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Pick

그리다 만 듯 아지랑이 같은 그림…서승원 'The Interplay'

등록 2025-06-04 15:03:54

PKM갤러리서 개인전

associate_pic
Suh Seung-Won, Simultaneity 22-802, 2022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작품 앞에 서면, 봄 아지랑이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온기를 마주하는 듯한 감각이 먼저 온다. 분홍빛, 연노랑, 담청색의 색면들이 투명하게 겹쳐지고 흘러내리며, 물질보다 감각에 가까운 회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중심도, 경계도 없이 시간과 공간, 안과 밖이 한 덩어리로 녹아들며, 관람자를 조용히 감싼다.

서울 삼청동 PKM 갤러리는 오는 5일부터 7월 12일까지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서승원 화백(84)의 개인전 'The Interplay'를 개최한다.
 
전시 제목 'The Interplay'는 ‘상호작용’을 뜻한다. 빛과 색, 시간과 공간, 내면과 외면이 화면 속에서 겹치고 스미며, 서승원이 천착해온 ‘동시성(Simultaneity)’개념을 더욱 입체적으로 확장시켰다.

associate_pic
Installation view of The Interplay at PKM *재판매 및 DB 금지


‘동시성’은 그가 1970년 서울 신문회관에서의 첫 개인전 타이틀로 내세운 이래 50여 년간 작업 세계를 관통해온 조형 철학이다. 이는 단순히 조형어휘를 넘어서, 감각 가능한 현실 세계와 내면 세계가 하나의 장(場)에서 공존한다는 철학적 사유에 바탕한다. 서승원은 이 개념을 “빛과 색채의 겹침과 잔상, 그리고 감각 너머의 조용한 울림”으로 시각화해 왔다.

화면은 칠한 듯 만 듯, 그린 듯 만 듯한 채로 부유한다. 명확한 이미지 없이도 은근한 부드러움이 관통하고, 그 안에서 조형은 언어보다 명확하게 말을 건넨다. 서성록 평론가가 “신기루 같다”고 했던 바로 그 회화다. 윤진섭 평론가의 말처럼, “자연 관조를 통한 심상적 풍경”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100호 미만의 비교적 소형 작품들은 조용한 리듬 속에서, 각 화면이 독립적이면서도 서로를 반사하고 공명한다.

1960년대 홍익대학교 회화과 재학 시절부터 서승원은 ‘조형의 간결성’에 매료되었다. 색채의 과잉과 감정의 폭주에서 벗어나, 네모꼴의 평면 위에 정갈하고 이지적인 회화를 펼쳐냈다. 1962년 기하추상 그룹 ‘오리진’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그는 평생 한 장르에 매달렸고, 이는 단색화와도 맞닿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 독자적 궤도를 그렸다.
associate_pic
서승원, Simultaneity 22-707,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62.3 x 130.5cm. PKM 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형태는 사라졌지만, 울림은 더욱 깊어졌다. 초기의 기하학적 색 분할 회화에서 시작해 평면기(1970~80년대), 주정기(1990년대)를 거쳐, 최근의 관조기(2000년대 이후)에서는 아예 네모의 형상조차 희미해졌다. 파스텔톤의 화면은 점점 더 비물질화되었고,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화면 위에 떠 있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에 있다.” 서승원의 회화가 주는 감정은 어떤 명제보다 이 문장에 가깝다. 이 전시 'The Interplay'는 조용한 밀도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회화의 존재론을 다시 환기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