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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지난 1일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8.01. [email protected]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진짜 AI는 인간을 닮아야 해요. 백남준은 이미 거기까지 본 사람이죠.”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려는 듯 밀려드는 시대,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오히려 ‘감각’과 ‘상상’을 호출한다. 개관 17주년을 맞은 지금, 그는 인지도와 물리적 한계를 넘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 ‘연결과 확장’이라는 백남준의 정신을 동시대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박남희 관장을 만났다. 부임 2년 차인 관장은 취임 직후부터 아트센터의 물리적·인지적 한계를 냉정하게 짚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 협소한 전시 공간, 부족한 예산… 모든 게 센터 활성화의 걸림돌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였습니다. 기업과 지자체를 설득했어요. ‘백남준을 품은 경기도, 그 경기도가 앞장서야 하지 않겠냐’고요.”
현대자동차와의 공동 전시 프로젝트 ‘트랜스-로컬 시리즈’를 통해 3년간 6억 원을 확보했고, 용인시와 함께 9억 원 규모의 기획전 '백남준의 도시'도 성사시켰다.
그는 “단순한 예산 유치가 아니라, 백남준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협력 기반을 만든 일이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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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전지적 시점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시 공간 협소…1700여평 별관 추진"
하지만 원형 동선과 피아노 형태의 구조는 전시의 유연성을 떨어뜨린다. 이에 박 관장은 별관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원래 3400평이었던 부지로 현재 센터 전시공간은 약 700평에 불과하고, 피아노 형태 건축물의 구조상 작품 설치에 제약이 많다.
박 관장은 별관 신축을 공식화하며, 경기도와 함께 3단계 실행계획을 추진 중이다. "기존 부지 옆 언덕에 전용 전시관을 짓고, 현재 건물은 연구와 아카이브 중심으로 재편할 계획입니다. 2032년 탄생 100주년을 목표로 삼았어요.”
“21세기 유산 공동체 시대, 기술과 예술이 융합된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백남준이 그렸던 경계 없는 예술, 초연결성, 다성성은 지금이야말로 실현 가능한 언어예요.”
그는 또한 “센터의 가장 큰 과제는 인지도 격차와 인프라의 빈틈”이라며, SNS, 생활형 홍보, 무장애 산책로 조성, 교육 다양화 등 체류형 공간 개선 전략을 강하게 밀고 있다.
“젊은 세대가 미디어아트를 이해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것보다, 이곳에 왔기 때문에 백남준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백남준은 예언자였다”
“향후 100년 안에, 백남준처럼 예술을 통합적으로 실천한 인물은 다시 없을 겁니다.”
"음악에서 출발해 시각예술, 미디어, 무용, 문학, 철학까지… 백남준은 예술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린 ‘총체 예술가’였어요. 더 나아가 동양 철학과 서양 과학(양자역학, 이진법, 라이프니츠 사상)을 넘나들며, 지금-여기의 문제를 통과해 미래를 예감했다. “현재의 기술 조건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고, 그 예술은 늘 소통의 구조를 가졌어요.”
챗GPT와 인간을 비교하는 시대, 박 관장은 백남준의 예술이 “기계와 인간 사이의 간극을 여전히 유효하게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박남희 관장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기술의 진보보다 더 중요한 건 인간의 직관이며, AI 시대일수록 예술은 더욱 ‘백남준적’이어야 한다는 확신이다.
“예술의 미래는 과거에 있어요. 백남준은 예언자였어요. 백남준의 예술은 기술의 최전선에 있었지만, 동시에 인간 그 자체를 드러내는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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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사진=백남준아트센터 제공. 2019.12.18. [email protected] |
백남준아트센터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미디어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1932~2006)의 예술세계를 기념하고 연구·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된 경기문화재단 산하의 미술관이다. 2008년 10월 8일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열었으며, 지상 3층·지하 2층 약 5600㎡ 규모로 다양한 전시, 교육, 연구를 진행해왔다. 상설전, 기획전 외에도 ‘백남준 예술상’, 방대한 아카이브,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백남준의 예술정신을 동시대에 잇고 있다.
