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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초록, 검은 레오와 함께 왔다…김보희 갤러리현대 개인전

등록 2026-08-27 0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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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갤러리현대 김보희 작가의 개인전 'TOWARD: There Was Light' 전경. 2026.08.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갤러리현대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 한 면을 뒤덮은 거대한 초록의 정원이 먼저 시선을 붙든다. 화면 오른쪽에는 키를 훌쩍 넘는 열대식물의 긴 줄기와 넓은 잎이 수직으로 치솟고, 왼쪽과 중앙에는 야자수와 크고 작은 관목이 겹겹이 밀집해 있다. 식물 하나하나는 세밀하지만 멀리서 보면 수십 가지 초록이 하나의 거대한 색면처럼 밀려온다.

그런데 이 압도적인 정원 아래 뜻밖의 존재가 있다. 화면 왼쪽 아래 검은 개 한 마리가 앞발을 뻗고 태평하게 누워 있다. 김보희의 반려견 ‘레오’다.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정원에서 레오는 꽃과 나무처럼 자연스럽게 풍경의 일부가 된다.

김보희(74)가 그리는 자연은 멀리 찾아간 절경이 아니다. 제주에서 직접 가꾼 정원과 매일 바라보는 바다, 꽃과 열매,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레오까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그림이 된다.

그 풍경은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는다. 햇빛과 달빛, 계절과 시간에 따라 초록은 수십 가지 색으로 달라지고 바다와 산도 매 순간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김보희는 그 변화를 오래 바라보고 기억한 뒤 다시 화면 위에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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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보희 작가가 26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TOWARD: There Was Light'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08.26. [email protected]


갤러리현대가 26일 펼친 김보희 개인전 ‘TOWARDS: There Was Light’는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the Days’(2022) 이후 4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1988년 ‘검보회 작품전’ 이후 38년 만에 갤러리현대와 함께하는 개인전이기도 하다. 대규모 회화 ‘The Days’(2022)를 비롯해 제주 정원과 바다, 꽃과 열매, 레오 등 작가의 삶 가까이에 존재하는 풍경과 생명을 담은 ‘Towards’ 연작 신작까지 회화 30여 점을 선보인다.

 1952년생인 김보희는 이화여대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7년까지 모교 교수로 재직했다. 이화여대 박물관장을 지냈으며 현재 명예교수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친언니이기도 하다. 제주를 기반으로 자연과 생명의 풍경을 그려온 한국화가로, 올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현지 첫 개인전을 열었다. 아트바젤 바젤 언리미티드에서는 12폭, 가로 6.48m의 대작 ‘The Days’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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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갤러리현대 김보희 작가의 개인전 'TOWARD: There Was Light' 전경. 2026.08.26. [email protected]


◆한 화면에 겹쳐진 어제와 오늘, 내일
“정지된 화면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이곳과 저곳과 그곳이 같은 순간에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경이롭게 생각합니다.”

김보희의 그림에는 하나의 시간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캔버스와 한지 위에 동양화 분채와 물, 아교 등을 섞어 여러 차례 입히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색은 화면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중첩된다. 오랜 시간 자연을 바라본 기억과 그것을 다시 화면으로 옮기는 시간도 그 위에 함께 쌓인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눈앞의 자연을 그대로 옮긴 재현과는 거리가 있다. 서로 다른 순간과 장소에서 경험한 풍경이 작가의 기억과 감각을 통과한 뒤 하나의 화면에서 다시 만난다.

그에게 빛은 자연을 바라보는 감각적 기준이자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매개다. 낮과 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기억한 뒤 자신의 감각과 내면을 더해 다시 구성한다.

1970년대 초기 작업에서부터 빛은 중요한 요소였다. 제주 풍경에 머물기 시작한 뒤에는 빛과 강물 위에 일렁이는 윤슬을 포착했고, 이후 강렬한 햇빛 아래 드러나는 짙은 초록과 바다의 수평선, 달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을 지속적으로 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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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희, Towards, 2026, 캔버스에 채색, 200 × 291 cm *재판매 및 DB 금지


◆정원에서 바다로…시선은 계속 ‘그 너머’를 향한다
전시 제목의 ‘TOWARDS’는 작가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연작명이다. 하나의 목적지에 도달하기보다 끊임없이 ‘그 너머’를 향하는 시선을 뜻한다.

제주에서의 삶은 그 시선을 일상의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게 했다.

직접 가꾼 정원의 야자수와 꽃, 열매와 씨앗, 매일 바라보는 바다와 수평선, 오랫동안 곁을 지켜온 반려견 레오가 작품 속으로 들어왔다. 작은 잎과 씨앗을 들여다보던 시선은 나무와 정원 전체로 넓어지고 다시 바다와 수평선 너머로 향한다.

김보희의 화면에서 작은 생명과 광대한 풍경은 분리되지 않는다. 씨앗에서 정원으로, 정원에서 바다로 향하는 시선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서로 다른 차원의 생명을 연결한다.

전시장도 이 시선의 이동과 빛의 변화에 따라 세 층에 걸쳐 펼쳐진다.

1층에서는 제주 정원의 꽃과 식물, 반려견 레오, 바다와 석양을 담은 ‘Towards’ 연작의 신작을 중심으로 작가의 일상 가까이에서 출발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2층에서는 시선의 거리와 회화의 스케일이 한층 확장된다. 수평선 너머로 열린 바다와 화면을 가득 채운 야자수 잎과 열매, 2022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처음 공개된 뒤 올해 아트바젤 바젤 언리미티드에서 다시 선보인 대규모 회화 ‘The Days’가 자리한다.

지하 전시장에 내려가면 빛은 다시 달라진다. 낮의 다채로운 색채가 사라지고 달빛과 새벽의 어둠 속 자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먹색과 백색, 깊은 청색으로 색채가 압축되고 산과 숲, 물길은 간결한 윤곽과 면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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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갤러리현대 김보희 작가의 개인전 'TOWARD: There Was Light' 전경. 2026.08.2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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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희, Towards, 2026, 캔버스에 채색, 60 × 73 cm *재판매 및 DB 금지


◆어둠이 있었고, 빛이 왔다
전시 제목 ‘There Was Light’는 어둠 속에서 처음 빛이 드러나며 세계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 창조의 순간을 환기한다.

이번 전시에서 빛은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는 수단인 동시에 세계의 색과 형태를 드러내는 회화의 근원적인 조건으로 확장된다.

갤러리현대는 “김보희는 한국화의 전통을 단순히 계승하거나 서구 회화의 형식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 동양화의 재료와 조형 감각을 현대회화의 색면과 확장된 스케일에 유연하게 접목하며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구축해왔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김보희를 ‘제주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라는 익숙한 범주를 넘어 한국화의 조형적 유산을 동시대 회화의 언어로 확장해온 작가로 새롭게 조명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10월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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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희, Towards, 2026, 캔버스에 채색, 130 × 97 c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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