%를 점령했다. 작년(2018년 약1286억원ㆍ58.6%, 2017년 약 950억원ㆍ50%)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선두다. 반면 K옥션은 약 574억원ㆍ36.7%를 기록해 작년(2018=715억원ㆍ32.6%, 2017=약 739억원ㆍ39%) 대비 큰 폭으로 매출규모가 줄었다. 결국 양대 경매사가 국내 경매시장의 89%로 작년(2018=91%, 2017=89%)에 이어 여전히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 규모에서 경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큰 상태이며, 양대 경매사의 비중 역시 90% 대의 절대적인 비중을 유지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김영석 감정위원장은 “미술시장에 대한 경기 부양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건강한 생태계와 균형발전을 위한 상생의 지원육성책, 미술품 소비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도 여전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경매사별 상위 5순위 낙찰총액을 살펴보면, ▲서울옥션 823억원(2018=약1286억원),▲K옥션 574억원(약715억원),▲마이아트옥션 49억원, ▲아이옥션 38억원 ▲에이옥션 37억원’ 순이다. 여기에서 지난해에 72억원으로 3순위였던 아트데이옥션이 32억원으로 6순위로 떨어진 것이 눈길을 끈다. 작품 경매는 회화에서 점차 다양한 품목으로 확산중이다. 현재 미술품 경매에서 장르별로 차지하는 비중은 회화부분이 지난해 77.8%(2017년 79.7%)에 비해 크게 줄어든 55%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3년 연속 줄어든 수치다. [[[[:newsis_bold_start:]]]]◆낙찰가 기준 30순위...김환기 1위 2위는 이우환, 3위 마그리트 [[[[:newsis_bold_end:]]]] 올해 국내 미술품 경매에 출품된 작품의 낙찰가 기준 30순위를 살펴보면, 여전히 11점을 포함시켜 ‘김환기 열풍시대’를 이어갔으며, 1위엔 72.5억원으로 르네 마그리트가 새롭게 등극했다. 1위인 김환기가 약 250억원으로 지난해(약355억원) 보다 약 100억원 이상 감소한 금액을 기록했다. 2위는 지난해와 같이 이우환 134억원으로 지난해(152억원)보다 20억원 정도 감소했고, 3위는 르네 마그리트(72.5억원), 4위는 박수근(60.3억원), 5위는 마르크 샤갈(45.8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낙찰총액 기준 30순위에서 해외 작가 비중은 8명으로 25%였으며, 이 중에 현재 생존 작가는 지난해 6명보다 다소 늘어난 10명(33.3%)으로 집계됐다. 10순위 주요 작가의 더욱 자세한 낙찰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9/12/30
'미술시장 불황' 빈말 아니었네...거래금 4482억 전년比 9.3%↓ 화랑가의 '미술시장 불황'이라는 말이 입증됐다. 30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19 미술시장실태조사(2018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작품거래금액 4482억 원(전년대비 9.3% 감소), 작품거래 수 3만9368점(전년대비 10.2% 증가)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화랑의 작품 판매금액은 2013년을 제외하고 2000억 원 이상 규모를 유지하다가 처음으로 1900억 원대로 하락했다. 이는 매출규모 10억 원 이상의 화랑들에서 약 500억 원 정도 작품판매가 줄어든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경매시장은 불황속 호황이다. 작품 판매규모는 1500억 원대(해외 개최 경매 미포함)를 돌파하면서 조사 이래 가장 높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작품가격대 1억 원 이상 작품 판매 비중이 경매 총 거래금액의 56.9%를 차지,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매 회사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중간 매출규모의 경매회사가 부재하면서 10억 원 미만과 50억 원 이상 매출 경매회사만 남아있는 양상이다. 아트페어는 증가세다. 2018년도 아트페어 수는 2014년도 대비 54.3% 늘어 총 54개이며 작품판매금액은 17.6%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화랑참가형 아트페어 수는 거의 동일하나, 작가참가형 아트페어(‘14년 15개→’18년 33개)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18년 화랑참가형 평균 1점당 판매 작품가격 약 1,400만원, 작가참가형 약 88만원) 미술관 및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전시 공간(복합문화공간 등 40개)을 추가하여 2018년도 유료전시관람 규모 현황을 조사했다. 개최된 전체 전시 2,924회 중 유료전시는 684회, 유료전시 관람객은 993만3414명이다. 미술시장실태조사는 2009년에 처음 실시됐다. 올해 조사는 2018년 기준으로 주요 유통영역인 화랑(460개) 경매회사(10개), 아트페어(54개)와 공공영역인 미술관(244개)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로 진행됐다. 2019 미술시장실태조사 보고서는 2020년 2월 중 조사에 응답한 유관기관과 온라인 신청자에게 배포할 예정이며, 자세한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누리집 자료공간(www.gokam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9/12/30
[윤형근 작품가격 TOP 10]잔소리 싹 뺀 '누리끼리한 검은 그림' 최고 4억 국내미술시장은 '장인과 사위가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 비싼 그림(85억)의 작가 수화 김환기(1913~1974)가 장인이고, 단색화가 윤형근(1928~2007)이 사위다. 스승과 제자에서 가족이 됐다. 스승의 집에 드나들다 수화의 장녀 김영숙과 결혼했다. 장인과 사위였지만 나이 차이가 불과 15살밖에 나지 않아 선후배 같았고 예술 동지로 끈끈했다. 사위와 장인, 같은 추상화가지만 판은 완전 다르다.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등 색점이 빛나는 김환기와 달리 윤형근은 거무튀튀한 갈색과 검은색을 썼다. 김환기는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윤형근은 장인 작품을 "잔소리가 많고 하늘에서 노는 그림"이라고 견제했다. 자신은 "잔소리를 싹 뺀 외마디 소리를 그린다"고 했다. 그림처럼 묵직해 '침묵의 화가'로 불렸던 윤형근은 '한국현대미술의 침목'이 되고 있다. 미술시장 '김환기 대세'속에 윤형근의 진격이다. 생전 사후 장인도 못 누렸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후 11년만에 회고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첫 수출 전시로 베니스 포루트니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회고전을 열고 있다. "어떤 고요의 순간,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원한다면, 포르투니미술관의 윤형근 전시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호평속에 11월까지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꼭 봐야 할 전시'로도 꼽혔다. 윤형근은 일명 '단색화 4인방'(박서보 하종현 정상화 윤형근)으로 2015년부터 특히 활기가 돌았다. 2017년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인 뉴욕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서는 작품이 완판, 한국의 단색화가로 명성을 높였다. 누렇고 검은 그림. 깊은 수묵향이 풍기지만 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비주의와 단색화 열풍속에 격이 계속 높아졌다. 6~7년전, 1978년작 30호 크기 작품은 3600만원이었다. 하지만 3년전엔 1억2000만원, 최근에는 2억5000만원 선에 거래된다. 현재 최고가는 1977년 제작한 '엄버 블루'로 4억7064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2016년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낙찰됐다. 