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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KIM Byoungho), 57개의 수직 정원, 57 Vertical Gardens, 2024, Stainless steel, chrome plating, 92x60x274(h)cm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부풀어 오른 듯한 촘촘히 맺힌 금속 타원구들이 은빛 풍경을 광활하게 흡수하고 찬란하게 내뿜는다.
'57개의 수직 정원'은 그야말로 풍요로운 입체미로 탐미주의자의 취향을 보여준다.
26일 아라리오 서울에서 개막한 조각가 김병호(50)의 개인전 '탐닉의 정원(Lost in Garden)'은 금속 정원수들이 가득한 '기계정원, 미래의 공간'처럼 보인다. 반사하고 흡수하며 '그림자 미학'까지 더해 '3D 공간'으로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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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KIM Byoungho, Lost in Garden, ARARIO GALLERY SEOUL_1F *재판매 및 DB 금지 |
금속 모듈을 재료 삼아 심미적 조형이 돋보이는 김병호의 작품은 기하학적 미감이 화려하고 웅장하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3개 층에서 여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대표작과 신작을 포함하여 다양한 규모의 조각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우거진 숲을 다듬어 인공 정원을 가꾸듯 꾸려진 작품들은 빼곡히 돋아난 '빛 점의 집합체'다. 주위의 광원을 반사하는 찬란한 금속 타원구들이 시선을 사로잡고 부피를 확장한다. 면에서 선으로, 더욱 커다란 점으로 나아가 부피를 부풀려 유려한 정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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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정원' Installation view-KIM Byoungho, Lost in Garden, ARARIO GALLERY SEOUL_B1F *재판매 및 DB 금지 |
지하 1층에 가로 놓인 '수평 정원'(2018)은 은 천장부로부터 늘어뜨린 가는 줄에 거대한 몸을 맡긴 채 공중에 뜬 모습으로, 바닥면에 드리운 다채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1층에 전시한 두 개의 형태로 구성된 회전형 기계 형태의 작품 '두 개의 충돌'(2024)도 회전하면서 그림자 미학을 전한다. 거울 같은 은빛과 흑연 같은 먹빛의 표면을 지닌 두 모듈이 각자의 회전축을 중심 삼아 상반된 방향으로 돌아간다.
작가는 금속 타원구 형태의 조각들을 ‘문명의 혹’이라고 부른다. 섬세하게 계획된 설계 도면에 기반하여 철저히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 속에서 진행되는 김병호의 작업 과정은 현대 사회의 일면을 투영한다.
"김병호는 동시대 사회 구조에 깃든 현대인으로서, 기계적인 정교함과 현혹적으로 아름다운 예술행위를 결합하며 새로운 조각의 형태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예술 작품이란 규범, 규칙과 체계 등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품과 유사성을 지니는 대상이다. 김병호의 작품세계는 합리주의에 기반하여 구축된 문명 사회 속 인간의 삶과 심리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떠올리도록 한다."(박미란아라리오 갤러리 팀장)
작업과정은 '평면의 부활'이다. 재단된 종이 위 드로잉과 설계도로부터 정제된 금속의 단면에 이르기까지, 김병호의 기계 정원 속 입체는 모두 규격화된 평면으로부터 일어선다. 납작한 철재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원통형 획으로서 가공되고, 그 뚜렷한 금속 선의 끝자락마다 둥근 구의 형상이 숨처럼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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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단면, 아홉 번의 관찰 등 Installation view-KIM Byoungho, Lost in Garden, ARARIO GALLERY SEOUL_3F *재판매 및 DB 금지 |
곡면의 기하학적 구성을 펼쳐 놓은 '정원의 단면'(2024)은 면의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다. 두께를 지닌 금속 판을 각기 다른 곡률로 구부려 정교하게 결합한 조각의 몸체는 장소 안에 우뚝 서거나 가로 누운 자세로 유기적 자연의 풍경을 품어낸다.
검은 피막을 입은 잎사귀 형태의 단면들이 조형성을 강조하는 한편, 매끈하게 연마된 윤곽부의 가느다란 선이 본연의 재질을 내비친다. 특히 형태의 능선을 타고 흐르는 조명의 빛은 가공된 재단 면 모서리에 이를 때마다 섬광처럼 가파르게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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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KIM Byoungho), 아홉 번의 관찰 9 Observations, 2024, Stainless steel, resin, 151x110x150(h)cm *재판매 및 DB 금지 |
가공된 세계의 유려한 미학을 발휘하는 김병호의 조각들은 '물신주의적 사회의 양면적 초상'이다. 황홀하게 빛나는 수백의 점들, '문명의 혹'이 드러내는 탐미적 욕망은 냉소와 찬미의 태도를 동시에 표방한다.
국내 화랑가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조각 전시로, 낯익은 듯 하면서도 신선하고 완벽한 마감으로 눈길을 끈다. 전시는 2025년 2월8일까지.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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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KIM Byoungho_ Artist Profile Image *재판매 및 DB 금지 |
◆조각가 김병호는?
200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후 2002년부터 예술공학을 연구했다. 2004년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청남대 호수영미술관(청주, 2024), K11 미술관(선양, 중국, 2022; 우한, 중국, 2023), WWNN(서울, 2023), 아라리오갤러리(서울, 2011; 천안, 2013; 상하이, 2018), 소마미술관(서울, 2010), 프랑크푸르트 문화부 스튜디오(프랑크푸르트, 독일, 2009)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제3회 지난국제비엔날레》(2024), 《전남수묵비엔날레》(2023),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2023),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2021),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2014), 《징안국제조각프로젝트》(2012) 등에 작품을 선보여 주목 받았으며 포항시립미술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캔파운데이션, 경주솔거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포스코미술관, 사치갤러리(런던, 영국) 등이 연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한국), 아모레퍼시픽미술관(한국), 프랑크푸르트시 문화부(독일), 서울대학교미술관(한국), 아라리오뮤지엄(한국), 정부종합청사(한국), 상해 판롱천지(Panlong Tiandi, 중국), 뉴월드 개발 유한회사(New World Development, 홍콩), 현대자동차(한국) 등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5년 홍콩 및 중국 선전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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