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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진 것들과 남겨진 것들…차연서·허지은 2인전

등록 2025-11-03 17:21:15  |  수정 2025-11-03 18:41:05

두산갤러리 지원 대상 디아스포라 작가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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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서, 〈축제〉, 2023, 페이퍼컷 콜라주(닥종이에 채색: 故 차동하), 가변설치, (《혀 달린 비》, 아트선재센터, 서울, 2024)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어딘가로 보내진 것들은 늘 무언가를 남긴다.

말로 전하지 못한 기도, 흩어진 종이의 조각, 태평양을 건너간 믿음의 그림자, 그리고 남겨진 자들이 주워 담은 기억들.

서울 종로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이곳에서 두 명의 작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잔향을 포착한다.

서울의 차연서(48), 뉴욕 기반 한국계 미국인 허지은(Gi Huo·40)의 전시 ‘sent in spun found’는 ‘보내진 것들과 남겨진 것들’이라는 공통의 서사를 통해 경계의 감각을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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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Gi (Ginny) Huo), 〈라이에로 가는 길〉, 2025, 시트지에 디지털 컬러 프린트, 단채널 영상, 16mm 필름, 컬러, 1분 55초, 반복 재생, 725.8 × 240cm, 사진 이의록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 입구에는 허지은의 '라이에로 가는 길'이 걸려 있다. 짙은 녹음의 풍경이 끊기고 겹쳐지는 화면, 그 사이로 작가가 고향 하와이 라이에(Lā‘ie)를 찾아가며 기록한 영상이 흐른다.

그의 가족이 머물렀던 이 지역은 19세기 후반 몰몬교가 매입한 땅으로, 사탕수수 농장과 대학, 성전으로 변모한 역사를 품고 있다. 허지은은 종교가 ‘신의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권력을 구축해왔는지, 그리고 그 믿음이 타인을 배제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켜온 역설을 시각화한다.

차연서는 남겨진 종이로 꿰맨 생의 조각들을 보여준다. 닥종이 연작 '축제'(2023~)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남겨진 닥종이 더미에서 시작됐다.  짙은 색으로 물든 종이를 오려 죽음과 상실, 재생의 형상으로 엮었다.

그의 작업은 천도재(水陸齋)를 닮았다. 죽은 이를 보내고 남겨진 자를 위로하는 의례처럼, 종이의 표면에는 끊어진 존재들을 향한 기도가 스며 있다. 붉은 뱀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며 도는 이미지는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관계의 순환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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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서, 〈축제〉 연작, 2025, 페이퍼컷 위빙(故 차동하의 닥종이에 채색), 기타오카 아키요시의 착시 연구 ‘회전하는 뱀’, 회전형 Ø 95cm, 혀 10 × 20cm, 사진 이의록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 ‘sent in spun found’는 보내지고, 실에 엮이고, 발견된 것들의 이야기다. 

허지은은 믿음의 구조를 해체하며 신앙의 윤리를 되묻고, 차연서는 죽음의 흔적을 꿰매며 돌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는 두산아트센터 장혜정 큐레이터와 뉴욕의 루미 탄(Lumi Tan)이 공동 기획했다. 두산갤러리가 한국계 디아스포라 작가로 지원 대상을 확장하며 예술을 통해 동시대의 복합적 담론을 잇는 새로운 시도다.

전시는 12월 13일까지.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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