지난 5년간 윤형근의 그림은 252점이 경매에 나와 213점이 팔렸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약 100억원의 매출로, 낙찰총액 9위에 올라있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 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 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262점중 윤형근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윤형근 Umber-Blue1977린넨에 유채67.7×199.7cm 서울옥션 홍콩2016.11.27 2윤형근 Untitled1978마대에 유채162.6×130.3cm 서울옥션 홍콩2015.05.31 3윤형근 무제1990린넨에 유채193.8×253.5cm 서울옥션 홍콩2015.10.05 4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 Blue1997캔버스에 유채208.5×333cm 서울옥션 홍콩2015.11.29 5윤형근 Umber-Blue1975~78린넨에 유채116.8×91cm K옥션 홍콩2016.05.29 6윤형근 무제 1989린넨에 유채145.5×97cm K옥션2017.10.18 7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1996린넨에 유채97×162.2cm K옥션2019.03.20 8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1993린넨에 유채97×162.2cm K옥션2019.01.23 9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1993린넨에 유채97×162.2cm K옥션2018.05.23 10윤형근 Burnt Umber and Ultramarine1996린넨에 유채97×162.2cm K옥션2018.03.21 = 최고가 10순위를 분석한 결과, 70년대 작품이 선호도가 가장 높다. 70년대 중반에서 80년 초반까지 작품이 시장 가격을 이끌고 있다. 70년대 작품 가격을 살펴보면 소품 중심으로 형성됐다. 3호 크기 3500만원, 30호 크기 2억5000만원 전후로 10호 미만은 호당 1300만~1500만원선으로 파악됐다. 최근 5년간 낙찰가격 상위 10순위 중 1~5위까지 모두 서울옥션과 K옥션의 홍콩경매에서 기록을 세웠다. 특히 1~4위까지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했다. 반면 6~10위까지는 모두 K옥션 국내 경매의 기록이다. 모두 90년대 초중반 작품이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선 상대적으로 시장 선호도가 높은 70년대 작품의 큰 거래는 보기드문 것을 알 수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국내의 경우 윤형근의 검은색 바탕을 크게 선호하지 않은 편이지만, 해외는 동양적인 정신성에 빗대어 깊이감으로 받아들인다는 평가다. 국현 서울관 초대전과 베니스 포르투니미술관 회고전이 호재로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형근 작품가격은 제작 연대, 번짐, 컨디션(보존상태) 등 3가지가 주요 변화요인이다. 70년대는 얼룩이 넓게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부드러움이 돋보이고, 기둥은 대개 2개인 경우가 많고, 바탕색은 갈색톤이 배어 있다. 80년대는 바탕의 검은 색조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번짐이 적어지는 편이다. 90년대는 검은 색조 바탕이 아주 진해지고, 번짐은 거의 없으며, 단단하고 경직된 느낌의 넓은 벽면기둥이 주를 이룬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은 각진 부분이 더 심해지고, 건조한 거친 느낌, 딱딱하고 유광의 느낌이 강해진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70년대~80년대 초반 작품은 지속적인 상승세로 전망했다. 최고가 2위를 차지한 70년대 말 100호 작품이 2015년에 3억원 초반에 낙찰된 후 현재 시장에서 4억~5억원 선에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 인복 많은 화가다. 극내에서 평생 좌파로 찍혀 핍박받았지만 해외에서 온 미술인들이 그를 어둠에서 구원했다. 1974년 미국의 미술평론가 조셉 러브가 한국을 방문했을때다. 누리끼리하고 검은 작품을 보고 한 눈에 빠졌다. "한국 시골의 김칫독처럼 단순하고 흙냄새가 풍긴다"며 일본 동경화랑 창업자인 야마모토 타카시에게 알렸다. 야마모토 타카시는 1975년 단색화의 시발이 된 박서보 이동엽 서승원 허황 권영우의 그룹전 ‘5가지 흰색전’을 기획한 인물이다. 타카시는 1976년 윤형근의 첫 일본 개인전을 열고, 그의 서문을 일본에서 활동하던 이우환에 맡겼다. 42년 후인 2018년. '미술계 히딩크'로 불리던 마리 바르토메우 국립현대미술관장 눈에 들었다. 살아있는 단색화가들도 초대 받지 못한 자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윤형근 회고전이 열렸다. 당시 마리 관장과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윤형근을 제대로 조명하면 한국미술의 풀릴 수 있는 실마리가 많다"며 "단색화의 범주에서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윤형근의 진면모를 총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고 기대감은 적중했다. 2018년 8월 4일부터 12월 16일까지 열린 '윤형근 회고전'은 32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미술관 개인전 최고 관람객을 기록했다.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굳이 따지면 우리나라 윤형근을 단색화의 원조라고 할수 있지만, 그를 단색화 틀안에 넣기에는 옹졸해진다"고 했다. 간결하고 단순한 단색화로만 알려진 그의 진가는 베니스에서 입증했다. 포루투니 미술관에서 회고전은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와 달랐다. 고풍스런 미술관의 낡은 벽돌 벽과 나무 바닥과 조우하면서 강렬한 감동을 선사했다. 묵직한 울림을 전하며 명상적이라는 평이 쏟아졌다. 누리끼리한 검은 그림. 처음부터 어두운 작업은 아니었다. 장인 김환기의 영향을 받아 밝은 색채를 사용했었다. 작업이 변한건 1973년 ‘반공법 위반’의 누명을 쓰고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온 후부터다.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1973년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으로 부정 입학했던 학생의 비리를 따져 물은게 죄가 됐다. 레닌 모자를 쓴다는 이유로 잡혀가 '반공법 위반' 죄목이 붙어 고초를 겪었다. 총 3번의 복역과 치안당국의 감시를 받는 핍박 속에서 채색 그림은 사라졌다. 극도와 분노와 울분이 검은 색면들로 흘러 내렸다. 미술교사도 그만두고 뚜렷한 직업 없이 요시찰인물로 등록된 채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하기 시작한건 그의 나이 만 45세였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서정을 대신한 장인 김환기의 그림과 달리, 윤형근의 누런 작품들은 전란과 핍박속에서 살아남은 피와 땀의 기록이다. 색채는 엄버와 블루 두가지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은 후 테레빈유와 린시드유를 적당히 타서 농담을 조절했다. 이를 큰 붓에 푹 찍어 면포나 마포 위에 내려 그으며 10년간 매달렸다. 1928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6남2녀 차남으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역사적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파평윤씨 문정공파 대장손으로 아버지 윤용한은 경성고보 출신 지식인이었지만 식민지 시기 낙향, 서예와 사군자를 그렸던 문인화가였다. 어쩌면 금수저 출신이지만 식민지탓에 군국주의를 경험하며 녹록치않은 인생이 이어졌다. 1945년 청주상고를 졸업한 후 미원금융조합에 취직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 사직서를 내고 지나가는 트럭을 잡아 가출하듯 서울로 상경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회 입학생이 되면서 스승인 김환기와 인연이 이어졌다. 반골기질이 강했던 그는 미군정청의 ‘국립 서울대 설립안’에 반대했다가 제적됐고, 이후 홍익대학교로 편입할 때에도 김환기가 그를 이끌었다. 1974년 7월 뉴욕에서 타계한 김환기의 죽음을 통보받고 윤형근은 "너무나 불쌍하고 뭔지 모르게 한없이 원통해서 밤새도록 통곡을 했고" 죽음같은 고독속으로 빠져들었다. 말이 없이 살던 그는 "지상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라며 초월해졌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인의 죽음에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고, 허무할 소다"라고 일기를 썼던 그도 2007년 12월 28일 담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였다. 격랑의 시대를 살아낸 사연이 흙빛의 그림 속에 다 녹아있다. 말년에 번짐도 없이 나온 '검은 그림'은 ‘죽음을 생각하라(memento mori)'는 경구로도 보인다. 윤형근 그림과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클릭☞ K-Artprice() 2019/10/06
