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강남에 미술관 지은 '감 작가'…오치균 "난 복 받은 작가"

등록 2024-04-29 15:05:12  |  수정 2024-04-29 18:10:04

15년 간 사용하던 작업실 '오치균 미술관' 변신

5월2일 개관…5년간 칩거 새 작업 유리 조형 공개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오치균 작가가 29일 서울 강남구 오치균 미술관에 ‘오치균 미술관(Oh Museum of Art)’ 개관전 'Glass Drawings in Three Dimension' 언론공개회에 참석하여 작품 '청자'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4.04.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감사하다. 나는 복 받은 작가다."

2017년 서울 인사동 노화랑 전시를 마지막으로 미술시장에서 사라졌던 '부자 화가' 오치균(70)이 다시 나타났다. 7년 만에 부활한 건 자신의 작업실. 그가 15년 간 고통과 쾌락을 누렸던 그 공간은 이제 '힐링의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작품 하듯이 만들었어요. 제가 한 작품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듭니다. 마음껏 했고 마음껏 시켰고…제가 원래 원하는 대로 하는데 이거 마저 (제 맘대로)이렇게 해서 너무 행복합니다."

29일 서울 강남 신사동 '오치균 미술관'에서 만난 오치균은 한껏 들떠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수다쟁이였나?' 할 정도로 말을 쏟아냈다. 그는 "오치균 미술관 개관 광고에 '그리운 사람아'라고 문구를 써 넣을 정도로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강남 한복판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미술관을 지은 작가는 국내 최초다. 2000년대 초반 '오치균 시대'라고 할 만큼 그의 작품은 국내외서 팔려나갔다. 특히 '감 그림'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여서 그는 이름 대신 '감 작가'로 통했다.

"상업주의 작가요? 사실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저는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작업했죠. 하지만 제가 직거래로 작품을 한 점도 판 적이 없어요. 컬렉터와 세상이 나름대로 밥 안 굶는 작가로 만들어줬으니 감사할 뿐이죠."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오치균 작가가 29일 서울 강남구 오치균 미술관에 ‘오치균 미술관(Oh Museum of Art)’ 개관전 'Glass Drawings in Three Dimension' 언론공개회에 참석하여 작품 '청자'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곳은 본래 오치균 작가가 작업실로 15년간 사용하며 여러 대표작을 탄생시킨 공간으로, 리모델링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2024.04.29. [email protected]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오치균 미술관(Oh Museum of Art)’ 개관을 앞두고 열린 개관전 'Glass Drawings in Three Dimension' 언론공개회가 열린 29일 서울 강남구 오치균 미술관에 작가의 신작과 주요 작품을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본래 오치균 작가가 작업실로 15년간 사용하며 여러 대표작을 탄생시킨 공간으로, 리모델링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사진은 작업실에 걸려 있는 작가의 자화상. 2024.04.29. [email protected]

패셔니스타 면모로 외모는 여전했지만 그는 노년기의 쇠락함을 보이기도 했다. "죽기 전에 2가지 소원이 있어요. 그동안 작업만 열중 하다 보니 작가들의 개막식이나 결혼식도 못 갔어요. 형제들이 죽어도 못 갔지요. 70이 되고 갈 나이가 되다 보니까 잘못도 많이 느끼고. 첫째는 이 미술관을 화해의 장으로 생각하자. 많은 사람들을 전시에도 참여 시키고 나와 소원했던 (작가)분들도 아지트 삼아 왔으면 해요. 그래서 '오치균이 나쁜 놈이 아니었구나'를 알리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특히 "작업하는데 컬렉터들 아니었으면 팔리지도 않은 작업을 못했다"며 그의 작품 소장가들에게도 마음을 썼다.  "그림값이 예전에 5억~7억에 팔렸잖아요.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 했죠. 하지만 이제 거품이 빠진다는 얘기도 들리고 왜 가격이 떨어지냐고 묻는 컬렉터들도 있는데…제가 세상 떠날 때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제 작품 값이 유지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나이에 굴복한 쓸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금세 밝아졌다. "저 만큼 복 받은 사람 있나요? 그래요. 누군 열심히 안 했냐고 하죠. 하지만 저는 특별히 더 복을 받았어요. 말년 되니까 복을 더 받았다고 느낍니다."

associate_pic
오치균 미술관 개관. 5년간 칩거하며 작업한 신작 유리 조형 입체 작품 전시. *재판매 및 DB 금지


미술은 결국 공공재다. 그가 5년 간 산고의 고통을 겪듯 탄생 시킨 오치균 미술관(관장 이명순)은 나눔과 공유의 장으로 탈바꿈한다.

손으로 작업하는 오치균의 거친 작품처럼 날 것의 미학이 충만하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180평 규모로 서울대 미대 후배들이 맡아, '오치균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캔버스에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물감을 덧쌓는 오치균작업처럼, 오치균 미술관의 건물 외벽에 회색 시멘트를 켜켜이 올려 작가의 캔버스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재현 됐다.

최소한의 창문만 남겨진 건물은 이곳에서 작업에 몰두해온 작가의 은둔자적 성향도 반영됐다. 전시 공간과 함께 미술관 3 층에는 야외 테라스를 갖춘 카페를 마련해 관람객들이 여유롭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한다. 모두 오치균 작가가 직접 고른 물건으로 채워진 카페에서도 작가의 까다로우면서도 따스한 면모를 느낄 수 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오치균 미술관 개관전 전경. 2024.04.29. [email protected]

associate_pic
오치균 미술관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오랜 기간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내가 머무르던 영역이 아닌 또 다른 요소를 찾고 싶었습니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고민하다가 제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가 눈에 들어왔고 거기에서 또 다른 형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치균 미술관 개관전은 '감 작가'에서 탈출한 오치균의 완전히 새로운 입체 작업을 선보인다. 깨진 유리를 덕지덕지 붙여 만든 입체 유리 조형은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크고 작은 유리 파편들을 덧붙이거나 채색하고, 또는 다른 소재와 합성하며 새로운 형태를 이끌어낸다. 꽃, 사람, 동물 등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조형 작품에서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치균은 “유리를 깨트리며 쾌감을 느꼈다"면서 "완벽한 균형을 이룬 형상보다는 어딘가 불균형하고 깨져 있는 것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따라 조각을 붙여 형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몰입해서 작업했다. 오롯이 이 작업에 빠져들었던 5년의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고 밝혔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명순 오치균 미술관 관장이  29일 서울 강남구 오치균 미술관에서 개관전 'Glass Drawings in Three Dimension' 언론공개회에서 오치균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4.04.29. [email protected]

 
'상업주의 작가'로 조롱처럼 불리던 '부자 화가'의 긍정적인 '말년의 힘'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경제적 자유로 흔들리지 않고 '내 스타일'을 유지하는 화가 오치균의 변신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5월2일부터 3부에 걸쳐 진행된다.

오치균 미술관 이명순 관장은 “지금까지 오치균 작가가 해온 작업을 제대로 남겨두면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밝혔다. 인기 작품인 뉴욕 시대부터 사북, 감 작품도 전시됐다.

“오치균 미술관은 앞으로 좋은 작업을 하는 다양한 후배 작가들의 작업도 소개하고,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개관 전시 이후에는 후배들이 기획 전시를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예술가들을 위한 후원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전시는 2025년 4월30일까지. 관람은 일반 1만4000원. 청소년 1만10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