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박현주 아트클럽]시간의 먼지를 털었다···이진용 '컨티뉴엄'

등록 2017-06-29 11:16:58  |  수정 2017-11-14 10: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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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이진용 작가의 하드백(Hardbacks) 시리즈가 학고재갤러리에서 선보인다. 기존 작품은 캔버스에 그려왔다면 신자은 ‘조각 그림’이란 작가의 표현처럼 패널에 그려졌다. 패널 위에 세필붓으로 물감을 수없이 반복해서 칠했다. 기존 Hardbacks시리즈에서 보여준 책의 질감을 뛰어넘는 효과를 보여준다.

■30일부터 학고재갤러리서 개인전
 활자·책시리즈 220여점 대규모 전시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딱 보면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다. 사전적으로 따져보면 '극도로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리얼리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그림'.

그러나 이 그림, 보기와 다르다. 하이퍼리얼리즘의 탈을 쓴 니힐리즘(nihilism·허무주의)이다.

사진을 확대한듯 한 고서화는 바짝 다가서고 꼼꼼히 보아야 붓질을 느낀다. 또 마치 금속활자같은 돌방석처럼 보이는 작품은 페이크(fake)의 진수다. 그림이나 '활자 조각'은 눈의 감각을 의심할 정도로 진짜 같아, '아 이게 뭐야' 하는 놀라움과 허무감을 동시에 전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시장에서 이런 그림 흔하다. 이미 사진같은 그림은 넘치고 넘쳐 신기함이 마비될 정도다. 

이 작업을 한 작가도 그걸 충분히 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는 것과 "더 이상의 감동을 만드는 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오는 30일부터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4년만에 개인전을 여는 이진용(56)작가다.

그는 완벽하게 정제된 자신의 작품같았다. 검은 니트셔츠에 나란히 달린 단추 3개를 목까지 모두 잠근 반듯한 체형과 말간 얼굴이었다. "그는 스스로 화가처럼 보이는게 두렵다"고 했다. "거울을 볼때 수염이 있고 힘들어 보이면 내가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어 싫다"면서 "항상 노는 사람처럼, 미련한 선비처럼 보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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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이진용 작가는 동아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로타리 갤러리(1984)에서 첫 전시를 열었으며, 상하이 학고재(2015)에서 개인전을 가진 뒤,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단체전을 가졌다. 아모리 쇼, 아트 퀠른, 시카고 아트페어, 베이징 아트페어등 다수의 아트페어에 참석했다. 한림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주대학병원, 호암미술관,부산일보 등에 작품이 소장됐다.

◇반복과 반복의 에너지

 극사실화처럼 보이는데, 작가는 "어떤 형상을 그리려고 한게 아니"라고 했다. 니힐리즘처럼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 물음 조차도 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 할수 없는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아리송한 말로, 작가가 입을 열자 작품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명확하게 보이던 오래된 책들과 활자 조각이 먼지 바람이 이는 것처럼 흩어지는 형세를 보였다.

 '이진용:컨티뉴엄(CONTINUUM)'이라는 전시 타이틀이 답이다.

 '반복'은 그의 화두다. 책으로 활자로 형상이 나타났지만 이는 그저 수없이 쌓이고 쌓인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로 뭉친 에너지라는 것.

"사물의 본질, 진실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걸 만질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요.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려고 하고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은 것 같은 작업이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작업한다고 했다. "일상적으로 먹고 자는 생활로는 이 같은 작업을 할 수 없어요. 사람이 할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내 작업입니다."

그는 "뭘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순간 피곤하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데,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알면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계라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작품은 귀신에 홀린듯 나온다. 일반적으로 먹고자고놀고해서는 이런 작품이 나올수 없다고 했다.  '책(Hardbacks)시리즈'는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긋고, 닦아내고, 다시 긋고, 다시 지워 시간과 색이 축적되고 누적되어 나왔다. 선 하나만 그어도 7~8시간 걸린다.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상상속의 이미지가 붓질의 반복으로 나온 것이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손으로 만져질 듯 생생하다.

 "매일매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1년에 열심히 한들 몇점을 만들겠어요?"

월화수목금토요일까지 중노동을 반복한다.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뭘하고 있는지를 내 스스로가 모르게" 작업하며, 오로지 일요일만큼은 '믿음의 세계'에서 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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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뉴시스】기존의 Hardbacks 작업이작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상의책을 구현한 작업이었다면, 이번 Hardbacks작업은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거나 나열한 동양과 서양의 서적이 만들어내는 수평과 수직, 수직과 수평의 교차를 표현했다. 동양서적은 수백, 수천 장의 쪽이수평으로쌓여 수직을 만들며, 서양서적은 수직으로 모여있는 책의 쪽들이 모여수평을 만들어 낸다.

