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마법에 걸린 새로운 동네"…태백 장성서 '제2회 비엔날레 날땅'

등록 2025-09-17 09:07:48

6000명 광부가 수백 톤의 석탄 캐던 마을

탄광촌이 예술촌으로 변신…작가 6명 참여

예술위·탄탄마을협동조합 30일까지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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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비엔날레 날땅'. 태백 장성마을 주민들이 아이리스PC방 건물 지하에 전시된 전지 작가의 ‘불확실한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필요해’ 만화 원화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탄탄마을협동조합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광부들의 땀으로 검댕이 쌓였던 강원도 태백 장성마을이 예술의 무대로 다시 숨을 쉰다. 폐광의 그림자가 드리운 골목마다 작품이 들어서고, PC방 지하는 아이들을 위한 미술관으로 변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탄탄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 함께 여는 제2회 '비엔날레 날땅: 뜻밖에 등장하는 윤곽들'이 탄광촌을 예술촌으로 바꿔놓고 있다. 대표적 탄광촌인 태백시 장성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한때 6000명이 넘는 광부가 수백 톤의 석탄을 캐냈던 장성광업소가 있던 마을은, 광산 폐쇄 이후 문화 소외가 깊어졌다. 그러나 2023년 첫 '비엔날레 날땅'을 계기로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현대미술을 만나는 기회가 열렸다.

올해는 정희우, 황재순, 신예선, 배주현, 전지, 이다슬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정선 등 인근 폐광지역 학생들도 한 시간 넘게 걸려 전시장을 찾으며, 예술을 향한 갈증을 드러냈다. 태백 주민 김동찬 씨는 "자주 다니던 곳이 낯설고 신기해졌다"며 "마법에 걸린 새로운 동네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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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비엔날레 날땅'. 태백경찰서 망루에 설치된 신예선 '망루'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들은 폐광의 기억을 예술로 뒤집는다. 신예선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감시용이던 망루를 빨간 내복을 상징하는 모직 내피로 감싸 치유의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전지는 청소년들의 망설임과 웅크림을 만화로 풀어냈고, 그 지하 공간은 지역 청년들이 직접 청소하고 페인트칠해 전시장으로 재탄생시켰다. 배주현은 70년 넘게 광부가 살던 고택에서 무명실과 도자기를 활용해 노동의 숨결을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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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비엔날레 날땅 배주현 '하장성집' 한 광부가 70년 넘게 생활한 고택에 무명실과 도자기를 이용해 탄광 지하 어둠 속에서 움직이던 수많은 노동의 손길을 표현했다. 사진=탄탄마을협동조합 *재판매 및 DB 금지


이다슬은 컨테이너 속에 파파야와 용과를 심는 '장성 파파야' 프로젝트를 통해 차가운 땅에 낯선 열대를 심는 실험을 보여줬다. 정희우는 태백 화석과 석탄의 기원을 탐구하며 나무 탁본으로 오래된 시간을 드러냈고, 황재순은 광부들이 검댕을 씻던 '태양사우나'를 아카이브 전시관으로 되살렸다. 이미 철거된 화광아파트의 기억은 주민들이 찍은 사진전으로 다시 마을 위에 걸렸다.

전시는 도슨트 투어로 완성된다. 장성마을 초입 '차림'에서 시작해 골목과 광산, 병원 앞 등나무를 지나며, 관람객은 폐광의 기억과 예술의 숨결이 겹쳐지는 순간을 체험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