[장욱진 작품가격 TOP10]1949년 그린 '독' 7억 최고...낙찰총액 90억 10위 #그림은 절로 크지 않는다. 화가는 그림을 낳지만, 그림을 키우는 건 컬렉터다. 시작가는 6억5000만 원. 낙찰되면 2014년 작가의 '진진묘'(1970)가 기록한 역대 최고가(5억6000만 원)을 넘게 된다. 경매장에 오른 '독'(45.8×38cm). 그동안 알려진 화풍과는 사뭇 달랐다. 새·나무·자동차·사람, 동심과 밝은 익살이 가득한 그림들과 달리 어둡고 묵직했다. '된장 맛'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은 우리민족의 질곡의 역사가 담겼다. 1949년 세상에 나와 한국전쟁을 겪고 모진 풍파를 거치면서도 질기게 살아냈다. 그렇게 '깨지지 않은 독'은 68년만에 긴 잠에서 깨어났다. 2017년 3월 서울옥션 경매, 경매사의 '이 작품 팔립니다' 응원과 함께 6억5000만원에 나온 '독'은 1분도 안돼 7억에 올라섰다. '7억!. 풍진 세월을 둥글게 말아 거무튀튀하게 덩어리가 된 '독'은 살아있음의 환희를 누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낙찰받아 '국가 미술품'으로 소장됐다. "나는 심플하다.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다"고 외쳤던 장욱진(1917~1990)화백의 작품이다. 한 개인의 소장품 아닌 국민 모두가 볼 수 있는 '국가 소장품'이 되기까지 사연이 있다. 한 미술품 수집가의 사랑이 빚은 열정 덕분이다.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컬렉터 이우복 前 대우 회장 컬렉션이었다. 8호 크기 '독'은 신사실파 제 2회전에 전시한 그림으로 한국 추상미술사의 초창기를 수놓은 의미가 큰 작품이다. 장욱진은 한국 추상화 선구자들이었던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과 1948년 결성한 ‘신사실파’ 동인이었다. 당시 장욱진이 '독'을 포함, 유화 13점을 전시했는데 구도와 도상의 상징성으로 전시 작품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뒤 행적이 묘연해졌다가 1970년대초 이우복 회장에게 나타났다. 화폭이 너덜너덜해진 그림이었지만 화상은 몸값으로 100만원을 불렀다. 당시로서 거액이었지만 이 회장은 군말없이 돈을 건넸다. 이후 70년대 말 비행기에 갈라지고 찢어진 '독'을 실어 프랑스 파리로 작품 수리를 보냈다. 당시 수복 작업을 했던 재불 원로작가 김기린 화백은 "작품 자체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힘이 느껴져, 삼개월간 작업실에서 온갖 정성을 다해 수리했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렇게 되살아난 '독'은 오랫동안 '이우복 컬렉션'에 속해 있다가 2000년 발행된 장욱진 전작 도록에 실렸다. 1940년대 작품중 희귀한 초기작으로, 장욱진의 개성과 독창성이 잘 드러난 역작으로 평가받았고, 47년만인 개인 수장고에서 나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의 유통기한은 거꾸로 간다. 지난 5년간 장욱진의 그림은 355점이 경매에 나와 262점 팔렸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약 90억원의 매출로, 낙찰총액 10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 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 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262점중 장욱진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장욱진 독1949캔버스에 유채45.1×37.7cm 서울옥션2017.03.07 ▲2.장욱진나무와 새와 모자 1973캔버스에 유채26.5×34.2cm 서울옥션2017.11.09 ▲3.장욱진두 인물1959캔버스에 유채40.5×31cm , 서울옥션2018.09.12 ▲4.장욱진 월목1963캔버스에 유채53.5×38cm , 서울옥션2017.04.26 ▲5.장욱진 들1974캔버스에 유채33×24.6cm 서울옥션 홍콩2016.11.27 ▲6.장욱진 나무와 새와 모자1973캔버스에 유채27.3×34.8cm K옥션2019.03.20 ▲7.장욱진 가족1973캔버스에 유채17.5×25cm K옥션2015.03.10 ▲8.장욱진나무1986캔버스에 유채34.8×24.2cm K옥션2017.08.30 ▲9.장욱진길1987캔버스에 유채35×35cm K옥션 2015.07.14 ▲10.장욱진아침1986캔버스에 유채45.5×23.2cm K옥션2017.12.12 :작품은 10호(53×40cm) 이상의 크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작은 그림' 일색이다. 2017년 같은 해에 낙찰된 2점 중 5호가 3억4000만원으로 2위를 차지한 반면, 10호 작품은 3억으로 4위를 차지했다. 물론 같은 해 다른 5호는 1억9000만원으로 8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매 낙찰가 10순위를 작품 크기에 따라 분석해보면 2호 1점(7위), 4호 1점(5위), 5호 4점(2,6,8,9위), 6호 1점(3위), 8호 2점(1,10위), 10호 1점(4위) 등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소품들만 있다 보니, 크기의 작은 차이나 화면의 구성미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일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장욱진 소품의 위력은 지난 2011년 1월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장욱진 20주기'전에서 보여줬다. 7억에 팔린 '독'도 이 전시에 소개됐었다. 미술시장 유행을 잘 타지 않는 대표적인 작가로, 지난 5년간 낙찰총액 10순위 안을 지키고 있다. 작품의 유통량도 적당하고, 꾸준한 스테디셀러로 분석됐다. 다만 장기적으로 불황이 지속되는 영향으로 낙찰기록의 등락폭은 있다. 낙찰기록 상위 10순위 중 반복 세일을 통해 2위와 6위를 차지한 1973년 작품 ‘나무와 새와 모자’의 경우, 2017년에 비해 2019년에 9000만원 정도 떨어졌다. 하지만 이처럼 짧은 시기에 리세일 한 경우엔 소장자의 사정이나 경매 조건, 한정된 경매장의 고객 구성 등에 따라 낙찰 기록이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 작품가격은 작가의 연령대에 따라 편차가 큰 편으로 나타났다. 50대 중반이었던 1970년대 초중반 작품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 5년간 상위 10순위에서 70년대 50대 중반에 그린 작품은 4점(2,5,6,7위)이다. 이 시기 작품의 공통점은 단란한 가족상을 그렸다는 점이다. 따뜻한 느낌이 감도는 서정성이 돋보인다. 지난 5년간 국내법인 경매에서 9건이 최고가로 낙찰돼 내수시장에서 매우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옥션이 5건(1~5위) 이중에 5위는 서울옥션 홍콩법인이다. K옥션도 5건(6~10위)를 기록했다. 상위 5순위까지 서울옥션에서 낙찰, 하위 5순위는 K옥션에서 낙찰된 것을 보면, 경매시장에서의 장욱진 작품가 낙찰기록은 서울옥션의 완승인 셈이다. 2017년부터 연이어 높은 낙찰기록 5건(1,2,4,8,10위)을 세웠다. 2018년에 3위, 2019년에도 6위를 기록한 점을 감안할 때, 상위 10순위 중 무려 7건을 기록한 셈이다. 최고가 낙찰이 세워진 2017년은 가나문화재단에서 장욱진의 탄생 100주기전을 개최한 해로, 결국 작가 마케팅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느냐도 낙찰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 장욱진 그림에 다시 눈 뜨게 한 작품이다. 2014년 서울옥션 온라인 경매에서 5억6000만 원에 낙찰돼 '장욱진 최고가'를 기록했다. 장욱진이 1970년에 그린 유화 진진묘(眞眞妙41×32㎝)는 장욱진 화백 아내의 법명이다 2017년 가나문화재단이 마련한 장욱진 탄생 100주기 기념전때 장녀 장경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경운박물관 관장)는 "사실 어머니는 이 그림을 썩 좋아하지 않으셨다"며 이야기를 전했다. "어느날 어머니가 그랬다. '다른 화가들은 부인 초상화를 잘도 그려주는데 당신은 왜 내 그림을 한번도 그려주지 않느냐'고 했고, 이 말에 들은 척도 않던 장 화백이 불현듯 덕소로 가 어머니 초상을 그려왔다. 아버지는 당시 불경읽는 어머니를 본 뒤 일주일간 작업에 열중했다. 춥고 혹독한 덕소에서 진진묘를 그린후 서울로 올라와 석달을 앓았다. 그 때 어머니는 '이거 하나 그려놓고 나와 인연을 끝내려는 건가'라는 생각도 하셨다고 한다." 부인 이순경 여사는 서울대 교수도 마다한 채 '자유인'으로 살았던 '0점 남편'의 곁을 지키며 자식을 키워냈다. 장녀는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술도 대단했다"면서 "식구들이 다 굶어죽게 생겨 결국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섰고, 우리가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도 어머니 덕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여사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 서점을 열고 30여년 운영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8년 출판문화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을 설립, 후원한 이 여사는 "장 선생이 준 큰 선물은 전시회였다"고 기억했다. "전시회 날짜를 결혼기념일 또는 내 생일 근처로 정했었다"며 '츤데레 남편'의 사랑법을 알렸다. 