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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3일 개막한 프리즈서울에 관람객이 붐비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아트페어는 미술품을 모아놓고 세계 각국 갤러리들이 벌이는 전쟁터다. 자본주의의 최전선, 그 판은 결국 상위 2%가 좌우한다. ‘얼마에 팔렸나’라는 머니게임은 파워 작가를 거느린 메가 갤러리들의 잔치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자신 있게 판매 리스트를 내걸고, 동시에 작가를 알리는 데도 게으르지 않다.
서울은 지난 4~5일간 두 얼굴을 보여줬다. 프리즈 서울은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미국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이 약 62억 원에 판매됐고, 현장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딸 말리아가 직접 찾아와 응원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이벤트’로 소비된 셈이다.
특히 하우저앤워스는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브래드포드, 루이즈 부르주아, 이불 등 전속 작가들이 한국 미술관과 갤러리를 동시에 누비며, 미술관·갤러리·아트페어 3박자를 맞춘 전략적 행보를 펼쳤다. 이는 컬렉터를 겨냥한 철저한 맞춤 공략이자, 서울을 동시대 미술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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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저앤워스에서 선보인 마크 브래드포드의 3점 연작이 62억6000만원에 팔려 프리스 서울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공식 매출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글로벌 메가화랑들의 수십억 원대 거래가 이어지며 총 1000억 원 이상이 오간 것으로 관측된다. 나흘간 7만 명이 몰리며 프리즈 서울은 ‘세계 미술 캘린더’에 확실히 이름을 올렸다.
5일간 열린 키아프는 해외 화랑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며 국제 아트페어로서 면모를 강화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대만, 미국, 태국, 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의 갤러리들이 참여해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8만2000명의 관객과 활발한 중저가 거래로 선전했지만, 여전히 프리즈의 그늘과 ‘체급 차이’라는 현실은 드러났다.
홍보에서도 온도차가 뚜렷했다. 프리즈 서울은 공격적 마케팅을 이어간 반면, 키아프는 알리기를 주저하는 ‘조심 마케팅’으로 분위기를 갈랐다. 행사 전 공동 기자회견에 이어 프리즈는 개막 직후 사이먼 폭스 CEO가 한국 기자들과 만나 판매 열기와 향후 전략을 강조했다. 반면 키아프는 VIP 응대에 치중하며, ‘프리즈 뒤를 따라가는 듯한 뒷북 이미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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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부인 김혜경 여사가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5' VIP 프리뷰 데이에서 LG OLED 부스를 찾아 작품들을 관람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09.03. [email protected] |
사이먼 폭스는 “김혜경 여사의 방문은 매우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정부에 간접적으로 먼저 화답했다. 이어 “미술 시장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전반적으로는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고가 매매 성과를 부각시켰다. 프리즈 서울 관련 기사는 개막 직후부터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공동 개최에서, 한국 화랑 30곳이 프리즈 서울에 입성한 것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는 프리즈의 치밀한 ‘서울 침공 전략’으로도 읽힌다. 12곳만 키아프에 동시 참가했고, 나머지 18곳은 키아프를 포기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프리즈 부스비는 1억5000만 원대, 키아프는 최대 8000만 원 선. 불황 속에서 두 곳을 모두 치르기엔 현실적으로 무리다. 그럼에도 화랑들이 프리즈를 택하는 건 글로벌 무대가 주는 ‘프리미엄 효과’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 속 한국 미술시장의 구조적 문제도 여전하다. 작품 판매 가격이 공개되는 순간 세무 추적을 우려해 갤러리들은 노출을 꺼린다. 화랑협회 측 역시 “구매자가 특정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가격 공개를 회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프리즈는 판매 여부나 가격을 전면적으로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고급스러운 관례’로 포장한다. 글로벌 메가화랑들은 개별 세일즈 리포트를 언론에 흘리며 초고가 매매를 경쟁적으로 알린다. ‘얼마에 팔렸다’는 정보가 곧 뉴스가 되고, 다시 마케팅으로 환원되는 구조다.
