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마지막까지 붓 놓지 않았다”…‘무한’을 남긴 쿠사마 야요이의 97년(종합)

등록 2026-08-27 20:39:13  |  수정 2026-08-27 21:04:46

14일 도쿄 병원서 별세…향년 97세

환각과 강박을 ‘무한·자기소멸’의 미술로 바꿔

국내선 ‘노란 호박’ 인기…3월 서울옥션 104억5000만원

2013년 대구미술관 대규모 개인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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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AP/뉴시스] 일본인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가 2012년 2월 7일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에서 자신의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27.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자신을 지우기 위해 찍기 시작한 점은 결국 세계를 뒤덮었다.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가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7세.

쿠사마 스튜디오는 2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별세 소식을 알리며 “마지막 날까지 붓을 내려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밝혔다. 평생 천착한 ‘영원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탐구도 마지막까지 이어갔다고 전했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에서 태어난 쿠사마는 어린 시절부터 꽃과 점, 무늬가 자신과 주변 공간을 뒤덮는 환각을 경험했다. 그는 두려움에서 도망치는 대신 그것을 그렸다. 반복되는 점과 그물은 훗날 쿠사마 미술의 핵심인 ‘무한(infinity)’과 ‘자기소멸(self-obliteration)’의 언어가 됐다.

사라지고 싶었던 한 인간의 강박은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알아보기 쉬운 이미지가 됐다.

검은 점이 박힌 노란 호박, 화면을 끝없이 뒤덮는 ‘인피니티 네트’, 거울 속 빛이 무한히 증식하는 ‘인피니티 미러룸’. 쿠사마라는 이름을 몰라도 그의 이미지는 알아보는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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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 쿠사마.쿠사마 스튜디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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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 쿠사마 `새로운 세계를 향한 이정표(Guidepost to the New Worl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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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영화 스틸컷

◆뉴욕의 아웃사이더에서 세계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일본화를 공부한 쿠사마는 일본 미술계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꼈다. 미국 여성 화가 조지아 오키프와 편지를 주고받은 뒤 1958년 뉴욕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전위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뉴욕에서는 도널드 저드 등과 교류하며 거대한 화면을 작은 망으로 뒤덮는 ‘인피니티 네트’를 선보였다. 가구와 사물에 천으로 만든 남근 형태를 빼곡하게 붙인 ‘소프트 스컬프처’, 누드 퍼포먼스와 반전 해프닝 등 회화·조각·행위를 넘나드는 작업을 펼쳤다.

1966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공식 초청도 받지 않은 채 잔디밭에 거울 구 1500개를 깐 ‘나르시스 가든(Narcissus Garden)’을 설치했다. 그는 ‘당신의 나르시시즘을 팝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거울 구를 개당 2달러에 판매하다 비엔날레 측의 제지를 받았다.

그러나 여성이고 아시아인이었던 쿠사마가 당시 뉴욕 미술계의 중심으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남성 작가들에게 차용됐지만 정작 자신은 미술사에서 밀려났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1973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1977년 도쿄의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했다. 이후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인근 스튜디오로 출근해 작업했다. 정신병원은 예술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 삶의 기반이 됐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전시를 계기로 국제 미술계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호박과 거울, 빛과 점을 결합한 몰입형 설치 작업들이 폭발적인 대중성을 얻으면서 ‘현대미술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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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신화/뉴시스】18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관람객들이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의 설치 작품 '인피니트 미러 룸-수백만 광년의 영혼'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2019.06.20.

◆미술관에서 SNS까지…‘무한’이 대중문화가 되다
쿠사마의 ‘인피니티 미러룸’은 관람객이 작품 안으로 직접 들어가 자신의 몸이 수없이 증식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한때 강박과 환각에서 출발한 ‘자기소멸’은 스마트폰과 SNS 시대에 역설적으로 가장 촬영하고 싶은 현대미술이 됐다.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그의 전시가 열릴 때마다 긴 관람 행렬이 이어졌다. 2017년 워싱턴 허시혼미술관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셀피를 찍다 작품을 훼손해 전시실이 일시 폐쇄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시장에서도 쿠사마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아트넷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경매에서 쿠사마 작품은 약 1억9000만 달러어치 거래됐다. 2024년에도 1억5500만 달러의 거래액을 기록했고, 최근 1년간 아시아 생존 작가 경매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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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4억5000만원에 낙찰된 야요이 쿠사마, '인피니티 네트 Infinity-Nets', acrylic on canvas, 130.3☓162cm, 2007. 사진= 서울옥션 제공.2020.3.25.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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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쿠사마 야요이. 사진 제공=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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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옥션에 95억원에 출품된 야요이 쿠사마, Pumpkin (MBOK), 2015 Acrylic on canvas, 130 x 160 cm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에서 ‘노란 호박’…104억5000만원
국내에서도 쿠사마는 검은 점이 뒤덮인 노란 ‘호박’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미술시장에서도 국내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해외 작가로 꼽혔다.

지난 3월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2015년작 대형 회화 ‘Pumpkin(MBOK)’은 104억5000만원에 낙찰돼 국내에서 거래된 쿠사마 작품 가운데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국내 미술관과도 인연이 깊다. 2013년 대구미술관은 ‘쿠사마 야요이: A Dream I Dreamed’를 개최했다. 신작 30점을 포함해 회화·조각·설치 등 118점을 선보인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 순회전이었다.

이듬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도 대규모 개인전이 이어지는 등 쿠사마는 한국에서 미술 애호가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해외 작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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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배소영 기자 = 쿠사마 야요이 '호박(2013)'.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2020.01.22. [email protected]


◆자기를 지우려 했지만 가장 선명하게 남았다
쿠사마는 평생 ‘자기소멸’을 이야기했다.

자신과 사물, 공간의 경계를 점과 그물로 지우고, 거울 속에서 몸을 무한히 증식시켰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던 작업은 역설적으로 쿠사마라는 이름을 세계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선명한 이름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미술뿐 아니라 소설과 시, 퍼포먼스까지 넘나들며 생의 마지막까지 작업했다.

쿠사마 스튜디오는 “그의 뜻을 이어 예술을 통해 세계 사람들에게 미래를 향한 희망과 힘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점 하나로 시작한 그의 ‘무한’은 이제 작가 없는 세계에서 계속 증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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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루이 비통이  세계적인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와 두 번째 협업을 기념해 인천공항에 '노랑 땡땡이' 조형물을 설치했다. 2023.1.09. 사진=이비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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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쿠사마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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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갤러리 S2A 개관 기획전 '쿠사마 야요이 Journey to the Unbounded Universe : 영원한 여정' 전시 개막을 앞둔 13일 서울 강남구 갤러리 S2A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오이(Yayoi Kusama)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 S2A는 한국미술품 최고가 작품인 김환기(1913~1974) 대표작 '우주'(Universe 5-IV-71 #200)의 소장자이자, 미술컬렉터인 김웅기 글로벌세아 그룹 회장이 대치동 사옥에 마련한 갤러리이다. 2022.07.1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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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키아프 서울(Kiaf SEOUL)·프리즈 서울(FRIEZE SEOUL) 2024' 개막식이 열린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프리즈 서울' 전시장에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2024.09.04.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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