 "제 책을 보세요. 따지고 보면 왜 한장한장 그려야 합니까? 왜 굳이 한 선을 숨도 안쉬고 그려야 할까요? 굳이 한장한장을 그릴 필요는 없는거잖아요?"

반문하듯 묻던 그는 다시 되돌이표로 돌아갔다. "하지만 저에게는 반드시 한장의 개념의 중요합니다. 그 작은 빈도,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수 있는 건 미세한 빈도잖아요. 그게 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반복은 그를 살게 하는 힘이다.

◇먼지 색에 매료···누적과 축적의 고행

8살 무렵, 사찰에서 그는 깨달았다. 처마위에 있는 먼지가 제일 궁금했던 아이는 처마위로 올라가 급기야 손으로 먼지를 만졌다.

"몇백년된 누적된 빛, 그 색이 너무 매력적"이었다는 아이는 그때부터 "걸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여겼다.

어린시절은 기행 소년이었다. 백과사전 3개를 통째로 외우고, 교탁 옆 노란 주전자를 똑같이 그려 '천재 소년 화가'로 불렸다. 중학교 1학년때인 13세때부터 든 붓질은 44년째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부산 동아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아크릴, 유화, 나무조각, 돌 조각, 에폭시, 꼴라주등 다방면의 작업을 했다. 관심이 가는 소재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걸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재료나 기법을 연구했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제작과 파기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시도했던 여러 경험들이 지금의 작가를 만들어 냈다.

어떠한 직업도 가져본 적 없이 화가로 살면서 부산에 5개의 작업실을 가졌고, 즐거운 놀이처럼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말고 그가 집착하는 것은 30년 넘게 수많은 골동품과 차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집품인 목판활자와 열쇠, 화석, 책 등은 작품으로 나온다.

 과거의 작가는 누구보다 잘 그리고 누구보다 잘 표현하는 것을 지향했으나 요즘은 그런 부분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수도승들이 수행을 하듯 작품 하나하나에 반복적 행위와 고도의 집중을 통해 마치 굴러오는 돌을 다시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하루 하루 날마다 같은 작업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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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뉴시스】2014년부터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Type 시리즈는 재료의 변경, 외형의 크기변경, 작가 내면의 변화와 생각의 전환등 이번 전시를 진행할때까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전에 한작업들을 돌아보았고, 생각이나 작품을 표현하는 방법이 밀도있게 정리됐다"고 했다.

 "활자 작업은 2012년 아라리오갤러리를 나오면서 시작됐어요. 작업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제주도에 내려가 유배하는 심정으로 2년6개월간 서랍작업을 한 이후 육지로 나왔는데, 할만하구나하는 마음의 평정심이 생겼지요."

'활자 시리즈'는 2014년 학고재 상하이에서 첫 선을 보인후, 다시 작업을 거쳐 이번 전시에 180여점을 선보인다. 골동품 수집광인 그가 25년전부터 중국을 들락거리며 모아온 400~500년된 중국 목판활자를 똑같이 만들어냈다. 마치 금속활자처럼 단단해보이는 활자 시리즈는 반복과 빈도의 에너지를 전한다. 작은 활자가 모여 커다란 원의 파장을 이루며 우주를 만들어내는 듯 연출됐다.

눈이 아니라 오감으로 봐야하는 작품, 결국 작품의 메시지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으로 번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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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이진용 작가가 Type시리즈는 작업이 완성되기까지 2~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하고 있다. 활자의 배열, 본을 뜨고, 굳히고, 수성 에폭시를 바르고 말리고,석분을 뿌리고 물로 씻어내고, 닦아내고 광을 내는 과정을 거친 수많은 시간과 반복이 이뤄낸 결과다.

 "붓을 든지 44년만에 이제야 제가 해야 할일을 알았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제 작품은 '막연한 설레임'으로 만드는 빅뱅입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저는 무언가를 관람객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마치 고분을 발굴하듯 '4년간의 고행'을 통해 나온 이번 개인전은 '시간의 먼지를' 턴 듯하다. 일반적으로 30여점을 보이는 개인전과는 판이 다르다.  '컨티뉴엄'을 주제로한 '책' 연작(Hardbacks Series)과  '활자(Type)' 작업 220여점을 학고재 신관과 본관에 걸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훈련된 일이다. 특히 화가의 작업은 "천재적인 순발력이 아니라 꾸준히, 아주 미세한 빈도의 에너지가 있어야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보여주는 전시다. 7월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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