올해 100세를 맞은 이 여사가 지난 5월 '진진묘'를 표지로 한 에세이에 공개했다. ★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의 거장 중 한 명이다. '단순함'의 국내 대표 화가로 '나는 심플하다'라는 그의 말대로 체면과 권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평생을 아이, 어른 모두 좋아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렸다. 까치, 가족, 새, 나무, 마을, 아이 등 지극히 소박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순수함과 선함을 표현하며 자신만의 초연한 예술세계를 정립했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났다. 1930년 경성 제2고보에 입학하지만 일본교사의 왜곡된 행동에 항의한 끝에 학교에서 쫓겨났고, 스무살이던 해에 겨우 양정고보 3학년으로 편입했다. 그림 공부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집안 어른의 질책을 받아 수덕사에서 정양(靜養)을 해야만 했다. 거기서 만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1886-1948)으로 부터 “좋은 화가가 되겠다”는 칭찬을 들었다. 조선일보 주최 ‘전조선학생 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이 수상을 계기로 집안 어른의 후원을 받아 1939년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취직하여 전시팀에서 재직하며 2년간 일했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54~1960)로 근무했지만 6년 만에 작품 창작을 위해 사표를 냈다. "화가에게는 문장이 있을 수가 없다. 단지 내 그림과의 대화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1963 서울을 떠나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의 한강가에 화실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혼자 그림과 술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생전 “그림에 동서양이 있을 수가 없다”며 먹그림도 그렸다. 수안보시대 (1980-1985)로 작가의 말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수묵화적 경향의 절정기를 보여준다. 오랜 유화작업을 통해 다져지며 그려온 형태들이 일휘필지의 순발력에 의해 순간적으로 포착됐다. 먹물의 농담과 붓의 움직임, 결의 모양에 따라 모필의 일회성을 표현, 장욱진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새벽 3시엔 항상 일어나 그림을 그려요. 그림을 그리다 재미가 없으면 붓을 놓고 4년 전 내가 제작한 초당인 관어당에 나와 잉어 먹이를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이 시간 그림 구상을 하지요."(1979년 4월 장욱진의 말)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 내 기능은 그림 그리는 거니까"라고 말하던 그는 1990년 12월 27일, 73세로 타계하기전까지 그린 721점을 남겼다. 평생 자연과 더불어 살며 동화 같은 마음을 간직한 그의 삶의 태도가 녹아 있는 작품은 2014년 4월 개관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모여 있다.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을 모티브로 지어진 '하얀색 미술관'은 중정(中庭)과 각각 방들의 독특한 구성으로 2014년 김수근 건축상, 영국 BBC 위대한 8대 신설미술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장욱진 화백의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클릭☞ K-Artprice() 2019/10/04
[김창열 작품가격 TOP 10] '물방울' 최고 5억...낙찰총액 174억 7위 '불멸의 존재가 되려면 기억될만한 삶을 살아라'(영화 '분노의 질주:홉스앤쇼' 대사 중) 그렇다면, 김창열(90)화백은 이미 살아있는 불멸의 존재다. '물방울'로 한국 현대미술을 평정한 그는 너절하지 않았다. 물방울 속에 모든 것을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린 것처럼 깨끗했다. '돈이 된 작품'. 200점을 제주도에 쾌척했다. 2016년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지구에 개관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자녀에게 물려줄 작품까지 기증해 지어졌다. 타계 후 미술관이 지어지는 것과 달리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 건립을 맞이한 '행복한 작가'다. '미술품은 결국 공공재'다. 2013년 자녀들에게 작품을 물려주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가 건강이 악화되자 마음을 바꿨다. 자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나라 후대에 물려주는 길을 선택했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인 그는 한국전쟁 당시 월남해 제주도에서 1년여간 피난 생활이 인연이 됐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꼭 가볼만한 미술관'으로 꼽혀 연간 6만명 넘게 관람객이 이어지고 있다. 평생 열정을 바친 거대한 대작들이 전시되어 '물방울 회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는 “내 작업의 전체, 내 인생의 전부를 다 내줬다”고 했다. 물방울은 가난이 준 선물이었다. 1972년 파리 근교 마구간에서 살았을때다. 화장실이 없어 밖에서 물통을 만들어놓고 세수를 했다. 어느 날 아침, 세수하려고 대야에 물을 담다 옆에 뒤집어둔 캔버스에 물방울이 튀었다. "크고 작은 물방울이 캔버스 뒷면에 뿌려지니까 햇빛이 비쳐서 아주 찬란한 그림이 되더라고요.” 그때부터였다.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냈고 그 '물방울은 김창열'이 되었다. 70~80년대 파리에서 '물방울을 대신할 한국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절제와 겸손함, 그리고 고집스러운 소재의 반복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다니엘 아바디 前 프랑스 쥬 드 폼 국립현대미술관장) 물방울은 시대에 따라 옷을 갈아입었다. 80년대부터는 캔버스가 아닌 마대의 거친 표면에, 80년대 중반부터는 마대에 색과 면을 그려 넣어 동양적 정서를 살렸다. 90년대부터 천자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화면 전반에 배치한 ‘회귀’ 시리즈가 탄생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절망 속에서 핀 희망, 초심이 담겨서일까. 물방울 그림은 70년대와 80년대 시기의 작품이 인기다. 그가 한 점 한 점 찍어낸 물방울들은 '진짜 물방울' 같아 보기만 해도 바로 홀린다. 지난 5년간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은 455점이 경매에 나와 357점 팔렸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약 173억원의 매출로, 낙찰총액 7위를 기록했다. 국민화가 이중섭(8위)을 넘고 박수근을 추격중으로, 호당 가격은 230만원으로 나타났다. 최고가는 지난 2016년 케이옥션 홍콩경매에서 5억1282만원에 낙찰된 '물방울' (195×123cm)로 1973년 마포에 유채로 그린 그림이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 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357점중 감창열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김창열 물방울 1973 마포에 유채 195×123cm K옥션 홍콩 2016.03.25 ▲2.김창열 물방울 No.L11977 린넨에 유채145.5×112.1cm K옥션2018.03.21 ▲3.김창열Waterdrops 1977 캔버스에 유채 152×152cm K옥션 홍콩 2015.03.15 ▲4.김창열Water Drops1977 마대에 유채162×130.5cm 서울옥션 홍콩2015.05.31 ▲5.김창열물방울1977 마대에 유채162.2×130.3cm K옥션2018.05.23 ▲6.김창열 물방울 1974 마대에 유채 146×114cm 서울옥션 홍콩2016.04.04 ▲7.김창열 회귀 ENS 83031982~83 마대에 유채 181.8×227.3cm K옥션 2015.07.14 ▲8.김창열ENS N 421978 마대에 유채150×150cm 서울옥션 홍콩2015.05.31 ▲9.김창열물방울1979 마대에 유채162×130.2cm 서울옥션2018.12.13 ▲10.김창열 물방울 1977~78 마대에 유채 180×226.5cm 서울옥션 홍콩2016.05.29 : 70년대 중후반 작품이 절대적인 강세다. 최고가 10순위 중 9점이 모두 70년대 중후반 작품으로, 특히 76~79년 작품 선호도가 높다. 이 시기 물방울은 영롱하면서 견고하고, 화면 전체를 균일하게 꽉 채운 구성미가 돋보인다. 