아트센터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는 정체성 아래, ‘21세기 예술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백남준이 예언한 초연결성과 다성성은 오늘날 더욱 실현 가능한 언어가 되었다. 박 관장은 이 철학을 바탕으로,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통신사, 정원, 도서관, 은행, 대중예술가 등 예술 밖의 주체들과의 협업은 물론,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와 교류도 이어간다. 이를 바탕으로 아트센터는 더 많은 실험, 더 많은 연결, 더 많은 참여, 더 많은 공유가 이뤄지는 ‘열린 무대’를 지향한다.
전시, 교육, 체험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동시대 예술의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위한 실천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는 비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 말은 2002년, 백남준이 경기도와 미술관 건립을 확정하며 직접 도면 위에 남긴 문장이다.
박남희 관장은 이 문장의 진짜 의미를 이렇게 풀어낸다. “백남준과 경기도의 협약서에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이 미션은 단지 그의 유산을 보존하자는 뜻이 아니에요. 새로운 미술가를 발굴하고 조명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자는 것이죠. 다시 말해, 백남준 이후의 백남준들. 제2, 제3, 제4의 예술가들이 계속해서 실험하고 사유하며 등장하는 것. 그 확산의 가능성 자체가 ‘그가 오래 사는 집’이라는 말의 본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미술관은 소란스러워야…별관 신축 추진”
박 관장이 구상 중인 아트센터의 미래는 ‘조용한 보존 공간’이 아니다. “삼대가 슬리퍼 끌고 놀러 와 전시 보고, 근처 맛집도 들르는 곳, 그게 바로 백남준이 살고 싶던 집이었을 거예요.”
“저는 이 공간이 백남준을 기리는 기념관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실험실이 되기를 원해요.”
백남준아트센터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용한 기관으로 여겨졌지만, 박 관장 부임 이후 전시는 물론 관람객 수, 국제 협력까지 전방위 확장을 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관람객은 18만 700명을 돌파했고, 올해 상반기만 해도 전년 대비 276% 상승한 12만여 명이 센터를 찾았다.
“우리가 백남준을 더 자주, 깊이, 그리고 친근하게 보여줄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당초 3단계로 계획된 센터가 1단계만 완공된 채 멈췄기 때문이죠.”
2032년 백남준 탄생 100주년을 목표로, 국제적 건축가와 함께 랜드마크성 별관을 신축하고, 보이는 수장고·대중 체험 공간·교육시설 등 미래형 인프라를 갖춘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다가오는 2026년 서거 20주기, 그리고 2032년 탄생 100주기를 향해 박 관장은 장기 로드맵을 실현해가고 있다.
현재 센터는 동선의 불편함, 진입로 부재, 외관 혼잡 등 현실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리모델링과 공간 확장, 관람 환경의 대대적 전환을 통해 ‘살아 있는 미술관’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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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지난 1일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8.04. [email protected] |
◆2026년 20주기 전시 “창고 속 백남준 꺼내 바람이라도 쐬게 하자”
"컬렉터치고 모두가 한두 점씩은 가지고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었어요. 내년엔 밖으로 꺼내볼까 합니다.”
2026년 백남준 20주기를 맞아, 아트센터는 ‘외부의 백남준’을 모아 전시할 계획이다. 소장자와 갤러리들이 보유한 백남준 작품을 빌려와, ‘백남준이 다시 말하기 시작하는 공간’을 연다는 구상이다.
특히 박 관장은 내년 백남준 서거 20주기를 전환점으로 삼고, 전 세계 유관기관과 연계한 대규모 국제 행사들을 준비 중이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백남준, 갇혀 있던 백남준, 다시 호흡하는 백남준을 만나게 될 거예요. 내년기일인 1월 29일엔 봉은사 위패 추념, 오후엔 ‘AI 로봇 오페라’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연중 다양한 공동전시와 페스티벌, 학술행사를 이어갑니다.”
