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127년전 '福·壽' 100번 쓴 '백수백복도'의 '뱀파이어 미학'

등록 2021-09-23 05:05:00  |  수정 2021-10-27 16:38:27

현대화랑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

조선 민화가 장인선의 '백수백복도' 대표작

낙서같은 제주문자도까지 조선 문자도 11점

현대미술가 박방영·손동현·신제현의 13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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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1894, 10폭 병풍, 종이에 채색, 각 90.5×31.5cm.사진=현대화랑 제공. 2021.9.2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은 사라지지 않고 변할 뿐이다.

1894년 갑오춘서에 나온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는 2021년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보인다. '조선 의주에 사는 장인선'이 제작했다고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이 '문자도'는 '뱀파이어 미학'을 전한다. 100년이 지나도 살아나 현대인의 손맛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백수백복도'는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민화와 달리 이름을 남긴게 가장 큰 특징이다. 복(福)자와 수(壽)자를 번갈아 100번을 반복했지만 지루함이 없는게 특징이다. 모두 다른 형태의 글자로 새긴 이 문자도는 보고 또 보면 독특한 개성미와 세련미의 극치다. 다양한 형태로 그려진 글씨는 '오래 사시고 복을 누리시라는 수복'의 의미를 담은 '찐마음'이 느껴진다.

복(福)자와 수(壽)자. 조선 시대 민화임에도 현대적인 화조화 패턴의 타이포그래피를 연상시킨다. 풍부한 회화성과 세련된 미감이 돋보이는 명작으로 평가되는 이 문자도의 존재감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백수백복도'를 대표작품으로 펼친 현대화랑의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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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현대화랑, 문자도, 현대를만나다 전시 전경. 사진=현대화랑 제공.2021.9.22. [email protected]

현대화랑은 지난 2018년 '민화, 현대를 만나다'전시를 연 이후 우리 민화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당시 ‘화조’를 재조명해, 민화계와 미술애호가들에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 후속 전시인 이번 전시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에서는 빼어난 조선 시대 문자도 11점과 문자도를 새롭게 재해석한 현대미술가 박방영, 손동현, 신제현 3인의 작품 13점을 선보인다.

조선 시대 선조들의 삶 깊숙이 스며들었던 '문자도'는 선조들의 염원과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전시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는 한자를 활용한 동아시아 문자도 가운데서도, 유교의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 8자를 그린 독특한 문자도를 주목한다.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양한 문자도는 18세기에 성행하며 서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유교 덕목을 널리 알리기 위한 교화적인 목적으로 제작됐지만, 문자도는 각 지방의 문화와 결합되어 지방의 예술로 확산되고, 19세기 후반에는 장식화의 경향을 보이며 점차 조선 시대 생활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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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현대화랑, '문자도, 현대를만나다', 신제현, 문자경. 사진=현대화랑 제공.2021.9.22. [email protected]


각 전시공간에는 문자도의 창의적인 해석을 모색한 3인 3색의 작업이 조선 시대 문자도와 함께 펼쳐진다. ▲인간 삶의 이야기를 일필휘지의 필법과 상형그림으로 그려낸 박방영, ▲문자도라는 전통적인 소재와 그라피티와 같은 현대적인 주제를 결합시켜 동양화의 관습적인 경계를 허물고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손동현,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화조문자도를 오마주하고 천하게 여겨지던 민화의 가치를 새로운 인식 속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신제현의 작업이 전시된다.

전시를 기획한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한국회화사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 문자도가 창의적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과 만나 어떻게 독창적인 가치로 변화되는가를 실험하는 하나의 계기라고 할 수 있다"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유쾌한 문자그림들은 탁월한 솜씨와 고졸한 미감을 넘나들면서 그린 이의 개성과 삶의 방식들을 꾸밈없이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해학과 세련미가 돋보이는 민화지만 그림으로 인정받지 못한 배경은 이름 없는 무명화가들의 그림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그린이의 상상력에 따라 신출귀몰하고 불가사의한 표현이 가득한 민화 속에는 자연의 본성을 담아낸 당대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특히 문자도는 전형적 스토리텔링을 구사한 것(prototype)에서 대상을 생략하거나 과장한 것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표현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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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문자도, 19세기말~20세기 초. 4폭, 종이에 채색, 각 101×39.7cm

모던한 감각의 화조문자도, 어린아이의 익살맞은 낙서 같은 제주문자도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 민화 문자도는 현대미술로 거듭난 오늘의 현란한 문자도에 견줘도 꿀리지 않는다.

형태와 재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비하고 독특한 개성미가 빛나는 '문자도'를 제대로 살펴볼수 있는 전시는 온라인 사전예약(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85123)으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10월31일까지, 입장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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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동현, SCARLET CRMSON,2019~2020,130×19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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