제작 시기와 물방울 상태에 따라 가격 편차도 달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작 기법으로는 시즌별 성격 구분이 되지만, 작품가격은 연도별로 차등이 심한 편이다. 미술시장에선 100호 기준, 제작년도에 따라 10배 이상의 큰 폭으로 차이난다.현재 70년대 중후반 6~8억선, 80년대 이후 7000만~1억선이다. 물방울이 줄고 여백이 늘어난 2010년 이후는 7000만~8000만원에 형성되어 있다. 2000년 전후의 ‘한자’시리즈는 시장에서 선호도가 낮은 편으로 집계됐다. 지난 5년간 김창열 물방울 최고가 낙찰은 해외법인에서 거래됐다. 10순위 중 서울옥션과 K옥션 양대 경매사의 낙찰 최고가를 비교해보면, 5개씩 순위가 나눠져 비등해 보이지만, 실적은 K옥션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서울옥션 5건(4,6,8,9,10위) 중 9위를 제외한 나머지 4건이 서울옥션 홍콩세일에서 판매됐다. K옥션 5건(1,2,3,5,7위) 중 홍콩세일 3건, 국내 2건이다. 이 중에 홍콩에서 1위, 국내에서 2위 기록을 냈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단색화 열풍 속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얼핏 극사실화처럼 보이지면 간결한 터치로 완성된 이면에선 명상적이고 추상적인 면모를 동시에 발산하는 김창열 화법의 저력 덕분이다.앞으로 90년대 이후의 '한자' 시리즈 작품이 주목된다. 문자와 결합된 물방울은 작가가 전력투구한 '물방울 회화의 완결판'으로 미술사적인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 "물방울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무색무취한 게 아무런 뜻이 없지. 그냥 투명한 물방울이에요." 1972년 파리 살롱 드 메에 입선한 이후 본격적인 물방울 시리즈가 탄생했다. 고집스럽게 반복한 물방울의 상징적 투명함은 당시 하이퍼 리얼리즘의 등장으로 파리에서 각광을 받았다. '김창열 물방울'은 변주가 가능했다. 방울방울 영롱한 모습으로 존재성을 각인시켰고, 바닥에 스며들어 생명을 다한 흔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 물방울이 흘러내려 긴 자국을 남기면서 아래부분에 가서 가까스로 맺혀있기도 하다. 그림은 눈속임이다. 멀리서 보면 진짜 물방울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면 물감과 붓질의 흔적만 있다. 그는 평생 물방울을 그리면서 "영혼과 닿을 수 있겠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김창열 화업 50년'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 2013년 8월 25일 오전이었다.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 여든 네 살의 화백과 마주 앉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은발의 머리와 하얀 수염이 이어져 도사같은 모습도 풍겼지만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중력이 작용한 피부는 얼굴을 자꾸 아래로 당겼다. 군데 군데 검버섯이 얼룩졌지만 눈빛만은 투명했다. 호기심이 가득해 작고 까만 눈이 입을 따라다녔다. 질문을 눈으로 듣는 듯 했다. 합장하듯 조심스럽게 물컵을 들어올릴때마다 양손의 떨림이 그대로 전달됐다. 그 해 봄 전립선암 수술을 한 후였다. 손 떨림 증상으로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다는 소문이 났다. 그는 "양손을 다 쓰는데 손이 떨리면 한 손으로 받치고 그림을 그린다"며 "젊었을 때보다는 필력이 달라졌다"며 담담했다. 50년동안 그림만 그린 화가. '어떤 작가로 남고 싶냐'고 물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길게 늘어진 하얀 턱수염 사이로 말 문을 열었다. "너절하지 않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느긋하고 나지막하게 나온 말을 잡아 “너절한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라고 되묻자, 그는 '그것도 몰라?'라는 시선으로 작은 눈을 동그랗게 모았다. "있으나 마나 하는 작가지요." 1929년 평북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수학하고 1966년에서 1968년까지 뉴욕 아트 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이후 프랑스에 정착하여 프랑스는 물론 유럽 각지와 미국, 일본 등지에서 개인전과 국제전을 가지며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추구했다. 갤러리현대에서 1976년 이후 2013년까지 12회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다. 2004년 파리 국립 쥬 드 폼 국립미술관(the Musee du Jeu de Paume)과 2012년 대만 국립미술관(National Taiwan Museum of Fine Arts)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바 있다. 1996년 프랑스문화훈장,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김창열 화백의 그림과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클릭☞ K-Artprice() 2019/10/02
[정상화 작품가격 TOP10]'벽지같은 그림' 11억...낙찰총액 357억 3위 50여년간 캔버스에 붓질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이 그림인가?"라고 한다. 1979년에도 그랬다. 파리에 살던 그가 서울 전시를 위해 잠시 귀국했을 때다. 뭉쳐온 그림을 풀어보던 김포 공항 세관에게 "이건 그림"이라고 했는데, "그림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전시장에서도 마찬가지. 관람객들이 "그런데 그림은 어디 있느냐"고 되물은 적도 있다. 처음 그림이 팔린 것은 그의 나이 55세 때다. "그림이 돈으로 바뀐다는 것이 이상했다"는 그는 "그 돈으로 최고급 물감과 재료를 샀다"고 했다. 미술시장에서 일명 '벽지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정상화(87) 화백이다. 박서보·이우환·하종현·정창섭 등과 함께 '단색화 어벤저스'다. 2014년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떠올랐다. 당시 "웃돈을 얹어 주겠다"는 컬렉터도 생길 만큼 그의 단색화는 해외 경매와 해외 아트페어에서 팔려나갔다. '단색화 거장'으로 등극한 그는 지난 2014년 갤러리 현대에서 5년만에 대규모 개인전도 초대됐다. 팔순이 넘어 뜨거운 열풍에 휩싸였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처럼 고요했다. 단색화로 한 우물만 파온 그를 세계적인 한국추상미술거장 이우환(83)화백은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고 했다. 색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그림. 40년전 세관의 반응처럼 그의 그림은 여전하다. 단색으로 보이지만 단색이 아니다. "단색 속에도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색을 사용한다"는 정 화백은 "다 같은 흰색이 아니라 흰색 속에 여러 색을 혼합해가며 사용하며, 보이는 걸 그리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걸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서양의 단색으로만 칠해진 미니멀즘과는 확연한 차이는 내공의 깊이감이다. 작업방식은 '뜯어내기'와 '메우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이 독자적인 작업 방식을 40여년간 고수했다. 시간이 숙성되어 있다. 무한반복하는 시지푸스처럼 날마다 뜯고 메우기를 수행처럼 행한다. 크고 작은 네모꼴 모자이크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흰색, 검은색, 자주색, 청색으로 보이는 단색의 작품은 무아지경 몰입의 절정체다. 무(無)감정적, 무(無)의도성으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작가의 실험정신이 꿈틀대는 조형된 예술작품이다. 그는 “현대미술의 요체는 실험정신"이라고 여긴다. 작품 제목은 '무제'. "그림은 말이 많으면 못쓴다"는게 그의 철학이다. 20세기 고뇌의 시간을 지나 러브콜이 이어진 그의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은 없어서 못파는 그림이 됐다. 박서보 화백과 나란히 단색화 열풍을 이끈 정 화백은 국내 경매사 낙찰총액은 박 화백을 앞섰다. 정상화 화백의 작품은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5년간 약 357억원의 매출을 기록, 김환기 이우환에 이어 낙찰총액 3위를 기록했다. 박서보 화백은 4위다. 정 화백의 작품은 지난 5년간 250점이 경매에 올라 213점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213점중 정상화의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 정상화 무제 05-3-252005캔버스에 아크릴릭258.8×193.8cm 서울옥션 홍콩2015.10.05 ▲2.정상화 Untitled 97-10-51997캔버스에 아크릴릭290×218.5cm 서울옥션 홍콩2016.05.29 ▲3.