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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극과 모놀로그’ 설치 전경. 사진=아트선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꽃도 풍경도 아니다. 전시장 한가운데 둥글게 걸린 8개의 태피스트리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기생, 임금 삭감에 맞서 옥상에 올라간 여성 노동자, 그리고 호미를 들고 항일 운동에 나섰던 제주 해녀의 모습이 수놓아져 있다. 1960~70년대 산업현장에서 가족 생계를 책임졌던 어린 소녀들의 모습도 있다.
미술가 홍영인(53)이 오랫동안 역사에서 잊혀졌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되살려냈다.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7월 20일까지 열리는 '다섯 극과 모놀로그'는 홍영인의 첫 국내 미술관 개인전이다. 영국 브리스톨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그는 태피스트리, 조각,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근현대 여성사의 다양한 장면들을 예술적으로 엮어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이야기(‘다섯 극’)와 작가의 독백(‘모놀로그’)을 중심으로 구성돼, 하나의 공연처럼 전개된다.
40미터에 달하는 대형 태피스트리는 작가가 직접 재봉틀로 바느질한 것이다. 작가는 2000년대 중반 동대문에서 바느질을 배우며 섬유·봉제 산업에서 일했던 여성들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그림은 중세 유럽에서 전쟁 이야기를 천에 수놓던 태피스트리 방식에서 착안했고, 바깥쪽은 여성 인물들의 서사, 안쪽은 동물 문양과 기하학적 패턴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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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인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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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인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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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인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작품 곳곳에는 짚과 천으로 만든 조각들이 설치돼 있다. 머리에 짐을 받치던 전통 용구인 ‘똬리’, 제주 굿에서 쓰이던 도구 ‘기메’ 등을 재해석한 형태로, 퍼포먼스에서 연주나 몸짓의 소품으로 쓰인다. 전시 기간 중 다섯 차례 열리는 퍼포먼스에서는 드러머 1명과 퍼포머 4명이 함께 소리와 움직임을 통해 ‘제례’ 형식의 공연을 펼친다. 퍼포먼스는 5월 24일, 6월 14·28일, 7월 12일 오후 2시에 예정돼 있다.
어두운 방에 설치된 신작 사운드 '우연한 낙원'(2025)도 눈길을 끈다. 홍영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AI 기술로 분석해, 그 음성을 두루미의 울음소리처럼 변환했다. 작가의 독백이 인간의 언어를 넘어 동물의 소리로 바뀌는 실험적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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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인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홍영인은 “이번 전시장은 무대처럼 구성했다”며 “그동안의 작업을 하나로 정리하고, 다시 전하는 선언 같은 전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도 동물과 인간, 중심과 주변, 권력과 노동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태피스트리, 사운드, 퍼포먼스는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몸짓, 리듬, 소리 등 몸과 감각으로 경험하도록 구성된 공간은 관람자에게도 참여와 해석을 유도한다. 역사에서 지워졌던 이름들은 이곳에서 다시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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