2026년에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현대미술관, 브라질 상파울루 피나코테카미술관과의 공동 전시도 예정돼 있다. 백남준의 목소리를 되살리기 위한 학술심포지엄, 단행본 출간, 연구서 번역 프로젝트도 병행된다.
“해시태그는 #NamJunePaikVox. 백남준의 목소리가 언제 어디서나 들리게 하는 거죠. 그를 다시 부른다는 건, 예술이 다시 시작된다는 뜻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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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지난 1일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8.04. [email protected] |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이자, 예술철학의 모험가였지만, 아직도 미술사 교과서에서 빌 비올라보다 짧게 언급됩니다. 이제 한국이 K-아트를 이끄는 시대라면, 백남준을 둘러싼 미술사의 서술 역시 새롭게 쓰여야 한다는 것. “우리의 역할은 연구하고, 움직이고, 교류하며 그 미술사를 정립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그는 '백남준예술학'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제 적인 백남준예술학회를 만들고 백남준의 예술사적 가치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지도 보였다. “다른 나라들은 관련 학교도 있는데, 왜 우리는 백남준 이름을 내건 학회나 교육기관이 없느냐는 생각을 했어요. 국제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왔을 때 그들이 연구하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백남준은 단순히 ‘세계적인 미디어 작가’로는 다 담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국가 차원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지원과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예술상, 이름만 남기지 않기 위한 개편
박남희 관장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백남준예술상’의 리뉴얼을 꼽았다. 2009년 제정된 이 상은 2024년부터 새로운 철학 아래 재정비되었다.
“예술가의 이름이 붙은 상이라면, 단순히 작품성만이 아니라 그 예술가가 가진 철학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백남준은 예술가이자 철학자였고, 전쟁과 차별에 반대하며 세계를 연결하려 했죠. 그런 정신을 되살리는 상이 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리뉴얼된 예술상은 '미술사에 족적을 남기는 혁신’과 함께, ‘인류 평화에 기여한 예술’이라는 가치를 함께 기준으로 삼는다.
그 상의 새로운 첫 수상자는 1936년생의 미국 작가 조안 조나스(Joan Jonas). “조나스는 여성과 생태를 주제로 오랫동안 작업해왔고, 백남준처럼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이며, 탈권위적이고 연결적인 예술 세계를 보여준 인물이에요. 예술의 혁신성과 윤리성을 모두 갖춘 존재였죠. 오는 11월 그의 전시를 개최합니다."
앞으로도 이 상은 백남준 이후의 예술정신을 계승하는 예술가들, 그리고 예술을 통해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인물들을 꾸준히 조명할 계획이다.
◆ 예산과 제도의 벽, 그 너머로
하지만 백남준아트센터가 안고 있는 행정적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현재 센터는 경기문화재단 산하 7개 미술관 중 하나로, 기관별 특성과 무관하게 일괄적으로 예산과 인력이 배정되는 구조에 놓여 있다.
2024년 기준 센터의 연간 예산은 약 30억 원. 국제적 교류와 미디어 전문성을 지닌 기관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각 미술관은 저마다 다른 정체성과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똑같은 기준으로 예산과 인력을 배분받는 건 문제가 있죠. 백남준아트센터는 국제 교류와 미디어 중심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기관입니다. 그 특성에 맞춘 별도 기준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박 관장은 이 문제를 단순한 ‘불만’으로 말하지 않는다. “행정적으로 준비하고 제도화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설득하고 변화시켜야 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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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 지난 1일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25.08.04. [email protected] |
◆"나는 Park Namhee…백남준 딸"
박남희 관장은 2023년 가을부터 이 센터의 5대 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종종 자신을 '백남준의 딸'이라 부른다. 영어 이름 ‘Namhee Park’은 백남준(Nam June Paik)과 어딘지 닮아 있다.