정상화 무제 88-9-21988캔버스에 아크릴릭162.5×130.5cm 서울옥션 홍콩2016.11.27 ▲4.정상화 무제 82-7-111982캔버스에 아크릴릭162.2×130.3cm K옥션 홍콩2016.03.25 ▲5.정상화 Untitled 82-5-211982캔버스에 아크릴릭160.7×96.7cm 서울옥션 홍콩2015.11.29 ▲6.정상화 무제 77-8-121977캔버스에 아크릴릭162.2×130.3cm K옥션 홍콩2015.10.04 ▲7.정상화 Untitled 88-7-11988캔버스에 아크릴릭162×130.3cm 서울옥션 홍콩2015.05.31 ▲8.정상화 무제 87-10-201987캔버스에 아크릴릭161×131cm 서울옥션 홍콩2015.10.05 ▲9.정상화 Untitled 93-6-121993캔버스에 유채161.8×130.5cm 서울옥션 홍콩2015.05.31 ▲10.정상화 무제 75-3-C1975캔버스에 아크릴릭162.2×130.3cm K옥션2016.12.13 : 단색화 열풍의 가장 큰 수혜작가다. 최고가 10순위는 단색화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5~2016년에 형성됐다.이후 지난해부터 단색화 열풍이 다소 소강 국면인 시장에서 다소 주춤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2016년 이후엔 최고가 기록 경신이 없고, 시장에서도 잠잠한 편이다. 작품가격은 작가의 대외 활동이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 단색화 열풍을 리드한 정상화와 뒤늦게 합류한 박서보의 행보가 달라진 차이다. 정상화 화백을 프로모션하는 갤러리현대는 조용하고 은밀한 반면, 박서보 화백을 프로모션하는 국제갤러리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 양 갤러리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고가를 살펴보면 2005년 작품이 2015년 10월, 약 11억3000만원에 1위를 차지한 이후 기록이 유지되고 있다. 시장에선 100호 기준 작품가격이 6~8억 선에 다소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비슷한 연령의 단색화 작가에 비해 1970년대 작품보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 작품의 선호도가 높다. 같은 크기의 100호라도 70년대 보다 90년대 초반 작품이 더 가격이 높다. 최고가를 분석하면 70년대 2점(6,10위) 80년대 작품 5점(3,4,5,7,8위) 90년대 2점(2,9위) 2000년대 1점(1위)이다. 10순위 중 1위(200호), 2위(300호) 제외한 나머지 3~10위는 모두 100호지만, 실제 시장에선 다양한 크기가 골고루 유통되는 편이다. 초기엔 흰색이 선호됐으나, 점차 특유의 깊고 맑은 블루 색감으로 중심으로 색이 들어간 단색조 작품의 선호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1,2순위 역시 붉은 색과 푸른 색 작품이 차지했다. 화면 바탕에 고령토를 기본적으로 밑에 칠한 다음, 캔버스 천을 일정한 간격으로 접었다가 펴기를 반복해 인위적인 클랙이 가게 하는 제작 기법으로 인해 작품 보존과 관리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15~2016년 사이에 해외법인의 기록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해외에서 먼저 시작된 단색화 열풍의 직접적인 수혜자였다고 판단할 만하다. 국내법인 1건(10위) vs 해외법인 9건(1~9위)으로 최고가 10순위 중 서울옥션 7건이 모두 홍콩법인에서 기록을 세운 점이 주목된다. 서울옥션홍콩 7건(1,2,3,5,7,8,9위) K옥션홍콩 2건(4,6위) K옥션 1건(10위)이다. 작가는 갤러리현대의 집중적인 프로모션을 받고 있으면서, 정작 최고가 기록은 대부분 서울옥션에서 세웠다는 점이 흥미롭다. = 미술평론가 이일은 "정상화의 회화는 해독이 불가능한 회화다.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읽혀지는 회화가 아니다"고 했다. 로랑 헤기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 관장은 "정상화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단순함, 객관성 및 무심함은 마치 건조한 흙, 갈라진 강둑, 오래된 벽, 돌이나 나무뿌리와 같은 자연 속의 대상이 주는 느낌과 닮아있다"고 평했다. 처음부터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에 의한 저항이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철저한 구상 작품을 했다"는 정 화백은 "발로 밀고 손으로 쥐고 구기는 등 실패를 통해 얻어진 물체의 결과가 내 추상의 시작"이라고 했다. 정지된 고요함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치열하다. 작품 속의 패턴은 끝없이 생겨나고, 덮여나가고, 또 떼어지는 무수한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간과 투쟁해 승리한 작품이다. 작가가 본격적으로 격자 형식의 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점점 격자화되고 규칙화되었다. 캔버스 위에 약 5mm 두께의 고령토를 초벌 칠하고, 그것이 완전히 마르기를 기다리는 제1단계의 작업만으로 일주일 이상이 소요된다. 보다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제 2단계는 마른 캔버스 뒤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가로, 세로 접는 것으로, 그 위 고령토를 원하는 만큼 들어내는 과정 역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직, 수평으로, 때로는 그물처럼 오가는 균열에 의해 만들어진 무수한 네모꼴에 하나씩 물감을 얹고, 떼어내고 덮어나가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1년이 지나간다. 작가는 눈을 떠 잠드는 순간까지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인다. 작품에는 치열한 고뇌의 흔적과 노동의 시간이 오롯이 아로새겨져 있다. 1967년부터 25년간 일본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다 1992년 귀국했다. 경기 여주시 산북면에 터를 잡고 현재까지 꾸준히 작품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2008년 대장암 수술을 받고도 작업을 계속해 1년만에 탈장해 재수술을 했지만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여든이 넘어서도 일할 수 있으니 좋다”고 했던 정 화백은 최근 건강이 예전같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1932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알아보는데 반드시 언급해야 할 주요 작가 중 한 명이다. 2011년 프랑스 생테티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단색화 주역으로 해외 미술관에서 러브콜이 이어졌고, 2017년 영국 레비 고비 갤러리(LévyGorvyGallery)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구겐하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시즈오카 현립미술관, 도쿄 현대미술관과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정상화 화백의 그림과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클릭☞ K-Artprice(k-artprice.newsis.com) 2019/10/01
[박서보 작품가격 TOP10]단색화 밀리언 달러 작가...347억 낙찰총액 4위 2010년 인터뷰때다. 그는 자신이 곧 "100만 달러, '밀리언 달러 작가'가 된다"고 했다. 당시에 그 말은 그저 자신감에 찬 허세로 들렸다. 언제나 "누가 뭐래도 내가 1등", "아시아 최고 작가"라는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 찬 말을 보는 사람들마다 날렸던 시절이다. 2000년대 초반 이런 말도 했다. 중국 유명 미술펑론가 황두가 "한국에 위대한 작가 박서보가 있다. 중국 작가들이 한국의 박서보를 가장 닮고 싶어한다"는 글을 발표했었을때다. 당시 그는 “나는 애당초 그런걸 생각하고 있으니까, 처음으로 알아챈 놈이 있구나"라며 의기양양했다. 그는 '한국미술=박서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실제로 박서보(88)는 그 이름 석 자만으로 한국미술시장에서 그대로 통하는 ‘바코드’ 같은 고유명사다. ‘살아있는 현대미술’,'셀프 마케팅' 대가로도 유명하지만 그는 '빈말의 화가'가 아님을 증명했다. 2012년부터 그의 오래된 '묘법'이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붓을 놓는다'는 팔순 이후부터 후끈한 봄날이 이어진 '행복한 화가'다. 그의 말처럼 "어느날 기가 막힌 시대가 오기 시작했다." 2016년 영국 런던 화이트 큐브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데이미언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 스타 작가뿐 아니라 전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취급하는 세계 최고의 화랑이다. 