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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선이 만든 산맥…차영석, 화가의 존재를 그리다[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6-07-20 14:56:50  |  수정 2026-07-20 15:18:25

이화익갤러리서 ‘Smudge'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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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익갤러리, 차영석 'Smudge'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멀리서는 안개 낀 산맥이다. 한 걸음 다가서면 풍경은 사라지고 짧은 연필선들이 끝없이 겹쳐진다. 화면은 목판화처럼 거친 결을 드러내다가도 용의 비늘이나 물결을 연상시키는 리듬으로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이 거대한 화면 어디에도 산은 없고, 용도 없다. 차영석(50)이 그린 것은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그리기’다.

그동안 운동화와 시계, 가방과 보석 등 일상의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해온 차영석이 이번에는 대상을 내려놓았다. 구체적인 형태 대신 연필을 쥔 손의 움직임과 호흡, 몸의 긴장, 그날그날 달라지는 시간을 화면에 새겼다.

서울 종로구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차영석 개인전 ‘Smudge(번짐)'는 작가가 약 20년간 이어온 연필 작업의 새로운 전환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반복적인 연필선 자체가 화면의 밀도와 흐름을 만든다.

“처음에 생각한 것은 ‘그리기를 그리자’였습니다. 나의 그리기를 바라보고 관찰하자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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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연필선을 켜켜이 쌓아 완성한 차영석의 'Smudge'. 가까이 다가서면 짧은 선의 반복이, 멀리서 보면 목판화의 결과 용의 비늘을 닮은 리듬이 펼쳐진다. 2026.07.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차영석은 “그전에는 운동화나 가방처럼 구체적인 형태 위에 나의 그리기 방식을 덧댔다면, 이번에는 그리기 자체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2005년부터 사물을 연필로 그려왔다. 빛과 그림자를 배제하고 지우개를 사용하지 않은 채 짧은 선을 반복해 화면을 채웠다. 일상 사물의 형태와 질감을 집요하게 관찰한 그의 작업은 정교한 묘사와 노동집약적인 과정으로 주목받았다. 2009년 금호영아티스트로 선정된 이후 연필을 회화의 언어로 확장하며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2018년 이화익갤러리 개인전 '우아한 노력'에서 그는 파주의 외딴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씩 연필을 잡으며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다.

8년이 흐른 지금도 연필은 그의 손에서 놓이지 않았다. 다만 질문은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왜 그리는가를 묻는다. 사물의 표면을 따라가던 시선은 자신의 몸과 강박, 반복되는 행위 안으로 향했다.

“사물을 계속 그리다 보니 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머무는 듯한 답답함이 생겼어요. '나의 그리기란 무엇인가'를 고민한 지 3년 정도 됐습니다.”

그는 사물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사물을 통과했다. 운동화와 시계, 가방은 그의 손을 단련한 대상이었다. 이제 그 손은 더 이상 구체적인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선이다. 반복되는 선은 사물을 재현하기보다 그리는 행위 자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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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차영석 작가가 연필선으로 완성한 신작 'Smudge'를 설명하고 있다. 멀리서는 수묵 산수 같고, 가까이서는 끝없이 반복된 연필선의 호흡이 드러난다. 2026.07.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신작 ‘Smudge’는 장지 위에 연필로 짧은 선을 이어 그린 작품이다. 수정하거나 문지르지 않는다. 화면의 크기를 정한 뒤 위쪽 끝에서 시작해 선을 쌓아 내려간다. 연필의 농도와 굵기, 손끝의 힘과 호흡에 따라 화면은 미세하게 달라진다.

“연필은 가감이 없어요. 선 하나가 최초의 행위이고, 수정도 문지르기도 없습니다.”

작업에는 톰보 MONO 100과 파버카스텔 Castell 9000 등 6B부터 H 계열까지 다양한 경도의 연필이 쓰인다. 선의 흐름에 변화를 주기 위해 농도를 바꾸고, 심이 무뎌지면 곧바로 다시 깎는다. 원하는 선을 얻기 위해 연필깎이마저 직접 개조했다.

작업하는 날이면 최대 16시간까지 연필을 잡는다. 학교에 나가는 날에도 30분 정도 여유가 생기면 곧바로 책상에 앉는다. 물감을 섞거나 붓을 씻을 필요가 없는 연필은 멈췄다가도 다시 손에 쥐는 순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재료다.