“제가 영어로는 Park Namhee잖아요. 백남준 선생님은 Nam June Paik. 첫 글자에 두 개가 같다는 건 이건 운명이죠.” 그는 백남준의 딸 같은 존재라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와 함께 일하며,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팀장 면접에서 낙방했지만 이후에도 백남준을 놓지 않았다. 홍익대 예술학 박사 출신으로, 청주공예비엔날레(2013), ACC 교육사업본부장(2016~2020),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2022), 가파도 AiR 총감독(2023) 등을 거친 실험예술 기획자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오랜 애정과 리더십으로, 취임 2년 차를 맞은 지금, 센터를 새로운 도약의 길로 이끌고 있다.
“그의 이름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처음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십수 년을 돌고 돌아 준비했죠.” 그의 말처럼, 박 관장의 이력은 단순한 커리어를 넘어선 일종의 '사적 소명'에 가깝다. 백남준의 정신을 해석하고, 동시대에 이어가기 위한 다층적 실천이었으며, 그 총합이 지금의 관장직으로 이어진 셈이다.
“연임에 대해서요? 책임감이 큽니다. 아직 다 못 했어요. 전시, 별관, 글로벌 네트워크… 무엇보다 백남준이라는 이름이 오늘날의 기술과 감각, 그리고 인간의 윤리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박 관장은 임기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연임에 대해 묻자 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미술인으로서 교수, 평론가, 기획자, 행정가, 경영가 등 여러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백남준아트센터는 저에게 특별한 중심을 부여하는 자리예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을 모아, 백남준의 예술 레거시를 더 깊이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것-그리고 이를 위한 운영과 경영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그게 지금 제 역할입니다.”
그는 2000년, 일주아트하우스 시절 ‘미디어아트연구모임’을 주도하며 이 분야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때부터 백남준은 그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의 화두였다.
“운 좋게도 지금, 그 오랜 주제와 함께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요. 백남준은 ‘정보초고속도로’를 예견하며 언제나 새로움을 향해, 고정된 방식을 벗어났죠. 그런 백남준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은 저에게 ‘일생일대의 만남’ 같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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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백남준아트센터 1층 전경. 백남준이 화면에서 계속 말하고 움직이는 백남준의 집이다. 2025.08.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
전시장 1층, 백남준이 남긴 말이 있다.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 지금 미래를 투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문장은 여전히 관람객을 붙잡는다.
“시간을 눈으로 보게 하고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백남준의 이 말처럼, 박남희 관장 역시 지금 이곳에서 시간을 축적하고 있다.
그에게 백남준아트센터는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하나의 ‘시간 실험실’이다. 백남준이 그랬듯, 그는 시간 속에 무언가를 묻고, 키우고, 기다리는 방식으로 이 기관을 운영하고자 한다. 그러니 ‘임기’는 시간의 끝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에 가깝다.
관장직을 맡으며 가장 힘든 점은 “너무 많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는 여전히 연구자로서의 삶을 꿈꾼다.
“계속 연구하고 싶어요. 전시도 하고, 책도 쓰고 싶고요.”
박남희가 지키려는 것은 단지 한 예술가의 이름이 아니다. 그가 지키는 것은 그 예술이 남긴 질문, ‘기술 너머의 인간성’이다. 실험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기획, 포용적 감상의 교육, 미디어아트의 미래 생태계 조성까지. 이제 ‘박남희’라는 이름도 ‘백남준의 시간’을 함께 빚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고 있다.
“백남준이 열어준 미래를 지속하고, 더 깊고 넓게 지키기 위해 백남준아트센터는 차분하면서도 활발하게 그의 예술적 유산을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일부이자 미래에게 건네줄 ‘지구의 오늘’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그 태도와 방법을 익혀가는 터전. 바로 여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백남준아트센터의 존재 이유겠지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