이후 세계 최고 화랑들의 러브콜이 이어져 파리 페로탕 갤러리, 국립 그랑팔레미술관, 도코갤러리, 홍콩 아시아소사이티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세계미술계가 주목하는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 거장'이 됐다. “변해도 추락하고 변하지 않아도 추락한다”는 말은 그의 대표 어록이다. 지난 5월 화업 60년만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며 감개무량해했다.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에 앉았지만, 기세는 여전했다. 올해 새롭게 그렸다는 신작 '묘법(描法)No.190227’은 "10000만 달러를 준대도 안판다"며 "미술시장에 절대 내놓지 않을 것"이라며 묻지도 않은 셀프 마케팅에 돌입, 주목케했다. 신작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몸 반쪽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뒤에도 10시간씩 몰두해 "치유를 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라고 했다. '묘법'은 1980년대까지 잠잠했다. 지금 가장 인기인 100호 크기는 300만원에도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단색화 열풍이 마법을 부렸다.2017년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묘법'이 14억7400만원에 팔리면서 '밀리언 달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박서보 최고가 기록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 평균 호당가격이 10여년 전보다 10배 올랐다. '밀리언 달러' 작가가 된 2015년 부터 호당 400만원을 넘겼다.(아파트로 따지면 평당 400만원이라는 얘기다) 단색화 거장으로 단색화 붐에 앞장선 그의 작품은 그동안 얼마나 거래되고 팔렸을까? 박서보의 작품은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5년간 약 347억원의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378점중 315점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고가는 2016년 서울옥션 9월 경매에서 11억원에 낙찰된 '연필 묘법'(1981)이 차지했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315점중 박서보의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박서보 묘법 No.1~81 1981마대에 연필, 유채 227.5×182cm , 서울옥션 2016.09.27 ▲2. 박서보 Ecriture No.2-80-81 1980, 1981 마대에 연필, 유채 181.2×226.7cm 서울옥션 홍콩 2015.11.29 ▲3 박서보 Ecriture No.4-78 1978 마대에 연필, 유채 130×162cm, 서울옥션 홍콩 2016.04.04 ▲4 박서보 묘법 No.23-77 1977 캔버스에 유채, 연필 130.3×193.9cm K옥션 2018.03.21 ▲5 박서보 묘법 No.3-75 1975 캔버스에 연필, 유채 130.3×162.2cm K옥션 2016.09.28 ▲6 박서보 묘법 No.1-79-81 1979~81 마포에 유채, 연필 130.3×193.9cm K옥션 2018.05.23 ▲7 박서보 Écriture No.10-81 1981 마대에 연필, 유채 130×162cm , 서울옥션 홍콩 2017.11.26 ▲8 박서보 Ecriture No.3-82 1982 마대에 유채, 연필 195.3×130cm 서울옥션 홍콩 2015.05.31 ▲9 박서보 묘법 No.214-85 1985 천에 유채, 연필 75×150cm 6 K옥션 홍콩 2016.05.29 ▲10 박서보 묘법 No.68-78-79-8 마대에 연필, 유채 131×162cm 서울옥션 홍콩 2015.10.05 : 시장 선호도가 국내법인 5건(1,3,4,5,8위) vs 해외법인 5건(2,6,7,9,10위)으로 집계되어 국내외에서 고르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만 한다. 1970년대 중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연필 묘법' 작품이 강세다. 최고가 10순위 모두 캔버스 바탕에 유채와 연필로 제작한 묘법이란 점이 공통점이다. 10순위에서 살펴보면 75~80년 사이 작품이 5점(78~81년·79~81년 포함), 81~85년 5점으로 100호~150호 크기가 인기다. 현재 1975~1978년 인기 작품은 10억~12억원, 80년대 초반은 15% 정도 낮은 8억~10억선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것ㅇ로 분석됏다. 단색화 열풍의 대표적인 수혜작가로 국내 내수시장보다 해외에서 더 큰 주목 후에 역수입된 케이스다. 1~10위까지 낙찰가격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게 눈길을 끈다. 최고가는 1975~1980년대 초반까지 초창기 작품이 차지하면서, 안정적 기반을 구축해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색화 열풍이 시작된 2015년 기점으로 세워진 150호 기준 10억선 가격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도 120호 기준으로 8~9억원 대를 지켜간다는 것은 같은 수준의 150호일 경우 현재 최고가 1위 기록인 11억원을 충분히 넘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이우환(1936년생)의 1~10순위 낙찰총액이 약 120억원에 가까운 반면, 박서보(1931년생)의 작품가격은 약 85억에 불과하다. 이제 국내외에서 재평가가 시작된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5년 정도의 관리가 매우 중요하고, 앞으로 다른 시기의 작품들에 대한 관리 상황이 시장 평가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추상주의 작가 싸이 톰블리(1928~2011)의 낙서같은 선묘 작업과 비교되기도 한다. 박서보 화백은 묘법을 "1967년 둘째 아들이 그리고 지우고 또 쓰는 글씨 연습을 보고 발견했다"고 했다. 일명 '체념의 미학'이 근간이다. "어느날 아들 녀석이 국어 공책에 숙제를 하면서 공책 네모 안에 닭자 하나를 써넣으려고 하는 걸 우연히 봤어요. 그 주먹만한 손으로 연칠을 잡고 네모 안에 예쁘게 글자를 집어 넣어야 하는데, 획 하나를 집어넣으면 다른 획이, 네모 밖으로 삐져나오고 몇번을 시도하다가 에라 안되는 구나 하고 신경질을 부리면서 쓴 글자를 죄다 직직하고 연필로 지워버리더라구요. 그걸 보고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프레임에 뭘 넣는다는게 불가능한거구나 하는 생각이요"(박서보 단색화에 담긴 삶과 예술-케이트 림과 인터뷰중) 연필로 비슷한 선을 무한히 긋는 연작 ‘묘법(描法)’은 '그리기도 아니고', '글쓰기도 아닌' 그림 제목 그대로 '묘한 그림'은 1970년대 본격화됐다. 박 화백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56년 김영환, 김충선, 문우식과 함께 '4인전'을 통해 반국전 선언을 발표, 한국미술의 전위적 흐름을 이끌며 앵포르멜, 단색화의 기수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온 미술가다, 1950년대 문화적 불모지였던 한국미술에 추상미술을 소개한 화가로, 한국 현대미술이 지난 60여년간 걸어온 발자취와 맥을 같이 한다. 전후 한국현대미술을 세계화시킨 장본인, 서울대와 맞선 홍익대 대표 교수이자 '박서보 사단'을 만든 인물이다. 최연소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를 지내며 '젊은날 앞에 가는 똥차 비키시오'하며 종횡무진 전진했다. 전쟁과 해방,독재와 민주화, 아날로그와 디지털시대를 건너오며 "하루 14시간씩 작업하며 평생 위기속에 살아왔다”고 주장한다. 1994년 서보미술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국민훈장 석류장(1984), 옥관문화훈장(1994), 은관문화훈장(2011)을 수훈했다. 여전히 그의 ;묘법' 단색화를 미니멀리즘회화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사람들끼리조차 단색화를 서구 미니멀리즘의 변형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태생부터 달라. 우리는 무(無)에서 출발한 거야. 서양의 현대미술 대부분은 어떤 특정한 경향에 대한 이원론적 견해인 거지. 서양의 모노크롬은 다색주의의 상대적 개념에서 나온 거라서 완전 하얀색이나 완전 검정이지. 그런데 우리는 희끄무레하거나 거무스름하다는 거야. 희끄무레하다는 것은 도공들이 흙 밟아서 도자기 만들 때 일부러 유약을 발라 순도 100% 흰색이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한 색을 만든 거랑 비슷한 거지. 또 온돌방에 장작불을 지피면 천장이랑 서까래가 거무스름해지잖아. 수십 년 시간이 흘러 그을음이 쌓이며 나타나는 거무스름한 색. 내 작품이 블랙이 아니라 거무스름한 색이 나는 게 바로 그거야. 무한대로 들어가는 정신의 깊이가 있는 거지.” 그는 “그림에서 비운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경지"라며 "이제 탐욕이나 잡스러운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그 어떤 자극적인 얘기에도 흥분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산다"고 했다. 박서보의 그림과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2019/09/30
