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박현주 아트클럽]'피카소가 시기한 조각가'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등록 2018-01-04 14:10:03  |  수정 2019-07-02 10:32:59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에 전시된 '걷는 사람'. 1960년대 제작한 이 작품은 이전 조그만 작품과 달리 1m80cm이상 크기로 에디션 6개가 있다. 이번 전시에는 '석고 원본'이 선보였는데 명상적인 분위기로 연출되어 길고 긴 자코메티만 조각의 아우라를 전한다.
자코메티재단-코바나컨텐츠-국민일보 협업
작품평가액만 2조1천억대...120여점 선보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서 4월까지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검은 커텐을 제치고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히는 전율이 온다. 쏟아지는 빛 조명속에 드러난 '걸어가는 사람'은 이 전시의 백미다.

  1m88cm 큰 키가 돋보이는 이 '걸어가는 사람'은 자코메티의 '탑(TOP)오브더 탑(TOP)'이다. 알려진 그의 청동조각이 아니라 '석고 조각'이라는 존재감이 강렬하다.

 '20세기 미술의 상징'이라는 수식어 때문일까. 마치 무덤속에서 살아나온 듯 뼈만 남은 듯한 외모지만, 소름끼치는 아우라를 전파한다.

 컴컴한 동굴속에 있는 듯한 공간속에 울림이 큰 음향연출로 명상센터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걸어가는 사람'은 좌대에 올려져 360도 회전하듯 감상할수 있다. 바닥에는 방석도 깔려있어 앉아서도 볼수 있다.

   알베트로 자코메티 특별전을 기획한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이사는 "무엇보다 그의 눈을 보라"고 주문했다. 미이라 같은 '걸어가는 사람'은 부릅뜬 두 눈이 인상적이다. 어떤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벗 삼아 두 눈을 부릅뜬 채 세상을 으이하는 슬픔속 인간의 위대함이다.

 이 작품은 자코메티 자신이다. 1901년생 자코메티는 끔찍한 전쟁을 겪은후 "인간은 그래도 살아내야만 하기에 끝없이 걸어나가야 한다"는 자신의 스토리를 이 작품에 불어넣었다. 

 '가늘고 긴 조각'은 자코메티 브랜드다. "작은 조각을 포기하지 못하고 높이를 키우다보니 가늘고 긴 형상이 탄생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온 석고 원본, 1m88cm 걸어가는 사람은 처음으로 거대하게 키운 작품이다. 1958년 뉴욕 체이스 맨하탄 프라자의 공공장소를 위한 프로젝트로 진행되어 1960년에 완성됐다.
 
  부스러질것 같은 앙상한 형체지만 '걸어가는 사람'은 자코메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수천억원의 작품값이 이를 증명한다.

 '걸어가는 사람'(청동)은 2010년 마지막 경매에서 1200억원에 낙찰되면서, 이전 최고 경매가인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을 누르고 세계 경매신기록을 세웠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석고 원본'은 실거래가의 3배이상 책정된 3800억원에 이른다.)

 피카소는 생전에도 자코메티에 굴욕을 당했다. 그는 자코메티의 작품 능력을 시기할 정도로 부러워했다. 피카소가 구현하지 못한 조형적인 새로운 언어를 구현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모사 전문가'일 정도로 사물을  분석하고 분해하는 능력이 있었지만, 자코메티처럼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인물을 근원적 존재로 표현해내지는 못했다. 
  
  피카소보다 스무살이나 어린 자코메티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예술가인줄 알았는데 천재에 불과했네."라고.  피카소는 죽을 무렵까지 자코메티에 집착했다. 그는 죽기 직전 누구를 만나고 싶냐는 물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딱 한사람, 자코메티를 만나고 싶다"고 한것으로 전해진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2018.01.04. [email protected]


◇한국에서 처음...'알베트로 자코메티'특별전

 새해, 세계적인 거장의 조각전이 미술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알베트로 자코메티(1901~1966)전시가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열린 이 전시는 국내에서 보기드문 조각전이다. 파리의 자코메티 재단과 협업으로 코바나 컨텐츠와 국민일보 30주년 기념전으로 마련됐다. 작가의 상징적인 작품 '걸어가는 사람'의 유일무이한 원본 석고상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돼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초기 시절부터, 말기의 작품 120여 점 이상을 조명한다. 고향 스위스 스탐파에 있는 그의 아버지 작업실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마지막 기간(1960~1965) 동안의 그의 예술적 성취 과정을 모두 보여준다. 

 또한 작가가 죽기 바로 직전 작업한 가장 마지막 작품인 '로타르 흉상'도 함께 선보인다. 작가가 평생을 통해 깨달은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이 녹여져 마치 작가 자신을 빚어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죽기 전 해탈한 구도자의 면모가 보여지는 듯하다.

