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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남, 두 개의 세계, 2026, Media installation, water tank, water, display, stainless steel, digital video, 120x60x200cm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이 다시 한번 변신했다.
이번에는 인공지능(AI)과 대화하며 ‘생명과 존재’를 묻는다. AI를 작품 제작을 보조하는 기술적 도구가 아닌 ‘사유의 대화자’로 삼아 인간의 눈으로 쉽게 볼 수 없었던 미세한 생명의 세계로 들어갔다.
고향 담양 용소폭포에서 직접 물을 떠와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물속에서는 작은 생명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만나고 흩어졌다. 미생물의 궤적은 산맥처럼 솟고 강처럼 흐르며 구름과 안개처럼 흩어졌다.
작가가 미생물을 산수의 형태로 만든 것이 아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생명의 움직임 속에 이미 존재하는 형상과 질서를 발견했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이이남 개인전 ‘시어무형(視於無形) 청어무성(聽於無聲): 생명과 존재를 향한 회화적 사유’다.
이번 전시는 AI와의 대화를 출발점으로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기술, 생명과 환경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형성하는 세계를 탐구한다.
이이남에게 AI는 작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익숙한 세계의 질서를 낯설게 바라보고 인간 중심의 시선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유의 대화자’다. AI와의 대화는 그의 시선을 인간 바깥의 존재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고전 회화와 산수 이미지를 디지털 기술로 변주해온 이이남의 관심은 이번 전시에서 미시적인 생명의 세계로 뻗어나간다.
현미경 속에서 포착한 미생물의 움직임은 전통 산수와 자화상, 인간의 신체 등 미술사에서 익숙하게 다뤄온 형상과 만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거시와 미시의 세계가 하나의 화면에서 교차한다.
여기서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누가 작품을 만드는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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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남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물과 미생물, 빛과 온도, 현미경과 카메라, 디지털 장치와 AI까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함께 개입한다. 작가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이미지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물질, 환경과 기술이 접촉하고 관계 맺는 과정에서 하나의 작품이 형성된다.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놓던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기술을 하나의 관계망 안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다.
대표작 ‘두 개의 세계’(2026)는 이러한 생각을 영상 설치 작품으로 펼쳐 보인다.
높이 2m의 스테인리스 구조물에 물이 담긴 수조와 디스플레이, 디지털 영상을 결합했다. 실제 물과 디지털 이미지가 한 구조 안에서 공존한다. 자연과 기술, 물질과 이미지라는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전시 제목 ‘시어무형 청어무성’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고, 소리 없는 것에서 듣는다’는 뜻이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이남은 인간의 감각으로 쉽게 포착할 수 없었던 작은 생명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거시와 미시, 인간과 비인간을 오가며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규정해온 세계를 다시 바라본다. 결국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산수가 아니라 생명과 존재가 서로 연결되고 관계 맺으며 만들어가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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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남 작가. 학고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1969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이이남은 전통 회화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동시대적 시각언어를 구축해왔다. 고전 회화와 산수 이미지를 디지털 매체로 변주하는 데서 출발해 영상과 미디어아트, 대형 미디어파사드와 공공 프로젝트 등으로 작업 영역을 넓혀왔다.
2023년 네덜란드 반고흐미술관 50주년 퍼포먼스에 참여했고 2024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이메르시프에서 열린 ‘디코딩 코리아’에도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한·이탈리아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기념해 로마 콜로세움에서 미디어파사드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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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남 작 '미시산수 - 금강내산' *재판매 및 DB 금지 |
고전 회화를 움직이게 했던 기술은 이제 인간의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을 바라보는 눈이 됐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며 이이남의 산수는 ‘생명과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시는 학고재 본관과 오룸에서 10월24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