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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광복 80주년 기념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언론공개회를 13일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갖고 일제강점기와 광복, 분단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간직해온 ‘고향’의 정서를 한국 근현대 풍경화와 시, 망명 가사 등을 선보이고 있다.사진은 이만익 작가의 '청계천'(오른쪽). 2025.08.13. [email protected]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 시절은 어떻게 살아냈을까. 한 장의 그림이 한 시대의 풍경이 된다. 1~4전시실에 걸친 200점이 넘는 작품은 마치 거대한 화집 속을 천천히 걸어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어둠과 빛이 번갈아 호흡하는 전시장,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는 동선은 관객의 발걸음을 길게 붙잡는다. 사각 창 너머로 건너편 그림이 비치고, 한 발 옮기면 시선이 다시 맞물린다. 벽과 벽, 방과 방은 스며들듯 연결되고, 바닥에 깔린 푹신한 카펫은 오래 머물다 가라는 듯 부드럽게 품어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3일 개막한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전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며, 격동의 근현대사 속 ‘고향’이라는 감정을 네 개의 주제로 펼쳐낸다.
향토(鄕土)–빼앗긴 땅’, ‘애향(愛鄕)–되찾은 땅’, ‘실향(失鄕)–폐허의 땅’, ‘망향(望鄕)–그리움의 땅’으로 엮었다.
회화·조각·사진 등 약 210여 점의 근현대 미술품 가운데 80여 점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며, 나머지는 지방 공립미술관과 문학관, 개인 소장처에서 대여한 귀중한 작품들이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대와 지역을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고향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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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미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13일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광복 80주년 기념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전시작인 이상범 작가의 작품 '귀로'를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분단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간직해온 ‘고향’의 정서를 한국 근현대 풍경화와 시, 망명 가사 등을 선보이고 소개한다. 2025.08.13. [email protected] |
◆ 빼앗기고 되찾은 ‘향토’와 ‘애향’
1부 ‘향토’는 일제강점기 우리 땅을 그린 각 지역 풍경화로 시작한다. 이상범의 〈귀로〉를 필두로, 식민주의 시각이 투영된 ‘향토색’ 회화와 이를 넘어 빛과 색채 속에서 조선의 자연을 재발견하려 한 오지호, 김주경의 작업이 나란히 걸렸다.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의 날 선 시구, 정지용·백석·이용악·오장환의 향수시, 유네스코 등재 독립운동가의 만주망명 가사도 함께 전시된다. 회화와 시, 음반 커버, 원고들이 한 벽면에서 숨을 섞으며 한 시기의 예술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그림과 시를 나란히 건 연출은 관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시선이 머무는 동안 작품 속 풍경이 시어를 타고 머릿속에 다시 그려진다. 시의 행간이 붓질과 겹치는 순간, 회화는 설명문이 아닌 ‘이야기’로 변한다. 여기에 영상으로 상영되는 시 10편이 시각·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향수’라는 주제를 감각적으로 확장한다. 다만 영상 상영 공간이 별도로 어둡거나 몰입감 있는 구조였다면, 그 울림이 더 깊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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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1전시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2부 ‘애향’은 광복 이후의 화단을 비춘다. 손일봉, 문신, 이응노, 김환기, 유영국, 전혁림, 변시지 등 거장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출발한 예술 세계를 펼쳐낸다. 김환기의 푸른 섬과 달빛, 유영국의 산 추상, 전혁림의 통영 바다, 변시지의 제주 바람은 모두 개인의 뿌리에서 현대적 조형언어로 확장된 풍경이다.
특히 이 전시실에서는 익히 알려진 김환기·유영국·이응노의 작품세계가 ‘고향’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이는 한국 근대미술이 현대미술로 접속하는 전환기의 본질을 가늠하게 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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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광복 80주년 기념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언론공개회를 13일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갖고 일제강점기와 광복, 분단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간직해온 ‘고향’의 정서를 한국 근현대 풍경화와 시, 망명 가사 등을 선보이고 있다.사진은 신석필 작가의 '강변의 가족들'. 2025.08.13.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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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광복 80주년 기념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언론공개회를 13일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갖고 일제강점기와 광복, 분단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간직해온 ‘고향’의 정서를 한국 근현대 풍경화와 시, 망명 가사 등을 선보이고 있다.사진은 이만익 작가의 '종점'. 2025.08.13. [email protected] |
◆ 폐허와 그리움, 그리고 부재한 이름들
3부 ‘실향’에서는 6·25전쟁이 남긴 폐허와 상흔이 드러난다. 이종무의 '전쟁이 지나간 도시', 도상봉의 '폐허'는 쓸쓸한 전후 도시를 그렸고, 신영헌·이수억·남관은 거친 붓질과 형태 해체로 전쟁의 충격을 화면에 옮겼다. 이만익의 '청계천', 전화황의 '전쟁의 낙오자'는 피난촌의 절망을 강렬하게 포착했다.
