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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 Young Chun Aggregation 24-NV151, 2024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31 x 163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한지를 감싼 삼각형 조각 수백 개가 촘촘히 화면을 메운다. 마치 별의 파편 같기도 하고, 고서의 기억이 응축된 하나의 우주 같기도 하다.
일명 '한약 봉지' 작가로 유명한 전광영(81)이 페로탕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타임 블러섬(Time Blossom)'을 주제로 15일부터 7월 5일까지 선보인다. 그의 대표 시리즈 '집합'과 함께, 신작 '품' 연작을 처음 공개한다.
전광영은 한지를 감싸 조각화한 삼각형 구조를 반복 배치해 회화와 조각, 동양과 서양, 기억과 역사 사이를 넘나들어왔다. 이 ‘조밀한 축적’은 작가에게 있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시간과 존재에 대한 사유를 담는 방식이다. 수백 개의 삼각형은 각각 하나의 단위 기억이며, 그것들이 응축된 화면은 일종의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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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영 개인전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되는 지점은 색이다. 전광영은 감물, 쑥, 먹, 인디고, 울금, 홍화, 석류 껍질 등 자연에서 채취한 천연 염료로 삼각형 조각을 물들인다. 이 색들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감정의 층위를 조율하는 정서적 시간으로 작동한다. 파스텔 톤의 색조는 여린 감정과 부드러운 시간의 결을, 강렬한 색조는 기억의 응축과 정서의 깊이를 시각화한다.
작가에게 색은 말 그대로 시간의 언어다. 전광영은 “색은 감정의 기록이고, 손으로 시간을 배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붓이 아니라 손으로 조각을 감싸고 붙이는 작업은 회화라기보다 조형적 수행, 또는 ‘시간을 다루는 행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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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작 '품'은 이전의 밀도 높은 조각적 구성에서 벗어나, 고요한 평면성과 유기적 흐름을 품는다. ‘감싸안는다’는 뜻처럼, 이 작업은 감정의 충돌이 아닌 정서의 수용을 제안한다. 조용히 포개어진 조각들은 마치 시간 그 자체가 응결된 장소처럼 화면에 머문다. 이 시리즈는 관람자가 감정의 흐름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장소를 만든다.
전광영은 1995년부터 '집합'연작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다.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한약방에서 보았던 약봉지의 한지가 작업의 모티프로 남았고, 미국 유학 시절 추상표현주의를 접한 이후 이를 동양적 사유와 재료로 전환시켜왔다. 고서의 파편을 감싸는 그의 행위는 기억의 축적이자 존재의 흔적이며, 동시에 미학적 정돈을 향한 손의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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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gregation 25-AP032, 2025.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17 × 91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Aggregation 25-AP033, 2025.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17 × 91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재판매 및 DB 금지 |
전광영의 작업은 물성과 사유, 동양적 시간관과 현대 조형 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소박한 재료를 거대한 벽면 설치 작업이나, 입체 조형물로 변모시키며, 자연의 형상과 역사의 흔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타임 블러섬'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전광영의 작업은 이제 ‘시간이 피어난다’는 감각을 조용히 선사한다. 소박한 한지가 이토록 심오한 우주를 품을 수 있음을, 그리고 감정의 결이 색과 형상 속에서 천천히 자라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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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s of Kwang Young Chun’s Time Blossom atPerrotin Seoul. Photo: Choi Chul Li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재판매 및 DB 금지 |
◆전광영 작가는?
1944년 홍천 출생으로 1968년 서울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 학사를,1971년 필라델피아 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도쿄 모리 아트 센터 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과천, 모스크바 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그의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홍콩 M+뮤지엄, 호주 국립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고, 2009년에는 제41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현대 미술계에서 공로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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