그러나 차영석은 이를 성실함이라는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성실하다고들 하지만 저한테는 성실함이라기보다 그 시간에 굉장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짬이 생기면 앉아서 그리고, 시간을 계속 쌓는다고 생각합니다.”


화면에 쌓이는 것은 선만이 아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몸의 상태에 따라 속도와 선의 밀도는 달라진다. 어떤 날은 손이 자연스럽게 나가지만, 어떤 날은 호흡이 가빠지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지나치게 집중하면 혀가 말리고 숨이 막혀, 의식적으로 호흡을 내쉬며 작업한다.

“그림을 보면 그때 내 몸 상태가 어땠는지 저는 보여요. 호흡이 어땠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가감 없이 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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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석 Smudge_30-35, Pencil, acrylic gouache on Korean mulberry paper, 70 x 57 cm(each),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작업은 수행처럼 보이지만 결코 고요하지만은 않다. 오랜 시간 몸을 숙이고 그리면서 목과 허리에는 통증이 생겼다. 화면의 잔잔한 파동 안에는 손의 리듬뿐 아니라 육체가 견딘 피로와 긴장도 함께 스며 있다.

대형 작업은 방 안에서 전체를 펼칠 수도 없다. 한지를 위아래로 말아 놓고, 눈앞에 드러난 부분만 채우며 조금씩 풀어 나간다. 형태를 만들려는 의식적 개입을 막기 위해 작업 도중 전체 화면을 보는 일도 자제한다. 촬영하거나 전시장에 설치할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 전체를 마주한다.

작가는 화면을 만든 사람이면서 동시에 완성된 화면을 뒤늦게 발견하는 첫 관객이 되는 셈이다.

작업이 끝나면 화면을 180도 돌린다.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쌓인 선의 방향을 뒤집어 중력과 손의 습관이 만든 조형적 질서를 흔들기 위해서다.

“그림을 그릴 때는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고 조형적으로 통제하려 합니다. 그 자체를 흔들어보고 싶었어요. 끝난 뒤 뒤집으면 시작과 끝이 바뀌고, 제가 통제하지 못한 새로운 흐름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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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익갤러리에서 차영석 개인전이 8월 14일까지 열린다.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 제목인 ‘Smudge’는 번짐이나 얼룩을 뜻한다. 그러나 작품의 선은 물감처럼 번지지 않는다. 짧은 선들이 조금씩 밀리고 겹치면서 경계가 흐릿해지고, 그 틈에서 산맥과 파도, 구름 같은 이미지가 생겨났다 사라진다. 이미지는 붙잡을 수 없는 상태로 머문다.

차영석이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이유에는 그의 강박적 성향도 자리한다. 그는 자신이 왜 비어 있는 시간과 공간을 견디지 못하는지 궁금해 약 7년 전부터 혼자 정신분석학과 라캉을 찾아 공부했다고 했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아요. 생활 속에서나 그림에서나 비어 있는 것을 끊임없이 채워나갑니다. 시간의 공백이나 사고의 공백을 그냥 두지 못하고 계속 지속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에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며 학교와 작업을 병행했다. 돈을 벌고, 수업을 듣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하루를 잘게 쪼개 쓰던 습관이 몸에 남았다. 휴가를 가서도 그림을 생각할 만큼 비어 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못했다.

그 강박은 이제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작업을 지속하는 방식이 됐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짧은 선 하나를 부르고, 그 선은 다시 다음 선을 부른다. 그렇게 선이 쌓이는 동안 공백은 화면이 되고, 불안은 리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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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연필선을 켜켜이 쌓아 완성한 차영석의 'Smudge'. 장지 가장자리를 그대로 드러낸 채 설치해, 그리기의 과정과 종이의 물성을 함께 보여준다. 2026.07.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2018년의 '우아한 노력'이 외로움과 시간을 견디며 사물의 세계를 완성한 작업이었다면, 이번 'Smudge'는 그 노력의 근원을 스스로에게 묻는 전시다. 노력은 더 이상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리는 동안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존재의 방식이 된다.

운동화도, 시계도, 가방도 사라졌다. 끝내 남은 것은 연필과 장지, 그리고 시간을 견딘 손이다.

차영석은 이번 전시에서 대상을 완성하지 않았다. 대신 화가라는 존재가 매일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그렸다. 산을 그리지 않았지만 선이 쌓이자 산맥이 나타났고,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지만 화면에는 그의 호흡과 몸, 결핍과 시간이 남았다.

그에게 그림은 결과가 아니라, 화가로 존재하는 시간 그 자체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