4부 ‘망향’은 실향민 작가들이 그려낸 ‘그리움의 땅’을 다룬다. 윤중식, 박성환, 최영림 등은 가족과 고향을 상실한 아픔을 이상향의 풍경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이번 전시 전체에는 여류 화가가 단 한 명도 없다. 화단에서 ‘망향’을 깊이 다룬 여성 작가를 찾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한국전쟁 이후 망향은 대체로 남성 작가들의 시선에서 기록됐고, 여성들은 생계 부담 속에서 장기적 창작 여건을 갖기 어려웠다. 이 부재는 오늘날 발굴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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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광복 80주년 기념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언론공개회를 13일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에서 열렸다. 사진은 오지호 작가의 '동복산촌'. 2025.08.13.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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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국립현대미술관,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전시 전경. 공간 속 공간으로 연출, 작가들의 이어지는 작품을 몰입하며 볼 수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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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국립현대미술관,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전시 전경. 전시장 공간 속 공간이 눈길을 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길과 창’이 만든 전시의 호흡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건 ‘공간 속 공간’ 연출이다. 작품들은 벽이 아니라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본다. 한쪽 벽의 사각 구멍 너머로 건너편 그림이 스치듯 보이고,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시선이 다시 맞물린다. 관객은 그 틈을 오가며 하나의 회화와 또 다른 회화를 나란히 기억 속에 겹쳐 넣는다. 전시장은 통로이자 거울, 그리고 느린 파노라마다.
전시장 곳곳의 엔틱 액자들도 눈길을 붙든다. 화려하지 않지만, 나무결에 새겨진 세월이 작품과 함께 ‘시간’을 전한다. 황금빛 프레임은 시대의 공기와 작품의 질감을 동시에 묶어내며, ‘고향’이라는 주제를 물리적 기억으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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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전시에 선보인 손일봉의 화구함. *재판매 및 DB 금지 |
그림만큼이나 오래된 ‘손일봉의 화구함’도 발걸음을 붙든다. 손때 묻은 나무 함, 테이프로 감아 묶은 손잡이, 닳아버린 팔레트, 붓 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물감병…. 그것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작가가 평생 쌓아온 시간의 압축파일이다. 손일봉의 화구함은 물감보다 세월의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 색은 짙은 흙빛으로 남아, 땅과 닮은 시간의 농도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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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미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13일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광복 80주년 기념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전시작인 김환기 작가의 '섬 스케치'(왼쪽)와 '운월'을 설명하고 있다. 2025.08.13. [email protected] |
근대미술팀 김미금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고향의식, 풍경화, 지역작가에 초점을 맞췄다”며 “고향이라는 심상의 지리를 따라가는 여정은 한 폭의 그림 속 인물이 걸어가는 귀로(歸路)”라고 설명했다.
김성희 관장은 “시대와 조국을 담아낸 예술가들의 시선을 오롯이 느끼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향수, 고향을 그리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 열린다. 관람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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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광복 80주년 기념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언론공개회를 13일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갖고 일제강점기와 광복, 분단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간직해온 ‘고향’의 정서를 한국 근현대 풍경화와 시, 망명 가사 등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13. [email protected] |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회화, 조각, 사진 등 210여 점
▲참여작가 : 강운섭, 권송대, 권옥연, 권진호, 금경연, 김기림, 김남배, 김세용, 김수명, 김용조, 김우락, 김우모, 김원, 김인승, 김인지, 김정현, 김종태, 김종휘, 김주경, 김환기, 남관, 도상봉, 문신, 박노수, 박돈, 박득순, 박명조, 박상옥, 박성환, 박수근, 박철준, 백락종, 백석, 변관식, 변시지, 서동진, 서석규, 손일봉, 송혜수, 신석필, 신영헌, 안기풍, 안승각, 양달석, 오장환, 오종욱,오지호, 우신출, 유영국, 윤동주, 윤중식, 이달주, 이동훈, 이만익, 이상범, 이상정, 이상화, 이석우, 이수억, 이용악, 이응노, 이인성, 이종무, 이중섭 임응식, 임호, 장리석, 전선택, 전혁림, 전화황, 정운면, 정종여, 정지용, 정현웅, 진환, 천병근, 최계복, 최덕휴, 최영림, 최종태, 한묵, 허건, 허백련, 홍종명, 황유엽 등 미술인 및 문학작가 총 8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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