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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죄가 없다, 그러나 전쟁은 디자인된다

등록 2025-07-06 01:00:00  |  수정 2025-07-06 01: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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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디자인은 아름다움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무기’가 된다.

국기, 군복, 포스터, 슬로건. 우리가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시각 언어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전쟁의 도구로 기능해왔다.

 이 책 '전쟁과 디자인'(고유서가)은 바로 그 숨겨진 진실, 디자인의 ‘어두운 이력’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저술가인 저자는 “디자인에는 죄가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다. 국가는 디자인을 동원해 이념을 주입하고, 증오를 확산시키며, 전쟁을 정당화했다.

디자인은 ‘설계하다’라는 뜻 외에도 ‘꾀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바로 그 꾀함의 역사, ‘그릇된 디자인’의 계보를 추적한다.

책은 총 네 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색’이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명한다. 붉은색은 공산주의의 열기이자 혁명의 상징이었고, 검은색은 나치 독일의 공포와 결탁했다. 국기와 군복, 포스터와 배경색 하나에도 이념이 깃들었다.

2장은 전쟁을 관통한 ‘상징’의 역사다. 하켄크로이츠(卍), 다윗의 별, 푸틴의 ‘Z’ 마크 등, 상징은 시대와 맥락에 따라 기능이 완전히 변형됐다. 의미는 정치의 손아귀에서 언제든 재디자인된다.

3장에서는 언어를 분석한다. '특별군사작전', '비국민', '하일, 히틀러!'. 디자인된 말들은 사람들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행동을 동원한다. 저자는 “말조차 시각화되어 선동된다”고 말한다.

4장은 포괄적 맥락에서 디자인의 전략을 조망한다. 히틀러는 요리사 복장을 한 채 포스터에 등장했고, 여성 병사는 성적 매력을 앞세운 선전물로 소비되었다. 시각의 감각은 언제나 이데올로기를 은폐하거나 강화하는 데 사용됐다.

이 책의 진가는 풍부한 도판과 함께, 우리가 알고 있던 디자인의 ‘선함’을 의심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인문학적 통찰에 있다. 단순히 그래픽의 역사로 읽히지 않는다. 이는 ‘정치와 감각’의 역사이자, ‘기호와 폭력’의 문화사다.

“어지럽게 펄럭이는 국기에는 전쟁의 기운이 감돈다”는 지적처럼, 디자인은 늘 우리의 무의식을 조용히 설득해왔다. 그리고 전쟁은, 늘 그 무의식을 타고 들어왔다.

오늘날에도, ‘잘 디자인된’ 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디자인의 죄는 없지만, 그 죄를 짓게 만드는 손과 눈, 그리고 말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이 책은 그 책임의 자리를, 조용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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