한국화랑협회 이성훈 회장은 “프리즈 서울에서는 초고가 매매가 주목받았지만, 키아프는 국내 화랑 중심이라 수십만~수백만 원대 거래가 많아 화랑에는 실질적 도움이 된다”며 “올해는 부스 퀄리티가 높아지고 동선도 쾌적했다”는 평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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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3일 개막한 프리즈서울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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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LG전자가 마련한 프리즈 서울 특별전 ‘PARK SEO-BO X LG OLED TV: 자연에서 빌려온 色’은 행사 내내 인파로 넘쳤다. *재판매 및 DB 금지 |
불황 속에서도 두 아트페어가 선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미술 소비가 ‘구매’에서 ‘경험’으로 전환되면서, 프리즈의 셀럽 효과와 키아프의 대중 관람객 유입이 흥행을 이끌었다. 아트바젤 홍콩의 불안정 속에 서울이 아시아의 새로운 허브로 자리 잡으며 해외 갤러리와 컬렉터의 발길도 집중됐다. 여기에 LG와 KB금융 등 기업 후원이 맞물려 시장의 버팀목이 됐다.
소비 양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VIP 프리뷰로 문을 열고, 셀럽과 세계 미술계 인사 명단을 공개하며 ‘위상이 높아진 행사’임을 과시했다. 특히 영부인과 연예인 방문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긴 줄이 늘어섰다. 전시장 앞 풍경은 이제 작품을 향한 경배라기보다, ‘맛집 줄’을 닮아 있었다.
미술은 더 이상 소유만의 영역이 아니다. 1인 가구의 확산, 스마트폰 속 무한한 이미지, 1만 원짜리 포스터와 굿즈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시대. 경험을 산다는 감각이 시장의 새로운 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트페어 피로감’은 뚜렷하다. 전 세계 도시마다 페어가 쏟아지고 풍경이 비슷해지면서, MZ세대는 ‘대형 쇼핑몰’ 같은 인식 속에 매력을 잃고 있다. 프리즈 서울이 막을 내리기도 전에 뉴욕에서는 아모리쇼가 개막했고, 컬렉터들은 다시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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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키아프 서울(Kiaf SEOUL)' 아트페어가 개막한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트 오브 더 월드 갤러리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콜롬비아 출신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2025.09.03. [email protected] |
프리즈 서울은 이제 아트바젤 홍콩이 쥐고 있던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을 서서히 대체하고 있다. 2022년 키아프와 공동 개최로 출범해 서울을 글로벌 미술시장의 한 축으로 끌어올리며 관광까지 아우르는 문화 행사로 성장했다. 코엑스가 리모델링에 들어가지만, 프리즈와 키아프 모두 내년에도 코엑스 개최를 확정하며 서울을 중심 무대로 고수했다.
그러나 공동 개최는 내년 단 한 번만 남았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CEO는 “서울이 아시아 미술 허브로 도약하며 5년, 10년 이상 지속되기를 바란다”며 서울을 떠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미 약수동에 ‘프리즈 하우스’를 개관해 1년 내내 상설 전시를 열며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반면 키아프는 “회원들과 투표를 해야 한다.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반복하며 향후 행보를 저울질하고 있다.
세계 미술시장이 75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가운데, 1조 원 남짓한 한국 시장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 존재감을 각인시킨 것도 프리즈 서울의 성과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프리즈는 서울에 맞춰 전략적으로 튜닝됐다”며 “이제 프리즈 없이는 키아프가 공생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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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f SEOUL 2025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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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최대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개막식에서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조성명(왼쪽부터) 강남구청장,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대표, 사이먼 폭스 프리즈 CEO, 김 여사, 구자열 키아프 조직위원장, 김영수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 이성훈 회장,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조상현 코엑스 사장. 2025.09.03. [email protected] |
프리즈가 서울을 세계의 지도 위 축제로 새겨 넣을 때, 키아프는 여전히 계산기만 두드리며 그 곁을 서성인다. 아트페어는 그림을 보기만 하는 전시장이 아니라, 자본이 충돌하는 전쟁터다. 언제까지 우리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낡은 위로에 안주할 것인가. 그 순간 권력은 외부 플랫폼에 집중된다.
이제 문제는 감상이 아니라 거버넌스다. 키아프가 가격·세금·홍보에서 표준을 세우지 못한다면, 내년 이후 서울 미술의 서막은 프리즈가, 본문은 해외 메가화랑이 써 내려갈 것이다.
서울은 빛났지만, 내일의 서술자가 프리즈만 된다면 한국 미술은 곧 들러리에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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