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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작가' 이슬기 '라쇼몽'…현판에 새긴 쿵쿵 쉬 부시시

등록 2024-06-30 10:34:28  |  수정 2024-06-30 11:34:52

"한국어 의성어 의태어는 매우 그래픽적"

신작 '현판 프로젝트' 발표

갤러리현대서 6년만의 개인전 '삼삼' 8월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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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이슬기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이불도 전시장에 걸리면 작품이 된다.

한 땀 한 땀 통영 누비장인과 협업한 작가 이슬기의 '이불 프로젝트:U'로, '일상 모든 것이 현대미술이다'는 개념을 차용한 영악한 작품이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2015년 어느 날 이불 작업을 시작했다. 프랑스 친구에게 누비이불을 선물하고 싶은 생각이 어긋나면서다. 옛날 누비이불은 더 이상 한국에서 만들지 않아 구할 수 없어졌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이전에 없던 '이불 작품'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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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이슬기 개인전 '이불 프로젝트:U'  작품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이불이 작품이 된 건 작가의 독창적인 시선과 상상력 덕분이다. 1992년 프랑스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방인으로 세계 여러나라의 민속적 요소와 일상적 사물에 관심을 가졌다. 소통의 장벽인 언어를 기하학적 패턴으로 묘사하고, 선명한 색채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조각과 설치 작품을 작업해왔다.

6년 만에 서울에서 연 이슬기 개인전은 역시 엉뚱발랄한 재치와 상상력이 돋보인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27일 펼친 이불 작품과 신작 현판프로젝트는 개인전 타이틀 '삼삼'처럼 삼삼하고 기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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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현판프로젝트 쿵쿵〉, 2024, 홍송, 단청, 140 x 180 x 4 c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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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이슬기 개인전 현판프로젝트 전시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현판프로젝트'는 볼수록 재기발랄하다. 과거 중요한 이름이 새겨졌던 현판의 무게를 떨쳐내 세련됨을 자랑한다. 홍송나무에 ‘부시시’ ‘스르륵’ ‘덕’ ‘쉬’ ‘쿵쿵’ 등의 글자를 하얀 단청으로 써 넣었다. 덕수궁 대한문 현판에서 영감 받아 태초의 단어가 무엇일지를 탐구하게 됐다고 한다.

의성어나 의태어를 나무 널빤지 위에 새겨 단어의 의미와 외형의 연결 고리를 해학적으로 형상화했다. 한국에 몇 개월 동안 체류하며 고안한 작품으로 '현판의 고리타분'한 인식을 타파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작가는 "한국어의 의성어는 매우 그래픽적"이라며 ‘쿵쿵’ , ‘쾅쾅’ , ‘꿍꿍’ 등의 단어는 모두 ‘삼삼한’ 장면을 생성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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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이슬기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작가 이슬기는 이번 전시의 주요한 키워드로 ‘구멍'을 강조했다. "가상의 구멍을 통해 전시장에 노을 빛이 스며드는 장면을 상상하며 전시를 구성했다."

 작가가 말하는 ‘구멍’은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담고 있다 . 예를 들어, 문이 만드는 밖과 안을 연결하는 큰 구멍부터 나무 문살의 격자 모양 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작은 구멍 , 전시장 벽면에 직조된 모시 단청 사이사이 등을 의미한다. 전시장 곳곳의 벽면에 도색 된 살구색 또한 노을 빛을 화이트 큐브로 전달하는 구멍 역할을 한다.

'현판프로젝트'를 통해 2019년부터 탐구해 온 ‘문’이라는 주제를 확장했다. 문은 ‘들어가는 곳’, ‘나가는 곳’,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라는 세 가지 공간을 암시함으로써 각기 다른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모든 작품은 변화무쌍하다. 관람객의 위치나 시선, 감정에 따라 달라지고 달리 해석된다. 이슬기의 전시는 '라쇼몽(羅生門 , Rashomo n) 현상'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시각에서의 해석이 어떻게 사물의 본질을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를 천진난만하게 제시한다.

'현판 프로젝트와 ‘홍송’ ‘모시단청’ ‘쿤다리’ ‘바카텔’을 비롯해 누비 장인과 협업한 ‘이불 프로젝트: U’, 한강 물을 유리 볼에 직접 담은 ‘한 1, 2, 3’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8월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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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작가.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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