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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예술인가 난류인가…과학이 다시 읽은 '고흐'

등록 2025-12-30 09:30:23  |  수정 2025-12-30 09:35:00

그림 속 붓질, 자연 현상 ‘난류’ 포착 여부 두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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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몰려 있다. 사진=이한빛 칼럼니스트 제공. 2024.08.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푸른 소용돌이와 요동치는 별빛. 후기 인상주의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1899)이 과학자들의 실험대 위에 올랐다. 그림 속 붓질이 자연 현상인 ‘난류(turbulence)’를 포착한 것인지를 두고, 최근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2024년 중국·프랑스 연구진의 논문을 인용해, 작품 속 붓질 패턴이 러시아 수학자 콜모고로프가 제시한 난류 ‘스케일링 법칙’과 통계적으로 유사하다는 해석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논쟁의 불씨는 이 논문에서 시작됐다. 연구진은 그림 속 소용돌이 형태의 붓질을 분석한 결과, 유체역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콜모고로프 난류 이론과 유사한 통계적 패턴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14개의 소용돌이를 정밀 분석해, 예술 속에 자연 법칙의 수학적 흔적이 담겨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이 연구는 언론을 통해 소개되며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곧바로 반박이 뒤따랐다. 미국 워싱턴대의 제임스 라일리 교수 등은 “회화 이미지를 실제 유체 흐름처럼 취급한 것은 개념적 오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림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회화적 표현이며, 이를 과학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해석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주장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그렇다면 에드가 드가의 회화에서도 유사한 수학적 패턴이 발견되는데, 이것 역시 난류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되물으며 논문의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물리학자이자 해당 논문의 공동 저자인 프랑수아 슈미트는 “예술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범위에서라도 난류의 법칙이 관찰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반박했다. 함께 연구에 참여한 중국 연구진 역시 “그림을 유체로 환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붓질의 밝기 변화에서 난류의 통계적 특징을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의 호세 루이스 아라곤 교수는 보다 중간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는 그림을 실제 유체로 해석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픽셀 간 밝기 변화와 속도 변화를 대응시켜 난류의 ‘본질적 특징’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사례로서 이 작품을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과학적 증명이라기보다, 자연 현상의 역동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한 회화적 성취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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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 언론 공개 행사를 갖고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작품 '자화상'을 선보이고 있다. 2024.11.22. [email protected]


아직 ‘별이 빛나는 밤’이 난류의 과학적 증거인지, 혹은 예술적 표현에 불과한지는 결론 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논쟁을 두고 “과학이 교과서 속의 정적인 사실 집합이 아니라, 논쟁과 감정, 인간적 반응으로 이루어진 과정임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 논쟁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고흐가 난류를 알고 있었는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묻고 있다.

예술은 어디까지 과학의 언어로 해석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고흐의 소용돌이는 여전히 하나의 답이 아니라 열린 장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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