[천경자 작품 TOP10]'초원 Ⅱ' 20억 최고...한국화단 독보적 걸크러쉬 '활화산처럼 살다 바람처럼 갔다' 2015년 10월 30일, 흑백 사진으로 돌아왔다. 1992년 서울 압구정 자택에서 찍은 그 모습은 23년 후, 흰 국화와 노란 백합으로 탑을 만든 거대한 영정 사진으로 자리했다. 91세로 세상을 떠난 천경자(1924~2015)화백의 깜짝 놀란 귀환이었다. 특히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몽고메리 교수는"8월 6일 별세 소식을 미국 시간으로 10월18일에 접했다"고 전해 큰 충격을 줬다. 미국 뉴욕에서 장녀 홀로 장례를 치뤄 "유골함이 어디있는지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에 열린 천 화백 추도식은 생전 함께했던 원로 작가들의 애통함과 분노가 쏟아졌다. "화려했던 생전과 달리 너무 초라하다. 괴기스런 일 아니냐"고 했다. 사망 1년전부터 천 화백의 생존 여부가 불투명해 세상이 떠들썩했다가 들려온 허망한 소식이었다. '한국화가'로 동양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화가로 한국화단의 독보적인 '걸크러쉬’였다.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의 패션리더였다. 파격적인 표범무늬 옷을 입고, 표범무늬 터번을 두르기도 했다. 동시대에도 웬만한 여성은 소화하기 힘든 패션이지만 천 화백에게 어울렸다. 가늘게 그린 눈썹과 붉게 칠한 입술, 담배를 무는 그녀는 늘 주변을 압도했다. ‘천경자풍 채색화’로 수묵일색이었던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파격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서양화 같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한국의 근현대 전통적 채색기법을 지켜온 대표작가다. 천경자는 국내 미술시장 블루칩 작가 반열에서 유일한 여성 작가다. 이전부터 작품가격은 상승세였지만 사망이후 인지도가 더 높아졌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화가가 죽으면 작품을 남긴다'는 미술계에서 회자되는 말처럼 화가의 죽음은 작품값을 올리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천 화백이 세상을 떠난 2015년부터 최고 낙찰가격 행진이 이었졌다. 지난 5년간 천경작 작품은 446점이 나와 326점이 거래됐다. 낙찰률은 73%, 194억치가 팔렸다. 낙찰총액 최고가 5위에 올라있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 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326점중 천경자의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천경자, 초원Ⅱ 초원Ⅱ’ 종이에 채색 105.5×130㎝ . K옥션 2018.9.19 ▲2.천경자,정원(園)1962종이에 채색130×162cm K옥션2016.03.09 ▲3.천경자, 테레사 수녀1977종이에 채색51×43cm 서울옥션2015.12.16 ▲4.천경자, 막은 내리고1989종이에 채색41×31.5cm K옥션2015.07.14 ▲5.천경자, 놀이 종이에 채색89.5×83.5cm 8 서울옥션2018.06.20 ▲6.천경자, 고흐와 함께1996종이에 채색40.5×31.6cm 서울옥션2017.03.07 ▲7.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종이에 채색46×41.5cm 서울옥션2019.06.26 ▲8.천경자, 우수(憂愁)의 티나 1994종이에 채색45×37.4cm 서울옥션2016.06.29 ▲9.천경자, 여인1982종이에 채색47×34.7cm 서울옥션2016.03.16 ▲10.천경자, 여인1977종이에 채색37.5×31.6cm 서울옥션2017.09.19 ★천경자 작품 관전 포인트= 최고가 10순위 합산을 해보면 102억2000만원이다. 단 10점으로 100억을 넘길 수 있는 국내 작가는 손에 꼽힌다는 측면에서 증권으로 치면 '우량주'다. 블루칩작가 반열에서 유일한 여성작가라는 상징성과 낙찰총액 10순위 안의 유일한 '한국화'라는 희귀성도 갖고 있다. 천경자 작품은 크게 '여성 vs 풍경'으로 구분되는데, 보통은 ‘여성이미지’가 절대 강세다. 최고가 10순위 모든 작품도 여성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자화상식 작품에서 애연가였던 자신의 모습처럼 ‘담배피는 여인’이나, 연인에 대한 애증을 표현했다고 할 만한 뱀 그림은 아주 특별한 인상을 전한다. 혐오스러운 뱀도 천경자가 그리면 신비롭고 사랑스럽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천경자의 강인한 여성상에는 아프리카 원시적 초원의 야수 눈동자를 닮았다. 실제 작품을 보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다. 최고가 1위 작품인 '초원Ⅱ'는 천경자 작품세계의 상징성을 담은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 생명성이 넘치는 원시적인 초원과 행복과 만복을 상징하는 코끼리 등에 나체의 여인이 올라타 있어 순수한 영혼으로 태어난 작가 자신을 표현한 듯하다. 평생 원시적 자연을 동경했던 천 화백의 마음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천경자 작품의 특징은 크게 주변 인물을 자화상 형식으로 해석해낸 ‘여성성’, 여행 이미지를 활용해 문학적인 서정성을 담은 ‘생명성(원시성)’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현재 최고가 1위와 2위 작품이 원시적 생명성에 대변되는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천경자는 70년대 초반 유럽 여행을 다닐 정도로 세계여행을 가장 많이 다닌 화가다. 당시엔 해외여행이 매우 힘든 열악한 시절였음에도 아프리카나 헤밍웨이 집을 몇 차례 갔을 정도로 여행마니아 원조였다. 그러다보니 현장이나 이동 중에 그린 작은 크기의 기행화가 많다. 낙찰 최고가 10순위 작품을 분석해보면 K옥션: 1,2,4위(3건) 서울옥션: 3,5,6,7,8,9,10위(7건). 숫자로는 서울옥션이 많지만, 최고가 기록은 K옥션이 크게 앞선다. 단 3점(1,2,4위)으로 10순위 낙찰총액(102억원)의 45%를 차지한다. 전형적인 내수시장 강세 작가! 흥미로운 점은 1~10위 100% 경매사의 국내법인에서 낙찰됐다는 점이다. 낙찰된 연도도 크게 편중되지 않은 점을 볼 때 시장선호도 역시 높게 지속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없습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미인도’를 보고 했던 천경자 화백의 말은 여전히 화자되고 있다. 2015년 10월 바람처럼 떠나가면서 다시 '위작 논란'을 점화시켰다. 국립현대미술관과감정위원들은 진품이라고 했고 천경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작품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해 절필을 선언하고 큰 딸이 있는 미국 뉴욕으로 떠나 영영 한국으로 오지 못했다. 사망과 함께 다시 시작된 '미인도' 위작 논란은 다시한번 미술계를 들썩였다. 반면 검찰은 끝내 '진품'으로 일단락지었고 진품으로 주장했던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6명의 고소건도 지난 8월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은 겨우 0.0002%'라는 프랑스의 뤼미에르 감정팀의 발표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6년 천경자의 '미인도'는 이름 표시 없이 과천관에서 공개됐다. 위작 논란 후 26년만에 일이었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1991년 천경자 화백이 했던 말은 재생되며 영원히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중략)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없습니다." 2015년 10월 30일, 천 화백 추도식에서 장남이 읽은 1978년 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 일부분은 의미심장했다. '서울에 새 눈이 내리고, 내가 적당히 가난하고, 이 땅에 꽃이 피고, 내 마음 속에 환상이 사는 이상 나는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살고 싶어질 것이다. 나의 삶의 연장은 그림과 함께 인생의 고달픈 길동무처럼 멀리 걸어갈 것이다.'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살고 싶어 질 것'이라는 천경자 화백의 40년전 마음은 영원히 그림속에서 떠돌고 있다. 천경자의 그림과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지난 23일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클릭☞ K-Artprice() 2019/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