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신미경·김아영·정은영·갈라 포라스-김 런던서 뭉쳤다

등록 2026-09-28 09:04:15

주영한국문화원 '경계 밖의 기록'…12월31일까지

비누 조각부터 거문도 점령·여성국극·박물관 제도까지

associate_pic
경계 밖의 기록 개막식 전경. 신미경의 비누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여성 작가 4인이 런던에 모였다.

신미경, 김아영, 정은영, 갈라 포라스-김. 세대와 작업 방식은 다르지만 국내외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네 작가가 ‘기록과 기억’을 화두로 한 전시에서 만났다.

주영한국문화원은 신미경·김아영·정은영·갈라 포라스-김이 참여하는 현대미술전 ‘경계 밖의 기록(The Unclassified)’을 펼쳤다. 지난 25일 시작한 전시는 오는 12월31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오는 10월 영국박물관에서 개막하는 한국미술 특별전을 계기로 기획됐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영국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시기에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문화적 대상과 역사가 어떻게 보존되고 기록되며 해석되는지를 들여다본다.

네 작가의 질문은 서로 다르다. 신미경은 비누로 만든 조각을 실제 사람들에게 사용하게 했다. ‘Korean Classic: In Use’(2026)는 한국 미술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사용돼온 석고상을 비누로 재현한 작품이다.

전시에 앞서 영국 각지의 상점과 카페, 대학, 문화기관 등에 설치해 시민들이 직접 사용하도록 했다.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표면이 닳고 형태가 변한 비누 조각은 다시 문화원 전시장으로 돌아와 ‘보존해야 할 예술 작품’이 됐다. 일상의 사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고 보존의 대상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associate_pic
김아영 2채널 영상 ‘PH Express’(2011) *재판매 및 DB 금지


김아영은 1885~1887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다룬 2채널 영상 ‘PH Express’(2011)를 선보인다. 지도와 서신 등 서로 다른 언어와 정치적 입장에서 생산된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하나의 사건도 기록과 재현 방식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는 하나의 고정된 기록이 아니라 남겨진 자료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사이에서 구성되고 기억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associate_pic
정은영 작가 작품 마모 *재판매 및 DB 금지


정은영은 1950년대 전성기를 누린 뒤 주류 문화사에서 점차 사라진 여성국극을 불러낸다.

2008년부터 이어온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통해 영상과 사진, 기록자료뿐 아니라 배우들의 기억과 몸짓, 목소리와 신체에 남은 역사를 추적해왔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Wear(마모)’(2026)에서는 서로 다른 시기의 자료와 작품을 하나의 벽면에 배치해 단일한 연대기로 정리되지 않는 기억과 전승의 방식을 보여준다.

갈라 포라스-김은 박물관과 문화유산 기관의 분류·보존 체계로 질문을 확장한다.

‘Burial chamber scene’(2025)은 직접 관찰할 수 없는 고대 매장 공간을 통해 과거의 대상과 공간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지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All Earth energy sources are known to come from the Sun’(2025)은 자연광과 주변 환경의 변화가 작품에 직접 개입하도록 해 기관의 보존과 관리 체계로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조건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associate_pic
갈라 포라스-김 ‘Burial chamber scene’(2025)은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는 영국박물관 한국미술 특별전과 같은 시기 런던에서 열린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영국박물관이 소장품과 문화유산을 통해 한국미술과 문화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준다면, ‘경계 밖의 기록’은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그 역사와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고 보존돼 오늘의 관객에게 전달되는지를 되묻는다.

차재민 큐레이터는 “영국박물관의 한국 전시를 계기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시기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뿐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다”며 “이번 전시는 네 작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문화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살펴보는 전시”라고 전했다.

지난 24일 개막식에는 헤이워드 갤러리,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델피나 재단 등 영국 미술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전시는 주영한국문화원이 주최하고 러쉬, 소머셋하우스 스튜디오와 협력해 진행한다.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