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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유 대산루. 서울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누각 위에 사람이 앉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쉽게 다가갈 수 없다.
김상유의 그림은
늘 이 거리에서 시작된다.
초록은 비현실적으로 맑고
건물은 단단하게 고정돼 있다.
그 안에 앉은 사람은
움직일 생각이 없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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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M이 소장한 김상유 ‘대산루’ *재판매 및 DB 금지 |
1990년작 '대산루'.
경북 상주의 누각이다.
2층 구조의 건물 위,
그는 한 사람을 앉혀놓는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
말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가장 멀리 가 있는 사람.
이 연작은 한때 조용히 잊혀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호출된다.
방탄소년단 RM이 작품을 소장하며
김상유의 이름은
동시대의 언어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다
늦게 도착한 이해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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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유 에칭 동판화 무제. 서울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그는 처음부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아니었다.
동판을 깎고, 목판을 찍던 사람이었다.
1970년대 중반, 더 한국적인 표현을 찾기 위해
그는 목판화를 택한다.
나무를 직접 깎아 판을 만들고
먹을 바른 뒤 한지를 얹어
놋쇠 숟가락으로 화면을 문질러 이미지를 찍어낸다.
기술이라기보다
몸을 쓰는 노동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반복된 노동은
몸을 먼저 무너뜨렸다.
보호 장비 없이 화학 물질을 다루며 작업을 이어간 탓에
시력은 급격히 나빠졌고
어깨 통증은 깊어졌다.
그는 결국 칼을 내려놓고
붓을 들었다.
회화로 넘어온 이후에도
판화의 흔적은 남아 있다.
굵은 윤곽선을 긋고
그 안을 색으로 채운다.
그러나 물성은 지워진다.
물감의 기름기를 닦아내고, 색만 남긴 화면은
수채화처럼,
혹은 동양화처럼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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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유 세이낙자연성. 서울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덜어낼수록 또렷해지는 그림.
그리고 그 화면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정자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긴 인물.
김상유는 말했다.
“이 사람은 나 자신이며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그의 그림은 더 비워진다.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옷도 사라지고
누각마저 사라진다.
산과 태양, 그리고 한 사람만 남는다.
“청산 절로절로, 녹수 절로절로, 나도 절로절로.”
이 만화 같은 한 장면은
어느 순간 현실처럼 살아나
보는 이의 마음속으로 들어앉는다.
산다는 것, 견딘다는 것.
‘절로 절로’ 되는 일은 아니다.
눈이 빠지고
어깨가 빠질 듯
자기를 소진하며 나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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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유 청산도 절로절로. 서울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예술가로서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머리가 벗겨질 때까지
한자리를 지키는 자세.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시간을 견디는 몸.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
그 올곧음이
이제야, 겨우 닿는다.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무수한 선택과 경우 속에서
끝내 ‘나’라는 본질을 찾아내는 일.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다.
그 삶이,
내가 선택한 것이었는가.
그래서 이 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오래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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