  인간존재의 의미와 비장한 존엄성까지 한눈에 보여주는 '로타르 흉상'과 '걸어가는 사람'은 자코메티의 위대한 통찰이 느껴지는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꼽혀,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전시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을 기획한 코바나 컨텐츠 김건희 대표. 이번 자코메티 전시작품 평가액은 2조천억원대로 조각 원본이 온 대규모 전시다.

  ◇코바나컨텐츠의 3번째 세계적인 작품전

 "이번 자코메티 서울 조각전은 무엇보다 특별합니다. 테이트 모던 전시와 상하이 유즈미술관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걸어가는 사람' 석고원본을 전시하기 때문입니다. 석고 원본 작품은 아시아 최초 공개라 더욱 그 의미가 특별합니다."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얼마전 일본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린 자코메티 회고전에서도 전 작품이 청동 작품이었는데 반해 이번 서울 전시는 석고 원본 15점을 비롯해 자코메티의 말기 전성시 걸작선으로 선정된 작품"이라며 전시의 자부심을 보였다. 

   이번 전시 작품 평가액은 사상 최대인 2조 1000억원에 이른다. 지난 마크로스코 전시(2조5천억원)에 이어 국내에서 쉽게 유치하기 어려운 전시다.

  이 전시를 유치하기까지 프랑스 파리를 집처럼 드나들었다. 일본 전시를 그대로 가져오려고 했으나 코바나컨텐츠의 애초 목표인 '순회전은 없다'로 의지를 다졌다.

 '전혀 다른 전시'를 추진하기 위해 "석고 원본에 집착했다"는 김 대표는 "이전에 진행한 전시(마크로스코, 르코르뷔지) 덕분에 자코메티 재단이 신뢰감을 보였다"고 했다.

 재단은 '걸어가는 사람' 은 20세기 상징작품이라 빌려주는 것을 꺼려했다. 테이트 모던에도 대여해주지 않은 작품이지만 코바나컨텐츠의 집책에 가까운 열정에 손을 들었다. 자코메티 재단측의 "한국은 전쟁의 위험이 있는데 욕심내지 마라. 로타르 좌상 원본까지 대여는 빅뉴스다"는 충고까지 들을 정도였다.

  김건희 대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코메티 전시를 유치한 것에 자랑스럽다"면서 "그만큼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인 전시로 남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전시 사업 횟수로 10년째를 맞은 코바나 컨텐츠는 국내 미술 전시기획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8년 '까르티에 보석'전으로 시작한 코바나 컨텐츠는 '마크리브'전, '점핑위드러브'(15만 관람)에 이어 '마크 로스코'(2015. 25만 관람), 르코르뷔지에(2017. 20만 관람)전시로 히트했다.

   김 대표는 "이전 전시때도 설마 진짜가 오겠어? 라는 의심과 불신의 우려가 있었지만 전시후에는 신선하고 대단하다는 평가와 반응이 좋아 대체로 성공했다"면서 "코바나컨텐츠는 '문화로 정신을 깨우는 기업'으로 사람들에게 문화 가치를 주고 정신을 새롭게 할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2018.01.04. [email protected]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이자 조각가로서 모더니즘 정신의 정수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죽기 바로 직전 작업한 로타르 흉상과 작가의 상징적인 작품 “걸어가는 사람”의 유일무이한 원본 석고상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 2018.01.04. [email protected]

 ◇길고 앙상한 조각...자코메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느날 젊은 소녀를 그리고 있는 동안 뭔가가 떠올랐다. 영원히 살아남을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시선'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결국 죽음과 살아있는 개인을 구별해주는 것은 시선이다."

 1958년 57세인 자코메티는 몽파르나스 술집에서 만난 스무살도 안된 매춘부 카롤린과 사랑에 빠졌다. 세계적인 명성이 높은 부유한 조각가와 카롤린은 어울리지 않은 상대였지만 그녀는 자코메티의 중요 모델이 되어 주었다. 카롤린 작품을 통해 자코메티가 삶의 마지막 시기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준다.

  부스러질 것 같은 연약함과 앙상함, 마치 불교에서 다비식을 한 듯한 수없이 반복된 '붙임 모습'인 자코메티의 조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해골같은 모습에서도 부릅뜬 듯한 두 눈이 각인된 '걸어가는 사람'에 대해 생전 자코메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걸어다닐 때면 자신의 몸무게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가볍게 걷는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고 가볍다. 내가 보여주려는 건 바로 그 것, 그 가벼움이다." 

 어디로 가는지, 그 끝도 알수 없는게 인간의 숙명이고 고독이다. '걸어온 사람'들이 '걸어가는 사람'을 만나 58년간 공감하고 있는 이유다. 움직여 걸어가는 것, 결국 '인간의 실존'의 문제이니까. 전시는 4월 15일까지. 8000~1만6000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